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세상톡톡] 오타니가 낫나, 최동원이 낫나
논설위원
전인미답 기록 제조기 오타니는
과학과 만난 재능의 폭발적 만개
영원불멸 전설로 남은 최동원은
육체와 정신의 한계점 초월 증명
"마, 한 번 해 보입시더."
불리한 환경은 극복의 대상일 뿐
야구도시 부산 만든 최동원의 힘
부산 이끌 리더십이 본받을 덕목
지난해 전인미답의 경지인 50홈런-50도루 클럽 가입을 이루고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을 두 해 연속 일궈낸 오타니 쇼헤이는 천재다.
지난해 오타니가 인간이 다시 넘보기 힘든 호타준족의 극치를 보여줬다면 올해 오타니는 리그 챔피언 결정전 무대에서 투타 겸업을 하며 한 경기 1승 3홈런을 기록해 야구의 문법을 새로 정립하고 있다. 인간이 투타 겸업을 할 수는 있지만 투수로서도 타자로서도 모두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초창기에 베이브 루스 등 몇몇 전설들이 투타 겸업으로 호성적을 보인 바 있으나 지금과는 야구 수준이 천양지차라 비교가 불가능하다. 오타니는 그의 천재성으로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본질을 새로 묻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당분간 야구 팬들은 오타니가 이끄는 새로운 문법의 야구에 열광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인 1984년으로 시간을 되돌리면 한국에서도 오타니처럼 야구 팬들을 흥분시킨 존재가 있었다. 야구도시 부산을 만들고 그의 이름만 들으면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부산 팬들의 피가 끓게 만드는 그 존재는 바로 자이언츠의 최동원이다. 그는 한국프로야구에서 역대 최고 선발 원투 펀치라 불린 라이온즈의 김시진-김일융을 상대로 혼자 4승을 일구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국야구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나 당시 야구에 낯선 요즘 세대들은 그가 일곱 경기에서 혼자 투수로서 4승을 이끌었다고 조금 놀라지만 그런 그가 일곱 경기 중 다섯 경기 마운드에 올라 1패까지 있었다는 사실을 얘기하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심지어 당시 최동원은 전성기조차 지난 상태였기에 그는 던져서 이기는 투수가 아니라 ‘이길 때까지 던지는 투수’라는 투혼의 상징이 됐다.
오타니의 한 경기 1승 3홈런이나 시즌 50-50 클럽 가입과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4승 1패 중 어느 쪽이 더 위대한가. 두 선수가 뛴 리그의 수준이 다르고 41년의 세월이 사이에 있는 만큼 야구의 양상도 많이 다르기에 단순 비교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이가 위대함의 개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는 있으리라 본다.
오타니의 기록은 야구가 기술과 시스템을 통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천재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재능이 과학과 체계적인 조화를 이룰 때 어떻게 폭발적으로 꽃을 피우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터이다. 반면 최동원의 기록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어디까지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증명에 가깝다 할 것이다. 그의 기록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투혼이 새겨져 있었기에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4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산이라는 도시가 야구 이야기만 나오면 피가 끓도록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 당시 자이언츠 강병철 감독이 무리하게 나홀로 등판을 맡겼을 때 “마, 한 번 해 보입시더”라는 말만 남기고 마운드에 올랐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적셔진 그의 이 말은 투박해 보이지만 용기와 헌신, 책임감, 도전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언사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역시나 그렇게 드러나는 덕목들은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과도 대부분이 겹친다 할 수 있다.
리더는 용기, 헌신, 책임감, 도전정신을 토대로 설득을 해내고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추종자들의 참여와 반응을 이끌어내고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추종자들이 리더에게 동의하고 참여하며 적극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리더가 얼마나 그런 덕목들을 충실히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 야구를 열광적으로 추종하는 부산 팬들은 최동원이 보여준 덕목에 설득을 당하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매료돼 버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부산을 기어이 야구도시로 만든 최동원의 전설적 리더십을 보노라면 부산의 다른 분야에서도 이 같은 리더십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특히나 부산은 ‘노인과 바다’라는 비꼼이 팽배할 정도로 갈수록 활기를 잃고 있어 다시금 도시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할 리더십의 필요성이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해양수도와 금융중심도시 실현 같은 도시의 미래 구축부터 가덕 신공항 건설 같은 인프라 마련에 이르기까지 부산을 둘러싼 대외적 환경은 불리하기 짝이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최동원이 누가 봐도 패배가 유력한 환경을 나홀로 이겨냈듯이 부산을 이끄는 혹은 이끄려는 이라면 불리한 환경을 이겨내려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야 마땅하다. 그런 이들이 “마, 한 번 해 보입시더”를 외치고 진짜 리더십을 보여줄 때라야 부산은 야구도시를 넘어서는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내년 부산시장 선거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