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 위해서는 재정 분권 강화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수도권 일극 체제 개선과 지방 자치 확대를 공언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당장 내년도 예산안부터 ‘지방 우선, 지방 우대’ 원칙을 명확히 했다”고 강조했다.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수록 더 두텁게 지원하고 포괄적 보조 규모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의 지방 자율재정 예산 규모를 3조 8000억 원가량에서 약 10조 6000억 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려 자율성을 대폭 강화한 것이 눈에 띈다. 올해 민선 지방자치 시행 30주년을 맞아 지방정부의 자치 역량이 강화된 만큼, 이에 걸맞게 재정 분권 권한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가 사무의 지방 이양, 지방재정 분권 확대,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균형발전을 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도 11일 열린 대통령실 지역기자단 간담회에서 2027년까지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겠다는 로드맵을 공개했다. 올해 전수조사를 마치고 내년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공공기관 이전 속도를 강조하고 있어서 김 위원장은 최대한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지방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가 머리를 맞대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지역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의 핵심은 중앙의 재정권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이다. 재정 분권 확립은 자치행정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갖추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자치분권의 핵심 요소인 재정권이 아직까지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 있다. 재정권이 중앙에 종속된 데에는 우리의 조세체계가 국세 위주로 지나치게 편향돼 있기 때문이다. 이날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중앙과 지방의 협치 강화 방안으로 지방소비세율 인상, 국세의 지방세 이양 등 세입 기반 강화, 국세 대비 19.24%로 19년째 고정된 지방교부세율 단계적 인상 등이 제안됐다고 한다. 이러한 논의가 재정 분권 강화를 앞당기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국 시도지사들이 참여해 실질적인 재정 분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역 실정에 맞지 않는 사업에 포괄보조금이 집중 투입돼 지역이 자율적으로 편성하는 투자 사업 비율이 감소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중앙정부가 제시하는 사업목록을 폐지하고, ‘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의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 각 지역이 보유한 비교우위를 제대로 살릴 전략들을 추진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고, 이 대통령도 공감했다고 한다. 지방재정 운영 패러다임을 전환해 ‘무늬만 지방자치’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 지방정부에 부여되는 책임만큼 재정 권한도 제대로 나뉘어야 진정한 지방자치를 이룰 수 있다.
[사설]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예산 미반영, 먹는 물 해결 하세월
낙동강은 부산 시민들이 먹는 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취수원이다. 그 말은 낙동강 물이 오염될 경우 부산 시민들은 먹을 물이 없다는 뜻과 같다. 그런 낙동강의 수질은 1991년 구미 페놀 방류 사건 이후 음용 부적절 수준에 곧잘 다다랐고 이는 곧 일상이 돼 왔다. 이 때문에 낙동강 이외에 마실 물을 얻을 수 있는 취수원을 마련하는 것은 부산 시민들의 숙원 사업이 된 지 오래다. 그런 숙원이 모여 시작된 취수원 다변화 사업이 올해로 진행 5년째를 맞았지만 이와 관련한 내년 정부 예산마저 반영이 되지 않음으로써 미궁에 빠졌다. 공업 용수 수준이라는 말까지 듣는 낙동강 물만 쳐다보는 부산 시민들은 망연자실할 뿐이다. 부산 상수도 취수원 다변화 사업의 시작은 2021년 환경부 정책위원회에서 ‘낙동강통합물관리방안’이 통과하면서 본격화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최악의 낙동강 녹조 사태 등으로 낙동강 하류 지역의 식수 불안이 커지면서 신규 취수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여론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2028년까지 연간 90t 규모의 신규 취수원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이성권 의원실에 따르면 정부는 이 같은 정책 추진을 위해 마련해야 할 기본설계비조차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정부는 낙동강 수질 개선 대책을 포함해 전반적인 정책을 더 살피겠다는 입장이지만 정책 추진 의지 박약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부산 취수원 다변화가 단숨에 해결이 가능한 정책이 아니라는 점은 동남권 지역민이라면 누구나 수긍하는 바다. 신규 취수 예정지로 부각되고 있는 경남지역 주민들의 반대만이 아니라 최근엔 대구 취수원 이전 이슈까지 겹치는 대표적인 복합 갈등 사안이어서 대안 마련이 쉽지만은 않다는 현실은 인정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 정책 추진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마시는 물이 정책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부산지역이 원자력발전소 인근의 공간적 위험을 무릅쓰고 취수원 확대를 위해 해수 담수화 시설까지 유치했던 절박함을 상기한다면 더 이상 미루고 있을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취수원 다변화 정책 관련 정부 예산 미반영에 대한 비판이 들끓자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재정 당국과 협의를 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부산시도 최근 개최한 국민의힘 부산시당과의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낙동강 유역 안전한 먹는물 공급체계 구축’을 내년도 주요 국비 확보 사업 1순위로 채택했다.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선다면 예산 마련 가능성은 올라갈 듯하다. 하지만 예산 마련만큼 중요한 일은 또 있다. 여러 지역의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복합 갈등 양상을 어떻게 풀 수 있느냐다. 정치가 개입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여기엔 여야도 진영도 있을 수 없다. 먹는 물 문제의 해결은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설] 부산시 내년 예산 18조 원… 해양 허브도시 뒷받침 되나
17조 9330억 원 규모로 편성된 부산시 내년 예산안이 부산시의회에 제출됐다. 이 같은 예산 규모는 지난해 대비 7.5%가 증액된 것으로 정부 내년 예산안 증액 규모 8.1%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역대 부산시 예산 증액 규모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편이다. 부산시는 내년 예산안 편성 내용에 대해 민선 8기 도시 목표 ‘시민행복도시와 글로벌 허브도시’를 실현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시는 내년 예산안에서 소위 복지·안전과 관련한 부분에 가장 중점을 뒀다. 시민행복도시라는 구호에 걸맞은 예산 편성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글로벌 해양산업 허브도시 기반 구축과 관련한 예산은 기대를 밑돌았다는 평가다. 내년 예산안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따뜻한 부산형 함께 돌봄체계 실현’ 분야다. 올해보다 4618억 원이 늘어난 6조 6111억 원이 편성됐다. 특히 부산형 통합돌봄 사업이라 불리는 함께돌봄 사업의 수혜자 범위를 대폭 늘리는 등 복지 분야의 지원 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후 공동주택 취약계층에 대한 아크차단기 설치 비용 지원 신설 등 올해 잇따라 발생한 사고 대비책 마련에도 공을 들인 흔적이 돋보인다. 부산지역 외국인들을 이방인으로 밀어내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발빠르게 외국 국적 영유아에 대한 보육료 지원 예산을 마련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같은 적극적 예산 편성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해양산업 허브도시 기반 구축’ 분야 예산 편성에 있어서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시가 해당 분야에 편성한 예산 규모는 1066억 원으로 규모만 놓고 보면 올해보다 309억 원이 늘어났다. 하지만 여기에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따른 직원 관사 지원 사업비 311억 원이 포함돼 있어 결과적으로는 다른 부분 예산이 줄어든 셈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해수부 부산 이전 원년을 맞아 내년부터 해양산업 허브도시 기반 구축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부산의 입장을 감안하면 예산 규모도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부산시 전체 예산의 1%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기에 그렇다. 부산시의 내년 예산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방안에 불과하다. 부산시의회에 예산안이 넘어간 만큼 시의회의 꼼꼼한 심사와 계수조정이 뒤따라야 한다. 해수부 부산 이전 관련 특별법마저 최근에야 확정된 만큼 해수부 이전 이후의 시의 정책 방향도 아직 정해지지 못한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글로벌 허브도시가 부산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미래라고 한다면 부산시는 예산 편성에서부터 이런 미래를 담보할 의지를 더 보였어야 한다. 정부 부처별 내년 예산배정 규모에서 해수부가 1% 수준에 불과하다며 비판한 게 지역 여론이었다. 글로벌 허브도시 기반 관련 시 예산이 1%에도 못 미친다면 낯뜨겁지 않겠는가.
[밀물썰물] e스포츠의 신
국내 e스포츠는 1998년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면서 시작됐다. 미국 회사 블리자드가 만든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상대방과 실시간으로 대결하는 전략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기 위해 전국 곳곳의 PC방에 젊은 층이 몰렸고, PC방을 중심으로 ‘스타크래프트 최강자’를 뽑는 대회가 열렸다. 프로게이머, 프로게임 리그도 이 무렵 탄생했다. 스타크래프트 인기는 대단했다. 2004년 7월 17일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 스타크래프트 ‘스카이 프로리그 2004’ 1라운드 결승전에는 무려 10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면서 스타크래프트 인기는 시들해졌다. 승부조작 사건을 계기로 여러 기업이 후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2011년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등장은 e스포츠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LoL 월드 챔피언십’은 축구의 ‘FIFA 월드컵’과 비슷한 위상을 가져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선 ‘롤드컵’으로도 불린다.페이커(이상혁)가 이끄는 T1이 지난 9일 중국 청두에서 열린 2025 롤드컵에서 우승하며 3연패를 달성했다. T1은 2013년 첫 우승을 했고, 2015~2016년에도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2023년부터 올해까지 누구도 해내지 못한 3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T1의 모든 우승 순간엔 페이커가 있었다. 빠른 두뇌 회전과 손놀림이 필요해 25세면 은퇴하는 프로게이머의 세계에서 29세인 그는 10년 넘게 최정상을 지키고 있다. 1995~1998년 NBA 3연패를 달성한 마이클 조던은 ‘농구의 신’으로 불리고, 무수한 트로피를 들어 올린 메시는 ‘축구의 신’으로 통한다. 페이커는 전 세계가 인정한 ‘e스포츠의 신’이다. 중국 시나닷컴은 봉준호(영화감독), 손흥민(축구), BTS(가수), 김연아(피겨)와 함께 페이커를 한국의 5대 국보로 칭한다.페이커의 3연패는 한국 게임 산업과 e스포츠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명 대통령도 T1의 롤드컵 3연패를 축하하면서 e스포츠를 비롯한 문화산업 발전을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부산을 e스포츠 산업 중심지로 발전시키겠다는 공약을 밝힌 바 있다. 국내 최대 게임 축제 ‘지스타 2025’가 13일 부산에서 개막해 16일까지 열린다. 44개국 1273개 게임사가 참여한 가운데 부산은 e스포츠 열기로 달아오른다. 페이커의 3연패와 지스타의 열기를 동력으로 삼아 부산이 e스포츠 중심지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강병균 칼럼] 내년 지방선거, 지방분권 개헌 국민투표 병행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 시작된 2025년이 한 달 반가량 남은 시점에 개헌이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손으로 뽑은 현직 대통령을 탄핵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적 참담함과 국가적 불행을 더 이상 겪지 않으려면,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을 달라진 현실과 국민 눈높이에 맞게 개정해야 마땅하다는 인식에서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로 국가를 위기에 빠트린 무소불위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봐야 한다는 국민의 뜻이다. 특히 올해가 지방자치 30주년인 데다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지방분권형 개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또다시 커지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2025 지방자치 정책대회’에 참석해 지방분권 개헌의 시대를 열기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밝혀 관심을 끌었다. 대한민국헌정회가 12일 국회에서 개최한 ‘분권형 권력구조 헌법 개정 대토론회’에서도 지방분권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를 서두르자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이어졌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는 실질적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재정분권 추진 방안이 보고됐다. 개헌 논의 과정에서 비수도권 지역민들이 주목하는 것은 지방분권과 재정분권 개헌론이다. 1995년 단체장 직선제 도입을 통해 민선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30년이 지나면서 국민의 주권의식이 높아지고 민의를 중시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착근했다. 그런데 헌법이 지자체의 손발을 묶어놔 지방자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헌법의 지방자치 관련 조문은 117조, 118조 단 2개뿐이고 법령의 범위 안에서 지방자치를 하도록 제한하고 있는 탓이다. 이런 까닭에 지자체들은 중앙정부에 종속되고 정부 부처의 권한에 눌려 자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더욱이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 문제는 지방자치의 발목을 잡는다. 다수 지자체는 자체 수입보다 정부가 배분하는 교부세와 보조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실정이다. 이런 구조로는 지자체가 지역에 맞는 창의적 정책이나 장기 전략을 수립하기 힘들며, 지역균형발전과 지방소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도 없다. 헌법에 지방분권을 명시하고 지자체 대신 중앙정부와 대등한 개념의 지방정부라는 용어를 쓸 것을 요구하는 개헌론이 나오는 이유다. 지방정부의 재정·입법·조직·행정권을 보장하는 근거를 헌법으로 마련해야 망국적인 수도권 일극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실효적인 정책 실현이 가능할 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 기간에 ‘강력한 지방분권 공화국 조성’과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됐다. 이어 2018년 6·13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두고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개헌 투표가 이뤄지기는커녕 개헌안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채 폐기되고 말았다. 당시 여야 정치권이 당리당략을 앞세워 득실을 따지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지방분권은 현재까지 제도적으로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 최근 전국 시민단체와 광역·기초의회, 자치단체장들은 이번에는 여야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 개헌에 합의할 것을 이구동성으로 주문한다. 복잡다단한 권력구조 개편이 정치적 셈법에 밀려 난항이 예상된다면, 국민 숙원인 지방분권만이라도 먼저 확립하기 위해 2026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가 함께 실시되길 바라고 있다. 중앙집권적 정부 체계는 1970년대 권위주의 경제개발 시대에는 유효했으나 진정한 지역균형발전이 절실한 지금은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지방분권 강화 없이는 ‘반쪽짜리’ 혹은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방분권 개헌 시대를 열겠다는 우원식 의장의 발언이 허언에 그치지 않고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구성 등 실천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앞서 이재명 정부도 123대 국정과제 중 첫 번째로 개헌을, 52번째로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자치분권 역량 제고’를 제시한 바 있다. 국가균형발전의 강력한 추진 의지를 줄곧 표명해 온 이 대통령과 여당은 지방분권 개헌으로 국민에게 신뢰를 심어줘야 할 것이다. 지방분권 개헌은 우리나라의 체질 개선과 패러다임 전환에 필요한 시대적 과제다. 현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야심 차게 추진하려는 ‘5극 3특’ 정책의 성패도 지방분권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지역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실질적인 자치권과 재정권을 갖는 지방분권 개헌이 필수적이다. 개헌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높고 수도권과 지방의 동반 성장이 시급하며,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이 지방분권 개헌의 최적기다. 지방선거에서 분권 개헌 국민투표를 병행해 지방자치 축제의 장으로 만들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정치 그리고 비수도권에 희망을 싹 틔우려면, 여야정이 이번 골든타임을 놓쳐선 절대 안 된다.
[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해석, 부산 미술 메세나의 불을 밝히다
“제1회 해석 미술 장학생 공모전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최우수상 이가영 학생 축하합니다! 장학금 1000만 원이 수여되며 해석 정해영 선생 장학문화재단은 앞으로도 학생들이 작가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지난 11일 부산 서면의 작은 갤러리에 국내 주요 미술 관계자, 미술대학 교수들이 자리한 가운데 미술 장학생 선발 공모전 시상식과 수상자 8인의 전시가 마련됐다. 그렇다면 해석장학문화재단(이하 재단)이 어떤 일을 하는지 살펴보자. 재단은 2002년 해석 정해영 선생 장학회로 시작한다. 정해영 선생은 대동연탄을 창업하고 당시 19공탄을 개발해 부산 최고의 납세자로 ‘석탄 왕’이라 불렸던 입지적인 인물이다. 또 7선의 국회의원을 지내고 ‘대한민국 야당의 2인자’라 불리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정치인이자 경제인이었다. 1955년 서울에 ‘동천학사’를 지어 울산, 부산에서 상경하는 유학생 500여 명의 생활을 뒷바라지했다. 그들 중 다수가 훗날 장차관, 국회의원, 대법관 등 주요 인물로 성장하는 데 후원한 것이다. 재단은 정해영 선생의 인재보국(人材報國) 정신을 이어받아 20여 년간 이공계, 상경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학생을 선발해 왔다. 지금은 재단 설립자인 고 정재문 명예이사장에 이어 정연택 이사장이 교육을 통한 사회적 기여와 인재 양성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2024년부터 미술 분야 지원을 대폭 확대해 나가고 있다. 올해부터는 장학금 지급 대상자를 미술 분야로 한정해 상반기에 부울경 소재 5개 미술대학에서 각 2명씩 10명을 선발해 장학금을 수여하고 전시를 개최했다. 하반기에는 전국으로 대상자를 확대해 8명을 선정, 후원했다. 근래 부산의 청년들을 위한 미술 관련 공모나 시상제도는 26년간 이어진 공간화랑의 청년 작가상이 있었다. 그 상을 시상한 것도 2016년이 마지막이지 싶다. 특히 미술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과 전시를 마련한 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학교 당국과 교수들은 지역 미술대학 소멸과 학과 통폐합, 급속도의 위기를 타개할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획기적인 장학금 지원은 예술가의 꿈을 응원하는 큰 울림이며 샘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매년 성장한 작가들이 한국 화단에 당당히 이름 올리게 된다면 아름다운 역사가 될 것이다. 그 첫 행보를 보면서 미술인으로서 고마움을 느낀다. 예술가에게 지원은 생존의 조건이자 창작의 토대다. 예술가들은 공공기관의 공모 방식을 통해 지원받는다. 또 다른 지원의 이름이 ‘메세나’(Mecenat)다. 메세나는 기업의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는 프랑스어이며 1967년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하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메세나의 의미가 더 확장돼 예술·문화·과학·스포츠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사회적·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공익사업 지원 등을 포괄한다. 국내에서는 1994년 사단법인 한국메세나협회가 발족해 200여 개의 후원사와 함께 연간 3000여 개의 프로그램을 위한 예술단체와 예술가를 지원하고 있다. KT&G는 서울 홍대, 대치, 춘천, 논산, 부산 등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을 건립·운영하며 메세나 확산에 앞장서는 기업이다. 5개의 공간에 연간 3000여 개의 프로그램을 운용하며 특히 비주류 인디문화 확산에 큰 둥지 역할을 하고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창립한 부산메세나협회(회장 백정호 동성케미컬 회장)는 2021년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43개 회원사와 함께 예술지원 매칭펀드, 찾아가는 메세나 음악회, 부산예술이음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 개최된 제106회 전국체육대회의 개회식 관람객을 위해 방석, 응원용 짝짝이, 음료수 등 편의 물품을 후원하기도 했다. 부산은행, DRB동일, 욱성화학 등 부산의 대표적인 기업에서 자체 공간과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 직원 수 20명 남짓의 중소기업 (주)정현전기물류는 사회복지와 미술 분야에 적극적인 후원을 하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현장의 갤러리와 작가 스튜디오를 찾아다니고 있으며, 조건과 기한도 없이 매월 200만 원씩 부산문화재단에 기부도 한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16개의 기관만 선정된 올해의 ‘문화예술후원 우수기관’에 부산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크든 작든 후원하는 이들의 마음은 같다. 그들은 안다. “후원을 통해 내 삶의 가치가 더 깊어진다”는 사실을. 문득, 김장하 선생의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말이 떠오른다. 진정한 후원이란 거창한 이름이나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주는 일이다.
[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스페인 음악의 재기전, 파야 '허무한 인생'
이베리아반도는 기존의 기독교 문화에다 이 지역을 오랫동안 점령한 이슬람 문화가 섞여 있고, 집시의 플라멩코까지 유입되면서 유럽 음악의 용광로 같은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안달루시아, 카탈루냐 등 지역별로 다양한 리듬과 색채감 강한 선율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던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배하면서부터 유럽에서 주도권을 잃어간다. 이후에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에게 점령당하고, 드넓은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도 상실하면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이에 크게 각성한 스페인 음악가들은 때마침 불어닥친 민족주의 음악 물결에 다양한 방식으로 동참했다. 이사크 알베니스 ‘이베리아’, 엔리케 그라나도스 ‘고예스카스’, 마누엘 데 파야 ‘허무한 인생’ 등의 걸작은 이 암담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 1876~1946)는 1905년에 첫 번째 오페라 ‘허무한 인생’(La Vida Breve)으로 공모전 대상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사랑에 배신당한 집시 처녀가 남자의 결혼식장에 쳐들어가서 울다가 슬픔을 못 이겨 숨을 거둔다는, 전형적인 신파조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진부한 얘기를 플라멩코 춤과 노래로 채워서 몰입하게 만든다. 1913년 프랑스 니스에서 초연한 후 유럽 음악계에 스페인 현대음악의 존재를 알린 신호탄이 되었다. 비제의 ‘카르멘’이 스페인풍의 프랑스 오페라였다면, ‘허무한 인생’은 스페인 작곡가가 쓴 진짜 스페인 오페라로 평가받았다. 1907년에 파리로 유학길에 오른 파야는 거기서 뒤카, 드뷔시, 라벨 등과 친분을 쌓았다. 1915년에 무용극 ‘사랑은 마법사’를 발표하고, 1919년에 러시아 발레계의 거물 세르게이 댜길레프와 함께 발레음악 ‘삼각모자’를 초연하여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스페인으로 돌아온 그는 가르시아 로르카와 함께 플라멩코 음악의 부흥에 앞장서며 민족음악을 이끌어갔다. 이후 프랑코 정권이 들어서자 아르헨티나로 건너가서 살다가 1946년 11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스페인 춤곡 1번은 파야의 출세작인 ‘허무한 인생’에 나오는 멋진 음악이다. 원래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으로 만들어졌지만, 인기가 좋아서 바이올린 독주 버전, 기타 버전, 오케스트라 버전 등 매우 다양한 악기로 편곡되었다. 악기마다 다른 편곡의 묘미를 비교하면서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파야는 말했다. “스페인은 자기 자신을 음악 속에서 찾아내야 한다. 스페인의 영혼은 궁정이 아니라 민중의 노래 속에 있다.” 우리 역시 새겨둘 만한 말이다.
[데스크 칼럼] 부산에는 '이재모 피자'가 있다
지난 추석 연휴 특집으로 방송된 JTBC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는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다. 우선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고, 방송 시청률도 8.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실 그보다 지금은 셰프로 더 유명해진 웹툰 작가 김풍 씨의 호방한 입담에 놀랐다. 김 씨가 이날 방송에서 “부산에 가면 유명한 피자집인 ‘이재모 피자’가 있다”며 “‘이재명 피자’를 만들겠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현직 대통령 이름을 딴 피자를 만들어도 되는지, 특정 브랜드 피자를 그렇게 대놓고 선전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이재모 피자는 더 유명해지고 말았다. 이재모 피자를 맛보려면 줄 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온라인 식당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에서 가장 웨이팅이 많았던 식당 1~4위는 이재모 피자 본점, 부산역점, 서면 본관, 별관 순이었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피자를 먹으려면 매장 밖에서 기본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한다. 지난 8월 16일에는 본점 웨이팅 줄이 600번대까지 늘어서 5시간 이상을 대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부산역점에는 몇 년 전부터 캐리어를 끌고 온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이제는 부산역을 출발하는 승객들이 이재모 피자가 든 빨간색 박스를 들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대전에 성심당이 있다면 부산에는 이재모 피자가 있다’라는 말도 어느새 당연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명색이 맛집 담당 기자이지만 줄 서는 걸 싫어하는 천성 때문에 여태 구경도 못 하다 얼마 전에 제주도에 가서 이재모 피자를 어렵게 구해 먹어본 일이 있었다. 분명히 재료도 훌륭하고 맛도 좋았지만 그래 봤자 피자 아닌가. 음식 전문가들은 이재모 피자의 인기 이유를 ‘희소성’과 ‘가성비’로 풀이한다. 이재모 피자는 제주를 제외하면 육지에서는 부산에서만 먹을 수 있고, 충실한 재료와 합리적인 가격 때문에 인기라는 것이다. 뭔가 다른 비결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검색하다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이재모 피자는 그동안 툭하면 기부를 해 온 것이다. 부산에 있는 점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해 개점한 제주점마저 취약계층 의료비와 생계비로 벌써 2000만 원을 해당 지역에 기탁했다. 게다가 남들 모르게 훈장을 받는 일까지 있었다. 지난 9월 청년과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공로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에프지케이 김익태 대표가 이재모 피자의 대표다. 알고 보니 이재모는 김 대표 어머니 이름이었다. 더 찾아보니 2023년 부산역점 개점에 필요한 인력 채용 행사 때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애초에는 취약계층 대상으로 6명을 뽑을 예정이었지만, 면접을 본 15명 전원이 채용됐다. 이들이 삶에 대한 희망을 품는 데 무엇보다 일자리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김 대표의 생각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반석나라 장학회 이사장과 대안학교 반디기독초등학교 이사장도 맡고 있었다. 점점 흥미가 생겨 파고들다 보니 반석나라 장학회는 단발적인 학비 지원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게 다른 곳과 차이점이었다.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후에는 전문 교육을 이수한 멘토와 연결되어 학업·진로 등 삶의 전반을 함께 점검하고 설계할 기회가 제공된다. 성적이나 배경과 무관하게 뚜렷한 자기 인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는 ‘비전장학금’ 제도도 신선했다. 초등 과정 대안학교인 반디기독초등학교는 좋은 교육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설립했다. 파도 파도 미담이 나온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김 대표는 2012년부터 사비를 털어 동주여고 학생을 대상으로 유명 강사 초청 강연회인 동주비전스쿨을 일 년에 수차례 열고 있다. 덕분에 그동안 가수 션, 나태주 시인, 송길영, 고도원 씨 등 수많은 유명 인사가 동주여고를 다녀갔다. “소수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보다 보다 많은 학생이 훌륭한 사람으로부터 좋은 말을 듣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 동주비전스쿨을 열게 됐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반석나라 장학회 홈페이지에는 지금도 장학회 이사장의 사진 한 장 걸려 있지 않다. 김 대표는 이사장 인사말에서 “바른 인성과 분명한 비전을 가진 청년들이 미래 사회의 반석이 되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들이 다시 누군가의 반석이 되어주는 선순환의 길을 만드는 것. 바로 이것이 반석나라 장학회가 추구하는 가치”라며 “저는 ‘이재모 피자’라는 이름보다 다음 세대를 든든히 세우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라고 적었다. 김 대표는 2014년 〈부산일보〉와의 인터뷰를 처음이자 끝으로 언론과의 접촉은 일절 하지 않고 있지만 조금도 섭섭하지 않다. 이재모 피자에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었다. 줄 서서 기다리기는 싫어도, 앞으로 피자는 이재모 피자만 먹을 생각이다.
[중앙로365] 디지털 무역금융, 부산이 표준을 만들 때다
대한민국 수출의 절반 이상이 부산항을 거쳐 간다. 2024년 2440만TEU를 처리하며 세계 7위 항만 자리를 지켰다. 부산에서 실은 컨테이너가 베트남 하노이까지 가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 정작 이상한 건 그다음이다. 물건값이 수출업체 계좌에 도착하려면 일주일이 걸린다. 부산항의 크레인은 5G로 제어되고, 선박 스케줄은 AI가 최적화한다. 반면 송금은 여전히 은행 영업시간을 기다리고, 서류 확인에 며칠이 걸린다. 물류는 이미 실시간으로 움직이는데, 금융은 여전히 복수의 중개 은행을 거치는 절차와 영업시간 제약에 묶여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화물의 이동은 센서와 GPS가 실시간으로 추적하지만, 돈의 이동은 여전히 사람의 확인과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중개 은행을 경유하고, 환전 수수료를 내며, 영업일 기준으로 처리된다. 그 사이 기업 자금은 공중에 떠 있고, 이자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 몫이 된다. 특히 중소 수출기업에 이 일주일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수출 대금이 묶여 있는 동안 운전자금 대출 이자는 계속 나가고, 다음 발주를 위한 원자재 구매는 미뤄진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소 수출기업의 평균 운전자금 회전 기간은 90일 안팎이다. 결제가 일주일만 빨라져도 자금 효율은 8% 가까이 개선된다. 블록체인과 스테이블코인은 이 구조를 바꾼다. 블록체인은 거래 기록을 위변조할 수 없게 만들어 신뢰 검증을 사람이 아닌 알고리즘에 맡긴다.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대금이 집행되고,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기록된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가치에 1대1로 연동된 디지털 화폐다. 비트코인처럼 가격이 들썩이지 않으면서도 인터넷만 있으면 즉시 송금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무역 결제는 단순한 효율성 개선이 아니다. 전신환에서 스위프트로, 다시 블록체인 기반 즉시결제로 이어지는 국제결제 시스템의 근본적 전환이다. 이미 글로벌 금융 기업들은 변화에 나섰다. 페이팔은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했고, JP모건 같은 대형 은행들도 디지털자산 기반 결제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스템 통합을 추진 중이다. 무역 결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부산항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까. 부산항에서 화물이 선적되는 순간 스마트 계약이 작동해 계약금 일부가 자동 송금된다. 배가 베트남 항구에 도착하고 전자선하증권이 확인되면 잔금이 정산된다. 결제 시간은 ‘수일’에서 ‘수분’으로 줄고, 중개 은행 수수료와 환전 비용을 합친 총 거래비용은 거래액의 3~5%에서 1% 이하로 줄어들 수 있다. 이런 변화는 금융기관의 역할도 근본적으로 바꾼다. 신용장 발급으로 거래를 보증하던 전통적 역할은 스마트 계약이 대신한다. 은행은 이제 거래 중개자가 아닌, 규제 준수와 리스크 관리 서비스 제공자로 전환된다. 자금세탁 방지 모니터링, 제재 대상 검증, 무역금융 컨설팅이 새로운 수익원이 된다. 부산은 이 변화를 선도할 모든 조건을 갖췄다. 2019년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이후 금융·물류·공공 서비스 분야에서 실증을 진행하며 블록체인 기술과 산업 간 융합을 준비해 왔다. 부산의 진짜 강점은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중국과 일본 중간에 위치한 부산항은 동북아 허브항만으로서 중국 동북지역과 일본 서안 항만들을 연결한다. 환적화물이 전체 물동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환적은 여러 국가 간 복잡한 결제가 동시에 발생하는 거래다. 중국 수출업체가 일본 수입업체에 파는 화물이 부산을 거쳐 가면서, 한국 물류사와 선사에 각각 대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다자간 결제를 스테이블코인으로 처리하면 결제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블록체인 규제특구의 실증 경험과 동북아 허브라는 지정학적 이점이 결합하면, 부산항은 물류·금융·데이터가 통합된 디지털 해양 허브로 진화할 수 있다. 글로벌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싱가포르는 2023년 세계 최초로 스테이블코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도입해 승인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가했다. 두바이는 2024년 중앙은행 라이선스 제도를 완성하며 리플과 테더 같은 글로벌 기업을 유치했다. 홍콩도 올해 8월 스테이블코인 조례를 시행하며 앤트그룹 같은 중국 빅테크가 발행을 준비 중이다. 누가 먼저 규제와 인프라를 완성하느냐에 따라 아시아 디지털 무역금융의 표준이 결정된다. 부산이 그 표준을 선점한다면, 아시아 물류 중심지이자 디지털 금융 중심지라는 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블록체인이 물류를 추적하고 스테이블코인이 결제를 실행하며 스마트 계약이 거래를 검증하는 구조. 이것이 완성되면 부산항은 아시아 디지털 무역금융의 거점이 된다. 기술은 준비됐다. 이제 실증을 넘어 실행으로 옮겨야 할 때다.
[시론] 침례병원 공공병원화를 다시 생각한다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침례병원이 폐업한 지 8년의 세월이 지났다. 옛 침례병원을 활용해 취약한 부산의 공공의료를 확대하는 것은 민선 7·8기 부산시장의 대표적 공약이었다. 구체적으로 부산을 서부산권, 중부산권, 동부산권으로 나누고, 서부산권은 서부산의료원 건립, 중부산권은 부산의료원, 동부산권은 침례병원 공공병원화를 통해 부산 시민을 위한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애초 부산의료원 금정분원, 국립병원, 보험자병원 등 다양하게 검토되었던 침례병원 공공병원화 방안은 보험자병원으로 방향을 잡았다. 부산시의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건강보험 일산병원과 연계하면 의료 인력 채용이 용이한 점 등이 주된 이유였다. 이를 위하여 부산시는 예산 499억 원을 투입하여 침례병원 부지를 확보하였다. 하지만, 보험자병원의 열쇠를 쥐고 있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는 회의적이었다. 특히, 건정심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을 보험자병원 확충에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왜 부산에 설립해야 하는지 근거가 부족하며, 부산에 설치하면 그보다 취약한 지역에서 요구할 경우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것 등이 주된 이유였다. 부산시의 재정 지원 규모 등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반대 논리에 직면하면서 부산시는 보건복지부와 논의를 거쳐 종합병원인 보험자병원에서 ‘회복기병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수용하였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운영하는 종합병원(건강보험일산병원), 요양원(서울요양원)은 있지만, 회복기병원은 없으므로 건정심을 통과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이라는 기대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024년 12월 부산시에서 준비해 간 회복기병원(안)도 건정심 소위에서 재논의 판정을 받았다. 이 시점에서 침례병원 공공병원화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본다. 침례병원 공공병원화는 지역의 필요로 제안된 것이고, 따라서 지역에서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병원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회복기병원은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서 필요한 병원에 가깝다. 회복기병원은 종합병원에서 수술 등 급성기 치료를 마친 환자에게 기능 회복을 하게 한 다음 집으로 퇴원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종합병원의 입원 기간을 줄임으로써 불필요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부산에서 필요한 공공병원의 기능은 필수의료·응급의료를 제공하며, 금정구와 동부산권 주민의 의료 이용과 건강을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현행 의료 정책과 연결하면, ‘포괄2차 종합병원이면서 지역책임의료기관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병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회복기병원에서는 수행하기 어렵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의료 문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질환·증상에 대한 포괄적 진료역량”을 갖춘 포괄2차 종합병원 지원사업 대상을 선정하였다. 동부산권에 속하는 4개 지자체(금정구·해운대구·수영구·기장군) 중에서 금정구만 제외되었다. 책임의료기관은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양질의 필수의료를 제공하며, 지역별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 보건의료기관 등과의 연계·조정 등 역할을 수행하는 종합병원으로 전국 70개 진료권 중에서 56개소가 지정되어 있는데, 부산은 3개 진료권 중에서 중부산권(부산의료원)이 유일하다. 부산시는 보험자병원에 약 2500억 원의 재정 지원을 건정심에 보고한 바 있다. 300병상 규모 종합병원인 서부산의료원의 총사업비가 1641억 원이고, 2025년 부산시 보건 분야 예산 규모가 2100억 원 수준이다.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지원하면서도 금정 구민과 부산 시민이 필요로 하는 공공병원이 들어서지 못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침례병원 공공병원화의 핵심은 누가 운영하는 병원이 아니라, 누구를 위한 어떤 기능을 하는 병원인가에 있다. 부산 시민의 건강 수준은 여전히 전국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해양수도 부산의 명성에 걸맞는 시민의 든든한 의료안전망으로서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하고, 동부산권에도 이에 걸맞은 공공병원이 들어서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더군다나, 현 정부는 공공의료체계 강화와 지역 격차 해소를 보건의료 부문의 핵심 국정과제로 삼고 있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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