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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위험하고 위태롭고 불안한 나라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잇단 어선 침몰, 무안공항 제주항공기 추락, 부산 반얀트리 리조트 공사장 화재, 사상 최악의 동시다발적 대형 산불 등등. 12·3 계엄령 이후 불안정한 탄핵 정국과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 속에 소중한 생명을 마구 앗아가는 참사와 재난 발생이 잦다. 언제 어디서 또다시 인명 피해를 부르는 사고가 터질지 몰라 국민들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삼권분립에 입각한 국가 시스템도 위태롭기 짝이 없다. 국회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정파적 이익을 앞세운 정쟁 탓에 제 역할을 못한 지 오래다. 여야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는 아예 거리로 뛰쳐나와 헌재를 압박할 의도로 지지층 선동과 결집에 혈안이다. 여야 간 대화는커녕 대치가 격화해 경제와 민생의 안정을 위한 각종 현안 처리는 하세월이다. 특히 민주당은 당리당략이 농후한 쟁점 법안 통과를 강행하는 입법 독주와 정략적 탄핵 남발로 여권을 뒤흔든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24일까지 90여 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로 운영되면서 미국 트럼프발 관세정책에 제대로 손쓰지 못하는 등 곳곳에서 국정 공백을 빚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마저 불안하다. 사법부는 윤 대통령 탄핵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재판 과정에서 극단적인 보수·진보 세력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정치 사건 재판을 담당한 일부 법원이 최근 보안시설을 강화하려고 법원행정처에 추가 예산 6억 5300만 원을 요청한 데서 사법부의 불안감은 감지된다. 이는 올 1월 19일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한 극우 세력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한 폭력 사태의 영향이다.
지난 26일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고법 주변에서도 각각 유·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양 진영 지지자들의 시위가 벌어져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더욱이 이날 판결은 정치 논쟁을 심화하며 사법부 불신까지 가중한다. 이 대표에게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중형을 내린 1심을 완전히 뒤집는 무죄가 선고된 것. 1·2심의 전혀 다른 판결은 재판부가 자신들 정치 성향에 맞춰 판결한 ‘사법의 정치화’란 게 여당 평가다. 야당은 ‘정치검찰’의 조작 수사, 억지 기소가 드러났다고 반박한다. 법원이나 재판부, 판사마다 들쭉날쭉한 ‘고무줄 잣대’는 오래전부터 국민의 사법 불신을 키워 온 주된 요인이다.
2018년 6월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재판 결과를 불신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당시 재벌과 국회의원 같은 기득권층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 정권 편향적이거나 보수·진보 성향 판사에 따라 다른 판단, 대법원장의 사법행정 쇄신 의지 부족 등이 사법부 불신이 쌓이고 확산하는 이유로 꼽혔다. 그리고 서민들 사이에 진리처럼 여겨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인식이 사법 불신의 심화에 한몫했을 테다.
앞으로는 사법 불신이 깊다 못해 법원 결정에 불만을 품고 불복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서울서부지법 군중 난동 사건이 단적인 예다. 존엄성이 생명인 사법부의 권위가 위협받는 꼴이다. 신뢰도가 더욱 높아야 할 광의의 사법부인 헌재에 대한 불신 역시 심각한 문제다. 코리아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기관의 지난 17~19일 조사 결과,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앞선 조사보다 9%포인트 상승한 36%, 내 생각과 다르면 수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42%로 나타났다. 탄핵 선고가 이뤄진 후 어느 한쪽 진영의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거센 저항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자기 요구와 다른 결과가 나오면 헌재를 박살 내겠다는 험악하고 위협적인 발언이 터져 나올 정도라 걱정스럽기만 하다.
사법의 신뢰 추락과 사법부 위협 행위는 정말 위험하다. 국가를 지탱하고 국민 권리를 보호하는 핵심 가치인 법치주의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따라서 사법부에 신뢰 회복을 위한 대오각성과 자정 노력, 독립·중립성 확립이 요구된다. 이런 차원에서 판사들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해야 마땅하다. 헌재는 이의가 없을 만큼 엄정하고 신속한 심판을 통해 탄핵 정국의 국가적 혼란을 하루빨리 해소해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를 포함한 정치권은 법치의 위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야와 국민 모두 탄핵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후폭풍을 자초해 공멸할 수 있다. 여야는 나라가 무법천지로 전락하고 진영 갈등이 내란 수준으로 치닫는 걸 원치 않는다면, 당장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는 정쟁을 접고 국가 및 사회 안정화와 국민 통합을 꾀하는 본연의 임무 수행에 나설 일이다. 엎친 데 덮친 국내외 악재와 중대 현안에 대해 시의적절하고도 실효적인 총력 대응이 절박하다.
2025-03-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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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부산을 북극항로 거점 항만으로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이집트 수에즈운하. 이 운하는 전 세계 무역량의 12%가량이 오가는 국제 해상 물류 요충지다. 아시아와 유럽 간 교역 물동량 중 무려 40%가 수에즈운하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현재 아시아·유럽 간 바닷길을 운항하는 글로벌 선사들의 선박 대부분은 수에즈운하 대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경유하는 우회 항로를 이용한다. 반(反)이스라엘 성향인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공격한 2023년 11월부터다. 후티 반군은 한 달 전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하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지지한다며 지금까지 홍해에서 상선 100여 척을 공격하거나 나포해 불안감을 조성했다.
부산항에서 수에즈운하를 거쳐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 이르는 세계 간선 항로의 거리는 2만 2000㎞다. 세계 해운업계가 선박 안전 확보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선택한 희망봉으로 돌아가는 뱃길은 9650㎞ 정도 더 길다. 이 때문에 소요 시간이 크게 늘고 운송 비용도 대폭 올라 글로벌 공급망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적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은 희망봉 쪽으로 노선을 바꾼 뒤 부산~로테르담 편도 항해 기간이 종전 약 40일에서 50여 일로 늘어났다. 앞서 2021년 3월 수에즈운하에서 발생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좌초 사고로 7일간 양방향 통행이 전면 중단된 적이 있다. 이때도 해운회사들은 글로벌 물류대란이 장기화하는 걸 막으려고 한동안 희망봉으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수에즈운하 경유 항로와 희망봉 우회 항로의 대안으로 꼽히는 게 북극해를 활용하는 뱃길이다. 이른바 ‘북극항로’다.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는 수많은 선박이 1990년대부터 소말리아·아덴만 해역에 설치는 해적의 표적이 되고 있다. 여전히 선원 납치와 선박 억류 등 피해가 끊이질 않는다. 북극항로를 대체 항로로 개척해 운용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욱이 부산에서 북극해를 통해 유럽으로 갈 경우 항해 거리와 운송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항로는 수에즈운하를 지날 때보다 약 7000㎞, 10여 일을 단축해 20~30%의 물류비 절감이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 지 오래다.
이같이 매력적인 북극항로는 부산항이 세계 7위 컨테이너 항만이자 세계 2위 환적항, 동북아 중심항에서 세계 초유의 메가 허브항으로 성장하는 지렛대가 되기에 충분하다. 부산항이 북극항로 기·종점에 자리 잡아 이 항로에 선박과 물동량이 대거 몰린다면, 수에즈운하 경유 노선에 기댄 세계 1위 싱가포르항을 추월할 수 있을 테다. 지구온난화 탓에 북극 빙하가 자꾸 녹아 사라지는 건 안타깝고 경계할 일이다. 그런데, 빙하가 줄어들면서 배가 다니는 해역이 넓어지고 상시 운항이 가능한 시기가 확대되고 있어 북극항로가 활성화할 날이 머지않았다. 우리나라가 북극항로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부산이 새로운 항로의 거점 항만이 돼야 하는 이유다.
북극해를 끼고 있는 러시아의 점진적인 북극항로 개발 노력은 잘 알려져 있다. 이제는 다양한 분야의 세계 패권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극해에 쏟는 관심에 주목할 때다. 그는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차지하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명목은 자원 확보인데, 해빙이 가속화하는 북극 전체를 새로운 전략 요충지로 보고 영향력을 키울 속셈인 게다. 이는 미국이 최근 대형 극지경비함 건조에 나서고 10척에 달하는 쇄빙선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에서 감지된다. 북극해 장악에 필요한 북극항로를 선점할 요량이 분명하다.
때마침 부산시가 지난 13일 ‘북극항로 개척 TF(태스크포스)’를 조직한 건 시기적절하고 고무적이다. 반면 해양과 항만 분야 자치권이 없는 데다 전문 인력이 적은 시의 노력만으론 항로 개척과 거점항 육성에 역부족이다. 실효성 있는 과제 발굴과 추진 방안 마련, 원활한 실행을 위해 해양수산부, 부산항만공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같은 유관기관 간 긴밀한 협조는 필수적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북극해 주변 8개국과 협력관계를 강화해 우리가 진출하는 길을 넓혀야 한다. 특히 해운·조선업이 취약한 미국과 상생하기 위해 적극 공조할 필요가 있다. 산업계에는 부산항 기반의 북극항로 활성화를 겨냥한 기술 개발과 비즈니스 발굴이 요구된다.
한편으로는 국내 쇄빙연구선이 ‘아라온호’ 1척뿐이라 자칫 북극 개척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 우려된다. 세계적인 K조선 능력으로 쇄빙선을 충분히 늘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산을 북극항로의 거점도시로 키우며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성장 동력으로 만드는 데 시가 적극성을 보이고 전폭적인 정부 지원이 뒤따르길 바란다. 부산항을 세계 1위 고부가가치 항만으로 견인할 북극항로를 한국 경제의 새 해양영토로 삼자. 대망의 북극항로 시대가 열리려고 한다.
강병균 대기자 kbg@busan.com
2025-02-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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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바라며
지난 3일은 한 해 24절기 중 첫 번째이자 봄의 시작을 알린다는 입춘. 이날 이후 주택 대문과 상점 출입문에 행복이나 안녕을 기원하는 입춘첩이 부착된 곳을 쉽게 볼 수 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따뜻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매년 입춘을 맞아 춘축하는 대표적인 문구다.
간간이 눈에 띄는 또 다른 내용의 입춘첩도 있다.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며, 집집마다 살림이 넉넉해 사람들이 풍족해질 것이란 뜻이다. 이는 위정자들이 마음에 새기고 좇아야 할 덕목 같은 경구다. 개인적으로 문에 써 붙인 소원에 불과하면서도 온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어서다. 정치 행위가 존재하는 목적을 명확히 제시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싶다.
두 입춘첩의 바람과 달리 우리가 처한 현실은 춥고 암울하기만 하다. 이번 입춘이 봄기운은커녕 혹독한 한파를 몰고 왔다. 기세등등한 동장군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겨울나기를 한층 힘겹게 한다. 독감이 유례없이 유행하는 가운데 병원과 화장장이 북새통이라고 한다.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매서운 강추위는 12·3 비상계엄에 이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가뜩이나 움츠러든 국민들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서글픈 계절이다.
초유의 현직 대통령 내란 사태가 일으킨 파장은 크다. 국격이 추락하며 국가 경제의 불안을 불렀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한국 경제와 서민의 삶을 짓누른다. 올 경제성장률 전망은 거듭 낮춰질 만큼 비관적이다. 민생 경제의 큰 축을 이루는 자영업은 소비 심리 위축과 내수 침체 탓에 도산이 잇따르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 이 지경인데도 여야 정치권은 탄핵 정국에서 차기 대선의 주도권을 쥐려는 기싸움을 벌이며 정쟁에 몰두할 뿐 경제와 민생을 방치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나라가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이대로라면 한 달 뒤 따뜻한 춘삼월이 와도 국가 분위기와 국민의 심정은 희망 없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일 게 뻔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주는 거센 다툼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거대 양당은 일부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고 사사건건 대립하고 충돌한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키우고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정권 연장 실패와 지난해 국민의힘의 4·10 총선 참패 원인은 여야의 불통과 독단에 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MIT 교수가 최근 “어떤 일도 타협하지 못하는 두 정당이 한국 위기의 뿌리”라고 지적한 이유다.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라고 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일갈은 30년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그런데도 여야는 뼈저리게 반성하거나 환골탈태할 줄 모른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 쇄신 요구는 언감생심이 되고 만다. 계엄 선포로 생긴 정치 혼란과 불확실성 여파로 나라를 뒤흔들 만한 국정 공백과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지난 두 달간 여야는 조속한 문제 해결과 정국 안정화를 위해 만남을 갖고 허심탄회하고 진득하게 협의한 적이 없다. 경제와 민생 역시 챙기겠단 말뿐이고, 양측이 제대로 머리를 맞대지 않으니 실천될 리 만무하다.
대화와 협치를 잊은 정치가 이젠 국가 근간인 법치주의마저 흔드는 모양새다. 민주당이 헌법재판소에 대통령 탄핵심판에 속도를 내라고 압박하는가 하면 국민의힘은 진보 성향 헌법재판관들의 자격론을 운운하며 헌재에 공세를 펼친다. 정치적 득실이나 유불리를 따지며 사법부까지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행태다. 위헌적 내란과 수사 거부에 이어 혐의 부인과 궤변으로 탄핵심판에 임하는 윤 대통령, 자신의 비리 재판 지연에 혈안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사·변호사 출신답게 법 앞에 겸허한 자세를 갖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이며 미래 세대를 위한 본보기다.
현 상황은 여야가 정파 이익을 국익과 민생보다 앞세워도 될 만큼 한가롭지 않다. 곧 있으면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부과 등 강압적 요구들이 들이닥치는 건 기정사실이다. 시급히 처리하고 성과를 내야 할 국내외 현안과 슬기로운 극복이 요구되는 악재가 산적해 있다. 정쟁으로 국력을 낭비할 틈이 없다는 말이다. 내주 초 거대 양당 대표와 대통령 권한대행, 국회의장이 참여하는 국정협의회가 열린다니 만시지탄이다. 여야정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은 국태민안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부디 협치와 통합의 정치에 나서주길 당부한다. 맹자는 경제적 생활 안정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을 치국의 근본으로 삼으라 했다.
2025-02-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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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부산은 진정한 부자 도시다
부산 부산진구 전포동 송상현광장. 이곳에는 ‘사랑의 열매’로 상징되는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해 12월 2일 세운 ‘사랑의 온도탑’이 우뚝 서 있어 눈길을 끈다. 이날부터 연말연시 두 달간 소외계층을 돕기 위한 성금을 모으는 ‘희망 2025 나눔 캠페인’을 홍보하면서 모금 현황을 알려주는 설치물이다. 모금운동 기간 목표액의 1%가 모일 때마다 눈금이 1도씩 올라간다. 온도탑을 통해 그동안 누적된 모금 실적, 즉 온정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지난 13일 부산 사랑의 온도탑은 100도를 돌파하며 목표치 달성을 알렸다. 이날까지 모금액은 총 110억 7372만 원. 목표액 108억 6000만 원을 넘어서 사랑의 온도 102도를 기록했다. 부산의 100도 돌파는 전국에서 전남에 이은 두 번째 경사다. 부산 시민들의 나눔 열기가 전국 여느 지역보다 훨씬 뜨겁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이로써 부산은 최근 5년 연속 목표를 이뤄 냈다. 모금액도 2021 캠페인 105억 9300만 원, 2022 캠페인 112억 3400만 원, 2023 캠페인 113억 1100만 원, 2024 캠페인 123억 5300만 원, 16일 현재 107도인 116억 2000만 원 등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인다. 사회를 훈훈하게 만드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 같은 성과는 이번 나눔 캠페인 초기, 뜻밖에 닥친 초대형 악재를 극복한 결과여서 더욱 빛난다. 모금을 시작하자마자 12·3 비상계엄이 터지는 바람에 전망은 암울했다. 계엄 사태가 곧바로 나라 전체에 혼란한 정국을 초래했고 경제와 민생에 악영향을 끼쳐 기부 심리마저 크게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돼서다. 실제로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온정을 전하려는 시민들의 모금 참여 분위기는 예년에 비해 많이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지난달 16일 기준 부산 모금액은 27억 7900만 원으로 2023년 같은 기간보다 5억 2400만 원 줄었다. 이날 사랑의 온도는 전년 동기 대비 4.8도나 떨어져 겨울나기가 고달픈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오랜 경기 침체에다 탄핵 정국과 복합적 경제 불안까지 겹쳐 형편이 어려워진 시민들이 소외계층을 챙길 여유를 갖기 힘들었을 테다.
이에 모금회 측이 캠페인 홍보 강화와 함께 모금 방법을 다양화한 게 목표 달성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기부의 접근성과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 BNK부산은행과 협력한 모바일뱅킹 앱 등이 지역사회의 기부 문화가 꽁꽁 얼어붙는 걸 막는 데 기여했다. 이 앱을 통해 누구라도 소액 기부가 가능해져 사랑의 온도계 눈금이 쭉쭉 올라가는 쪽으로 바뀔 수 있었다는 평가다.
한데, 이보다 더 확실한 원동력은 힘든 처지에도 모금회의 호소에 적극 호응한 시민들에게 있지 싶다. 어려울수록 가진 것을 더 어려운 계층과 나누려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 말이다. 모금회에 성금을 기탁한 다양한 천사들의 사연은 자신보다 더 힘겨운 이들에게 작은 희망이나마 안기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어 가슴 뭉클하다. 특별한 사연이 없는 기부라도 십시일반의 심정,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선행이다.
게다가 매우 열악한 부산경제 사정을 떠올리면, 전국 최고의 기부 열기를 이어가고 있는 시민들의 크고 작은 온정은 정말로 경이롭고 존경스러울 정도다. 부산은 기업 실태와 생산성, 소득, 고용률 등 여러 경제 지표가 전국 최저 또는 최악 수준일 만큼 침체돼 있기 때문이다. 각종 서비스업 비중이 높지만, 내수 부진으로 극심한 영업난에 시달리거나 폐업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속출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1억 원 이상 고액을 기부한 개인(아너 소사이어티)이 374명, 법인(나눔 명문기업)은 79개로 각각 17개 시도 중 서울 다음으로 많아 놀랍기만 하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가 말했다. “부(富)는 거름과 같아서 축적돼 있을 때는 악취를 풍기지만, 뿌려지면 땅을 기름지게 한다”고. 부는 갖고 있을 때가 아니라 나눌 때 가치가 커짐을 강조한 얘기다. 이같이 남을 위해 자기 재산을 내놓는 건 비록 좋은 일일지라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따라서 이 쉽지 않은 일을 하는, 가진 것을 베푸는 자는 진정한 부자다. 생활이 여유롭지 않아도 나눔을 실천하는 마음을 가진 시민이 많이 사는 도시. 진짜 부자가 많은 부산은 그야말로 ‘부자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이수태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은 평소 주위에 “부자가 되는 길은 기부에 있다”고 말한다. 타인을 위해 가치 있게 돈을 쓰는 사람이 행복을 얻고 덕을 봐 부자가 될 가능성도 높다는 의미에서다. 이달 말까지인 나눔 캠페인에서 모인 성금은 법적·제도적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 위기 가정 등을 지원하는 데 알뜰히 사용된다. 온정의 물결이 널리 확산해 매서운 경제 한파와 한겨울 강추위를 녹이기 바란다. 수많은 기부 천사에게 축복이 있기를!
2025-01-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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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
1947~1991년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극하게 대립했다. 두 초강대국 미국과 옛 소련이 중심이 된 냉전시대다. 이 시기, 미소 양국의 강경 세력은 걸핏하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모습으로 두 나라는 물론 지구촌에 긴장을 조성했다. 양국의 강경파가 상대국을 쓸어버리겠다며, 적국의 공격에 대비한다며 경쟁적으로 국방비를 늘리고 대량살상 무기를 대거 확충했던 게다.
양국 강경파는 서로 비방하고 위협하는 과정에서 자국 내 정치적 입지를 굳건히 다져 주류 세력이 될 수 있었다. 양측은 수시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며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까지 빚었지만, 피해를 입기는커녕 자국민의 지지를 얻는 등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진심으로 상대를 이기려고 힘껏 싸웠는데, 되레 서로가 이익을 보며 잘 되도록 도움을 주고받은 셈이다. 이에 맛 들인 미소 정부는 때때로 필요에 의해 강력한 적대정책을 펼쳐 정권을 유지하거나 세력을 키우기도 했다. 이러한 냉전시대 미소 관계를 ‘적대적 공생’이라고 한다.
적대적 공생관계는 거대 양당제가 공고해져 다당제가 무색한 우리나라 정당제도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22대 국회 300석 중 각각 170석, 108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행태를 보면 그렇다. 두 당이 철천지원수처럼 싸우면서도 번갈아가며 집권해 소수정당은 설 자리가 없는 정치 양극화를 심화하고 있어서다. 양당은 정권 사수 혹은 정권 탈환을 위한 당리당략을 앞세워 사사건건 충돌하고 대치하는 정쟁에 몰두한 지 오래다. 막말과 욕설을 동원해 사생결단식으로 싸운다. 국회를 자주 마비시키며 국익과 경제·민생을 살피는 데 등한하다고 질타받는 이유다.
거대 양당은 그런데도 양극단의 진영논리에 매몰된 강성 지지층을 우군으로 삼아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정쟁을 멈추지 않는다. 자기 당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로를 더 험하게 헐뜯고 노골적으로 적대시한다. 이럴수록 한쪽 당의 적대적인 의도와 달리 상대방 입지는 강화된다. 여당과 야당 간 갈등과 적개심이 커지면 양당 내 강경파도 큰 목소리를 내며 득세하기 마련이다. 국민의힘 친윤계와 민주당 친명계가 그런 경우다. 양당은 대화와 타협을 모른 채 상대편을 깎아내려 붕괴시키려고 혈안이지만, 실제로는 서로에게 도움 되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12·3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 정국에서도 양당은 결과적으로 상호 존재감을 키워주는 다툼을 격렬하게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조속한 사법 처리를 통해 대선 전에 민주당이 추락하기를 바란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을 하루빨리 탄핵해 여당을 와해하고 이 대표를 사법 리스크에서 구할 작정이다. 이 때문에 양당은 윤 대통령 탄핵과 이 대표 재판을 늦추려는 기싸움이 치열하다. 여야가 대권을 잡으려는 욕심에 빠져 국가 및 경제 위기 극복과 민생 안정을 위한 협치는 내팽개쳤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양당은 같은 사안을 두고도 상황에 따라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말을 바꾸기 일쑤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과 관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공석인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하는 데 반대한다. 이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황교안 권한대행의 임명에 찬성한 것과는 정반대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8년 전에는 반대, 이번엔 찬성이다. 여야 관계가 서로 바뀌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된다. 중도층 눈에 양당은 한통속으로 보일 게 분명하다.
실제로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기득권 유지에는 뜻을 함께하는 우호적 공생관계를 보여준다. 양당 모두 국회의원의 온갖 특권을 국민 눈높이에 맞게 줄이는 걸 외면하는 대신 세비 증액엔 호의적이다. 총선에서 사표가 많아 표심을 충실히 반영하기 어려운 데다 인재와 자금이 풍부한 여당과 제1야당에 유리해 거대 양당제를 고착화하는 현행 소선거구의 개선에 소극적이다. 정쟁으로 날을 새며 국민적 불신과 혐오감을 키우는 정치의 개혁을 바라는 민심조차 무시한다. 하늘을 찌르는 뻔뻔함이 볼썽사납다.
거대 양당만 좋아지는 적대적 공생이 초래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기업의 몫이다. 여야가 적대와 반목을 청산하고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최우선해 머리를 맞댈 순 없는가. 새가 좌우 날개로 균형을 맞춰야 훨훨 날 수 있는 건 상식이다. 계엄 사태로 정국 불안과 국정 혼란이 심각한 만큼 양당에 ‘적과의 동침’이 요구된다. 양당이 국가 불안 해소에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탄핵 정국의 주도권 다툼으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최근 대통령 탄핵 집회를 밝힌 수많은 형형색색 응원봉이 언젠가 정치권에 정신 차리길 촉구하는 시위로 모여들지도 모를 일이다.
2024-12-2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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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벼랑 끝에 매달린 존재들, 누가 손잡아 주나
2일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송상현광장에서 ‘희망 2025 나눔캠페인’ 출범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 부산시민의 나눔과 온정의 정도를 수치로 나타낼 ‘사랑의 온도탑’이 점등됐다. 이번 캠페인은 연말연시 두 달간 총 108억여 원을 모금할 계획이란다. 같은 날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앞에서는 구세군 자선냄비 시종식도 열렸다. 두 행사 소식을 접하면서 또다시 본격적인 겨울이 찾아왔음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연말이다. 갑진년(甲辰年) 정초에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주위에 나누며 새해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올해가 좋은 기운 가득한 ‘청룡의 해’인 만큼 희망을 노래하며 국가·사회적인 상승 국면을 기대했지만, 한 해의 끄트머리에 놓인 현실은 그렇지 않아 서글프다. 이는 국민의 삶이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신세와 다름없어서다. 그런데도 민생을 절박한 위기에서 건져 올리려는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이를 볼 수 없으니 문제다.
이 땅의 젊은 층은 부의 양극화와 교육 격차 속에서 힘겹게 성장한 끝에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린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쉬는 젊은이가 숱하다. 아예 구직을 포기한 청년이 속출하고, 그 비중은 날로 커진다. 자영업자는 소비 위축으로 경영난을 겪으며 가겟세 인상을 감당하기 힘들어 폐업하기 일쑤다. 주택가는 물론 번화가와 대학가조차 빈 점포가 즐비한 이유다. 대다수 서민은 늘어난 가계빚과 고금리·고물가에 신음한 지 오래다. 어렵게 모은 돈이나 은행 대출금으로 전셋집을 마련했으나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고통은 명쾌한 해결책 없이 현재 진행형이다. 다양하고 심각한 이런 현상은 인구 급감과 경기 침체가 심한 비수도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 경제와 외교·안보 역시 백척간두에 선 절체절명의 상황이기는 마찬가지다. 올 들어 수출과 내수 부진을 알리는 통계 발표가 잦은 데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자꾸만 낮아진다. 한국 경제는 내년에 1%대 저성장이 예고되는 등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다음 달 20일 미국 우선주의와 ‘관세 폭탄’을 앞세운 2기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국내 경제와 외교에 어려움이 가중될 게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핵 위협을 높이는 북한과 러시아 간 밀착과 군사협력 강화는 한반도를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몰아가는 실정이다.
반면 이 같은 내우외환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려는 정치권의 노력과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집권당 국민의힘이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사로잡히고 자기당 이익만 좇으며 벌이는 격렬하고 오랜 정쟁 탓이다. 양당은 대화나 타협을 모른 채 사사건건 마찰을 빚으며 국회를 마비시키고, 경제와 민생을 챙기는 데 뒷전이다. 그 사례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지경이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관련, 국가·국민의 대표라는 신분을 잊은 듯하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의혹 해소와 국정 쇄신은커녕 김 여사 감싸기에 급급한 일개 남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대통령 지지율 폭락과 민심 이반에 이어 일부에서의 대통령 퇴진론까지 초래해 국정 동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의정 갈등이 10개월째 지속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싶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경우 자신의 여러 사법 리스크에 대한 방탄에 혈안이 돼 당력을 낭비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갈등과 계파 싸움에 휩싸여 당이 야권의 일방 독주에 끌려다니며 무능함을 드러내도 손을 쓰지 못한다.
여야와 위정자들의 실태가 이러니 민생과 직결되고 국가 존망이 걸린 국내외 주요 현안들에 적절하고 원활한 대처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벼랑 끝에 매달려 추락 일보 직전인 나라와 민생에 손을 내밀어 잡아 끌어올릴 구원자가 없는 셈이다. 국민의 실망과 불안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궁지에 몰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소외계층마저 정치를 걱정하는 판이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정치권은 부끄럽지 않은가 보다.
지난달 27일 눈길 교통사고로 11m 높이 교량에서 추락 위기에 빠진 60대 운전자를 난간 밑으로 맨손을 뻗어 잡고는 추위 속에서 무려 45분간 버티며 구조에 성공한 경북 한 소방관의 영웅담은 큰 울림을 준다. 이러한 소방관의 투철한 소명감이 여야에 요구된다. 지금은 이전투구를 일삼을 때가 아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아우성과 경고음은 들리지 않는가. 첩첩산중인 난제 해결에 초당적 협력으로도 힘이 모자랄 시국이다. 내년 을사년(乙巳年)엔 국가 이익과 안녕, 국민 행복을 최우선하는 자세로 환골탈태하길 바란다. 한심한 작태를 이어간다면, 2026년 지방선거의 심판에 직면할 것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2024-12-0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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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위기의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보기에 정말 불안하다. 위태위태하다. 이달 10일 반환점을 돈 임기 후반기가 매우 걱정스럽다. 우려가 커지는 건 지난 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에서 받은 실망감 때문이다. 담화와 회견은 명품백 수수 등 영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 그리고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와 대통령 부부 간에 얽힌 온갖 논란으로 민심이 크게 나빠지자 긴급히 마련한 자리였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국민 기대에 못 미치는 막연한 사과와 견강부회식 해명 탓에 국민 신뢰 회복은커녕 불신을 더 키웠다. 안 하니만 못한 꼴이 됐다.
윤 대통령은 위기 무마에 급급했는지 머리 숙여 사과는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밝히지 않고, 명확한 쇄신 방안도 내놓지 않았다. 김 여사와 명 씨 의혹들에 대해 부정과 궤변으로 일관했다. 더욱이 김 여사의 국정 개입 의혹과 관련, 감싸고도는 모습은 국가와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의 자세가 아니다. ‘김 여사 두둔만 하다 끝난 140분 회견’이란 회의적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전에도 윤 대통령의 태도는 위험해 보였다. 2022년 11월 화물연대 총파업 때다. 화물연대가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적정 최저 임금을 보장한 안전운임제 영구 시행과 적용 대상 확대를 요구하며 벌인 파업 초기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통해 곧바로 집행에 들어갔다. 업무개시명령 발동은 2004년 제도 도입 이래 18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 조치는 되레 화물연대의 강한 반발과 16일간의 파업 장기화를 불러 경제와 민생에 막대한 타격을 안긴 물류대란을 가중시켰다. 앞서 파업 직후 정부는 화물연대와 교섭을 갖기로 약속한 상태였으나 대화와 설득 노력보다 업무개시명령을 먼저 발동하는 무리수를 둬서다. 당시 윤 대통령은 “불법과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불법행위 책임은 끝까지 엄정히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화물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부르며 이들의 단체행동을 파업이 아닌 운송거부로 판단한 평소 정부의 입장과 어긋난다. 게다가 정부는 같은 해 6월 화물연대의 1차 파업에서 합의된 사항에 대한 후속 조치와 추가 논의에 등한해 11월 파업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소통과 타협에 인색한 윤석열 정부의 과격성과 무능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다.
이 같은 성향은 극심한 의정 갈등 사태를 낳았다. 정부는 올 2월부터 의과대학 증원 문제를 놓고 의료계와 마찰을 빚으며 9개월째 아무런 성과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필수·공공·지역 의료체계가 붕괴해 국민 목숨을 위협하고 환자들은 응급실 뺑뺑이로 고통받는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뒷전에서 밀어붙이기식 의료개혁의 당위만 운운할 뿐 갈등 해소나 의료 정상화에 직접 나서지 않아 민심을 돌아서게 만든다. 협의의 전면에서 애쓸 줄 모르는 그에게 박한 점수를 매길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불과 2년 6개월 새 바닥권으로 추락한 점으로 미뤄 국민 대다수가 같은 생각인 게 분명하다. 한국갤럽의 가장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치인 17%로 나타났다. 반면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는 74%로 최고치다. 지난 4·10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한 주원인으로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무능이 꼽혔다. 그동안 숱하게 대통령의 변화와 국정 쇄신을 요구받고도 달라진 게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보수층에서조차 불만이 쌓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가 늘고 있어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 국정 운영에 필요한 동력을 얻기 어려운 상태다. 일부에서 대통령 탄핵과 하야, 임기 단축 개헌 등 얘기가 공공연하게 거론될 정도라 더더욱 그렇다. 내년 1월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세계를 쥐락펴락할 2기 트럼프 행정부와의 파트너십과 협상에 힘이 실릴지도 의문이다. 그야말로 대통령의 위기다.
돌파구는 국민 예상을 뛰어넘는 환골탈태뿐이다. 이를 위해 윤 대통령의 뼈저린 반성과 겸허한 자세가 요구된다. 지난 대선에서 득표율 48.56%로 힘겹게 당선된 건 준비된 대통령이거나 난세의 영웅 같은 출중한 능력자여서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의 변함없는 모양새에 격노한 국민의 차선책이었다. 오만과 내로남불에 익숙하고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전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진정으로 겸손하고 정직하게 소통하며 협치하려는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이 행복하게 잘 살도록 살뜰히 챙기고 나라를 살찌우는 데 최선을 다해야 전폭적인 국민 지지를 얻는 정권이 될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는 좋은 편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뒤끝이 좋은 새로운 지도자상을 보여주길 바란다. 여기에 대통령이 최근 부산에서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말한 그 용기(?)를 쏟아부어야 한다.
2024-11-1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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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필요성 알고도 안 하는 '해사법원 설립'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도 한두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말이다. 〈신약성서〉 중 지혜에 관한 얘기를 주로 다룬 ‘야고보서’ 4장 17절에 나오는 문구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도 비슷한 표현으로 도덕적 용기의 중요성을 담은 가르침을 남겼다. ‘옳은 일을 보고도(알고도) 행하지 않는 건 용기가 없는 것이다(見義不爲 無勇也).’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미국 경영 석학인 스티븐 코비(1932~2012) 박사는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정말로 아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세 격언은 세간에서 실천해야 마땅한 일을 하지 않는 경우를 지적할 때 흔히 인용된다. 특히 코비 박사의 명언은 10년이 넘도록 부산은 물론 법조계와 해양업계의 애간장을 태우며 질질 끌고 있는 ‘해사(海事)법원 설립’ 문제에 딱 들어맞는 충고가 아닐 수 없다.
해사법원은 선박 충돌을 비롯, 국내외 바다를 매개로 발생한 각종 사건과 법적 다툼 등 다양한 해사사건을 전담해 처리하는 전문법원을 일컫는다. 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은 국내 첫 해사법원 설치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앞서 대법은 2020년 9월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 해사법원 설립에 동의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어 대법 소속 사법정책연구원은 2021년 발간한 〈해사법원 설치에 관한 연구〉를 통해 설치 정책을 위한 기반 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2022년 1월에는 법원행정처가 합의부 2개, 단독부 4개 등으로 구성된 해사법원 설치 의견을 국회에 보냈다. 윤석열 대통령도 2022년 대선 당시 해사법원 설립을 약속한 바 있다.
해사 전문법원 설립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데는 13년간 해사법원 유치에 공을 들인 부산의 역할이 컸다. 2011년 부산지방변호사회가 지역 학계, 언론, 시민단체와 연대해 설립 논의에 불을 지핀 이후 유치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한 게다. 이는 해사법원이 없는 탓에 국내 기업이 관련된 수많은 해사사건과 분쟁의 대부분이 영국, 싱가포르 등 해양 선진국 전문 중재소나 해사법원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이를 위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소송비에 따른 국부 유출이 매년 3000억~5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막대한 실정이다.
이처럼 사정이 심각한데도 그동안 해사법원이 설치되지 않은 건 조선 세계 1위, 해운 선복량 세계 5위인 해양강국이면서 해상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체면에 먹칠을 하는 셈이다. 절실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설립은 하세월이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해사법원이 시급함을 알고도 설치하지 않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고 비판받을 만하다.
설립이 지지부진한 이유로는 지역 간 유치 경쟁과 대법의 미온적인 태도가 꼽힌다. 20대와 21대 국회에서 부산 국회의원들이 지역 여론을 반영한 ‘해사법원 부산 유치 법안’을 발의하자 서울과 인천, 세종시에서도 법안을 발의해 치열한 유치전을 벌였다. 심지어 같은 당 의원끼리도 자기 지역구 유치를 우기며 싸웠다. 이 바람에 각 법안은 국회 상임위는커녕 소위에서조차 논의되지 않은 채 폐기됐다. 대법은 해사법원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내부의 일부 반대론과 지역 간 논란을 의식해 결론을 내지 않고 국회에 맡기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해운회사와 법조 인력이 많음을 내세운 서울의 주장은 국가 미래를 갉아먹는 수도권 일극체제의 심화가 우려된다. 내륙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세종 유치론은 바다라는 현장이 중요시되고 복잡다단한 해사사건의 특수성을 간과했다. 인천은 항만도시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숙원인 고등법원 신설에 치중하는 게 시민 편의를 위해 더 옳은 방향일 테다.
글로벌 해양도시 부산의 경우 해사법원을 설치해야 할 타당성이 차고 넘친다. 세계 2위의 환적항, 세계 7위 컨테이너 항만인 부산항을 중심으로 전국 해양수산 기관단체의 70%가 몰려있다. 싱가포르 노스스탠다드 P&I(선주상호보험)클럽이 담당한 최근 14년간 한국 항만별 분쟁 건수만 봐도 부산항이 압도적 1위인 데다 2, 4위인 광양·울산항과 마산·포항·여수항 등 남부권까지 포함하면 분쟁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게다가 울산·경남에 발달한 조선업과 기자재, 해양플랜트, 해양관광·레저 산업을 감안하면 해사법률 서비스 수요는 어마어마해 부산 유치는 불문가지다. 해사법원을 부산의 국제금융 및 해양금융 중심지 정책, 글로벌 허브도시 전략과 연계하면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와 지역균형발전 촉진도 기대할 수 있겠다. 22대 국회와 대법에 조속히 해사법원 신설 추진에 나서길 촉구한다. 또한 해사법원 최적지인 부산에서의 설립은 선택이 아닌 필수란 점을 명심해 대승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2024-10-2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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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문화도시 영도' 사업 지속성 필요
부산 영도는 12㎢ 면적의 섬으로 이뤄진 자치구다. 영도는 전국의 노년층에게 기암절벽이 많은 해안 절경을 자랑하는 국가 명승 17호 태종대와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영도다리가 있는 곳으로 기억될 터이다. 젊은 층 사이에선 인생샷 건지기에 그만인 전국적인 핫 플레이스로 꼽힌다. 그리스 산토리니 풍광을 닮은 흰여울문화마을과 다양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크고 작은 카페들 덕분이다.
이 같은 영도구가 쇠락의 길을 빠르게 걷고 있다. 중·서·동구 등 인근 지역과 함께 인구가 급감하고 있어서다. 원도심의 심각한 저출생과 청년 인구 유출, 고령화 현상 때문이다. 지난 8월 기준 영도 인구수는 10만 4914명. 한때 23만 명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이나 줄었다. 이곳 인구는 1970~90년대 20만 명을 넘었지만, 199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인다. 부산의 인구 감소와 침체 상황에 빗댄 ‘노인과 바다의 도시’란 자조 섞인 표현이 한층 잘 어울리는 데가 영도다.
더욱이 영도구는 지역소멸이 우려될 정도여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한 실정이다. 2016년 전국 광역시 구·군 가운데 최초로 소멸위험지역(위험지수 0.42)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올 3월 기준 영도구 소멸위험지수는 고위험지역에 가까운 0.25까지 떨어졌다. 광역시 구·군 중 최악이다. 제2 대도시의 자치구답지 않게 아기 울음이 끊긴 지 오래인 상당수 농촌 지역과 함께 빨리 사라질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지난해 1147곳에서 지난 4월 1339곳으로 가파르게 증가한 영도 내 빈집이 소멸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3%인 부산에서 영도구가 처음으로 30%를 넘긴 초초고령화 사회인 점은 지역소멸 위험성을 가중하는 대목이다. 이런 탓에 올 상반기 영도구 고용지표는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는 악순환이 빚어졌다. 영도는 실업률 5.8%로 전국에서 가장 높고 고용률은 최저인 47.1%를 기록했다.
갈수록 활력을 잃고 암울한 영도구에서 실의에 빠질 뻔한 구민들에게 반전이 생겼다. 2020년부터 국비 지원으로 추진한 ‘문화도시 영도’ 사업이 바로 그것. 이 사업이 주민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는 등댓불 역할을 충실히 해온 게다. 그동안 지역민과 문화·도시 기획자, 예술인 등이 의기투합하고 협업해 곳곳에서 문화공동체를 만들며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펼쳤다고 한다. 어르신과 아이들이 함께 글을 배우고 노래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제작했다. 몇 가지 로컬문화 비즈니스도 이뤄져 지역경제에 보탬이 됐다.
지금까지 5년간 160억 원(국비 50%, 시·구비 각 25%)이 투입된 사업 과정에서 자연스레 세대 간 소통이 원활해지고 수많은 구민이 문화예술과 만나는 일상이 가능해진 게 성과라는 평가다. 주민과 예술가가 서로 돕고 지내는 영도, 노인이 즐거움을 느끼는 영도, 어린이가 웃고 떠들며 신나게 노는 영도, 살고 싶은 영도, 관광객이 몰려드는 문화도시 영도, 자랑스러운 보물섬 등의 새로운 면모로 영도에 씌워진 여러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올해 영도구가 전국 24곳 문화도시 중 최우수로 선정되고 벤치마킹 대상으로 관심을 받는 괄목할 만한 결과로 이어졌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최근 영도구가 내년 2월 끝나는 문화도시 사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해 구민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구청이 내세운 이유는 재정난과 국비 지원 종료다. 이해가 되면서도 너무 경직되고 소극적인 행정이란 인상을 풍긴다.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 넣고 소멸을 막으려는 구정에 부합하는 데다 거주민의 만족도를 높이며 잘 운영되는 모범사업을 굳이 중단할 이유가 있을까. 성공적인 원도심 재생에 필요한 사업을 발굴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영도 안팎으로 사랑받는 문화도시 사업이 지역공동체 형성과 문화·경제 활성화에 더욱 기여하는 방향으로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내용을 보완해 장려하고 확산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 게 영도와 구민들을 위한 길일 것이다.
급기야 지난달 20일 영도 구민들이 구청 앞에서 사업 중단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데 이어 SNS상에서 사업 지속 방안을 강구할 것을 촉구하는 챌린지를 진행 중이다. “문화도시 영도를 지켜주세요” “니들이 알아? 문화도시 덕분에 치매도 잊었다” “안 된다! 문화도시 없으면 우리들 할매 삶도 허전해진다” “문화도시 이후 영도에 살아서 자랑스럽다” 등등…. 이같이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호소는 타당성이 충분하다.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사업 관계자들과 영도구, 구의회, 부산시, 사회 공헌도가 높은 기업 등이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조직된 시민이 참여하는 지방자치를 구현해야 할 자치분권 시대가 아닌가. 영도구의 전향적인 검토가 있기를 기대한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2024-10-0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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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여론 수렴 소홀한 행정은 곤란하다
지난 9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9.9%에 그쳤다. 윤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등 여파로 여당이 참패한 4·10 총선 직후의 주별 평균 대통령 국정 지지율 28%에 가까운 수준이다. 20대 대선 득표율 48.6%와 취임 초기 50%대이던 지지도에 비하면 임기 절반 만에 거의 반토막이 난 셈이다.
이 같은 지지율로 미뤄 보수층 지지자의 상당수가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고 봐도 무방하지 싶다. 요즘 변화하지 않는 대통령의 오만함과 국정 난맥상을 질타하는 보수 언론사들의 보도와 논평이 부쩍 늘어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야당과의 협치나 국민통합에 힘쓰기보다 감정적으로 강경 대응하는 대통령이 위험해 보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대통령 지지율이 장기간 30% 초반을 밑돌고 세간의 부정적 인식이 커진 데는 윤석열 정부가 설익은 정책으로 조변석개하는 모양새가 크게 작용했다. 올 5월 20일 정부는 고령 운전자의 조건부 운전면허 발급을 검토한다고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번복했다. KC(국가통합인증마크) 미인증 제품에 대한 해외직구 금지는 발표 사흘 만에 철회했다. 초등학교 만 5세 입학과 주 69시간 근로 허용, R&D(연구개발) 예산 14.8% 삭감도 성급하게 내놨다가 여론에 밀려 탈이 난 경우다.
철저한 여론 수렴이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진행하려다 거센 반발에 직면해 계획을 철회·번복하는 정부와 닮은 행정이 부산 시정에서도 목격된다. 공사비 충당을 위한 고층 아파트 건립이 포함된 구덕운동장 복합 재개발사업이 대표적이다. 부산시는 지난해 12월부터 이 사업을 추진하던 중 아파트 건설에 반대하는 인근 주민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치자 아파트 규모를 줄여 강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관할 구청장과 지역 정치권까지 주민 편에 서고 반대 여론이 확산하자 시는 지난달 20일 시민 의견을 물어 추진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8개월간 행정력을 낭비한 이 사업은 공공성을 강조하는 주민 의견 수렴과 숙의 과정이 매우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시가 내년 1월 민간 운영이 끝나 관리권을 넘겨받는 백양터널의 통행료 징수 연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시민 공론화 절차가 빠졌다. 지난 6월 시는 무료화 시 교통혼잡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징수를 계속하되 요금을 인하할 방침을 세웠다. 이에 전국에서 유료도로가 제일 많은 부산 운전자들의 경제 부담을 외면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지난달 26일 박형준 부산시장이 통행료 무료화를 선언했으나, 오락가락하는 행정에 대한 불신만 키운 꼴이 됐다.
지난 2월부터 지난달 26일까지 논란을 빚은 이기대공원 입구 고층 아파트 3개동 건립사업은 시가 환경단체와 시민들의 반대 의견을 무시한 사례로 꼽힌다. 아파트가 해안 절경을 자랑하는 이기대의 자연경관을 해칠 우려가 높은데도 시는 부실한 심의로 사업 계획을 통과시켰다. 나빠진 여론을 의식한 건설업체가 사업을 포기함으로써 사태가 종결됐지만, 행정당국이 그간 시민의 난개발 반대 입장 대신 개발업자의 이익을 두둔했다는 점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이러한 행정 혼선은 정부든 부산시든 신뢰성 실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된다면 정작 중요한 일에 필요한 동력을 얻기 힘들어 사업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부산은 지금 침체와 발전의 기로에 서 있다. 청년층 유출과 초고령화로 쇠락하면서도 글로벌 허브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게다. 인구절벽과 지역소멸 같은 위기에 잘 대비해 생산성 높고 활기 넘치는 도시로 바꾸려면 시민의 지지와 동참은 필수적이다.
박 시장이 내건 시정 구호인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부산’을 실현하는 데 시민 생각, 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은 곤란하다. 시정의 여론 수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시민 불신이 쌓이는 건 3선 시장 혹은 대선을 꿈꿀 박 시장에게도, 살기 좋은 환경과 행복한 삶을 원하는 시민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시 공무원들에게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은 시민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세다.
어설프고 무리한 계획을 수립해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다가 여론에 밀려 철회·번복하는 일이 더는 없길 바란다. 지역사회와 시민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일수록 설계 때부터 공청회를 열어 더욱 적극적으로 시민 의견을 청취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 시민단체와도 충분히 토론해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 민선시대 행정의 순리일 테다. 그런 만큼 프랑스의 세계적 미술관 퐁피두센터 분관 유치에 나선 부산시가 시민과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견해를 더 많이 듣는 게 좋겠다. 유치 계획을 보완해 완벽성을 기하거나 갈등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kbg@busan.com
2024-09-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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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싸워라, 특권 내려놓고 싸워라
예부터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혹자는 둘 중에서도 싸움을 바라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고 말한다. 자칫 무서운 화마로 돌변할 수 있는 불보다는 참견이 가능하고 뜯어말리기 쉬운 남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이 부담이 덜해서일 테다.
필자는 정치권에 횡행한 소모적인 싸움질만큼은 지켜보기가 싫었다. 그래서 지난달 12일 자 이 난의 칼럼을 통해 민생고를 외면한 채 격렬한 정치 싸움만 일삼으며 날을 새는 22대 국회가 탄핵감이라고 질타한 바 있다. 그러면서 여야가 갈등과 반목뿐인 정쟁을 당장 멈추고 대화와 타협을 바라는 민심을 받들 것을 촉구했다. 이보다 앞서 6월 21일 자 칼럼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오만을 지적하며 대립 대신 겸허한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협치와 국민 통합에 힘쓸 것을 주문했다.
이 같은 제언은 일부 극단적 진보·보수층을 뺀 대다수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고 해도 틀린 게 아니지 싶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중심으로 국민의힘과 민주당 간에 펼쳐지고 있는 극심한 쌈박질에 수많은 국민이 재미는커녕 지긋지긋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당리당략을 앞세운 거대 양당의 다툼을 극혐해 정치권에 눈길마저 주지 않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제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석 달이 다 돼 간다. 하지만 국회는 아직까지 개원식조차 열지 않았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사명감을 다지는 국회의원 선서도 못했다. 거대 양당의 강 대 강 대치 국면 탓이다. 이는 이 대표 일극체제인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인 정치적 쟁점 법안들에 대한 입법 폭주와 이에 맞선 윤 대통령의 잦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서 기인한다. 거대 야당의 독단적 입법 강행, 대통령 재의요구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돼 정쟁을 심화하고 장기화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여야는 22대 시작부터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싸고 거친 공방을 벌였다. 그동안 민주당이 발의한 여러 탄핵안과 특검법안을 놓고도 날 선 언쟁을 빚고 있다. 각종 회의와 청문회는 고성은 물론 막말과 험담이 난무하는 가운데 파행으로 치닫는다. 때로는 저주와 다를 바 없는 발언까지 튀어나와 파문을 확산한다. 과장된 표현을 빌리자면, 억겁의 원한이 맺힌 철천지원수 간 아귀다툼 같은 꼴이 아닐 수 없다.
거대 양당은 심지어 같은 당끼리도 우위에 서기 위해 편을 가르고 이전투구에 몰두해 볼썽사납다. 전당대회 과정 등에서 지지세력 결집을 목적으로 서로를 비방하거나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언행을 서슴지 않으며 치열한 계파싸움을 전개하기 일쑤다. 많은 국민에게 실망을 안기고 정치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첨예하고 오랜 정쟁의 심각한 문제점은 고물가·고금리에 고통받는 민생과 직결된 법안들이 지금까지 국회에서 단 한 건도 여야 합의로 통과되지 못한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국가 사활이 걸린 반도체를 포함한 경제 법안들 역시 뒷전이긴 매한가지다. 초저출생 해소와 경제 회복 등 국가·사회적 현안 대응과 해결이 시급한데, 국회 정상화가 요원해 답답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 그나마 지난 21일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특별법이 여야의 첫 합의로 국회 국토교통위 문턱을 가까스로 넘어선 게 위안거리다. 민주당 이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악화한 민심을 의식해 오는 25일 회담을 갖기로 했으나, 며칠간 회의 방식과 의제를 두고 또 다른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이 대표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연기돼 버렸다.
이같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정쟁을 중단할 수 없다면, 그래 싸워라. 서로 계속 싸워라. 죽도록 싸워보라. 사생결단식으로 싸우다 보면 없던 정이 들 수도 있겠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는 법이니까. 끊임없이 싸운 끝에 여야 어느 쪽도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절감해 협치하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려는 마음이 생길지 모를 일이다. 또 한편으론 ‘하던 일도 멍석 깔아주면 안 한다’는 격언을 믿고 여야가 마음껏 싸우기를 권한다.
여야는 광복절을 맞아 일본 과거사 문제로 다투다 “국민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숱한 국민의 마음이 상당히 아프다. 격화일로인 정쟁에 피로감이 가중되고 마음을 다쳐서다. 여야가 이런 민심과 멀어지며 무한 정쟁을 이어갈 경우 극도로 성난 민심을 만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때 가서 크게 후회하기 전에 태도를 바꿔 온 국민에 행복과 희망을 주는 참된 정치에 매진하길 당부한다. 그럴 의지가 없다면, 국회와 국회의원이 가진 온갖 특권을 다 내려놓고 싸워라. 주권자인 국민이 부여한 특권에는 열심히 본연의 임무를 다하라는 명령이 들어있다. 이를 모르면 정치할 자격이 없는 셈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2024-08-2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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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부산항만공사·한국해양진흥공사 차기 사장
요즘 부산 지역사회와 해양 산업계의 눈길이 해양수산부 산하 부산항만공사(BPA)와 한국해양진흥공사(KOBC·해진공)에 집중돼 있다. BPA와 해진공이 비슷한 시기에 차기 사장 선임을 위한 공모 절차를 밟고 있어서다. 해양도시 부산에 자리 잡은 두 공기업의 수장 자리인 만큼 큰 관심이 쏠리는 게 당연할 테다. 해수부 차관 출신 강준석 BPA 사장은 다음 달 말로 3년간 임기가 끝난다. 역시 해수부 차관을 지내고 3년 전 취임한 김양수 해진공 사장은 이달 말 임기 만료를 앞뒀다.
이에 따라 지난달 15일 구성된 BPA 임원추천위원회가 받고 있는 차기 사장 후보 지원이 2일 마감된다. BPA 임추위는 곧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복수의 사장 후보자를 해수부에 추천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사장 공모에 들어간 해진공은 지난달 4일 지원서 접수를 끝내고 임추위 심사 절차를 진행 중이다. 두 공공기관이 잇따라 차기 사장 후보들을 추천하면 임명권자인 해수부 장관이 최종 임명하게 된다.
현재 여당을 포함한 정치권과 해수부 고위 관료 출신, 해양업계를 포함한 경제계와 학계 인사 등 다양한 인물이 지원한 상태다. 이들 중 일부는 임추위 심사와 별개로 요로를 통해 자신이 적임자임을 호소하며 물밑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두 기관별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사장 후보군 윤곽이 드러나면서 특정인 내정설이 나돈다는 점이다. 차기 사장 후보 추천이 이뤄지기도 전에 벌써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이 거세다. 심지어 “낙하산 사장이 올 바에야 차라리 정치권보다 바닷물을 먹은 해수부 출신이 낫다”는 비아냥까지 쏟아지는 실정이다.
내정설이나 낙하산 논란은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BPA의 사장과 본부장 등 임원 공모가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실제로 그간 부산 시민과 시민단체의 우려 목소리와 함께 거명된 낙하산 예상 인사가 임원으로 취임한 사례들이 있다. 올 6월 18일 부산항발전협의회를 비롯한 해양 시민단체들이 BPA와 해진공의 낙하산 사장 임명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이유다. 이들 단체는 전문성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맡아야 할 두 공기업 차기 사장의 선임 과정을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진행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해수부와 임추위가 명심할 일이다.
BPA·해진공 사장이 속칭 ‘해피아’(해수부 고위 퇴직자+마피아)가 거쳐가는 자리와 총선에서 떨어진 정치인의 밥줄 노릇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역할로 전락한다면 조직 발전에도, 해양산업 성장에도 도움이 안 될 것이 분명하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추진력이 요구되는 두 기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며 부산과 해양업계 의견을 반영하기보다는 해수부 의사에 흔들리거나 해수부를 대변하는 데 치중할 가능성이 있는 까닭이다.
BPA와 해진공에 주어진 임무는 정말 막중하다. BPA의 숙원은 정부로부터의 독립과 자율권 확보다. 게다가 성공적 북항 재개발, 대규모 진해신항 개발, 이합집산하는 세계 해운동맹 체제에 긴밀한 대응, 부산신항과 2029년 말 개항할 가덕신공항 간 복합물류 체계 구축, 싱가포르를 능가하려는 부산의 글로벌 허브도시 전략과 연계한 부산항의 글로벌 메가 허브항 경쟁력 제고 등 대형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2017년 한진해운 퇴출에 따른 대응책으로 2018년 출범한 해진공은 쇠락한 한국 해운력을 해양강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해운업과 항로는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는 기간산업이자 무형의 해양영토여서다. 이런 연유로 막대한 혈세를 들여 살려낸 HMM(옛 현대상선)을 민영화하는 매각도 현안이다.
이같이 산적한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진두지휘해야 할 자리에 전문성이 부족하고 임기만 채우다 떠날 인물을 앉히는 건 어불성설이다. BPA나 해진공 사정을 잘 알고 해양 전문성과 현장 경험이 풍부하다고 평가받는 몇몇 인사가 특정인의 사장 내정설과 낙하산 얘기를 듣고는 “들러리 서기 싫다”며 일찌감치 지원을 포기했단 말이 들려 안타깝다. 해수부가 내부 주축 세력 또는 정치권과 결탁해 어떤 후보를 미리 점찍어 놓고 요식적인 공모를 추진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렇다고 해수부와 정치권 인사를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 의외의 적임자나 실력을 갖춘 이가 있을 수 있다. 사장 후보 지원자 모두에 능력과 자질 본위로 공평하고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라는 말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이 각각 남녀 단체전 3연패와 10연패 금자탑을 쌓은 원동력은 메달 수상자와 고참, 신예를 똑같이 대하는 철두철미한 공정 경쟁이란 건 주지의 사실이다. 두 공기업 임추위의 냉철한 자세와 해수부 장관의 현명한 판단을 요한다. kbg@busan.com
2024-08-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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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정쟁에 날 새는 국회, 탄핵감이다
내 진작에 이럴 줄 알았다.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론 설마설마했는데, 역시나여서 허망하다. 아니, 당초 우려한 것보다 더 심해서 문제다. 22대 임기 시작부터 여야의 진흙탕 싸움으로 파국을 맞고 있는 국회 탓에 비통한 심정에 빠진다. 내가 이런 볼썽사나운 꼴을 보려고 올 4월 초 바쁜 시간을 쪼개 총선 사전투표소로 달려가 소중한 주권을 행사했던가 싶다. 후회와 자괴감이 밀려든다.
4·10 총선을 앞두고 22대 국회의 여야 간 정쟁은 충분히 예견된 바이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고 극단적인 진영 대결이 격렬하게 펼쳐진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역시 여소야대 속 거대 양당 구도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집권 여당의 무능 여파로 국민의힘 참패, 더불어민주당 압승으로 끝났다. 이로써 양당이 앞으로도 사사건건 충돌할 전망이었지만, 협치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새로운 인물을 많이 수혈한 22대 국회가 최악이라는 비판을 받은 21대와 달리 경제 살리기와 민생 안정에 힘쓰길 바랐던 민의여서다.
한데,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지난 5월 30일 새 국회가 개원한 지 불과 40여 일 만에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예전에 비해 더 극심한 여야 대치 국면이 빚어져 국회 정상화는 요원한 까닭이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앞세워 협치하는 정치다운 정치는 기대 난망이다. 21대보다 상황이 악화된 22대 국회를 보고 있자니 분노가 치민다. 벌써부터 국민 대부분의 시선은 싸늘하다. 1995년 고 이병철 삼성 회장한테서 4류로 지적된 정치권이 30년 가까이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혐오스럽다는 사람이 숱하다.
발단은 절대다수 의석의 힘에 도취해 당리당략을 밀어붙이는 민주당의 안하무인이다. 171석 거대 야당을 만든 건 지역구 1등만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소선구제이지 다수 국민의 지지가 아니다. 민주당 전체 총선 후보의 지역구 득표율은 50.45%에 그쳤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전폭적으로 지지한 국민을 받든다는 구실로 쟁점 법안들 입법을 단독으로 강행해 여권의 강한 반발을 산다. 민심을 왜곡했거나 잘못 읽은 처사다. 이에 국민의힘은 야권과 거친 비방과 막말을 주고받는 데 급급할 뿐 소통과 협의를 통해 절충점을 찾고 사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안 보인다. 정치력 부재와 무기력한 모양새가 한심하다. 결국 국회는 민생경제 논의는커녕 첨예한 대립으로 날을 새는 파행의 연속이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국회의원의 행태 또한 마뜩잖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등 4개 사건 재판을 받는 이재명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탄에 혈안이 돼 충성 경쟁을 벌인다. 이 전 대표 수사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가 대표적이다. 검사 탄핵 움직임이 판사들에게 부담을 줄 게 염려된다. 급기야 오는 19일, 26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 청문회를 열기로 하는 등 탄핵 정국으로 몰아가며 이성을 잃은 듯한 민주당 의원들에게서 중국 문화혁명기 홍위병의 무분별한 광기마저 느껴진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경우 23일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뽑을 대표직을 놓고 4명의 후보 편으로 나뉘어 이전투구로 치달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리멸렬한 당의 혁신과 민심 반영을 위한 전략과 비전은 찾기 힘들다. 그저 총선 책임론, 상대편 공격, ‘윤심(윤 대통령 의중) 팔이’로 난타전이 치열하다. 저급하게 좌충우돌하는 권력투쟁에 ‘김건희 여사 문자’ 공방까지 가세해 요지경이 따로 없을 정도다.
“우리 이럴 때가 아니다. 머리 맞대 민생을 안정시키자. 경제부터 살리자.” 온 국민이 원하는 이 같은 주장을 외치는 소신 있는 국회의원은 없는가. 300명이나 되는 선량이 죄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나. 고물가와 고금리에 밤잠을 설칠 만큼 고통받는 서민이 보이질 않는가. 내수 침체와 영업 부진에 시달리며 한계로 내몰린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의 아우성은 안 들리는가. 젊은이들이 먹고살기가 어려워 결혼과 출산에 엄두를 못 내고 인구절벽으로 나라가 망해 간다는데, 의원들은 도대체 무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뭣이 중한가?
제 역할을 팽개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소모적 다툼으로 길을 잃은 국회야말로 탄핵감이다.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에 부적격 사유가 생기면 주민투표를 거쳐 임기 중 해직시키는 주민소환제가 있다. 만일 국회에 적용이 가능하다면 당장 국회의원을 모조리 퇴진시키고픈 생각이 간절하다. 여야와 국회의원들은 총선 거리 유세에 나섰을 때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며 뭐라고 약속했는지 되뇌어 보길 바란다. 벌써 지역공약과 초심을 깡그리 잊었단 말인가? 변화 없이 퇴행의 정쟁을 일삼다간 역대 최악 국회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향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국민의 탄핵을 받을 것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2024-07-1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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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 겸허한 자세를
불과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1%까지 떨어졌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취임 후 최저치인 지지율이 나왔다. 응답자들이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로 고물가와 소통 미흡, 거부권 행사,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 등이 꼽혔다. 특히 대통령의 독단과 불통이 여전하다는 국민 인식이 매우 낮은 지지율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뤄진 같은 조사에선 윤 대통령 지지율이 21%에서 26%로 살짝 올랐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도는 지난달 말보다 2%포인트 하락한 27%로 나타났다. 국민의힘의 30%에 비해서도 3%포인트 낮다. 이 같은 수치는 민주당이 22대 국회 시작부터 절대다수 의석의 힘으로 상임위원회를 독식하고 쟁점 법안 입법화를 밀어붙이며 정쟁화하는 걸 국민들이 곱지 않게 바라보기 때문일 테다. 국민 상당수는 경제 발전과 민생 안정을 위해 국회 정상화와 여야 협치를 바라고 있다. 저조한 민주당 지지도를 이재명 대표 지지율로 봐도 무방하다. ‘이재명당’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이 대표 일극체제로 사당화한 민주당이어서다.
올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미국인 4명 중 1명, 즉 25%는 두 후보 모두에게 거부감을 느낀단다. 미국 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14일 발표한 조사 결과다. 대권을 다투는 두 사람 간 비방전이 갈수록 가열되면서 국민들의 반감을 키우는 탓이다. 윤 대통령과 민주당 이 대표는 어떨까. 필시 두 지도자를 다 싫어하는 우리나라 국민의 비중은 미국의 경우보다 훨씬 높지 싶다. 각각 30% 아래 바닥권인 윤 대통령 지지율과 민주당 지지도를 볼 때 이 같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택시기사와 자영업자, 직장인 같은 서민층한테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 모두 비호감이란 얘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오만하며 속이려 든다는 게 그 이유다. 주권자인 국민을 얕잡아 보거나 우습게 아는 듯한 두 권력자의 태도에 잔뜩 뿔난 사람이 많은 실정이다. 이는 윤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 리더십이 4·10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사실만 봐도 입증된다.
이달 들어 윤 대통령 지지율이 소폭 반등한 건 국정운영을 잘해서가 아니다. 거대 야당의 일방적 독주로 국회가 파국으로 치닫고 이 대표가 당내 권력을 독식하는 데 따른 반발 효과 덕택이란 분석에 무게가 기운다. 대통령이 “난 잘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착각이다. 그래선 안 된다. 대통령은 총선 참패 직후 민의를 존중한 변화와 국정 쇄신을 약속했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수많은 국민이 분노하거나 궁금하게 여기는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와 채 상병 사건 의혹 규명에 소극적이다. 인적 쇄신을 위한 개각도 당초보다 대상이 축소되고 시기마저 늦어지고 있어 실망감을 안긴다.
이 대표는 거만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다. 총선에서 선거 혁신을 희망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비위 인사를 포함한 부적격자와 친명계 후보를 대거 공천했다. 당선된 이들을 호위무사로 삼아 쌍방울 대북 송금,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등 자신이 관련된 사법 리스크를 막으려는 방탄 국회를 만드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과정에서 자기변명과 독선을 위해 검찰·법원뿐 아니라 언론을 공격하고 비하하는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당 대표 연임과 대권 도전을 노린 당헌 개정으로 견제와 균형 원칙도 허물어 버렸다. ‘여의도 대통령’이란 빗댄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권력의 정점에 선 두 지도자는 지지율이 형편없는 원인을 살펴볼 일이다. 문재인 정권이 안하무인식 ‘내로남불’로 일관하다 2년여 전 대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은 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두 달 넘도록 20%대에 머문다. 국정운영의 동력이 크게 떨어지고 추진하는 정책마다 불신을 사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달 3일 발표한 동해 유전 시추계획에 쏟아진 의구심, 19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내놓은 저출생 대책의 실효성 논란이 단적인 예다. 민주당 내부에선 고위 당직자의 “당의 아버지는 이재명”이란 도 넘은 아첨까지 등장했다. 사당화가 극에 달한 셈이다.
꽃이 피기는 힘들어도 지는 건 순식간이다. 권력의 맛에 도취해 초심을 잃고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면 나락의 길이 기다릴 뿐이다. 어렵게 오른 정상의 자리에서 겸손과 미담으로 인기를 더해 가는 트로트 가수 임영웅, 시건방진 처신으로 철창신세로 전락한 김호중 사례가 교훈이 될 만하다. 겸허한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협치와 사회통합에 힘쓰는 여야 최고 지도자. 이같이 달라진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대다수 국민의 소망이다. 이에 부응하는 게 민심을 얻는 길이다.
2024-06-2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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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출산과 거리 먼 1인 가구 전성시대
세간에서 자주 언급되는 분열(分裂)이라는 단어. 갈라지거나 찢어져 나뉜다는 뜻이다. 하나가 둘이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생산적이고 고무적인가. 세포 분열을 떠올리면 참으로 긍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분열의 역할은 생명을 유지하거나 종족을 늘리고 대를 잇는 데 필수불가결하다. 세포 분열은 생물체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한 개의 세포가 핵분열과 세포질 분열을 거쳐 두 개로 나눠지는 것을 일컫는다. 1835년 인류에게 처음 발견된 현상이다.
단세포 생물이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든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탄생부터 소멸에 이르는 과정에서 몸의 세포가 분열한다. 체세포 분열은 단세포 생물에게는 생식, 식물에 있어선 생장, 동물한테는 재생의 의미가 각각 있다. 정말 중요하고도 고마운 기능이다. 사람의 신체는 전체 세포 수가 평균 60조~100조 개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세포 분열로써 목숨을 유지하며 상처도 치유한다. 인체는 이를 위해 일생 동안 무려 1000조 회가량의 세포 분열이 이뤄진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맨 처음 맞닥뜨리는 곳이 가정이다. 가정은 한 가족이 의식주 활동을 공유하는 생활 공동체다. 나아가 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최소 단위다. 하나의 가구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세포 조직인 게다. 우리나라 가구는 전통적으로 한 쌍의 부부를 중심으로 3대 이상 세대나 가까운 친인척 등 대식구가 함께 사는 공동체인 경우가 많았다. 노동력이 대거 필요한 전형적인 농경 사회여서다. 산업화 시기에 취업과 결혼으로 독립하려는 구성원이 생기면 분가를 통해 가구 수가 증가하고, 시간이 흘러 식구가 늘면 또다시 분가가 반복되는 일이 통례였다. 세포가 정상적으로 계속 분열하며 수를 늘리듯이….
이어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 대가족의 분열이 심화한 핵가족화다. 부모와 미혼 자녀만 있는 소규모 가구, 즉 핵가족이 급증한 것이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 가계소득 증가에 힘입어 아파트와 빌라 같은 공동주택 보급이 늘고 주거환경이 좋아진 영향이 컸다. 핵가족이 바쁜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쉬운 데다 개인을 중시하는 일상과 이동하기에 용이한 점도 보편화한 이유다.
행정안전부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 가구 수는 약 2400만 세대에 달한다. 같은 달 기준 총인구 5128만여 명을 감안하면 1가구당 인원은 평균 2.14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지난달 1인 가구는 모두 1003만 911세대로, 전체 가구의 41.8%나 된다. ‘나 혼자 산다’는 집이 5가구 중 2가구꼴이란 얘기다. 이젠 핵가족 시대가 아니라 1인 가구 전성시대로 불러야 할 판이다. 590만여 세대인 2인 가구를 더하면 전체의 66.4%까지 치솟는다.
예전 가정의 분화는 세포 분열처럼 또 다른 생산적 가구를 만드는 발전의 단계라는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날로 비중이 높아지는 1~2인 가구는 미래를 책임질 신생아 출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들 가구에 극심한 청년 취업난과 주거난, 치열한 경쟁 탓에 결혼·출산을 포기하거나 사회와 담쌓고 은둔·고립형 삶에 빠진 젊은 층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독거노인 가구마저 적지 않은 실정이다.
더 쪼갤 수 없는 초미니 가구의 확산에 따라 국내 가정의 희망적인 세포 분열 행진은 사실상 끝난 셈이다. 혼밥, 혼술, 혼행(나 홀로 여행)까지 성행하는 마당이다. 이 같은 까닭에 부정적인 국가 지표는 넘쳐난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역대 최저인 0.72명에 이어 올해 0.68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돼 재앙과 다름없는 인구절벽 사태를 예고한다. 자살, 청년 사망, 노인 빈곤, 지역소멸 등의 지표 역시 세계 최악 수준이다. 가족 공동체 붕괴 속에 인구가 줄면서 늙어가는 국가의 미래가 암담해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 낀 5월 가정의 달 끝 무렵에 안타까움만 가득하다.
가정을 정상화하고 사회와 국가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비전을 키울 수는 없을까. 경제 살리기와 함께 1~2인 가구의 실상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책 마련,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 구축, 양질의 일자리 대거 창출, 고물가·고금리 타개 등 숙제가 산적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권이 당리당략을 앞세워 대립하고 격하게 충돌하는 불필요한 분열상을 당장 멈추는 게 급선무다. 초저출생 풍조에 따른 수도권과 지방의 공멸을 막으려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 협치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여야 지도자들이 민생과 경제를 최우선으로 삼고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극단적인 진영논리를 경계하며 국민 통합에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더욱 잘 사는 강소국 도약이냐, 중진국으로의 퇴보냐. 갈림길에서 현명한 결단이 절실하다.
2024-05-30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