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철의 사리 분별] 지역 살릴 마지막 골든타임, 진심이 필요하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효율성 앞세운 성장에 수도권 일극화
국토 불균형·지역소멸 등 부작용 심화

방치하면 양극화에 황폐화 미래 없어
절체절명 위기 상황 좌고우면 안 돼

하지만 가덕신공항 개항 6년 지연 등
안일한 정책 대통령·정부 불신만 유발

서울 등 수도권 면적은 우리 국토 11.8%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구와 자본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특히 좋은 일자리 대부분이 수도권에 밀집하면서 지역 청년 유출 현상은 심각한 상황이다.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인구를 빨아들이면서 지역의 상당수는 소멸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1982년 수도권 과밀화를 막기 위한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시작으로 다양한 지역 균형발전 정책들이 추진됐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4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해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하는 등 균형발전을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있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수도권과 지역 격차는 되레 더 커졌고, 기형적으로 과밀화된 수도권이 국가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에 앞서 1948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시작으로 13명이 국정을 이끌었다. 역대 정권의 최우선 목표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업화 기틀을 닦거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치중했다. 당시 수도권 집중화는 짧은 시간에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으로 받아들여졌다. 선택과 집중으로 효율성을 높여 나름의 결과를 도출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후에도 선택과 집중, 효율성을 앞세운 단기적 시각의 국정 운영이 당연시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 시간은 흘렀고 수도권 일극주의는 고착됐다. 우리는 먹고살 만해진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도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초석을 쌓고 씨앗을 뿌리는 데 무신경했다. 이제 지역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 집권 기간은 수도권 일극주의를 타파해 국토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에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이식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수도권과 지역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불러온 지역 황폐화 문제에 대한 신속한 처방과 장기적 정책 추진이 절실하다.

이 대통령은 최근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기조연설과 중앙지방협력회의 등을 통해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다양한 계획을 밝혔다. 우선 국회 기조연설에서 ‘지방 우선, 지방 우대’ 원칙을 강조했다. 지방 자율재정 예산 규모를 3조 8000억 원가량에서 약 10조 6000억 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려 자율성을 대폭 확대했다고도 설명했다. 지난 12일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는 수도권 일극 체제 개선과 지방자치 확대를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지방재정 분권 확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등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밝힌 지역소멸 대책 등 균형발전 계획은 현재까지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그렇지만 정권 교체 여부에 흔들리지 않는 초장기적 국정과제로 자리매김시키려면 추가적인 제도적 장치는 물론 이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흔들림 없는 문제 해결 의지가 필요하다.

현재 지구촌 대다수 나라들도 지역소멸이라는 난제에 봉착했다. 이런 가운데도 문제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한 다른 나라들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 미테랑 전 대통령은 1981년 취임하자마자 프랑스 최초의 지방분권법 ‘드페르법’ 제정을 추진했다. 법안이 통과되면서 전체 예산 13%에 불과했던 지방정부 예산은 22%까지 증가했다. 지방정부 투자가 늘면서 지방 고용률도 급증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가장 혁명적인 정책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2019년 스페인에서는 지역소멸 등 ‘영토 불균형’ 문제를 치유하겠다는 기치를 내 건 ‘테루엘 엑시스테’라는 정당이 상원과 하원에 진출, 지역 정당 연쇄 창당을 이끌어냈다. 일본은 〈부산일보〉가 최근 기획 보도한 ‘지역소멸 대안, 원격근무’ 시리즈의 지적처럼 지역에 대기업 원격근무 직원을 채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 조성하고 있다. 홋카이도 기타미시, 후쿠시마현 아이즈시,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초 등 원격 근무 활성화에 나선 도시에는 다양한 전문 기술을 가진 인력들이 몰려들고 있다. 캐나다 레라블 자치구의 경우엔 녹지인 그린존에 집을 짓도록 허용하는 ‘농지 59’라는 파격적인 정책을 도입했다.

그렇다면 다양한 지역 균형발전과 지역소멸 해소 정책 시행에 앞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안의 위중함을 깨달아야 문제를 진심으로 대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다른 나라들의 사례도 정확한 사태 인식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심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가장 절실한 가덕신공항 개항 목표를 당초 2029년 12월에서 최근 2035년으로 6년이나 늦춘 점 등은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인식 자체가 부재하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나아가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이 대통령의 공언이 진심인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우리는 지금 지역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을 지나고 있다. 허우적대는 지역을 보고 더 이상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