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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일기] 균형발전 걷어찬 현대건설이 ‘지역사회공헌’ 자화자찬
현대건설은 지난 21일 지역사회공헌 인정기업으로 3년 연속 최고 등급을 달성했다는 내용의 홍보용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공동 주관하는 ‘지역사회공헌 인정제’에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고 자평했다. 경로당 노후 시설 개선, 임직원 봉사 활동, 독거노인 대상 생활 물품 지원 등이 현대건설이 올해 내세운 핵심 성과다.
국토균형발전의 핵심이자 동남권 지역민의 30년 숙원 사업인 가덕신공항 건립 사업을 6년이나 지연시킨 건설사가 적어도 ‘지역사회공헌’을 타이틀로 자화자찬할 일은 아니다. 컨소시엄 대표사였던 현대건설이 불참 선언만 하지 않았더라도 상황이 이렇게 뒷걸음질치지는 않았을 테다.
현대건설은 지난 5월 컨소시엄 불참을 선언하면서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공기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안전한 공항을 짓자는 데 반대할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내세운 안전이라는 구호는 지나치게 편의적이고 자가당착적이다.
현대건설은 가덕신공항의 앞선 3차례 입찰 참여를 통해 84개월이라는 공사 기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는 전문가들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산출한 기간이고, 31차례 자문회의와 16차례 업계 간담회를 거친 합의의 결과물이다. 현대건설도 이를 기본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입찰에 참여했다.
10조 원이 넘는 국가적 프로젝트에, 그것도 컨소시엄 대표사로 참여하면서 건설 공사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공기에 안전을 이유로 몽니를 놓는 행위는 이해하기 힘들다. 국내 2위의 건설 대기업이 입찰 안내서에 적힌 공기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려는 행태는 발주처인 국토부를 어느 지방의 조그만 재개발 조합을 상대하는 것쯤으로 여긴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선례를 가만히 놔두면 앞으로 국책사업이 제대로 이뤄지겠나.
가덕신공항이 뒤로 밀려난 자리에는 또다시 지역 감정과 정치 논리가 뒤엉키고 있다. 정부가 약속한 국책사업을 지연시킨 쪽은 따로 있는데, ‘고추나 말리게 될 공항은 왜 짓냐’는 식의 조롱과 비난이 난무한다. 케케묵은 갈등을 또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 데에 현대건설의 책임도 분명하다. 현재 국토부는 현대건설의 계약 불이행 여부와 관련해 법제처에 국가계약법 해석을 공식 의뢰한 상태다. 지역사회를 뒷걸음질시키고 갈등을 조장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
2025-11-2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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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일기] 경남도의 NC 100억 지원 시기도, 여건도 모두 부적절
경남도는 29일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NC다이노스와 지역 상생’ 브리핑을 열어 지원 방안을 공개했다. 핵심은 내년부터 2027년까지 프로야구단인 NC다이노스 홈구장 ‘창원NC파크’ 시설 개선에 도비 100억 원을 신규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경남도는 NC다이노스가 경남에서 상생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지원한다고 밝혔다.
선제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창원시와 NC다이노스가 연고지 이전 등 민감한 사안을 두고 협의를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는 연고지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NC다이노스는 2011년 KBO리그 아홉번째 구단으로 창단했고, 연고지는 경남이 아니라 창원시다. 따라서 NC다이노스와 협의 주체는 경남도가 아니라 창원시다.
NC다이노스는 지난 5월 30일 홈 재개장 경기 때 연고지 이전을 시사하며 창원시에 21가지 요구 사항을 전달한 바 있다. 창원시는 NC다이노스가 요구한 사항을 두고 협의를 진행중이다.
이번 100억 지원으로 ‘먹튀 우려’ 등 연고지 논란이 종식된 것도 아니다. 당사자간 협의안이 나오기도 전에 경남도가 끼어드는 것은 시점상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주변 상황도 좋지않다. 경남도의 갑작스런 지원 발표를 ‘선제적’으로 이해하기에는 황당해 하는 도민이 많다. 지난 16일부터 산청에는 집중호우가 발생해 산사태 등으로 13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경남도는 지난 21일 긴급복구비 명목으로 7개 시군에 20억 원의 특별조정교부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복구가 한창이다. 수해 지역 주민들에겐 야구장시설 지원 100억 원 소식이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경남에는 창원시를 비롯한 18개 기초지자체가 있다. 도 면적이 넓고 도시와 농촌이 혼재하다 보니 개발 측면에선 늘 낙후 지역에서는 지원 요구가 빗발친다.
갑작스런 야구장 지원 발표에 대해 “창원 사람 야구보는데 진주와 양산 사람이 왜 돈을 내야 합니까?”라며 황당하다는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발표 시점과 주변 상황 모두 부적절하다는 평가다.
경남도는 국토균형발전을 중앙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경남도도 균형개발과 지원을 요구하는 도내 시군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025-07-3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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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일기] 우여곡절 끝 ‘우주항공의 날 기념식’ 사천 개최… 취지와 실리 모두 잡아야
제1회 우주항공의 날 기념식 개최 장소가 우여곡절 끝에 경남 사천시로 확정됐다. 어찌 보면 당연히 그래야 했을 일이지만, 그 과정이 꼬일 대로 꼬이면서 모두가 상처를 입은 모양새가 됐다.
우주항공의 날은 지난해 5월 27일 우주항공청 출범을 계기로 지정된 법정기념일이다. 국민의힘 서천호(사천·남해·하동) 의원이 ‘항공우주산업개발 촉진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기념일로 지정됐다. 우주항공청이 경남 사천시에 자리 잡고 있으니 당연히 사천시에서 첫 번째 우주항공의 날 기념식이 열릴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3월께 들려온 소식은 지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사천이 아닌 경기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기념식 개최를 검토한다는 소식이었는데, 장소를 우주항공청이 결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천의 배신감은 더욱 커졌다. 우주항공청은 기념식을 국가적 행사로 확대하고, 국민적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취재 과정에서는 우주항공청이 사천과 대전, 고흥 등 3개 지자체가 갈등을 일으킬 것을 우려해 제삼지대에서 개최하려 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보도가 나간 후 취재진이 만난 사천 시민의 분노는 상상 이상으로 거셌다. 우주항공청이 사천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는데, 정작 우주항공청은 상징성이 큰 ‘첫 번째’ 기념식을 다른 지역으로 넘기려 한다는 데 대한 배신감이 컸다. 심지어 우주항공청 직원들도 이해하기 힘들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우주항공청을 위한 잔치인데, 정작 구성원들은 행사를 준비할 뿐 이를 체감할 수 없다는 불만이었다. 파장이 거세지자 우주항공청은 결국 우주항공의 날 기념식 장소를 사천 우주항공청 임시 청사 1층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미 사천시와 과천시, 우주항공청 사이에는 말 못 할 부담과 감정의 응어리가 생겼다.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약은 보다 발전적인 미래 행보에 있다. 우주항공의 날 기념식은 올해만 열리는 게 아니다. 앞으로 매년 5월 27일이면 기념식과 함께 우주항공 주간 행사가 펼쳐진다. 그때마다 다른 도시 개최가 검토되면 갈등이 반복되고, 악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우주항공청과 사천시가 힘을 합쳐 우주항공의 날 기념식을 국제적인 행사로 키운다면 지역이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아직은 멀기만 한 우주항공복합도시 조성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특히, 사천시는 우주항공의 날 기념식을 단순한 기념식을 넘어 축제로 확대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우주항공청이 손을 내밀면 예산까지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 과천에 국립과학관이 있지만, 사천에도 항공우주과학관과 항공우주박물관 등 관련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 서로의 마음만 맞는다면 얼마든지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시킬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셈이다.
사천이 미국 시애틀이나 프랑스 툴루즈, 캐나다 몬트리올 등과 같은 세계적인 우주항공 클러스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나 관계 기관의 관심과 노력이 절대적이다. 늦게나마 하나의 기념식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볼 때다.
2025-05-1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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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일기] 부산시 책임 회피 더는 안 된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싱크홀 영상을 봤다. 도로 한가운데 생기고 있는 싱크홀 위를 마침 승합차와 오토바이가 지나고 있었다. 승합차는 크게 덜컹거리며 다행히 싱크홀을 벗어났다. 반면 뒤따라가던 오토바이는 싱크홀에 집어삼켜졌고, 운전자는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됐다. 몇 초 사이에 생과 사가 갈린 셈이다.
기막힌 일이라고 생각한 싱크홀이 지난 13일 부산도시철도 사상~하단선에서 발생했다. 이른 아침 교차로 횡단보도 한복판 땅이 와르르 무너지며 앙상한 땅속 모습이 드러났다. 시민들은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이 천운”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에 새로운 싱크홀이 생기며 사람들은 더 두려움에 빠졌다. 평소 다니는 도로가 지뢰밭처럼 느껴진다는 반응이 나왔다.
땅이 꺼진 이유를 밝히기 위해 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사실 원인은 뚜렷해 보였다. 2023년부터 이날까지 발생한 14차례 싱크홀은 모두 사상~하단선 공구를 따라 형성돼 있었다. 누구나 도시철도 공사와 싱크홀 연관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철도 공사 주무 기관인 부산교통공사는 ‘도시철도 공사가 싱크홀을 불렀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며 이를 부정했다. 오히려 지난 23일 부산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측구(도로 양 옆 배수로)가 싱크홀 원인이라고 언급하며 관리 주체인 사상구청에 책임을 미루는 듯이 발언하기도 했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사상~하단선 착공 전인 2016년부터 부산교통공사와 사상구청 모두 측구 부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변명은 궁색해졌다. 이곳에서 발생한 6번의 싱크홀이 측구가 원인으로 지목된 만큼, 두 기관 모두 지금의 사태를 미리 방지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락가락하는 부산시의 태도는 시민들 분노를 더욱 키웠다. 부산시는 지난해 11월 실시한 사상~하단선 2공구 감사 결과를 지난 22일 발표하며 싱크홀이 12번 발생한 1공구에 대해서는 감사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박형준 시장이 감사를 지시하면서 이틀 만에 입장을 바꿔 특별 감사를 실시한다고 말을 바꿨다.
‘남 탓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부산의 현실’ ‘무능하고 책임지기 싫어하는 무사안일주의’ 같은 보도가 나가자 시민들의 불만과 응어리가 쏟아졌다. 싱크홀 공포를 잠재워야 할 행정 기관들의 책임을 미루는 모습에 대한 질타였다.
싱크홀 사태는 이제 시작이다. 다음 주부터 싱크홀 원인을 조사할 지하사고조사위원회, 시 감사위원회 활동이 시작된다. 시가 내놓은 각종 대책도 본격적으로 현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안전에 ‘적당히’는 없다. 서울과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시 대책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 철저하게 지켜볼 때다.
2025-04-2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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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일기]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끝내고 정상화 집중해야”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지난달 임시 주주총회에서 현 경영진인 최윤범 회장 측의 승리로 1막을 마쳤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9월부터 동업자이자 최대주주인 영풍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 잡고 주식 공개매수 등 경영권 획득에 나서며 진통을 겪었다. 올해도 지루한 법정 공방 등 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 분쟁은 3세로 넘어간 재벌 대기업의 취약한 경영권, 사모펀드의 위협,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 등 한 사건에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여기에 미·중 패권 경쟁 속 세계 1위 비철금속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문제까지 경제학 교과서에서 다룰 만한 사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최대주주가 가장 큰 권한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거스르고 최윤범 회장이 주총에서 승리하기 위해 해외 손자회사를 동원해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고 영풍의 보유 지분을 ‘상호주 제한’으로 묶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썼다.
그러나 ‘묘수이자 꼼수’를 동원했음에도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외 기관투자자 95% 이상이 최 회장에게 지지를 보냈다.
수년째 적자를 기록한 영풍의 경영 능력과 낙동강 상류에 폐수를 흘려보내는 도덕적 해이는 고려아연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간산업을 단기 이익에 집중하는 사모펀드에 맡길 수 없다는 공감대도 크게 작용했다.
이같은 결과가 과연 최윤범 회장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했을까. 부울경 지역이 지지하지 않았다면 결코 기관투자자를 움직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부울경은 분쟁 초기부터 ‘고려아연 주식갖기 운동’ 등 경영권 방어에 힘을 모았다. 주식의 열세를 명분의 우위로 뒤집은 발판을 마련해준 셈이다.
고려아연의 주력사업지인 울산 온산제련소는 3000여 명의 노동자와 100여 개의 협력업체가 일하고 있다. 노동자 상당수는 인근 부산과 경남에 거주하거나 생활권을 공유한다. 협력업체 대다수도 부산·경남에 있다. 기업의 명운이 사업장 소재지인 울산 뿐만 아니라 부산과 경남까지 파장을 미치는 구조다.
이제 분쟁을 끝내고 경영 정상화와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 지난해 고려아연의 순이익은 4분기 경영권 분쟁 과정에 차입금 증가 탓에 59.6% 감소했다.
고려아연은 주총 직후 MBK의 이사회 진입 등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다툼이 길어질수록 ‘승자의 저주’ 역시 커질 것이다. 이제 MBK가 대답할 차례다.
2025-02-13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