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산대 AI 통번역 안경… 지역 대학 혁신 시도 주목한다
부산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다음 세대를 이끌 청년들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된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양성된 인재들이 부산을 떠나는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4차 산업시대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과 관련한 부산의 산업 기반은 무척 허약하다. 지역 대학들이 혁신을 주도하고, 그 성과물로 지역 산업을 고도화시키는 것은 물론 일자리도 대거 만들어내는 선순환이 절실하다. 이런 의미에서 부산대가 국내 대학 최초로 AI 통번역 안경을 시범 도입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부산이 4차 산업시대를 주도하는 도시로 거듭나려면 대학들의 이런 과감한 시도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 부산대는 AI 기술을 교육·연구 전반에 실증 도입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달부터 교수진과 주요 부서에 AI 통번역 안경 20대를 배치해 시범 운영한다. 국내 업체가 개발한 이 안경은 착용자의 시야에 실시간 자막을 띄워 외국어를 바로 번역해 보여주는 웨어러블 기기다.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 등 20여 개 언어를 지원한다. 강의나 회의, 세미나, 국제교류 현장 등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AI 등 4차 산업시대를 맞아 혁신의 물결에 적극 뛰어들겠다는 부산대의 강한 의지로 읽힌다. 마침 정부도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대전환에 착수했다. 지역 대학들에겐 절호의 기회다. 더욱 적극적인 혁신 추진과 기술 개발을 기대한다. 이미 지역 대학에서는 AI와 블록체인을 결합해 미래 기술을 확보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두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지역 연구·개발(R&D) 센터인 부산대 블록체인 플랫폼 연구센터는 최근 양자컴퓨터 환경에서도 안전하게 작동하는 새로운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하는 성과를 거뒀다. 동의대 인공지능 그랜드 ICT연구센터는 AI와 블록체인, 데이터 기술을 융합해 산업 현장에 전할 혁신 기술을 연구 중이다. 부산에 이런 센터들이 더 많아지고 정부와 부산시의 다양한 지원도 더 늘어나야 한다. 특히 지역의 대학과 기업들은 내년부터 본격화될 AI 시대로의 대전환에 대비해 대대적인 인프라 구축을 준비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AI 분야에 10조 1000억 원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피지컬 AI 지역거점을 광역별로 조성하고, 대규모 R&D·실증 추진을 통해 AI 기반 지역 혁신을 촉진할 계획이다. 거점 국립대를 지·산·학·연 협력의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부산은 이 기회에 낙후된 제조업 위주 산업 기반을 고도화할 혁신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기술 혁신이 지역에서 일어나면 미래형 일자리도 대거 창출된다. 결국 지역 인재 유출을 막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해법은 지역 대학 등의 혁신 의지에 달렸다. 정부와 부산시가 지역 대학 R&D 혁신에 대한 한층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길 바란다.
[사설] 정년 65세 연장 논의 부작용 최소화할 사회적 숙의 필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65세 정년 연장을 연내 입법하라며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양대 노총은 “정년 연장은 시대적 과제이자 국민적 요구”라며 올해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65세)과 법정 정년(60세) 사이의 5년 공백으로 고령층이 무연금 상태에 놓이는 현실을 해소해야 한다는 논리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정년 연장 입법을 국정과제에 포함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정년 연장은 단순한 연령 조정이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와 세대 간 균형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다. 사회적 합의와 제도 설계 없이 정치권과 노동계의 압박만으로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노동계의 ‘연금 공백’ 우려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평균수명은 늘고 연금 수급 시기는 늦어지면서 고령층의 생계 불안은 현실이 됐다. 하지만 정년 연장은 노동시장 구조, 기업 경쟁력, 세대 간 고용 균형 등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임금피크제나 직무급제 등 보완책 없이 정년만 늘리면 부담은 기업과 청년층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고령 근로자 1명 증가 시 청년 고용이 최대 1.5명 줄었다고 분석했다. 결국 청년층의 일자리 기회는 줄고, 세대 갈등은 더 깊어질 우려가 있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물론이고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또한 국민연금 재정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정년 연장 논의를 미루자는 것은 아니다. 급속한 고령화와 연금 수급 연령 상향은 새로운 사회적 해법을 요구한다. 연금 수급 공백을 해소하려면 일정한 고령자 고용 보장이 필요하지만, 법정 정년 연장만이 유일한 해답은 아니다. 점진적 재고용제 도입, 임금피크제 보완, 산업별 맞춤형 고용연장 모델 등 다양한 대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핵심은 사회적 숙의다. 노동계의 권리, 경영계의 지속 가능성, 청년층의 기회, 국가 재정의 안정성이 모두 고려돼야 한다. 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가 지난 7개월간 각계와 논의를 이어왔지만, 그 결과가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다고 보긴 어렵다. 제대로 된 숙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년 연장은 국민 모두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과제다. 핀란드가 수차례 노사정 합의를 통해 고령사회 해법을 찾아낸 것처럼, 우리도 대립이 아닌 숙의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정년을 늘리는 대신 임금 체계를 합리화하거나, 청년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병행하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는 연내 입법보다 부작용 최소화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성급한 입법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완성도와 사회적 신뢰다. OECD 다수 국가는 정년을 높이되 고용 유지 책임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근로 형태를 다양화하고 있다. 우리 역시 노사정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장기적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숙의 없는 속도전은 갈등이나 혼란을 부를 뿐이다.
[사설] 부산 강서 분산에너지 특구 지정 신산업 유치 호기로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소비(지산지소)하는 개념의 새로운 에너지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하는 정부 에너지 정책에 마침내 본격 시동이 걸렸다. 정부가 4일 분산에너지 특화지역(분산특구)을 최종 확정하면서다. 5월 최종 후보지에 오른 7곳 가운데 부산 강서를 비롯해 경기 의왕, 전남(전역), 제주(전역) 등 4곳이 분산특구로 지정된 것이다. 이들 4곳은 최종 후보지 발표 당시부터 ‘신산업 활성화 유형’으로 분류됐던 곳이어서 정부가 잡아놓은 새 에너지 정책의 확고한 방향성을 엿보게 한다. 단, 동남권으로서는 미포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분산특구 지정을 준비했던 울산이 결정 보류지가 된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에 지정된 부산의 분산특구는 에코델타시티를 비롯한 강서권에 면적만 1500만 평을 훌쩍 넘는 규모다. 부산시는 분산특구 지정 사업에 참여하면서 해당 지역에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하는 소위 ‘ESS팜’을 조성해 전기요금에 민감한 신산업을 유치하는 방안을 목표로 삼았다. ESS팜 조성을 통해 분산특구 내 저장이 가능한 전력량은 4만 2000가구의 하루 사용량 수준이다. 이에 따라 전기요금이 차등화하면 전력 소비가 많은 항만부터 AI 관련 데이터센터 분야 등에서 신산업 위주의 기업 유치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ESS 이외에도 에너지관리시스템과 AI 기반 기능형 전력망(스마트 그리드) 구축도 병행될 예정이다. 분산특구 지정이 가지는 이 같은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우선 분산특구 내 기업들이 한전 등을 통하지 않고 직접 전력을 거래함으로써 중개비용 등 부대비용을 줄이고 실질적인 요금 인하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단순히 전기요금만 절감해서는 기업 유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법인세 감면이나 투자세액 공제 등 인센티브 제공도 병행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정부 차원의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에너지를 기반으로 새로운 산업이 클러스터를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 임대료 인하 조치나 각종 인프라 구축 등도 서둘러야 함은 물론이다. 지산지소를 추구하는 정부의 새로운 에너지 생태계 구축은 분산특구 지정으로 이제 막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을 아우르는 보편적 새 에너지 생태계 구축이 아니라 일부 지역을 토대로 하는 시범사업적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진정한 지산지소의 완성은 아직도 논의만 거듭하면서 실시 여부가 오리무중인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반값 전기료) 적용이 현실화한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이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AI시대에 하루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진다고 역설한 바 있다. 지역 신산업 활성화도 반값 전기료 적용 같은 보편적 인프라 조성이 하루 늦어지면 한 세대가 뒤처질 수 있다는 절박함이 더 필요하다.
난공불락 요새 금고
한국예탁결제원은 1974년 한국증권거래소 자회사 한국증권대체결제 주식회사로 설립됐다가 1994년 증권예탁원이라는 특수법인으로 전환한 뒤 2009년 현재의 명칭으로 확정됐다. 주식회사들이 장부상으로만 주식을 관리하며 사고 팔 수 있도록 주식 실물을 맡아두는 업무를 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이 없다면 주식 거래자들은 주식 거래 때마다 주주명부 명의 개서를 위해 일일이 실물 주식을 들고 뛰어다녀야 한다.이 기관이 금을 보유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다. 한국거래소가 금 현물시장(KRX 금시장)을 그해 3월 개장하면서 거래 대상이 되는 골드바가 예탁결제원에 처음으로 입고됐다. 처음 입고된 분량은 순도 99.99% 1kg들이 골드바 17개. 당시엔 KRX 금시장이 활성화할 경우 하루 평균 최대 7000개의 골드바가 거래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7000개에 이르는 골드바를 일일이 인출해서 들고 다니며 거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주식의 경우처럼 예탁결제원에 금 실물을 맡겨두고 장부상 거래를 하도록 한 것이 예탁결제원 보관 금의 시초였던 것이다.예탁결제원이 이처럼 금을 보관할 수 있었던 것은 경기도 일산에 있는 예탁결제원 건물 지하의 금고 덕분이다. 금 보관 이전에는 이 금고에 100조 원이 넘는 가치의 주식과 채권 등 실물 유가증권이 보관돼 있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고 설비 기준을 충족한 국내 첫 번째 금고인 이 금고는 규모와 자동화 설비 기준으로는 스위스 증권예탁기관의 금고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 당시 33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입해 만들어진 이 금고는 205평 가량의 넓이에 아파트 3층 높이 정도의 내부 공간이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께가 1m를 넘는 특수문을 비롯해 미세 진동감지기 등 각종 특수장비로 중무장된 이 금고를 두고 예탁결제원은 ‘난공불락의 요새’라 불렀다.이 난공불락의 요새가 최근 금값이 치솟으며 KRX 금시장의 한 달 거래 규모가 4조 원에 육박하자 금 보관량 폭증으로 미어터지기 직전이라는 소식이다. 예탁결제원은 금 보관시설을 서울에 새로 만들려다 부산지역 여론이 악화하자 갈피를 못잡고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예탁결제원은 본사 부산 이전 11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왜 ‘서울 바라기’를 비판하는 지역 여론이 들끓는지를 돌아보고 슬기롭게 새 공간 확보 방안을 찾길 바란다.이상윤 논설위원 nurumi@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편집국에서] 설령 '오천피 시대'가 된다고 해도
#1. 얼마 전 만난 한 기업인은 행복한 고민을 얘기했다. 그는 한 은행에서 투자를 받아 생산 캐파를 늘리게 됐다고 자랑했다. 투자 권유는 은행이 먼저 했고, 은행 담당자가 수시로 찾아와 준비 사항을 꼼곰히 체크하고 조언을 한다고 했다. 투자가 성공하면 기업공개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2.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 지인은 고민 끝에 대출을 받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주가가 뛰는 걸 보고 여러 달 여윳돈으로 실전 투자를 연습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투자금을 늘리기로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중소기업 직장인에게 생활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를 이용해 저렴한 금리로 돈을 마련했단다. 최근 통계나 발표를 보면 이런 사례가 예외적 경우는 아닌 것 같다. 중소기업 대출은 올해 하반기에 빠르게 늘고 있다. 5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675조 8371억 원에 달했다. 8월에 전달보다 3조 2763억 원, 9월엔 2조 1254억 원이 늘더니 지난달에는 4조 7494 억 원 늘어났다. 올 들어 최대폭이다. 은행들의 기업대출 연체율도 덩달아 최근 1.3%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2010년 3분기 이후 최대 수준이다. 증시 주변에서는 ‘빚투 열풍’ 우려가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 5일 기준 88조 2708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맡겨놓은 자금이다. 석달 전과 비교하면 21조 2628억 원가량 늘어났다. 이 시기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47조 8564억 원으로 전달에 비해 21조 8647억 원 줄었다. 예금을 찾아 주식 시장에 뛰어든 셈이다. 대통령실에서 공공연히 ‘머니 무브’를 강조할 정도로 이재명 정부 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부동산시장, 정확히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뛰면서 생산 부문으로 돈이 흘러들도록 유도해 경제를 부양시키겠다는 거다. 대출부터 바싹 죘다. 정부는 출범 후 서울과 경기 12개 지역까지 ‘삼중 규제’ 지역으로 지정한 ‘10·15 대책’을 비롯한 부동산 대책을 세 차례 내놨다. 대통령실은 공급 대책도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금융권도 적극 보조를 맞추고 있다. 앞서 언급한 중소기업 대출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생산적·포용 금융 확대에 발맞춰 5대 금융지주들이 투자 계획을 일제히 내놨다. 전체 투자 금액은 5년간 500조 원이 넘는다. 이 돈은 국민성장펀드, 모험자본 공급, 민간펀드 결성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은행들이 ‘이자 놀이’가 가능하던 부동산 시장을 자발적으로 떠나지는 않았을 터이다. 더구나 산업 부문에 전대미문의 막대한 투자를 감행해야 하는 리스크까지 져야 하는 일이다. 부동산 투자가 막히니 개인들도 문턱 낮은 증시로 향한다. 자산이 부족한 젊은 층은 대출까지 내고 있다. 코스피도 얼마 전까지 ‘꿈의 지수’라던 ‘사천피’를 넘나들며 ‘오천피’도 가시권에 둘 정도로 강한 상승장을 연출하는 상황이다. 금융·부동산 시장을 압박해 인위적 ‘머니 무브’를 유도하는 정부 정책은 일단 유효해 보인다. 문제는 통제 불가능한 대내외 여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실물 경제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한국 경제는 올해 잘해야 1%대 초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8% 안팎에 머물고 향후 5년간 비슷한 수준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부문에 자금을 공급하는 걸 무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기 침체기에 기업 외형을 키우는 투자가 옳으냐 하는 점은 의문이 따른다. 오히려 산업 구조를 개혁하고 기업 내재 가치를 튼튼히 해야 할 시기다. 은행들도 실탄이 넉넉해도 투자처를 찾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잘나가는 일부 분야에 투자가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거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도 크다. 치솟는 주가에 혹해 대출까지 받아 주식에 뛰어드는 투자자에도 우려가 커진다. 단기적으로 주가가 경기와 따로 움직이는 사례는 빈번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흐름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미국 증시를 이끌던 AI 분야에는 거품론이 제기되고, 글로벌 증시에 흘러드는 유동성이 과도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등 해외에서 전해지는 경고도 적지 않다. 한국 경제와 증시엔 통화 불안정성까지 내재돼 있다. 뒤늦게 주식시장에 올라탄 개인 투자자들이 두고두고 눈물을 흘릴 가능성도 있다. 견조한 성장이 예상되는 건실한 기업이 과도한 투자에 부실을 키우지나 않을지 걱정도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부 정책의 목표가 오천피 달성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정부를 필두로 각 경제 주체가 한국 경제를 상승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 ‘한국 경제에 무엇이 중요한가’ 질문을 다시 던질 때다. 김영한 경제부장 kim01@busan.com
[김진성의 타임 아웃] 손흥민의 유럽 복귀설
미국메이저리그사커(MLS) 로스앤젤레스(LA)FC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의 유럽 복귀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LAFC를 단숨에 MLS컵 우승 후보로 올려 놓은 손흥민이 왜? 어떻게? 유럽에서 뛴다는 건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MLS에는 ‘베컴룰’이란 게 있습니다. 2007년 7월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LA갤럭시에 입단한 ‘잉글랜드 축구 영웅’ 데이비드 베컴은 이듬해 시즌을 마친 뒤 소속팀에 AC밀란(이탈리아)의 단기 임대를 요구했습니다. 그는 MLS 휴식기이자 팀 훈련 기간인 1~3월 사이에 유럽에서 뛰길 원했던 것입니다. AC밀란이 베컴에게 관심을 보였고, LA갤럭시는 베컴의 단기 임대를 허용했습니다. 이후에도 베컴은 한 차례 추가 임대로 AC밀란에서 뛰기도 했습니다. 손흥민도 베컴 사례처럼 MLS 휴식기 동안 유럽에서 뛸 수 있습니다. LAFC 이적 당시 계약서상에 유럽 임대 허용을 포함시킨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손흥민의 유럽 복귀설이 거론되고 있는 것입니다. 실현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손흥민의 유럽 복귀설은 유럽의 리그 운영 특수성과도 연결됩니다. 한국의 K리그를 비롯해 일본 J리그 등 동아시아권과 미국 등은 봄에서 시작해 늦가을에 리그를 마치는 ‘춘추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은 ‘추춘제’입니다. 가을에 리그를 개막해 이듬해 봄에 종료합니다. 정확히는 8월에 시작해 이듬해 5월에 끝납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한겨울에 축구를 하는 것입니다. 시즌 타이틀도 해를 넘기기 때문에 ‘2025-2026시즌’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이상해 보이지만 유럽인들에겐 자연스럽습니다. 문화적인 차이 때문입니다. 한국에선 모든 학교가 3월에 개학해 한 해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영국 등 유럽국가들은 9월에 학기를 시작합니다. 유럽인들 삶에 있어서는 한 해의 시작이 9월인 셈입니다. 그렇다고 맹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경기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유럽 리그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주로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2~3주간의 겨울 휴식기를 갖습니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등 일부 리그에서는 FA컵 경기를 치러야 해서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휴가도 한몫합니다. 한국의 여름 휴가는 길어야 1주일 정도지만, 유럽의 여름 휴가는 2주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진행됩니다. 여름 휴가 때 축구 경기를 한다면 관중수가 줄어들겠지요. 당연히 수익구조에 차질이 생길 것입니다. 유럽이라고 모두 겨울에 축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한겨울 그라운드가 얼어 붙어 한국처럼 봄~가을에 리그를 진행합니다.
[오션 뷰] 대전환의 시대, 기술혁신으로 파고를 넘자
2003년, 필자가 청년 공직자로서 부산해수청에 발령받아 마주한 바다는 거칠고 역동적이었다. 그해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장기간 이어진 화물연대 파업이 있었고, 9월엔 최악의 태풍으로 불린 ‘매미’가 부산항을 할퀴고 지나가 크레인 붕괴로 인해 일부 부두 기능이 멈춰 서게 되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부산항의 성장세가 꺾일 것’이라며 우려했지만, 부산항과 이곳에 삶의 터전을 둔 노동자들은 하나가 되어 이를 극복했다. 그리고 바로 그해 말, 부산항은 우리 항만 역사상 최초로 연간 1000만TEU의 물동량을 처리하며 기적 같은 회복력으로 세계 항만물류업계를 놀라게 했다. 2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부산으로 돌아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 산업화와 고도 성장기의 최선봉에 섰던 이 도시는 이제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수식어가 나붙고, 청년층의 이탈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성장 동력이 되어야 할 대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며, 미래를 이끌 스타트업 기업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게 현실이다. 부산항 '디지털화' '탈탄소화' 혁신 속도 지능형 물류 플랫폼·친환경 벙커링 인프라 선택 아닌 생존의 문제… 결단과 실행을 새로운 성장 동력 원천은 '바다와 청년' 지난 30여 년간 해양 정책에 몸담고 살아온 탓일까? 필자는 부산이 다시 도약할 기회를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산항은 지난 십수 년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컨테이너를 처리하고 있는 항만 중 하나이다. 개항 이래 한 세기 반 동안 대한민국 수출입 관문으로서 국가 경제를 뒷받침해 왔고, 글로벌 환적항 가운데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지키며 수십 년간 견조한 성장세를 묵묵히 이어가고 있는 항만을 가진 도시가 바로 이곳 부산이다. 하지만 지역 항만물류 산업이 국가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견주어 보면, 아직 고삐를 늦추긴 이르다. 로테르담항이 창출하는 경제효과는 네덜란드 전체 GDP의 약 7%를 점유하고, 싱가포르항의 경우는 6%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부산항의 경우는 0.2%대에 그치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은행 부산본부가 1월 발표한 ‘부산 지역 항만물류 산업의 현황 및 발전 방안’에 나와 있다. 싱가포르와 로테르담이 항만을 통하여 각각 동아시아 해운의 중심과 유럽의 산업 허브로 자리 잡았듯이 부산 또한 항만을 성장축으로 하여 다가오는 대전환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으로 대표되는 세계 산업사에서 유례없는 대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 전환은 ‘기술혁신’을 촉매제로 하여 이루어지고 가속화되며 이 기술혁신은 청년 과학자의 열정과 틀을 깨는 사고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청년들이 기술혁신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은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구축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서 만들어지고 무르익는다. 이러한 규모 있는 R&D 투자는 정부와 공공기관, 대학과 대기업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지속될 수 있다. 또 하나 세계사적 패러다임 전환인 친환경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싱가포르는 이미 수소·암모니아 벙커링 허브 조성을 국가 전략으로 삼았다. 로테르담항도 액화 암모니아의 STS(Ship-To-Ship) 벙커링 실증 단계에 들어서는 등 두 항만은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도 세계 항만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두 선진 항만이 대전환기를 맞이하여 기민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감탄스럽다. 부산항도 ‘디지털화(Digitalization)’와 ‘탈탄소화(Decarbonization)’를 양대 축으로 하는 항만의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기반의 지능형 물류 플랫폼과 스마트 자동화 터미널 구축, 그리고 친환경 에너지 벙커링 인프라 조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지금 우리의 결단과 실행이 부산항과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물류·조선·에너지 등 바다에 기반하고, 청년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기술혁신에 의한 ‘디지털과 탈탄소화’라는 부산항의 패러다임 전환은 궁극적으로 항만과 지역의 지속 성장을 이뤄낼 것이다. 앞으로 그려질 지역 미래상(未來像)의 중심에는 ‘청년’과 ‘바다’가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지난 150여 년간 부산항은 대한민국 경제의 관문이었다. 이제는 대전환의 파고를 넘는 범선이 되어야 한다. ‘기술혁신’이라는 돛을 펼쳐 디지털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대양을 항해 출항해야 한다. 항만을 통한 도시의 성장은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한 산업의 도약을 이루어 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대전환의 파고를 헤치고 지역과 국가의 새로운 100년을 이끄는 성장 동력의 원천은 결국 바다와 청년으로부터 시작되는 기술혁신에 있다.
[공감]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철학자이자 문학을 사랑한 작가였다. 그는 1964년 문학에 등급을 매기고 제도화하는 것에 반대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했고,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의 출처로 알려진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을 읽었다. 웹툰, 드라마 등 동명 제목으로 유명세를 치른 이 말은 마치 타인에 대한 혐오 발언처럼 사용되고 있으나, 이는 애초 사르트르가 전하려는 뜻과 다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사르트르의 유년 시절부터 살펴야 한다. 사르트르는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외가에서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작은 키에 야윈 몸피로, 허약한 데다 눈은 사시였다.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놀림 받던 사르트르의 도피처는 외할아버지의 서재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계기가 된 〈말〉은 사르트르가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자서전으로, 그가 처음 외할아버지의 서재에 들어섰을 때 감흥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서전에서 그는 외할아버지 서재에 가득한 책을 ‘영원한 존재’라고 표현했다. 외할아버지의 서재는 그를 구원했고, 외할아버지의 기대는 그를 속박했다. 사르트르는 훗날 어린 시절 자신의 말과 행동이 결국 외할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한 연극이었음을 고백했다. 부르주아 계급의 교양을 중시했던 외할아버지의 기대에 맞추어 어휘와 어투까지 연출했던 손주의 유년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어린 사르트르에게 외할아버지의 시선과 평가는 너무 가혹했다.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은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창도 문도 없는 그곳에 안내된 세 명의 인물은 서로를 지켜보며 끊임없이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타인의 시선과 평판에 갇힌 이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세 인물 중 한 명인 가르생은 비명처럼 외친다.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두 명뿐인 타인의 시선과 평판을 감당하는 것만으로 지옥 같은 상황이 되는 까닭은, 그곳이 숨거나 피할 데가 없는 닫힌 공간이기 때문이다. ‘닫힌 방’에는 무엇보다 책이 없었다. 이를 두고 〈닫힌 방〉의 번역자는 각주에서 “지옥에는 책이 없다. 책이란 타자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타인이 지옥이 아니라, 눈앞에 전시된 타인의 삶을 볼 수밖에 없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닫힌 세계가 바로 지옥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숨을 곳이 있다면 우리는 견딜 수 있다. 사르트르에게 책이 그러했듯, 누구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을 피난처가 필요하다. 업무 용도로만 사용하던 휴대전화 문자 앱이 어느 날부터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저장된 사람들의 일상이 전시되었고, 타인의 전시는 곧 나를 향한 시선이 되었다. 액자에 담겨 전시된 타인의 일상을 관람하며, 전시하는 이는 스스로 타인의 시선 속에 자신을 가두고, 전시를 보는 이는 타인의 삶을 엿보다 자기 시선에 갇힌다. 레바논 속담에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라는 말이 있다. ‘타인 없는 나’야말로 지옥이라고 말한 〈단순한 기쁨〉의 저자 피에르 신부의 말처럼, 행복이 결국 타인과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행복 관련 연구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내용이다. 다만, 사르트르가 말했듯,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우리 자신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은 지옥이라며 접촉을 회피하기도 하지만, 결국 접속된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며 우리는 지옥에 살고 있지 않은지. 타인의 칭찬과 비판, 동경과 비하, 선망과 멸시, 호의와 적의, 그 어느 시선과 평가에도 동요하지 않는 삶, 타인의 인정에 안도하기보다 다정한 무관심을 벗 삼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그렇게 자유 의지를 지닌 이들이 모인 공동체라면, 타인은 지옥이 될 수 없다.
[기고] 선원 조세체계, 실질적 조세형평 실현해야
요즘 내항 선원들 사이에서 ‘같은 바다, 다른 세금’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현재 외항 선원은 월 500만 원까지 근로소득이 비과세되지만, 내항 선원은 월 20만 원의 승선 수당만 비과세되어 무려 25배의 차이가 난다. 바다 위에서, 선박에서, 같은 위험을 감수하며 동종 동질의 일을 하지만 세금은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제59조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세법은 법률주의와 평등원칙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그런데 내항 선원은 단지 ‘항로의 구분’이라는 행정적 기준에 따라 외항 선원과 다른 세제 적용을 받고 있다. 이는 조세 법률주의가 보장해야 할 실질적 형평을 훼손하는 것이다. 외항 선원에 대한 비과세 확대는 과거 수출입 중심 해운정책의 산물로,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외항에 세제 혜택을 집중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내항 해운은 더 이상 부차적인 산업이 아니라 전국 480여 유인 도서를 연결하며 국민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국가 해상 교통체계의 마지막 연결 고리이자 생명선이다. 내항 선박들은 ‘비상 대비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비상사태 시 전략물자 수송의 핵심 자원으로 동원된다. 이는 국가 해상물류와 안보를 지탱하는 최후의 인프라라는 뜻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공공성과 국가의존도가 높은 산업이 세제 형평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은 정책의 역진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항 해운 현장의 현실은 심각하다. 내항 선원 중 60세 이상이 60%를 넘어섰고, 젊은 인력은 불공정한 처우와 낮은 실수령액 탓에 바다를 떠나고 있다. 결국 내항 해운은 노후 선박과 고령 인력에 의존하며, 이 악순환의 근저에는 바로 ‘같은 바다 다른 세금’이라는 제도적 차별이 있다. 내항 선원 비과세 한도를 월 300만 원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헌법적 형평 회복의 문제이며, 산업정책 측면에서는 인력 유입과 세대 교체를 유도하는 구조개선 장치다. 공정한 조세제도 없이는 해운산업의 지속 가능성도, 국가 해양력의 기반도 유지되기 어렵다. 여야는 이미 제21대 대선 당시 ‘선원 소득 비과세 범위 확대’를 공약했고,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 국회 청문회에서 그 약속을 재확인했다. 물론 조세 당국에서 볼 때는 외항선원의 경우 국외 소득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고 내항 선원의 경우 국내 근로에 해당하기 때문에 선원이라는 명목만으로는 내항 선원에게 동일한 비과세 혜택을 주기가 어려운 면도 있다. 그러나 선원 근로에 대한 이해와 실질적 조세 형평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동종 동질의 근로에 대해서 비과세 혜택도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은 균형과 형평을 지향할 의무가 있다. 내항 선원 비과세 확대는 공정을 바로 세우는 법의 책무이며, 내항의 바다를 다시 움직이게 할 정의의 출발점이다. 공정한 세제 개선을 통해 대한민국의 내항 해운이 다시 숨을 쉬기를 바란다.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젠슨 황 선물의 딜레마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의 통 큰 선물이 화제다. 그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 회의 기간에 방한해 지난달 31일 한국에 26만 장의 블랙웰(Blackwell) GPU(그래픽 처리 장치) 공급 계획을 밝혔다. 향후 5년간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SK그룹·현대차그룹·네이버클라우드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젠슨 황의 GPU 선물은 한국이 글로벌 ‘AI 제조 기지’로 도약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반면, 이 선물이 남긴 과제도 만만찮다. ■ 젠슨 황, 왜 한국에 GPU 공세? 젠슨 황이 블랙웰을 집중 공급하는 이유는 한국이 소프트웨어·제조·AI 3가지 역량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젠슨 황은 AI 기술 발전을 4단계로 분류했다. 음성 인식, 의료 영상 분석이 가능한 1단계 ‘인식형 AI’, 새로운 콘텐츠와 디자인 창작이 가능한 2단계 ‘생성형 AI’, 자율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고 목표 지향적인 행동을 취하는 3단계 ‘에이젠틱 AI’, 로봇이나 자율주행차 등 현실 세계에서 인간처럼 시각과 언어를 이해하고 물리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피지컬 AI’로 나뉜다. 예를 들어 기존 자동화 로봇이 기계적으로 정해진 절차만 따랐다면, 피지컬 AI 로봇은 센서, AI 모델, 제어 기술을 결합해 실시간으로 최적의 조치를 실행할 수 있다. 젠슨 황은 반도체와 제조업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을 피지컬 AI를 처음 실현할 최적의 무대로 점찍은 것이다. 엔비디아가 한국에 공급하기로 한 GPU 26만 장은 주로 피지컬 AI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SK·현대차그룹이 ‘AI 팩토리’ 구축을 통해 반도체·자동차 생산을 효율화하고 로봇 등을 개발하겠다는 게 대표적이다. AI 팩토리는 칩·시스템·소프트웨어·모델 구조를 모두 고려하는 설비로, 넓은 개념의 인공지능 인프라를 말한다. 현대차는 자율주행·로보틱스 등 직접 산업 응용을 준비 중이다. 네이버는 공공과 기업을 대상으로 한 AI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AI 허브 클라우드’를 구축할 계획이다. 아직 초기 단계인 피지컬 AI는 제조업과 밀접하게 맞닿아 한국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 제조업 중심인 한국은 피지컬 AI에 필요한 데이터를 쌓을 수 있는 산업 현장이 많다. 엔비디아의 GPU 26만 장 공급도 이러한 한국의 제조 경험과 역량에 주목한 결과라는 것이다. 엔비디아가 한국을 ‘피지컬 AI 테스트베드’로 삼았다는 분석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내년도 예산안 설명을 위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AI 3대 강국 목표 달성을 위해 총 10조 1000억 원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가장 집중 투자할 AI 분야로 피지컬 AI를 들었다. 반도체·조선·가전 등 제조업에 피지컬 AI가 활용되면 생산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 이공계 인재의 ‘탈한국’ 조짐 젠슨 황이 GPU 26만 장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한국은 AI 산업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실탄을 챙겼다는 평가다. ‘AI 3대 강국’으로의 도약도 가능하다는 장밋빛 기대감도 나온다. 하지만 국내 제조업의 ‘AI 대전환’을 이끌 인재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이 자본력을 앞세워 전 세계 AI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상황이다. AI 인재 확보가 시급한 상황에서 이공계 인재의 ‘한국 탈출’이 더 가팔라질 조짐을 보인다. 국내 이공계 인력 10명 중 4명은 외국으로 떠날 의향이 있거나 실제로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30대는 10명 중 7명이 해외 이직을 원해 과학기술 인재 유출에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은행이 지난 3일 발표한 ‘이공계 인재 해외 유출 결정요인과 정책적 대응 방향’ 보고서를 보면, 석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국내 대학·연구소·기업 등에서 근무하는 이공계 인력 1916명 중 42.9%가 “향후 3년 내 외국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공계 인력이 해외 이직을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연봉 등 금전적 요인’(66.7%)이었다. ‘연구생태계·네트워크’(61.1%)와 ‘경력 기회 보장’(48.8%)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 원인은 열악한 처우와 부족한 일자리다. 실제로 이공계 연봉의 국내외 격차가 컸다. 해외 이공계 전문가는 13년차에 가장 많은 36만 6000달러를 받는데, 국내 이공계 전문가는 19년차에 가서야 최고점(12만 7000달러)을 찍었다. 한국의 이공계 인재 유출은 이미 진행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해외로 떠난 이공계 인력은 총 34만 명이다. 이 중 석박사급 엘리트 인력만 9만 6000명에 달한다. 특히 AI 인재 품귀 현상이 지속되면 26만 장의 GPU를 손에 쥘 기업들도 비상에 걸릴 수밖에 없다. 고교 최상위권 인재 상당수가 의료 분야로 진학하고, 이공계 인재들 역시 더 나은 연구 환경과 경력 기회를 찾아 해외로 진출하는 게 현실이다. 젠슨 황의 선물을 받은 대한민국이 처한 딜레마다. ■ 인재 확보·독자적 기술 개발을 AI는 인재 자체가 핵심 자원이라고 한다. 미국의 구글, 메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의 AI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엄청난 연봉을 준다. 중국도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을 중심으로 인재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다. 우리도 AI 분야에 최고 인재가 모일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인재 유출을 막지 못한다면 ‘AI 3강 도약’은 신기루에 그칠 수 있다. 국내 과학자들의 처우와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금전적 보상 체계 혁신, 연구개발 투자 실효성 강화, 기술창업 기반 확충, 혁신 생태계 확장 등을 위해 범국가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이공계 인재들이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재도전이 용이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미 해외로 떠난 인재들이 복귀할 수 있도록 파격적인 복귀 프로그램 마련도 필요하다. GPU 26만 장은 한국의 제조업 혁신을 가속할 귀한 선물이지만, 우리의 AI 기술 주권과 경쟁력을 약화할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엔비디아는 칩 공급만 하지 않고 디지털 공장을 구현하는 플랫폼 ‘옴니버스’, 피지컬 AI 기술 ‘코스모스’ 등을 한국 기업들에 적용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가 한국 기업의 제조 공정 데이터와 표준 등을 장악하고 지배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이 엔비디아의 생태계에 묶이는 기술적 족쇄가 될 수 있다는 해외 IT업계의 경고도 지나치기 힘들다. 결국, 우리가 AI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해 글로벌 기준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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