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 대책에도 현장서는 주사기 품절, 의료 대란 막아야
중동 전쟁 장기화 여파로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확보에 문제가 생기면서 의료 소모품 수급 불안정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14일부터 주사기와 주사침 매점매석 행위를 금지하고 집중 단속을 하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선 주사기 구입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매일 ‘주사기 생산 등 일일 수급 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21일 17시 기준으로 주사기 생산량은 435만 개, 출고량은 555만 개, 총재고량은 4646만 개에 달한다. 보건복지부는 22일 주사기, 주사침, 약포지, 시럽병 등 주요 의료 제품 생산량이 전년과 비교해 차이가 없다고 밝혔지만, 정작 의료 현장 체감도는 확연히 다른 셈이다. 실제로 부산 지역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료 소모품 품귀 현상은 심각하다. 의료 소모품 전문 쇼핑몰에선 주사기, 주사침 등이 품절 상태라고 한다. 의료기 재료상도 비슷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병원들은 주사기, 주삿바늘, 거즈, 알코올 솜 등 의료 소모품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심지어 치과 원장이 생리식염수 팩을 사기 위해 동네 약국을 전전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대학병원도 주사기류 수급 곤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입찰을 통해 도매상에서 납품받고 있지만, 1주일 단위로 버티는 형편이라고 한다. 정부가 이달 “나프타를 의료 제품 생산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장 불안은 가라앉지 않는 게 현실이다. 병원들은 재고 부족에 더해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이중고를 겪는 상황이다. 부산 지역 대학병원 한 곳은 납품업체로부터 주사기 가격 25% 인상을 비롯해 약 포장지와 투약 병 가격 15~16% 인상을 이미 통보받았다. 의료폐기물 플라스틱 박스값은 벌써 올랐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골판지 박스도 기름값 상승에 따른 운송비 급등으로 16.7% 인상을 요구받은 상태라고 한다. 의료 소모품 수급난이 갈수록 악화한다면 환자 진료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크다. 나아가 지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진료까지 영향받는다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의료 소모품 수급난이 개선되지 않으면 의료진과 환자의 불안감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20일부터 의료 소모품 유통망 안정화를 위해 특별 단속을 시행 중이다. 부산시도 23~24일 6개 판매업소를 대상으로 현장 점검에 나선다고 한다. 사재기 금지, 현장 단속 등을 통해 시장 불안을 잠재우고, 의료 대란까지 번지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동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질수록 주사기, 의료용 장갑 등을 만드는 나프타 확보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공급망 위기가 고착된다면 의료 소모품 품귀 현상 해소는 쉽지 않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나프타 등 원료 배분과 비축, 대체 조달 체계 구축 등 국가 차원의 공급망을 재설계해야 한다. 위기 때마다 땜질 처방만으론 혼란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설] PK에서도 독자 선대위 움직임, 결단 요구받는 장동혁 대표
한 정당의 대표는 정당의 방향을 정하고 당을 대표해 대외적인 책임을 지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선거 전략 수립과 당내 갈등 조정, 주요 정책 결정 등에서 중심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당 대표의 역할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선거를 앞둔 정당의 선거 전략 총괄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지방선거를 바로 눈앞에 둔 시점에 당 대표를 향해 국민의힘 내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행태는 아주 이례적이다. 당 대표가 주도하는 중앙 선대위와 별도의 독자 선대위를 구성하겠다는 움직임이 줄을 이을 정도이니 당 대표의 리더십 자체가 궁지에 몰린 형국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에 재도전하게 된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21일 국회에서 “지역 선대위의 역할과 기능을 훨씬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 중앙 선대위와 별도로 독자 선대위를 구축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앞서 서울시장 후보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아예 장동혁 당 대표를 겨냥해 “후보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고 직격하며 독자 선대위 구상을 내비쳤다. 강원도지사 후보인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22일 강원도 현지에서 진행된 장 대표의 현장 공약 발표 일정에 참석해 면전에서 “결자해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사실상 장 대표의 2선 후퇴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힘 지방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와 절연에 가까운 움직임까지 보이고 나선 것은 장 대표의 갑작스런 방미가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많다. ‘빈손 방미’ 자체도 비판의 대상이 됐지만 국힘 내부적으로는 “각종 공천 파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논란만 키우던 당 대표가 미국에 가 있으니 오히려 당이 더 평온한 느낌”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외부적으로는 장 대표의 방미 기간과 탈출 기간이 겹친 동물원 늑대 ‘늑구’와 비교하는 평행이론이 눈길을 끌며 희화화했다. 당내에선 벌써부터 홍준표 전 당 대표가 지원에 나섰다가 인기가 없어 패싱당하고 당이 대패한 2018년 지방선거의 악몽을 떠올리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비판과 외면에 이어 결단을 요구받고 있음에도 국힘 장 대표는 태연한 모습이다. 그의 이 같은 행보 뒤에는 ‘빈손 방미’까지 추켜세우는 강성 지지층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당 지지율 급락세에도 그가 합리적인 보수층이나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이유라는 얘기도 나돈다. 하지만 선거일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고 외연 확장 없이 승리의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건 자명하다. 정치권을 대표하는 제1야당의 궤멸적 붕괴는 권력의 견제와 균형 측면에선 비극이다. 결단을 요구받은 이상 공당의 대표로서 장 대표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 결정이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하다.
[사설] '부산 글로벌법' 폐기 수순, 시민 열망 끝내 외면한 민주당
집권여당이 결국 ‘부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폐기 입장을 굳혔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원장은 21일 글로벌법이 변화된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해양수도 육성을 골자로 전면 재설계한 새 법안 추진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폐기 결정 과정과 배경이 석연치 않고, 새 법안에 담길 내용과 추진 계획도 안갯속이어서 지역 사회는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의 ‘포퓰리즘·형평성’ 언급 이후 민주당이 급선회한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 부처 검토 후 여야가 함께 발의해 이견이 전혀 없었고, 160만 명이 입법 청원에 서명한 점을 감안하면 정치적 고려 때문에 시민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글로벌법은 한때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삭발까지 감행하며 법안 처리를 요구하고, 대표 발의자인 전재수 의원이 ‘여권 설득’을 장담하고 나서자 국회 행안위를 순식간에 통과한 것이다. ‘이럴 걸 지금껏 끌었나’하며 2년 문전박대의 설움을 잊고 감격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대구·경북은요?”라면서 제동을 걸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글로벌법은 또다시 민주당의 침묵과 방관 속에 길을 잃었다. 21대 국회 때 제출됐다가 폐기되고, 22대 때 재차 여야 공동발의된 뒤에도 거대 여당의 일관된 무시 끝에 글로벌법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신산의 고비고비를 지켜본 부산 시민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말았다. 글로벌법 몽니의 이면에는 정책의 타당성이 아닌 여야 주도권 경쟁에 있다는 의구심은 합리적이다. 민주당이 폐기의 이유로 6·3 지방선거에 출마한 박형준 시장과 박완수 경남지사 주도로 국민의힘이 발의한 행정통합법안과의 충돌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글로벌법은 산업·기능 중심의 거점도시 전략이고, 통합특별시법은 행정 체계와 권한 재편이 초점이다. 특별시로 묶인다 해도 부산과 경남 각 도시의 기능과 전략이 없어질 수 없고, 오히려 글로벌법에 따른 물류·금융·교육 특구 지정이 부산 경계를 넘어선 광역화를 촉진할 수도 있다. 글로벌법이 선행되는 것이 행정통합을 견인하는 데 도움이 되고 종국에는 시너지 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거대 여당의 글로벌법 폐기는 지역민에게 ‘희망 고문’을 강요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부산의 대도약을 위해… 보완하고 기능은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하겠다고 한다. 더 좋은 법안을 마다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지금까지 민주당이 보인 방식과 태도다. 지난 2년간 아무런 이유 없이 청문회조차 미루면서 철저히 외면하더니, 돌연 급행 처리 수순에 들어갔다가 또 석연찮은 이유로 폐기를 결정한 과정에서 이미 신뢰를 잃었다. 민주당은 폐기의 이유와 재설계 방향, 입법 시한을 명확히 밝히고 공론에 부쳐야 할 책임이 있다. 만약 정치적 셈법으로 도시의 미래 설계도를 흔드는 시도로 드러나면 거센 시민 저항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무안공항 재수색
2024년 말 발생한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여파가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당시 잔해 수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유해와 유류품에 대한 전면 재수색이 시작됐고, 수백 점의 유해 추정 물품과 유류품이 발견돼 수색은 5월에도 계속될 예정이다.광주·전라 지역엔 베트남 일본 등 가까운 곳으로 가는 국제선 운항도 아예 안 돼 지역민들이 국제선을 타려면 인천공항 등으로 떠나야 한다. 유족들이 철저한 진상 규명을 외치고 있는 가운데 사고 원인에 대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사고 원인에 대해선 추후 발표가 있겠지만, 여객기와 강하게 충돌한 콘크리트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의 부실 설치가 많은 사망자를 낳은 핵심 원인이라는 분석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면 무안공항엔 왜 이렇게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구조물이 설치됐을까.기자는 국토교통부를 오랜 기간 출입했다. 공항 정책도 많이 취재했다. 국토부의 공항 정책은 인천공항을 세계적인 공항으로 만드는 데 집중됐었다. 다른 공항은 그냥 유지만 하면 되는 공항이었다.무안공항 참사는 지방공항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낳은 사고다. 국토부는 무안공항 참사 이후, 전국 공항의 로컬라이저를 전수 조사했는데, 그중에 문제가 전혀 없는 로컬라이저는 인천공항과 김포공항밖에 없었다.공항의 안전시설은 승객 100만 명이 이용하든, 5만 명이 이용하든, 그 규모에 상관없이 동일한 기준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철도역이나 버스터미널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위험도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공항에 대한 국토부의 배타적 태도는 결국 많은 사람의 희생을 불렀다.수도권 언론도 편승했다. 지방에 공항을 만든다는 것은 나라 예산을 쓰레기통에 처박는다고 생각하는 언론이 대부분이다. 7~8년 전쯤 김해공항 주차장 포화로 한국공항공사는 주차타워를 짓겠다고 국토부에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국토부는 허용하지 않았다. 도로와 철도는 전국 교통망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지방에도 속속 건설됐지만 공항은 인천공항 외 지방공항은 스스로 경쟁력을 키울 기회도 없었다.우리나라 공항정책은 지역 편향성과 수도권 중심주의가 그대로 반영됐다. 수많은 언론들이 이에 동조했다. 지방공항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 이것이 무안공항 참사를 낳았다. 김덕준 세종취재부장 casiopea@
논설주간/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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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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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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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식의 일필일침] '피란수도 유산' 등재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들
2016년 12월 초.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향한 여정은 이때부터 본격화한다. 이에 앞서 그해 11월, 관련 조례가 제정되면서 부산시 세계유산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 부산근대역사관, 부산지방기상청 등 모두 14곳을 피란수도 유산 목록으로 확정하고 이를 문화재청에 등재 신청하기로 의결한다. 그해 12월 20일 문화재청에 공식 신청서가 제출된다. 피란의 역사가 부산을 넘어 세계로 확장되는 첫걸음이었다. 그로부터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부산시는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 유산’을 올해 유네스코 예비평가에 신청할 예정이다. 예비평가는 국제 전문가의 검증을 거치는 사전 단계로, 등재 가능성을 가늠하는 잣대 역할을 한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올해 7월 부산에서 열리면서 그 기대감은 더 커지고 있다. 피란수도 유산 등재 추진은 도시의 아픈 과거를 지우지 않고 인류가 함께 이해할 가치로 확장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세계유산은 흔히 기대하는 것처럼 도시의 기쁨이나 명예로만 오롯이 다가오진 않는다. 오히려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것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체계다. 그런 점에서 등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성과라기보다 책임에 가깝다. 그렇기에 바로 이 지점에서 냉정한 점검이 필요하다. 우선 유산 구성의 설득력이다. 당초 14곳에서 11곳으로 줄어들었지만 현재의 목록이 통합된 서사를 이루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 기능, 피란민의 삶, 국제 협력의 흔적 등 각 요소의 의미는 분명하다. 핵심은 이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연결되는가다. 특정 지역 경험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로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물 공급 시설이나 배수지 같은 기반 시설은 전쟁기 도시 유지에 필수적이었음에도 그 중요성이 직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일부 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 문제도 남아 있다. 부산시민공원(옛 하야리아 부대)처럼 원형이 훼손되거나 재구성된 공간은 피란수도라는 핵심 주제와의 연결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유산은 무조건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명확할수록 좋다.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는 이유다. 보존과 관리 역시 중요한 과제다. 등재는 강한 규제와 책임을 수반한다. 보호구역 설정과 건축 제한은 도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사유재산이 포함될 경우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재산권 제약과 생활 불편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공감 없는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 개발과의 충돌 가능성도 현실적이다. 부산항 1부두처럼 북항 재개발과 맞물린 지역은 세계유산 등재가 도시 발전 전략과 충돌할 수 있다. 우리는 근래 일어난 ‘서울 종묘 인근 경관 사태’에서 이를 확인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근대 건축자산 진흥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세계유산 등재가 ‘답정너’가 아니라면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유산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경계해야 한다. 등재만으로 관광 활성화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관리 비용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규제는 생활과 개발을 제약한다. 심지어 지역 갈등이 커지는 사례도 있다. 실제 영국 리버풀 등 몇몇 도시는 개발과 보존 사이의 간극으로 세계유산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기도 했다. 세계유산은 만능 해법이 아니란 얘기다. 유산은 특정 기관의 소유물이기도 하지만, 시민의 삶과 기억이 켜켜이 쌓인 흔적이며 지역 공동체의 자산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방향 역시 공동체의 참여 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그동안 제대로 된 시민 공청회가 한두 번밖에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지역의 공감과 참여 없이 추진되는 정책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제대로 할 거라면 전담 조직도 꼭 필요하다. 지난 9일 부산연구원이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개최한 '유네스코 예비평가 대응'을 주제로 한 피란수도 부산 제1차 학술포럼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제기됐다.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다만 충분한 준비와 숙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답정너’가 돼선 곤란하다. 피란수도 유산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 공동체가 어떻게 버텨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록이다. 그 가치는 외부의 인정 이전에 내부의 이해와 공감 속에서 먼저 완성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 왜 그것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을 우리가 함께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해질 때, 세계유산 등재는 비로소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배학수의 문화풍경] 비틀거릴 자유… 디지털 시대 칸트의 전언
4월은 '칸트의 달'이라 불러도 좋다. 1724년 4월 22일, 발트해 연안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난 임마누엘 칸트는 규칙적 일상에 갇힌, 다소 따분한 학자로 흔히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 정신의 판을 뒤흔든 급진적 혁명가였다.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계몽'이다. 계몽주의는 교회의 도그마에서 정신을 해방하고, 이성 위에 사회를 재건하려는 운동이었으며, 칸트는 이것을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 상태로부터의 탈출"이라 정의했다. 계몽은 지식의 양이나 질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겠다는 의지의 문제다. 미성숙의 사슬을 끊고 자립하라는 칸트의 준엄한 명령이 바로 "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 알고자 결단하라)이다. 시대에 대한 칸트의 진단은 따끔한 심리학적 통찰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미성숙'한 상태에 머무는 이유는 지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알고자 결단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고 보호자의 말을 따른다. 성인 역시 스스로 판단하는 책임 대신 타인에게 의존하는 편안함을 선택하곤 한다. '스스로 알고자 하는 결단의 부재'가 곧 칸트가 경계한 미성숙의 본질이다. 이 상태를 고착시키는 주범은 '게으름과 비겁함'이다. 1784년 칸트가 남긴 한 문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돈만 지불할 수 있다면, 나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는 돈이 지적 노력을 면제받는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꼬집었다. 우리는 지혜를 얻기 위해 책을 사고, 결혼·직업·투자와 같은 삶의 결정을 대신 내려줄 '후견인'에게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영적 번뇌는 목자에게, 신체 관리는 의사에게 떠넘기며, 홀로 서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할 '비틀거림의 공포'로부터 비겁하게 도망치는 것이다. 안전을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칸트가 말하는 '가축'이 된다. 후견인들은 이 '순한 생명체들'이 '보행기'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도록 공포를 심어준다. 홀로 걷는 위험은 사실 허상이다. 몇 번 넘어져도 결국 걷는 법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비틀거림에 겁을 집어먹은 우리는 다시 후견인의 품으로 도망치고 만다. 오늘날 칸트의 경고는 주머니 속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우리는 과거의 후견인을 두 가지 강력한 대체물로 바꾸어 놓았다. 첫 번째는 스마트폰에서 작동하는 구글이나 AI 기업의 '디지털 알고리즘'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구독료와 데이터를 지불하며, 무엇을 믿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리즘이 대신 결정해 주는 편리함을 누린다. 두 번째는 인플루언서와 온라인 컨설턴트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추종하며 스스로 연구하는 수고를 덜어버린다. 두 경우 모두, 안락함을 위해 사유의 주권을 양도하고 있는 셈이다. 주권을 넘겨받은 이들 새로운 후견인이 우리를 지배하는 수단은 칸트가 말한 '강령과 공식'이다. 1784년에는 이것이 교회의 교리였다면, 2026년 오늘날에는 인터넷의 완성형 답변들이다. 디지털 스트림은 우리에게 정신적인 족쇄가 되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퇴화시킨다. 결국 우리는 '디지털 보행기'를 잡고 걸으며, 독립적인 판단을 두려워하는 '겁쟁이 기계'로 전락하고 만다. 기계적인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 칸트는 무정부주의적 반란이나 고립을 제안하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검색 엔진과 전문가의 조언 없이 살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칸트는 '이성의 공적 사용과 사적 사용'을 구분해 지적 태도에 차이를 둘 것을 요구했다. 칸트의 공·사 개념은 흔히 쓰는 개념과 정반대이다. '이성의 공적 사용'은 국가 기관이나 공공 부문에서 이성 사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지성인으로서' 세계 시민이나 독자 세계를 향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자유로운 소통의 장을 말한다. 반대로 '사적 사용'은 국가나 조직이 부여한 특정한 직무나 직책(공무원, 군인, 은행원 등) 내에서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기계처럼 작동하고,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모든 개인은 동시에 '지성인으로서의 자질', 즉 지성적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지니고 있다. 이 '이성의 공적 무대'에서 우리는 지성인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공동체의 질서와 구조에 대해 비판적 담론에 참여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다. 우리 시대의 '보행기 끈'은 디지털 인터페이스 속에 촘촘히 엮여 있다. 그러나 칸트 탄생의 달인 4월은 인간의 존엄성이 자율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상기시킨다. 지금이야말로, 오래된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사페레 아우데!" 보행기 없이 걸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도시를 걷는 미술관 아로스(ARos)가 만든 감각의 풍경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의 동쪽 해안에 자리한 오르후스(Aarhus)는 수도 코펜하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미튈란 지방의 항구도시다. 항구를 기반으로 성장한 이 도시는 산업의 기억 위에 예술과 디자인을 덧입히며 스스로를 북유럽의 문화 도시로 재정의해 왔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아로스 오르후스 미술관(ARoS Aarhus Art Museum)이 있다. ‘아로스(ARoS)’라는 이름은 고대 노르드어 ‘Á(강)’와 ‘ós(하구)’에서 비롯된다. 직역하면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 곧 도시의 기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미술관은 이름에서부터 도시의 시간과 장소성을 끌어온다. 과거의 지명을 현재의 문화 공간으로 전환하는 이 명명 방식은, 건축이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장치임을 드러낸다. 2004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덴마크 건축사무소 슈미트 하머 라센의 설계로 완성되었다. 외관은 절제된 직육면체지만, 내부는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중앙의 거대한 아트리움과 이를 따라 이어지는 나선형 동선은 관람자를 위로 끌어올린다. 이 수직적 흐름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다. 관람자는 작품을 보면서 동시에 건축을 경험한다. 이 미술관을 세계적 명소로 만든 결정적 요소는 옥상에 설치된 “당신이 걷는 무지개 풍경(Your Rainbow Panorama)”이다. 덴마크 출신의 현대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 설계한 이 원형 보행 구조물은 도시를 무지개의 스펙트럼으로 재구성한다. 관람자는 같은 풍경을 전혀 다른 색채로 경험하며,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다시 보게 된다. 이는 단순한 전망대가 아니라 도시 인식 자체를 전환하는 장치다. 소장품 역시 이 건축적 경험과 긴밀하게 맞물린다. 18세기 덴마크 회화에서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컬렉션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북유럽 현대 미술과 대형 설치 작업에 강점을 보인다. 작품은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함께 작동하며, 미술관은 보관의 장소를 넘어 경험의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결국 이 미술관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미술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많은 작품을 모으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아로스는 그 답을 하나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건축과 예술, 도시를 하나의 순환 속에 놓는다. 관람자는 그 안을 걸으며 시선과 감각을 갱신한다. 오늘날 많은 도시가 상징적 건축을 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관계다. 건축이 도시와 어떻게 연결되고, 사람의 경험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달려 있다. 이곳에서 건축은 배경이 아니라, 도시를 다시 보게 만드는 하나의 시선이 된다.
[데스크 칼럼] 내 데이터로 돈 버는 기업, 데이터 배당 어떤가
최근 미국 빅테크 기업 메타가 새로운 AI 모델 ‘뮤즈 스파크’를 발표했다. 메타는 뮤즈 스파크가 ‘개인 맞춤형 AI’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용자의 사용 경험을 AI가 학습해 ‘개인화 경험’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메타가 수집한 방대한 양의 사용자 정보가 AI 서비스에서도 수익화의 핵심 요소가 되는 셈이다. 메타는 올해 광고 수익이 처음으로 구글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AI 기반 맞춤형 추천 시스템으로 광고 효율을 높인 결과다. AI 추천 기능으로 메타의 숏폼 서비스인 릴스 시청시간도 30% 이상 증가했다. 이는 광고 노출 확대와 수익 증가로 이어졌다. 메타는 35억 명 이상의 1일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공유’ ‘댓글’에서 가입자 위치정보, 기기 정보 등은 메타의 ‘초정밀 개인 데이터’로 변한다. 메타는 이를 기반으로 ‘타깃 광고’를 판매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구글도 가입자의 검색어, 유튜브 사용 행태, 지도 사용 행태 등을 분석해 타깃 광고를 판매한다. 아마존도 가입자의 구매 이력, 검색 기록, 장바구니 데이터, 배송 주소, 동영상 서비스(아마존 프라임) 시청 이력 등으로 구매 의도를 분석해 수익으로 전환한다. 아마존의 경우 실제 구매 행동 데이터라는 점에서 더 높은 광고 단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플랫폼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검색어, 쇼핑, 지도, 블로그, 카페 등의 이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화 검색·디스플레이 광고를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빅테크 기업들이 수익화에 열을 올리는 개인 데이터는 실제로 어느 정도의 시장 가치가 있을까. 사이버보안 기업 프로톤(Proton)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 거주자의 개인 데이터는 구글과 메타(페이스북)에서만 연간 최소 700달러의 수익을 만든다. 빅테크 수익의 원천인 개인 데이터는 ‘브로커’를 통해 대규모로 거래되고 있다. 시장분석기관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 브로커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2704억 달러로 평가됐다. 전 세계적으로 최대 5000개의 데이터 브로커가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데이터 브로커 시장에서 68%는 소비자 데이터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에서도 데이터 거래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데이터산업협회의 ‘2025 데이터산업 백서’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 판매 및 중개 서비스업’ 시장규모는 2024년 기준 3조 3818억 원으로 추산됐다. 이처럼 개인 데이터가 빅테크의 수익화 원천으로 활용되고 대규모로 거래되는 상황에서도 데이터의 주인인 개인은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은 개인 데이터 수집과 활용의 대가로 자신들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SNS 등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는 대신 개인 데이터를 사용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인들이 자신과 관련된 수많은 정보를 팔아서 빅테크의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들이 자기 데이터의 시장 가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서비스 대가로 공짜로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개인이 자기 데이터를 직접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현행 제도에서 불가능하다. 현재 정부 주도로 ‘마이데이터’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개인이 본인 정보 열람에 대한 권한을 일정 부분 행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와 관련, 해외에선 개인에게 데이터 사용료를 직접 지불하는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데이터 배당’(data dividend) 제도가 제안됐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이 제안한 데이터 배당은 개인 데이터로 창출된 부를 기여자인 개인에게 배당금 형식으로 되돌려 주는 방식이다. 데이터 의존성에 따라 기업에 세금을 부과, 이를 재원으로 공공재에 투자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영국에서는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데이터 거래 플랫폼에 개인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 제안됐다. 개인이 자신의 금융, 의료, 신체활동, SNS 활동 등 정보를 직접 저장, 관리할 수 있고 데이터 수요처에 이런 데이터 사용을 허락하는 대신 보상을 받는 방식이다. 개인 데이터 수익화에 대한 개인 보상은 규제 방식으로 시행될 경우 자국 기업의 부담만 커지는 ‘역차별’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개인이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민간 시장 육성이 중요하다. 이 경우 기업도 데이터 수집과 거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정부가 태양광 산업에서 추진하는 ‘햇빛연금’처럼 개인 데이터 사용 대가에도 관심을 가진다면 데이터 배당도 현실화될 수 있다. 김종우 서울경제부 부장 kjongwoo@busan.com
[중앙로365] 이것이 왜 산업재해가 아닌가
지난 2월, 경찰행정학을 공부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19세 여성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하던 직장에서 고용주인 40대 남성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겪고, 즉시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범행 전후 CCTV에서 피해자가 웃고 대화하고 보행하는 모습이 확인된다는 점, 가해자가 ‘합의한 관계였다’고 진술했다는 점과 주변 진술을 근거로 피해자가 항거 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며 가해자에 대하여 무혐의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이 이뤄진 지 3일 만에, 피해자는 “(성관계) 동의 의사를 보인 적이 없으며,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피해자의 죽음으로 사건이 공론화하는 일이 여전히 반복되는 현실이 참담하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는 최선을 다해 용기를 냈고, 적극적으로 국가에 구조 신호를 보냈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유언이나 다름 없었던 이의신청에 따라 재수사가 이루어졌지만, 경찰은 수사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반복했다. 이에 지역 시민단체가 모여 꾸린 공대위에서는 기자회견을 열어 “수사 시스템은 40대 사장과 10대 알바생의 권력 격차를 완전히 무시했다“며 ”청소년이라는 사회적 약자, 노동자라는 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공권력의 사법적 사살”이라고 분노했다. 공대위의 이와 같은 지적은 이 사건이 형사사법 시스템과 노동 보호 시스템이 동시에 실패한 사건이라는 점을 짚고 있다. 고용주가 성폭행한 10대 알바생 사법과 노동 보호 시스템 실패에 항의유서 남기고 스스로 삶 마감 단시간 노동자 인권 침해 사안이 남녀 관계 문제로 돌변했던 현실 산업재해 본질 되묻게 하는 죽음 먼저 형사사법의 실패부터 보자.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명서를 통해 준강간 사건에서 피해자가 사건 정황을 기억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면 심신 상실과 항거 불능이 아니었다고 하고, 반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진술이 부족하다며 범죄 성립을 부정하는 수사기관의 전형성을 비판한다. 고용주와 단시간 노동자 간의 권력 관계를 이용한 가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수사라는 것이다. 경찰이 아직도 현행 강간죄와 준강간죄의 구성요건에 갇혀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지 못한다면 비동의 강간죄 도입이라는 입법적 해결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보다 앞서 강간죄를 ‘부동의 성교죄’로 바꾼 일본 역시 4건의 성폭력 무죄 판결로 뒤떨어진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낸 사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촉매가 되어 입법 활동을 이끌었다. 일본의 사례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해자의 ‘합의’ 주장은 근거도 없이 수용하면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 수사 관행은 국민 눈높이와도 맞지 않는 뒤떨어진 인식으로 분노만 자아낼 뿐이다. 노동 보호의 실패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무원 사이에는 간이며 쓸개를 집에 걸어두고 출근해야 한다는 농담이 있다. 비단 공무원 사회뿐만이 아니다. 직장생활에서 마음속 진의와 상관없는 사회적 미소를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짓도록 요구받는다. 거기다 직장에서 갖는 회식 자리는 엄연히 업무의 연속이다. 경찰은 CCTV 속 피해자의 미소를 성관계 합의의 증거로 읽었지만, 그것은 업무의 연장선인 회식 자리에서 10대 아르바이트생이 40대 고용주 앞에서 지어야 했던 노동 현장의 언어였다. 그러나 수사 시스템은 그 권력 관계를 사적인 남녀 간의 문제로 환원해버렸다.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는 중대재해에 해당한다. 이 사건은 단시간 노동자로서 직장에서 가장 악질적인 형태의 직장 내 괴롭힘 혹은 성희롱 피해로 인권을 침해받은 사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노동자의 인권 침해를 막아서고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근로기준법이나 남녀고용평등법, 산업안전보건법은 이 사건에서 전혀 작동하지 못했다. 정부는 이 사건을 통해 단시간 노동자가 인권을 침해받고 안전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책임을 느끼고 뼈아픈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했던 김지은 씨는 “내가 지키고 싶은 나의 전부인 ‘노동자 김지은’으로서의 삶을 걸고 미투를 해야만 했다. 그 분야에서 쌓아온 저의 미래도 함께 버려야만 했다”고 회고한다. 이처럼 갑의 위치에 선 고용주의 성폭력은 노동자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다. 단시간 노동자가 고용주의 갑질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는 충격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가해자를 처벌하고 일상을 회복하고자 했으나 수사기관은 사적인 남녀 관계의 문제로 사안을 보았음은 물론 피해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비동의 강간죄가 부재하고, 근로기준법과 고용평등법이 침묵하고, 경찰이 성인지 감수성을 망각한 바로 그 사각지대에서 한 10대 청년 여성 단시간 노동자가 죽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산업재해 혹은 중대재해가 아닌가.
[다른 시선으로] 젠더의 천륜
일본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문제는, 첫째로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와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가 거기에 함께 합사된 것이고, 둘째는 그 모두를 함께 추모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마땅한 일이며, 거기에 가해와 피해를 따지는 일이 덜 인간답다는 인식이 그로 인해 유포되는 것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는 전쟁의 피해와 가해를 엄정하게 따지는 일이 마치, 사람이면 마땅히 기리고 애도해야 할 추도를 하지 말자는 냉혈한의 입장으로 보이게 된다.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추모도 마찬가지다. 어떤 성폭력 가해자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 그 사람을 어떻게 추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으레 따라붙는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그 죽음은 피해자에 대한 최종적인 가해에 가깝기 때문에 가해자를 공적으로 추모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럴 때 마주하는 목소리 중 하나는,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추모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젠더 외치는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느냐는 반응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성폭력 가해자 공개 추도를 반대하는 것은, 그걸 말하는 사람에게 피도 눈물도 없기 때문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값이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부디 공평히 배분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가해자에 대한 인간적 추모를 강조하는 사람이, 그 사건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인간적 추모에 그만큼 관심을 갖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온갖 사회적 지탄을 감당할 가해자가 앞으로 대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이냐며 가해자에 대한 인간적 연민을 강조하는 사람이, 그 사건 피해자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비슷한 관심을 갖는 경우도 거의 드물다. 핵심은 가해자의 삶과 죽음을 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삶과 죽음을 그보다 조금 더 많이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모든 사람의 삶과 죽음이 이미 같은 값을 가졌다고 믿고는, 자기와 좀더 친하거나 아무리 봐도 힘세 보이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먼저 감정이입한다. 그렇게 자유주의적으로 구성된 연결망이 피해와 가해를 따지는 일을 만나 한번 깨어지면, 그 사람은 그걸 따지려는 상대가 마치 천륜을 깬 것만 같은 강렬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젠더를 외치는 사람이 내가 알던 천륜을 깬 것 같은 이유는, 같은 하늘 아래 내가 짐작하지 못한 곳에서 그 천륜을 마땅히 함께 누려야 했을 다른 사람을 마주하기 위해서다. 세상에는 놀랍게도 내가 믿어온 추모와 슬픔의 항아리가 깨지는 편이 정의로울 때가 있다. 내 천륜만이 천륜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과 죽음이 마침내 같은 값을 지니기 위한 길은 그처럼 멀고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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