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부산 '철도 지하화'에 지하가 없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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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 부산역~부산진역 2.8km 구간
철로 위에 10m 높이 인공지반 설치
지하화 구간·기존 도심 간 단차 발생

자칫 단절 극복이 단절 유발할 수도
도시 연결성 해결, 창의적 설계 필요
전문가 “시간 충분, 기본계획에 담아야”

경부선 부산역~부산진역 2.8km구간. 수십 개의 선로가 갈라지고 만나며 부산의 물류와 교통을 이끌어온 부산역 조차장과 부산진 컨테이너 야적장(CY). 이 공간이 바뀔 준비를 하고 있다. 이름은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선도사업(철도 지하화 사업)’. 국토교통부가 추진하고 부산시가 팔을 걷었다.

부산역~부산진역 구간 철도 지하화 사업은 부산역 조차장과 부산진 CY를 포함한 총면적 약 37만㎡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부산은 바다를 품은 도시지만, 북항과 원도심은 오랫동안 철도로 단절돼 왔다. 눈앞에 바다가 있어도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이를 해결하고 도시를 다시 연결하겠다며 부산시와 정부는 지난 2월 이 구간의 철도 지하화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이 방식은 전통적인 지하화와 다르다. 일반적인 지하화는 철도를 지하로 옮기는 방식이지만, 이번 사업은 기존 철로 위에 높이 약 10m의 인공지반을 설치해 상부 공간을 개발하는 구조다. 이 인공지반 위에는 금융, 창업, 주거 공간은 물론 공원 등 다양한 도심형 복합 공간이 들어설 예정이다. 총사업비는 약 1조 8000억 원, 사업 기간은 2027년부터 2036년까지다. 조차장 중 일반 철도 기능은 부전역으로, 부산진 CY는 부산신항으로 각각 이전되며, 부산역은 고속철도(KTX) 전용역으로 전환된다. 정부와 부산시는 이 사업을 북항 재개발과 연계해 도시의 국제교류·금융·관광 기능을 강화하고, 부산을 글로벌 물류·비즈니스 허브로 육성할 계획이다.

일부 시민들은 인공지반을 덮는 방식을 두고 “부산역 철도 지하화에는 지하가 없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하는 분명 아래를 뜻하지만 부산의 지하화는 마치 터널화에 가깝다. 그만큼 낯설다. 물론 이 방식이 고육책이라는 것을 안다. 부산시와 국토부는 “철로를 옮길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인공지반으로 철로 상부를 덮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북항과 원도심을 잇는 공간적 단절을 이렇게라도 잇겠다는 부산시의 의지도 읽힌다. 도시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상부를 개발해 국제교류지구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도 주목된다. 또 지하화 공사를 하지 않고 인공지반을 설치하면 공사 기간이라도 열차 운행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문제는 인공지반 설치로 인해 철도 지하화 구간과 기존 도심 간에 높이 차(단차)가 생긴다는 점이다. 이는 도심과 항만을 잇겠다는 사업의 본래 취지를 무너뜨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단차로 인해 보행 흐름이 끊기고, 도시 경관도 저해될 수 있다”며 우려한다. 이런 구조로는 도심 단절 해소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 뉴욕의 허드슨 야드, 프랑스 파리의 리브 고슈, 일본 도쿄 신주쿠의 복합터미널처럼 철도 위 인공지반으로 도시 공간을 성공적으로 재창조한 사례도 있다. 우리도 비슷한 시도 앞에 서 있지만, 부산은 이들과는 다른 맥락을 안고 있다. 부산역과 항만 사이 철길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가 아니라 도시 단절의 상징이었다. 이 벽을 허무는 것은 단순한 개발 사업 이상의 무게를 가진다. 우리가 기대했던 지하화란, 단순한 시설 개선을 넘어서 끊겼던 도시의 흐름을 다시 잇고, 꿰매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부산시는 경부선 철도 지하화는 도시 재생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부산이 진정으로 도시의 기능을 회복하고 원도심을 되살리려 한다면 이 개발 사업은 더 치밀하고 정교한 고민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도시 계획은 불가피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공간을 단순히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살아갈 사람들의 삶을 설계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시간은 충분하다”라고 말한다. 부산 철도 지하화 기본계획이 올해부터 내년까지 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단차 문제, 도시와의 연결성,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설계 요소들이 충분히 담겨야 한다. 부산시는 “인공지반의 가장자리를 경사로 처리해 접근성을 높이거나 상부 공간을 공원이나 커뮤니티 시설로 조성해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걸 뛰어넘어야 한다.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그레이스 호퍼(1906~1992)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가장 치명적인 말은 ‘지금까지 항상 그렇게 해왔어’라는 말이다”라고.

북항 재개발이 도시의 몸통이라면, 철도 지하화는 원도심과 바다를 이어주는 혈관이다. 그 혈관이 막힘이 없어야 한다. 단차를 넘어설 수 있는 창의적인 설계, 보행자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잇는 공공공간, 상업과 삶이 공존하는 균형 있는 배치가 요구된다. 이 사업이 성공한다면, 부산은 더 이상 항만과 도시가 따로 노는 도시가 아니라, 바다와 도시, 과거와 미래, 사람과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살아 숨 쉬는 도시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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