[사설] 분권 강화 온데간데없고 정치적 셈법만 남은 행정통합
대구·경북(TK) 행정통합 특별법이 여야의 공방 속에 결국 5일 시작되는 3월 임시국회로 넘어왔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2월 국회 마지막 날인 3일 행정통합 특별법 처리를 위한 법제사법위원회·본회의 개최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송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 중단 등 민주당 요구를 다 수용한 만큼 대구·경북 통합 특별법을 신속히 처리하자고 요구했으나, 한 원내대표는 충남·대전 통합 법안도 함께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돼야 할 행정통합이 정치적 셈법에 따른 힘겨루기 양상으로 진행돼 지역 갈등만 조장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행정통합법이 1차 시한은 넘겼지만, 최후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에선 “사실상 이번 주가 진짜 데드라인”이라면서도 “국민의힘 하기에 달렸다”는 말이 나왔다. 통합법의 향배는 3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가 열리는 12일이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여야가 12일 대미투자특별법을 합의 처리하기로 한 상황에서 국힘이 이를 매개로 대구·경북 통합법 통과를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힘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4일 “대구·경북 통합과 함께 대전·충남 찬성 당론을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힘을 갈라치기 해서 내분을 조장하기 위한 민주당의 전략”이라고 비판하면서 특별법 일괄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다. 여야가 두 지역의 통합을 놓고 막판까지 평행선을 달리는 배경에는 지방선거 유불리에 대한 계산이 깔려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전남·광주 통합법을 통과시킨 상황에서 대구·경북 통합법만 통과시키면 핵심 승부처인 충남·대전에서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한다. 국힘 텃밭인 TK 통합이 불발돼도 야당 책임론을 제기해 내부 분열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국힘은 충남·대전 통합 시 지지율이 높은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의 통합특별시장 출마를 부담스러워한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시장에 출마할 경우, 통합시보다는 현 상황 유지가 낫다는 시각도 있다. 여야가 행정통합을 지선 승리의 방편으로 활용하려는 볼썽사나운 모습만 보여주는 셈이다. 행정통합은 ‘5극 3특’에 기반한 지역 균형발전을 통해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겠다는 국가전략이다. 그러나 여야가 보여주는 행태는 지역의 생존 문제를 정치적인 계산으로만 접근한다는 인상을 준다. 분권 강화는 온데간데없이 이해관계를 앞세워 시간만 끄는 사이 지역의 생존권과 주민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여야는 지방분권의 핵심인 실질적인 행정권과 재정권 이양 등 합리적 대안을 조속히 마련해 행정통합의 기본 정신과 원칙을 되살려야 한다. 정치적 셈법으로 계산기만 두드릴 것이 아니라 균형발전의 대의에 부응하는 대국적 관점에서 행정통합 문제를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다.
[사설] 부산 이전 발목 잡는 HMM 노조, 산업은행 전철 밟나
부산은 지난해 말 해양수산부 이전을 기점으로 해양강국의 미래를 선도할 글로벌 해양도시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해수부 산하기관과 해운 기업들이 연이어 부산 이전 로드맵 마련에 착수한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의 부산 이전이다. 부산 해양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국적 선사인 HMM의 빠른 부산 안착이 시급하다. 그러나 HMM 노조는 이전에 강력 반발, 법적 조치와 총파업을 예고했다. 국가 명운을 걸고 추진 중인 해양강국의 꿈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처사다. HMM 부산 이전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지만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HMM 육상노조는 지난 3일 입장문을 내고 다음 달 2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총파업 결의 대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육상노조는 또 본사 소재지 변경을 위한 정관 개정안이 의결될 경우 이사들에 대한 배임죄 고소를 진행하는 것은 물론 향후 주주총회 특별의결에 대해 효력정지가처분 혹은 이전금지 가처분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육상노조가 하루라도 빨리 이뤄져야 하는 HMM 부산 이전을 적극적으로 돕지는 못할망정 되레 반발하고 나선 것은 국가 미래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육상노조가 전향적인 자세로 부산 이전에 협조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HMM의 부산 이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인 과제다. 특히 세계 8위 해운사인 데다 지난해 연간 매출액이 10조 8914억 원에 달하는 대기업 HMM의 이전은 부산을 단기간 내에 글로벌 해운 물류 중심도시로 발돋움시킬 수 있는 파급력을 갖고 있다. 해운정책을 총괄하는 해수부, HMM 대주주이자 해운 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한국해양진흥공사 본사가 부산에 자리한 점을 감안하면 이전 시너지 효과도 엄청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경제 파급 효과도 5년간 15조 원을 상회할 것으로 분석됐다. 더욱이 HMM 부산 이전은 해양산업 거점 완성과 국내 대형 해운선사들의 부산 집적화를 위한 첫 단추이기도 하다. 부산은 글로벌 금융중심지 도약을 위해 2022년부터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조속한 이전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대선 공약이었던 산업은행 이전은 노조의 강력한 반발로 현재까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만약 HMM 육상노조가 산업은행 사례를 전범으로 삼아 부산 이전을 반대한다면 절대로 용납하기 어렵다. 집단 이기주의가 국가 정책의 발목을 잡는 불행한 사례가 근절되도록 정부도 단호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황종우 해수부 신임 장관 지명자도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첫 임무라고 생각하고 노조 설득에 나서야 할 것이다. 부산시도 직원들이 만족할 만한 정주 여건 마련 등을 통해 힘을 보태길 바란다.
[사설] 해수부 이전 효과 지원책 봇물, 해양 신산업 꽃피우길
해양수도를 꿈꾸는 부산이 해양 신산업 창업을 위한 허브로 거듭난다. 해운과 조선, 수산 등 기존 해양산업의 중심지인 부산은 이제 해양강국의 미래를 이끌 해양 신산업의 모태를 꿈꾸기 시작한다. 해양 신산업 창업을 뒷받침하겠다며 부산지역 기관들이 발빠르게 본격적인 지원 시스템과 환경을 마련하고 나선 결과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효과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수부 부산 이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해양 대도시 부산 중심의 현장 위주 신속한 해양 정책 수립으로 해양수도 현실화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 바 있다. 해양 신산업 모태 부산의 꿈은 그 기대의 서막이다.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인 기관은 부산 기술 창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부산기술창업투자원(창투원)이다. 창투원은 최근 부산항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기관인 부산항만공사(BPA)와 해양 신산업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창투원은 해양 신기술 기업 발굴과 투자 지원 등을 맡고 BPA는 항만 현장을 테스트베드로 제공하기로 업무 분장을 했다. 발빠른 해양 현장 기술 적용으로 즉각적인 사업화와 투자 유치로 직결되는 길을 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정부가 설립한 비영리법인인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도 투자유치 특화형 지원사업 운영방식을 해양 신기술 창업에 맞추기로 하고 지원 프로그램 마련에 나섰다. 직접적인 지원 이외에 해양 신산업 창업을 위한 후방 환경 조성 움직임도 활발하다.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비스텝)은 최근 해양사업기획팀을 신설했다. 연구개발(R&D) 사업 발굴과 국비 유치 지원을 맡고 있는 비스텝이 해양 분야 전담 기획팀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양 신산업 특화형 국비 유치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영도 동삼동 해양클러스터에서는 해양 관련 공공기관과 대학, 연구소 등의 역량을 모은 산학연 통합 플랫폼 ‘해양과학기술 산학연 협력센터’도 오는 7월 문을 연다. 클러스터 내 연구·산업 기반 시설을 활용해 해양 기업들에게 임대공간 외에 기술개발을 위해 필요한 공유 공간까지 제공될 예정이다. 부산은 그동안 해양 관련 각종 기능과 기관들이 자생하거나 이전, 유치돼 왔다. 대한민국 해양 관문인 부산에 이 같은 기능과 기관이 모인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들 기능과 기관은 한 데 모여 있었을 뿐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에는 한계를 보여 왔다. 지방자치 시대에도 정책은 정부 부처가 모여 있는 소위 ‘중앙’의 독차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해수부 부산 이전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현장 속 신속하고도 현실적인 정책 수립을 가능케 할 ‘마중물’이 부어진 것이다. 그 마중물은 서말이던 부산의 구슬들을 꿰어 해양 신산업 창업 허브라는 보배로 거듭나게 하려 한다. 이제 막 시작된 그 시너지 효과가 활짝 꽃피우게 되길 기대한다.
이세돌 10년 만의 AI 대국
2016년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알파고 대국은 ‘세기의 대결’로 꼽힌다. 결과는 AI(인공지능)의 4승 1패로 인간의 패배. 하지만 여론은 단 한 번의 승리에 환호했다. AI를 이긴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기적 같은 1승은 기계학습의 허점을 노린 모험 덕분이었다. 이세돌은 수천 년간 축적된 기보를 학습한 알파고의 약점을 간파했다. 신의 한 수로 불린 4국 78번 착점은 사람이 잘 두지 않는 수였다. 알파고의 데이터에 없었던 것. 낯선 행마를 놓고 ‘50초 룰’에 쫓겨 헤맨 탓에 ‘버퍼링’을 일으킨 것이 패인이 됐다.이후 AI는 인간 지식을 배제하는 ‘자가 학습’(self-play)으로 발전했다. 알파고 제로는 기보를 무시한 채 오로지 규칙만 입력된 상태에서 스스로 기력을 향상했다. AI끼리 맞붙고, 승패 요인을 분석해서 더 나은 수순을 개발하고, 다시 두는 과정을 수백만 번 반복하면서 진화한 결과는 놀라웠다. 알파고의 개선된 버전을 상대로 100전 전승을 거둔 것이다. 경기를 본 이세돌은 “알파고 제로가 두는 수는 이해할 수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영역(집)을 더 확보해야 이기는 ‘반상의 쟁투’에서 입증된 작전 능력은 실제 전쟁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AI로 가상의 공습을 하고 공격과 방어 능력을 평가해서 전략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자가 학습’이 적용된다. 실제 미국은 이란과 베네수엘라 작전에서 앤트로픽의 클로드를 사용했다. AI 작전 참모가 공습 시뮬레이션을 돌려 선택지를 제시하면 인간 지휘관이 선별하는 식이다.알파고 충격 10년 만에 이세돌이 AI와 대국하는 이벤트가 열린다. AI 스타트업 인핸스는 오는 9일 과거 알파고 대국장이었던 포시즌스호텔 아라홀에서 이세돌이 AI 에이전트와 대화하면서 ‘미래의 바둑’을 구상하는 자리를 만든다고 밝혔다. AI가 인간의 의도를 돕고 창조성을 높이는 파트너 역할로 진화한 것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다.혹시 명승부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프로기사조차 AI 기보를 연구하는 세상이다. 이세돌과 AI의 두 번째 대국은 승자를 가리기 위한 것일 수 없다. ‘AI를 이길 수 있나’라는 질문은 ‘AI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로 바뀐 지 오래다. 알파고 충격 10년은 대결이 아닌 협업 관계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관전 포인트는 이세돌 9단이 AI를 부리는 솜씨다. 에이전트를 자신의 전략 속에 끌어들여 자유자재로 부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것이 진정한 인간 승리 아닐까.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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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의 세상톡톡] 이런 지방자치에 목매는 나라
대한민국은 세계사적으로 아주 독특한 나라다. 일제강점기를 겪고 해방을 맞은 뒤 중국과 소련이라는 지구상 최강 최대 공산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심지어 공산주의를 내세운 내부 세력이 일으킨 내전을 겪고도 결국 공산화되지 않은 기적의 나라다. 내전의 상처로 인해 지구상 최빈국 신세로 전락하고도 중공업을 중심으로 산업화에 성공함으로써 최단 시일 내 원조받던 처지에서 원조하는 입장이 된 기적의 나라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던 타국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민주화에 성공한 뒤 불법 계엄 무혈 진압까지 이뤄낸 기적의 나라다. 이 같은 세 가지 기적에 버금갈 정도로 독특한 이력이 대한민국에는 하나 더 있다. 제헌헌법 제정 때부터 헌법 제8장에 당당히 들어가 있던 지방자치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라 1949년엔 지방자치법이 공포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지방자치를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서 이렇게 처음부터 헌법에까지 지방자치를 부르짖었던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기가 힘들다. 유럽은 태동부터 지방자치가 현재 유럽의 뼈대를 만들어 온 근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그만 나라인 스위스가 무려 26개 주로 구성돼 독자적인 입법·행정·자치권을 유지할 정도이니 지방자치는 그들에겐 생활 그 자체다. 각 지방이 쿠니(國)로 갈려 오랫동안 내전을 벌여 온 역사로 인해 지금까지 지방색이 뚜렷하고 심지어 지방 사이 갈등이 있는 일본도 지방자치는 일상이라 할 수 있다. 동부 일부 지역에서 시작해 야금야금 땅을 넓히면서 연방 국가를 만들어 온 미국도 지방자치 외엔 뾰족한 답을 찾기 힘들다. 반면 대한민국은 지방자치의 역사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국가인 고구려, 백제, 신라가 나라별로 갈라져 있던 걸 제외하고는 통일신라 이후 지방자치가 행해졌던 적은 없었다. 후삼국이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으니 범위를 더 좁히면 고려시대 이후엔 중앙집권만 있었던 나라라 해도 조금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나라가 제헌헌법 때부터 지방자치 규정을 헌법에까지 넣어두는 기행을 보였으니 독특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방자치가 1991년 지방의회 선거를 계기로 본격 시행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군사정권 시절 산업화 기치를 높이 쳐들면서 효율적 자원 배분을 최우선시함으로써 국가 주도형 체제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조선이나 고려 같은 전형적인 중앙집권 국가로 회귀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수십년 동안의 중앙집권을 거쳐 지방자치가 본격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0년대 말 이후 민주화 성공에 따른 관성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세 가지 큰 기적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 중앙집권과 지방자치가 각각 40여 년과 30여 년을 오가는 동안 가장 큰 부침을 겪은 곳이 있다. 바로 부산이다. 대한민국이 내전을 겪는 동안 부산은 해외 군수물자 조달의 최전방이자 낙동강 방어선의 최후 보루 역할을 했다. 내전 도중 피란민이 몰리면서 인구가 늘고 내전 이후 산업화의 무대가 된 부산은 전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도시가 됐다. 1945년 28만 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1970년엔 200만 명을 돌파할 정도의 압축적 성장세였다. 부산만 지나치게 성장한다고 판단한 정부는 부산을 규제하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정부는 1972년 부산지역 법인 등록세를 ‘무려’ 5배나 올리는 극약 처방을 한다. 이후 부산은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1995년 중과세가 풀릴 때까지 도심에 있던 대기업의 모태들은 모조리 부산 밖으로 빠져나갔고 부산은 철저히 몰락했다. 제조업 붕괴 이후 산업구조 변화를 시도하려 하자 이번엔 지방자치가 발목을 잡는다. 몰락을 막을 특별법 제정은 타지역과의 형평성이라는 족쇄가 채워지기 일쑤였기에 늘 배제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전략적 거점 같은 가치는 아예 꿈꿀 수도 없어졌다. 중앙집권 땐 타 지역보다 너무 발전한다며 중과세로 묶인 채 얻어맞고 지방자치 땐 타 지역과 키를 맞춘다는 논리로 주요 거점으로조차 대우받지 못하는 것이 부산의 현주소다. 부산의 부침은 최근 진행된 광역 행정통합 과정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무려 20조 원에 달하는 정부 인센티브를 ‘미끼’처럼 흔들며 진행된 기이한 행정통합 앞에 부산은 지자체 중 하나로서 미끼 앞에 고뇌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권한과 돈이 중앙에 집중된 나라의 기형적 ‘중앙 주도식 지방자치’ 끝판왕을 보는 듯하다. 기괴한 중앙 주도식 지방자치의 관성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부산은 과연 지방자치 명목의 6월 선거 이후 재반등할 모멘텀을 찾을 수 있을까.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부동산이 묻는 사회적 가치
필자는 2021년 4월 21일 자 본 칼럼에서 ‘토지의 주인은 원래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법적으로 소유권은 개인에게 귀속되지만, 토지가 만들어내는 가치의 상당 부분은 공동체가 형성한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도로와 철도, 학교와 병원, 산업단지와 공원,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라는 거대한 협업의 결과가 땅값을 만든다. 한 필지의 가격은 그 땅 위에 서 있는 건물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주변의 인프라, 사람, 제도가 함께 만든 총합이 토지의 가치를 형성한다. 더 나아가 원래 처음부터 토지는 특정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었다는 문제 제기를 통해 부동산 문제의 근본 원인이 과다한 불로소득 발생에 있다면 불로소득 발생을 차단하거나 환수하지 않는 이상 투기를 잠재우기는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강한 세제와 보유세 강화를 통해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환수하려 했다. 종합부동산세 도입은 상징적 조치였다. 토지공개념의 정신을 정책으로 구현하려는 시도였지만, 사회적 갈등이 만만치 않았다. 양도세 유예 종료, 자본 흐름 재배치 정책 싱가포르, 다주택 자산 축적 어렵게 설계 집은 투자 수단 아닌 다수의 삶 기반 돼야 문재인 정부 역시 다주택자를 정책의 중심에 두었다. 다주택 보유에 대한 중과세, 양도세 강화, 대출 규제는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정책의 빈번한 수정과 예외 조항은 오히려 매물 잠김과 가격 상승이라는 역설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다주택자 양도세 한시적 유예였다. 일정 기간 양도세 중과를 완화해 매물을 시장에 유도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집값을 안정시키지는 못했다. 이제 5월이면 그 유예의 종료 시점이 다가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일, “돈이 되니까 살지도 않을 집을 사 모으는 것”이라며 다주택이나 투자용 비거주 주택의 매도를 유도하는 취지를 설명했다. 이는 도덕적 의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정책의 실패 또는 방임 속에서 형성된 이익 구조를 급격한 충격 없이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양도세 유예 종료는 단순히 세율의 복원이 아니다. 그것은 다주택자에게 여러 주택을 계속 보유할지, 아니면 처분할지에 대한 판단을 하라는 것이다. 세금 부담이 높아진 상황에서 선택지는 세 가지다. 계속 보유하거나, 임대 사업 등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거나, 매각해 다른 자산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자본의 이동이다. 매각이 이루어진다면, 그 자금은 금융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주식, 채권, 펀드, 혹은 신성장 산업 투자로 이동할 수 있다. 이는 자산 포트폴리오의 다변화를 촉진하고, 과도하게 부동산에 집중된 자본을 생산적 영역으로 분산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양도세 유예 종료는 세제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흐름을 재배치하는 정책적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싱가포르를 방문한 대통령의 행보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싱가포르는 국토의 대부분을 국가가 소유하고, 공공주택을 중심으로 주거 안정을 유지해 왔다. 다주택을 통한 자산 축적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대신, 금융시장과 산업 투자로 자본이 흘러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공공 인프라와 주거 정책으로 환류된다. 토지의 공공성을 제도화한 사례다. 물론 우리는 싱가포르와 다르다. 한국의 토지는 사유재산권에 대한 감수성도, 개발 과정에서 형성된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우리나라의 토지는 전쟁과 산업화, 압축 성장의 시간을 거치며 자산 축적의 핵심 통로가 되었다. 부모 세대의 아파트 한 채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생애의 노력과 불안을 보상받는 상징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토지와 주택은 경제적 대상이면서 동시에 정서적 대상이다. 그렇기에 부동산 정책은 경제 정책만이 아니라 한 사회가 소유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공동체의 몫을 어디까지 인정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확장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세대 간 자산 격차가 구조화되는 현실에서, 주거 문제를 외면한 채 불평등을 논하기는 어렵다. 자가 점유가 불평등 완화의 요인으로 작동한다면, 정책의 초점은 명확하다. 더 많은 이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리고 주택이 과도한 투자 수단으로 기능하지 않도록 제도적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건축설계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집은 재화이기 이전에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이 소수의 투자 수단이 아니라 다수의 삶의 기반이 될 때, 비로소 토지는 공동체의 토대가 된다. 집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사이의 간극이 단순한 자산 차이를 넘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면 사회는 균열을 피하기 어렵다. 부동산 정책은 그래서 단순한 경제 운용의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코다이 무반주 첼로소나타, 영화 ‘퐁네프의 연인’에 나오던 그 곡!
영화는 때때로 한 곡의 음악을 통해 우리의 감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스크린 속 인물의 표정과 도시의 풍경까지도 한순간 음악으로 재구성된다. 그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된다. 백 마디 말보다 강한 선율, 나에게 코다이의 첼로소나타는 바로 그런 체험이었다. 이 곡이 처음 가슴에 들어온 순간을 기억한다. 프랑스 배우 드니 라방과 쥘리에트 비노슈가 출연한 1991년 영화 <퐁네프의 연인>에서였다. 영화의 시작 부분부터 이 음악의 1악장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지하도에서 미셀과 알렉스가 필사적으로 뛰어가던 장면에서 어떤 대사보다 강렬하게 두 사람의 마음을 표현해 주었다. 영화가 끝난 후 나는 곧장 음반 가게로 가서 야노스 슈타커가 연주한 코다이 무반주 첼로 소나타 음반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체코의 근대 음악에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야나체크가 있었다면, 헝가리의 근대 음악엔 코다이(Zoltan Kodaly, 1897~1967)와 버르토크라는 두 개의 기둥이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이 민속 음악을 채집하고 연구했지만 정작 버르토크는 “가장 완벽하게 헝가리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작품을 쓴 작곡가를 꼽으라면 단연 코다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코다이는 오페라 ‘하리 야노슈’, 관현악곡 ‘갈란타 춤곡’, 교회음악 ‘스타바트 마테르’ 등 멋진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청각 경험을 선사하는 곡은 무반주 첼로 소나타 B단조다. 그는 33세 젊은 시절인 1915년에 이 곡을 썼는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초연을 미루고 있다가 1918년 5월 부다페스트에서 예뇌 케르페이의 연주로 초연했다. 코다이 자신도 작품에 만족해서 이렇게 말했다. “25년쯤 지나면 이 소나타를 연주하지 않고서는 첼리스트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야.” 1악장은 매우 정열적이다. 격렬한 리듬과 복잡한 화성이 교차하며 거대한 강물을 이룬다. 2악장은 슬픈 민요를 부르는 것 같다. 첼로의 저음과 고음이 대비를 이루면서 환상 속을 더듬는다. 그리고 3악장은 가장 화려한 부분이다. 민속 춤곡의 색채에 더하여 더블스톱, 트리플스톱, 왼손 피치카토, 스코르다투라 같은 화려한 첼로 주법을 총동원하여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그 모든 드라마를 피아노도, 오케스트라도 없이 첼로 한 대만으로 이루어낸다. 이건 작곡가건 연주자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화성도, 리듬도, 선율도 오직 한 악기가 책임져야 하니 도무지 숨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만큼 솔직하고 내면적이라 할 수 있다. 첼로는 독백이나 한숨같이 들리기도 하고 절규처럼 울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첼로라는 악기로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바흐에서 시작된 무반주 첼로의 전통을 20세기적으로 계승하고 확장한 작곡가, 졸탄 코다이는 오늘로부터 딱 59년 전인 1967년 3월 6일에 세상을 떠났다.
[데스크 칼럼] 흡수통합만 바라보는 에어부산의 내핍경영
에어부산의 노사 갈등이 지난달 25~27일 조합원 투표에서 합의안 찬성으로 일단락됐다. 에어부산 노사는 임금 인상폭을 놓고 충돌했지만 이면에는 ‘흡수통합’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진에어에 통합되는 에어부산의 직원들은 ‘차별’에 대한 우려로 ‘동일 처우’ 확약을 요구하며 사측과 충돌했다. 흡수합병으로 사라지는 에어부산의 ‘마지막’이 다가오면서 그 후폭풍이 점차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2027년 1분기로 예고된 에어부산과 진에어의 합병에 대해선 에어부산 직원을 비롯해 주주, 항공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에어부산이 흡수통합을 앞두고 수년째 ‘내핍경영’으로 기업 가치를 축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지역 거점 항공사 공중 분해’에 대한 우려도 높다. 에어부산 노조의 한 관계자는 “이번 노사 갈등의 핵심은 통합 이후 동일 처우에 대한 보장 문제”라고 밝혔다. 통합 이후 하나의 회사가 되지만 피인수기업 직원에 대한 임금, 경력산정 등의 차별 우려가 높다는 주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피인수기업 직원이 임금이나 경력 산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던 사례가 실제 있었다”고 지적했다. 에어부산 노조는 사측에 통합 이후 동일 처우를 확약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회사 측은 피인수기업 입장에서 인수합병 이후 처우를 약속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는 인수합병의 실질적 주체인 대한항공이 동일 처우를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이번 노사 갈등 과정에서도 에어부산 사측은 “합병 이후에 직원들 처우에 차별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에 머물렀다. 흡수 합병에 대한 불만은 에어부산 주주도 마찬가지다. 에어부산 등 아시아나항공 계열사는 합병이 이뤄지기 전부터 ‘인수 기업’인 대한항공이 사실상 경영을 장악한 상태다. 송보영 아시아나항공 사장, 김중호 에어서울 사장, 정병섭 에어부산 사장은 모두 대한항공 출신이다. 대한항공 출신인 에어부산 경영진 입장에선 흡수 합병을 앞두고 회사 가치를 높일 ‘인센티브’가 없다. 실제로 에어부산은 2020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방침이 발표된 이후 항공기 확보 경쟁에서 뒤처지는 등 내핍경영을 계속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통계에 따르면 2026년 1월 전년 동월 대비 ‘탑승률’이 하락한 주요 국내 항공사(월간 4000회 이상 운항)는 에어부산(-2.2%), 아시아나항공(-0.1%)뿐이다. 코로나19 이후 항공업계가 ‘공급 경쟁’에 나서면서 기단 확대, 노선 확대에 나선 상태지만 에어부산은 통합 대비에 집중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잃어가고 있다. 내핍경영이 계속되면서 ‘지역 거점 항공사’인 에어부산이 김해공항 운항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줄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2025년 에어부산의 김해공항 운항은 22%, 승객은 16%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에어부산 경쟁사인 티웨이항공은 김해공항 운항이 43%, 승객이 68% 늘었다. 에어부산의 ‘빈자리’를 노리는 이스타항공도 같은 기간 김해공항 운항이 74%, 승객이 83% 늘었다. 대한항공 계열에서는 에어부산을 흡수합병 하는 진에어가 김해공항 운항을 79% 늘리면서 승객도 89% 늘었다. 그러나 대한항공 계열 3사(대한항공+진에어+에어부산)를 모두 합해도 2019년 대비 2025년 김해공항 운항은 7810편이나 줄었다. 이 때문에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의 증편 운항에도 불구하고 2019년 대비 2025년 김해공항의 ‘국적사’ 운항은 3087편 줄었다. 에어부산의 내핍 경영은 주가 하락 등 기업가치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합병 방침이 발표된 2020년 11월 16일 7610원이던 에어부산 주가는 2026년 3월 4일에는 1700원대로 떨어졌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주가 하락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경쟁사인 티웨이항공의 주가(2478원→1200원대)와 비교하면 하락폭이 크다. 에어부산이 내핍 경영에 따른 기업가치 하락이 개정된 상법 위반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어부산 기업가치 하락이 인수 주체가 되는 지배주주(대한항공 계열)에게는 이익이지만 소액주주 등 일반주주에게는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개정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했다. 기업 인수, 합병에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익이 충돌할 때 일반주주 권리 침해가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진에어와 에어부산 합병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이 충돌하는 사례로 볼 수 있어 합병 시점에서 주식교환비율을 놓고 주주들의 반발이 발생할 수 있다. 김종우 서울경제부 부장 kjongwoo@busan.com
[중앙로365] 당신의 죽음은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부산일보〉를 통해 부산시의 공영장례가 부실하게 운영되어 이른바 ‘꼼수 장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최소 6시간으로 규정돼 있는 조문 시간을 단축하거나 조문이 공지된 시간에 빈소가 치워지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공영장례는 연고가 없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이들의 존엄한 죽음을 돕는 제도다. 부산시는 2022년부터 공영장례 조례를 시행하여 햇수로 4년을 맞았지만 지난해에도 부실한 운영이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기사를 접하면서 17년간 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에서 활동하며 겪었던 여성들의 죽음이 떠올랐다.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언니, 스스로 삶을 마감한 언니, 성구매자에게 살해된 언니…. 가족과 연락이 오래도록 끊겨 있거나 겨우 연락이 닿아도 시신 수습과 장례를 포기해서 활동가들이 대신 상주가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무연고자인 언니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활동가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천도제를 치러 준 일도 있었다. 정경숙의 〈완월동 여자들〉에는 그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살림’이 천도제를 지냈다는 소식에 완월동의 여성들은 “고맙다. 우리가 죽으면 누가 초상 치러줄까 걱정했는데 이제 안심이 된다”라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고 전한다. 20대 초반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이도 있었다. 멀리서 가족과 연락이 닿아 장례를 치렀지만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른 무연고자의 유골과 함께 봉안했다. 담당 활동가는 매년 그의 기일에 추모를 하러 공공봉안시설을 방문했다. 부산시 공영장례 부실 운영은 죽음에 대한 공적 인식 드러내 사회 활동가로서 접했던 죽음 공동체와의 연결성 되짚게 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까지 외면 않는 사회가 될 수 있길… 완월동에서 나왔음에도 무연고자로 병원 중환자실에서 삶의 마지막 몇 개월을 보내야 했던 내담자 언니의 죽음도 잊을 수 없다. 새벽에 시신을 수습해가라는 병원 측의 연락을 받고 슬픔과 황망함에 어쩔 줄 몰라 울었던 당시의 내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다행히 성당에 다녔던 언니를 위해 신도들이 장례를 치러주고 미사를 올렸으며 가는 길 내내 추모와 애도를 함께 했다. 그때 장례를 치르고 정성스럽게 애도한다는 것이 살아가는 이에게도 크나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공동체의 바깥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은 인권 활동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세상과 공동체 밖으로 소외된 삶의 연속선에 그 죽음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년학자 이기숙은 “죽음은 인간의 경험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며 “함께 애도하는 것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가족과 종교라는 공동체는 죽음 앞에서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오늘날 사회에서 죽음은 더 이상 이러한 사적 공동체만의 몫이 아니다. 1인 가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고령화는 이미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되었다. 실제로 무연고 시신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무연고 시신 처리 현황에 따르면 부산시는 2012년 61건에서 2024년 683건으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서울, 경기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우리는 출생과 양육을 국가 정책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도, 떠남은 여전히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산반빈곤센터 임기헌 활동가는 죽음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공영장례가 자선이 아니라 기본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공영장례 조문단을 운영한 결과 처음에는 자선과 봉사의 마음으로 시작했던 시민들이 ‘존엄한 죽음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영장례는 이러한 시민들의 변화에 호응하는 정책이며, 시민들의 뜻을 제대로 새길 때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헬렌 니어링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 “사랑과 떠남은 삶의 일부이다.” 실제로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삶의 일부로서 죽음을 생각한다. 또한 죽음은 우리가 어떻게 사회나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는지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무연고자의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곧 우리 자신의 마지막을 어떻게 상상하는가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가 어떻게 삶의 존엄을 지켜나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존엄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공영장례는 애도하고 애도받을 권리를 실현하는 좋은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공영장례는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얼마나 공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애도하고 애도받을 권리를 회복하고 공영장례와 같은 좋은 정책을 밑거름삼아 새로운 장례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 시민의 관심과 좋은 정책은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끝없는 여정 속에 있다.
[시론] 건강도시 부산에 필요한 예술은 어느 쪽일까
부산의 사망률이 다른 지역보다 더 높다고 이야기하면, 흔한 대답이 돌아온다. “노인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닌가요?” 인구 숫자 대비 사망하는 사람의 수의 비율을 뜻하는 조사망률(crude mortality)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 말이 맞다. 하지만 〈부산일보〉가 2013년 ‘건강 최악 도시 부산’, 2026년 ‘함께 넘자 80세 허들’ 연재를 통해 꾸준히 지적해 온 부산의 나쁜 건강은 고령화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 간 건강 수준을 비교할 때는 나이 구성처럼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결과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보다 더 고민스러운 건 부산 안에서 지역별로 건강의 격차가 크다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다. 설명을 한참 하다 보면 “집값 비싸고 잘 사는 동네의 돈 많은 이들이 오래 살고, 빈집 많고 빈곤한 동네의 사람들이 더 빨리 아프고 더 일찍 죽는 걸 어떡하자는 거냐”라는 진심이 은근슬쩍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망률 높고 지역별 건강 격차 커 빈곤과 건강 불평등 일치는 편견 마을건강센터 공동체 돌봄의 모범 주민 건강 위해 공적 자원 집중해야 생활고로 잃은 삶의 다채로움 회복 하지만 건강 불평등을 연구해 온 석학들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반드시 건강의 불평등으로 이어져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빈곤 수준이 비슷한 탈산업화 항구도시인 영국의 글래스고와 리버풀을 비교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두 도시는 소득 분포가 거의 같다. 하지만 65세가 되기 전에 죽는 사람의 비율은 글래스고에서 30%나 더 많았다. 연구자들은 그 원인을 빈곤 자체가 아니라 빈곤에 대응해 온 도시의 정책과 공동체의 차이에서 찾는다. ‘함께 넘자 80세 허들’ 기획 연재는 부산 안에서도 기대여명이 줄어드는 생활권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살러 들어오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과 죽는 사람이 더 많아 인구는 줄고, 집은 낡아가는 지역에 편하게 찾을 동네 병의원이 유지되기 어렵다. 주민들이 만나 어울릴 공간도 같이 줄어드니 이웃 간에 관계를 만들기도 어렵다. 영도 봉래동 수도의원에서 주민들을 매일 만나는 노동현 원장은 이런 지역 주민들이 ‘초간단 생활’을 한다고 표현한다. 활기를 잃고, 집 밖을 나가지 않고, 고립되어 기력을 잃은 삶이다. 부산 내에도 여전히 기대수명이 증가하는 생활권이 있지만, 기대수명이 역주행하는 생활권도 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지금, 시의 대응은 어떠해야 할까?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야 각자 다양하겠지만, 불평등을 확인한 지방정부마저 손 놓고 있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수명이 줄어드는 지역들에 건강을 위한 공적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누적된 생활고로 잃어버린 삶의 다채로움을 되찾을 수 있게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부산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비어가는 마을에서 돌봄의 관계를 조성하는 일을 목표로 하는 보기 드문 공공기관이 있다. ‘부산광역시 건강 형평성 실현을 위한 조례’에 따라 운영되는 마을건강센터다. 마을건강센터는 건강 상담과 노쇠 관리 같은 서비스도 제공하지만, 무엇보다 마을 단위에서 주민들이 건강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고 활동할 수 있게끔 돕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는다. 영국의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ption), 올해부터 시행될 통합돌봄의 지향과도 맥이 닿아 있다. 하지만 활약을 기대하기엔 마을건강센터의 사정이 좋지 않다. 민선 8기 부산시정은 마을건강센터를 2026년 110개까지 늘리겠다는 공약을 예산 부족을 이유로 어겼다. 2025년 부산시가 63개의 마을건강센터에 배정한 예산은 총 20억 원 정도로, 부산시가 매해 불꽃축제에 들이는 돈보다도 적다. “예산이 부족하다”라는 부산에는 조만간 퐁피두미술관 부산 분관이 건립될 예정이다. 부산시는 퐁피두센터에 브랜드 사용료로만 400만 유로, 약 65억 원을 매년 지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기대수명이 역주행 중인 아미충무 생활권에 거주하는 주민 중에 퐁피두미술관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프랑스로 보낼 65억을 마을건강센터에서 쓴다면, 인구가 줄어드는 부산의 마을들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본다. 벚꽃 피는 봄, 마을건강센터에서 홀로 사는 노년의 주민들에게 시민공원으로 소풍을 갔다가 미술관에 들러 사진을 찍어오라는 사회적 처방을 내고 싶다. 마을엔 돌봄협동조합이 만들어져 돌봄 일자리가 생기고, 마을 공동급식에서 내어놓을 반찬을 두고 와글와글 활기가 도는 모습도. 이쪽이 더 예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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