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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가덕신공항, 방파제부터 선착공해야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지금 가덕도신공항이 딛고 나아가야 할 첫걸음도 분명하다. 방파제 공사의 조속한 착수다. 최근 수의계약 중단으로 전체 사업이 표류하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핵심 공정부터 선행 착공하는 ‘패스트트랙(Fast-Track) 전략’이 절실하다. 늦은 감이 있지만 설계·시공 분리 발주와 공구 분할 방식도 적극 고려하면 좋겠다.
방파제는 해상공항 건설의 출발점이자 든든한 보호막이다. 가덕도는 전체 부지의 59%가 해상에 자리를 잡아 있고, 연약지반 깊이가 최대 60m에 달하는 복잡한 조건을 지녔다. 이 같은 해양 환경에서는 파랑과 조류, 지반침하 등 다양한 위험 요소를 제어해야만 본격적인 매립과 활주로 시공이 가능하다. 방파제가 없다면, 모든 공정은 해상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방파제 없이는 파랑(波浪)으로 인해, 해저 연약지반 개량도 할 수 없고, 국수봉을 절취(折取)한 사석을 해저 지반에 투석할 수도 없고, 케이슨 공법도 제대로 시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간사이공항은 1차 방파제 시공에만 5년을 들였고, 홍콩 첵랍콕공항 또한 파랑 차단을 위한 방파제 완공 후 본격적인 매립에 착수했다. 이런 해외 사례는 방파제가 얼마나 중요한 선행 공정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진작 분리 발주했다면 방파제는 상당 부분 진척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가덕신공항은 지금까지 제자리걸음만 하고있는 격이다.
다음은 시공 방식의 유연성이다. 과거처럼 턴키(Turn-key) 방식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설계·시공 분리 발주를 통해 다수 업체의 참여를 유도하고 기술 경쟁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가덕신공항은 네 차례 유찰을 거쳐 현대건설 컨소시엄만이 단독 입찰에 참여했다. 이는 기존 방식의 한계를 보여준다. 공구 분할을 통해 여러 전문 건설사가 동시에 투입되면, 공사 일정 지연 리스크(risk)는 줄이고 기술적 최적화는 높일 수 있다.
실제로 유사 사례인 스페인 알리칸테공항(ALC)은 공구 분할과 통합 관리 시스템을 통해 공기 단축과 예산 절감을 동시에 이뤄낸 사례다. 가덕신공항 역시 발주 시스템의 혁신 없이는 성공적 추진이 어렵다. 또한 해상공항 건설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감독기관 또는 사업관리(CM) 회사에 해상공항 경험이 있는 사업관리자(Project Manager)를 기술고문으로 채용하는 방안도 효과적이다.
기술적으로 가장 민감한 요소는 연약지반 처리다. 가덕도 해역은 인천공항보다도 깊고, 울릉공항보다도 복잡하다. 부등침하를 막기 위해서는 심층혼합처리공법(DCM)을 적용해 지반을 개량한 후, 대형 케이슨을 해상에서 레고블록처럼 조립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 공법은 나고야 주부 센트레아공항, 홍콩 첵랍콕공항 등에서 이미 검증된 기술이고, 2025년 현재, 싱가포르의 차세대 항만 프로젝트인 투아스 메가포트(Tuas Megaport) 건설 공사에도 적용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해상공항이 아닌 거대 항만이지만, 유사한 해양 환경에다 케이슨 공법 적용 역시 흡사하기에 가덕신공항의 해상활주로 공사에는 훌륭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의 1단계 공사는 국내 건설업체인 DL ENC(옛 대림산업)가 수행했고, 2단계는 현대건설이 참여하고 있다. 1단계 공사의 경우, 애초 계약 공기를 7개월 이상 앞당긴 바 있다. 2025년 5월 현재, 국내 울릉공항 공사에서도 케이슨공법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바 있다.
가덕신공항 프로젝트는 해상활주로 공사만이 시급한 건 아니다. 활주로 공사 이외에도 절대 공기를 좌우하는 단위 공사들, 즉 주요 공정선(Critical Path) 상에 있는 ‘현장 진입도로 및 가설 시설 설치’, ‘해상구조물(케이슨) 육상 공장 설치’, ‘국수봉 절취 및 토사 운반용 컨베이어벨트 설치’ 등등, 단위 공정끼리 서로 간섭되지 않게 조율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은 결단의 시점이다. 방파제 공사는 단순한 선행 작업이 아니고, 전체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추진력을 결정짓는 ‘키스톤’이다. 이 공정이 착수되어야만, 이후 모든 절차가 일관성과 속도를 갖고 전개될 수 있다.
가덕신공항 2029년 조기 개항은 단순한 일정이 아니라, 국가경쟁력 회복과 동남권 메가시티 실현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다. 언제까지 도돌이표 같은 대책 회의만 거듭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방파제를 착공하지 않는다면, 활주로는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이 바로 실행의 시간이다.
2025-05-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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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해사법원은 반드시 부산에 설립되어야 한다
선박이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단계에서는 선박금융과 선박건조보험이라는 금융과 보험서비스가 필요하고, 금융과 보험은 이자와 보험료라는 수익을 창출한다. 건조된 선박이 운항하기 위해서는 선박 소유자와 선박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용자를 연결해 주는 선박 중개 서비스가 필요하다. 선박 중개는 ‘용선’이라는 형태로 행해지고, 선박 중개수수료라는 이익을 발생시킨다. 자동차가 운행 중 사고에 대비해서 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선박도 운항 중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고(선박의 좌초, 침몰, 화재, 선박충돌, 화물손상, 선원재해, 해양환경오염 등)에 대비해서 선박보험, 화물보험, P&I 보험에 가입한다.
선박 운항 중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분쟁들은 해사법률 전문가, 보험회사, 손해검정사 등이 협업해 협상, 중재, 소송을 통해 해결하게 되는데, 국제적인 성격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선박도 국적과 나이가 있어 그 안전성이 항상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선박은 건조된 후 폐선이 되기까지 20~30년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다. 선박검사 서비스는, ‘선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이 모든 해사 서비스는 선박과 해운, 금융과 보험, 법률을 이해하고 외국어 구사 능력을 갖춘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조선 및 해운산업 강국을 자랑해 왔지만, 아직도 해양지식산업을 미래 산업, 젊은 세대를 위한 일자리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박 및 해운을 매개로 한 금융, 보험, 법률 분야에는 젊은 세대가 도전하고 싶어도 도전할 수 있는 현장이 없고, 국부도 창출되지 않고 있다.
선박금융, 선박 중개, 해상보험, 선박검사, 해기교육, 통번역 등 해양지식산업은 모두 계약이라는 법적 수단, 즉 해사법률 서비스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비즈니스적 예측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수단, 즉 객관성 및 확실성이 담보된 법률 서비스 없이는 고부가가치 해양지식산업은 발전할 수가 없다. 해사법률 서비스는 해양지식산업 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토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해사법률 서비스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해사법원 설립을 통해 가능하다. 해사법원 설립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그럼, 해사법원을 어느 도시에 설립해야 할까? 해사법원을 매개로 해양지식산업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신산업, 미래 세대를 위한 고급 일자리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영국과 달리, 싱가포르 및 중국은 정책적 결단을 통해 이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필요한 인력 및 예산을 효율적으로 안배하지 않으면, 영국, 싱가포르, 중국과 경쟁할 수 없다. ‘부산항’ ‘Busan Port’ ‘Port of Busan’은 항만이나 지역적 명칭을 넘어서 국제적 인지도와 평판을 자랑하는 국가적 브랜드이다. ‘부산항’이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는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해운 및 조선산업의 역사가 ‘부산항’이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해양지식산업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신산업으로 단기간 키워내기 위해서는 ‘부산항’이라는 이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수단이 없다. 최소의 비용을 들여 단기간에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부산항’이라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 브랜드 가치를 활용하지 않는 해양지식산업 발전 정책은 효율성도 경제성도 없다.
시간이 급하다. 중국은 해사법원을 시작한 지 벌써 40년이 넘었고 글로벌 인지도를 전략적으로 높여가고 있다. ‘해사법원 설립을 위한 국제해사법컨퍼런스’(2023년 12월 5일 개최)에서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 관련 클레임 총 1568건 중 약 700건이 부산항과 관련된 클레임이었던 반면 인천은 100건이 조금 넘은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렇다면 어느 도시를 해양지식산업 도시로 육성, 발전시키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타당하고 합리적인가? 해사법원은 반드시 부산에 설립되어야 한다.
2025-05-1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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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가연구소 유치로 여는 부산의 미래
부산은 역사적으로 과학기술 도시다. 고대 가야는 ‘철의 왕국’이라 불릴 만큼 정교한 제철 기술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조선시대에는 동래와 부산포를 중심으로 해양 방어와 항해 기술이 발달했다.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동래 출신으로 자격루와 측우기 등을 발명하며 시대를 앞선 과학 정신을 구현했다. 근대에는 육종학의 선구자인 우장춘 박사가 부산을 연구 거점으로 삼아 과학자의 길을 개척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기계, 조선기자재 등의 중심지로 부상했고, 오늘날에는 인공지능과 데이터 산업 등 미래기술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부산은 과학기술의 전통과 미래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도시다. 그러나 이러한 잠재력을 세계적 연구성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올해 첫 시행되는 ‘국가연구소(NRL 2.0)’ 사업은 지역 주도의 과학기술 혁신을 이끌 기회로 주목받고 있다.
국가연구소는 대학의 강점 분야와 우수한 연구 인프라를 집약해 세계 최초·최고 수준의 혁신적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목표다. 부산의 대학들도 본 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부산시와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이 유치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이 연구소가 부산에 들어선다면 단순한 R&D 인프라 확충을 넘어, 부산을 미래형 과학기술 도시로 도약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지방 대학의 연구소들이 지역 경제와 국가 전략에 깊은 영향을 미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독일의 ‘슈퍼클러스터(Exzellenzcluster)’는 특정 대학 중심의 연구 클러스터를 지정해 연구를 육성하고 지역 혁신 생태계를 조성한다. 미국 NSF의 ERC(Engineering Research Center) 프로그램 역시 지역 대학 기반 연구소가 산업과의 긴밀한 협력을 유도하고 있으며, 영국의Catapult Centre, 프랑스의 IDEX, 일본의 COE 프로그램도 유사한 목표를 지닌다. 특히 영국 스트라스클라이드 대학의 첨단성형연구센터(AFRC)는 제조업 중심의 스코틀랜드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산업 구조 전환을 이끌었고, 프랑스 그르노블 알프스 대학은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거점으로 성장하며 지역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연구소가 단순한 ‘지식 생산지’를 넘어, 기술혁신의 실험장과 국가 산업 전략의 실행 거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지역의 자생적 성장을 제약하고 국가 전체의 혁신 잠재력에도 한계를 초래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선 이제 ‘집중’에서 ‘분산’으로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의 잠재력을 품은 부산이 이제 나설 차례다. 국가연구소가 부산에 유치된다면, 이는 부산형 혁신균형발전 모델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기초과학 연구를 넘어, 지역 기업과의 기술협력, 글로벌 산학 프로젝트, 청년 고용 창출 등 다층적인 경제·사회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해외 사례처럼, 지역에 정착한 고급 인재들은 장기적으로 지역 사회에 경제적·문화적 파급 효과를 남긴다. 부산의 산업 기반과 연구 역량은 이러한 변화를 이끌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부산은 단지 과거의 영광에 머무는 도시가 아니다. 오늘을 준비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과학기술 혁신도시다. 필요한 것은 정부의 결단과 지역의 확고한 의지다. 수도권 중심의 연구개발 체계를 넘어, 지역이 주도하는 혁신성장 모델의 첫걸음, 그 출발점이 바로 ‘부산의 NRL 2.0 유치’가 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한 지역의 발전을 넘어, ‘혁신균형발전’과 ‘기술주권강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지혜로운 국가 전략이 될 것이다.
인류 최초의 발명품이 이쑤시개였다는 말이 있다. 작고 평범해 보이지만, 진정한 발명은 일상의 불편을 해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데서 출발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부산의 한 대학 연구실에서 세상을 바꿀 혁신이 태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산이 간직한 과학기술의 전통과 잠재력이 국가연구소라는 플랫폼을 통해 꽃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 균형발전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2025-04-3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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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후변화 시대, 산불 대응 전략을 다시 짜야 할 때
최근 산불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고, 1000년이 넘는 사찰 두 곳이 완전히 불타버렸다. 피해 면적도 여의도 면적(2.9㎢)의 13배를 넘는 수준으로 역대 최악의 산불 재난 피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산불의 양상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최근 들어 빈번해진 ‘괴물급 산불’은 재앙으로서 정부와 지자체의 제어가 불가능해 보인다.
산불 피해가 이렇게 커진 데에는 기후변화의 영향과 함께 기존의 촘촘하지 못한 산불 대응 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기온 상승과 극심한 건조 환경, 예측 불가능한 강풍의 증가는 산림을 불에 취약한 상태로 만들었다. 또한, 침엽수가 산불 피해를 더 키우고 있으며, 임도(林道) 없이 빼곡하게 조성한 산림은 더욱 산불을 확대했다.
다음, 기후변화로 인하여 산불은 대형화되고 있는 데 비해 산불 진화는 여전히 사람 중심, 인력 중심이다. 야간에는 유인 헬기가 뜨지 못하고, 이마저도 오래된 구식 헬기로 인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현장에 투입된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과 소방대원들은 험한 지형과 바람으로 인한 거센 불길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며 화마와 싸우지만 역부족이다. 초동 진화에 실패하면서, 삽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괴물급으로 산불이 커진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산불 대응 체계는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산림과 도시의 경계지역 관리 미흡,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장비와 인력의 부족,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비효율적인 협력 체계, 예방보다는 진화에 치중된 대응 방식, 그리고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 산불 위험도 평가 및 예측 기술 등이 그것이다.
이에 비해 호주 정부는 2020년에 산불 위기 대응책으로 ‘국가산불복구청(NBRA)’을 신설했고, 화재 경고 체계를 6단계 분류해 정교화하였으며, 단계별 화재 경고 시스템을 통해 국민 행동 요령을 명확히 정의하고 산불이 예상되는 경우 각 지역에 적용되는 화재 위험 등급을 매일 발표하고 있다.
또한,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인공위성을 기반으로 산불을 관측하며, 미국 오리건주는 오리건주립대가 연구·개발한 산림 다목적 로봇을 산불 조기 발견 및 진화 등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호주와 미국 등 해외 선진국들은 산불 예방과 진화를 위해 인공지능(AI), 로봇, 인공위성 등을 활용하여 산불 진화 방식을 기존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미래형으로 발 빠르게 전환하였다.
이제 우리도 이러한 선진 사례를 참고하여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산불 대응 전략을 재정립해야 할 때다. 기후변화 시대를 맞이하여, 산불 대응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 위험도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고 평가할 수 있는 과학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산림청, 소방청, 지자체 등 관련 기관 간 명확한 역할 분담과 함께 통합 지휘가 가능한 단일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산불 위험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둔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넷째, 첨단기술을 활용한 조기 감지 및 예측 시스템을 강화하고, 대형 산불에 대응할 수 있는 장비와 전문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특히, 그 규모가 갈수록 대형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에서 기존의 장비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스 하이드레이트 소화탄 등을 개발하고 상용화하여 드론이나 헬기를 이용하여 투척하는 새로운 산불 진화 방식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즉,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불타는 얼음으로 알려져 있지만 불이 잘 붙는 메탄가스 대신, 불을 끄는 할로겐족 소화 가스를 저장해 ‘불 끄는 얼음’을 만들어서, 산불 등 화재 현장에 소화탄을 투척하면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녹으면서 나오는 가스가 주위에 불을 끄는 방식으로 해서 산불을 초기에 진화하는 게 필요하다. 산불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기후변화 시대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이제는 ‘산불과의 전쟁’이라는 인식 하에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응 체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5-04-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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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역축제, 이대로는 안 된다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1995년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전국 지자체들은 창의적이고 특색 있는 지역축제 개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힘입어 축제마다 인파가 넘쳐난다. 국민들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축제를 찾아 즐기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난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시민운동 차원에서 부산 등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를 모니터링한 결과, ‘지역축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이유는 첫째, 대부분 축제에서 종이컵, 플라스틱 용기 등 일회용품을 사용해 생활 쓰레기를 과도하게 배출해서다. 우리나라는 재활용 분리배출을 잘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버려진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유럽 기준 16.4%에 불과하다. 2021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버려진 플라스틱은 1193만t(국민 1인당 연간 약 208㎏ 배출)으로 OECD 평균의 4배에 달한다.
전국 축제 대부분 일회용품 넘쳐나
쓰레기 과다 배출로 미래 세대 위협
ESG 시민운동 차원서 운영 바꿔야
다회용 물품 사용은 선택 아닌 필수
지속가능 친환경 축제로 거듭나길
세계 각국에서 버린 해양 투기물 탓에 태평양에는 한국 면적의 16배에 달하는 거대한 쓰레기 섬이 형성돼 있고, 국내에도 불법 투기로 만들어진 쓰레기 산이 235개나 돼 인근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생수 1㎖당 1억 6600만 개의 나노플라스틱이 들어 있다. 또 폴리에틸렌이 코팅된 종이컵에 물을 담으면 1ℓ당 상온에서 2조 8000억 개, 100도에선 5조 1000억 개의 나노플라스틱 입자가 용출된다. 이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문제로 미래 세대에게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둘째, 지역축제의 이면에는 과다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해 문제다. 부산불꽃축제는 매혹적이고 세계적인 행사로 성장했으나 대기를 크게 오염시킨다. 불꽃놀이는 미세먼지(PM2.5) 수치를 급증시켜 지역 주민과 방문객의 호흡기 건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또 해운대 등 지역 해수욕장의 모래축제는 관광객 유입으로 해변 침식과 쓰레기 증가를 초래하며 해마다 엄청난 양의 모래 투입이 이뤄져 주변 해양 생태계를 위협한다. 워터밤 페스티벌 같은 물 집약적인 행사는 가뭄 시기에도 엄청난 양의 물을 낭비하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축제 성수기에는 교통 체증, 소음 공해, 숙박 및 서비스 가격 폭등 등으로 지역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축제에 동원되는 임시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 공정한 임금과 안전한 근무 환경 보장이 요구되기도 한다.
셋째, 지역축제는 대부분 지속가능 보고가 부족하고 행사의 환경적 영향을 거의 공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각성을 수치화하지 않아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환경보호 실적이 낮은 기업들이 후원하는 경우 축제의 지속가능성 메시지와 모순을 일으키는 문제도 야기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ESG 시민운동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안한다. 첫째, 종이컵과 일회용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 사용을 전면 금지할 필요가 있다. 광안리어방축제와 동래읍성축제는 일회용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사상강변축제는 다회용 접시를 활용하는 등 친환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같은 모범 사례를 확산해야 마땅하다. 예산상 문제가 있다면 축제를 2년에 한 번 개최하거나 방문객들에게 텀블러나 머그컵 지참을 권장하는 게 좋다.
둘째, 환경친화적 운영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재생 에너지 사용, 재활용 스테이션 설치, 폐기물 관리시스템을 강화해 지역축제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셋째, 지자체의 사회적 책임 강화가 수반돼야 하겠다. 대부분 축제는 전문 행사업체에 맡겨져 진행되는데, 이때 동원되는 인력이 저임금의 임시 노동자들인 경우가 많다. 공정한 임금과 안전한 근무환경 등이 보장되길 바란다. 넷째, 투명한 거버넌스 구축이다. 이를 통해 축제의 환경적 영향을 명확하게 공개하고, 친환경 기업과 협력해 ‘지속가능한 축제’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는 지자체에서 지속가능 사회를 위한 노력에 앞장설 때다. 축제는 부산의 문화 정체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그런데, ESG 문제를 간과한다면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축제를 만들기 위해 친환경적 운영 방안을 도입하고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투명한 거버넌스를 확립해야 한다. 일회용품 없는 축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2025-04-0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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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산업은행 부산 이전, 페스티나 렌테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뜻의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는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일생 좌우명이다. 중요한 정책은 너무 서두르면 졸속이 되고, 너무 늦추면 성공에 결정적인 순간을 실기한다. 필자는 30여 년의 공직생활 중 가장 관심을 가졌던 정책분야가 국가균형발전이었다. 이 문제는 인구감소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린 중차대한 정책인 만큼 참으로 신중하게 준비하되, 서둘러 실행해야 하는 난제 중 난제이다.
국가균형발전이 성공하려면 지역에 기관과 자원을 나누어 주는 분산정책 수준을 넘어 지역의 혁신성장을 견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기업금융, 투자금융, 혁신성장금융 그리고 국제금융 등 실물경제 발전을 토털 패키지로 지원하는 한국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정책은 침체일로에 있는 지역경제의 새로운 혁신성장 모멘텀을 창출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일으키는 지렛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미 2년 전에 정부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 효과에 대한 용역을 마쳤고, 균형발전위원회 심의를 거쳐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결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한국산업은행 이전 공공기관 지정 고시문’도 공표하였다. 정부가 할 수 있는 행정조치를 완료한 만큼 빠르게 실행하는 단계만 남았다. 그러나 본점 위치를 ‘서울특별시’에서 ‘부산광역시’로 불과 다섯 글자만 바꾸면 되는 산업은행법 개정안은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800만 부산·울산·경남 주민들의 실망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더 이상 국회에만 이 문제의 처리를 맡겨둬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상공계를 중심으로 최근 조속한 산은법 개정을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라는 실천 행동에 나섰던 것이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지역 이슈를 넘어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그동안 추진이 지지부진하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논의에 본격적인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될 것으로 기대를 받아왔다. 2019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은 2022년 정부의 국정과제로 포함되었지만 이후 수도권의 반대 여론과 일부 공공기관의 내부 반발로 아직도 구체적인 이전 계획조차 발표되지 못한 상태다.
이로 인해 지방소멸은 점점 가속화되고, 지방경제 활성화와 수도권 집중 해소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의지는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은 ‘수도권은 폭발 걱정, 지방은 소멸 걱정’ 현상을 해소하는 데 정부가 쓸 수 있는 가장 가시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 수단으로, 과거 노무현 정부의 성공적인 체감 정책으로 평가된다.
30일 내에 5만 명 이상이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 동의해야 성립되는 이번 청원은 부울경 지역 주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지역 경제계를 비롯한 유관기관들의 참여 속에 21일 만에 5만 5284명이 동의해 목표를 초과 달성하였다. 이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단순한 공공기관 이전을 넘어 국가 생존이 걸린 국가균형발전의 중차대한 지렛대 정책임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현재 국회에는 산업은행법 개정안 외에도 농협중앙회를 호남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도 발의되어 있다. 많은 지자체들이 침체 늪에 빠져있는 지방경제를 위해 혁신성장의 모멘텀을 찾고자 하는 절박함으로 2차 금융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목을 매고 있다. 특히 부산은 광역시로는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된 만큼 비수도권 지역들과 연대하여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물론 2차 금융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물꼬를 터 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 독일, 중국 등 우리의 경쟁 국가들이 제조업 르네상스를 부르짖고 있는 지금, 동남권 산업벨트는 여전히 대한민국 실물경제의 토대라 할 수 있다. 동남권의 신산업 육성과 소부장 산업 스케일 업 그리고 금융중심지 활성화와 혁신 벤처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을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에 대해 국회는 우물쭈물 고민할 때가 아니다.
모든 일은 그 시기가 있다. 국회는 산업은행법 개정안을 빛보다 빠르게 처리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바람처럼 세게 행동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국회가 그 존재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 동남권 800만 주민들은 국회의 현명한 응답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025-03-1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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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파크골프, 최고 인기 생활체육으로 성장하길
전국적으로 파크골프(Park Golf)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파크골프가 스포츠의 사각지대에 있던 장·노년층을 끌어들이면서 갈수록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파크골프는 다른 어떤 종목의 스포츠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는 세간의 놀라움과 함께 다른 생활체육 종목의 시샘을 한몸에 받으며 승승장구 중이다. 겨울철에도 성행했던 파크골프는 이제 따뜻한 봄을 맞아 더욱 활기를 띠며 애호가 수를 계속 늘려 갈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신생 스포츠인 파크골프에 입문한 이래 10년가량 파크골프 대중화에 온 힘과 열정을 쏟았다. 파크골프가 각광받는 생활체육의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10년 전만 해도 부산의 파크골프 사정은 열악했다. 이때는 낙동강 변 파크골프 구장도 몇 안 되었다. 사상구 삼락생태공원의 36홀 구장 1곳과 9홀 1곳, 북구 화명체육공원 18홀 1곳, 기장군 물빛공원 6홀 1곳 등이 전부였다. 당시 각 구장을 다니면서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 놀랐다. 그런데도 노년층의 남녀 파크골프 애호가들이 깔끔하고 멋있는 복장으로 많은 나이가 무색하게 운동을 즐기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이는 필자가 파크골프 활성화와 구장 확충을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봄철 맞아 파크골프장 활기 띨 전망
10년 만에 인기 스포츠로 각광받아
협회와 초기 애호가들의 노력 결실
노년층 심신 건강 유지에 효과 탁월
급증하는 수요 감안 시설 확충 시급
초고령화 부산 지자체 지원 늘려야
필자의 노력과 함께 부산 각 구·군의 여러 파크골프 동호회와 이 조직을 중심으로 2010년에 생긴 부산파크골프연합회가 초기 파크골프 붐 조성에 기여했다. 그리고 2016년 연합회가 지금의 부산파크골프협회로 바뀌면서 파크골프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초기 협회에 등록된 300~400여 명의 회원이 살림을 꾸리며 구·군 대회를 개최하면서 입문자를 위한 교육을 시켰다. 협회도 대항전을 부지런히 개최해 동호인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주고 즐거운 커뮤니티 활동을 장려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파크골프가 인기 생활체육 종목으로 자리 잡게 할 수 있었다. 특히 동호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년층이 파크골프로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건강을 다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이와 함께 파크골프장 확충과 원활한 구장 운영을 위해 부산시와 체육회, 지역 정치권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호소하고 설득해 지원을 이끌어 냈다. 구장 신설과 기존 구장 재정비에 힘쓴 결과,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아름답고 쾌적한 구장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이 부산 시민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면서 파크골프 동호회와 협회의 급속한 회원 증가로 이어졌다.
현재 부산 전체 파크골프장의 총 홀수는 320여 홀로 크게 늘어났다. 부산파크골프협회도 산하에 단위 클럽 307개, 등록 회원 8280명을 둬 무시할 수 없는 생활체육 단체로 성장했다. 협회가 부산에서 매년 주최하거나 주관·후원하는 대회만 10개다. 부산의 우수 회원과 입문 초기 회원들은 일반적인 라운딩 외에도 전국대회인 5개의 시도 대항전을 포함해 15개 대회에서 자신의 기량을 키우거나 타 시도 대표들과 경쟁하며 파크골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파크골프 인구가 급증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비용이 적게 들고 몸에 무리 없이 운동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기존 골프와 똑같은 규칙 아래 골프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과 단출한 복장으로 입장료도 없는 파크골프장의 잔디에서 하루 4~5시간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소외되거나 무력감에 빠지기 쉬운 노년층이 4~5㎞의 평지를 걷고 적당한 근육을 사용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함으로써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이 남녀 노년층을 파크골프장으로 이끌어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동안 노인 스포츠로 인식된 파크골프가 최근 중년층 등 더 젊은 층으로 확산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심지어 부산에 파크골프학과와 강좌를 신설하는 대학이 속속 생기고 있다. 파크골프가 생활체육의 최고 인기 종목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에 비하면 파크골프장 수와 규모는 많이 부족한 상태다. 전국 최초의 초고령화 도시인 부산의 노인 복지를 위해서라도 시설 확충이 시급하다. 부산 지자체들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파크골프의 계절이다. 파크골프가 노년층은 물론 전 시민의 여가와 건강을 책임지는 더욱 사랑받는 스포츠가 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 부산파크골프협회도 더욱 열심히 뛸 것이다.
2025-03-0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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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미 해양 협력에 기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일부터 특정 국가에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상호관세 또는 보편적 관세 부과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글로벌 무역에 주는 영향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해양수산업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해운 분야에서는 미국의 대중 고율 관세와 보편관세가 지속적으로 실행되면 중장기적으로 세계 무역량 감소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반면 미국의 탈중국화와 중국발 대미 수출 감소 등은 아시아 내 우방국과의 교역 증가와 인도 등으로 전이되는 공급망으로 인해 새로운 해상운송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중동지역 정세 변화 조짐과 미국 내 환경 규제 완화는 화석연료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항만 분야의 경우 미중 간 교역량 감소는 우리의 환적량 감소 요인이 될 수 있으나, 중국 항만의 북미행 직기항 감소와 아세안 국가 역할 확대에 따른 국내 항만 환적 수요 증가 가능성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대중 고율 관세는 우리 수산물의 미국 수출에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중국 수산물의 미국 외 국가에 대한 수출량 증가로 우리나라로서는 국내 수산물 시장 관리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미국의 수입 수산물 위생·환경 규제 강화는 대미 수산물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우리 수산식품의 품질 경쟁력 제고가 이뤄진다면 장기적인 기회가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인도양, 남중국해, 동중국해와 북극해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해역에서 강대국 간 대립이 확산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아직은 관세 이외에는 구체적인 시행계획이 나오지는 않아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구하는 경제·안보정책은 시간을 두고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대외정책은 향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올 초 바이든 정부 국방부는 중국 최대 해운선사와 조선소 2곳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중국을 비롯한 관련국들 또한 이러한 미국 움직임에 대미 의존도 축소와 신규 시장 개척, 보복관세 등의 방법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로서는 경제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안보와 국제질서 재편에 따른 다양한 영향을 고려해 나가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미국이 ‘MAGA(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실현하려면 가장 취약한 부분인 조선·해운에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강력한 동맹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해 4월 ‘미 국가 해양전략을 위한 의회 지침서’를 발표했다. 미국 해양력이 쇠퇴한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해양패권 재건을 위한 전략으로 마련됐다. 이어 12월 ‘미 선박법’이 제안됐다. 이 법안에는 조선업 재건뿐만 아니라 전략상선대와 항만시설을 구축해 미국의 해운안보와 무역 이익을 지키기 위한 지원방안이 포함돼 있다. 심지어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번스-톨리프슨법에도 불구하고 동맹국 조선소에서 해군과 해안경비대 선박을 건조하도록 하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이는 1969년 발표된 스트래튼 보고서 이후 55년 만에 미국이 해양국가 재건을 위해 물리적 해군력뿐만 아니라 해양경제 안보에 대한 시각을 의회를 중심으로 초당적으로 본격화한다는 의미다.
우리에게는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경제적으로 위기인 동시에 해양산업의 재도약과 글로벌 진출을 위한 기회일 수 있다. 미 관세에 적절히 잘 대응하면서 해양을 중심에 두고 미국과 전면적인 협력체계 구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양국 간 조선·해운 협력, IUU(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 공동 대응, 해양수산 과학기술 교류, 북극과 인도·태평양 안보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우리 정부와 싱크탱크, 기업이 참여하는 다층적 플랫폼을 생각할 수 있다.
기존 세계질서를 흔들고 재세계화할 트럼프 2.0 시대에 해양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한미 해양 협력은 양국이 가진 해양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상호 발전을 위한 협력 파이를 키워나가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간 우리가 구축해 온 종합적인 해양력이 발현되어야 하는 시점인 게다. 글로벌 초불확실성 시대에 한국이 미국과 추진해야 할 협력의 키워드 중심에 바로 해양이 있다.
2025-02-1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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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글로벌 관세 전쟁과 한국의 전략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하며 트럼프 노믹스 2.0 시대가 개막되었다. 2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라는 기조를 더욱 강화하며, 국익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통상정책에서는 무역 적자 축소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한 특정 품목 관세 인상과 슈퍼 301조를 활용한 대중국 추가 관세 부과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는 2794억 달러로 전체 무역 적자의 26%를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 기조는 1기 행정부 때부터 본격화되었다.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중 간 경쟁은 무역 분쟁으로 본격화되었는데, 당시 트럼프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과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를 문제 삼아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1차 관세 전쟁이 본격화된 2018년 이후 미국의 대중국 평균 수입관세율은 2018년 1월 3.1%에서 2019년 9월 21.0%로 급등하며 17.9%p 상승했다. 이러한 조치는 미중 경제 관계에 지속적인 긴장을 초래했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2기 행정부는 모든 수입품에 10~20%,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최대 6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마약 및 불법 이민 문제 대응을 위해 멕시코·캐나다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었으나, 한 달간 유보하며 조정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러한 관세 정책은 사실상 글로벌 무역 전쟁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경제는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국 60% 및 대세계 10%의 관세 인상이 현실화되면, 한국의 수출은 143~191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은 0.4~0.62% 하락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한국 기업들의 주요 생산 및 수출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어, 이들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이 미국으로 수출될 경우 높은 관세 부담이 발생할 것이다. 이는 글로벌 교역 위축으로 이어지고, 결국 한국의 무역 감소와 경제 성장 둔화를 초래하게 된다.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이 12·3 비상계엄 선포에 이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점도 경제적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경제 정책적 측면에서 경기 반등의 계기가 만들어진다면 U자형 회복 국면으로의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정책적 지원이 부족할 경우, 내수 침체와 함께 수출 경기마저 둔화되면서 L자형 장기 침체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한국 경제의 안정성과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국내외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비해 기업의 성장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글로벌 및 국내의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저성장 기조의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 둘째, 트럼프 노믹스 2.0으로 인한 글로벌 2차 관세 전쟁의 전개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수 기업은 합리적인 수출 및 투자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수 기업은 경쟁국 기업들의 국내 시장 진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셋째, 미국의 경제 지표 호조로 인해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는 만큼 우리 기업들은 금리 변동성 리스크를 더욱 면밀히 관리해야 한다.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강하게 나타나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며, 기업들은 외환 리스크를 포함한 금리 변동성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산업·기술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구축하는 게 요구된다.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시대에는 단기적인 대응보다 한국 경제의 핵심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2025-02-0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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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부산, '글로벌 해양 허브도시'로 도약하려면
‘해양수도 부산’은 지난 25년간 부산시민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용어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는 해양과 연관된 산업, 경제, 관광, 문화, 과학기술이 어우러져 대한민국의 발전을 선도하고 나아가 글로벌 해양 중심도시로 성장하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은 오랫동안 국내 최대 항만도시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져왔다. 세계 2위 환적항으로 자리 잡은 부산항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2430만TEU의 물동량을 처리하여 글로벌 물류의 핵심 허브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천혜의 해양 경관과 이를 활용한 도시계획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해양관광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 부산 이전 공공기관들을 중심으로 산학연 해양클러스터 생태계를 조성하여 해양 중심도시로서의 발전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러나 부산은 우리나라 제2 도시라는 매력에도 불구하고 인구 감소, 고령화, 청년 유출 등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도시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부산시는 최근 물류와 금융, 첨단산업, 관광을 중심으로 ‘글로벌 허브도시’로의 도약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북항 재개발을 통해 물류와 관광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금융특구 지정으로 글로벌 금융기관을 유치하여 경제적 기반을 강화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여기에 더해, 세계적인 해양도시 부산이 가진 뛰어난 지리적 이점과 해양 유관기관들의 혁신적인 역량이 결합된다면, 해양과학기술과 함께하는 ‘글로벌 해양 허브도시’로 도약하며 청년들이 돌아오는 일자리 창출도 가능할 것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롱비치, 싱가포르 등은 글로벌 해양 허브도시의 모범 사례이다. 로테르담항은 유럽 최대 항만으로, 디지털 트윈 기술을 도입해 실시간 물류 관리와 에너지 효율 최적화를 실현하고 있다. 미국 주요 항만인 롱비치항은 전기 및 수소 기반 트럭을 도입하여 항만 내 탄소 배출량을 대폭 감축했으며,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공공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싱가포르항은 세계에서 가장 자동화된 항만 중 하나로, 자율운항 장비와 AI(인공지능) 기반의 물류 관리 시스템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이러한 해외 사례를 참고하여 부산이 ‘글로벌 해양 허브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선 몇 가지 고려가 필요하다. 먼저, 부산이 전통적으로 강한 우위를 가져왔던 해운·항만 산업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확대하여 해양과학기술에 기반한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디지털 트윈, IoT(사물인터넷), AI 등 해양ICT 융합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항만’ 구축은 필수이다. 그리고 부산항의 물류 네트워크를 확장하여 글로벌 항만도시들과 연계를 강화하고, 해양 분야 국제기구와 협력을 심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제적 해양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글로벌 해양 이슈 해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며 국제사회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향후 해양 분야 신산업 영역으로 성장이 예상되는 해양바이오, 해저자원 탐사, 신재생 해양에너지 등 미래 지향적인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 시대에 직면한 현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 사회적 책임, 투명한 거버넌스 체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지속가능한 도시로의 성장 가능성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항만 구축, 친환경 야드 트랙터 도입을 추진한다면, 환경 보호를 넘어 글로벌 항만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글로벌 해양 허브도시’ 비전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해양교육 프로그램 확대, 해양관광 활성화, 그리고 지역경제와 연계된 첨단 해양산업 일자리 창출이 절실하다. 디지털 해양박물관, 해양치유센터, 조선해양 이노베이션 협력센터를 유치한다면 해양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해양 신산업 발굴에도 기여할 수 있겠다.
이러한 기술 혁신과 지속가능성을 융합한 전략을 통해 부산은 진정한 해양수도의 위상을 확립하고, ‘글로벌 해양 허브도시’로 도약하여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미래 지향적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2025-01-2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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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제주항공 참사, 인재인지 규명하고 방지책 세워야
지난해 12월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로 승무원과 탑승객 179명이 사망하였다. 태국 방콕발 여객기가 동체 착륙을 시도하던 중 활주로를 이탈해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가 설치된 둔덕을 들이받은 것이다.
7일 열린 국토교통부의 참사 관련 브리핑에 따르면, 국토부는 이번 사고가 항공기와 새 떼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공항 관제탑이 사고기에 조류 충돌을 경고했고, 조종사는 조류 충돌에 따른 메이데이(조난)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이어 랜딩기어(이착륙 바퀴)가 펼쳐지지 않은 상태로 착륙하다가 활주로 외벽과 충돌해 폭발과 화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179명 희생 국내 최악 항공기 사고
조류 충돌이 원인 제공했을 것 추정
로컬라이즈 둔덕이 피해 규모 키워
콘크리트 구조물로 강화, 납득 안 돼
무안공항 시설·운영 철저한 조사를
안전성 확충으로 사고 재발 막아야
거의 모든 탑승자가 숨지고 2명만 구조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조사 당국은 이토록 인명 피해가 커진 이유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여객기 동체와 충돌한 활주로 시설물이 기준에 맞는지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의구심이 크기 때문이다. 일단은 활주로 외벽 앞 구조물인 ‘로컬라이저 안테나’가 사고를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공항공사는 2020년 로컬라이저 개량사업에서 부서지기 쉽게 만드는 방안을 확보하란 지침을 내리고도 콘크리트 구조물을 강화한 설계를 수용해 시공하였다. 이 구조물과의 충돌이 없었다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공항공사, 국토부 항공청을 대상으로 구조물 설치와 승인, 운영 과정 모두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로컬라이저는 항공기 착륙을 돕는 계기착륙시스템(ILS)의 하나로 통상 충돌 시 부서지기 쉬운 구조물로 만들어야 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매뉴얼은 ILS 설치 기준으로 로컬라이저의 기능과 위치, 높이, 방향 등은 물론 활주로 안전지역, 표면 상태 등을 적시하고 있다. 악천후나 시야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항공기가 안전하게 착륙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특히 활주로 주변에 항공기 운항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활주로와 인접 안전지역에 설치되는 물체나 시설이 쉽게 부서지거나 변형될 수 있도록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하는 ‘오버런’ 상황에서 충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더구나 무안공항 활주로는 약 2.8㎞로 다른 주요 국제공항보다 짧은 편이다. 이에 활주로 연장 공사를 진행 중이었으며, 이 공사 탓에 활주로는 300m가량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실제 이용 가능한 거리는 2.5㎞에 그쳤던 셈이다. 외국의 활주로가 짧은 공항들은 비행기의 오버런 사고에 대비해 완충장치인 이마스(EMAS)를 도입하고 있다. 가볍고 잘 부서지는 블록 등으로 만들어진 이마스는 활주로가 짧은 공항에서 항공기와 부딪히면 즉시 파괴되어 동체 속도를 급속하게 줄여준다. 해외 공항들의 대응체계가 이러한데도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가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2007년 개항하고도 국제선 정규 노선을 운영한 적이 한 번도 없던 무안공항에 제주항공이 지난해 12월 무안~방콕 노선 운항을 시작했다. 17년 만에 운영하는 첫 정기 국제선 운항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발생한 참사가 12·3 비상계엄 사태만큼이나 부끄럽다. OECD 선진국 국민의 자부심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듯하다. 국제선 운영에 앞서 적합한 검토와 점검이 있었는지도 꼼꼼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무안공항은 김대중 정부 시절 선심성 공약이라는 지적 속에 사전 정밀조사와 검증단계 없이 한화갑 전 의원의 주도로 건설되었다. 이밖에도 정치인의 공약성 개발은 타당성이나 경제성, 필요성 검증 없이 환경파괴와 난개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바라보며 재정 투입에 신중해야 할 필요도 있다. 국토부는 관련 학회 등과 연계하여 전문가의 관점에서 무안공항 시설물 점검을 실시해 참사의 인재 가능성 여부를 명확히 가려야 한다. 특히 이번 사고를 계기로 신규 건설에 앞서 기존에 만들어진 시설물의 안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가 정책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선진국의 기초 인프라를 이미 갖춘 대한민국이 국민의 생명이 걸린 안전 확충에 전문가들의 중지를 모으고, 예산 확대 정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2025-01-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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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계엄과 탄핵 정국 단상
헌정사상 세 번째로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게 된다. 국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위헌·위법으로 판단하고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수개월 후 헌법재판소의 인용 결정이 나온다면 보수 정권은 연속 탄핵당하는 치욕을 겪게 된다. 지난 3일 밤 느닷없는 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상황 판단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법적 요건 불비의 계엄에 대한 국회의 신속한 탄핵소추와 대통령 직무정지는 불가피했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이유를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나, 이는 오히려 자충수가 되어 탄핵 사유가 되었고 대통령 자신이 국헌을 문란하게 한 내란죄의 피의자로 전환되었다.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성정을 가진 지도자 한 사람의 오판으로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계엄 선포 직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방어를 위해 집결한 젊은 시민들의 용감한 행동은 주권자로서의 헌법수호 의지였다. 계엄군과 시민들이 대치하는 긴박한 상황에서의 국회 본회의장 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 장면은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과 복원력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계엄은 긴급한 상황에서 ‘합헌적 독재’(constitutional dictatorship)를 허용하여 위기 정부를 극복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비상적 수단이지만, 이를 오·남용하게 되면 헌법의 자살 내지 파괴를 초래하는 독약이 된다. 이번 계엄 사태는 국가긴급권의 남용이 빚은 비극이다. 국회 권력과 대통령 권력이 정면충돌하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처음부터 야당과의 ‘협치’를 택해야 했으나 그 반대로 불통과 독선과 강권으로 난국을 타개하려 했다가 결국 그는 실패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계엄은 국가긴급권 남용이 빚은 비극
헌재, 윤 대통령 탄핵 조속히 심리해야
한덕수 대행, 헌법재판관 임명 가능해
헌법질서 침해 통치행위는 사법 대상
여야, 구국의 결단으로 개헌 논의하길
대결·보복 접고 국민통합 위한 정치를
헌법재판소는 헌정의 불안정성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대통령 탄핵 사건을 우선 심리해야 할 것이다. 쟁점인 비상계엄 발동 요건의 충족 여부와 법 위반행위의 중대성의 판단은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에 비해 법리가 간명하다. 헌법재판관 9인 중 3인의 결원을 채우는 것이 시급한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인사권 범위를 두고 논란이 있다. 이번 재판관 3인의 충원은 국회 선출 몫에 대한 형식적 인사권이므로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있다고 본다. 여야는 타협과 양보로 재판관 충원에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탄핵 심판보다 내란죄 재판에서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 내란죄의 구성 요건에 관한 해석론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질 것이다. 대통령은 담화에서 내란죄 성립을 강하게 부정하고 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통치행위로서 사법 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치행위는 오늘날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하여 헌법질서와 기본권을 침해하게 되는 경우에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윤 대통령은 시간을 끌면서 탄핵서류 접수를 거부하고 공수처의 소환 통보에도 불응하고 있다. 재판 지연은 대통령의 최소한의 품격에 못 미치는 처신으로 국민의 반감만 커질 뿐이다.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입법 독주와 탄핵 남발로 지금의 국정 불안정의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으므로 이제라도 정부·여당과 협력하면서 정국 안정에 노력해야 한다. 차기 대선의 유력한 후보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의 형사상 특권에 관한 헌법 해석 논쟁을 잠재울 수 있는 선언을 하는 것이 중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총선 참패 후 집권당의 기능을 상실한 국민의힘은 내부 갈등과 분열 속에 민심을 저버렸다. 근본적 쇄신 없이 재집권은 요원하다.
탄핵 이후 전개될 정치 과정은 미래 한국의 입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다. 드러난 1987년 체제의 한계 극복을 위해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 여야는 구국의 결단으로 개헌 로드맵에 관한 대타협을 성사시켜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 방향에 대해선 이미 연구성과가 축적되어 있으므로 국민적 합의에 따른 선택만 남아있다. 다만 행정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정부제는 우리 정치 풍토와 결합되기 어렵다고 본다.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의식개혁이다. 극한 대결과 보복의 정치를 청산하고 의회주의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가 이익을 우선하고, 국민통합과 미래를 위한 정치를 약속해야 한다.
2024-12-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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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라이즈사업, 지역 맞춤형 혁신이 성공의 열쇠
저출생과 인구 감소로 지역소멸 위험이 현실화하는 지금,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이하 라이즈)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부산은 지속적인 청년층 유출과 고령 인구 비중의 증가로 인한 활력 저하가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에 부산시는 내년 초에 시행될 라이즈사업을 앞두고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BISTEP)과 협력하여 지역 대학과 지자체 간 연계 방안을 논의하며 초기 성공 사례 창출에 주력하고 있다.
라이즈사업은 지역 대학을 혁신의 중심에 두고 지역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상호 성장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는다. 하지만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되려면 대학의 자율성 보장, 자원 배분의 공정성 강화, 대학과 지자체 간 협력적 파트너십 구축이라는 도전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지자체 중심으로 진행되는 라이즈사업은 대학이 협소한 틀에 갇힐 위험성을 안고 있다. 지자체마다 정책 목표가 다르기에, 대학이 이를 초월하지 못하면 지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제한된 목표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지자체가 특정 분야에만 집중한다면 자원과 인재가 한쪽으로 쏠려 다변화된 인재를 요구하는 미래 사회의 흐름에 부합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학이 독자적 특성과 비전을 실현하도록 정책적 유연성을 보장해야 하며, 대학과 지자체 간 협력은 상호 존중과 균형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겠다.
여러 개의 세부 과제로 구조화된 라이즈사업의 운영 방식 또한 주요 과제로 지적된다. 사전에 정의된 틀은 대학의 창의적 접근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 심지어 라이즈사업이 기존의 링크(LINC, 산학협력)나 RIS(지역혁신)사업보다 더 구속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자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본래 취지를 살리는 길이다. 각 대학마다 고유한 특성과 필요가 다르므로,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한 운영 방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예산 배분 문제는 라이즈사업의 성공을 좌우할 핵심 요소다. 지역 대학들은 오랜 기간 등록금 동결로 재정 압박에 시달린 까닭에 대학재정 지원사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모두가 공감하지 않은 평가지표와 경쟁 중심의 예산 배분 체계는 대학 간 협력을 약화시키고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지역 발전을 저해하고, 대학의 생존 전략이 공동 이익보다 우선시되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지자체는 예산 배분과 평가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대학 간 신뢰 기반의 협력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대학은 지역 특성과 강점을 반영해 미래 산업을 선도하고,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계해 공동 목표를 설정하는 상생 모델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라이즈사업에서 지자체와 대학의 협력적 파트너십은 필수적이다. 과거 경험에 따르면, 지자체가 지나치게 주도권을 행사할 경우 대학은 지자체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그동안 여러 간담회에도 불구하고 부산시와의 불통을 호소하면서 지자체·대학 간 진정한 소통과 협업이 절실하다는 대학 책임자들의 목소리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는 대학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변화를 이끌어야 마땅하다. 대학도 전문성과 독립성을 기반으로 지역 산업과 연결되며, 독자적 비전을 통해 특화 산업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부산은 우수한 산업·교육적 인프라와 자원을 바탕으로 라이즈사업을 통해 지역 혁신의 선도적 사례를 만들어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라이즈사업이 단순히 정부의 지원사업을 재현하는 데 그친다면, 기존의 재정지원 방식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는 지자체의 주도적 역할이 약화되고, 대학이 독립성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학은 라이즈를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체계로 인식해야 한다. 이는 대학이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며 지역 맞춤형 혁신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이다. 궁극적으로 라이즈사업은 지자체, 대학, 정부가 삼위일체로 합심하여 지역 특색에 맞는 과제를 발굴하고 실행하는 체계를 마련해야만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부산은 대한민국 고등교육과 지역 혁신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선도하는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2024-12-1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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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글로벌 커피 도시로 떠오르는 부산
한국 제2 도시이자 최대 무역항을 가진 부산이 세계적인 스페셜티 커피 도시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946년 부산항을 통해 브라질 커피가 처음 수입된 이후, 한국의 커피 산업은 꾸준한 성장을 지속했다. 2022년 기준으로 전국에 약 10만 개의 커피 전문점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편의점 수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2023년에는 부산항을 통해 19만 3000톤의 커피가 수입되어 약 1조 5000억 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했다.
부산은 단순한 커피 소비를 넘어 수입, 유통, 로스팅, 카페 운영 등 커피 산업 전반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그 일환으로 세계 최대 커피 전시회인 ‘월드 오브 커피(World of Coffee)’와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World Barista Championship)’이 지난 5월 1일부터 4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렸다. 세계적인 두 국제 행사가 스페셜티 커피 역사상 처음으로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개최된 것이다. 이는 부산이 세계적인 커피 도시로 도약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유명 바리스타 활약에 커피 문화 형성
민관 협력으로 세계적 커피 도시 부상
단순 소비 넘어 유통 등 산업화 이뤄져
일자리 창출·청년층 유입 효과도 생겨
일관된 행정 지원·지역 업체 개발 필요
부산 커피 산업이 이 같은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요인을 살펴보면, 첫 번째, 국가대표급 바리스타들의 활약이다. 부산의 스페셜티 커피 산업은 세계적인 바리스타들의 활약을 통해 커피 품질과 기술의 향상을 선도하고 있다. 모모스커피의 전주연 바리스타는 아홉 번의 도전 끝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19년 미국 보스턴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한국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바리스타 대회는 커피 선별부터 로스팅, 추출, 창의적인 음료 개발까지 다양한 기술력을 겨루는 자리로, 각국의 커피 산업을 대표하고 있다. 호주의 폴 바셋, 미국의 마이클 필립스와 같은 전 세계 대회 우승자들은 커피 산업 전반을 성장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전주연 바리스타 또한 세계 대회 우승 이후 외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모모스커피의 성장을 견인하는 데 집중하면서 부산 지역 바리스타들의 기술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부산의 바리스타들은 기술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커피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두 번째 성공 요인을 꼽자면, 커피 산업의 성장과 함께하는 지역 커피 문화의 발전과 구도심의 성장이다. 부산의 스페셜티 커피 산업은 지역 젊은 층의 일자리 확대와 구도심의 안정적인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부산의 스페셜티 커피 산업은 지역 사회의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고품질 일거리를 제공했고, 전국의 젊은이들이 취업을 위해 부산으로 이주하는 새로운 사회 현상을 형성했다. 전주연 바리스타의 우승 이후, 부산의 바리스타들이 한국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으며, 전국의 수많은 프로페셔널 바리스타들이 앞다투어 부산으로 취업을 위해 이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베르크커피와 히떼커피와 같은 지역 기반 독립 스페셜티 커피 매장의 발전과 함께 부산 구도심인 전포동이 미국 뉴욕의 소호, 샌프란시스코 미션지구, 서울 성수동에 필적하는 스페셜티 커피 문화 지역으로 성장하였다.
세 번째는 민관 협력을 통한 체계적인 커피 산업 육성이다. 부산시는 박형준 시장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2022년 전국 최초로 ‘커피 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하며 지역 커피 산업 육성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부산항을 중심으로 유통망 혁신, 빅데이터 기반 생두 품질 검증, 다양한 커피축제 개최 등 커피 산업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부산 커피 산업의 입체적인 성장은 단순한 관광지로 커피 도시를 지향하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특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2024년 국가대표 바리스타 임정환 씨의 에어리커피, 한국 최초의 세계 컵테이스터 챔피언 문헌관 바리스타의 먼스커피,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가 많은 최재영 바리스타의 노프로그램커피가 부산 스페셜티 커피 산업의 새로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부산 스페셜티 커피 산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신규 저품질 업체의 출현과 지역 커피 산업을 훼손하는 일부 행정 규제들이 우려스럽다. 커피 도시를 지향하던 일부 지역들이 행정 지원의 일관성 부족과 지역 업체 개발 소홀 등에 따라 쇠퇴하고 있다. 부산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세계 최고의 커피 도시로 더욱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2024-11-2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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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트럼프의 신세계: 미래 바꾸려고 과거로 돌아갈 건가?
미국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 대통령이 가진 글로벌 영향력과 역할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처럼 중요한 자리이지만, 미국의 구식 선거제도는 단 일곱 개의 경합 주에서 4년 동안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책임질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세계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라면 마땅히 한국, 일본, 서유럽 등 우방국에게도 선거인단이 배정되어야 한다”는 지인의 의견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게 슬픈 현실이다. 어찌 되었든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된 이상, 그의 정책이 미국을 넘어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인의 첫 번째 관심은 그가 공언한 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속히 종결지을까?’ 하는 점이다. 트럼프의 전쟁 종결 방안은 매파 현실주의자들의 해결책과 일맥상통한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점령하고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고 여기에 비무장지대를 조성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20년간 불허한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응하지 않으면 무기 공급을 중단한다.” 이러한 트럼프의 종전 방안은 약소국을 힘으로 굴복시키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하찮은’ 동맹국, ‘나쁜’ 자선단체, ‘비대한’ 국제조직에 돈 쓰는 것을 혐오하는 사업가이다. 그의 눈에 우크라이나는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별 볼일 없는 국가일 뿐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확장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 입장에서 한미동맹은 피를 나눈 혈맹이지만, 트럼프는 돈을 지불하지 못하면 주한미군을 축소 내지 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이 한국을 방위하는 측면도 있지만, 미국의 세계 패권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명심하고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세계인의 두 번째 관심사는 트럼프의 대외경제 정책이다. 트럼프는 관세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묘사할 정도로 관세를 중시한다. 그는 모든 수입품에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특히 중국산 제품은 고율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공언했다. 미중 관세 전쟁이 격화되면 한국의 대미, 대중 중간재 수출도 타격받을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만약 트럼프가 모든 국가에 보편적 관세를 부과한다면, 다른 국가 역시 이에 대응하여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깨지고 세계경제는 블록화, 보호무역으로 돌아설 수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미국은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도입하여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유럽 국가들도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제 무역은 급격히 감소했다.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면서 세계경제는 축소되었고, 일부 국가들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팽창주의와 군사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만주와 동남아시아를 침략했고, 독일은 유사한 논리로 유럽에서 생활권(lebensraum·레벤스라움)을 찾아 나섰다. 보호무역주의와 경제적 갈등이 주요 국가들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져 2차 세계대전으로 발전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를 방지하는 대신 자유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브레튼우즈 체제 및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등 다양한 조치를 마련하고 실행에 옮겼다. 경제적 상호의존을 통해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를 바탕으로 세계를 경영했다. 이러한 자유주의 기조는 민주당 혹은 공화당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래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연속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한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바로 이러한 규칙 기반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1930년대 과거의 보호무역주의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위대했던 진짜 이유는 국제사회에 많은 공공재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즉, 단기적 이익보다는 자유무역과 평화에 기반한 국제체제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맏형 역할을 한 게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트럼프의 자기 이익을 좇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유리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차원에서 미국의 국가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미국 스스로 세계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길이 될 것이다.
2024-11-13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