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옻칠의 현대적 재해석… ‘하우스 오브 알파’ 개관
“이것도 옻, 저것도 옻, 여기 있는 대부분이 옻인 거죠?”부산 동래구 안락동의 한 오래된 단층 주택이 새로운 숨을 얻었다. 부산의 옻칠 공예가 이현승의 작업실로서 오랜 세월 누적된 시간의 결이 젊은 디자이너들의 현대적 시선과 결합하며 ‘하우스 오브 알파’(House of Ahlfah·명안로 26번길 51)로 변신했다. 이곳은 단순한 리모델링을 넘어, 전통과 현대의 감각이 공존하는 공예 공간이라 할 만하다. 이곳에서 23일부터 약 한 달간 ‘하우스 오브 알파’ 개관전을 연다.이 공간의 기획자이자 K-헤리티지 레이블 기업 (주)나비플렉스를 이끄는 박진솔 대표는 “한국적인 비례감과 수공예적 온기를 살리되, 전통을 ‘보존’이 아닌 ‘진화’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서울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런던대(UCL)에서 개발학(Development Administration)을 전공한 그는 UNDP(유엔개발계획) 근무 경험을 기반으로 지속가능성에 관심을 가졌다. 천연 소재인 옻칠의 친환경성과 기능성에 주목한 것도 바로 그 연장선이다.“옻은 항균·방습·방충·방부 기능을 갖춘 재료이자 인류가 오랫동안 사용해 온 가장 오래된 고기능 코팅 기술 중 하나입니다. 이미 완벽한 친환경 재료이지만, 천 년 이상을 동일한 방식만 고집해 왔죠. 우리는 옻의 과학적 특성을 현대적으로 확장하고 싶었습니다.”나비플렉스는 공예 전시 공간 외에도 ‘크래프트 나비’라는 옻칠 제품 전문 브랜드를 운영한다. 특히 상온에서도 건조 가능한 신소재 도료를 개발 중으로, 이는 전통 옻칠의 가장 큰 제약인 고온다습 조건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다. 항균성과 내구성 실험 결과 역시 우수했다. 박 대표는 “상온 경화 옻 도료 기술은 지난 몇백 년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영역”이라며 “향후 건축 마감재나 인테리어 필름 등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하우스 오브 알파’는 이 기술을 공간 전체에 적용한 거의 유일한 사례로, 벽과 문틀, 계단, 작업대, 의자까지 천연 옻칠이 입혀졌다. 신기한 게 옻의 주성분인 ‘우루시올’은 신경계통과 반응하면 약간의 가려움증을 유발하지만, 이게 마른 뒤에는 문제가 없다.이 작가는 “이 공간 전체가 곧 하나의 옻칠 작품”이라면서 “벽부터 바닥까지 전부 사람의 손을 거친 공간이란 점에서 ‘손을 찾는 손’(A Hand Looking for Hand)이라는 알파(Alpha)의 개념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박 대표도 “‘A Hand Looking For A Hand’의 약자에서 따온 ‘알파’이지만, 손과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어떤 매개 공간이 되고 싶다는 의미가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하우스 오브 알파’의 부산 프로젝트는 나비플렉스가 지난해 2월 오픈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알파 콜렉티브’(Ahlfah! Collective)로부터 출발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알려진 이곳은 4층짜리 건물로, 1층은 카페, 상층부는 전시 공간과 디자인 사무실로 구성돼 있다. 젠틀몬스터 등 다양한 브랜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도 병행 중이다.“서울은 문화가 중첩된 도시라 다양한 협업을 뜻하는 ‘콜렉티브’라는 단어가 어울렸어요. 반면 부산은 우리에게 뿌리이자 집이기에 ‘하우스’라 이름을 붙였고요. 솔직히 서울이라는 장소가 주는 어드밴티지가 있어요. 특히 예술에서는 시장이 훨씬 크기도 하고, 특히 신사동 가로수길은 문화 중심지라는 약간의 상승 효과도 있고요. 그래도 본사는 부산입니다.”옛 부산여대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예술대에 유학한 이 작가는 옻칠을 “한국인의 손이 남긴 예술이자 재료학적 응축물”로 본다. 유백색 생옻 수액이 산소와 만나 암갈색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색과 질감은, 그 자체로 시간의 미학이다. 그는 도자, 목공, 건칠 등 장기간에 걸친 공정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을 입히며 ‘옻의 느린 시간’을 오늘의 감성으로 번역한다.그러고 보면 ‘하우스 오브 알파’는 단순히 전시장이 아니라, 한국 전통미를 기반으로 새로운 K헤리티지 문화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실험이기도 하다. 공간 곳곳에 깃든 옻의 물성과 빛, 공예적 디테일은 물질적 재료를 넘어 정서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박 대표는 “전통은 지켜야 할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지금의 손끝에서 다시 숨 쉬는 생명체”라고 말한다. 이현승 역시 “옻칠은 한국인의 손이 남긴 예술이자 재료학적 응축물로, 느림의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며 그 철학을 공간 안에 옮겨 놓았다.젊은 세대의 감각과 장인의 손끝이 만나 탄생한 ‘하우스 오브 알파’는, 한국 공예의 내일을 실험하는 새로운 장이 되고 있다. 개관전은 2월 28일까지 열린다.
겨울 부산 여행 필수 코스! 한가인이 다녀간 노포 찐맛집 털어보기
지난달 11일 배우 한가인이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부산의 노포 맛집을 찾았다. 부산관광공사가 발간한 미식 가이드북 <부산의 노포, 부산의 식문화>를 바탕으로, 부산 토박이 친구들의 추천이 더해진 리스트다. 한가인이 방문한 부산 노포 맛집을 <부산온나>가 정리했다. ■평산옥 1890년 개업해 4대째 이어오는 100년 넘은 돼지수육 전문점이다. 메뉴는 돼지 수육과 국수, 매운 열무 국수로 단출하다. 돼지 수육은 잡내가 없고 살코기와 비계의 비율이 좋아 부드럽다. 고기 자체의 질이 좋아 담백한 맛이 중심이다. 잘 익은 수육을 특제 소스에 찍어 먹으면 느끼함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돼지 사골을 베이스로 한 국수는 옅은 김칫국 맛이 난다. 특별하진 않지만 삼삼하고 정갈한 맛으로 부담 없이 즐기기 좋다. 매운 열무 국수는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 특징으로 식사 메뉴로 잘 어울린다. 특히 국수는 3000원, 열무 국수는 4000원으로 요즘 물가를 고려하면 놀라울 만큼 합리적인 가격이다. 한가인은 점심 메뉴로 매운 열무 국수를, 술을 곁들이는 저녁에는 따뜻한 국수를 추천했다. 주소 부산 동구 초량중로 26 가격 수육 1만 원, 국수 3000원, 매운 열무 국수 4000원. ■성일집 1950년 문을 열어 3대째 운영 중인 70여 년 전통의 곰장어 전문점이다. 곰장어 원조집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한가인 역시 지인 추천으로 방문했다. 메뉴는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중 선택할 수 있다. 곰장어 본연의 맛을 즐기고 싶다면 소금구이가 좋다. 짭짤한 간에 쫄깃하면서도 말랑한 식감이 특징이다. 내장이 포함돼 있지만 잡내 없이 담백하게 즐길 수 있다. 양념구이는 자극적이지 않은 순한 맛으로 부담 없이 먹기 좋다. 깻잎에 곰장어를 올리고 콩나물을 곁들여 싸 먹는 방식이 잘 어울린다. 두 가지를 모두 맛보고 싶다면 소금구이로 시작해 양념구이로 이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식사의 마무리는 볶음밥이다.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볶음밥까지 싹싹 긁어먹어야 이곳의 코스가 완성된다. 주소 부산 중구 대교로 103 가격 곰장어 소금구이·양념구이 1만 8000원. ■용광횟집 1978년 문을 연 40여 년 전통의 생선회 전문점이다. 신선한 회와 붕장어(아나고) 요리로 잘 알려진 곳으로 한가인은 생선회 ‘큰 것’ 메뉴를 주문해 밀치, 붕장어, 방어를 맛봤다. 잘게 썬 미나리와 초장을 버무린 특제 소스를 회와 함께 곁들이는 방식이 특징이다. 특히 눈꽃처럼 얇게 썰어낸 붕장어 회는 상추에 올려 미나리 초장을 찍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한층 살아난다. 겨울 방어는 진한 고소함이 두드러지고, 밀치는 담백하면서도 선명한 맛을 보여준다. 함께 제공되는 붕장어 조림은 강정처럼 쫀득한 식감으로 또 다른 재미를 더한다. 생선구이와 전, 회무침 등 다양한 곁들이 메뉴가 함께 나와 전반적인 구성도 탄탄하다. 주소 부산 중구 보수대로106번길 35 가격 생선회 대 8만 원, 소 6만 원. #부산온나 #부산맛집 #부산노포
청양군 천장호 출렁다리에 서면 몸도 마음도 출렁
칠갑산 얼음분수축제에서 ‘겨울왕국’을 맛봤다면 인근의 천장호 출렁다리도 볼 만하다. 알프스마을에서 걸어서 10~15분 정도다. 2009년 만들어진 천장호 출렁다리는 웅장하다. 높이 16m의 주탑에다 길이가 207m나 된다. 다리 중간에는 청양의 특산물인 구기자와 고추를 형상화한 주탑이 인상적이다. 주탑을 지나면 1.5m의 출렁다리가 시작되는데 조금만 걸어가면 다리가 상하 좌우로 흔들린다. 은근히 스릴 있다. 다리를 건너면 전망대와 칠갑산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이어진다. 산행이 아니더라도 황룡정까지 천장호변을 산책해도 좋다. 칠갑산 동쪽 끝자락에 있는 천장호는 청양 명승지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천장호에는 황룡과 호랑이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곳에 살던 아이가 몸이 아파 의원을 찾아가야 하는데 냇물을 건널 수가 없게 되자 이곳에서 승천을 기다리던 황룡이 승천을 포기하고 자신의 몸으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게 해 한 아이의 생명을 구했다. 이를 본 칠갑산 호랑이가 감명을 받아 이곳 주민들을 보살펴 왔다는 전설이다. 천장호 주변 산책로에는 용과 호랑이 조형물이 있다. 천장호 출렁다리 부근의 각종 체험 시설도 눈길을 끈다. 천장호 입구에서 황룡정까지 네트(밧줄)를 소재로 구성된 에코워크 시설이 있다. 밧줄로 만든 다리 위를 지나는 체험인데, 마치 유격훈련을 연상케한다. 위험하지는 않다. 별도의 안전장비 없이도 체험 가능하다. 이 시설은 네트 워크 코스, 네트 브릿지 코스, 네트 타워 코스, 네트 어드벤처브릿지 코스 등 4가지 테마로 이뤄져 있다. 전체 길이 177m 구간에서 즐길 수 있고, 아름다운 천장호 자연경관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청양 칠갑산 알프스마을의 ‘겨울왕국’
살을 에는 겨울 차가움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있다. 바로 빙벽이다. 얼음은 겨울의 또 다른 얼굴이다. 차디찬 겨울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얼음 창작물은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통해 소통한다. 충남 청양군 칠갑산 자락, 겨울철 특별한 공간이 올겨울에도 문을 열었다. 새해 첫날부터 청양 알프스마을에서는 칠갑산 얼음분수축제가 열렸다. 청양고추로 유명한 충남 청양군 정산면의 알프스마을에 들어서니 독특한 느낌이 먼저 전해졌다. 예년의 1월 중순 날씨답지 않게 영상권 기온을 보이고 있는데도 알프스 마을의 공기는 차가웠다. “이상기온으로 얼음이 녹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이곳은 예전부터 얼음골로 불리던 곳이다. 한여름에도 낮은 기온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철이면 다른 곳보다 더 추운 이곳에 얼음을 이용한 축제를 열고 있는 지혜가 인상적이다. 매표소를 지나니 얼음조각으로 만든 겨울궁전이 반긴다. 터널 형태로 만들어진 겨울궁전 입구는 포토존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사진 찍기에 분주하다. 겨울궁전을 지나니 오른편에 10m 이상 높이의 거대한 고드름 모양의 얼음기둥이 시선을 압도한다. “이것이구나!” 칠갑산 얼음분수축제의 얼음기둥은 한겨울의 낮은 기온을 활용해 물을 지속적으로 분사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얼음이 층층이 쌓이며 형성된 창작물은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비슷한 듯 보여도 어느 하나 같은 게 없다. 물을 분사할 당시의 기온과 바람의 세기 등이 달라서다. 거대한 얼음기둥은 눈 덮인 칠갑산 자락과 어우러지면서 겨울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칠갑산 계곡 쪽으로 가로수처럼 만들어진 수십 개의 얼음기둥이 버티고 서 있다. 든든한 마음이 든다. 얼음기둥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축제장으로 걸어 들어가면 마치 ‘겨울 왕국’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눈이 내려 쌓였지만 산책로가 평탄해 이동하는 데 무리가 없다. 얼음집 이글루도 인기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이글루의 내부는 크고, 생각보다 따듯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살 생각은 없다. 얼음기둥과 함께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눈조각들이다. 병오년 새해를 맞아 말 모양의 눈조각상이 인기 포토존이다. 어린이들에게는 ‘티니핑’이다. 티니핑은 한국 애니메이션인 ‘캐치! 티니핑’의 캐릭터로, 티니핑 눈조각상에 사진을 찍으려는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얼음기둥은 낮과 밤의 두 얼굴로 관람객들을 반긴다. 얼음기둥에 햇살이 비치면 푸른빛과 은빛이 오가며 반짝인다. 보는 각도에 따라 얼음기둥은 표정을 바꾼다. 오후 1~3시쯤이 햇살과 어우러지는 얼음기둥의 다양한 모습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다. 어둠이 내리면 얼음기둥은 또 다른 얼굴을 한다. 특히 얼음기둥에 야간 LED 조명을 더해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다양하고 풍성한 체험 행사 칠갑산 얼음분수축제는 보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얼음과 눈썰매가 대표적이다. 난도별 코스까지 마련된 눈썰매장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겨울 야외 체험 공간으로 그만이다.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얼음봅슬레이와 얼음썰매도 인기다. 얼음봅슬레이는 눈썰매보다 속도감을 느낄 수 있어 다양한 연령층이 찾고 있다. 전통 방식의 얼음썰매는 어린이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왕국’ 상공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짚트랙은 특히 아이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하늘에 짚트랙이 있다면 땅에서는 깡통열차가 있다. 깡통열차는 바퀴가 달린 깡통모양의 열차인데, 농기구 일종인 트랙터가 깡통열차를 끌고 축제장을 오가며 정겨움을 준다. 동물 먹이주기 체험은 아이들에게 단연 인기다. 알프스마을엔 말과 염소, 토끼 등 30여 마리의 동물이 있다. 토끼와 염소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들이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이외에 축제장에는 빙어잡기, 달고나 만들기, 전통엿·가래떡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축제장에 먹을거리가 빠지면 아쉽다. 체험행사 중에는 축제장 앞에 마련된 모닥불에서 마을 주민들이 재배한 고구마와 군밤을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다. 모닥불에서 터지는 군밤 소리가 겨울밤을 재촉한다. 축제는 오는 2월 22일까지 열린다. ■알프스마을 어떻게 탄생했나 청양 알프스마을 얼음분수축제는 2008년부터 시작해 매년 20만 명이 넘게 찾는 지역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지역 소멸 위기를 관광자원으로 승화시킨 대표적 혁신사례로 꼽힌다. 시작은 재미있지만 쉽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이 겨울철 농한기 때 표고버섯을 재배하려고 물을 주다가 고드름이 이쁘게 생기는 것을 보고 착안했다. 얼음이 얼면 잘 녹지 않는 마을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재미 삼아 만든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축제로 이어졌고, 얼음분수축제로 불려졌다. 얼음분수축제는 관공서의 지원 없이 마을 사람들이 직접 운영한다.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축제 기금을 마련하다 보니 시작은 너무 힘들었다. 외부에 알려지기 전까지 적자에 허덕였고, 축제를 포기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똘똘 뭉쳤다. 축제가 없어지면 마을도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80명도 채 되지 않는 마을 주민들의 노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났다. 얼음분수축제가 SNS를 타고 겨울 명소로 부각되면서 알프스마을에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연간 1만~1만 5000여 명의 외국인들이 다녀갈 정도다. 알프스마을은 올해 축제 테마를 ‘K팝’으로 잡았다. 눈조각상에 데몬헌터스와 티니핑이 설치된 이유다. 축제장 내 얼음기둥도 90개를 세웠다. 올해 마을 주민 수가 90명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축제장 곳곳엔 이처럼 마을 주민들의 꿈과 희망이 스며 있다. “우리 마을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그런 마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소멸 위기를 맞은 지금, 알스프마을 황준환 운영위원장의 말이 뇌리에 남는다.
부산 술, 부산에 살맛 나酒
부산 사람들은 언제부터 술을 마셨을까? 신석기 시대 유적인 동삼동 패총전시관에는 술 거르는 데 사용한 깔때기와 뿔 모양의 술잔이 있다. 동삼동 패총에서는 탄화된 조와 기장도 나왔다. 부산 사람들은 신석기 시대부터 남은 곡물로 술을 빚어 축제나 제례 때 나누어 마신 것이다. 최근 부산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가 발간한 <부산 술과 부산 사람의 삶>에는 각종 부산의 술과 함께 술을 즐긴 부산 시민의 정체성이 잘 나타나 있다. 부산은 왜 술 권하는 도시가 되었는지, 그 사연 속으로 들어가 봤다. 먼저 전통주 분야다. 부산을 대표하는 막걸리에는 산성막걸리와 생탁이 있다. 산성막걸리와 박정희 대통령의 각별한 인연은 유명하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는 식량 부족 등을 이유로 쌀을 주원료로 하는 주류 생산을 제한해 쌀막걸리는 밀주 취급을 당했다. 그러다 1979년 박 대통령이 부산을 순시하던 중 박영수 부산시장이 산성막걸리 허가를 건의했다. 박 대통령이 군수기지사령관 시절에 이 막걸리를 즐겨 마신 인연이었는지, 금정산성 막걸리는 대통령령 9444호에 따라 민속주 1호로 지정됐다. 전통문화의 가치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첫 사례였다. 부산 시민이 가장 자주 마시는 막걸리는 부산합동양조가 만든 생탁이다. 부산합동양조는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부산 곳곳에 있던 43개의 양조장을 하나로 통합시켜 만들어졌다. 덕분에 생산량이 늘고 유통망이 넓어졌지만, 맛이 표준화된 점은 다소 아쉽다. 부산합동양조가 처음 만든 술은 동동주였고, 생탁은 2005년에 나왔다. ‘생막걸리’의 ‘생’과 ‘탁주’의 ‘탁’을 결합한 이름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했다. 부산 막걸리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생탁은 2024년 일본 온라인 막걸리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세계 시장으로도 뻗어가고 있다. 생탁의 장수 모델이었던 왕종근 씨가 교체되자 가짜 생탁이라고 의심하며 교환을 요구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겨나고 있단다. 기찰막걸리로 잘 알려진 부산산성양조도 전통을 자랑한다. 이곳은 1970년대 부산합동양조에 합류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3대째 운영을 해 오고 있다. 막걸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피난 시절 부산 남포동의 한 막걸릿집에서 작곡가 윤용하와 시인 박화목이 고향 이야기를 나누다 태어난 노래가 ‘보리밭’이다. 최근 부산에는 크고 작은 양조장들이 속속 들어서, 저마다의 개성과 스토리를 담아 막걸리를 빚고 있다. 이 가운데 지역 16개 양조장이 다음 달에 공식 모임을 결성한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가랑가랑양조장 이주운 대표는 “홍보와 판매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산 지역 전통주 양조장들은 공동 판매 공간이 절실하다. 또 쌀 계약 재배와 병 공동 구매부터 시작해 지역 조합 결성까지 논의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소주다. 전통적으로 남쪽 지방은 탁주,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부 지방에서는 소주 중심의 주류 문화가 발달했다. 조선총독부가 1915년에 작성한 ‘조선인의 의식주 및 기타 위생’에 따르면 당시 소주 알코올 함량은 28~38%였고, 6~8월이 소주가 가장 많이 소비되는 시기였다. 역사가 짧은 부산을 대표하는 증류식 소주의 기록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1450년 문종 즉위년 기록에는 동래온천에 머물던 대마도의 왜인 사신에게 소주 50병을 하사했다는 내용이 있다. 또 성종실록 8년 기록의 일본 통신사에 하사하는 물품 목록에도 소주 50병이 포함되었다. 이 같은 조선 시대 기록을 통해 외교적으로 중요한 선물로 소주가 사용되었고, 당시 부산 일대에서도 상당한 품질의 소주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1887년 일본인 후쿠다 마스효에가 부산에 세운 후쿠다 양조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술 공장이 되었다. 이후 다수의 양조장이 부산에 들어서면서 술의 대량생산 체제가 본격화된다. 1926년에는 일본인 이치마쯔가 부산 부평동에 마스나가양조소를 짓고 힛꼬(日光) 소주를 만들어 조선 전역에 팔았다. 이때 일본인들은 소주 시장의 잠재력을 깨달아 1929년 부산 범일동에 대규모 기계식 소주 공장을 만들었는데 대선주조의 전신이 되었다. 이때까지는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 두 종류를 모두 생산했다. 1930년대 전국 6개 공장 가운데 가장 많은 생산량을 기록한 곳은 평양이었고, 부산의 대선양조(대선주조의 전신)는 2위를 차지했다. 당시 대선양조의 대표 상품은 31.5도의 다이야 소주였다. 1934년부터 희석식 소주의 생산이 급격히 증가했다. 1945년 해방을 전후해 대선주조의 다이야 소주는 전국 판매량의 50%를 차지하면서 함경도까지 진출했다. 진로의 장학엽 사장은 부산 구포로 피난 내려와 1951년 동화양조회사를 설립하고 금련 소주, 낙동강 소주를 생산했다. 하지만 1954년 다시 서울로 돌아가 오늘날 진로에 이르고 있다. 대선주조의 히트상품 C1소주는 1990년대 초에는 부산 시장의 무려 90% 이상을 장악하기도 했다. 이때의 자신감은 “부산 싸람 아이면 마이 묵지 마라”라는 광고를 내놓을 정도였다. 2017년에는 대선블루를 출시하면서 대통령 선거 시기와 맞물려 ‘대선으로 바꿉시다’라는 중의적 광고 문구가 주효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전성기에 비해 지역 시장 점유율이 많이 하락한 대선주조가 최근 지방소멸을 경고하는 광고 문구를 내놓은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세 번째로 맥주다. 부산에는 맥주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일찍 들어왔고 수요도 많았다. 일본과 가까운 항구도시이자 일본인 전관거류지가 처음으로 조성된 곳이기 때문이었다. 1913년 9월에는 부산에 터를 잡은 일본 상인 11명이 모여 부산맥주판매조합을 결성했다. 당시의 맥주는 일본인이나 일부 조선 상류층의 전유물이자, 근대화 생활 양식을 드러내는 상징적 소비재였다. 1933년 조선맥주가 문을 열며 최초의 맥주를 생산했지만 부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1953년부터 부산 대선발효(대선주조의 전신)가 저렴한 합성맥주(인공맥주)인 다이야 맥주를 생산했다. 하지만 1968년 대선발효가 조선맥주의 새 주인이 되면서 다이야 맥주의 생산은 중단된다. 1980년대 중반 이전까지 맥주는 대학생이나 일반 직장인이 즐기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1990년대 소비 수준의 향상과 함께 노래방의 대중화가 맥주 소비의 촉매 역할을 했다. 노래방에서 단연 인기 있는 술은 맥주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노래방 문화의 출발점이 부산이었다. 1991년 4월 하단의 동아대 인근 한 전자오락실에 부산 기업 로얄전자가 개발한 노래반주기가 설치되면서 대한민국 노래방의 역사가 시작된다. 한 달 뒤인 5월에는 광안리해수욕장에 하와이비치노래연습장이 노래방으로서는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부산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대학가에서 호프집이라고 불리는 생맥주 가게를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세계맥주집들이 들어서며 외국 맥주가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맥주는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부산 술과 부산 사람의 삶>은 부산에 크래프트 맥주 펍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며 ‘부산 수제맥주 양조장 매장 및 매장 위치도(부산일보 2023년 8월 3일 자)’를 인용하고 있다. 이 지도에는 2002년 개장해 부산 하우스맥주의 1세대로 꼽히는 허심청 브로이(온천동), 리치 브로이(사직동), 고릴라 브루잉(정관), 갈매기 브루잉(대저), 와일드 웨이브(정관), 부산 프라이드 브루어리(기장), 부산맥주(양산시) 등 주요 양조장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이 책은 “부산 크래프트 맥주의 특징은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이 개성적인 맛은 과감한 재료 사용에서 비롯된다. 커피, 깻잎, 꿀, 자몽, 짭짤이 토마토, 조내기 고구마, 심지어 고등어까지 부재료로 사용하는 기발함을 보인다”라고 칭찬한다. 공동 저자인 부산대 중문과 최진아 교수는 “태어나서부터 부산 사람도 있지만 술이 매개가 되어 부산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제 글로벌 시대를 맞아 부산 술은 세계를 부산 사람으로 묶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주라는 용어 대신 미래지향적 가치를 담아 한주(韓酒)라고 부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집에서 막걸리로 식초를 만들었다. 식초 빚는 항아리를 흔들면서 부산 사람들은 이렇게 읊조렸다고 한다. “초야 초야 니캉 내캉 백년 살자.“ 술이 식초로 무사히 변하기를 바라는 이 노래도 책에 QR코드로 수록했다. 이렇게 다채로운 부산 술의 이야기를 알고 마시면 더 맛있을 것 같다. 초하고 백년을 같이 살려면 조금씩 아껴서 마셔야 하고….
코스별로 즐기는 지구촌 빵…달콤한 게 끌릴 땐 멕시코 '콘차'
‘터질 듯한 팥소를 가득 품은 과자’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매료시킨 한국 빵’이라면 어렵지 않게 황남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지난해 가을 경주 APEC 정상회의 후 유명세에 시달리는 두 가지를 들 때 국립경주박물관의 ‘신라 금관’ 특별전과 함께 거론되는 것도 바로 황남빵이다. 경주빵, 황남빵으로 불리는 경주식 팥빵은 얇디얇은 피 안에 터질 듯 가득 들어찬 팥소가 특징이다. 창업주 최영화(1917~1995) 옹이 1939년부터 만들었다니, 역사가 무려 87년에 이른다. 경주빵과 황남빵은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황남빵은 창업주가 경주 황남동에서 처음 가게를 열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은 혈통을 이은 가문의 고유 브랜드로 사용된다. 그 외 경주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같은 종류의 빵은 통칭 ‘경주빵’으로 불린다. 홈베이킹 유튜버 하오니의 <오늘도 즐거운 세계 빵 탐험>은 ‘빵 탐험가’라고 자칭하는 저자가 탐구했던 세계 36개국 170종의 빵 이야기와 레시피를 엮은 책이다. 바이킹 시대부터 먹어 왔다는 덴마크의 호밀빵 루그브뢰드, 치즈가 가득한 조지아의 국민 빵 하차푸리, ‘실업자의 푸딩’이라는 슬픈 이름을 가진 캐나다의 푸딩 쇼뫼흐 등 그의 탐험은 지역과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단순히 레시피를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책은 빵에 얽힌 이야기, 역사와 문화, 현지에서의 활용법과 탐험 과정에 겪었던 에피소드 등으로 빵빵하게 채워져 있다. 빵으로 읽는 역사서, 혹은 인문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황남빵으로 대표되는 경주식 팥빵만 하더라도 그렇다. 어릴 적 부모님의 추억으로 시작한 저자의 탐험은 일본식 화과자(만주)와의 차이를 확인한 후의 오리지널 레시피를 구하기 위한 여정이 마치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는 것처럼 펼쳐진다. 탐험과 연구를 거듭한 저자는 직접 빵을 만들어 본 후 그 과정을 일일이 기록으로 남겼다. 이 책이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라 실용서로 손색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듯. 책은 크게 네 가지 코스로 구성됐다. 첫 번째 코스는 ‘담백한 빵’. 이름을 쓰기 위해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이탈리아의 ‘파네 디 알타무라’, 크래커처럼 납작하고 바삭한 스웨덴의 ‘크네케브뢰드’ 등이 차려진다. 두 번째는 치즈·토마토·양파 등 다양한 재료가 더해져 풍미 가득한 ‘짭짤한 빵’으로, 조지아의 국민 빵 ‘하차푸리’ 등 7종이 소개된다. 조지아에서는 ‘빅맥 지수’와 유사한 ‘하차푸리 지수’로 지역별 경제 상황을 측정할 정도라고 한다. 세 번째 코스는 디저트처럼 즐기는 간식 ‘달콤한 빵과 과자’다. 야생 블루베리가 가득한 폴란드의 ‘야고지안카’, 귀여운 조개 모양이 특징인 멕시코의 ‘콘차’ 등이 탐험 대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주식 팥빵과 ‘13세기 빵’도 등장한다. 마지막 네 번째는 축제·기념일 등에 즐기는 ‘특별한 날의 빵과 과자’ 코스다.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로 국내에 알려진 멕시코 망자의 날에 먹는 ‘판 데 무에르토’, 이탈리아의 크리스마스 빵 ‘파네토네’ 등을 맛볼 수 있다. 하오니 지음/현익출판/320쪽/2만 4000원.
[어린이책] 마음 그릇 外
■마음 그릇 매일 아침, 우리 마음 앞으로 배달되는 ‘그릇 상자’. 그릇의 크기나 모양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이다. 누군가는 바다를, 누군가는 엉킨 실타래를 담는다. 모든 마음 그릇 한쪽에는 고요한 연꽃 한 송이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나의 마음가짐, 그리고 상처 난 나의 마음을 다정히 어루만지는 법을 이야기한다. 전보라 지음/마음 그릇/56쪽/1만 8000원. ■별별 케이크 왕 대회 숲속 광장에서는 매년 ‘별별 케이크 왕 대회’가 열린다. 여덟 돼지도 매번 케이크 왕에 도전했지만, 대회 전날에 케이크를 먹어 버려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올해는 절대 케이크를 먹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케이크를 완성했지만, 대회 아침에 또다시 누군가 케이크를 먹는 일이 벌어진다. 어떻게 해결할까. 김순영 글·그림/노란돼지/48쪽/1만 7000원. ■나의 미래에게 2025 창비 스토리 공모 대상 수상작. 472편의 응모작이 쏟아진 공모에서 이 소설은 “흡인력 있는 문체와 작가의 철학적 사유가 훌륭히 조화하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전염병으로 어른들이 모두 죽고 아이들만 남은 미래,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는 험난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자매의 이야기. 주민선 지음/창비/404쪽/1만 7000원. ■록키즈 탐정단 어린이 추리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제2회 이지북 장르문학 대상작. ‘추리 대회’라는 흥미로운 상황을 설정하고, 어린 탐정단이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 낸 걸작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피해자에게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는 윤리적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오홍선이 글·김민우 그림/이지북/168쪽/1만 5000원. ■루시의 노래 외로움을 달래 주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내 안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관계의 회복’을 그린다. 고양이 레오가 외로운 별 루시의 감정을 살피고 귀 기울인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서로의 거울이 되어 빛을 비추어 주는 사랑의 방식을 제안한다. 도경희 글·한담희 그림/책고래/40쪽/1만 5000원. ■곤충 찜질방 곤충들이 사는 숲속에는 몸과 마음을 따끈따끈하게 데워 주는 특별한 공간, 곤충 찜질방이 있다. 곤충들로 북적이는 이곳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찜질방이 가진 특유의 따뜻함을 잘 표현한 이 책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몽글몽글한 추억을 떠올리며 함께 즐길 수 있다. 어른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최이레 글·그림/노란돼지/48쪽/1만 7000원.
[잠깐 읽기] 공간 꾸미기와 부자의 상관관계
투자회사에서 고객 자산관리를 하다가 정리 컨설턴트 겸 재무 관리사로 전향한 저자. 10년간 1000여 명 이상의 집을 컨설팅하며 집의 정리 상태가 곧 그 집의 경제 상황을 보여준다는 걸 느낀다. ‘돈이 쌓이는 집’과 ‘돈이 새는 집’의 가장 큰 차이는 공간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부자의 집은 정돈된 공간과 여백이 많다. 부유할수록 꼭 필요한 물건만 신중하게 선택하고 의도적으로 공간을 비운다. 여백은 소비 전 충분히 고민한 흔적인 동시에 돈이 쌓일 수 있는 자리이다. 이런 태도는 공간을 넘어 시간 관리로 이어진다. 시간을 돈보다 더 귀하게 다루게 된다. 예를 들어 워런 버핏은 매일 같은 메뉴로 아침 식사를 하고, 사소한 선택에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아침마다 “차 키가 어디 있지?”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 등으로 허둥거리면 그 시간만큼 비용이 새고 있다는 의미이다. 돈이 새는 집은 ‘보이지 않는 도둑’이 있다고 설명한다. 물건이 많을수록 일상 속 동선이 복잡해지고 불필요한 시간이 소모된다. 시간 도둑을 잡아야 한다. 집 안의 모든 틈새를 물건으로 꽉 채우는 습관은 공간 도둑이다. 10억 원짜리 21평의 아파트에서 3평짜리 방 하나를 창고처럼 쓰면, 1억 5000만 원을 버리는 꼴이다. 물건이 많아질수록 정리, 관리, 유지에 드는 수고가 늘어나 물건이 삶을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유지하기 위해 삶이 고달파진다. 날 잡고 정리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공간 하나를 정해 부담 없이 조금씩 정리하는 것이 시작이다. 시모무라 시호미 지음·강산 옮김/부키/212쪽/1만 7000원.
[잠깐 읽기] 다층적·포용적인 대만의 국가 정체성을 엿보다
대만 원주민의 정체성 문제는 오늘날 대만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현재 2300만 대만 인구 중에서 원주민으로 등록된 사람은 17개 부족 60만 명, 전체 인구의 약 3%이다. 대만의 원주민 관련 박물관은 이들 소수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한족의 과오를 감추지 않고 전시한다. 신간 <대만 박물관 산책>은 대만과 홍콩의 정체성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백석대 어문학부 중국어학 전공 류영하 교수가 쓴 책이다. 저자는 38개 박물관을 돌아보며 대만의 역사와 정체성을 읽어낸다. 박물관을 탐방하며 다층적이며 포용적인 대만의 국가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를 살피는 과정이 흥미롭다. 박물관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한 국가의 문화적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는 현주소이다. 대만 박물관의 역사 서술 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단절되지도 단절하지도 않는 것’이다. 원주민의 역사도, 한족의 침탈 역사도, 일본의 식민 역사도, 독재의 역사도 배척하지 않고 서술한다. 지나친 우월감도 열패감도 없다. 건강한 대만 박물관의 서사가 건강한 대만 사회의 유전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대만인들은 “이것은 쟁점이야”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만큼 결론 도출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저자는 그런 인식만으로도 사회가 그만큼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국립 대만 선사문화 박물관에 걸린 원주민의 수렵권을 지지하는 플래카드에서 원주민의 전통을 존중하는 대만의 포용성을 엿본다. 류영하 지음/해피북미디어/528쪽/3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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