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라이프

    "뭐라도 해야 뭐라도 된다"
    김성주 셰프의
    좌충우돌 세상 도전기

    ‘흑백요리사’나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 같은 요리 프로그램에 빠져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셰프의 꿈을 꾸게 된다. 미쉐린 레스토랑의 스타 셰프가 되어 세계 각국의 원하는 도시를 골라 일하며 여행자처럼 사는 삶은 얼마나 근사할까. 부산의 미쉐린 레스토랑 ‘율링’ 김성주(31) 헤드셰프는 젊은 나이에 미국과 일본 등의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은 실력파로 소문이 났다. 음식은 먹어 봐야, 사람은 만나 봐야 안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던 반항아, 심지어 말도 한마디 못 하면서 비행기부터 탄 대책 없는 사람일 줄은 미처 몰랐다. 지역의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라는 판단에 ‘김 셰프의 좌충우돌 세상 도전기’를 일인칭 시점으로 정리해 소개한다.“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나 김성주는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아이였다. 밤늦게까지 학교에 잡아두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른다. 그때 문득 요리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TV에서 본 기다란 모자를 쓴 요리사의 멋진 모습. 그게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요리학원에 등록하는 조건으로 ‘야자’에 빠졌다. 성과를 증명하지 않으면 다시 학교로 돌려보낼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금방 따 버렸다.남자가 4년제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부산의 한 대학 서양조리학과에 들어갔다. 대학에 와보니 정작 배우고 싶었던 요리 실습 과목이 너무 적었다. 요리까지 성적을 받기 위한 공부로 변질이 됐다는 느낌이었다. 1학년을 마치고 해군 취사병으로 입대해 동해 1함대 부산함에 배치받았다. 함정 생활은 태어나 처음으로 요리에 자신감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다.오전 6시 아침, 11시 점심, 오후 6시 저녁과 야식까지 매일 150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생활이 2년간 이어졌다. 일 욕심이 많았던 조리장 덕분에 배에서 초밥, 스파게티, 함박스테이크, 냉면 등 오만가지 요리를 했다. 혹독한 수련 결과로 칼질도 일취월장했다. 조리장이 똑같이 짠 메뉴인데 신기하게도 내가 요리하면 밥맛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나에게는 나도 몰랐던 손맛이 있었다.정신력이 부쩍 강해져서 돌아오니 대학 생활 또한 즐거웠다. 3학년에 올라와 과 대표를 하며 선배들도 많이 알게 됐다. 파크하얏트부산에 취직한 선배의 권유로 방학 때 처음으로 호텔에서 일을 했다. 호텔에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나와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한 형들이 외국인과 영어로 편하게 대화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요리사가 새삼 멋있게 느껴지고, 나도 꼭 미국에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학원까지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일찌감치 손을 놓은 영어 실력이 갑자기 늘 리 만무했다.어느새 졸업이 다가왔다. 호텔은 겪어봤으니 미국에 가서 레스토랑을 경험하기로 마음먹었다. 요리사들을 외국에 보내주는 회사를 통해 면접을 보고 샌프란시스코의 제일 오래된 원마켓 레스토랑에서 인턴십으로 일하게 됐다. 미국 생활은 입국 과정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산더미처럼 싸간 짐을 공항 보안요원이 산산이 풀어헤쳐도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미국 입국 2주 뒤부터 출근했지만 영어를 못 해 셰프 라인에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셰프가 냄새가 나는 고기를 주면서 처음으로 일을 시켰다. 정성껏 손질해 냄새가 심한 껍데기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살만 곱게 발라 가져다줬다. 그러자 셰프가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쌍욕을 하면서 화를 내는 게 아닌가. 껍데기를 분리해서 기름으로 만들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만리타향에 혼자 나와 욕까지 먹으니 서러워 눈물이 다 났다. 이게 다 영어를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영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을 물색했다. 다행히 레스토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대학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반이 있었다.가장 수준이 낮은 7레벨 반에 들어갔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참으로 다양한 나라 출신들이 모여 있었다. 매일 오전 7시부터 12시까지 꼬박 수업을 들었다. 그 뒤 오후 2시 반에 레스토랑으로 출근해서 10시까지 일하는 게 일과였다. 레스토랑에 가면 이날 배운 영어를 동료들한테 써먹었다.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 보자는 오기에 영어 실력이 팍팍 늘었다. 셰프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면서 레스토랑에서도 라인 앞으로 가게 됐다. 영어 실력은 일 년 만에 레벨 3까지 뛰었다(레벨 1, 2가 원어민 수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진짜 발악을 했던 것 같다. 그 욕쟁이 셰프는 나의 첫 요리 멘토가 되었다.월급의 절반은 미국의 파인다이닝(최고급 식당)을 돌아다니며 먹는 데 썼다. 매번 요리에 눈을 뜨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이런 멋있는 요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화려함 뒤에 숨은 어려움은 미처 보지 못했다. 일 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또 다른 나라를 경험해 보고 싶어졌다. 영국에 몇 번 지원했지만 비자 발급 자체가 어려워 아직은 인연이 닿지 않고 있다.그 뒤에 들어간 곳이 요즘 ‘냉부’ 출연으로 유명해진 손종원 셰프가 운영하는 서울의 라망시크레였다. 내가 들어가기 일주일 전에는 라망시크레가 미쉐린 1스타를 받는 행운까지 뒤따랐다. 라망시크레는 한창 각광받던 무렵 들어가 파인다이닝 요리의 기본기를 많이 배운 곳이 되었다. 사실 파인다이닝은 어디나 힘은 많이 들고 남는 것은 많지 않았다. 자기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지 않은 이상 하기 힘든 사업이었다. 파인다이닝 셰프가 내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것도 이때 처음 느꼈다. 2년간 재밌게 일한 뒤 다음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찰나에 여행 가서 너무 좋았던 일본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일본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일본 비자를 받고 준비를 하는 일 년 동안 요리를 쉬고 평소 관심 있었던 일을 하기로 했다. 첫 번째가 저렴한 프랜차이즈 커피집에서 일하기다. 요리사가 쓸데없이 시간 낭비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값진 경험이었다. 세상에는 1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나중에 내 가게를 운영하게 되면 이 경험이 무조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커피집 근무를 마치면 정육점으로 향했다. 그동안 소나 돼지를 많이 잡아보지 못해 육류를 다루는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일 년 동안 고기를 해체하며 정육처리 기능사 필기 자격증도 땄지만, 책에도 나오지 않는 것들을 많이 알게 된 보람이 컸다.일본에서는 가장 힘든 곳을 찾아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보자고 결심했다. 그러면 파인다이닝에 대한 미련도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찾은 곳이 도쿄의 미쉐린 레스토랑 세잔이었다. 세잔은 셰프가 영국인이고 직원들도 영어로 소통하니, 그동안 익힌 영어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내 맘대로 진로를 정한 뒤 세잔과 세잔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인스타를 모조리 뒤져서 DM을 보냈다. 자기소개와 함께 ‘세잔에서 꼭 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내용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아무런 인연도 없었던 분의 도움으로 영어 면접을 본 뒤 세잔에서 일하게 됐다. 나처럼 한국에서 무작정 연락이 와서 일하게 된 경우는 세잔이 생기고 나서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세잔이 아시아 최고 레스토랑 1위로 선정되고, 미쉐린 2스타에서 3스타로 승격되는 영광의 순간을 요리사로서 함께 했다.일본에 살다 보니 영어뿐만아니라 일본어도 필요했다. 그래서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해 일본어 시험에도 합격했다. 일본에 히라가나 가타카나도 모르고 와서 반년 만에 일본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내가 언어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수군거렸다. 세상에 무서운 게 없고, 뭐든 안 되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어처럼 부산으로 돌아와 뻔하지 않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다. 내 앞에 펼쳐진 많은 길이 보인다. 내년 이맘때의 나는 어떨까. 5년 뒤의 내 모습도 궁금해진다. 똑같지 않은 매일매일, 그게 나의 삶인 것 같다.PS.도전하지 않으면 내가 우물 안에 든 개구리라는 사실을 모른다. 언어? 난관에 부딪치면 나도 모르는 큰 에너지가 나온다. 어려움을 극복해 냈을 때의 성취감은 엄청나고, 세상에 못 할 일이 없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여행도 좋다. 뭐든 생각이 났을 때 나가서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 파인다이닝도 셰프의 각자 스타일이 있을 뿐이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나는 ‘노가다’도 해보고 카페나 정육점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꼭 요리가 아니어도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이것저것 뭐든 해보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요리를 하고 싶다.◆김성주 셰프 프로필201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원마켓 레스토랑(미쉐린 1스타)2020년 서울 라망시크레(미쉐린 1스타)2024년 일본 도쿄 세잔(미쉐린 3스타)2025년 부산 율링(미쉐린 셀렉티드) 헤드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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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MI 35 이상 고도비만 <br />환자는 수술 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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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MI 35 이상 고도비만
    환자는 수술 권유”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비만이 심장병, 당뇨병, 불임 등의 합병증 위험을 키울 뿐 아니라 암 발생률을 높이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고신대복음병원은 지난 2013년 국내 최초로 비만대사 수술 인증기관인 IEF인증을 받았고 2019년 6월 비만대사 수술센터를 개소한 바 있다. 센터를 이끌고 있는 서경원 위장관외과 교수는 국내에서 비만대사 수술의 선두 주자다. 비만대사 수술이 활발하지 않은 시기에 미국 UCLA 의과대학에서 수술법을 익혔고 세계적인 비만대사 수술 권위자인 대만의 황치곤 박사팀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서 교수는 “단순한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으로 회복할 수 없는 고도비만 환자를 위한 궁극적인 치료법으로 비만대사 수술이 추천되고 있다”고 말했다.인터뷰는 부산 사하구 다대포 해수욕장 해송 잔디광장에서 진행됐다. 웰니스 프로그램 운영업체 ‘놀핏’은 다대포 해수욕장 백사장을 무대로 노르딕 액티브 워킹, 사일런트 요가, 어싱 체험 행사를 활발히 열고 있다. 노르딕 워킹은 상체와 하체를 함께 쓰는데 비만과 탈장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전신운동이다.-비만과 고도비만은 어떻게 구분하나.“체질량 지수(BMI)로 비만 정도를 나눈다. 체질량 지수는 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체질량 지수가 25를 넘으면 비만이다. 비만 중에서도 체질량 지수 30 이상은 고도비만으로 분류된다. 임상현장에서 체질량 지수 30 이상이면서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같은 질병이 있는 고도비만을 ‘병적 비만’이라고 부른다. 35 이상이면 수술 적응증에 해당된다.”-비만대사 수술은 어떤 원리인가.“오래 전에 뚱뚱한 환자의 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했더니 살이 빠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개발된 수술이다. 일부러 소장을 절제하거나, 우회하는 수술을 통해 영양 흡수를 줄여주는 것이다. 나중에는 먹는 양도 줄이자는 개념이 나와 소장 우회 길이를 줄이고, 위장의 면적도 줄이는 두 가지를 병행하게 됐다. 비만대사 수술을 하고 나면 체중 감소뿐 아니라 혈당조절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당뇨병 치료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도비만 환자에겐 약물치료 효과가 없나.“이전에 나온 비만 치료약은 효과가 미미하거나 효과가 있더라도 요요가 너무 심했다. 그러나 근래에 삭센다 위고비 등 체중 감량에 효과적인 약제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거의 수술에 육박할 정도로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비만도가 40, 50에 이르면 약물치료로는 해결이 안된다. 우리 병원에는 비만클리닉에서 오랫동안 진료를 받고도 도저히 안되겠다 해서 수술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체중이 150kg 육박하는 환자는 먼저 약물치료로 체중을 줄여 복벽 두께를 얇게 만든 후에 수술을 시행하기도 한다.”-비만대사 수술은 우회술과 절제술이 있다고 하는데 환자에 따라 어떻게 적용하나.“루와이 위우회술은 위를 작게 절제해 소장을 끌어올려 위 주머니 부분과 연결해주는 수술이다. 영양분 흡수를 억제해 체중 감량효과를 얻는다. 소매 위절제술은 위의 왼쪽 아래 부분을 절제해서 위 용적을 줄여 음식 섭취를 제한하는 수술이다. 수술 난이도가 높지 않고 합병증 위험이 낮다. 위 조절 밴드술은 가수 신해철 사망사고 이후 수술 건수가 엄청나게 줄었고 지금은 위밴드를 생산하지 않는다. 위의 구조와 당뇨질환 유무, 환자 선호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환자와 의논해서 선택한다.”-수술 후 실제 체중 감량 효과는.“소매 위절제술은 수술 전 체중의 25~35% 정도 감량 효과가 나타난다. 루와이 위우회술은 30~40%이상 감량 효과를 얻을 수 있고 당뇨 혈압 등 동반질환의 개선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본인의 초과체중 절반 정도는 감량된다고 보면 된다.”-체중 감량 효과는 언제까지 지속되나.“수술 후 90% 이상의 환자가 1년 반~2년간 체중 감량 효과가 지속된다. 관리를 잘 하면 5년 이상 감량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30~40%에서는 체중 재증가, 즉 요요가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비만의 치료의 가장 핵심은 본인 스스로의 생활습관 개선이라고 하겠다. ”-수술 부작용은 어떤 것이 있나.“수술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출혈, 감염, 누공, 폐렴 등에 대해 유의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궤양이나 협착이 일어날 수 있고 음식물이 소장으로 급격히 이동하는 덤핑증후군이 유발될 수도 있다. 철, 칼슘, 비타민B12, 비타민D 결핍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챙겨야 한다.”-보험급여 적용 대상은.“국내에서는 지난 2019년부터 고도비만 환자의 비만대사 수술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보험 급여 적용 기준은 BMI 기준으로 35 이상이거나 30 이상이면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합병증을 동반한 경우에는 보험급여가 적용된다. 진료비의 20%만 본인이 부담하면 되는데 300만 원 이내다.”-수술 이후 혈당과 영양관리는 어떻게 하나.“외과에서 수술을 하고 나면 내분비내과와 협업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혈당과 지질관리를 해준다. 영양관리팀에서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보충 등에 대해 조언해 준다. 3~6개월마다 혈액검사와 영양상담을 하면서 정기적인 추적관찰이 필요하다.”-식습관과 생활습관 개선을 위해 당부할 말씀은.“음식을 소량씩 천천히 섭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영양관리를 위해 고단백 식사를 추천하고 탄산음료와 당분 높은 음식을 철저히 제한하는 것이 좋다. 근육량 유지와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해 규칙적인 운동을 생활화 해야 한다. 노르딕 워킹이나 맨발걷기는 아주 좋은 운동이다. 탈장 환자와 고도비만 환자를 위해 백사장을 활용한 노르딕 워킹 프로그램을 개발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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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의 밀면 다대기, <br />넣어 먹어? 빼고 먹어?
    문화라이프

    부산의 밀면 다대기,
    넣어 먹어? 빼고 먹어?

    여름은 밀면의 계절이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 밀면 장사는 여름 한 철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름난 밀면집 부산 동래구의 ‘사철냉면’이란 상호에는 우리는 다른 집과 달리 사계절 장사한다는 뜻이 담겼다. 택시 기사들이 즐겨 찾아 ‘택슐랭’에 선정된 서구 영남냉면밀면은 지금도 여름철에만 영업한다.최근 한 매체의 ‘부산 밀면 베스트10’ 선정 작업에 참여했다. 밀면의 계절을 맞아 최고 밀면 선정기 그 뒷이야기를 시원하게 풀었다.맛집 검색 플랫폼 ‘다이닝코드’에 따르면 부산의 밀면집은 총 632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10곳을 선정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밀면은 가격이 냉면의 절반에 불과하고, 동네마다 각자가 좋아하는 밀면집이 따로 있지 않은가. 이틀 간의 일정 중 기자가 참여한 첫날만 해도 영남냉면밀면(서구)-대가면옥(사하구)-삼성밀면(사상구)-개금밀면(부산진구)-사철밀면(동래구)-해운대 가야밀면(해운대구)-국제밀면(연제구) 등 7곳을 하루에 도는 가위 ‘토 나오는’ 수준의 일정이었다.베스트10 선정은 각자가 1~10위까지 순위를 매겨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패널끼리 함께 가서 맛보지 않았더라도 꼭 들어가야 할 밀면집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했다.기자는 연제구 국도밀면을 1위로 추천했다. 이곳의 밀면은 한 그릇에 단돈 4000원! 한 끼 식사 가격으로 부산을 넘어 전국 최저가가 아닐까 싶다.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육수와 면이 한 그릇에 1만 원씩 하는 유명 밀면집에 비해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곱빼기가 5000원인데, 단골만 찾는 ‘반곱’도 있었다. 한여름에 찾는 밀면, 시원하면서도 서민적인 분위기에 먹는 음식이 아니었던가.기자는 사실 결과보다 선정 과정에서 전문가 패널끼리 주고받았던 밀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흥미로웠다. 냉면으로도 이름난 유명 고깃집의 류나영 전 대표가 ”밀면에 든 다대기가 싫다. 왜 그렇게 다대기를 올려주는지 모르겠다. 나는 밀면을 받고는 다대기를 안 버무리고 그냥 육수만 먹었다”라고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는 또 “서울에서 밀면을 먹으러 갔는데 한약재 맛이 너무 많이 나서 못 먹겠더라. 부산 내호냉면에서는 맛있게 먹었는데 그 육수 맛이 많이 다른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음식강산>의 저자 박정배 작가도 밀면 육수에서 한약재 맛이 너무 난다며 동의했다. 밀면 육수의 한약재 맛, 그동안 “몸에 좋겠지”라며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먹었는데….그러자 음식평론가 최원준 시인은 외지인에게 자신의 밀면 먹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나섰다. 최 시인은 “나는 고명처럼 올려주는 다대기를 다 걷어내고 먼저 육수 맛을 본다. 그렇게 먹다가 다데기를 조금씩 섞어서 입맛에 맞춰 먹으면 된다. 안 그러면 육수가 너무 달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기자의 경우는 냉육수를 별도로 요청하는 편이다. 다대기가 들어가지 않은 원래 상태의 냉육수를 먼저, 그다음에 다대기를 푼 육수 맛을 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조선일보 김성윤 음식전문기자는 의외로 다대기에 호감을 표시했다. 김 기자는 “전 국민 대상으로 보면 냉면보다 밀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 같다. 밀면은 달착지근하고 쫄깃쫄깃해서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맛이 다 들어 있다. 다대기 넣은 게 낫고, 그거 없이는 안 먹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맛집 블로거 ‘울이삐’ 김지현 씨는 “대부분 주는 대로 먹지만 점차 다대기가 빠진 밀면을 왜 먹느냐는 파와 다대기는 따로 먹어야 한다는 파가 ‘부먹’과 ‘찍먹’처럼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것 같다. 새로 문을 열거나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하는 밀면집은 다대기 따로, 다대기 많게 혹은 작게를 선택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고메밀면이 대표적이다.한약재 맛이 나는 밀면 육수도 그 실상을 알고 먹는 게 낫다. 육수에 감초, 황기, 계피를 넣어서 한약재 맛이 난다. 한약재 맛이 나는 육수는 가야밀면이 원조로 꼽힌다. 최 시인은 “냉면에서는 메밀 향이 난다. 하지만 밀가루로 만든 밀면은 면의 품질도 좀 떨어지고 밀가루 냄새가 나자 한약재를 넣었고, 그게 인기를 끌면서 한약재 육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밀면의 최대 약점 중의 하나가 고명과 꾸밈이라는 견해도 귀담아들을 만했다. 류 전 대표는 “밀면의 면은 전분이 많아서 담았을 때 똬리가 예쁘게 안 떨어지고, 철퍼덕거리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최 시인은 “나는 밀면 위에 고명으로 올린 수육은 너무 터벅터벅하고 별 맛도 없어서 안 먹는다. 육수를 뺀 고기를 위에 올려서 그렇다”라고 말했다.그런데도 부산 사람들은 왜 여름만 되면 밀면집 앞에 줄을 서는 것일까. 김지현 씨는 “오래된 밀면집들은 대체로 육수가 달고, 면 익힘도 좋지 않지만 손님이 많다. 추억으로 먹는 집들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부산 사람들은 유명한 밀면집을 찾아가서 먹는 대신 자기 동네 자기 입에 맞는 집에 간다”라고 말했다. 음식 전문 김 기자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부산 대표 음식이라고 하면 돼지국밥과 밀면인데, 두 음식에 대해서 부산 사람들의 태도나 자세는 완전 달랐다. 돼지국밥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느껴졌고, 밀면은 소개하기 부끄러워하는 느낌이 엿보였다. 내가 보기에 밀면도 좋은 대중음식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최 시인은 “밀면은 최선의 음식이 아닌 차선의 음식이지만, 같은 값이면 넉넉하게 함께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공유의 음식이자, 같은 양이라도 값이 싸 여러 사람을 먹이는 배려의 음식이었다. 더 많은 부산 사람을 만나서 밀면을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미쉐린가이드는 지금까지 밀면을 외면하고 있다. 힘든 시절 우리를 지켜준 밀면이 좀 더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국제밀면, 대가면옥, 사철밀면, 춘하추동이 1~4위에 올랐다. 이들 밀면집들은 공통적으로 새로운 밀면의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4개 업체의 평균 밀면 가격은 8500원이었다. 박 작가는 “내호냉면, 가야밀면, 개금밀면 같은 1,2세대에 이어 요즘 인기 있는 이들 3세대 밀면집들은 실향민의 한과 서러움이 모두 빠져나간 채, 음식으로만 승부하는 시대의 세련된 맛을 내고 있다”라고 총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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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 이 산이 가을 풍경 맛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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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이 산이 가을 풍경 맛집이네

    통영대전고속도로의 장수IC에서 빠져나와 새만금포항고속도로를 달린다. 평범한 여러 산 너머로 갑자기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 두 개가 나타난다. 주변의 산은 사이좋게 비슷한 높이로 솟아있는데, 유독 두 봉우리만 위로 튀어나왔다. 저렇게 희한하게 생긴 산은 도대체 무엇일까.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특이한 전설을 떠올릴지 모른다. 악마가 대형 바위 두 개를 들고 가다 떨어뜨렸다거나, 고대 거인이 인간과의 싸움에서 패한 뒤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일지도 모른다.이 산은 전북 진안군의 명물 마이산이다. ‘말의 귀’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이름에서 유추해보면 알 수 있듯 위의 두 전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옛날 인간 사이에 섞여 살던 부부 신이 새벽에 하늘로 올라가려다 동네 주민에게 들키고 말았다. 부부는 등천하지 못하고 두 개의 봉우리로 변하고 말았다.이번 여행은 마이산의 신기한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코스모스, 노랑(황하)코스모스, 해바라기가 피어난 진안농업기술센터에서 인생 샷을 찍는 게 목적이다. 이미 이곳은 가을 사진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누가 가더라도 실패하거나 후회할 일은 없다.■세 가지 꽃 세 가지 풍경진안IC에서 내려 진안농업기술센터로 달린다. 가을이면 많은 블로거, 유튜버는 물론 프로, 아마 사진작가들이 인생 샷을 건지기 위해 출사하는 곳이다. 도대체 그곳에 무엇이 있기에 그들이 몰리는 것일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들판으로 향한다. 들판 너머로 마이산이 보인다. 직선거리로는 2km인 데다 앞을 가리는 건 하나도 없어 마이산은 바로 눈앞인 듯 시원하게 보인다. 다른 곳에서 보는 것과 다른 점은 딱 하나다. 봉우리 두 개가 겹쳐 하나만 보인다는 사실이다.이색적인 산 모습에 반한 채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들판 위로 올라서는 순간 “야!”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들판은 온통 코스모스 천지다. 앞쪽은 약간 끝물인 것 같지만 다른쪽은 여전히 꽃이 한참 피었다. 코스모스 꽃밭 한가운데로 걸어가서 마이산을 바라본다. 왜 이곳에 가을 사진을 찍으러 오는지 이유가 금세 드러난다.마침 대형 버스 두 대가 도착한다. 한 대에서는 부부, 연인, 친구, 동네사람 등 개별 관광객이 우루루 내리고, 다른 한 대에서는 값비싼 카메라를 손에 든 아마 사진작가들이 하차한다. 그들이 서둘러 달려오는 곳도 바로 코스모스 꽃밭이다.블로거로 보이는 한 젊은 여성이 삼발이에 휴대폰을 설치하더니 꽃밭으로 들어가 맑은 공기를 온몸으로 마시려는 듯 두 팔을 쭉 벌린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중년 여성 두 명도 ‘포토존’이라는 팻말이 세워진 꽃밭 안으로 들어가 밝은 표정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가만히 서서 코스모스 꽃밭과 그 너머 마이산을 바라본다. 가을을 대표하는 알록달록한 코스모스가 다양한 색으로 알록달록하게 핀 게 마치 동네 주민에 들켜 바위로 변해버린 부부 신이 올라가려던 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하늘나라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지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코스모스 꽃밭 하나만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기에는 시간이 아까울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곳에는 코스모스 외에 다른 꽃밭도 마련돼 사진을 더 찍을 기회를 제공한다. 코스모스 꽃밭 바로 앞에는 노랑코스모스 꽃밭과 해바라기 꽃밭이 각각 마련됐다.노랑코스모스는 사실 노랗다기보다는 주황색에 가깝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코스모스가 아니라 다른 꽃이라는 오해를 주기 쉽다. 좋은 사진을 찍는 데 꽃 이름을 오해하든 말든 상관은 없다. 이곳에서 마이산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의 느낌은 코스모스 꽃밭에서 찍은 사진과 완전히 다르다. 코스모스 꽃밭이 조금 친근하고 소박한 소녀 같다면 이곳은 다소 도도하고 근엄한 귀부인이라고나 할까. 물론 사람마다 날씨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으니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다른 건 당연지사다.해바라기는 화사하게 피긴 했지만 아직 다 익지 않은 듯 약간 푸르고 싱싱하다는 느낌을 준다. 누렇게 익은 해바라기를 본 경험은 더러 있지만 이렇게 아직 어린 분위기를 주는 꽃은 처음이다. 마침 해가 마이산 반대편 쪽에 떠 있어 해바라기도 마이산을 바라보지 않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다. 마치 말다툼한 두 연인이 토라져 등을 돌린 형상이다. 그래도 사진 찍기에는 이런 모습이 나아 보인다. 해바라기가 마이산을 바라본다면 마이산 사진을 찍을 때 해바라기는 얼굴이 아니라 뒤통수만 보이기 때문이다.마이산을 배경으로 세 가지 꽃의 세 가지 풍경을 찍다 보니 엉뚱한 생각이 든다. 센터 쪽에서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마이산 두 봉우리가 겹쳐 하나로 보인다. 사진을 찍을 때 봉우리 하나보다는 두 개가 더 멋져 보일 텐데 아쉽다. 그래서 산 바닥에 바퀴를 달아 가을에는 두 봉우리를 센터 쪽으로 돌려 사진이 더 훌륭하게 나오도록 만들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허상이다.세 가지 꽃의 세 가지 풍경을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면 이제 저수지를 보러 갈 때다. 센터에는 ‘반달’이라는 뜻의 반월제라는 저수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마이산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이 또 멋지기로 유명하다. 센터에서 볼 때 마이산은 서쪽이어서 해가 질 때 사진을 찍으면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지금은 한낮이어서 일몰 사진은 촬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연잎이 둥둥 떠다니는 저수지와 마이산을 한 컷에 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마이정원과 탑사진안농업기술센터에서 마이산을 배경으로 세 가지 꽃과 저수지를 구경했다면 이제는 직접 마이산으로 갈 차례다.마이산에 올라가기 전에 두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진을 찍으려면 마이산북부예술관광단지 제1주차장 쪽의 마이정원으로 가야 한다. 이곳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편안하고 느긋한 가을 산책을 즐기려면 마이산도립공원 제1주차장으로 달려가면 된다.마이산도립공원 제1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나타난다. 잎이 무성해서 한여름에도 충분한 그늘을 드리워준다. 아직 가을이 깊지 않아 잎이 완벽히 단풍으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가을 향기가 서서히 퍼진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숲길 한가운데에 저수지 탑영제가 나타난다. 그 뒤로 마이산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진안농업기술센터나 마이정원 쪽에서 바라보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냥 큰 바위 덩어리처럼 보인다.저수지 인근에는 돌탑이 보인다. 이곳에는 탑사로 올라가는 관람객이 돌을 쌓아 탑을 만들 수 있는 ‘돌탑체험장’이 있다. 관람객들이 쌓아올린 크고 작은 돌탑은 한두 개가 아니다. 탑 하나하나마다 모두의 정성과 기원이 담겼다.숲길을 따라 개울도 흐른다. 나무덱이 만들어져 개울을 따라 걷기도 편하다.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시멘트를 발라놓은 산책로보다 훨씬 아름다운 길이다.숲길의 끝은 오늘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탑사다. 마이산 두 봉우리 아래에 수많은 돌탑이 있다고 해서 탑사라고 불린다. 돌탑을 쌓은 사람은 19세기 이갑룡 처사였다. 원래 돌탑은 120개 정도였지만 지금은 80개만 남았다.마이봉 아래에 파묻혀 따스한 가을햇살을 받는 탑사의 풍경은 특이하다. 사찰이 풍경의 핵심인지 돌탑이 이곳의 주인인지 단언하기 힘들 정도로 돌탑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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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판매·치유… <br />비상 꿈꾸는 장애인 예술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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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판매·치유…
    비상 꿈꾸는 장애인 예술 사업

    경남 양산 동면에 자리 잡은 느티나무의사랑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나의 공간이 가진 이야기만으로도 한 페이지를 채울 만큼 많은데, 큰 덩어리로 나누어도 8개이다. 장애인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 ‘아틀리에 올모’라고 불리는 갤러리, 장애인 작가 대상 공모전과 작품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예술 기획사, 장애인 작가 굿즈를 판매하는 아트숍, 전국구로 통하는 제조 공장, 원예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농장, 신선한 재료로 빵을 만드는 베이커리, 통창으로 자연과 대화하는 카페, 브런치 맛집으로 통하는 레스토랑까지 모두 느티나무의사랑 안에서 함께하는 곳이다.■30년 제조 공장의 도전과 비상느타나무의사랑 시작은 제조 공장이다. 양산 동면에 있는 공장에선 전국에 납품되는 기념품을 제작한다. 에코백, 장바구니, 담요, 여행용 세트, 머그컵, 돗자리, 파일집, 텀블러, 앞치마 등 수백 종에 이른다. 회사 제작 상품을 소개하는 인터넷 페이지가 계속 넘어갈 정도이다.명문대 공대를 졸업한 정선희 대표는 20대에 우연히 제조업과 인연이 닿았고, 30여 년 업계 톱 클래스로 자리 잡았다.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로 승부했다. 공장을 운영하다 보니 장애인 고용 장려금과 분담금 등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상품 포장 분야에 장애인을 고용했는데 집중력도 높고, 알려준 방식 그대로 일하는 것이 좋았다. 장애인 고용을 늘리며 장애인 표준 사업장이라는 인증이 따라왔다.장애인이 일하기 좋다고 소문나며 장애인 부모들이 찾아와 아이의 재능을 활용할 방법을 물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장애인 작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념품에 장애인 작가의 그림을 활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장애인 작가들이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작업장이지만 갤러리를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로 꾸몄고, 매월 한 개 이상의 작품을 제출하면 월급을 줬다. 미술 재료도 제공했고, 작가들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작업장에 상주하는 작가 선생님도 고용했다.현재 정 대표는 부산 해운대구를 시작으로 경기도 일산, 부천, 하남, 용인시와 인천까지 6곳의 장애인 창작 공간을 운영 중이며, 280명의 작가가 등록돼 있다. 주요 증권사와 은행, 대한항공, 현대스틸, YBM, 금호석유화학, 한화, 세방 등 30여 곳의 기업들이 창작 공간 협력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장애인 창작 공간을 지원하면. 장애인 분담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 아쉬운 건 부울경에선 리노공업 한 회사만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 주요 기업들을 찾아갔지만, 정 대표는 퇴짜를 맞았다.현재도 서울 수도권 주요 기업들이 파트너 협력사로 참여하기 위해 대기 중이다. 창작 공간별로 매칭하는 회사 횟수가 정해져 있고, 새 공간을 만들어야 대기하는 회사와 연결이 된다. 해운대 지점이 가장 먼저 시작했지만, 이후 줄줄이 수도권에 생기고 있다. 서울, 수도권 기업들만 협력 사업체로 신청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부울경 지역에 새로운 장애인 창작 공간을 만들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이유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 올모의 활약장애인 창작 공간을 비롯해 예술 관련 활동은 느티나무의사랑 소속 올모(OLMO)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올모는 스페인어로 느티나무라는 뜻이며 동시에 네 가지 단어인 ‘OPEN’(열린 마음,열린 공간), ‘LEAP’(지속 가능한 사회적 주체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 ‘MASTER’(예술적 재능 키움), ‘OVERCOME’(한계 극복)의 줄임말이기도 하다.창작 공간 이름도 올모이며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는 아틀리에 올모이다. 전국 장애인 대상 작품 공모전도 올모이며, 등록 작가의 작품으로 기업체 공간을 꾸며주거나 작품 대여, 구독 서비스도 예술기획 올모가 진행한다.정 대표의 본업인 제조 공장은 등록 작가들의 작품을 아트 상품, 생활용품으로 변신시킨다. 느티나무의사랑에 소속된 전문 디자이너들이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활용할지 정한다. 전문가들의 손길을 거쳐 나온 아트 상품과 생활용품은 올모 굿즈숍에서 판매된다. 디자인도 예쁘고 마감과 기능까지 뛰어난 상품들이 3000원에서 시작해 대부분 만 원 이하이다.작가들이 매월 제출하는 작품은 기업체 공간 꾸미기, 작품 대여, 개인 맞춤형 구독 서비스로 활용된다. 기업들은 올모의 대여 서비스를 이용해도 장애인 의무 고용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느티나무의사랑에 있는 아틀리에 올모는 상시로 작가의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원예 치유· 착한 먹거리도 만나요느티나무의사랑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양산 라벤더 농장, SNS 촬영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5월이면 라벤더가 산 전체와 농장을 보랏빛으로 물들인다. 라벤더를 비롯해 수국, 소나무, 관상용 나무까지 느티나무의사랑은 산책하며 힐링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조부모와 부모는 벤치에서 자연과 아이를 바라보는 장면이 많다.사시사철 햇살이 들고 능선을 따라 바람이 내려오는 이곳은 농장을 운영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정 대표는 몇 년 전 원예 치유 공부를 시작했고 올해 본격적으로 원예 치유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하고 농장에서 명상, 요가를 하거나 원예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맞춤형 프로그램부터 단체 프로그램까지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해 참여할 수 있다.원예 치유 프로그램과 체험 프로그램은 어린이, 청소년 체험 학습으로도 인기가 많다. 보통 화분 꾸미기 혹은 식물 심기로 끝나는 원예 체험이 아니라 자연의 숨소리를 느끼고 자연이 주는 힐링을 경험하게 하는 느타나무의사랑 프로그램은 연령대 관계없이 호응이 아주 좋다.건강한 자연 재료로 매일 만드는 빵을 선보이는 베이커리,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차와 음료가 있는 카페, 색다른 브런치로 인기 많은 레스토랑도 느티나무의사랑에서 즐기는 힐링 공간이다.사실 장애인 창작 공간, 굿즈 판매, 작품 대여와 공모전, 베이커리와 카페 운영으로 수익을 내는 것 여전히 어렵다. 정 대표는 “제조 공장으로 벌어서 느티나무의사랑에 퍼주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행복하고 그걸 보는 나 또한 행복하므로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감동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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