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3 지선 경남·울산 접전, 후보 자질·공약 꼼꼼히 따져야
6·3 지방선거가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내일부터 이틀간 사전투표가 실시되면서 본격적인 선거 국면으로 접어든다. 선거는 더 나은 미래를 일구려는 민심에 기반한다.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후보들은 정책 경쟁에 매진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경남과 울산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각 정당의 세몰이와 네거티브 공방 등 정치공학적 기교만 난무하고 있다. 〈부산일보〉가 여론조사기관 (주)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4~25일 경남과 울산 지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각각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남과 울산은 막판까지 혼전이 예상된다. 단일화 여부도 막판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경남지사 선거의 경우 국민의힘 박완수 후보가 46.3%의 지지율로 41.5%를 얻은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에 4.8%P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진보당 후보가 27일 김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사퇴한 것이 막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됐다. 더욱이 여야 양자 대결로 재편, 표심 향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울산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김상욱 후보가 진보당 김종훈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할 경우 51.2%의 지지율로 국힘 김두겸(30.8%), 무소속 박맹우(5.4%) 후보를 압도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김종훈 후보로 단일화할 경우에도 40.6%를 획득, 김두겸(29.5%), 박맹우(7%) 후보에 우위를 보일 것으로 분석됐다. 경남 교육감 선거에서는 보수 권순기 후보가 25.2%로 22.4%인 진보 송영기 후보에 앞섰지만 선호하는 후보가 없다는 응답 유보층이 37.7%에 달해 진보 성향 후보 3인의 단일화 여부가 표심 향배를 좌우할 것으로 관측됐다. 울산 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 조용식 후보가 34%의 지지율로 보수 김주홍(22.9), 중도 구광열(17.8%) 후보와 차별화된 지지세를 과시했다. 하지만 역시 응답 유보가 25.4%에 달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관심을 끌고 있는 양산시장 선거는 민주당 조문관 후보가 50.7%의 지지율을 획득, 41.2%를 얻은 국힘 나동연 후보에 비해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과 울산 선거전은 그동안 ‘공소 취소 특검’ 등 전국적인 이슈가 불거지면서 각 후보의 정책 경쟁이 아닌 정당 대리전 형태로 흘렀다는 지적을 받는다. 특히 선거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상대 진영에 대한 심판론 공세는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울산시장 선거의 경우 김상욱 후보는 ‘필리핀 원정 성매매’ 의혹에, 김두겸 후보는 유세 현장에서 취재진을 폭행했다는 논란에 각각 휩싸였다. 당초 기대됐던 정책 선거는 온데간데없다. 이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자질과 발표된 공약을 꼼꼼히 따져 지역 발전을 이끌 제대로 된 일꾼을 선출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사설] '해양수도권' 완성이 선거용 헛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재명 대통령이 26일부터 이틀 동안 부산·경남지역에 머무르며 일정을 소화했다. 청와대는 27일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이후 처음 부산에서 열린 제31회 바다의 날 기념식 참석을 겸한 지역 민심 수습 행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다음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당장 야권에서는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라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반면 여권은 대통령의 행보에 촉각을 기울이며 ‘후광 효과’를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가 포착된다. 특히 이 대통령이 방문한 부산·경남지역은 임박한 이번 선거에서 광역지자체장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모두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곳이라 이 같은 시선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 대통령은 27일 부산 영도구에서 열린 바다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해운·항만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기념사에서 동남권을 ‘남부 해양수도권’으로 발전시키겠다며 “항만·공항·철도·도로가 이어지는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고 남해안 전체를 아우르는 해양 관광 벨트를 구축해 세계와 경쟁하는 ‘해양 경제권’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전날 경남 창원 방문에 앞서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동남권에 대한 전략적 투자 필요성을 언급한 것과 같은 결의 언급이었다. 국무회의 때 이 대통령은 해수부와 HMM 본사 부산 이전에 이은 공공기관과 기업 추가 이전 신속 추진까지 주문했다. 대통령의 이 같은 주문은 해수부 장관의 남부 해양수도권 청사진 공개로 이어졌다. 황종우 해수부 장관은 26일 동남권을 미래 해양경제를 이끌 핵심 성장거점으로 조성한다는 비전 아래 부산을 국제 해양비즈니스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부산 뿐만이 아니라 울산은 친환경 에너지 허브로, 경남은 항만물류·제조·AI가 결합된 글로벌 공급망 핵심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계획까지 포함됐다. 해수부는 이를 위해 북극항로를 선도하고 산업 대도약을 이루며 기업·사람·자본을 집적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는 4대 전략까지 제시했다. 정부 계획과 전략에 따르면 남부 해양수도권은 벌써 조성된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정부의 장밋빛 계획을 접하고 마냥 기대에 부풀어 있기엔 동남권의 처지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동안 동남권이 해양수도권으로 도약하지 못한 것은 계획이 없어서가 아니라 집행 구조가 담보되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선거용 표심 공략을 위해 쏟아진 장밋빛 계획의 좌절을 숱하게 겪어온 동남권 주민들에겐 제대로 된 집행 구조 실현이 더욱 간절하다. 계획에 따른 법 체계 마련과 권한 배분부터 서두르고 중장기 재정계획으로 못박아 지속사업이 되도록 하는 등의 실질적 조치가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선거에 휘둘리지 않는 의지와 실행력을 보일 때라야만 남부 해양수도권 조성 구호의 진실성이 담보될 수 있다.
[사설] 지역 미래에 대한 정책 검증 돋보인 부산시장 토론회
〈부산일보〉·관훈클럽 공동 주최로 26일 열린 6·3 지방선거 부산시장 후보 토론회는 사전투표 직전에 유권자에게 의미 있는 판단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간 여러 양자 토론회가 네거티브 공방으로 흐르면서 지역 미래 비전은 뒷전이 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 토론회는 같은 장소에서 후보들이 차례로 출연해 5개 언론사 패널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말꼬리 잡기나 상대 약점 부각 대신 지역 현안에 대한 진지한 질의응답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였다. 지면과 유튜브 부산일보TV를 통해 유권자들이 후보의 자질과 정책 역량을 검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토론회의 의미가 적지 않다. 이제 남은 것은 시민의 냉철한 판단과 선택이다.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 센텀캠퍼스 대강당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가 드러낸 부산 시정 평가와 미래 비전의 차이는 분명했다. 인구 감소와 산업 기반 약화, 청년 유출, 대기업 부재라는 구조적 위기의 진단에서 두 후보의 출발점이 같지만, 해법은 확연히 달랐다. 두 후보는 큰 틀에서는 ‘해양수도’와 ‘글로벌허브도시’ 구호로 맞서고 있다. 부산의 산업 전환 투자 플랫폼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전 후보는 50조 원 규모의 동남투자공사를 견인차로 삼겠다고 했고, 박 후보는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필수 불가결하다고 못 박았다. 시정 평가에 대한 인식 차이도 컸다. 전 후보는 “시민이 체감할 성과가 없다”며 시정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박 후보는 “대저대교와 수영만 요트경기장, 공동어시장 현대화 등 장기 표류 과제 상당수를 해결한 5년이었다”고 반박했다. 스타벅스 탱크 마케팅을 두고도 ‘기업도 제약받아야 한다’와 ‘자유 훼손은 조심해야 한다’는 상반된 입장을 드러냈다. 까르띠에 시계 의혹과 엘시티 매각 지연 등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물론 이날 소명으로 제기된 의혹이 말끔히 해소됐다고 할 수 없다. 두 후보는 남은 선관위 공식 토론회와 선거 유세 과정에서 미진한 부분이 풀릴 때까지 유권자들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지방선거의 본령은 지역의 미래 의제를 놓고 펼쳐지는 공론장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실현 방안이 선택받는 것이다. 지방정부를 구성할 선거가 진영의 대리전이나 중앙 정치에 종속된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지역 미래 역시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민선 시대가 30년을 넘기고 있지만 수도권 일극 체제와 지역 소멸 위기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진짜 풀뿌리 일꾼의 목소리보다 정치공학과 세력 다툼이 득세하는 풍토를 경계해야 진정한 지방 시대가 열린다. 6·3 지방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부산의 미래를 책임질 구체적 비전과 실행력을 갖춘 후보가 선출돼야만 지역의 생존을 기약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필요하다.
약물 올림픽
지난해 연말 ‘인핸스드 게임’(Enhanced Games)에 대해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인핸스드 게임은 오직 신기록만을 위해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기술 도핑은 물론 금지약물 복용마저 허용하는 대회다. 당시 글을 쓰면서 금지약물을 복용하면 과연 수많은 신기록이 쏟아질까 궁금했다. 최근 그 결과가 나왔다.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첫 인핸스드 대회가 열렸다. 결과는 비참했다. 수영 종목에서 단 하나의 비공식 세계 신기록이 나왔을 뿐이다. 그리스 출신의 크리스티안 골로메에프는 남자 자유형 50m에서 20초81로 종전 세계기록을 0.07초 앞당겼다. 그는 2009년 국제대회에서 퇴출당한 전신 수영복까지 착용하고 경기에 나서 신기록을 작성한 것이다.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번 대회에는 육상, 수영, 역도 등 종목에서 42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주최 측은 세계 기록 경신에 100만 달러, 종목 우승에 25만 달러의 파격적인 상금을 내걸고, 무수한 신기록을 기대했다. 하지만 기록 경신은 골로메에프 1명에 그쳤다.인핸스드 게임은 ‘과학의 힘을 빌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한다’는 명목으로 기획된 대회다. 이 대회 참가자들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등 기존 스포츠계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경기력 향상 약물을 자유롭게 투여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른바 ‘스테로이드 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역도의 보디 산타비(캐나다)와 웨슬리 키츠(미국) 등은 규정을 변경해 4차 시기까지 가는 편법을 동원했음에도 신기록 수립에 실패했다.오히려 금지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선수들이 도핑 선수를 꺾는 일이 속출했다. 전 육상 100m 세계 챔피언 프레드 커리(미국)는 약물 없이 9초97로 우승을 차지했다. 헌터 암스트롱(미국) 역시 도핑 경쟁자 2명을 제치고 남자 배영 50m에서 24초21로 정상에 올랐다.한 달 전,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마라톤 풀코스 2시간 벽이 케냐 출신의 사바스티안 사웨에 의해 깨졌다.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그의 대기록(1시간 59분 30초)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들이 보낸 환호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사웨의 인내와 정신력, 그리고 그가 흘린 수많은 땀방울 등에 대한 결과다.약물 없이 우승한 커리의 말이 뼈아프다. 그는 금지약물 복용자들을 향해 “그들은 훈련을 더 열심히 하거나 약을 좀 더 먹어야 할 것 같다”고 일침을 던졌다.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김승일 칼럼] 부산 오페라의 '가치 제안'
부산이 2030세계엑스포를 유치했다면 행사장인 북항 재개발지는 천지개벽 중일 것이다. 핵심부에 위치한 오페라하우스(2000석)는 기념비적인 개관 공연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각인시킨 뒤 정상급 무대 도약을 향해 순항할 것이다. 아쉽게도 엑스포 유치전에서 떨어진 탓에 북항 재개발과 오페라극장을 묶은 해양문화도시 전략은 정체기를 맞고 있다. 부산을 누르고 개최지로 선정된 사우디아라비아의 행보는 부산과 닮은 점이 많다. 박람회장에서 약 15㎞ 떨어진 디리야에는 2029년 완공을 목표로 왕립 오페라극장(2000석)이 추진되고 있다. 사우디 왕조의 발상지인 이곳을 역사와 관광, 공연예술이 어우러진 문화 메카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부산과 디리야는 모두 노르웨이 건축사무소 스뇌헤타가 설계했다. 스뇌헤타는 오슬로 오페라극장의 지붕을 바다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경사 구조로 설계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걸어 오를 수 있는 광장으로 바꿔 놓았다. 항만 재개발과 도시 브랜드 혁신의 상징이 된 오슬로 모델 이후 싱가포르와 부산 같은 해양 도시들은 오페라극장을 앞세운 워터프런트 개발에 나섰다. 부산과 디리야는 개관을 전후해 세계 정상급 극단을 초청하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부산은 105억 원을 들여 이탈리아 라 스칼라의 사흘간 공연을 추진 중이다. 사우디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를 통째로 이식하려 한다. 지난해 9월 체결된 MOU에 따르면 메트 단원들은 매년 동계 3주간 사우디에 머물면서 ‘겨울 상주 극단’으로서 무대에 오른다. 또 성악과 연출, 무대 디자인, 기술도 교육한다. 사실상 뉴욕 오페라의 복제다. 계획대로라면 엑스포 개최 기간(10~3월) 메트는 사우디에서 정규 공연 중이고 관람객들의 발길도 자연스럽게 공연장으로 향할 것이다. 그 대가로 사우디가 제시한 금액은 5년 동안 2억 달러(우리 돈 3000억 원). 코로나19 이후 재정 악화에 시달리던 뉴욕 메트에게 구세주 같은 제안이었다. 하지만 중동 정세 악화가 사우디 자금난을 초래하면서 4월 말 협상이 결렬됐다. 뉴욕 메트 없는 사우디 오페라의 안착, ‘오일 머니’ 없는 경영난 해소 대책의 향배에 전 세계 오페라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페라극장이 안고 있는 공통 고민이기 때문이다. 후원·관객·티켓 수입 감소로 인한 운영난 속에 제작극장의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재원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관객과 수입 기반을 넓히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때 뉴욕 메트가 유료 회원제 VOD를 선보인 게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국립오페라단(ENO)은 3D VR(가상현실) 앱으로 진일보했다. 평면 화면이 아닌 공간 자체를 디지털화해서 관객이 공연 중인 성악가 옆이나 무대 안쪽으로 시점을 옮겨 가며 관람할 수 있게 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오페라가 지난해 11월 중국 고전 ‘서유기’를 바탕으로 창작 오페라 ‘더 몽키 킹’을 초연한 것도 참신한 도전으로 꼽힌다. 동양 서사를 가져오고, 게임 캐릭터 손오공의 팬덤 문화를 결합한 점이 주목받았다. 특히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을 후원자로 끌어들여 매년 500만 달러(우리 돈 75억 원)씩 기부 약정한 것은 새로운 후원 모델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과거 오페라 공연의 수준은 성악가와 지휘자, 오케스트라의 기량과 해석에 좌우됐다. 최근에는 각색과 시각적 효과가 강화되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 악보를 충실히 구현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스토리의 재구성과 관객의 경험을 중시하는 연출이 극장의 차별화와 관객 유치에 기여한다. 이 고민을 마케팅 용어에 빗대면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이다. 과거의 향수에 기대며 “오페라를 살려 달라”고 해서는 안 되고, 관객과 후원자가 가치를 인정하고 지갑을 열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ENO 전 예술감독 존 베리는 5월 17일 자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흥행 수입을 넘어서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입증할 때 비로소 ‘필요한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서 ‘가치 제안’을 강조했다. 예컨대 무대 형식을 혁신하고, 디지털 등 관객 유입 경로를 다양화하며, 공연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근거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우디의 3000억 원짜리 문화 이식 프로젝트는 민주적 의사 수렴 과정이 생략되는 왕정이니 가능했다. 부산은 105억 원짜리 라 스칼라 공연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최대 4000억 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오페라극장 개관을 앞둔 시점이니 어쩌면 적절한 공론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부산시 당국이 해야 할 일은 105억 원 그 이상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과해서 부산이 라 스칼라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세계적인 제작극장으로의 도약 여부는 부산 오페라의 ‘가치 제안’에 달려 있다.
[허동윤의 비욘드 야크] 우리는 어떠한 도시를 꿈꾸는가
흔히 도시를 건물과 도로, 산업과 인구가 밀집한 물리적 공간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사실 도시는 한 사회가 어떤 삶을 꿈꾸는지를 드러내는 집단적 상상력의 결과물에 가깝다. 도시에는 시대의 욕망이 압축되어 인간이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갈망하는지가 공간의 형태로 새겨져 있다. 고대의 성벽 도시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생존의 구조였다면, 근대의 산업도시는 생산과 속도를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오늘날의 글로벌 도시는 자본과 정보, 이동과 소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편된다. 도시의 형태는 결국 인간 존재 방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거주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거주란 단순히 집을 소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시간을 축적하며 삶의 의미를 형성해 나가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도시의 구조가 시민들의 삶의 태도와 감각, 관계의 방식까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도시들이 더 이상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경쟁의 공간’으로 바뀌면서 몰개성하게 서로 닮아간다는 점이다. 도시들은 앞다투어 더 높은 빌딩을 세우고 더 화려한 야경을 만들지만,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은 점점 더 피로해진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를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삶이 생산되는 공간’으로 보았다. 경제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경험의 총체라는 의미다. 그는 시민들에게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창했다. 이는 단순히 도시를 이용할 권리를 넘어 도시의 방향과 의미를 함께 결정할 권리다. 도시를 누가 만들고 누구를 위해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민주주의의 본질과 직결된다. 인간 경험의 총체로서 도시를 고민할 때 부산은 이러한 도시의 본질적 질문과 생존 전략이 가장 첨예하게 교차하는 도시다. 부산은 한국전쟁 시기 피란수도였고, 산업화 시대에는 항만과 조선, 수출의 전진기지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지탱해 왔다. 그러나 산업구조의 변화 이후 청년 유출과 고령화, 지역경제 침체라는 구조적 위기를 겪으며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 서 있다. 그렇기에 이번 부산시장 선거에서 등장한 도시 공약들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박형준 후보와 전재수 후보의 공약이 겉으로는 다른 길을 말하는 듯하면서도 도시의 생존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접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양측 모두 AI와 데이터 산업을 부산의 미래 먹거리로 제시한다. 청년 일자리와 산업 생태계 복원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는 점도 같다. 그러나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철학에서는 명확한 시각 차이가 드러난다. 전재수 후보의 비전은 부산의 장소성과 역사성에 무게를 둔다. 부산항과 해양 산업, 해사법원 설립, 부울경 연합 같은 구상은 부산을 ‘바다를 중심으로 한 문명권’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여기에 해양 AI 데이터센터와 자율운항 선박, 해상풍력 같은 미래 산업을 접목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도시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기억과 자산 위에서 미래를 만들어가려는 ‘축적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박형준 후보는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가덕도신공항, 산업은행 이전, AI 및 데이터 기술 생태계 구축 등을 통해 부산을 세계 도시 네트워크 속에서 경쟁 가능한 플랫폼으로 바꾸려 한다. 그의 비전은 부산을 글로벌 자본과 인재, 기술의 흐름 속으로 과감하게 재배치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도시의 체질 자체를 바꾸어 새로운 성장 구조를 만들려는 ‘전환의 전략’에 가깝다. 건축과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두 가지 시선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도시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가능성이 어떻게 공존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도시들이 추구하는 ‘스마트시티’의 본질 역시 기술이라는 효율적 수단을 통해 시민의 인간적인 삶과 공동체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그러나 선거의 진정한 가치는 승패가 갈리는 그날 밤이 아니라, 그 이후에 시작된다. 선거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비전이 충돌할 수밖에 없지만, 선거 이후의 정치는 결국 그 비전들을 하나의 도시 미래로 통합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앞으로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어떤 시간을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도시란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내는 가장 거대한 삶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경계를 넘어선 명곡,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이 소년은 천재다. 그의 재능은 모차르트 수준이다.” 푸치니가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듣고서 한 말이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도, 지휘자 브루노 발터도 그를 “의심할 수 없는 음악적 천재”로 평가했다. 에리히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 1897~1957)는 1897년 5월 29일 체코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작곡했다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눈사람’이나 13세에 작곡한 피아노 3중주 작품 1번을 들어보면 음악 거장들의 평가에 수긍이 간다. 20대 초반에 발표한 오페라 ‘죽음의 도시’는 그의 명성을 확실히 알려준 대표작이 되었다. 1930년대에 나치가 집권하자 유대인인 코른골트는 미국 할리우드로 갔고, 워너 브러더스 영화사의 요청으로 영화음악 작곡을 시작했다. 1936년에 만든 ‘앤서니 애드버스’의 영화음악으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이어 ‘로빈 후드의 모험’으로 두 번째 작곡상을 받았다. 맥스 슈타이너, 드미트리 티옴킨, 알프레드 뉴먼 등으로 이어지는 할리우드 초기 영화음악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작성한 작곡가가 코른골트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독일 후기 낭만주의의 전통을 사랑한 작곡가였다. “영감, 형식, 선율, 아름다움을 포기한 무조성과 불협화음은 음악 예술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현대음악의 실험장인 유럽을 떠나 할리우드에 몸을 담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기도 하다. 코른골트는 말했다. “언젠가 영화는 오페라나 교향곡과 동등한 음악 형식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음악은 무대를 위한 것이든, 콘서트홀을 위한 것이든, 영화관을 위한 것이든 결국 음악이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심포니 스타일의 영화음악을 확립한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가장 풍성한 영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클래식 곡을 쓴 사람이기도 하다. 평론가들이 “현대 블록버스터 영화음악의 DNA는 코른골트에게서 시작된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어보면 이유를 알 것 같다. 코른골트의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는 총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악장의 주제로 이전에 작곡한 영화음악 선율을 사용했다. 1악장 주제는 영화 ‘어나더 돈’(Another Dawn)과 ‘후아레즈’(Juarez)에서 가져왔다. 2악장 로맨스의 주제 선율은 ‘앤서니 애드버스’(Anthony Adverse)의 러브 테마를 사용했고, 3악장은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의 주제 선율에서 따왔다. 초연의 협연자는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야샤 하이페츠였다. ‘할리우드 협주곡’이라고 깎아내린 사람도 있었지만, 클래식의 형식과 영화적 서사를 완벽하게 가로질렀다는 점 때문에 현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걸작이 되었다.
[데스크 칼럼] 자본 탈출
전문직에 종사하는 동생 A가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잘 지내?” “응.” “아직 부산에 살고 있나 해서.” “당연하지. 부산일보 다니는데 어딜 가.” 몇 번의 문자가 더 오간 뒤, A는 해운대 마린시티 아파트를 팔고 서울 아파트를 샀다고 했다. “지금 안 갈아타면, 진짜 서울 집 못 살 거 같아서. 좀 서둘렀어.” 부산에 살고 있냐는 말이, 몸이 부산에 있느냐를 묻는 말이 아니었다. 몸과 영혼을 나누듯, 사는 집과 자본을 나눈다면 너의 자본이 부산에 아직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영혼과도 같은’ 자본을 ‘상급지’ 서울로 옮긴 분투기를 듣고서야, ‘아직’ 부산에 살고 있느냐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A는 주식에 ‘젬병’이었던 기자에게 미국 주식 시장이 꽤 괜찮은 투자처란 걸 처음 알려줄 때처럼, 최대한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돌려 말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A의 자본은 ‘유출’이 아니라 부산을 ‘탈출’했다. ‘돈깨나 있는’ 시니어층 사이에서도 건물을 팔고, 회사를 팔고 자식들 있는 서울에 집을 사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수십 억 건물을 부산에 놔둬 봐야 오르지도 않고 공실과 임대 관리로 골치만 아픈데 서울 ‘똘똘한 한 채’를 사 눌러 앉으면 걱정도 사라지고, 자식 손주도 더 자주 볼 수 있으니 ‘돈 싸들고’ 서울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서울에 자리 잡은 자녀들이 가업을 승계할 마음이 없으니, 회사를 매각한 뒤 자금을 챙겨, 자산 가치가 보장되는 서울로 향한다고 했다. 지역에서 창출된 부는 더 이상 지역 재투자나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수도권 자본 시장으로, 무서운 속도로 탈출하고 있다. ‘청년’뿐 아니라 ‘자본’도 서울로 빨려 들어가면서 지역은행들은 지역에서 빌려줄 돈이 모자라 수도권에서 고리로 자금을 끌어오기도 한다. 이처럼 곳곳에서 자본 탈출이 일상화되고 있고, 이를 다시 끌어오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지방의 자본 탈출은 지역 경기 침체와 투자 감소, 다시 인구 유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지탱한다. 자본이 스스로의 증식을 위해 더 넓고 비옥한 땅으로 떠나는 것이 자본주의 생리라지만, 자본이 떠난 지역의 경제는 쪼그라들고, 일자리는 더 사라지게 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자본 수익률(r)이 경제 성장률(g)을 앞설 때 자산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했다. 성장률이 하락하면, 자연스럽게 소득보다 과거에 축적했던 부가 더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매년 성실히 일해 번 근로 소득과 사업 소득은 서울에 사둔 아파트 한 채 가격 상승분을 절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이 됐다. 부산의 산업 성장이 정체된 사이, 서울의 부동산과 주식 등 자본 자산의 가치는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새로 생겨난 ‘반도체 계급’과 ‘돈 복사기’로 불리는 삼전닉스 등의 주식 호황은 수도권으로 자본을 더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A가 “지금 안 갈아타면 영영 못 갈 것 같다”고 서두른 이유도 바로 이 r과 g의 격차를 몸소 체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웬만한 자본 수익률쯤은 가뿐히 뛰어넘을 것 같은 전문직 A의 소득으로도 r과 g의 격차를 체감하고 서두를 정도면, 다른 직업군은 말해 무엇하랴. 실제로 지난해 상위 20%의 순자산이 7.9% 늘어나는 동안 하위 20%는 오히려 4.9% 감소하며 자산 격차가 7.82배까지 벌어졌고,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순자산 지니계수는 역대 최악인 0.625를 기록했다. 한국은 OECD 주요 선진국 18개국 중 5번째로 불평등한 나라로 꼽힌다. 한국은행 이슈노트에 따르면 지역 격차의 확대는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모 자산 4분위(상위 25%)의 자녀는 1분위(하위 25%) 자녀에 비해 수도권 이주 확률이 43%포인트 높고,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 이주를 통한 계층 상승의 기회는 부모 경제력이 뒷받침된 자녀들에게만 집중된다. 자본 탈출은 수도권에서의 자녀 계급 상승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 될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가 결국 경제 시스템 전체의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경고했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교육 의욕, 노동 의욕이 떨어져 인적 자본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자본에 대고 애향심을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강제로 발을 묶어둘 수도 없다. 그보다 자본이 지역에 남는 편이 더 합리적일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세금이 가볍고, 유동성이 좋으며, 가격 상승 기대가 클수록 자본은 부산에 남을 수밖에 없다. 6·3선거에서 부산시민의 선택을 받을 시장은 부산을 청년, 기업이 머물고 싶은 도시뿐 아니라 자본이 머물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중앙로365] 선거의 바로미터, 여론조사와 그 규제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기관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낮은 응답률과 표본의 대표성 문제 등 다양한 지적이 일고 있다. 여론조사는 단순한 통계자료를 넘어 유권자의 판단과 선거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적지 않다. 이에 공직선거법은 여론조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를 두고 있으나, 여전히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유권자들은 본인의 동의 없이 휴대전화로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는 것에 대한 불안과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공직선거법상 허용된 ‘가상번호 제도’에 따른 것이다. 가상번호는 실제 휴대전화 번호를 직접 제공하지 않고 비식별화된 번호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통신사·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론조사기관 간 다층적 전달체계를 전제로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공직선거법 제108조의2는 선거여론조사기관이 공표 또는 보도를 목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거여론조사기관은 관할 심의위원회를 거쳐 이동통신사에 가상번호를 요청할 수 있다. 이렇게 가상번호 제공의 법적 근거는 공직선거법에 마련되어 있으나, 개인정보보호법과의 관계나 정보관리 범위에 대한 세부 기준은 미비한 실정이다. 또한 공직선거법에 선거 목적 외 사용 금지, 제3자 제공 금지, 조사 종료 후 즉시 폐기, 제공거부권 고지 등의 보호장치가 존재하지만, 향후 정보제공 절차와 관리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공직선거법상 여론조사에 대한 규제는 어떠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을까. 크게는 세 가지 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기준 마련과 심의, 시정명령 등의 감독 체계이다. 둘째,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기관에 대한 등록 및 신고 제도이다. 셋째, 왜곡된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 금지와 선거 직전 공표 제한 등 조사 내용과 공표 방식에 관한 규제이다.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여론조사를 수행한 기관의 적법성과 공표 방식을 둘러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108조 제3항은 여론조사기관이나 방송사·정당이 아닌 자가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하려는 경우 조사 개시일 전 2일까지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과 관련하여 자주 문제되는 사례로는 인터넷 카페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정치 성향 설문조사가 있다. 단순한 의견조사처럼 보이더라도,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로 판단될 경우 법 위반이 될 수 있다. 또한 공직선거법 제96조는 누구든지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하여 공표하거나 보도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또한 방송사나 신문사는 객관적 자료 없이 선거 결과를 단정적으로 예측하는 보도를 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선거 직전에는 이른바 ‘깜깜이 기간’이라 불리는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제도가 적용된다. 공직선거법 제108조 제1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선거일 전 6일부터 투표 마감 시각까지 정당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의 결과를 공표하거나 보도할 수 없다. 이 제도는 막판 여론조사가 부동층의 판단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다. 실제로 여론조사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승패 프레임을 형성한다. 이는 우세한 후보에게 표가 쏠리는 ‘밴드왜건 효과’를 유발하기도 하고, 반대로 열세 후보에게 동정·응원 심리가 작동하는 ‘언더독 효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여론조사는 단순한 통계자료가 아니라 유권자의 심리와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변수라는 점에서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의 실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해당 기간동안 유권자의 알권리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거나 제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이에 대한 폐지 의견을 낸 바 있다. 현행법은 여론조사에 대하여 이미 상당한 수준의 규제를 마련하고 있으며,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많은 사례에 대한 조사 및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법에서 형식적 투명성을 담보하고 있음에도, 유권자가 체감하는 정보 환경은 아직 혼란스럽다. 선거의 공정성, 정보의 왜곡 방지와 함께 유권자의 알권리 및 개인정보보호, 나아가 여론조사에 노출되지 않을 의사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여론조사의 기능과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권자의 권리를 보다 균형있게 보장할 수 있는 세심한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프런티어] ‘될 때까지’ 투자해 부산형 유니콘으로 키웁니다
부산에서 만난 한 창업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투자를 받으려면 결국 서울로 가야 하더라고요.” 좋은 기술과 시장, 팀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단계로 넘어갈 다리가 부족했다.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것은 한 기업의 하소연이 아니라 지역 창업 생태계가 마주한 질문이다. 우리는 창업가를 잘 키우고 있는가? 아니, 더 정확히 묻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운 뒤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린아이에게는 격려와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는 자라서 언젠가 사회로 나가야 한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예비 창업자와 초기 기업 보육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려면 보육을 넘어서야 한다. 넘어선다는 것은,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성장하고, 지역 인재를 채용하고, 지역에 뿌리내리는 일이다. 그동안 지역 창업 정책은 아이를 돌보는 일에 익숙했다. 창업 교육을 하고, 사무실을 제공하고, 시제품 제작을 도왔다. 그러나 기업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못하면 보육은 출발선에서 끝난다. 창업 기업도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더 큰 시장과 인재, 과감한 자본을 만나야 한다. 나는 창업 보육의 끝판왕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투자는 “시장이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는 신호”다. 창업가가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다리다. 부산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좋은 기술과 창업가는 있지만, 성장의 순간마다 서울을 바라보게 된다. 투자자와 고객, 멘토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창업가가 부산에 남아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부산에서 창업하고, 투자받고, 글로벌로 진출하는 길을 충분히 열고 있는가. 저수지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퍼지듯, 지역 창업 생태계에도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좋은 창업자·멘토·투자사가 부산에서 만나야 한다. 멘토는 길을 함께 찾는 사람이어야 하고, 투자자는 단순히 돈을 대는 사람이 아닌, 기업의 가능성을 세상에 증명해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만남이 많아질수록 창업가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얻는다. 부산기술창업투자원이 하려는 일도 바로 그 물결을 만드는 일이다. 창업-스케일업-글로벌 진출까지 끊김이 없는 성장 사다리를 놓고, 창업가가 필요한 순간에 사람과 자본을 만나게 하는 일이다. ‘부기테크’ 같은 IR 채널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부산에 좋은 스타트업이 많다고만 해서는 부족하다. 보여줘야 한다. 보여야 연결되고, 투자와 성장으로 이어진다. 왜 스케일업하는 스타트업을 키워야 할까? 답은 일자리에 있다. 피지컬 로봇 자동화가 확산하면 AI, 대기업의 정형화된 일자리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다르다. 초기 스타트업은 정해진 일만 하는 사람이 드물다. 한 사람이 기획·영업·기술을 함께 맡는다.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고객이 늘수록 다양한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의 성장 자체가 일자리다. 그렇다면 지역은 일자리를 밖에서 기다릴 것인가, 스스로 만들어낼 것인가? 일본 구마모토가 TSMC 유치를 계기로 지역 산업과 인재 흐름을 바꾸고 있듯, 지역 혁신에는 강한 앵커가 필요하다. 그러나 부산의 앵커를 외부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부산에서 태어난 스타트업을 키워 대기업으로 만드는 일, 그것이 부산의 미래 혁신 전략이다. 이제는 창업 숫자보다 성장의 깊이를 물어야 한다. 지역 펀드를 키우고 투자사가 부산에 머물게 하고, 대학과 병원, 항만, 공공기관이 스타트업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시민도 창업을 도시의 미래로 받아들여야 한다. 창업은 일부만의 도전이 아니라, 지역 일자리와 산업을 바꾸는 도시의 과제다. 어린아이를 보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도시의 미래는 고등학생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부산 창업 정책은 보호에서 성장으로, 지원에서 투자로, 행사에서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혼자 가면 길이 되고, 같이 가면 역사가 된다”라고 했다. 창업가 혼자서는 길을 만들 수 없다. 멘토와 투자자, 대학·기업·시민이 응원할 때 그 길은 도시의 역사가 된다. 창업가가 서울로 떠나지 않아도 되는 도시. 부산에서 자라고, 투자받고, 세계로 나가는 도시. 부산은 “될 때까지” 키우는 도시가 되겠다.
부울경 시도지사 '안갯속' … 여야 "사전투표율 높여라" [내일부터 이틀간 사전투표]
"노동환경 개선을" 리노공업 노조 결성
기준금리 동결… 7월 인상 유력
골목 상권엔 힘·취약 계층엔 온기 '일석이조' [골목시장, 다시 장날]
‘샤이 보수’ 등장 가능성에 촉각 곤두세운 부산 정치권…여야 셈법 엇갈려
[영상] 하정우·박민식·한동훈 유일한 토론, 네거티브에 잠식
전재수 '북항 돔구장·빈집 뱅크’ 박형준 'K팝 아레나·동네 공원' [블라인드 정책 오디션]
[사건의 재구성] 세입자엔 전세·주인엔 월세 이중 계약서로 보증금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