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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부산시향의 신세계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는 체코의 전신인 보헤미아 왕국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에 두각을 드러낸 드보르자크는 체코 민족주의 음악을 세계적인 예술로 끌어올렸다고 추앙받는다.
드보르자크는 쉰 살을 넘긴 189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욕에 있는 국립음악원 원장으로 취임하기 위해서였다.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도착한 드보르자크는 미국의 드넓은 영토와 대자연의 웅대함에 압도된다.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활력 넘치는 모습과 제자들을 통해 접한 인디언 음악과 흑인 영가는 그에게 새롭고 신비로운 영감을 안겨줬다. 고향 보헤미아에 대한 향수도 주체할 수 없었는데 드보르자크는 이런 감동과 체험을 위대한 음악으로 승화시켜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From the New World)’를 작곡했다. 흔히 ‘신세계 교향곡’이라고 부르는 걸작이 탄생한 것이다.
부산시립교향악단(부산시향)이 지난 23일 제620회 정기연주회에서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했다. 이번 정기연주회는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부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내달 정식으로 문을 여는 부산콘서트홀 개관 시범공연이기도 했다.
부산시향에게는 오랫동안 주무대였던 부산문화회관이 아닌 또 하나의 홈구장이 될 수 있는 부산콘서트홀에서의 첫 연주였다. 비(非)수도권 최초로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빈야드(포도밭)형 객석의 이질감, 선명하고 넓은 음폭을 자랑하는 최신 연주홀. 드보르자크가 고향을 떠나 미국이라는 신세계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신비함과 황홀감을 부산시향도 느꼈을 법하다. 드보르자크에게 미국이 신세계였듯, 부산시향에겐 부산콘서트홀이 신세계였다.
부산시향 예술감독인 홍석원 지휘자는 이날 공연을 마친 뒤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관객들에게 말했다. “부산시향은 부산 시민의 ‘자식’입니다. 저희가 잘못할 땐 꾸짖어주시고, 잘하면 응원해주십시오.”
그런데 막상 공연장 안팎에서 느낀 소회는 자식이 홀대받는다는 아쉬움이었다. 부산콘서트홀 입구에는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조수미 등 스타 음악가들의 깃발 광고만 나부꼈다. 부산시향의 아버지인 부산시장은 자식이 부산콘서트홀에 데뷔한다는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인기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부산콘서트홀 공연 티켓을 구하는데 열의를 보였다는 이야기만 들렸다. 다들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지금은 신세계를 마주한 부산시향을 응원해야 할 때다.
2025-05-2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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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그리움의 켜, 금강산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 이천 봉 말은 없어도’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가사 중 일부다. 1960년대 초 발표된 이 가곡은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그리움을 담아냈다. 수학여행처럼 언젠가는 갈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금강산은 늘 철책 너머였다. 그렇다 보니 금강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오래도록 가슴속에 품어온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금강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해 많은 봉우리가 북한에 있어 자칫 금강산 전체가 북한에 속한 산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강원도 고성군과 인제군 경계에 있는 향로봉처럼 남한에도 금강산의 일부가 걸쳐 있다. 여하튼 남북 분단 이후 금강산은 대부분 우리 손이 닿지 않는 산이었다. 그러던 중 1998년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문이 열리며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다. 하지만 그마저도 2008년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 다시 중단되고 말았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5권-‘다시 금강을 예찬하다’에서 ‘금강산, 그것은 한민족으로 태어난 자의 가슴속에 거의 유전적으로 전래된 동경의 대상이다’라고 적었다. 그만큼 금강산은 백두산과 함께 한민족을 대표하는 명산이었다. 신라 화랑은 이곳에서 정신을 수양했고 조선 문인들은 그 절경에 감동해 붓을 들었다. 조선 후기 시인 김삿갓은 ‘구름 사이 흘러가는 백천(白泉)을 따라 나는 무심히 발길을 옮겼다’는 시구를 남겼다. 최남선은 1928년 〈금강예찬〉에서 ‘금강은 세계의 산왕(山王)’이라 극찬했다. 외국인의 찬사도 이어졌다. 1890년 금강산을 방문한 영국의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은 ‘금강산 자태는 세계 여느 명산의 아름다움을 초월한다’고 했다. 금강산의 풍경을 사랑했던 수많은 이들이 남긴 문장은 ‘그리움의 켜’가 돼 쌓였다.
최근 세계는 금강산의 가치를 인정했다. 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등은 북한 측이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금강산에 대해 ‘등재 권고’ 판단을 내렸다. 세계가 유네스코라는 이름으로 금강산을 품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산에 제대로 발을 딛지 못하고 있다. 분단이 길어질수록 그리움의 켜가 더 깊어질수록, 금강산은 더 선명한 감정으로 우리 곁에 남는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동요 ‘금강산’처럼 언젠가 발걸음으로 다시 걷게 될 그날, 금강산은 더 이상 ‘그리운 산’이 아니라 ‘함께 걷는 산’이 될 것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2025-05-2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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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바람개비
어릴 적 종이를 접어 바람개비를 만들어 논 적이 있다.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바람을 맞으며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며 신기해 했다.
바람이 멈추면 바람개비를 들고 냅다 달렸다. 바람개비를 보느라 넘어져 무릎을 깬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손에 든 바람개비는 살결에 와 닿는 바람만큼이나 시원하고 상큼했다.
어른이 돼 바람개비를 본 것은 골프장에서였다. 산 위에 우뚝 선 바람개비는 웅장했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 세워진 바람개비였지만 어린 기억을 소환하기는 충분했다.
전기를 생산하는 바람개비는 재생에너지 중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지구는 대류 현상 때문에 필연적으로 바람이 생긴다. 그렇다보니 다른 연료의 소비 없이도 발전이 가능하고, 다른 발전 방식과 달리 쓰레기나 폐기물 발생이 적은 풍력발전이 인기다. 설치 후 온실가스도 배출하지 않아 지구 환경에 악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까. 풍력 발전은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경쟁력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단점도 있다. 바람만 불어준다면 밤낮 가리지 않고 발전이 가능한 장점이 어떤 때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런 지역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력 수요가 있는 곳까지의 접근성 문제도 있다. 접근성이 좋으면 소음 등에 따른 민원도 함께 발생한다. 연중 적절한 바람과 용이한 접근성, 민원도 없는 그런 곳은 이미 웅장한 바람개비가 세워져 있다. 새로운 바람개비를 세울 만한 곳이 줄어들면서 세계 각국은 먼 바다로 눈을 돌린다.
바다에 바람개비를 세우려면 배가 필요하다. 해상풍력설치선(Wind Turbine Installation Vessels·WTIV)이 그것이다. 국내에서 운용 중인 해상풍력설치선은 현재 단 1척뿐이다. 그래서 해상풍력 시장이 확대될 경우 외국산 의존도가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가 풍력 설비 경쟁입찰에서 처음으로 공급망과 안보 요소를 반영한 ‘안보지표’를 평가 항목에 포함하기로 했다. 국내 공급망 기여 수준 등 안보 요소가 입찰 평가의 주된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해킹 등에 취약한 해외 기자재 사용이나 외국계 자본의 국내 해상풍력 공급망 잠식 우려 등을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두고 대선 후보자들도 입장이 엇갈린다. 분명한 건 종국에는 재생에너지가 답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에서 모처럼 바람개비처럼 시원함이 느껴진다.
2025-05-27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