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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방정부를 위하여
기자에게 기사 읽기는 업무지만 지방 카테고리 뉴스를 훑는 일에는 작은 즐거움이 있다. 사건 사고와 지자체 소식들에 끼어있는 지역 축제나 행사 소개 때문이다. 이런 기사들을 따라가다 보면 구석구석의 특산물도 알게 되고, 제철음식과 지금 가장 아름다운 꽃과 나무, 동네의 각종 명물도 알 수 있다. 요즘 같으면 김장 축제가 한창이고, 억새 축제는 막바지다. 강원도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만 알았는데 인천 장수동에도 8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고 한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침공 속에 내가 먹고 체험하는 것과 덥고 추운 날씨만이 진짜로 느껴질 때, 이런저런 축제를 계기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와 동네를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특산물만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니다. 최근의 화제는 단연 경북 김천시의 김밥 축제다. 지난해 처음 시작해 올해 15만 명을 불러들였다. 인구 13만 명 도시에 그보다 더 많은 인파가 김밥을 먹으러 다녀갔다. ‘김천’하면 대한민국 대표 분식 식당명 김밥천국이 떠오른다는 답이 많아서 축제를 만들었다는 뒷이야기는 자조적인 농담 같지만, 공무원들은 진지했다. 올해는 첫 행사에서 지적받은 내용을 보완해 셔틀 버스를 준비하고 전용 차로까지 운영했다고 하니 2회 만에 지역 축제의 모범 사례로 회자될 만하다.
지역 축제에서 늘 같이 이야기되는 것이 지역 경제 활성화다. 축제를 보러 왔다가 근처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물건도 사는 것을 넘어 연관 산업이 커지거나 일자리가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도시 브랜드를 알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장기적인 경제 효과도 있다. 이를테면 지금은 명실상부 아시아 최대 영화제가 된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30년간 부산이라는 도시 브랜드에 미친 영향은 부산의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보다 크다. 그렇게 축적된 자산이 지역에 청년을 불러들이고 도시를 더 널리 알렸다면 이 또한 축제의 성과다.
모든 축제가 여기에 성공하진 않는다. ‘축제가 밥 먹여주냐’는 비난, ‘혈세 낭비’라는 화살도 종종 받는다. 그러나 결과를 떠나 대개 기초지자체가 기획하는 소소한 축제들은 지역이 가진 유무형의 자원을 활용해 뭐라도 해보려는 시도일 때가 많다. 인구가 줄고 산업도 쪼그라든 비수도권 지자체들의 안간힘이다. 축제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블랙홀처럼 사람과 자본을 빨아들이는 수도권에 맞서서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산업연구원은 ‘균형발전 불평등도의 구조적 특성과 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균형발전의 불평등을 키우는 핵심 요인을 ‘자립적 발전 역량’의 차이라고 지목한다. 지난 20년간 균형발전 4대 요인을 중심으로 불평등도를 살펴봤더니, 자립적 발전 역량의 불평등도가 다른 3개 요인을 합친 것보다 더 컸고, 갈수록 격차가 커졌으며,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가 특히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연구진이 자립적 발전 역량을 진단한 지표는 인력, 산업, 기업, 그리고 재정이다. 지방은 고부가가치 산업이 부족하고 기업 성장이 정체돼 청년 인력의 수도권 유출이 심화되는 악순환 탓에 스스로 발전할 역량을 키우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는 법에 명시된 균형발전의 나머지 요인(발전의 기회 균등, 삶의 질 향상, 지속 가능한 발전)도 선순환이 힘들다. 결국은 경제다.
지자체는 이런 악순환을 깨기 위한 해법으로 오랫동안 분권을 요구해왔다. 중앙정부가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지자체 간 경쟁을 시켜서 예산을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지자체가 자율성을 갖고 지역에 필요한 인재와 산업과 기업을 키울 수 있도록 권한을 과감하게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 또한 핵심이다. 인구와 경제력에 연동되는 지방세의 불균형도 갈수록 커지고, 전국 지자체 열 개 중 네 곳이 지방세로 인건비를 충당할 수 없는 지경에서 자생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이재명 정부는 연일 균형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지방자치단체라는 표현 대신 ‘지방정부’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자율 재정 예산 규모를 세 배 가까이 늘렸다고도 강조했는데, 진짜 ‘자율 재정’이 되도록 중앙정부가 제시하는 사업 목록을 폐지해야 한다는 박형준 부산시장의 지적에도 공감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방정부’ 언급은 처음이 아니다. 헌법의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바꾸는 건 개헌 사항인데, 지방분권 개헌을 국정과제 1호로 내세운 정부가 개헌에 지방정부를 명시할지도 관심사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말대로 역할과 기능에 비해 권한과 재정이 부족한 지자체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것이 ‘제2의 도시’ 부산조차 자유롭지 않은 지방소멸의 위험 속에서 지자체냐 지방정부냐 하는 용어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2025-11-1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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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산에는 '이재모 피자'가 있다
지난 추석 연휴 특집으로 방송된 JTBC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는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다. 우선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고, 방송 시청률도 8.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실 그보다 지금은 셰프로 더 유명해진 웹툰 작가 김풍 씨의 호방한 입담에 놀랐다. 김 씨가 이날 방송에서 “부산에 가면 유명한 피자집인 ‘이재모 피자’가 있다”며 “‘이재명 피자’를 만들겠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현직 대통령 이름을 딴 피자를 만들어도 되는지, 특정 브랜드 피자를 그렇게 대놓고 선전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이재모 피자는 더 유명해지고 말았다.
이재모 피자를 맛보려면 줄 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온라인 식당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에서 가장 웨이팅이 많았던 식당 1~4위는 이재모 피자 본점, 부산역점, 서면 본관, 별관 순이었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피자를 먹으려면 매장 밖에서 기본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한다. 지난 8월 16일에는 본점 웨이팅 줄이 600번대까지 늘어서 5시간 이상을 대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부산역점에는 몇 년 전부터 캐리어를 끌고 온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이제는 부산역을 출발하는 승객들이 이재모 피자가 든 빨간색 박스를 들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대전에 성심당이 있다면 부산에는 이재모 피자가 있다’라는 말도 어느새 당연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명색이 맛집 담당 기자이지만 줄 서는 걸 싫어하는 천성 때문에 여태 구경도 못 하다 얼마 전에 제주도에 가서 이재모 피자를 어렵게 구해 먹어본 일이 있었다.
분명히 재료도 훌륭하고 맛도 좋았지만 그래 봤자 피자 아닌가. 음식 전문가들은 이재모 피자의 인기 이유를 ‘희소성’과 ‘가성비’로 풀이한다. 이재모 피자는 제주를 제외하면 육지에서는 부산에서만 먹을 수 있고, 충실한 재료와 합리적인 가격 때문에 인기라는 것이다. 뭔가 다른 비결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검색하다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이재모 피자는 그동안 툭하면 기부를 해 온 것이다. 부산에 있는 점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해 개점한 제주점마저 취약계층 의료비와 생계비로 벌써 2000만 원을 해당 지역에 기탁했다.
게다가 남들 모르게 훈장을 받는 일까지 있었다. 지난 9월 청년과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공로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에프지케이 김익태 대표가 이재모 피자의 대표다. 알고 보니 이재모는 김 대표 어머니 이름이었다. 더 찾아보니 2023년 부산역점 개점에 필요한 인력 채용 행사 때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애초에는 취약계층 대상으로 6명을 뽑을 예정이었지만, 면접을 본 15명 전원이 채용됐다. 이들이 삶에 대한 희망을 품는 데 무엇보다 일자리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김 대표의 생각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반석나라 장학회 이사장과 대안학교 반디기독초등학교 이사장도 맡고 있었다. 점점 흥미가 생겨 파고들다 보니 반석나라 장학회는 단발적인 학비 지원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게 다른 곳과 차이점이었다.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후에는 전문 교육을 이수한 멘토와 연결되어 학업·진로 등 삶의 전반을 함께 점검하고 설계할 기회가 제공된다.
성적이나 배경과 무관하게 뚜렷한 자기 인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는 ‘비전장학금’ 제도도 신선했다. 초등 과정 대안학교인 반디기독초등학교는 좋은 교육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설립했다.
파도 파도 미담이 나온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김 대표는 2012년부터 사비를 털어 동주여고 학생을 대상으로 유명 강사 초청 강연회인 동주비전스쿨을 일 년에 수차례 열고 있다. 덕분에 그동안 가수 션, 나태주 시인, 송길영, 고도원 씨 등 수많은 유명 인사가 동주여고를 다녀갔다. “소수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보다 보다 많은 학생이 훌륭한 사람으로부터 좋은 말을 듣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 동주비전스쿨을 열게 됐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반석나라 장학회 홈페이지에는 지금도 장학회 이사장의 사진 한 장 걸려 있지 않다. 김 대표는 이사장 인사말에서 “바른 인성과 분명한 비전을 가진 청년들이 미래 사회의 반석이 되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들이 다시 누군가의 반석이 되어주는 선순환의 길을 만드는 것. 바로 이것이 반석나라 장학회가 추구하는 가치”라며 “저는 ‘이재모 피자’라는 이름보다 다음 세대를 든든히 세우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라고 적었다.
김 대표는 2014년 〈부산일보〉와의 인터뷰를 처음이자 끝으로 언론과의 접촉은 일절 하지 않고 있지만 조금도 섭섭하지 않다. 이재모 피자에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었다. 줄 서서 기다리기는 싫어도, 앞으로 피자는 이재모 피자만 먹을 생각이다.
2025-11-1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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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상생 없이 성과 없다
희망은 도둑같이 찾아왔다. 올해 우리나라 해양산업계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지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타당성 검토와 저울질에 들어갔던 북극항로를 새 정부가 국정과제로 삼으면서부터다.
부산 해양수산계도 마찬가지다. 올 연말이면 ‘해양수산부 부산 시대’가 열린다. 2000년 12월 제2롯데월드 착공식에서 고 안상영 부산시장이 “부산을 해양수도로 키우자”고 선포하고도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한 해양수도의 꿈이 한 걸음 현실로 다가선 것이다.
하지만 기회는 기회일 뿐이다. 성과는 각 행위 주체들의 노력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기회를 탈바꿈과 성장으로 연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상생 협력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누군가가 한 최선의 선택이 때로는 누군가에겐 파멸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우리나라 공기업이 수송선 선택권을 해외 수출업자에게 맡기는, 즉 DES방식 때문에 국내 선사 일감이 급감했다는 사실이 그 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한국가스공사의 국적선 적취율이 12년 뒤 0%로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적선으로 국내 화주의 화물을 운송하는 비율을 국적선 적취율이라 부르는데,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할 때 해운 선사 선택권을 수입업자가 행사(FOB방식)할 수 있음에도 DES방식으로 해외 수출업자에게 넘김으로써 국적선 적취율이 2020년 52.8%에서 올해 33%로 떨어졌고, 2037년에는 0%로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가스공사는 장기 계약 특성상 DES방식의 수입 단가가 FOB방식보다 낮기 때문에 수입원가를 낮추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공기업인 가스공사의 경영평가에도 LNG도입 원가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가스를 저렴하게 사올 수 있으면 해외 선사에 의존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에너지에 생존권이 달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운송망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안이 없는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해운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단순한 원가 절감 차원 조치만은 아니었다.
가스공사가 개발한 한국형 LNG화물창을 도입해 운항하던 SK해운이 화물창에 문제가 생겨 소송을 제기했고, 2023년 10월 가스공사가 패소했다. 가스공사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지만, 배를 지은 삼성중공업이 런던 중재재판부 판결에 따라 SK해운에 3700억 원을 물어주고 가스공사에 구상권 청구소송을 진행해 이 소송도 진행 중이다. 또 가스공사가 옛 현대상선과, 이 회사 LNG부문을 2014년 인수한 현대LNG해운에 운송대금을 이중으로 지급한 사실을 확인하고, 정산금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했지만 지난해 5월 최종 패소하기도 했다.
가스공사 잘못이 있더라도 국내 해운사를 믿고 의지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국적선 적취율이 낮아지면서 글로벌 LNG시장 영업에 주력하는 국내 선사들이 원가를 낮추려고 외국인 선원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내국인 선원 일자리 감소가 장기적으로 국내 선사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화주와 선사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다. 2010년대에는 조선사 실적에만 매몰돼 정책 자금을 글로벌 선사에 대거 빌려줘 최신형 선박으로 무장한 글로벌 선사들에게 한진해운이 밀리고 결국 파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과 해운이라는 연관 산업 사이의 역학 관계에 대한 몰이해가 원인이었다.
이런 문제를 조정하고 지휘하는 컨트롤타워라 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어떤가.
해수부가 부산에 오면서 이미 내년 시장 선거 전초전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 출마가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전재수 해수부 장관과 3선을 노리는 박형준 시장 사이의 경쟁과 견제가 물밑에서 치열하다. 해양수도 실현이 곧 글로벌 해양 허브 도시임을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는데, 각자의 브랜드를 놓치지 않기 위한 논쟁이 자칫 지역 발전에 모아야 할 역량을 흐트리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동남권투자공사든 산업은행이든 상황에 맞게 최대한 지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끌고 가면 될 일이다. 더 힘을 모을 일은 해수부가 조선과 해운을 통합적 관점으로 총괄하도록 제도와 법령을 바꾸는 일, 부산에 오는 해양수산 관련 기관과 기업들이 제대로 정착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부산시가 먼저 해양 기능 강화에 선도적으로 나서는 일이다. 해수부나 부산시나 1%도 안 되는 해양 관련 예산과 조직으로 어떻게 해양수도와 해양강국을 말할 수 있겠나. 큰 목표 아래 상생·협력할 때다. 국토부·산업부, 경기도·서울시가 보기에 ‘꼬시래기 제 살 뜯는 모습’이 안 되도록.
2025-11-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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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유권자의 망각을 먹고 사는 무책임 정치
‘목불인견’.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였다. 우리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에 틈입한 병증이 ‘말기’에 이르렀다는 절망감이 들 정도다. 그 졸렬한 행태를 다시 열거해 국민적 화를 돋우고 싶지 않다. 사실 이런 비판마저 그들에게는 훈장이다. 야당 의원의 질의를 방해하기 위해 옆자리서 째려보는 황당한 기행을 벌인 최혁진 의원에게는 이후 후원금이 쇄도했다. 강성 팬덤 정치가 저질 의원을 영웅으로 만드는 꼴이다. 최근 팬덤의 총애를 받는 의원들을 보면 하나같이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간 주인공들이다. 반대로 팬덤이 세운 콜로세움의 검투사 역할을 거부하는 정치인들은 민주당에선 ‘수박’이라고 배척 당하고, 국민의힘에서는 ‘당성’이 부족하다고 질타 받는다.
정치인들의 생멸이야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권력쟁투일 뿐이라고 치부하자. 문제는 ‘유튜브 쇼츠’로 재미나 보겠다는 무책임한 정치 속에 우리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검찰 개혁에 대해 많은 양식 있는 법조인들이 “보완수사권이 없어진 상태에서 경찰이 1차 수사를 마무리할 경우 불송치 증가, 수사 지연, 피해자 보호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공통적으로 쏟아냈다. 그 중에는 소위 진보 인사들도 적지 않다. 성향을 막론하고 이런 부작용을 예견한다면, 그건 현실화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일 테다. 그러나 이런 후유증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나타나고, 그 때 쯤에는 피해의 기원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그 책임을 묻는 일은 더욱 어렵다.
의원들은 이런 허점을 잘 안다. 난장판 국감 중에 이런 문답이 있었다. 법사위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안미현 검사는 “(검찰 개혁으로) 부작용이 크게 일어나면 책임을 지셔야 할 분들은 무리하게 입법을 하신 분들이 된다”고 했다. 안 검사는 과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채용비리 의혹 수사에 대한 검찰 수뇌부의 중단 압박을 폭로한, 굳이 분류하자면 여당 성향 검사다. 그런 사람이 ‘입법 부작용의 책임은 입법한 사람에게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하자, 여당 의원들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그게 말인가. 그러니까 검사답다는 소리를 듣는 것”, “입법자가 책임지라는 건 어디서 나온 자세냐”고 쏘아붙였다. 책임질 생각이 전혀 없다가 정곡을 찔린 듯하다.
이들이 책임에 무신경한 데는 쌓인 경험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유례 없는 집값 폭등을 일으키면서 주거 사다리 붕괴 등 사회 전반에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명백한 정책 실패였다. 이런 요인이 겹쳐 문 정권은 다음 대선에서 야당에 권력을 내줬지만, 당시 관련 정책 입법에 앞장섰던 의원들 대부분은 22대 국회에서도 건재했다. 정권은 심판해도, 그 정책을 뒷받침한 국회의원을 심판하는 투표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당장 ‘혁진 기행’의 장본인이 탄생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21대 국회에서 여권의 일방적인 선거법 개정으로 탄생한 비례위성정당이 발단이었지만, 이를 강행한 여당 지도부가 누군지 알고 있는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결국 무책임 정치의 최대 동력은 유권자들의 망각이다. 여당이 이재명 대통령 관련 ‘재판중지법’을 ‘국정안정법’으로 바꾸겠다는 속이 빤히 보이는 ‘언어 혼란 전술’을 밀어붙이는 데에는 대선 전만 해도 ‘신속한 재판’을 원했던 여론이 과반이었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이 잊어버렸다고 믿기 때문일 테다. ‘입법 폭주’도 마찬가지다. 정가에서는 여권이 연말까지 각종 입법을 마무리한 뒤 지방선거 시즌인 내년부터는 중도 실용 모드로 급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망각의 힘(?)을 믿는 건 국민의힘이라고 다르지 않다.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을 걱정하던 후배 의원에게 “내일, 모레, 1년 후에 국민은 또 달라진다. 1년 후면 다 찍어주더라”며 유권자의 ‘기억 시한’을 제시한 바 있다.
고 노회찬 의원이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을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커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다”고 양당 체제의 쇄신을 외친 지 20년이 지났다. 이후에도 정치권에서 틈만 나면 ‘객토’니, ‘전면 쇄신’ 같은 말들을 쏟아냈지만, 실행 의지 없는 허망한 말의 잔치였다. 죽을 듯 싸우는 여야지만, 자리 보전에는 ‘찰떡궁합’이다. 대통령도 적용되는 탄핵은커녕, 지자체장·지방의원에까지 적용되는 주민소환제도 국회의원은 예외다. 선거 외에는 저질 의원들을 쫓아낼 방법이 없다.
그러니 기억하자. ‘기만의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적 행위’라고 했다. ‘국민은 잊는다’는 오만한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시대에 기억은 정치를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동력이다. 특히 ‘국감 중 딸 결혼식’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최민희 의원이 올해 초 “정치권의 더 책임 있는 의정활동”을 위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대표발의했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두자.
2025-11-0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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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그룹 오너의 고뇌
지난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린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코리아’에는 이 지역 주요국 정상들과 함께 글로벌 산업을 주무르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번 APEC에선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간 정상회담도 주목을 받았지만 이들 못지 않게 세계 최대의 인공지능(AI) 반도체칩 기업으로 엔비디아 창업자인 젠슨 황 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 글로벌 CEO들의 회동도 관심을 받았다. 이들은 서울에서 다시 만나 K푸드 대표음식인 치맥을 매개로 화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고 ‘AI 팩토리’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현재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이지만 젠슨 황 CEO는 창업한 1990년대 이후 수차례 파산 위기까지 겪은 끝에 성공신화를 이뤘다.
젠슨 황 CEO는 지난 7월 중국 국영 CCTV에 출연해 CEO로서 무엇이 즐거운지 묻는 질문에 “CEO라는 직업은 대부분 그렇게 즐겁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매 순간 우리가 파산 직전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런 위기의식 속에서 회사를 이끌고 있다”고 토로했다.
오너라는 위치는 사장과 달리 회사의 손실과 경영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자리다. M&A(인수합병)와 진로 전환, 기술개발 등의 선택에 대한 고민은 상상 이상이다.
정 회장과 이 회장도 이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 대응을 놓고 꽤나 힘든 시기를 보냈다. 정 회장은 기존 한미FTA로 인한 무관세 수출에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25% 관세 부과로 세계 최대 북미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이 회장은 미국 텍사스에 수조 원을 들여서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던 중에 트럼프 대통령의 지분 요구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양국 정부의 관세 협상에 대응책 마련이 쉽지 않았다.
정 회장의 경우 그룹 총수에 올라선 2020년 무렵 자동차 업계에는 적지않은 위기가 닥쳤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반도체 부품 공급난, 보호무역주의 등이 몰려온 것이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는 그룹 차원에서 공급망을 재편하고 직접 구매 네트워크를 확보해 경쟁사보다 빠르게 생산을 정상화시켰다.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 있는 하이브리드와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확대 전략으로 수익도 늘어났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룹은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5위에서 3위로 올라섰다.
이 회장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회장 취임 이후 계속된 수익 감소와 주가 하락으로 이건희 선대회장에 못미친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HBM(고대역폭 메모리) 분야에서 SK하이닉스에도 밀려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모두 근무했던 한 엔지니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비해 이재용 회장은 실무진에 와닿는 메시지가 부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회장도 2016년 등기이사에 오른 뒤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합병한 것은 ‘잘한 일’로 평가받고 있다. 하만은 올 3분기에만 영업이익이 1조 원에 육박할 정도로 ‘알짜기업’이 됐다.
최태원 회장의 하이닉스 인수도 지금은 ‘신의 한수’로 평가받고 있지만 2012년 인수 당시만 해도 그룹 내부에선 “언제 망할지 모르는 적자 기업을 왜 사들이냐”며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최 회장은 인수 직후부터 “메모리의 본질은 속도와 효율”이라며 HBM 시장 진출을 직접 지시했다. 최 회장은 당시 HBM 진출에 대해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사는 투자”라고 했고, 현재 HBM은 SK그룹 최고의 ‘캐시카우’(수익원)가 됐다.
가스터빈의 국산화 성공과 수출로 최근 주가가 급등한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우 박지원 회장의 결단이 한몫했다. 2013년 박 회장은 가스터빈을 국산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계속된 순이익 적자로 인한 경영난 속에서도 7년간 1조 원을 투자했고, 2019년 값진 성과를 냈다. 박 회장은 당시 SNS에 “‘할 수 있을까’란 고민 끝에 결정한 프로젝트가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처럼 한국이 땅덩어리는 작지만 오너들의 ‘뚝심’과 미래를 보는 ‘혜안’은 글로벌 최강이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과도한 요구에 물러서지 않고 맞설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든든한 오너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주요 업종의 호황 등으로 코스피도 지수 4000을 넘어섰다. 이제 한국이 더 잘 되려면 혼탁한 정치권만 안정화되면 된다.
2025-11-0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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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가덕신공항이 빨리 개항해야 하는 이유
숱한 정치적 논란과 지역 갈등을 낳았던 가덕신공항. 착공과 개항이 눈앞 현실이 된 불가역적 국책사업이 됐지만, 김해공항이나 가덕신공항 관련 기사에는 으레 신공항에 대한 불신과 의혹, 비방을 담은 댓글이 이어진다. 좁은 땅덩이에 문제투성이 신공항 건설은 불필요하다거나, 김해공항을 확장하자는 주장들이다. 아마도 개항하는 그날까지도 구설꾼들 사이에서 입방아거리가 될 듯하다.
주장은 이렇다. 가덕도가 철새가 많고, 태풍의 길목이어서 조류 충돌과 강풍에 의한 사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2002년 돗대산 중국 민항기 추락 사고를 이용해 위험성을 과장,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는 글도 눈에 띈다. 당시 참사는 기장의 부주의였을 뿐, 조종사들의 비행 실력을 늘리면 될 일이라는 글도 있다. 돗대산을 깎아버리면 되고, 산을 없애는 비용이 신공항 건설보다 훨씬 적게 든다는 주장도 있다. 남풍이 불면 김해공항의 북쪽 돗대산까지 근접 비행해 선회 착륙을 해야 하는 김해공항의 위험천만한 숙명을 두고, 가덕도에도 남풍이 부니 위험은 매한가지라는 주장과 김해공항의 활주로 방향만 바꾸면 되니 신공항은 필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수도권 언론이 만들어낸 ‘멸치 말리는 공항’이라는 조롱을 소환하며, 부산 언론이 투기꾼과 건설업자의 배를 불리려 신공항을 못 지어서 안달이라는 글도 빠지지 않는다.
올해 김해공항에서는 안전과 공항 운영에 태생적 취약성을 드러낸 두 사건이 있었다. 6월 김해공항 활주로에 접근하던 대만 중화항공 여객기가 선회 착륙을 시도하다 정상 선회 비행 경로를 벗어나 돗대산 쪽으로 바짝 붙어 아찔한 비행을 했다. 대만 언론은 “129명의 사망자를 낸 돗대산 중국 민항기 추락 사고가 되풀이될 뻔했다”고 보도했다. 8월에는 김해공항에서 출발한 진에어 여객기가 이륙 직후 조류 충돌 사고가 발생해 약 338km 떨어진 인천공항으로 회항했다. 김해공항이 코앞인데도, 김해공항으로 회항할 경우 승객들이 대체 항공편으로 갈아탄 뒤 이륙할 시간이 커퓨 타임(야간 이착륙 제한 시간)에 걸리기 때문에 내려진 웃지 못할 결정이었다.
전자는 김해공항의 지형적 위험성을 보여줬다. 김해공항은 북쪽에 산이 자리 잡은 분지 지형이다. 특히 기후 변화로 여름이 길어지고 남풍이 부는 날이 잦아지며 산을 피해 선회 착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난도가 매우 높아 특히 지형에 익숙지 못한 외국 항공사 조종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다. 후자는 커퓨 타임의 존재로 24시간 운항이 불가능한 ‘반쪽짜리 공항’으로서 한계를 드러냈다.
활주로 방향을 바꾸거나, 김해공항을 확장하자는 주장은 김해공항의 이러한 구조적 한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 어쩌면 의도적인 외면도 자리할 것이다.
김해공항 확장론은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의 사례와 견줘보면, 더욱 논리가 빈약하다. 김포공항은 주거지와 산업 시설이 인접해 있다. 소음 문제로 야간 운항 제한 시간이 존재한다. 항공기 이착륙 경로가 주거지와 산업 시설을 경유해 사고 위험도 상존한다. 공군과 함께 사용하는 공항으로 공항 운용의 제약도 존재한다. 이 모두가 김해공항과 같은 조건이다. 야간 항공기 운항과 시설 확장이 불가능해 수도권의 급증하는 국제선 항공 수요를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신공항으로 인천의 섬 영종도에 건설한 것이 인천공항이다.
김해공항과 닮은꼴인 김포공항을 두고 보면, 가덕신공항 불가론은 철저한 수도권 중심적 시각이다. 그들에겐 반쪽짜리 김해공항의 한계로 어쩔 수 없이 인천공항을 이용하며 시간적·경제적 비용과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동남권 주민들이 대수롭지 않을지 모른다.
가덕도에 철새가 많아 위험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김해공항은 물론, 인천공항과 김포공항도 철새 도래지와 인접해 있다. 공항 입지 조건의 특성과 조류 서식지의 특성이 본질적으로 겹쳐서다. 조류 충돌 위험은 ‘상수’로 예방과 관리가 중요한 문제다. 그렇게 따진다면, 철새 도래지와 인접한 김포공항은 물론, 인천공항 역시 애초에 없었어야 했다.
가덕도가 태풍의 길목이라는 주장도 어디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태풍이 가덕도로만 거쳐 가는가. 태풍이 오면 어떤 공항이든 항공기 운항이 어렵다.
적자 공항이 될 것이라는 주장 역시 터무니없다. 김해공항은 개항 이래 처음으로 올해 국제선 이용객 1000만 명 달성이 예상된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김해공항 국제선 이용 수요는 수용 능력을 넘어선 지 오래다. 연휴 등에는 이용객들이 몰려 극심한 혼잡을 보인다. 곧 신설되는 제2출국장은 궁여지책이다.
가덕신공항을 둘러싼 갖은 억측과 근거 없는 비방은, 공항이 마침내 개항해 위용을 드러내고 동남권의 관문 공항으로 비상할 때 비로소 잦아들 것이다.
이대성 사회부 차장 nmaker@busan.com
2025-10-2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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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영화 ‘범죄도시’와 캄보디아 사태
2017년 첫 개봉한 한국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는 폭력과 납치, 조직 범죄의 잔혹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과도한 폭력과 거친 언어 등으로 순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았지만, 영화는 연속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국내외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과 다르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그러나 최근 캄보디아에서 잇따르는 한국인 납치·감금 사건은 그 영화적 긴장감이 더 이상 픽션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스크린 속 ‘악당’이 아닌, 현실의 범죄조직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0일 캄보디아에서 귀국한 20대 A 씨는 경남경찰청에 인신감금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그는 지난 7월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캄보디아로 출국했다가 그대로 감금됐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조직원들은 A 씨에게 몸값으로 3000만 원을 내라고 협박했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일까지 시켰다. 휴대전화와 여권 등 소지품을 뺏긴 채 위치를 알 수 없는 건물 3층에 감금됐다.
그러나 A 씨는 다음 날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현지 건물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며 탈출을 강행했다. 찰과상을 입는 등 다리에서 피가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인근 민가로 도주했다. 그곳에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한국 대사관과 연락을 취해 가까스로 귀국했다.
경찰청은 올해 말까지 국외 납치·감금 의심·피싱 범죄 특별자수·신고 기간을 운영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을 납치, 감금하는 등 범죄가 잇따른 데 따른 조처다.
경남에서는 27일 기준 캄보디아 실종 관련 신고가 모두 17건 접수됐다. 다행히 이 중 10건이 해제됐다. 나머지 7건 중 4건은 가족·지인 등과 연락이 돼 현지 영사관을 거쳐 대상자 안전 여부를 계속 확인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월 수백·수천만 원 수입, 숙식 제공, 비자 지원 등의 조건으로 사람을 유인한 뒤, 도착 후 여권을 압수하고 콜센터나 온라인 사기 업무를 강요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특히 캄보디아에는 ‘웬치’라는 범죄 단지가 있다. 웬치는 동남아 보이스피싱 조직 사이에서 쓰는 은어다. 이곳에는 유인당한 외국인이 범죄조직 요구를 거절하면 폭행과 감금이 뒤따르고, 일부는 몸값 협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야만적 행각은 영화 속 상상력을 능가한다는 게 피해자들의 증언이다. 이 범죄 구조는 영화 범죄도시 속 조직범죄의 형태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캄보디아 드림’으로 한국 청년을 유혹하는 모집책, 감시자, 폭력조, 그리고 자금책이 분업화돼 있다.
그 과정에 피해자는 내부에서 철저히 통제된다. 차이점은 영화처럼 일회성이 아니라, 온라인 사기·인신매매·국제 자금 세탁이 복합적으로 얽힌 ‘지속형 범죄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이는 단순 납치 사건이 아니라, 국제 인권 문제이자 외교적 위기다.
정부는 캄보디아 정부와 합동수사팀을 꾸려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패는 여전히 개인의 경계심이다. 상식을 벗어난 고수익 제의와 특혜는 범죄와 연관된 함정이 있다는 의심을 가져봐야 한다.
일부에선 이번 사태를 ‘청년 실업시대가 낳은 비극’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제안을 받은 당사자부터 범죄 연관성에 대해 근본적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해외에서 고수익 일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공식 채널(외교부 해외안전여행, 대사관 등)을 통해 반드시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연락 수단이 메신저뿐이거나 근무지가 불분명하다면 즉시 의심해야 한다. 여권은 절대 타인에게 맡기지 말고, 사본을 따로 보관해야 한다. 또한 출국 전 가족에게 여행 일정과 숙소 정보를 공유하고, 현지 대사관 긴급번호를 저장해 두는 습관이 필요하다.
영화 속 폭력은 관객에게 일시적 긴장감을 주지만, 현실의 범죄는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캄보디아발 납치 사건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스크린 속 장면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의심하고, 확인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경계심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의 가장 현실적인 안전 장비다.
영화와 현실의 가장 큰 차이는 ‘엔딩이 없다’는 것이다. 스크린 속 마석도(마동석 분) 형사는 결국 악을 무너뜨리고 정의를 세운다. 그러나 캄보디아 범죄 단지의 실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범죄는 발생하고 나면 피해가 크고 회복도 더디다. 예방이 최선의 무기다.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kks66@busan.com
2025-10-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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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나는 내가 영포티인 줄 몰랐다
얼마 전 30대 후배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들의 대화에서 ‘영포티’라는 말이 오갔다.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한 의미를 몰라, 뜻을 물었다. “자기 관리를 해서 젊게 사는 40대인데…”라는 설명까지 듣고, 말을 잘랐다. “그럼 난데”라는 충격적인 발언에 그들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크게 웃었다.
물론 40대 후반으로 기울고 있는 선배의 농담이었다. 그럼에도 내심 ‘약간은 젊게 사는 40대에 가깝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후배의 설명은 이어졌다. 후배는 “처음에 그런 좋은 뜻이었지만, 요즘엔 다르다. 젊게 산다는 자신감이 과해, 20대와 30대에게 뭘 계속 가르치려는 꼰대를 비꼬는 말이다”고 마저 설명했다.
그러니까 영포티는 좋은 뜻이 아니라, ‘진화한 꼰대’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꼰대는 나이와 계급으로 아랫사람을 누르는 스타일이라면, 영포티는 옛날 꼰대와는 다르게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노력에 심취해 자신이 꼰대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다. 어쨌든 20대와 30대에게 이들은 비호감이다.
영포티라는 말이 워낙에 퍼지다 보니, 관련된 기사도 제법 나왔다. 경제적 계급 차이가 이유라는 분석도 있다. 쉽게 표현하면, 20대와 30대들이 경제적 부담으로 구매하기 힘든 패션 브랜드를 영포티들은 쉽게 사 몸을 치장할 수 있다는 거다. 여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반감을 부른다는 얘기다.
일리가 있는 분석인 듯 보이지만, 영포티에 대한 반감을 오롯이 박탈감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영포티이든 올드포티이든 젊은 층은 40대 이상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기 쉽다. 가장 큰 불만은 나이가 들수록 어린 사람들과 대화하기 보다 가르치려 한다는 지점이다.
대다수 조직에서 40세 전후의 구성원은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말하는 조직 내 허리다. 경력이 붙어 일을 제법 잘 하면서, 아직 완전한 관리자 직위에 오르지 못해 일도 많이 하는 시기다. 10여 년 이상 한 분야에서 있었다면 일 처리에 요령이 생겼을 것이다. “일 좀 한다”는 칭찬을 종종 받게 된다.
그때가 위험하다. 작은 인정이라도 자주 받다 보면, 자신감이 많이 붙을 수 있다. 굳이 칭찬이 없더라도, 스스로 봐도 예전보다 일을 잘하니 자신감이 과해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후배를 비롯해 주변 사람의 업무 태도 등에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좋은 뜻에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잔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된다.
결국 영포티이든, 50대 꼰대이든, 젊은 사람이 피하고 싶은 어른은 대화하기 힘든 사람일 것 같다. 윗사람은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랫사람은 일방적인 훈계인 경우가 많다. 회의를 한다고 했는데, 알고 보면 그냥 결국 장시간에 걸친 업무지시라고 느낀 적이 있지 않은가.
조직 안에서는 권위와 계급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차이 앞에서 진솔한 이야기가 나오기 어렵다. 윗사람이 입을 닫고 들으려 할 때 조금씩 진짜 속내가 나올 것이다. 권위적인 윗사람이 “아이디어를 내라”, “생각을 말해보라”고 강조해도 아랫사람은 그가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회의 뒤 윗사람은 소통했다고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꼰대 문화로 놀림 받는 권위적인 문화가 21세기엔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창의력이 중요한 경쟁 구도가 됐는데, 아직도 옛 군사 문화 분위기에 젖어 있다면 회의 결과는 시대에 뒤처진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선 윗사람 혼자만의 판단보다는 여러 조직원들의 의견이 취합된 결과가 정답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미국이나 유럽의 IT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회사가 더 나은 결과물을 쥐게 될 것이다.
비단 기업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자체장도 혼자만의 생각을 강요하면 도시가 엇나갈 수도 있다. 대통령이 자기 말만 하고 듣는 것을 싫어하면, 국정이 엉망이 될 수 있다.
요즘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여러 회의를 국민이 직접 시청하는 시대다. 회의에서 결정되는 내용만큼이나 회의 진행 방식도 중요하다. 효율적이면서도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는 회의라면 좋겠다. 딱딱한 기업 의사결정 구조를 합리적으로 바꿀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40대 이상이 ‘꼰대’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2025-10-2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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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양산 부산대부지 개발 마지막 기회 날리면
“부산대 양산캠퍼스 유휴부지 매각 가격 입장 차를 해결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중앙기관의 높은 벽을 실감했고, 당근과 채찍 기능을 담당할 민간·공공거버넌스 구축의 필요성도 절감했습니다.”
최근 9개월간 활동을 끝낸 양산시의회 아카데미나폴리스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정성훈 시의원이 기자와 가진 인터뷰 때 했던 말이다. 정 의원은 인터뷰에서 기초자치단체 의회의 한계성에 대한 푸념과 함께 문제 해결 방안도 제시했다.
양산시도 정 의원의 푸념처럼 ‘부산대 양산캠퍼스 유휴부지’ 활용 방안을 놓고 골머리를 썩고 있다. 110만㎡ 규모의 부산대 양산캠퍼스는 2000년 4월 분양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던 양산신도시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등장과 동시에 양산신도시 ‘분양 활성화’와 ‘지역 발전’의 일등공신이 됐다.
그러나 부산대가 양산캠퍼스에 계획한 것들을 미루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쌓였고, 2015년 외부로 분출되면서 ‘양산 발전’을 막는 요인으로 전락했다.
양산시와 정치권이 ‘부산대 양산캠퍼스 유휴부지(이하 유휴부지)’ 개발을 위해 연구시설을 유치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법까지 개정했으나,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기회가 찾아왔다. 2023년 국토교통부가 공모했던 ‘공간혁신구역(화이트존) 선도 사업’이 그것이다.
공간혁신구역은 국·공유지 등 사업 추진이 쉬운 지역에 국토부와 지자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 시행자가 협력해 추진하는 공공주도 사업이다. 선정되면 땅의 용도와 용적률, 건폐율 등 밀도를 자유롭게 계획·개발할 수 있어 양산시의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업이었다.
양산시는 공모를 신청했고, 지난해 7월 선정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불만을 표출했던 양산신도시 주민들도 환영과 함께 정부 규제 완화를 통해 세계적인 명소로 탈바꿈한 미국 뉴욕시의 허드슨 야드나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처럼 장밋빛 기대를 하게 했다.
하지만 공모에 선정된 지 15개월이 넘었으나 후속 절차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장밋빛 기대를 품었던 양산시와 시민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이 사업이 원활히 진행되기 위해 부산대가 유휴부지 54만 2000여㎡를 LH 측에 매각해야 한다. 그런데 매각 가격을 놓고 양측의 입장 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후속 절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산대는 감정평가를 통한 현시세대로 매각을 원한다. 반면 LH는 20여 년 전 부산대에 양산캠퍼스 부지를 매각할 당시 가격에다 이자 등으로 환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양측은 이를 어기면 배임죄 등에 해당한다며 맞서고 있다.
문제는 정부 공모 전부터 이런 상황이 예견됐다는 점이다. 경남도와 양산시가 공모 전 문제 해결을 위해 부산대와 LH를 상대로 중재에 나섰지만, 합의점 도출에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공모를 신청했고, 선정 이후에도 지속되면서 무려 3년 가까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경남도와 양산시, 양산시의회, 정치권이 손을 놓고 있지도 않았다. 경남도와 양산시는 지난해 하반기 유휴부지 매각 가격을 ‘감사원 컨설팅’으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양측이 이를 수용해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1년이 되도록 양측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린다. 지난달 개최됐던 경남도와 양산시, 부산대, LH 간 4자 간담회에서 감사원 컨설팅에 포함할 내용에 대해 협의했을 정도다. 양산시의회도 문제 해결을 위해 특위까지 구성해 9개월간을 활동했지만, 합의점 도출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함을 넘어 폭발 직전이다. 20여 년째 흉물로 방치 중인 유휴부지 개발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는데 이를 날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아가 시민들은 정부가 특별법 제정을 통해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부산대와 LH는 양산시와 시민 바람대로 이번이 유휴부지 개발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합의점 도출에 지금보다 더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 경남도와 양산시도 정 의원의 주장대로 당근과 채찍 기능을 할 민간·공공거버넌스 구축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정치권 역시 부산대와 LH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설득과 압박을 병행해야 한다. 만약 실패하거나 장기화하면 정부를 설득해 특별법 제정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 좋은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만큼 부산대와 LH가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시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할 것임을 명심해야한다.
김태권 동부경남울산본부장 ktg660@busan.com
2025-10-2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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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면세점'이 '본업'된 인천공항
인천공항이 5단계 확장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가덕신공항 건설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천공항 5단계 확장은 가덕신공항과 예산 배분과 우선 순위, 노선 확장 등에서 직접 경쟁 관계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4단계 확장까지 마무리한 인천공항은 외국인 유입 확대 등 ‘허브공항’ 역할을 위해 5단계 확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천공항은 정말 허브공항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인천공항은 2024년 4단계 확장 사업을 완료, 연간 수용 능력을 1억 600만 명으로 확대했다. 지난해 인천공항 국제선 여객은 7066만 9246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7057만 8050명)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인천공항 5단계 확장을 추진하는 인천공항공사 등은 2033년 공항 시설이 또다시 포화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천공항 5단계 확장 사업은 제5활주로와 제3여객터미널과 화물터미널을 신규로 건설하는 내용이다. 6조 원이 투입되는 5단계 확장이 완료되면 인천공항은 연간 여객 1억 30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인천공항 5단계 사업이 추진되면 2030년 가덕신공항 개항과 맞물려 신공항의 항공사, 국제선 노선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인천공항이 ‘허브공항’ 역할을 강조하며 ‘덩치 키우기’를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외국인 환승 등 허브공항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인천공항의 환승률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2021년 16.7%였던 인천공항 환승률은 2022년 15.6%, 2023년 12.8%, 2024년 11.6%로 떨어졌고 올해 상반기에는 11.2%에 그쳤다.
인천공항이 환승률 감소에도 ‘수요 증가’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국제선 노선 몰아주기도 있다. 최근 김해공항을 비롯한 지방공항의 국제선 수요가 늘고 있지만 항공사 국제선 노선은 인천공항에 집중돼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국내 공항의 국제선 운항 가운데 77%가 인천공항에 집중됐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75%에서 오히려 늘어난 수치다.
인천공항이 5단계 확장 사업의 근거로 제시한 국제선 수요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7월 국토부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김도읍 의원은 인천공항의 수요에 대해 “정부의 제6차 공항개발종합계획보다 시기별로 300만~500만 명가량 더 높게 검토했다”고 비판했다.
인천공항의 수익 구조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장거리 노선을 사실상 독점한 인천공항은 출국자의 면세점 이용과 연계된 ‘땅장사’로 주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최근 10년간 인천공항 수익 가운데 착륙료, 탑승료 등 ‘항공 수익’은 20% 안팎에 머물러 있다. 반면 상업시설 사용료, 임대료 등 ‘비항공 수익’은 70% 안팎으로 높다.
인천공항의 비항공 수익 비율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81%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공항 이용객이 줄어들자 60%대로 줄었던 비항공 수익 비율은 이후 다시 상승해 지난해에는 77%를 기록했다. 인천공항의 경우 전체 수익 가운데 ‘상업시설 사용료’ 비율이 50~60%를 차지한다. 사실상 ‘면세점 장사’로 공항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이 5단계 확장에 나선다고 해도 결국 제3터미널 건설로 면세점을 확대하는 ‘땅장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인천공항의 수익구조는 김해공항과 비교된다. 김해공항은 항공 수익이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0%대이고 비항공 수익 비율은 60%대다. 항공 수익 비율이 인천공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김해공항 수익에서 비항공수익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10년간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고 61~63%로 유지되고 있다. 김해공항은 ‘운항금지시간’에도 불구하고 국제선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슬롯(항공기 이착륙 횟수) 이용률도 80~90%대를 유지하고 있다.
김해공항은 늘어나는 국제선 수요 등에 힘입어 매년 흑자를 보고 있지만 인천공항과 달리 상당 부분 수익이 한국공항공사 산하 적자 공항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이런 실정에도 일부 중앙 언론은 인천공항의 ‘수익성’만 높이 평가하면서 전체 지방공항을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 매도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가덕신공항이 개항하고 인천공항이 5단계 확장을 주장하는 2030년대에는 지역별 항공 수요에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정부가 항공 소비자의 편익과 직항 노선 확대에 중심을 둔 공항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025-10-1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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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1200만 관중 신기록… 챔피언은 누가 될까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단일 시즌 1200만 관중을 돌파한 올해 프로야구가 진정한 챔피언을 가리는 포스트시즌에 접어들었다.
2025 KBO리그는 관중 관련 기록을 경신한 한 해였다. 역대 최초 개막 2연전 전 구장 매진 달성을 시작으로, 매 100만 단위 관중을 모두 역대 최소 경기로 달성했다. 또 지난 9월 5일에는 지난해 작성한 단일 시즌 최다 관중 기록(1088만 7705명)을 넘어서며, 최종 관중 1231만 2519명을 기록했다.
전체 경기 수의 약 46%인 331경기가 매진됐다. 역대 최초로 160만 관중을 돌파한 삼성을 비롯해 LG, 두산, KT, SSG, 롯데, 한화, NC, 키움 등 9개 구단이 한 시즌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이제 남은 관심사는 단 하나. 올해 대망의 우승팀이 누가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규시즌을 1위로 마친 LG는 2년 만에 통합 우승에 도전한다. LG의 대항마로 가장 먼저 꼽히는 팀은 아쉽게 정규시즌 우승을 놓친 2위 한화다. 또 3위 자리를 꿰찬 SSG와 4위 삼성이 막판 상승세를 몰아 ‘이변의 주인공’을 노리고 있다.
이번 포스트시즌의 관전포인트는 LG가 통합 우승을 꿈꾸는 가운데 이를 저지하려는 한화와 SSG, 삼성의 도전으로 압축된다. 역대 포스트시즌을 살펴보면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팀은 역시 한국시리즈에 먼저 도달한 LG다. 전후기 리그와 양대 리그 시절을 제외하고 정규시즌 우승팀의 통합 우승 확률은 85.3%(35회 중 29회)에 달한다. 특히 정규시즌 우승팀은 2019년부터 6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정규시즌 우승팀이 힘을 비축한 상태에서 난관을 뚫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온 팀과 경쟁한다는 건 매우 큰 이점이다. LG는 후반기 막판 다소 삐끗했지만, 정규시즌에서 가장 꾸준한 성적을 냈다. 시즌 내내 1~2위를 달리다가 3위에 딱 하루 미끄러졌을 뿐, 지난 8월 7일 이후 선두 자리를 단 한 번도 뺏기지 않았다.
LG는 팀 타율 1위(0.278)와 평균자책점 3위(3.79)로 투타가 매우 안정돼 있다. 통합 우승을 달성한 2023년과 비교해 불펜이 다소 약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요니 치리노스-앤더스 톨허스트-임찬규-손주영으로 이어지는 선발진은 2년 전보다 훨씬 강하다. 또한 이미 우승을 맛보는 등 큰 경기 경험이 많으면서 결정적 순간에 맹활약을 해줄 선수들도 즐비하다.
이에 맞서는 한화는 강력한 ‘원투 펀치’ 코디 폰세와 라이언 와이스를 내세워 한국시리즈 챔피언을 노리고 있다. 정규시즌 우승을 놓쳐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사례도 다섯 번이나 된다. 2015년부터 시작한 10구단 체제로 범위를 좁히면 2015년 두산과 2018년 SK(현 SSG)가 각각 정규시즌 우승팀 삼성, 두산을 꺾고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바 있다.
특히 한화는 정규시즌에서 LG를 상대로 7승 1무 8패를 기록하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정규시즌 마지막 맞대결이었던 지난달 대전 3연전에서도 2승1패로 우위를 보였다. 무려 7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은 한화는 내친김에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넘보고 있다. 한화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양대리그 시절이었던 1999년이 유일하다. 1000승 감독 중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우승 경력이 없던 김경문 감독도, 이번 가을야구에서는 그 한을 풀겠다는 각오다.
한화의 강점은 역시 강력한 선발 야구다. KBO리그 최초 ‘200탈삼진 듀오’ 폰세와 와이스를 필두로 류현진, 문동주가 선발진에 버티고 있다. 한화의 선발 평균자책점은 3.51로 리그 1위다. 시즌 막판 뜨거운 타격감을 보인 노시환을 비롯해 루이스 리베라토, 채은성, 문현빈, 이도윤 등 타선도 막강하다.
다만 가을야구 경험 부족은 한화의 아킬레스건이다. 한화는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이었던 2018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와일드카드 결정전 승자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에 1승 3패로 밀려 조기 탈락한 바 있다.
2022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SSG는 기적 같은 우승을 꿈꾸고 있다. ‘지키는 야구’가 팀 컬러인 SSG는 10개 구단 통틀어 가장 견고한 불펜(평균자책점 3.36)을 자랑한다. ‘홀드왕’ 노경은(35홀드)과 이로운(33홀드), 김민(22홀드), 그리고 마무리 투수 조병현(30세이브)으로 구성된 필승조가 강력하다.
삼성은 KBO리그 최초 50홈런-150타점 기록을 달성한 르윈 디아즈를 앞세워 파란을 일으키려 한다. 정규시즌 1~2위가 아닌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도 세 차례나 있었던 만큼 SSG와 삼성에게도 희망은 있다. 하지만 두 팀 모두 최종 승자가 되더라도 투수진의 체력 소모가 한화와의 플레이오프전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변현철 문화부 독자여론팀장 byunhc@busan.com
2025-10-1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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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해양수도 부산, 해양부시장이 필요하다
“부산에 분명 기회가 왔고, 실행해 옮겨야 할 타이밍인데 위원회 만들고 계획만 세우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계획이 없는 게 아니에요. 아이디어가 없는 게 아니에요.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든 계획들이 다 있어요. 계획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실행할 사람이 없는 거죠.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때입니다.”
“해양수산부가 부산에 온다고 해도 엄밀히 말해 해수부나 유관기관들은 전국구거든요. 해수부나 기관들이 직접 부산을 위해 뭘 해줄 수는 없어요. 부산시가 알아서 잘 활용하고 부산 것으로 만들어야 부산이 진짜 해양수도가 되는 거죠.”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 거듭나려면 부산시 내에 ‘해양부시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부산이 해양수도로 도약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맞이한 만큼, 해양 관련 전문성과 결정 권한이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부산이 가진 하드웨어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세계 7위 컨테이너 항만, 세계 2위 환적 허브라는 물리적 위용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해양 관련 기능들이 부산을 중심으로 집적돼 있어 부산이 가진 여건을 부러워하는 나라와 도시들도 많다. 하지만 부산항이 세계적인 물동량을 처리하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사이, 정작 그 화물과 선박에 얽힌 부가가치는 다른 도시나 해외로 고스란히 흘러가고 있다. 예컨대 해양금융의 주도권은 여전히 서울과 해외에 있고, 해양보험이나 법률 서비스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열심히 땀 흘려 화물을 나르고 있지만, 그 과실은 다른 도시들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부산이 실속을 차리지 못하는 이유로 부산이 가진 훌륭한 하드웨어를 구동할 강력한 운영체제, 즉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점을 드는 이들이 많다. ‘부산시 고위직에 얘기했더니 한 귀로 흘리더라. 몇 번 얘기했는데 해양엔 전혀 관심이 없더라’며 아예 입을 닫아버린 전문가도 있다.
하물며 민간기업들도 해수부 이전에 맞춰 발 빠르게 해양 관련 조직을 새로 만들거나 키우는 판에 부산시는 ‘해양농수산국’ 틀에 아직 갇혀 있다. 해양산업은 항만물류, 해운, 해양금융, 해양관광, 해양바이오, 해양에너지, 친환경 선박기술, 스마트 항만 등 도시의 경제, 산업, 일자리와 직결된 거대 산업이다. 항만 재개발은 도시 계획과, 해양금융은 금융 정책과, 해양 스타트업 육성은 창업 지원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국 단위 조직은 다른 실·국과의 수평적 협력을 이끌어내고, 해수부, 부산항만공사 등 유관기관을 아우르는 수직적 조율을 해내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부서 칸막이에 막혀 시너지 효과는 나지 않고, 좋은 계획들은 서랍 속에 잠들게 된다.
해양부시장은 이 칸막이를 허물고 흩어진 역량을 한데 모으는 ‘사령관’이 돼야 한다. 부시장의 책상에는 부산의 미래 먹거리가 될 해양 신산업 육성 로드맵이, 머릿속에는 글로벌 투자 자본을 유치할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부산항만공사와 머리를 맞대고, 때로는 중앙정부를 상대로 규제 혁신을 설득하며, 부산의 해양 자산을 어떻게 ‘돈’과 ‘일자리’로 바꿀 것인지를 현장에서 지휘하고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 싱가포르, 로테르담 등 세계 유수 항만도시들과 교류하고, 국제 해양박람회 등을 유치하며 해양수도 부산의 브랜드 가치도 높여야 한다. 부산의 해양산업, 인재, 재정, 국제협력까지 지원할 수 있는 해양수도특별법 제정도 이끌어내야 한다.
국장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느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순환보직으로 수시로 바뀌는 국장이 해양수도 부산을 위한 전략을 실행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조직 규모나 예산도 턱없이 적다.
이는 결코 자리 하나 늘리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투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시는 ‘항만·경제 부시장’을 중심으로 항만공사, 정부, 기업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세계 2위 해양도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도 해양부시장을 중심으로 단순 물류 허브를 넘어 해양금융, 연구개발, 법률 서비스가 어우러진 고부가가치 해양산업 클러스터로 도약해야 한다. 이는 단순 항구도시와 해양수도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다.
해수부, 해양 관련 기관들의 부산 이전은 그저 ‘손님맞이’로 끝날 이벤트가 아니다. 부산의 미래 성장동력을 해양에서 찾을 수 있는 다시 오기 힘든 ‘골든 타임’이다.
“한강이 바다를 이길 수 있겠나! 부산 함 놀러 온나.” 한 달 전 제59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서울 휘문고를 꺾고 우승컵을 거머쥔 경남고 야구부 선수가 환희에 차 방방뛰며 한 말이다. 부산 시민들은 이 정도로까지 벅차 있다. 부산시도 이 정도는 돼야 해양수도 타이틀을 가져갈 자격이 있다.
2025-10-0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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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산 로컬의 맛, 바다를 건너다
일본 후쿠오카의 작은 식당에서 매일 김을 굽는 연기가 퍼진다. 식당 안에서는 20대 일본 여성들이 라면 국물에 소주잔을 부딪친다.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을 직접 실현하고 싶어 찾아온 손님들이다. 직접 참기름을 짜고 김을 굽는 퍼포먼스로 충무김밥을 내놓는 ‘바비킴’은 부산 기업 보리에가 만든 새로운 분식 브랜드다. 부산 사람에게는 흔하디흔한 분식 메뉴지만, 일본 젊은 세대에게는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특별한 무대가 된다. 분식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한류 콘텐츠와 맞닿은 문화적 경험으로 소비되는 순간이다.
바비킴은 후쿠오카에서 첫발을 뗀 뒤 현지 호응을 바탕으로 일본 전역 확장과 미국 진출을 준비 중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해외 경험을 토대로 다시 한국 시장에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에서 이미 수없이 소비되던 분식이 해외에서 ‘경험’이라는 가치로 재해석되고, 그 성공이 다시 국내 시장으로 역류하는 흐름이다. 작은 매장이지만 글로벌 도전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부산의 전통 어묵 브랜드 삼진어묵은 또 다른 길에서 세계화를 시도하고 있다. 1953년 자갈치시장에서 출발한 삼진어묵은 이미 부산과 전국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향토기업이다. 오랜 세월 부산 시민의 일상식이자 관광객의 기념품이었던 어묵은 이제 K푸드의 대표 주자로 해외 무대에 서고 있다. 호주 시드니, 베트남 호찌민, 대만 타이베이 등 해외 주요 거점에 매장을 열며 글로벌 소비자를 직접 만나고 있다. 어묵은 해외 소비자들에게 생소한 음식이지만, 단백질이 풍부하고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특성 덕분에 간편식·건강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바비킴은 오랜 F&B 경험을 가진 기업이 새롭게 내놓은 도전적 프로젝트다. 한국 드라마와 K컬처의 힘을 빌려 ‘문화 체험형 분식’을 만든다. 삼진어묵은 70년 가까운 역사를 기반으로 축적된 브랜드 자산을 활용해 ‘전통의 세계화’를 꾀한다. 둘 다 부산이라는 지역성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같은 궤적에 있다.
두 사례에서 찾을 수 있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지역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일, 현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일, 음식을 단순한 상품이 아닌 문화적 경험으로 바꾸는 일이다. 충무김밥은 남해안 선원들의 소박한 식탁에서 시작해 일본의 도시락 문화와 만나 새로운 메뉴가 됐고, 어묵은 자갈치시장의 전통 먹거리에서 출발해 오늘날 글로벌 간편식으로 진화했다. 바비킴 매장을 찾은 일본 젊은 세대가 드라마 속 장면을 재현하듯, 음식은 이제 국경을 넘어 문화를 체험하는 언어가 되고 있다.
여기에는 글로벌 시장의 변화도 깔려 있다. 세계 소비자들은 대량 생산으로 표준화된 상품만을 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역성·스토리·경험이 결합된 상품을 선호한다. 글로벌 브랜드가 제공하지 못하는 틈새를 로컬 브랜드가 채운다. 부산에서 만들어진 어묵, 부산에서 온 분식이 해외에서 힘을 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은 오히려 ‘로컬다움’에서 나온다.
부산이라는 도시의 특수성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은 항구도시로서 바다를 통해 세계와 이어져 온 도시다. 일본·중국은 물론 미주·유럽과도 연결돼 있고, 다양한 문화가 섞이며 외부를 향한 개방성이 생활에 녹아 있는 도시다. 국제영화제, 크루즈 관광, 마이스 산업으로 세계와 접속해 온 경험도 로컬 브랜드의 해외 진출에 힘을 더한다. 이런 토양은 로컬 브랜드가 해외 시장에 도전할 때 강점으로 작용한다. 바비킴과 삼진어묵의 글로벌 진출은 단순히 한두 기업만의 성과가 아니라 부산이 가진 문화적·지리적 자산이 어떻게 세계와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과제도 분명하다. 개별 기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해외 진출에는 자본과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현지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불가피하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적극 나서서 해외 전시·팝업·브랜드 홍보를 체계적으로 연결하고,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바비킴과 삼진어묵의 사례와 같은 성과가 부산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세계화는 더 이상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작은 분식집이 일본 젊은 세대의 문화 체험 공간이 되고, 부산 어묵이 대양을 건너 글로벌 식탁에 오르는 시대다. 부산 로컬 브랜드의 글로벌 도전은 단순한 해외 진출이 아니라, 지역 문화의 세계화이자 도시 전략의 진화다. 후쿠오카의 충무김밥, 시드니의 어묵 매장은 부산이 세계와 만나는 새로운 창이다. 작은 가게의 불빛이 해외 거리에서 환하게 빛날 때, 그 빛은 다시 부산의 내일을 밝힌다.
2025-09-2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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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인공지능과 기자의 일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를 한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 2013년 개봉작 ‘그녀’의 배경이 바로 올해, 2025년이었다. 올해 개봉한 ‘미션임파서블’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 ‘데드레코닝’에서 톰 크루즈가 맞서 싸우는 빌런은 핵전쟁을 획책하는 인공지능 ‘엔티티’다. 인공지능은 어느새 SF에서 일상으로 훅 들어왔고,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장강명 작가의 르포 〈먼저 온 미래〉는 2016년 이세돌 9단과 구글 AI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계를 취재해 인공지능이 사회에 가져올 변화를 경고한다. 인공지능 이후 바둑 고수는 예술성과 권위를 잃었고, 바둑 중계는 인공지능이 시시각각 승률을 계산해 보여주는 경마식이 됐다. 바둑의 가치와 프로 기사의 일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 변화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작가는 이 질문을 소설가라는 자신의 직업으로 자주 돌린다.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이 진화해 5분에 하나씩 하루에 훌륭한 장편 288편을 써낸다면 문학의 가치와 소설가의 일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작가는 바둑계에서 ‘인간의 바둑’을 이기고 지는 승패의 서사에서 찾는 흐름이 생긴 것처럼, 문학과 같은 예술에서는 창작자의 스토리텔링과 팬덤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기자라면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인공지능은 언론의 가치와 기자의 일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최근 소식들은 이렇다. 네이버의 인공지능 뉴스 편집 알고리즘 때문에 가짜 ‘단독’과 유명인의 SNS를 베껴쓰는 뉴스가 늘었다는 연구가 있었다. 공영방송은 인공지능이 만든 영상을 메인뉴스에 써서 논란이 됐다. 미국에서는 한 신문사가 추천도서 기사에서 15권 중 10권이 존재하지도 않는 책으로 드러나자 인공지능으로 썼다고 인정했다. 구글의 인공지능 요약 서비스 때문에 트래픽과 매출이 줄었다며 소송을 건 언론사도 있었다.
인공지능은 이용자 취향에 기반한 알고리즘의 이름으로 ‘낚시성’ 기사 생산과 소비를 부추기고 있고, 인공지능으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정보 때문에 정작 기사 원문을 읽는 사람은 줄어든다. 인공지능이 만든 가짜 정보가 버젓이 기사로 유통되는 일은 지금도 들키지 않았다뿐이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가짜 추천도서 기사를 실은 미국 언론사가 인력을 20% 감축한 상태였다는 건 놀랍지도 않다.
이런 변화가 전적으로 인공지능 탓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클릭을 유도하는 기사의 폐해는 포털 뉴스 서비스가 등장했을 때부터 유구하다. 즐길 거리들이 늘어나니 기사 원문을 읽는 사람은 원래 줄고 있었다. 대규모 인력을 갖춘 기성 언론사 모델은 위기인 지 오래다. 인력이 줄고 뉴스 유통이 실시간이 되면서 기자들의 노동 환경과 삶의 질은 나아지기는커녕 나빠진 쪽에 가깝다.
대신 인공지능은 앞선 어떤 기술보다도 압도적인 능력과 속도로 이런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 것이다. 인공지능이 어떤 가치를 파괴한 뒤에야 우리는 그 가치가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묻게 될 것이다. 이처럼 삶과 일의 방식을 뒤흔들 중대한 권한을 인공지능을 이끄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먼저 온 미래〉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언론은 지금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지만큼이나 언론의 가치를 다시 묻고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시사인의 지난해 신뢰도 조사에서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은 ‘가장 신뢰하는 뉴스 프로그램’ 공동 2위였다. 미국에서는 ‘최고의 뉴스 브랜드’를 꼽는 설문조사에서 CNN 다음으로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조 로건이 2위를 기록했다. 언론을 언론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자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나. 인공지능은 언론에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지어내는 인공지능의 환각 때문에 언론사의 기사가 더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신뢰성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최근 조사도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의 기사가 갖는 경쟁력에 기대를 갖게 한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사진 대신 인공지능으로 만든 이미지를 쓰거나 인공지능에게 자료 조사를 맡긴 기사를 뉴스로 보기 힘들다고 답한 것이다.
인공지능과 연애하고 인공지능에 의존하다 목숨까지 버리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게 됐다. 정치인과 국제분쟁 뉴스에서 얼굴과 목소리를 감쪽같이 재현한 딥페이크도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인공지능이 사회를 어떻게 바꾸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 질문을 던지는 것 또한 인문학뿐만 아니라 언론의 역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기 위해서 더듬더듬 인공지능을 배우면서, 쉬운 냉소와 드문 낙관을 나누면서 기자들은 오늘도 마감을 한다.
2025-09-2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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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서울내기 다마내기'의 추억
‘고백의 역사’를 보셨는지 모르겠다. 광안대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98년 부산을 배경으로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되살리게 해 주는 영화다. 넷플릭스 공개 3일 만에 글로벌 톱10 비영어 영화 부문 3위에 올랐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부산을 지켜보면서 가슴을 두근거렸을 테니 반가운 일이었다. 다소 유치하게 느낄 수도 있었던 스토리를 맛깔나게 만들어준 일등 공신은 바로 부산 사투리였다.
부산 출신 배우들이 많이 출연한 이 영화에서 부산말은 변방의 언어가 아니라 사실상 표준어였다. 주인공 박세리 역할을 맡은 서울 출신 배우 신은수의 부산 사투리 연기도 부산 사람이 볼 때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꽤 괜찮았다. 특유의 발랄함과 풋풋함이 사투리 연기와 어우러져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리지널 서울 사람이 부산말을 어떻게 그 정도로 찰지게 구사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신은수 배우는 촬영 수개월 전부터 부산 사투리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고, 높낮이와 억양 등을 상세히 적어둔 대본을 통째로 외워버렸다고 했다. 그는 “부산말은 규칙이 있는 듯 없고, 단어마다 높낮이가 은근히 디테일하다”라고 말했다.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부산 사람은 의식도 못 하고 쓰는 것까지 알아차린 셈이다. 또 “한 끗 차이인데 언어를 새로 배우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듣기에는 똑같은데 선생님은 틀렸다고 했다. 그 미묘한 차이를 캐치하는 게 어려웠다”라고 덧붙였다.
부산말 배우느라 억수로 고생했던 모양이다. 오죽하면 앞선 영화 ‘반짝이는 워터멜론’에서 그가 했던 수어 연기보다 부산말이 더 어려웠단다. “참말로 욕봤다”는 말로 칭찬해 주고 싶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렇게 배우기 어려운 부산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우리 부산 사람들은 자부심을 쫌 가져도 되지 않을까.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랩송 같이 들리는 이 말놀이를 기억하는 분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1950~1970년대에 아이들이 서울말을 쓰는 아이를 놀릴 때 의미도 모르면서 쓰던 표현이었다. 전학생이 서울말을 쓰면 이렇게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되레 부산에서도 서울말을 써야 대접받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얼마 전 지인은 아내로부터 ‘귀가 후 소파에 누워 뒹굴뒹굴하지 말 것’과 ‘집안에서 사투리 쓰지 말 것’을 요구받았다고 했다. 평소 그의 언행을 보면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집안에서 묵언수행을 하란 말인지…. 취재차 만난 임영아 작가에게 들은 이야기도 충격적이었다. 부산에 있는 한 대학에 다닐 때 교수가 “PPT를 하는데 왜 사투리가 튀어나오냐”라고 질책했다는 것이다. 부산 사람도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써야 하고, 표준어를 못하면 교양 없는 사람이 된다는 말인지.
세상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듣지 못하는 걸 듣는 사람도 있다. 최근 〈쓰잘데기 있는 사전:말끝마다 웃고 정드는 101가지 부산 사투리〉를 출간한 전주 출신 부경대 양민호 교수와 서울 출신 최민경 교수가 그런 사람 같다. 이들은 부산에 살면서 대체 불가능한 부산말이 있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통증을 표현하는 ‘우리하다’, 뜻을 모르는 부산 사람이 없는 ‘속닥하다’는 표준어로 그 뉘앙스를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바보축구온달’은 세 단어 모두 표준어로 이뤄졌지만 합치면 사투리가 된다니 헛웃음이 나온다.
두 저자는 이 책에서 “부산 사투리에는 부산의 시간과 정서, 생존과 유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담겨 있다. 하지만 정작 부산 사람들은 이렇게 재밌고 멋진 부산말을 제대로 자랑하지 않는 듯하다”라고 일갈했다. 예쁘고 좋은 부산말을 살려서 잘 사용하면 좋겠다는 이들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게 된다.
일본에는 사투리 사전이나 사투리를 쓴 손수건 등을 굿즈로 판매하지만, 부산에는 그런 것도 잘 보이지 않는다.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부산팬들은 ‘아주라’와 ‘마!’ 같은 함축적인 말을 유행어로 만들었는데, 왜 그런 상품도 하나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부산말만큼 부산을 잘 드러내는 게 또 있을까.
10월 5일 ‘부산시민의 날’이 다가온다. 이날을 부산말을 쓰는 날로 만들면 좋겠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이날은 부산말로 연설하고, 지역방송 앵커들도 인사말 정도는 부산말로 시작하는 것이다. 〈부산일보〉를 비롯한 지역신문도 기사나 제목에서 부산말로 멋을 줘도 좋겠다. 학교에서도 부산말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싶다. 가을 야구의 시즌이 돌아오니 최동원 선수가 생각난다. 그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마 함 해 보입시더”라고 하지 않았을까.
2025-09-22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