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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지정 선수
대한민국의 ‘캡틴’ 손흥민 선수가 지난 8월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 사커(MLS)의 로스엔젤레스FC로 이적하면서 MLS에 대해 많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다. 어떻게 보면 MLS가 그리 낯설지는 않다. 현재 한국의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홍명보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그해 11월 LA 갤럭시에 입단했다. 홍 감독은 당시 리그 정상급 선수로 두 시즌을 보냈고, 2003시즌엔 외국인 선수 베스트11에 선정되기도 했다. LA 팬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 끝 글자를 딴 애칭인 ‘보(Bo)’ 열풍이 불 정도였다. ‘꾀돌이 태극전사’ 이영표도 2011년 12월 MLS의 밴쿠버 화이트캡스에 입단해 2시즌 동안 맹활약을 했다.
MLS는 유럽이나 남미 등 다른 리그와는 달리 특이한 규정이 있는데, 지정 선수 규정(Designated Players)이 그것이다. 지정 선수는 쉽게 말해 ‘연봉 상한을 두지 않는 선수’를 말한다. 각 팀마다 최대 3명을 지정 선수로 선택할 수 있다.
MLS는 축구에서는 보기 드물게 샐러리 캡(연봉총액상한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과거 여러 차례 프로축구 리그가 실패했던 경험이 있는 미국인지라 구단의 재정 건전성 차원에서 도입됐다. 각 팀들은 올해 기준으로 선수당 연봉 74만 달러(10억 5000만 원)을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샐러리 캡 제도가 구단의 건전성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낮은 연봉 때문에 MLS 선수들의 경기력 및 인기 저하 등 여러 가지 부작용도 있어 왔다. 올 여름까지 손흥민이 뛰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800만 파운드(148억 원)에 이른다.
MLS는 리그 활성화를 위해 2008년 결단을 내렸다. 관중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해 지정 선수 규정을 도입했다. 대표적으로 잉글랜드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지정 선수로 영입되면서 일명 ‘베컴 룰’이라고 한다. 이후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미국 무대에 모습을 보이면서 MLS는 질적 성장을 보이고 있다.
손흥민은 당연히 LAFC의 지정 선수로 등록돼 있다. 구단에서는 손흥민의 연봉을 공개하지 않았다. 1000만 달러(140억 원)는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손흥민의 연봉은 팀 내에서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MLS에서도 3위 안에 드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진성 선임기자 paperk@
2025-10-1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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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영문 모르는 통역
“영문도 모르고 대학교 입학했다가 영문도 모르고 졸업했지요.”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한 CEO가 외국인 게스트와의 만찬 자리에서 이 같은 농담을 꺼내며 서먹한 분위기를 타개하려 한 적이 있었다. 게스트가 한국인이었다면 당장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말을 이어갔을 터이지만 그 만찬 자리는 썰렁하게 경직됐다. 통역이 저 말을 어떻게 옮겨야 좋을지 몰라 진땀만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영화 ‘전, 란’에서는 왜장을 따라다니며 통역을 맡은 졸개의 역할이 인상적으로 연출된다. 거의 동시통역에 가까울 정도로 실시간 통역을 하는 그 졸개는 칼싸움 와중에 내뱉어지는 말까지도 칼을 맞을 위험을 무릅쓰고 가까이 붙어 서서 통역을 하느라 분주하다. 심지어 칼을 맞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통역을 하는 모습에서는 직업적 숭고함까지 느껴질 정도랄까.
언어가 다른 두 집단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는 통역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직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교역에서부터 전쟁까지 두 집단이 어떤 형태로든 접촉을 하려면 통역의 힘을 빌지 않고서는 정확한 의사 전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와의 무역과 외교가 나라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 돼 온 대한민국에선 그래서 더더욱 통역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멀리 1990년대 걸프전 당시 텔레비전에서 CNN 보도를 실시간으로 전달했던 경이로운 동시통역에서부터 추석 직전 한국을 방문한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 배석한 통역사에게까지 그 관심은 식을 줄을 모른다. 특히나 샘 올트먼 옆에 있던 여성 동시통역사는 전달력과 정확성에서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을 끌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통역사를 샘 올트먼이 직접 대동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의 통역은 대부분 외교부 소속 공무원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뛰어난 실력의 인재들이지만 외교나 비즈니스 무대에서는 미묘한 뉘앙스 차이만으로 결과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달라질 수 있다. 당장 치열한 외교무대가 될 APEC 정상회담까지 코앞에 다가온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통역에는 더 많은 투자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영문도 모를 난해한 뉘앙스의 말이 나온다 해도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정도라면 더욱 좋겠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2025-10-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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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OTT의 스포츠 독점
텔레비전(TV)이 귀하던 시절 인기 스포츠 경기가 중계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TV 있는 집에 모였다. 축구 국가대항전이나 프로권투 세계 타이틀전이 있으면 어른 아이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으레 그 집으로 갔다. 한국팀이 이겨 기분이 좋아진 주인집에서 수박이라도 한 통 썰어내면 그야말로 동네 잔치였다.
요즘은 TV가 없는 집이 없다. 누구나 ‘내 손 안의 TV’라는 스마트폰도 들고 다닌다. 그래서 함께 응원하는 것 아니면 스포츠 중계 보기 위해 사람이 모일 일은 거의 없다. 기술 발전으로 이렇게 TV 시청이 자유로워진 시대에 오히려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게 힘들어진 사람들이 많다. 쿠팡 플레이나 티빙, 애플TV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들이 인기 스포츠 중계를 싹쓸이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쿠팡 플레이는 축구 프리미어리그·FIFA클럽월드컵·분데스리가·라리가·K리그, NBA(미국 프로농구), F1(포뮬러 자동차 경주대회), NFL(미식축구리그)을 독점 중계한다. 스포티비 나우는 축구 챔피언스리그·유로파리그·세리에A와 MLB(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티빙은 한국 프로야구, 프로농구, UFC(세계종합격투기), US오픈 골프대회를 독점한다. 애플TV는 손흥민이 나오는 미국 프로축구(MLS)를 중계한다.
그러다 보니 OTT에 가입하지 않으면 중계를 접하기 어렵다.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OTT 가입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다. 스포티비 나우는 월 구독료가 베이직 요금제 9900원, 프리미엄 요금제 1만 9900원이다. 쿠팡 플레이는 9900~1만 6600원, 티빙은 5500~1만 7000원, 애플TV는 1만 9000~2만 2000원으로 책정돼 있다.
최근 5년간 국내 주요 OTT의 월 구독료는 최대 70%까지 올랐다. 하지만 OTT 사업자는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돼 요금 인상 때 정부에 신고할 의무가 없고, 단순 고지만 하면 된다. OTT가 일방적으로 요금을 조정하고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OTT의 무분별한 요금 인상과 독점 중계로 저소득층·고령층 등이 스포츠 소외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비싼 요금과 복잡한 플랫폼 구조로 인해 어르신들이나 가계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계층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잦은 중계권 변동으로 방송 채널이 이리저리 바뀌는 것도 스포츠에 대한 보편적 접근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2025-10-14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