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이젠 그리움이 된 눈 오는 시골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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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경, 천산비설도, 1971. 아라리오미술관 소장. ※본 이미지 저작권자를 현재까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추후라도 확인되면 저작권을 협의하겠습니다. 김화경, 천산비설도, 1971. 아라리오미술관 소장. ※본 이미지 저작권자를 현재까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추후라도 확인되면 저작권을 협의하겠습니다.

한겨울 정취가 그리운 시절이 왔다. 하지만 이제 그런 정취는 상상 아니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았다. 어스름한 저녁 굵은 눈발이 날려 몇 채밖에 없는 초가집 지붕을 덮고 앞마당에서 촌부가 두엄을 뒤적일 때 강아지 한 마리가 촐랑거리는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림이 있다.

이런 시골 정경을 한국적인 대표적인 이미지로 만든 작가는 유천 김화경이다. 그는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이당 김은호의 화실에 들어가 동양화를 배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도 했지만, 이내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온다. 해방 이후에는 천안 등지에서 미술 교사로 지내며 이당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1960년께 서울에 상경해 2002년 57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도여자사범대(현재 세종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화풍은 서울로 올라온 시기부터 문인화법과 채색화법을 병행하는 것으로 변화한다.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1960년, 61년 4·19와 5·16이라는 큰 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 당시 미술계도 변화를 요구받고 또 변화하려고도 노력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김화경은 이당에게 배운 채색화법과 전통적인 수묵화법을 혼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법을 시도했다. 그의 작품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술 교과서에 실려 한국의 정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양화로 꼽혔다. 하지만 생을 일찍 마치는 바람에 그의 작품에서 창작적 변화를 더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화경의 대표작 중 하나가 동양화치곤 꽤 큰 작품인 ‘천산비설도’이다. 화제가 대부분 없는 그의 작품과 달리 이 작품에는 긴 화제가 쓰여 있는데, 초가 마을이 이루는 정취와 글씨가 만드는 분위기가 제법 어울린다. 제호는 ‘하늘에 흩날리는 눈 그림’ 정도가 될 것이고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옛 문인들이 눈 오는 경치를 그려 속세를 떠난 고고한 마음을 표현하려 했는데 매번 이를 따르고 싶었으나 부족함만 느꼈다. 우연히 옛사람들의 흔적이 남은 촌락을 그리던 중 눈이 몇 척이나 내렸다. 종이를 꺼내 도상을 탐구하다 흥이나 붓을 적셔 촌락에 쌓인 눈을 그렸으나 일시에 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다시 그렸다. 붓 쓰기는 졸렬하여 선인들의 만분의 일도 따라가지 못하지만, 정결한 그 뜻은 마땅히 덜어지지 않는다. 신해년(1971) 시월 상순 유천이 그리고, 청사(안광석)가 제목을 달고 시를 지었다.’

올겨울은 초가집은 몰라도 흩날리는 눈이라도 보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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