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사장 집단 반발… 검란으로 비화하는 '대장동 항소 포기'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 결정을 둘러싸고 검찰 내부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김창진 부산지검장을 비롯한 전국 검사장 18명은 연명으로 항소 포기에 대해 10일 검찰 내부망에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공동 입장문을 올렸다. 대검 수뇌부를 향한 집단 성명이다. 항소 의견을 낸 서울중앙지검장은 권한대행의 포기 지시에 사의를 표했고, 사건을 맡았던 일선 검사들도 “민간업자들에게 수천억 원대 범죄 수익을 안긴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선 “이례적 사태가 아니라 전면적 내부 충돌”이란 말이 나온다. 이번 사태가 검란(檢亂)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였다. 서울중앙지검은 분명 항소 의견을 냈지만, 대검이 이를 뒤집었다. 이로써 2심에서는 1심보다 형량을 높일 수 없게 됐다. 1심이 인정한 추징액 상한은 473억 원에 불과하다. 수천억 원대 부정 이익을 확인한 검찰로선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권한대행은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 했고, 법무부 장관은 “항소 안 해도 문제없다”며 “대검에 신중히 판단하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관이 개별 사건에 의견을 낸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최종 결정의 주체와 법리 근거가 불분명해 외압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가 되고 있다. 정치권의 공방도 거세다. 야당은 “국민 상식을 거스른 결정”이라며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여당은 검찰의 반발을 “정치 검사들의 쿠데타”로 규정하며 검찰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정치가 아니다. 핵심은 검찰이 외압 없이 법리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독립성이다. 검찰청 폐지 논의와 수사권 완전 박탈 등 제도 개편 논의가 병행되는 시점이어서 이번 사태의 휘발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항소 포기가 정치적 판단이었다면 명백한 권한 남용이며, 직권 결정이라면 월권이다. 법무부 장관이 개입했다면 불법 지휘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검찰이 정치 권력의 영향 아래 놓이는 순간 법치의 근간은 무너진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검찰의 수사·공소권이 권력 의중에 따라 좌우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기에 내부 반발이 터져 나온 것이다. 검찰총장 대행의 직권 남용 논란, 법무부의 어정쩡한 해명, 대통령실의 침묵은 오히려 사법 신뢰를 더 허물고 있다. 정부는 이 사태를 경각심을 갖고 엄중히 바라봐야 한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진실 규명만이 유일한 출구다. 누가, 어떤 이유로 항소 포기를 지시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의 신뢰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또다시 정치적 판단이 수사에 개입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사설] 해양과 미래 기술 대융합, 부산 산업생태계 혁신 주목한다
부산시가 10일 ‘부산 경제성장 혁신전략 핵심사업 보고회’를 열고 미래 신산업성장 육성을 통한 ‘글로벌 톱 5 해양도시’ 도약을 기치로 내걸었다. 시는 해양-미래 기술 대융합, 인공지능(AI) 기반 기술혁신 고도화, 소재·부품·장비 및 에너지산업 선도, 라이프산업 활성화 등 4대 전략과 71개 핵심사업을 추진한다. 이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육성 분야는 ‘해양-미래 기술 대융합’으로 1조 9270억 원이 투입된다. 핵심은 해양 항만 인공지능 전환(AX) 실증센터를 유치하고, 차세대 스마트 조선 기술을 선점해 해양 분야에 특화된 AI 허브를 신속히 구축하는 것이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맞물려서 해양 산업생태계 혁신이 주목된다. 해양과 미래 기술의 융합은 산업 대전환 시대에서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다. AI와 바다, 두 축이 교차하는 부산은 ‘해양 AI’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다. AI 기반의 지능형 물류 플랫폼과 스마트 자동화 터미널 구축, 자율 운항 선박, 북극항로 데이터 허브 등 확장할 영역이 무수히 많다. 부산시도 지난 9월 (재)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BISTEP)을 전담 기관으로 해 ‘부산형 해양신산업 선도전략 수립 정책연구’ 용역에 착수했다. 스마트 해양 모빌리티, 블루 파이낸싱, 저온 유통, 해양 바이오, 극지 연구개발(R&D) 등 분야를 망라해 연구한다. 부산형 해양신산업을 발굴·육성할 전략과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 미래 신성장산업 육성을 위한 시의 4대 전략 가운데 AI 기반 기술혁신 고도화는 중요하다. 총 7824억 원을 투입해 ‘한국형 그린데이터센터’ 선도 모델을 구축하는 등 AI 전환(AX) 거점을 조성하는 것이다. 산업 전반의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기술 모델을 개발·공급하는 데 주력한다고 한다. 미래 산업의 근간이 될 첨단 소부장 협력단지를 만들고, 에너지 신산업 경쟁력을 확보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선도한다는 계획도 눈길을 끈다. 관광과 콘텐츠, 헬스케어 등 삶의 질과 직결된 라이프 산업도 미래 산업의 핵심 축이다. 이 산업들을 잘 아울러 부산의 미래 성장 잠재력을 폭발시킬 핵심 산업으로 육성해야 할 것이다. 부산이란 도시가 점점 쇠락하고 떠나는 청년이 많은 이유는 새로운 산업에 대한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미래 전략 산업을 어떻게 키워내고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혁신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런 가운데 부산의 강점인 항만·물류는 AI 기술로 성장이 유망한 분야여서 시의 해양-미래 기술 대융합 방향 설정은 시의적절하다. 특히 정부의 ‘피지컬 AI’ 육성 방안에 발맞춰 항만·물류·자율 운항 선박 분야 등 해양산업 부흥을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 시가 장기적으로 4대 전략을 중심으로 71개 핵심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해 부산의 산업생태계를 반드시 혁신하길 바란다.
[사설] 위험 경고 무시… 인재로 밝혀지는 동서발전 붕괴 참사
지난 6일 오후 2시 2분 울산 남구 용잠동 한국동서발전 울산발전본부 울산화력발전소에서 해체 준비 작업 중이던 60m 높이의 보일러 타워 5호기가 무너져 9명의 사상·실종자가 발생했다. 9일 오후 현재까지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매몰된 상태다. 특히 구조물에 팔이 끼인 상태로 발견된 생존자가 구조 도중 결국 숨지는 등 현장에서는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시공사가 위험한 작업임을 알고도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강행한 것이 이번 참사의 원인이라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번 참사도 결국 인재인 것이다. 유사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가려야 한다. 〈부산일보〉가 ‘울산 기력(보일러 타워) 4,5,6호기 해체공사 안전관리계획서’ 등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보일러 타워 위험성을 낮추는 개선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작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일러 타워 위험성 등급은 12점이었는데 이는 계획서상 해체공사 허용 불가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위험성을 9점 미만으로 낮추는 대책을 세운 뒤 작업을 재개하도록 했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 이번 참사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둥을 50% 이상 잘라내는 작업을 실시하면서도 구조기술사 검토조차 없었다는 점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발파 해체 공법을 사용하는 고위험 작업을 이렇게 허술하게 진행한 것은 대형 참사를 예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작업 현장에 대한 관리감독 수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안전관리계획서 등은 붕괴 매몰 위험 대책으로 관리감독자 없이 작업자만으로 작업을 진행하지 않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소방 관계자 등에 따르면 사고 당시 보일러 타워에는 하청업체 직원 9명만 있었다고 한다. 참사가 발생한 공사는 동서발전이 HJ중공업에 시공을 맡기고, HJ중공업이 이를 다시 발파·철거 하청업체인 ‘코리아카코’에 하도급한 다단계 구조에 의해 진행됐다.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인 것이다. 다단계 하청 구조로 인한 원가 절감 압박 때문에 공기 단축 시도와 안전조치 부실 등이 이뤄졌을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수사가 필요하다. 현재 경찰이 대규모 수사팀을 투입한 데 이어 검찰과 노동부도 전담팀을 꾸렸다. 수사팀은 붕괴 원인과 과정을 규명하고 원·하청 작업 지시 체계, 작업 공법, 안전 관리 체계 등을 전방위로 확인해야 한다. 위험성이 매우 높은 작업을 적절한 안전 조치도 없이 누가, 왜 승인하고 강행했는지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도 제대로 가려야 한다. 더욱이 이번 참사는 인근에 자리한 SK에너지에서 폭발 사고로 2명의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발생했다. 발주처는 물론 현장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문책은 물론 강력한 재발 방지 대책이 절실하다.
방카르와 늑대 로봇
몽골은 13세기에 아시아와 유럽의 대부분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몽골은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칭기즈칸이라는 걸출한 영웅과 그의 후인들은 빠른 기동력과 십진법이라는 군사 조직, 효과적인 공포 전술 등을 앞세워 아시아와 유럽을 초토화시켰다. 몽골이 정복 전쟁을 성공시킨 또 다른 비결 가운데 하나는 용맹스러운 군견을 전투에 활용한 것이었다. 10명, 100명, 1000명, 1만 명 단위로 구성된 몽골의 군사 조직들마다 몽골리안 방카르 품종의 개 무리를 데리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원정에 참여한 방카르는 수만 마리에 달했다고 한다.방카르는 몽골 유목민과 가축을 지키는 대형 경비견으로, 늑대와 눈표범까지 혼자 상대할 만큼 덩치도 크고 전투력도 뛰어나다. 주인에게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이지만 낯선 이에겐 강한 경계심을 드러낸다.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몽골의 혹한을 견딜 만큼 무척 강인하기도 하다. 눈 위에 두 개의 반점이 있는 방카르는 언뜻 보면 눈이 네 개인 것처럼 보여 ‘귀신 보는 개’라고도 불린다. 말을 탄 몽골 군사들과 함께 등장한 방카르 무리의 낯선 생김새를 본 유럽인들의 공포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최근 중국이 몽골 방카르의 역할을 연상시키는 이른바 전투용 늑대 로봇을 선보였다. 올 9월 3일 베이징 전승절 열병식을 통해 처음 실물 공개된 늑대 로봇은 무게 약 70㎏에 자율주행 방식으로 사족 보행을 한다. 급경사 지형과 장애물까지 돌파, 정찰·폭파·공격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늑대 로봇 무리는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기 때문에 전장 적응력도 뛰어나다. 20㎏의 적재물을 운반할 수 있고 주행 가능 거리는 10km, 운행 시간은 2.5시간이다.중국은 최근 대만 침공을 가정한 실전형 군사훈련에 처음으로 늑대 로봇을 투입했다. 동부전구 육군 제72집단군 산하 부대가 늑대 로봇을 선두에 세워 적진으로 돌격하는 장면이 공개됐다. 이 훈련은 인간 병사가 늑대 로봇 등 지상 무인 전투 체계와 한 팀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이제부터 일반화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늑대 로봇의 역할은 몽골 유목민 전사와 한 팀을 이뤄 질주하던 방카르와 일면 유사하다. 최첨단 기술로 탄생한 인공지능 방카르인 셈이다. 하지만 몽골의 정복 등 역사 속 모든 전쟁은 큰 불행을 초래했다. 방카르를 닮은 늑대 로봇이 파괴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보는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이재희의 디지털 광장] AI는 이제 '절친'의 반열에 올랐다
40년 지기들과 최근 ‘동갑여행’을 다녀왔다. “남들은 다 해외로 가던데 우리는 가까운 일본이라도 가야 하지 않을까?” 까까머리, 단발머리로 만났던 소년소녀들이 여행 전부터 사뭇 들떴다. 친구가 7~8명이나 되다 보니 각자 가고 싶은 곳이 많았다. 은퇴자, 자영업자, 재취업자, 현역 등이 뒤섞여 있는 이질적 또래집단이라 일정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국내’지만 ‘해외’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제주도로 가기로 했다. 제주도에서 살아봤다는 이유로 여행 계획을 짜기로 한 친구의 숙제가 늦어졌다. 성질 급한 친구가 불쑥 긴 일정표를 단톡방에 올렸다.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고향 남녀 친구가 회갑을 맞아 제주도로 2박3일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일정을 알려줘’라는 질문으로 만들어진 계획서였다. 가고 싶은 곳이 많아서 그랬는지 일정이 좀 빡셌다. AI가 만든 계획에 인간 친구의 재치가 추가된 뒤에야 원하는 계획이 마련되었다. 추억을 소환하고 새로이 만드는 ‘동갑여행’은 성공적이었다. 맛집이면 맛집, 쾌적한 숙소면 숙소, 빠트릴 수 없는 명소를 척척 안내하고 소개하는 AI도 여행 내내 함께했다. AI를 자주 접하지 못했던 친구들은 어려운 미션을 척척 수행하는 ‘초대받지 않은 AI 친구’의 능력을 신통방통해 했다. 대중적 인공지능 챗GPT가 2022년 11월 30일 세상에 나온 지 이달로 꼭 3년이 되었다. 초창기 챗GPT는 그 어렵다는 미국변호사 시험을 하위 10% 순위로 통과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챗GPT4로 발전하면서 이번에는 같은 시험을 상위 10%의 성적으로 통과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작은 날갯짓은 다양한 AI의 촉발을 가져왔다. 구글의 재미나이(Gemini), 검색이 특화된 퍼플렉시티(Perplexity)는 물론 휴대폰에 탑재된 갤럭시 AI나 빅스비, 시리 등 다양하다. 일상생활에서나 전문적 업무에서 AI는 이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AI의 활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AI 때문에 망할 직업군이 심심찮게 거론된다. 특히 AI는 잠재한 패턴을 잘 잡아내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프로그래머, 법리를 잘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 변호사 등의 전문직군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한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준비하는 지역신문의 생존 전략도 AI 시대를 맞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시대적으로 신기술이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일자리가 대체됐는데, 범위를 넓혀보면 신문(기자)도 대체될 것인가가 업계의 관심사가 됐다. 이미 미디어시장은 신문과 방송이라는 레거시미디어의 약화가 시작됐다. 대통령실 출입기자에 유튜버 언론(온라인 매체)이 배정된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한때 몇 백만 부를 찍던 전국지 위세가 대단했지만, 지금은 300만 명이 넘는 구독자에 동접자(한 서비스에 동시에 접속한 이용자 수) 30만 명을 넘나드는 유튜브 방송의 위력이 단연 돋보인다. 유력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고, 정치적 메시지가 영상콘텐츠를 통해서 뿌려진다. 이런 급변의 시기와 동반 성장하는 AI는 언론은 물론, 모든 사회적 지각변동을 부추기고 있다. 현재의 AI를 외면하면 다음번에 오는 변화의 폭주 기관차에 오르기 쉽지 않다. 진입장벽은 한껏 높아질 것이다. 최근 정부의 주권AI 소버린은 지역언론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유력 포털이 신문 기사를 AI 학습에 무단 사용한 정황이 의심됐지만, 신문협회는 공정위 제소만 했을 뿐이다. 혹여 그들이 ‘저작권료를 주겠소’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역신문 기준 1년치 콘텐츠의 시장가격이 고작 2000만 원 정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인공지능이 각광을 받으면서 디지털 신문의 장점인 기사 검색 기능도 위협받고 있다. 인공지능은 교활하다. 질문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할루시네이션(환각·그럴듯한 가짜 정보)을 구사한다. 검색의 결과를 조작하기도 한다. AGI(인공일반지능)는 인간 수준을 이미 넘었다는 평가도 있다. 텍스트와 그림, 영상, 음성 신호를 습득하는 멀티모달의 수준에 도달했다. 오감을 느끼는 고도화된 인공지능이지만 그래도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것 역시 인간이다. 다행히 인공지능은 아직 스마트폰이나 PC처럼 개별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개인형 검색을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것은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어렵다고 한다. 지식 정보를 우선 검색해 해답을 알려주는 RAG(검색 증강생성)도 할루시네이션을 막는다. 결국 현재 인공지능의 정확성은 잘 훈련된 기자가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며 팩트에 기반해 작성한 기사를 통해 보장된다. 이것이 지역신문의 존재가치이자 AI와 공존할 이유다.
[홍순연의 도시 공감] 일상, 취향 공유 프로젝트
몇 년 전부터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단어가 주목받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의미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 즉 한 사람이 가진 가치관, 취향, 사고방식, 행동 습관, 소비 습관, 시간 및 공간 활용 방식 등을 포괄하는 주관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2025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살펴보면 균형, 경험, 지속가능성이 핵심 키워드라고 한다, 팬데믹 이후 집이 다목적 공간으로 진화하고 개인의 취향과 경험을 중시하는 공간으로 변모하며 이러한 공간이 부족할 때는 가까운 주변에서 유사한 공간을 찾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주 보통의 하루(아보하)’를 추구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확실한 행복을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는 삶의 태도를 지향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네 책방, 동네 카페 등 작은 가게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사례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부산 수영구 광안리에 작은 브런치 카페인 헬멧이라는 가게가 있다. 상권에서 조금 벗어난 한적한 주택가의 몇몇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단풍나무 가드닝을 통해 좁은 골목을 통일감 있게 꾸며 계절감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골목 상인들은 이곳을 메이플 거리로 명명하고 골목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얼마 전 취향인들이 이곳에 모여 작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기간을 맞춰 골목의 가게들은 시즌 메뉴를 론칭하고 헬멧의 지하 공간에서는 작은 영화를 상영했다. 주변 카페인 스누비와 대니얼스에서는 DJ 공연과 독서 모임을, 르템즈에서는 요가 클래스를 선보였다. 이 행사에는 수영구에 위치한 공방 대표들도 참여, 가게 내부에 공방 작품들을 전시 판매하면서 작은 볼거리도 제공했다. 수영구만의 색깔을 보여준 듯하다. 또 다른 사례는 파도타기이다. 최근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셰프들과 함께 하는 파도타기라는 프로그램은 부산을 맛있는 도시로 만들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안부, 공존, 잔향 등을 주요 키워드로 맛과 스토리를 구성했다. 쉽게 맛보지 못하는 음식은 물론 지역에서 활동하는 셰프들의 다채로운 개성을 확인하고 맛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을 기다리게 된다. 이미 예약 앱 대기자가 500명이 넘는 파도타기 프로그램은 미식이라는 주제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공간을 만드는 도시민의 취향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활동들을 집약시키고 공간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공유하는 방법들이 이제는 도시민에게 살아가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러한 취향 중심의 공간이 바로 라이프스타일 공간이다. 그리고 취향은 무엇보다 사람 중심의 커뮤니티가 중요하다. 대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시간적 노력과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사람들 간의 소통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작은 프로젝트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공에서 지원하는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을 찾아보면 개인의 취미, 건강, 자기 계발 등 교육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유행에 따라 너무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지역마다 생성된다. 그래서 주민 교육 프로그램의 일부는 동네 취향 공간 중심으로 변모하면 어떨까 한다. 우리 동네 취향 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화된다면 지역민의 활동 동선도 개인별 취향에 따라 바뀌지 않을까? 최근 부산시 다락방 프로젝트가 그 시작이라 생각한다. 일상 속에 문화공간을 찾는 아카이빙과 테스트 베드를 통해 가능성을 찾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다락방 홈페이지에 따르면 다락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영감을 얻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커뮤니티라고 되어있다. 이를 기반으로 공간별 스토리를 정립하여 공간 주인장 중심의 활동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까지 고려되었으면 한다. 아마도 특별하지 않지만 주인장의 취향이 공간에 묻어나고 이를 공유하는 방법이 바로 ‘아보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자주 가던 부산 중구 원도심의 비건 식당이 지난달 31일 문을 닫았다.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한 끼가 가진 의미에 집중하던 식당이라서 이유가 궁금했다. 이 식당 대표는 4년간 운영한 식당을 접으면서 즐거움과 힘듦이 함께 왔다고 한다. 그리고 쉬면서 발효를 주제로 다양한 문화기획을 준비하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그가 맛있는 밥집 주인이 아니라 문화기획자이자 식경험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2025년 트렌드 노트에는 이러한 문구가 있다. ‘지금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지속하며 성장시키고 싶은 나만의 것을 여가에서 찾기 시작했다.’ 2026년이 한 달 남짓 남은 지금, 나만의 것을 찾는 취향 활동가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데스크 칼럼] 상생 없이 성과 없다
희망은 도둑같이 찾아왔다. 올해 우리나라 해양산업계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지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타당성 검토와 저울질에 들어갔던 북극항로를 새 정부가 국정과제로 삼으면서부터다. 부산 해양수산계도 마찬가지다. 올 연말이면 ‘해양수산부 부산 시대’가 열린다. 2000년 12월 제2롯데월드 착공식에서 고 안상영 부산시장이 “부산을 해양수도로 키우자”고 선포하고도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한 해양수도의 꿈이 한 걸음 현실로 다가선 것이다. 하지만 기회는 기회일 뿐이다. 성과는 각 행위 주체들의 노력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기회를 탈바꿈과 성장으로 연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상생 협력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누군가가 한 최선의 선택이 때로는 누군가에겐 파멸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우리나라 공기업이 수송선 선택권을 해외 수출업자에게 맡기는, 즉 DES방식 때문에 국내 선사 일감이 급감했다는 사실이 그 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한국가스공사의 국적선 적취율이 12년 뒤 0%로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적선으로 국내 화주의 화물을 운송하는 비율을 국적선 적취율이라 부르는데,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할 때 해운 선사 선택권을 수입업자가 행사(FOB방식)할 수 있음에도 DES방식으로 해외 수출업자에게 넘김으로써 국적선 적취율이 2020년 52.8%에서 올해 33%로 떨어졌고, 2037년에는 0%로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가스공사는 장기 계약 특성상 DES방식의 수입 단가가 FOB방식보다 낮기 때문에 수입원가를 낮추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공기업인 가스공사의 경영평가에도 LNG도입 원가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가스를 저렴하게 사올 수 있으면 해외 선사에 의존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에너지에 생존권이 달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운송망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안이 없는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해운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단순한 원가 절감 차원 조치만은 아니었다. 가스공사가 개발한 한국형 LNG화물창을 도입해 운항하던 SK해운이 화물창에 문제가 생겨 소송을 제기했고, 2023년 10월 가스공사가 패소했다. 가스공사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지만, 배를 지은 삼성중공업이 런던 중재재판부 판결에 따라 SK해운에 3700억 원을 물어주고 가스공사에 구상권 청구소송을 진행해 이 소송도 진행 중이다. 또 가스공사가 옛 현대상선과, 이 회사 LNG부문을 2014년 인수한 현대LNG해운에 운송대금을 이중으로 지급한 사실을 확인하고, 정산금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했지만 지난해 5월 최종 패소하기도 했다. 가스공사 잘못이 있더라도 국내 해운사를 믿고 의지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국적선 적취율이 낮아지면서 글로벌 LNG시장 영업에 주력하는 국내 선사들이 원가를 낮추려고 외국인 선원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내국인 선원 일자리 감소가 장기적으로 국내 선사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화주와 선사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다. 2010년대에는 조선사 실적에만 매몰돼 정책 자금을 글로벌 선사에 대거 빌려줘 최신형 선박으로 무장한 글로벌 선사들에게 한진해운이 밀리고 결국 파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과 해운이라는 연관 산업 사이의 역학 관계에 대한 몰이해가 원인이었다. 이런 문제를 조정하고 지휘하는 컨트롤타워라 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어떤가. 해수부가 부산에 오면서 이미 내년 시장 선거 전초전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 출마가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전재수 해수부 장관과 3선을 노리는 박형준 시장 사이의 경쟁과 견제가 물밑에서 치열하다. 해양수도 실현이 곧 글로벌 해양 허브 도시임을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는데, 각자의 브랜드를 놓치지 않기 위한 논쟁이 자칫 지역 발전에 모아야 할 역량을 흐트리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동남권투자공사든 산업은행이든 상황에 맞게 최대한 지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끌고 가면 될 일이다. 더 힘을 모을 일은 해수부가 조선과 해운을 통합적 관점으로 총괄하도록 제도와 법령을 바꾸는 일, 부산에 오는 해양수산 관련 기관과 기업들이 제대로 정착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부산시가 먼저 해양 기능 강화에 선도적으로 나서는 일이다. 해수부나 부산시나 1%도 안 되는 해양 관련 예산과 조직으로 어떻게 해양수도와 해양강국을 말할 수 있겠나. 큰 목표 아래 상생·협력할 때다. 국토부·산업부, 경기도·서울시가 보기에 ‘꼬시래기 제 살 뜯는 모습’이 안 되도록.
[노트북 단상] 누리마루를 넘어 나래마루로
지난달 말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웠다. 세계 21개국 정상이 모이는 APEC 정상회의가 20년 만에 경주에서 열렸다. ‘세기의 담판’이라 불린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도 열렸다. 최첨단 AI 생태계를 이끄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우리나라에서 ‘치맥’을 즐겼다. 부산도 예상과는 달리 달아올랐다. 경주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주요 인사들의 김해공항 이용은 예정돼 있었다. 주요 인사들이 부산을 거쳐 경주로 향하게 되면 부산은 큰 사건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부산 중에서도 ‘이 곳’이 가장 조명 받았다. 부산 사람들마저도 잘 몰랐던 장소. ‘누리마루 아니고?’라고 반문하게 했던 장소. 김해공항 공군기지 나래마루로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세계 패권을 다투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이 나래마루에 마주 앉았다. 의전이 갖춰지고 화려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양국의 사정이 맞아 떨어진 최적의 장소였다. 지난달 29일 방한해 30일 출국을 계획했던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30일 김해공항으로 입국하는 시진핑 주석의 접점은 30일 김해공항 뿐이었다. APEC 정상회의 개최 수개월 전부터 경주냐, 서울이냐로 각종 회담 장소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베일에 쌓인 나래마루는 경호와 안보를 지킬 ‘묘수’이기도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래마루는 올해 리모델링도 마쳤다. 나래마루 회담 사실이 본보 보도로 알려진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 두 국가는 회담 성사 사실을 알리며 개최 장소로 ‘BUSAN’을 발표했다. 나래마루는 2005년 APEC 부산 정상회의 당시 조성됐다. 국민들에게 익숙한 해운대 동백섬 누리마루와 조성 시기가 같다. 누리마루처럼 해운대의 절경을 품고 있지는 않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단시간에 외교적 가치를 드높였다. 미국과 중국이 단독 회담을 가진 건 2019년 일본 오사카 G20 회담 이후 6년 만이었다. 미중 갈등이 최정점을 향해 치닫던 시기에 만난 두 정상은 이 자리에서 관세 인하, 희토류 규제 유예 등 세계적 무역 현안에 합의했다. 세계 정세의 변곡점에서 두 정상의 회담 장소가 부산 나래마루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산이라는 도시 홍보 효과는 컸다. APEC 정상회의가 끝나고 경주는 APEC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 호텔에 투숙하며 아메리칸 치즈, 케첩을 추가했던 치즈 버거는 별도 상품으로 판매를 계획 중이다. 시진핑 주석이 극찬했던 경주 황남빵은 예약 대기가 한 달가량 걸려 있다. 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화백컨벤션센터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한미, 한중 정상회담이 실제 진행된 회의장을 다음 달 28일까지 공개한다. 부산은 조용하다. 전 세계가 부산을 주목했던 그 이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공군 기지 내 위치해 있는 나래마루의 개방, 관광은 부산의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보안 시설인 탓에 상시 개방이 어렵다면 비정기적으로라도 역사의 장소를 알리는 방법은 가능할 것이다. 사례는 가까이에 있다. 2005년 APEC 이후 누리마루에는 2000만 명 이상이 방문했다. 2005년 누리마루를 넘어 2025년 세계 최정상 국가의 외교 무대였던 나래마루의 시대를 열기 위한 적극적인 행정, 협의가 필요한 때다.
[중앙로365] K푸드의 심층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을 때, 우리 국민들은 모두 뿌듯한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50년 만인 2024년에 K푸드와 농산업 제품만 130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였다. 그 중 라면이 13.6억 달러, 조미김 6.3억 달러, 김치가 1.8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밖에도 개별 품목으로 만두, 냉동김밥, 콘도그, 떡볶이 등도 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요즘은 외국인들이 고추장에도 주목하여 매우면서도 달콤한 음식을 만드는 소스로 쓴다고 한다. 그래서 달다(sweet)와 맵다(spicy)는 말을 합친 스위시(swicy)라는 말이 빈번하게 쓰인다고 한다. 도대체 왜 우리가 먹는 평범한 음식에 외국인들이 열광하는지 의아하기도 하다. 그 때문에 K푸드의 유래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져서, 작년에 국민생활과학자문단은 K푸드의 탄생과 발전 역사, 그리고 영양학적인 우수성 등을 탐구하는 행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도 우리나라 산림에서 다양한 풀이 자라므로 그것으로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콩에도 주목하여 콩을 가지고 간장·된장을 만들고, 고춧가루를 섞어서 고추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산나물들을 구할 수 있다. 잎이 넓은 풀은 애기똥풀 등 몇 가지만 제외하면 다 먹을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우리 음식 문화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산도 많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우리의 음식문화는 바다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아침 밥상에서 구운 생선 한 마리, 미역국, 갓 구운 김을 올리는 경우가 흔하다. 제사상에도 여러 가지 생선과 문어, 심지어 상어도 올린다. 최근 역시 K푸드로 주목받고 있는 해산물로는 김과 미역이 있다. 원래 서양에서는 해초들을 바다 속에서 자라는 잡초(sea weed)로 여겼다. 그래서 이 해초든 저 해초든 구별없이 바다 잡초였다. 다시마는 영어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원래는 칼리나 요오드를 만들기 위해서 다시마를 태워서 얻은 재를 가리키는 용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김도 참김, 돌김, 곱창김, 파래김으로 나눈다. 먹을 때도 구운 김, 조미 김, 김부각, 김무침, 김떡, 김볶음 등으로 나눈다. 미역도 넣는 부재료에 따라 전혀 다른 맛으로 변하고, 산모가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이었다. 이 지점이 바로 K푸드의 원점이다. 우리의 미각은 대단히 예민하다. 예민한 미각은 우리의 수산물의 명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사상에 올리는 문어, 산 채로 즐겨 먹는 몬도가네급의 낙지, 볶음요리로 즐기는 주꾸미는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다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맛도 서로 다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우리와 같이 문어류를 먹는 일본조차도, 이 세 종류를 하나로 묶어서 인식한다. 문어는 ‘물문어’, 낙지는 ‘팔이 긴 문어’, 주꾸미는 ‘밥알 문어’, 결국 셋 다 ‘문어’인 셈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서로 구별하지 않는다. 우리가 즐겨 먹는 조기나 민어도 마찬가지이다. 조기는 참조기, 침조기, 수조기, 백조기(보구치), 부세 등으로 나눈다. 역시 이웃한 일본은 조기, 보구치, 부세의 구별이 없었다. 다 같은 조기다. 나중에 우리말을 그대로 써서 부세라는 이름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각각 다르게 이름을 붙였을까? 바로 생선의 맛 때문이다. 형태는 잘 모르지만, 먹어보면 맛과 고기의 결과 색상으로 조기인지, 부세인지, 보구치인지 구별할 수 있으므로 이름을 다르게 붙인 것이다. 조기와 민어를 나누는 지점도 마찬가지다. 그 맛이 다르기 때문에 구별하지만, 외국으로 가면 두 물고기를 크게 구별하지 않는다. 생김새도 비슷한 데다 둔한 입맛으로는 그 차이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각이 예민하기 때문에, 먹는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젓갈이다. 일본도 젓갈을 먹지만, 종류는 많지 않다. 오징어가 압도적으로 많고, 해삼 내장, 은어 내장, 참치 내장, 연어를 젓갈로 만드는 정도다. 명란젓과 창란젓은 우리나라에서 배워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만드는 젓갈은 종류도 많고 맛도 다양하다. 소금만 아니라 마늘·고춧가루로 함께 쓰기 때문이다. 멸치젓과 새우젓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새우젓도 추적(추젓) 육젓 오젓 등으로 나눈다. 그밖에도 황석어젓, 조기젓, 꼴뚜기젓, 조개젓, 홍합젓, 밴댕이젓, 참게젓, 갈치속젓, 전어밤젓, 등피리젓, 대구모젓, 대구장지젓, 명태아가미젓, 자리돔젓, 토하젓, 낙지젓, 소라젓 등등, 젓갈로 만들 만한 건 다 만들었다. 동시에 그런 젓갈의 서로 다른 독특한 맛을 인정하고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K푸드가 그저 한류의 유행에 편승한 결과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극한까지 밀어붙인 우리 음식의 종류와 맛이 그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다.
[편집국에서] 설령 '오천피 시대'가 된다고 해도
#1. 얼마 전 만난 한 기업인은 행복한 고민을 얘기했다. 그는 한 은행에서 투자를 받아 생산 캐파를 늘리게 됐다고 자랑했다. 투자 권유는 은행이 먼저 했고, 은행 담당자가 수시로 찾아와 준비 사항을 꼼곰히 체크하고 조언을 한다고 했다. 투자가 성공하면 기업공개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2.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 지인은 고민 끝에 대출을 받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주가가 뛰는 걸 보고 여러 달 여윳돈으로 실전 투자를 연습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투자금을 늘리기로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중소기업 직장인에게 생활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를 이용해 저렴한 금리로 돈을 마련했단다. 최근 통계나 발표를 보면 이런 사례가 예외적 경우는 아닌 것 같다. 중소기업 대출은 올해 하반기에 빠르게 늘고 있다. 5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675조 8371억 원에 달했다. 8월에 전달보다 3조 2763억 원, 9월엔 2조 1254억 원이 늘더니 지난달에는 4조 7494 억 원 늘어났다. 올 들어 최대폭이다. 은행들의 기업대출 연체율도 덩달아 최근 1.3%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2010년 3분기 이후 최대 수준이다. 증시 주변에서는 ‘빚투 열풍’ 우려가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 5일 기준 88조 2708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맡겨놓은 자금이다. 석달 전과 비교하면 21조 2628억 원가량 늘어났다. 이 시기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47조 8564억 원으로 전달에 비해 21조 8647억 원 줄었다. 예금을 찾아 주식 시장에 뛰어든 셈이다. 대통령실에서 공공연히 ‘머니 무브’를 강조할 정도로 이재명 정부 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부동산시장, 정확히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뛰면서 생산 부문으로 돈이 흘러들도록 유도해 경제를 부양시키겠다는 거다. 대출부터 바싹 죘다. 정부는 출범 후 서울과 경기 12개 지역까지 ‘삼중 규제’ 지역으로 지정한 ‘10·15 대책’을 비롯한 부동산 대책을 세 차례 내놨다. 대통령실은 공급 대책도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금융권도 적극 보조를 맞추고 있다. 앞서 언급한 중소기업 대출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생산적·포용 금융 확대에 발맞춰 5대 금융지주들이 투자 계획을 일제히 내놨다. 전체 투자 금액은 5년간 500조 원이 넘는다. 이 돈은 국민성장펀드, 모험자본 공급, 민간펀드 결성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은행들이 ‘이자 놀이’가 가능하던 부동산 시장을 자발적으로 떠나지는 않았을 터이다. 더구나 산업 부문에 전대미문의 막대한 투자를 감행해야 하는 리스크까지 져야 하는 일이다. 부동산 투자가 막히니 개인들도 문턱 낮은 증시로 향한다. 자산이 부족한 젊은 층은 대출까지 내고 있다. 코스피도 얼마 전까지 ‘꿈의 지수’라던 ‘사천피’를 넘나들며 ‘오천피’도 가시권에 둘 정도로 강한 상승장을 연출하는 상황이다. 금융·부동산 시장을 압박해 인위적 ‘머니 무브’를 유도하는 정부 정책은 일단 유효해 보인다. 문제는 통제 불가능한 대내외 여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실물 경제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한국 경제는 올해 잘해야 1%대 초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8% 안팎에 머물고 향후 5년간 비슷한 수준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부문에 자금을 공급하는 걸 무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기 침체기에 기업 외형을 키우는 투자가 옳으냐 하는 점은 의문이 따른다. 오히려 산업 구조를 개혁하고 기업 내재 가치를 튼튼히 해야 할 시기다. 은행들도 실탄이 넉넉해도 투자처를 찾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잘나가는 일부 분야에 투자가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거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도 크다. 치솟는 주가에 혹해 대출까지 받아 주식에 뛰어드는 투자자에도 우려가 커진다. 단기적으로 주가가 경기와 따로 움직이는 사례는 빈번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흐름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미국 증시를 이끌던 AI 분야에는 거품론이 제기되고, 글로벌 증시에 흘러드는 유동성이 과도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등 해외에서 전해지는 경고도 적지 않다. 한국 경제와 증시엔 통화 불안정성까지 내재돼 있다. 뒤늦게 주식시장에 올라탄 개인 투자자들이 두고두고 눈물을 흘릴 가능성도 있다. 견조한 성장이 예상되는 건실한 기업이 과도한 투자에 부실을 키우지나 않을지 걱정도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부 정책의 목표가 오천피 달성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정부를 필두로 각 경제 주체가 한국 경제를 상승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 ‘한국 경제에 무엇이 중요한가’ 질문을 다시 던질 때다. 김영한 경제부장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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