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예술의 3대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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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큐레이터

문체부 예산, 국민 향유·관광 확대 핵심
기초예술 지원 정책과 실천 매년 약화
성과만 중시하면 지역 문화 격차 심화

“기쁘다 구주 오셨네.” 성탄절의 축복이 지나면서 일력이 며칠 남지 않은 을사년 끝자락이다. 불안한 시국 속에 해를 맞이했지만, 4월 4일 윤석열 탄핵을 기점으로 세상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아우토반처럼 달려온 시간이다.

최근 “국민께 보고드립니다”라는 슬로건으로 국민들은 대통령 정부 업무보고가 안방에서 생중계되는 장면을 맞이한다. 혹자는 넷플릭스보다 재밌다고 한다. 밥그릇 사정이 그렇다 보니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업무 보고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올해 초 1월 10일 문체부에서 2025년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모두를 위한 문화, 세계를 잇는 문화강국’이라는 비전 아래, ‘민생경제 지원’ ‘지역균형발전’ ‘콘텐츠·관광·스포츠산업 육성’ ‘미래를 만들어가는 문화’ ‘K아트 글로벌 문화교류 확대’ 등 5대 핵심 과제를 발표했다. 그리고 며칠 전 업무보고 내용을 보면 K컬처와 예술인 복지에 대한 언급이 대부분이었다. 단연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이 K컬처다. 대중문화는 민간의 성장 영역인데 정부 기관이 산업화 계획으로 목표치를 정한다. 대한민국의 브랜드 확장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국가의 역할은 상위 몇 퍼센트보다는 문화예술 생태계에 주목해야 한다. 그 일을 도맡아서 해야 할 문체부는 예술가들의 성역 없는 활동 터전 마련을 우선시해야 한다.

문체부는 ‘K컬처 300조 원 시대’를 선포하며 2026년도 예산을 7조 8555억 원으로 최종 확정했다. 올해 본예산 대비 7883억 원(11.2%)이 증가한 규모다. 국민 향유·관광 확대가 핵심이다. 예술 관람을 통한 향유 확대는 소비의 시선이다. 물론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공연, 영화, 대중음악 등을 통해 문화복지를 증대하는 지점이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정부 기관의 정책 방향에는 동시대 실험 예술, 비주류 예술, 융복합 등 기초예술 지원에 관한 정책과 실천이 해가 갈수록 보이지 않는다. 지원 주체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광역 및 기초지자체, 문화재단 등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지원의 다변화가 시대의 유행처럼 행사성 사업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예술(인)은 가난할까?

시장이 외면하는 영역, 당장의 성과가 나지 않는 창작, 실패할 권리를 허락해 주는 예술은 여전히 국가의 보호가 필요하다.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다. 1등도 탄탄한 생태계 내에서 나온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상과 차트 성과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지역 간 문화 격차를 가중시킨다. 비수익 문화 영역, 창작 노동의 지속 가능성과 같은 문화정책의 핵심 과제를 처음부터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이로 인해 문화정책의 성과 기준은 제도 개선, 권리 보장, 접근성 확대와 같은 정책 본연의 목표가 아니라, 글로벌 수상 여부와 흥행 지표로 그 온도는 지역문화재단까지 스며든다. 그렇게 공공재의 투여가 성공이라는 신화를 쫓아가는 동안 예술가들은 도구로 활용되고 다시 그들은 창작 앞에서는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게 하는 것이다.

결과적 수치가 보이지 않지만 문화강국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창작활동에 전업으로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안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장치를!

최근 아일랜드 정부는 예술가 기본소득 프로그램을 영구 제도로 전환했다고 한다. 앞으로 예술가 2000명에게 조건 없이 매주 325유로(약 47만 원)를 지급하게 된다. 시범 사업으로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시행했었다. 기본소득을 받은 예술가들의 작품 생산량이 증가했고, 예술가들의 주당 창작 시간이 4시간 더 늘어났다. 여기에, 시범 사업을 영구적으로 정착시킬 경우 작품 생산량이 22% 증가한다는 연구 보고가 발표됐다. 부러울 따름이다.

바야흐로 2026년도 문예진흥기금 신청과 금년도 사업들을 정산하는 기간이다. 연말은 예술가들에게 무수한 서류 작업과 각종 영수증을 챙겨 증빙자료를 만드는 시간이다. 세모의 끝을 즐기거나 할 여유 따위는 없다. 해가 갈수록 지원사업 서류는 촘촘해지고 절차는 복잡해져 간다. 그래도 매번 반복되는 일들을 해야만 내년도 창작 여건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부산문화재단은 3번에 걸쳐 권역별로 차기 연도 지원 사업에 대한 안내와 공개 토론회를 가지며 예술가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어느 현장의 중장년층의 목소리가 기억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작업을 해 왔는데 지원을 안 해 주는지 모르겠다”라고 원로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성토를 하기도 한다. 간극은 현장에서도 멀게 느껴진다.

예술가란, 예술이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쓰린 겨울을 마주해야 하는가. 예술의 힘은 그렇게 안 배웠고 세상을 바꾼다고 했는데 작금의 현실은 혹독하기만 하다. 시쳇말로 예술의 3대 요소가 지원, 교부 그리고 결산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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