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산시 내년 예산 18조 원… 해양 허브도시 뒷받침 되나
17조 9330억 원 규모로 편성된 부산시 내년 예산안이 부산시의회에 제출됐다. 이 같은 예산 규모는 지난해 대비 7.5%가 증액된 것으로 정부 내년 예산안 증액 규모 8.1%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역대 부산시 예산 증액 규모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편이다. 부산시는 내년 예산안 편성 내용에 대해 민선 8기 도시 목표 ‘시민행복도시와 글로벌 허브도시’를 실현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시는 내년 예산안에서 소위 복지·안전과 관련한 부분에 가장 중점을 뒀다. 시민행복도시라는 구호에 걸맞은 예산 편성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글로벌 해양산업 허브도시 기반 구축과 관련한 예산은 기대를 밑돌았다는 평가다. 내년 예산안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따뜻한 부산형 함께 돌봄체계 실현’ 분야다. 올해보다 4618억 원이 늘어난 6조 6111억 원이 편성됐다. 특히 부산형 통합돌봄 사업이라 불리는 함께돌봄 사업의 수혜자 범위를 대폭 늘리는 등 복지 분야의 지원 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후 공동주택 취약계층에 대한 아크차단기 설치 비용 지원 신설 등 올해 잇따라 발생한 사고 대비책 마련에도 공을 들인 흔적이 돋보인다. 부산지역 외국인들을 이방인으로 밀어내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발빠르게 외국 국적 영유아에 대한 보육료 지원 예산을 마련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같은 적극적 예산 편성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해양산업 허브도시 기반 구축’ 분야 예산 편성에 있어서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시가 해당 분야에 편성한 예산 규모는 1066억 원으로 규모만 놓고 보면 올해보다 309억 원이 늘어났다. 하지만 여기에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따른 직원 관사 지원 사업비 311억 원이 포함돼 있어 결과적으로는 다른 부분 예산이 줄어든 셈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해수부 부산 이전 원년을 맞아 내년부터 해양산업 허브도시 기반 구축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부산의 입장을 감안하면 예산 규모도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부산시 전체 예산의 1%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기에 그렇다. 부산시의 내년 예산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방안에 불과하다. 부산시의회에 예산안이 넘어간 만큼 시의회의 꼼꼼한 심사와 계수조정이 뒤따라야 한다. 해수부 부산 이전 관련 특별법마저 최근에야 확정된 만큼 해수부 이전 이후의 시의 정책 방향도 아직 정해지지 못한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글로벌 허브도시가 부산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미래라고 한다면 부산시는 예산 편성에서부터 이런 미래를 담보할 의지를 더 보였어야 한다. 정부 부처별 내년 예산배정 규모에서 해수부가 1% 수준에 불과하다며 비판한 게 지역 여론이었다. 글로벌 허브도시 기반 관련 시 예산이 1%에도 못 미친다면 낯뜨겁지 않겠는가.
[사설] '깜깜이 외주화' 방지할 '건설 이력 확인제' 의무화해야
9명의 사상·실종자를 낸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붕괴 사고는 고질적인 ‘위험의 외주화’와 ‘주먹구구식 일용직 채용’이라는 후진적 관행이 결합해 빚은 참사라는 분석이다. 이번 공사는 발주처인 동서발전이 HJ중공업에 시공을 맡기고, HJ중공업이 이를 발파·철거 하청업체인 ‘코리아카코’에 하도급한 다단계 구조로 진행됐다. 붕괴 사고는 소량의 화약으로 약 60m 높이의 보일러 타워를 넘어뜨리기 위해 철골 기둥 일부를 잘라내는 ‘사전 취약화 작업’ 중 발생했다. 이 작업은 40년 넘은 구조물을 정교한 계산하에 해체하는 고도의 숙련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현장 투입 인력은 전문성과 거리가 멀어 사고 위험성을 키운 셈이다. 다단계 하청 구조는 고질적인 안전 사각지대를 만든다. 하청업체는 원가 절감 압박 속에서 숙련 인력 확보나 충분한 안전 교육을 하기 어렵다. 이번 사고로 매몰된 7명은 모두 코리아카코 소속으로 정규직은 1명뿐이고, 나머지 6명은 초보 일용직에 가까운 계약직이라고 한다. 이처럼 전문 현장에 비숙련 인력이 투입되는 배경에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따른 비용 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하청업체는 일당 35만 원짜리 작업에 25만~30만 원의 숙련공 대신, 18만 원짜리 초보 인력을 투입해 차액을 남긴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에 대해 비용 절감을 우선한 죽음의 외주화에 일용직 노동자들만 희생양이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으로 산업 현장에서 안전을 수없이 강조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인력 수급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위험한 작업을 다루는 현장에서 ‘깜깜이 채용’ 방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이력서도 없이 인력사무소를 통해 채용된 작업자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현장에 투입된다. 건설 현장에서는 소장이나 반장이 이력서 검증 없이 인맥으로 사람을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심지어 개인적 친분이 있으면 기능이 없는 사람을 기능공으로 쓴다니 어이가 없다. 이처럼 전문성 없는 단기 인력에 위험한 작업을 맡기는 구조에서는 사고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깜깜이 외주화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건설 노동자 이력 확인제’를 도입해야 한다. 채용 때 4대 보험 득실 확인을 의무화해 실제 경력을 검증하는 것이다. 기능공, 조공 여부를 구분해 검증된 숙련공 투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투명한 고용정보 체계를 확립하고 근로자 숙련도를 판단할 수 있어야 산업 현장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호주의 제도를 참고해 2021년 5월부터 ‘건설근로자 기능등급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플랜트건설 현장 등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깜깜이 외주화를 해결하고, 일용직 노동자의 비극적 죽음을 막을 제도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날 때마다 인재라는 말만 반복될 것이다.
[사설] 검사장 집단 반발… 검란으로 비화하는 '대장동 항소 포기'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 결정을 둘러싸고 검찰 내부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김창진 부산지검장을 비롯한 전국 검사장 18명은 연명으로 항소 포기에 대해 10일 검찰 내부망에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공동 입장문을 올렸다. 대검 수뇌부를 향한 집단 성명이다. 항소 의견을 낸 서울중앙지검장은 권한대행의 포기 지시에 사의를 표했고, 사건을 맡았던 일선 검사들도 “민간업자들에게 수천억 원대 범죄 수익을 안긴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선 “이례적 사태가 아니라 전면적 내부 충돌”이란 말이 나온다. 이번 사태가 검란(檢亂)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였다. 서울중앙지검은 분명 항소 의견을 냈지만, 대검이 이를 뒤집었다. 이로써 2심에서는 1심보다 형량을 높일 수 없게 됐다. 1심이 인정한 추징액 상한은 473억 원에 불과하다. 수천억 원대 부정 이익을 확인한 검찰로선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권한대행은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 했고, 법무부 장관은 “항소 안 해도 문제없다”며 “대검에 신중히 판단하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관이 개별 사건에 의견을 낸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최종 결정의 주체와 법리 근거가 불분명해 외압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가 되고 있다. 정치권의 공방도 거세다. 야당은 “국민 상식을 거스른 결정”이라며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여당은 검찰의 반발을 “정치 검사들의 쿠데타”로 규정하며 검찰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정치가 아니다. 핵심은 검찰이 외압 없이 법리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독립성이다. 검찰청 폐지 논의와 수사권 완전 박탈 등 제도 개편 논의가 병행되는 시점이어서 이번 사태의 휘발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항소 포기가 정치적 판단이었다면 명백한 권한 남용이며, 직권 결정이라면 월권이다. 법무부 장관이 개입했다면 불법 지휘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검찰이 정치 권력의 영향 아래 놓이는 순간 법치의 근간은 무너진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검찰의 수사·공소권이 권력 의중에 따라 좌우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기에 내부 반발이 터져 나온 것이다. 검찰총장 대행의 직권 남용 논란, 법무부의 어정쩡한 해명, 대통령실의 침묵은 오히려 사법 신뢰를 더 허물고 있다. 정부는 이 사태를 경각심을 갖고 엄중히 바라봐야 한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진실 규명만이 유일한 출구다. 누가, 어떤 이유로 항소 포기를 지시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의 신뢰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또다시 정치적 판단이 수사에 개입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밀물썰물] 바티칸 '스위스 근위병'
근위병이라 하면 대개 영국 버킹엄궁을 떠올릴 것이다. 정제된 교대식과 붉은 군복, 커다란 털모자는 영국을 가보지 않은 사람도 쉽게 알아볼 만큼 상징적이다. 그러나 이들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화려한 복장의 근위병이 있다. 바로 바티칸 교황청의 근위병이다. 파랑·노랑·빨강 줄무늬가 어우러진 르네상스풍 제복과 붉은 타조 깃털이 달린 투구.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그들의 모습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마치 무대의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군대의 병사들이다.교황청 근위대에 ‘스위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의외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사는 15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황 율리오 2세가 150명의 스위스 용병을 불러 창설한 것이 시초다. 스위스인만으로 구성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527년 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 시절 신성로마제국 군대가 로마를 침공했을 때 이들은 끝까지 남아 교황을 지켰다. 189명 중 147명이 전사했음에도 교황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그들의 충성은 이후 스위스 출신만 근위병으로 선발하는 전통으로 이어졌다.교황청 근위대는 오늘날에도 소수 정예로 운영된다. 이들의 주 임무는 교황청 각종 의식과 행사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의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교황 경호는 물론, 귀빈 방문 시 의전과 사도좌 공석 시 추기경단 안전까지 책임진다. 근위병이 되려면 스위스 국적 19~30세 미혼 남성 가톨릭 신자로 키 174cm 이상, 군 복무와 고등교육 이수, 신앙과 체력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그들의 화려한 제복은 충성과 자부심, 500여 년의 역사를 상징하는데, 파랑과 노랑은 율리오 2세 가문 델라 로베레, 빨강은 메디치 가문 문장에서 유래했다.최근 바티칸 스위스 근위대가 유대인 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외신에 따르면 한 근위병이 성 베드로 광장 입구에서 유대계 여성 두 명을 향해 침을 뱉는 시늉을 한 것이 발단이다. 조사 결과 교황청은 “반유대주의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요소가 있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 교황 레오 14세는 1965년 종교 간 화합을 천명한 ‘노스트라 아에타테’ 선언 60주년을 맞아 방문객을 접견 중이었다. 그 선언을 기리는 시점에 교황청 한복판에서 반유대적 행위가 벌어진 셈이다. 근위병이 지켜야 할 것은 화려한 제복이나 교황의 신변 보호만이 아니다. 인간 존엄과 더불어 교황이 상징하는 ‘사랑과 관용’의 정신이다. 500년 전통이 다시 그 정신으로 빛나길.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데스크 칼럼] 부산에는 '이재모 피자'가 있다
지난 추석 연휴 특집으로 방송된 JTBC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는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다. 우선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고, 방송 시청률도 8.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실 그보다 지금은 셰프로 더 유명해진 웹툰 작가 김풍 씨의 호방한 입담에 놀랐다. 김 씨가 이날 방송에서 “부산에 가면 유명한 피자집인 ‘이재모 피자’가 있다”며 “‘이재명 피자’를 만들겠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현직 대통령 이름을 딴 피자를 만들어도 되는지, 특정 브랜드 피자를 그렇게 대놓고 선전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이재모 피자는 더 유명해지고 말았다. 이재모 피자를 맛보려면 줄 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온라인 식당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에서 가장 웨이팅이 많았던 식당 1~4위는 이재모 피자 본점, 부산역점, 서면 본관, 별관 순이었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피자를 먹으려면 매장 밖에서 기본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한다. 지난 8월 16일에는 본점 웨이팅 줄이 600번대까지 늘어서 5시간 이상을 대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부산역점에는 몇 년 전부터 캐리어를 끌고 온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이제는 부산역을 출발하는 승객들이 이재모 피자가 든 빨간색 박스를 들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대전에 성심당이 있다면 부산에는 이재모 피자가 있다’라는 말도 어느새 당연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명색이 맛집 담당 기자이지만 줄 서는 걸 싫어하는 천성 때문에 여태 구경도 못 하다 얼마 전에 제주도에 가서 이재모 피자를 어렵게 구해 먹어본 일이 있었다. 분명히 재료도 훌륭하고 맛도 좋았지만 그래 봤자 피자 아닌가. 음식 전문가들은 이재모 피자의 인기 이유를 ‘희소성’과 ‘가성비’로 풀이한다. 이재모 피자는 제주를 제외하면 육지에서는 부산에서만 먹을 수 있고, 충실한 재료와 합리적인 가격 때문에 인기라는 것이다. 뭔가 다른 비결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검색하다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이재모 피자는 그동안 툭하면 기부를 해 온 것이다. 부산에 있는 점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해 개점한 제주점마저 취약계층 의료비와 생계비로 벌써 2000만 원을 해당 지역에 기탁했다. 게다가 남들 모르게 훈장을 받는 일까지 있었다. 지난 9월 청년과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공로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에프지케이 김익태 대표가 이재모 피자의 대표다. 알고 보니 이재모는 김 대표 어머니 이름이었다. 더 찾아보니 2023년 부산역점 개점에 필요한 인력 채용 행사 때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애초에는 취약계층 대상으로 6명을 뽑을 예정이었지만, 면접을 본 15명 전원이 채용됐다. 이들이 삶에 대한 희망을 품는 데 무엇보다 일자리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김 대표의 생각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반석나라 장학회 이사장과 대안학교 반디기독초등학교 이사장도 맡고 있었다. 점점 흥미가 생겨 파고들다 보니 반석나라 장학회는 단발적인 학비 지원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게 다른 곳과 차이점이었다.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후에는 전문 교육을 이수한 멘토와 연결되어 학업·진로 등 삶의 전반을 함께 점검하고 설계할 기회가 제공된다. 성적이나 배경과 무관하게 뚜렷한 자기 인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는 ‘비전장학금’ 제도도 신선했다. 초등 과정 대안학교인 반디기독초등학교는 좋은 교육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설립했다. 파도 파도 미담이 나온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김 대표는 2012년부터 사비를 털어 동주여고 학생을 대상으로 유명 강사 초청 강연회인 동주비전스쿨을 일 년에 수차례 열고 있다. 덕분에 그동안 가수 션, 나태주 시인, 송길영, 고도원 씨 등 수많은 유명 인사가 동주여고를 다녀갔다. “소수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보다 보다 많은 학생이 훌륭한 사람으로부터 좋은 말을 듣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 동주비전스쿨을 열게 됐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반석나라 장학회 홈페이지에는 지금도 장학회 이사장의 사진 한 장 걸려 있지 않다. 김 대표는 이사장 인사말에서 “바른 인성과 분명한 비전을 가진 청년들이 미래 사회의 반석이 되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들이 다시 누군가의 반석이 되어주는 선순환의 길을 만드는 것. 바로 이것이 반석나라 장학회가 추구하는 가치”라며 “저는 ‘이재모 피자’라는 이름보다 다음 세대를 든든히 세우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라고 적었다. 김 대표는 2014년 〈부산일보〉와의 인터뷰를 처음이자 끝으로 언론과의 접촉은 일절 하지 않고 있지만 조금도 섭섭하지 않다. 이재모 피자에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었다. 줄 서서 기다리기는 싫어도, 앞으로 피자는 이재모 피자만 먹을 생각이다.
[중앙로365] 디지털 무역금융, 부산이 표준을 만들 때다
대한민국 수출의 절반 이상이 부산항을 거쳐 간다. 2024년 2440만TEU를 처리하며 세계 7위 항만 자리를 지켰다. 부산에서 실은 컨테이너가 베트남 하노이까지 가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 정작 이상한 건 그다음이다. 물건값이 수출업체 계좌에 도착하려면 일주일이 걸린다. 부산항의 크레인은 5G로 제어되고, 선박 스케줄은 AI가 최적화한다. 반면 송금은 여전히 은행 영업시간을 기다리고, 서류 확인에 며칠이 걸린다. 물류는 이미 실시간으로 움직이는데, 금융은 여전히 복수의 중개 은행을 거치는 절차와 영업시간 제약에 묶여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화물의 이동은 센서와 GPS가 실시간으로 추적하지만, 돈의 이동은 여전히 사람의 확인과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중개 은행을 경유하고, 환전 수수료를 내며, 영업일 기준으로 처리된다. 그 사이 기업 자금은 공중에 떠 있고, 이자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 몫이 된다. 특히 중소 수출기업에 이 일주일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수출 대금이 묶여 있는 동안 운전자금 대출 이자는 계속 나가고, 다음 발주를 위한 원자재 구매는 미뤄진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소 수출기업의 평균 운전자금 회전 기간은 90일 안팎이다. 결제가 일주일만 빨라져도 자금 효율은 8% 가까이 개선된다. 블록체인과 스테이블코인은 이 구조를 바꾼다. 블록체인은 거래 기록을 위변조할 수 없게 만들어 신뢰 검증을 사람이 아닌 알고리즘에 맡긴다.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대금이 집행되고,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기록된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가치에 1대1로 연동된 디지털 화폐다. 비트코인처럼 가격이 들썩이지 않으면서도 인터넷만 있으면 즉시 송금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무역 결제는 단순한 효율성 개선이 아니다. 전신환에서 스위프트로, 다시 블록체인 기반 즉시결제로 이어지는 국제결제 시스템의 근본적 전환이다. 이미 글로벌 금융 기업들은 변화에 나섰다. 페이팔은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했고, JP모건 같은 대형 은행들도 디지털자산 기반 결제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스템 통합을 추진 중이다. 무역 결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부산항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까. 부산항에서 화물이 선적되는 순간 스마트 계약이 작동해 계약금 일부가 자동 송금된다. 배가 베트남 항구에 도착하고 전자선하증권이 확인되면 잔금이 정산된다. 결제 시간은 ‘수일’에서 ‘수분’으로 줄고, 중개 은행 수수료와 환전 비용을 합친 총 거래비용은 거래액의 3~5%에서 1% 이하로 줄어들 수 있다. 이런 변화는 금융기관의 역할도 근본적으로 바꾼다. 신용장 발급으로 거래를 보증하던 전통적 역할은 스마트 계약이 대신한다. 은행은 이제 거래 중개자가 아닌, 규제 준수와 리스크 관리 서비스 제공자로 전환된다. 자금세탁 방지 모니터링, 제재 대상 검증, 무역금융 컨설팅이 새로운 수익원이 된다. 부산은 이 변화를 선도할 모든 조건을 갖췄다. 2019년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이후 금융·물류·공공 서비스 분야에서 실증을 진행하며 블록체인 기술과 산업 간 융합을 준비해 왔다. 부산의 진짜 강점은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중국과 일본 중간에 위치한 부산항은 동북아 허브항만으로서 중국 동북지역과 일본 서안 항만들을 연결한다. 환적화물이 전체 물동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환적은 여러 국가 간 복잡한 결제가 동시에 발생하는 거래다. 중국 수출업체가 일본 수입업체에 파는 화물이 부산을 거쳐 가면서, 한국 물류사와 선사에 각각 대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다자간 결제를 스테이블코인으로 처리하면 결제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블록체인 규제특구의 실증 경험과 동북아 허브라는 지정학적 이점이 결합하면, 부산항은 물류·금융·데이터가 통합된 디지털 해양 허브로 진화할 수 있다. 글로벌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싱가포르는 2023년 세계 최초로 스테이블코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도입해 승인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가했다. 두바이는 2024년 중앙은행 라이선스 제도를 완성하며 리플과 테더 같은 글로벌 기업을 유치했다. 홍콩도 올해 8월 스테이블코인 조례를 시행하며 앤트그룹 같은 중국 빅테크가 발행을 준비 중이다. 누가 먼저 규제와 인프라를 완성하느냐에 따라 아시아 디지털 무역금융의 표준이 결정된다. 부산이 그 표준을 선점한다면, 아시아 물류 중심지이자 디지털 금융 중심지라는 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블록체인이 물류를 추적하고 스테이블코인이 결제를 실행하며 스마트 계약이 거래를 검증하는 구조. 이것이 완성되면 부산항은 아시아 디지털 무역금융의 거점이 된다. 기술은 준비됐다. 이제 실증을 넘어 실행으로 옮겨야 할 때다.
[시론] 침례병원 공공병원화를 다시 생각한다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침례병원이 폐업한 지 8년의 세월이 지났다. 옛 침례병원을 활용해 취약한 부산의 공공의료를 확대하는 것은 민선 7·8기 부산시장의 대표적 공약이었다. 구체적으로 부산을 서부산권, 중부산권, 동부산권으로 나누고, 서부산권은 서부산의료원 건립, 중부산권은 부산의료원, 동부산권은 침례병원 공공병원화를 통해 부산 시민을 위한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애초 부산의료원 금정분원, 국립병원, 보험자병원 등 다양하게 검토되었던 침례병원 공공병원화 방안은 보험자병원으로 방향을 잡았다. 부산시의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건강보험 일산병원과 연계하면 의료 인력 채용이 용이한 점 등이 주된 이유였다. 이를 위하여 부산시는 예산 499억 원을 투입하여 침례병원 부지를 확보하였다. 하지만, 보험자병원의 열쇠를 쥐고 있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는 회의적이었다. 특히, 건정심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을 보험자병원 확충에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왜 부산에 설립해야 하는지 근거가 부족하며, 부산에 설치하면 그보다 취약한 지역에서 요구할 경우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것 등이 주된 이유였다. 부산시의 재정 지원 규모 등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반대 논리에 직면하면서 부산시는 보건복지부와 논의를 거쳐 종합병원인 보험자병원에서 ‘회복기병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수용하였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운영하는 종합병원(건강보험일산병원), 요양원(서울요양원)은 있지만, 회복기병원은 없으므로 건정심을 통과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이라는 기대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024년 12월 부산시에서 준비해 간 회복기병원(안)도 건정심 소위에서 재논의 판정을 받았다. 이 시점에서 침례병원 공공병원화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본다. 침례병원 공공병원화는 지역의 필요로 제안된 것이고, 따라서 지역에서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병원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회복기병원은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서 필요한 병원에 가깝다. 회복기병원은 종합병원에서 수술 등 급성기 치료를 마친 환자에게 기능 회복을 하게 한 다음 집으로 퇴원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종합병원의 입원 기간을 줄임으로써 불필요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부산에서 필요한 공공병원의 기능은 필수의료·응급의료를 제공하며, 금정구와 동부산권 주민의 의료 이용과 건강을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현행 의료 정책과 연결하면, ‘포괄2차 종합병원이면서 지역책임의료기관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병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회복기병원에서는 수행하기 어렵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의료 문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질환·증상에 대한 포괄적 진료역량”을 갖춘 포괄2차 종합병원 지원사업 대상을 선정하였다. 동부산권에 속하는 4개 지자체(금정구·해운대구·수영구·기장군) 중에서 금정구만 제외되었다. 책임의료기관은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양질의 필수의료를 제공하며, 지역별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 보건의료기관 등과의 연계·조정 등 역할을 수행하는 종합병원으로 전국 70개 진료권 중에서 56개소가 지정되어 있는데, 부산은 3개 진료권 중에서 중부산권(부산의료원)이 유일하다. 부산시는 보험자병원에 약 2500억 원의 재정 지원을 건정심에 보고한 바 있다. 300병상 규모 종합병원인 서부산의료원의 총사업비가 1641억 원이고, 2025년 부산시 보건 분야 예산 규모가 2100억 원 수준이다.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지원하면서도 금정 구민과 부산 시민이 필요로 하는 공공병원이 들어서지 못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침례병원 공공병원화의 핵심은 누가 운영하는 병원이 아니라, 누구를 위한 어떤 기능을 하는 병원인가에 있다. 부산 시민의 건강 수준은 여전히 전국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해양수도 부산의 명성에 걸맞는 시민의 든든한 의료안전망으로서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하고, 동부산권에도 이에 걸맞은 공공병원이 들어서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더군다나, 현 정부는 공공의료체계 강화와 지역 격차 해소를 보건의료 부문의 핵심 국정과제로 삼고 있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연속 우승과 ‘스리핏’ [키워드로 트렌드 읽기]
매년 11월과 4월쯤 프로 스포츠 시즌이 시작되거나 끝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화두가 있다. 바로 연속 우승이다. 올 가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MLB)에서는 LA 다저스가 월드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를 앞세운 ‘디펜딩 챔피언’ 다저스의 우승은 예정된 수순처럼 보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상대팀 토론토와 매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를 펼쳤기 때문이다. 마지막 7차전에서 연장전까지 간 극적인 승부 끝에 나온 결말은 뉴욕 양키스 이후 25년 만에 나온 월드 시리즈 연속 우승이라 의미를 더했다. 이제 다저스 앞에는 ‘숫자 3(three)’과 ‘되풀이(repeat)’의 합성어인 ‘스리핏(Three-peat·3시즌 연속 우승)’이 새 도전 과제로 주어졌다. 이 단어는 1980년대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LA 레이커스를 이끈 명장 팻 라일리가 상표권으로 등록하면서 유명해졌다. 정작 본인은 3연속 우승에 실패했지만, 1990년대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두 차례나 성공시키면서 팀 스포츠에서는 최고의 영광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국내에서는 3연패를 넘어서면 아예 ‘왕조’라는 호칭이 붙는다. 한 시대를 지배했다는 의미다. 가까운 예로 KBO리그는 삼성 라이온즈가 4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하면서 ‘삼성 왕조’로 불렸고, K리그에서는 ‘현대가 라이벌’ 전북 현대와 울산 HD가 연이어 5연패와 3연패를 달성했다. 여자프로농구(WKBL)에서도 과거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각각 6연속 우승으로 장기집권을 했는데, 올해 봄 부산 BNK가 우리은행의 또다른 스리핏을 저지하면서 창단 첫 우승컵을 들어올린 바 있다. 오랜 부산 야구팬들은 더욱 절실하게 느낄테지만, 일정한 규모를 갖춘 장기 레이스에서는 정상을 한 번 찍어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당장 한 번의 우승 뒤에는 상대팀이 내놓는 각양각색의 파훼법에 맞서야 한다. 팀 내부에서도 선수단 구성의 변화와 함께 부상과 컨디션 난조 등 갑작스런 변수가 많다. 심리적 압박이라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승을 세 번 연속으로 다시 이뤄낸다는 건 매우 어렵다. 마침 얼마 전 e스포츠에서도 ‘페이커’ 이상혁이 이끄는 T1(티원)이 ‘리그 오브 레전드’ 국제 대회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지닌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3연패에 성공했다. 특히 페이커는 선수 생명이 짧고 이적도 잦은 프로게이머 세계에서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지만, 이번 우승은 통상적인 은퇴 시기인 20대 중반을 지난 서른을 목전에 두고 이룬 대업이라 더 위대하다는 평도 나온다.
[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올가을 설악 단풍도 예전만큼 이쁠까요.
어떤 산이라도 단풍이 이쁘지 않을 리 없지만, 유독 설악산 단풍에 빠져드는 이들이 많은 것은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설악 산세가 만드는 색채 묘미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산을 그린 화가는 많이 있지만 박고석만큼 반평생 동안이나 산을 예찬한 작가는 없다. 1917년생인 그가 2002년 세상을 떠나자, 기사에서는 ‘산과 하나가 된’, ‘산이 된 사람’, ‘산의 화가’ 등등 이구동성으로 산을 그린 작가라고 설명했다. 하긴 살아생전 ‘설악 예찬’을 남겼을 정도이니 그가 얼마나 산을 사랑했는지 충분히 알고도 남는다. 박고석은 아버지가 형을 데리고 중국으로 망명한 뒤부터 불량기 가득한 청소년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공부는 뒷전이고 당시 말로는 딴따라 같은 짓만 일삼다가, 그림도 나름 잘 그린다는 자부심에 상처가 생기는 사건이 있었다.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평양에 돌아온 길진섭에게 혹독한 핀잔을 들은 것이다. 그 뒤로 마음을 다잡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서 그림 공부에 매진했다. 해방된 뒤 귀국한 그는 곧 월남해 고등학교 미술 교사가 된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에 친구 소개로 훗날 유명한 건축가가 되는 김수근 친누나인 김순자와 10월 결혼하고서 1·4후퇴 때야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이때 그린 ‘범일동 풍경’(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 남아 있어 이 시기 그의 화풍을 엿볼 수 있다. 그 어려운 시절에 손재주를 살려 판잣집과 화실을 만들어 친구들과 제자들이 드나들게 했다. 1955년 정릉에 정착해 대학에 출강하면서도 가족보다 제자들이 먼저였고, 적십자병원에 무연고자로 방치되던 이중섭 장례도 그가 수습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국외 미술 흐름도 그랬지만, 한국 화단은 뜨거운 추상미술이 휩쓸던 시절이었다. 박고석도 1957년부터 60년까지 모던아트협회를 결성해 추상미술에 몰두하다 이내 붓을 놓고 만다.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곤 십여 년 가까이 흐른 1967년 구상전에 참가하면서부터 다시 붓을 들었고, 이때부터 산행을 시작하면서 산을 그리기 시작했다. 도봉산, 설악산, 유달산 등 유명하다는 전국의 산은 모두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산행을 했음에도 박고석은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은 작가로 알려져 있다. 제자 김정의 일화에 의하면 “구리는거 보단 구릴 시간 이쑤문 더 봐야디. 볼 시간도 부족한데 구릴 시간이 업디…”라면서 박고석은 산과 대화하듯 행동했다고 한다. 1990년에는 아예 설악으로 화실을 옮겨 아침저녁으로 울산바위를 보며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이미 커피와 담배, 불규칙한 식사로 거동이 불편했기에, 1992년 그린 이 작품은 젊은 시절 그렸던 위세 당당한 산은 아니다. 대신 여유롭고 천진한 붓놀림으로 순화된 산 풍경이 남아 있을 뿐이다.
[기고] 가덕신공항 건설과 국가계약제도
가덕신공항은 부산 가덕도에 새로 조성되는 국제공항으로 기존 김해공항의 용량 한계를 극복하고 부산 및 주변 지역의 교통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건설이 준비되고 있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김해공항 국제선 이용 현황을 보면 2023년 648만 명, 2024년 895만 명, 국제선 화물은 출발 기준으로 2022년(6784t) 대비 2024년(5만 98t)에 약 7배 증가해 여객 이용은 물론 항공 화물도 동반 성장하고 있다. 가덕신공항 입지 결정 시 많이 비교 검토된 간사이국제공항도 기존의 오사카 이타미공항이 포화상태가 되어 확장해야 했으나 시가지 내에 위치하여 소음 민원, 주변 산악 지형으로 인한 비행안전문제, 토지 취득의 어려움 등으로 오사카에서 남서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인공섬을 조성하여 20m의 연약지반을 개량하고 30m 높이의 상부토를 매립하여 해상 공항으로 건설하게 되었다. 준공 후 50년간 8m 침하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건설하였으나 개항 당시 이미 8m가 침하하였고 현재도 매년 7cm씩 침하하고 있다. 2018년 9월에는 태풍 제비로 인해 공항 전체가 침수되며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1987년 1단계 공사를 착공하여 1994년 개항할 때까지 8년의 공사기간 동안 30조 원 공사비가 40조 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우리나라 대형 공사 입찰 방식은 종합평가낙찰제, 일반경쟁입찰, 우선 협상에 의한 계약 등의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가격, 일정, 품질 등의 계약조건 확정방식으로 계약되기에 단기간에 계획된 미흡한 기본계획이나 기본설계를 기초로 건설사가 실시설계하여 계약한다는 것은 건설사가 많은 리스크를 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전-마산간 복선 전철 건설사인 A사는 턴키방식계약으로 공사를 진행하다 낙동강 연약지반 통과 구간에서 연약지반 파괴 현상이 나타나 복구공사에 1조 원 이상의 추가공사비를 부담하고 5년 이상의 준공기한이 미루어져 국민 불편과 함께 기업의 손실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종합평가낙찰제는 참여 시공사가 짧은 시간에 조사 설계하여 소수의 평가위원들이 밀실에서 평가하여 낙찰자를 선정함으로 설계 도면의 적정성, 공법의 타당성, 시공성이 기술자문회의를 통하여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계약조건이 확정되기에 국내 굴지의 건설사가 여러 가지 사유로 계약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간사이공항,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등 대부분 해상공항은 설계기간 제외하고 7~8년간 공사기간이 소요되었다. 연약지반 공사의 현실은 시공 중에 현장사고 발생 또는 공사 후 하자발생이 다반사적으로 일어나 설계자, 시행자, 도급자 간의 분쟁과 공사사고, 부실공사, 국고낭비, 노동력낭비, 하자분쟁, 민원 발생 등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첫째, 연약지반 공사에 따른 설계 품질의 불량, 둘째, 현장지반 조사 시험자료의 불비, 셋째, 비전문가의 설계 수행, 넷째, 설계심의위원의 검토 불비, 다섯째, 계획시행자의 소홀한 계획 추진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공사 계약 전에 실시설계를 충분히 검증하고 부산신항 건설, 거가대교 건설 과정에서 연약지반에 대한 경험을 축적한 다수의 지역 전문가 자문을 거치는 것이 사업비와 공사기간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제언한다.
해운대 센텀2지구 1단계 2공구 착공
급물살 타는 지역의사제 도입, 관건은 의료계 반발
‘법무부 외압 의혹’ 정성호 부인에도… 더 불붙는 진실 공방
민주당, 50여일 만에 또 부산행… 내년 지방선거 공들이기
해양수산부 연내 이전 가시화, 부산 부동산 시장도 ‘들썩’
유엔공원 6·25 공적비 ‘흐릿’… 글씨조차 읽기 어렵다
‘부산청년기쁨두배통장’ 90%가 3년 만기 채워
부산 ‘수륙양용버스’ 시범 운행 내년 4월로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