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원화 위기, 부산 '디지털 금융 인프라'로 극복을
심준식 비온미디어 대표
최근 대한민국 경제는 ‘환율’이라는 거대한 해일에 직면해 있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을 위협할 때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긴박하게 움직인다. 주요 대기업을 독려해 해외 유보금을 국내로 환류시키고, 외환시장 안정 조치로 급한 불을 끄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러나 냉정하게 자문해야 한다. 이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해결책인가? 지금의 대응은 구조를 바꾸는 처방이라기보다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진통제에 가깝다. 자본은 수익과 안전을 찾아 흐르는 물과 같다. 경영 자율성을 압박하며 자본을 가두는 방식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을 억지로 붙들어 두는 규제가 아니라, 글로벌 디지털 자본이 스스로 머물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금융 생태계’를 부산에 구축하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 치솟을 때 정부 안정 조치
구조 변화 아닌 증상 일시적 완화 그쳐
부산은 블록체인 실증 최적의 실험장
'비단주머니' 웹3 기반 금융 플랫폼
AI·금융 결합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사이버 보안, 성공 담보 결정적 카드
역사는 영토의 크기보다 ‘화폐의 신뢰’와 ‘금융 시스템’이 국가의 명운을 결정했음을 증명한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는 척박한 환경을 무역과 금융으로 극복했다. 그들이 발행한 ‘베네치아 금화’는 수백 년간 가치를 유지하며 당대의 기축통화 역할을 했고, 덕분에 일개 도시임에도 12세기부터 18세기까지 세계경제의 중심을 지켰다. 17세기의 네덜란드 역시 ‘네덜란드 길더’라는 강력한 화폐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세계 1위 경제 대국에 올라섰다. 이들은 자본을 통제하기보다 전 세계 자본이 머물 수 있는 ‘금융의 항구’를 자임했다. 반면 아무리 강력한 제국이라도 화폐 관리에 실패하면 허망하게 무너졌다. 이제 우리도 원화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금융 항구를 부산에 열어야 할 때다.
그 해법의 핵심은 국제 자본이 체류하고 싶은 ‘도시 인프라’를 제공하는 데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부산이라는 인프라 안에서 자유롭게 흐르고, 수익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찾는 글로벌 디지털 자본이 머물 수 있는 레일을 깔아주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자본은 통제보다 환경에 반응한다. 머물 이유가 생기면 환율은 더 이상 방어의 대상이 아니라, 고도화된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는 변수가 된다. 부산은 이미 ‘부산시민 블록체인 플랫폼’을 통해 행정과 생활 서비스를 연결하며, 도시 운영체제로서의 블록체인을 실증해 온 최적의 실험장이다.
최근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와 비단이 공개한 ‘비단주머니’ 구상은 이러한 실험을 국가 전략으로 격상시킨다. 비단주머니는 신원 인증, 결제, 송금 등이 연동되는 웹3 기반 금융 플랫폼이다. 여기서 주목할 미래 금융의 정점은 인공지능(AI)과 금융이 결합한 ‘AI 에이전트’다. 미래 금융은 사람이 일일이 승인하는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AI 에이전트가 디파이(DeFi) 생태계에서 유동성을 찾아 스스로 움직이는 지능형 금융이 대세가 될 것이며, 이때 필수 도구가 바로 코딩 가능한 ‘프로그래머블 머니’인 스테이블코인이다.
이미 일본은 엔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으로 편입시켜 국가 금융 전략의 한 축으로 활용하고 있다. 흐름을 규제로 막기보다 제도 안에서 활용하는 도시가 주도권을 갖는다. 부산의 무역 기업들이 AI 에이전트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자동화하고 리스크를 관리한다면 외환 시장의 변동성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국제 자본이 부산의 온체인 금융망을 통해 순환한다면, 외환 불안이 국가 경제 위기로 번지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 자본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들어와서 끊임없이 돌게 만드는 것, 이것이 부산이 제시하는 환율 전략의 핵심이다.
이 구상의 성공을 담보하는 결정적 카드는 ‘사이버 보안’이다. 안전하지 않은 지갑 위에 거대 자본은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정예 보안 인력인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 연구진이 부산에 설립한 ‘안암145’는 이러한 신뢰의 뿌리를 담당한다. ‘부산월렛’과 유엔개발계획(UNDP)의 웹3 지갑 프로젝트로 검증된 안암145의 사이버 보안 기술은 AI 에이전트가 해킹 위협 없이 금융 생태계를 유영하게 만드는 핵심 방패다. 여기에 해시드의 디파이 역량과 BNK부산은행의 신뢰가 결합한다면, 기술·보안·금융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완벽한 생태계가 완성된다.
70여 년 전 부산이 수출 전진기지로 나라를 일으켰듯, 이제는 디지털 금융이라는 영역에서 국가 경제를 떠받칠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과거 한반도의 국가들이 세계 랭킹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저력은 과학과 학문, 교역의 중심지였기에 가능했다. 부산이 디지털 자본의 항구가 되는 순간, 환율 문제는 위기의 신호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비단주머니 속에 담긴 안암145의 보안 기술과 시민의 참여가 어우러진 이 도전이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