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메가시티 vs 행정통합, 실익과 실현 가능성 잘 따져야
부산·울산·경남이 한데 뭉쳐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망국적인 수도권 일극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재명 정부가 광역 행정통합을 추진하기 전부터 제기돼 온 필요성이다. 그 필요성에 의해 2020년 전후로 추진됐던 게 부울경 메가시티 조성 계획이었으나 광역 지자체장 교체 이후 2022년 백지화하고 말았다. 그랬던 메가시티가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되살아나고 있다. 부울경 여권 후보들의 입을 통해서다. 반면 야권에서는 정부 주도 추진에 반발하며 미뤘던 행정통합안을 들고 나왔다. 야권이 특별법까지 발의하고 나섰기에 지방선거 기간 내도록 여야의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부울경 시도지사 후보들은 14일 ‘해양수도 메가시티’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함께 밝혔다. 해양수도라는 명칭이 새로 붙었지만 대체적인 얼개는 2020년 전후 추진된 메가시티 조성 계획과 유사하다는 평가다. 여권이 밀어붙인 행정통합이 부울경에서 무산된 뒤 3개 지자체장만 합의하면 당장 가동할 수 있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성사 속도를 최우선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규모 인센티브를 걸고 특별법에 의해 추진된 행정통합에 비해 정부의 재정 지원은 약할 수밖에 없다. 3개 지자체가 합의해야 사업 진행이 가능한 점 등 강제력에도 한계가 뚜렷해 옥상옥만 만들게 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같은 날 ‘경남·부산행정통합 특별법’을 발의하고 나섰다. 자치법규의 범위를 확대하고 매년 8조 원 상당의 자주재원을 확보하는 방안과 가덕신공항 관리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현재 75%와 25%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각각 60%와 40%로 조정하는 재정 분권안 등 정부 권한의 대폭 이양을 요구하는 내용도 담겨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지나치게 파격적인 권한 이양을 요구하는 조항이 줄줄이 명시돼 실제 법제화 가능성이 낮은 게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 주도 행정통합 거부로 난처해진 두 지자체장의 선거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다. 여야가 같은 날 동시에 들고 나온 메가시티와 행정통합 방안은 실익과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반비례 관계를 보여 준다. 실익이 크면 실현 가능성이 낮거나 실현 가능성이 크면 실익이 적다고 할 수 있다. 여야의 방안 모두 선거용 전략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금세 뒤따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내놓은 방안은 동남권에 큰 의미를 지닌다. 이번처럼 본격적으로 여야 모두 동남권을 어떻게든 한데 뭉치려는 시도를 한 것은 처음이어서다. 모처럼 선거 앞에 의미 있는 지역 이슈가 던져진 마당이라면 선거 기간 동안 실익과 실현 가능성을 제대로 따져 동남권 미래 전략을 현실화해야 마땅할 것이다.
[사설] 부산 자영업 몰락, 지역 경제 살릴 산업생태계 혁신을
빈 점포들이 늘어나고 있다. 역세권에도 세입자를 구하는 임대 매물이 넘쳐난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 등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폭증한 데 따른 것이다.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부산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4년 동안 지역 자영업자 8만 명이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도시인 부산은 그동안 자영업 도시로 일컬어질 만큼 소상공인들이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실핏줄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수도권 일극 체제 때문에 부산이 급격한 인구 감소에 시달리는 데다 기반 산업인 전통 제조업 등 지역 경제도 장기 부진에 시달리면서 자영업자들이 연쇄 폐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부산 자영업자는 지난 2021년 37만 명에서 지난해 28만 9000명으로 4년 만에 8만 명 넘게 감소했다. 특히 지난 2023년 이후에는 해마다 약 3만 명가량씩 줄었다. 부산 지역 경제의 버팀목인 자영업 붕괴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 것이다. 특히 직원 없이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영세 자영업자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2021년 27만 6000명에서 지난해 20만 4000명으로 큰 감소 폭을 보인 것이다. 매출 감소를 감당할 자본 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영세 자영업자들이 먼저 무너졌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진다. 골목상권의 위축은 부산 경제 체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더 큰 문제는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상당수도 악전고투 중이라는 것이다. 거리마다 자영업자들의 아우성이 넘쳐난다. 자영업자들은 경기 악화로 쌓인 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출에 의존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간신히 하루를 버티는 게 부산 자영업자들의 현주소다. 더욱이 원도심인 중구와 외곽 지역인 금정구, 기장군, 서구 소상공인들은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자영업자 1인당 평균 대출 규모는 3억 4000만 원에 달한다. 현재 상황은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정부와 부산시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급하다. 자영업 폐업 증가는 지역 고용은 물론 해당 가족과 종사자의 삶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자영업 침체가 고용 감소, 소비 위축, 지역 체감경기 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외식업은 배달 플랫폼과 프랜차이즈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자영업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공공 배달앱과 지역화폐 사용을 활성화해 자영업자들의 자생력을 높이는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 부산 서비스업의 기반을 이루는 자영업자가 흔들리면 이 여파는 관광 등 다른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자영업 생태계를 살릴 수 있도록 지역 산업생태계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자영업 여건 마련을 위한 총력 대응을 촉구한다.
[사설] 인재 육성과 일자리 확대… 부울경이 함께 가야 할 길
부산시가 행정권역에 앞서 노동시장의 경계를 먼저 허물자는 취지로 ‘초광역권 일자리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부울경을 넘나드는 통근자에게 교통비를 지원하고, 거주지와 근무지가 다를 경우 지역화폐 연계 혜택을 줘 역내 출퇴근이 수월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지역 인력 채용 때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제기됐다. 51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고용 지원책을 넘어 동남권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재편하려는 구조적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부산과 울산, 경남이 인재 육성과 일자리의 공유로 공동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식 행정통합보다 실속이 있다 할 것이다. 동남권이 ‘둥지와 먹이’를 공유하는 보다 확장된 경제권이 될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례는 현장에서 구체화하고 있다. 경남 사천에서는 경상국립대 캠퍼스 조성을 계기로 항공우주 인재 양성이 본격화되고 있다. 울산은 20m 바닷속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해 실증하는 사업과 조선업의 AI(인공지능) 전환을 통한 산업 구조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경남 김해는 가덕도신공항, 부산항신항, 철도 등 트라이포트 인프라를 배경으로 물류와 항공, 컨벤션 기능을 결합한 국제 비즈니스 거점으로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제각각 경쟁력이 확보된 지역 산업에 기반하면서 디지털·AI 등 미래 첨단산업의 전환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해양수도 부산은 북극항로 개척 등을 통한 해양경제권의 중추를 지향하고 있다. 여기에 항공우주, 제조, 에너지, 조선해양, 물류로 약동하는 경남과 울산과의 화학적 결합으로 동반 성장하자는 것이 초광역 경제동맹의 비전이다. 그 목표를 실현하려면 구인·구직 불일치를 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인력 양성과 일자리 창출이 맞물리면서 정주 여건이 뒷받침되어야만 자생적 경제권 형성이 가능해진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행정의 칸막이를 없애는 것이다. 이익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출발점이다. 각 지자체가 각자의 성과에 급급하면서 투자와 사업이 중복·누락되거나 기업·대학 연계가 헛도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사천의 하늘, 울산의 바다, 김해의 관문 그리고 부산의 항만이 따로 움직여서는 미래는 없다. 전국이 하루 생활권인데 행정 경계에 매몰되면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구조의 탈피는 요원하다. 노동권역의 경계를 허물고 인력과 기회를 공유하자는 ‘초광역권 일자리 프로젝트’는 반전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동남권의 인재가 유출되지 않고 역내 기업에서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정주 여건, 교통망, 육아 환경 개선 등도 병행돼야 한다. 부울경은 수도권 밖에서 성장 산업과 인재 육성 기반을 유일하게 갖춘 지역이다. 부울경의 미래는 산업 벨트 형성에 달려 있다. 지역이 이익 공동체로 변모해야 살아남는다는 절박감이 중요하다.
전통주 배달 시대
‘여름을 넘긴다’는 뜻의 과하주는 발효주와 증류주를 섞어 보존성을 높인 한국식 포트와인이다. 지난 주말, 대저생태공원에서 열린 부산도시농업박람회에서 연잎과 초피나무 열매의 껍질을 넣어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과하주를 만났다. 또 영도 조내기고구마를 곁들인 탁주, 강서구 쌀로 빚은 막걸리 등 진화하는 부산의 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브루어리쏨을 비롯한 양조장 7곳은 지역 농산물을 재료로 개성 넘치는 미각을 뽐냈다. 집에 모셔 온 술병이 금세 바닥을 드러낸 것은 당연지사다. “이 귀한 술을 또 어디서…!” 감질이 났을 때 문득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산행기 취재를 위해 전국의 명산을 누비던 시절, 하산한 동네 식당에서 토산주를 반주로 들이켜는 호사를 누렸다. 본의 아니게 막걸리 기행을 했던 셈이다. 하지만 이내 전통주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지자체가 지역 명주로 자랑하는 막걸리(탁주)를 갖춰 놓은 곳은 드문 대신 외지의 거대 주류업체 제품 일색이었던 것. 현지 양조장을 찾아 까닭을 물으니, 사정이 딱했다. 노부부가 직접 술을 빚고, 영업하고, 배달까지 해도 가격과 유통에서 대기업 경쟁 상대가 안 된다는 하소연이 돌아왔다. 대형 마트에 밀려 고사하는 골목 상권과 판박이였다.하지만 팬덤은 힘이 세다. 수제 장인의 손맛을 음미하려는 애호가가 늘어나 전통주 구독 서비스가 등장한 것이다. ‘술담화’는 4만~5만 원의 구독료를 내면 입점한 2000종의 막걸리, 약주, 증류식 소주를 택배로 보내준다. 음식 페어링 요령과 양조장 스토리텔링 등 전통주 소믈리에의 안내는 덤이다. 단순 구매에 그치지 않고 ‘경험 소비’와 ‘취향 탐색’이 충성도를 높이는 구조다. 네이버 쇼핑 등 온라인 플랫폼과 연계한 ‘우리술한잔’도 마찬가지. 급기야 퀵 배송까지 등장했다. 배달의민족이 지난 연말 B마트를 통해 지역 소규모 양조장 술 배달을 시작했는데, 경쟁 배달 플랫폼인 쿠팡이츠까지 뛰어들었다. 낮에 주문을 넣으면 저녁에 집에서 ‘산 넘고 물 건너온’ 전통주를 음미할 수 있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과음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던 회식 문화가 쇠퇴하고 집술·혼술이 선호되는 세태다. 관계의 매개체였던 술이 개인 기호품적 성격이 짙어지는 과정으로도 읽힌다. 판로를 뚫지 못해 고전하던 전통주가 플랫폼과 취향의 흐름에 올라타고 집 앞에 성큼 다가왔다. K술의 르네상스를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데스크 칼럼] 늘 피가 모자라
얼마 전 ‘헌혈의 집’ 문을 두드렸다. 기자가 헌혈하기 위해 팔을 걷은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10년도 더 전 일이라 기억에서 가물가물했다. 기자가 헌혈에 나선 건 해군작전사령부 이현주 하사 취재 때문이다. 이 하사는 올해 2월 헌혈 100회 달성 기록으로 ‘헌혈 명예장’을 수상했다. 3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벌써 100번째 헌혈을 기록한 게 예사롭지 않았다. 기사를 쓰면서 나 스스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매년 동절기가 되면 혈액이 부족하다는 뉴스가 신문과 방송에서 나온다. 그런 뉴스를 접하고, 또 생산하는 언론사에 근무하면서 애써 헌혈을 외면해 왔던 게 사실이다. “헌혈이 가능한 만 69세까지 생명을 나누고 싶다”는 이 하사의 말은 기자에게 작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 스스로 팔을 걷어부치고 싶었고, 늦었지만 그 첫걸음을 뗐다. 혈액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어 대체할 물질도 없다. 오직 건강한 사람의 자발적인 헌혈만이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몸 밖으로 나온 혈액은 유효기간이 최대 35일로 짧다. 특히 혈소판의 유효기간은 단 5일에 그쳐 장기 보관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선 하루 평균 5000~7000명의 환자가 수혈을 필요로 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헌혈 참여율은 인구 대비 5%도 안 된다. 대한적십자사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헌혈 실인원이 126만 4525명인데, 이는 헌혈가능인구(16~69세) 대비 3.27%에 불과한 참여율이다. 보통 수혈은 대형 교통사고 등 중증 외상 응급환자에게 시급하나, 실제 통계를 보면 암 환자(약 40%)와 일반 수술 환자(약 30%)에게도 많이 쓰인다. 조산아와 미숙아를 살리는 데도 혈액은 필수적이다. 헌혈은 어쩌다 발생하는 사고에 대비하는 것을 넘어, 평범한 이웃들이 병원에서 온전히 치료받고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가장 필수적인 ‘의료 인프라’라 할 수 있다. 혈액은 겨울철에 특히 부족하다. 유행성 독감 등 호흡기 질환이 돌면서 헌혈 적격자가 크게 줄어드는 탓이다. 헌혈 인구의 불균형 문제도 크다. 과거 단체 헌혈 위주로 혈액 사업이 진행된 영향으로, 현재 헌혈자의 60~70%가 10·20대 학생과 군인·경찰·회사 등 단체에 집중돼 있다.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면 혈액 보유량이 뚝 떨어지는 현상이 매번 반복된다. 여기에 저출산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청년 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수혈이 더 필요한 고령층 인구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헌혈과 수혈의 ‘미스매치’가 가속화되는 것도 고령 사회가 직면한 문제다. 혈액의 적정 보유량은 5일분이라고 한다. 겨울철에는 ‘주의’ 단계인 3일분 미만으로 떨어지는 날들이 잦다. 하지만 겨울이 지난 지금도 적정 혈액 보유량을 채우는 날이 많지 않다는 게 혈액원 관계자의 얘기다. 겨울철뿐만 아니라 사계절 내내 피가 모자라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혈액 수급 최전선에 있는 실무자들은 한 팩의 피라도 더 구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지난 2월 부산혈액원에선 헌혈자에게 ‘두바이 쫀득 쿠키(두쫀쿠)’ 증정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지역 카페 사장님들도 핼액원을 돕고자 두쫀쿠 기부에 나섰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 덕분에 이벤트 기간 헌혈 인원이 평소보다 두 배가량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 혈액 부족은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사회적 과제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혈액 보유 현황판을 볼 수 있다. 매일 혈액 보유 현황이 업그레이드된다. 기사를 쓰는 14일도 적정 보유량인 5일에 못 미치는 것(3.6일)으로 나온다. 5일 이상의 안정적인 보유량을 확보할 있도록 적극적인 개인 헌혈 참여가 필요하다. 특히 30대 이상 중장년층의 참여가 절실하다. “한 번의 헌혈로 세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란 말이 있다. 전혈(적혈구·백혈구·혈장·혈소판 등 혈액의 전체 성분) 헌혈을 하면 혈장, 혈소판, 적혈구 등 혈액 제재로 분리돼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이렇게 보면 헌혈은 가장 ‘가성비’ 좋은 나눔 방식인 셈이다. 최근 헌혈 200회라는 대기록을 달성해 ‘명예대장’에 이름을 올린 김형찬 씨는 “습관이 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고귀한 실천이 헌혈”이라며 많은 이들의 동참을 당부하기도 했다. 만약 당신이 10~15분 정도만 시간을 내 팔을 걷어붙인다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2030 칼럼] 당신은 '월급' 말고 무엇을 벌고 있는가
모든 것에 가격표가 붙는 세상이라지만, 우리 삶에는 죽어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비매품(Not for Sale)’ 영역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의 논리가 도덕적 성역을 침범할 때 발생하는 가치의 훼손을 경고했다. 이 날카로운 통찰을 우리의 일터로 가져와 보자. 우리는 매일 노동력을 팔아 월급을 받는 시장 경제의 최전선에 서 있지만, 정작 직장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귀한 ‘보너스’는 우리가 회사와 체결한 연봉 계약서에는 적혀 있지 않다. 외국계 기업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홀로 모니터를 마주하는 나는, 역설적이게도 이 차가운 디지털 환경 안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의 가치를 더 절실히 체감한다. 흔히들 대학을 지성의 전당이라 부르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대학에서조차 가르쳐주지 않는 본질적인 것들은 모두 직장에서 동료들과 부대끼며 배운 것들이었다. 책장 속 이론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섞인 노하우, 그리고 타인의 성장을 진심으로 돕는 마음 말이다. 나 역시 새로운 팀원이 합류하면 대학 강의실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실무의 ‘결’과 조직의 문화를 요약해서 건네곤 한다. 정답을 맞히는 법은 대학에서 충분히 배웠겠지만, 직장에서는 누군가의 빈틈을 메워주고 함께 속도를 맞추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겪은 시행착오를 기꺼이 나누고, 그 과정에서 동료가 건네는 진심 어린 감사 인사는 내 연봉 고과를 올리는 수치보다 훨씬 더 묵직하게 가슴에 남는다. 이는 성과 지표로 환산되지 않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느끼는 효능감이자 시장이 결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영역이다. 이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좋은 동료를 만났다’는 식의 감성팔이가 아니다. 샌델은 모든 인간관계가 거래로 치환될 때 생기는 공동체의 붕괴를 경고했다. 현대의 직장은 비단 노동력을 파는 장소를 넘어, 타인과 연결되는 법을 배우는 마지막 ‘인간 학교’로 기능하고 있다. 동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서로 다른 부서임에도 새로운 기술이나 효율적인 일 문화를 나누며 뜨겁게 토론하는 순간들. 인센티브 몇 푼으로 유도할 수 없는 이 자발적인 유대감이야말로 시장의 논리가 침범해서는 안 될 삶의 품격이다. 더 나아가, 나는 우리가 지금 지겨워하는 이 ‘소속감’이 머지않은 미래에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AI가 업무를 자동화하고 1인 사업가들이 넘쳐나는 파편화한 세상이 오면, 타인과 부대끼며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경험 자체가 일종의 사치가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지금의 출근길과 지루한 회의 속에서 나눴던 농담 한마디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흩어지기 쉬운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조직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내는 경험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귀해질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화면 뒤에 숨어 일하는 재택러로서 고립의 위협을 늘 느낀다. 하지만 그렇기에 다른 팀 동료가 건네는 따뜻한 메시지 한 줄, 지식 공유 세션에서 느껴지는 동료애의 무게를 더 소중히 여긴다. 기성세대가 지켜온 끈끈한 조직 문화의 ‘정’과 우리 세대가 추구하는 ‘느슨하면서도 단단한 연대’가 만나는 지점. 그곳에 우리가 직장에서 벌어들여야 할 진짜 보너스가 있다. 기록은 전시될 때가 아니라 내면에 쌓일 때 역사가 되듯, 직장 생활의 가치 역시 통장 잔고가 아니라 내 영혼에 새겨진 관계의 깊이로 결정된다고 믿는다. 자본의 논리로 계산기를 두드려서는 결코 답이 나오지 않는 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화학 작용이야말로, 척박하고 냉혹한 경쟁 사회를 버티게 하는 진짜 연료인 셈이다. 이처럼 타인과 부대끼며 나의 모난 모서리가 둥글게 깎여 나가고, 동시에 누군가의 부족함을 나의 고유한 장점으로 채워주는 일련의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기능적인 직업인 너머의 성숙한 ‘어른’으로 완성되어 간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나다운 진정성을 잃지 않으려 분투하는 우리에게, 직장은 여전히 돈으로 살 수 없는 성장을 선물하는 고마운 공간이다. 이제 우리는 매달 찍히는 월급 통장의 숫자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세상이 당신의 가치를 직급과 연봉으로 매기려 들 때, “나는 이곳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배우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효능감이야말로 전시되지 않는 은밀한 자부심이 된다. 거대한 시장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당신은 오늘 하루 월급 말고 또 무엇을 벌었는가. 당신의 마음 한구석에 결코 가격표를 허락하지 않은 ‘동료의 이름’ 하나쯤은 품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시론] ‘배달’ 넘어 ‘관계’ 흐르는 돌봄 공동체 부산으로
“내가 나고 자란 이 동네에서, 마지막까지 이웃과 인사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 초고령사회 부산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는 소박하지만 절실한 바람이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3월 27일, 우리 사회의 돌봄 지형을 바꿀 ‘돌봄통합지원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전국 특·광역시 중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부산시는 그간 ‘부산형 통합돌봄’ 체계를 다지며 준비된 도시임을 자부해왔다. 8대 특화 서비스를 확충하고 소득 기준을 완화해 더 많은 시민이 혜택받도록 한 것은 행정적 관점에서는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예산과 인력 확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 역시 돌봄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건강한 진통으로 꼭 수용되길 기대한다. 하지만 법 시행이라는 물리적 지점을 넘어 우리가 마주한 진짜 숙제는 따로 있다. 지금 우리가 구축하고자 하는 시스템이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통한 돌봄’이라는 본질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현재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돌봄 사업은 ‘서비스 공급 체계의 양적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개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골라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바우처를 설계하고 제공 기관을 늘리는 방식이다. 물론 촘촘한 서비스망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서비스의 가짓수가 늘어나는 것에만 매몰될 경우, 돌봄 대상자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집안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박제’될 위험이 크다. 식사 배달과 병원 동행이 신체적 불편함은 덜어줄지언정, 그들의 고립된 삶 자체를 치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개인에게만 초점화된 서비스 제공 방식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지역사회로부터 더 소외시키는 상황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더욱 뼈아픈 지점은 우리 부산의 관계성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주민 간의 관계가 낮아지고 있다는 현상적 평가를 넘어, 어떻게 다시 관계의 온도를 높일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대담한 시도가 정책의 중심에 서야 한다. 돌봄은 단순히 전문가가 수혜자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며, 동시에 판매와 구매로 이어지는 상품으로도 이해해서도 안 된다. 살던 곳에서의 안전한 생활은 이웃과 동료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관계의 힘’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 돌봄, 의료, 교육, 주거 등 그동안 각기 다른 영역에서 진행되어 온 공동체 사업들을 이제는 하나의 커다란 돌봄 체계 안에서 결속시켜야 한다. 파편화된 사업들을 연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역사회 전체가 하나의 ‘돌봄 안전망’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고려해 볼만한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공간의 재구조화를 통한 관계의 복원’이다. 부산의 고질적인 현안인 빈집을 단순한 정비 대상이 아닌, 돌봄 안심 주택이자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마을 사랑방’으로 재창조해야 한다. 의료와 복지, 교육 서비스가 이 공간을 매개로 융합될 때 공간은 비로소 사람을 모으고 관계를 만드는 토양이 된다. 둘째, ‘협력적 거버넌스의 실질적 가동’이다. 민·관·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개입의 효과를 키워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 참여를 위한 활동 소득(참여 소득)과 같은 방식의 직접적인 지원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돌봄 공동체를 구축하는 부산만의 특화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돌봄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공동체에서 살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이다. 아직 본격적인 사업 초반인 지금 부산시는 행정적 기반 구축이라는 시작을 넘어, 현장의 고립된 목소리와 단절된 관계에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비스 종류를 늘리는 수치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서로를 돌보는 ‘관계망의 복원’에 모든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이웃과 안부를 나누며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도시. 그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진자 ‘부산형 통합돌봄’의 완성된 모습이자 지향점이다. 부산 사람이라는 건 살고 있는 곳이 부산이라는 것을 넘어, 부산에서 만들어진 관계망 속에서 지내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않을까? 온전한 부산형 통합돌봄을 기대해 본다.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노란 리본, 사라지지 않는 봄-세월호와 감각의 정치
2014년 4월 16일, 바다는 아이들을 삼켰다. ‘전원 구조.’ TV에서 반복적으로 송출된 그 말은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장면은 단순한 오보가 아니라, 무엇을 보이게 하고 무엇을 보이지 않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의 작동이었다. 자크 랑시에르에 따르면, ‘치안’은 ‘감각적인 것의 분할’을 통해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통치 활동, 사회적 몫을 분배할 때 발생하는 불평등을 확정하는 통치 과정이다. 이에 반해 ‘정치’는 치안이 만든 특정한 분할선에 의해 나누어지고 할당된 기존의 불평등한 질서, 지각 양식의 질서를 다시 나누고 할당하려는 행위이다. 세월호는 바로 폭력적으로 작동하는, ‘치안’이 확립해 놓은 감각적인 것의 분할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리고 예술은 그것을 재배치하고자 한다. 이때 예술은 다른 방식으로 개입한다. 그것은 설명하지 않고, 대신 감각을 되살린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들리게 하고, 어떤 고통이 말해질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홍성담의 ‘세월오월’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작품은 홍성담 개인의 작업이지만, 형식적으로는 1980년대 민중미술의 걸개그림 전통을 호출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표현을 넘어 사건을 ‘집단의 기억’으로 확장하는 장치다. 이 그림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읽히는 구조를 가지며, 사건의 인과와 권력의 작동을 직조하듯 드러낸다. 그의 세월호 연작 중 ‘친구와 마지막 셀카’(2016)는 세월호에서 숨져간 아이들이 부모와 형제자매, 친구들과 마지막 문자를 보내거나 통화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과 권력을 탓하지 않는다.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사랑하는 이들과 기억을 공유하는 행위를 할 뿐이다. 그림은 그 지워진 목소리를 ‘다시 들리게 하는’ 장치가 된다. 이 지점에서 BTS의 ‘봄날’을 함께 떠올린다. 이 노래는 세월호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더 깊이 도달한다. “보고 싶다. 이렇게 말하니까 더 보고 싶다” 이 문장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다. 부재를 현재로 끌어오는 감각의 언어다. ‘봄날’의 시간은 도착하지 않는다. 눈꽃은 떨어지고,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세월호 이후의 시간이다. 홍성담의 그림이 사건을 ‘집단적 기억’으로 붙잡아 두었다면, ‘봄날’은 그것을 ‘감각의 지속’으로 남긴다. 하나는 보이게 하고, 다른 하나는 사라지지 않게 한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끝까지 기억할 것인가. 세월호는 끝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감각’이다. 노란 리본은 지워지지 않는 감각의 매듭이며, 보이지 않게 하려는 힘에 대한 조용하고도 강한 저항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기고] 금정산의 아틀라스
피지컬 AI(인공지능)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던진 충격은 과거 산업혁명 때와 결이 다르다. 산업혁명은 기계가 인간의 근육을 대체했다. 기계는 더 빠르고 강했지만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었다. AI는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고 결정한다.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수준을 넘어 노동으로 소득을 얻는 사회의 기본 구조 자체를 흔든다. 이것이 ‘아틀라스 충격’의 본질이다. 물론 피지컬 AI 기반 휴머노이드로봇 아틀라스에게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찾는 일은 가망이 없다. 특별하게 바위들로 설계되어 가득 채워진 듯한 돌무더기의 그 한가운데 자리한 금정산의 금샘은 어떤가. 불끈 솟구친 바위덩어리가 영하의 칼바람 속에서 끄떡도 하지 않고 억겁의 시간을 잘 견디고 있다. 허공을 어깨로 턱하니 떠받쳐 치켜든 신화의 아틀라스가 바로 이곳에 그 모습을 나투어 보이신 것임에랴. 그래서 금샘은 작지만 바로 신(神)이다. 예전엔 신은 ᄀᆞᆷ 곰 금 등으로 표기되곤 했던 경우를 보면 더 그렇다. 금정산의 이름, 범어사의 이름을 생성해낸다. 금샘이 없는 금정산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일찌감치 아틀라스가 이렇게 여기에 와 계셨음을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 채로 살아왔다. 이제야 알았으니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이다. 허공을 받쳐든 채로 기꺼이 임무를 완수해 내고 있는 장면에서 바야흐로 피지컬 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강림하신 것을 감지한다. 그렇다면 이는 국립공원 금정산이 어떻게 설계, 운영되어야 하는가의 총론을 고스란히 밝혀준 길잡이로 오신 것임을. 시작부터 애당초 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일하도록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이렇게 또렷하고 명확하게 말해 주고 있음을 그래도 모르겠단 말인가. 물론 이 일이 단지 몇 줄의 문장으로 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얼마나 야심차게 그리고 분투하면서 해야 할 일인가는 몇 마디 말로 될 일도 아닐 것이다. 기본적으로 준비하고 또 갖춰야 할 설비나 건조물 등등 과제가 산적, 산적 또 산적해 있다. 진행의 시작점에서부터 잘 준비해서 차근차근 해 나가야 할 것은 두 말이 필요 없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언제나 시작이 있었기에 과정이 있고 그리고 진전과 변화가 있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너무 망설이고 지체하면 날씨도 변화무쌍하고 산속의 길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듯 그렇게 길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결단코 피해갈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자 금정산 금샘의 엄숙한 명령이다. 이러한 요구를 과감하게 반영해서 국립공원 금정산이 그야말로 AI 기반 피지컬 아틀라스들의 일자리로 새롭게 나야 한다는 말이다. 새롭고도 획기적인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인력들, 즉 두뇌들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산학협력의 시스템을 구축해서 우수한 두뇌들이 모여 연구하고 토론하고 그리고 설계하도록 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일 수 있다. 우리가 최초이기에 준비단계에서부터 세밀하고 정교하게 설계해서 현장을 바꿔 나간다면 세계는 곧 이곳에 관심을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제 출발선에 선 금정산이야 말로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힘차게 끌고 갈 수 있는 역동적 현장이다. 금정산은 도심에 자리해 있고 강과 바다로 마주해 있다. 많은 인재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뛰어난 교육기관이 금정산 자락에 포진해 있다. 반도체와 전력 산업 등이 이미 잘 준비된 곳이다. 주저할 게 없다. 세계의 국립공원을 우리 방식대로 운영체계나 방식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새롭고도 야심찬 출발점에서 우리의 시도가 곧 성공임을 믿어도 괜찮을 것 같다. 금정산의 아틀라스는 부산의 근대화 여명과 함께했다. 부마항쟁의 우렁찬 젊은 피가 새 역사의 길을 향한 대장정을 시작했을 그때의 시작점에서 웅혼한 기백과 기세를 나눠주었던 그 성스러움의 장소다. 우리가 못 한다면 세계의 그 어떤 나라도 할 수 없는 시대가 열려가고 있음을 이곳에서 깨닫게 된다.
[기고] 에너지 위기, ‘슬기로운 전기생활’로 일상 속 해답을 찾다
“중동 아닌 한국서 전쟁?” 중동 전쟁으로 인해 한국이 주요국 중 가장 큰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미국 연구기관의 분석을 빗댄 말이다. 분석보고서에서는 에너지와 산업용 원자재 등 우리나라의 자원 대부분을 특히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 배경으로 지목되었다. 세계 지도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찾아보면 부산에서 약 7000㎞ 이상 떨어져 있어 지리적으로 매우 먼 지역이지만, 우리 시민의 일상과 기업 활동에 직결되어 경제적으로는 가까운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급 안정과 비용 부담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2일 자원안보위기 ‘경계’ 단계를 발령하며 국가적 대응을 강화하는 가운데, 공공기관 차량 2부제와 같은 에너지 절약 정책을 통해 수요 관리에 나서고 있다. 이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동시에 위기 대응에 필요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조치라 할 수 있다. 다만 에너지 위기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에너지 절약 정책을 준수하는 것과 더불어, 국민과 기업이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식이 함께 마련되어야 그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올해 3월 한국전력(한전)이 새롭게 오픈한 에너지 절약 플랫폼 ‘슬기로운 전기생활’은 유용한 보완 수단이 될 수 있다. ‘슬기로운 전기생활’은 한전, 한국에너지공단, 전력거래소 등 7개 기관에 분산된 39종의 에너지 절약 정보와 다양한 지원제도를 한 곳에 모아 제공함으로써, 국민 누구나 합리적으로 전기를 사용하여 전기요금 절감 혜택을 체감하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산에 동참할 수 있도록 구축되었다. 그간 에너지 서비스 정보 확인을 위해 각 기관 홈페이지를 일일이 방문해야 했던 번거로움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플랫폼 내 “내 혜택 찾기” 기능에 가구원 수 등 조건만 간단히 입력하면, 놓치고 있던 에너지 복지 혜택을 한눈에 확인하여 신청 페이지로 바로 연결해 준다. 또한, ‘전기요금 시뮬레이션’ 기능을 활용하면 전력 사용 시간대를 이전했을 때의 요금 절감 효과를 미리 계산해 볼 수 있다. 나아가 태양광 발전 등으로 전력공급이 많은 시기에 자발적으로 전기를 더 사용하면 인센티브를 받는 ‘플러스 DR' 제도와 예상 수익 정보 역시 상세하게 안내한다. 에너지 절약의 측면에서 차량 5부제와 같은 방식이 사회 전체의 이해와 양보를 기반으로 하는 정책적 접근이라면, 슬기로운 전기생활은 개인과 기업의 자발적 선택과 참여를 기반으로 한 지속 가능한 접근으로써, 두 방식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할 때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시민과 기업이 일상 속에서 정부의 절약 정책을 성실히 이행하는 동시에, 전기 사용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다양한 제도에 참여하려는 노력이 병행될 때 보다 안정적인 에너지 체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현재의 에너지 위기 극복은 결코 거창한 구호나 획기적인 신기술만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가장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는 다름 아닌 ‘절약을 향한 시민의 자발적 참여’다. 시민 모두가 ‘슬기로운 전기생활’ 접속을 통해 에너지 절약의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는 경험을 하실 수 있길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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