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첨단산업 인재 떠나는 부산, 원격근무 대안으로 뜨나
부산은 미래 성장 동력이 되는 정보통신(IT)·과학기술 분야 신산업 인재가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이 배출되는 도시다. 하지만, 이 인력 대부분은 대학을 졸업하면 지역을 떠난다. 부산의 일자리는 1인당 0.07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절반이 월급 300만 원 미만으로 열악한 탓이다. 젊은 세대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대기업이 몰린 수도권으로 떠밀리는 실정이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부산 청년 인구는 21만 명 이상 감소하고, 저출산·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지역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그간 청년 유출 해법으로 1순위에 꼽힌 대기업 유치 노력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대안 모색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은 강서구 에코델타시티 및 명지·강서 산단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신산업 특구와, 동부산·원도심·서부산 5대 혁신클러스터로 디지털, 친환경, 첨단산업이 약동하는 도시 성장 비전을 그리고 있다. 기업이 몰려오고, 일자리가 창출되며, 청년 세대가 지역에 머물게 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신산업 유치는 인력 유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에 형성된 연관 산업 생태계와 시장 접근성, 인력 네트워크의 기득권이 공고한 탓이다. 이 때문에 기업 유치 노력은 계속하면서도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절실하다. 이 상황에서 지역을 떠나지 않고 원격근무를 이용해 수도권 대기업으로 취업하는 시도가 등장해 주목된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최근 부산의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 사이에 지역의 구직 한계를 수도권 대기업 원격근무제 취업으로 극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젊은 층에 선망의 대상인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플러스, 쿠팡, 배달의민족)에 원격근무가 확산하면서 부산 거주자에게도 수도권 대기업의 취업 문호가 열린 것이다. 수도권의 비싼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지 않고도 대기업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 IT 분야 구직자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부산에서 재택근무로 소득을 얻을 수 있으면 지역에 남고 싶다’(83.7%)라는 응답은 청년 이탈 대책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점을 시사한다. 원격근무는 기성세대에 낯설지만, 디지털 기업과 청년세대에는 뉴노멀이 된 지 오래다. 부산의 산단과 클러스터에 기업을 유치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지만, 원격근무가 ‘분산형 일자리 모델’이라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 시내 각 대학에서 IT·디지털 인력이 대거 배출되는 부산은 기대 효과가 크다. 그간 부산시 정책이 관광 중심의 워케이션 지원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정주를 위한 원격근무 기반 조성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공공 부문이 앞장서서 원격근무 채용을 모델화하거나, 구인-구직 매칭 시스템 구축, 원격근무 오피스 제공 등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청년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도시를 위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사설] 의사 구하기 힘든 달빛어린이병원, 이게 지역의료 현실
지역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고 소아환자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특정 병원을 지정해 운영하던 달빛어린이병원의 ‘달빛’이 빛을 잃어가고 있다. 부산 해운대 지역 지정 병원이 지난달 지정 운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부산지역에서는 달빛어린이병원이 8개로 줄어들었다. 2014년 보건복지부 공모를 통해 시작된 뒤 꾸준히 늘어오던 달빛어린이병원은 최근 들어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드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미 지정된 달빛어린이병원의 운영 측면에서도 휴일 진료 등 현장 상황이 날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속가능성에 약점을 보이며 운영에 허덕이는 이들 병원은 지역 필수의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달빛어린이병원 지정 사업을 진행해 온 보건복지부는 기초지자체마다 1개의 달빛어린이병원을 운영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지역은 16개 기초지자체 중에 절반인 8곳만 달빛어린이병원이 지정돼 있을 뿐이다. 달빛어린이병원 지정이 이처럼 저조한 이유는 지난달 소아 인구 밀집 지역인 해운대 지역 지정 달빛어린이병원이 운영을 중단한 이유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해당 병원이 달빛어린이병원 운영을 중단한 사유는 의사 채용 난항이다. 소아과 의사 1명이 병원을 그만두자 이를 대신할 인력을 구하지 못한 것이다. 단지 의사 1명 결원이 발생한 것만으로도 달빛어린이병원 운영이 중단되는 게 소아과 필수의료의 현실이었다. 이 같은 지역 소아과 의료 인력의 현실은 달빛어린이병원의 파행 운영으로도 이어져 언제 또 다른 병원의 운영 중단 사태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 됐다. 현재 지정돼 있는 달빛어린이병원들도 토요일이나 일요일, 공휴일에는 오후 10시 이후 심야에 위급한 소아환자를 받을 수가 없다. 휴일 심야에 병원 문을 열려면 병원마다 사실상 소아청소년과 의사 2명 이상이 필요하지만 최근 해당 과 전문의 배출은 급감하는 추세여서 의사를 구하기가 어려워서다. 부산시가 예산을 늘려 1년에 6000만 원씩의 보조금을 병원에 지급하는 등 달빛어린이병원에 대한 재정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소아과 전문의 확보 문제는 지자체가 어찌할 방법이 없다. 달빛어린이병원이 활성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필수의료 전문의 수급과 직결되는 문제다. 필수의료 전문의 지원 기피 세태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지자체가 아니라 정부가 재정 지원에 나선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수도권에 비해 필수의료 인력이 태부족한 지역의 입장에서는 이는 최소한의 진료받을 권리까지 상실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알게 모르게 진행돼 온 지역 필수의료의 붕괴는 달빛어린이병원의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의료분쟁과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를 비롯한 제도 개선부터 적정 수가 보장 등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본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사설] 부산-후쿠오카포럼, 북극 크루즈 공동 진행 제안 주목된다
제18회 부산-후쿠오카포럼이 지난 15일 일본 후쿠오카시에서 ‘부산-후쿠오카 초광역 경제권: 성과와 미래 비전’을 주제로 열렸다. 이 포럼은 양 지역을 하나로 묶어 국경을 초월한 ‘초광역 경제권’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2006년 발족한 대표적 민간 기구다. 포럼은 1세션 ‘초광역권의 새로운 흐름-경제 분야’, 2세션 ‘초광역권의 새로운 흐름-교육·문화·디지털 교류’, 3세션 ‘그간의 성과와 향후 비전’으로 나눠 진행됐다. 스미토모상사큐슈(주) 사이다 타다오 사장, 팬스타그룹 김현겸 회장, 부산대 최재원 총장, 후쿠오카대 나가타 키요후미 총장, 삼진식품(주) 박용준 대표 등이 발표자로 참석했다. 포럼이 구축한 성과를 돌아보고 새 비전 설계에 나선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양 도시의 대학들은 포럼에서 젊은 세대들의 교류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부산대, 동서대, 규슈대, 후쿠오카대 등 4개 대학은 공동 연구와 학생 교류를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고 한다. 이들 대학은 초광역권 구축에 대한 공동 연구와 산학 협력 등 공동 사업을 발굴·시행한다. 기업인들의 협력 아이디어 제안도 빛났다. 스미토모상사큐슈(주) 타다오 사장은 “물류 고도화를 이뤄낸다면 많은 기업이 부산항으로 몰려들 것”이라고 조언했고, 후쿠야(주) 가와하라 마사타가 회장은 삼진식품(주) 박용준 대표에게 어묵 식품 공동 개발을 제안했다. 대학과 기업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이 기대된다. 포럼에서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팬스타그룹 김 회장의 북극 여행 크루즈 사업에 대한 제안이었다. 김 회장은 일본 측 참가자들에게 북극항로 개척의 중요성을 설명한 뒤 양 도시가 공동으로 북극 여행 크루즈 사업을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첫 번째 단계로 두 도시가 함께 자유롭게 북극을 이동할 수 있는 대형 크루즈 선박을 만들 것과 양 도시가 협업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한 것이다. 한일의 북극항로 개척 연대는 물류비 절감, 자원 개발 연계, 해상 무역 다변화, 탄소배출 절감 등 경제·전략·환경적으로 필요하다. 북극 크루즈 공동 사업이 결실을 맺어 두 도시가 한일 해양산업의 허브로 우뚝 서는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포럼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열려 의미를 더했다. 북중러 밀착에 따른 동북아 안보 환경 급변으로 한미일 동맹의 중요성이 커지는 현실에서 한일의 협력은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도 지난달 30일 열린 APEC 정상회담에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강조했다. 부산과 후쿠오카는 20년 가까이 포럼을 이어오며 한일 협력의 최전선에 있다. 그동안 초광역 경제권 구축을 위해 많은 논의를 하고 아이디어를 축적한 만큼, 이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 때다. 이를 통해 두 도시가 경제 활성화와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밀물썰물] 탈석탄과 탈석탄동맹
17일(현지시간) 저녁 브라질 벨렝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참석 중인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한국 정부의 탈석탄동맹(PPCA) 가입(동참)을 전격 선언한 것이다. 한국의 탈석탄동맹 가입은 아시아 국가에서는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다.석탄화력발전의 단계적 폐지 달성을 목표로 하는 국제협력 이니셔티브인 탈석탄동맹은 영국과 캐나다 주도로 2017년 결성됐다. 석탄화력발전의 단계적 폐지, 청정 에너지 지원 등을 약속하는 정부, 지방정부, 기업 등의 연합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충남, 인천, 강원 등 석탄화력발전소 소재 지역을 중심으로 7개의 광역자치단체만이 탈석탄동맹에 가입된 상태다. 지자체에는 석탄발전소 폐쇄 권한이 없기 때문에 그간 국내 지자체의 탈석탄동맹 가입은 선언적 의미가 더 강했다. 정부의 탈석탄동맹 가입으로 탈석탄 기조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에서 노후 석탄발전의 단계적 폐쇄 등 퇴출이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석탄화력발전은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온실가스의 국내 배출 28%를 차지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퇴출 대상 1순위로 거론되기도 한다. 탈석탄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필수 과제다.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취임 이후 ‘3호 업무지시’로 미세먼지의 주범인 30년 이상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셧다운(일시 가동중단)을 지시하는가 하면, 임기 내 노후 석탄화력 10기 폐쇄를 약속하기도 했다.노후 석탄화력발전의 단계적 폐쇄는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의 중장기 에너지 계획인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2024~2038)’에는 2038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총 40기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이미 폐지(폐쇄)돼 해체를 앞둔 삼천포(고성)·평택·보령발전소 등을 모두 합치면 철거 대상은 총 51기에 이른다. 퇴출되는 석탄화력의 전력 공백은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가 상당 부분 메꾸게 된다.그동안 국내 발전사들은 노후 석탄발전 폐지, 미세먼지 고농도시기 석탄발전소 가동 중지, 상시 상한제약 등 석탄발전 감축 대책과 더불어 석탄발전 탈황·탈질·집진 등 친환경설비 보강과 개선, R&D(연구개발) 등을 지속해 오고 있다. 한국 정부가 밝힌 탈석탄 목표 연도는 2040년으로, 탈석탄동맹이 권고하는 목표(2030년)보다 한참 늦다. 정부도 탈석탄동맹 가입이 공수표가 되지 않도록 구체적 로드맵 등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강윤경 칼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다시 생각한다
국가균형발전 관점에서 보면 윤석열 정부 최악의 참사는 한국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 무산이 아닐까 싶다. 메가 이벤트로 치자면 2030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 충격이 컸던 게 사실이지만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는 산은 이전 무산이 보다 본질적 문제로 남을 대목이다. 느닷없는 계엄 선포와 탄핵, 조기 대선을 거치면서 윤 정부 균형발전 정책의 상징과도 같았던 산은 부산 이전까지 정국 풍랑에 휩쓸려 버린 것이다. 산은 이전은 2022년 1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부산 유세 현장에서 지역 공약으로 발표하면서 현실화했다. 당시 캠프 내부에서는 산은을 여의도에 존치하는 방향으로 중론이 모아진 상황이었는데 전격적으로 공약 발표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국정 과제로 채택하며 뚝심 있게 밀어붙였고 그렇게 서울과 부산, 두 바퀴 국가 성장 전략의 핵심 정책이 됐다. 산은 이전을 공격하는 진영에서는 전격적 공약 발표를 근거로 지역 표심을 잡기 위해 급조한 정치적 결정으로 폄하한다. 하지만 산은 이전은 동북아 금융중심지를 향한 부산의 숙원이었다. 국내 중요 금융기관들의 부산 이전 논의가 구체화한 것은 2008년 ‘금융중심지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다. 이듬해 금융위원회는 서울 여의도와 부산 문현단지 두 곳을 금융중심지로 확정했다. 서울과 함께 부산을 선정한 데는 금융 분야 수도권 일극화를 막는다는 취지가 배경에 있었다. 2010년 12월 부산서 열린 ‘금융중심지 활성화 정책간담회’에서 국책은행인 산은과 수출입은행의 부산 이전 논의가 공식화한다. 진동수 금융위원장, 허태열 정무위원장, 한나라당 서병수 최고위원을 비롯해 정부와 금융·정치권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일이었다. 그렇게 지역 염원이 쌓여 윤 정부 국정 과제에 이른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2023년 5월 산은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고시하며 행정 절차까지 마쳤지만, 본사를 서울로 한다는 산은법 개정이 더불어민주당 반대에 막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선 기간이던 5월 부산을 찾은 이재명 후보는 산은 이전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표를 얻기 위해 안 될 약속을 하는 건 사기’라는 강한 표현을 동원했다. 산은 이전 반대의 원죄를 덮기 위해 꺼낸 카드가 해양수산부 이전과 동남권투자은행 설립이었다. 그렇게 이 후보는 대통령이 됐고 취임 후 해수부 부산 이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산은 이전 논란도 자연히 사그라들었다. 그렇다면 산은 이전은 못다 핀 지역의 꿈으로 영영 사라지는 것일까. 그건 어디까지나 해수부의 완전한 기능 이전과 동남권투자은행이 산은 이상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한다는 전제하에서다. 최근 동남권투자은행이 동남권투자공사로 바뀌고 지방시대위원회가 ‘5극 3특’ 균형성장 전략으로 각 권역에 지역투자공사를 설립하는 안을 발표하면서 동남권투자은행은 출범도 전에 위상과 역할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고래가 참치가 되고 멸치가 됐다는 정치적 레토릭이 등장하는 걸 보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다시 이슈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따지고 보면 산은 이전은 대형 금융기관 하나 부산에 가져오는 이상의 의미다. 지역 산업생태계 혁신에는 자본이 뒤따라야 하고 그 컨트롤타워로 산업은행의 역할이 절실한 것이다.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기업가형 국가〉에서 민간이 투자를 꺼리는 미래 기술과 선도 산업에 리스크를 안고 과감히 투자하는 국가 주도 개발은행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과감히 투자하고 돌아온 수익을 다시 미래에 투자하는 선순환으로 국가 주도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국영투자은행, 중국개발은행의 녹색혁명 투자를 사례로 소개한다. 우리에게는 산업은행이 바로 그런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곳이다. 이미 수도권은 사람과 자본이 포화 상태다.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곳은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부권이다. 특히 제조업과 첨단기술의 결합을 통한 미래 혁신 산업생태계가 강조되고 있는 지금, 산업은행이 남부권 혁신을 주도하고 국가 미래 성장동력을 키울 절호의 기회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국가의 혁신 역량이 강조되는 요즘 산은 부산 이전을 다시 생각하는 이유다. 마침 정부는 2차 공공기관 이전을 본격화했다. 산은도 당연히 이전 대상이다. 애초 산은 부산 이전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당론도 2차 공공기관 이전 때 함께 다루자는 것이었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상 산은은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이미 결정돼 있다. 2차 공공기관 이전 시 이행만 하면 된다. 국가 미래를 위해 산은의 입지와 역할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백진규의 법의 창] 해양수도 이전 특별법, 절반의 성공인가
지난 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부산 해양수도 이전기관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해양수도 이전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여야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해양수산부 및 산하기관 이전 관련 법안을 병합해 마련된 위원회 대안이다. 특별법의 제정 취지는 명확하다. 그동안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해양행정 기능을 분산하고, 부산을 명실상부한 해양수도로 육성하기 위해 이전기관과 이전기업의 안정적 정착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번 특별법은 그동안의 정책적 선언을 넘어, 법률의 형태로 해양수도를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별법은 공공기관 이전을 단순히 ‘행정적 이주’로만 보지 않는다. 이전기관의 이주 비용, 사무소 신축비, 융자 지원뿐만 아니라, 이주 직원의 주택 공급, 자녀 학업 및 양육 지원, 정주 여건 개선 등 실질적 정착을 위한 다양한 정책 수단을 포함한다. 행정·산업·생활 결합 '해양특화지구' 진전 해수부 기능 강화 제외 이전 지원에 초점 후속 입법·정책 보완 해양행정 분권 이뤄야 해수부 장관이 지정할 수 있는 ‘해양특화지구’ 제도는 이번 법의 큰 진전이다. 해양특화지구에는 이전기관과 기업의 사무 시설뿐 아니라, 공동 주거 단지, 교육시설, 복합 편의시설까지 포함된다. 이는 행정·산업·생활이 결합된 ‘해양행정복합지구’ 개념으로, 단순한 물리적 이전을 넘어 ‘해양도시 생태계’를 조성할 근거가 된다. 또, 해양특화지구 내에서는 용적률 상한을 최대 120%까지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이주 인력의 주택공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유연한 도시계획 장치로, 향후 해양산업·해사법률·국제물류 등이 결합한 부산형 해양클러스터로 발전할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법안을 두고 많은 전문가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그 이유는 바로 ‘해양수산부 기능 강화 조항’이 빠졌기 때문이다. 당초 여야 모두 해수부 본부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부산 이전과 함께 정책 중심부를 이전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그러나 연내 법안 처리를 위해 논란이 되는 기능 강화 부분을 제외하고 우선 ‘이전 지원’에 초점을 맞춘 대안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는 법 제정의 속도를 높이는 선택이었을지 모르나, 본질적 목표였던 ‘해양행정의 실질적 분권’은 미루어진 셈이다. 즉, 이번 법으로 해수부의 물리적 이전은 가능해졌지만, 각 행정부처에 산재해 있는 해양 관련 정책결정권·예산 편성권·인사권 등 여러 핵심 기능이 여전히 중앙에 남는다면, 부산은 이름뿐인 해양수도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해수부의 핵심 기능은 단순한 행정 집행이 아니라, 국가 해양 전략의 기획과 조정, 국제 해양 질서 대응, 해양안전 정책 수립 등 고도의 전략적 영역에 있다. 해양 관련 기능이 부산 중심으로 재편되지 않는 한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가 되기는 어렵다. 해양행정 분권의 실질화를 위해서 그리고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번 특별법을 출발점으로 삼되, 실질적 기능 이전을 위한 후속 입법과 정책 보완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 해수부 기능 강화 법안의 조속한 제정이다. 이번 법에서 빠진 각 행정부처에 산재한 해양 관련 기능, 예컨대 조선, 해양플랜트, 해양에너지, 해양물류, 해양레저, 국립 해상공원 등에 관한 정책기획, 예산·인사권 등을 별도의 법안으로 해수부로 이관해야 한다. 둘째, 중앙해양안전심판원(세종)과 해양환경공단(서울) 등 다수의 해양 공공기관을 부산으로 이전해야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셋째, 충분한 예산 지원을 통한 해양특화지구의 실질적 집적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법률상 지정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해양산업, 해사법률, 국제기구, 연구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산업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해양산업-행정-사법’이 함께 작동하는 해양혁신 허브로 발전시켜야 한다. 넷째, 부산시의 행정 역량 강화다. 특별법이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집행할 주체의 준비가 부족하면 실효성이 반감된다. 부산시는 중앙정부 의존형 개발에서 벗어나, 해양행정의 분권화를 뒷받침할 전문 조직과 인력을 강화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지역 해양정책 플랫폼’이 구축될 때 비로소 법의 정신이 살아난다. 이번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부산은 비로소 ‘법으로 지정된 해양수도’라는 지위를 얻게 된다. 이는 단순한 명칭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부산을 해양행정의 중심도시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법의 제정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전은 공간의 이동이지만, 기능의 이전은 권한의 이동이다. 해양 관련 포괄적, 전문적 기능이 빠진 해양수도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 항해하기 위해서는, 이번 법을 토대로 해수부 기능 강화와 해양행정의 분권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이전의 법’이 ‘기능의 법’으로 진화할 때, 부산은 비로소 대한민국 해양 정책의 중심으로 우뚝 설 것이다.
[데스크 칼럼] 지방정부를 위하여
기자에게 기사 읽기는 업무지만 지방 카테고리 뉴스를 훑는 일에는 작은 즐거움이 있다. 사건 사고와 지자체 소식들에 끼어있는 지역 축제나 행사 소개 때문이다. 이런 기사들을 따라가다 보면 구석구석의 특산물도 알게 되고, 제철음식과 지금 가장 아름다운 꽃과 나무, 동네의 각종 명물도 알 수 있다. 요즘 같으면 김장 축제가 한창이고, 억새 축제는 막바지다. 강원도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만 알았는데 인천 장수동에도 8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고 한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침공 속에 내가 먹고 체험하는 것과 덥고 추운 날씨만이 진짜로 느껴질 때, 이런저런 축제를 계기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와 동네를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특산물만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니다. 최근의 화제는 단연 경북 김천시의 김밥 축제다. 지난해 처음 시작해 올해 15만 명을 불러들였다. 인구 13만 명 도시에 그보다 더 많은 인파가 김밥을 먹으러 다녀갔다. ‘김천’하면 대한민국 대표 분식 식당명 김밥천국이 떠오른다는 답이 많아서 축제를 만들었다는 뒷이야기는 자조적인 농담 같지만, 공무원들은 진지했다. 올해는 첫 행사에서 지적받은 내용을 보완해 셔틀 버스를 준비하고 전용 차로까지 운영했다고 하니 2회 만에 지역 축제의 모범 사례로 회자될 만하다. 지역 축제에서 늘 같이 이야기되는 것이 지역 경제 활성화다. 축제를 보러 왔다가 근처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물건도 사는 것을 넘어 연관 산업이 커지거나 일자리가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도시 브랜드를 알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장기적인 경제 효과도 있다. 이를테면 지금은 명실상부 아시아 최대 영화제가 된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30년간 부산이라는 도시 브랜드에 미친 영향은 부산의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보다 크다. 그렇게 축적된 자산이 지역에 청년을 불러들이고 도시를 더 널리 알렸다면 이 또한 축제의 성과다. 모든 축제가 여기에 성공하진 않는다. ‘축제가 밥 먹여주냐’는 비난, ‘혈세 낭비’라는 화살도 종종 받는다. 그러나 결과를 떠나 대개 기초지자체가 기획하는 소소한 축제들은 지역이 가진 유무형의 자원을 활용해 뭐라도 해보려는 시도일 때가 많다. 인구가 줄고 산업도 쪼그라든 비수도권 지자체들의 안간힘이다. 축제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블랙홀처럼 사람과 자본을 빨아들이는 수도권에 맞서서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산업연구원은 ‘균형발전 불평등도의 구조적 특성과 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균형발전의 불평등을 키우는 핵심 요인을 ‘자립적 발전 역량’의 차이라고 지목한다. 지난 20년간 균형발전 4대 요인을 중심으로 불평등도를 살펴봤더니, 자립적 발전 역량의 불평등도가 다른 3개 요인을 합친 것보다 더 컸고, 갈수록 격차가 커졌으며,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가 특히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연구진이 자립적 발전 역량을 진단한 지표는 인력, 산업, 기업, 그리고 재정이다. 지방은 고부가가치 산업이 부족하고 기업 성장이 정체돼 청년 인력의 수도권 유출이 심화되는 악순환 탓에 스스로 발전할 역량을 키우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는 법에 명시된 균형발전의 나머지 요인(발전의 기회 균등, 삶의 질 향상, 지속 가능한 발전)도 선순환이 힘들다. 결국은 경제다. 지자체는 이런 악순환을 깨기 위한 해법으로 오랫동안 분권을 요구해왔다. 중앙정부가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지자체 간 경쟁을 시켜서 예산을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지자체가 자율성을 갖고 지역에 필요한 인재와 산업과 기업을 키울 수 있도록 권한을 과감하게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 또한 핵심이다. 인구와 경제력에 연동되는 지방세의 불균형도 갈수록 커지고, 전국 지자체 열 개 중 네 곳이 지방세로 인건비를 충당할 수 없는 지경에서 자생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이재명 정부는 연일 균형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지방자치단체라는 표현 대신 ‘지방정부’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자율 재정 예산 규모를 세 배 가까이 늘렸다고도 강조했는데, 진짜 ‘자율 재정’이 되도록 중앙정부가 제시하는 사업 목록을 폐지해야 한다는 박형준 부산시장의 지적에도 공감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방정부’ 언급은 처음이 아니다. 헌법의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바꾸는 건 개헌 사항인데, 지방분권 개헌을 국정과제 1호로 내세운 정부가 개헌에 지방정부를 명시할지도 관심사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말대로 역할과 기능에 비해 권한과 재정이 부족한 지자체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것이 ‘제2의 도시’ 부산조차 자유롭지 않은 지방소멸의 위험 속에서 지자체냐 지방정부냐 하는 용어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노트북 단상] 가해자도 피해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폭행을 당해보길 바란다
그는 직장 내 폭행과 폭언의 피해자이다. 믿었던 상사에게 상습적으로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 술자리만 되면 그 상사는 늘 그를 때리고 모욕했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자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며 일상을 이어갔다. 가해자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선 피해자의 얘기를 하기 전에 “아무런 이유 없이 폭행과 폭언을 당해봤는가? 그것도 같은 직장 동료들 앞에서?”라고 묻고 싶다. 피해자의 마음을 좀 더 헤아려보자는 취지이다. 그리고 그는 늘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가해자도 피해자가 겪은 똑같은 방식으로 폭행과 폭언을 당해보길 바란다.” 피해자인 그의 일상은 폭력과 폭언을 당하는 순간 180도 달라졌다. 그가 겪은 가장 절망적인 점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다. 이유 없이 폭행과 폭언을 당했는데 “쟤는 왜 가만히 있을 수 있어?”라는 시각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데. 그는 지렁이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다른 동료들에게 폭력과 폭언 없는 문화를 전해주고 싶은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의 삶을 짓누른다. 이로 인해 관계의 단절이 생긴다. 그는 다른 동료들 앞에서 얼굴 들고 다니는 게 너무 부끄럽다. 격려의 말도, 응원의 말도 그리고 위로의 말도 전하기가 두려웠다. 동료들에게 말 걸고 웃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난 직장 내 폭력과 폭언에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야 하는 나약한 사람이니” 월급만 받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월급충’이라 자책한다. 그리고 업무의 단절도 쉽지 않은 일이다. 예전에 그는 열심히 했고 큰 상도 받았다. 그러나 폭행과 폭언을 당한 순간, 그는 일에 대한 의지를 잃었다.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해자가 그의 업무를 평가한다는 사실이다. 공정하고 올바른 평가가 가능할 리 없었다. 그 사실이 그에게는 소름 그 자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폭행과 폭언을 겪으며 자신을 바라보던 관점이 무너졌다. 다시 말해 정체성의 상실이다.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인가?”라는 자기 인식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그는 더 이상 직장을 성장의 공간이 아닌, 존재 의미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소로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가해자를 보면 자아 상실이 더 심해진다. 위 사례는 대다수 피해자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각색한 글이다. 이러한 이유로 피해자 10명 중 9명이 퇴사한다. 그런데 통계적으로도 가해자 대다수는 퇴사하지 않고 남아 있다. 이러한 불공정한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당연하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그래서 앞서 가해자도 피해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폭행과 폭언을 당해 봐야한다고 얘기했다. 어쨌든 그는 수치스럽지만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은 없다. 그만 두는 순간 좋은 건 가해자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당히 남아 조직 내 폭행과 폭언이 사라질 때까지 하나의 증거로 남고자 한다. 가해자가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다만, 조직 내에서 피해자인 그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동료들도 많다. 진심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조직 내 폭행 폭언 가해자들은 발 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가해자에게 평생의 ‘주홍글씨’를 달아주고 싶다.
[중앙로365] 글로벌 창업 도시를 향한 성공 방정식
인공지능(AI) 시대, 기술이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는 속도는 전례 없는 혁신을 이끌고 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시대의 문제를 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스타트업이 있다. 21세기 경제 지도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창업 도시’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 중국 등이 활발한 창업 열기를 바탕으로 우월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듯이 창업은 이제 도시와 지역 경제를 살리고 새로운 인구를 유입시키는 생존 전략이 되었다. 한국의 창업 생태계는 1997년 벤처기업육성특별법 제정 이후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질적 성숙은 아직 부족하다. 특히 심화는 수도권 쏠림 현상과 지역 창업 생태계의 완결성 부족은 고질적인 문제이다. 실제로 글로벌 창업 정보 분석 플랫폼 ‘스타트업블링크’의 2025년 순위에서 한국은 서울(20위)만이 100위권에 들었을 뿐, 대전은 366위, 부산은 393위, 울산 546위에 머물렀다. 서울 외에는 내세울 만한 창업 도시가 사실상 전무한 현실을 감안할 때, 부산이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창업 도시로 거듭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이다. 성공적인 창업 도시는 투자 접근성, 창업보육, 실증 공간 등이 포함된 생태계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시너지를 창출하는 곳이다. 이 중에서도 투자, 인재, 공간은 도시의 창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 삼위일체이다. 이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지역 창업이 활성화되더라도 성장 단계에서 충분한 투자 유치나 인수합병(M&A)이 어려워 결국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만다. 이는 지역 창업 생태계가 초기 단계에 고착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부산시는 올해 2월 부산기술창업투자원을 설립하고 2026년까지 총 1조 5000억 원 규모의 창업 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통해 자본 환경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실제 최근 펀드 규모 급증과 더불어 국내 최대 액셀러레이터(AC) 협회가 부산에 첫 지역본부를 설치하는 등 긍정적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전국 벤처기업의 약 40%가 비수도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유치하는 벤처 투자 비중은 여전히 20% 수준에 그치는 냉정한 현실은 여전하다. 이러한 투자 절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비수도권에 투자하는 AC 및 벤처캐피털(VC)에 대한 세제 혜택을 강화하고,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는 기업에는 법인세나 재산세 감면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나아가 싱가포르처럼 복잡한 외환거래 절차를 간소화하고 법인세 면제 등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가변자본기업(VCC)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해외 벤처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필요가 있다. 창업 생태계의 핵심은 결국 인재이다. 국내외 인재들이 부산으로 유입되어 정착할 수 있는 글로벌 정주 여건 개선 또한 시급한 과제이다. 현재 외국인 창업자(기술창업비자 소지자) 87.3%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부산시는 이미 외국인 유학생의 비자 재정 요건을 완화하고 취업 활동을 허용하는 광역형 비자 시범 사업을 추진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지역 기업 및 공공기관과의 오픈이노베이션 기회를 확대하여 외국인 창업자들이 사업 성과를 낼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이 기업 친화적인 세금 정책과 매력적인 생활 환경으로 젊은 인재들을 끌어들인 성공 사례에서 찾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다. 창업 생태계는 단순히 정책과 제도만으로 견고해지지 않는다. 혁신적 기업가 정신의 문화적 확산은 어떤 정책이나 규제보다 훨씬 지속적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 선배 창업가가 투자자·멘토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 대학과 기관의 활발한 교류가 창업 도시의 리듬을 만든다. 창업은 제도에서 태어나지만, 결국 문화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시장 앞에서 한발 앞서 길을 열고, 시장이 스스로 달리기 시작하면 한 발 물러나 민간의 속도를 따라가는 촉매제여야 한다. 대학은 논문과 특허에만 머물지 말고, 연구실의 기술을 사업의 언어로 번역해 학생을 창업과 산업의 주역으로 세워야 하며, 민간은 지역을 ‘선의의 후원’이 아니라 ‘수익과 기회’의 장으로 바라봐야 한다. 창업 도시는 화려한 구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본이 들어올 명확한 장치, 인재가 이주할 충분한 이유, 그리고 혁신이 일상적으로 가능한 환경을 묶어 도시의 운영 체계로 정립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부산이 주도하는 글로벌 혁신은 행정의 선언이 아니라, 내일의 스타트업이 이 도시를 떠나지 않아도 되는 실질적 환경에서 시작된다. 부산이 진정한 글로벌 창업 도시로 도약하길 기대한다.
[편집국에서] 죽음의 외주화, 수사의 외주화
6일 오후 울산 동서발전 화력발전소에서 63m 높이의 낡은 보일러 타워가 무너졌다. 타워 내부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9명이 순식간에 잔해 속으로 사라졌다. 무분별한 하청 남발이 불러온 참담한 사고다. 노후 산단이 많은 울산에서는 위험한 해체 작업은 곧장 하청 업체로 향하는 게 하나의 관행이 됐다. 일감을 따낸 업체는 더 영세한 업체에 그 일을 던진다. 결국 ‘죽음마저 외주 줬다’라는 게 현장 기자의 보고다. 위험한 작업이라면 감리를 둬서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힘든 작업이라면 근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그게 근로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다. 그러나 이 예의와 상식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게 이 하청의 악순환이다. 위험천만한 일터에 헐값으로 밀어 넣을 일용직이 존재하는 한 기업이 자발적으로 근로 환경을 개선할 날은 오지 않는다. 이번 사고에 희생된 이들은 하도급 업체 직원 1명과 일용직 8명이다. 해체 작업에 능한 기능공은 없었다. 인력사무소 소개로 출근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던 젊은 가장이 가장 먼저 시신으로 발견됐다. 힘들게 구직에 성공해 출근할 날만 기다리던 이다. 정식 출근 전 몇 푼이라도 더 벌 요량으로 그가 찾아간 새벽 알바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발파 현장이었다. 울산에서 보일러 타워의 잔해에 파묻힌 매몰자를 구해낸다고 정신없는 사이 서울에서는 검란의 불길이 번졌다. 대선 정국을 뒤흔든 대장동 사건의 항소를 검찰 수뇌부가 포기했다. 내부 반발은 당연지사다. 이번 항소 포기로 허공에 뜬 범죄수익만 7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범죄 수익으로 추징하는 길이 사실상 막혔다. 성남시는 민간사업자를 가장한 도둑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민사 소송을 벌여 손해배상을 받아내야 한다. 형사 재판이 저 지경이 됐는데 민사라고 순탄하게 흘러갈까. 당장 자신의 몫 500억 원을 보전 당한 민간업자 남욱 씨는 서울중앙지검을 상대로 국가배상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울산에서는 절박한 가장들이 일당 35만 원짜리 기능공 대신 15만 원짜리 ‘핫바리’가 되어 돌아올 수 없는 철골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반면 구치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던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은 송사만 마치면 돈방석에 앉을 판이다. 법무부 장관은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보고에 수 차례 ‘신중한 판단’을 권했다. 정권 초기 그 말의 무게를 장관씩이나 되는 인사가 과연 몰랐을까. 붕괴 사고의 발주처가 동서발전이듯 검란의 발주처는 명백히 대통령실이다. 발주처와 원청이 불화를 겪는 사이 하청이 난립하며 대목을 맞았다. 온갖 타이틀이 붙은 시국 사건은 줄줄이 특검의 몫이다. 특검이라는 단어가 공정함과 준엄함을 상징하던 시절은 지나간 지 오래. 이 특검이 저 특검인지, 저 특검이 이 특검인지 헛갈리는 사이 이력 모를 율사가 나타나 수사권의 칼을 쥐고 망나니 춤을 춘다. 급기야 부도 위기의 하청 업체인 공수처는 후발 업체인 해병대 특검으로부터 외압 의혹까지 제기당하는 굴욕도 맛봤다. 양산된 특검을 정권의 손쉬운 수사 하청이라며 다들 혀를 차는 이유다. 전인미답의 코스피 4000시대를 열고 한미 무역협상에서 핵추진 잠수함까지 얻어낸 여권이다. 정치적 호재는 봄바람처럼 이어진다. 부산에서도 바닥을 치던 여당의 지지세는 해양수산부 이전 급물살에 꿈틀댄다. 소주 한 잔 기울이는 자리마다 ‘내년 지방 선거는 그야말로 다이내믹’이라며 다들 장자방 행세를 하기 바쁘다. 본청에 이어 산하기관과 HMM의 구체적인 이전안까지 꺼내 놓는다면 지금의 기세는 우스울 정도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화한 검란을 무사히 수습한다는 전제조건 하의 이야기다. 잘 나가다도 검찰 이슈만 터지면 발작 버튼이라도 누른 듯 역선택에 역선택을 거듭하는 대통령실과 여당 모습에 부울경 유권자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물론, 수습되지 않은 대장동의 잔해가 여권 입장에서는 두려울 법도 하다. 재판 과정에서 그 속에서 무엇이 더 튀어나올지는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특검의 수사는 난립하고 있는데 정작 검찰의 대장동 수사는 올스톱된 이 상황이 결코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청 놀음이 존재하는 한 근로 환경이 개선되지 않듯 검찰은 배제하고 특검만 줄줄이 출범하는 행태가 계속되면 여당의 법치주의에 대한 지역의 색안경도 벗겨지지 않는다. 제대로 된 수사와 재판만이 대통령실과 여당의 집권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내 편의 수사 결과가 절대 그럴 리 없다’라는 지극히 유아적이고 비이성적인 아우성은 혐오만 더 깊게 할 뿐이다. 권상국 지역사회부장 ksk@busan.com
‘지선 필승’ 사활 건 여야, 파격 공천룰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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