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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2040월드엑스포, 2030 실패의 냉철한 분석 위에 출발해야
부산, 경남, 전남 등 3개 시도가 2040년 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한 논의에 나선다고 한다. 3개 시도는 이르면 다음 주 첫 실무 회의를 열어 2040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한 실행 계획과 전략 수립을 의논한다. 부산시가 경남에 월드엑스포 유치 방안을 먼저 제안했고, 해양과 섬을 주제로 기획하는 엑스포로 확장되면서 전남도 참여하게 됐다. 1851년 월드엑스포가 탄생한 뒤 지금까지 열린 36차례의 등록 엑스포 가운데 해양과 섬을 주제로 한 것은 없었다. 부산의 2030월드엑스포 유치 도전 경험을 확장해 3개 시도가 ‘해양’이라는 차별화되는 주제로 엑스포 공동 유치에 나선 것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의 월드엑스포 도전은 부산을 국가 신성장 엔진으로 키워, 수도권 집중의 폐해를 극복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열망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2023년 11월 1차 투표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큰 표차로 밀려 고배를 마셨다. 이후 부산시는 엑스포 실패 원인과 재도전 여부를 검토하면서 큰 인구 규모의 메가시티가 유치에 유리하다고 보고, 행정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경남에 공동 유치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또 ‘2026여수세계섬박람회’를 준비 중인 전남이 가세했다. 3개 시도의 해양 관광·물류 인프라, 830만 명 인구 규모,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서는 균형발전이란 명분은 유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2040월드엑스포 유치 도전은 무엇보다 2030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한 냉철한 분석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2030엑스포 유치 활동의 전 과정을 평가한 백서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부산이 경쟁 도시에 압도적 패배를 당한 이유, 터무니없는 판세 분석의 근거, 실패 원인에 대한 정밀한 진단 등을 백서를 통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도전과 출발을 위해선 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엄정한 평가가 우선이다. 이를 전제로 해서 기본 유치 방향 설정, 지지국 확보 방안, 경쟁국에 대한 정보 수집 등 재도전을 위한 정밀한 계획 수립에 나서야 한다. 장밋빛 기대에만 사로잡혀 또다시 실패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2030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부산이 쌓은 경험은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 부산이란 브랜드를 전 세계 각국에 널리 알렸고, 그 과정에서 맺은 인적·물적 네트워크는 부산 외교의 지평을 넓혔다. 이러한 경험을 3개 시도가 공유한다면 2040엑스포 유치에 큰 동력이 될 수 있다. 물론, 엑스포 공동 유치에 대한 남해안권 주민들의 공감대 형성과 국가적인 지원 등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3개 시도는 탄탄한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발휘하고, 치밀한 유치 전략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엑스포 공동 유치라는 목표를 달성해 남해안 벨트의 획기적인 변화와 국가균형발전을 이뤄내길 바란다. 지자체와 정부의 합심이 요구된다.
[사설] 정부 내년도 예산안, 지방 우대 재정 원칙 새 이정표 되길
2026년도 정부 예산안 심의가 본격화됐다. 여야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인 내달 2일까지 예산 정국을 이어간다. 내년도 예산안은 728조 원 규모로 올해보다 8.1% 증가했다. 이 대통령은 “인공지능(AI)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예산안”이라고 강조했다. 지방 시대를 열기 위해 지방 우대 재정 원칙을 도입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수도권 일극주의 극복에 방점을 찍은 것은 무척 의미가 크다. 하지만 야당은 시정연설에 불참하는 등 벌써부터 예산안을 둘러싼 극심한 갈등을 예고했다. 지금은 여야가 정쟁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엄중한 국내외 위기를 극복하려면 예산안 심의에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수도권 일극체제를 극복하고 지역이 성장 중심이 되는 5극 3특 새 시대를 열도록 지방 우대 재정 원칙을 전격 도입하겠다”며 “수도권 집중 완화와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수록 더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거점국립대를 지·산·학·연 협력의 허브로 육성하겠다”며 지방정부에 대한 포괄보조금 규모를 3배가량 대폭 확대하는 방안도 설명했다. 지방 시대를 활짝 열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는 단순히 지방만을 살리는 것이 아니다.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해 병든 대한민국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번 예산안이 지역 균형발전을 앞당기는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이 대통령은 이날 AI 강국 도약을 위해 10조 1000억 원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특히 “내년을 새로운 백년을 준비하는 출발점으로 만들겠다”며 “산업화 시대에는 하루가 늦으면 한 달이 뒤처지고, 정보화 시대에는 하루가 늦으면 1년이 뒤처졌지만, AI 시대에는 하루가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진다”며 신속한 대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AI 시대와 지방 시대가 별개일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AI 지역 거점을 광역별로 조성하고, 대규모 R&D 추진을 통해 AI에 기반한 지역 혁신과 특화산업 발전을 촉진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설명은 무척 합당하다. AI 시대와 지방 시대라는 쌍두마차로 기형적인 수도권 과밀화 타파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하지만 예산안 첫 단추인 시정연설부터 여야는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은 시정연설을 보이콧하면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구속영장 청구는 야당 탄압이자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논평을 통해 역대 최대 적자예산이자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사상 처음 50%를 넘어서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예산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2024년도 예산안은 결국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단독으로 처리했다. 여야 합의 없는 예산안 통과는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올해 또 유사한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 여야는 예산안 심사를 위해 서둘러 머리를 맞대야 한다.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국가 위기 상황 타파에 힘을 모으길 기대한다.
[사설] 국토부, 가덕신공항 재입찰 더 이상 미적댈 일 아니다
가덕신공항 사업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국토교통부가 “11월 초 정도까지 입찰 방향을 정하고 연내 재입찰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공정은 멈췄고 사업비와 물가만 치솟고 있다. 지난해 10월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공기 연장 조건을 내세우며 협상이 결렬된 것은 지난 4월 말이었다. 우선협상자 선정 후 1년, 자격 상실 후 반년이 지나도록 국토부는 여전히 ‘절차 밟는 중’ ‘검토 중’이라는 말만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연내 재입찰은커녕 내년 상반기 착공도 불투명하다. 사업의 주무 부처가 이처럼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다. 국토부가 지금 당장 입찰 방향을 확정하더라도 이후 절차는 간단치 않다. 입찰안내서 변경 심의와 재공고, 사업자 평가 등 행정 절차만 해도 통상 45일 이상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연내 재입찰 공고는 물리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기본설계 착수도 불가피하게 미뤄지고, 전체 일정은 최소 1년 이상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국토부와 관계 당국은 구체적 로드맵 제시 대신 여전히 “연내 재입찰”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시민단체의 거듭된 촉구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재입찰 일정이나 평가 기준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신속한 이행이다. 사업이 이렇게 늦어지는 사이 김해공항의 포화는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올해 1~3분기 국제선 이용객이 이미 750만 명을 넘어섰고, 연말에는 1000만 명 돌파가 확실시된다. 지방공항으로는 전례 없는 수치다. 주차난은 상시화됐고 연휴마다 출국장 대기 줄이 수백 미터씩 늘어선다. 내년 신설되는 제2출국장도 임시방편일 뿐 근본 대책은 아니다. 특히 위험성이 큰 ‘선회접근 착륙’ 횟수가 매년 늘고 있어 안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지닌 나라의 관문공항치고는 초라한 수준이다. 국제선 수요가 폭증하는 지금, 신공항 착공 지연은 국가 경쟁력 저하로 직결될 수 있다. 가덕신공항 착공이 1년 늦어질 때마다 지역경제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공항 배후 교통망과 부산형 급행철도(BuTX) 등 연계 인프라의 정상 추진에도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부의 태도는 무책임 그 자체다. 늦어진 절차를 만회하려면 연내 재입찰 공고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가덕신공항 특별법은 설계·시공 일괄입찰이 가능한 만큼, 정부의 결단만 있다면 일정 단축도 가능하다. 지금이라도 후속 절차를 서두른다면 전체 일정이 1년 이상 지연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다. 국토부는 더 이상 ‘검토 중’이라는 말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다. 가덕신공항은 지역의 명운이 걸린 국가사업이다. 또다시 사업이 늦어진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국토부가 져야 한다.
깐부 효과
2010년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일곱 개의 시선’ 특집에서 하하가 구슬치기 관련 이야기를 하며 “나랑 깐부 먹자”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린 시절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등을 할 때 서로 동맹을 맺는 것을 깐부라고 표현한 것이다. 당시에는 깐부라는 단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 1을 통해 깐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오일남이 성기훈과 구슬치기를 하며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네 거, 내 거가 없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 때문이다. 게임 참가자들이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서로를 깐부라 부르며 동맹을 맺는 장면을 통해 깊은 우정과 동료애를 나타내는 말로 자리 잡았다. 깐부치킨 홈페이지에서도 ‘깐부’를 어린 시절, 새끼손가락 마주 걸어 편을 함께 했던 내팀, 짝꿍, 동지로 설명한다.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깐부치킨 치맥 회동이었다. AI(인공지능) 깐부 세 사람이 치킨과 소맥으로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쳐 대중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깐부치킨 매장에서 열린 세 사람의 ‘깐부 회동’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AI 기술 동맹의 상징이 됐다. 이튿날 젠슨 황은 정부와 삼성전자·SK그룹·현대차그룹·네이버클라우드에 최대 14조 원에 달하는 26만 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 계획을 밝혔다. 한국이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AI 깐부 회동의 효과는 일상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깐부치킨은 세 사람이 먹었던 메뉴를 한데 모아 ‘AI 깐부’라는 세트로 공식 출시했다. ‘바삭한 식스팩’ ‘크리스피 순살치킨’ ‘치즈스틱’으로 구성한 이 세트는 치맥 회동 테이블에 올랐던 메뉴다. 해당 깐부치킨 매장 출입문에는 ‘젠슨 황 CEO 테이블 좌석은 모두를 위해서 이용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한다’는 안내문까지 붙었다고 한다.엔비디아와의 ‘깐부 효과’가 이어지려면 대한민국이 AI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AI와 반도체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생존 과제다. 이익 추구를 우선시하는 냉혹한 글로벌 무역전쟁의 한복판에서 ‘AI 깐부동맹’이 굳건하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드라마 속 깐부처럼.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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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유권자의 망각을 먹고 사는 무책임 정치
‘목불인견’.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였다. 우리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에 틈입한 병증이 ‘말기’에 이르렀다는 절망감이 들 정도다. 그 졸렬한 행태를 다시 열거해 국민적 화를 돋우고 싶지 않다. 사실 이런 비판마저 그들에게는 훈장이다. 야당 의원의 질의를 방해하기 위해 옆자리서 째려보는 황당한 기행을 벌인 최혁진 의원에게는 이후 후원금이 쇄도했다. 강성 팬덤 정치가 저질 의원을 영웅으로 만드는 꼴이다. 최근 팬덤의 총애를 받는 의원들을 보면 하나같이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간 주인공들이다. 반대로 팬덤이 세운 콜로세움의 검투사 역할을 거부하는 정치인들은 민주당에선 ‘수박’이라고 배척 당하고, 국민의힘에서는 ‘당성’이 부족하다고 질타 받는다. 정치인들의 생멸이야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권력쟁투일 뿐이라고 치부하자. 문제는 ‘유튜브 쇼츠’로 재미나 보겠다는 무책임한 정치 속에 우리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검찰 개혁에 대해 많은 양식 있는 법조인들이 “보완수사권이 없어진 상태에서 경찰이 1차 수사를 마무리할 경우 불송치 증가, 수사 지연, 피해자 보호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공통적으로 쏟아냈다. 그 중에는 소위 진보 인사들도 적지 않다. 성향을 막론하고 이런 부작용을 예견한다면, 그건 현실화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일 테다. 그러나 이런 후유증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나타나고, 그 때 쯤에는 피해의 기원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그 책임을 묻는 일은 더욱 어렵다. 의원들은 이런 허점을 잘 안다. 난장판 국감 중에 이런 문답이 있었다. 법사위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안미현 검사는 “(검찰 개혁으로) 부작용이 크게 일어나면 책임을 지셔야 할 분들은 무리하게 입법을 하신 분들이 된다”고 했다. 안 검사는 과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에 대한 검찰 수뇌부의 중단 압박을 폭로한, 굳이 분류하자면 여당 성향 검사다. 그런 사람이 ‘입법 부작용의 책임은 입법한 사람에게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하자, 여당 의원들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그게 말인가. 그러니까 검사답다는 소리를 듣는 것”, “입법자가 책임지라는 건 어디서 나온 자세냐”고 쏘아붙였다. 책임질 생각이 전혀 없다가 정곡을 찔릴 듯하다. 이들이 책임에 무신경한 데는 쌓인 경험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유례 없는 집값 폭등을 일으키면서 주거 사다리 붕괴 등 사회 전반에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명백한 정책 실패였다. 이런 요인이 겹쳐 문 정권은 다음 대선에서 야당에 권력을 내줬지만, 당시 관련 정책 입법에 앞장섰던 의원들 대부분은 22대 국회에서도 건재했다. 정권은 심판해도, 그 정책을 뒷받침한 국회의원을 심판하는 투표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당장 ‘혁진 기행’의 장본인이 탄생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21대 국회에서 여권의 일방적인 선거법 개정으로 탄생한 비례위성정당이 발단이었지만, 이를 강행한 여당 지도부가 누군지 알고 있는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결국 무책임 정치의 최대 동력은 유권자들의 망각이다. 여당이 이재명 대통령 관련 ‘재판중지법’을 ‘국정안정법’으로 바꾸겠다는 속이 빤히 보이는 ‘언어 혼란 전술’을 밀어부치는 데에는 대선 전만 해도 ‘신속한 재판’을 원했던 여론이 과반이었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이 잊어버렸다고 믿기 때문일 테다. ‘입법 폭주’도 마찬가지다. 정가에서는 여권이 연말까지 각종 입법을 마무리한 뒤 지방선거 시즌인 내년부터는 중도 실용 모드로 급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망각의 힘(?)을 믿는 건 국민의힘이라고 다르지 않다.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을 걱정하던 후배 의원에게 “내일, 모레, 1년 후에 국민은 또 달라진다. 1년 후면 다 찍어주더라”며 유권자의 ‘기억 시한’을 제시한 바 있다. 고 노회찬 의원이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을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커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다”고 양당 체제의 쇄신을 외친 지 20년이 지났다. 이후에도 정치권에서 틈만 나면 ‘객토’니, ‘전면 쇄신’ 같은 말들을 쏟아냈지만, 실행 의지 없는 허망한 말의 잔치였다. 죽을 듯 싸우는 여야지만, 자리 보전에는 ‘찰떡궁합’이다. 대통령도 적용되는 탄핵은커녕, 지자체장·지방의원에까지 적용되는 주민소환제도 국회의원은 예외다. 선거 외에는 저질 의원들을 쫓아낼 방법이 없다. 그러니 기억하자. ‘기만의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적 행위’라고 했다. ‘국민은 잊는다’는 오만한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시대에 기억은 정치를 조금이나마 변호시킬 동력이다. 특히 ‘국감 중 딸 결혼식’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최민희 의원이 올해 초 “정치권의 더 책임 있는 의정활동”을 위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대표발의했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두자.
[중앙로365] 국정감사, 실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올해 국회 국정감사가 막을 내렸다. 헌법과 국회법이 보장한 이 제도는 행정부를 감시하고 국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한, 입법부의 가장 본질적인 권한이다. 국정감사에 무슨 큰 기대를 거냐고 냉소적일지 모르지만, 돌이켜보면 국정감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성과를 만들어낸 적도 있었다. 4대강 사업의 예산 낭비, 공공기관 채용 비리, 가습기 살균제 사건, LH 직원의 내부 정보 이용 문제 등은 국감 질의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고, 이후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다. 국감이 본래 취지대로 작동했을 때, 국가의 부패를 막고 행정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 국정감사는 그 의미를 잃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시민단체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은 이번 국감을 두고 “역대 최악의 권력분립 파괴 국감”이라며 F학점을 매겼다. 재작년 C, 지난해 D학점에서 올해는 한 단계 더 떨어진 셈이다. 이는 단순한 평가 절하가 아니라, 해마다 악화되는 국감의 자화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감 첫날부터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부적절한 질의와 조롱성 발언이 오간 장면이 논란이 되었고, 여야 의원들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출석 문제를 놓고 막말을 주고받았다. 심지어 최민희 위원장이 자녀 결혼식을 국회에서 올리고 축의금을 받은 일이 쟁점으로 떠오르며, 국감장은 정책 논의보다 사생활 논란으로 가득 찼다. 한 언론은 이번 국감을 “강성 지지층에게 잘 보이기 위한 ‘유튜브 쇼츠용 국감’”이라 표현했다. 짧고 자극적인 장면만 남기려는 ‘보여주기식 질의’가 국민의 피로를 키운 것이다. 이런 장면들은 국감이 왜 국민에게서 멀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책 검증보다는 여야의 공방이 중심이 되고, 질의는 정치의 언어로 채워졌다. 행정부를 감시하는 자리가 오히려 정쟁의 무대로 전락한 것이다. 행정 감시는 가장 본질적인 국회 권한 하지만 정책 논의 실종 정쟁 무대 전락 시민단체 "역대 최악" F학점 평가 내려 '보여주기' 아닌 책임 있는 검증 아쉬워 현장 잘 아는 실무자 목소리 담아내고 질의 초점을 민생 중심으로 재편하길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지난달 국감장에서 안미현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보완수사권이 전면 박탈돼 부작용이 생기면, 책임을 지셔야 할 분들은 무리하게 입법하신 분들입니다.” 이 한마디는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무자의 절박한 외침이었다. 그는 법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제도의 변화가 어떤 공백을 만드는지를 직접 목격해온 사람이다. 국감이 국민의 삶을 위한 제도라면, 바로 이러한 실무자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실무자의 의견을 배제한 입법은 결국 국민에게 불편과 피해를 전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일부 상임위에서는 실질적 논의도 있었다. 불법 사금융에 노출된 청년 실태 조명, 선거관리위원회의 보안 문제, 공공기관의 정보보호 인력 부족, 지역재정의 불균형과 비효율적 집행 등 구체적 현안이 질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질의는 상대 공격을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행정의 문제를 바로잡는 건설적 논의였다. 국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정쟁 대신 실무와 정책 중심의 질의, ‘감정’ 대신 책임 있는 ‘검증’으로 채워질 때 국감은 제 기능을 되찾을 수 있다. 국감이 국민에게 의미 있는 제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실무자는 단순한 증인이 아니라, 제도의 작동을 증언하는 전문가로 존중받아야 한다. 입법가와 실무자가 함께 문제를 논의하고 제도의 허점을 진단할 때, 비로소 국민이 체감하는 개선이 가능하다. 또한 질의의 초점을 민생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도 시급하다.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 복지, 안전, 교육, 지역 경제의 문제는 국감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질의와 답변 과정을 보고,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개선할 것인가’로 평가받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감은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시작점’이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감사 결과가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논의도 공허하다. 후속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국회는 국감 이후 기관의 개선 보고를 의무화하며 이행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책임 있는 입법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입법은 권한이 아니라 책임이다. 법이 국민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만들어진 입법은, 선명한 구호로 포장되더라도 결국 부작용을 낳는다. 입법자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그 법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입법이 현장의 경고에 귀 기울이며, 실무자가 두려움 없이 소신을 밝힐 때 국감은 비로소 제 이름을 되찾을 것이다. 실무자의 외침이 정쟁의 소음에 묻히지 않고, 책임 있는 입법과 실효적 감사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다시 신뢰할 수 있는 ‘국민을 위한, 국민을 향한 국정감사’의 시작이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생존과 돌봄의 무게
나는 작은 영화들을 좋아한다. 여기서 ‘작다’는 말은 단순히 제작 규모를 뜻하지 않는다. 제작비도 관객들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낮은 작품들을 뜻한다. 10월 말부터 부산에서는 작은 영화들로 채워진 영화 축제들이 연이어 개최되었다. 부산평화영화제와 부산여성영화제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다루는 주제의 깊이와 절실함은 결코 작지 않다. 오히려 인파가 덜 붐비는 곳에서 오롯이 영화의 메시지와 마주하는 내밀하고 소중한 발견의 기회를 선사한다. 부산 여성영화제에서 만난 ‘홍이’ 역시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영화이나 진정성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모두에게 선한 미소를 건네지만, 그 미소 뒤편에 불안과 빚의 그림자를 숨긴 채 살아가는 ‘이홍’. 서른을 훌쩍 넘긴 그녀는 불안정한 노동을 전전하며 고군분투하지만,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치매 초기 증세를 앓는 엄마 ‘서희’를 집으로 모셔 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서희를 데려오는 동기는 따뜻한 혈육의 정이 아니다. 자신의 경제적 위기를 해소해 줄 금전 때문이었다. 간병을 쉽게 여겼던 홍이는 아픈 이를 보살피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곧 깨닫는다. 게다가 서희의 증세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본래 평탄하지 않았던 모녀의 관계는 더욱 냉랭해진다. 황슬기 감독의 ‘홍이’는 생존과 돌봄의 문제를 홍이를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이때 감독은 홍이의 상황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으며, 한국 사회 여성들이 짊어진 무게를 서늘하게 새겨 넣는다. 결국 영화는 미혼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과연 간병을 감당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한글을 가르치는 강사 일과 거친 건설 현장 노동을 오가는 홍이는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불안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여유가 생기면 이력서를 쓰며 불안을 지우고자 애쓰고, 또 남들처럼 연애를 꿈꿔보기도 하지만 서희를 돌보기 시작한 이후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도 사치가 되었다. 홍이는 일과 연애, 간병을 함께 꾸려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서희가 집으로 온 뒤 홍이의 삶은 막다른 길에 이른다. 그녀는 분명 엄마를 보살피려 했다. 하지만 간병의 책임은 이내 그녀의 삶을 짓누르는 압력으로 바뀐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오늘을 살아내는 절박함뿐이다. 엄마의 돈을 훔치고 썸남에게 거짓말을 하는 홍이의 행동은 분명 비도덕적이다. 그러나 이는 그녀가 궁지에서 필사적으로 생존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일 정도다. 영화는 핏줄만으로는 돌봄 문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진실을 고한다. 전통적인 가족 서사처럼 고난 끝에 사랑과 희생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신파는 없다. 물론 엄마와 홍이가 한강에서 치킨을 나누고, 복잡한 애증 속에서도 서툰 이해를 나누던 찰나의 따스한 순간은 있다. 이는 모녀에게 잠재되어 있던 서로를 향한 연민을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 서자 연민은 끝내 힘을 쓰지 못한다. 서희의 치매는 멈추지 않고, 홍이의 빚과 불안 역시 그대로 남아있다. 마침내 홍이는 서희와 자신을 위해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린다. 영화는 관객에게 어설픈 위안을 건네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너의 고립과 절망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감독의 서늘하지만 다정한 시선이 존재한다. 물론 홍이의 삶은 여전히 불안할 것이고, 짊어져야 할 빚 또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전의 자신과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홍이는 엄마가 그토록 바르고 싶어 했던 붉은색 페디큐어를 자신의 발톱에 칠해 본다. 엄마를 다시 시설로 보낸 후의 죄책감과 자유로움이 뒤섞인 붉은 발톱은 그녀가 자신의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했음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이 작은 영화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홍이들’에게 짙고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안개달'에 다시 보는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과 니체의 관점주의
11월 초,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에도 안개가 피어오르는 계절이다. 프랑스 혁명력에서 브뤼메르(Brumaire)는 ‘안개달’을 말하는데, 현재의 그레고리력으로 10월 22일부터 11월 20일경에 해당한다. 아침의 차가운 공기와 밤사이 응결된 습기는 도시와 들판 위로 옅거나 짙은 안개를 드리운다. 사물은 또렷한 윤곽을 잃고, 빛과 그림자는 흐릿한 장막 속에서 서로 스며든다. 이때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고정된 실체라기보다는, 순간마다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다층적인 장면이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루앙 역시 이 계절이면 강변을 따라 자욱한 안개가 피어오른다. 모네가 루앙 대성당을 수십 차례 반복해 그렸던 것도, 바로 이런 시간과 날씨, 빛의 변화가 건물의 표정을 끊임없이 바꾸었기 때문이다. 같은 대성당이지만, 아침과 저녁, 맑은 날과 흐린 날, 해가 비치는 순간과 안개가 덮인 순간은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니체는 말한다. 세상에 단 하나의 절대적이며 본질적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에 따르면, 우리의 관점을 벗어나면 어떠한 단일한 물리적 실재도 존재도 없다. 오직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니체의 ‘관점주의’다. 물론 니체가 프랑스 예술, 특히 문학(몰리에르, 라신), 음악(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높이 평가했음에도 모네가 니체를 직접 읽었거나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또한 니체가 프랑스 회화를 직접 접한 시기는 인상파가 막 부상하던 시기였기에 니체가 인상파 미술가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사례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모네의 대성당 연작은 니체의 관점주의를 시각적으로 증언한다. 전통적인 본질주의자라면 루앙 대성당이라는 거대한 석조 건물은 우리 눈에 비치는 주관적 인상과 무관하게 그 배후에 변치 않는 본질적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언제나 빛과 안개, 시간의 층위가 얽힌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소설가 모파상은 모네를 가리켜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 순간순간 변하는 빛과 색의 조화를 한꺼번에 다섯 개의 캔버스 위에 포착하는 포수”였다고 말한다. 모네가 그린 30장의 ‘루앙 대성당’ 정면 그림은 형태적으로는 거의 같아 보이지만, 아침 무렵, 햇빛이 가장 강렬한 정오, 해 질 녘, 밝은 날과 흐린 날, 눈·비가 내릴 때, 안개가 낄 때의 빛과 색상은 항상 달랐다. 바로 그 차이가 대성당의 실체라기보다는 관점들의 집합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단일한 목소리나 절대적 진리보다 서로 다른 관점들이 빚어내는 다양성, 이것이 현대 사회가 지켜야 할 미학적이자 민주적 가치가 아닐까? 미술평론가·철학박사
[다른 시선으로] 옳으려는 마음
젠더 감수성이란 그저 남 듣기에 옳은 소리가 아니라 내 살과 내 샅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의 분별을 뜻한다. 그렇게 여기만은 들어오지 말라고 쳐놓은 사적인 굴레 안에 많은 종류의 폭력과 부정의가 일어나기에 그렇다. 내 결혼, 내 연애, 내 섹스, 내 성욕이 생각하기도 싫은 남의 사연과 남들에게서 온 착각에 연루되었다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곳에서의 일을 분별하자는 말에 대해 때로 강렬한 거부감을 갖고, 그게 왜 정녕 필요한지 스스로 납득하기를 어려워한다. 정의로우려는 마음과 분별하려는 마음은 그것을 품기 쉬워서가 아니라 품기 어렵기 때문에 중요하다. 별다른 노력 없이 쉽게 정의롭고 쉽게 분별되는 것 같으면, 그것이 실은 제대로 된 정의와 분별이 아니거나, 무언가를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나를 경계하고 남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일은 마음의 품이 든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은 올바르려고 하는 마음이 지칠 때를 생각하고, 그것이 자칫 영영 올바르기를 포기하는 데로 치닫지는 않을까 근심한다. 정의와 분별이 고되고 지칠 때는, 부정의와 무분별에 영원히 머물겠노라 마음먹지 않고, 입을 다물고 손을 모은 채로 남 눈을 피해 안전한 곳에서 잠시 쉬면 된다. 무엇이 고되고 힘들다는 것은 때로 정의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표고,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가망없는 것으로부터의 단념이 아닌 고요한 휴식이다. 사람은 누구나 지칠 수 있고, 그 때에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 사람은 뭘 알려고 하는 때가 아니라 뭘 그만 알려고 하는 순간에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 그것이 나의 일이든 남의 일이든, 어떤 사람을 변하지 않는 존재로 명토 박는 것은 위험하다. 인생의 변화는 대체로 내 생각과 단념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남이 잘못 얘기하기를, 남이 큰 실수를 저지르기를, 그것이 영원히 남에게 매인 흉터이기를 기대한다. 공격할 명분이 있는 잘못을 공격하는 일은 지고의 재미고, 그 재미가 유지되려면 그 잘못이 변화하지 않을수록 유리하다. 그 때 포기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실수할 권리, 천천히 알아갈 권리, 남의 허물이 스스로 바로잡힐 권리, 남을 예단하는 나를 바꿀 권리. 그것들 모두가 실은 쥐고 있기 힘든 것이고, 그 사람 역시 휴식이 필요할 때 무언가를 영원히 단념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정의로운 것은 대개 피곤한 일이다. 따지자면 그렇게 살아야 할 아무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삶을 살아서 되겠느냐는 목소리가 어디서 들리는 듯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산 내 친족과 이웃의 목소리인가 싶었다. 피로에 지쳐 끝이 갈라진 음성이었다.
[강윤경 칼럼] 북한 비핵화와 '개꿈'
2일 폐막한 경주 APEC 정상회의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북미 정상회담 성사 여부였다. 트럼프 방한을 앞두고 CNN이 북한 땅을 바라보는 임진각 인근 카페 하나를 통째로 빌려 생중계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미 대화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다. 북한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판문점 북측 시설물에 대한 청소, 풀 뽑기, 화단 정리, 가지치기 등 미화 작업을 벌이는 장면이 포착됐다는 점도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을 점치는 징후로 해석됐다. 마침, 트럼프는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라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김 위원장)도 내가 (한국에)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나는 그와 매우 잘 지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을 일종의 ‘뉴클리어 파워’라 지칭했다. 이 표현을 쓴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엔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어서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북측의 묵묵부답에도 순방 일정 연장과 대북 제재 해제 카드까지 내비쳤다. 누가 봐도 몸이 단 쪽은 트럼프였다. 김정은은 끝내 트럼프의 ‘러브콜’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대미 협상통인 최선희 외무상을 러시아로 보내 푸틴을 접견하게 하고 트럼프 방한 날에 맞춰 서해상에서 함대지 전략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한마디로 연애편지에 퇴짜를 놓은 것이다. 트럼프는 귀국길 에어포스원 안에서 “그를 만나러 다시 올 것”이라며 한국을 떠났다. APEC 기간 트럼프의 일방적 ‘구애’와 김정은의 ‘퇴짜’는 2019년 북미 하노이 노딜 이후 달라진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노이 회담 당시 전제 조건이던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A)’는 이제 ‘불가역적 핵 보유’로 바뀌었다. 북한은 대북 제재에도 맷집이 생겼다. 우크라이나 전쟁 덕에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배를 얻었고, 이는 대중 관계에서도 지렛대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의 돌발행동에 깨춤을 출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정책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는 현실을 확인시킨다. 북한은 한 번도 핵무장 야욕을 버린 적이 없었다는 점만 깨닫게 되는 꼴이다. 1991년 12월 31일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당시만 해도 미국이 한반도에 다수의 전술핵을 전개한 상황에서 핵무기 존재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NCND) 정책을 고수했다. 북한은 조선 반도 비핵지대화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미군은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철수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한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공동선언이 사기극으로 판명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시작으로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수차례 핵 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완성했다. 진보 정권의 평화 제스처도 보수 정권의 강경 노선도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 폭주를 막지 못했다. 북한은 이제 유엔총회에서 주권과 생존권, 헌법까지 운운하며 핵 보유를 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북한 비핵화는 이제 개꿈이 된 것이다. APEC 기간에서 보듯 트럼프가 미국 본토의 안전을 확보하는 선에서 북핵을 용인하며 협상에 나서는 경우의 수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로서는 하루빨리 북한 비핵화라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환상만 붙잡고 있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핵무장으로 맞서는 것은 현재로서는 판타지에 가깝다. 우리 나름의 현실적 대북 억지력과 협상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미국으로부터 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을 이끌어 낸 것이 반가운 이유다. 잠수함 건조 능력과 소형원자로(SMR)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에겐 큰 자산이다. 미국과의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는 후속 조치도 이뤄내야 한다. 북한도 언제까지 미국의 러브콜을 뿌리치지는 못할 것이다. 트럼프의 뒤끝도 생각해야 한다. 핵무기가 자신들의 안전보장에 필요조건이기는 해도 충분조건까지는 아니다. 내년 4월 트럼프 중국 방문이 되든 언제가 되든 자신들의 몸값이 최고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때 북미 대화에 응할 공산이 크다. 그때 우리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현실적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따른 주변국 견제와 경제적 리스크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진가를 발휘해야 하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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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점국립대·주력산업 키울 ‘지방 거점 성장’ 예산 29조 2000억
[단독] 국민의힘, 다음 달 3일 조병길 징계 결정
'유승민 딸' 유담, 교수 임용 두고 공정성 논란…인천대 '내부 지침 준수'
‘국정안정법’ 후폭풍…이 대통령에 찬사 연발, 몸 낮춘 정청래
부산시, 전국 최초 분산특구 확정…4곳 ‘합격’, 울산 등 3곳은 ‘보류’
젠슨 황과 트럼프 엔비디아 GPU 수출 놓고 갈등?
기초생활보장급여·근로장려금 받는 노인 5년 새 50% 가까이 급증
KT, 무상 유심 교체 나섰다
‘새벽배송 전면 금지’ 논란 가열…소비자단체 “소비자권익·생활편익 침해” 반발
‘판교 사망사고’ 삼성물산, 전국 현장 작업 중단
젠슨황·이재용·정의선 ‘깐부회동’…다 먹고 결제는 누가?
‘김해~밀양 고속도로 신설’ 사업 예타 통과…“물류 경쟁력 제고 기대”
수도권 아파트 규제 '풍선효과'… 부산 거래량·가격 상승
부산 아파트 거래 ‘신고가’ 행진… 상승장 본격화하나
[르포]철의 거인들이 깨어나다…자동화로 다시 뛰는 부산 북항
안전 자회사 설립도 ‘무색’…포스코서 또 산재, 올해 6명째 사망
부산에 가볼 만한 목욕탕은
밀양강 따라 절벽 잔도, 11월엔 황금빛 은행나무 금시당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 10월 30일 목요일(음력 9월 10일)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 11월 3일 월요일(음력 9월 14일)
'방송 패널 활약' 백성문 변호사, 암 투병 끝 별세…향년 52세
[부산 전시] 이번 주에 뭐 볼까?[2025년 11월 1일~ ]
부산역 앞 '창비 부산' 20일 운영 종료
포구와 예술 사이… ‘경계의 미학’을 만난다
추창민 감독 “‘탁류’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민초들의 이야기”
아침 거르고 채소 덜 먹고… 청소년 식생활 ‘빨간불’
그 시절 대한민국 문화 수도 부산을 확인해 볼까
[2025 신춘문예-시] 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