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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예타 통과만 기다리는 부울경 광역철도
장미대선이 5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후보들이 전국을 돌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지역 맞춤형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럼, 부울경 지역 대표 공약은 무엇일까? 아마도 수도권 집중화를 막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부울경을 연결하는 광역철도 건설이 아닌가 싶다. 부울경에서는 수년 전부터 이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반응은 뜨뜻미지근을 넘어 소극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부울경 지역 관계자들은 최근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를 찾아 1년가량 늦어지고 있는 부울경 광역철도의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통과와 조기 착공을 촉구했다.
〈부산일보〉와 지역 정치권 취재를 종합하면 기재부는 지난해 6월 부울경 광역철도에 대한 예타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그런데 같은 해 9월로 한차례 미뤄지더니 다시 12월로, 올해 상반기로 늦춰졌다.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급기야 ‘사업이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마저 나돈다. 부울경 지역 시장·도지사는 물론 국회의원, 기초 자치 단체장들이 기재부와 국토부,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잇달아 방문해 예타 통과와 조기 착공을 건의했지만, 기재부는 말이 없다.
부울경 광역철도는 부산 노포동에서 양산 웅상을 거쳐 KTX 울산역을 잇는 총연장 48.8km 규모로 건설되는 사업이다. 건설비는 3조 424억 원으로 추정된다.
이 철도는 2021년 8월 국토부 국가 철도망 계획 선도 사업에 선정되면서 가시화됐다. 1995년, 이 철도가 처음 언급된 지 26년 만이었다.
국토부 사전 타당성 조사를 거쳐 2023년 6월 기재부 예타에 포함됐다. 사타 당시 비용편익이 기준치(1.0)에 미치지 못했으나, 예타에 선정되면서 사실상 사업이 확정될 것으로 기대를 모아었다.
그러나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지역 정치권은 물론 765만 부울경 지역 주민들이 동요하고 있다. 자칫 소문대로 ‘사업 무산’이 현실화할지 우려돼서다.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짓는 예타 결과가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나왔을 가능성”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재부 예타는 인구나 경제력이 집중된 곳일수록 높게 나오게 돼 있어 인구와 경제력이 모여 있는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더 유리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방에서 추진되는 국책사업의 예타 통과가 수도권에 비해 어려운 것이다. 부울경 광역철도 역시 765만 명이 거주하는 곳에 건설이 추진 중이지만, 현재의 예타 잣대로는 경제성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역시 이런 문제점을 알고 비수도권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해 주기도 한다. 가덕신공항이나 부산신항~김해 고속도로, 남부내륙철도, 울산외곽순환고속도로 등 20여 개 사업이 이 혜택을 입었다.
정부의 예타 면제가 일부 사업에 그치면서 아쉽게 부울경 광역철도는 제외됐다. 이 사업은 2018년 당시 부울경 3개 시도가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과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계획한 비수도권 최초의 광역철도여서 예타 면제 대상을 기대했지만, 빠지면서 부울경 주민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국회도 개별 사업을 지정해 예타 면제 등을 규정한 특별법을 발의하고 있다. 실제 김태호 국회의원도 부울경 광역철도의 예타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예타 면제 등을 규정한 ‘특별법’까지 발의했으나 국회의 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개별 사업마다 예타를 면제하거나 특별법을 발의할 수 없는 만큼 대선 공약으로 채택되는 지방 국책사업 중 필요 사업에 한해 예타 면제와 함께 국가가 신속하게 시행하도록 하는 관련 법 제정이나 개정이 절실하다.
특히 대선 후보들이 20여 년 전부터 선거 단골 공약이었던 부울경 광역철도를 대선 공약으로 채택한 만큼 예타를 통과시켜 주거나 면제해 조기 착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울경 광역철도가 완성되면 765만 명이 거주하는 부울경이 하나의 교통망으로 연결되면서 1시간 생활권으로 묶이게 된다. 이는 단순한 이동 편의성을 넘어 지역 경제와 사회 통합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나아가 부울경 광역철도는 교통 인프라 확충을 넘어 인구 유출 방지와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공약은 흔히 ‘약속’이라고 한다. 자기가 행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언행에 제약을 가해야 하며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다. 부울경 광역철도의 예타 통과와 조기 착공은 공약 중 가장 중요한 대선 공약인 만큼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계속해서 희망 고문을 이어간다면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2025-05-2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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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믿으라"는 SKT와 정부, 못 미더운 행보
“믿고 안심하셔도 됩니다.”
SK텔레콤이 유심(USIM)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 가입자에게 강조한 말이다. ‘보안 기술 고도화’로 해킹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 피해가 발생해도 100% 보상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럼 정말 안심해도 되는 걸까.
SK텔레콤을 공격한 해커는 2022년 6월 최초 악성코드를 심었다. 해킹 사태에 대한 민관합동조사단의 공식 조사 결과다. 해커는 먼저 서버 장악을 위해 웹쉘(Web Shell) 프로그램을 침투시켰다. 이후에는 ‘BPF도어’(BPFdoor)라는 악성코드를 심었다.
웹쉘은 서버에서 임의의 명령을 실행할 수 있도록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비교적 흔하게 사용되는 해킹 도구다. ‘BPF도어’는 보다 은밀하고 정교한 해킹 도구로 원격 제어형 백도어로 분류된다. BPF도어는 중국계 해킹 그룹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커는 SK텔레콤 서버 23대에 25종의 악성코드를 심었다. 감염 서버는 추후 조사로 늘어날 수 있다. 해커가 지난 3년간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드러난 것은 지난달 2695만 건의 유심(USIM) 정보를 빼내갔다는 사실이다.
SK텔레콤은 해킹 사실을 3년간 몰랐던 데 대해 “침해는 알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또 통신망의 원활한 유지를 위해 백신 프로그램 설치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통신망이 백신 없이 운영된다는 사실은 국회 청문회 등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SK텔레콤은 침해를 탐지하기 어렵지만 “(정보) 유출은 감지할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 설명대로라면 정보 유출이 발생한 뒤에야 해킹을 알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측은 “뼈아픈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웹쉘이라는 흔한 해킹도구 사용을 잡아내지 못한 데 대해서도 “뼈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보안 관련 비판이 이어지자 당초 “어렵다”던 백신 설치도 “진행 중”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SK텔레콤 해킹 사태와 관련해선 정부의 발표도 오락가락이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1차 조사 결과에서 “단말기 고유식별번호(IMEI) 유출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IMEI 유출이 없었다는 것은 이날 배포된 정부 자료의 제목이었다. 정부는 “유출된 정보로 유심을 복제해 다른 휴대전화에 꽂아 불법적 행위를 하는 행위가 방지됨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IMEI가 없어서 ‘복제폰’을 만들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한 달도 안 돼 IMEI 유출 여부에 대해 “모른다”로 입장을 바꿨다. 지난 19일 2차 조사 결과 발표에서 정부는 “악성코드가 감염된 서버들에 대한 분석 중 IMEI 등이 포함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해당 서버의 로그기록이 없는 2년여 기간에 대해 “자료 유출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IMEI 유출 여부에 대한 입장이 바뀐 데 대해 정부는 1차 조사가 “조사 초기였고” “서버 분석 작업을 긴급히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사가 충분하게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IMEI 유출이 없었다고 발표함 셈이다. 성급한 발표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광범위하게 확산됐던 우려를 해소하자는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진상 규명보다 ‘우려 해소’ 목적이 앞섰다는 사실을 인정한 발언이다.
IMEI가 유출됐을 경우 복제폰은 만들어질 수 있는 걸까. 정부는 “좀 어렵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IMEI 숫자 조합만 가지고는 복제폰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제조사들의 해석”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그러나 “복제폰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서 100%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기술적으로 100% (안전은) 장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설명이다. 가입자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통신리서치 전문회사인 컨슈머인사이트 조사 결과 SK텔레콤의 해킹 사태 '대응'에 대한 긍정 평가는 11%에 그쳤다. 신속한 처리, 충분한 사고 대응과 보상, 가입자 입장에서의 공감과 투명한 소통 모두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응답이 70%에 육박했다. 이번 해킹 사태가 본인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3명 중 2명(63%)이 '우려한다'고 답했다. SK텔레콤 이외 KT와 LG유플러스 가입자도 이번 사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정부 대응에 대해서도 같은 조사를 한다면 SK텔레콤보다 나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kjongwoo@busan.com
2025-05-2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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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손기정과 일장기, 보스턴마라톤
마라톤 영웅 고(故) 손기정 선생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출전과 우승 소식을 담은 ‘조선중앙일보 원본 신문’ 1936년 8월 10, 13, 14일 자 발행분 3점이 지난달 14일 경매에 나와 화제가 됐다. 손기정 선생은 한국 마라톤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선구자다.
손기정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소학교 시절 때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 손기정은 1932년 동아일보 주최 경영마라톤대회, 1933년 고려육상경기회 주최 제3회 15마일 크로스컨트리경주대회 등 각종 국내 대회에 출전해 우승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했고 일제강점기 시기 한국인 신분으로 일본인들을 이겨 일본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이때 같이 선발전에 출전한 한국인 마라톤 선수 남승룡도 국가대표로 뽑혔다.
일제는 한국인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을 막으려고 베를린 현지에서 2차 선발전을 진행하는 등 몽니를 부렸으나 손기정과 남승룡은 빼어난 실력으로 일본 선수들을 다시 한번 눌렀다. 손기정은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2시간29분19초로 골인해 당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냈다. 남승룡은 2시간31분42초로 결승선을 끊어 은메달을 딴 영국의 어니 하퍼와 불과 19초 차이로 값진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인으로서 따낸 자랑스러운 올림픽 금메달과 동메달이었지만 한국은 일제 치하 지배를 받았기에 때문에 이 두 선수의 가슴엔 일장기가 박혀있었다. 당시 남승룡은 시상대에서 고개를 푹 숙였고, 손기정은 월계수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다.
동아일보는 신문 지면에 손기정의 가슴에 박혀있던 일장기를 지우고 사진을 게재하는 이른 바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일제로부터 무기한 정간을 당하기도 했다. 나라의 주권이 상실된 상태에서 이 두 선수는 한국인의 뿌리와 절개를 잊지 않았다. 손기정은 한국인의 모습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선 오직 올림픽 무대 금메달 획득이 정답이라 생각하며 뛰었고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조선’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특히 남승룡은 동메달을 획득하였음에도 자신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가리지 못한 사실을 부끄러워 했으며, 남달리 조국을 위한 신념이 강했던 그는 대회가 있을 때마다 각국의 기자들에게 자신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임을 눈물로 호소함으로써 또 다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남승룡은 손기정 못지않은 마라톤 실력을 발휘하며 1932년 제8회 조선신궁경기대회 1위, 1933년 제20회 일본육상경기선수권대회 2위 등의 빛난 업적을 이뤘다.
남승룡의 조카 남청웅씨는 “남승룡 선생은 양정고등보통학교 시절 서울에서 고향인 순천까지 하루에 200리(80㎞)에서 250리(100㎞)를 5일간 뛰고,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여수까지도 뛰는 등 달리기를 항상 생활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손기정과 남승룡의 뒤를 이어 한국 마라톤을 빛낸 선수는 바로 서윤복이었다. 서윤복은 1947년 4월 19일 보스턴국제마라톤대회에서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국제 대회에서 2시간25분39초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감격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국민 영웅’ 손기정은 마라톤 감독을 맡아 서윤복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남승룡은 코치이자 페이스 메이커로 서윤복의 우승을 돕기 위해 35세 나이를 잊은 채 대회를 완주해 12위를 차지했다.
서윤복은 당시 최강으로 평가받았던 일본과 미국 선수들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1947년은 해방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으로, 서윤복의 우승은 단순한 스포츠 승리를 넘어 국가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지금까지도 보스턴마라톤은 세계 최고 권위의 마라톤대회 중 하나로 꼽힌다.
그의 우승이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받았던 이유는 당시 한국은 해방 후 혼란기였고, 훈련 환경이나 지원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윤복은 개인적인 노력과 투혼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이다. 서윤복은 경기 후 “달리는 내내 조국과 민족을 생각했다”며 “일제 때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아픔을 생각하며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결심으로 뛰었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서윤복의 보스턴마라톤 우승 이후 한국 마라톤의 전통은 황영조, 이봉주 등으로 이어졌는데, 현재 한국의 최고 기록은 2000년 도쿄국제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세운 2시간7분20초로 25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즉, 2000년 이후 한국 마라톤은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마라톤의 부흥을 위해 정부와 체육계의 장기적이고 대대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5-05-2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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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역의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 기후위기를 마주하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이 ‘평범한’ 진리를 상처 입으며 몸으로 깨달았다. 네가 안전해야 내가 안전하고, 내가 살아야 너가 산다고.
반얀트리 공사장 화재로 인한 삼정기업의 기업회생 신청, 촉망 받던 2차전지 기업 금양의 상장폐지 위기는 지방은행의 건전성 악화로 연결됐다. 부산은행의 지난 1분기 당기순이익은 전년보다 33%나 감소했다. 대손충당금이 증가하고, 석 달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 비율을 나타내는 고정이하여신비율이 상승하면서 자산 건전성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KB금융의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62.9% 상승해 1조 7000억 원가량을 기록하는 등 시중은행·인터넷은행들이 당기순이익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고공행진을 할 때, 부산은행은 지역 경제의 신음을 지표로 들려줬다.
연결 고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방은행인 부산은행의 위축은 결국 지역 경제 위축으로 이어진다. 당장 지역에서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기업과 소상공인, 가계 자금 흐름에 영향을 미치며, 이익을 다시 지역사회로 환원하는 사회공헌 사업 또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역 우수 인재들을 지역에 머물게 하는 좋은 일자리도 줄어든다. 지방은행은 단순한 금융기관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핵심 축이다.
지난 17일 성황리에 개최된 부산은행의 대표적 사회공헌 사업 ‘I LOVE(아이사랑) 페스티벌’에 3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는데, 3000여 명에게 선물했던 ‘소소한 행복의 하루’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지방은행은 그렇잖아도 인터넷 전문은행과 빅테크 기업들의 금융업 진출, 시중은행의 지방 영업 강화와 같은 위험 요소들에 직면해 있다. 인구와 산업, 자본시장 규모가 수도권에 비해 절대적 열위에 있고, 이 격차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는 점은 지방은행의 근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요소다. 앞서 외환위기 때는 많은 지방은행이 시중은행에 흡수되기도 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온라인 플랫폼 시장 확대로 10년 후쯤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던 일이 5년 이상 앞당겨져 일어나고 있다. 이제 막 준비하려 했는데 이미 들이닥쳐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했는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은 초기 인터넷, 스마트폰이 확대되던 때보다 훨씬 더 숨가쁘게, 급격한 곡선을 그리며 일어나고 있다.
지방은행의 위기 감지는 그래서 더 예민한 촉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지난달 열린 제1차 금융노동포럼의 주제를 ‘지역 경제의 위기와 지방은행의 역할’로 정하고 지방은행이 지역 밀착형 관계금융을 통해 지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만큼, 지방은행을 통해 지역의 돈이 지역에 재투자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부산경실련도 최근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공약 제안에서 공공기관들이 지방은행 거래 비중을 더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 공공기관 경영 평가 시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선 조사에서 부산 이전 공공기관의 지방은행 거래 비중이 낮아 공공기관의 운영 자금 대부분이 시중은행을 통해 역외로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해 낸 보고서에서 지방소멸을 억제하기 위해 은행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자체가 시 금고를 지정할 때 은행의 해당 지역 중소기업의 대출 실적에 가점을 주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물론 지역 경제 순환의 고리 어디쯤에서 ‘나’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건 어떨까. 올 초 지역 신발산업을 대표하는 향토기업 트렉스타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식을 전해들은 부산, 경남 시민들과 지자체, 지방은행이 앞다퉈 향토기업 살리기에 동참하면서 내수에서만 매출이 지난해 대비 140% 상승하고 온라인 구매 실적은 260% 증가했다고 한다. 이에 화답하듯 트렉스타는 4000만 원 상당의 등산화를 경남 산불 피해 지역에 기부했다. 지역 경제의 핵심은 순환이고, 연결이다.
부산 커피 기업 모모스는 전국에 원두를 판매하며 모모스커피의 원두와 부산우유의 절묘한 맛의 조합을 알린 덕에 부산우유를 쓰는 곳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로컬의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지역화는 글로벌 경제가 입힌 손상을 만회하는 가장 전략적이고, 효과적이며, 상식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소멸을 막을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지역화는 행복의 경제학이라고 했는데, 개개인을 공동체 그리고 자연과 다시 이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역 순환 경제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한 경제다. 이 순환의 핵심 축은 지방은행에 있다.
2025-05-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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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산 크루즈 관광, 첫인상이 중요하다
‘부산항국제여객 제2터미널입니다. 야외 주차장 안으로 들어와서 직진해 주세요.’
부산을 찾은 외국인 크루즈관광객이 손에 쥐고 다니는 명함 크기의 안내문에 적힌 내용이다. 이 명함은 부산시관광협회가 부산의 ‘헷갈리는 크루즈터미널 명칭’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만들었다.
최근 크루즈를 타고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지만, 그들을 맞는 부산의 수용 태세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지난해 부산 크루즈 관광객은 15만 2000명으로 2023년에 비해 1000명 이상 늘었다. 부산에 입항한 크루즈선도 2023년 105척에서 2024년 118척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증가세가 더 가팔라 크루즈 171척이 부산에 입항하며, 관광객 수도 2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부산시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 목표를 300만 명으로 정하고, 관광업계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부산항 크루즈 관광 활성화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정부는 올해 1년간 전담 여행사와 크루즈 선사가 모집한 3인 이상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 한해 무사증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 같은 ‘크루즈 관광상륙허가제 시범사업’ 논의는 지난해 부산시가 정부에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코로나19 이후 개별 관광을 선호하는 여행 행태가 바뀌고 있는데도 단체관광객 유치만 가능한 제도 때문에 일본에 밀려나고 있다는 점을 피력한 것이다.
이런 정책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전반적인 수용 태세 점검은 더 중요하다. 지역 관광업계가 입을 모아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택시 호객’이다. 부산항에 크루즈가 입항하고 터미널 앞 주차장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쏟아져나오면 일부 택시 기사들이 투어 팻말을 들고 호객에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불법 호객도 문제지만, 턱없이 비싼 바가지요금을 받는 데다 단거리 승객은 태우지 않는 승차 거부도 예사다. 신용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만 요구하다가 손님과 실랑이가 벌어지는 일도 많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부산에 내려서 처음 마주치는 광경이 택시 호객 행위라니 부끄럽다”며 “망친 첫인상을 짧은 체류 시간 안에 회복하고 돌아갈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지자체와 경찰 단속을 요구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단속반이 현장에 잘 나오지 않고, 나오더라도 지켜보기만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강력 단속과 더불어, 호객 행위가 많은 공항택시의 거친 이미지를 바꾼 인천공항 콜택시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거북이택시’는 미터기 사용, 청결한 차량, 친절한 기사, 사전 예약제와 24시간 상담 등 신뢰 기반 서비스를 통해 공항택시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부산도 이를 참고해 단속을 넘어 서비스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부산 크루즈터미널 명칭도 외국인 관광객을 당황하게 한다. 현재 부산에 크루즈가 입항하는 곳은 동구 초량동의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부산항국제여객 제2터미널, 영도구의 국제크루즈터미널 등 총 3곳이다. 정기선은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을 이용하고, 대부분의 크루즈는 부산항국제여객 제2터미널로 입항한다. 제2터미널의 선석이 찼거나, 부산항대교를 통과하지 못하는 초대형 크루즈는 영도구의 국제크루즈터미널로 입항한다.
문제는 3곳의 명칭이 헷갈린다는 점이다. 특히 영어 명칭이 International Passenger Terminal(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International Cruise Terminal(국제크루즈터미널)로 비슷하고, 제2터미널은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주차장 안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부산의 택시 기사들도 3곳의 터미널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다 보니, ‘크루즈를 타고 왔다’는 승객 말에 영도로 안내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관광 안내데스크 직원들이 콜택시를 불러줘서 겨우 출항 시간에 맞춰 오는 일도 벌어진다. ‘영도에서 국제여객터미널로 갔다가 마지막에 제2터미널로’ 오는 일도 있다.
관광 콘텐츠도 돌아봐야 한다. 대부분의 크루즈는 수도권 여행사와 계약해 ‘부산 겉핥기’ 식 상품으로 운영된다. 지역 업체들은 진입 장벽을 느끼겠지만, 특히 개별 관광객을 위한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부산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하면 다시 돌아올 이유가 없다.
크루즈 관광은 단기 체류형이다. 짧은 시간에 도시 인상을 받는다. 그 짧은 시간이 혼란과 불쾌감으로 채워진다면 아무리 크루즈가 많이 들어와도 부산의 이름은 남지 않는다. 부산의 첫인상을 바꿀 때다.
김동주 경제부 차장 nicedj@busan.com
2025-05-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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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동남권 관문공항에 알맞은 시기는 언제인가
4월 초, 진로 강의를 간 적이 있는 부산 한 여고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생들이 수행평가를 위해 지역지와 중앙지의 차이점과 역할에 대해 궁금한 점을 메일로 묻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꼼꼼한 질문들에 답하면서 지방공항 논쟁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남부권 관문공항이 필요하다는 숙원에 ‘멸치 말리는 공항’ 운운하면서 국토 절반에 살고 있는 지역민들을 모욕한 일부 언론을 지적하고, 가덕신공항 건설 확정에는 지역의 목소리를 전한 지역 언론의 역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때만 해도 지나간 이야기인줄 알았다.
한 달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국가계약법을 어기고 정부 입찰 공고에서 약속한 공사 기간보다 2년을 더 초과한 공사 기간을 반영해 기본설계를 내놓으면서 가덕신공항 공사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국토교통부가 가덕신공항 부지조성 공사 입찰을 처음 공고한 것이 지난해 5월이다. 세 차례나 단독 입찰을 했던 현대건설은 이런 조건을 잘 알고 수의계약에 참여하기로 해놓고는 6개월 만에 입찰 조건을 어긴 기본설계안을 들고 왔다.
국토부 장관은 현대건설의 공기 연장안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했지만, 2029년 12월 개항, 착공 7년 후 준공이라는 정부 약속을 믿고 기다린 남부권 국민들만큼 황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덕신공항은 참여정부 때 국가적 이슈로 등장해 정권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정부 기본계획으로 확정된 국정 사업이다. 국가계약법도 무시하는 전례 없는 건설사의 배짱으로 대규모 국책 과제가 최소 1년을 허비하게 됐다. 국정 과제를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할 국토부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이 사태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와서 정부 기본계획이 틀렸다면 동남권의 30년 숙원 사업을 정부가 타당한 근거도 없이 추진했다는 말이다. 공기 연장이 필수라는 건설사 논리가 맞다면 정부가 1년 동안 전문가 용역을 거쳐 수립하고 고시한 기본계획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대신에 엉뚱한 이야기들이 다시 흘러나온다. 가덕신공항 규모를 이야기하면서 ‘여의도의 몇 배’ 운운하는 것 정도는 수도권 중심 시각의 가장 가벼운 단계다. 정부가 약속한 국책 사업을 지연시키고 흔들어놓은 쪽은 따로 있는데, 일부 언론은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고 애초에 정치적으로 무리하게 추진된 일정이라고 화살을 돌린다. 더 나아가 가덕신공항 자체가 표퓰리즘으로 결정된 사업이니 이참에 사업 추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운운한다.
기막힌 이야기는 더 있다. 인천공항은 2033년에 여객 수용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지방공항의 눈치를 보느라 5단계 확장의 적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내년에 수립될 제7차 공항개발종합계획에 가덕신공항 등 지방공항에 승객이 얼마나 분산되는지를 먼저 검토하겠다는 것을 두고 무분별한 공항 건설은 정치 논리고, 선거용으로 결정된 가덕신공항 건설은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해공항은 포화 상태를 넘어선 지 오래고, 정부가 남부권의 관문공항으로 가덕신공항을 추진 중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선거철마다 남발되는 정치적 SOC(사회기반시설) 공약의 예견된 실패라는 분석도 등장했다. 가덕신공항과 나란히 예시로 든 것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후보가 나란히 들고 나온 수도권광역급행열차(GTX) 확대 공약이다. GTX A·B·C 노선의 신속한 추진과 수도권 외곽, 강원까지 가는 연장 노선에 더해 D·E·F 노선의 단계적 추진을 검토한다고 한다. 약 134조 원이 필요하다는데, 가덕신공항 건설 사업 예산은 13조 5000억 원이다.
동남권은 안전한 공항의 적기 개항을 바란다. 2029년 12월은 2030월드엑스포 유치를 전제로 당긴 일정이 맞다. 동시에 엑스포를 지렛대 삼아 지역과 국가가 함께 생존하기 위한 전략상 마지노선이기도 했다. 나라를 망치는 수도권 일극체제에서 탈피해 국가의 새로운 발전 축을 가동하기 위한 목표다. 노인 인구가 청년 인구를 역전한 부산에서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고도 미래를 계획하고 세계를 꿈꿀 수 있는 시간표다. 지금 이 순간도 인천공항을 오가는 데 연간 1조 원이 넘는 돈을 길바닥에 쏟고 있는 동남권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할 적기다. 지금 당장이라고 해도 늦었다. 안전은 기본이다. 신공항 논의가 본격화된 계기가 2002년 129명 사망자를 낸 김해 돗대산 중국 민항기 추락 사고다. 무엇보다 동남권 국민들이 직접 이용할 공항이다.
정부는 동남권 800만 국민들과 정부 약속에 대한 신뢰를 최우선에 두고 안전한 공항을 제때 개항하기 위해 가능한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국민들도 대선 후보들 중 누가 국가균형발전에 진정성을 갖고 가덕신공항을 말하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최혜규 사회부 차장 iwill@busan.com
2025-05-1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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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캡틴 아메리카의 추락
검찰이 ‘캡틴 아메리카’ 복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 시위를 하며 중국 대사관에 난입하고 경찰서 유리창을 깨부순 40대 남성에게 지난달 말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이 남성은 최후진술에서 “모든 죄를 지금 다 인정하고 피해받은 모든 분에게 사과드리고 싶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잘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선처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미 때가 늦었다. 며칠 전에는 부산역 광장을 지나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시위대를 마주친 일이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캡틴 아메리카에 대해서도 찾아보게 됐다.
마블코믹스 영화의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1년 전인 1940년에 탄생했으니 우리 나이로 85세의 노인인 셈이다. 당시 주적은 나치였다. 작가 조 사이먼은 신문을 읽다 유럽을 정복하려는 히틀러를 보고 세상에서 보기 드문 완벽한(?) 악당이라고 감탄했다. 그가 히틀러의 ‘대적자’로 만든 캐릭터가 캡틴 아메리카다.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을 진정 사랑하는 애국자다. 그의 주된 고뇌가 “나는 미국이 이대로 흘러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가?”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자의식 과잉 상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2016년에 나온 영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에서 스파이더맨과 대화하는 대목은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고 있다. “언론이 뭐라고 하건 상관없어. 대중이 뭐라고 하건 상관없어. 온 나라 전체가 그릇된 것을 옳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어. 이 나라는 다른 것보다 이 한 가지 원칙을 기반으로 세워졌네.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가 믿는 것을 옹호해야 한다는 것. 만약 대중이나 언론, 전 세계가 자네한테 비켜야 한다고 말한다면, 자네의 임무는 진실의 강 옆에 선 나무처럼 굳게 뿌리를 박고 이렇게 말하는 거지. 싫어, 네가 비켜!” 캡틴 아메리카는 나중에 미국 대통령까지 된다. ‘호수 위 달그림자’가 생각난다. 왜 이런 부류의 분들은 맥락 없이 ‘진실의 강 옆에 선 나무’ 같은 문학적 표현을 억지로 끼워 넣는지 모르겠다.
영화 속 캡틴 아메리카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앞세워 미국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다. 80세를 바라보는 트럼프는 나치 자리에 중국을 대적자로 갈아 끼운 뒤 전 세계를 상대로 “싫어, 네가 비켜” 식의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 결과는 한마디로 말해 ‘카오스’다. 트럼프 취임 100일이 지나면서 세계는 혼돈에 빠졌고, 미국은 우리가 알던 나라가 아니게 되었다. 미국인 수십만 명이 “4년 내 미국이든 트럼프든 하나는 무너지겠다”며 시위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대외적으로는 큰형 노릇을 하고,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이민자들을 유입시킨 덕분에 오늘날의 미국이 되었다. 이대로 가면 아메리카라는 용광로가 머지않아 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캐나다 마크 카니 신임 총리는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어야 한다는 무례한 발언과 관세 공격에 미국과의 오랜 관계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가자지구와 파나마운하,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까지 트럼프의 영토 확장 욕심이 심상찮다. 트럼프의 노골적인 반이민정책에 미국 영주권자들은 혹시 돌아오지 못할까 해서 해외여행마저 취소하고 있다고 한다.
애플 창업가 스티브 잡스는 시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전 세계 고급 인공지능(AI) 연구원 절반이 중국 출신인데, 이들 중 57%가 미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아메리칸드림으로 일어선 나라다. 처음엔 트럼프가 캡틴 아메리카를 닮았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위협을 통한 영토 확장 야욕과 반이민정책은 히틀러와 놀랍도록 닮아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겠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 선포에도 ‘한국호’에는 선장이 없는 지금의 상태가 안타깝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부산 기업들은 미국으로부터 불공정 거래 압박을 받는 등 이미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주부산미국영사관의 문을 닫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부산미국영사관은 부산·울산·대구·경남·경북·제주 지역을 관할하며, 양국의 우호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상징적인 곳이다. 한국을 머니머신(현금인출기)이라고 말하고, 동맹을 많은 것을 얻어내기 쉬운 거래 상대로 생각하면 더 이상 신뢰관계가 유지되기 어렵다.
캡틴 아메리카도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앤트맨, 블랙위도우 같은 영웅들과 힘을 합쳐 싸웠다. 삥만 뜯어낸다면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 한국과 미국은 각자의 집 앞에 내린 눈을 치워야겠지만 대통령 한 명 잘못 뽑아 이 무슨 난리인가 싶다. 손바닥의 ‘왕(王)’ 자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표시였다.
박종호 스포츠라이프부 선임기자 nleader@busan.com
2025-05-0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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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해수부 부산 이전과 함께 챙겨야 할 일
대통령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기 대선에서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공약은 부산 지역 민심에 꽤 반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공약이 없었던 게 아니어서 기시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해수부를 필두로 해양수산 관련 공공기관이 관련 기업들까지 부산으로 이전하는 마중물 역할을 확실히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수도권이나 충청, 호남, 대구·경북 등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은 실속을 못 챙기는 면이 많았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때 사업 규모가 큰 공공기관을 끌고 오지 못했다. 부산 이전 대상인 큰 공공기관은 핵심 기능은 수도권에 남겨두고 옮기는 행태를 보였다.
해수부는 어떤가. 여러 정부 부처 가운데 예산 규모는 꼴찌 수준이다. 1996년 8월 처음 설립된 이후 30년이 됐지만 올해 예산은 6조 7816억 원에 그친다. 해수부보다 늦게 생긴 중소벤처기업부 올해 예산이 15조 2920억 원에 이르는 것을 보면 해양수산에 대한 국가 차원 인식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해수부 부산 이전 공약이 야당 후보 입에서 발화된 뒤 지난달 22일 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 해수부 기능 강화를 공약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은 이런 문제의식과 궤를 갖이한다. 건설교통부 외청이던 해운항만청, 농림수산부 외청이던 수산청에 수로국과 해양경찰청을 더해 만든 해수부가 더 성장하지 못하고 30년의 외피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재에 밝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건드리고, 대규모 선박 발주를 추진하는 데서 보듯, 지금은 해양패권 쟁탈전이 벌어지는 시대다. 1995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30년간 유지됐던 글로벌 분업과 공급망에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물론 중국의 글로벌 패권 장악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의도 때문이지만, 과거의 자유무역 틀이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운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공급망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해운·항만·물류산업이기에 그 중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특히 2030년을 전후해 연간 6개월 이상 상업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북극항로가 열리는 것은 유럽과 미주로 향하는 마지막 환적 거점으로서의 부산항 위상을 더 강화시킬 절호의 기회다. 선박 연료와 선용품 보충, 선원 교체 등 북극해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화물을 환적하고 배와 선원을 채비하는 거점 역할을 부산항이 하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바다 없는 세종시에서 한반도 대표 항만 부산항에 오는 기회를 지켜보고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북극항로 시대의 부산은 수에즈운하로 향하는 길목, 믈라카 해협을 끼고 급성장한 싱가포르처럼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된다. 물론 국가와 지방 차원의 면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 준비작업을 부산에 이전한 해수부가 주관해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해양 금융·보험과 해운 정보 서비스, 해사법원 등 부가가치 높은 해운산업이 전통적인 해운항만 산업의 체질을 새롭게 탈바꿈시킬 것이다.
부산항발전협의회와 신해양강국국민운동본부 등은 조선·해양플랜트 산업과 물류 산업 관련 업무를 해수부가 함께 관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해양 치유 등 새로운 산업으로 떠오르는 해양관광레저 산업도 해수부가 관할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조선과 해양플랜트 산업은 산업통상자원부, 물류산업은 국토교통부, 해양관광레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맡고 있다. 담당 업무를 맡은 정부 부처는 흩어져 있지만 무역과 공급망의 흐름에서 보자면 대체로 제조사-운송-해운-육상운송-재가공(보관)-유통점-소비자 형태로 흐름이 이어진다. 이 흐름을 여러 부처가 나눠 맡는 것이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수출품 99.7%를 해운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 현실에서 해수부가 이 흐름 전체를 관할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 아닐까? 배를 새로 짓고, 해양 시추를 위한 플랜트를 만드는 일도 결국 글로벌 해운·에너지 시장 흐름과 맞물리는 일이므로 해운을 중심에 두고 국내 제조 산업을 진흥해야 할 것이다.
연간 예산 7조 원도 안 되는 해수부로는 한국의 해양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다. 해양 관련 전·후방 산업을 총괄하는, 강력해진 해수부로 부산에 올 때 그 진정한 시너지가 발휘될 것이다. 전국 최고 속도 초고령 도시가 되어가는 부산을 살릴 마지막 기회이자, 해양패권시대 우리나라의 살길을 도모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대선을 앞두고 부산이 챙겨야 할 실리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2025-05-0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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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탄핵 포비아'가 이끈 역주행의 결말은
‘12·3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나는 순간, 공동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여당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는 자명했다. 정적 제거에 군을 동원한 시대착오적이고, 위험천만한 대통령은 더 이상 권좌에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상당한 고통의 시간을 감수하더라도 철저한 사죄·반성·쇄신에 나서는 것이었다. 잘못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 뒤 재기에 나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경로다. ‘차떼기당’으로 무너지던 한나라당의 ‘천막당사’가 그랬고, 2007년 대선 폭망 이후 친노(친노무현) 핵심의 ‘폐족’ 반성과 총선 불출마가 그랬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번엔 정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했다. 대통령의 ‘버티기’를 엄호하면서 “계엄은 이재명 민주당의 폭거 때문”이라고 받아쳤다. 염치 불구하고 이대로 머리를 숙이면 ‘보수 궤멸’이고, 공격이야말로 최상의 방어라는 논리가 횡행했다. 근거는 2017년 경험한 탄핵의 공포였다. 당 중진, 영남권 의원 등을 중심으로 “탄핵으로 남은 것은 정치 보복, 적폐 수사 뿐”, “이번에도 무너지면 20년 동안 정권을 잡기 어렵다” 등 ‘탄핵 트라우마’를 부추기는 경험담이 초·재선들의 상식적 판단을 압도했다. “탄핵 반대해 욕 많이 먹었지만, 1년 후에는 ‘의리 있어 좋다’며 찍어주더라”는 어처구니 없는 무용담도 회자됐다. 여기에 ‘정치 보복은 몰래 하는 것’이라는 ‘이재명 포비아’가 공포를 배가했다.
결국 계엄을 막고, 탄핵을 이끈 당 대표가 ‘배신자’ 질타 속에 쫓기듯 사퇴했다. 대통령의 일탈을 가장 크게 책임져야 할 친윤(친윤석열) 핵심들이 다시 당의 방향타를 쥐었다. ‘국정 농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사태에도 사죄는 미미했고, 누군가 책임 지는 일도, 뼈를 깎는 쇄신도 없었다. 대신 “계엄으로 민주당의 국정마비, 국헌문란 행태들을 국민들이 알게 됐다”며 당 지도부가 ‘계몽령’을 실제인 양 언급했다. 군인들이 국회와 선관위를 침탈하는 장면을 온 국면이 실시간으로 지켜봤는데도 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궤변처럼, 국민의힘에서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상식을 뒤집은 역발상(?)은 일순 성공하는 듯했다. ‘광장’의 결집이 이뤄졌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치솟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2017년과는 사뭇 다른 전개에 “우리 전략이 맞았다”는 환호성이 당내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탄핵 선고로 조기 대선이 시작되면서 역주행에 대한 ‘과태료’는 시시각각 쌓이고 있다. 분당은 없지만, 분열은 현재진행형이고, 결별하지 못한 전직 대통령은 탄핵의 강 앞에서 당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다. 그토록 “이재명은 안 돼”를 외쳤지만, 민주당 이 후보가 보수 후보 전체 지지율을 압도하는 대선 구도는 변함이 없다. 해양수산부 이전 공약에 부산이 들썩이고, 기획재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대통령실에 두겠다는 발상에 국민의힘이 “제왕이 되려 하느냐”고 발끈하는 모습 자체가 이 후보에게 대선 주도권이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2017년 보수는 궤멸적 타격을 입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아픔과 상처가 없을 수 있나. 그 과정이 쌓여 5년 만의 정권 탈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설픈 탄핵 경험에 기대 아픈 정공법을 피하고 존재하지 않는 우회로를 찾으려니 더 큰 궁지에 몰린 형국이다.
국민의힘 5개월 전으로 돌아가 대통령과 깔끔하게 결별하고, 친윤 핵심이 2선으로 물러난 뒤 ‘이재명 민주당의 폭주를 저지하기 위해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절절하게 호소했으면 어땠을까? ‘육참골단(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이라고 했다. 아무런 변화도 희생도 없이 3년 전부터 줄창 틀어댄 ‘반 이재명’의 낡은 레코드로는 중도층의 귀를 사로잡을 수 없다.
국민의힘의 소위 전략가들이 짜고 있는 ‘빅텐트’가 구원의 동아줄이 될 수 있을지도 현재로선 회의적이다. 2002년 정몽준-노무현 단일화는 서로 다른 영역을 차지한 두 후보의 확장형 연대였고, 불리한 여건을 수용하고 정면 승부에 나서는 드라마가 있었다. 탄핵된 정부의 총리와 하는 ‘동종교배’가 이런 감동과 변수를 만들 수 있을까. 그저 단일화라는 정치 기술 만으로 국면을 뒤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면 유권자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는 것이다.
최근 만나본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 이재명’ 정서에 기대 어차피 ‘51대 49’ 싸움이라며 2022의 박빙 대선을 그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어째 2017년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아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입법부와 행정부를 완전 장악한 절대 권력의 탄생이 임박한 지금, 견제 세력의 지리멸렬은 정치를 넘어 국가적 위기 요인이다. 남은 30일, 보수는 과연 희망의 불씨를 지필 수 있을까?
2025-04-3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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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재명의 '우클릭' 믿을 수 있나
오는 6월 3일 제21대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이재명 후보가 확정됐다. 그는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후보들과의 지지율 맞대결에서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 있다. 이대로만 가면 차기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국민들은 대선 때마다 차기 대통령이 안정적인 경제정책을 펴 좀 더 잘 살게 해주기를 기대해왔다. 문재인 정부 때는 부동산 징벌세제나 최저임금 급등 등 과도한 분배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높아진 세율에 따른 종부세를 포함한 보유세 부과에 일부에선 빚 내서 세금을 납부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당시 “두 번 다시 민주당을 찍지 않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에서 5년간 최저임금을 42% 올리는 바람에 사회 전반적으로 물가가 올랐다. 식당,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은 인건비 감당이 어려워 폐업하거나 직원을 줄이고 가족경영으로 돌아서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뿐만아니라 실업률의 경우 문재인 정부 임기 4년 차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3.7%, 2018년 3.8%, 2019년 3.8%, 2020년 3.9%로 매년 증가했다.
당시 각종 분배 정책에도 소득 격차는 심화됐고, 저소득층인 1분위 소득은 감소한 반면 고소득층인 5분위 소득은 증가했다. 또한 지속적으로 추경을 남발해 국가부채가 300조 원 이상 증가했고 이는 윤석열 정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윤 정부는 집권 이후 친기업 정책을 펴는 등 이전 문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고 기업인들도 대환영이었다. 기업들의 법인세를 낮춰주고 각종 조세 감면에 기업집단 규제도 일부 완화하는 성과도 냈다. 하지만 상속세 완화 반대, 기업 발목 잡는 상법개정안 등으로 더불어민주당이 발목을 잡았고, 민주당 주도로 20여 차례 탄핵이 이어지면서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랬던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대선 국면에서 입장을 바꿨다. 문재인 정부의 분배 일변도 경제 정책을 취했다가는 대선에서 어렵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이 후보는 현재 민주당 정권의 주요 기조인 기존의 ‘정의’나 ‘복지’가 아닌 ‘성장과 통합’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실용주의 노선을 바탕으로 ‘먹사니즘’(먹고 사는 문제 최우선)과 ‘잘사니즘’(행복을 지향하는 가치적 삶)을 키워드로 내세우며 경제 성장 중심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에서도 수도권 4기 신도시 조성, 서울 도심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등 공급 확대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지난 2월 부동산 시장 개입 최소화에서 입장을 선회한 셈이다. 세제 정책에서도 감세 기조를 보이고 있다. 상속세·근로소득세 완화에 종합부동산세 완화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내용만 보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공약같다.
일각에선 중도와 보수층 표를 겨냥한 ‘경제 우클릭’에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정치평론가는 “자기 이해관계에 맞춰 시류와 국민 여론에 좀 맞춰서 가려는 성향이 좀 강하다”고 평가했다.
실제 이 후보는 지난 2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경제를 살리는데 진보·보수 구분이 무슨 소용인가. 유용한 정책이라면 모두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마치 마오쩌뚱 전 주석이 사망한 뒤 정권을 잡은 덩샤오핑이 “먹고 사는 게 급하지, 공산주의 사상이 중요해? 고양이 색이 검든, 하얗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거 아니냐”는 ‘흑묘백묘론’을 들고나온 것과 비슷한 형국이다.
집권 여당이나 재계 안팎에선 이재명 후보가 대선 성공 후 기존 민주당 노선으로 컴백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대선 공약은 득표 전략이고 국정 전략은 별개라는 얘기다. 이 후보가 그간 이런저런 이유로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번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대선 때 내세웠던 기본소득 공약 연기,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 번복, 전국민 1인당 25만 원 지급 주장 포기,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오락가락 행보 등이 대표적이다. 전 국민 1인당 25만 원 지급은 국가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는 비난을 듣다가 포기했고, 불체포특권 포기는 자신의 사건을 놓고 번복했다는 점에서 여론이 좋지 않다.
과거 대선 후보나 대통령들도 공약 번복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후보처럼 저렇게 잦지는 않았다. 한 나라의 정치는 그 나라의 정치인들에 좌우되지만 그 ‘옥석’을 가려내는 건 국민이다. 결국 국민이 실권자인 셈이다. 제대로 된 한 표가 그래서 중요하다.
배동진 서울경제부장 djbae@busan.com
2025-04-2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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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산불 예방 포스터와 대형 산불
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 당시 단골처럼 주어진 그리기 주제는 ‘산불 예방 포스터’였다. 크레파스나 물감으로 산을 초록빛으로 칠하고, 때론 라이터나 담배, 때론 성냥개비나 부탄가스를 그려 넣으며 강력한 산불 예방 메시지를 담으려 고심했다. 토끼, 다람쥐가 뛰어놀고 새들이 지저귀는 평화로운 풍경이 빨갛게 번지는 산불로 지옥으로 변하는 장면을 담은 한 친구의 포스터는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달 초 가족의 주말 출장에 동행해 경북 안동으로 향했다. 안동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이 있는, 조선 시대 유교 문화의 중심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안동에 접어들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차 안에 있던 아이들은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차창 밖 풍경은 더욱 처참했다. 1년 중 가장 아름답다는 5월의 신록을 준비하고 있던 산림은 불에 타 숯덩이로 변해 있었다. 산자락엔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집과 농막, 비닐하우스들이 눈에 띄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스산한 날씨까지 더해지며 마치 디스토피아를 연상케 했다.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만난 관계자는 “산불로 수련원에 이어지던 이용 예약이 취소됐고 문의도 끊겼다. 지역 경제도 모두 무너질 판”이라며 말했다. 수련원 주변 나무들이 모두 잘려 나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산불이 유구한 역사가 켜켜이 쌓인 안동 곳곳의 문화유산과 관련 시설을 위협해, 불이 옮겨붙을까 산 중턱부터 나무들을 죄다 베어버렸다고 했다.
2023년 초에도 취재 차 찾은 경북 울진에서 대형 산불이 남긴 상흔을 경험한 적이 있다. 2022년 3월 발생한 대형 산불로 검게 탄 나무들은 산불이 꺼진 지 1년이 가까이 됐지만, 생채기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 산불을 직접 겪은 이들의 경험과 아픔에는 비할 바가 안 되지만, 화마로 까맣게 타버린 자연과 송두리째 사라진 주민들의 일상을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형 산불 이후, 우거진 산림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야생 동물들이 다시 터전에서 뛰어놀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 지 예상하기 힘들다. 2000년 발생한 동해안 산불 피해 지역은 20여 년이 지났지만 인공 조림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말 발생한 대형 산불의 피해는 최근 산림청 조사 결과, 기존 발표치의 배 이상인 10만 4000ha(축구장 145만 개 면적)로 집계됐다. 역대급 인명 피해뿐만 아니라 피해 면적에서 종전 역대 최대였던 2000년 동해안 산불과, 다음으로 피해가 컸던 2022년 울진·삼척 산불의 5배를 넘어섰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봄 날씨는 이동성 저기압의 영향으로 흐린 날과 비가 잦았다. 겨울 날씨는 춥고 습했다. 그랬던 봄은 건조하고 강풍이 부는 날이 빈번해졌고, 겨울은 따뜻하고 건조해졌다. 인간이 주도한 기후 변화로 수십일씩 이어지는 대형 산불이 어느새 우리의 일상이 됐고, 어느 특정 지역에 한정된 재난이 아닌 국가적 재난이 됐다. 부산의 경우에도 지난달 경남과 경북 지역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부산 금정산과 기장군 경계까지 접근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역대 최악의 산불을 경험한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산불을 두고, 우리나라 토종·대표 수종인 소나무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며 소나무를 책망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우리나라 생육 환경에 맞게 자연 발생적으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까지 소환해 유무죄를 따질 필요가 있을까 싶다. 결국 산불을 내는 것도 사람이고, 기후 위기를 가속화시킨 것도 사람이다.
산불로 소실된 산림의 가치는 단순히 나무의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할 수 없다. 산림은 건강한 생태계 유지, 집중 호우 시 토사 유출 방지, 대기 정화 등의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한다. 산불 피해 지역은 당장 올여름 집중 호우가 걱정이다. 산불은 앞으로 더욱더 우리 삶을 위협하겠지만, 우리 주변의 경각심은 너무 낮은 듯하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학교마다 열렸던 산불 예방 포스터 그리기 대회가 이제는 산림청이나 산지가 많은 소방서, 학교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1980년대~90년대에 흔했던 산불 예방 포스터 그리기 대회는 산불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역대 산불 피해 순위(1~10위)에서 2000년 이전 산불이 한 건도 없었던 것만으로도 그 효과는 충분히 입증된다. 대형 산불이 일상화된 지금, 과거 산불 예방 포스터 그리기와 같이 산불 안전 의식을 높일 수 있는 범국민적인 캠페인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이대성 사회부 차장 nmaker@busan.com
2025-04-2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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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후보님, 헌법수호 의지 있습니까”
지난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대법정.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파면의 효력은 즉시 발생했다.
윤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로부터 122일, 그해 12월 14일 국회 탄핵소추안이 헌재에 접수된 날부터 111일만에 탄핵심판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단체들은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나라가 두 조각 날 것처럼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헌재 선고를 기점으로 큰 충돌 없이 그동안 깊어졌던 상처가 아물어가는 듯하다. 당초 우려했던 탄핵반대 측의 극단적 행동 등은 발생하지 않아 국가적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 모든 사회 현상에는 해석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있기 마련이다. 탄핵심판 과정에 극심한 국민 분열과 과열로 인해 국력이 막대하게 낭비됐다는 점은 너무나 아쉽다. 특히 계엄령으로 인한 국가 신인도 하락이나 국제 경쟁력 약화 등은 뼈아픈 부분이다.
이러한 부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로 조명된 헌재의 역할과 선고 결과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이해는 긍정적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헌재는 탄핵 찬반 양쪽의 주장과 논리를 모두 수렴하고, 오직 헌법 정신에 따라 선고문을 작성했다. 탄핵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 국가의 틀을 규정하고,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관심이 엄청나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최근 시민단체의 기자회견문에는 헌법 관련 조항을 명시하고, 자신들의 논리와 주장을 펼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이 정당하고 법적 테두리 안에 있다는 논리를 관철하려는 방편으로 헌법 조항을 제시하고 있다. (사)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경남지부는 장애인의 날을 앞둔 지난 9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헌법과 법률에 보장하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 헌법 11조와 헌법 35조 5항을 제시했다.
이들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11조를 제시하면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국가는 장애인의 복지와 권익을 증진할 의무를 가진다’는 34조 5항을 근거로 들었다. 이들은 헌법에 명시한 평등권 실현과 이동권 보장의 근거를 제시했다. 이번 회견으로 이들의 주장이 모두 관철된 것은 아니지만 헌법에 근거한 주장과 논리를 명확하게 밝힌 셈이다.
흔히 헌법은 법위의 법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에게 ‘법은 어렵다’는 선입관이 있다. 헌법은 그 위에 있다는 생각때문에 엄청 어려울 것으로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계기로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 구성요건과 내용을 한 번쯤 이해하고 살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점이다. 헌법을 이해하면 윤 전 대통령이 탄핵인용 이유가 무엇인지 간단하고, 명료하다.
당선된 대통령이 가장 먼저하는 일은 취임 선서다. 윤 전 대통령도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면서 국민 앞에 다짐했다. 선서문의 첫 번째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게 헌재의 판단 요지다.
헌재는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은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해 헌법수호 의무를 저버렸다”며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선고 이유를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면됐다. 파면된 역대 대통령의 공통된 결격 사유가 헌법수호의지 부족이다.
우리는 헌법이 ‘먼 이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나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보험이나 다름없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통치구조와 국민의 권리·의무를 규정한 최상위 법이다. 국민이라면 이번 탄핵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통치구조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헌법을 챙겨봐야할 필요성이 생겼다. 법학도나 법률가가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생활 자체가 헌법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오는 6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후보 검증과정에 헌법 이해도와 수호 의무, 수호 의지 등에 대한 질문이 잇따를 전망이다. 후보가 아니더라도, 국민이라면 한 번쯤 헌법 조문을 읽어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kks66@busan.com
2025-04-2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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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민주주의 수호는 기본, 그 이상을 바란다
국가 공동체의 발전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나라마다 구체적인 모양새는 다르겠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선진국들은 대체로 일정한 패턴으로 발전했다.
첫 단계는 공동체의 안정이다. 정국이 안정되어야, 법과 제도의 틀이 잡히고 경제도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제도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경제 발전이 누적되다 보면, 중산층이 늘어난다. 중산층이 늘면, 민주주의가 고도화된다. 민주주의가 성숙하면 빈부격차 해소, 환경 보전, 지역 분권 등 지속가능한 성장을 고민하는 단계에 이른다.
유럽 선진국들은 각 단계를 차근차근 밟았고, 우리는 빠르게 통과했다.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내전을 겪으며 첫 단계 단추도 끼우지 못하고 있다. 중남미 일부 국가는 제도적 민주화만 이뤘을 뿐, 중산층이 늘지 못하고 발전이 멈췄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짧은 계엄은 어마어마하게 긴 여진을 불러왔다. 그리고 지난 4일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이제 우리는 새 대통령을 찾고 있다. 당연히 계엄 여파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선 계엄에 대한 평가가 표심을 결정짓는 가장 큰 변수일 것이다. 너무 명확한 선거 어젠다가 있다 보니, 다른 이슈들은 사라지고 선거판이 조용해진 느낌마저 든다.
좌우를 떠나서 많은 이들이 이번 대선을 특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대한민국 정체성을 확립하는 자리라는 거다. 어떤 이는 내란 세력을 심판해야 한다고, 다른 이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어느 선거보다 많은 유권자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결연한 의지로 투표장을 향할 듯하다.
지금 시국은 국가의 발전이 단계별로 이뤄진다는 걸 보여준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 의식이 퍼지니, 지속가능한 성장을 논하는 말들이 사라졌다. 이 시국에 기후 위기, 부의 양극화, 수도권 집중 등을 이야기하는 건 사치로 느껴진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인 지속가능한 성장이 쉽지 않은 이유다.
새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극단적 이념화가 심화되고, 민주주의 작동 원리인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면, 대한민국은 더 흔들릴 것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은커녕 경제 자체가 늪에 빠질 것이다. 좌우를 떠나 모두가 지난 겨울의 혼란이 재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럼에도 국가 발전 단계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계엄은 지속되지 못했고, 다수의 시민은 평화적으로 탄핵 찬반을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렸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당시엔 격렬한 시위 속에서 4명이 숨졌다. 이번엔 모두가 탄핵 결정을 수용했다. 우리는 오히려 위기가 발생해도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 회복력을 과시했다.
몇 발짝의 뒷걸음질이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다. 이는 우리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고민하고 길을 찾아야 하는 단계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계엄과 탄핵에 대한 평가가 후보를 정하는 가장 큰 이슈겠지만,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민주주의 수호만 하고 있을 정권이 어디 있겠는가.
대선 기간 중 내놓은 공약은 차기 정권의 정책이 되고, 후보자의 말은 정권의 정체성이 된다. 이 때문에 지금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말들이 오가지 않는다면, 다음 정권에서 관련 정책들은 후순위로 밀리며 소홀하게 취급될 수 있다. 치밀한 정책을 내놓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후보들은 정책 방향이나 비전이라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유독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게 지역균형발전이다. 보통의 선거에선 지역표를 얻기 위해서라도, 정당과 후보들은 지역 민심을 듣고 맞춤형 공약을 내놓는다. 이번엔 모든 정당이 지역 민심에 덜 예민한 것 같다. 내실 있는 지역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도 없다.
단기간에 명확한 정책을 내놓기 어려울 수 있다. 대신 수도권 집중화 해결, 지역 분권, 지역 경제 활성화 등에 대한 명확한 의지와 비전이라도 보여주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지역 불균형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 지역균형발전만큼 확실한 목표도 없다.
사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려면 민주주의 수호는 기본이다. 그 이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견고히 하면서도, 지역 불균형의 과제를 풀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리는 대통령을 만나보고 싶다. 많은 시민이 비슷한 바람을 품는다면, 후보들의 입에서 진정성 있는 말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2025-04-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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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황산공원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지난해 우리나라(남한) 인구보다 많은 7700만 명이 방문한 공원이 있다.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을 따라 11곳에 조성된 한강공원이다.
한강공원은 지리적 특성을 살린 다양한 시설로 눈길은 끈다. 공원마다 산책로·자전거 도로와 체육·편의시설은 기본이다. 위치와 주변 여건에 따라 자연학습장, 캠핑장, 물놀이장, 눈썰매장, 분수, 유람선 선착장 등으로 꾸며놨다.
전시장, 수상 무대 등 문화시설도 설치했다. 한강페스티벌 등 연간 120개에 달하는 다양한 축제와 행사도 열린다. 이 때문에 수도권 시민은 물로 전 세계 방문객을 유혹하고, 한강공원을 찾게 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방문객의 ‘지갑’을 여는 시설이 많다는 점이다. 유람선과 요트, 페달보트, 레스토랑·연회장 시설을 갖춘 플로팅 하우스, 숙박시설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연간 7700만 명이 방문할 만큼 사랑을 받는 한강공원도 한 때 시민들이 외면했다. 1960년대 산업화로 인한 수질오염 때문이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면서 시작된 ‘한강 종합개발’로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유람선 선착장 등 수상레저 시설이 설치되고, 잔디 공원이 조성되면서 가족 단위나 직장인들이 많이 찾았다.
그러나 접근로가 개선되지 않아 지금처럼 주목은 받지 못했다.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시행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로 접근로가 개선되고, 공원마다 특성을 살린 휴양·여가시설, 체육·문화시설, 야간 조명시설까지 갖추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한강공원 조성 과정에 어려움도 많았다. 과도한 규제와 훼손을 우려한 환경 단체의 반발이다. 행정기관과 지역 정치권이 협업을 통해 극복하면서 세계적인 수변공원이자, 관광 명소가 탄생할 수 있었다.
부울경에도 낙동강을 따라 조성된 공원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 공원은 10여 년 전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생겨났다. 공원마다 산책로나 운동시설, 자전거 도로, 파크골프장, 캠핑장 등이 설치됐다.
그런데 이들 시설은 계획한 일부 시설에 불과해 아쉬움이 많다. 정부 규제 등으로 초기 한강공원 조성 과정에 겪었던 문제를 낙동강 역시 답습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22년 10월 나동연 양산시장의 제안으로 낙동강 하구에 있는 6개 자치단체가 낙동강협의회로 뭉쳤다. 협의회는 부산 북구와 사상구, 강서구, 사하구, 경남 양산시, 김해시다.
출범 3년째에 접어든 협의회는 나름 성과를 내고 있다. 공동 사업을 발굴·시행 중이다. 낙동강에 대한 규제 완화도 이끌어냈다. 10년마다 재수립하는 하천기본계획에 협의회가 추진 중인 사업이 가능한 구역을 확대했다.
이달 중에는 낙동강에서 할 수 있는 사업 발굴을 위한 관련 용역도 발주한다. 용역에는 낙동강 수변 유사 환경의 개발 사례 비교를 통한 규제 완화 제시와 상위계획 반영 등 중앙부처와의 대응 방안도 들어 있다.
양산시는 한 발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개발제한구역이자, 하천구역으로 묶인 황산공원을 근린공원으로 지정했다. 사업 추진 시 개발제한구역 관리계획을 수립하지 않아도 되는 등 종전보다 행정절차가 단축되고 쉬워지면서 시가 추진 중인 사업 시행이 한결 수월해졌다.
시는 한강공원과 마찬가지로 황산공원 이용에 걸림돌인 접근로 개선에 나섰다. 방문객이 물금신도시에서 경부선 철로를 넘어 황산공원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관련 용역이 발주됐다.
시의 이런 조치들은 침체한 지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추진 중인 황산공원 내 시설 업그레이드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시는 황산공원에 전기유람선 도입, 수상 레포츠센터 등이 포함된 플로팅 하우스 설치, 교통수단이자 관광용인 곤돌라 설치, 낙동강 선셋 바이크파크 조성을 추진 중이다. 오토캠핑장과 파크골프장 증설과 드론 공원, 국가정원 조성 등도 계획 중이다. 지난해 황산공원 방문객은 300만 명이다.
시가 추진 중인 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규제 완화가 더 필요한 만큼 협의회, 지역 정치권과의 협업은 물론 조화로운 개발이 필수적이다. 수질오염을 막을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
세계 많은 나라와 도시는 강을 중심으로 문명을 발전시켰다. 강을 따라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관광자원으로 개발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관광도시로 만들었다. 사업이 완료되면 황산공원은 한강공원과 버금가는 명품 공원으로 변모할 것이고, 양산도 관광도시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한다. 나아가 양산은 시의 바람대로 지역 경제를 다시 한번 도약시켜 부울경을 넘어 우리나라 중심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25-04-1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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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통합 완료 대한항공, 운임 인상하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이 마무리되자 항공운임 인상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 영향이 조만간 ‘해소’될 것으로 전망돼서다. 운임 제한 대상이 아니었던 다수 노선은 하반기부터 운임 상승 가능성이 점쳐진다. 정부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추진하며 강조했던 ‘지방공항 활성화’와 마찬가지로 ‘소비자 편익 확대’도 현실에서는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양사의 기업 결합과 관련, 독과점 논란이 제기된 주요 노선이 ‘경쟁 제한성’을 갖게 됐다며 운임 인상 제한, 공급 좌석 축소 금지 등의 시정조치를 부과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들 노선은 2019년 대비 물가 상승률 이상 운임 인상이 금지되는 등의 규제가 적용됐다. 그러나 해당 노선의 운수권 재배분 등으로 경쟁 제한성이 빠르게 해소되면서 공정위의 운임 통제 조치는 빠른 속도로 효력을 잃고 있다.
아이엠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공정위가 요구한 시정조치 영향이 상반기 중으로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이엠증권은 “해당 조치는 2025년 하반기로 갈수록 해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유럽의 경우 경쟁 제한성이 하반기에는 해소”되고 “미주 노선의 경우도 2025년 하반기 중 5개 노선 중 2~3개 노선의 경쟁 제한성은 해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나증권도 최근 보고서에서 공정위 시정조치에 대해 “경쟁제한 노선에 한정된 조치이기 때문에, 현재는 미주 일부 노선을 제외하면 운임 영향은 크지 않고, 하반기에는 운임 제한은 거의 없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나증권은 특히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하반기부터 여객운임의 상향이 본격화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화투자증권도 “항공 산업은 규모의 경제의 꽃으로 몸집이 커지면 커질수록 소비자와의 가격협상력이 올라간다”면서 “양사 합병에 의한 시장점유율 상승은 결국 가격(운임)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델타항공이 노스웨스트항공을 인수한 이후 운임이 약 20% 상승했다.
증권가의 분석을 종합하면 공정위가 지난해 12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마무리하며 강조했던 시정조치의 효과는 제한적인 수준이다. 반면 운임 인상은 장·단기적으로 필연적이라는 분석이 나와 소비자 부담 상승 우려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수익성이 높은 화물 사업부문을 매각한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수익성 개선을 위해 운임 상승 필요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양사 통합과 관련, 그동안 수차례 국민 편익을 강조한 바 있다. 산업은행은 “단일 국적항공사가 지니게 될 국가 경제 및 국민 편익·안전 측면에서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다며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주주로서 건전경영 감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도 양사 통합에 대해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마일리지·항공운임 등 시정조치 이행 여부 철저히 점검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양사 통합이 운임 인상 등 소비자 편익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처음부터 나왔다. 참여연대는 2022년 1월 공정위의 기업결합 승인에 대해 “국내 1, 2위의 대형 항공사 결합이므로 독점 폐해는 누구나 예상하는 것”이라며 “슬롯 반납이나 이전 등 조건은 일시적이고 실효성이 없는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지방 경제 활성화’ ‘지역 공항의 제2허브 구축’ 등도 약속한 바 있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양사 통합이 결국 한진그룹의 가족 간 경영권 분쟁에서 조원태 회장의 손을 들어주기 위한 조치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정부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한다면서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에 지분투자를 단행, 조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했다.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 “산업은행이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면서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에 끼어들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국가의 정책 자금으로 총수의 경영권도 지키고 시장 지배력도 높이게 된 대한항공은 ‘돈잔치’를 벌이고 있다. 대한항공과 한진칼이 기업결합 완료 등을 이유로 이사의 보수 한도를 대폭 인상하면서 조 회장은 올해 보수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도 ‘통합 축하금’을 지급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엠증권은 이와 관련 “1분기 통합 축하금 명목으로 인건비에서 일회성 항목으로 300억 원 수준 반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5-04-09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