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안 여객선 좌초… 해양 안전 불감증 도지나
19일 저녁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인근에서 발생한 대형 여객선 퀸제누비아2호 좌초 사고는 한국 해양 안전의 취약성을 다시 드러냈다. 20일 목표해양경찰서 등에 따르면, 해경 1차 조사 결과 수동으로 운항해야 하는 협수로 구간에서 항해사가 휴대전화를 보느라 수동 운항 대신 자동항법장치에 선박 조종을 맡겨 여객선과 무인도 간 충돌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칫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질 뻔했으나 다행히 탑승객 267명 전원이 구조됐고 부상자 역시 대다수가 경상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사고 원인으로 드러난 운항 과실은 너무도 충격적이다.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은 채 안전이 방치됐기 때문이다. 2014년 세월호의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고가 발생한 신안군 장산도 인근 해상은 섬과 섬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 협수로다. 이는 연안 여객선들이 빽빽하게 오가는 구간으로 자동항법보다 승무원의 주의 집중과 판단력이 요구되는 곳이다. 그런데도 항해사는 휴대전화로 뉴스를 검색하며 조타를 자동항법장치에 맡긴 채 방향 전환(변침) 시점을 놓쳤고, 선장 또한 조타실을 비운 정황이 확인됐다. 기본적인 조타 규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는 명백한 인재며, 해상 안전의 최전선에서 기본 의무를 저버린 중대한 직무 태만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차례 강조된 ‘기본으로 돌아가기’가 말뿐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안전관리 체계의 허점이다. 퀸제누비아2호는 2021년 취역 이후 인천∼제주 노선에서 엔진 결함 등 운항 장애를 여러 차례 겪은 바 있다. 이후 운영사가 바뀌고 목포∼제주로 이동했지만, 승무원 숙련도나 근무 체계, 비상 상황 대응 매뉴얼이 어느 수준까지 확보돼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초기 대응의 적절성도 따져봐야 한다. 선박 측 신고와 별도로 승객이 119 상황실에 먼저 연락한 사실은 사고 순간 승무원들의 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을 남긴다. 과거 해상 사고에서 초기 대응 지연이 참사를 불러왔음을 떠올리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해경은 운항 과실이 확인된 만큼 관련자들을 형사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관련자 처벌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협수로에서도 자동항법에 의존하는 관행, 항해사가 서슴없이 휴대전화를 볼 수 있는 근무 환경 등 구조적 허점이 있었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선장의 조타실 이탈을 용인하는 분위기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전자기기 사용 규제 역시 재정비가 필요하다.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관제 역량과 통보 체계에 빈틈은 없었는지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사고 이전의 철저한 예방이 해양 안전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여객선 운항에서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다. 해상 교통이 국가 인프라로 자리 잡은 시대에 안전 불감증은 용납될 수 없다.
[사설] 대한항공, 지역 거점 항공사 삼키고 승객 불편까지 안기나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항공편이 지난해보다 대폭 줄었다고 한다. 대형항공사(FSC)인 대한항공과 계열사인 LCC(저비용항공사) 진에어, 에어부산의 지난달 김해~김포공항 왕복 항공편은 1051편에 달했다. 지난해 10월 왕복 항공편인 1289편에 비해 18% 감소했다. 특히 대한항공의 해당 노선 왕복 항공편은 지난달 346편으로 지난해 10월 548편에 비해 36%나 감소했다. 에어부산도 같은 기간 33편 줄었다. 세 항공사는 해당 노선 운항의 절반 이상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 항공사는 ‘항공기 정비’를 사유로 내세웠지만, 에어부산이 대한항공에 편입된 이후 부산 중심의 운항 전략이 사라진 데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부산과 서울을 연결하는 하늘길 축소는 김해공항 이용객들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 당장 항공권 가격이 올라 경제적인 부담을 느낀다. 토요일 기준 김해~김포공항 편도 항공권 가격은 7만~10만 원대로 과거 5만 원 내외에 비하면 가격이 최대 배 가까이 올랐다. 이마저도 여객이 몰리는 월, 금, 주말 등 황금 시간대는 구하기조차 힘든 실정이다. 출장이 잦은 부산 지역 기업인들은 비행기 표 구하기 전쟁에 시달린다. 휴가철인 여름에는 취소 표를 기다리는 경우도 잦았다고 한다. 항공산업의 독과점 구조가 지역 항공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이로 인해 지역민의 이동권 침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통합이 되면 서울과 부산을 잇는 항공편이 점차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제기된다고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자회사인 에어부산이 하나의 회사로 합쳐지며 수익성이 낮은 단거리 노선보다 국제선에 중대형 항공기를 우선 투입하는 경영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해~김포공항 노선에서 중복되는 항공편을 줄이면서 운항이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해공항 노선 감축에 따른 운항 편수 감소가 현실화하면 지역민의 항공 선택권 자체를 빼앗는 것이다. 대한항공이 지역 거점 항공사인 에어부산을 삼켰지만, 김해공항 노선 축소로 승객 불편까지 안기는 것이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2020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을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명분은 김해공항을 지방 공항 LCC 허브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당시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대한항공은 통합 LCC 허브를 지역 공항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2022년 통합 LCC 본사 소재지에 대해 “진에어를 브랜드로, 인천국제공항을 허브로 운항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올 3월에는 에어부산 분리 매각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이며 지역 염원을 무시했다. 대한항공은 ‘김해공항 LCC 허브 육성’이라는 합병 추진 당시의 초심을 되살려, 부산 중심의 운항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독과점 항공 기업의 전략에 지역민만 희생당할 수 없다.
[사설] 공공공사 참여 확대… 지역 건설업 살릴 파격 대책 필요
정부가 침체된 지역 건설업계를 살리겠다며 지역제한 경쟁입찰 허용금액을 크게 높이고 공사 전 단계에서 지역업체 우대 평가를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19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된 ‘지방공사 지역업체 참여 확대 방안’은 종합·적격심사낙찰제 전 구간에서 지역 참여 비율에 가점을 부여하고, 기술형 입찰에도 지역 균형발전 지표를 적용하는 등 사실상 지역 업체 중심의 지원책을 담고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지역 건설사 연간 수주액이 3조 3000억 원 늘어날 것이라 전망했다. 지역경제의 체력이 급속히 저하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공공 발주에서 지역 참여 폭을 넓힌 조치는 분명 의미가 있다. 정부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지역제한 경쟁입찰 허용금액을 일괄 150억 원으로 높이기로 했다. 기존에는 지자체 100억 원 미만, 공공기관 88억 원 미만 사업만 지역업체 입찰이 가능했다. 여기에 입찰·낙찰 평가 전 과정에서 지역업체에 추가 가점을 주는 인센티브도 확대한다. 그러나 현실의 지역 건설업계는 대형 프로젝트의 수도권 집중, 민간 발주 급감, 인력난과 자재비 급등이 겹치며 벼랑 끝에 서 있다. 지역 공공공사조차 외지 대형사가 주도해 온 구조적 문제도 여전하다. 이번 대책이 이런 불균형을 완화하려는 의미는 있으나 이 정도 개선만으로는 침체에 빠진 지역 건설업계를 되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대한건설협회가 “지역 원도급사 수주 시 하도급도 지역에 머문다”고 밝힌 만큼 지역경제 확산 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지역업계는 무엇보다 공사비 현실화를 절실히 호소한다. 자재비·인건비 상승을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에서는 수주가 곧 적자로 이어지는 모순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과중한 부담 역시 인력과 자본이 부족한 지역 중소업체에는 치명적이다. 부산의 미분양이 지난 9월 7316세대로 늘어난 상황에서 민간 발주 침체도 발목을 잡는다. ‘유령 본사’ 문제를 막기 위한 본사 유지 의무 강화와 실태점검도 이번에 도입됐지만 실효성을 높이려면 추가적 보완이 필수적이다. 이번 대책은 지역 건설업체에 숨통을 틔워주는 시작일 뿐 지역 건설업 생태계를 되살리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계기로 더욱 과감하고 포괄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테면 단기 수주 확대를 넘어 지역 금융기관의 PF 지원 강화, 공사비 현실화, 중대재해처벌법의 예방 중심 개편 등을 담은 정책 패키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 건설업체의 경쟁력 강화도 가능하다. 흔히 지역 건설사를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라고 말한다. 한데 이들 건설사가 지금은 간신히 버티는 단계에 있다. 정부가 이번 대책을 계기로 보다 과감한 보완책을 내놓을 때 위태롭게 버티는 지역 건설사도 지속 가능한 회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지를 불태운 까닭
중국 후한 위·촉·오 삼국 정립 직전인 서기 200년에 벌어진 관도대전은 중국의 요지 중 요지인 화북대평원의 주인을 가리는 전쟁이었다. 신흥 군벌로 샛별처럼 떠오르는 조조와 대대로 명문 가문이었던 원소가 벌인 이 관도대전은 원소의 군량을 태워버린 조조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어떤 역사학자는 이 관도대전으로 중국의 80%가 조조의 손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후 촉이나 오의 등장과 삼국 정립은 무의미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이처럼 엄청난 전쟁이었던 관도대전이 끝난 뒤 조조는 원소의 군영에 들어갔다가 자신의 군영과 오간 엄청난 양의 편지 꾸러미를 발견한다. 편지 겉면을 훑어보던 조조는 편지의 양으로 미뤄 볼 때 측근까지 원소와 내통하는 편지를 주고받았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조의 군영에서는 곧 엄청난 피바람이 불어닥치리라 예상하고 공포감이 극에 달했다.평소 냉혹한 조조의 성격을 감안하면 무자비한 숙청이 이어졌을 것 같지만 조조는 예상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조조는 편지 꾸러미를 읽어보지도 않고 모두 불태우라고 명령했다. 내통자들을 적발하고 숙청해야 정권이 안정된다는 주변의 조언에 조조는 “원소가 강성했을 때는 나조차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거늘 뭇사람들이야 오죽했겠는가”라고 일갈했다. 물론 조조의 이 같은 퍼포먼스는 화북 일대에 뿌리 깊은 친원소 세력을 포용해야 할 필요성을 염두에 둔 냉정한 계산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나 그런 통합의 리더십을 보이기 어렵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최근 이재명 정부는 계엄 가담자 적발을 특검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행정부 안에 ‘헌법존중 TF’를 운영하겠다고 나섰다. 국무위원도 제대로 몰랐던 계엄의 가담자가 얼마나 적발될지는 알 수 없다. 반면 상호 감시와 상호 신고를 하는 방식 때문에 공직사회에 밀고가 횡행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는 매우 크다.이 대통령은 취임 3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직업 공무원들은 최종 인사권자가 시키는 대로 한다”고 지적하고 “한쪽만 골라내면 남는 게 없다”며 성향에 관계 없이 모두 포용해 쓰겠다는 말로 큰 박수를 받은 바 있다. 당시의 박수는 포용과 화합을 원하는 국민들의 진심어린 여론이었을 것이다. 대통령과 여권은 취임 초 큰 박수를 받았던 그 포용의 정신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포용의 리더십을 쓴 조조가 결국 중국을 제패했다는 사실도.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편집국에서] '해머' '김 부장' 그리고 '태풍' 속 우리
무용수가 객석으로 난입한다. 의자 위까지 점령한 29명의 다국적 무용수들은 관객들에게 스마트폰을 켜고 자신을 촬영하라며 포즈를 취해 준다. 합법적으로 공연을 촬영할 수 있게 된 관객들이 신이 나서 동영상을 찍고 ‘셀카’를 찍어 대던 것도 잠시. 자아도취에 빠진 무용수들은 다른 사람 말고 오로지 자신만 찍으라고 소리를 지르며 흥분하기 시작한다. 광기 어린 그들의 몸짓에 넋이 나갈 때쯤 1막의 무대는 정신 없는 카메라 플래시 조명과 함께 막을 내린다. 지난 21일과 22일 부산문화회관과 부산일보 주최로 열린 무용극 ‘해머’ 공연은 무엇이 진실이고,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다. 안무가 알렉산더 에크만은 그리스의 한 레스토랑에서 ‘해머’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젊은 관광객 1명이 스마트폰을 꺼내 친구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는데, 모두들 카메라와 상관 없이 행동하는 듯 보였지만 안무가의 눈에 비친 모습은 달랐다. 무리의 머릿속엔 온통 카메라 생각밖에 없다는 게 에크만의 눈엔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SNS에 전시할 멋진 나의 모습과 일상을 포착하는 데 혈안이 된 현대인들은 점점 더 ‘나, 나, 나’를 외친다. 다른 사람의 처지나 의견, 어려움, 감정 등에는 별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근사해 보일까가 가장 큰 관심사다. 이기와 기만, 가식이 지배하는 세계에 경종을 울리는 묵직한 한 방. ‘해머’는 진짜를 향한 여정, 진짜 나를 찾기 위한 망치질을 의미한다. 요즘 화제가 되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외우기도 힘들 만큼 긴 제목은 그 자체가 허울이다. 서울에 자가를 가지고 있고 대기업에 다니는 부장쯤 되면 사는 게 만만하고 여유로울 것 같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인생 내리막길에 접어든 50대 김낙수의 삶은 찌질하고 비루하고 짠하기만 하다. 그나마 그런 그의 노고를 이해해 주고, 처지를 헤아려 주는 가족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퇴직금을 상가 사기로 날릴 처지가 된 그에게 찾아온 것은 공황 증상. 그러나 정신과 진료를 권하는 의사에게 그는 사람을 정신병자 취급한다며 되레 화를 내며 현실을 부정하기 바쁘다. 드라마가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중에도 일부는 반감을 드러낸다. 애초에 상위 5% 인생인데 힘겹다는 서사를 씌우는 게 억지스럽다는 반응도 있고, 대부분의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비하면 상황이 나은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날로 치열해지는 취업 경쟁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들 입장에선 ‘김 부장 이야기’가 누릴 것 다 누린 기성세대의 넋두리로밖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보여 주고자 한 진짜 현실은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의 인생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살아남기 위한 생존 투쟁, 발버둥의 연속이라는 점일 것이다. 현실이 힘들수록 과거에 대한 향수가 커진다고 했던가. 불황과 단짝이라는 복고 트렌드가 최근 대중문화 속에 스며들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시절 상사맨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태풍상사’의 인기가 그 예다. 이에 앞서 막을 내린 드라마 ‘백번의 추억’은 1980년대 버스 안내양들의 우정과 성장을 그린 바 있다. 그때 그 시절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잠시라도 가슴 따뜻해지는 이유는 ‘그래도 사람 사이의 정이 살아 있었구나’ 느낄 수 있는 장면들 덕분이다. ‘태풍상사’ 속 남자 주인공 ‘태풍’의 어머니가 여자 주인공 ‘미선’의 집에 얹혀 살며 초등학생 막내 ‘범이’를 자식처럼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어느새 한 지붕 아래 한 가족이 돼 버린 그들의 에피소드를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다시 ‘해머’로 돌아가 보자. 카메라에 비친 근사한 나의 모습에 도취해 성형과 꾸밈에 중독된 현대인을 비꼰 이 무용극은 관객들에게 쓴웃음을 남겼다. 객석까지 쳐들어와 나를 봐 달라고 소리치는 무용수들의 과장된 몸짓에 몸서리치다가 가족과 사람의 중요성을 말하는 주말 드라마에 잠시나마 위로를 받는다. 스마트폰에 고정된 우리의 시선이 화면 속 반짝이는 나와 누군가가 아니라 내 주변의 너, 그리고 현실에 발을 디딘 동료와 이웃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해 본다. ‘셀카’를 찍던 렌즈의 방향을 공동체로 돌려 보는 건 어떨까. 가령 본보가 매주 금요일 연재 중인 ‘사랑의 징검다리’ QR코드에 카메라를 갖다 대 보자. 번거롭더라도 댓글 한 줄만 남기면, 나를 대신해 부산은행이 1000원을 기부해 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연말이 다가온다. 태풍 같은 험난한 세상에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허세’라는 보호막으로 위장하고 치열하게 달려 왔을 한 해를 되돌아보며, 이제는 진짜 나 그리고 우리와 마주할 때다.
[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사과가 부재한 시대
정치인에게 구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본인은 물론 가족 관련 비위 의혹으로 도마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그 의혹이 사실과 달라 억울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정사의 주요 지도자들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먼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변명이나 정당화보다는 진정성 있는 사과가 대중에게 더욱 진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서거 10주년을 맞은 고 김영삼(YS) 대통령이 그러했다. 1997년, 퇴임을 1년여 앞둔 시점에 차남 현철 씨가 한보 특혜대출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YS는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며 “만일 제 자식이 이번 일에 책임질 일이 있다면,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고 김대중(DJ)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2002년 차남 김홍업 씨와 3남 김홍걸 씨가 비리 의혹에 휩싸였을 때, DJ는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렬하게 느껴왔으며, 국민 여러분께 마음의 상처를 드린 데 대해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고개 숙였다. 두 사례는 어찌 보면 국가 지도자로서 당연한 처사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정치 현실에서는 이런 ‘당연함’을 기대하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 버렸다. 최근 부산에서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상실한 전직 A 구청장이 각종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퍼지고 있다. 심지어 주요 인사가 불참할 경우, 그 자리에 대신 앉는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구정 공백을 초래한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상대 진영 인사를 ‘포용한다’는 명목으로 직원을 채용한 B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도 뜨겁다. B 정치인은 관련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아무런 불만도 듣지 못했다”, “누가 문제를 제기하느냐”며 긴 시간을 따져 물었다. 그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특정 인사 C 씨를 지원하기 위해 C 씨의 친형과 가까운 인물을 영입했다는 소문을 그 또한 들었을 텐데도 말이다. A의 경우는 법적 사안이고 B의 경우는 정치적 판단의 영역이지만, 둘 다 떳떳해 보인다는 점은 매한가지다. 공직선거법 위반 정도는 정치를 하다 보면 일상다반사라 생각할 수도 있고, 인사(人事)의 문제로 시비를 거는 일에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의 경우 이미 그 대가를 치렀으니 뭐가 문제냐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정치인이라면 떳떳함을 내세우기에 앞서 우선 고개를 숙여야 한다. 정치인이 응당 가져야 할 정치적, 도덕적 책임의 무게가 법적 책임 이상으로 무겁기 때문이다. 국민이 그들에게 바라는 정치적 혹은 도덕적 기준이 범부의 그것에 비해 다소 높다고 해서 “억울하다”는 소리부터 나온다면, 단언컨대 그에게는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오션 뷰] 해사법원, 이젠 경쟁력 갖춘 설계 필요하다
2015년 처음 제기된 해사법원 설치 논의가 마침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국회 법사위는 최근 제출된 여섯 개 법안을 검토한 뒤, 박찬대 의원안을 중심으로 단일안을 마련했다. 남은 몇 가지 쟁점만 정리되면 올해 안에 해사법원 설치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크다. 논의가 장기간 이어진 만큼, 이제는 해사법원의 구성과 기능이 어떻게 설계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논의의 가장 큰 변화는 명칭에서 드러난다. 해사법원은 해사국제상사법원으로 명칭이 확대돼 논의되고 있다. 이는 해사 사건뿐 아니라 국제상사 사건까지 포괄하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국제거래전담부 등에서 처리해 온 국제상사사건을 해사법원의 기능과 결합해 사건 기반을 넓히려는 시도로, 21대 국회에서 한국해사법학회와 이수진 의원이 처음 제안한 모델이기도 하다. 새롭게 구상된 해사국제상사법원은 해사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과 국제상사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이 함께 설치돼 두 축으로 운영되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1심 재판은 부산과 인천이 분담해 맡게 된다. 토지관할 구역을 나누어 부산은 영남·호남·제주 지역을, 인천은 수도권·충청·강원 지역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러한 해사국제상사법원 사이는 전속관할이 아닌 임의관할이기 때문에 원고는 부산해사법원과 인천해사법원 중 보통재판적이나 특별재판적이 인정되는 곳에서 자유롭게 선택해 소를 제기할 수 있고, 해사법원 내에서의 합의관할이나 변론관할도 허용된다. 두 해사법원은 각각 단독부 3개, 합의부 1개, 항소부 1개로 구성될 것으로 추측된다. 해사법원을 둘러싼 쟁점도 남아 있다. 해사법원은 1심 사건만을 전담하며, 별도의 해사고등법원은 설치되지 않는다. 따라서 항소심은 일반 사건과 동일하게 처리된다. 부산해사법원에서 나온 항소 사건은 부산고등법원이, 인천해사법원 사건은 서울고등법원(또는 향후 설치될 인천고등법원)이 맡게 된다. 다만 국제상사사건에 한해 서울고등법원의 전담 기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쟁점은 ‘전속관할’이다. 해사법원은 해사사건에 대해 전속관할을 갖게 돼, 앞으로 상법 해상편 손해배상·책임제한·선박충돌 등 해사민사사건과 각종 해사행정사건은 모두 부산·인천해사법원에서만 다뤄진다. 다만 전속관할로 인한 불편을 줄이기 위해 일부 사건은 중복관할을 인정했다. 소액사건, 등기 가능한 선박 외 재산에 대한 집행·보전처분, 일부 선원법 적용 사건 등이 그 대상이며, 등기 외 소형선박에 대한 가압류처럼 현장에서 빠른 처리가 필요한 사안은 일반 지방법원 지원에서도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롭게 법률안에 포함된 국제상사사건 범위도 쟁점이다. 국제상사사건이 해사국제상사법원의 전속관할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어떤 사건을 그 범주에 넣을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법무부는 ‘해사국제상사법원에 관할합의를 한 사건만’ 전속대상으로 보자는 입장으로, 당사자가 서울중앙지법 관할로 합의했다면 그 사건은 기존대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처리된다. 반면 법원행정처는 국제상사사건을 ‘외국적 요소가 있는 상사법률관계’ 자체로 파악해 관할합의 요건을 두지 않으려 한다. 이 경우 해당 사건은 모두 해사국제상사법원으로 이송되거나, 서울중앙지법은 소를 각하해야 한다. 해사법원은 2030년 개원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설치 배경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해사·국제상사 분쟁을 국내에서 처리해 외화유출을 막고, 동시에 국민이 보다 신속하고 전문적인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재판청구권을 강화하려는 데 있다. 2030년까지 해사법원이 실질적인 선택을 받는 전문법원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충분히 사건 기반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사건 수 확대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해운회사와 조선소 역시 분쟁 해결을 부산해사법원에서 진행하도록 약정을 체결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해상운송약관이나 용선계약서에도 해사법원을 관할로 하는 조항을 반영해 자연스럽게 사건이 해사법원으로 모일 수 있도록 정비할 필요가 있다. 해사법원은 신속성과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전문 해사판사를 안정적으로 확보·육성할 체계 마련이 핵심 과제다. 압류 선박을 휴일에도 해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등 실무 대응력 강화도 필요하다. 특히 해상법 강의가 거의 없는 로스쿨 현실을 고려하면 전문 인력 양성은 더욱 시급하다. 결국 해사법원이 성공하려면 법률 수요자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신뢰할 만한 기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오랜 염원이었던 부산해사법원의 설치가 우리 해사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공감] 야생의 본능
초등학교 시절에 〈로빈슨 크루소〉를 참 재미있게 읽었었다.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상상에 잠기곤 했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나뭇가지를 비벼 불 피우고, 나뭇잎 집을 짓고, 해변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는 상상. 그 모든 것이 신나고 짜릿했었다. 그런 모험에 열광했던 아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분별없는 꼬맹이들이라 그런 모험을 동경했을까? 과학자 말을 빌리자면 오래된 야생 본능이 남아있기 때문이라 한다. 인간의 뇌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랜 세월 다듬어졌다 했다. 낯선 영역 탐색에 성공하면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로운 먹거리를 보상으로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못지않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낯선 길을 선택하는 용기, 위험을 감수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간 발걸음이 결국 인간이 번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삶은 야생과는 거리가 멀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은 길을 찾아주고, 음식은 몇 번의 배달 앱 클릭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우린 정해진 시간에 학교, 회사와 집을 왕복한다. 맨손으로 식물 뿌리를 파헤칠 일도, 밤하늘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잡을 일도 없다. 그렇다고 수렵 행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수렵은 어느새 ‘성과’와 ‘실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몰아붙인다. 더 많은 매출, 더 높은 고과점수, 더 많은 팔로워를 얻기 위해 우리는 경쟁의 숲을 누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깨알 같은 숫자를 노려보는 누군가는, 사실 눈앞의 차트를 향해 창을 겨누고 있는 오늘날의 사냥꾼이다. 채취 역시 남아있다. 이제는 열매 대신 정보와 기회를 모은다. 세일 정보, 부동산 시세, 투자 종목, 자기계발의 팁들까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열매를 따 모은다. 광주리 대신 하드디스크와 클라우드가 무거워진다. 탐색도 이뤄지고 있다. 해변이나 정글을 뒤지는 대신에 손바닥만 한 작은 화면으로 새로운 맛집과 멋진 카페를 찾아 꼼꼼히 후기를 읽는다. 낯선 나라의 동영상과 브이로그를 보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를 속속들이 안다고 느낀다. 실제로 문명을 떠나 야생으로 들어가는 모험은 극히 어려운 선택이다. 직장, 가족, 대출, 계약서 같은 것들이 우리를 이 도시와 단단히 묶는다. ‘다 버리고 자연에 들어가고 싶다’라는 푸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전기요금 고지서 한 장에 우리는 다시 현실로 끌려 나온다. 머릿속엔 야생의 회로가 남아있지만, 우린 문명 속에서 살아간다. 문제는 주체할 수 없는 공허에 모든 것이 지겨워지고, 이유 없이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고, 도시를 벗어나고 싶고, 아예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것은 오래된 본능이 “너, 너무 오래 한 자리에 서 있지 않았냐”고, 속삭이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 시대의 야생은 정글이나 무인도가 아니다. 우리의 야생은 우리가 수없이 구획해놓은 영역 너머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익숙함 너머의 그곳. 두려움을 무릅쓰고 한 걸음 내디딘 그곳이 바로 문명 속 야생이 아닐까.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새벽 시간, 책을 펼쳐놓고 낯선 생각의 숲을 헤매는 것. 혹은, 정답이 없는 선을 그어 넣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색을 올리는 순간, 우린 잠시 체계의 공허에서 벗어난다. 희미하게 남은 야생의 본능은 사실, 우리 안에서 조용히 다음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사냥이 아니라, 더 깊은 삶을 위한 모험으로, 어쩌면 효율과 편리함만 추구하는 인공시스템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 장치일지도 모른다.
[기고] 진정한 해양수도 부산, 세계의 해양수산부로 가는 길
정부 부처 이전이 끝이 아니다. 해양수산부의 물리적 이동만으로 부산은 진정한 해양수도가 될 수 없다. 그리스 ‘피레우스’의 70년 역사는 1954년 해양도서정책부의 이전은 출발점이었을 뿐, 진정한 성공은 행정·산업·금융·법률·교육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완결형 해양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부산의 선택이 국가 해양의 미래를 결정한다. 부산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올해로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 선포 25년, 내년이 해수부 설립 30년, 부산항 개항 150년을 앞두고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북극항로, HMM본사 이전 등 오랜만에 부산이 기대와 희망에 가득차 있다. 새 정부 새 부산시대의 개막인 동시에 부산 지혜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구호뿐인 ‘해양수도’를 진짜로 만드는 기회다. 해수부는 1996년 김영삼 대통령 때 만들고 폐지된 해수부를 부산 시민의 주도로 2013년 어렵게 부활시켰다. 그러나 시민의 기대가 실망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와 부산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해양수산부 및 직원 이주가 차질없이 연내 부산 연착륙이 먼저다. 그들이 만족하여야 한다. 해양 관련 공공기관도 빠른시일에 부산 이전이 마무리 되어야 한다. 특히 해수부 2차관제와 이번 기회에 해양산업의 강력한 국가육성지원정책이 발표되어야 한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공약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실천의지와 국회에서의 법적조치가 시급하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한다. 내년 지자체 선거를 위한 단순한 정치공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해수부 기능 확대와 역할 통합’과 관련한 조항은 특별법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 특히 해수부 이전 등 공약을 약속했던 대통령의 해양에 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없이는 해수부 부산 이전 효과가 반감이 되거나 시민의 실망으로 변할 수 있다. 둘째, 서울, 수도권 집중에 의한 제일 큰 피해지역이 부산, 남부권이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부산의 수도권으로의 청년, 자원, 기업이 유출 되고 있다. ‘균형발전’이라는 구호성 정책으로는 막을 수 없다. 부산해양특별시 지정과 논의되었던 정부의 ‘균형발전부 설치’ 등 파격적인 지방정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방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셋째, 현재 1%(국가예산 대비)의 해수부로는 일할 수가 없다. 예산이 대폭 증액되어야 한다. 그동안 논의되었던 타 부처에 있는 해양 분야 즉 해양플랜트, 조선·선박수리 분야, 해양물류, 해양레져 관광 분야, 도서(섬) 분야(현재 무인도만 해수부), 해양기후 분야 등이 해수부가 관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이 바다국가, 해양강국인데 해양수산부의 현재 약체 소부처로서는 해양강국 건설은 물론 부산 이전의 정당성이 없다. 넷째, 미국 등 선진해양국가들은 해양전략이 국가전략으로 치밀히 대응하고 있다. 국가의 다양한 해양정책을 통할하며 조율할 힘있는 조직인 대통령 직속 국가해양위원회(가칭) 신설의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수부의 한계를 극복하고 각종 정책 간 엇박자를 방지하려면 국가의 모든 해양업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며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강력한 컨트롤타워 설립이 시급하다. 다섯째, 이재명 정부의 지상과제로 떠오른 북극항로 개척은 정책이 일관돼야만 하는 데다 전 부처의 적극적인 공조가 절실한 사안이 아닌가. 러시아를 비롯한 북극해 연안국들과의 협력, 북극 기후 데이터 축적, 국제 해양법 검토 같은 북극항로 준비에는 해양산업은 물론 외교·안보·법무·과학기술·환경 분야까지 총력전이 요구된다. 부산을 ‘극지관문도시’로, 부산항을 ‘북극거점항만’으로 지정이 시급하다. 또한 부산에 제2극지연구소 설치, 아라온호 부산항 취항 등도 필요하다. 여섯째, HMM 부산 이전을 위해서는 톤세 등 HMM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의 본사 부산 이전은 단순히 본사 주소지 변경을 넘어, 세계 2위의 환적항(세계 7위의 컨테이너 항만)인 부산이 물류현장성 뿐만 아니라 해운경영과 해운비즈니스의 중심이 되는 가장 실효적인 해양수도 정책 과제라 할 수 있다. 끝으로, 부산 시민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혜가 필요하다. 부산시, 시의회, 부산 정치권, 부산 상공계, 학·연구계, 시민단체 등의 상호 협력적인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양수산부도 지역사회와 함께 교류하는 열린 자세로 변해야 한다.
[기고] “영화 속의 재난, 현실이 되지 않도록”
2026년 지방선거가 6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예년과 다름없이 후보들은 도시계획, 교통, 지역개발 등을 주요 의제로 삼겠지만, 필자는 오늘 ‘재난안전’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고 미래지향적인 공약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왜 재난인가.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의 한복판에 있다. 2022년 태풍 ‘힌남노’가 부산을 강타했을 때 기장군 정관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고, 해운대의 일부 해안도로는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해 가을, 해운대 엘시티 공사장 인근에서는 낙석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그 이전에도 산사태와 도로 침하, 지하주차장 침수는 해마다 반복되었다. 이처럼 부산, 특히 해운대와 기장은 도시의 브랜드와는 달리 재난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바다와 산이 인접하고 고층 건물과 밀집 주거지가 혼재하며 관광객까지 집중되는 이 지역은 자연재해와 도시재난이 한꺼번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의 재난 대응은 아직도 사고 후 복구 중심이다. 더 늦기 전에, 예방 중심의 정책과 기술로 ‘프레임 전환’을 해야 한다. 첫째, 부산형 재난관리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 매뉴얼을 벗어나 지역 지형에 맞는 재난지도와 생활권 중심의 대응계획이 필요하다. 예컨대 침수 위험지역(좌동천, 온천천), 산사태 위험지역(반송, 일광), 해일 위험지역(송정, 연화리) 등을 유형별로 구분하고, ‘재난관리 생활권 구역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재난관리 시민협의체(가칭 ‘위기 설계단’)를 만들어 주민, 소방, 경찰, 전문가가 함께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재난은 공무원이 혼자 막을 수 없다. 둘째, AI 기반 예측·경보 시스템을 지역 현장에 시범 적용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단지 산업에만 쓰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기장 정관 하천이나 해운대 좌동천에 AI 기반 침수 예측 시스템을 도입하면, 실시간 기상·하수관거·해수면 정보를 분석해 자동 경보를 울릴 수 있다. 드론, CCTV, IoT 센서를 연결하면 낙석, 균열, 산사태 징후까지 사전에 포착할 수 있다. 여기에 사용자 위치 기반 AI 경보 앱까지 더하면, 고령자나 관광객을 대상으로도 즉시 알림과 대피 유도가 가능하다. 셋째, 재난데이터 통합 플랫폼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부서마다 따로 관리되던 정보를 통합하고, 시민과 공유해야 한다. 부산시와 해운대구·기장군의 모든 위험요소와 사고 이력, 예방시설 상태, 기상자료 등을 한눈에 보여주는 AI 대시보드를 도입하고, 이를 웹 기반 플랫폼으로 연동시켜야 한다. 이 시스템은 단지 예보와 경보만이 아니라, 선거 이후 실행력 있는 재난 행정 평가 도구로도 작동할 것이다. 넷째, 시민참여형 예방 훈련을 제도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상징적 대피 훈련만으로는 실제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없다. 시민이 직접 앱 경보를 받고, 상황을 판단하고, 이웃을 구조해 보는 시나리오 기반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동(洞) 단위로 재난 자율대 조직을 꾸리고, 이들을 AI 안전통신망과 연계하면 대피명령 전달, 고령자 확인, 구조 요청까지 연결될 수 있다. 다섯째, ‘회복도시 해운대·기장’이라는 새로운 도시브랜드를 만들자. 부산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해운대가 단지 영화의 도시를 넘어, 재난을 이겨내는 도시로 세계에 알려질 수 있다. ‘재난·기후위기 대응영화 특별전’을 개최하고, UN재난위험경감국(UNDRR)이나 록펠러 재난 회복도시 네트워크 등과 협력해 국제도시와 교류한다면, 부산은 아시아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2026년 지방선거는 기후위기에 맞서는 첫 번째 선거가 되어야 한다. 공공의 안전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더 이상 영화 속 해운대처럼 ‘뒤늦은 후회’로 기억될 수 없다. 정치가 진심을 갖고, 시민과 기술이 함께 설계할 때, 우리는 재난을 이기는 도시를 만들 수 있다.
대만 유사시 놓고 미일-중 격돌… 한국은?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동북아 안보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집단자위권 행사 발언으로 중일이 격돌하고 있다. 총리 참수론 따위의 말 폭탄에 이어 무역 보복 조치로까지 번지며 확전하는 모양새다. 양국의 강 대 강 충돌은 미중 갈등을 배경으로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안보 지형 변화에 한반도가 무풍지대일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국면이다.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담아 13일 발표된 공동 팩트시트와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서 콕 집어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대만을 침공하려는 중국을 겨냥한 구도를 명확히 했다. 대만해협의 평화·안정 유지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 증대가 합의문에 포함된 것은 중국의 팽창을 막는데 주한미군을 앞장세우겠다는 의도다. ‘돈 잘 버는(money machine) 부자 나라를 왜 지켜 주느냐’라며 주둔 비용 인상을 압박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모습이 어색하게 겹치는 대목이다. 주한미군을 한반도 방위군이 아닌 동북아 기동군으로 쓰겠다는 구상은 20년 넘게 한미 양국에 뜨거운 감자였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 국방부 장관은 2004년 글로벌 방위 태세 검토(Global Defense Posture Review, GDPR)를 발표하고 주한미군의 역외 기동 능력 강화와 더불어 한미연합군의 통합적 작전 능력을 강조했다. 주한미군만의 독자적 작전이 아니라, 한국군과 함께 동북아 및 역내 여러 지역에서 동반 작전 수행을 전제한 것이다. 미군이 역외 분쟁 지역에 한국군을 데리고 다니겠다는 구상을 당시 노무현 정부가 받아들일 리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는 폭탄 발언으로 미국에 경고장을 날렸다. 우여곡절 끝에 2006년 1월 한미 외교장관 공동성명으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The ROK respects the necessity for strategic flexibility of the U.S. forces in the ROK. The U.S. respects the ROK position that it shall not be involved in a regional conflict in Northeast Asia against the will of the Korean people.’ 영문을 앞세운 이유는, 애당초 이 합의문이 영문으로만 발표됐고, 백악관 홈페이지에만 원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외교부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미국은 한국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동북아 지역 분쟁에 한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이 성명에 대한 미국의 해석은 일관됐다. 주한미군은 더 이상 대북 억지력으로서의 붙박이가 아니라 동북아 정세에 따라 한반도를 넘나드는 동북아 신속기동군을 자처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 정부의 인식은 전혀 달랐다. 2006년 11월 송민순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 주체, 즉 대명사 ‘it’이 한국군이 아닌 주한미군이라고 국회에서 대답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한국 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한 주한미군은 움직이지 못한다”며 같은 맥락의 주장을 폈다.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주한미군이 역외 분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합의문 해석의 논란은 한국 외교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2006년 이래의 관련 양해를 확인한다.’ 2025년 한미 공동 팩트시트에서 2006년 합의문은 중요한 전거로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은 2006년 합의를 발전시켜 한국군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전력 방어에 집중하는 대신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넘나들며 동북아의 기동군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미동맹을 손질하고 싶어 한다. 중국의 팽창에 주한미군이 직접 대응할 수 있으려면 이른바 동맹의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역대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원칙적으로 이해와 공감을 표명하지만, 주한미군의 대북 억지력이 약화하는 방향에 동의하지 않았고, 또 한국군이 한국 국민의 의지에 반하여 동북아 등 역외 분쟁에 자동 개입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대명사 ‘it’이 한국군이건, 주한미군이건 한국의 역외 분쟁 개입 가능성 차단이 역대 한국 정부의 기준이 된 것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동북아의 리베로가 된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니얼 드리스콜 미국 육군장관이 최근 방한해 주한미군이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모두 대응해야 한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논란이 커지자,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13일 국정감사에 출석해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주한미군의 전력 증강은 한반도 대북 억지력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전 정부의 인식과 연결돼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최근 사령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를 중국·러시아·북한을 견제하는 ‘전략적 중심축’으로 규정한 것도 한국인의 시선에서 마뜩잖다. 경기도 평택과 오산의 미군기지가 대북 방어가 아닌 대중, 대러 견제를 위한 불침 항모처럼 역할이 전환되는 것에 한국은 합의한 적이 없다. 최근 미 국방부(전쟁부)의 존 노 인도·태평양 차관보 후보자가 한국이 미국과 함께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설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도 동맹 간 공식 입장을 벗어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거론된 지 오래됐지만, 실제 실행된 적은 없다. 최근 중일 간의 충돌이 격화되는 양상을 보면 주한미군의 한반도 밖 출동이 언제 이뤄져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미국은 대만 유사시에 주한미군의 군사적 개입을 당연시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은 시험대에 오른다. 한국군의 동반 개입 혹은 지원을 요구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006년과 2025년 한미의 합의 문서에 따르면 주한미군이 유연화되더라도, 한국은 원치 않는 분쟁에 휩쓸리지 않아야 하는데, 두 조건의 양립 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70년 된 동맹의 가치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동맹은 출발부터 비대칭적 구조였지만, 내용적으로 시혜 동맹이 아닌 호혜 동맹이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베푸는 동맹이 아니라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동맹이라는 의미다. 미국은 자신들의 세계 전략에 비춰 동맹의 이해득실을 끊임없이 따져 왔다. 70년간 한미동맹이 유지된 데는 미국에도 그만한 쓸모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한미동맹을 통해 한국이 얻은 안전보장의 가치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동맹도 시대의 부침을 겪는다. 미국이 먼저 동맹의 성격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의존형 동맹에서 부담 분담형 동맹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한국 스스로가 방위력을 키우라는 의미다. 왜냐하면 주한미군에는 변화된 세계 전략 변화에 따라 새 역할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중국의 팽창을 견제해야 하고, 따라서 북한 방어를 넘어 인도·태평양 안보의 핵심축으로 격상시키려는 정책 기조가 분명해졌다. 70년 된 한미동맹의 실상은 합의된 문구와 현장 사이의 간극이 점점 커지는 형국이다. 한미동맹의 성격이 변해야 한다면, 그 변화는 정부 간의 협의로만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안보 정책일수록 공개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국민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이라는 단서가 구두선에 그치지 않으려면, 달라진 안보 환경에 걸맞은 동맹의 틀을 국민과 함께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동맹은 국민의 동의 위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
[김상훈의 포커스온] '서울 자가 김 부장'을 보며
요즘 화제작인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중년판 미생’으로 불린다. 대기업 부장으로 일하며 승승장구했던 50대 직장인 김낙수(류승룡 분)가 승진에서 미끄러지고, 한직으로 좌천되는 등 위기를 겪은 뒤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직장 생활의 희로애락을 코믹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해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드라마 속 승진 경쟁과 좌천, 사내 정치, 회식 문화, 희망퇴직 종용, 부동산 투자 실패 등을 보면 남의 얘기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내용 못지않게 눈길을 끈 것은 제목이다. ‘서울 자가’ ‘대기업 부장’은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이미지로 통한다. 극 중의 김낙수 역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부장’이라는 정체성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자존감을 채운다. ‘서울 자가’를 소유한 드라마 속 김 부장은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그가 첫 집을 장만하던 시절의 서울 아파트 가격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았을 것이다. 김 부장처럼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려면 이제는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4년가량을 꼬박 모아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2024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자가 가구의 ‘연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배수’(PIR·Price to Income Ratio)는 중간값 기준 13.9배였다. 서울 주택 가격 중간값인 8억 원과 평균 연 소득 5760만 원을 대입하면 나오는 수치다. PIR은 월급을 고스란히 모았을 때 집을 장만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뜻한다. 서울의 자가 가구 PIR은 2022년 15.2배에서 2023년 13.0배로 하락했지만, 지난해 증가로 돌아섰다. 권역별 PIR은 수도권이 8.7배로 2023년 8.5배보다 늘었다. 부산을 비롯한 광역시는 6.3배로 전년과 같았고, 도 지역은 2023년 3.7배에서 4.0배로 증가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전국의 자본이 ‘똘똘한 한 채’만 바라보며 서울 강남 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한강벨트 부동산으로 유입되면서, 수도권과 지방의 초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KB부동산의 월간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 전국의 아파트 5분위 배율은 12.1을 기록했다. 가격 상위 20% 평균을 하위 20% 평균으로 나눈 값으로, 배율이 높을수록 상위와 하위 가격 격차가 크다. 하위 20%인 지방 아파트 12.1채를 팔아야 상위 20%인 서울의 고가 아파트 1채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12월 해당 통계 집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였다고 한다. 서울의 고가 아파트가 연일 신고가를 쓰는 반면, 지방에서는 인구 유출과 집값 하락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수도권의 과열 양상과 지방의 공동화가 맞물리면서 지역 간 자산 격차는 더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는 수도권 주택 가격만 끌어올려 지역 간 주택 경기 양극화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8월 ‘세컨드 홈’ 적용 지역을 기존 ‘인구감소지역’에서 ‘인구감소관심지역’까지 확대했다. 강원 강릉·동해·속초·인제, 전북 익산, 경북 경주·김천, 경남 사천·통영 등 9곳이 추가로 ‘세컨드 홈’ 특례를 받게 됐다. 하지만 주택 가격 상승을 우려로 광역시는 제외했다. 취득세와 양도소득세를 완화하는 강력한 ‘세컨드 홈’ 정책을 광역시 등 비수도권 전반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 집을 사는 사람들에게 규제가 아니라 혜택을 오히려 늘리는 게 마땅하다. 수도권과 차별화된 지방 부동산 활성화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지방 부동산 침체 외에도 우려스러운 것은 청년층의 주거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월급을 수십 년 모아도 10억 원이 넘는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사기 어렵다. 고금리, 정체된 임금, 불안한 고용과 치솟는 집값 사이에서 이들의 내 집 마련 꿈은 요원해지고 있다. 정부가 청년 중심의 주거정책 대전환을 통해서 주거 사다리를 제공해야 한다. 청년 가구의 주거 실태와 생애주기별 주거 요구를 면밀히 파악하고, 실수요자에 대한 맞춤형 정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전세자금 보증 확대, 청년형 공공임대주택의 지역별 공급 확대 등 생활 기반 실질적 지원이 요구된다. 또 소득이 높은 청년들은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해 주택 구매 기회를 확대하고, 저소득 청년들에게는 지분적립형 주택을 공급해 자산 형성 기회를 늘려줘야 한다. 지금 한국은 부모의 경제력이 자식의 인생을 결정짓는 부동산 세습 사회 조짐도 보인다. 청년의 노력만으로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청년의 주거 이전과 자산 형성이 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청년 주거 사다리가 무너지면 자산 격차와 삶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집 한 채가 인생을 갈라놓아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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