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응답하라 SK
김민진 지역사회부 차장
인구 5만 명 남짓의 한적한 농촌 지자체인 경남 고성군이 난데없는 대기업 매각 이슈로 시끄럽다. 논란의 중심에는 3년 전 지역에 둥지를 튼 SK오션플랜트가 있다.
SK오션플랜트는 모기업인 SK에코플랜트의 해상풍력 전문 자회사다. 2022년 옛 삼강엠앤티를 인수해 이듬해 2월 SK오션플랜트로 사명을 바꿨다. 새 출발 이후 과감한 투자와 시장 공략으로 명실상부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분야 아시아 1위로 발돋움했다. 현재 720여 명을 직고용하는 고성군 내 가장 큰 사업장으로 협력업체와 직원 수도 30여 업체, 2000여 명에 이른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양촌·용정산단에 1조 1530억 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생산기지를 건설한다는 청사진을 제안했다. 지역민 3600명을 우선 고용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하면서 경남도로부터 각종 특례가 보장된 ‘기회발전특구’ 지정까지 받아냈다.
경남도와 고성군은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송전선로·사설항로·공유수면 인허가는 물론 국도 확·포장, 진입도로 개설 등 1672억 원 규모 공공예산 사업과 주거·교육·문화 기능을 결합한 복합도시 ‘SK 시티’ 조성과 일자리연계형 지원주택 건립도 추진 중이다.
앞서 몇 차례 매각설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SK에코플랜트는 낭설이라며 부인했다. 그도 그럴 게 SK오션플랜트는 넉넉한 일감에다 높은 수주 경쟁력 그리고 탄탄한 이익 창출과 양호한 재무안정성을 갖춘 알짜 기업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장점이 매각 대상 선정에는 독이 됐다. 12조 원에 달하는 부채로 인해 자금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SK에코플랜트 입장에선 당장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 매물이 된 것이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9월 자회사 지분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신생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디오션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공시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기업의 뒤통수에 당혹감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낀 지자체와 지역민들은 매각 저지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사업 축소와 투자 중단, 고용 불안 우려도 커지자 상공계는 물론 여야 정치권까지 한목소리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예상보다 강한 저항에 강경했던 SK그룹도 ‘매각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두며 한 발짝 물러선 상태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이 이번 매각 사태와 관련 마련한 현장 간담회에 배석한 SK 이경남 부사장은 “주민이 많이 반대하고, 회사가 어렵더라도 (SK가) 끝까지 하라고 하면 다른 대안 없이 유지해야죠”라며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이를 두고 ‘생색내기용 출구 전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SK오션플랜트는 지난달 27일 디오션컨소시엄과의 협상 기간을 4주 연장했다고 공시했다. 여기에 1000억 원을 출자하기로 했던 노앤파트너스가 컨소시엄마저 이탈했다. 지지부진한 협상 상황과 맞물려 무산설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 어차피 안 될 거 지역 목소리를 들어줬다는 인상이라도 심어주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한편에선 협상 결렬 책임을 지역 여론으로 돌리기 위한 일종의 ‘빌드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역 사회의 요구는 단순 명료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해 달라는 거다. 이제 SK가 답할 차례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