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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을 겪을 권리

성장통을 겪을 권리

놀이터 설계자는 두 가지 위험 요인을 구분한다. 근원적 위협인 해저드(hazard)는 용납할 수 없다. 반면 실수하면 다칠 수도 있는 리스크(risk)를 회피하거나 극복함으로써 쾌감을 느끼게 만든다. 위험을 통제할 때 얻는 성취가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원리다. 기성세대가 ‘무료 인프라’로 누렸던 마을 공터, 골목, 뒷산이 그러했다.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정글짐이 사라진다. 무서워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 칸 더 위로 뻗던 고사리손, 꼭짓점을 향하는 친구의 엉덩이를 밀어 올리던 응원의 목소리, 정상에 올라 환호하던 얼굴이 사라지고 있다. 대신 넘어져도 탈이 나지 않을 나지막한 기구와 푹신한 우레탄 바닥이 들어선다. ‘우리 아이가 놀다 떨어질까 봐 불안하다’는 학부모 민원은 힘이 세다. 학교는 소송 부담을 덜 수 있으니 좋은 핑계를 얻는다. 운동장이 안전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은 더 강한 자극이 있는 게임과 SNS로 쏠린다.최근 확산하는 ‘무승부 운동회’는 우열 가리기로 열패감을 느끼는 것을 피하려는 취지다.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승패 대신 과정만 남기면 노력과 성취를 잇는 고리는 끊긴다. 부산시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초등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수면과 놀이·운동은 줄고 인터넷·게임 시간은 늘어난다. 우울감 호소까지 증가세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학교에서 벌어지는 ‘안전의 역설’을 다룬 신간 〈조용한 붕괴〉는 아이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고 불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울 기회를 어른들이 빼앗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른바 ‘헬리콥터 맘’ 또는 ‘제설기 부모’는 자녀의 앞길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미리 없앤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사소한 감기 바이러스도 치명적인 것처럼, 실패 가능성을 차단당한 아이들이 더 큰 위험에 놓인다. 작은 실수, 친구와의 갈등, 사소한 상처, 감당할 수준의 위험과 같은 심리적 항원에 맞서는 경험이 없으면 마음의 힘, 즉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 없다. 아무 문제 없이 평범해 보이는 대다수가 내면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경고다.재미와 도전이 가득해야 할 놀이터와 학교 운동장이 밋밋해지는 것은 어른들의 ‘안전’ 욕심 탓이다. 넘어져야 일어서는 법을 깨치고, 상처받은 경험이 있어야 타인의 상처에 공감할 수 있다. 방황하고, 실수하고, 부딪히면서 내면이 성숙한다. 성장통은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누려야 할 특권이다. 아이들의 소중한 권리가 도둑맞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

부산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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