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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로 코 막혀 냄새 못 맡는 줄 알았는데… 파킨슨병 의심을
감기로 코가 막혀 냄새를 못 맡는 줄 알았다면? 단순 감기 후유증이 아닌 파킨슨병 초기 신호일 수 있다. 최근 연구결과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후각기능이 떨어졌다면 파킨슨병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13일 의학계에 따르면 파킨슨병은 치매와 함께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 중 하나로, 뇌의 중뇌 부위에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면서 발생한다. 몸이 떨리고 뻣뻣해지며 행동이 느려지고 걸음이 불편해지는 운동 증상 뿐만 아니라 인지기능 저하, 수면장애, 변비, 우울증 등 다양한 비운동 증상도 동반된다.
국내 파킨슨병 환자는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2만 5927명에서 2024년 14만 3441명으로 13.9% 정도 증가했다. 60대 이후 발병률이 크게 늘기 시작하며 70대와 80세 이상 환자가 전체의 74%를 차지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비운동 증상의 하나로 알려진 후각 기능의 변화가 파킨슨병 환자의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예측하는 핵심 지표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연구 결과가 주목된다.
가톨릭대병원(서울성모·여의도성모·의정부성모)과 충남대병원, 인제대부산백병원 등 5개 병원이 2021년부터 국립보건연구원의 ‘뇌질환 연구기반 조성 연구사업’에 참여해 파킨슨병 초기 환자 203명을 5년간 장기 추적한 결과 환자의 86%가 후각 기능 저하를 보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후각 기능이 정상에서 저하로 전환된 환자군에서 인지기능 저하 속도가 다른 군보다 빠르게 나타났다는 데 있다. 반면 운동 기능이나 심장 자율신경 기능 저하는 후각 기능 저하에 따른 차이가 크지 않았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는 환자의 단순한 증상이 뇌 속 도파민 신경과 인지기능 악화를 감지하는 신호일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파킨슨병은 완치가 불가능한 질환인 만큼 약물 치료와 함께 다양한 치료법을 통해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일상 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증상 호전을 위한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면 운동 증상이 개선되면서 삶의 질도 높아진다.
걷기, 수영, 스트레칭 등의 운동도 균형 감각과 유연성 유지에 도움이 된다. 근력 운동과 함께 하루 한시간 정도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하면 신체는 물론 정신 활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식단은 특별할 것이 없지만 채소 위주의 규칙적인 식사로 적정 체중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질병관리청의 ‘닥터 파킨슨앱’을 활용할 만하다. 신체 증상 변화를 쉽게 기록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앱으로, 운동과 약물 복용, 생활습관의 추적관리는 물론 조기진단 등도 돕는다. 대한 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학회에서 운영 중인 ‘파킨슨TV’에서도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인제대부산백병원 김상진 신경과 교수는 “파킨슨병은 예방법도 아직 없는 만큼 나이 들어 갑자기 냄새를 맡기 어렵게 되고 잠꼬대가 심해진다면 가능한 한 빨리 전문 의료진을 찾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초기 증상을 놓치지 않고 조기에 발견해 긍정적인 마음으로 치료를 받는다면 얼마든지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2025-11-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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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환상·현실 괴리에 감당 힘든 고통 오기도…
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정신과와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말 못할 고민에 마음 아픈 이들이 기댈 곳은 실상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마음산책>은 이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내적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줍니다. 올해 초 동아대병원에서 정년퇴임한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가인 김철권 박사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회복에 전념하기 위해 개인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이메일(gomin119@busan.com)을 통해 접수된 사연 중 한 건을 선정해 매월 한차례 고민을 풀어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Q. 저는 어렸을 적 아버지 손에 이끌려 보육시설에 맡겨졌습니다. “곧 찾으러 오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을 희망 삼아 하루하루를 이겨냈습니다. 보육시설을 떠날 무렵 그토록 기다리던 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기쁨도 잠시. 자립 지원금을 가져간 아버지는 그 길로 소식이 끊겼습니다. 깊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보다 더한 역경도 이겨내고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잊으란 말에 더 분노가 치밉니다. 학업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고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저를 두 번이나 버린 아버지가 증오스럽습니다. 아버지에게 보란 듯이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며 복수하고 싶지만 몸과 마음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돈이라도 돌려받으면 회복할 수 있을까요. 자포자기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도 큽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이번 사례는 표면적으로는 아버지의 배신에 관한 내용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삶과 환상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환상이 깨어졌을 때 인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혹은 인간의 삶에서 환상이 어느 정도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 환상은 희망과 동의어입니다.
사례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이중의 배신을 당했습니다. ‘곧 찾으러 오겠다’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과 자립 지원금을 가져간 후에 소식이 끊겨버린 것, 두 가지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두 번이나 버린 아버지가 증오스럽다고 말합니다. 증오를 안겨준 특정 대상이 사라져 버리면 그 증오는 자신과 불특정 다수를 향하게 됩니다. 자신을 향하면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밖으로 향하면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불신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그녀)가 절망감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아버지’에 대한 환상이 깨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동안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에 기대어 살아왔을 것입니다. “곧 찾으러 오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은 환상을 심어주는 씨앗이 되었을 겁니다. ‘어린 나를 시설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틀림없이 있었을 거야.’ ‘내가 괴로운 만큼 아버지도 매일 괴로울 거야.’ ‘어떻게 하던 나를 다시 데려가려고 엄청 노력하고 계실거야.’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아버지도 나를 사랑하실 거야.’ 이런 환상이 없었다면 힘든 삶을 버텨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환상에는 언제나 욕망이 개입됩니다. 욕망은 환상을 통해 발현되고 환상은 욕망을 위장하는 옷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례 주인공의 욕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버지를 다시 만나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함께 오손도손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환상과 욕망은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내게 만든 절대적인 힘이 되었을 겁니다. 그(그녀) 스스로도 아버지의 약속을 희망 삼아 하루하루를 이겨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환상의 탑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시설에서 나오는 자신을 아버지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두 팔 벌려 맞아줄 거라는 환상이 산산조각 나 버렸습니다. 욕망도 함께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환상과 욕망을 충족시켜 줄 ‘아버지’는 사라지고 대신 자립 지원금을 가져가서 소식이 끊겨버린 ‘괴물’이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글 곳곳에서 고통스러운 감정이 전해집니다. 배신감, 분노, 증오, 복수, 자포자기 등…. 아버지로부터 두 번이나 버림받았다는 상처는 글쓴 이가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비극의 강도가 자신이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때, 그리하여 마음속이 온통 흙탕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위로의 말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흙탕물 속의 흙이 밑으로 가라앉아 어느 정도 맑은 물이 되어야 사람들의 위로나 조언이 귀에 들어옵니다.
삶을 지탱하는 3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하나는 건강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힘이고, 다른 하나는 지지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 3개의 기둥이 삼각대처럼 삶을 받쳐주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잃게 되면 삶을 지탱하기가 어렵습니다. 역으로 3개의 기둥 중에 하나라도 있으면 나머지 2개의 기둥을 다시 복원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례는 지지해 주는 사람과 돈을 잃은 경우입니다. 하나 남아있는 건강도 많이 손상된 상태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제일 시급하게 복원해야 할, 또는 복원 가능한 기둥은 건강입니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만 회복하면 나머지 잃어버린 두 개의 기둥도 복원할 수 있습니다. 위 사례처럼 극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고통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원칙은 적용됩니다.
2025-11-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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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옷 입은 메타세쿼이아 터널에서 가을과 걸었다
6년 전 여름 전남 담양군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하늘을 푸른 잎으로 덮은 메타세쿼이아랜드의 키 큰 나무터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나무 숲이 온 세상을 시원한 그늘로 만들어 준 죽녹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메타세쿼이아랜드는 물론 죽녹원이 가을에는 훌륭한 단풍 풍경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주저하지 않고 담양을 향해 다시 달려갔다.
■환상적인 메타세쿼이아랜드
메타세쿼이아랜드는 1972년 도로로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공원으로 바뀐 곳이다. 2000년 도로 확장 공사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몰렸지만 지역주민들이 보존 운동을 벌인 덕분에 관광 명소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기후변화체험관, 개구리생태공원, 장승공원, 어린이프로방스 같은 시설이 새로 만들어졌다.
SNS에서는 ‘가을이 되면 메타세쿼이아랜드가 붉게 변한다’고 돼 있었다. 지난 6일 찾아간 메타세쿼이아랜드의 나뭇잎들은 아쉽게도 아직 그 정도까지 깊이 물들지 않았고 노란 색으로 변한 상태였다. 한두 주 정도는 더 지나야 SNS 사진에서 보던 짙은 갈색 터널이 될 것 같았다.
원하던 수준의 단풍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메타세쿼이아랜드 가을 풍경은 훌륭하다. 나뭇잎이 노란 것인지 하늘이 노란 것인지 온 세상은 노란색 천지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바람은 온몸을 감싸 돌면서 익어가는 단풍 향기를 뿌려놓고 간다. 무성한 노란색 잎을 뚫고 쏟아지는 가을햇살은 여행객의 마음까지 따스하게 만들어준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지그시 두 눈을 감는다. 마음은 상쾌해지고 머리는 맑아진다.
평일 낮인데도 메타세쿼이아랜드를 찾은 사람은 적지 않다. 꽤 넓은 주차장에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가로수길 총길이는 왕복 4km다. 천천히 걷는다면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니 한가로운 가을 산책 코스로 제격이다. 담양군이 2년여 전 가로수길을 마사토 흙길로 조성한 덕분에 맨발로 걸으며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도 있다.
메타세쿼이아랜드 입구에서 단체 여행객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제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설치된 조명이 겨울도 멀지 않았다는 걸 알려준다. 여성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같은 마을 사람인지 학교 동창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을 만든다.
가로수길에서는 이들 외에도 많은 사람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여성 친구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계속 깔깔거린다. 손을 꼭 잡고 밝게 웃는 젊은 두 연인의 얼굴은 그야말로 ‘하트 뿅뿅’이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40년 이상 해로한 것처럼 보이는 노부부는 급한 것 하나 없이 느긋하다. 갓난아기가 탄 유모차를 끌고 온 부부도 느릿한 여유를 마음껏 즐긴다.
나무터널을 따라 걷다보면 왼쪽에 큰 연못이 보인다. 환한 햇빛을 받아 연못 수면에 비치는 잔상이 또한 환상적이다. 파란 가을하늘이 연못에 풍덩 빠지는 바람에 수면은 파란색으로 변했고, 짙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크고 작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은 연못 아래에 뭐가 있는지 구경하려는 듯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연못 주변 곳곳에 설치된 벤치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한가로운 여유가 느껴진다.
연못 뒤편에는 전시관, 생태관으로 구성된 개구리생태공원이 있다. 아주 훌륭한 시설은 아니지만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라면 개구리를 주제로 한 이색시설인 만큼 한 번 둘러볼 만한 곳이다. 생태관에는 세계 곳곳에서 서식하는 다양한 종류의 개구리, 양서류, 파충류가 전시돼 있어 어린이들이 흥미를 가지기에 충분하다. 가로수길 중간에는 담양에서 키운 딸기로 만든 주스를 판매하는 찻집이 나온다. 시원한 딸기주스와 딸기요구르트는 상당히 맛있다.
가로수길에서 돌아 나오는 길에는 어린이프로방스가 나온다. 곳곳에 공룡 모형이 설치돼 있는 데다 곤충박물관도 있어 역시 어린이를 동반했다면 찾아가볼 만하다.
■빨간 단풍 물든 죽녹원
메타세쿼이아랜드 주차장 인근의 소규모 쇼핑몰 메타프로방스에서 점심을 들고 죽녹원으로 향한다. 이전에는 담양관광정보센터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문으로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반대쪽인 후문으로 들어간다. 정문으로 입장하면 대나무 숲부터 만나게 되지만 후문으로 들어가면 ‘죽녹원시가문화촌’부터 둘러보게 된다.
고려, 조선시대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학자들이 이용하던 담양 곳곳의 정자, 즉 별서를 재현해놓은 공간이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사랑채 같은 집은 면앙정이다. 조선 전기인 15세기 성리학자 송순이 중앙정치의 권력 투쟁에 실망해 낙향한 뒤 지은 별서다. 그는 이곳을 배경으로 ‘면앙정가’라는 가사를 지었다.
‘하늘도 땅도 풍성하여라/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경치로구나/ 인간 세상을 떠나왔지만/ 몸은 한가로울 겨를이 없어라’
면앙정 앞에는 연못이 있는데 지금 한창 정비 작업이 진행 중이다. 연못 주변에는 대나무 숲을 따라 나무 데크가 설치돼 있다. 나무 데크를 따라 걷는다. 대나무 숲이 산책객의 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귀여운 새 울음소리 외에 소리라고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마음도 덩달아 조용해지고 차분해진다.
데크 맞은편에 정말 황홀할 정도로 붉게 물든 단풍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나무 아래에는 몸을 누일 수 있는 침대형 벤치가 설치됐다. 벤치에 잠시 엉덩이를 걸쳐본다. 환상적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그마한 사랑방인 면앙정, 그 앞으로 펼쳐진 대나무 숲과 나무 데크 그리고 아직은 파란 잔디 위에 점점이 뿌려진 갈색 나뭇잎. 그야말로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다.
송순은 영산강 지류 하천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훌륭한 작은 언덕 숲속에 면앙정을 지었는데, 죽녹원에 설치된 이 면앙정의 가을 풍경을 보게 된다면 ‘왜 이렇게 짓지 않았을까’라고 후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면앙정을 지나면 환벽당, 소쇄원 광풍각, 식영정, 송강정 등 여러 별서가 차례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한옥체험관을 지나면 대나무 숲, 즉 죽림으로 들어가게 된다.
정문으로 들어가 걷는 코스와는 정반대지만 분위기는 똑같다. 곧바로 세상과의 단절이다. 온통 화려한 색깔의 세상과 달리 이곳에서는 오직 대나무의 푸른색과 흙색뿐이다. 가을이어서인지 푸른색이 약간 바랜 탓에 느낌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근본은 여전히 푸르다.
대나무 숲 사이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대나무 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게 마치 대나무가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방금 메타세쿼이아랜드에서 분 바람은 선선했지만 이곳의 바람은 약간 차갑다. 그래서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천천히 1시간 이상을 걸어도 따라다니는 것은 대나무뿐이다. 죽림 바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서서히 무관심해진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푸른 대나무가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급하게 걷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느긋하게, 천천히 대나무와 대화하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윤선도 ‘오우가’)‘
2025-11-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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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정맥류’ 몽골 환자, 부산서 건강 되찾아
김병준 레다스 흉부외과는 몽골 환자 라그바(60) 씨를 초청해 무료 치료를 시행했다고 12일 밝혔다.
라그바 씨는 젊은 시절부터 장시간 운전과 가축 관리 등 육체노동으로 인해 하지정맥류를 앓게 됐지만 재정 사정이 어려운 탓에 수십 년간 극심한 통증을 견뎌온 것으로 알려졌다.
K-의료관광협회 등을 통해 사연을 접한 병원은 라그바 씨를 부산으로 초청, 비수술적 치료법 ‘초음파 유도하 혈관경화(UGFS)’로 치료했다. 나눔의료 비용은 병원이 부담했으며, 환자와 보호자의 왕복 항공료와 체재비는 부산시 부산의료기술 교류활성화 지원사업 차원에서 제공됐다.
치료를 받은 라그바 씨는 “오랫동안 다리가 아팠지만 치료비 부담 때문에 포기하고 있었다”며 “한국까지 초청해 치료해 주신 김병준 원장님과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차강웁궁 자담바 몽골 영사 역시 감사 인사를 전하며 “이번 사례가 양국 간 의료 교류와 우호 증진의 의미 있는 걸음이 바란다”고 기대했다.
김병준 레다스 흉부외과 김병준 대표원장은 “하지정맥류로 고생하는 외국 환자를 초청해 나눔 의료를 실천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며 “국내외 하지정맥류로 고생하는 분들이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025-11-1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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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물등급위, OTT 등급 분류 모니터단 모집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자체등급분류 모니터단’을 모집한다. 모니터단은 온라인 비디오물 자체등급분류사업자가 정한 영상물의 등급 모니터링을 통해 신속한 사후관리와 청소년 보호가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영등위에 의해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지정된 13개 업체 14개 플랫폼(OTT)에서 서비스하는 영상물에 대한 △등급 적절성 △등급 및 내용 정보 표시 사항 준수 여부 등을 상시 모니터링해 보고서 작성이나 회의 참석 등을 통해 의견을 개진한다.
2023년부터 시행된 자체등급분류 제도는 영등위가 해오던 영상물 등급 분류 업무를 온라인 비디오물에 한해 지정받은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현재 넷플릭스, 디즈니+, 모아(MOA), 베리즈, 애플tv+, 왓챠, 웨이브, 위버스, 컷츠, 쿠팡플레이, 티빙, Btv, U+모바일tv, U+tv 등 14개 플랫폼이 자체 등급 분류 사업자로 지정돼 있다.
영등위 자체등급분류 모니터단 모집 대상은 전문 모니터요원 6명과 일반 모니터요원 34명 등 모두 51명이다. 전문 모니터요원은 등급 분류 경험이 있는 영상·미디어 관련 전문가를 대상으로 모집한다. 일반 모니터요원은 영상물 및 모니터링 업무에 관심 있는 만 19세 이상 국내 거주자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1년 이상 경력이 단절된 여성에게는 선발 시 가점이 부여된다.
지원 희망자는 오는 17일 오후 5시까지 온라인(recruit.incruit.com/kmrb)을 통해 접수하면 된다. 선발된 모니터요원은 내년 1월 1일부터 1년간 활동하며 매달 일정액의 활동비를 받는다. 세부 사항은 온라인 접수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051-990-7248.
2025-11-1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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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코막힘, 알레르기 때문 아니라 코가 휘어서?
환절기 때마다 반복되는 코막힘. 알레르기나 감기 증세로 여기기 쉬운데, 증상이 오래도록 지속된다면 ‘비중격 만곡증’을 의심할 수 있다. 좋은문화병원 이비인후과 최병권 과장과 함께 비중격 만곡증 치료법을 알아봤다.
■코막힘, 삶의 질 떨어뜨리는 주범
코막힘은 주로 코의 점막에 염증이 생겨 붓게 되는 바이러스 감염(감기)이나 알레르기, 축농증 등에 의해 발생한다. 하지만 비중격 만곡증과 같은 구조의 변형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비중격은 코 중앙에 수직으로 위치해 코안을 좌우 두 개의 공간을 나누는 벽을 일컫는다. 코 모양을 지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비중격은 앞쪽은 연골로, 뒤쪽은 뼈로 이루어져 있다.
비중격 만곡증은 코안을 나누는 비중격이 휘거나 기울어진 상태로, 한국인의 22% 정도가 비중격 만곡증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비중격은 운동 중 공에 얼굴을 맞거나 격투기 등을 통해 직접 타격이 가해지면서 발생할 수 있다. 탁자나 바닥에 코를 부딪히거나 휴대폰 등이 코 위로 떨어지는 경우는 물론 코를 반복적으로 세게 비비는 등 작은 외상이 누적되면서 발생하기도 한다.
비중격이 휘어지면 한쪽은 좁아지고 반대편은 아래코선반(하비갑개)이 커지면서 결국 양쪽 모두 코가 막히게 된다. 비갑개는 코안에 존재하는 세 층의 구조물로, 상비갑개와 중비갑개, 하비갑개로 이루어져 있다. 콧물이나 재채기, 코막힘 등은 대부분 하비갑개의 이상에서 발생한다. 코 대신 입으로 호흡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입이 마르고 수면 장애가 생기는 등 일상생활의 질이 크게 떨어질 우려가 있다. 두통과 집중력 저하도 유발된다. 최 과장은 “비중격 만곡증은 코의 환기가 원활하지 않아 만성 비염을 유발하는 한편 염증이 부비동으로 번져 만성 축농증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맞춤형 수술로 통증·불편 최소화
비중격 만곡증 치료법은 다양하다. 특히 코의 성장이 완성되지 않은 만 15세 전에는 수술이 어려워 증상 조절이 절실하다. 어린 시기에는 만곡으로 인해 공기 흐름이 좁아져 비염·축농증이 악화되는 것이 문제다. 집 먼지·진드기 등 대표적인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생기지 않도록 침구류를 자주 세탁하고 정기적으로 집안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약물치료나 코 세척, 비강 스프레이도 호흡 개선에 효과적이다. 비강 스프레이의 경우 좁아진 통로를 넓혀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한 달 정도 매일 꾸준히 써야 효과가 있다. 단 혈관 수축제 성분이 있을 경우 일주일 이상 사용해서는 안 되며, 오래 쓰면 약물성 비염으로 코막힘 증상이 악화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치료로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환자의 증상에 맞는 맞춤형 수술을 받는 것이 좋다. 수술은 휘어진 코의 중격을 바르게 펴 비강 양측의 공기 흐름을 원활히 만들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수술은 우선 코 안쪽으로 접근해 비중격을 이루고 있는 휘어진 뼈와 연골을 분리한다. 많이 휘어졌거나 튀어나온 부분들을 제거하고 다듬어서 가운데에 똑바로 세우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코안의 한쪽 점막을 1.5cm 정도로만 절개하기 때문에 외부 흉터가 남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수술이 끝나고 절개 부위를 한두 바늘 정도 봉합하면 수술이 끝난다. 비후성 비염이 동반된 경우 하비갑개 점막 하 절제술을 함께 진행하면 코막힘 개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수술 후 격한 운동 삼가야
수술을 받은 뒤엔 관리를 잘해야 한다. 수술 후 2~3일간 출혈이 생기지 않도록 양측 코를 막는데, 최근에는 자연 분해형 패킹 재질을 사용하면서 기존 방법보다 통증과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수술 후엔 염증과 출혈이 발생할 수 있어 가능하면 수 일간 입원 치료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 생리식염수나 코 세척용 분말을 사용해 하루 2~3회 코 세척은 필수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세척하려는 코 쪽이 하늘을 향하도록 머리를 45도 정도 옆으로 돌린 뒤 세척액을 부드럽게 흘려보내면 된다. 세척 중에 ‘아’ 소리를 내서 입으로 물이 넘어가는 것을 막고, 세척이 끝나면 코를 세게 풀지 말고 부드럽게 코를 풀어 남아있는 액체를 제거하면 된다. 비강이 건조하지 않도록 자주 물을 마시고 가습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퇴원 후 회복을 위해선 2~3주간은 코를 세게 풀거나 격한 운동은 삼가야 한다. 격투기나 풋살, 농구, 런닝 등 충격 위험이 높은 운동은 최소 4~6주간 하지 않아야 한다. 흡연과 음주는 회복이 늦어지고 염증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최소 2주간 금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 과장은 “숙련된 의료진과 안전한 수술 시스템을 갖춘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2025-11-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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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중의학과 부산 한의학의 만남
대만 중의학과 한국 한의학이 부산에서 만났다.
동의대 부속 한방병원은 지난달 31일 자리에 모였다 대만 중의사공회 전국연합회가 병원을 찾아 한국 한의약의 진료 현황과 약침 치료 기술을 확인하고 학술 교류의 뜻을 모았다고 10일 밝혔다.
부산광역시한의사회 주관으로 진행된 이번 방문에는 대만 중의사공회 전국연합회 첨영조 이사장, 타이베이시 중의사공회 송문영 부이사장, 중화민국 항쇠노의학회 임패진 이사장 등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대만 방문단은 동의대 한의과대학을 찾아 손변우(한방내과 교수) 교육수련처장로부터 교육 과정과 연구 현황을 들었다. 손 처장은 이날 중풍 급성기 환자의 한약 치료 사례를 중심으로 양·한방 협진 체계를 설명했다. 이들은 이어 동의대교 부속 한방병원을 둘러보며 약침 치료 과정을 참관하는 한편 전통 옹기를 활용한 한약 달임 과정과 현대 의료기기의 조화를 직접 확인했다. 동의대 부속 한방병원 윤현민 병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양국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대만 환자들이 한국의 한의의료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만 방문단의 만족도는 컸다. 첨 이사장은 “한국의 선진 약침 기술과 임상 시스템을 직접 보고 배우고자 방문했으며, 이번 교류를 통해 배운 점들을 대만 중의학 발전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임 이사장은 “중풍과 안면마비의 급성기 치료에서 한약의 활용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관한 부산시한의사회 송상화 회장은 “학문적·임상적 협력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부산시한의사회 차원에서 다양한 교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5-11-1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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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휩쓰는 K콘텐츠, 현지 문화 존중해야 지속 성장 가능"
“시나리오를 봤는데, 아~ 이건 되겠다는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베트남 영화 제작사 SATE(SIDUS AND TEU ENTERTAINMENT) 최윤호 대표는 3년 전 모홍진 감독의 한국-베트남 합작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시나리오를 보고 첫눈에 성공 가능성을 알아봤다고 한다.
영화는 치매에 걸려 때론 자신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 레티한(홍다오)을 모시는 호찌민 거리의 이발사 환(뚜언쩐)이 한국에 사는 이부형에게 엄마를 데려다 주기 위해 서울로 오는 여정을 그렸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과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통해 베트남에서 인기가 높은 정일우가 레티한의 젊은 시절 한국인 남편 정민으로 출연한다.
대학에서 영화 동아리 활동을 한 최 대표는 졸업 후 CJ ENM에 입사해 배급팀, 투자팀, 기획제작팀을 거치며 영화인의 길을 걸었다. 10년쯤 ‘영화 밥’을 먹었을 무렵 회사에서 베트남 진출이 논의되자 과감히 새 시장 개척에 뛰어들었다. 그가 베트남에서 참여한 첫 작품은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 리메이크작. 기획부터 현지 감독 선정까지 맡아 프로듀서로 참여한 베트남판 ‘내가 니 할매다’(2015)가 현지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대박’을 쳤다. 이를 계기로 최 대표는 정식 주재원으로 베트남에 상주하며 한국 흥행작 리메이크에 매달려 ‘써니’와 ‘오싹한 연애’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이후 독립을 선택한 최 대표는 ‘내가 니 할매다’를 연출한 판지아녓린 감독의 안뜨스튜디오(Anh Teu Studio), 한국의 싸이더스와 합작법인 SATE를 설립했다. 최 대표는 SATE와 한국의 모티브픽쳐스(주)가 투자와 제작사로 공동 참여한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가 사실상 한-베트남의 공동제작 1호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한국 자본이 투입되거나 한국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은 여럿 있었지만, 양국 제작진이 기획 단계부터 제작 과정 전반에 걸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한 것은 처음이라는 설명이다. 공동제작 원칙은 자본 투자와 참여 스태프 인원, 촬영 횟수(한국 12회, 베트남 13회) 등 모든 부분에서 지켜졌다.
지난 8월 베트남에서 개봉한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15일간 관객 수 1위를 달리며 200만 명을 돌파하는 흥행 성적을 얻었다. 연간 영화 관람객 수 5000만 명, 역대 관객 수 1위 영화가 800만 명 수준인 베트남 시장에서 200만 명 돌파는 ‘대박’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 문화 영향이 큰 베트남은 부모에 대한 효와 공경을 중시하는 사회다. 최 대표는 다소 패륜적으로 들리는 제목의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공동제작의 힘’이라고 말했다. 동등한 관계의 실질적인 공동제작을 통해 베트남의 문화나 정서와 차이가 나는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대사를 다듬거나 촬영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K팝이나 K드라마 등 한국 콘텐츠가 동남아 국가에서 인기가 높지만, 현지 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마케팅이 계속 통할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라면서 “상대 문화를 존중하는 자세로 한층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베트남 흥행을 업고 미국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에서는 지난 5일부터 전국 CGV 상영관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최 대표는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상당히 따뜻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가족영화”라고 소개하며 “한-베트남 합작영화가 한국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 대표는 지난 3~6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진행된 ‘2025 FLY 영화제’에 초청받아 공동제작 과정을 소개하고 다시 베트남으로 향했다.
2025-11-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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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심 가야 유적지 ‘MZ 놀이터’ 되다 [문화 핫플]
전통과 현대, 일상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 경남 김해시 왕릉길 40(봉황동)에 자리한 ‘명월’은 ‘김해 한옥카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 9월 문을 열자마자 청년들이 몰려들며 ‘사진 명소’ ‘뷰 깡패’ 등 찬사가 붙더니, 최근엔 부산·경남 여행 때 꼭 들러야 할 김해시의 대표 핫플로 손꼽힌다. 구도심의 가야 유적지가 MZ세대의 놀이터로 변신한 것이다. 한옥의 고즈넉함과 현대적 감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명월’. 탄생 1년 만에 ‘벼락스타’가 된 재주꾼을 만나고 왔다.
∎수로왕-허왕후 로맨스 깃든 곳
“창고로도 사용되고, 한때는 한복 체험 공간이기도 했었죠.” 지금의 명월은 김해시 한옥체험관 부속건물로 지어졌다. 2006년 조선시대 사대부 주거 공간을 재현해 문을 연 한옥체험관은 역사의 고장 김해시의 상징적인 숙박시설이다.
제대로 된 쓰임새를 찾지 못하던 부속건물과 마당이 한옥카페라는 새 옷을 입은 건 한 방송사와의 협력을 통해서다. 김해시로부터 한옥체험관 운영을 위탁받은 김해문화관광재단 역시 새로운 정체성을 세울 기회로 삼았다는 점에서 두 기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이 과정을 통해 용도를 찾지 못하던 공간은 음료를 즐기는 카페와 책이 있는 휴게 공간, 김해의 장인들이 만든 다양한 수공예품을 전시 판매하는 굿즈숍, 그리고 주말엔 공연이 펼쳐지는 복합문화공간 명월로 탈바꿈했다.
한옥체험관 주차장으로 쓰이던 마당은 김해를 온전히 수(水)정원으로 조성됐다. 국내 최대의 하천형 습지인 화포천습지를 재현한 정원엔 서리이끼를 덮었다. 이끼는 김해의 드넓은 평야를 상징한다. 전체적으로는 김해의 지형적 특색을 살려 낮고 완만한 구릉 형태로 조성했다. 여기에 인근 봉황동 가야 유적지에서 발굴된 수레바퀴 모양 토기와 고상가옥을 본뜬 장식물을 배치했다. 수레바퀴 모양 토기는 물을 내뿜는 분수, 내부에 전구를 설치한 고상가옥은 경관조명 역할을 하며 수정원을 밤낮없이 아름다운 ‘작은 김해’로 빛나게 하고 있다.
명월이라는 이름을 두고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음주가무가 행해지던 고급 요릿집인 요정을 연상시킨다는 여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명월은 명월사라는 절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절은 수로왕이 바다를 건너온 허왕후를 맞아 첫날밤을 보낸 곳이라고 전한다. 명월사는 임진왜란 때 불탄 후 1618년 중건되었는데, 현재는 부산 강서구 지사동 흥국사에 있는 ‘명월사 사적비’에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김해문화관광재단 이선옥 차장은 “이런 역사적 배경은 명월을 ‘로맨틱 가야’라는 콘셉트와 잘 어울리게 한다”라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선 명월이 선남선녀의 사랑이 맺어지는 명당으로 이름나 있다”고 소개했다.
∎메뉴판에도 스며든 지역 상생
카페 명월의 메뉴판 맨 윗자리는 세 가지 시그니처 메뉴가 차지하고 있다. 카페 이름이면서 동시에 대표 음료 이름이기도 한 ‘명월’은 김해시 특산물인 장군차에 상큼한 자몽을 더한 아이스티이다. 두 번째인 ‘수로왕(약속)’은 산딸기 에이드이다. 김해시는 우리나라 산딸기의 약 60%가 수확되는 산딸기 주산지이다. 산딸기의 붉은색을 가득 품은 이 음료는 허황후를 향한 수로왕의 열정적 마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지막 대표 메뉴인 ‘허왕후(믿음)’는 그의 고향인 인도 아유타국의 아삼티와 마살라차이 향을 더한 밀크티로, 수로왕을 향한 깊은 마음이 담긴 차라고 한다.
명월에서 마실 수 있는 커피는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바닐라라테 달랑 세 가지뿐이다. 다른 카페와 구별되는 명월만의 또 다른 특색은 디저트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디저트는 통상 카페의 주 수입원 역할을 한다. 디저트의 종류와 맛은 카페의 수익과 직결된다. 디저트 없는 카페는 사실 ‘앙꼬 없는 찐빵’ 격으로, 심하게 말하면 카페로서는 결격사유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명월의 특이한 영업 전략에는 지역 소상공인과의 상생 정신이 깃들어 있다. 명월이 자리 잡은 곳은 가야 유적지가 모여 있는 ‘왕릉길’로, 이 거리를 따라 수로왕릉과 대성동고분군, 봉황동유적이 이어져 있다. 가야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 모인 곳인 만큼 멋진 한옥과 돌담길을 따라 분위기 있는 카페가 하나둘 들어서 있다. 명월의 선택은 이들과의 경쟁이 아닌 상생이다.
손님이 몰리면 대기를 시키는 게 아니라 인근의 다른 카페를 소개한다. 디저트를 찾는 손님도 주변 가게를 이용하도록 안내받는다. 300여 권의 책을 비치한 카페 2층을 음료 구매와 상관없이 개방한 것도 수익만 추구하는 일반 영업장에서는 선택할 수 없는 명월만의 전략이다.
∎문화의 향기로 가득 채우는 주말
명월 앞에 붙은 ‘복합문화공간’이라는 타이틀은 단순히 멋을 내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다. 명월에는 실제로 문화가 숨 쉬고 있다. 북카페만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한쪽 벽면엔 지역 공방 작가들의 공예 작품들이 보기 좋게 전시된 아트존이 있다. 장인들이 만든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발길은 자연스럽게 명월의 굿즈숍 ‘가꿈’으로 이어진다.
‘가락의 꿈’을 줄인 말인 가꿈엔 김해시의 공식 마스코트인 토더기 캐릭터를 포함해 80여 명의 등록 작가가 만든 다양한 캐릭터 상품이 방문객을 맞는다. 주촌면에서 출토된 오리 모양 토기를 모티브로 제작된 토더기는 올해 지자체공공캐릭터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가꿈은 지역 공방에서 만든 굿즈와 문구류, 생활용품 판매를 대행하며 수익을 배분하는 동시에 지역 홍보의 장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명월을 문화의 장으로 불리게 만드는 일등 공신은 주말마다 열리는 버스킹이다. ‘왕릉길 음악산책’이라는 타이틀을 단 공연은 클래식과 가요, 민요, 국악 등 장르를 달리하며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명월 수정원과 주변 왕릉길 일대에서 펼쳐진다. 이번 주말엔 국악그룹 보화(8일)와 가수 옐로은(9일)의 무대가 오후 4시 시작된다. 방문객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다.
명월은 복합문화공간 역할을 더 충실히 하기 위해 곧 부분 리모델링을 할 예정이다. 우선 2층 북카페 좌석을 통창 방향으로 재배치, 편안하게 경치를 감상하며 쉴 수 있는 장소로 만들 계획이다. 가운데에는 간이 북토크나 소모임이 가능한 다인용 테이블을 두고, 벽면에는 책꽂이도 추가해 현재의 배가 넘는 1000권의 책을 비치할 구상이다. 이선옥 차장은 “이 과정에도 지역과의 상생이 이뤄진다”라며 “추가할 도서 선정과 구매는 생가(생의 한가운데) 같은 지역의 인문서점을 통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2025-11-0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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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픽] 연극-극단 액터스 ‘루시드드림’
꿈속의 자신을 통해 현실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철학 심리극이 관객을 맞는다. 극단 액터스가 무대에 올리는 ‘루시드드림’이다. 상류층 사건만 수임해 승승장구하는 변호사 최현석은 어느 날 죽은 선배 변호사의 부인으로부터 소설 <죄와 벌>을 건네받는다. 자신이 대학 시절 선배에게 선물한 책이다. 최 변호사는 이 일을 계기로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희대의 살인마 이동원의 변호를 맡는다. 자각몽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연극은 꿈인 듯 꿈이 아닌,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직면하는 인간의 본성을 무대 위로 드러내 보일 참이다.
차근호 작가의 희곡을 부산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인 손병태 액터스 대표가 연출했다. 오는 13일부터 18일까지 수영구 남천동 소극장 6번출구에서 만날 수 있다. 출연 양성우 이경진 정성현 배문수 장선아 김건.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일요일 오후 4시. 고교생 이상 관람가. 티켓은 3만 원이며 인터파크와 네이버 등에서 예매할 수 있다. 문의 010-3577-3092.
2025-11-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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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 부산 공연
국립오페라단이 준비한 자코모 푸치니의 희극 오페라 ‘잔니 스키키’(Gianni Schicchi)가 주말 부산 영화의전당을 찾는다.
잔니 스키키는 푸치니가 작곡한 단막 오페라 3부작 ‘일 트리티코’의 마지막 작품이다. 단테의 장편 서사시 <신곡>의 ‘지옥편’을 바탕으로 인물의 성격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음악성과 코믹성이 돋보인다. 1918년 미국 뉴욕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 오페라 애호가들로부터 오랜 사랑을 받고 있다.
20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한 후보의 유언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친척들의 탐욕과 허영, 기발한 속임수를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유머와 풍자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위선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동시에 푸치니 특유의 음악적 세련미와 극적 완성도까지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잔니 스키키의 딸 라우레타가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부르는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 mio babbino caro)’는 이 작품을 상징하는 대표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화의전당은 이번 공연이 국립오페라단이 선발한 정상급 성악가들과 탄탄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 내는 완성도 높은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주인공 잔니 스키키 역에 바리톤 김원, 스키키의 딸 라우레타 역에 소프라노 오예은, 라우레타의 연인 리누치오 역에 테너 강도호 등이 출연한다. 연주는 구모영 지휘로 코리아쿱 오케스트라가 맡는다.
오페라 잔니 스키키는 이야기 전개가 복잡하지 않고 공연 시간도 60분으로 비교적 짧아 어린이 동반 관객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고인범 영화의전당 대표는 “이번 공연에서는 국립오페라단의 깊이와 원작의 유쾌함을 동시에 선사할 것”이라며 “오페라 입문자부터 애호가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공연은 8일 오후 3시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열린다. 초등학생 이상 관람할 수 있으며 예매는 영화의전당 홈페이지와 NOL티켓에서 하면 된다. R석 6만 원, S석 4만 원. 문의 051-780-6060.
2025-11-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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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끝없는 욕망, 아무리 포장해도 본질 바뀌지 않아
“어머니, 제가 얀입니다.” 이 한마디만 했더라면….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얀은 어머니와 동생이 운영하는 모텔을 찾고도 자신이 그들의 아들이자 오빠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 침묵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부른다.
독립예술기획사 효로인디넷 배우네트워크가 연극 ‘오해’를 선보이고 있다. 프랑스 극작가 알베르 카뮈가 1944년 발표한 희곡 ‘오해’는 오랜 타지 생활 끝에 고향에 돌아온 얀과 그를 알아보지 못한 어머니와 여동생 마르타 사이에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그렸다.
척박한 땅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르타와 어머니는 부유한 투숙객을 살해한 후 그가 남긴 금품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어느 날 그들 앞에 ‘낯선 손님’ 얀이 나타난다. 경제적 부를 쌓은 후 어머니와 여동생을 부양하려 아내 마리아와 함께 귀향한 것이다. 가족의 형편을 살펴보기로 한 얀은 먼저 아는 체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흐른 탓인지 어머니와 마르타도 얀을 즉각 알아채지 못하고 평상시처럼 살해를 모의한다.
카뮈의 ‘오해’는 8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수많은 오해와 오해가 겹쳐 비극을 부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한다. 성공한 얀이 안식처처럼 여기고 찾은 고향은 사실 여동생 마르타에게는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는 전쟁터에 불과하다.
이번 작품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가 우리 주변에서 행해지는 악의 일상성과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갖는 부조리함까지 건드린다. 효로인디넷 이성민 연출은 “현대인들이 빠져드는 오해와 거듭되는 범죄의 밑바닥엔 욕망이 자리한다”고 말한다. 그는 “문제는 인간의 생명은 유한한데, 욕망은 끝이 없다 보니 그 간격에서 발생하는 모순이 불행을 부른다는 것”이라며 “헛된 욕망을 신념이나 목표 등으로 포장해 봤자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연극 ‘오해’는 효로인디넷 배우네트워크가 기획한 ‘국외 작가전’의 두 번째 작품이다. 앞서 5월에는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을 비판한 극작가 아돌 후가드의 ‘시즈위 밴지는 죽었다’를 첫 번째로 무대에 올렸다.
지난달 23일 시작한 공연은 이번 달 29일까지 매주 수~토요일 부산 연제구 효로인디아트홀 소극장(도시철도 3호선 배산역)에서 만날 수 있다.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4시 시작한다. 러닝타임 100분으로, 15세 이상 관람료 3만 원이다. 연출 이성민, 출연 이현식 전상미 유주영 양연주 김다애 김기백.
공연이 끝나면 관객이 무대에 올라 배우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매주 수요일 공연 후엔 ‘수요인문극장’이 30분 정도 진행된다. ‘오해를 통해 본 세계의 부조리성’이라는 주제로 이성민 연출과 변현주(극단새벽 대표) 기획이 관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예매 및 할인정보 확인은 효로인디넷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문의 051-623-6232.
2025-11-0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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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법’ 아는 것, 운동 부상 회복의 지름길
최근 ‘운동러’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러닝, 헬스, 필라테스 등 운동을 즐기는 일반인이 늘고 있다. 하지만 운동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부상 환자도 늘고 있다. 일반인들은 통증이 생기면 운동을 완전히 포기하거나 반대로 무리하게 계속하다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 선수들 역시 “멈추면 모든 걸 잃는다”는 압박에 생명을 걸고 운동하곤 한다. 이에 박원욱병원의 ‘쉬는 법을 가르치는 치료’가 주목받고 있다. 박원욱병원 김효종 원장은 “단순히 ‘쉬는 것’보다 ‘어떻게 쉬는가’를 아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능동적 휴식’이 핵심
무릎, 발목, 허리, 어깨 등 부위는 다르지만 잘못된 자세나 과한 운동 강도로 인한 근골격계 손상이 대표적인 부상으로 꼽힌다. 러너에게는 무릎 관절염이나 장경인대증후군, 아킬레스건염이 잦다. 중량 운동을 하는 이들은 어깨 충돌 증후군이나 허리디스크, 필라테스하는 이는 손목과 허리 통증을 흔히 겪는다.
환자 상당수는 부상을 입은 뒤 “쉬라”는 말을 들으면 ‘그냥 쉬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회복 과정의 휴식은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 휴식(active rest)’이 돼야 한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아픈 부위는 쉬게 하되 주변 근육은 유지시키고 관절의 가동 범위는 살리며, 혈류와 호흡을 안정시키는 방식이다. 강도와 난이도를 단계적으로 조절하며 회복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 원장은 5단계로 나눠 접근한다. 1단계는 통증 관리와 가벼운 가동 범위 회복이다. 통증을 3점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2단계에서는 근력 유지 운동을 시작하며, 좌우 근력 차이를 10% 이내로 맞춘다. 3단계에 들어서면 종목 특화 동작을 연습하되, 통증 재발이 없는지 확인한다. 4단계에서는 부분 복귀를 시도하며 하루 후 컨디션 회복 여부를 점검한다. 완전 복귀의 마지막 5단계는 경기력이 90% 이상 회복되었을 때 이뤄진다. 부상을 조절의 문제로 보는 한편 '언제 다시 운동해도 되는 상태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 원장은 “쉬는 법을 배우면 ‘못하는 날에도 할 수 있는 운동이 있고, 운동을 쉬는 것도 운동의 일부’라는 감각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반인에게도 필요한 ‘스포츠 재활’
스포츠 재활은 흔히 선수들만 받는 치료로 여겨지지만, 사실상 ‘움직임을 회복시키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일반인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허리 통증이 있는 노인, 무릎이 아프지만 등산이 취미인 직장인, 어깨 충돌 증후군이 있는 주부들도 스포츠 재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스포츠 재활이 선수에게 있어서는 경기 복귀(Return to Play)가 핵심이라면 일반인에게 있어서는 일상과 취미 활동으로의 복귀(Return to Life)를 의미하는 것이다. 김 원장은 “스포츠 재활은 통증을 없애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시 움직이게 하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박원욱병원 지하 1층에 마련된 스포츠 재활센터는 각종 운동기구와 함께 신체 부하가 덜한 상태로 움직일 수 있는 인조 잔디, 마사지 시설이 갖춰져 있다. 센터는 물리·도수치료는 물론 주로 사용하는 관절의 가동 범위 향상과 신경근 조절 능력 향상, 근육·근력 강화 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회복 단계별 운동 계획과 재활 방향을 세분해 조정하는데, 이 같은 통합적 접근은 단순히 ‘통증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부상 전보다 더 효율적인 움직임’을 목표로 한다. 김 원장은 “빠르고 효율적인 복귀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각 분야 전문가들이 협력해 검진 결과와 의학적 지식을 재활 운동 계획과 적극 연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재활
성공적인 재활을 위해서는 먼저 목표를 이해하는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는 통증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부상을 입은 무용 입시생에게 “무용을 하지 말라”는 말은 치료가 아니라 단절이 되는 이치다. 몸의 기능을 이해시키는 교육 또한 중요하다. 부상은 ‘실패가 아니라 조정의 시기’이고, 회복은 ‘멈춤이 아니라 준비’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은 완전한 동작이 어렵지만 단계별로 복귀할 수 있다는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 우선이다.
선수나 입시생의 경우 의사와 트레이너, 지도자가 함께 걷는 ‘팀 연결’도 중요한 요소다. 의사는 부상을 평가하고 계획을 만들며, 트레이너는 그 계획을 운동으로 구현한다. 지도자는 훈련 강도와 무대를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이 연결되었을 때 선수는 꿈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연결되지 않은 치료는 ‘명령’이 되지만, 연결된 치료는 ‘동행’이 된다. 김 원장은 “운동을 오래 지속하는 힘은 쉬는 법을 아는 데서 나온다”며 “회복은 단순한 중단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설계며, 쉬는 법을 아는 사람이 결국 다시 달릴 수 있다”고 밝혔다.
2025-11-0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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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가?
극단 하늘개인날이 연극 ‘남작부인’을 무대에 올린다. 극단 창단 37주년 기념작으로, 11월 5일부터 9일까지 부산 수영구 어댑터씨어터 2관에서 만날 수 있다.
작품은 스스로를 ‘남작부인’이라고 생각하는 조현병 여인과 그녀를 돌보게 된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로사’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2인극이다. 남작부인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무대에 등장하는 두 여인 모두 심각한 상태를 보인다. 조현병 환자를 돌보겠다는 로사 역시 이혼한 남편과 신부가 된 아들이 떠나고, 딸마저 조현병을 앓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픔을 지녔다. 더 심각한 건 이런 자신의 처지를 주변을 원망하는 증오의 씨앗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
이런 점에서 연극 ‘남작부인’은 현실과의 접점을 끊고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혀 지내는 두 인물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 옳고 그름의 기준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 초연인 ‘남작부인’은 신성우 희곡작가의 작품을 곽종필 하늘개인날 대표가 연출했다. 부산시립극단 예술감독을 지낸 곽 대표는 1999년 대한민국연극제 대통령상과 2002년 대한민국연극제 대통령상, 연출상을 연거푸 받았다. 곽 대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정상적’이라는 말은 입장이나 상대에 따라 정반대로 해석되기도 한다”라며 “이 작품은 결국 정상이라는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본인이 판단할 영역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성대 김영희(연극평론가) 교수가 드라마트루기로 참여, 작품 분석과 방향성을 함께 논의했다. 무대에는 연기력과 개성으로 이름난 이화진(남작부인)과 이진희(로사) 배우가 선다.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일요일 오후 4시 공연. 관람료 3만 원. 예매 네이버·어댑터씨어터 홈페이지. 문의 051-911-1447.
2025-11-0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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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 소설가 등 6명 부산시문화상 수상
강동수 소설가 등 6명이 부산시문화상을 받았다. 부산시는 지난달 30일 오후 복합문화공간 도모헌 야외정원에서 제68회 부산시문화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정해영 부산대 약학대학 석학교수(자연과학) △강동수 소설가(문학) △고정화 부산교대 명예교수(공연예술) △김수길 전 신라대 교수(시각예술) △박지영 동래지신밟기보존회 회장(전통예술) △유재우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공간예술) 등 6명이 박형준 시장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정해영 석학교수는 약학 및 항노화 과학 분야에서 5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연구와 고령친화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점이 인정받았다. 기자 출신인 강동수 소설가는 1994년 등단 후 <제국익문사> <언더 더 씨> <공 마에의 한국 비망록> 등을 집필하고 부산문화재단 대표를 맡는 등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했다. 오영수문학상과 요산문학상을 받았다. 고정화 명예교수는 연주와 저술 활동으로 클래식 음악 저변 확대와 문화 향유권 신장에 헌신했다.
김수길 전 교수는 부산의 전통회화 분야 계승·발전과 저변 확대, 박지영 회장은 지역 문화유산인 동래지신밟기와 동래학춤 전승, 유재우 교수는 부산국제건축제 집행위원장과 도시재생센터장 등을 맡아 건축문화 발전과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점이 평가받았다.
1957년 제정된 부산시문화상은 올해까지 모두 426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2025-11-02 [1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