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석열 내란죄 무기징역, 이제는 어두운 역사와 단절해야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와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비상계엄 선포 443일 만에 나온 이번 판결은 헌정 질서를 뒤흔든 국가적 위기에 대한 사법부의 단호한 응답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는 19일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곧바로 내란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헌법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목적이 인정될 경우 내란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군을 국회로 보낸 행위를 사건의 핵심으로 규정하며 체포조 편성, 선관위 점거 시도 등을 폭동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권력은 없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행위가 형법상 내란죄의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국가 위기 상황을 내세운 피고인 측 주장에 대해서는 명분과 목적을 혼동한 논리라고 선을 그었다.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개시 권한 역시 인정하며 수사 절차의 적법성을 확인했다. 다만 장기 독재를 위한 사전 기획이라는 공소사실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른바 ‘노상원 수첩’의 신빙성도 부정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죄가 인정돼 징역 30년이 선고됐다.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유·무죄 판단도 엇갈렸다. 법은 감정이 아닌 증거와 논리로 판단한다는 사법의 기본을 보여준 판결이었다. 12·3 사태는 전시나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전혀 없었음에도 대통령 개인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유화해 입법권과 사법권을 침탈하려 한 사건이다. 이는 국가 안전을 위협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중대 범죄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정치권 또한 달라져야 한다. 계엄 사태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여야의 태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국민의힘은 뒤늦은 사과와 내부 갈등을 반복하며 과거와의 단절에 미온적이고, 위기 대응보다 진영 결집에 치우친 모습으로 국민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다수 의석을 앞세운 입법 전략과 권력기관 개편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제 변하지 않는 정치 후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 우리는 12·12와 5·18을 거치며 전두환 등 내란의 주범들을 법정에 세워 민주주의의 가치를 회복한 경험이 있다. 이번 판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어떠한 권력도 헌법 위에 존재할 수 없으며 민주적 절차를 벗어난 국가 운영은 용인될 수 없다는 원칙의 재확인이다. 다시는 이 땅에서 누구도 내란을 획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권력 구조의 오만과 제도의 허점을 바로잡고 정치 문화의 후진성을 극복하는 일이다. 오늘의 선고가 또 하나의 기록으로만 남을지, 아니면 어두운 역사와 단절하는 전환점이 될지는 우리 사회 전체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사설] 지선 앞두고도 반복되는 선거구 깜깜이, 근절 대책 없나
6월 3일 치르는 2026 지방선거가 3개월여밖에 안 남았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선거를 위한 기본적인 틀조차 여전히 불확실성에 놓였다. 민주당이 이달 중으로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며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광역 행정통합 관련 특별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기에 선거가 과연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까지 나온다. 어제까지 국회에서 개정했어야 하는 공직선거법이 끝내 개정되지 않아서다. 공직선거법 개정 무산은 전국의 모든 지방의회 선거구 자체가 법적 효력을 잃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써 오늘부터 시작돼야 할 지방선거 관련 사무는 오리무중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공직선거법은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지방의회 의원 선거구 규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이른 시일 내 개정이 이뤄졌어야 했다. 인구 5만 명 미만 지자체에도 광역의원 1명을 보장해 농어촌 대표성을 기하려 한 기존 공직선거법이 ‘표의 등가성’을 침해했으므로 인구 편차를 줄여야 한다는 게 헌법 불합치 이유였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2026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 시작일인 오늘을 염두에 두고 어제(19일)로 법 개정 시한까지 지정했다. 하지만 해당 시한까지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기존 법에 따라 정해진 선거구는 무효가 됨으로써 예비후보 등록부터 극심한 혼선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공직선거법이 기한 내 개정되지 못한 것은 주요 내용인 선거구 획정을 위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논의가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개특위는 지난달 13일 1차 전체회의를 열어 공식 가동에 들어갔으나 선관위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은 이후 활동 소식이 없다. 법 개정 무산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설 연휴 직전 선거구 현행 유지 잠정 결정을 한 상태일 뿐이다. 문제는 행정통합 등 선거구 획정에 미칠 수 있는 외부 변수와 여야의 정치적 유불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당분간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을 전망이라는 데 있다. 오늘부터 등록하려는 예비후보는 속이 타고 유권자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은 바닥을 칠 노릇이다. 선거구는 대표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가장 기본적인 선거의 틀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을 지키지 못하고 땜질식 행보를 일삼아 왔다. 이번처럼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통해 개정 시한까지 지정했음에도 법 개정을 무산시킨 것은 헌법 준수 의지 박약으로도 읽힌다. 이 같은 정치권의 태도는 언제 어디에서 누가 뛰는지 알기 어려운 깜깜이식 선거를 초래함으로써 현역과 거대정당에만 유리한 구조를 의도적으로 조성하려는 것이 아닌지도 의심케 한다. 차제에 이번 개정 선거법에는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 미준수 땐 엄격히 책임을 묻는 조항이라도 필히 넣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설]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선정, 부산 디지털금융 도약 기회로
부산은 서울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융중심지다. 하지만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NXT)의 거래대금 점유율이 계속 상승하는 등 금융도시 부산의 위상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최초의 조각투자 유통을 전담할 예비인가 사업자로 케이디엑스(KDX)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이 컨소시엄에는 한국거래소(KRX), 부산은행과 경남은행,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 등 부산 소재 금융 기업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특히 이 컨소시엄은 조각투자 거래를 전담할 장외거래소와 본사를 부산에 설립할 예정이다. 부산이 미래형 금융산업인 조각투자 증권 거래 중심도시로 발돋움할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정례회의를 통해 수익증권 장외거래중개업 예비인가 안건을 의결했다. 금융위의 이번 조치는 부동산·저작권·미술품 등 실물 기반 자산을 토큰증권(STO)으로 나눈 조각투자 상품의 원활한 유통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예비인가를 획득한 KDX 컨소시엄은 6개월 이내에 인가 조건을 이행한 뒤 본인가를 신청, 최종 승인을 받으면 공인된 조각투자 유통 플랫폼을 통해 정식 영업에 돌입하게 된다. 이번 예비인가 사업자 선정에 이어 최종 승인까지 무난히 받을 수 있도록 이 컨소시엄에 참여한 40여 개의 기관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 것을 당부한다. 부산은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를 운영 중이다. 부산은 그동안 디지털신분증, 디지털 바우처, 부동산 등에 대한 조각투자 실증사업을 단계적으로 진행해 블록체인과 디지털 금융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왔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조각투자 장외거래소를 사실상 부산에 유치한 것은 무척 큰 의미를 갖는다. 부산이 그동안 축적한 경험과 기술을 토대로 디지털 금융산업을 활짝 꽃피울 절호의 기회를 맞았기 때문이다. 노하우를 착실히 구축한 부산 금융계가 조각투자 증권 유통·수탁·운영·금융지원 등 생태계 전반에 대한 철저한 시스템 구축을 통해 유치 효과를 극대화하길 기대한다. 조각투자는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부산이 강점을 갖고 있는 선박과 항만, 자동차, 관광, 문화 등 지역 특화 산업과 연계한 다양한 상품 증권의 개발과 발행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각투자 장외거래소에 필요한 디지털금융 관련 전문 인력과 산업의 부산 유입에 따른 지역 경제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중심지 부산은 NXT의 잠식과 KRX 코스닥을 자회사로 분리하려는 여당의 움직임 등으로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유치를 계기로 부산은 서울과 한층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금융도시 부산의 미래는 디지털금융도시로의 도약 여부에 달렸기 때문이다.
'전후 일본'의 종언
‘천황을 국가원수로, 국방군 창설, 긴급사태 대응….’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이 2012년 총선 때 공개한 헌법 개정 초안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지향이 분명했다. 선거 결과는 자민당 압승. 개헌 발의가 가능한 중의원 3분의 2를 넘는 의석을 얻은 아베 신조 2차 내각이 출범했다. 하지만 헌법 개정안은 국민투표는커녕 국회에 제출되지도 못했다. 여전히 일본 국민은 평화헌법을 지지했고, 자민당 파벌과 연정 파트너 공명당의 이견 때문이었다.일본은 헌법에서 전쟁을 포기했고, 천황을 정치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으며, 군의 통치를 차단했다. ‘평화 국가’로 국제사회에 복귀해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 보수파는 ‘정상 국가’ 전환 시도를 멈추지 않았고, 번번이 좌절했다. 아베 전 총리조차 총선 승리 이후 안보법으로 집단자위권 행사 해석을 바꿨지만, 개헌에는 실패했다.1955년 보수 세력 합당으로 탄생한 자민당 주도의 ‘55년 체제’는 ‘1과 2분의 1 체제’, 즉 집권 자민당의 독주에 맞서지 못하는 ‘꼬마 야당’의 시대였다. 지난 8일 총선은 극단적인 ‘1과 2분의 1 체제’를 초래했다. 자민당이 중의원 465석 중 316석을 얻어 개헌선인 3분의 2(310석)를 넘겼고, 개헌 지지 정당 의석은 모두 394석에 달한다. 보수 압승을 넘어선 국가 체제 변화의 분기점으로 해석되는 사건이다.자민당은 파벌 경쟁 대신 선명 보수·개헌 노선의 구심력이 강해져 내부 걸림돌이 사라진 상태다. 18일 2기 내각을 출범시킨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강한 일본’을 내걸고 헌법 개정과 핵무기 규정 변경, 무기 수출 등에서 속도전을 펼칠 태세다. 미국발 세계 질서 재편기를 놓칠 리가 없다. 러-우 전쟁과 대만 사태 우려, 북핵 위협은 보수파의 염원을 실현할 좋은 명분이 된다.1947년 미군정 하에서 일본 헌법이 제정된 이후 79년이 흘렀다. 이 ‘전후 일본’은 시간적 범주에 그치지 않고 전쟁 전과 단절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국가 정체성의 표현이기도 했다. ‘평화 국가’에서 ‘안보 국가’로. 지금 일본은 ‘전후 일본’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다. 일본 역사를 통틀어 가장 짧은 ‘부전(不戰)의 결의’ 시대의 종언이다. 한 해 1000만 명의 한국인이 방문하는 익숙한 이웃의 변신 예고가 예사로울 리 없다. ‘전쟁을 할 수 있는 일본’으로 동북아 질서는 변곡점을 맞는다. 일본은 어디로 가나. 우리의 안보 미래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성찰해야 할 질문이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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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
[천영철의 사리 분별] 잔혹한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 것이다.’ 세계 최초 공산국가 소비에트 연방 수립을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의 묘비명은 이렇게 시작한다. 1924년 그가 사망한 뒤 100여 년이 흘렀다. 인류는 그가 언급한 미래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체제에 사는가를 떠나서 당시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한가. 자유와 평등, 다양성 개념이 확장되고 기대 수명과 교육 기회가 늘어난 것은 물론 산업화로 평균적 경제 여건이 개선된 점 등을 감안하더라도 선뜻 행복하다고 단언키 어렵다. 인류의 행복 체감도가 여전히 낮은 근본 원인은 공동체와 리더들의 궁극적인 작동 방식이 과거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레닌의 묘비명은 이렇게 이어진다. ‘우리가 처했던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잔혹한 일들은 결국 이해되고 변호될 것이다.’ 무장봉기로 기존 체제를 뒤엎은 볼셰비키 혁명과 그 이후 소련 사회주의 정권 유지 과정에서 수많은 숙청 등 피바람이 몰아쳤다. 결국 레닌의 묘비 글귀는 과거 잔혹한 일들은 후인들의 행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레닌 묘비명을 통해 현재를 반추해 보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등 인류가 고안한 각종 제도와 체제 간의 우월성 여부를 따지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잔혹함의 원인에 대한 것이다. 인류 역사는 전쟁과 혁명, 작용과 반작용, 도전과 응징 등 힘의 논리에 근거한 끔찍한 야만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인류는 그 참담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도 법과 관습 등 다양한 규율을 토대로 문명을 일구고 지성의 힘을 길러왔다. 엄청난 비극인 제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다원주의, 평등, 인도주의, 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정립하는 귀중한 성과도 이뤄냈다. 그러나 야만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인간 내면에 도사린 권력과 욕망을 향한 이기적 본능은 언제나 틀을 깨고 튀어나오려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는 지금도 야만으로 회귀하려는 죄의식 없는 시도들을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특히 그 시도들의 기저엔 ‘처한 상황을 감안할 때 기존 질서와 약속을 파괴하는 잔혹한 행동은 불가피하다’는 오만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공공연한 오만함을 보면서 인류가 지성적 성숙 단계에 접어들기엔 근대 문명화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현재 국제적으로는 미국 우선주의와 돈로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상식적 국제질서 파괴 행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임박한 것으로 예측되는 이란과 미국과의 전면전 위기, 가자지구 사태, 무역전쟁, 일본의 전쟁 가능 국가 추진과 군수공장 국유화 검토 등 지구촌 전체가 대혼란기에 접어든 듯하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뼈아픈 교훈은 온데간데없다. 힘의 논리를 앞세운 자국 이기주의가 판치는 모양새다. 미국 등 강대국들은 자국 이기주의가 타국엔 잔혹할지는 몰라도 자국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레닌의 소련이 1991년 결국 막을 내렸듯이 기존 질서를 본능적 야만의 힘으로 짓누른 잔혹 행위들은 또 다른 반작용에 의해 결국 불행한 미래를 맞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야가 증오와 조롱의 말을 서로 퍼붓는 잔혹한 장면을 날마다 목도하고 있다. 일상화된 정치 실종은 우리 사회의 집단·개인 이기주의, 편가르기도 심화시켰다. 급기야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까지 발생했다. 443일이 흐른 19일 1심 법원은 내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런 와중에도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정 마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고도의 통치행위였다며 비상계엄 불가피론을 되뇌었다. 그를 통해 ‘결국 이해되고 변호될 것’이라는 오만함을 다시 대면한다. 이 오만함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수없이 경험한 잔혹한 지도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현재가 미래의 토양인 점을 감안할 때 잔혹한 역사, 즉 야만 회귀 시도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인류나 공동체 구성원을 불행하게 만드는 참담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잔혹함이 이해되거나 변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 잔혹함이 설령 미래 사람들이 훨씬 행복하게 살기 위한 의도였다고 미화되더라도 결코 면책 사유로 용인해선 안 된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반지성적 리더와 선동자들의 잔혹한 부추김에 현혹되거나 무감각해지지 않는 것이다. 또 문명의 근간을 흔드는 잔혹한 반지성 행위를 근절하려면 그 야만을 제대로 청산하는 필사적 노력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준엄한 판결은 잔혹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는 우리 사회의 큰 이정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정훈의 생각의 빛] 가질 수 없는 너에게 보내는 엽서
도로명이 같은 동네 문인들 몇몇이 횟집에 모여 조촐한 ‘신년회’를 하였다. 지역 창작지원금 선정자도 두엇 끼어 있었는데, 이들이 구상하는 향후 출판 계획을 들으면서 부러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로부터 1주일가량 지나 필자가 속해 있는 작가 모임의 정기총회가 열렸다. 신임 회장을 비롯한 임원 및 집행부 인선이 승인되고 난 뒤, 모임에서 연말이면 수여하는 작가상의 상금 배분 문제와 관련한 안건을 놓고 오랜 시간 회원들 의견이 갑론을박 진행되었다. 총회 막바지에 작가의 창작 정신과 문학상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고문 한 분의 귀중한 격려사를 마지막으로 행사는 끝이 났다. 늦은 저녁을 겸한 뒤풀이 자리에서 테이블마다 서로 마주 앉아 모처럼 총회의 피로를 잊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분위기였지만 마음 한편에 싸늘하게 올라오는 물음을 어쩔 수 없었다. 작가와 문학상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문학하는 일’의 의미였다. 요즘 부쩍 늘어난 각종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는다. 글 쓰는 이라면 한 번쯤 문학상에 응모하거나 도전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건 인지상정이다. 주위에서 굵직한 상금이 딸린 문학상이라도 받게 되면 집필에 집중하다가도 더러 ‘딴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돈 안 되는’ 문학을 하면서도 이에 대한 격려와 보상의 차원에서 기관에나 단체에서 작가에게 주는 상은 윤택하고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요 에너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예전부터 문학상이 주는 순기능이 사그라들고 역기능이 도드라지는 현상을 심심찮게 듣거나 보게 된다. 창작 역량이 제각각 천차만별인 문단 사회에서 재능 있는 작가로 인정받는 손쉽고도 단순한 잣대가 문학상 수상 여부이다. 문학상 수상 이력이 화려할수록 독자는 작가와 작품을 예사롭지 않은 눈길로 바라본다. 반면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창작의 한길만을 걷는 작가라도 문학상과 인연이 먼 이들이 있다. 그러니까 상 자체는 작가에게 부여하는 문학적 권위의 월계관이라기보다는 작품성이나 창작의 노고 여하와 관계없이 주어지는 ‘행운’의 일종이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창작이 먼저고 그다음에 의도와 무관하게 상이 뒤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문학상 수상과 관련한 뒷얘기를 종합해 보면 수상을 목적으로 한 집필 활동이 우리 시대의 작가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처럼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모든 작가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열정적인 집필과 작품성이 별개인 것처럼, 너도나도 좇게 마련인 공동체의 기류와 관계없이 ‘쓰기’ 자체에 빠져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쏟아붓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란 물음으로 잘 알려진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1770~1843)은 청년기 짧은 시기에만 창작에 몰두하였고, 나머지 반평생을 정신질환에 고통을 받으며 숨진 독일 시인이다. 횔덜린이 살았던 시대의 독일과 지금의 한국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고전주의가 막을 내리고 낭만주의가 활짝 필 때의 독일 지성의 조류는 자연과 고대에 관한 관심과 아울러 작가의 개성과 상상력을 높이 샀다. 계몽주의와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대한 반대급부의 일종으로서 팽배해진 당시 유럽 지성계의 흐름이었다. 그러한 지적 물결의 한복판에서 횔덜린은 당대를 궁핍한 시대라 규정하면서 진정한 시인의 태도와 자세가 무엇인지 되물었던 것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눈만 뜨면 새롭고 앞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고, ‘문학’이라는 이름이 포함된 인문학의 퇴조를 실감하고 있는 지금 우리 작가들에게 창작이 과연 누구를 위하며 무엇을 얻기 위한 행동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창작활동 지원과 보호를 위한 정부 기관 및 재단과 단체의 창작지원금, 그리고 여러 문학상 제정과 시행이 척박하고 곤궁한 정신문화의 허기를 앓고 있는 이 시대의 작가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허울뿐이며 뒷말이 무성한 문학상 제도를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당연히 존재해야 하고 작가에게도 분명 큰 힘이 된다. 한편으로 그러한 문학상의 남발은 창작 동기와 근기가 허약하면서 창작 관행에 따른 글쓰기만을 문제의식 없이 ‘일삼는’ 작가들에게는 오히려 ‘달콤한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 다시 말해 상금을 받기 위해 창작을 하는 주객전도, 혹은 쓰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명성을 얻기 위해 쓰는 본말전도의 형국을 작가와 문단 스스로 자초할 때 횔덜린이 말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 떠맡아야 할 사명은 석양의 놀빛처럼 차차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정신은 결코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요즘엔 물질적인 허기를 참아가며 오로지 문학이라는 하나의 이름만으로 자신의 상상력과 재능을 탕진했던 지난 시대 진정한 작가가 그립기만 하다. ‘그런 시대’가 아니라 ‘그런 정신’이 아쉽다는 뜻이다.
[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세비야의 이발사, 이토록 낙천적인 세상
오늘로부터 딱 210년 전인 1816년 2월 20일,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는 로마에서 ‘세비야의 이발사’를 초연했다. 당시 스물한 살의 젊은 작곡가 로시니의 이름은 이때부터 이탈리아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히 작곡계의 아이돌 스타라고 할 만했다. 그 후로 서른일곱 살이 되던 1829년에 돌연 은퇴 선언을 하기까지 로시니는 유럽 전역을 돌며 총 38개의 오페라를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세비야의 이발사’는 현재까지 가장 인기 있는 레퍼토리다.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의 종합선물세트나 다름없는 작품으로, 이야기 구조도 흥미롭지만, 서곡부터 피날레에 이르는 음악이 어느 한 곳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지다. 더하여, 연주가 점차 강하고 빨라지는 ‘로시니 크레센도’, 베이스가 종래의 무거운 역할이 아니라 코믹한 역할을 맡는 데서 나온 ‘바소 부포’, 현대의 랩 가사처럼 정신없이 쏟아내는 ‘파를란도’ 등 로시니만 줄 수 있는 화려한 장치로 가득 차 있다. ‘내 이름을 알고 싶으시다면’(Se il mio nome saper)은 막이 열리고 얼마 안 되어 알마비바 백작이 로지나의 창가에서 부르는 카바티나다. 자신을 린도로라는 가난한 학생으로 속이고서 그녀에게 접근한다. “내 이름을 알기를 원한다면 이 노래에서 내 이름을 들어봐요. 내 이름은 린도로,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당신을 신부로 맞고 싶어요. 밤낮으로 당신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소망해요.” 그러자 로지나가 창틈으로 내다보면서 계속 노래해달라고 말한다. 알마비바는 노래를 이어간다. “나는 부자가 아니라서 보물을 드릴 순 없지만, 대신에 나의 온 마음을 바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에 밤낮으로 한숨 쉬고 있어요.” 고전적인 방법으로 구애하고 있는 알마비바와 이를 내다보면서 가슴 설레하는 로지나의 모습이 교차한다. 듣고 있으면 그저 빙그레 웃게 된다. 그래서 나는 로시니의 오페라를 좋아한다. 기존의 희극 오페라가 혼돈으로 우왕좌왕 허둥대는 식의 구성이라면, 로시니는 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을 강조한다. 알마비바 백작, 피가로, 체네렌톨라 등이 모두 이탈리아적인 낙천주의를 배경으로 먹고, 사랑하고, 노래한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국 되는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안되는 것도 없다. 인물의 측면에서 보면 딱히 나쁜 놈도 없고 명확하게 좋은 놈도 없다. 결말에는 모든 사람이 얻는 만큼 잃고, 잃는 만큼 얻는다. 그리하여 적당히 용서되고, 모두가 머리를 긁적이며 화해하는 것이 로시니의 방식이다. 세상이 좀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좋지 않을까?
[데스크 칼럼] 여기 사람이 산다
충남대전·전남광주·대구경북의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 12일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이달 중 본회의 의결을 마치면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을 뽑고, 7월 통합 지자체가 출범한다. 충남대전은 국민의힘 소속 현직 단체장이 반발하고 있지만,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위상의 통합특별시 탄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광역 행정통합 논의는 1990년대까지 거슬러올라가지만, 지금의 속도전은 불과 두 달 전 불이 붙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5일 충남 타운홀 미팅에서 “그냥 연합 정도 수준이 아니라 가능하면 대규모로 통합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같은 달 18일 여당 충남·대전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통합된 자치단체의 장을 뽑을 수 있게” 하자고 시간표까지 제시했다. 행정통합은 단숨에 전국 사안이 됐다. 충남대전에 이어 전남광주가 출범을 앞두고 있던 특별광역연합 대신 돌연 행정통합을 들고 나왔다. “(대구시장이 공석인) 이럴 때가 찬스”라는 대통령 언급 이후 대구경북도 ‘6월 통합’에 뛰어들었다. 부산경남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주민투표와 분권 보장을 전제로 ‘2028년 통합’ 로드맵을 내놓았지만, 행정통합의 필요성과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행정통합의 배경은 명확하다. 수도권 일극체제의 폐해 속에 수도권과 지방 모두 위기를 호소한다. 수도권에 맞먹는 거점 권역을 만들어 지방 주도 성장을 유도한다는 균형발전은 지방 살리기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생존 전략이 되었다.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역대 정부 가운데 행정통합과 지방분권에 이 정도의 추진 의지와 실행력을 보여준 정부는 없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중앙이 재정 지원을 ‘당근’ 삼아 절박한 지방끼리 경쟁을 시킨 모양새는 아무래도 개운치 않다. 6월 통합 선거를 행정통합의 ‘골든 타임’으로 정하고, 통합하면 연간 5조 원, 4년간 최대 20조 원 인센티브를 준다고 했다. 재원과 지속 가능성이 불투명한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중앙에 종속된 지방재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비판은 ‘관성과 기득권의 저항’이라는 대통령 발언에 묻혔다.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입장도 불안을 부추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부산경남처럼) 자체 일정으로 통합을 추진하는 지역에 대해 상대적인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고 해놓고는 충남대전의 반발에는 “한 군데가 통과되지 않으면 그 영향을 해당 지역 주민이 받게 된다”고 경고했다. 행정안전부 차관은 “행정통합이 늦어져서 3년 뒤에 된다고 하면 1년밖에 (인센티브를) 못 줄 수도 있다”고도 했다. 무엇보다도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배제한 행정통합은 ‘무엇을 위한 통합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광역 행정통합은 대한민국 지방자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지역 주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전남광주 국회의원들과 만나 “주민투표는 불필요한 소요를 만들 수 있어 시·도의회 의결 방식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해달라”고 통합 방식 가이드라인까지 내놓았다. ‘중앙이 허락한 행정통합’ 국면에서 정작 주민들은 논의에서 소외돼 있다. 충남대전·전남광주·대구경북이 각각 100~300여 개의 특례를 담은 행정통합 특별법을 만들고, 국회가 ‘번갯불에 콩 볶듯’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는 동안 주민들은 특례 내용은커녕 통합의 효과조차 알기 힘들다. 최근에야 시민사회단체들이 최저임금 미적용이나 영리병원 추진 같은 독소조항을 발견해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눈에 띄는 성과를 위해 졸속 행정통합을 만병통치약처럼 추진한다는 비판도 힘을 얻는다. 명분과 의지가 분명하더라도 그 방식이 진짜 ‘기득권’인 중앙부처조차 설득하지 못하고 지방분권 개헌이라는 시대적 과제조차 밀어둔 채 지방을 경쟁시키는 방식이라면 오해를 피하기 어렵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판을 흔들 수 있다는 계산도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행정통합은 지역 주민에게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행안부는 청년을 위한 행정통합 기대 효과를 알리는 카드 뉴스에서 양질의 일자리 확보와 지역 경제 활성화, 문화 접근성 강화를 든다. 그런데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론화위 조사에서 18~29세의 행정통합 찬성률을 보면 전 세대 가운데 부산에서는 가장 낮고, 경남에서는 가장 높다. 정부는 이들에게 구체적인 답을 내놓아야 한다. 부산경남도 정부만 바라보고 있을 일이 아니다. 특별법안의 통합청사 위치 같은 민감한 정보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어떤 통합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지금 당장 주민과 함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선거 전략이 아니라 주민 삶을 바꾸는 행정통합이 될 수 있다. 최혜규 사회부 차장 iwill@busan.com
[중앙로365] 지자체 홍보 지속가능성 묻게 한 '충주맨' 사직
‘충주맨’ 김선태 충주시청 뉴미디어팀 팀장이 공직을 떠난다. 그는 지난 13일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 ‘충TV’에 올린 영상을 통해 “공직에 들어온 지 10년, 충주맨으로 살아온 지 7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작별 인사를 드리려 한다”며 사직 의사를 밝혔다. 7년을 마무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6초. 댓글에선 간결한 퇴장에 “충주맨 답다”는 반응이 뒤따랐다. 선출직을 제외하면 충주맨 김선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공무원일 것이다. 2018년 고등학교 동창인 조남식 주무관의 뒤를 이어 충주시 소셜미디어를 맡게 된 그는, 공무원 사회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B급 감성’의 웹 포스터로 온라인에서 주목받았다. 때마침 시작된 유튜브 열풍은 그에게 일생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인터넷 밈을 활용해 빠른 호흡으로 담아낸 그의 홍보 방식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충TV는 2019년 개설되자마자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한때 97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모으기도 했다. 약 21만 명인 충주시 인구의 네다섯 배에 달하는 숫자다. 충주시 뉴미디어팀장 돌연 퇴직 의사 7년 동안 독특한 시정 포스팅 유명세 전 시장 전폭 지원에 전국 인기 몰이 단체장 바뀌면 홍보 정책 대거 변경 6월 지선 뒤에도 유사 사례 우려돼 '홍보 브랜드는 자산' 인식 확산되길 충TV의 흥행에 조길형 전 충주시장의 역할이 컸다는 건 잘 알려졌다. 조 전 시장이 있었기에 충주맨도 엄격하고 경직된 공직사회에서 자기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 수 있었다. 같은 이유로 온라인에선 충주맨의 사직이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도 나온다. 비단 공무원을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되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유튜브 댓글 창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충주맨이 계속 자리를 지킨다면 험한 꼴 당할 것”이라는 반응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시장 교체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조길형 전 시장은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처음 충주시장에 당선돼 내리 3선을 지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법(제108조) 상 지방자치단체장은 세 번까지만 연달아 재임할 수 있다. 사람들이 벌써부터 우려하는 건, 우리나라에서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시정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전임자와 후임자의 소속 정당이 다르기라도 하면 변화의 폭은 더욱 커진다. 전임자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다. 실제로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많은 지역에서 권력 교체가 이뤄졌다. 덩달아 슬로건·캐릭터 등 시의 홍보 브랜드도 바뀌었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더러는 ‘흑화(악화)’된 경우도 적지 않다. 대전광역시는 그런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대전은 2020년 9월 새 브랜드 슬로건으로 ‘대전 이즈 유(Daejeon is U)’를 채택했다. “대전이 바로 당신이다”라는 의미인데, 충청도 사투리 “대전이쥬”를 연상케 하는 문장으로 많은 이들에게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 슬로건은 2022년 지방선거로 시장이 바뀌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자리를 대체한 시정 구호는 ‘일류 경제도시 대전’. 조례 개정 없이 브랜드 슬로건을 내리고 시정 구호를 내건 데 따른 ‘꼼수 교체’ 의혹도 나온다. 경기 고양특례시 또한 시장 교체 이후 ‘고양고양이’ 캐릭터를 ‘가와지볍씨’로 교체했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시의 캐릭터를 시장 한 명 바뀌었다고 교체하는 게 타당하냐는 비판은 지금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 당장의 지지율만 놓고 보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적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의 교체가 예상된다. 2022년 지방선거는 직전에 있었던 대선 효과로 국민의힘이 승리를 거뒀다. 지금은 상황이 반대로 바뀌었다. 한국갤럽이 지난 13일 공개한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정당 지지율은 44%를 기록했다. 국민의힘은 그 절반인 22%에 그쳤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더불어민주당(39%)이 국민의힘(24%)을 크게 앞섰다. 더군다나 지방선거는 선거 종류와 후보자 수가 많아 유권자들이 줄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단체장을 이기면 광역·기초의원도 줄줄이 이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단체장이 브랜드 교체를 결정했을 때 지방의회가 견제하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혈세 낭비는 오롯이 지역민들의 몫이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지자체 홍보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수도권에서도 “양산시장이 누군지는 몰라도 양산시청 홍보팀 팀장과 주무관이 누구인지는 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슬로건·캐릭터 등 브랜드도 지역의 자산인 시대다. 이 중요한 자산이 단체장 개인의 치적 쌓기용 도구로 전락해 새 단체장이 들어설 때마다 갈아엎어진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충주맨은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 “시장님이 바뀌면 (자신도) 순장”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낸 적이 있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지금, 그 발언은 단체장 교체 시기마다 존폐의 기로에 서는 지자체 홍보에 지속가능성을 묻는 것만 같다.
[시론] 금정산국립공원 지정 의미와 관리 방향
지난해 11월 28일 금정산국립공원 지정 및 공원계획(안)이 고시됐다. 부산광역시가 기후에너지환경부에 국립공원 지정을 건의한 지 6년 만의 성과다. 금정산국립공원은 부산 6개 자치구와 경남 양산시에 걸쳐 있으며 면적은 66.859㎢다. 대전·충남에 걸친 계룡산국립공원보다 큰 규모로, 부산과 양산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국립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면적이 아니다. 금정산은 ‘도심형 국립공원’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국립공원은 제도적으로 유형 구분이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관리상 도시형·산악형·사적형·해상·해안형 등으로 나눠 왔다. 북한산·계룡산·무등산·팔공산국립공원이 도시형으로 분류되지만, 이들 공원이 도시 외곽에 있는 것과 달리 금정산은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다. 동서남북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어 등산뿐 아니라 산책과 휴식을 위한 일상적 여가 공간으로 이용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제도적 의미도 크다. 금정산국립공원은 1987년 소백산국립공원 지정 이후 38년 만에, 기존 군립·도립공원을 승격한 사례가 아닌 비보호지역을 온전히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첫 사례다. 국립공원공단 설립 이후, 기후에너지환경부(옛 환경부) 출범 이래 처음 시도되는 유형이기도 하다. 그만큼 기존의 인수인계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국립공원 관리 체계 정착이 요구되며, 지자체와 시민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 요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광주의 무등산, 대구의 팔공산과 비슷한 시기에 논의가 시작됐지만, 비보호지역이자 도시지역에 있는 금정산은 지정 시 규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어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시민사회단체의 꾸준한 노력과 관심이 지자체를 움직였고, 결국 국가 차원의 타당성 조사로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 금정산이 국립공원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타당성 조사 결과 금정산은 자연공원법 상 국립공원 지정 기준을 모두 충족했다. 통도사·해인사와 함께 영남 3대 사찰로 꼽히는 금정총림 범어사를 비롯한 다수의 문화재를 품고 있고, 국내 최대 규모의 산성인 금정산성이 위치하는 등 문화경관 측면에서 전국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낙동정맥에 위치하면서도 도심 개발로 단절된 환경 속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14종의 서식이 확인되며 생태적 가치 역시 입증됐다. 이제 과제는 관리다. 금정산은 도심형 국립공원 특성상 이용과 개발 압력이 상존한다. 공원 외부에서 탐방로로 직접 진입할 수 있는 곳이 100곳이 넘고, 반려견 산책과 산악자전거, 마라톤, 암벽등반, 각종 산악행사 등 다양한 이용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지형 유실과 식생 훼손, 세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또 전체 면적의 약 70%가 사유지로 전국 국립공원 평균을 크게 웃돈다. 사유권 침해를 둘러싼 민원 가능성이 높고, 사유지 내 불법 건축물 설치나 토지 형질 변경 등 위법 행위도 적지 않다. 도심 인접 입지로 인한 개발 압력은 외래생물종 유입과 멸종위기종 서식지 훼손 위험을 키우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금정산국립공원 준비단은 환경·생태 분야 전문학회와 함께 보전·관리계획 수립 연구를 진행 중이다. 1년에 걸쳐 자연환경과 이용 실태를 면밀히 분석해 도심형 국립공원에 걸맞은 차별화된 보전·관리 방안과 중장기 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금정산국립공원은 시민과 환경단체, 사찰, 지자체 등 다양한 주체의 협력으로 탄생한 공원이다. 도심과 맞닿아 있는 만큼 이해관계자도 다양하다. 시민·환경단체, 지자체, 주민, 범어사를 비롯한 사찰 등 모든 주체가 참여하는 거버넌스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국립공원공단은 공원 시설과 안전 인프라를 국립공원 수준에 맞게 정비하고, 시민들의 휴식과 힐링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도 설치해 나갈 예정이다. 한편, 시민, 지자체, 사찰 등과 협력적 거버넌스를 통해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관리 모델을 만들어갈 것이다. 금정산국립공원이 부산 도심 속 환경·생태의 상징적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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