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스페인 음악의 재기전, 파야 '허무한 인생'
음악평론가
마누엘 데 파야. 위키미디어
이베리아반도는 기존의 기독교 문화에다 이 지역을 오랫동안 점령한 이슬람 문화가 섞여 있고, 집시의 플라멩코까지 유입되면서 유럽 음악의 용광로 같은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안달루시아, 카탈루냐 등 지역별로 다양한 리듬과 색채감 강한 선율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던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배하면서부터 유럽에서 주도권을 잃어간다. 이후에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에게 점령당하고, 드넓은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도 상실하면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이에 크게 각성한 스페인 음악가들은 때마침 불어닥친 민족주의 음악 물결에 다양한 방식으로 동참했다. 이사크 알베니스 ‘이베리아’, 엔리케 그라나도스 ‘고예스카스’, 마누엘 데 파야 ‘허무한 인생’ 등의 걸작은 이 암담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 1876~1946)는 1905년에 첫 번째 오페라 ‘허무한 인생’(La Vida Breve)으로 공모전 대상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사랑에 배신당한 집시 처녀가 남자의 결혼식장에 쳐들어가서 울다가 슬픔을 못 이겨 숨을 거둔다는, 전형적인 신파조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진부한 얘기를 플라멩코 춤과 노래로 채워서 몰입하게 만든다. 1913년 프랑스 니스에서 초연한 후 유럽 음악계에 스페인 현대음악의 존재를 알린 신호탄이 되었다. 비제의 ‘카르멘’이 스페인풍의 프랑스 오페라였다면, ‘허무한 인생’은 스페인 작곡가가 쓴 진짜 스페인 오페라로 평가받았다.
1907년에 파리로 유학길에 오른 파야는 거기서 뒤카, 드뷔시, 라벨 등과 친분을 쌓았다. 1915년에 무용극 ‘사랑은 마법사’를 발표하고, 1919년에 러시아 발레계의 거물 세르게이 댜길레프와 함께 발레음악 ‘삼각모자’를 초연하여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스페인으로 돌아온 그는 가르시아 로르카와 함께 플라멩코 음악의 부흥에 앞장서며 민족음악을 이끌어갔다. 이후 프랑코 정권이 들어서자 아르헨티나로 건너가서 살다가 1946년 11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스페인 춤곡 1번은 파야의 출세작인 ‘허무한 인생’에 나오는 멋진 음악이다. 원래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으로 만들어졌지만, 인기가 좋아서 바이올린 독주 버전, 기타 버전, 오케스트라 버전 등 매우 다양한 악기로 편곡되었다. 악기마다 다른 편곡의 묘미를 비교하면서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파야는 말했다. “스페인은 자기 자신을 음악 속에서 찾아내야 한다. 스페인의 영혼은 궁정이 아니라 민중의 노래 속에 있다.” 우리 역시 새겨둘 만한 말이다.
파야 : 스페인 춤곡 1번 - 에카테리나 자이체바, 마르타 로블레스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