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가해자도 피해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폭행을 당해보길 바란다
김 형 편집부 차장
그는 직장 내 폭행과 폭언의 피해자이다. 믿었던 상사에게 상습적으로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 술자리만 되면 그 상사는 늘 그를 때리고 모욕했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자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며 일상을 이어갔다.
가해자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선 피해자의 얘기를 하기 전에 “아무런 이유 없이 폭행과 폭언을 당해봤는가? 그것도 같은 직장 동료들 앞에서?”라고 묻고 싶다. 피해자의 마음을 좀 더 헤아려보자는 취지이다. 그리고 그는 늘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가해자도 피해자가 겪은 똑같은 방식으로 폭행과 폭언을 당해보길 바란다.”
피해자인 그의 일상은 폭력과 폭언을 당하는 순간 180도 달라졌다. 그가 겪은 가장 절망적인 점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다. 이유 없이 폭행과 폭언을 당했는데 “쟤는 왜 가만히 있을 수 있어?”라는 시각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데. 그는 지렁이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다른 동료들에게 폭력과 폭언 없는 문화를 전해주고 싶은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의 삶을 짓누른다.
이로 인해 관계의 단절이 생긴다. 그는 다른 동료들 앞에서 얼굴 들고 다니는 게 너무 부끄럽다. 격려의 말도, 응원의 말도 그리고 위로의 말도 전하기가 두려웠다. 동료들에게 말 걸고 웃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난 직장 내 폭력과 폭언에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야 하는 나약한 사람이니” 월급만 받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월급충’이라 자책한다.
그리고 업무의 단절도 쉽지 않은 일이다. 예전에 그는 열심히 했고 큰 상도 받았다. 그러나 폭행과 폭언을 당한 순간, 그는 일에 대한 의지를 잃었다.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해자가 그의 업무를 평가한다는 사실이다. 공정하고 올바른 평가가 가능할 리 없었다. 그 사실이 그에게는 소름 그 자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폭행과 폭언을 겪으며 자신을 바라보던 관점이 무너졌다. 다시 말해 정체성의 상실이다.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인가?”라는 자기 인식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그는 더 이상 직장을 성장의 공간이 아닌, 존재 의미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소로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가해자를 보면 자아 상실이 더 심해진다.
위 사례는 대다수 피해자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각색한 글이다. 이러한 이유로 피해자 10명 중 9명이 퇴사한다. 그런데 통계적으로도 가해자 대다수는 퇴사하지 않고 남아 있다. 이러한 불공정한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당연하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그래서 앞서 가해자도 피해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폭행과 폭언을 당해 봐야한다고 얘기했다.
어쨌든 그는 수치스럽지만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은 없다. 그만 두는 순간 좋은 건 가해자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당히 남아 조직 내 폭행과 폭언이 사라질 때까지 하나의 증거로 남고자 한다. 가해자가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다만, 조직 내에서 피해자인 그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동료들도 많다. 진심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조직 내 폭행 폭언 가해자들은 발 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가해자에게 평생의 ‘주홍글씨’를 달아주고 싶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