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사에 올라서야 깨달았다…사람과 우주가 둘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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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사에 올라서야 깨달았다…사람과 우주가 둘이 아님을

    불기(佛紀) 2570년.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온다. 부처님은 음력 4월 8일에 태어났다. 부처님오신날은 석가모니가 태어난 해가 아니라 열반한 해를 원년으로 삼는다. 그러니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석가모니가 돌아가신 지 2570년째 되는 해에 맞이하는 생일인 셈이다. 이 사실을 여태 모르고 공휴일이라고 그냥 놀았다. 이번에 깨달았다. 지난달 중순 인문학당 ‘큰수레(회장 최복룡)’의 전남 순천 선암사, 송광사 답사를 따라갔다가 불교에 관심이 생긴 덕분이었다. 꽃도 보고 우리 문화에 눈도 뜨는 수지 맞는 여행이었다.■꽃이 이래 화려해 스님들 우짜노생각보다 가까웠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선암사는 조계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부산에서 선암사까지는 2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선암사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먼저 부도전을 만났다. 선암사를 거쳐 간 고승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 있는 곳이다. 시조 시인으로 선암사 부주지를 역임한 조종현 스님도 여기에 묻혔다. 교과서에도 나온 ‘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를 쓴 스님은 소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작가의 부친이다. 선암사의 대처승이었고, 조 작가도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이 부도전은 <태백산맥>에도 접선 장소로 등장한다. 선암사가 속한 종단 한국불교태고종은 독신으로 수행하는 스님도 있지만, 스님의 결혼과 가정을 허용하는 대처 전통을 가지고 있다.이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다리 승선교(昇仙橋)가 나타났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다리’라는 뜻이다. 속세의 번뇌를 씻고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선암사(仙巖寺)에는 ‘신선이 내려오는 누각’이란 뜻의 강선루(降仙樓)까지 신선이 곧잘 등장한다. ‘순천 전통 야생차 체험관’ 안내판이 나타나더니 길옆으로 차나무들이 보인다. 선암사는 사찰 뒤편 산기슭 등에서 흩어져 자라는 야생차밭이 유명하다. 선암사 스님들은 전통 방식으로 차를 만들고, 차를 마시는 것도 수행의 연장으로 여긴다.“오메, 이게 뭔 일이래?” 선암사 경내에 들어선 순간 진한 전라도 말이 귀에 꽂혔다. “꽃이 이래 화려해 우짜노, 스님이 정진할 수 있겠나?” 일행 중의 한 분이 이에 질세라 경상도 말로 화답했다. 겹벚꽃 만발한 춘사월이었다. 봄이 되면 선암사는 매화부터 시작해 겹벚꽃, 영산홍, 자산홍, 살구꽃, 개나리, 진달래, 복사꽃 등이 차례로 만개해 꽃 대궐을 이룬다. 한국의 산사 중에서 가장 꽃이 아름답다는 선암사였다. 사시사철 꽃이 떨어지는 날이 없으니, 신선들도 틈만 나면 다녀가는구나 싶었다.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다가 불조전(佛祖殿)으로 서둘러 가야 했다. 과거 7불과 미래 53불 총 60분의 부처님을 모신 곳이다.이날 법문을 하기로 약속한 선암사 주지 승범 스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님은 “예배당에 가면 예수님 한 분뿐이어서 간단명료한데, 절에 오면 부처님이 ‘땀뿍(가득)’ 찼다. 비불교인은 똑같은 부처님을 왜 이렇게 땀뿍 만들어 놨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모든 생명체가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는데 중생병으로 아직 성자의 반열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 여러분도 언젠가 깨달으면 여기에 올라올 것이니 사진 잘 보관해 두라”라고 말했다. 천불전을 갖춘 선암사는 ‘만불의 세계’였다.스님은 “우리는 보물 법당에서 예불을 올리고 문화재 변소에서 용변을 본다”라고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하며 법문을 마쳤다. 사실 선암사 화장실은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만큼 유명하다.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전남 순천 승주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아. 똥이 마려우면 참았다가 좀 멀더라도 선암사 화장실에 가서 누도록 하라. 여기서 똥을 누면 비로소 인간과 똥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라고 말했다. 선암사는 가을이 되면 온통 은행나무잎으로 뒤덮여 노란색 천국이 된다니, 또 가고 싶어질 것 같다.■수행 전념 지눌 스님 법맥 이어조계산 산등성이를 마주 보고 동쪽에는 선암사, 서쪽에는 송광사가 있다.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산길로는 불과 8㎞ 떨어져 있다고 했다.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을 대표하는 사찰로 꼽힌다. 같은 조계산에 조계종과 태고종을 대표하는 사찰이 각각 자리 잡은 사실이 묘하게 느껴졌다. 둘 다 천년사찰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선암사가 다소 앞선다.이날 해설을 맡은 불교 인문학자이자 사진작가 노재학 씨의 깊이 있는 설명이 우리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노 작가는 “처음에는 소나무가 넓게 퍼져 있다고 해서 송광산이었고, 절 이름은 길상사였다. 그러다 고려 시대에 ‘동양의 부처님’이라고 불렸던 중국의 육조 혜능이 머물던 조계산을 따서 산 이름이 바뀌었다.조계종(曹溪宗)이라는 종단 이름도 혜능 대사의 별호인 조계(曹溪)에서 유래했다. 혜능 대사의 선종 법맥을 잇는 종단이라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알면 알수록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송광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하는 다리 삼청교 위에 지은 건물이 우화각이다. 무지개 모양의 삼청교 중심에는 여의주를 문 용머리 돌이 나와 있다. ‘용생구자(龍生九子)’, 용의 아홉 자식 중에 물을 좋아하는 ‘공복’이 다리 밑에 있다는 설명이 재밌다. 생각해 보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해 버린 용보다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공복이야말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우화각 또한 선암사 승선교 같은 멋은 없지만 묵묵히 사람들의 통행을 돕고 있다. 영화로 유명해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이 같은 다리 위 누각이란다. 이 영화 주인공의 직업이 사진작가였다는 사실은 뒤늦게 눈치챘다.우화각 바로 옆에는 임경당(臨鏡堂)과 육감정(六鑑亭)이 있다. 거울처럼 맑은 냇가에 자신을 비춰 정화시킨 뒤에 송광사로 들어가라는 뜻일 것이다. 비가 온 뒤 계곡물이 불어났을 때, 우화각의 곡선과 임경당의 직선이 물줄기와 어우러지는 모습이 기가 막히단다. 대웅보전으로 향하는 길목 오른쪽에는 침계루(枕溪樓)가 자리 잡고 있다. ‘개울을 베개로 삼아 누운 다락’이라니 선조들의 낭만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우화각, 임경당, 침계루를 따라 걸으며 산사의 건축이 계곡을 품은 진수를 제대로 느꼈다.승보 사찰 송광사 제일 위에는 스님들이 있어야 한다. 국사전(國師殿)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고려 시대 및 조선 시대 초에 국사로 책봉되었거나 후대에 국사로 추인된 송광사에서 활동한 큰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이 가운데 13점을 한꺼번에 도난당했다가 21년 만에 되찾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마지막으로 찾은 장소가 관음전 뒤뜰 언덕에 있는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이다. 고려 시대 불교가 권력과 밀착되어 매우 타락하자 지눌 스님은 명리를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자는 정혜결사 운동을 펼쳤다. 지눌 스님이 조계산 송광사에서 선종의 정통성을 다시 세운 것이다. 조계종은 지눌 스님의 법맥을 잇고 있다. 감로탑에서 내려다보는 송광사의 전경이 일품이었다.어쩌다 절에 가서 “보살님!” 소리를 들으면 깜짝 놀라며 손사래부터 치는 비불교인이 이날 점심은 선암사, 저녁 공양은 송광사에서 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알고 보니 보살은 생명체를 가진 모든 존재에게 쓰는 최상의 호칭이라고 했다. 선암사, 송광사에서 ‘한국 산사의 기념비적 건축’도 많이 알게 되었다. 노 작가가 “우주의 축소판이 사람이고, 사람이 곧 우주다. 서로를 존중해야지,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생명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면 절대로 전쟁을 못 한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AI 로봇이 수계를 받고 명예 스님이 되었다는 소식에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AI에게 물어봤다. “자비 정신을 되새기며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고,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확인하는 날이다”라는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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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척추 감압술 우선, <br />최소 상처로 정상조직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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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추 감압술 우선,
    최소 상처로 정상조직 보존”

    허리 디스크라 불리는 추간판탈출증과 노년층에서 흔한 척추관협착증은 대표적인 척추 질환이다. 허리 통증이 심해지면 일상생활이 어려워지지만 대개는 약물이나 물리치료 등 비수술적 치료로 거의 대부분 해결된다.실제로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요통 환자의 5% 미만이다. 6주 이상의 적극적인 보존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심한 신경압박으로 사지마비와 대소변 장애 증상이 나타날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수술을 검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수술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허리 통증이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물론 원하던 대로 허리 통증이 말끔히 사라진 환자들도 있지만, 수술을 했음에도 통증을 안고 사는 환자들도 생긴다. 수술 주변 부위가 아픈 인접마디 증후군이나 척추수술 실패증후군 등의 후유증을 줄이려면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다.■인접마디 증후군과 수술 실패증후군허리 수술로 통증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가 수 년이 지난후에 다시 아프다는 환자가 더러 있다. 핀으로 고정하는 척추 유합술을 받은 후에 발생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수술로 고정된 마디 주변의 척추가 변성되거나 협착을 일으키는 ‘인접마디 증후군’ 때문이다.수술로 척추의 마디를 고정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대신에 그 위아래 마디가 과도하게 움직이게 된다. 인접마디에 생기는 퇴행은 일상생활 중에 허리를 반복적으로 숙이는 행위를 하면서 나타난다. 수술된 부위는 움직임이 없는데 위아래쪽 마디는 굽히는 동작이 잦아지면서 퇴행 변화가 가속된다.명지오션척병원 박도영 병원장은 “이런 후유증을 줄이려면 수술법을 선택하기 전에 환자에게 허리가 안좋아지는 이유, 즉 허리를 전방으로 숙이는 자세를 최대한 피할 것을 충분히 교육한 후에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인접마디 증후군은 척추 유합술(후방유합술, 사측방유합술, 내시경 유합술)의 방식과 종류에 상관없이 발생한다. 논문에 따르면 증상이 없이 인접마디에 영상학적 퇴행만 보이는 경우가 30%,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10%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 이중 5% 정도는 재수술이 필요하다.척추수술을 받은 후에 불편함과 통증이 지속되거나, 증상이 개선되지 않거나 더 악화됐다고 호소하는 경우를 척추수술 실패증후군이라고 한다. 인접마디 증후군도 크게는 척추수술 실패증후군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진단이 잘못돼 엉뚱한 곳을 치료하거나 근본적인 치료를 하지 못할 때 생긴다.■유합술보다는 감압술이 우선유합술은 뼈의 정렬을 맞추기 위해 인공뼈를 넣고 핀으로 고정하는 치료법이다. 핀이나 나사못으로 척추를 단단히 고정하기 때문에 인접마디 증후군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반면에 감압술은 좁아진 신경 통로를 넓히고 눌린 신경을 펴주어 통증을 줄이는 치료법이다. 척추 마디를 고정하지 않아도 되므로 인접마디 퇴행이나 추가 협착의 위험이 없다. 특히 고령 환자의 경우 수술시간, 출혈, 나사고정의 문제를 고려하면 유합술을 피하는 것이 좋다. 최근의 국제 가이드라인과 임상현장에서는 불필요한 유합술을 줄이고 최소침습 감압술 위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박 병원장은 “굳이 척추를 고정 안해도 되는 환자까지 유합술을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최근의 척추수술은 가능하면 유합술은 피하고 내시경을 이용한 감압술을 시행하는 것이 추세다. 최소침습 접근법으로 감압술을 진행하면 합병증을 줄이고 정상적 조직을 보존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또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분석해서 꼭 필요한 부분만 감압술을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협착증 환자의 경우 뼈가 두꺼워진 골극이라던지, 황색인대가 두꺼워진 비후증, 오래된 디스크의 팽윤으로 인한 신경관 협착 등 각각의 경우에 맞는 원포인트 감압을 진행하면 정상조직을 보존하고 척추 불안정성도 해결된다.그렇지만 유합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척추의 불안정성이 심한 경우가 그렇다. 척추전방전위증이나 심한 척추의 변형 또는 불안정성이 나타날 경우에는 유합술을 시행해야 한다.■수술 후유증을 줄이려면 어떻게수술 후에도 기대했던 증상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아 통증이 남아 있거나 오히려 악화되는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신경유착, 재발성 디스크, 수술 부위 불안정성, 신경 손상, 심리적 요인 등이다.이런 후유증을 최대한 줄이려면 수술 전에 현재의 환자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술 전에 환자의 증상과 MRI 영상이 정확히 일치하는지, 신경학적 이상은 없는지 등을 잘 따져 보아야 한다. 또 환자의 보행시 허리, 골반, 무릎의 각도와 허리를 숙일 때 벌어지는 뼈가 있는지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충분한 재활과 생활습관의 교정도 중요하다. 인접마디 증후군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인 허리를 숙이는 습관을 가능하면 줄이는 것이다. 나사못으로 고정된 척추 위쪽에 퇴행변화가 오면서 인접마디 증후군이 나타나는데 전방 굴곡이 가장 안좋은 자세다.박 병원장은 “허리를 숙이는 자세를 반복하면 통증이 재발하거나 척추 불안정성이 심해져 재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대학병원의 재활의학과 교수는 땅에 떨어진 돈도 허리를 굽혀 줍지 말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골다공증 관리가 안되면 나사못 유지가 어려워질 수가 있다”고 지적했다.무심코 허리를 숙이는 자세 이외에도 땅바닥에 앉기, 소파에 기대기, 말랑한 침대에 오래 누워있기 등도 피해야 한다. 푹신한 침대에 오래 누워 있으며 허리를 숙이는 자세와 같은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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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포국수, 면면히 이어져 온 <br />음식이자 미래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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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포국수, 면면히 이어져 온
    음식이자 미래의 유산

    ‘구포국수’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구포국수는 우리나라에서 지명 자체로 유명 브랜드가 된 최초의 사례다. 구포국수는 국수 공장들이 대부분 구포시장 인근에 있었고, 시장 안에 국숫집들이 많아 ‘시장국수’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구포국수는 현재 체인점으로 서울 등 전국에서 찾아보기 쉬워졌지만 정작 고향에서는 위기에 처했다. 구포시장에 가면 국수 공장은 물론이고, 구포국수를 파는 음식점조차 만나기가 쉽지 않아졌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이 최근 발간한 학술총서 <구포와 밀의 만남, 구포국수>는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이 책에 수록된 국수 공장 대표, 노동자, 요리사, 평론가 등이 밝히는 구포국수의 숨은 이야기를 옮긴다. 예로부터 국수는 장수를 상징했다. 구포국수가 국수 면처럼 길게 이어지길 바라는 같은 마음이다.■구포에는 국수 공장 하나만 남아1960~80년대 30여 개나 되었던 구포의 국수 공장이 지금은 단 한 곳만 남았다. 곽조길 대표가 운영하는 ‘구포연합국수’가 유일하다. 곽 씨의 외조모 때부터 시작한 국수 업은 그의 아들 세대까지 4대째 이어지고 있다. 외할머니의 세 딸은 곽 씨의 어머니를 비롯해 모두 국수 공장을 했다니 참으로 끈질긴 국수의 인연이다.곽 씨는 “외할머니의 여동생 부부가 제분공장을 운영했는데 그 시절에는 배를 타고 밀양, 청도, 삼랑진에서 밀을 수매해 제분했다”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여기서 한국전쟁으로 인해 구호물자인 밀가루가 보급되기 전에는 국산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밀로 만든 구포국수 맛이 궁금해진다. 1988년에 시작된 구포국수 상표권 분쟁도 곽 씨의 작은이모부가 거북표 상표권을 특허청에 등록하면서 생긴 것이었다. 오랜 소송이 끝난 몇 년 후 고 씨는 세상을 떠났고, 거북표 상표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말았다.곽 씨는 “국수의 품질은 반죽이 좌우하는데 부드러운 밀가루를 쓸수록 밀 냄새가 덜 난다”라고 털어놓았다. 밀가루에 포함된 밀 껍질의 함양인 회분이 적을수록 식감이 부드럽다. 국수는 그날 날씨에 따라서 반죽을 어떻게 치고 어떻게 건조해야 하는지가 다르다. 그는 “다른 식품은 다 급속으로 말리지만 국수는 그렇게 말리면 다 부서진다. 적어도 24시간은 건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국수를 만들기에 이상적인 환경이 있다. 비가 오고 나서 바닥이나 바깥에 습이 차 있을 때 그 바람에 국수를 말리면 최적의 국수가 된다. 습기로 인해서 국수가 자기 몸의 수분을 은근하게, 서서히 빼면서 말려가는 과정에서 국수가 야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면 식당에서 “국수가 잘 안 삶아진다”라며 말이 많다니, 국수 참 쉽지 않다.■날씨 맞추는 국수 공장 노동자58년 개띠로 김해 대동 출신인 정무수 씨는 열아홉 살에 국수 공장에 발을 들여 국수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오랜 국수 공장 노동자 경험을 살려 지금은 경남 창녕에서 ‘숭어표 국수’를 운영하고 있다. 정 씨가 들어갈 당시에는 국수 공장이 신발이나 섬유 공장보다 업무 환경이 좋지는 못했지만, 숙식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좋은 일자리였다. 일이 힘든 만큼 급여가 높아 타지에서 온 사람도 많았다. 국수 공장은 보통 가족 단위로 운영되었지만 한 공장에 종업원이 한두 사람은 있었다. 숙식 환경이 좋지는 않아서 주로 공장 다락에 있는 숙소에서 생활했다.국수 공장 노동자들은 직업 특성상 별도로 배우지 않고도 하늘을 보고 일기를 잘 맞췄다. 습기가 있는 바람이 불면 비가 올 확률이 높아 생산을 중단하거나 국수를 실내에 들여놓아야 했다. 날씨가 건조한 봄에는 국수가 휘거나 잘 부러지기 때문에 암실에서 조정했다. 암실 주변으로 비닐을 감아놓고 외부 공기를 차단하면 휘어진 국수가 다시 펴졌다.구포국수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구포국수의 특징은 습기를 머금은 낙동강의 바람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정 씨는 “부산 시내 실내에서 하는 공장에서는 샛바람이 불면 ‘똥가리’가 많이 나는데, 구포는 낙동강에서 샛바람이 불어도 습도가 몰려오니까 그런 경우가 드물다. 바닷가도 괜찮다. 바닷바람이 불면 국수가 훨씬 빨리 마른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대개 실내에서 국수를 말리고, 밀폐된 저장실에서 숙성시켜 완제품이 8시간 만에 나온다. 재래식으로 숙성 시간을 거쳐서 완제품까지 24시간이 걸리면 식감이 좋아진다.■구포국수, 나의 운명이었네수많은 국숫집 가운데 단 두 곳이 구포국수와 관련해서 소개됐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의 ‘구포촌국수’와 구포시장의 ‘이원화 구포국시’가 그 주인공이다. 구포촌국수는 김해 대동면 안막마을 장터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노영자 씨가 1969년 간판도 없이 장터에서 국숫집을 열었다. 농민들이 새참으로 즐겨 먹었기에 면이 붇지 않도록 두꺼운 중면을 썼고, 육수를 따로 주전자에 담아 옮겼다. 이 방식은 일반 잔치국수와 다른 대동 안막마을 국수의 상징이 되었다. 영양사로 일하던 손녀 김향이 씨가 2000년에 가게를 물려받으며 부산 금정구 남산동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구포촌국수는 국수 단 한 가지만 고집한다. “다른 메뉴 하지 말아라. 하나만 해라. 이걸 더 잘해라”라는 노 씨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육수에 쓰는 멸치는 4종류 이상 들어간다. 큰 멸치, 중 멸치, 작은 멸치를 섞어야 조화로운 맛이 난다. 3일 정도 물기를 빼는 전처리 과정도 필수다. 그래야 육수가 텁텁하지 않고 깔끔해진다. 육수 한 주전자가 나오기 위해 12시간을 끓인다.단골이 개발한 구포국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국수는 삶은 다음에 찬물에 씻기에 면이 차갑다. 여기다 뜨거운 육수를 부으면 국물이 미지근해진다. 면 온도가 상온까지 올라오게 육수를 조금씩 부어 달래주는 게 좋다. 처음에 양념장에 비벼서 서너 젓가락 먹고 그다음에 육수를 부으면 진정한 온국수가 된다. 일단 육수부터 한 컵 따라 마시는 건 기본이다.‘이원화 구포국시’ 이원화 대표의 외할아버지는 구포국수를 만든 1세대다. 이 씨는 외가로부터 독립해 국수 공장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다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국수 공장의 자잘한 일을 도왔고 커서는 제면 공정을 맡기도 했다. 이 씨 가족은 국수 공장 일이 너무 힘들어 1980년에 공장을 닫았다. 이 씨도 수십 년간 다른 일을 하다, 운명처럼 다시 국수 가게로 돌아온 것이다.다른 공장들은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면을 뽑아내고 건조해 국수 완제품으로 나오는 데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씨의 아버지는 무조건 3일을 들였다. 반죽의 횟수를 늘리고 숙성 기간을 충분히 가질 때 면발이 더 쫄깃해진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이 씨의 어머니는 국수 포장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손가락 지문이 다 닳았단다. 이 씨는 자신의 국수 레시피를 주고 2006년부터 이원화 구포국시를 공급받고 있다. 완제품까지 3일의 원칙은 무조건 고수한다. 가게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고, 국수 대신 ‘국시’를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씨는 “5000원짜리 국수를 팔지만 5만 원짜리 상품을 제공한다는 마음으로 한다. 손님이 현금을 주시면 거스름돈은 신권으로 나간다. 좋은 재료로 좋은 음식을 대접하자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국수 면발처럼 길게 이어지길최원준 음식 칼럼니스트는 ‘부산 국수 문화사’라는 칼럼을 통해 구포국수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대표적인 것이 ‘삯국수 문화’다. 광복 후 부산의 국수 공장들은 서민들이 배급받은 밀가루를 가져가면 공장에서 삯만 받고 국수를 뽑아줬다. 국수가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소박한 음식이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는 사례다. 또한 1960~70년대 경부선 기차 안이 구포국수를 받아 김해, 밀양, 청도, 창녕 등 영남 전역으로 팔러 나가는 ‘구포국수 아지매’들로 가득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구포국수 아지매는 ‘재첩국 아지매’, 기장에서 동해남부선 열차를 타고 먹장어를 팔러 다녔던 ‘꼼장어 아지매’와 더불어 부산의 3대 아지매로 명성을 떨쳤다.부산근현대역사관 김기용 관장은 “구포국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근현대 부산 생활사의 중요한 단면이자 지역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구포국수는 과거의 추억이자 오늘의 음식이며, 앞으로도 이어질 문화다. 이번 총서가 시민들이 구포국수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구포국수는 2022년 부산의 미래 유산으로 선정됐다. 구포국수가 길게 이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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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도가 속삭였지, 멍하니 바라다보면, 마음의 멍도 사라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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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가 속삭였지, 멍하니 바라다보면, 마음의 멍도 사라진단다

    잘 쉬는 것도 능력인 시대다. 일정은 빽빽하고, 머리는 늘 바쁘다.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어디로 가느냐보다 어떻게 쉬느냐가 여행의 기준이 됐다. 관광지를 빠르게 훑고 사진을 남기는 여행보다,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이 더 중요해졌다. 이른바 ‘리커버리노믹스(Recoverynomics·회복경제)’다. 회복이 곧 소비가 되는 흐름이다.흐름의 중심엔 부산 바다가 있다. 부산은 지금 ‘보는 바다’에서 ‘쉬게 하는 바다’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치열한 도시의 속도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싶은 사람들에게 바다는 더 이상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몸을 맡기고 감각을 되찾는 공간이다. 바람을 느끼고, 파도 소리를 듣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경험하는 곳. 부산은 바다를 그렇게 다시 정의하고 있다.■“열심히 살수록 더 쉬어야 한다”어느 세대에게나 쉼은 언제나 필요한 경험이지만, 최근 가장 절실하게 휴식의 필요성을 외치는 건 2030 세대다. 젊은 세대는 빨리 지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비교는 더 쉬워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켜는 순간 타인의 삶이 쏟아지고 자연스레 내 삶과 비교가 된다. 그 사이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는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이들은 의도적으로 멈춤을 선택한다.젊은 세대는 열심히 사는 것과 충분히 쉬는 것을 동시에 추구한다. 휴식을 잘 취하는 능력은 곧 자기 관리 역량으로 인식된다. 회복은 더 이상 나태함의 징표가 아니라 의도된 선택이자 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은 회복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과 일상을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소비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휴식은 이제 소비 행위이자 자기 표현의 방식이다.무엇을 소유하느냐보다 무엇을 느끼느냐가 더 중요해진 시대. 그중에서도 회복은 가장 깊고 사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로 향한다. 바람을 맞고, 몸을 움직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통해 마음을 다시 정리한다.■부산 바다가 전하는 회복의 순간이 흐름을 가장 부산답게 풀어낸 것이 해양치유 프로그램이다. 부산은 이제 해양관광 도시를 넘어 ‘회복의 바다’로 변신을 시도한다.햇살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 광안리 해변. 요가 매트 위에 선 사람들은 파도 소리에 맞춰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고개를 들면 바다 위로 노을이 번지고, 시선을 내리면 모래 위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보인다. 부산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회복의 경험은 생각보다 다양하다.부산관광공사는 바다를 무대로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2026 부산 해양치유 관광 프로그램’을 이번 달부터 오는 10월 25일까지 매주 주말 부산 7개 해수욕장과 동백섬 일원에서 운영한다. 해변, 해안길, 공원 등 부산의 다양한 해양 공간을 활용해 몸과 마음의 균형과 회복을 돕는 체험형 관광 콘텐츠다.프로그램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초기 노르딕 워킹과 선셋 필라테스 중심이던 콘텐츠는 해변 요가와 싱잉볼 명상, 오션 러닝, 비치 바레, 사운드 워킹 등으로 확대됐다. 해변 요가와 선셋 필라테스는 파도 소리와 일몰을 배경으로 신체 균형을 회복하는 움직임 중심 프로그램이다. 오션 러닝은 해안 경관을 따라 달린 후 지역 F&B와 협업한 건강한 먹거리를 함께 즐긴다. 참가자들은 바다와 함께 움직이며 심신을 회복한다.특히 지난해에 비해 올해 새롭게 선보인 ‘오션 싱잉볼 라운지’는 해외 휴양지의 프라이빗 비치에서 영감을 얻었다. 웰컴드링크를 마신 뒤 바다를 바라보며 파라솔 아래 누워 아로마 향과 싱잉볼 소리 속에서 휴식을 경험한다. 바람과 향, 소리가 겹치면서 몸이 천천히 이완된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누군가는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를 품은 휴식 속에서 감각과 감정을 회복하는 콘텐츠다.당일 체험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1박 2일 ‘부산 오션 리트릿’도 도입했다. 해양치유 활동에 온천과 마사지 체험을 결합해 부산에 머무르며 여행하고, 운동하고, 피로를 해소한다. 길어진 체류시간만큼 깊이 있는 치유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해안길과 숲, 항구, 도심 등 부산의 고유한 소리를 채집하며 걷는 ‘부산의 소리를 담다’도 눈길이 가는 프로그램이다.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 바람 소리를 담아 자신만의 부산을 만든다. 눈으로 보는 관광에서 몸으로 느끼고 쉬는 관광으로의 변화다.참가자 반응도 긍정적이다. “익숙했던 광안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했다”거나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호흡하는 시간이 큰 위로가 됐다”는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 혼자 여행 온 관광객들이 프로그램 안에서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모든 프로그램은 별도의 준비물 없이 편안한 복장으로 가볍게 참여할 수 있으며 해변 요가, 선셋 필라테스, 오션 러닝, 싱잉볼 라운지 등 주요 프로그램 참가비는 1만 원으로 저렴하다.■쉬기 위해 부산을 찾는 여행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해양치유 프로그램은 코로나19 시기였던 2021년 처음 시작됐다. 밀집된 시내를 피해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당시 406명이던 참가자는 지난해 2254명까지 늘었고, 올해는 2500명 규모까지 확대될 전망이다.관광객들도 부산 바다의 매력에 빠지고 있다. 해양치유 프로그램 참가자의 37%가량은 타지역이나 해외에서 온 관광객이다. 타지역 참가자가 30%가량, 해외 참가자가 7%가량이다. 이제는 사람들이 부산 바다에서 쉬기 위해 여행을 온다.해양치유 프로그램은 해양레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비성수기에도 부산 바다의 매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여름철에 집중됐던 관광 수요를 봄·가을까지 분산시킨다. 올해는 체류형 관광 확대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요트·온천·마사지 등을 결합한 리트릿 프로그램은 숙박과 식음, 체험 소비까지 연결되며 지역 관광 소비 확대 효과도 기대된다.부산관광공사 관계자는 “앞으로는 해양치유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체류형 콘텐츠와 지역 관광, 로컬 브랜드가 함께 연결되는 방향으로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며 “발리나 치앙마이처럼 자연 속에서 웰니스 문화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도시들을 참고해 부산 바다를 ‘회복의 바다’로 가꿔 나가겠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먹고 즐기는 도시’였던 부산은 이제는 ‘쉬는 도시’라는 새로운 얼굴을 더하고 있다.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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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판 대신 결을 세운 곳, <br />달맞이길 숨은 보석 ‘에케’
    문화라이프

    간판 대신 결을 세운 곳,
    달맞이길 숨은 보석 ‘에케’

    붉은 벽돌 건물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석양 햇살이 긴 그림자를 내는 오후에 방문했더니 붉은 벽돌 위에서 나뭇가지 흔들리듯 일렁이는 빛 그림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여유로웠다. 건물 하부는 붉은 벽돌, 상부는 콘크리트 재질로 지어졌고, 마당 한가운데는 작은 정원을 넣었다. 크지 않은 5층짜리 건물인데 가장 낮은 쪽과 가장 높은 쪽이 10m 정도 차이가 나는, 삼각형 땅을 묘하게 살려서 지은 건물이다. 오죽했으면 건물 이름도 독일어로 모퉁이를 뜻하는 ‘에케’(ECKE)로 정했을까.2024년 10월 문을 열었고, 이듬해 8월 부산시가 발표한 ‘2025 부산다운 건축상’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부산 달맞이길의 숨은 보석 ‘에케’(해운대구 달맞이길 117번길 219)를 찾아갔다. 복합상업문화공간 ‘에케’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고, 그 안에서 큐레이션 리빙 편집숍 ‘에크루’(ecrue)도 운영하는 이효진 대표를 만나, 일상과 취향을 공유하는 ‘에케’의 어제와 오늘 이야기를 들었다.■‘느슨한’ 공동체를 꿈꾸는 ‘에케’“‘에케’를 오픈하고 1년까지는 정신이 없었어요. 이제 사계절을 다 지내봤으니까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저는 여길 한 번이라도 찾으셨던 분이,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기억되면 좋겠거든요. 어떤 여행지를 두세 번째 간다면 꼭 다시 들르고 싶은 곳이 있는 것처럼요. 온라인 홈페이지 개통과 판매를 주저하는 이유도, 일부러 찾아오고, 온 김에 그 옆 다른 공간에도 들렀다가 가면 좋겠다 싶어서입니다.”이 대표의 말 때문이었을까, ‘에케’는 단순히 상업 공간이 모인 집합체가 아니라, 이 대표와 오랜 인연을 이어 온 사람들이 ‘느슨한’ 공동체처럼 모여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대표는 ‘에케’를 구상할 때 “함께 나이 들고, 오래도록 기억을 쌓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단다.“건축을 처음 해 보는 거니까 엄청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설계부터 오픈까지 4년이 걸렸어요. 처음에는 2층짜리 단층 상가 건물을 생각했는데, ‘나도 함께하고 싶다’는 지인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갑자기 지하도 파게 되고, ‘스테이’까지 들어오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점점 규모가 커졌어요. 다양한 브랜드를 한 건물에 담아내려면 전체적인 방향 정리도 필요했어요. 저는 이 안에서 먹고, 자고, 보고, 쇼핑하고, 느낄 수 있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이 모든 것이 한 공간에서 일어나면 시너지도 있을 것 같거든요.”■‘에케’에서 만날 수 있는 브랜드현재 ‘에케’에 입점한 브랜드는 11개. 작게는 여섯 평, 큰 곳은 마흔 평 규모다. A호는 ‘치즈치즈치즈’ 3호점 브런치 카페, 그 옆 B호는 이곳을 설계한 라라호호건축사사무소, C호는 공예 작품과 빈티지 오브제를 다루는 ‘에크루’, D호는 한국인 아내와 일본인 남편 부부가 운영하는 예약제 일식당 ‘오라 스키’이다. 중정을 사이에 두고 E호는 다양한 전시와 팝업을 여는 ‘에임.히어’, F호는 1인 베이크 숍 ‘사이에 베이크’, G호는 아트워크 숍 ‘마니 델 갸또’가 이어진다.층을 달리하면 H호는 미쉐린가이드 그린 스타와 원 스타의 예약제 파인다이닝 ‘피오또’, I호는 일본 세라믹 브랜드 아리타재팬의 한국 공식 판매처 ‘1616 아리타재팬’, J호는 소파 가구의 라이프스타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펠리토’, 그리고 K호는 빈티지 가구와 하루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스테이 ‘아파트먼트풀 포룸스’이다. 스테이의 경우, 4개의 방마다 콘셉트를 달리하고, 덴마크, 독일, 프랑스 등 나라별로 다른 빈티지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일종의 ‘경험’을 파는 셈이다. 간간이 ‘에크루’나 ‘1616 아리타재팬’에서 파는 제품도 놓여 있다.“‘에케’라는 공간의 분위기를 크게 해치지 않는, 결이 맞는 분들이 함께하고 있어요. 사실 월세를 잘 내겠다는 병원 입주 요청도 있었지만, 우리가 그렸던 그림은 아니어서 거절했어요. 예를 들면, H호에 들어온 파인다이닝 ‘피오또’는 직접 운영하는 농장의 채소와 지역 재료를 활용한 코스를 구성하는, 자기만의 철학을 가진 곳이죠. G호의 ‘마니 델 갸또’는 고양이의 손이라는 뜻인데, 이 브랜드를 만든 분이 진짜 손재주가 좋아요. 감각적이고 위트 있는 소품을 참 잘 만들어요.”■아늑하고 힙한, 공간이 주는 힘H와 G, 무슨 암호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공간을 나타내는 호수 표기이다. 그러고 보니 건물 외부, 눈에 보이는 사인물도 콘크리트 담벼락에 써 놓은 ‘ECKE’라는 로마자 알파벳 네 글자가 전부이다.“사실 간판을 크게 하면 인식은 쉬운데, 우리가 생각하는 ‘결’과는 다른 방향이어서 최대한 자제했어요. 사인이 없더라도 모일 수 있는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요.” ‘에케’를 설계한 B호 입주자 라라호호건축사사무소 조호제 건축가의 말이다. 그는 “공간 건축이지만 지역적인 특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고민, 그리고 기존에 있던 주변 사람들과 조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에케’가 부산다운 건축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입체적인 도시경관과 자연 지형을 존중한 설계”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각각의 층이 도로와 직접 연결돼 다양한 방향에서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히 중정은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이어주는 공공 계단과 연결돼 지역 공동체(커뮤니티)의 유기적인 흐름을 만들어낸다.이 대표는 “설계를 의뢰할 때부터 가장 먼저 중정을 두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문을 열면 마켓이 펼쳐지고, 사람들이 벤치에 걸터앉아 공간을 즐기는 장면을 상상했거든요.” 작지만, 의미 있는 도시의 새로운 문화적 거점이 탄생한 배경이다.■수시로 열리는 전시·팝업 스토어‘에케’에 입주한 11개의 브랜드 중 대부분은 큰 틀에선 ‘고정’된 형식을 취한다. 공간 플랫폼이라는 성격이 말해주는 것처럼 E호 ‘에임.히어’는 방문할 때마다 ‘콘텐츠의 주인공’이 달라졌다. 그동안 회화, 주얼리와 조명, 디자인, 공예 전시 등을 다양하게 선보였다.지금은 ‘나무, 곁’이란 제목의 김수근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18일 시작한 이 전시는 부산에서 목선반과 도자기 작업을 하는 부부 공예가 ‘예누하’의 강진주(부인) 작가가 남편 김수근 작가를 위해 특별히 마련해 준 것이다. 강 작가는 “흙을 만지는 사람으로서 저는, 그가 나무라는 생명에 새겨온 고독한 시간을 이해한다”면서 “그는 매일 묵묵히 나무를 깎아 왔지만, 그 가치를 세상에 내놓는 일에는 늘 서툰 사람이었고, 그가 쑥스러움 뒤에 숨겨 두었던 나무의 내밀한 언어를 제가 빚어온 이해의 그릇에 담아보려 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3월 1일까지로, 오전 11시~오후 5시에 관람할 수 있다.이 대표가 운영하는 곳은 C호 ‘에크루’이다. 그가 여행이나 출장을 다니며 모은 빈티지 가구와 아기자기한 소품,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조명한다. ‘에크루’를 만들기 전에는 생활소품 브랜드 ‘코코로박스’를 만들어 이름을 알린 바 있다. 마지막으로 1년 4개월의 소회와 바람을 들려준다.“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굴러가는 거 같아요. 다만, 이 공간이 널리 알려져 좀 더 많은 사람이 와서 온기가 채워지길 바라요. 사실, 식당도 예약제여서 북적북적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주차 공간도 협소한 편이거든요. 지금 조성 중인 달맞이공원에서 언덕 쪽으로 에스컬레이터가 생기거나 지난해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개최한 ‘2025 행복작당’ 행사 때처럼 해운대 일대 명소를 도는 ‘셔틀버스’를 해운대구청 같은 데서 운영해 주면 참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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