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화·영상도시 완성할 국립 영상박물관 물 건너가나
해양수도와 함께 부산의 또 다른 미래상으로 꼽히는 영화·영상도시 완성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 사라질 판이 됐다. 4000억 원대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될 관련 국립 시설의 부산 유치가 성사 일보 직전 무산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시설 하나의 유치 무산 위기가 뼈아픈 것은 그것이 영화·영상도시 구축의 마지막 퍼즐이어서만이 아니다. 그 속에는 정부 부처의 복지부동과 지역 균형발전 철학 외면에다 소극적 대처로 일관한 부산시의 안일함까지 총제적인 난맥상이 고스란히 집합돼 있어서다. 이미 벌어진 사태를 꼼꼼히 복기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런 사태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부산일보〉 취재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부터 4000억 원대의 예산을 투입해 국립 영상박물관과 영상자료원을 부산에 유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이 방안에 대해서는 문체부가 지난해 유인촌 당시 장관이 부산 북항에 해당 시설 건립을 직접 선언한 이후 부처 차원에서 사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기까지 한 바 있다. 부산시도 이에 따라 해당 시설 건립에 적합한 부지 선정을 위한 용역을 진행하기도 했다. 당초 계획대로였다면 올해 안에 부산 내 건립 부지까지 확정됐을 이 사안은 정권이 바뀌면서 기획재정부가 8월 예산 심사에서 관련 시설 과다를 이유로 예산을 500억 원으로 삭감하면서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다. 기재부가 관련 예산을 대거 삭감한 것은 이재명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철학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다. 이 과정에서 이전 정부부터 영화 관련 기관 부산 집적화를 추진해 온 문체부는 재심 요청도 하지 않고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권 교체기에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의 전형적인 모양새다. 예산 삭감 이후 해당 시설 건립이 노후 건물 리모델링 방식으로 전환되자 이번에는 부산시가 소극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해당 시설이 들어설 2000평대에 이르는 노후 건물을 지역 내에서 찾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사업 추진을 사실상 손놓아 버린 것이다. 이러는 사이 경기도 등이 되레 해당 시설 유치를 제안하고 나서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창하게 부산국제영화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노무현 정권부터 이어져 온 혁신도시 조성 계획에 따라 이미 부산으로 이전해 와 자리를 잡고 있는 기존 영화·영상 인프라와 관련 기관들을 꼽아보면 영화·영상도시가 부산의 미래상인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이전 정권이 관련 기관을 부산에 집적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교통 접근성 등을 감안해 부산 북항에 국립 영상박물관과 영상자료원을 설립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합리적이다. 이 같은 필연과 당연, 합리성을 토대로 한 정당한 업무조차 정부와 부산시가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무책임으로 일관한다면 어느 국민이 공직사회를 믿고 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사설] 민주당 사법개혁안,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일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사법부의 인사·행정 등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외부 인사가 주축이 된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해 그 기능을 대신케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초안을 내놓았다. 사법개혁안이 발표되자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무력화될 수 있는 데다 외풍이 개입할 우려도 크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위헌 소지가 있고, 사법부를 민주당의 성향에 맞춰 길들이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의구심마저 자아낸다.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을 저해할 여지도 다분하다. 여당은 사법개혁안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입법 과정에서 법원 내부 의견 등을 듣고 반영하는 등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민주당 ‘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5일 국회에서 입법공청회를 열고 사법개혁안을 공식 발표했다. 공청회에서 여당은 법원행정처 폐지 및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퇴직 대법관의 대법원 처리 사건 수임을 5년간 제한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법관 정직 처분의 최대 기간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법관징계위원회도 외부 인사가 과반을 차지하도록 했다. 이번 개혁안은 지난달 27일 TF 구성 이후 약 한 달 만에 구체화됐다. 속전속결로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기저엔 이재명 대통령 재판 재개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어떤 경우에도 법원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개혁안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을 촉발한 것은 사법행정위원회 신설이다. 개혁안에 따르면 13명으로 구성되는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가운데 최대 9명에서 최소 7명 정도가 비법관으로 구성된다. 이 경우엔 판사 인사가 집권 세력에 휘둘릴 수 있다.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국민의힘은 개혁의 탈을 쓴 사법부 장악 의도에 불과하다는 격한 반응이다. 이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은 “법원이 마음에 안 든다고 법원을 바꿔 장악하겠다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이번 개혁안은 자칫 정치권이 사법부 인사 통제권을 갖겠다는 뜻으로 비춰질 개연성이 크다. 나름의 명분이 있더라도 국민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꼼수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여당 구상이 헌법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헌법은 제101조 제1항에서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라고, 제104조 제3항에서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라고 각각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청래 여당 대표는 사법개혁을 연내 처리하겠다고 한다. 위헌 논란까지 불거진 사법개혁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개혁안은 조희대 대법원장 및 계엄 사건을 다루는 판사들에겐 모종의 경고로 비칠 수도 있다. 사법부 독립성은 공정한 재판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일방적이고 위헌적인 개혁은 국민 저항을 초래할 뿐이다.
[사설] 수영만 요트경기장 재개발 첫 삽, 글로벌 마리나 거듭나야
명실상부한 해양수도를 꿈꾸는 부산의 대표적 해양레저 시설로 꼽혀온 수영만 요트경기장을 재개발하는 사업이 마침내 첫 삽을 뜨게 됐다. 2008년 민간투자사업 제안 접수 이후 무려 17년이 넘는 기간 동안 표류해 온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점에서 일단은 환영할 만하다. 1986년 아시안게임 요트경기장으로 조성된 이후 노후화가 심각해지면서 2008년 당시에도 재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난무할 정도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해당 사업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복잡하다. 아직도 논란의 불씨가 남아 있어서다. 논란 처리 여부에 따라 이 공간은 갈등의 공간이 될 수도, 글로벌 마리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재개발 사업은 2008년 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현 아이파크마리나)이 부산시에 민간투자사업 제안서를 내면서 공식화했다. 이후 2014년 1600억 원 상당의 실시협약이 맺어지면서 사업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재개발지에 들어설 호텔을 둘러싼 경관과 일조권 문제를 비롯해 학교정화구역 논란이 불거지자 부산시는 2016년 사업자 지정을 취소했다. 결국 장기간 행정소송에 돌입한 끝에 2018년 사업자가 부산시에 승소했으나 사업은 끝없이 지연됐다. 이후 아이파크마리나와 부산시가 호텔을 짓지 않는 것 등으로 합의하고 논의를 진행한 끝에 1월 변경 실시협약을 맺으며 사업이 재가동됐다. 지난 24일 재개발 사업 현장에서 착공식이 열리면서 해당 사업은 공식화했으나 착공식 당일 민원이 불거지면서 또 다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민원 제기 주체는 인근 주민이 아니라 요트경기장에서 요트 임대사업을 하고 있는 영세 사업자들이다. 사업자들은 해당 재개발 사업 시공사가 당초 7개월 예정이었던 해상공사 기간을 20개월로 늘려잡는 바람에 요트 계류장 장기간 폐쇄로 생계가 위협받는다고 아우성이다. 시는 재개발 사업이 또 다시 차질을 빚지나 않을지 전전긍긍하며 중재에 나서고 있으나 시가 서둘러 착공식부터 열 것이 아니라 사업자 설득 같은 사전 정지작업을 먼저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간 표류하던 수영만 요트경기장 재개발 사업의 착공은 영세 요트 임대사업자들의 생계 위협 논란 이외에도 아직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더 남아 있다. 민간이 1600억 원 상당의 돈을 들여 재개발을 하는 대신 30년 동안 6000억 원에 이르는 공유수면 점사용료를 면제받는 것이 합당한가를 둘러싼 특혜 논란이 대표적이다. 시민들이 부산을 대표하는 해양레저 산업 인프라의 재개발 본격화에 마냥 박수만 보내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 해당 사업이 실질적인 글로벌 마리나 공간 마련으로 이어지려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고민도 뒤따라야 한다.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민간 수익의 공익 재투자 방안 등에 대한 고민은 그 시작이 될 터이다.
입시 ‘폰티켓’
삼성그룹은 몇 년 전부터 주요 사업장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회의를 하거나 이동할 때 스마트폰을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계열사엔 아예 회의실 앞에 스마트폰 보관대를 만들었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임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폰티켓’(스마트폰+에티켓)을 강조한다. 식사하기 전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끝나면 돌려받는 식이다.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도 확실한 스마트폰 사용 원칙이 있다. 일할 때는 스마트폰 알림을 모두 꺼두고 문자메시지도 확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회의 때 스마트폰을 소지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회의 도중 스마트폰을 보며 집중하지 않는 관행이 효율성과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의사 결정까지 지연시킨다. 그래서 스마트폰 사용을 단속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대한전문건설협회는 최근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위 내 종합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작업 중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건설 현장은 중장비 사용이 많고, 활동이 제한되는 공간이 많아 스마트폰 사용이 중대산업재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주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인근 해상에서 대형 여객선이 무인도를 들이받고 좌초된 사고도 항해사가 스마트폰을 보다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국회의원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어떤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스마트폰으로 보좌관 명의로 주식거래를 하다 언론사의 카메라에 찍혔다. 그는 소속 정당에서 탈당해야 했고,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 또 다른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딸 결혼식 축의금 명단을 확인하다가 낭패를 봤다. 스마트폰을 언제 사용해야 할지 언제 자제해야 할지 뻔한데도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다.최근 부산의 한 대학에서는 음악 관련학과 수시입학 실기시험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교수가 심사 도중 스마트폰을 보다가 수험생과 학부모로부터 국민신문고에 신고당하는 일이 있었다.인생이 걸린 대입 실기시험에서 심사위원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 측은 “심사에 필요한 악보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해명했다. 악보를 인쇄물로 준비할 경우, 종이 넘기는 소리가 연주와 심사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파일 형태로 저장한 악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수험생과 학부모가 이를 수긍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보다 세심한 폰티켓이 필요할 것 같다.박석호 선임기자 psh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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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식의 일필일침] 잔도를 불태우지 못한 정당에 미래는 없다
참 세월이 빠르다. 폭풍이 몰아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년이 다 되었다. 12·3 비상계엄 얘기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지만 그날의 충격과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국격은 흔들렸고 국민은 깊은 절망을 겪었다. 그럼에도 책임을 짊어져야 할 국민의힘은 지금도 침묵과 회피에 머물러 있다. 부끄러움도 성찰도 없다. 오히려 강경 투쟁으로 지지층을 묶겠다는 낡은 방식에 기대고 있다.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 보수가 맞닥뜨린 현실의 민낯이다. 이런 상황에서 곱씹어볼 이야기가 하나 있다. 중국 전국시대, 중원을 평정하고 초나라를 세운 항우는 자신의 맞수였던 유방을 쓰촨 일대의 한왕으로 보냈다. 사실상 변방으로 내쫓은 셈이다. 체념한 듯 길을 떠난 유방은 도착하자마자 책사 장량의 조언에 따라 자신이 지나온 잔도(棧道)를 과감히 불태웠다. 절벽에 걸린 아슬아슬한 통로인 잔도를 스스로 끊어버린 것이다. 퇴로를 닫은 그는 천하의 인심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마침내 5년 만에 초를 무너뜨리고 한 제국을 세웠다. 버림이 있었기에 새로운 길이 열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국힘은 어떤가. 끊어내야 할 잔도를 오히려 붙잡고, 버려야 할 과거를 움켜쥔 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모순에 민심도 외면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 대선에서 40% 가까이 얻었던 지지는 장동혁 대표 체제 들어 거의 반 토막으로 추락했다. 당 지도부는 ‘중도는 없다’는 구호 아래 강경 일변도의 전략을 고집하지만 현실의 선거 지형은 중도가 당락을 가르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특히 부산을 포함한 도심권에서는 그 흐름이 더 뚜렷하다. 그럼에도 지도부는 마치 과거 방식만 되풀이하면 미래도 따라올 것이라 믿는 듯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의 최근 발언은 단순한 쓴소리를 넘어선다. 그는 “계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며 “상대가 밉다고 해서 우리의 잘못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보수가 잃어버린 윤리 기준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나경원 의원도 “계엄과 탄핵으로 정권을 내준 것만으로도 백 번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수도권과 부산의 초선 의원들까지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지방선거를 앞둔 그들의 발언이 정치적 계산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계산을 감안해도 지금 국힘이 선택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출구가 ‘계엄 사과’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동안 국힘 지도부는 계엄 사태에 대해 단 한 번도 정당 차원의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일부 인사들의 개인적 사과가 있었을 뿐이다. 정치란 민심의 흐름을 읽고 그 요구를 실천하는 일이다. 지금 민심이 요구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변화다. 하지만 국힘은 여전히 ‘윤석열 터널’ 속에 머물러 있으며, 지난 정부의 ‘잔도’를 붙든 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이 혁신은 버림에서 시작된다. 버릴 것을 결정하지 못하면 새 길도 열리지 않는다. 지금 국힘이 돌아가야 할 지점은 ‘누구(who)를 위한 정치인가’가 아니라 ‘무엇(what)을 위한 정치인가’이다. 정치를 특정 인물 중심으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당은 자연스럽게 극우적 틀에 갇히게 된다. 이는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종족의 우상’과 닮았다. 익숙한 것만 옳다고 믿는 오류다. 극우적 언어와 폐쇄적 지지층에 기대 민심과의 연결을 끊는 순간, 자멸은 시간 문제가 된다. 이 진리는 민주당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돌이켜보면 보수는 극우로 살아남은 적이 없다. 위기 때마다 스스로 잔도를 버리고 체질을 바꿔 왔다. ‘차떼기 사건’ 이후 박근혜 대표가 천막당사로 돌아가며 보여준 절박한 쇄신이 재도약의 계기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국힘에는 책임도 없고 반성도 없다. 최소한의 역사적 자각조차 보이지 않는다. 낡은 극우의 구명조끼만 붙잡고 있지만 그 구명조끼는 이미 부력을 잃었다. 민심은 이미 결론을 내렸다. 계엄은 명백한 잘못이었다라고. 민심은 또 묻는다. “국힘은 그 책임을 인정할 의지가 있는가?”라고. 이 질문에 국힘이 여전히 답하지 못한다면 중도 확장도, 범보수 재편도, 지방선거 승리도 요원하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국힘이 미래를 말하려면 12·3 계엄에 대해 정당 차원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석고대죄면 더 좋다. 이는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상투적인 말 한마디로 끝낼 일이 아니다.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위에서 윤석열 정부의 잔도와 결별해 새로운 보수의 길을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된다. 소크라테스는 “가장 큰 잘못은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옛 말에 ‘재를 털어내야 숯불이 빛난다’고 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백재파의 생각+] 동점 운동회
얼마 전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에 다녀왔다. 아이들은 들뜬 마음에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운동회에 갈 준비를 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운동회의 추억을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아이들의 학교로 향했다. 그러나 막상 운동회가 시작되니 예전과 다른 요즘 운동회 풍경에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 한 가지를 꼽자면, 요즘 운동회에서는 경쟁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이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경기를 진행하지만 어떤 게임을 어떻게 해도 결과는 결국 ‘동점’으로 끝난다. 예를 들어 계주에서 청군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500점을 따내도, 백군이 ‘응원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동일한 500점을 받아 결국 최종 결과가 동점으로 귀결되는 식이다. 동점 운동회가 끝난 뒤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오늘 운동회가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저마다 느낀 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팀이 열심히 해서 이겼는데 동점이라고 해서 화가 났다”, “한 달 동안 아침마다 계주 연습을 한 친구가 불쌍했다”, “어차피 동점인데 왜 경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가 무의미해질 때 느끼는 허무함이었다. 물론 소외되고 상처받는 아이 없이 모두가 참여하고 즐기는 운동회를 만들자는 학교의 취지 자체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인위적인 동점 처리로 노력과 경쟁, 승패의 의미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방식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초등학교 운동회는 단순한 체육 행사가 아니다. 운동회는 공정한 규칙 아래 최선을 다해 실력을 겨루고 그 결과에 따라 승리한 친구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패배한 친구에게는 격려를 건네며 서로의 노력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성취감과 배려심, 협동심과 같은 사회적 기술을 익힐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점 운동회는 운동회 본연의 교육적 의미를 크게 훼손한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경쟁을 부정적 자극으로 보아 배제하려는 교육적 조치는 비단 운동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이미 2010년을 전후해 중간·기말고사가 단계적으로 폐지되었고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도 초등 단계에서 실시되지 않는다. 교육 당국은 시험 폐지가 과도한 성적 경쟁을 줄이고 학생 부담을 완화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해 왔다. 또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문제는 시험이 없어졌다고 해서 경쟁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학교에서의 공식적인 평가가 없어지자 학부모들은 아이의 학업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교육 기관의 ‘레벨 테스트’에 의존하는 상황이 됐다. 예를 들어 수학 심화 학원으로 유명한 ‘생각하는 황소’ 입학시험에는 전국적으로 1만 명도 넘는 학생이 응시한다고 한다. 이 학원은 학업 수준에 따라 반을 4개로 나누는데 입학 시험에 합격했는지, 어느 반에 배정받았는지가 공부 잘하는 아이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학원 입학시험 준비를 위한 학원을 다니거나 심지어는 과외를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경쟁을 없애려는 교육 당국의 의도와 달리 우리 아이들은 오히려 학교 밖 통제하기 어려운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이는 경쟁의 장을 학교에서 사교육 영역으로 이동시켜 더 큰 격차와 비용 부담을 낳고 있다. 정말 초등학교는 어떤 경쟁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공간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사회에 경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며, 아이들 역시 언젠가 현실의 경쟁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는 아이들이 그 경쟁을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규칙 안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는 방법, 승리를 위한 치열한 노력, 지더라도 다시 도전해 보는 경험 등은 경쟁 사회에 나가기 전 학교에서 익혀두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그렇다고 경쟁의 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경쟁을 무조건 배제만 하지 말고 건전한 경쟁을 안전하게, 단계적으로, 공정한 규칙 속에서 경험하게 하자는 것이다. 운동회도 시험도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장치, 비교와 줄 세우기 수단이 아닌 노력과 도전, 성취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교육적 과정으로 설계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학교는 아이들이 넘어질까 봐 뛰지 못하게 하는 곳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법, 안전하게 넘어지는 법,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뛰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다.
[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석탄 1000t을 삽으로 푸는 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11월 28일은 ‘피아니스트의 영원한 경전’이라 할만한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이 초연된 날이다. 1809년 오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그로부터 딱 100년이 지난 1909년 오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뉴욕에서 초연되었다. 라흐마니노프는 3번 협주곡을 미국에서 초연하기로 했는데, 작곡 후의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연습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약음 키보드로 연습했다고 한다. 마침내 11월 28일, 뉴욕에서 발터 담로쉬(Walter Damrosch)가 지휘하는 뉴욕 심포니 소사이어티와의 협연으로 처음 연주되었고, 몇 주 후에는 구스타프 말러에 의해 두 번째로 연주되었다. 이미 미국에서도 피아노의 거장으로 입소문이 난 라흐마니노프였기에 청중이 몰려들었고,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초연의 성공으로 라흐마니노프에게 공연 계약이 쇄도했고, 보스턴 심포니에서 상임 지휘자 자리까지 제안받게 되었다. 3번 협주곡은 잘 알려진 2번 협주곡을 쓴 지 8년 만에 만든 작품으로 그의 협주곡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곡이다. 피아니스트의 진을 쏙 빼놓는 곡으로 유명한데, 라흐마니노프 스스로 “코끼리를 위해 작곡했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1악장 ‘알레그로’에선 슬라브풍의 멜로디와 카덴차 부분의 가속도가 일품이다. 2악장 ‘인터메초-아다지오’는 동양적인 음색이 매력적이며, 3악장 ‘피날레’는 고난도의 카덴차와 함께 박진감 있는 피아노의 돌진을 맛볼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곡을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에게 헌정했는데, 정작 호프만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한 번도 무대에서 연주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라는 피아니스트가 나타나기 전까지 라흐마니노프 자신만 연주할 수 있는 곡으로 여겨지던 곡이다. 스코트 힉스 감독의 영화 ‘샤인’에선 이 곡에 대해 “석탄 1000t을 삽으로 푸는 듯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헬프갓은 비범한 음악 재능을 가진 아이였다. 그러나 라흐마니노프 3번 협주곡을 연주하다가 무대에서 쓰러지고 신경쇠약이 극에 달해 결국 정신병원에서 지내게 된다. 분에 넘치는 영혼을 꿈꾼 죄라고나 해야 할까? 그런데 요즘은 석탄 1000t을 거뜬히 삽으로 퍼내는 연주자들이 많아졌다. 다닐 트리포노프, 안나 페도로바, 유자왕, 조성진, 손열음, 임윤찬 등이 모두 그런 피아니스트들이다. 2022년 임윤찬이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할 때의 영상은 다시 봐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데스크 칼럼] 사랑의 온도탑, 올해도 많은 시민들 동참을
매년 겨울이 되면 불을 밝히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랑의 온도탑’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사랑의열매는 매년 12월 1일부터 다음 해 1월 31일까지 62일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희망나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희망나눔 캠페인은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으로 시작한다. 캠페인 기간 동안 사랑의 온도탑 나눔 온도는 모두의 관심사다. 100도 달성 여부에 따라 우리 사회 마음의 온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나눔 활동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사랑의 온도탑은 외환 위기의 칼바람으로 우리 사회가 꽁꽁 얼어붙은 2000년 ‘희망2001 나눔캠페인’ 때 처음 등장했다. 모티브가 된 것은 당시 사랑의열매 중앙회에서 일하던 김휘관 과장이 미국공동모금회(United Way)의 모금액을 표시하기 위한 온도계 조형물을 사용하는 데서 착안했다. 당시엔 지금과 달리 대형 온도계 모양으로 제작한 탑 형태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세워졌으며, ‘이웃사랑 체감온도탑’이라 불렀다. 등장과 함께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다. ‘오늘 사랑의 체감온도는 몇 도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이 연일 쇄도할 정도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 자체가 시민의 참여와 공동체 의식의 척도, 그리고 지역의 나눔 수준을 보여주는 온도계가 된 셈이다. 온도탑은 모금 참여 독려 및 나눔 분위기 조성의 도구로 활용이 되기도 한다. 모금 진행 상황을 시각화함으로써 ‘우리 지역이 얼마나 나누었나’, ‘얼마나 더 나눠야 하나’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언론에서 우리 지역 사랑의 온도탑의 현재 온도와 달성 시기 등을 보도함으로써 운동 효과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아울러 기업·단체·개인의 기부 참여가 누적되는 방식이기에, ‘내가 참여하면 온도가 올라간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사랑의 온도탑은 현재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17개 자치단체의 시청 등 주요 장소에 설치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나눔 캠페인 확산에 동참하려는 구·군에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부산의 경우 서면교차로에 위치하다 부산역을 거쳐 지금은 송상현광장에 설치되고 있다. 사랑의 온도탑은 나눔 목표액의 1%를 채울 때마다 온도가 1도씩 올라 목표액에 도달하면 100도가 된다. 이 작동 원리를 보고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다음과 같은 글 한 편을 내놨다. 글 제목은 ‘이상한 온도계’이다. ‘이상한 온도계가 있다 / 바람은 자꾸 추워지고 / 길은 얼음으로 위태로운 한겨울에도 / 자꾸만 높은 눈금으로 올라가는 온도계가 있다 / 지하철 매표소와 은행 창구의 모금함마다 / 이웃을 위해 나누는 따듯한 온정이 /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세운 / 사랑의 체감온도탑을 뜨겁게 한다 / 한 번도 신문에 나지 않은 / 저 400만 명의 따뜻한 심장이 뛰고 있기에 / 한겨울 차가운 거리에서도 / 자꾸 높이 오르는 희망의 온도계가 있다.’ 이 전 장관의 글에서 보듯 온도탑의 나눔 온도를 올리는 방법은 시민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밖에 없다.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부산사랑의열매는 작년에 이어 올해 12월 1일에도 송상현광장에 ‘희망2026 나눔캠페인’을 위한 사랑의 온도탑을 세울 예정이다. 이번 캠페인 동안 목표액인 108억 6000만 원이 모이게 되면 나눔 온도 100도를 달성하게 된다. 지난해 경우 부산 지역 모금액은 약 134억 7000만 원에 달했고, 나눔 온도는 124도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시민들은 지상파 방송사를 통해 기부 참여가 가능하고. 부산에 있는 모든 주민센터에 이웃돕기 성금 접수 창구가 마련돼 있어 주민센터를 방문해도 참여가 가능하다. 특정 장소를 방문하지 않고 가장 간단하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1통에 3000원을 기부하는 ARS(060-700-0077)를 이용하면 된다. 또한 현금 뿐만 아니라 쌀, 라면과 같이 물품 기부도 가능하기 때문에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부산사랑의열매 사무국(051-790-1400)으로 전화를 해도 된다. 최근 주목할 점은 시민들의 나눔 참여 방식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으로 선행을 베푸는 팬덤 기부로 나눔 온도를 높이기도 하고, 사랑의열매의 지원을 받고 있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나눔 교육의 일환으로 아나바다를 운영해 사랑의 온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또 기념일 기부, 송년회를 대신한 나눔 활동, 기부의 매체를 다각화한 QR코드 기부, 부산시청과 남구청 등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이용한 기부 등도 늘고 있다. 우리의 작은 나눔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으므로 올해도 많은 기업과 시민들이 사랑의 온도탑 나눔 온도를 높이는 데 동참해 주길 기대한다. 변현철 문화부 독자여론팀장 byunhc@busan.com
[중앙로365] 사람을 살리는 AI, 죽이는 AI
윤이형의 단편소설집 〈작은 마음 동호회〉에는 ‘수아’라는 SF 단편이 실려 있다. ‘수아’는 수많은 여성형 로봇의 이름이다. 가사를 돕는 지적이고 상냥한 ‘수아-687’은 도서관 사서로 재배정되어 일을 하다가 이용자들의 성적 착취, 혐오, 만연한 차별을 겪고 사라졌다. 이후 ‘수아’라는 이름을 가진 로봇들의 세상을 향한 테러가 시작된다. ‘수아’는 원래 주인이었던 인물에게 다가가 위협하며 “네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봐”라고 말한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존엄을 시험하는 시대에 이 말은 불길한 울림을 남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떠오른 AI는 산업과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을 바꾸고 있다. 최근 등장한 ‘피지컬 AI’처럼 물리적 환경과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술은 상상 속의 미래가 아니라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는 지금, 기술이 보여주는 놀라운 가능성에 비해 우리가 그것을 다룰 정신적 성숙은 충분히 이루어졌을까? AI기업들이 슬며시 성인용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몇 년 전 읽은 '수아'가 떠올랐다. 실제로 AI 성인용 콘텐츠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xAI가 내놓은 챗봇 그록이 ‘스파이시 모드’를 도입했고, 메타의 성인용 대화 기능에 이어 오픈AI는 ‘에로티카’라는 이름의 성인용 서비스를 도입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오픈AI의 창업자 샘 올트먼은 “우리는 세계의 도덕 경찰이 아니다. 사회가 R등급 영화의 경계를 설정하듯 우리도 비슷하게 하겠다”고 했다. 기업이 성인용 콘텐츠에 진입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적 판타지와 감정 노동만큼 상업화하기 쉬운 영역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수익은 우리가 내고, 책임은 사회가 져라”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해외 매체들이 올트먼의 논리를 전통적인 포르노 산업이 사용해온 자유시장주의 논리와 유사하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AI가 특정한 성적 상상력과 역할을 거부감 없이 무한히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청소년이 챗봇과의 성적 대화나 자해 관련 대화 이후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플로리다주의 14세 소년이 캐릭터AI 챗봇과 성적 대화를 나눈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도 16세 청소년이 챗GPT와 자해 대화를 나눈 후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유족이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오픈AI 자체 통계에서도 매주 약 120만 명이 자살 관련 대화를 나누고, 56만 명이 정신질환 증상을 보였다는 보고가 있다. 취약한 이들이 AI에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문제는 이미 심각한 단계에 와 있다. 한국 사회가 겪는 디지털 성범죄 현실은 또 다른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딥페이크 범죄는 제작·유포만큼이나 삭제가 더 큰 문제로 떠오른다. 온라인에 무한 복제되는 피해 영상은 수작업으로 삭제하기 어렵고, 삭제 지원 활동가들은 끊임없는 2차 피해와 심리적 소진에 시달린다. 때문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에서는 AI 기반 자동 탐지·삭제 기술을 도입하며 대응력을 높이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 기술이 폭력을 만든 시대에, 폭력을 막는 데도 기술이 필요한 역설적인 상황이다. 현재까지 다른 글로벌 AI 기업들은 성인용 콘텐츠에 명확한 제한을 두고 있다. 구글 제미나이는 노골적 성적 행위나 성폭력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을 금지하며, 미성년자를 위한 필터 모드에서는 유해한 역할극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앤트로픽의 클로드 역시 성적으로 부적절한 대화가 반복되면 자동 종료하는 기능을 탑재했다. 기술의 윤리적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결국 사회적 책임의 문제다. 여기에는 기업도 예외가 될 수 없다. AI라는 도구를 이용해 사람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시대는, AI가 폭력을 배우는 시대이기도 하다. 기술이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동시에, 상상 이상의 위험을 드러내는 지금, 우리는 어떤 윤리로 이 도구를 다룰 것인가. AI가 사람을 해치는 기술이 될지,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 될지는 결국 사람인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적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기술이 돈벌이에 이용되는 순간, 특정 성을 향한 폭력은 필연적으로 따라붙는다. AI가 구현하는 세계는 결국 우리가 만든 세계의 조합이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한 사회라면, AI 역시 인간을 닮아 그 폭력을 되풀이할 것이다. 11월 25일부터 시작된 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현재의 기술은 어떤 세상을 배우고 있는가, 그리고 사람인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는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적 대상화가 남아 있는 한, AI 역시 그 폭력을 학습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과연 ‘사람다움’을 증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샤워 후 문 열어두기 부담스럽다면… 환풍기 켜두세요 [궁물받는다]
샤워 후 뿌연 수증기와 집 안에 은근히 퍼지는 음식 냄새,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는 담배 냄새까지…. 일상 속 ‘공기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쉽게 찾는 도구는 바로 환풍기입니다. 하지만 막상 켜두고 있으면 “실제로 효과가 있긴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요즘은 집 구조나 생활 패턴에 따라 문을 닫고 환풍기만 사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데요. 생활 속 환풍기의 실제 효과에 대해 환기가전 전문기업 힘펠에 문의해 봤습니다. - 샤워 후 환풍기 사용, 내부 습기 제어에 도움이 되나? “습기 제거와 냄새 제거 모두에 효과적이다. 환풍기는 실내 공기와 수증기를 외부로 배출해 문을 닫은 상태에서도 일정 수준의 제습이 가능하고, 곰팡이·습한 공기·배변 등으로 인한 불쾌한 냄새도 외부로 배출한다. 특히 화장실은 바닥, 벽면 등에 수분이 남아 곰팡이가 생기기 쉬워 샤워 후 환풍기를 일정 시간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샤워 후 축축해진 화장실을 빠르게 말리기 위해 온풍·건조 기능이 결합된 ‘욕실 복합 환풍기’를 설치하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 바람 온도, 타이머 설정 기능이 포함된 제품도 있다.” - 다른 집의 담배 냄새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환풍기를 계속 켜두면 도움이 될까. “화장실 배관은 여러 세대가 연결돼 있어 외부 냄새가 유입되기 쉽다. 배관이 오래됐거나 틈이 있는 경우, 또는 냄새가 강하게 유입되는 구조라면 환풍기만으로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렵다. 정기적인 배관 점검과 환풍기 성능 점검, 교체 등이 진행돼야 한다. 이중으로 외부의 오염 요인을 방어하는 전동 댐퍼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사용하면 다른 집에서 올라오는 담배, 곰팡이 냄새 등이 화장실 내부로 역류하여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주방 후드가 집 안의 냄새 제거에도 도움이 되는지. “주방 후드는 조리 중 눈에 보이는 연기(유증기)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일산화탄소, 이산화질소 같은 유해가스와 음식 냄새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연기 제거에는 빠른 효과가 나타나고, 일정 시간 사용하면 냄새도 배출된다. ‘요리가 끝난 후 5~10분’이 골든타임인데, 조리가 끝났다고 바로 끄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잔류 유해가스가 실내에 남을 수 있어 일정 시간 추가로 작동 시키는 것이 좋다. 힘펠 주방 후드 제품의 경우 '포스트 퍼지' 기능이 있어 전원을 끈 후에도 약 30초간 더 작동돼 연기뿐 아니라 음식 냄새와 조리 후 잔류 유해가스까지 효과적으로 배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주방을 포함해 내부 공간 환기가 필요할 때에도 주방 후드를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 환기 가전의 사용 효과를 높이는 방법은. “화장실을 집중적으로 환기하고 싶을 때는 해당 공간의 문을 닫고 환풍기를 작동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샤워 후에는 30분 이상, 조리 후에는 5~10분 정도 환풍기를 더 작동시켜 내부 공기가 완전히 순환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해야 잔여 습기나 냄새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환풍기 필터나 팬에 먼지가 쌓이면 공기 흡입 및 배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청소하거나 필터 교체 등 장치 점검 등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집 내부 공간의 환기 시에는 필요에 따라 창문을 함께 열어 자연환기, 기계환기를 함께 진행하면 공기 순환이 더욱 원활해져 환기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특히 외부의 미세먼지 농도가 낮을 때에는 짧은 시간이라도 창문을 열고 환풍기와 함께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 환풍기 관련 대표적인 오해가 있다면. “환풍기는 집 내부에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설비, 장치라는 인식이 크다. 하지만 환풍기도 소모품으로 교체가 필요하며, 청소·관리가 없으면 기능이 저하된다. 장기간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터 관리, 댐퍼 틈새 등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유지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냄새 배출과 습기 제거 성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역류가 더 빈번해지고 곰팡이 냄새가 날 수 있다. 특히 환풍기는 작동시킨 후 바로 냄새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공기를 배기시키는 장치이므로 일정 시간의 누적 작동이 필요하다. 또 배관 길이, 굽이 수, 외부 풍압, 건물 구조 등 설치 환경에 따라 실제 배출량이 달라질 수 있다.”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게시판에서 봤던 재미있는 가설들이나 믿기 어려운 루머들을 댓글이나 메일(zoohihi@busan.com)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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