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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곰곰 생각] 트럼프 관세 전쟁, 공황의 그림자
“미국인들은 느려 터져서 생산성이 떨어져요.”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이 문을 닫자 대규모 실직 사태가 발생한다. 다행히 중국 푸바오그룹이 공장을 인수해 재고용하자 지역 사회는 활기를 되찾는다. 한데, 중국 관리자들은 미국인의 굼뜬 일머리에 속이 터진다. 반면 미국인들은 중국식 근면과 규율, 업무 강도, 그 결과인 높은 생산성에 충격을 받는다. 급기야 미국 직원들은 노조를 결성해 대항하려 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2019년)는 미국에 진출한 중국계 기업이 겪는 문화 충돌이 주제다. 이 다큐를 본 기업인이라면 미국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돈으로 건물을 짓고 장비는 들일 수 있으나 일하는 문화까지 살 수는 없다.
‘무역 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 쉽다.’(Trade wars are good, and easy to win.) 2018년 3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트윗은 관세 폭탄의 예고편이었다. 트럼프 1기 때는 중국만 두들겨 팼지만 2기에는 동맹국도 가차없다.
우아한 외교 수사는 사라지고 무쇠 주먹만 휘두르는 낯선 미국의 이면에는 제조업 붕괴가 있다. 1960년대 제조업은 국내 총생산(GDP)의 25%였는데 최근 11%로 떨어졌다. 생산력이 몰락하고 기생적 금융자본주의만 번성하는 이상한 나라가 됐다. 제조업 일자리 하나는 비제조업 분야에 3.4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2000년 이후 제조업 일자리가 500만 개 이상 사라졌고 후방 효과로 비제조업 실업자까지 쏟아져 미국 사회가 입은 내상은 심각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는 ‘미국인 다시 취업하기’ 캠페인인 셈이다.
트럼프 관세 전쟁의 본질은 ‘일자리 빼앗기’다. 밥그릇 앞에 이념도, 동맹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5일 의회에서 인도, 중국, 한국을 부당 관세 국가로 콕 집어 지목한 뒤 “우방이든 적국이든 똑같다”고 선언한 배경이다. 이날 연설의 핵심은 “미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지 않으면 더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였다.
반도체는 상징적인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대만과 한국이 반도체를 ‘훔쳐갔다’는 표현까지 썼다. 미국에서 탄생한 반도체가 일본을 거쳐 한국과 대만으로 옮아간 과정은 자연스럽다. 한국과 대만은 적정 임금에 24시간 공정을 지탱하는 노동력 공급이 가능했다. 미국에서 불가능해졌기에 아시아로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가 전략 물자로 부상하자 ‘미국에서 태어난 기술이니 도로 내놔라’는 억지가 시작됐다. 실제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대만의 TSMC의 팔을 비틀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게 해 놓고 정권이 바뀌자 약속했던 보조금은 안면몰수할 기색이다.
트럼프의 목표는 제조업 회생, 즉 일자리 창출이다. 그 수단이 관세다. 관세는 제품 가격에 흡수되어 미국 소비자에 전가된다. 캐나다가 미국의 25% 관세에 맞서 미국에 수출하는 전기에 25% 수출세를 부과한다고 엄포를 놓았는데, 이는 가구당 월 100달러(우리 돈 15만 원)의 생활비를 증가시킨다. 물가 앙등이 촉발한 경기 침체의 위기 경고가 미국 내에서도 나오는 이유다.
미국이 상호 관세를 부과하고 세계 각국이 맞대응하면 물가 앙등, 무역 감소, 경기 침체는 필연적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를 넘어 대공황까지 우려한다. 1930년대 세계 경제를 붕괴시킨 대공황과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당시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목으로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해 최고 60% 관세를 매겼다. 다른 국가들이 보복 관세로 맞선 결과 세계 무역은 65% 감소했다.
10일 미국 주식 시장이 폭락했는데 이유는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우리가 엄청난 일을 하는 중인데, 과도기가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경기 침체를 감수하겠다는 의지 표명이 불안 심리에 불을 질렀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을 ‘거래의 기술’로만 이해하는 건 금물이다. 트럼프에 있어 ‘엄청난 일’은 산업 구조의 근본적 개혁이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어서 관세 폭탄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임기 4년의 트럼프가 무서워 미국에 공장을 지을 턱이 없다. 12일 유럽연합이 최대 50%의 보복 관세로 반격한 것은 준비된 선전 포고다. 글로벌 경기 침체는 불가피하고 벌써 대공황의 그림자까지 어른거린다. 내수 비중이 높으면 그나마 버티겠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데다 대미 흑자가 큰 한국은 시계제로다. 트럼프의 호언장담과 달리 ‘무역 전쟁은 나쁘고 이기기도 쉽지 않다.’ 승자 없이 모두가 패자가 될 뿐인 이 무역 전쟁을 피할 길이 없는 처지가 참담하다. 한국은 최악 시나리오를 각오해야 한다.
2025-03-1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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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곰곰 생각] 부산 교육, 감원 아닌 결원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가 올해 초·중등 교사 정원 2232명을 감축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학령 인구의 감소에 대비한 ‘중장기 교원 수급 계획’에 따른 것이다. 저출생 여파로 교사 감원이 시작된 게 10년이 넘었다. 정원 축소가 발표되면 그때마다 교원단체와 교사들이 교육의 질 하락을 우려하며 반대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출생 통계를 보면 취학생 급감은 기정사실이다. 따라서 교사 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2017년생은 35만 7771명이었는데, 2023년생은 23만 28명으로 35.7% 감소했다. 부산 초등 교사 수는 지난해 7480명에서 올해 7380명으로 100명 줄었다. 중등 교사 수는 6806명에서 6691명으로 115명 감소했다. 내년에도 각각 100명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과 교사 수를 단순 비례해서 조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맞선다. 교육부의 ‘교사 1인당 학생 수’ 기준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학교나 학급 수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신도시 내 학교 신설이나, 고교학점제에 따른 분반 수업 등 각 수업 현장에서 교사가 더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부산 금정구와 동래구 소재 인접한 세 곳의 초등학교를 보면 일률적인 정원 관리가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초등은 지난해 인근 신축 아파트 학생 수요 예측이 어긋나 낭패를 봤다. 모듈러 교실을 증축하고 22명의 기간제 교사까지 고용했지만 입주 지연과 전입 미달로 추가 편성한 학급 정원은 15명에 못 미쳤다. 재학생은 한 학급에 27명씩 빽빽하게 배정해 놓고 새 학급을 신설했다가 허를 찔린 것이다.
인접한 B초등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 학급 정원이 30명까지 치솟는 과밀 학급으로 변했다. 반면 주택가를 끼고 있는 C초등은 한 학년에 한 학급씩으로 줄어 교사 정원도 대폭 줄었다. 이 경우 소수의 교사가 수업 외 학교 업무까지 부담해 교사들 사이에 기피 1순위다.
부산 교사 감원 문제를 한층 심각하게 만드는 해묵은 고질병이 하나 있다. 정규 교사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는 결원 비율이 전국 최고인 점이다. 부산 공립학교 증등 교사의 지난해 결원은 1270여 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17.64%였다. 전국 평균 6.6%의 세 배에 가깝고, 후순위인 서울, 인천, 광주가 8%대인 점에서 부산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문제는 병가나 휴직으로 인한 일시적 결원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정년·명예퇴직으로 빈자리가 발생해도 채용을 하지 않아 결원율이 전국 최고가 된 것이다.
부산의 D고는 올 신학기에 23명의 교사를 받는데, 이 중 타 학교에서 전입되는 교사는 7명뿐이고 나머지는 신규 임용 6명, ‘미배치’ 10명이다. ‘미배치’란 부산시교육청이 채용하지 않고 결원으로 관리하는 정원이다. 해당 학교가 기간제 교사를 선발해야 된다. 예컨대 국어 교사 정원은 7명인데 정교사가 3명만 배정되면 나머지 4명이 계약직 자리다. 기간제 교사의 비중이 늘면 수업 시수나 담임 배정 등에서 크고 작은 신경전이 벌어진다.
여기에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다양한 분반 수업이 추가 개설되면서 교사 부족은 도돌이표가 된다. 교사가 원적 학교를 두고 여러 학교를 순회하거나, 시간 강사 전담 등 수업 운영 방식이 예전처럼 단선적이지 않다는 게 교사들의 지적이다.
부산시교육청은 정원을 채우지 않은 채 결원을 유지하는 고육책을 택한 이유를 극심한 저출생 탓으로 설명한다. 지금 부산 고교생 한 학년이 2만 4000명 전후인데 초등생은 1만 4000명 전후로 뚝 떨어진다. 부산의 출생률이 획기적으로 반등하지 않는 한 20년 뒤에는 초미니 학교가 늘고 교사는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교육청은 결원을 유지하는 대신 정원 외 기간제 교사와 시간 강사 예산을 확보해 일선 학교를 지원한다는 계획이지만 현장과의 괴리감은 어쩔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구 추이에 따른 합리적인 수준의 교사 감원은 설득과 공감의 영역이다. 하지만 부산은 감원되는 와중에 결원도 늘어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유독 부산에서 왜 이 문제가 방치됐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작금의 교육감 재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자들에게도 묻고 싶다. 전국 최고 비율의 교사 결원 유지가 부산의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교육 환경인가. 20년 후 취학 인구 감소에 대비한다고 지금 세대의 공교육 내실화는 소홀해도 되는가. 현장의 문제의식과 정책적 판단 사이에서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을 수는 없나.
부산 교육계의 고질병인 교사 결원 문제에 대한 지역의 공론화가 필요하다.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이 부산의 교육 대계를 세우는 길이다.
2025-02-1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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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곰곰 생각] '강한 달러'의 명암으로 본 트럼프 2기
미국은 점점 이상한 나라가 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 실패에 불복해 지지자들을 부추겨 국회 의사당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2021년 1월 유혈 사태 가담자 1200명 이상이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헌정 유린을 선동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에 재도전해 중임에 성공하자 폭동 가담자를 애국자로 부르며 대규모 사면을 예고해 논란이 거세다.
트럼프 2기는 고율 관세로 ‘퍼펙트 스톰’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중국산에 60%, 나머지는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한다는 공약이 논란이다. 게다가 뜬금없이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를 합병한다며 군대 투입까지 경고하는 대목에 전 세계는 경악한다. 트럼프 재선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조종을 울린 것이다.
미국은 기술 강대국이지만 제조 약소국이다. 생산력이 몰락했다. 미국 스스로도 이상한 나라가 되어버린 것을 잘 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미국 제조업, 방위산업 기반과 공급망 회복력 평가’를 수행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2017년 제출된 보고서는 암울하다. ‘2000년 이후 6만 곳 이상의 공장과 기업이 문을 닫았고, 제조업에서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2020년 미국 제조업 부문의 GDP(국내총생산)는 2조 1580억 달러였는데 서비스 부문은 6배 많은 13조 1000억 달러였다. 미국 중산층은 FIRE(Finance, Insurance, Real Estate), 즉 금융과 부동산에서 부를 창출한다. 땀 흘려 돈을 버는 일자리는 사라졌다.
원인은 국내보다 해외에 더 많이 유통되는 기축 통화 달러다. 미국은 달러를 마음껏 찍어 값싸게 상품을 수입하고 과소비 시대를 구가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달러를 사들여 미국의 파티 비용을 대납하는 꼴이었다. 이 구조가 미국의 발등을 찍었다.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고 탈제조업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미국이 국제 질서를 쥐락펴락하는 힘이 압도적인 군사력에 뒷받침된 건 맞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장에 파병하지 않는 것처럼, 트럼프 1기 때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주장해 관철한 것처럼 미국은 피를 흘리는 전쟁에 지쳤다. 그 대신 효과적인 대체 수단을 찾았다. 달러가 ‘종이 군대’가 된 것이다. 달러 흐름을 차단하면 지구 반대편 눈엣가시들이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걸 깨닫게 된 계기는 북한 비자금이었다. 2006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의 북한 계좌 동결은 ‘신의 한 수’였다. 북한이 강력 반발하면서도 돈을 찾기 위해 읍소하는 걸 보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상대편의 무릎을 꿇리는 달러 제재의 위력을 발견했다.
결정적인 전기는 2022년 경제 규모 세계 11위 러시아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퇴출이다. ‘달러 무기화’로 명명된 이 사건 이후 미국은 무수히 많은 러시아 기업과 개인을 금융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러시아가 수출 대금을 달러로 받지 못하면 경제는 망가지고 국민은 고통을 겪는다. 이란, 북한, 베네수엘라도 달러 제국에서 쫓겨난 뒤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작성한 수천 건의 제재 리스트는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달러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전 세계에 적용된다. 동맹국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경남 김해의 한 기업이 미국산 기계와 부품을 러시아에 수출했다가 된통 혼났다. 미국은 은행을 경유하는 모든 거래를 손바닥처럼 들여다 보고 위반 때는 가차없이 징벌한다. ‘달러 무기화’의 배경에 유엔(UN)의 무력화도 있다. 유엔 상임이사국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한 유엔 제재가 불가능해졌으니 미국이 독자적인 ‘제재 전쟁’에 나선 것이다.
물론 달러 제국에 대한 도전도 끊임 없다. 영국·독일·프랑스가 미국의 이란 제재를 우회하는 유럽연합 내 은행 거래를 시도했다가 거액의 벌금에 좌절한 게 대표적이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결제 수단 ‘페트로’도 쓴맛을 봐야 했다. 하지만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협력이 ‘페트로 달러’에 파열구를 낼 지 주목되고, 러시아, 중국, 브라질, 인도가 참가하는 브릭스도 달러 타도에 절치부심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의 제조업·일자리 붕괴는 소위 ‘킹 달러’의 부작용이고, 고율 관세는 이를 타개하려는 극약 처방이다. 강한 달러는 미국에 골병을 안겼지만 밖으로는 무자비한 제재를 휘두를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이 모순적인 구조는 달러가 안전 자산으로 여겨질 때만 지속 가능하다.
오는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다. 전 세계는 더 이상해진 미국을 목도하고 점점 더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미국이 주도했던 이념과 가치를 스스로가 허물고 일방주의로 치닫기 때문이다. ‘전능한 달러’에 대한 의구심과 도전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달러 제국의 아성은 지켜질 수 있을까. 트럼프 2.0 시대가 던지는 질문이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2025-01-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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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곰곰 생각] 대통령, '국가 원수'에서 내려와야
러시아, 헝가리, 튀르키예. 21세기 들어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권위주의 체제가 확립된 나라들이다.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영구 집권을 위한 개헌까지 강행한 끝에 18년째 장기 독재 중이다. 그는 지극히 형용 모순적인 ‘비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라는 개념을 주창해서 국제적인 논란을 부른 장본인이다. 러시아와 튀르키예도 스트롱맨에 의한 종신 집권으로 가고 있다.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총리를 거쳐 대통령에 거듭 당선되면서 21년째 권좌에 앉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선을 채우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이 확실시된다.
이들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3권 분립의 견제와 균형 원칙은 의미를 상실한다. 무소불위의 강력한 지도자에게 입법·사법부와의 건강한 긴장은 거추장스런 존재다. 이처럼 선거로 선출됐지만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체제를 대의 민주주의와 구별해서 ‘위임 민주주의’(delegate democracy)로 분류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은 정치 암흑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 자유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정치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로 국민적 자부심은 짓밟혔다. 12·3 비상계엄령은 대통령의 통치 행위라는 합법의 외피를 쓴 채 3권 분립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이었다. 계엄군의 선관위 장악 시도는 22대 총선 부정 꼬투리를 잡아 국회를 불법화하고, 해산하려는 수순으로 읽힌다. 계엄이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한국은 권위주의 퇴행 국가 명단에 추가되는 불명예를 안았을 것이다.
어쩌다 한국 대통령은 내란 수괴로 전락했을까. 불온한 일탈의 전조는 대통령의 표리부동에서 나타난다. 검찰총장 윤석열을 보수 정당의 대선 후보로 밀어 올린 건 그가 쌓은 공정과 상식 이미지 덕분이다. 권력에 돌직구를 날리면서 원칙대로 수사를 밀어붙이는 모습에 국민은 ‘효능감’을 기대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다짐은 불공정·불평등에 민감한 정서를 파고들었다.
윤 대통령의 밑천은 취임하자마자 바닥나기 시작했다. 영부인의 각종 의혹에 감싸기로 일관하면서 법 앞의 평등 원칙을 무색하게 했다. 수직적 당정 관계 고수도 국민의 눈높이를 한참 비켜 갔다. 대통령은 집권 여당에 충성을 강요하고, 친윤(친윤석열)계를 내리꽂아 쥐락펴락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상징 자본이 무너지자 민심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국민이 대통령에 주문했던 것은 타협과 양보를 통한 민생 정치였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지 않고 아집에 갇혔다. 야당과 이견을 좁히거나 협상을 통해 갈등을 중재하는 국민 통합의 역할도 철저히 외면했다. 국정 운영은 파행을 거듭할 뿐 성과가 날 리 없었다. 지지도는 폭락하고 특검과 탄핵 공세가 삼각파도처럼 몰아치는 한계 상황에서 끝내 폭주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이 헌정 파괴라는 극단적인 유혹에 빠지게 된 근저에 우리 헌법의 견제 기능 미흡을 지적할 수밖에 없는 점은 뼈아프다. 헌법은 대통령에 ‘국가 원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입법·사법부까지 통괄하는 ‘제왕적 대통령’ 노릇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대통령의 권한은 입법·사법부를 압도한다. 의회를 우회해서 상당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사법부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군주정의 국왕 혹은 권위주의 정권의 스트롱맨에 어울리는 ‘국가 원수’는 자유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에는 없는 특별한 지위다. 제헌 헌법에 없던 ‘국가 원수’ 지위는 유신헌법에서 처음 등장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위헌적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무력으로 헌정을 중단시킨 것이다. 그러고는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실시해 유신헌법을 통과시키면서 ‘국가 원수’ 조항을 슬쩍 넣었다. 대통령이 입법·사법·행정부를 초월해 국민과 국토를 통치하는 ‘대권’(大權)을 쥐게 된 것이다.
12·3 내란이 52년 전 유신 시대를 흘러간 과거가 아닌 오늘날의 현실로 소환한 대목은 참담하다. 절대 권력의 유혹에 빠진 스트롱맨이 권좌에 앉으면 언제든 헌정 중단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목하 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내용으로 한 개헌 논의가 한창이다. 이참에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도 손봐야 한다. 사생결단식의 정치 양극화도 ‘국가 원수’의 권능을 독차지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반대편을 처단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타협하는 정치 문법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대통령은 ‘국가 원수’의 지위에서 내려와야 한다.
2024-12-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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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곰곰 생각] 정년 제도의 사용 연한
지난 4월 22대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300명의 평균 연령은 56.3세였다. 신중년(55~64세) 세대가 주축인 셈이다. 국회의 평균 연령은 임기 중인 3년 뒤에 일반 직장인의 법정 정년인 60세에 도달한다. 자정이 지나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처럼, 예순이 되는 그날부터 갑자기 생산성이 뚝 떨어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국회의원이 60세에 접어들었다고 갑자기 활력을 잃지 않는 것처럼, 직장인들의 숙련도와 체력도 갑자기 떨어지지 않는다.
특정 나이에 이르렀다고 일자리를 떠나게 하는 제도는 합리적이지 않다. AI(인공지능)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고, 수명이 늘어 100세 인생을 구가하는 시대라 더더욱 그렇다. 미국, 영국, 뉴질랜드가 정년 제도를 연령 차별로 규정하고 폐지한 이유다. 정년 제도의 사용 연한이 다했다는 인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고령자 ‘계속고용’ 문제는 모든 선진국의 공통 현안이다. 일본에서는 ①정년 연장 ②정년 폐지 ③퇴직 후 재고용의 선택지를 줬다. 60세 정년 제도 자체는 유지한 채 자율에 맡긴 결과, ‘퇴직 후 재고용’으로 쏠렸다. 21인 이상 기업의 69.2%가 이른바 촉탁직 고용제를 도입했고, 아예 정년을 연장한 곳은 26.9%, 정년을 폐지한 기업은 3.9%로 나타났다.
한국과 같은 연공서열 임금 체계라서 고임금자를 정규직으로 유지하는 대신 비정규직으로 ‘계속고용’해서 일손 부족의 급한 불은 끄되 인건비 부담은 줄이려는 추세가 읽힌다. 반대로 영미권의 정년 폐지는 노동 유연성과 성과에 따른 연봉제가 뒷받침된 결과로 해석된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최근 고령자 ‘계속고용’에 대한 합의안을 내년 초까지 도출한다고 밝혔다. 경사노위 산하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에서 60세 이후에 계속 일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정년 연장 혹은 폐지, 퇴직 후 재고용 등 3가지를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년 연장론은 법정 정년보다 훨씬 빠른 실제 퇴직 시점과 65세 연금 개시 사이에 5년 이상의 단절이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또 국민연금의 올해 월평균 급여가 59만 5520원에 불과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연금만으로는 생계난에 직면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다. 실제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1970년대까지 연간 100만 명씩 태어나다가 최근년 4분의 1 이하로 떨어져 미래 세대의 노동 시장 유입이 급감하는 사정과도 겹친다. 2차 베이비붐 세대가 현장에 더 머물러야 부족한 일손이 보충되는 한편 노인 빈곤도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실제 행정안전부와 대구시가 시설관리, 경비, 미화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직 근로자 정년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민간 부문에서는 현대자동차 노사가 기술직 사원의 촉탁 고용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기로 올해 단체협약을 갱신했다.
하지만 정년 연장이 만능이 아니라는 논쟁적인 지적도 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간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에서 인구 변화가 가져올 노동시장 불균형을 분석한 뒤 정년 연장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회복지서비스업, 운송업 등 수요가 급증할 업종과 부문은 정년의 의미가 없어진 반면, 청년 세대의 일자리가 기성세대와 달라 대체 효과가 없다는 의미에서다. 또 미래 청년 인구가 급감해도 대기업은 구인난을 겪지 않을뿐더러, 정년 연장으로 고령자까지 계속 고용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구인난에 시달리는 지방의 중소기업은 정년 연장의 혜택을 누리기 어려울 수 있다.
고령자 ‘계속노동’은 인구 추계와 일자리의 구조 변동, 노동 생산성 변화를 함께 분석할 때 해법이 도출될 테다. 또 ‘60세 이후’는 직장 내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에 발목이 잡혀 있고, 사회적으로는 국민연금과 맞물려 있다. 업종, 부문별로 상황이 다른 점도 문제를 어렵게 한다. 과거처럼 일률적인 법 적용이 어려울 수 있다. 은퇴자를 내보내고 청년 신입사원을 뽑아야만 하는 사업장이 있는가 하면, 촉탁 재고용이 절실해진 업종이 있을 수 있다. 사회적 공론을 거치면서 업종과 부문별로 자율적인 시행착오가 불가피해 보인다.
1988년 국민연금 출범 때는 60세가 되면 연금 수급이 시작됐다. 당시 정년은 58세였다. 36년이 지난 지금도 정년 제도는 큰 틀에서는 동일하다. 고령자 ‘계속노동’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 꼭 필요한 질문이 있다. 정년 제도는 여전히 유용한가. 즉,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제도인가를 밝혀야 한다. 어쩌면 해결책은 ‘정년’ 바깥에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정년 제도의 쓸모를 밝히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2024-11-0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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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곰곰 생각] Z세대도 같은 뉴스를 읽는다는 착각
널린 게 뉴스인 세상이다. 반갑거나 도움이 되는 것만 있을 리가 없다. 때로는 지루하거나 귀찮고, 짜증과 화를 유발할 수도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올해 5~6월 20세 이상 3000명을 대상으로 ‘국민의 뉴스 이용과 뉴스 회피’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는데, 뉴스 이용자 72.1%가 뉴스가 보기 싫어 회피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선택적 혹은 지속적으로 뉴스를 거부하는 현상은 저널리즘이 믿음과 쓸모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걸 드러낸다.
회피 경험자는 뉴스에 야박한 감정이 있다. 뉴스를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49.3%)거나 ‘화가 난다’(45.7%) 또는 ‘피곤하다’(42%)는 식으로 부정적 반응 일색이다. ‘정치 편향’(57.4%)이거나 ‘너무 많고, 반복적’(51.5%)인 탓이다. 이 때문에 ‘뉴스를 회피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7.9%에 불과했다. 독자가 뉴스를 기다리던 호시절은 끝났다.
이번 언론재단 조사 결과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20대, 즉 Z세대가 열심히 뉴스를 읽고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뉴스를 회피한다’는 응답은 30대 76.5%, 40대 76.7%, 50대 78.3%, 60대 77.5%, 70대 이상 72.6%로 전 연령대에서 70%대 후반이었는데 비해 유독 20대는 47.3%로 큰 격차를 보였다. 20대가 뉴스를 멀리할 것이라는 통념이 깨지는 결과다. 20대의 ‘회피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무려 52.7%로 다른 연령대의 배 이상이었다. 이른바 ‘디지털 원주민’으로 불리는 Z세대의 모순된 듯한 이 응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지점에서 필요한 질문이 ‘뉴스 회피’의 개념 중 뉴스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다. 예컨대 Z세대의 미디어 이용 습관을 질문하면서 레거시 미디어와 검색 포털에서 유통되는 기사만 기준으로 잡는다면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 Z세대가 기성의 뉴스 생태계 속에 들어와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뉴스’는 SNS 친구의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에 올라온 사진과 영상, 해시태그를 비롯해 게임 대화방의 코멘트일 수 있다. 떠도는 정보와 저널리즘이 뒤섞여 경계가 모호해진 게 특징이다. 이들의 주 서식지인 SNS 생태계에서 ‘친구’들이 공유해 주는 소식은 정론 매체의 뉴스보다 신뢰도가 높다. 흥미와 관심 기반의 알고리즘이 더해지면 내게 도움이 되는 솔깃한 소식은 차고 넘친다. ‘친구’가 전해주는 소식은 대체로 즐겁고 도움이 되는데 굳이 회피할 까닭이 없다. 이런 이유로 ‘뉴스를 외면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는데 다른 연령대와 같은 카테고리로 묶이면 곤란하다.
실제 이번 조사에 응답한 20대는 인터뷰에서 “SNS나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접한다”고 대답했다. 파편화된 뉴스 소비 환경에서 뉴스를 편식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20대의 낮은 뉴스 회피율을 뒤집어 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의 토끼 굴에 빠진 것처럼 만화경이 펼쳐지는 SNS 생태계를 기존 미디어 환경과 동일한 잣대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어쩌면 ‘디지털 원주민’ 세대는 기성의 공론장을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렸다고 전제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이른바 기성 담론의 바깥에 존재하는 ‘뉴스 아웃사이더’다. 이들은 기성 뉴스와 접점이 없지만, 자기네 세상에서는 다른 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그것을 뉴스로 인식하고 있다. 공론장의 분절이다.
언론사 편집진의 견해가 담긴 뉴스를 소비하지 않거나 신뢰하지 않는 것을 회피의 범주에 넣어 해결책을 찾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다. 서로 다른 견해가 경쟁하는 공론장을 통해 세상에 대한 소식을 얻지 못하는 국민이 늘어나면 여론 형성에 장애가 생기고 숙의민주주의 체제가 형해화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뉴스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20대와 어떻게 눈높이를 맞출 것인가의 과제가 추가된다. ‘뉴스 아웃사이더’가 실재하고, 또 점점 몸집이 커지고 있는 중이라면 이는 중대한 사회적 위협이다.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이야기에 벽을 치고 차단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딴 세상으로 떨어져 나가는 중이라면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선 언론이 자초한 책임이 크다. 기존 문법과 구독자에 안주해서 미래 세대의 문법, 즉 ‘친구’의 화법으로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에 게을렀다. 사회적인 의제로도 다뤄야 한다. 젊은 세대의 공론장 이탈은 공동체 소속감, 연대감의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딴 세상에 가 있는 이들을 공론장 안으로 유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에 먼저 다가가야 할 책임이 있다.
2024-10-0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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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곰곰 생각] 늙어 가는 부산, 일은 누가 하나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선진국에서도 나타나는데, 유독 한국이 심각하게 비치는 까닭은 가공할 만한 속도 탓이다. 한국 인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 2651만 명에서 올해 5175만 명으로 배 가까이 늘었지만 저출생 탓에 2072년 3622만 명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3622만 명'의 적정 규모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인구 구조 변화가 너무 빠르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부산의 '소멸' 속도는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에서 특별·광역시 중 최초로 소멸 단계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임신·출산 적령기(20∼39세) 여성을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소멸위험지수 값이 0.490에 그친 결과다. 이 지표의 분자인 65세 이상의 비중이 23%를 넘긴 점과 분모와 관련된 합계출산률이 0.66명으로 추락한 점은 동전의 양면이다. 신생아 감소와 노년층 증가가 동시에 이뤄져 소멸의 미끄럼틀에 갇힌 꼴이다. 여기에 매년 약 1만 명의 청년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것도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4년 부산 인구 326만 명은 2052년 245만 명으로 24.8% 감소한다. 이 추세라면 ‘2위 도시’를 인천(296만 명)에 추월당하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 부산 생산연령인구(15∼64세)도 현재 67.2%에서 28년 뒤 49.1%로 급감한다. 65세 이상도 43.6%로 늘어나 '늙은 도시'가 된다.
급격한 인구 구성비 변동은 사회 각 방면에서 불균형을 초래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 미스매치다. 일하는 사람이 주는 반면 부양받는 세대는 느는 방향으로 너무 빨리 이행하면 사회 구조가 송두리째 흔들린다. 인구 전문가들은 저출생과 고령화를 전제한 조건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까지 한 해 100만 명이 태어났지만 2023년 23만 명으로 추락했다. 경제활동인구의 패러다임 변화는 불가피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부산은 청년 세대의 지역 이탈을 막는 게 우선이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지역에서 결혼과 출산을 꿈꿀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다만 수도권 유출을 획기적으로 막거나, 부산으로 유턴·신규 유입으로 반전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주요한 대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인 고령자와 여성 고용률을 높이는 것이다. 노동 수급 불균형에 따른 빈 곳을 후세대가 채우지 못한다면 내부에서 대안을 찾아 소멸 가속도를 줄이고 충격파를 최소화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노동 생산성이다. 생산 인구가 줄어도 생산성이 향상되면 사회는 지속 성장할 수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의 도입은 생산성 향상의 도구다. 전환 교육 등을 통해 고령자와 여성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 또 복지 서비스 확대로 관련 인력 수요가 늘어나는 등 산업 구조 변동에 따른 인력 수급의 부침에도 대비해야 한다.
최근 〈부산일보〉는 '구심점 잃은 신중년 고용' 기획 기사에서 신중년(50~64세)을 산업 현장에 계속 머물게 하기 위한 부산의 재고용 컨트롤타워 필요성을 제기했다. 여기서 신중년은 과거의 은퇴 세대와 구분된다. 고학력에다 해당 분야 숙련도가 높다. 체계적인 건강 관리 덕분에 과거처럼 생산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노인'이 아니며 산업 현장에서 제 몫을 하는 일손으로 손색이 없다.
여성 고용률을 높이는 것도 필수적인 과제다. 우리나라 여성 취업은 꾸준히 늘었지만 여전히 남녀 고용률 격차는 OECD 회원 38개국 가운데 8번째로 크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육아에 따른 경력 단절이 여전히 심하다. 외국인 인력에도 열린 사회가 돼야 한다.
핵심은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인정하는 것이다. 부산이라는 도시를 지탱하는 적정 인구 규모와 생산 인구를 재설계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부산 인구 245만 명'이 왜소하다고 걱정만 해서는 안된다. 젊은 일손의 부족은 이미 정해진 미래다. 신중년과 여성, 외국인의 생산 인구 편입으로 어떤 산업 부문에서 대체 효과가 있고, 또 없는지 따져 보고 대안을 만들어야 된다. 한정된 재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필수적이다. 인구와 노동의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는 미래는 전인미답의 시련으로 가득 차 있다. 익숙한 것을 되풀이하는 '경로 의존'으로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혁신적 사고와 접근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2024-08-2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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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곰곰 생각] '87년 체제', 이제 역사로 보내자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Cincinnati)시는 로마 정치인이자 군인 킨키나투스(Cincinnatus)의 이름에서 따왔다. 기원전 460년 로마 공화정은 외침을 당해 위기에 처한다. 원로원에서 은퇴하고 농사를 짓던 킨키나투스는 원로원의 구원 요청을 받자 즉시 독재관(dictator)직을 수락한다. 침략을 물리치고 개선장군으로 돌아온 그는 독재관 지위를 내려놓고 표표히 농장으로 돌아갔다. 원로원의 집단 지도 체제가 복귀됐고, 민회는 행정관을 선출했다.
미합중국 설계자들은 로마 공화정을 이상적으로 여겼다. 원로원과 민회를 본뜬 상원, 하원이 예다. 독립전쟁을 이끈 뒤 낙향해 농사를 짓던 조지 워싱턴을 소환한 것도 닮았다. 워싱턴은 공직을 거부하며 완강히 버텼지만 집요한 설득을 이기지 못해 초대 대통령이 된다. 4년 단임 후 낙향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세상에 없던 삼권분립 제도의 신산함이 그를 놓아주지 않은 것. 연임 횟수에 제한이 없었지만 두 번의 임기를 마친 워싱턴은 퇴임을 결행했다. "능력 부족을 절감"했고 "무능에 연유한 과오가 잊히기를 바란다"는 겸양 가득한 고별사를 남긴 채 그 역시 표표히 떠났다.
미국에서 고안된 프레지던트(president)는 일본 메이지유신 시절 대통령(大統領)으로 번역된다. 대만 총통(總統)도 같은 맥락이다. 모두 '크게 거느리고, 다스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president는 '회의를 주재하다' '의장석에 앉다'는 의미이지 통치, 군림과 동떨어져 있다. 단적인 예로 EU(유럽연합)에는 수많은 president가 있다. EU의 각료 이사회(정상회의), 의회, 집행위원회, 중앙은행, 사법재판소, 감사원의 대표 직함은 모두 president인데, 이를 한국어로 표기하면 의장, 위원장, 은행장, 재판소장, 감사원장이 된다.
어감의 차이는 이 단어가 동아시아에 유입될 때 '왕이 통치하지 않는 나라'를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적 한계 때문이다. 워싱턴 고별사의 시작을 보자. '행정부를 관리할 한 시민을 선출할 시기가 머지않았는데….' 삼권분립 체제에서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일 뿐이라는 관념이 뚜렷하다. 애당초 제왕적일 수가 없는데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왕에 버금가는 권력자로 변질된 것이다.
미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 권한을 갖고 있으나 개전과 종전 권한은 의회에 있고, 조약 체결도 상원 동의가 필수다. 장관과 대법관 지명도 상원을 통과해야 한다. 의회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고 예산 승인을 미뤄 정부를 폐쇄(셧다운)할 수도 있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인 2018~2019년 연말연시에 민주당 다수 의회는 무려 35일이나 행정부를 마비시킨 적이 있다. 의회가 견제하면 대통령은 옴짝달싹 못한다. 영국의 왕에 맞서 독립을 쟁취했으니 제왕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장치인 셈이다.
한국은 제헌의회 때부터 미국식 대통령제를 도입했지만 부침을 겪었다. 쿠데타로 헌정이 중단되고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만들어 장기 독재를 펼쳤다.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하고 체육관에서 간접선거로 뽑은 시절도 있었다. 대통령 중심제가 오용된 탓에 입법·사법부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국민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1987년 6월 간선제 헌법을 유지하려는 정권을 규탄하는 '호헌 철폐' 시위가 벌어졌다. 6월 항쟁의 결과 직선제 헌법 개정이 이뤄져 6공화국이 열렸다. 헌법 개정을 주도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들은 각자의 정치적 야망을 헌법에 새겼다. 중임제와 정·부통령제가 부상했으나, 5년 단임 대통령제로 낙착된 것은 대권을 쥐려는 각자의 셈법이 절충된 결과다. 결국 6공화국 헌법을 주도한 이들은 순차적으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이른바 '87년 체제'로 불리는 6공화국 출범 이후 37년이 흘렀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그 세월에 무수한 개헌 논의가 있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그 결과가 작금의 정치 양극화다. 대통령과 의회 사이에 탄핵 엄포와 법안 거부 무한 도돌이표, 국회에서의 여야 극한 대치가 그것이다. 연금·노동개혁 등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민생은 실종되고 22대 국회는 개원식도 열지 못한 채 꽉 막혀 있다.
해결책은 권력의 분산과 협치 구조다. 대통령은 유신헌법에서 도입된 '국가 원수'에서 내려와 행정부 수반으로 돌아가고 국방·외교 이외 상당수 기능을 지방 정부로 이양하는 권력 분산이 필요하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줄이면서 지방을 살리는 이른바 분권형 개헌이다. '87년 체제'는 쓰임새를 다했다. 분권형 협치 국가인 제7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댈 때가 됐다.
2024-07-2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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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곰곰 생각] 전문가 집단의 배신
독일의 사상가 칼 마르크스는 경제적 토대 위에 법과 제도, 문화 등 상부 구조가 서 있는 사회 체제를 상정했다. 마르크스가 물질적 조건에서 사회 변화의 원동력을 찾았다면 독일의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말의 씨줄과 날줄에 주목했다. 공론장에서 의사소통 행위가 이루어지고 사회 변동이 추동된다는 것이다.
근대 국가는 공론장의 진화에 조응하며 발전했다. 공론장이 집단 지성의 산실이 되어 공동체를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조건 중 하나가 지식과 경험에서 권위를 가진 전문가의 존재다. 전문가는 의제 설정과 심층 분석,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신뢰가 싹트는데 이는 공론장이 건설적인 토론과 합의의 장이 될 수 있게 하는 요소가 된다.
‘짐이 곧 국가’인 군주제나 군부 독재, 공산당 일당 체제에서는 통치자의 하명이 일방통행으로 전달될 뿐 상호 소통은 생략된다. 이런 나라에서 전문가 집단의 존재감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공론장이 가동되는지 여부로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국가는 간단히 구별된다.
근대 국가 초입에 다양한 전문가 조직이 ‘협회’의 이름으로 태동했다. 정치 국가는 시민 사회에서 움트는 전문가 집단을 관리·통제하기 위한 제도를 고안했다. 대학에 정규 교육을 맡기고, 국가 자격증 혹은 면허 체계에 연계시켰다. 전문직은 해당 분야의 배타적 독점권을 누리는 조건으로 정치 국가에 포섭된다. 전문직주의(프로페셔널리즘) 탄생의 과정이다.
하버마스는 전문가 집단의 권위주의화를 우려했다. 조력자 역할을 뛰어넘어 공동체를 쥐락펴락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독선으로 치달으면 ‘입틀막’(입 틀어 막기)이 나타난다. 과거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사 엘리트 집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을 중단시키고 군부 독재를 실시했던 게 최악의 사례다.
이처럼 전문가의 조직적 일탈은 드물지 않다. 사회 전체의 이익, 즉 공공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집단 이기에 빠지는 ‘소셜 딜레마’ 현상이다. 최근 서울 주요 대학 음대 교수들의 입시 비리도 마찬가지다. 교수들은 자신들에게 불법 고액 레슨을 받은 수험생에 실기 전형에서 높은 점수를 매겨 합격시켰다. 전문성을 돈벌이에 악용한 집단적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다. 그 결과, 입시의 공정성은 훼손되고 다수의 학생들이 피해자로 전락했다.
전문직의 대표 주자는 법조·의료계다. 문학·철학과 함께 사각모의 네 모서리를 각각 대표하는 법학·의학이 학문의 틀에서 나와 가장 먼저 국가 공인 전문직 지위를 얻었다. 법조와 의료 분야의 전문직주의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권 보호 취지로 강력한 법적 보호를 받는 공통점이 있다. 무면허 의료 행위나 자격 없는 법률 대리는 엄벌에 처해지는 식이다. 문제는 오늘날 이 두 직역이 한국 사회의 신뢰 기반을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명분 없는 집단 휴진에 나선 일부 의사와 ‘법 기술자’로 불리는 일부 정치 검사는 직역 이기주의라는 지탄을 자초했다.
의대 교수들은 집단 휴진을 선언하면서 환자를 외면한 단체 행동을 ‘연휴’에 비유하고 의대 증원 백지화와 전공의 면책까지 요구했다. 상식과 동떨어진 인식의 괴리에 어안이 벙벙하다. 의대생과 전공의도 법을 대놓고 무시한다. 유급과 처벌 면제의 특혜가 되풀이된 탓이다.
빗나간 우월 의식의 폭주는 검찰에서도 발견된다. ‘고발 사주’ 사건은 검찰의 신뢰에 결정타였다. 21대 총선 직전 민주당 정치인들을 고발해 달라며 고발장을 작성해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전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해 1심 법원은 유죄를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했다.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는 판결처럼 검사의 선거 개입은 국가 기강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또 22대 총선 민심을 요동치게 만든 요인에 검찰이 수행한 사법 잣대의 공정성에 대한 물음표가 있었던 점을 검찰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전문가의 일탈은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작용을 낳는다. 한 사회가 축적한 무형의 신뢰 자산을 허물어뜨리는 범죄적 행위다. 신뢰가 훼손되면 소통이 잦아들고 결국 공론장은 피폐해진다.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이 횡행하면 ‘정글의 법칙’만 남는다. 목소리 센 사람이 이기는 세상에서 갈등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진다.
‘의사 불패’, ‘검사는 처벌받지 않는다’라는 인식이 공공연한 사회는 퇴행적이다. 소시오패스적인 행위에도 반성 없이 ‘정신 승리’를 구가하며 반복하는 식이다. 공동체를 배신하고 군림하려는 전문가 집단은 단죄돼야 한다. 그게 공동체가 사는 길이다.
2024-06-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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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곰곰 생각] 연금·핵폐기물 '폭탄 돌리기' 끝내야
지금 한국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한폭탄에 둘러싸인 위험 사회로 가고 있다. 인구와 기후 폭탄은 오래된 미래다. 제도적으로 볼 때 국민연금 고갈과 사용후핵연료(고준위폐기물) 포화는 미래 세대에 물려줘선 안 되는 가공할 폭탄이다. 이 둘은 현세대가 온갖 혜택을 다 누려 놓고 후손에 뒤치다꺼리를 전가하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국민연금은 2040년부터 적자가 누적되다가 2055년께 고갈된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가 시민대표단 설문 끝에 ‘더 내고 더 받자’는 개선안을 냈지만 즉각 반론에 휩싸였다. 보험료율(소득 대비 납부액 비율)을 9%에서 13%로 올리되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수령액 비율)을 40%에서 50%로 상향하는 안이다. 여야 협상으로 보험료율은 13%에 근접했으나 소득대체율은 더불어민주당 45%, 국민의힘 44%로 맞서면서 합의는 무산됐다.
연금 개혁 논쟁을 복기하면 겉으로는 여당의 ‘재정 안정’과 야당의 ‘소득 보장’의 대립 구도로 비치지만 어느 쪽이나 기금 고갈 이후 미래 세대 등골 빼먹기 수순은 오십보백보다. 여야가 소득대체율 44.5%로 타협해도 해결은 요원하다. 2063~2064년 기금 고갈은 피할 수 없어서다.
인구 구조를 보면 현세대가 미래 세대에 폭탄을 던지는 실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1970년대까지는 한해 출생아 100만 명이 유지됐지만 지난해 23만 명으로 4분의 1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2023년 출생자가 왕성하게 경제 활동을 하게 될 2060년 이후에는 소득의 30% 이상을 부모 세대의 국민·노령연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소수가 다수를 부양하는 체제다. 지속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세대 간 갈등이 폭발할 게 뻔하다. 오죽했으면 젊은 층에서 구연금·신연금 완전 분리 주장이 나오겠는가.
국민연금 재정의 난맥은 ‘덜 내고 더 받는’ 구조에 기인한다. 기존 보험료율 9%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8.2%의 절반에 그친다. 산업화 세대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혜택을 받았다.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이 기득권 유지를 위한 개악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해결책은 덧셈, 뺄셈의 영역이다. ‘더 내고 덜 받는’ 방법 아니면 적자를 탈피할 수 없다. 기존 세대가 보험료를 더 부담해서 기금 재정을 안정화 추세로 반전시키고 미래 세대의 짐을 덜어주는 방안이 있다. 세대 간 연대, 사회적 대타협의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 세대가 요구하는 구연금·신연금 분리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부모의 부채를 상속하지 않겠다는 자녀의 선택을 탓할 수 없는 이치다.
사용후핵연료는 정부의 신뢰 실추 탓에 꼬여 있다. 국내에는 1만 년 이상 식지 않고 고열과 방사능을 뿜어 내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히, 안전하게 보관할 곳이 없다. 핵폐기물은 원전 부지 내에 쌓인 채 포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영구처분장을 짓자는 데 이견이 없지만 기존 원전 내 임시 저장소 추진에 물음표가 붙어 있다.
고준위 특별법은 원전 부지 내에 건식 저장 시설을 지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임시 저장의 기한이 분명치 않았다. 이에 대해 원전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는 영구처분장이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원전 부지가 자칫 영구처분장이 될 수 있다고 의심한다. 수도권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생산하는 지역의 원전이 주민 동의 절차도 생략된 채 자칫 핵폐기장이 될 수도 있으니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서울 언론에서 ‘고준위 특별법은 민생’ 운운하며 21대 국회 막바지 통과를 재촉하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이는 핵폐기물이 보관될 지역 정서를 외면한 것이다.
1978년 고리원전 1호기 가동 이래 46년이 흐르는 동안 정부는 고준위폐기물 영구처분장을 마련하지 않는 직무유기를 저질렀다. 지금 시작해도 37년 이상 걸린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우리 세대는 이미 후손들에게 폭탄을 던진 셈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신규 원전이나 사용 연장을 논의하기 전에 영구처분장 계획을 분명히 밝히고 추진에 나서는 한편 원전 내 임시 시설에 대한 지역민 동의를 얻는 게 순리다.
연금 고갈과 핵폐기물 포화로 인한 부담은 이미 상당 부분 미래 세대에 떠넘겨지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꾸준히 진행됐어야 할 국정 과제가 땜질이나 조삼모사, 눈치보기로 일관된 탓이다. 이제 공은 3년 차 윤석열 정부와 22대 국회로 넘어간다. 정치의 실패가 반복되면 미래 세대에 더 많은 빚을 떠넘기게 될 것이다. 후손에 폭탄 돌리는 짓은 당장 멈춰야 한다.
2024-05-2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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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곰곰 생각] 의대 광풍 휩쓸면 반도체는 누가 만드나
지난 3일 대만을 엄습한 강진은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남겼다. 한데, 외신이 주목한 뉴스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의 피해 여부였다. 내진 설계 덕분에 웨이퍼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은 사흘 만에 복구됐다. 이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린 곳도, 불안감이 더 커진 곳도 미국이다. 미국이 전 세계 AI(인공지능)·전기차·드론·인공위성·무기 체계 기술을 선도하지만 그 핵심인 반도체는 대만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의 5일 자 기사를 보면 반도체를 바라보는 미국의 속내가 가감 없이 드러난다. ‘이번 지진은 세계 경제가 얼마나 대만에 의존하는지 일깨운 사건이기도 했다. 이 작은 섬에서 전 세계 첨단 반도체의 80~90%가 생산된다.’ 이어 기사는 ‘TSMC 붕괴라는 재난이 끼칠 영향은 대공황과 유사할 것’이라는 전문가 전망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서 언급된 대공황(Great Depression)은 1929~1939년 전 세계를 마비시킨 경기 침체를 말한다.
미국은 코로나19 시절 TSMC 공급 차질로 전기차 생산이 중단되는 악몽을 겪었다. 기술 강대국이지만 제조 약소국인 미국의 취약점이 노출된 사건이다. 그러니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미국은 반도체 공장 때문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반도체를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에 비유한 까닭이다.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미국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TSMC에 대해 압박과 보조금 양면 전략으로 미국 애리조나주에 공장을 짓게 했다.
메모리 분야의 최강자 삼성전자와 HBM(고대역폭메모리) 선도 주자 SK하이닉스도 현재의 경쟁 우위에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 북한과 가까운 경기 남부권 8개 지역에 분산된 반도체 단지의 입지는 미국으로서는 지정학적 리스크다. 역시 미국 내 공장 투자를 대가로 거액 보조금 미끼를 내놓는 이유다.
미중 갈등의 시작은 무역 마찰이었지만 이내 기술 전쟁으로 비화됐다. 지금은 안보 패권으로 차원이 격상됐다. 그 최전선에 반도체가 있다. 미국은 중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영원히 따라오지 못하게 만드는 게 목표다. 그래서 제조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동맹국을 닦달한다. 동시에 반도체 내재화를 꾀한다. 생산 거점을 미국 영토로 옮기도록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미국의 왕따 전략에 맞서 중국은 과거 핵무장 때처럼 ‘거국 체제’에 돌입했다.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투입한다는 뜻이다. 국가반도체펀드 등 금전적 지원은 물론이다. 특히 공을 들이는 게 이공계 인재 육성이다.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천재 소년’ 프로젝트가 상징적인 사례다. ‘최고의 인재에 최고의 보수!’ 최대 200만 위안(우리 돈 약 3억 7600만 원)의 연봉을 걸고 기술 인재를 발굴한다.
미국 주도로 한국, 일본, 대만은 ‘칩4 동맹’을 형성했다. 명색이 동맹이라지만 가슴에 칼을 품은 채 악수를 한 꼴이다. 특히 일본은 1980년대 반도체 강국 시절로 되돌아가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일본 구마모토 TSMC 공장을 위해 유례 없는 세제·행정 지원에다 속도전 공사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인재 육성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일본은 올해부터 4년에 걸쳐 대학의 이공계 정원 1만 1000명을 증원하기로 했다. 3000억 엔(우리 돈 2조 6768억 원)의 기금도 만들었다. 한국과 대만을 꺾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국가 대항전으로 판이 커진 반도체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세계 각국은 유례 없는 파격 지원책과 함께 대대적인 기술 인재 육성에 나서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9일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자 국가 총력전”이라고 규정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문제는 기술 인재 수급면에서 엇박자가 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이공계의 매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 이공계 특성화대학 4곳(KAIST·포스텍·UNIST·GIST)의 재학생 중 10% 이상이 자퇴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상당수가 의대 진학이 사유였다. 여기에 의대 2000명 증원이 기름을 끼얹었다. ‘수학 1등급 아니어도 도전해 볼 만’ ‘의대 보내려면 강원도로 이사 가세요’…. 사교육 광풍이 불고 상위권 연쇄 이동으로 이공계 재학생들이 들썩인다. 국가 예산과 세제·행정 지원은 정책 수단으로 결정하면 되지만 기술 인력 부족 사태는 단기간 회복될 수가 없다.
미국, 중국, 일본은 사생결단으로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넘보고 있다. 반도체가 주권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우수한 기술 인력이 훨씬 더 필요하다. 그 출발은 이공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이공계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지금 정신 차려 대비하지 않으면 한국은 반도체 주권국가 지위를 잃게 된다.
2024-04-11 [1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