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글로벌특별법에 침묵하는 민주당, 책임 있는 자세 보여야
부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한 시민은 160만 명에 달한다. 부산과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기 때문이었다. 2024년 5월 발의된 이 법안은 2년 가까이 표류하던 중 여야 합의로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숙려 기간을 빌미로 법제사법위원회 상정이 불발됐다. 이 와중에 이재명 대통령이 포퓰리즘 사례라며 제동을 걸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보인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여야 공동 발의한 이 법안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는커녕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상임위를 통과한 글로벌특별법을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무시하는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달 31일 이 대통령이 글로벌특별법에 대해 ‘포퓰리즘’ 언급을 한 이후 현재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여당이 대통령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 수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글로벌특별법을 외면하는 것은 국정을 책임진 여당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특히 민주당은 이 법안을 제대로 숙의조차 하지 않은 채 2년 동안 방치했다. 또다시 글로벌특별법 홀대를 재현, 난항 우려를 키우는 것은 조속한 법 통과를 염원하는 부산 시민들의 희망을 꺾는 행태일 뿐이다. 더욱이 이 대통령의 글로벌특별법에 대한 지적은 현실과 맞지 않다. 이 법안은 규제 완화와 특구 지정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재정 투입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에 특별한 재정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 정부 주도의 정책 입법에 가깝기 때문에 포퓰리즘이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여당은 언제,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말조차 없다. 이에 앞서 민주당은 박형준 부산시장의 삭발 사태와 전재수 의원의 법 통과 요청 이후 전광석화로 행안위를 통과시킨 데 이어 국회 우선 처리 방침을 밝혔다. 지역으로서는 고무적인 일이었지만 시장 출사표를 던진 전 의원에게 힘을 싣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은 씁쓸함마저 자아내게 했다. 글로벌특별법은 부산만을 위한 게 아니라 성장 한계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더욱이 이 법안은 해양수도 부산을 싱가포르나 상하이와 같은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할 초장기 도시 설계도라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조속한 국회 통과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정을 이끄는 여당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당에 대한 부산의 신뢰에도 큰 상처를 남길 우려가 크다. 만약 부산시장 선거에 이용하려는 속내를 갖고 있다면 무척 위험한 발상이다. 현재 부산 민심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대규모 민심 이반 사태가 발생한다면 응당 모든 책임은 민주당이 져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사설] 트럼프 이란전 강경 모드, 안보와 경제 리스크 더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 연설에서 “앞으로 2∼3주 극도로 강력한 타격”을 예고하며 이란을 압박했다. ‘셀프 종전’ 예상과는 달리 강경 입장이 나오자 국제 유가는 다시 뛰고, 글로벌 증시는 급락했다. 여기에 이란이 미국의 정보통신기술(ICT) 및 인공지능(AI) 대기업이 ‘테러 작전’에 연루됐다며 공격을 위협해 확전이 우려된다. 이란 사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한국 경제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더구나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파병에 협조하지 않은 나라에 불만을 피력하면서 한국도 콕 집어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경제난을 넘어 외교·안보를 아우르는 복합 위기로 꼬이는 상황이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미국과 이란의 강경 대치가 장기화하면 원유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취약성은 배가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대안으로 정부와 정유업계는 미국산 원유와 러시아산 나프타 등 수입선 다변화로 대처하고 있다. ‘전쟁 추경’도 대책의 하나다. 하지만 ‘석기시대’로 되돌린다는 대규모 공격과 빅테크 ‘핀셋’ 반격으로 피해가 커지면 시장에서는 위험 회피 심리 강화, 외국인 자금 이탈,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이 동시에 나타날 공산이 크다. 대외 변수에 과도하게 민감한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추경 같은 재정 처방도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이 있다. 대체 조달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경제 충격을 버티기도 힘든데 ‘괘씸죄 청구서’까지 예고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험지에 주한미군을 두고 있는데도… 한국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감정을 드러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은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유럽 국가가 하게 두자. 한국이 하게 두자”라고도 말했다. 이란 사태가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되든 파병에 응하지 않은 대가로 한국에 방위비, 에너지 구매, 관세와 통상 압박이 뒤섞인 형태의 후속 청구서가 날아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란 사태가 한미 경제·안보 현안으로 번지는 셈이다. 안보는 미국이 책임지고 경제 위기는 한국이 감당하면 된다는 낡은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이번 이란 사태는 과거의 오일 쇼크나 국지전 리스크와는 결이 다르다. 금융, 환율, 에너지, 물류, 산업이 동시에 흔들리고, 외교·안보 리스크까지 더해진 복합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자칫하면 총체적 난국으로 빠져들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이번 중동 공급망 차질이 과거 주요 에너지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많은 위기를 경험해 놓고도 한국은 중동 원유 의존 구조를 탈피하지 못한 점이 뼈아프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위험한 것은 낙관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성은 한국의 위기관리 능력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복합 위기에 대한 국가 차원의 비상 시나리오가 절실하다.
[사설] 부산 글로벌특별법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진의는 뭔가
부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이하 글로벌특별법)이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공회전이 재연될 조짐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여야 합의로 통과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숙려 기간 5일’에 걸려 상정이 불발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불안한 정도였는데, 대통령이 ‘포퓰리즘’ 사례로 경고하면서 지역 사회에 당혹감을 안기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31일 국무회의에서 “의원 입법이 포퓰리즘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면서 글로벌특별법만 콕 집어 지적한 뒤 여야는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재정이 수반되는 법안도 아니고 여야 공동발의라서 이견도 없는 법안을 두고 벌어지는 공방이 납득되지 않는다. 대체 대통령의 진의는 뭔가. 글로벌특별법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현실과의 괴리감이 크다. 우선 이 법안은 형식만 의원입법일 뿐 정부 주도의 정책 입법에 가깝다. 행정안전부 차관이 태스크포스 단장을 맡아 부산시와 함께 법안을 설계했고, 각 부처 협의를 거쳐 성안된 구조다. 신속 처리를 위해 의원 명의로 발의됐을 뿐이다. 이 법안이 포퓰리즘이면 21대와 22대 때 발의에 참여한 민주당 의원들이 포퓰리스트가 된다. 더구나 이 법안은 재정 투입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취약 계층 지원 등 정부와 지자체 예산 매칭 방식과는 거리가 먼 규제 완화와 특구 지정 등 제도 설계를 담고 있다. 재정 부담과 정책 정합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 절차적 형평성도 훼손됐다. 이 법안은 21대에 제출되어 폐기되고, 22대 개원과 동시에 재발의됐지만 영문도 모른 채 2년 가까이 행안위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뒤늦게 추진된 행정통합 관련 3개 법안(광주전남, 대구경북, 대전충남)은 순식간에 행안위를 넘고, 이중 광주전남은 일사천리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강원·전북·제주특별자치도 법안 개정도 선입선출 원칙이 무시된 채 부산을 추월했다. 6·3 지방선거 전 부산 소외론을 의식해서인지 갑자기 행안위에서 급물살을 타는가 싶더니 결국 법사위에 이어 청와대의 ‘딴지’에 급제동이 걸렸다. 쟁점도 없고 이미 2년여 공론을 거친 점을 감안하면 어깃장 탓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21대 때 이 법안이 통과돼 지금 부산에 국제물류·금융·첨단산업특구가 들어섰다고 생각하면 꿈만 같다. 동남권의 성장 동력이 국토 균형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국정 과제로 앞세우는 ‘5극 3특(5개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 기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대통령은 지역 활성화의 유력한 수단으로 부산 글로벌특별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숙려 기간은 종료됐고 여야 이견도 없다. 법사위 즉각 상정과 다음 주 추경을 다룰 본회의 통과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논란으로 세월을 소모할 만큼 지방의 위기가 한가롭지 않다. 정치 셈법은 접어두고 지역의 미래만 생각해야 한다.
[밀물썰물] 아르테미스의 미래
1957년 옛 소련이 첫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는 냉전 시절 우주 경쟁을 촉발했다. 미국은 1969년 아폴로 11호 조종사들을 지구의 유일한 자연 위성에 발을 내딛게 하고야 만다. 달 탐사에 그리스 신화 ‘태양의 신’ 이름을 붙인 것은 의도적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 대결, 즉 어둠을 압도하는 빛의 승리를 서사화한 것이다.2007년 중국의 위성 요격 성공은 미국에 두 번째 쇼크를 안겼다. 지상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대기권 밖 기상위성을 격추한 것이다. 총알로 총알을 맞히는 수준의 정밀도에 미국은 긴장했다. 이 사건은 군사 작전 영역을 우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2015년 중국은 우주전 전담 부대를 창설하고 ‘우주몽’을 선언했다. 미국도 2019년 우주군(USSF)을 출범하고, 중국을 우주정거장 프로젝트에서 배제하는 등 견제에 나섰다. 하지만 중국은 인류 최초로 우주선 ‘창어’를 달 뒷면에 착륙시켰고, 자체 우주정거장 구축에 힘입어 러시아와 함께 2030년대 달 남극 기지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미 항공우주국(NASA)이 1일 유인 우주탐사선 ‘아르테미스 2호’를 쏘아 올린 것도 달 남극 선점 경쟁의 일환이다. 주목할 점은 쌍둥이 남매인 아폴로와 ‘달의 여신’아르테미스 두 프로젝트의 구조 차이다. 미국 홀로 ‘자체 발광’하던 아폴로에 비해 아르테미스는 ‘반사광 공유’ 방식이다. 한국과 일본, 인도를 비롯해 유럽연합과 중동 등 전 세계 61개국이 ‘아르테미스 협정’에 서명하고 재정과 기술로 참여했다. 함께 발사된 한국 큐브위성 ‘K-라드큐브’에 탑재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칩은 우주 방사선에 대한 반도체 소자의 내성을 검증한다. 국산 반도체 성능에 인류의 숙원 해결이 걸려 있다.아르테미스는 천체 영유권을 금지한 1967년 우주조약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접근 원칙’을 준수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아르테미스에 대항의 축을 형성했지만, 대세는 국제 규범화된 다자 질서로 기울었다. 하지만 2020년 8개국 서명(한국은 10번째)으로 출범한 ‘아르테미스 협정’ 당시 미국과 지금의 미국은 국제 관계에 대해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게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공격에 협조하지 않은 한국과 일본, 나토에 괘씸죄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방통행식·즉흥적 외교로 미국의 미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정답은 아르테미스 협력 모델에 있다.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편집국에서] 야구 시즌에 돌아온 선거의 계절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됐고, 선거의 계절도 돌아왔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북항 야구장이 최근 이슈로 떠올랐다. 시장 자리를 놓고 격돌하는 후보들은 야구장 건립과 북항 활용 방안을 두고 각기 다른 공약으로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가 시범경기 1위에 오른 기세를 이어 개막 2연전 반짝 승리 이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구도 부산’과 관련한 표심 경쟁은 오히려 더 뜨거워지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전재수 의원은 ‘북항 돔 야구장’ 건립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전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서 “부산은 단연 야구의 도시이며, 시즌이 시작되면 도시 전체가 하나의 응원단이 된다”며 북항에 ‘바다가 보이는 돔 야구장’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이미 상당 부분 검토를 마쳤다”며 추진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야구뿐 아니라 비시즌에는 전시와 공연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해 북항 전체의 활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민주당 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든 이재성 전 부산시당위원장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오라클 파크를 모델로 한 ‘개방형 오션 파크’를 내세우며 바다를 조망하는 낭만을 강조한다. 2024년 민주당 시당위원장 취임 때 북항야구장 건설을 강조했던 이 전 위원장은 “돔 형태보다는 바다 경관을 살리는 야구장이 바람직하다”며 “바다가 보이는 개방형 복합 야구장을 지어 야구와 e스포츠, 공연, 관광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주진우 의원은 사직야구장은 현재의 계획대로 재건축해 스포츠의 성지로 남기고, 북항에는 ‘부산 오션 돔’이라는 최첨단 개폐형 아레나를 신설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스피어처럼 미디어 파사드를 적용해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랜드마크로 만드는 동시에, BTS 블랙핑크 등 K팝 아티스트가 찾는 대한민국 대표 공연장으로 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직의 역사성과 북항의 미래 가치를 동시에 잡겠다는 전략이다. 후보들의 공약 경쟁이 이어지자 국민의힘 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박형준 부산시장도 북항 논의에 가세했다. 당초 현실적인 장벽을 이유로 북항 야구장 건립에 부정적이었던 박 시장 측은 지난주 북항 재개발 2단계 부지를 활용해 제2 야구단 유치와 연계한 야구장 건립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사직야구장 재건축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박 시장 측은 북항 랜드마크 부지 활용과 관련해선 외자 유치를 통한 88층 랜드마크 타워 건립을 추진하고, 이를 위한 투자의향서(LOI)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AI·게임·디자인·해양 신산업을 집적하고 K콘텐츠와 지식재산(IP) 기반 복합리조트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현실이다. 부산의 백년대계라 불리는 북항 재개발 사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2030 월드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2단계 사업 추진은 눈에 띄게 늦어졌고, 1단계 랜드마크 부지 개발은 10년 넘게 진척이 없다. 마이스와 비즈니스, 쇼핑,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결합한 복합리조트 건설로 국제 컨벤션 도시로 도약한다는 서병수 전 부산시장 때 구상은 내국인 출입 카지노 논쟁에 막혀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북항 야구장 건립은 예전부터 시민 지지 여론이 높았지만 이 역시 추진되지 못했다. 막대한 사업비와 이에 따른 재원 조달 문제, 사직야구장과의 중복 투자 논란, 기존 상권 반발 등 현실적 장벽에 부딪혔다. 이에 사직야구장 재건축은 이미 행정 절차에 들어간 상황이다. 올해 299억 원의 국비를 확보해 현재 설계 관련 용역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야구장 북항 이전 공약을 들고나오는 것은 정책 혼선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고 부산시장 후보들의 공약을 단순한 선거용이라고 치부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정체 상태에 빠진 북항 재개발을 다시 움직이게 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번 부산시장 선거는 북항 개발의 방향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돼야 한다. 북항 야구장 논쟁은 단순한 시설 유치가 아니라, 부산의 미래 도시 전략을 둘러싼 선택의 문제다. 공약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재원 조달 방안, 사직야구장과의 역할 정립, 지역 간 이해 조정이라는 현실적 과제가 함께 제시돼야 한다. 북항 야구장 이슈는 단순한 공약 대결을 넘어, 부산의 미래 도시 전략을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설계다. 이번 선거가 북항 재개발을 더 이상 표류시키지 않고, 확실한 추진 궤도에 올려놓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himang@busan.com
[이은철의 너튜브B컷]부산엔 충주맨이 필요해
10여 년이란 시간 동안 익숙해졌던 활자를 떠나 방송(?)으로 업을 바꾼 지 한 달. 짧은 기간이지만 회사 안팎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던 공통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충주맨이다. 그와 닮은 외모 탓도 있겠지만 주된 이유는 최근 몇 년간 유튜브 업계를 발칵 뒤집은 인물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무원이자 유튜버인 충주맨 김선태의 성공 비결은 간단해 보인다. 기존 지방자치단체 홍보 영상에서 볼 수 없던 파격과 혁신이다. 책상에 발을 올리고 앉아 낮은 자세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나 실패한 시정 정책을 거리낌없이 ‘디스’하는 방식 말이다. 문제는 ‘쉽고 재미있게’ 국민과 소통한다는 이 쉬운 방정식을 실제로 실현해내는 게 그리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유튜버 김선태가 전국 지자체에 불려 다니며 노하우를 전수했지만 제2·제3의 충주맨이 나오지 않는다. 충주맨이라는 스타 출현의 배경을 좀 더 들여다 보면 파격과 혁신의 ‘리더십’ 덕분이다. 7급 주무관이던 그에게 전권을 일임하고 판을 깔아준 조길형 충주시장의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다. 눈부신 성공을 거둔 당사자 역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무결재로 영상을 제작하게끔 해준 충주시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충TV도 없었다며 공을 돌리기도 했다. 불과 두 달밖에 남지 않은 6·3 지방선거 국면에서 부산에도 충주맨의 등장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다. 세계 2위 환적항과 세계 7위 컨테이너항, 400만에 육박하는 외국인 관광객, 해사기술 경쟁력 세계 1위, 글로벌 해양도시 순위 10위 수준의 기반을 갖춘 도시 등 각종 미사여구가 붙은 부산인데 충주맨이 왜 필요할까. 앞서 나열한 각종 지표들은 부산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시민들의 체감도는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인 까닭이다. 부산의 미래를 위해서는 지역 생태계를 교란해서라도 변화의 바람이 필요하다는 게 시민들의 요구인 것이다. 공직 사회를 휘저은 공무원 김선태는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 그가 새로운 도전을 펼치듯,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롭게 공직 입문을 노리는 많은 이들이 있다. 부산만 해도 시청은 물론 16개 구군청과 지방의회 입성을 위해 뛰는 후보들 수가 어림잡아 수백 명이다. 지역소멸, 청년유출, 일자리 부족 등 부산이 직면한 수많은 문제들이 부산 앞에 놓여있다. 혁신, 창의적 아이디어 등이 실패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기존 사고에서 벗어나 충주맨 못지않은 시각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지 않고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쉽지 않은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도전을 통해 부산을 발전시킬 ‘부산맨’의 등장을 기다린다.
[오션 뷰] 땅만 만든 북항 재개발, 도시를 다시 만들자
부산항은 단순한 항만이 아니다. 부산의 정체성이자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이며, 도시의 역사 그 자체다. 그러나 북항 재개발은 2007년 기본계획 수립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완성된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북항은 한마디로 ‘땅은 있지만 도시가 없는 상태’다. 문제의 본질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지금까지의 북항 재개발은 도시를 만드는 과정이라기보다 구역을 나누고 건물을 세우는 ‘부동산 개발 방식’에 가까웠다. 도시를 구성하는 사람, 산업, 문화, 생태 그리고 그 사이의 유기적 관계는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 그 결과 공간은 만들어졌지만 도시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구조다. 북항은 여전히 부산 원도심과 단절된 채 ‘섬처럼 개발’되고 있다. 중구, 동구, 영도구, 서구로 이어지는 부산의 핵심 생활권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사람의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북항은 사람보다 시설 중심으로 접근되어 왔다. 공원과 도로, 기반시설은 갖추어졌지만 그 안을 채울 콘텐츠와 활동은 부족하다. 도시는 건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활동으로 완성된다. 여기에 더해 이원화한 거버넌스 구조는 문제를 심화시켰다. 항만은 해양수산부, 도시구역은 부산시가 담당하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공간은 하나지만 정책은 둘로 나뉘어 추진될 수밖에 없다. 계획과 집행, 운영이 분절되면서 일관된 도시 전략을 만들기 어려운 구조다. 결국 북항 재개발의 지연은 사업성이나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잘못 계획된 구조의 문제였다. 핵심은 분명하다. 북항을 단순한 개발 구역이 아니라 ‘도시를 재생시키는 플랫폼’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북항은 해양·문화·산업의 중심 거점이 되고, 원도심은 생활·상업·관광·창작 기반으로 기능해야 한다. 이 두 축이 연결될 때 비로소 도시 전체가 살아난다. 서울 성수동의 변화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성수동은 대규모 철거와 신축이 아니라 기존 도시 구조를 유지한 채 점진적으로 변화했다. 낡은 공장과 창고는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했고, 그 안에 창작자와 스타트업이 유입되면서 도시의 분위기가 형성됐다. 서울의 숲을 통한 도시녹지를 확보하고 신규 고가주택단지와의 단절이 아니라 연결을 통한 자연스러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조화를 만들어 내었다. 한 공간 속에 재생과 개발이 공존하면서 도시의 다양성을 만들어 낸 것이다. 공공은 흐름을 읽고 유지하는 역할에 집중했고, 기업은 정책이 아니라 ‘도시의 매력’을 따라 들어왔다. 해외 사례도 마찬가지다. 스페인 빌바오항의 재개발은 쇠퇴한 항만과 산업을 버리는 대신 도시와 연결하여 문화·디자인 중심 도시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디트로이트는 대규모 개발 중심 접근 속에서 도시의 회복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차이는 투자 규모가 아니라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도시는 개발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을 통해 살아난다. 북항 2단계의 방향은 명확하다. 첫째, 원도심과 통합한 광역 도시 플랫폼 전략이 필요하다. 북항을 중심으로 중구·동구·영도구·서구·남구를 하나의 도시 생태계로 묶어야 한다. 둘째, 해양 기반 창조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해양문화와 콘텐츠, 관광, 디자인, 스타트업, 라이프스타일 산업이 결합된 새로운 산업 구조가 필요하다. 북항은 단순한 해양 공간이 아니라 ‘해양 기반 창조 산업 허브’로 전환되어야 한다. 셋째,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공공은 개발의 주체가 아니라 방향을 설정하고 규제를 완화하며 조정하는 촉진자가 되어야 한다. 민간은 투자와 콘텐츠, 운영의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도시를 만드는 것은 행정이 아니라 사람과 시장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버넌스다. 해양수산부와 부산시는 형식적인 협력을 넘어 하나의 도시를 함께 운영하는 통합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통합 마스터플랜, 공동 의사결정 구조, 역할 재정립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북항은 하나의 도시로 작동할 수 있다. 북항 2단계는 단순한 개발사업이 아니라 부산의 미래를 결정짓는 도시 실험이다. 이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사람은 왜 이곳에 머무르는가. 기업은 왜 이곳으로 오는가. 이 도시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가. 도시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을 머물게 하는 힘’에서 나온다. 이제 부산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계속 북항과 원도심의 분절된 개발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원도심과 통합된 하나의 도시 전략으로 전환할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북항 재개발은 더 이상 ‘건설 사업’이어서는 안 된다. 부산 북항 재개발은 원도심 재생과 연결한 도시를 다시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해양수도권의 중심은 부산이다. 해양수도 부산의 중심은 북항 도시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공감] '르상티망'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타인의 성공 앞에 서면 우리 안에서 불편하게 꿈틀거리는 것이 있다. 이를 흔히 질투라 부르지만, 질투와 시기는 다르다. 질투(jealousy)는 내가 가진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고, 시기(envy)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타인이 누린다는 자각이다. 시기에도 결이 있다. 상대를 보며 자신을 키우는 시기가 있고, 상대가 그것을 잃기 바라는 시기가 있다. 후자가 입 밖에 나오지 못할 때, 그것은 안으로 가라앉아 어느 순간 도덕의 얼굴로 나타난다.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왔다. “저 사람, 부모 찬스 아니면 절대 못 갔을 자리인데 왜 다들 축하해줘?” 댓글 대부분은 공감이었다.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말하지만, 그 뿌리가 늘 정의인 것은 아니다. 페스팅거의 ‘사회비교이론’이 증명하듯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산다. 그 비교가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만날 때 시기는 자신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쌓여 굳고, 굳은 것은 원한이 되어 도덕의 언어를 빌려 밖으로 나온다. 니체는 이것을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 불렀다. 그는 〈도덕의 계보〉에서 이를 노예도덕의 심리적 뿌리로 분석했다. 맞설 수 없는 자가 상대를 ‘악’으로 규정해 자신을 ‘선’에 세우는 것, 타자의 규정에 기대는 반응적 존재 방식이다. 억눌린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시기하는 대상의 가치 자체를 허무는 방식으로 돌아온다. “저 사람의 성공은 어차피 편법의 결과”라는 식으로. 현대 심리학은 타인의 실패 앞에서 느끼는 은밀한 안도감인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가 그 보상 구조임을 확인했다. 정의를 말하면서 타인의 불행에서 위안을 찾는 것, 그것이 르상티망의 속내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이 감정이 자라기 좋은 토양 위에 있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통로는 좁다.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불평등이 공존할 때 그 간극은 원한을 키운다. 노력은 미덕으로 강조되지만, 결과는 점점 세습을 닮아간다. SNS는 비교를 일상으로 만들고 알고리즘은 분노를 먹고 자란다. 비판이 혐오로 미끄러질 때 르상티망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의 언어가 된다. 르상티망은 변화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변화를 막는다. 상대를 끌어내리는 데 힘을 쓰는 동안 자신을 향한 힘은 빠져나간다. “어차피 안 된다”는 말은 소리 없이 행동을 멈춘다. 허무가 자리를 잡으면 대화는 사라지고 비난이 남는다. 그 자리에 냉소가 따라온다. 냉소는 때로 유효하다. 허위를 꿰뚫고 과장된 낙관을 경계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냉소는 세상을 비추는 데는 쓸모가 있어도 세상을 바꾸는 데는 무력하다. 냉소가 깊어질수록 자기 삶과의 거리도 멀어진다. 결국 르상티망이 앗아가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출구는 두 방향에서 함께 열려야 한다. 사회는 노력이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신뢰를 되살려야 한다. 개인으로서는 억눌렀던 욕망을 먼저 들여다볼 일이다. 타인과의 비교가 결핍을 낳는 것과 달리, 어제와 오늘의 나를 견주는 일은 다른 긴장을 만든다. 그렇게 자신을 향한 시선이 깊어질 때, 니체가 르상티망의 반대편에 놓은 귀족도덕, 곧 능동적 자기 긍정의 길이 열린다. 그 긍정이 삶의 고통과 한계까지 기꺼이 껴안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에 닿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놓여나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르상티망은 일상의 말과 표정 속에 드리운 그림자다. 타인의 불행 앞에서 스치는 안도감 속에서 자란다.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타인을 향하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 거기서 시작된다.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일과 자기 삶을 긍정하는 일이 함께 갈 때 그림자는 옅어진다. 제 삶을 사는 사람에게 르상티망은 결국 힘을 잃는다.
[기고] 필연 기술로 부산 ‘고용의 봄’ 꿈꾸다
벚꽃이 만개하는 요즈음, 부산 경제에도 반가운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자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부산의 고용 지표는 그간의 침체를 벗어나 잠재력이 결실을 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부산의 30대 고용률이 최근 5년 사이 무려 10%P나 상승하며 전국 최고의 증가 폭을 기록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실업률 또한 7대 특·광역시 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단순히 수치상의 개선을 넘어 구인·구직 간의 고질적인 ‘미스매치’가 해소되면서 혼인율과 출생아 수 또한 전국 평균을 상회하며 반등하고 있다. 이는 부산이 ‘청년이 떠나는 도시’에서 ‘사람이 머물고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성공적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희망의 증거다. 이러한 소중한 성과는 그간 지역 사회가 합심하여 구축해 온 지·산·학 협력 체계와 산업 혁신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대규모 투자 유치와 청년 맞춤형 고용 정책이 실질적인 지표의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 기분 좋은 반등의 기세를 몰아, 부산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과학기술 허브’로 안착시키는 일이다. 청년의 지역 유출 속도는 완화되고 있지만, 인재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딥테크 기업’ 육성과 이를 통한 역외 인재의 유입 가속화는 여전히 시급한 과제다. 현재 글로벌 혁신 클러스터 95위권에 머물고 있는 부산의 순위를 국가 혁신 위상에 걸맞게 끌어올려야 한다. 훌륭하게 갖춰진 도시 인프라가 단순한 거주 기능을 넘어 양질의 일자리와 혁신 창업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더 단단히 다져야 할 때다. 그 도약의 핵심 열쇠는 부산이 가장 잘할 수 있고,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필연 기술(Inevitable Tech)’에 있다. 필연 기술이란 단순히 유행을 좇는 기술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도시의 산업과 일자리가 유지될 수 없는, 부산의 미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주도권을 쥐어야 할 핵심 기술 영역을 의미한다. 첫째, 부산의 뿌리인 제조업에 ‘AI 전환(AX, AI Transformation)’의 새 옷을 입혀야 한다. 산업 맞춤형 AI와 로봇이 결합한 첨단 제조 현장은 청년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스마트하고 매력적인 일터가 될 것이다. 둘째, 최근 착공한 센텀2지구 도시첨단산업단지(도심융합특구)를 중심으로 ‘글로벌 양자 특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양자 분야는 부산의 기존 주력 산업과 융합할 지점이 무궁무진하다. 특히 세계적인 항만 인프라에 양자센싱과 컴퓨팅 기술을 접목한 ‘양자항만 테스트베드’를 구축한다면, 부산은 북극항로 거점도시의 심장을 넘어 기술의 메카로 격상될 수 있다. 셋째, 고령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역설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의료 데이터와 실용화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복지 모델은 부산을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미래형 초고령사회 대응 모델 도시로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양 유래 바이오 소재와 에너지 안보를 결합한 ‘블루 이코노미’의 확장은 부산을 바다를 통해 에너지와 데이터를 연결하는 초연결 도시로 진화시킬 것이다. 이 거대한 희망의 여정에서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은 든든한 ‘성장판’이자 ‘혁신 파트너’가 될 것이다. 지금 부산이 맞이한 ‘고용의 봄’은 끝이 아닌 위대한 시작이다. 지난 5년간 정성껏 뿌린 씨앗이 이제 막 싹을 틔웠을 뿐이다. 이제 ‘필연 기술’이라는 따뜻한 햇살과 ‘혁신 생태계’라는 풍요로운 토양을 더해, 부산의 미래를 활짝 꽃피워야 한다. 대한민국 혁신의 중심축으로서, 부산이 그려갈 ‘과학기술로 시민이 행복한 도시’의 미래를 시민들과 함께 확신과 설렘으로 준비해 나가고자 한다. 부산의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존이자 가장 큰 도약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기고] AI도 할 수 없는 일, 이순신 전적지 탐사
학승이자 대강백인 종범 스님의 법문을 우연히 듣다가 벼락을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법문의 요지는 이렇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 가장 고집이 센 사람은 학자들이다. 식당에 와서 혼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주인이 다가가, 단체 손님이 온다고 자리를 옮겨 달라고 하면 대부분은 옮기는데 학자들은 절대 말을 안 듣는다. 그리고 학자들은 자기 주장이 최고인 줄 알고 남과 타협하는 일이 없다.” 그러나 이런 학자들의 고집과 권위가 ‘빛의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때문이다. 질문만 잘 하면 AI는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한 해답을 내놓는다.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AI 열풍 앞에 학자들의 입지는 위협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역사학자는 통역가와 번역가 다음으로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직업이라는 분석 결과가 있다. 명확한 답이 있고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연과학 분야는 비교적 논란이 덜한 편이지만 인문학 분야는 학자들 간에 주장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역사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서로 다투면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환단고기가 위서인가 여부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사료가 풍부하지 못한 상고사는 학자들 간의 논쟁이 치열한 분야 중 하나다. 임진왜란 역사와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는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최초 삼도수군통제영이 여수인가 아니면 한산도인가를 놓고 편을 갈라 다툼을 벌이고 있다. 양측의 지역 정치인들까지 가세하여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어 민망할 뿐이다. 합포해전지가 마산 합포인가 진해 학개인가를 놓고도 해묵은 논쟁이 종식되지 않고 있으며,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하러 갔던 합천의 권율 원수진이 어느 동네인가도 연구자들 사이에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다.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유독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에게 공개적인 인신공격이나 비방도 예사로 한다. 지식 카르텔을 형성하여 횡포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행태는 모두 충무공의 영전에 부끄러운 일이다. 필자는 이순신 장군의 행적을 따라 20년 이상 바다를 누비고 다니면서 스스로 학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냥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는 해전 현장 전문가라고 하는 것이 편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출판사 사장은 필자를 두고 발로 뛰는 ‘바다의 고산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고산자는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의 호다. 서재에서 문헌만 연구하는 것은 나의 자유분방한 성정과도 맞지 않다. 역사기행 수필가나 시인이 내게는 더 잘 어울리는 타이틀이다. 그동안 350회 이상 이순신 전적지를 답사하면서 태풍에 갇혀 섬에 고립된 적도 있었고, 날이 저물어 외딴 암자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섬은 거의 다 섭렵했고 결국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있는 오곡도라는 작은 섬에 내 영혼의 짐을 내려놓았다. 섬마을 토담집을 수리하여 이순신 전적지 답사를 위한 베이스캠프를 하나 마련했다. 종범 스님의 법문은 AI 시대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AI가 역사학자들을 능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문헌학이기 때문에 그 어떤 분야보다 먼저 AI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AI가 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낭 하나 메고 이순신 장군의 해전 현장을 다니면서 역사의 진실을 캐고 구전설화를 채록하며, 별빛 쏟아지는 밤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을 다시 만나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확신한다.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러다 다 죽는다
“이러다 다 죽는다.” 지구촌 전쟁 얘기가 아니다. 기후 재난에 대한 경고도 아니다. 부산의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들이 토해내는 절박한 탄식이다. 지역의 한 건축사는 “30년 가까이 건축사로 활동했지만 최근 2~3년이 가장 힘든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그만큼 어렵다. 여기엔 주거 공간의 획일화가 자리 잡고 있다. 부산의 도시 풍경은 이제 거의 아파트로 수렴된다. 해운대·마린시티의 고층 단지부터 강서·명지를 비롯한 서부산권의 신도시 계획까지, 주거 개발의 중심축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아파트 건설에 맞춰져 있다. 지역의 소규모 건축가와 사무소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거의 없어 보인다. 설계의 다양성과 실험, 지역적 개성이 숨 쉴 공간이 점점 줄어드는 셈이다. 소규모 건축이 사라진 도시,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이러다간 자칫 도시를 지탱해 온 건축 생태계의 한 축이 붕괴할 수도 있다. 온통 아파트로 뒤덮인 도시.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파트 편중이 가져온 현주소 한국의 주거 형태는 빠르게 아파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2024년 기준 전국 주택 중 아파트 비중은 약 65%에 이른다. 여기에 연립·다세대주택까지 포함하면 80%에 육박한다. 부산은 이보다 더 높은데 아파트 비중만 69.9%에 이른다. 신규 인허가 물량도 대부분 아파트다. 주거 구조의 편중은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이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건설 수주를 좌우하는 것도 결국 대단지 주거사업이다. 미분양 증가와 자재비 상승에도 아파트 공급은 멈출 줄 모른다. 이대로라면 도시가 아파트로 빼곡히 채워지는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건축은 단순히 물량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도시의 결을 빚어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결을 가장 촘촘하게 형성하는 것은 다름 아닌 소규모 건축이다. 골목을 살리고, 상권을 키우며, 지역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힘이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동네 병원과 작은 도서관, 근린생활시설과 리모델링 사업이 그 축이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에서는 이러한 영역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단지 설계는 대형 건축사사무소와 건설사 중심으로 돌아가고, 설계·시공·감리 전반이 그 틀 안에 고착됐다. 그 결과 지역의 소규모 건축사는 점점 주변으로 밀려난다. 남은 영역은 단독주택이나 소규모 공공건축, 리모델링뿐이지만, 이마저도 물량이 줄어 경쟁만 치열해지고 있다. 어렵게 대형 프로젝트를 따내더라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부산 지역 정비사업이 평균 12년이나 걸리는 현실에서 작은 사무소들이 이 기간 버텨내기란 쉽지 않다. ■획일화된 공간서 벗어나야 획일화된 주거 공간이 변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도시가 단조로워진다. 어디를 가도 비슷한 단지와 입면, 비슷한 배치다. 낮에는 비어 있고 밤에만 켜지는 창문들. 우리는 효율을 얻었지만 도시의 표정을 잃었다. 더 많이 더 빨리 짓는 데는 성공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제 고민해야 한다. 아파트는 공동주택인데, 정작 아파트 단지 속에서 공동이라는 개념은 찾을 수가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공동일 뿐이다. 학자도, 언론도, 시민사회도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또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도시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건축 생태계의 위기다. 소규모 건축사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은 건축 생태계의 경직과 도시 다양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대단지 아파트 중심 구조는 지역 건축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다. 그동안 다가구주택과 상가주택, 소규모 프로젝트는 지역의 일자리, 디자인 경쟁과 다양성, 도시의 개성을 떠받쳐 온 기반이었다. 젊은 건축가들의 실험과 도전, 기술 축적 역시 이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기반마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특히 부산 상황은 더욱 우려스럽다. 부산은 재개발·재건축과 대단지 아파트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다. 주택 경기가 식으면 도시 전체가 흔들린다. 건축 생태계가 너무 단선적이기 때문이다. 소규모 건축이 살아 있어야 시장의 충격을 분산할 수 있다. 시장의 허리가 단단해야 함께 버틸 수 있다. 이게 안 되면 도시 경쟁력도 무너진다. “이러다 정말 다 죽는다.” ■대안은 있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이미 다른 도시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는 건축과 도시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특별기획 부산공간대포럼’이 지난달 30일부터 사흘간 열렸다. 포럼 둘째 날인 31일,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일본의 신도시 마쿠하리 베이타운을 소개했다. 이곳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건축의 형태에 있지 않다. 도시와 건축, 공공과 민간, 그리고 다양한 건축가의 협업이 하나의 질서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마스터 아키텍트(MA)’ 방식 아래 도시계획과 건축 설계는 분리되지 않고, 처음부터 하나의 과정으로 통합됐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5층 이하 저층 건축물에 두 명 이상의 건축가가 공동으로 참여해 설계를 맡는 구조다. 이른바 도시·건축 통합계획, 즉 협동설계 방식이다. 일정한 목표를 공유한 뒤 공공기관과 사업자, 그리고 각 블록을 담당하는 민간 주체들이 역할을 나누고 협의와 조정을 거쳐 도시를 완성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대형 건설사와 소규모 건축가가 각자의 영역을 맡아 조화를 이루고 결과적으로 거리마다 서로 다른 표정을 만들었다. 핵심은 공존이다. 대형과 소형, 공공과 민간, 계획과 설계가 하나의 질서 안에서 긴장과 균형을 이루며 공존한다. 그래서 이 도시는 단조롭지 않다. 가로가 살아 있고, 블록이 살아 있으며, 건축 하나하나가 도시의 생명력을 품고 있다. 마쿠하리 베이타운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흔히 “한국은 땅이 좁아서 고층 아파트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마쿠하리 베이타운은 5층 내외의 중층 주거만으로도 180~230%의 용적률을 구현한다. 고밀도 개발이 곧 초고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높이가 아니라 구조와 배치, 그리고 도시적 맥락이다. 가로와 블록, 건축이 유기적으로 이어질 때 도시는 비로소 밀도를 품은 채 살아 숨 쉰다. ■의지가 있으면 된다 일본 마쿠하리 베이타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5층 이하 저층부 설계를 소규모 건축가에게 맡기는 구조는 단순한 역할 분담을 넘어 공존과 상생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이는 단지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선택이다. 마쿠하리 베이타운의 설계 지침처럼, 지자체나 대형 건설사가 의지를 갖고 접근한다면 우리 역시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모델이다. 특히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차원의 권고나 지자체의 조례 제정을 통해 소규모 건축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실행을 향한 결단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우리나라는 재개발이나 신도시를 지을 때 도시계획, 엔지니어링, 건축 영역이 분리되곤 한다. 이제는 초기 단계부터 건축가가 참여하는 통합적 설계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근래 서울시는 도시계획과 건축이 결합해 토지이용계획을 만들었다. 당연히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구단위계획은 누가 해야 한다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건축사가 하면 된다. 이제는 부산시도 이를 상시적으로 가져갈 때가 됐다.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처럼 따로 설계한 뒤 억지로 맞춰가는 방식으로는 획일성을 벗어날 수 없다. 마쿠하리 베이타운이 보여주듯 소규모 건축가의 참여를 제도화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저층부 설계를 지역 건축가에게 맡기거나 복수 설계자 참여를 의무화하는 방식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도시재생 구역에서는 소규모 프로젝트 공모를 상시화할 필요도 있다. 골목 단위의 설계 공모가 늘어날수록 건축 시장은 활력을 되찾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공이 먼저 이런 실험에 적극 나서야 한다. 부산시와 부산도시공사가 시범사업을 통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야 할 이유다. 이 문제는 단순한 정책 선택이 아니라 지역 생존의 문제다. 부산도 할 수 있다. 아니, 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아파트를 쌓는 도시에서 만드는 도시로 바꿔나가야 한다. 도시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방향을 정하는 일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이상윤의 세상톡톡] 법왜곡죄로 판사를 단죄하겠다면
“한 여자가 밤에 집에서 아기를 낳았다. 하지만 출혈이 심해 서둘러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심 깊은 남편은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대신 치유 기도를 올렸다. 여자는 결국 숨지고 말았다. 이 경우 남편은 감옥에 가야 하는가?” 독일의 유명 법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폴커 키츠는 대학 시절 법학 관련 수업을 듣던 첫해 중간고사에 나온 이 시험문제를 똑똑히 기억한다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그는 문제를 꼼꼼히 따져본 후 정해진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험에 나오는 판결 문제는 역시나 어렵다는 명제를 재확인한 그는 원고와 피고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고 판단했다. 종교의 자유를 우선한다면 신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으나 구급차만 불렀어도 아내가 살 수도 있었기에 방조죄가 성립할 것도 같았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유죄일 수도 무죄일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답을 적고 유무죄의 두 경우 모두 근거와 주장을 들어 답안을 제출했다. 교수는 그의 답안이 유무죄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며 점수를 깎았다. 화가 난 키츠는 교수를 찾아가 평소 세상 일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고 강조해온 교수가 왜 그러시느냐고 따졌다.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법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던 기존 가치관을 흔들었다. “이 사건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법철학자와 판사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가? 법철학자는 와인을 마시며 사건에 대해 얼마든지 사색할 수 있지만 판사는 그럴 수 없다. 판결로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 판사의 일이다. 이번 시험문제는 당신에게 판사로서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한 것이지 법철학을 물은 게 아니었다.” 1970년대 독일에서 일어난 해당 사건의 판결은 국내 정서와는 사뭇 다르게 최종적으로는 헌법재판소가 종교의 자유에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 남편이 헌법 소원을 제기하기까지 법원이 내린 결론은 남편의 방조죄 유죄였다. 다소 길게 독일 법학자의 회고를 늘어놓은 이유는 법원이 내리는 판결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과 그럼에도 판결을 내려야 할 수밖에 없는 판사의 고뇌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굳이 이유를 하나 더 든다면 최근 시행에 들어간 법왜곡죄를 들여다보는 프리즘도 필요했다고 할 것이다. 지난달부터 시행에 들어간 법왜곡죄의 핵심은 형법 제123조에 규정돼 있다. 해당 조항은 법관과 검사 또는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특정인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들 목적으로 고의로 법을 왜곡하거나 조작된 사실관계를 적용하는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자격정지에 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법왜곡죄 신설을 추진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찬성하는 측은 법 적용자의 자의적 법 적용을 막기 위해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이들은 판사의 경우 견제받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권력으로서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가능성에 노출돼 있어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폴커 키츠의 회고담에서 보듯이 형사사건에 있어 유무죄를 가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판사는 법철학자와는 달리 어떻게든 유무죄의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는 판사에게 ‘자유심증주의’라는 권한을 형사소송법에 부여해 놓고 있다. 자유심증주의는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증거의 가치판단과 사실 인정을 전문적인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도록 하는 것이다. 법원이 곧잘 내리는 새로운 시각의 판결은 주로 자유심증주의의 산물이다. 법왜곡죄는 이 같은 자유심증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모순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법왜곡죄는 지난달 시행에 들어갔고 대법원장을 1호 대상자로 한 고발이 접수됐다. 법률이 소급 적용되진 않으리라 보지만 법왜곡죄 조항이 더 일찍 생겼다면 어떤 식으로든 법적 결론이 나야 했을 것이다. 사색만 하는 법철학자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해당 사건의 판사는 법왜곡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혹시라도 미래에 새로운 계기로 법왜곡죄가 거꾸로 적용된다면 이번엔 해당 판사가 대상이 되는 무한루프에 빠지지나 않을까. 아니 하급심 결과가 상급심에서 뒤집어지는 경우에만도 법왜곡죄 적용이 가능할 수 있다. 일부 국가는 자유심증주의를 도입하지 않는다. 판사의 자유로운 판단보다 증거 유무에 따른 기계적 판결을 우선시해서다. 우리도 법왜곡죄를 도입한 마당이라면 자유심증주의는 포기해야 맞다. 새로운 시각의 판결을 이끌었던 자유심증주의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게 사회적 합의라면 그래야 한다. 혹시 아는가. 사회적 합의가 기계적 판결에 무게를 둔다면 AI가 판결하는 시대를 더 앞당길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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