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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당신의 AI 생활, 안녕하십니까?
챗GPT 3.5버전이 국내에 소개된 지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생성형 AI(인공지능)라는 낯선 이름과 달리 친근한 대화 방식으로 궁금증을 해소해 주던 AI는 이제 텍스트, 음악, 목소리, 이미지, 영상 등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글이 무료로 서비스하는 제미나이(Gemini)와 이야기 나누다 보면 마치 친근한 조언자가 생긴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미국 업체들이 주도하던 AI 경쟁에 최근에는 중국 딥시크(Deepseek)가 도전장을 내밀며 파란을 일으켰고, 수많은 업체의 서비스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경험 삼아 AI를 이것저것 활용해 보는 기자의 컴퓨터에는 알고리즘에 의해 새로 등장한 AI 서비스를 소개하는 기사와 영상이 자주 뜹니다. 과장을 좀 보태면 아무 아이디어 없는 사람도 AI만 잘 활용하면 업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영상 공유 플랫폼으로 수익도 적잖이 올릴 수 있다고 홍보하는 내용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던가요. 너무 많은 AI 속에 정작 내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고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AI에 대한 인식을 정립해 보고 싶었던 기자는 최근 구글이 온라인으로 시행하는 AI 강좌를 수강하기도 했습니다. 구글 관계자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AI를 알면 알수록, 중요한 것은 이용자의 정보 수준과 명확한 의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프롬프트에 써넣는 질문이나 명령의 수준이 AI가 내놓는 결과물의 품질을 좌우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프롬프트 질문이나 요청은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요구 사항을 최대한 상세히 넣어줘야 이용자가 원하는 선에 근접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경력 20년이 된 디자이너입니다”하는 식으로 페르소나를 부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좋은 질문으로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있다고 해서 내가 만든 것처럼 그대로 사용하면 윤리적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AI가 내놓은 답을 참고로 본인의 독창적인 관점이나 창의력을 더해야 최선의 결과물이 나옵니다. 만일 AI 결과물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AI 활용 사실을 명시해야 합니다.
AI 서비스는 내 일을 도와주는 비서나 동료일 뿐, 결코 나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자기 주도적 활용’입니다. AI가 내놓은 1차 결과물에다 계속 질문과 요청을 더해가며 최선의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수정과 첨삭을 반복해야 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AI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더 빠르겠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지만, 인간이 AI를 주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결과물의 품질과 업무 효율 모두를 높여줄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AI를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용자가 되려면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까요. 구글 강의를 들으면서 기자는 세부 정보를 아는 것보다, 맥락을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식보다는 지혜인 것입니다. 내 일과 관심사에서 AI를 어떤 조력자로 활용할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프롬프트에도 얻고자 하는 결과물의 맥락을 감안해 질문과 요청을 써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주도적 활용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관심과 경험이 누적되면서 지혜는 저절로 쌓일 테지요.
AI가 지금보다 더 대중화되고,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면 지금까지 고소득 전문직으로 여기던 변호사, 프로그래머, 회계사 등의 직업군에서 신규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일부 전문가는 말합니다. 업무 속에 잠재된 패턴이 확실한 직업일수록 AI로 대체하기가 쉽다는 설명입니다. 이런 비즈니스 용도뿐 아니라 창작 영역에서도 AI가 쓴 소설이 출판되고, AI가 그린 그림이 경매에 나오는 시대입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일, 사람끼리의 온전한 감정과 손길이 오가야 하는 일이 살아남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합니다.
이런 거대한 변화 속에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이미 이 변화를 충분히 활용하는 쪽과, 전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쪽이 나뉜다는 점입니다. 이 칼럼을 보면서도 이미 다 아는 얘기라고 시시하게 생각하는 쪽과 그 반대쪽이 있을 것입니다. 일과 생활의 여유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로 받아들이고 조금씩이라도 활용해 보면서 친근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남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더 충만하게 할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AI는 좋은 동료가 될 것입니다.
이호진 모바일국장 jiny@busan.com
2025-02-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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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이토록 폭력적인, 이토록 아름다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현직 대통령이 지난 1일 관저 앞 지지자들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보면 계엄에 이르게 된 논리 흐름은 이렇습니다.
‘투·개표 부정과 특정 정치세력이 장악한 여론조사 조작으로 거대 야당 출현→주권 침탈 노리는 외부 세력과 거대 야당 야합→국회 독재로 입법·예산 봉쇄→국정 마비, 헌정 질서 붕괴, 반국가 행위→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이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경고하기 위해 ‘소규모 미니 병력으로 초단시간 계엄’을 했다고 항변합니다.
지난 칼럼에서 기자는 윤 대통령의 확증 편향과 인지 부조화의 원인으로 극우 유튜브를 꼽았습니다. 지난 19일 새벽에는 극우 유튜버와 극렬 지지자들이 법원을 찾아가 사상 초유의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닥치는 대로 깨고 부수며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판사를 수색하는 장면이 그들의 영상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온 국민이 12·3 계엄 사태에 맞먹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피의자·피고든 법원 판단에 불만이 있어도 ‘일단 승복할 수밖에 없지만 향후 수사와 재판에서 다투겠다’는 한결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 상식입니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면 아무리 억울해도 따릅니다.
윤 대통령도 법치를 누차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판사, 다른 법원이 여러 차례 정당하다고 판단했는데도 체포영장부터 구속영장까지 위법·부당하다고 항변합니다. 이런 입장이라면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오더라도 수긍하지 않을 태세입니다. 이미 서부지법을 망가뜨린 일당은 헌재를 다음 목표로 삼았습니다.
서부지법 폭동의 충격과 동시에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첫 탄핵 표결이 여당의 투표 불참으로 무산된 12월 7일, 이 혼란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안에 떨고 하루가 지났을 때 스웨덴 한림원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소설가 한강이 한 말입니다.
돌이켜 떠올려 봅니다. 지난해 12월 3일 국회에 투입됐을 때 일부러 시간을 지체하며 소극적으로 임했던 계엄군, 지난 15일 한남동 관저에서 차벽으로 쌓은 버스에 열쇠를 남겨두고 경호처 차장의 설득에도 대기동을 벗어나지 않았던 경호관들, 여의도 국회 앞과 광화문, 한남동 관저, 헌재 앞, 그리고 부산 서면과 대구 동성로 등 전국 곳곳에서 아껴둔 빛을 밝혀온 젊은이들. 민주화 이후 무상급식과 민주시민 교육을 충실히 받고 성장한 그들을 보며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서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의 자유롭고 밝은 에너지로 한국식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 그들이 지난해 12월 22일 만든 ‘남태령 대첩’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을 잇겠다며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 ‘전봉준 투쟁단’이 트랙터를 끌고 한남동 관저로 향하다 경찰의 저지로 남태령에서 막혔을 때 응원봉을 든 젊은이들이 어디선가 구름처럼 몰려들어 한남동까지 길을 뚫어낸 것입니다. 약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서울 진입에 실패했던 투쟁단은 ‘한성 탈환을 꿈꾸던 전봉준의 꿈이 130년 만에 이뤄졌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전통적인 노·학, 농·학 연대의 틀을 뛰어넘은 새로운 연대였고, SNS와 유튜브가 이들의 무기였습니다. 어떤 폭력도 없었습니다.
유튜브든 SNS든 그 내용은 ‘언어’로 전달됩니다. 다시 한강의 강연으로 돌아가면, 그는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연결하는 실이자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매개체라고 봅니다. 또 인간의 존재와 경험에 대한 깊은 질문을 탐구하고 고민하는 도구이자 역사와 기억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언어라고 그는 말합니다.
남태령이나 광장에 응원봉을 들고 나타난 그들의 언어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실이자 생명의 빛이었습니다. 타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 심지어 “OOO는 죽여도 돼” 같은 공포스러운 발언을 서슴지 않는 극우 유튜브에서 공존을 꿈꾸는 생명의 언어,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언어를 읽기는 어렵습니다.
특정 성향 응답자가 과대 표집된 여론조사 결과와 유튜브 슈퍼챗 수입에 잠시 희희낙락할 순 있어도 결국은 생명력을 가진 공존·공감이 배제와 혐오를 이깁니다.
2025-01-2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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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SNS 시대의 쿠데타
이번 달 3일 밤부터 14일 저녁까지 열흘 넘도록 틈만 나면 유튜브를 거의 끼고 살다시피 했습니다. 철들고 처음 겪는 비상계엄의 충격도 잠시, 이후 대통령 탄핵 투표가 2주간 펼쳐지리라고는 예상도 못했습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국회와 수사 당국 상황, 경제 파장, 해외 반응 등 실시간 뉴스를 가장 신속히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유튜브였습니다.
저뿐 아니라 주변 동료들도 유튜브 시청 시간이 크게 늘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비상계엄 선포일인 3일 이후 5일간 1인당 하루 유튜브 시청 시간이 126분에서 149분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한국의 유튜브 일간 총사용 시간이 1000만 시간이나 늘었다고 합니다(모바일인덱스 12월 16일 발표). 비상계엄 선포 직후 시민들이 국회로 몰려들어 군인들의 국회 침탈을 막고, 국회의원들을 담장 너머로 밀어 올려 계엄 해제 투표가 성립되도록 한 데에도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활용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유튜브와 SNS가 정보 민주화를 이끌어, 실제 정치 체제로서의 민주주의에도 기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새 기술은 양날의 칼입니다. 이용자가 즐겨 보는 콘텐츠와 유사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알고리즘 때문에 특정 주장에 휩쓸리기 십상입니다. 그 콘텐츠를 함께 소비하는 사람들과 댓글을 통해 소통하면서 자신의 성향이 더 강화되고, 끼리끼리만 모이게 됩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 심화됩니다.
직무정지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담화에서 밝힌 선거부정 의혹이 대표적인 폐해 사례입니다. 일부 극우 유튜브에서 꾸준히 논란을 확산시켜온 선거부정 의혹을 밝히기 위해 국회보다 더 빨리 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을 보냈던 것입니다. 선관위는 13일 보도자료를 내 “지난해 선거정보시스템에 대해 국가정보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의 보안점검을 받은 결과 해킹 흔적은 없었고, 일부 취약점에 대한 보안 강화 조치를 올 4월 22대 총선 이전 완료했다”고 반박했습니다. 기표용지를 수작업 방식으로 개표·집계하는 우리나라에서 선거정보시스템은 보조 수단에 불과하고, 개표 결과는 언제든 검증할 수 있습니다. 부정선거론은 망상에 기반한 음모론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담화를 통해 유추해 보면 윤 대통령은 예산과 인사, 정책 등 상당수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거대 야당이 출현한 22대 총선 결과를 수용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선관위가 지적하듯, 같은 시스템에서 불과 2년 반 전 당선된 자신의 선거 결과도 부정하는 일입니다. 대화와 타협으로 거대 야당과의 협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상대를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 배척하면서 스스로 정치적 입지를 좁히다 온갖 음모론이 창궐하는 극우 유튜브의 솔깃한 가짜뉴스에 중독된 것으로 보입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나이 들수록 그동안 자신이 쌓은 지식과 경험에 반하는 정보를 수용하기 어려워지는 인지부조화 현상을 겪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의학적으로도 40대부터 뇌에서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가장 먼저 위축되기 시작합니다. 알코올 섭취나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손상 속도는 더 빨라집니다. 노화뿐 아니라 조직에서 권한이 많은 자리로 갈수록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충고나 조언을 듣기 싫어하게 되기도 합니다. 권력 중독에 의한 인지부조화입니다. 그동안 대통령 ‘격노’ 뉴스가 왜 그렇게 많았는지, 비상계엄 이후 그의 두 차례 담화에서 왜 반성과 사과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번 비상계엄 포고령은 44년 전 전두환의 5·17 계엄 포고령과 판박이입니다. 군에서 계엄에 대비해 참고했다는 문건도 45년 전 10·26 사태 당시에 작성된 것이라 합니다. 지금은 시민 누구나 텍스트, 음성, 영상을 실시간 집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절입니다. 왕조, 혹은 군부 독재 시대에나 있던 친위 쿠데타를, 철 지난 방식으로 일으켜 성공하리라 믿은 그 심리는 시대착오라는 말로는 부족한, 지독한 비현실입니다.
이런 비현실이 가능한 토대를 줄여가야 역사의 퇴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가짜뉴스와 선동이 판치는 가상 현실에서 편리하게 알고리즘이 띄워주는 추천 콘텐츠의 바다에서만 허우적대지 말고 자유의지를 발휘해 ‘종횡무진’해야 합니다. 뉴스를 접하는 플랫폼과 생산자를 다각화해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 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편리함에 젖어들면 건강을 망치듯, 쪼그라드는 전두엽에도 건전한 자극과 운동이 필요합니다. 이호진 모바일국장 jiny@busan.com
2024-12-1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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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사라져가는 것의 '힙'함에 대하여
소설가 이문열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소멸해 가는 지방, 시나브로 전자 매체에 자리를 내어 준 종이책과 신문들. 중력 가속도에 의해 더 빨리 땅바닥에 가까워지는 이들에게도 날개가 있었던 것일까요?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로컬힙’, ‘텍스트힙’이 뜨고 있답니다.
‘힙(hip)’은 형용사로 쓰일 때 ‘최신 유행이나 세상 물정에 밝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특히 이미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하고 희소하고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기존 주류 문화에 저항하는 독립적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뜻하는 ‘힙스터(hipster)’라는 단어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런 뜻에서 보면 ‘로컬힙’은 비수도권 지역에서 ‘촌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공간, 상품, 관광, 축제, 서비스 등의 지역 문화에서 힙함을 느낀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사례로 대전 성심당, ‘촌캉스’ 등이 있습니다. 부산에서는 관광기념품 팝업스토어인 ‘부산슈퍼’, 해변 ‘야장’ 경험을 선사하는 ‘밀락더마켓’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텍스트힙’은 책 읽는 행위가 힙하다는 뜻이랍니다. 긴 글 읽기 싫어하는 MZ세대는 문자보다는 영상, 긴 영상도 못 견뎌 10~30초 내외 숏폼 영상 위주로 콘텐츠를 소비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지난해 말 출판 러시에 들어간 쇼펜하우어 철학 서적부터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품까지 책 내용과 읽는 모습을 공유하는 SNS가 유행입니다. 각종 플랫폼을 활용한 독서모임도 성황입니다.
지난 8일 대구에서 지역신문법 제정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2024 지역신문 콘퍼런스’의 한 프로그램으로 청년들이 지역신문의 미래를 어떻게 혁신할지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공모전이 열렸습니다. 이 행사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기자는 청년들이 ‘로컬힙’과 ‘텍스트힙’을 말하는 것을 들으며, ‘힙’이라는 날갯짓이 지역과 활자매체의 교집합인 지역신문의 추락을 멈출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로컬힙’은 익히 알려진 지역 특산품의 한계를 넘어, MZ세대가 관심 가질 만한 내용과 형식의 콘텐츠를 기획하는 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텍스트힙’은 배우와 가수 등 대중 스타의 주도에 한강 열풍이 더해져 읽을 만한 가치 있는 콘텐츠의 철학적 울림이 있었기에 따르고 싶은 유행이 되었습니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이 생중계된 날, 뜻밖에 〈부산일보〉가 전국적으로 화제에 올랐습니다. 본보 대통령실 출입기자가 회견 막바지에 올바른 사과의 요건을 말하며, 대통령이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달라고 한 영상이 여러 방송사 등의 유튜브 계정을 아울러 100만 이상의 조회수를 올린 것입니다. 댓글에는 ‘〈부산일보〉 독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류의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부터,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까지 소상히 밝히는 것이 올바른 사과의 요건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포괄적 사과는 하되, 구체적인 잘못은 언급하기 어렵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답답함을 느끼던 많은 국민이 회견 막바지, 이 부분을 정확히 짚은 질문에 환호한 것입니다. 국민 눈높이에서 국민이 궁금해할 것을 대신 질문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입니다. 〈부산일보〉 기자의 질문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당연한 것을 고마워하고 응원하게 되는 특이한 세태입니다.
공모전에서 공용 지역뉴스 앱 개발, 블록체인 활용, AI(인공지능) 활용 카드뉴스 자동제작 솔루션 도입 등 번득이는 청년들의 아이디어 제안을 들으며 기자는 이런 방법론이 더 빛을 발하려면 시민의 신뢰 회복과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독창적인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콘퍼런스 당일 대상을 받은 〈부산일보〉의 ‘연결 프로젝트-고립의 꼭짓점 무연을 잇다’ 같은 기획이 좋은 예입니다.
중력을 거스를 방법은 폭발적인 에너지 외에는 사실 없습니다. 지역신문은 추락 속도를 최대한 늦추며 모바일 플랫폼으로 전환해 나가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입니다. 시민의 지지와 응원을 받는 콘텐츠와 기자가 넘쳐난다면 이 추락 속도를 확연히 늦출 수 있습니다. MZ세대가 호응할 만한 소재와 형식을 더하면 지역신문을 읽는 행위가 멋진 취향의 대명사가 될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디자인과 기술을 더하고, 조직과 업무 공정을 바꿔나간다면 플랫폼 전환과 새로운 도약이 가능할 것입니다.
지역신문이 ‘힙’을 넘어 주류 문화로 자리 잡는 그날을 감히 꿈꿔봅니다.
2024-11-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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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모바일 혁명과 문해력
중식 제공-짜장면 줘요?
족보-족발 보쌈 세트.
시발점-욕하세요?
우천 시 장소 변경-우천이 어디 있는 도시죠?
마치 개그 대본 같은 이 말들은 일부러 웃기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최근 전국 교사 58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 조사’ 결과에 나온 사례들입니다. 이 조사에서 교사들은 학생 90% 이상의 문해력이 낮아진 상태라고 답했습니다. ‘교육이 문제다’, ‘스마트폰 중독 때문이다’ 등 말들이 많지만, 학생만의 일이 아닙니다. 인크루트가 지난 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 909명을 대상으로 ‘현대인의 문해력이 어떻게 변했냐’고 질문한 결과 약 90%가 낮아졌다고 답했습니다.
세대를 가릴 것 없이 현대 한국인의 문해력이 저하되는 이 현상은 글로벌 한국어 열풍이라는 또 다른 현실과 겹쳐 보면 묘한 위기감이 듭니다. 온라인 언어 플랫폼 프레플리 조사 결과 세계적으로 한국어 강좌 수강생이 지난 1년간 4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언어 수강생의 연평균 성장률 9%보다 5배 이상 높습니다. 특히 유럽권 국가의 수강생이 68% 늘어 한국어에 대한 가장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한국의 노래와 영화, 드라마가 글로벌 인기를 끄는 덕분입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이 급증하는데, 정작 한국 내에서는 글 맥락과 단어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현상은 왜 빚어질까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단서를 찾아봅니다. 스마트폰과 함께 모바일 혁명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이 곧 돈이 되는 ‘주목 경제’ 시대가 시작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영상물 공유 등의 분야에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 플랫폼 기업은 최대한 많은 이용자를 최대한 오래 자신의 플랫폼 안에 머물게 함으로써 이윤을 챙깁니다. 앱 분석 서비스업체 모바일인덱스 집계에 따르면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는 한국에서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까지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1위였습니다. 유튜브의 이런 강세는 읽는 문화에서 보는 문화로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는 검색 시장에서도 절대 강자 네이버를 바짝 뒤쫓고 있습니다.
특히 유튜브 중에서도 10~30초 길이의 짧은 동영상인 쇼츠가 시청 시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올 초 한 조사에서 한국인의 월간 유튜브 시청 시간은 5년 전인 2019년 21시간에서 배 가까이 늘어난 40시간으로 조사됐습니다. 2021년 7월 쇼츠 출시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유튜브는 기존 영상보다 짧은 쇼츠 시청 횟수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수익을 올리도록 수익 배분 구조를 짰고, 긴 영상보다 쇼츠를 여러 개 올리는 것이 시선을 끌기에도 좋고 수익에도 유리했습니다. 이런 숏폼 영상의 인기는 인스타그램이 국내 MAU 13위라는 실적에서도 확인됩니다. 자체 숏폼인 릴스를 통해 사용자를 크게 늘리며 그 많은 SNS 플랫폼 중 가장 많은 MAU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크리에이터가 더 다양한 숏폼 영상을 만들어 공유함으로써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순환 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지난해부터는 더 쉽게 숏폼 콘텐츠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인공지능(AI) 도구 등장으로 날개를 달았습니다. 대본, 사진, 영상 모두를 AI에 의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작뿐 아니라 유통 과정에도 AI가 이용자 취향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영상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이 작동합니다. 이 알고리즘의 장벽은 내 관심 바깥의 세상을 탐색할 기회를 차단합니다. 다른 계층·세대·성별 간 소통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런 소통 단절은 문해력 저하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다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만 대화하는 것이 훨씬 편해집니다.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엄청난 편리를 제공했지만, 그만큼 행복해진 것은 아니듯 ‘모바일 혁명’ 이후 우리 사회의 소통이 더 잘 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기술에는 언제나 이해(利害)가 공존합니다. 쓰기 나름입니다.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유튜브가 새로운 배움과 교류의 장이 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알고리즘 장벽에 갇히지 않고 때때로 내 관심 밖 다른 세상도 둘러보며 이해의 폭을 넓혀갈 필요가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야의 블로그나 서적을 찾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테지요. 읽기 귀찮은 긴 글을 찾아 읽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할 때 소통의 장벽도 허물어지지 않을까요. 마침, 책 읽기 좋은 가을 아닙니까.
2024-10-1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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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조금은 이른 가을 편지
사상 최장 열대야 기록을 세운 폭염 기세가 한풀 꺾였습니다. 해가 갈수록 더 뜨거운 여름, 더 추운 겨울이 봄과 가을까지 잠식해 감을 느낍니다. 완충지대 없는 양극화는 현실 세계나 모바일 세상 모두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정치는 진영 논리의 극단을 달리고, 국제 정세도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과 이를 상대하는 ‘글로벌 사우스’의 대응이 점입가경입니다. 이 패권 경쟁 여파로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생명이 스러지고 있습니다. ‘20 대 80 사회’라던 자본주의 사회 계층은 ‘1 대 99 사회’로 바뀌는 중입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특유의 알고리즘으로 사용자가 봤던 콘텐츠와 유사한 영상·피드를 추천하면서 사용자의 기존 인식을 강화합니다. 팬덤 정치, 진영 정치를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알고리즘 시스템을 꼽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사회의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할 언론도 양쪽 진영의 구심력에서 공정성·객관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틈에 전통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 뉴스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인플루언서 유튜버들의 영향력도 날로 커집니다. 인기 방송인이자 외식 사업가인 백종원 씨는 가맹점주들이 본사를 가맹사업법 등 위반 혐의가 있다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해명 영상을 직접 만들어 올렸습니다. 자신의 유튜브 계정 구독자가 633만 명, 해명 영상 조회수는 490만 회를 넘겼습니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 심사 중이던 그의 회사는 지난달 30일 한국거래소의 예비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전통적인 뉴스 사이트와 언론 기업이 설 자리는 이렇게 점점 줄어드는 중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 의견을 나누는 마당. 어느덧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언론의 공론장 역할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더 근원적으로는 생존을 위협해 오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부산일보사 모바일국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 지금 내놓을 수 있는 해답은 지역과 독창성이었습니다. 〈부산일보〉에서만 접할 수 있는 지역 콘텐츠에 집중하기로 한 것입니다. 올해 4월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세븐비치 어싱 챌린지’를 시작한 것도 이런 차원이었습니다. 시민 건강을 증진한다는 본래 목표에 더해, 지난 6월 광안리에서 4000명이 참여한 행사를 마무리 지으며 부산 관광의 새로운 콘텐츠로 내세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오는 28일 다대포해수욕장에선 1만 명이 참여하는 전국 최대 규모 맨발걷기 행사를 엽니다.
맨발걷기 자체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부산일보〉의 콘텐츠가 되었다는 점 또한 체감합니다. 맨발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는 문화가 아직도 팽배하지만,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땅을 함께 밟는 순간 소통을 막는 장벽도 같이 허물어진다고 수많은 참가자가 증언합니다. 주로 장년층 이상이던 기존 맨발걷기 애호 연령대가 ‘세븐비치 어싱 챌린지’ 덕분에 어린이와 청년층까지 넓어지는 점도 세대 연결에 기여하는 점일 것입니다. 다대포 행사까지 끝나면 연인원 1만 6000명이 맨발걷기를 매개로 소통과 연결의 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밖에 영화를 함께 관람하고 이야기 나누는 ‘부일시네마’,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을 사진과 영상으로 자랑하고 응원 투표도 하는 ‘댕냥이 콘테스트’, 부산 연고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가을 야구를 응원하는 ‘으라차차 롯데 자이언츠 응원 이벤트’ 등 부산일보사 모바일국은 시민이 관심 가질 만한 소재로 끊임없이 소통의 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10월에는 새로운 이벤트로 연결 고리를 또 하나 늘립니다.
이런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부산닷컴’ 회원으로 가입하는 이용자가 늘면 부산닷컴이 독자적인 콘텐츠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토대도 마련됩니다. 지난 10개월간 진행한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부산닷컴 회원은 약 67% 증가했습니다. 매일 아침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구독자도 그만큼 늘었습니다. 부울경 지역민의 삶과 정서에 천착하는 지역 콘텐츠 플랫폼이 올곧게 자리 잡는다면 지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용자의 한정된 관심을 얼마나 오래 잡아두느냐에 인터넷 서비스의 성패가 달린 ‘주목경제’ 시대, 말초적인 관심 끌기가 아니라 유익한 정보와 세대·계층 간 소통이 활발한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타전에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내어줄 당신을 기다립니다.
2024-09-0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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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티메프 사태'와 댓글팀의 닮은 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염천, 서울 티몬 본사 앞에 온종일 장사진을 친 소비자들의 행렬이 TV 화면에 비쳤을 때 무척 낯설었습니다. 휴대폰 하나로 생활에 불가능이 없는 시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의 파장이 만만치 않습니다. 국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 4·5위 업체인 ‘티메프’가 판매자에게 대금 정산을 제때 하지 못한 데 이어 소비자 결제액에 대한 취소·환불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태의 근원은 무리한 사업 확장이었습니다. 인터파크 사내 벤처에서 시작한 지마켓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킨 뒤 2009년 이베이에 5500억 원에 매각해 대박을 터뜨린 구영배 대표. 그는 2010년 이베이와 합작회사 큐텐을 설립하고, 2019년 큐텐의 물류자회사 큐익스프레스 한국법인을 설립한 뒤부터 또 한 번 나스닥 상장 꿈을 키우며 본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섭니다.
적자가 누적된 티몬, 위메프를 주식 교환 형태로 인수한 데 이어, 인터파크커머스, 미국 쇼핑몰 위시를 사들입니다. AK몰은 빚을 떠안는 조건으로 단돈 5억 원에 인수하기도 합니다. 이들 쇼핑몰의 물류 일감을 큐익스프레스에 몰아 성장시킨 뒤 나스닥에 상장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박 꿈에는 잘못이 없지만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기업 인수 자금 확보를 위해 상품권 할인 판매와 정산 주기 연장 같은 방법이 동원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티몬은 통상 3%인 할인율의 배 이상인 7.5%로 상품권을 팔았고,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상품권과 달리 한 달 뒤에야 쓸 수 있게 했습니다. 또 정산 주기는 업계에서 대체로 2~3일 내, 가장 긴 쿠팡도 40~50일인데, ‘티메프’는 2개월 이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매 취소나 환불에 대비해 일정 정산 기간을 둘 수 있지만, 두 달 이상 고객 돈을 플랫폼 업체가 내 돈처럼 활용하는 데 대해 규제는 없었습니다.
위메프에서 시작된 정산 지연이 티몬까지 퍼져 유동성 위기가 우려되자 온라인 결제 대행업체들은 지난 24일부터 거래를 중단했습니다. 이제는 소비자들의 결제, 환불까지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지난주 소비자들이 티몬 본사 앞으로 몰려갔던 이유입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대금 정산 피해를 구제하려고 정부가 5600억 원을 긴급 수혈한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선 피해액이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기도 합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앞날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지 걱정입니다.
앞서 정치권에서는 ‘댓글팀’ 논란이 벌어졌지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올 1월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한 사과 문자를 여러 차례 보냈는데, 그 중 “제가 댓글팀을 활용하여 위원장님과 주변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라는 부분이 발단이었습니다. 당대표 선거에 한 전 위원장이 출마하면서 6개월 전 김 여사 문자가 소환된 건데요. 문자를 읽고 답하지 않았다는 ‘읽씹’ 논란과 함께 댓글팀 이슈가 여야를 달군 것입니다.
우선 여권 내에서 장예찬 전 최고위원이 한 후보의 법무부 장관 시절 여론 조성팀이 운영됐고, 자신도 그 팀에 동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 활동하기 시작한 여론 조작 의심 계정과 댓글을 발견했다고 주장합니다. 조국혁신당 조국 의원은 댓글팀 의혹을 ‘한동훈 특검법’ 수사 대상에 추가하겠다고 밝힙니다. 논란에도 당대표에 무난히 당선된 한 후보는 “(댓글팀 논란은) 시민의 자발적 의사 표현을 모욕하는 명예 훼손 행위이며, 자신은 어떠한 형태의 여론 조성 작업에도 관여한 바 없다”고 반박합니다.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힘은 여론입니다. 엄밀한 시스템과 관리 아래 시행하는 여론조사도 있지만, 시중 여론의 가늠자로 포털 댓글을 살피는 경우가 많다 보니 우리 정치에서는 잊힐 만하면 댓글팀 논란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도 이제는 댓글에 크게 영향받지 않습니다. 여러 댓글팀 사례를 경험한 데다, 정보 출처가 유튜브 등으로 확장됐기 때문입니다.
경제도 정치도 신뢰에 기반하지 않고는 바로 설 수 없습니다. 무리한 사업 확장, 더 많은 지지층을 확보한 것처럼 부풀리고자 하는 욕심에 우리 사회의 근간인 신뢰가 무너집니다. 2500년 전 춘추시대나 디지털 세상이나, 신뢰가 생명입니다.
2024-07-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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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다극화 세계에 미국·러시아 공감?
국제무대에서 한동안 관심 밖이던 한반도 기류가 이른 무더위처럼 뜨거워졌습니다.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칠 변화가 모바일 세상에서도 느껴집니다. 지난 19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24년 만에 북한을 찾아 동맹에 준하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맺은 이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협정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고, 국가안보실장은 “러시아가 북한에 정밀 무기를 지원하면, 우리도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보낼 수 있다”고 반발했습니다.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까지 나옵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군사 지원은 북이 침공당하는 경우로 한정된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대북 전단, 대남 오물 풍선, 대북 확성기 방송, 비무장지대 대전차 방벽 등 긴장을 높여가던 터라, 한반도가 급속히 대치 상황으로 내닫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습니다. 진실에 접근하려면 시야를 한반도 주변 4강(미일중러)까지 넓혀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국력을 소모하게 하려던 미국의 애초 목적과 정반대 결과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세계은행(WB)은 2022년 구매력(PPP) 기준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유럽 1위, 세계 5위라고 발표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러시아의 올해 GDP 성장률 예상치를 2.6%에서 3.2%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유로 지역 0.7%, 미국 2.4%보다 높습니다.
지난 18일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실린 기고문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위한 외교정책’은 이런 현실을 인정합니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이던 벤 로즈는 이 글에서 “미국이 주도하려 했던 규칙 기반 질서는 무너졌고, 달라진 세계에 맞춰 리더십 개념을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미국 외교가 보편적 가치에 따라 추진된다는 도덕적 근거는 사라졌고, 달러 패권 무기화는 전 세계에 피로감을 초래했다고 그는 짚었습니다. 벤 로즈가 말하는 ‘달라져야 할 미국의 리더십’은 유일 패권국이 아니라, 다자주의·다극화의 한 축으로 물러서는 것입니다. 푸틴 대통령도 지난달 중국 시진핑 주석과 만난 뒤 다극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보다 보수적이고 기득권을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과 푸틴이 같은 미래상을 그린다는 게 매우 이채롭습니다. 러시아는 중국이 미국 패권을 대체하거나 미국과 양극을 대표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미국도 대중 패권 경쟁에 엄청난 부담을 홀로 계속 지는 것보다는 과거의 적과도 연대하며 ‘우아한 후퇴’를 택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미 vs 중러’라는 기존 냉전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변화입니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유리한 선거 판세를 위해 결국 북한과의 종전 선언과 수교 협상에 나설 것이란 희망 섞인 분석까지 나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북한과 종전 선언 직전까지 간 그였던 만큼, 관계 개선 기조엔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푸틴 방북에 대한 중국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우선은 북한에 대한 장악력이 약해지게 되었고, 푸틴이 이번에 연이어 방문한 북한과 베트남이 중국의 태평양 진출로를 접한 곳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러시아가 중국의 팽창주의를 견제하면서 미국에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궁지에 몰린 중국은 북한과 갈등을 고조시켜 온 한국 정부와 9년 만에 외교·국방부 2+2 협의를 재개하면서 남쪽을 통한 활로 모색에 나선 형국입니다.
미국과 궤를 같이하는 일본도 북한에 공을 들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 직후 북한과 정상회담을 위한 협의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말했고, 바이든 대통령도 북일 정상회담을 환영했습니다.
20세기 냉전의 산물인 마지막 분단국가가 평화롭게 교류함으로써 세계를 공동 번영의 시대로 이끌어 가자는 데 반대할 나라는 없습니다. 일극 패권의 국제사회 피로감과 퇴행을 해소할 실질적 기회이기도 합니다.
다극화 세계를 상상하다 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했던 ‘동북아균형자론’이 떠오릅니다. “깜냥도 안 되는데 무슨 균형자냐”던 비판은 아직도 유효할까요? 20년 사이 우리 경제는 세계 10위권, 국방력은 5위권으로 강력해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아니 우리 민족에게 정말 소중한 기회가 왔습니다. 남북이 소통해 동아시아로부터 세계를 평화의 길로 인도할 비전은 이미 2년 전 ‘담대한 구상’으로 밝혔습니다. 한국전쟁 74주년과 호국보훈의 달 끄트머리를 지나며 실낱같은 희망 한 줄기 품어 봅니다.
이호진 모바일국장 jiny@busan.com
2024-06-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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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라인을 틱톡처럼?
바야흐로 플랫폼 전쟁 시대입니다. 실생활 곳곳에 파고든 갖가지 모바일 플랫폼에서 수많은 데이터가 쌓이고, 인공지능(AI)은 이를 학습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습니다. 생성형 AI를 다양한 서비스에 접목하려는 개발업체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데이터입니다.
네이버 라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압박 관련 뉴스가 연일 관심을 끌면서, 틱톡과 본사인 중국의 관계를 끊게 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연상되었습니다. 적대국 사이에서나 일어날 만한 일이 왜 군사 정보까지 교류하는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는 걸까요.
지난 4월 23일 미국 상원은 270일 내(1회 90일 연장 가능) 틱톡 지분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도록 하고, 기간 내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 내 서비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틱톡은 중국 기업인 바이트댄스가 개발한 숏폼 영상 공유 플랫폼입니다. 미국 내 틱톡 이용자 수는 약 1억 7000만 명에 이릅니다.
미국 정치권에선 2019년부터 틱톡에 남는 데이터가 중국 정부에 제공되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틱톡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도록 압박했고, 5년 만에 법안 통과까지 마무리한 것입니다. 바이트댄스 측은 지난 7일 연방순회항소법원에 법안의 시행 중단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중국도 지난 3월 미 하원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자, 외교부 논평을 통해 “공평한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자 괴롭힘을 선택한 것”, “어지럽혀진 것은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고, 훼손된 것은 투자 환경에 대한 국제 투자자의 자신감이며, 파괴된 것은 정상적인 국제 경제·무역 질서”라고 비판했습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절반씩 지분을 투자해 만든 A홀딩스가 대주주(지분율 64.5%)인 라인야후는 일본 메신저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태국과 대만,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해 아시아권 월간 활성 이용자가 1억 8000만 명에 이르는 인기 메신저입니다. 기술과 서비스 노하우 대부분을 네이버가 담당한, 성공적인 ‘K-플랫폼’ 진출 사례입니다. 일본 정부의 압박은 지난해 9월 51만 건의 이용자 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빌미가 됐습니다. 서버는 일본에 뒀지만, 내부 사원 인증은 한국의 네이버 클라우드를 이용했는데, 해커가 네이버 클라우드를 통해 라인 이용자 정보를 가져갔다고 보는 것입니다. 3월 1차 행정지도 때는 사원 인증을 포함한 모든 사이버 보안 업무를 일본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분기별로 보고서를 받아보고 이행 조치를 점검한다던 일본 총무성은 한 달 뒤인 4월 2차 행정지도에 곧바로 나서 궁극적인 보안 강화 대책으로 모회사인 네이버와의 지분 정리(‘자본 관계 재검토’)까지 요구했습니다.
엄격한 보안 규제 강화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지분 매각까지 압박하는 것은 미국이 틱톡 매각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적대국으로 대할 때나 가능한 일입니다. 만일 일본 요구대로 지분을 판다면 아시아권 라인 서비스의 주도권도 네이버는 잃을 우려가 큽니다. 플랫폼 하나를 만들고 서비스를 정착시키는 일, 그 서비스를 해외에서도 성공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감안하면 단순한 개별 기업의 문제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반대로 라인 지분 매입에 성공한다면 일본은 낙후된 자국 IT산업을 일으킬 새로운 계기를 손쉽게 마련하게 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플랫폼 기업 네이버가 해외 주요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윤석열 정부는 명확한 입장을 갖고 신속히 대응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표방하는 대통령, ‘기업과 시장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대통령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4월 16일 2차 행정지도 이후 한국 정부의 첫 입장이 나온 것은 11일 뒤인 4월 27일 외교부였습니다. 이후 5월 13일 대통령실 입장 발표까지 대부분이 ‘우리 기업에 차별적 조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 입장이거나 ‘네이버의 진실하고 구체적 입장을 기대한다’는 식의 네이버를 향한 요구였습니다.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 조치가 부당하다는 항의 표시는 없었습니다. 국민 여론이 들끓자 지난 14일에야 대통령실은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어떠한 차별적 조치나 기업 의사에 반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면밀하고 강력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힙니다.
필요하면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가 부족해도 일본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경제를 안보에 종속시키는 신냉전 프레임에 정상적인 국제 무역 질서가 흐트러지는 시대, 자국 기업의 재산권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까지 처한다면 국민들은 심각한 의문에 빠질 것입니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jiny@busan.com
2024-05-16 [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