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세상톡톡] 기자는 기도하는 직업
논설위원
"오늘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강력한 수사권도 없고
마감 시간에도 쫓기는
일개 기자인 저의 취재가
부디 최선이었기를…
사실에 부합했기를…."
언론중재법은 그냥 놔두자는 대통령의 언급 이후 주춤하긴 했지만 집권 여당은 여전히 언론 관련 법을 들여다 보며 손질을 모색 중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다 문득 트라우마 같은 민사소송 피소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개발행위를 비판하다 800억 원대 민사소송을 당했던 사내 선배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도 못 미치지만 소송 이후 기사 쓸 때마다 멈칫거리던 경험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 트라우마였다.
사회부 경찰기자로서 매일 경찰서의 사건과 사고를 챙기는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 경찰서를 방문해 각 과를 돌며 오전 일과를 마무리지으려던 오전 9시 30분께. 평소 알고 지내던 한 경찰이 지나가며 한마디를 던진다. “어제 저녁에 모 국회의원이 수사과에 온 모양이던데요.”
총선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시점에 지역 국회의원이 수사과에 조사받으러 온 것은 당연히 큰 뉴스지만 순간 기자는 망설인다. 당시 석간이었던 〈부산일보〉의 기사 마감 최후 마지노선은 오전 10시 30분께. 1시간 남짓 시간 안에 취재가 가능할 것인가. 내일로 미루는 것이 더 낫지 않나. 그러는 사이 다른 기자가 낌새를 채지는 않을까.
10초도 안 되는 순간 숱한 고민이 머리 속을 오간 끝에 결국 당일 취재 송고를 결정한 기자. 뛰다시피해 달려들어간 수사과에서는 해당 의원이 다녀 간 사실만 인정할 뿐 혐의 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그렇게 시작해 경찰서 내 간부들에게까지 크로스체크를 하며 진행된 좌충우돌 취재는 1시간 만에 겨우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건의 윤곽을 밝히는 데 이르렀다. 모자라는 취재를 보충하려고 부산지검에 선을 넣어 검찰이 입건 장부에 해당 사건 번호를 부여한 사실까지 확인한 뒤 급히 ‘모 국회의원 선거법 위반 혐의 입건’ 내용으로 기사를 송고했다.
그렇게 시간에 쫓기며 어렵사리 송고한 기사의 결과가 해당 국회의원으로부터의 민사소송 피소였다. 이유는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 짧은 취재 시간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기자는 기사를 ‘허위사실’이라 규정한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해당 국회의원은 보도 시점에는 경찰 조서에 본인이 아직 날인하지 않았기에 입건이라 표현한 것은 중과실로 인한 허위라 주장했다. 그런 이유로 기자는 50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민사소송 피고가 됐다.
상식적으로 검찰 입건 장부에까지 번호가 올라간 사건에 대해 입건 여부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일단 제기된 민사소송은 1년 가까이 진행됐다. 결국 승소를 했지만 그 사이 가슴에 돌 하나를 올려놓은 듯한 고통이 남긴 생채기는 깊었다.
민주당이 한때 고려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다. 악의나 고의에 의한 허위·조작 보도는 반드시 근절해야 할 사회악이다. 프레임을 짜놓고 거기에 퍼즐을 맞추듯 사실을 왜곡하는 보도는 신문이든 방송이든 유튜브든 매체를 가리지 않고 최대한 엄히 다스려야 옳다. 하지만 민주당은 악의나 고의 없이 중과실만으로도 징벌적 배상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려 했다. 심지어 공인에 해당하는 정치인과 공직자 뿐만 아니라 대기업까지도 언론을 상대로 징벌적 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며 법 적용 대상 범위를 최대한 넓히려 했다.
기자가 보도한 기사의 당사자인 국회의원은 기사의 가장 지엽말단적인 부분을 문제 삼아 중과실로 인한 허위 보도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공인인 국회의원의 형사사건 입건 사실 보도조차 이처럼 얼마든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만약 팩트의 진실을 다투는 사안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최근 들어서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안조차 혐의를 부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경우 팩트를 다투는 보도는 거의 100% 중과실로 인한 허위사실 보도 논란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매일 피가 마르는 마감으로 인해 취재 시간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게 기자의 숙명이다. 거기에다 검찰이나 경찰처럼 수사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니 취재가 수사를 앞서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진 언론의 순기능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취재로 진실임을 신뢰할 근거가 있을 때 법적으로 면책을 해주는 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장치로도 보호를 받기가 점점 어려워질 듯하다.
수습기자 시절 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검사처럼 강력한 수사권도 없고 교수처럼 충분한 시간도 없는 너희들이 해야 할 건 기도다. 제한된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취재하고 기사를 쓴 뒤 사실에 부합했기를 기도하라는 말이다.”
앞으로 그런 기도조차 통하지 않게 되는 현실이 도래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