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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철학자이자 문학을 사랑한 작가였다. 그는 1964년 문학에 등급을 매기고 제도화하는 것에 반대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했고,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의 출처로 알려진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을 읽었다. 웹툰, 드라마 등 동명 제목으로 유명세를 치른 이 말은 마치 타인에 대한 혐오 발언처럼 사용되고 있으나, 이는 애초 사르트르가 전하려는 뜻과 다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사르트르의 유년 시절부터 살펴야 한다.
사르트르는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외가에서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작은 키에 야윈 몸피로, 허약한 데다 눈은 사시였다.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놀림 받던 사르트르의 도피처는 외할아버지의 서재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계기가 된 〈말〉은 사르트르가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자서전으로, 그가 처음 외할아버지의 서재에 들어섰을 때 감흥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서전에서 그는 외할아버지 서재에 가득한 책을 ‘영원한 존재’라고 표현했다.
외할아버지의 서재는 그를 구원했고, 외할아버지의 기대는 그를 속박했다. 사르트르는 훗날 어린 시절 자신의 말과 행동이 결국 외할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한 연극이었음을 고백했다. 부르주아 계급의 교양을 중시했던 외할아버지의 기대에 맞추어 어휘와 어투까지 연출했던 손주의 유년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어린 사르트르에게 외할아버지의 시선과 평가는 너무 가혹했다.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은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창도 문도 없는 그곳에 안내된 세 명의 인물은 서로를 지켜보며 끊임없이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타인의 시선과 평판에 갇힌 이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세 인물 중 한 명인 가르생은 비명처럼 외친다.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두 명뿐인 타인의 시선과 평판을 감당하는 것만으로 지옥 같은 상황이 되는 까닭은, 그곳이 숨거나 피할 데가 없는 닫힌 공간이기 때문이다.
‘닫힌 방’에는 무엇보다 책이 없었다. 이를 두고 〈닫힌 방〉의 번역자는 각주에서 “지옥에는 책이 없다. 책이란 타자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타인이 지옥이 아니라, 눈앞에 전시된 타인의 삶을 볼 수밖에 없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닫힌 세계가 바로 지옥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숨을 곳이 있다면 우리는 견딜 수 있다. 사르트르에게 책이 그러했듯, 누구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을 피난처가 필요하다.
업무 용도로만 사용하던 휴대전화 문자 앱이 어느 날부터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저장된 사람들의 일상이 전시되었고, 타인의 전시는 곧 나를 향한 시선이 되었다. 액자에 담겨 전시된 타인의 일상을 관람하며, 전시하는 이는 스스로 타인의 시선 속에 자신을 가두고, 전시를 보는 이는 타인의 삶을 엿보다 자기 시선에 갇힌다.
레바논 속담에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라는 말이 있다. ‘타인 없는 나’야말로 지옥이라고 말한 〈단순한 기쁨〉의 저자 피에르 신부의 말처럼, 행복이 결국 타인과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행복 관련 연구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내용이다. 다만, 사르트르가 말했듯,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우리 자신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은 지옥이라며 접촉을 회피하기도 하지만, 결국 접속된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며 우리는 지옥에 살고 있지 않은지.
타인의 칭찬과 비판, 동경과 비하, 선망과 멸시, 호의와 적의, 그 어느 시선과 평가에도 동요하지 않는 삶, 타인의 인정에 안도하기보다 다정한 무관심을 벗 삼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그렇게 자유 의지를 지닌 이들이 모인 공동체라면, 타인은 지옥이 될 수 없다.
2025-11-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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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생존과 돌봄의 무게
나는 작은 영화들을 좋아한다. 여기서 ‘작다’는 말은 단순히 제작 규모를 뜻하지 않는다. 제작비도 관객들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낮은 작품들을 뜻한다. 10월 말부터 부산에서는 작은 영화들로 채워진 영화 축제들이 연이어 개최되었다. 부산평화영화제와 부산여성영화제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다루는 주제의 깊이와 절실함은 결코 작지 않다. 오히려 인파가 덜 붐비는 곳에서 오롯이 영화의 메시지와 마주하는 내밀하고 소중한 발견의 기회를 선사한다.
부산 여성영화제에서 만난 ‘홍이’ 역시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영화이나 진정성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모두에게 선한 미소를 건네지만, 그 미소 뒤편에 불안과 빚의 그림자를 숨긴 채 살아가는 ‘이홍’. 서른을 훌쩍 넘긴 그녀는 불안정한 노동을 전전하며 고군분투하지만,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치매 초기 증세를 앓는 엄마 ‘서희’를 집으로 모셔 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서희를 데려오는 동기는 따뜻한 혈육의 정이 아니다. 자신의 경제적 위기를 해소해 줄 금전 때문이었다. 간병을 쉽게 여겼던 홍이는 아픈 이를 보살피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곧 깨닫는다. 게다가 서희의 증세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본래 평탄하지 않았던 모녀의 관계는 더욱 냉랭해진다.
황슬기 감독의 ‘홍이’는 생존과 돌봄의 문제를 홍이를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이때 감독은 홍이의 상황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으며, 한국 사회 여성들이 짊어진 무게를 서늘하게 새겨 넣는다. 결국 영화는 미혼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과연 간병을 감당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한글을 가르치는 강사 일과 거친 건설 현장 노동을 오가는 홍이는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불안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여유가 생기면 이력서를 쓰며 불안을 지우고자 애쓰고, 또 남들처럼 연애를 꿈꿔보기도 하지만 서희를 돌보기 시작한 이후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도 사치가 되었다.
홍이는 일과 연애, 간병을 함께 꾸려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서희가 집으로 온 뒤 홍이의 삶은 막다른 길에 이른다. 그녀는 분명 엄마를 보살피려 했다. 하지만 간병의 책임은 이내 그녀의 삶을 짓누르는 압력으로 바뀐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오늘을 살아내는 절박함뿐이다. 엄마의 돈을 훔치고 썸남에게 거짓말을 하는 홍이의 행동은 분명 비도덕적이다. 그러나 이는 그녀가 궁지에서 필사적으로 생존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일 정도다.
영화는 핏줄만으로는 돌봄 문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진실을 고한다. 전통적인 가족 서사처럼 고난 끝에 사랑과 희생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신파는 없다. 물론 엄마와 홍이가 한강에서 치킨을 나누고, 복잡한 애증 속에서도 서툰 이해를 나누던 찰나의 따스한 순간은 있다. 이는 모녀에게 잠재되어 있던 서로를 향한 연민을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 서자 연민은 끝내 힘을 쓰지 못한다. 서희의 치매는 멈추지 않고, 홍이의 빚과 불안 역시 그대로 남아있다. 마침내 홍이는 서희와 자신을 위해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린다.
영화는 관객에게 어설픈 위안을 건네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너의 고립과 절망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감독의 서늘하지만 다정한 시선이 존재한다. 물론 홍이의 삶은 여전히 불안할 것이고, 짊어져야 할 빚 또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전의 자신과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홍이는 엄마가 그토록 바르고 싶어 했던 붉은색 페디큐어를 자신의 발톱에 칠해 본다. 엄마를 다시 시설로 보낸 후의 죄책감과 자유로움이 뒤섞인 붉은 발톱은 그녀가 자신의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했음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이 작은 영화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홍이들’에게 짙고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2025-11-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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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포구, 그리고 부네치아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아무 이유가 없더라도 하루쯤 사라져 버리고 싶은 순간을 느껴 보았는가. 이러한 심리를 꿰뚫은 듯 토요일 딱 하루의 짧은 여행기를 다룬 드라마도 있었다. 큰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냥 낯선 곳을 걷고 쉬며 예상치 못한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고 또 헤어져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서사다. 그것이 휴식이고 치유며 유랑이고 충전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
포구가 등장하는 책을 끼고 다녔던 적이 있다. 저자가 찾아간 불빛 깜박이는 작은 포구 마을들을 잊지 못한다. 소의 눈빛을 닮은 갈매기가 있는 구룡포, 푸른빛의 어족들이 모여 사는 어청도, 등대의 몸에 사랑의 낙서가 새겨진 늑도, 싱싱한 사투리가 출렁이는 상족포구, 변산반도 왕포, 고창의 구시포 등을 읽고 또 그곳을 찾아 걸었다. ‘조금 외로운 것은 충분히 자유롭기 때문’이라는 말에 가슴 저미던 날들이었다.
문득 떠난 여행은 휴식이자 충전
부산 내 해안 걷는 것도 좋은 힐링
특유의 색 가진 장림포구 매력적
포구 저마다 색과 역사 있어
하지만 멀리 떠나야 여행인가. 대문을 박차고 바깥바람을 맞는다면 모두 여행이 되는 것을. 무엇보다 나는 바다의 도시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해안선을 따라 걷노라면 머릿속에 생쪽같이 묶여 있던 매듭 몇 가닥쯤은 저절로 해풍 속에 녹게 된다. 집 근처만 하더라도 오륙도 바다가 보이는 백운포가 버티고 있으며, 좀 더 내려가면 부산 최초의 제뢰등대가 있는 감만동 부두도 볼 수 있다. 물론 해운대나 기장을 잇는 미포와 청사포 그리고 송정을 지나 공수마을 포구와 기장 대변항을 거슬러 월전과 일광과 칠암 등이 발길을 잡지만 오늘은 남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펄펄 생선이 뛰는 자갈치를 휘둘러보고 송도와 다대포를 거쳐 장림포구에 가 보기로 한다.
장림포구는 낙동강과 다대포의 두 갈래 바다가 만나는 아우라지 물목이다. 원래의 명칭은 장림항이지만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무라노섬을 베껴 놓았다. 평범한 포구 풍경에 색을 입혀 어디에서도 멋진 사진을 남기기 좋은 그런 곳. 파란색, 핫핑크, 노란색, 초록색, 분홍색, 민트 등의 작은 가게들이 배경이 되어준다. 그런데 알록달록한 색들이 이국적이라기보다 왠지 낯이 익다. 어릴 때 입은 때때옷과 절과 궁궐과 전통 한옥의 단청, 민화와 불화, 심지어 김밥이나 비빔밥 또는 면 위의 고명에도 올려진 한국의 전통색 오방색 풍경으로 되비친다.
지금은 부네치아라고 불리는 장림포도 한때는 부산 최고의 어장이었다. 강 하구를 둑으로 가로막기 전까지 김 생산지였고, 시도 때도 없이 걸망으로 숭어를 건져 올렸으며, 만조가 빠지는 급물살에는 밤새도록 멸치를 잡았다. 펄펄 끓인 소금물에 급히 삶아 건조하던 멸치 염포는 하룻밤에 십수 포가량씩 어시장 경매에 넘겼으며, 물살이 약할 때는 물밑 끌망으로 도다리와 홍대라 불리던 큰 새우도 쉽게 잡은 곳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이전,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장림포해전이라는 전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충무공 일기에 “장림포 해전에서 어선 6척을 침몰시켰다”라는 기록이 생생히 새겨졌다. 포구가 저마다의 색들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바다의 역사가 켜켜이 밑그림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터.
육지가 끝나는 곳. 그러므로 모든 포구는 땅끝에 닿아 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물과 뭍이 연결되고 해풍과 뭍바람이 섞이며 사람과 파도와 물고기가 드나드는 곳, 끝이라고 절망하는 자들을 시퍼런 물너울이 일으켜 세워주는 곳, 밀려서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여겼다가 어느새 땅과 바다의 중심에 서 있음을 깨치게 하는 곳이다. 그러니 이 계절에 포구를 걸어보시라. 걸음을 옮기면 다시 길이 열리고 길을 따라 걸으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니까.
2025-11-0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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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림 한 점
얼마 전 연극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아내의 지인이 출연한다고 해서 함께 보러 간 것이다. 구실이야 어쨌든 간에 간만의 데이트라 제법 들떠있었고, 주말에 번잡할지 모른다며 설레발을 쳤다. 그러다 보니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다. 공연시간까지 문화센터 여기저기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문화센터 한쪽에서 지역 미술작가의 개인전이 개최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행운이 있나. 당연히 관람해야지. 우린 전시회를 보려고 일부러 방문한 사람처럼 품위 있게 작품을 감상했다. 꽃이 있고 별이 있고, 색채만 가득한 무정형의 그림도 있었다.
그림은 잘 모르지만, 왠지 포근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이었다. 달력만 걸려 있는 우리 집에도 이런 그림 하나쯤 걸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미처 가다듬기도 전에 덜컥 그림 한 점을 구매하고 말았다.
그림을 사 놓고 하루가 지나서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자각했다. 그 돈이면 한우가 몇 근이며, 가족과 몇 번의 외식을 할 수 있을까. 거실에 두었으면 좋겠다고 아내가 몇 번이나 중얼거리던 공기청정기도 생각났다. 그때는 왜 아내의 흔들리는 눈빛을 감지하지 못했을까.
내가 뭔가에 홀려버린 것이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뭔가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나 같은 문외한들은 그런 묘한 힘이 깃든 그림이나, 음악, 혹은 유무형의 작품을 ‘예술작품’이라 부르고, 이런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예술가’라 여겼다.
사실, ‘아름다움’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름답다고 탄복하며 사들인 장식품도 집에 몇 년간 뒹굴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익숙한 물건으로 취급받기 마련이다.
무엇이 진정 아름다운 것인가? 꼭 예술가가 아니어도 한 번쯤은 던져봤을 물음이다. 아름다움을 유발하는 이론적 조건을 써 놓은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대칭과 균형, 비율과 질서라는 알쏭달쏭한 말들이 기억난다. 어떤 이는 대자연의 모습이 궁극의 아름다움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이 창작의 목적이 아님을 진작 깨달은 듯하다. 일전에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독특한 사진 하나가 눈에 띄었다. 현대미술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라 했는데, 사진 속 작품은 바로 남자의 소변기였다.
이게 뭔가 싶어서 설명 글을 읽어봤다. 소변기는 ‘마르셀 뒤샹’이라는 프랑스 미술가가 출품한 작품이었다. 그것도 작가가 직접 만든 게 아니라 시중에 판매되는 소변기에 ‘R. Mutt’라는 서명을 넣고 예술품이라 내놓은 것이었다. 대뜸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예술품이지? 도대체 왜?”
본격적으로 읽어봤다. 그러니까 작가의 깊은 뜻을 나 같은 문외한이 이해하기 쉽도록 잘 설명해 놓은 해설을 읽어봤다. 우습게도, 작가의 의도는 바로 나처럼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말인즉슨, 그 작가로 인해 예술가가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게 했나”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산 그림의 작가도 내가 무엇을 아름답게 여기는지 묻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 또한 아름다움이 뭐고 예술이 뭔지 되묻는 글 한 줄을 쓰게 된 셈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생각에 잠기게 하고, 그 내면을 자극하는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지만,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꼭 그림이 아니어도 될 것이다. 소변기든, 카텔란의 바나나든, 혹은 일상의 짧은 글이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분에 넘치는 그림 한 점으로 이런 글 한 줄 남기게 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2025-10-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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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우리는 왜 싸움을 멈출 수 없는가?
우리는 언제쯤 이 싸움을 끝낼 수 있을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이 질문에 직접 답하는 대신, 우리가 ‘왜’ 계속 싸우는지 근원적인 이유를 묻는다. 영화 제목이 암시하듯 하나의 전투가 끝나면 또 다른 전투가 이어지는 반복의 서사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과 사회적 분열의 고리를 장엄한 은유로 담아낸다. 이 단순한 문장은 분열된 현대 사회 특히 미국 내부의 첨예한 갈등과 분노가 일상화된 세계의 초상처럼 보인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폭발과 추격, 총격전이 이어지는 블록버스터의 외형을 띠지만 이면에는 이념과 인종, 계급의 갈등으로 무너진 사회의 심층이 새겨져 있다. 물리적인 ‘전투’는 오락적 장치가 아니다. 불신과 증오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이념 간의 충돌, 증오가 낳은 사회적 폭력의 일상화를 상징한다. 이때 감독은 스펙터클을 통해 현실의 폭력성을 가리기보다 오히려 이면을 들춰낸다. 그로 인해 스크린 위의 끝없는 폭력은 어쩐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이는 영화가 가상의 미국이 배경임을 밝히지만, 동시대 미국 내부의 갈등 양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정치적 작품이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영화는 반체제 단체 ‘프렌치 75’ 소속의 급진 활동가였던 ‘팻’(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이 혁명의 실패와 조직의 와해 이후, 술에 찌들어 은둔하는 ‘밥’으로 살아가는 현재를 조명한다. 과거 자유를 위해 폭탄을 만들었던 그는 이제 16살 딸 ‘윌라’의 안전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16년 전 인물이 찾아오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과거 이념적인 투쟁이 이제는 부성애라는 사적인 감정으로 치환된다. 밥의 싸움은 신념과 공포, 사랑과 책임이 뒤엉킨 내면의 투쟁이며,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사실 밥에게 자유란 거창한 정치적 구호가 아닌,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감독은 밥을 통해 혁명가로서의 정당성이 아닌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윤리적 실천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헌신적인 사랑은 동시에 고립을 낳는 역설을 품고 있다. 밥은 외부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고자, 세상과 딸을 분리하며 숨어 살았다. 하지만 그가 구축한 안전망은 사실상 외부와 단절된 감옥이다. 그는 자신이 딸을 위해 싸운다고 믿지만 그 방식이야말로 폭력의 논리일 뿐이다. 밥 또한 폭력은 폭력을 낳고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부르는 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권력에 눈이 먼 인물들은 지난한 관계를 후대로까지 이어가며 싸움을 만드는데, 이는 혁명의 완결은 없다는 감독의 시각을 대변한다.
결국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아버지 세대의 싸움이 지닌 폭력적 한계와 그 절망적인 계승을 고백하는 영화이다. 그럼에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희망의 열쇠는 다음 세대인 ‘윌라’에게 있다. 윌라는 아버지 세대가 물리적 전투를 통해 지키려 했던 ‘자유’를 물려받지만, 그 방식을 답습하지 않는다. 윌라는 배타적인 고립 대신 연대와 공존을 통해 세상을 바꿔나가는 새로운 방식의 투쟁을 선택한다. 감독은 이 과정을 마지막 장면에서 절제된 방식으로 제시한다. 윌라가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 밥은 과거의 폭력이나 은둔 대신 오직 ‘조심하라’는 당부를 건넬 뿐이다. 이 고요한 순간 영화는 블록버스터의 소음을 넘어 우리가 해내야 할 싸움의 본질을 암시한다.
결국 영화는 폭력과 갈등이 만연한 세계를 비관적이면서도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그려내지만, 그 핵심에는 ‘우리가 왜 싸우는지’ 근원을 파악하게 하는 통찰을 담는다. 혁명에는 완결이 없지만,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강렬하면서도 희망적인 메시지가 오래도록 남는 영화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이다.
2025-10-2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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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베개는 죄가 없다
여느 때처럼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목 뒤쪽에 심한 통증이 느껴져 고개를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 상태로는 하루 종일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 하겠다 싶어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통증의학과로 향했다. 바닥이 고르지 못한 길을 지날 때마다 자전거의 덜컹거림이 목까지 전달되어 고통스러웠고, 차라리 걸어갈 걸 그랬다는 후회가 뒤늦게 들었으나 이미 절반 이상 와버린 상황이었다. 평소 신경 쓸 일이 없었던 우리 동네의 도로 사정이, 즉각적인 목의 통증으로 명확하게 인지되었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세상 모든 일들은 ‘나’와 관련이 있을 때 입체적으로 솟구친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자기 중심성이랄까. 그런 인간의 한계를 고려해 보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나 파급력이 큰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경우, 다양한 상황에서 불편을 겪어보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타인의 불편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민감하고 세심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큰 불편이나 어려움 없이 살아오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천진한 얼굴이 나는 때때로 무섭다. 분노로 가득 찬 발길질보다 해맑은 표정으로 가하는 린치가 더 굴욕적이다. 어쨌거나 맞는 사람은 둘 다 아프겠지만, 전자의 경우 가해자 스스로 폭력적 행위를 인식하고 있기에 갈등을 해결하고 분노를 해소함으로써 발길질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은 존재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가해자가 자신의 주먹질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때려놓고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이게 아파? 그냥 장난인데? 왜 이렇게 예민해?” 그런 종류의 천진한 폭력을 행하는 이들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종종 보게 되고, 나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힘을 갖게 될까 봐 언제나 두렵다.
통증에서 파생된 무거운 생각들을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굴리면서 병원 문을 열었다. 대기 시간 동안 인간 존엄에 대한 책을 읽고 있으니 그 바위를 들고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를 연달아 하는 기분이었다. 힘들고 그만두고 싶고, 한편으론 도파민이 샘솟고 내 한계를 넘어보고 싶고…. 목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책을 들고 있던 팔도 아파올 무렵 진료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내원 이유를 묻는 의사에게, 잠을 잘못 잤는지 베개가 문제인지 자고 일어나니 목이 너무 아프고 잘 움직이지를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베개는 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고 일어나서 목 아프다고 베개만 자꾸 바꾸고 그러는데, 베개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동안 쌓여온 몸의 문제들이 마침내 표면에 드러났을 뿐이며, 어떤 베개를 베고 잤든 오늘의 이 사태는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평상시의 스트레스, 근육 긴장, 잘못된 자세나 생활 습관 등이 문제인데, 그것은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되어 왔다는 이야기였다. 치료를 받으며 나는 또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가끔 어떤 일들은 내 인생 전체에 대한 은유로서 벌어지는 사건 같기도 하고, 그 통찰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 혹은 문장 하나에서 촉발되곤 한다. 설령 발화자가 그러한 통찰을 목적에 두고 한 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 내가 겪는 아픔이나 괴로움의 문제, 더 크게는 내가 속한 세계의 수많은 고통과 절망이라는 문제의 원인을 ‘베개’ 같은 피상적인 데에서 찾아선 안 되는 것이었다. 단일한 하나의 원인으로 쉽게 귀결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보고 다양한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보며 잘못된 점이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수정해 나갈 때 비로소 고통은 멎을 수 있을 것이다. 아픔이 내게 주는 깨달음을 생각해 보면, 베개는 대체로 죄가 없고 통증은 때때로 유익한 것 같다.
2025-10-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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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예민함, 차이를 아는 고통과 기쁨
잎새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 즉 매우 예민한 사람이었다. 흔히 ‘초민감자’라 명명하는 이들은 민감한 기질을 타고났기에 주변 자극이나 타인의 감정에 깊이 반응한다. 초민감자의 비율은 열에 한둘 정도라고 알려져 있으나, 꼭 초민감자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 예민한 사람이 많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 깨고, 식당에서 다른 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 소화가 되지 않을 만큼 힘들어하며,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면 즐거움보다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 이들은 모임을 꺼리고 어쩌다 모임에 참석해도 침대에서 상대와 자신의 언행을 곱씹으며 뒤척인다.
이들에게 돌아오는 말,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반응은 핀잔에 가까워, 자연스레 사회생활을 하며 스스로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게 된다. 특히 치열한 생존 경쟁과 성과 압박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예민함은 사회적 약점이다. 직장 상사의 쓴소리나 까탈스러운 고객의 갑질 정도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툴툴 털고, 다시 출근길에 나서야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한때 일본에서 ‘둔감력’이라는 단어가 올해의 유행어로 선정될 만큼 인기를 끌었던 이유다.
예민함은 사회적 약점으로 인식
'둔감력'이 유행어로 선정되기도
각자 결 존중하며 공존하길 기대
예민함, 자신과 타인 향한 배려
〈둔감력〉은 일본 소설가이자 의사인 와타나베 준이치의 책으로, 국내에는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실낙원〉이라는 소설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와타나베 준이치는 여성 인물의 탁월한 심리묘사에서 알 수 있듯, 무척 예민한 사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작가 자신을 위해 쓴 책이 아닐까 싶었다. 너무 예민해서 둔감해지려 애쓰는, 그래서 저자는 둔감한 마음이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너무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라는 저자의 조언에 끄덕이다, 그것이 잘 된다면 예민한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청각이 예민하여 케이블 하나 교체하고도, 작은 소리의 변화에 기뻐하며 좋아하는 음반을 늘어놓고 음악 감상에 빠지곤 한다. 곡의 음역과 악기 위치를 귀로 그리고, 소리의 해상도, 보컬의 들숨과 날숨을 느끼는 음악 감상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소설을 읽으면 인물에 공감하여 즐겁게 몰입하고, 타인의 감정에 깊이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예민해서 사람을 잘 만나지 못하고, 소음에 민감하여 휴대전화는 종일 무음이며, 식당이나 카페 등 사람이 많은 장소를 힘들어한다. 예민함은 나에게 작은 차이를 느끼는 기쁨과 고통을 함께 주었다.
세상 만물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물은 물결이 나무는 나뭇결이 있듯 사람에게도 저마다 결이 있다. 예민한 사람일수록 사람에게 쉽게 상처받는다. 둔감한 사람은 악의 없이 예민한 이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이 상대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며, 혹시 알아도 그저 상대를 유별나다고 여긴다. 학교, 직장, 모임 등에서 둔감과 예민함이 만나면, 그 경계에 관계의 상처가 가시처럼 돋는다. 공간의 결이 길이고, 말의 결은 이야기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그곳에 길이 난다. 그 길 따라 서로 결을 존중하며 공존했으면 한다.
예민함이 너무 힘들어 무디어지려 애쓴 적이 있다. 슬픔의 범람을 둔감의 둑으로 막아보고자 한 적도, 모임에 자주 나가 관계의 상처에 굳은살이 박이길 기대한 적도 있다. 하지만 맞지 않는 신을 종일 신은 것처럼 불편했다. 생애 어느 순간, 결대로 살자 결심한 이후 마음이 편했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예민함이 나를 너무 괴롭히지 않고, 타인을 향한 세심함, 차이를 아는 섬세함으로 승화되고자 노력했다. 예민하여 작은 차이를 감지하는 것은, 때론 고통이고 때론 기쁨이다. 남은 생도 내 결을 거스르지 않고, 예민함, 차이를 아는 고통과 기쁨을 모두 누리며 살아가고자 한다.
2025-10-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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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카니발의 시간은 지나가고
러시아 인문학자 미하일 바흐친은 카니발에서 문학과 인간의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사육제라고도 번역되는 카니발은 중세 유럽에서 실제로 열렸던 축제였다. 부활 대축일 이전 금욕적인 삶을 앞에 두고 40일 동안 질펀하게 놀면서 에너지를 비축하였다.
축제 기간에는 금기와 구속이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등장하며 위계질서와 예절과 지위도 무시된다. 왕이 거지가 되고 거지는 왕이 되며 성직자는 모독당하고 광대는 추앙받는 거꾸로 된 논리가 상식을 제압한다. 위와 아래, 공포와 웃음, 죽음과 탄생 등이 자리를 바꾸며 권위는 추락하고 조롱당한다. 해학과 풍자가 만들어내는 이 집단적 해방 속에서 인간은 자기 존재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용기를 얻는다.
나는 그 카니발이 가을이면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제라는 또 다른 축제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목소리들이 스크린 위에서 살아 움직이고 경계와 위계가 흐릿해진 채 모두가 예술이라는 언어로 소통한다. 낯선 이야기들이 웃음과 감동과 조롱과 성찰을 불러일으키며 억압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그러므로 나는 ‘시민평론단’이라는 배지를 십 년 넘게 목에 걸고 올해도 영화의 카니발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때는 평소의 일정 대부분이 정지된다. 전화도 잘 받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으며 밥도 하지 않고 마트도 가지 않는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영화제에 간다고 표를 제시하면 출석을 과제로 대체해준다. 열흘 동안 하루에 서너 편의 영화를 보고 평론단의 의무인 상영작 리뷰도 세 편 이상 써야 한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비전부문 심사까지 맡게 된다.
그뿐인가. 아침마다 티켓 온라인 예매 시간이 되면 초를 다투느라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키보드 위를 미친 듯이 누른다. 단 몇 초 차이로 봐야 할 영화를 놓쳤을 때의 허탈함과 운 좋게 자리를 확보했을 때의 짜릿함은 그 자체로도 축제의 일부가 된다. 상영 시간에 맞춰 영화관을 이동하고 호평과 혹평에 따라 급조정된 티켓 교환을 시도하며 관객과의 소통 무대도 참가하느라 제때 식사하기도 어렵다. 그러기에 일주일만 지나면 평론단 동지들은 마치 전쟁이라도 치른 듯 눈자위가 움푹 꺼지고 몰골이 초췌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피로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낮에는 영화를 보고 밤에는 글을 쓰고 다음 날의 스케줄을 고민하면서도, 그 시간을 포기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올해도 역시 개봉이 예상되는 인기작보다는 배급사에서 외면할 것 같은 비주류 영화를 많이 보았다. 전쟁 다큐멘터리와 신화나 전설이 등장하는 영상물과 아프리카나 아시아 빈민국이 배경인 작품들이 매력적이다. 완성도나 서사의 밀도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어딘가 거칠고 낯설지만 그래서 더욱 진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체제와 규범에 들지 않는 인물들의 어눌하지만 강렬한 언어와 때때로 세상의 구석에 놓인 낮고 거친 목소리들을 들었다. 이제는 폐광이 된 강원 태백의 ‘장성광업소’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이슬이 온다’처럼, 잊힌 사람들과 버려진 장소에 대한 진혼곡 같은 영화가 강한 울림으로 남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를 이겨내며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막장 앞에서도 탄가루를 훌훌 불어 밥을 삼켜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이 검은 막장에서 검은 울음을 토하면서 채탄 광부로 버텨낸 이유는 오직 가족이었다. “나 혼자 참으면 가족들이 즐겁다”는 대사가 아직도 가슴을 때린다.
그렇게 올해도 내게 허락된 짧지만 농도 짙은 현대판 카니발의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
2025-09-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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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메아리
온종일 통기타만 끼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학업보다 동아리 방의 먼지가 더 친숙했고, 세상에 음악이 없으면 공허뿐이라 떠벌이며, 대단한 음악가가 된 양 노래를 불렀었다. 나름 기억에 남는 공연도 있었다.
유행하는 노래만 따라 불러서 되겠냐며 창작곡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고, 우리 통기타 동아리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창작곡으로 발표회를 열기도 했다. 요즘으로 치면 신곡발표회인 셈이다.
수많은 관객과 눈부신 조명 아래에서의 공연은 쉽게 접할 경험이 아니다. 게다가 공연을 끝내고 나면 허탈과 희열이 교차하는 묘한 잔향을 음미할 수 있다.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사실, 졸업 후, 학업에 열중하지 않았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현실은 냉혹했고, 사회생활은 만만찮았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으로 어설픈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학창시절 경험은 나름의 자랑이자 자긍이었다.
학창시절 음악 동아리 활동
노래 만들고 불렀던 기억 소중
최근 동아리 없어진 소식 충격
함께 공유하며 전통 이어가야
졸업 후에도 후배들에게서 연락이 오곤 했다. 정기 공연을 개최하니 선배로서 참석해 달라는 초대였다. 대부분 참석하지 못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해부터 후배들의 연락이 끊겼다. 워낙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아예 연락 명단에서 뺐거니 짐작했다. 뭐,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비록, 연락은 닿지 않더라도 후배들은 여전히 노래 부르고, 낭만을 즐기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은 무대의 먼 끝자리에서 후배들의 공연을 구경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얼마 전에, 유일하게 연락이 닿는 동아리 선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선배가 전해준 소식은 당혹스러웠다. 우리 동아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요즘 신입생은 취업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활동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고 했다. 좀 더 알아보니 내가 알던 몇몇 통기타 동아리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다. 대학가요제 수상자나 유명 가수를 배출한 동아리는 그나마 신입 회원을 유지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묘한 상실감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소중한 뿌리 하나가 썩둑 잘려나간 느낌이었다. 모교가 폐교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에 학교를 되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졸업생들의 심정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기타 반주에 다 함께 목청을 포개며 느낀 충만감, 공연장 뒤편의 퀴퀴한 커튼 냄새, 허름한 술집 막걸릿잔에 오르내리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이런 개인의 역사는 나를 구성하는 재료가 되었다. 그리고 언제든 문을 열면 학우들을 만날 수 있었던 좁은 동아리방은 바로 나의 유물이다.
유물의 상실은 곧 내 역사의 소실이다. 실체와 연결되는 정체성의 손잡이 하나를 잃어버린 격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잘못도 있다. 만약 선배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후배들을 응원하고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줬다면… 음악에 흠뻑 빠졌던 선배가 ‘사회’라는 무대에서도 멋지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인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세계인이 관심을 두는 우리의 전통과 유적이 자랑스러운 만큼, 그런 전통을 아름답게 이어준 옛 선인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전통과 문화는 단순히 기억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일어서고, 함께 부르고, 함께 손을 잡았기에 다음 사람에게 공감되는 기억을 건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함께하지 못해 잃어버린 내 유물이 몹시 애달프다. 그 유물은 ‘메아리’라는 이름의 동아리였다.
2025-09-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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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좋아한다는 말
꽃피는 계절은 아니지만 목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봄날. 그 시기의 나는 마치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진 것처럼 어깨가 축 처지고 늘 시무룩해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었지만 특별히 신날 것도 없었다. 단체 활동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동생을 혼자 두고 집을 비우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장거리 버스 여행에 수반되는 멀미까지. 다른 아이들이 버스 안에서 잔뜩 들뜬 채 시끄럽게 웃고 떠들 때 나는 눈을 감고 있거나 창밖 먼 곳을 응시했다. 그러다 마이크가 돌기 시작했고 버스 안은 순식간에 노래방 분위기가 되었다. 서태지, 노이즈, 듀스의 노래가 생기발랄한 여중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왔다. 나는 더욱 이방인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한껏 흥이 오른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샘도 노래 하나 하세요!” 나는 당연히 선생님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다. 제안을 한 아이도 함께 부추기던 아이들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년 여성이던 담임 선생님은 늘 무표정하거나 조금 화난 얼굴로 진지하게 수업만 하던 국사 교사였고, 아이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었으며, 노래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였기 때문이다.
꽃이 지고 초록 잎이 빛나고
바람에 흔들리고 추위를 견디는,
한 존재가 품은 모든 계절
그런데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일어나더니 마이크를 받았다. “노래를 잘 못하는데… 그래도 오늘은 수학여행 가는 날이니까 한 번 해볼게. 제목은 하얀 목련.” 그런 모습이 의외였기에 아이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그러나 선생님이 막상 노래를 시작하자 아이들은 키득거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장난을 치거나 딴청을 부렸다. 선생님이 미리 말했던 것처럼 가창 실력도 별로였고, 그때까지 아이들이 잔뜩 띄워놓았던 신나는 분위기를 완전히 가라앉히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노래가 모두 끝나자 아이들은 형식적인 환호성과 박수를 보낸 후 다시 댄스곡을 이어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이 아무런 기교도 없이 불렀던 그 노래에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고, ‘하얀 목련이 진다’라는 마지막 구절을 읊조리듯 내뱉을 때의 선생님 표정이 좋았다. 평소 수업 시간에는 볼 수 없었던 수줍은 미소, 아련한 눈빛.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에 나는 교정에 핀 목련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고, 그 하얗고 우아한 꽃이 마냥 좋아져서 화단을 자주 서성거렸다.
얼마 후 나는 전학을 갔기 때문에 선생님을 다시 볼 수는 없었는데, 그 후로도 하얀 목련을 보면 선생님의 그 표정이 떠오르곤 했다.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표정. 혹은, 언제든 볼 수 있었는데 보려고 하지 않았던 표정. 영원히 못 보고 지나칠 뻔했던 어떤 순간.
지금도 나는 목련을 좋아해서, 봄에 목련이 피면 넋을 놓고 바라볼 때가 많다. 낮에는 파란 하늘에 박힌 진주처럼, 밤에는 까만 하늘을 밝히는 알전구처럼, 화사하되 소란하지 않게 빛나는 꽃송이. 그 하얀 꽃송이가 툭툭 떨어져 버리면 괜히 서글프고 아쉽다. 그런데 얼마 전 SNS에서 목련 잎을 찍은 짧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햇살을 받은 목련 잎이 반짝거리며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영상이었다. 목련 잎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하고 감탄하다가, 문득 내가 잎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목련을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꽃이 지고 나면 나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꽃이 진 자리의 흔적, 넓고 둥그런 초록 잎이 뜨거운 햇살 아래 빛나는 시간, 그 잎들의 색이 바래가며 가을바람에 흔들리다 한 장씩 낙하하는 장면, 그리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견디는 모습. 그런 순간이 모두 목련의 생을 이루는 장면들이었는데, 목련을 좋아한다면서 꽃만 봤다. 좋아한다는 말이 그렇게 가벼운 거였나 싶어, 잎에게도 가지에게도 뿌리에게도 미안했다. 꽃이 없는 이 계절의 목련 나무를 바라보면서, 꽃이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너를 좋아한다고,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다.
2025-09-1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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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동네책방과 독서모임의 가치
제주 구좌읍 종달리에 ‘소심한책방’이란 이름의 동네책방이 있다. 그곳에 독서모임이 있는데 모임 이름이 ‘구좌 당근껍질파이 북클럽’이다. 오래전 나는 연구년을 맞아 제주에서 일 년을 보냈다. 도서관 옆에 집을 구해 오전은 제주 바닷가를 걷고 오후엔 도서관에서 책 읽고 글을 쓰며, 저녁이면 노을 속을 걸어 아내와 집으로 돌아오는 행복한 나날이었다.
독서모임 이름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제주 종달리를 떠올렸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중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있다. 워싱턴 포스트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달콤하고 정감 넘치는 찬가”라고 했던 책, 나는 이 책을 너무 사랑하여 주위에 권하고, 이 책을 제재로 책으로 만나는 인연을 뜻하는 ‘책연(冊緣)’이란 글을 쓰기도 했다. 영국 채널 제도 건지섬의 감자껍질파이가 제주 구좌읍에서 당근껍질파이가 되었으니, 책 인연이 바다를 사뿐히 건넜다.
같은 책 사랑은 생각·감정 공유
전국 각지 동네책방 존재 가치
위로·인연 주고 받는 독서 모임
내가 사랑하는 책을 사랑하는 이는 소중한 ‘책연’이다. 독서모임은 이러한 책연을 전제로 한다. 같은 책을 사랑한다는 건 생각과 감정을 깊이 공유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독(共讀)은 나이와 성별, 직업의 경계를 넘어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고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종달리 ‘소심한책방’이 시, 소설, 수필로 나누어 문학 창작 프로그램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듣기와 말하기가 일련의 행위이듯 읽기와 쓰기도 마찬가지다. 독서는 저자와 독자의 대화이며 대화는 응답을 전제하기에, 쓰기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독서의 여정이 마무리될 수 없다.
소심한책방의 소개말을 보면, 이 책방은 두 주인장의 편애로 골라둔 책들이 주를 이룰지 모르며, “우리 취향을 이해해 줄 분들이 꼭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책방을 운영한다고 한다. 사랑의 속성은 편애에 가깝다. 사랑은 결국 특정 대상을 향해 치우치고 기우는 마음이니, 편애가 아닌 사랑은 신의 영역에 속할 듯하다. 편애와 취향이야말로 거대 자본이 장악한 이 시대에 동네책방의 존재 가치일 것이다. 전국 각지에 동네책방이 자리 잡고 있어 저마다 취향의 공동체를 꾸려간다면, 우리 삶은 지금보다 다채롭고 풍요롭지 않을까.
근래 무카이 가즈미의 〈다정한 나의 30년 친구, 독서회〉를 읽었다. 학교 도서관 사서이자 번역가인 저자가 30여 년 독서모임에 참여한 경험을 담았는데, 책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책이 책을 부르고, 호명된 책을 반갑게 마중하며 독서의 길은 이어진다. 독서모임의 가치는 혼자서는 선택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책을 공독할 때 빛난다. 책 속 모임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무려 1년 반 동안 함께 읽었다는 말에 수긍하였다. 나는 이 책을 읽다 포기했는데, 아마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다면 완독하지 않았을까 싶다.
연구년 때 제주 도서관에 앉아 읽으며 쓴 글을 중심으로 책을 출간했다. 운 좋게도 책은 독자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고, 여러 기관과 매체에 추천도서로 소개된 덕분에 동네책방의 초대를 받았다. 일 년 동안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성인이 다수라는 통계에도, 어둠 속 반딧불처럼 강릉, 인천, 홍성, 익산, 전주, 김해, 통영 등지에서 만난 독자들은 동네책방에 소담하게 모여 책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부산에서도 연산동 ‘카프카의밤’, 용호동 ‘미우서재’ 등 동네책방에서 독자와 함께한 기억이 선연하다.
기술의 발달로 세상은 갈수록 편리하지만, 우리 마음은 점점 각박하기만 하다. 책은 인류 가장 오랜 미디어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가장 적합한 매체이다.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hy)’라는 용어처럼 책으로 우리는 위로받는다. 위로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손님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나를 위로해 주는 책이 있고 그 책을 인연으로 모인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동네책방과 독서모임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2025-09-0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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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밥심에서 커피심으로
오늘도 아침밥 대신 커피로 하루를 연다. 비단 나만 그럴까. 요즈음은 밥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커피심으로 견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는 ‘밥’으로 통하는 인사말을 주고받았다면, 지금은 “언제 커피나 한잔합시다”라는 대화까지 일상화되었다. 나 또한 이다음에 죽으면 어동육서로 줄지은 제사음식 대신 좋아하는 커피 한 잔만 올려 달라고 일러두었으니 커피의 위력은 사후까지 발휘될 태세이다.
내친김에 커피박물관에 가보기로 한다. 가는 길 내내 다방, 커피숍, 카페, 커피하우스 등 커피 전문점 간판이 숱하게 내걸렸다. 가히 커피숍 전성시대이다. 현대인은 커피 소비로도 자신을 나타낸다. 어디서 커피를 마시는지, 어떤 커피를 애호하는지, 누구와 함께 마시는지…. 커피가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커피는 분위기다. 밖에서 보더라도 감성 넘치는 카페에 더 오래 눈길이 간다. 도착지인 커피박물관도 폐역이 된 부산진역을 탈바꿈시켰으니 의미로운 장소가 되겠다.
이십 년 전만 하더라도 여객열차가 정차하던 곳이라 저 멀리서부터 기적 소리라도 울려 퍼지는 듯하다. 커피에 조예가 깊은 한 시민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이천여 점의 커피 기구를 기증했다는데 대단한 안목이다. 향미에 따라 적절히 섞어 재창조하는 블렌딩과 생콩에 열을 가하는 로스팅을 거쳐 분쇄 커피를 물과 함께 끓이는 달임식, 여과 장치에 넣고 거르는 여과식, 뜨거운 물에 담가 우리는 우림식, 압력을 가하는 가압식 등의 추출 방식이 시대별로 전시되었다. 추출 기구도 터키쉬, 보일링, 비긴, 사이펀, 네오폴리탄, 퍼컬레이터 등 생경한 것이 많고, 생김새도 램프를 닮은 것, 오르골 모양, 양동이를 본뜬 것, 기차 형태 등 다양한데, 에티오피아에서 가져온 절구통 분쇄기 앞에서 발길이 멈추었다.
콩팥 이식 수술을 한 그녀의 집은 단출했다. 가족이 떨어져 혼자 지낸 세월도 오래되었지만, 당뇨환자라는 상황이 주변을 더욱 간소하게 만들었다. 그 외로운 사람에게 찾아갔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대뜸 커피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선물 받은 원두 콩이 있다고 하였다. 아무렴, 한더위를 식혀줄 아이스커피 한 잔이면 된다고 무심코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식이요법을 하는 그녀의 집에 커피머신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마늘 찧는 절구통이었다. 나는 아연하였으나 그날 열서너 평의 작은 아파트를 가득 채운 헤이즐넛 향기는 어느 과일 향과 꽃 향보다도 향긋했다. 십여 분간 절구통에 찧은 커피 가루를 체에 걸러 내려 얼음을 띄운 냉커피 한 잔, 어찌 그 맛을 짧은 혀의 감각으로만 평가할 수 있으랴.
에티오피아의 고원인 카파 지방에서 어느 목동 소년이 처음으로 커피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천 년도 훨씬 넘은 설화가 사실이든 아니든, 첫 커피 열매를 발견한 자에게 경의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시게 된다는 젊은이들과, 오로지 나만의 공간을 찾아 앉을 수 있는 것도 커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절차가 복잡한 차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술은 일과 함께하기 힘들지만, 커피는 정신을 깨어있게 만드니 일할 때도 잘 어울린다. 심지어 ‘워킹 커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걸어 다니면서도 마실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왜 이렇게 커피에 열광하는가. 맛은 물론이거니와 커피를 마실 때를 생각해보라. 신분이나 지위나 나이도 잊을 수 있을 만큼 경계를 허물고 여유를 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직원이 방금 내린 한 잔의 커피를 건넨다.
2025-08-3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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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배꼽
샤워 후에 욕실 거울 앞에 서면 이상하게도 나는 ‘관찰자’가 된다. 혓바닥을 내밀어보고 안면을 최대한 찌푸려 하회탈 얼굴을 만든다. 어깨 쩍쩍 벌리다가 불현듯 정색하고 젖은 머리칼을 배우처럼 젖혀 보기도 한다. 그러곤 한발 물러서서 물이 뚝뚝 흐르는 전신을 훑어보고 씨익, 웃는다.
아주아주 예전엔 거울 속 인물을 향해 그런 윙크라도 날려봤었다. 이젠 민망해서 썩은 미소조차 날릴 수가 없다. 뱃살은 왜 이리도 살갑게 불어났고, 어깨 근육은 언제 이토록 조용히 자취를 감췄을까.
복근이 있었던 불룩한 곳을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허리를 틀어 옆구리에 붙은 푸짐한 살점도 집어본다. 사실, 내 몸에 근육이 붙었던 때가 있었는지 의심스럽지만, 나는 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던 것처럼 한탄하는 흥감을 버리지 못한다.
거울 앞에 선 남자의 이 엄숙한 순간은, 웃기지만 비밀스럽고, 민망하면서도 경건하다. 인간이란, 본디 자신을 응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 심오한 마음으로 한참 바라보다 보면, 시선이 자연스레 몸의 중심에 머문다. 시야 한가운데 고고하게 자리한 작은 흔적 하나…
오해하지 마시라. 배꼽이다. 배꼽. 이건 도대체 왜 있는 걸까? 배꼽은 나를 걷게 하지도 않고, 무엇의 통로도 아니다. 하다못해 발뒤꿈치는 충격 완화 역할을 하고, 귓바퀴는 소리를 모아주는 데 일조를 하는데 말이다.
모양조차 궁색하다. 시원하게 구멍 뚫린 것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막혀있다. 게다가 씻으려고 힘주어 문지르면 이상하게도 배아래 깊은 곳이 찌릿찌릿하다. 쓸모가 뭔지 도무지 떠올리기 힘든 배꼽 하나가 몸 전체의 중심에 자리 잡은 이 신비로운 구조는 도대체 누가 설계한 걸까.
알다시피 배꼽은 탯줄의 흔적이다. 탯줄은 어머니와 나를 이어주는 근원적인 통로였다. 그 통로를 통해 숨결이 전해졌고, 피가 흐르며, 온기가 스며들었다. 뼈와 피와 살, 나의 모든 것이 그 줄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연결이 끊어진 날, 나는 비로소 스스로 숨 쉬고 먹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배꼽은 내가 완전히 독립된 생명체로서, 또 하나의 우주가 시작했다는 유일한 증거인 것이다.
그래서 배꼽은 근원의 증거가 되었다. 중세 화가들은 아담과 이브를 그릴 때 난감해했다고 한다. 배꼽을 그리면 아담과 이브가 사람에게서 태어난 존재가 되고, 그리지 않으면 어딘가 미완의 형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떤 화가는 꿋꿋이 배꼽을 그려 넣어 인간다움을 지켰고, 또 어떤 화가는 매끈한 배를 그려 창조의 신비를 강조했다.
그리스 델포이에는 ‘옴파로스’라는 배꼽돌이 있다. 과거 사람들은 그 배꼽돌이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순례자들은 그 돌 앞에서 신탁을 받으며,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우주의 한가운데라고 여겼다.
그러니 배꼽에 아무 기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배꼽은 내 근원의 증거로서 끊임없이 나를 상기시키는 기능을 가졌으며, 그런 목적에서 가장 잘 보이는 내 몸의 중심에 있었다.
배꼽은 이제 옷 속에 가려져 사람들 눈에 띌 일도 없다. 누군가는 장식이나 피어싱으로 드러내지만, 보통은 그냥 숨 쉬듯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가끔, 거울 앞에 선 어떤 인간의 웃기지만 비밀스럽고, 민망하면서도 진지한 순간에 그 존재의 의미를 드러낸다.
배꼽과 함께 열렸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작은 우주 속에서 나 또한 나만의 의미들을 기록하고 있음을 상기한다. 공연히, 거울에 물을 뿌려 뿌예진 나를 슥슥 문지른다.
2025-08-2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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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가장 완벽한 여름휴가
어제는 다른 일들을 모두 접어두고 집에서 종일 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다. 새로운 일과 환경에 적응하느라 조금 긴장했던 마음도 풀고, 스케줄러에 오늘 해야 할 일 목록을 빼곡하게 적는 아침 루틴도 생략하고, 스마트폰도 멀찍이 두고, 이 하루만큼은 스스로에게 주는 여름휴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름답고 활기가 넘치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휴양지로 떠나보는 것도 물론 즐겁겠지만, 혼자만의 공간에서 책 한 권을 완독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휴가다운 휴가니까. 준비물은 책과 음악, 선풍기, 씁쓸한 커피와 달달한 복숭아.
라디오에서는 때마침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이 흘러나왔다. 음악은 기억 속의 한 시절을 생생하게 소환하는 힘이 있는데, 〈사계〉를 들으면 언제나 중학교 음악 시간이 떠오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어떤 부분을 무작위로 들려준 다음, 어느 계절인지 맞히게 하는 시험. 교탁 앞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어쩐지 여름 같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정말 여름에 해당하는 연주였다.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여름이라고 말하지 않고도 여름을 표현할 수 있구나. 바이올린 소리가 때로는 여름이 될 수 있구나. 그러면 또 무엇이 여름이 될 수 있을까.
하나의 기억은 또 다른 기억들을 소환했고, 나는 책을 읽다가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를 반복했다. 집어든 책이 〈두고 온 여름〉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절에 두고 온 내 마음을 자꾸만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 그 시절의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 엎드려서 책을 읽다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조금 울기도 하고, 벽에 등을 기대고 책을 보다가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걸어 들어가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현재의 내가 과거의 그들과 조우하고, 그때는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할 수 있었다. 초현실이라고 해야 할지 몽상이라고 해야 할지, 소설을 읽다보면 그런 신비로운 시간들이 종종 펼쳐진다. 어찌 보면 만취의 순간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데, 다음 날 숙취가 전혀 없다는 점은 독서의 대단한 장점이다.
어딘가에 두고 온 마음들을 돌아보고 돌아보다가, 성경 속 창세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불과 유황으로 파멸된 소돔에서 도망쳐 나올 때 뒤돌아보지 말라던 신의 명령을 어겨 결국 소금 기둥이 되었던 롯의 아내.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서, 나는 그녀의 뒤돌아보는 행위야말로 인간적이며 문학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두고 온 것들을 잊지 않는 사람, 불타는 과거의 흔적을 돌아보는 사람, 그리하여 마침내 소금 기둥으로 굳어져버리는 사람.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의 모티프는 여러 신화나 설화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도 죽은 아내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저승까지 가지만 지상에 도달하기 전에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게 되고, 우리나라의 설화 ‘선녀와 나무꾼’ 일부 판본에서도 나무꾼이 선녀를 되찾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고 만다. 금기를 어긴 대가는 가혹하고 비극적이다. 신화적 시스템 속에서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절대자에 대한 불복종으로 심판받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과거를 기억하고, 지나온 시간들을 되새기고, 거기에 두고 온 마음을 돌아보고, 아프면 아파하고, 후회되면 후회하고…. 고통스러울지언정 지난 일들을 돌아보고 직면할 때에, 제대로 다시 나아갈 힘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과 함께 수많은 기억과 상념들 속을 유영했던 하루. 시절마다 두고 온 기억들을 매만지고, 그곳에 두고 온 이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안부 인사를 전했다. 가장 완벽한 여름휴가를 보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남은 여름이 있다.
2025-08-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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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말의 시대, 글의 힘
말이 난무하는 시대, 유창한 말로 주위를 압도하는 능변가들이 주목받는 시대에, 나는 여전히 망설임과 머뭇거림의 눌변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 글이 좋다. 발화는 순발력을 요구하기에 내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전하기 어렵다. 언어란 생각을 실어 나르는 수레인데, 내 마음을 오롯이 담지 못하면 수레가 방향을 잃거나 가끔 듣는 이와 충돌하기 마련이다.
화종구생, 본디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부부 갈등도 그 시작은 대개 말로부터다. 어느 날 아침 고기 없는 밥상이 차려졌다. 남편이 투덜댄다. 내가 소도 아니고, 맨날 풀만 주면 어떻게 일하냐고. 그러자 아내가 되받는다. 당신이 돈만 많이 벌어오면 한우 등심에 보리굴비도 매끼 주지요. 그러면 남편은 벌어온 돈 다 어디 썼냐며 화를 내고, 티격태격 가시 돋친 말들이 서로에게 날아가 박힌다. 싸움의 발단은 온데간데없고 말이 낸 생채기만이 연고를 발라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된다.
글로 쓰라면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 모든 글의 최초 독자는 글쓴이 자신이기에 써놓고 읽으며 자신의 언행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자기 성찰의 성격을 지니며 곡진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글쓰기는 수필 갈래이다. 일기, 편지, 학생들이 중시하는 논술까지 대부분의 글쓰기를 갈래로 보면 수필이다. 수필은 워낙 방대한 하위 갈래를 포함하고 있어 문학 작품이면서도 일상적인 글쓰기이기도 하다.
지난 학기 수필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의 후기가 좋았다.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 시간” “삶의 태도와 생각의 깊이를 넓혀준 소중한 시간” 등의 후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학생들은 작가와 독자의 경험을 함께하는 한시적 공동체를 형성하며 “인간으로 성장하는 수업”을 만들어 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논리정연함을 요구하는 로고스와 감정의 풍부함을 추구하는 파토스와 함께 에토스를 강조했다. 에토스는 글쓴이의 성품과 윤리, 태도를 의미한다. 글 뒤에 존재하는 글쓴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글이 에토스가 좋은 글이다. 수필은 글쓴이가 글 뒤에 숨을 수 없는 갈래다. 소설이 허구 뒤에, 시는 모호함 속에 숨을 수 있으나 수필은 글쓴이가 숨을 곳이 없다. 그래서 글이 곧 그 사람이 되며,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
아내와 나는 신혼 초 갈등이 심했다. 살아온 환경과 성격, 취향이 너무 달랐다. 자꾸 마음결이 어긋나 사소한 다툼이 이어졌고, 우리는 고민 끝에 말이 아닌 글로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지금이라면 문자를 주고받았겠지만, 편지로 생각을 정리하며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다름으로 시작된 신혼 갈등을 글의 힘으로 극복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지금은 겉으로 보기에 글의 전성시대 같다. 문자나 SNS 등으로 소통하며 말보다 글이 더 익숙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글은 음성언어가 문자로 기록된 것일 뿐, 글이 갖추어야 할 구성 요소가 결여되고 편지처럼 격식을 갖추어 마음을 전하지 않는다. 얼핏 격식이라 하면 너무 딱딱하고 불편한 인상으로 다가오지만, 글쓰기에서 격식은 읽는 이를 향한 존중과 배려를 뜻한다.
소통의 진정성은 상대를 위해 내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노력을 전제한다.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마거릿 애트우드는 〈글쓰기에 대하여〉에서 “글 쓰는 삶은 끈질긴 낙타 같은 것”이라고 전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건, 막막한 사막을 포기하지 않고 건너는 것과 같다. 끈질긴 퇴고 과정에서 작가는 비로소 독자가 되며, 글쓰기의 퇴고 과정은 내가 남이 되어보는 연습이 된다. 서툰 초고를 퇴고하듯 우리 마음도 퇴고가 필요하다. 그렇게 퇴고한 마음이 상대 마음 문을 조심스레 연다. 말의 시대, 글의 힘이다.
2025-08-10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