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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신개념 유물창고
아라가야의 비밀을 간직한 경남 함안에 ‘신개념 유물창고’인 영남권역 예담고가 최근 들어섰다. 대전의 충청권역 예담고, 전주의 호남권역 예담고, 목포 해양권역 예담고에 이어 전국 네 번째로 개관했다.
옛것을 담는 공간이라는 뜻을 지닌 예담고는 현행 규정상 국가에 귀속되지는 않지만 교육이나 학술 연구가 필요한 비귀속 유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설립됐다. 기존엔 유물을 수장고 등 밀폐된 장소에 보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박물관 등에 전시하는 국가 귀속 유물이 아닌 비귀속 유물은 일단 수장고에 들어가면 다시 빛을 볼 가능성이 적었다.
예담고의 가장 큰 특징은 방문객들이 유물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 유물을 보존하는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국민들에게 문화유산을 향유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관람과 체험도 무료로 진행한다.
함안 예담고도 이런 건립 취지에 따라 수장고, 유물정리실 이외에 관람객을 위한 전시실, 교육실 등을 갖췄다. 이곳에 보관 중인 유물은 주로 토기와 철기류 등이다. 청동기와 가야·삼국시대, 조선시대의 유물을 망라한다. 부산 등 영남권에서 개발 목적으로 실시된 각종 건설공사 등을 계기로 발굴된 다양한 유물들이 모여있다. 전시실에서는 유물 발굴조사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유물 그리기, 흑백 사진 인화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특히 개방형 수장고를 방문하면 누구나 박스에 담긴 유물을 접할 수 있다. 문화유산에 담긴 역사와 선조들의 문화를 한층 가깝게 느껴보는 ‘과거로의 시간여행’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영남권역 예담고가 사용하지 않고 폐쇄된 길이 187m 모곡터널을 활용해 개관한 점도 흥미롭다. 이 터널은 2011년 전주~마산 철도 구간에 건설됐다. 이후 마산~진주 복선전철 개통으로 사용되지 못하게 됐으나 이번에 예담고로 재탄생했다.
특히 함안 예담고는 다른 예담고와 달리 가야권 비귀속 유물을 다수 보관 중이다. 함안 아라가야, 김해 금관가야, 고성 소가야, 창녕 비화가야 등 영남권 가야 연맹 국가들은 탁월한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가야인들은 수많은 고분 유적을 남겼지만 가야사 복원은 이 순간까지도 미진하다. 그런 점에서 가야권 비귀속 유물을 다수 보관 중인 함안 영남권역 예담고는 ‘잊힌 제국’ 가야의 진면목을 일반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5-04-0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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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지브리 스타일
둥글둥글 마냥 푸근해 보이는 얼굴. 단순하지만 초롱초롱하면서도 순해 보이는 눈. 아이들은 5등신에도 못 미칠 것 같은 깜찍함으로, 어른은 유럽 스타일의 8등신으로. 서정적이고 수채화 같은 몽글몽글하고 편안한 터치….
난리다. 휴대폰으로 SNS를 펼쳐 들자 지인들의 프로필 사진들이 온통 그림으로 바뀌고 있다. 평소 익히 알고 있던 사진과 닮아 있으면서도 분위기가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한다. 곧 이어지는 메시지. “너도 ‘지브리 스타일’로 사진 바꿔 봐.”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SNS가 소위 지브리 스타일 그림으로 도배가 되고 있다. 오픈AI가 지난달 25일부터 챗GPT에 사진을 리터치할 수 있는 기능을 넣으면서부터다. 기능 추가 때부터 사진의 변형으로 인한 오남용 등 부작용이 우려됐으나 예상과는 달리 상당수의 이용자들은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 그림으로 바꾸는 데 열중했다. 오픈AI 측 엄살(?)에 따르면 지브리 스타일 그림 변환 시도 폭주로 챗GPT의 GPU(그래픽처리장치)가 녹아내릴 지경이라니 대단한 인기다.
지브리 스타일에서 말하는 지브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 이름이다. 애니메이션의 신으로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끌었던 회사다. 비행기 마니아인 그가 이탈리아 정찰기 이름을 따서 지은 회사명이 지브리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이 대표작.
미야자키 하야오가 모든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미래소년 코난〉 등 그의 초기 작품부터 이어지는 지브리 작품들의 주제는 대부분 가족, 사랑, 환경, 반전 등으로 선명하다. 반면 화풍은 화면 속으로 손을 넣어 어루만지고 싶을 만큼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이고 편안한 느낌으로 일관해 왔다. 아날로그 스타일의 작화를 고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범람할 정도로 기술 첨단화가 대세인 요즘,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 그림으로 바꾸려고 지구촌이 요란해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첨단 디지털 물결 속에서도 서정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찾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문제는 챗GPT만으로 손쉽게 지브리 스타일 그림으로 사진 변환을 할 수 있다 보니 챗GPT가 학습한 그림 화풍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불가피해진다는 점이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향후 추이가 궁금해진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2025-04-0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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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굴절버스
‘브라질이 낳은 세계적인 도시’하면 쿠리치바를 빼놓을 수 없다. 브라질 남부 파라나주의 주도로 국제사회에서 이 도시에 대한 찬사는 매우 화려하다.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시’라고 했을 정도다. 이런 찬사 뒤에는 ‘버스 왕국’이란 도시 별칭이 말해주듯 쿠리치바의 교통 정책이 있다. 지구촌에서 대중교통과 녹색교통의 모델 도시로 유명하다. 이곳의 교통 시스템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중앙버스전용차로제(BRT)를 도입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런 쿠리치바의 대중교통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굴절버스와 원통형 버스 정류장이다.
굴절버스는 2칸 이상의 차량을 서로 연결해 운행하는 버스를 말한다. 2칸 굴절버스는 길이가 18m 정도로, 대량의 승객들을 수송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현재 유럽의 여러 국가와 미국, 브라질 등에서 운영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1992년 굴절버스를 도입한 쿠리치바는 지하철이 없는 대신 이 버스가 주요 간선도로를 운행하며 그 역할을 대신한다. 쿠리치바와 주변 도시는 중앙버스전용차로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어 시민 10명 중 8명가량은 매일 이 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
부산 강서구는 도시철도 강서선 사업 추진 시기가 최근 불투명해지면서 오는 7월 ‘강서선을 고려한 우선적 대중교통수단 기본구상 용역’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 용역에서 교통 수요가 높게 나타나면 굴절버스 도입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한다. 강서구가 이런 신규 교통수단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이유는 4월부터 10월까지 에코델타시티에 1만 세대가 입주하는 등 서부산권의 급증하는 교통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서는 세종시가 2020년 1월부터 굴절버스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굴절버스는 도로를 점유하는 면적이 넓고, 좁은 길에서의 운용 능력이 떨어지는 게 단점이다. 강서구는 평지와 넓은 도로를 확보하고 있어 굴절버스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 그러나 대량 승객 수송이 주목적이기에 승객 수 확보, 정류장 확보, 운영 효율성 등이 관건이 될 수 있다. 승객 수가 적으면 운영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행 노선을 굳이 강서구 내로 국한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강서구~서면, 강서구~김해 등과 같은 교통량이 많은 구간을 연결하면 최소한의 승객을 확보할 수 있다. 굴절버스는 차량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이를 위한 정류장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향후 강서구의 대중교통 체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하다.
2025-04-01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