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남포동에서 본 '300만 명'의 그림자
김동주 경제부 차장
외국인 관광객 300만 명 시대 맞은 부산
내·외국인 함께 북적이던 남포동의 변화
관광객이 기대한 '현지인 맛집'과의 간극
관광 성과를 신뢰와 재방문으로 이어 가야
지난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사상 처음으로 300만 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반등 국면에 들어섰다. 크루즈 기항 확대와 항공 노선 회복, 콘텐츠를 통한 도시 인지도 상승이 맞물린 결과다.
최근 남포동을 찾기 전,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한 장면이 그려졌다. 내국인과 외국인이 뒤섞여 북적이고, 오래된 가게 앞에서는 한국어와 외국어가 자연스럽게 섞여 오가는 풍경이었다.
현실은 조금 달랐다. 골목의 오래된 유명 식당은 과거엔 부산 사람들이 줄을 서던 곳이었지만, 이날 한국인 손님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신 외국인 관광객들이 테이블을 채우고 있었다. 문제는 국적의 변화가 아니었다. 음식의 내용과 분위기가 크게 달라져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단번에 알아차릴 부실한 재료는 예전 기억과 거리가 멀었다. 한 번 먹어보고 사진을 남기면 충분한, 이른바 ‘관광용 음식’의 모습이었다.
내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북적이는 공간을 기대했기에 더 씁쓸했다. 관광객이 늘었다는 사실이 지역의 활력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지역 손님을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인들이 발길을 끊은 공간은 결국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오래 남을 장소가 되기 어렵지 않을까.
우리 역시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떠나면 가장 먼저 ‘현지인 맛집’을 찾는다. 현지인과 여행객이 함께 북적이는 공간에서 먹는 한 끼야말로 그 도시를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대하는 부산 모습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남포동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국제시장·자갈치시장과 가깝고, 크루즈가 들어오는 국제여객터미널도 인근에 있다. 부산에 처음 발을 디딘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 중 하나다. 그래서 남포동의 변화는 개별 상권의 문제가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이 기억하는 ‘부산의 첫인상’과 직결된다.
남포동에서의 한 끼 식사는 단순한 개인의 소비를 넘어 도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경험이 된다. 부산에서의 첫 식사, 첫 골목, 첫 인상은 관광객이 이 도시를 다시 찾을지, 다른 이에게 추천할지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관광객 수 증가라는 성과가 신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 성장은 오래가기 어렵다.
물론 이 변화를 개별 식당이나 자영업자의 선택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급등한 임대료와 인건비, 짧아진 관광 소비 주기 속에서 당장의 매출을 확보해야 하는 현실적인 압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선택이 반복될수록 상권은 단기 수익에는 강해질지 몰라도 오래 머무는 신뢰와 기억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부산관광공사가 지난해 발표한 ‘2024 부산 방문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이 부산을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로 ‘음식·맛집 탐방’이 자연풍경 감상과 함께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일본 관광객의 경우 음식 탐방을 선택한 비율이 90%를 넘었다. 외국인에게 음식은 부수적인 체험이 아니라 부산 여행의 핵심 동기라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남포동에서 마주한 ‘관광용 음식’의 풍경은 더욱 아쉽다. 외국인이 부산에 기대하고 온 경험과 실제로 제공되는 경험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포동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이런 변화는 관광지 곳곳에서 반복돼 온 흐름이다. 남포동의 현재는 명동과 이태원, 제주 등 유명 관광지들이 먼저 지나간 경로와 닮아 있다.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남포동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공간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관광객은 많지만 체류는 짧고, 사진은 남지만 기억은 희미할 것이다. 도시의 대표 관광지일수록 ‘얼마나 많이 오는가’보다 ‘얼마나 오래 머무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남포동은 원래 관광객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 밥을 먹고, 가족 외식과 약속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생활의 중심지였다. 외국인이 많지 않던 시절에도 늘 사람이 있었던 이유는 이곳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일상이 빠져나간 자리에 관광만 남았을 때 공간은 더 화려해질지 몰라도 덜 살아 있는 곳이 된다.
부산 외국인 관광객 300만 명의 다음 목표는 더 많은 숫자가 아니라 ‘다시 찾고 싶은 도시’가 되는 일일 것이다. 관광객 수보다 중요한 것은 내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머무르고, 함께 소비하며,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구조다. 관광은 이벤트가 아니라 도시의 일상 위에 쌓일 때 지속된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