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야 지도부 난타전 된 금정구 보선, 정책대결 펼치길
코앞으로 다가온 10·16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가 여야 지도부의 대리전 양상으로 변모했다. 22대 국회 원 구성 이후 처음 치러지는 선거인 데다 하반기 정국 주도권을 쥘 분수령으로 인식되면서 거대 양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들이 수시로 달려와 선거전에 뛰어들고 있다. 마치 금정구청장 보선이 여야 지도부의 자존심 대결의 장으로 변모한 꼴이다. 이번 보선이 2년 뒤 있을 지방선거의 민심을 확인할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여야가 총력전을 펼치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해 못할 건 아니다. 하지만, 선거에 지역이 안 보인다는 게 문제다. 금정 보선이 하반기 정국 주도권 확보의 분수령이 되면서 정작 두 구청장 후보의 존재감은 보이지 않고 있다. 금정구는 만 65세 이상 고령층 인구 비율이 높아 부산에서도 국민의힘 강세 지역으로 꼽히지만,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뒤 총력전을 벌이면서 여야 후보가 오차범위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11∼12일 진행된 사전투표율은 20.63%로, 2022년 지방선거(21.32%)와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20.62%) 당시 금정구 사전투표율과 비슷하다. 이렇게 선거가 예측불허 상황으로 흘러가면서 여야 지도부가 화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렇다 보니 문제는 지역 현안보다 ‘대통령 실정’ ‘김여사 처벌’ ‘정권 심판’ 등 중앙정치 이슈가 잠식한 상황이 됐다. 금정구는 부산에서도 보수 세력이 강한 지역으로, 역대 9번의 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 후보가 8차례 이겼다. 그렇다고 여당 승리를 쉽사리 장담할 순 없다. 민주당은 2018년 정미영 금정구청장을 배출한 데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 박인영 후보의 득표율이 43.37%에 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보선은 단순히 기초자치단체장 1석을 뛰어넘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은 16개 구·군 지자체장이 모두 여당이었던 만큼 금정을 뺏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금정에서 이기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디딤돌을 확보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지역은 사라지고 중앙정치 논리만 남은 꼴이다. 보궐선거에 전국적 시선이 쏠리게 만든 건 누구도 아닌 바로 정치인들이다. 물론 이번 금정구청장 보선은 총선 이후 민심을 가늠하는 선거란 점에서 주목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양상과는 대조적으로 정작 구청장 후보들이 지역과 민생을 어떻게 잘 운영할지 등에 대한 정책대결은 기대치에 못 미치고 있다. 이러다가 지역 유권자들의 관심이 멀어질까 걱정된다. 이제라도 여야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남은 선거전 하루만이라도 정책대결을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아직 어느 후보를 지지할지, 투표장에 갈지 정하지 못한 유권자도 적지 않다. 지역 유권자들은 매의 눈으로 후보들의 자질과 역량, 비전과 정책을 철저히 따져야 할 것이다.
[사설] 북한발 긴장 고조, 의중 잘 파악하고 면밀히 대응해야
북한의 ‘평양 상공에 대북 전단 무인기 침범’ 주장으로 남북 긴장이 고조되면서 군사적 충돌 우려까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중대성명을 내고 “평양 상공으로 한국의 무인기가 침투해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며 “모든 공격력 사용을 준비 상태에 두고 최후통첩한다”라고 밝혔다. 북한군은 이미 국경선 부근 포병연합부대에 완전 사격대기태세로 전환하라는 작전예비지시를 하달했고,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방벽을 쌓고 지뢰를 매설하는 등 요새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북측이 무인기 사태를 빌미로 국지적 도발을 감행할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국방부는 이에 대해 “끊임없이 도발을 자행하고 최근에는 저급하고 치졸한 오물풍선 부양을 해온 북한이 반성은커녕 우리 국민까지 겁박하려는 적반하장의 행태”라고 경고했다. 국방부는 이어서 “우리 국민 안전에 위해를 가한다면 그날이 바로 북한 정권의 종말이 될 것”이라면서 오히려 긴장도를 높이는 장면까지 연출하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16일 한국을 방문하고, 같은 날 한미일 3국 외교차관 회의가 열려 북한의 도발 우려에 대해 논의한다. 실제로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전문가 기고가 게재될 정도다. 북한이 엉뚱한 일을 트집 잡아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것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레퍼토리다. 북한은 지난 5월부터 6000개 이상의 오물풍선을 살포하고, 수도권 상공에 무인기를 침투시키는 등 남북한 군사 긴장을 고조시킨 주역이다. 특히, 북한이 평소와 달리 ‘북항 방공망 침투 사건’을 주민에게 공개한 것은 일차적으로 대외 위협을 고취해 내부 동요를 막는 목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수해와 경제난 등 거듭된 실정의 원인을 남측에 전가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남남갈등을 자극하려는 의도도 숨어있다. 대외적으로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7차 핵실험이나 국지적 도발을 감행해 존재감을 과시할 것이라는 추측도 많다. 다만, 이번에 북한이 밝힌 무인기 침투 사건과 긴장 고조의 의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면밀히 파악하고 빈틈없이 대응해야 한다. 국민이 이 시점에서 궁금한 것은 정부가 남북한 긴장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는지다. ‘정권 종말’ 등 불필요한 말과 행동으로 무력 충돌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우발적 충돌이 없도록 위기관리가 필요하다. 물론, 우리 군은 어떤 경우라도 확실한 위기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정부가 통제하지 못한 민간단체의 활동도 조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야 정치권은 국가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초당적으로 협력하길 촉구한다.
[사설] 한강 노벨문학상 쾌거… 다음은 과학·경제 분야 차례다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 개인의 영광을 넘어 대한민국의 경사다. 우리나라로서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데 이은 두 번째 노벨상 수상이다. 문학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거둔 쾌거다. 특히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최초의 수상이라는 점에서 의미 깊다. 그동안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 문학이 이제 세계 무대에서 소통하고자 했던 오랜 꿈을 이룬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한 작가는 2016년 한국인 최초로 영국의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국제 문학계에서 주목받아 왔다. 작가의 이번 수상은 문화 강국 한국의 위상을 한층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 작가는 인간의 폭력성과 상처를 집요하게 탐구해 왔다.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는 특히 고통받은 이들의 내면을 담은 작품이다. 이 소설들의 구체적인 내용을 떠나 외국인들이 그동안 세계 문학계에서 변방이나 다름없던 한국이란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 자체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영화 음악 드라마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그동안 뜨거웠다. 여기에 이제 문학도 가세하며 한국은 명실상부 대중문화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로써 한국 문학이 세계의 중심에서 그 깊이와 가치를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K문화를 더욱 확장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일찍이 백범 김구는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문화 강국)이다”라고 했다. 독창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가 행복한 나라이며 강한 나라이고 세계평화 실현에 이바지할 수 있다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일본과 중국 문학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세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한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여기서 그치지 않게 하려면, 우리의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고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도 필요하다. 우리 문학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되는 효과를 기대한다. 노벨상 수상은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과학이나 경제 분야에서의 수상자는 아직 한 명도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25명, 중국은 3명의 과학 분야 수상자를 배출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낮다. 이공계 기피 현상은 물론이고 정부의 관심도 부족하다. 최근 국가전략연구플랫폼을 운영하는 전담 부서인 국가전략연구센터마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의 칼바람을 맞았을 정도다. 여기다 정부 연구개발비도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역 간 R&D 불균형도 심각한 편이다. 정부와 국회·기업 등이 기초과학 연구를 전폭 지원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노벨상의 쾌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다음 차례는 노벨과학상이 되어야 한다.
대구서 본 간송 문화재
만금의 재산과 우리 문화재에 대한 열정으로 세워진 간송미술관(옛 보화각)은 바로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의 문화보국 정신의 구현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최초의 사립 미술관으로 건물 규모 자체는 소박한 편이지만 소장 유물의 수준은 어느 박물관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그 존재 자체가 각별하다.그러나 일반인을 위한 미술관 관람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어서 평상시엔 여간해서 잘 볼 수가 없다. 그러니 미술관이 있는 서울이 아닌 지방의 애호가들에겐 더더욱 그림의 떡이다. 그렇게 이름만 들어왔던 간송미술관의 문화재를 최근 지방에서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부산과 가까운 대구에 대구간송미술관이 지난달 초 개관하면서 기념으로 국보·보물전을 연 것이다. 전시물도 서울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국보·보물 40건 97점으로 지방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문화재로 구성됐다.이 중에서도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 국보 중의 국보로 불리는 훈민정음해례본과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는 단연 최고의 관심 대상이었다. 관심이 뜨거웠던 만큼 두 문화재는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전에서도 각각 별도의 공간에 전시됐다. 관람객들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값을 따질 수 없는 문화재의 실물을 직접 접한다는 생각에 사뭇 조심스럽고 삼가는 자세가 역력했다. 개관전을 찾은 관람객 대부분의 주목적도 이 두 유물의 친견에 있는 듯했다.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첫 대면의 느낌은 은근하면서도 강렬했다.다만 국보급 유물에 비해 대구간송미술관의 전시 운영은 대체로 실망스러웠다. 전시된 문화재의 훼손을 막으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관람객을 마치 감시 대상으로 여겨 수시로 간섭·통제하려 한 것은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지나치게 어두운 조명 때문에 유물을 좀 더 가까이 보려고 다가서면 여지없이 운영 요원의 제지가 끼어들었다. 유물을 보는 중에도 뒷사람을 위해 그만 이동해 달라는 요구에 관람객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찾기는 어려웠다. 유물 설명문도 어두운 데다 글자마저 너무 작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대구간송미술관 덕분에 지방에서 보기 어려운 국보급 문화재를 친견하게 된 경험은 잊을 수 없지만 그 반대급부로 관람 과정에서 타박에 가까운 홀대를 느껴야 했다면 과한 언사일까. 더구나 부산에선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고 대구까지 가야 했던 심정도 씁쓸한 터였음에랴.
논설실장
강병균
논설위원
이병철
곽명섭
강윤경
김승일
김건수
임광명
정달식
[데스크 칼럼] '한강의 기적' 그 너머
“유튜브 다음은 뭐지? 다시 종이책이 아닐까?”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 강연에서 한강 작가가 했던 말이다. 그가 했던 말이 정말 현실이 됐구나 싶을 만큼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매년 독서 인구가 줄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만 듣다가 한강의 책이 없어서 못 판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할 정도다.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이다. 한편으론 씁쓸한 생각도 든다. 평소 우리 국민이 그의 작품을 포함한 한국 문학과 책을 이만큼 아끼고 사랑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수년 전 영국 여행에서 런던의 서점을 방문했다가 한강 작가의 영어 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덜컥 구매해 온 적이 있다.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한 〈The White Book(흰)〉이었다. 이 책을 포함해 한강의 책을 여럿 소장하고 있지만, 기자 역시 완독했다 할 수 있는 건 〈채식주의자〉 정도다. 〈소년이 온다〉는 사 놓고도 절반밖에 읽어내지 못했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선물 받은 뒤 몇 달째 펼쳐 보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5·18이나 4·3 같은 현대사의 아픔을 깊이 다루고 있는 그의 작품은 사실 가볍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국가적 경사는 온 국민이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우리나라뿐이랴. 해외에서도 한강의 책은 품절 상태로, 한글 책마저 동날 정도라고 한다. 지난 13일 〈부산일보〉와 인터뷰 한 한 20대는 “이번 주말 핫플레이스 방문 대신 한강 작가 책을 읽기로 했다”고 한다. 한동안 시내 카페에선 한강의 책을 읽는 사람을 자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유행처럼 그의 책을 들고 다니는 이들을 거리에서 심심찮게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잖아도 2030세대들에겐 ‘텍스트 힙’이 유행하던 참이다. 텍스트 힙은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Text)’와 ‘멋있는’이라는 뜻의 ‘힙(Hip)’을 합친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 사이에선 인쇄된 활자를 읽는 행위 자체가 특별해 보이는 모양이다. SNS에서는 ‘#북스타그램’ 혹은 ‘#책스타그램’ 같은 해시태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책 읽는 사진을 공유하거나 독서 중 발견한 좋은 구절을 찍어 올리는 사람도 많다. 한강 작가의 수상 후엔 그의 대표작을 필사해 공유하는 챌린지도 생겨났다고 한다. 또 독립서점을 방문해 인증하는 등 독서하는 자신의 ‘힙’함을 알리는 방법도 다양하다. 그것이 과시욕이든 지적 허영이든 젊은 세대 사이에서 독서 열풍이 일고 있다는 현상 자체가 긍정적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문해력 논란이 일고 있는 세상 아닌가. 일부에서는 요즘 애들이 책은 안 읽고 유튜브 동영상과 숏폼 콘텐츠만 봐서 문제라고 혀를 끌끌 차지만, 기자는 문해력 논란이 그렇게 단순하게 볼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루한 한자어나 행정 용어가 시대에 맞게 바뀔 필요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된 ‘우천 시’나 ‘중식’ 같은 단어는 ‘비 올 때’나 ‘점심’처럼 자주 쓰는 말로 얼마든지 대체해 쓸 수도 있는 문제다. 같은 의미로 젊은이들에게 책을 읽게 하려면 ‘독서하는 사람이 멋지다’는 말보단 ‘책 읽는 사람이 힙하다’는 말이 당연히 더 효과적일 테다. 작가들이 고르고 골라 썼을 어떤 단어를 책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됐을 때의 즐거움, 그 단어가 갖고 있는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곱씹어 보는 보람 같은 것을 맛본 이라면 책 읽기를 싫어할 수가 없다. 그 과정에서 어휘력도, 문해력도 자연스럽게 키워진다. 출간한 지 26년 된 양귀자의 〈모순〉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등장하는 등 ‘역주행’ 하고 있다는 소식에 뒤늦게 책을 구해 읽다가 기자 역시 그때 그 시절 소설에서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는 한자어 하나를 만났다. 그 단어가 뭐였던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검색창에 미지의 단어를 입력해 그 의미를 알게 됐을 때의 흡족함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불러온 서점가와 출판계의 행복한 비명이 한동안 계속되면 좋겠다. 간만에 불어온 국민적 독서 열풍도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지금 필요한 건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재등장일지도 모른다는 어느 후배의 말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강의 기적’을 이어가고 싶은 오늘이다. 더불어 다시 돌아온 종이책의 인기, 활자 읽기 트렌드가 신문으로까지 번지기를 바라 본다. ‘신문 읽는 사람이 힙하다’고 하는 날도 조만간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자영 사회부 차장 2young@busan.com
[노트북 단상] 어민의 눈물, 언제까지 남의 일일까?
“올해가 당신이 경험하는 가장 시원한 여름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소속 과학자 피터 칼무스가 지난해 SNS를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알린 섬뜩한 경고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한술 더 떠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는 끝났다.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 시대가 도래했다”고 단언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올여름 한국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은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불볕더위에 허덕였다. ‘역대급 폭염’ 기사는 이제 일상이 됐다. 바다는 아예 펄펄 끓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7월 24일 올해 첫 고수온 특보를 발령한 이후 이달 2일 해제했다. 지속 기간은 무려 71일로 2017년 고수온 특보 체계가 만들어진 이후 가장 길었다. 30도를 웃도는 고수온에 어민은 역대 최악의 여름을 보냈다. 해수부 자료를 보면 지난 7월부터 이달 초까지 접수된 양식 어류 폐사 피해 신고 규모는 4850만여 마리다. 이 중 절반이 넘는 2672만 3000여 마리가 경남 앞바다에서 떼죽음했다. 여기에 멍게 4777줄, 미더덕 614줄, 피조개 374ha, 전복 60만 6000여 마리가 고수온에 녹아 내렸다. 현재까지 집계된 피해액은 594억 원 상당으로, 역대 최악이라던 지난해(1466만여 마리, 207억 원) 갑절 수준이다. 특히 멍게는 통영과 거제 앞바다에 있는 양식장 800여ha 대부분이 ‘궤멸 수준’이다. 남해안 멍게는 국내산 멍게 유통량의 70%가량을 차지한다. 통상 여름을 지나면 10~20% 정도 폐사하는데, 올해는 생존율이 10%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굴도 유탄을 맞았다. 굴은 딱딱한 껍데기가 알맹이를 보호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수온 변화에 둔감하다. 올해는 긴 장마로 육지에 있던 각종 영양분이 바다로 다량 유입돼 성장 환경은 더 좋아 작황이 나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일부 해역에서 ‘산소부족물덩어리’(빈산소수괴) 피해로 추정되는 폐사가 일부 확인됐지만 평년보다 심한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딴판이었다. 경남 전체 굴 양식장 3분의 1에 해당하는 1130ha가 직격탄을 맞았다. 평균 폐사율은 60%, 심한 곳은 90%를 웃돈다. 두 달 넘게 이어진 고수온에다 빈산소수괴까지 덮치면서 뒤늦게 폐사를 유발했다는 게 어민들 판단이다. 어선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형기선저인망수협이 내년 감척사업 수요를 조사했더니 소속 어선 136척 중 절반이 넘는 74척이 참여를 희망했다. 2년 전과 작년 수요 조사에선 각각 6척, 15척에 불과했다. 최근 인건비, 유류비 등 고정비용이 치솟아 가뜩이나 경영난이 심화하는 가운데 고수온 후유증에 생산성마저 곤두박질치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수온 1도 변화는 육상 기온 5도 이상에 맞먹을 만큼 해양 생물에겐 치명적인 충격이다. 올여름 폭염은 올겨울 역대급 한파의 예고편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당장 피해는 어민들이 떠안겠지만 다음은 누가 될지, 또 얼마나 심각할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언제까지 남 일일순 없다는 얘기다. 진정 올여름이 가장 시원하다면 앞으로 마주할 여름은 어떨지 상상하는 것조차 아찔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 하나 정도는 고민해야겠다.
[중앙로365] 여성의 서사, 새로운 K콘텐츠의 원동력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주말 동안 서점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원서로 읽겠다는 열풍이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은 많은 이들을 들뜨게 했다.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K팝 빌보드 차트 1위로 한국의 영화, 음악이 세계적 수준임이 증명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한국문학 역시 세계적 수준의 정점에 올랐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한국문학의 부흥과 세계화를 꿈꾸는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세계적 성취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번역 예산이나 문화예술 분야의 심각한 예산 삭감 문제가 언급되기도 한다. 모쪼록 장기적 전망으로 더 나은 변화를 기대한다. 한편 많은 언론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뒤늦게 깜짝 놀랐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시기마다 해외 베팅업체에서 수상 후보로 점찍었던 시인의 집 앞에 기자들이 몰려가던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해외 언론 역시 이러한 현상에 주목했다. 뉴욕타임스는 ‘한 여성이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것은 많은 것을 말해 준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가장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한국 현대문학의 대부분은 여성 소설가들에 의해 쓰이고 있지만 언론과 문학계는 나이 든 남성 작가를 가장 유력한 후보로 여겨 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여성들이 정치, 경제, 뉴스 미디어에서 차별받는 한국 현실에서 한국 여성 작가들이 보여 주는 글쓰기는 여전히 매우 가부장적이고, 때로는 여성 혐오적인 한국 문화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라고 보도했다. 여성이 쓰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는 그가 페미니스트이든 아니든 필연적으로 가부장제나 여성 혐오에 대한 인식과 저항이 깔려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저항의 한 형태로서의 글쓰기가 가장 빛나는 세계적 성취로 인정되었다는 점은 여러 면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성찰하게 한다. 그간 성차별이나 여성 혐오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히려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거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외면당하는 골칫덩이로 취급되어 왔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의 경우 ‘페미 묻은 소설’이라며 비난하거나 책 인증을 한 여자 아이돌을 저격하는 일조차 있었다. 그러나 2022년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조사한 결과 지난 5년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한국문학은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었다. 전 세계 18개 국가에 번역되었으며, 일본에서는 20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중국과 대만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어 동아시아 여성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공감대를 끌어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지점은 그동안 한국의 노벨문학상 후보에게 큰 기대를 걸어왔던 모습과는 달리 한국의 언론과 문학계가 여성작가에게는 기대조차 하지 않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혜순 시인은 시집 〈날개 환상통〉으로 한국인 최초로 2024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며 또 하나의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정작 국내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생각보다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바리스타 전주연 씨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전주연 씨는 세계 최고의 월드바리스타대회에서 한국인 최초, 여성으로서는 역대 두 번째로 우승컵을 거머쥐었지만 부산이 낳은 이 세계적 바리스타의 이름은 생각보다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여성 바리스타가 왜 많이 없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말을 고르며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명확하니까요”라고 답했다.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본 요리 경연 프로그램인 ‘흑백요리사’에서 일부 출연자들이 여성 셰프에게 ‘이모님’ ‘어머님’이라고 칭하는 장면을 보며, 어떤 인식의 한계가 여성들에게 여전히 덧씌워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와 같았다. 더 나아가 ‘젠더갈등’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문제를 왜곡 축소하는 사회나, 7개월째 여성가족부 장관을 임명하지 않고 있는 정부나, 딥페이크 성범죄의 규모가 과장되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려는 정치인들 역시 낡은 인식의 한계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마주하고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보다는 한국 여성의 목소리와 서사가 미래의 성장동력이며 강력한 K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세계는 여성의 체험과 감정이 갖는 보편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체험과 감정의 서사로부터 익숙한 과거와 결별하는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보려 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서사는 개별적이거나 사적인 무엇이 아닌, 보편적 정서와 미래의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무궁무진한 여성의 역사가 깃든 우리 부산에서도 이러한 여성의 서사를 기꺼이 새로운 미래의 콘텐츠로 환대하길 바란다.
[편집국에서] 침례병원 정상화 공약을 지켜보며
보궐선거 이슈로 부산 금정구가 시끌벅적하다. 초반에는 조금 잠잠하다 싶었는데,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후보 단일화를 결정하면서 지난주는 내내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11~12일 주말 사이 끝난 사전투표 참여율은 20.63%로 높게 기록됐다. 전국의 다른 3곳의 선거구에 비하면 저조한 감이 없지 않지만, 금정의 높은 사전투표율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오는 16일 본투표까지 얼마나 열기를 더해갈지 관심을 모은다. 특히 이번 보궐선거 기간 동안 이재명, 한동훈 두 여야 대표는 경쟁하듯 부산 금정구를 찾아 김경지, 윤일현 구청장 후보에 대한 지지 유세를 이어가고 있다. 양당은 각각 정권 심판에 힘을 실어달라고, 다시 한번 보수에 기회를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여야가 공통적으로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침례병원 공공병원화’ 공약은 어쩐지 마음이 쓰인다. 또다시 무위에 그치는 허무한 약속은 아닐지 못내 의구심이 드는 탓이다. 침례병원은 서부산에서 살았던 기자의 기억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동구 초량동에 병원이 있었을 때는 맹장이 터져 응급수술을 받았던 고교 동창을 위로하러 가기도 했고, 중앙대로 변에 위치해 있어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늘 익숙하게 보아오기도 했다. 1999년 금정구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한 이후에는 어쩐지 가장 좋은 시설과 훌륭한 인력으로 가동되는 것 같아 ‘이 동네에 이렇게 큰 병원이 생겨서 여기 사람들은 참 좋겠구나’라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튼튼해 보이던 병원은 2017년 초부터 휴업을 연장하다가, 결국 그해 7월 파산했다. 병원의 휴업 사실을 우연히 접하고 첫 보도를 한 기억도 생생하다. 그해 내내 법원의 파산 선고, 정상화를 위한 토론회, 금정구민들의 서명운동, 정부가 나서줄 것을 촉구하는 청와대 앞 집회 등등 침례병원을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을 주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영 병원 또는 국립치매센터로 탈바꿈해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병원으로 정상화를 이루게 해달라는 지역민의 바람을 지난 정부가 끝내 별다른 응답 없이 외면한 것도 안타깝게 지켜봤다. 침례병원 정상화 문제는 이후 수년 간 진척이 없었다. 잊혀진 듯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다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형준 당시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며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그가 당선된 후에는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부산의 15대 정책과제에 포함시켰고, 뒤이어 2022년에는 499억 원을 들여 병원 부지를 사들이는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국감에서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침례병원의 보험자병원 설립안을 연내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상정하겠다”고 발언했다. 드디어 병원 정상화에 ‘청신호’가 켜졌다며 부푼 기대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침례병원의 보험자병원 설립안은 지난해 12월 건정심에 상정됐지만, 심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현재 소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이번에 건정심에서 이 안건이 통과(의결)되면 부산 침례병원은 비수도권 최초의 보험자병원 설립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 부산에 공공병원 하나 생기는 걸 두고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수십년 째 평균 기대수명 최하위, 노인인구 비율 최고치를 보이고 있는 부산은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해 건강 이슈가 결코 가볍게 체감되지 않는다. 건강은 더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공적 책임이 필요한 사안이다.부산시도 이를 인지하고 부산의료원에 이어 2028년 서부산의료원 개원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침례병원까지 보험자병원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문을 연다면, 의료 안전성과 전문성이 확보될 뿐만 아니라 부산 전체의 의료 여건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더욱이 열악한 지방 재정을 투입하지 않고 국가 재정으로 운영돼 부산으로서는 엄청난 의료 자산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더더욱 이번 보궐선거에서 정치권이 공언한 침례병원 정상화 공약이 더 큰 무게감을 갖는다. 이들의 약속이 그저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주겠다고 말하면 선거에서 표를 더 받을 수 있다는 낡은 인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길 바란다. 금정구민은 여전히 이 공약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약속에 대한 기대만큼 약속이 또다시 뒷전으로 밀려날 때 일어날 매서운 후폭풍도 감당해야 한다. 출근길에 침례병원 입구를 둘러보고 왔다. 진입로를 가로막고 있는 철제 펜스가 이번에는 걷힐 수 있을까. 7년 전 퇴직금과 체불 임금을 끝내 정산 받지 못하고 일터를 떠나야 했던 병원 종사자들, 병원 정상화에 목청을 높였던 당시 금정구의회 의원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와 시민단체 관계자들, 부산대병원 교수님들까지 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쳤다. 지금 그들은 정치권의 침례병원 정상화 공약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미디어 비평] 미디어 비평 유감
언론은 사회 각 부문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일을 하지만, 간혹 반대 입장에서 비판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바로 미디어 비평이 그렇다. 비평 형태로 가해지는 비판과 질책 중에는 종사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한 비판도 많다. 설혹 그렇다고 해도 언론 종사자들이 미디어 비평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일은 드물다. 미디어 비평에 대한 기자들의 반응에는 불쾌감과 더불어 무관심, 냉소, 무시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얼마 전 기자 출신인 장강명 작가가 SNS에서 특정한 인물을 지목해 미디어 비평을 비판하면서 기자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나서 화제가 됐다. 아마 이 논쟁은 미디어 비평의 현주소를 돌이켜보는 희귀하면서도 유익한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미디어 비평에 대한 장 작가의 비판과 관련해 가장 주목할 부분으로는 비평의 전문성 문제를 들 수 있다. 미디어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일반인들조차도 나름대로 잘 안다고 착각한다. 특히 미디어 이외 분야의 학자들은 별다른 전문 지식이나 경험 없이도 미디어 비평 정도는 쉽게 쓸 수 있다고 자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언론의 특성과 현장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비평은 현실과 겉도는 공허한 이야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 언론은 정보를 글로 써내는 직업이지만 시간, 불확실성과 싸우는 조직 활동이기에 다른 글쓰기 형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취재원이라는 간접적 출처에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취재 부서마다 기사의 특성도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언론이 지엽적인 소재만 다룬다’, ‘심층성이 부족하다’, ‘대안 제시가 없다’라는 만병통치약식 지적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단거리 주자에게 철학자다운 사색과 깊이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비슷하다. 언론도 변화해야 하지만 미디어 비평 역시 더 전문적이고 현실에 맞게 발전해야 한다. 미디어 비평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데는 비평의 표적으로 삼을 대상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미디어 비평은 1980년대 말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는데, 당시와 달리 지금은 기사 선정, 제공, 소비가 언론사라는 패키지 단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재 전형적인 패턴은 신문사 기자가 기사를 취재해서 작성하고, 포털이 유통시키면 이용자가 모바일로 보는 식이다. 이용자가 느끼는 언론 보도의 문제점은 여전하되, 책임 소재는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이용자가 접하는 보도가 지엽적이고 자극적인 것뿐이라면, 이는 언론사 잘못일 수도 있지만, 이용자 자신의 습관에 기반한 뉴스 선정 알고리즘 탓일 수도 있다. 비평 역시 이러한 환경 변화에 맞춰 진화할 필요가 있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미디어 비평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많다. 미디어 비평과 가장 가까운 언론학에서도 비평의 근간이 되는 ‘규범적’ 차원에 관한 연구는 연구자의 주목도가 가장 낮은 분야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비평은 필요하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비평이 처음 등장했을 때 업계의 반응은 대개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영화 비평은 업계과 긴밀한 동반자 관계를 이루고 있다. 영화 비평이 발달하면서 영화 소비층의 저변과 깊이를 확대하는 긍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미디어 비평이 발달한다면 이와 비슷하게 언론의 성장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미디어 비평이 필요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언론이 종사자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평은 현실에 대한 이해와 이상적 미래 구현의 희망 사이를 오가는 활동이다. 물론 외부인에게 아무리 부조리와 모순투성이로 비칠지라도 특정 업계의 관행은 수많은 현실적 여건의 불가피한 산물이다. 사회적 지탄 대상이자 장 작가의 자부심에 근거가 된 법조 취재를 떠올려보라. 그렇지만 불가피한 여건을 핑계로 모든 부조리한 관행이 사회에서 용인되지는 않는다. 언론은 대개 사기업이면서도 우리 사회를 떠받드는 기둥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언론인들은 사기업 종사자 신분에 비해 과분한 대우와 특혜를 누리며 직업 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현재 종사자의 역할에 대한 보상뿐 아니라 미래의 언론에 대한 도덕적 기대치가 포함되어 있다. 미디어 비평은 이러한 기대치를 어느 정도 전제하고 이루어진다. 미디어 비평은 기자들이 원하는 대로 언론의 ‘어려운’ 현실을 잘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가 바라는 이상적 잣대에 따라 언론이 앞으로 변화할 방향을 그려 나가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미디어 비평이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은 절반은 맞고 나머지 절반은 틀린 지적이다.
[기고] 창업벤처 활성화, 지역 균형발전의 마중물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면 어디를 떠올릴 수 있을까. 필자는 단언컨대 많은 이들이 부산을 떠올릴 것으로 생각한다. 해운대, 광안리와 같은 대표적인 해변, 아름다운 강과 산, 겨울엔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뛰어난 자연환경과 생활 인프라까지. 실제로 지난 8월 세계적인 컨설팅사인 레저넌스가 발표한 ‘세계에서 살기 좋고, 일과 여행하기 좋은 도시 100선’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부산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지난달 중순에 부산중기청장으로 부임한 뒤 지역경제 현황을 살펴보면서 느낀 충격은 작지 않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을 이끌고 갈 청년들이 일자리 부족 등의 이유로 부산을 떠나고 있다는 것을 여러 매체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5월 국내 인구이동 결과’에 따르면 부산 지역에서 15~29세 청년인구가 처음으로 50만 명 선이 무너지는 등 청년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 발표에서 2023년 부산 순유출 인구 1만 1432명의 이동 이유를 보면 ‘직업’이 9939명(86.9%)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인구 유출·감소 현상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결국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필요한데, 그 방안 중 하나로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과 유니콘 기업 육성을 들 수 있다. 청년들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환경에서 일하기를 원하며, 원격 근무, 유연 근무제 등이 도입된 다양한 복지혜택을 원하기에 스타트업은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43%가 스타트업에 대한 경험해 보고 싶다고 했으며, 이들은 스타트업의 혁신적인 기업 환경과 빠른 성장 가능성을 큰 장점으로 꼽았다.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창업진흥원이 올해 5월 발표한 ‘2023년 창업지원기업 이력·성과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창업지원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은 평균 9.68명을 고용했으며 고용 증가율은 2.65%로 나타났다. 매출액 또한 평균 14억 10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7.13% 증가한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부산 지역 창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와 예비·초기창업패키지 등 14개 사업에 52억 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부산대학교를 창업중심대학으로 선정하여 21개 프로그램에 63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스타트업의 입주 애로 등의 해결을 위해 부산시·테크노파크 등과 부산그린스타트업타운 조성 사업 등에 271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지난해 기술·사업성이 우수한 창업기업 678개 사를 대상으로 사업화 자금(융자) 약 1400억 원을 지원한 바 있다. 또한, 지난 7월 서울과 부산이 ‘글로벌 창업허브’로 선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부산중기청은 해외 모범사례로 거론되는 프랑스 ‘스테이션 F(기차역을 개조한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캠퍼스)’와 같이 부산의 창업 허브 기능을 강화해 부울경을 아우르는 동남권 지역의 창업벤처 생태계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지역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도록 지자체와 원팀을 이루어 지역 기업의 성장과 글로벌 진출에 일조하고자 한다. 앞으로 부산중기청은 부산이 단순히 ‘살기 좋은 도시’를 넘어서 청년들이 정착하여 ‘일하기 좋고 창업하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부실한 부산 교육환경평가… 위험 내몰린 학생들
조국 등판·한동훈 한 번 더… 금정 보선 막판 총력전
가덕신공항보다 더 집중한 화두는 엑스포·퐁피두
첫해 예산부터 차포 뗀 부산 거점 항공사 지원 조례
미분양 골머리 건설사, ‘평당 436만 원 할인’ 파격
부산 닮은 해양도시, 관광에 스타트업 융합한 ‘혁신의 상징’ [도시 회복력, 세계서 배운다]
“은행이 집 대출 때 정해준 법무사, 등기 비용 비싸”
연세대 수시 논술고사 문항 사전 유출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