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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시선] 인구 변화와 도시의 미래
2023년 영국 남자 신생아 이름 중 ‘무함마드’(Muhammad)가 가장 많았다. 무슬림 이민 가정이 선호하는 ‘무함마드’는 ‘노아’ ‘올리버’ ‘조지’와 10년째 선두 경쟁 중인데 2022년 2위에서 이듬해 1위에 오른 것이다. 다산을 선호하는 이민자가 전체 출생률에 무시하지 못할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 이 현상은 독일도 마찬가지다. 2023년 태어난 신생아 중 무려 27.8%가 이민자 가정에서 나왔다. 2016년 통계를 보면 독일인 여성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당 기대 출생아 수)은 1.45명에 불과했으나 이민 여성이 1.95명이었던 덕분에 평균이 올라가 합계출산율 1.59명을 기록했다.
유럽은 인구 위기에 선방하는 사례로 꼽힌다. 2023년 독일의 합계출산율은 1.35, 영국은 1.44, 프랑스는 1.68이었다. 히지만 이민자 변수를 감안해야 유의미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즉, 저개발 국가의 젊은이들은 교육과 일자리의 기회가 있는 선진국으로 몰리고, 늙어 가는 선진국은 젊은 피 수혈을 통해 성장 동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민자 유입이 없었다면 ‘합계출산율 1명’의 저지선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
통계청의 지난달 26일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2024년 합계출산율은 0.75명이다. ‘찔끔’이긴 하지만 전년 대비 0.03명 증가했다. 부산(0.68명)과 서울(0.58명)은 특별·광역시 중 가장 낮았지만 역시 하락세를 멈추고 반전했다. 하지만 한국은 선진국에 비춰 보면 여전히 ‘국가 소멸’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지면 인구 반토막이 기정사실화되기 때문이다.
유럽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젊은 세대의 구직 행렬은 인구 구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도 유사 사례가 보인다. 2024년 출생 통계에서 경기도 화성시(1.01명)와 평택시(1.0명)는 일자리와 도시 성장의 상관관계를 실증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화성은 2년 연속 인구 100만 명을 넘겨 올해 특례시로 승격했다. 인구 유출이 심화되면서 지난해 인구 110만 명선이 무너진 울산(0.86명)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첨단 미래 산업과 전통 제조업의 대비이기도 하다.
일자리를 찾아 젊은층이 몰리는 도시는 성장 가도를 달리지만 노인만 남은 도시는 쇠락 일로를 걷는다. 인구 구조 변화로 도시의 미래를 읽는다면 화성·평택과 울산은 양극단에 서 있다.
■ 일자리, 청년 세대, 출생률 선순환
서울 수서에서 경기도 평택으로 이어지는 고속철도 SRT 라인은 약동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전자, 현대모비스 등 굴지의 대기업 공장과 연구 시설이 평택과 용인, 화성에 들어서면서 일대는 상전벽해를 거듭했다. 용인은 꾸준히 인구가 늘어 109만 명으로 울산을 곧 제칠 기세다. 특히 화성의 성장은 눈부시다. 인구 19만 명의 화성군이 2001년 3월 화성시로 승격된 지 23년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하며 폭풍 성장했다.
비결은 일자리다. 화성 내 22개 산업단지에 반도체·자동차·바이오 등 첨단 미래 분야 2만 7000여 개 기업이 입주해 끊임없이 젊은 인재를 빨아들인다. 동탄신도시 등에 정주 여건이 갖춰지고 수도권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철도·도로 등 도시 기반 시설이 조성된 것도 한몫했다. 고임금 정규직 일자리를 찾는 전국의 취업 희망자들에 선망의 지역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 덕분에 주민 평균 연령은 39.3세로 낮아졌다.
2021년 기준 화성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91조 417억 원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1위였다. 울산의 79조 7620억 원보다 높고 부산(106조 5100억 원)을 바싹 추격할 정도로 큰 경제권으로 부상했다. 반도체 벨트 조성 등 대기업의 투자 확대도 예정되어 있으니 취업자는 더 몰릴 전망이다. 일자리와 청년 세대, 출생률이 서로 원인과 결과가 되어 선순환되면서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농촌 지역이었던 화성은 20년 만에 전국에서 가장 젊고 활기찬 대도시로 성장했다.
■ 청년이 살기 힘든 도시
1인당 GRDP 전국 1위, 중산층 노동자 도시…. ‘대한민국 산업수도’라는 자부심 깃든 울산의 수식어는 이제 옛말이 됐다.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지만 알짜배기가 빠져나가면서 울산은 갈수록 기력을 잃고 있다. 주요 대기업이 연구소와 엔지니어링 센터를 고급 인재 유치에 유리한 수도권으로 이전한 탓에 생산 기지로 전락한 것이다.
지난해 발간된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대기업 주력 부문이 떠난 울산에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 도시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진단했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만 남은 지역에서 버틸 수 없는 청년 세대의 수도권 유출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청년이 떠나고 고령자만 남게 되니 도시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울산은 좋은 일자리 덕분에 인재가 유입돼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좋은 일자리에 인재를 빼앗기는 신세가 되면서 쇠락하고 있다.
■ 일자리, 도시 흥망 좌우
대도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 분야 일자리가 필수다. 미국의 노동경제학자 엔리코 모레티는 일자리를 매개로 도시의 성장과 쇠퇴를 연구했다. 모레티가 주목한 건 ‘승수 효과’와 도시 불균등 발전이다. 소프트웨어, 생명공학, 에너지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일자리가 1개 생기면 전문 및 비숙련 서비스 일자리 5개가 파생되는 ‘승수 효과’ 덕분에 도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첨단 산업이 특정 대도시에 집중되면서 도시 사이에 경제적 격차가 커지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보스턴, 시애틀은 첨단 산업 덕분에 인재가 몰리고 번성하지만,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등 전통 제조업 중심 도시가 쇠퇴한 이유다.
화성·평택의 급성장이 설명되는 대목이다. 통계청의 ‘시군구 취업자수’ 통계를 보면 화성·평택에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일자리다. 화성의 2013년 상반기 취업자 수는 27만 3000명이었는데 2024년 상반기에 54만 7000명으로 곱절 증가했다. 평택도 21만 4000명에서 33만 7000명으로 큰 폭으로 성장했다. 일자리가 젊은 세대를 부르고 출생률도 높여 결국 도시의 활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확연하다. 일자리와 도시의 흥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 부산,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가려면
한국고용정보원 통계에 따르면 부산 청년 인구(15~29세) 비중은 2014년 6.69%에서 2023년 5.95%로 10년 내리 쪼그라들었다. 전국 17개 시도 중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청년이 살고 싶은 도시’ 구호가 참담한 대목이다. 부산이 광역시 최초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유일하게 ‘소멸 위험’ 경고를 받은 상황과 동전의 양면이다.
부산의 미래 전략에 대한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글로벌 허브도시의 미래상은 첨단산업이 번성하고 청년 세대가 꿈을 펼치는 곳이다. ‘부산형 판교 테크노밸리’라는 청사진으로 추진되는 센텀2지구 도시첨단산업단지를 비롯해 부산이 전통 산업 대신 미래형 산업 유치에 적극 나서는 까닭이기도 하다.
부산은 화성·평택의 길을 지향하지만 발 딛고 있는 현실은 울산과 판박이다. 부산이 미래를 기약하려면 첨단 미래 기술 중심의 산업 구조 혁신을 이끌어 내야 하고 그 결과는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 부산은 소멸과 지속 가능한 도시의 갈림길에 서 있다. 길잡이는 일자리다. -끝-
2025-03-1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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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시선] 고개 드는 개헌론, 화두는 ‘분권’
1987년 이후 없었던 개헌은 한국 정치의 숙명적 과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치계, 학계,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미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은 지난해 연말부터 ‘87년 체제’가 시효를 다했다는 인식은 널리 퍼졌다. 개헌의 필요성을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변곡점의 시기. 개헌 논의의 방향성을 위해 개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피고자 한다.
■9번 중 5번이 정권 연장용
한국에서 이뤄진 개헌은 좋지 않은 기억이 대부분이다. 1948년 제헌헌법 제정 이후 9차례의 개헌이 있었는데, 이 중 5차례가 정권 장악 또는 정권 연장이라는 불순한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1954년 2차 개헌이 그늘진 헌정사의 시작이다. 투표 결과 개헌에 필요한 표가 딱 1표 모자라자 집권 여당이 ‘사사오입’이라는 기상천외의 방법으로 부결을 의결로 뒤집었다. 1969년 6차 개헌은 ‘3선 개헌’으로 유명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3번째 연임이 가능하도록 헌법 규정을 바꾸기 위해 여당이 국회 본회의장이 아닌 별관으로 옮겨 날치기 통과 기술을 선보인 게 바로 그때다. 1972년 7차 개헌은 유신헌법의 선포였다. 개헌 작업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헌정사상 처음으로 공론화 과정이 생략됐다. 정체불명의 체육관 선거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99%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낳았다.
1980년 신군부가 체육관 선거를 모방한 8차 개헌은 유신헌법의 아류였다. 개헌을 논의할 국회가 존재하지 않았던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행정·입법권을 장악한 국가재건최고회의와 국가보위대책회의라는 불법조직이 개헌 작업을 도맡았기 때문.
개헌 역사의 대부분은 어둠으로 가득했지만, 1980년대 두 차례의 개헌은 달랐다. 1980년 봄의 개헌 논의는 민주적인 대통령을 선출하는 문제와 함께 대통령 권한에 대한 견제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대통령 직선제와 4년 중임제 방안이 그때 나왔다. 안타깝게도 이런 노력들은 신군부 집권으로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1986년 개헌 논의는 국민과 야당의 거센 요구가 정부 여당을 견인해 낸 결과다. 1987년 9차 개헌은 군부독재 종식과 형식적 민주 체제의 구축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당시 분출했던 다양한 의견들을 흡수하지 못한 한계도 분명하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우리 헌법은 동면 상태다.
■협력·견제를 통한 민주적 공동체로
‘87년 헌법’은 민주항쟁의 결실이지만 군사정권 시절의 잔재도 섞여 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게 국가원수 자격을 부여하고 계엄 선포권과 주요 인사 임명권, 법률안 재의요구권과 제출권 등 막강한 권한을 몰아준 게 대표적이다. 집중된 권력이 무능과 부패를 만날 때 어떤 참담한 결과를 낳는지 국민들은 똑똑히 보았다. 계엄·내란 사태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국정 운영의 민주성을 해치고 국민의 삶과 미래를 옥죈 권력 남용의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향후 개헌의 화두가 ‘분권’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권은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권력과 역할을 분산하고 협력과 견제를 통해 민주적 국가 공동체를 만들자는 의미다. 그런데 개헌은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매번 좌초되곤 했다. 현실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역할 축소 문제를 먼저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가 권력구조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대통령제와 의회제(의원내각제), 이를 절충하는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권력구조에 따라 여러 가지 세부적인 선택지가 있다. 권력구조를 먼저 결정하고 대통령 임기나 중임 여부를 논의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향이라는 뜻이다.
각각의 권력구조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제를 유지했을 때의 위험성과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했을 때의 위험성을 심도 있게 비교·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의 경우 우리가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대통령제의 폐해 때문에 마냥 좋은 면만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귀 기울일 만하다.
대통령제 자체보다 5년 단임제의 부작용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5년 단임 대통령제는 급히 만든 87년 헌법안의 결함인데, 전 세계적으로도 희소하다.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총선이 여소야대 현상을 빚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방분권 개헌은 시대적 과제
분권 개헌의 의미는 대통령 권한의 분산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지방분권까지 포함한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하고 1995년 민선 1기 지방자치단체가 출범했지만 지방자치 관련 내용이 헌법에 반영된 적은 없다. 현행 헌법의 관련 조항은 제117조와 118조가 전부다. 그마저도 정부의 법률이나 법령에 따라야 한다는 규정이 사실상 지방자치의 손발을 묶고 있다. 이 규정을 바꿔 지방정부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나아가 실질적 지방자치와 분권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적 보장이 강화돼야 한다.
지금 수도권 일극주의와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는 근본적 한계에 직면했다. 지방분권형 개헌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드는 최선의 해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이 독자적으로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입법·행정과 세입·세출 권한까지 갖는 실질적 권한이다. 제헌국회 당시, 수도권과 비수도권 의원 비율은 19.5% 대 80.5%. 제22대 국회에서는 56% 대 44%로 완전히 역전돼 있다. 중앙집중 현상이 얼마나 심화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다. 헌법에 국가균형발전 규정을 만들고 지방분권 확보를 위한 지역 대표형 상원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지방분권 확립은 재정분권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총조세 중 국세와 지방세 비중은 2023년 기준으로 각각 75.4%와 24.6%. 지방은 여전히 막대한 재원을 중앙에 의존한다. 스위스(54.9%), 캐나다(54.8%), 독일(53.7%), 미국(41.6%), 일본(37.5%) 등 주요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은 지방세 비중을 높여야 한다.
개헌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탄핵 정국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개헌에 소극적인 입장이고, 국민의힘은 개헌을 국면 전환용으로 활용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치 논리가 개입하면 개헌은 또다시 기회를 잃게 된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국가 내부 갈등과 대립은 커지고 국가 경쟁력은 약화될 게 뻔하다. 지역의 경쟁력 회복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 시스템 전반의 과감한 개혁이 ‘분권 개헌’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2025-02-19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