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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상호주의

선물 상호주의

외교를 할 때 국가 간에 동등한 조건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을 ‘상호주의’라고 한다. A 나라가 B 나라 국민에 대해 무비자 체류를 허용하면, B 나라도 A 나라 국민을 무비자로 받아준다. 외교관을 추방시키면, 상대국도 똑같이 외교관 추방으로 맞선다. 관세나 시장 개방, 범죄인 협정 등에서도 똑같이 반영되는 현대 외교의 기본 원리다.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상호주의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때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금 190돈(712.5g·약 1억 4000만 원)이 들어간 ‘무궁화 대훈장’과 금박을 두른 ‘신라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했다. 트럼프는 “우리나라가 다시 존중받고 있다”고 만족해 했지만 답례품만 놓고 보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트럼프는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선수인 딜런 크루스의 사인이 새겨진 야구방망이와 자신의 인장이 찍힌 야구공을 주고 갔다. 대통령실은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야구를 전한 역사와 한미 문화적 유대를 상징한다”고 설명했지만 “선물의 격이 안 맞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사인의 주인공이 미국 야구를 대표하는 상징성 있는 인물이나 스타 플레이어가 아닌 평범한 프로 2년 차 선수였기 때문이다.우리에게만 그런 건 아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트럼프에게 황금 골프공과 아베 신조 전 총리(2022년 사망)가 사용했던 골프채를 선물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요원들을 제거하는 데 썼던 원격 폭탄이 탑재된 ‘삐삐’(무선호출기) 모형에 금을 입혀 선물했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추천서를 황금 액자에 넣어 전달했다.트럼프는 황금 삐삐를 선물한 네타냐후 총리에겐 함께 찍은 사진에 자신의 사인을 해줬고, 밀레이 대통령에겐 자신의 책 〈거래의 기술〉에 사인을 해 선물했다. 다카이치 총리에게 뭘 줬는지는 아예 공개되지도 않았다.이쯤 되면 트럼프와의 선물 교환은 상호주의는 커녕 ‘조공 외교’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다들 참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안에서 동맹국으로서 누리는 안보·경제적 혜택이 황금 선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집권 2기에서는 선물의 의미가 국가 간 우호의 상징에서 힘을 과시하거나 이미지를 연출하는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외교의 기본인 상호주의가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힘을 잃고 있다.

부산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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