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균형발전은 선택 아닌 운명" 파격과 속도전 뒤따라야
이재명 정부의 123개 국정과제가 16일 최종 확정됐다. 이번에 확정된 국정과제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정한 지역균형발전 아젠다가 대부분 유지되거나 더욱 강화됐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지속성장과 발전을 위해 국가균형발전은 이제 선택이 아닌 운명”이라는 언급을 내세우며 수도권 몰아주기의 효율성이 한계에 이른 만큼 전국이 고르게 발전의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나왔다는 점도 지역균형발전을 향한 상징적 의지 표명으로 읽힌다. 이제 남은 것은 확정된 국정과제의 속도감 있는 실현이다. 부산의 입장에서 이번 국정과제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다. 정부는 올해 안으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완료하겠다며 시점을 국정과제 안에 명시적으로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해수부 부산 이전을 토대로 한 K-해양강국 건설까지 국정과제에 들어갔다. 대선 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숱한 언급이 난무했으나 정부가 공식 자료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외에 정부는 2028년 유엔해양총회 부산 개최 추진을 통한 국제 협력 강화도 과제로 명시했다. 이는 부산의 새 도약 계기가 될 북극항로 개척을 본격화하기 위해 필요한 토대 구축 마련책이라는 평가다. 해수부 이전과 함께 지역균형발전 아젠다로 눈길을 모은 국정과제는 ‘2차 공공기관 이전 착수’다. 공공기관 이전은 2005년 1차 정책 실시 이후 추가 시행 필요성이 정권을 막론하고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20년이 다 되도록 구체적인 실행 방안 도출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해수부 이전만큼이나 그동안 말잔치만 무성해 온 이 정책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추진력을 확보하리라는 기대감을 준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은 해수부 이전과 함께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두 축이다. 이 대통령의 표현처럼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지역균형발전이 선택이 아닌 운명이라면 이 두 축부터 튼실히 세워야 마땅하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후 줄곧 ‘5극 3특’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수도권 1극이 아니라 지역에 5개 극과 3개 특별자치도를 육성하겠다는 뜻이다. 지역균형발전 구호로서는 더없이 매력적이다. 문제는 실행 속도다. 앞선 정부들도 지역균형발전 청사진은 곧잘 제시해 왔으나 평가는 늘 낙제점에 가까웠다. 정부 실행력이 가장 왕성할 때 속도감 있게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좌고우면하다 실기한 이전 정부의 과오를 이재명 정부가 반복한다면 5극 3특 구호는 레토릭으로 전락할 것이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파격적인 조치라도 감행함으로써 과감하게 속도전에 임해야 한다. 그 파격과 속도전이야말로 이 대통령이 말한 운명이다.
[사설] 30주년 BIFF 새 도전, 세계적 영화제 도약 디딤돌 되길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오늘 개막한다. 17일 오후 6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오는 26일 폐막식까지 열흘간 부산은 ‘영화의 바다’로 변신한다. 올해 BIFF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다. 아시아 최대 규모, 최고 권위의 영화제로 성장한 BIFF는 30주년을 맞아 세계적 영화제로의 비상을 시도한다. 아시아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경쟁부문을 처음 도입하는 등 다양한 실험과 혁신적인 시도를 이어간다. 1996년 한국 최초의 국제영화제로 출범한 BIFF는 이제 아시아 영화의 요람을 넘어 영화산업의 허브로 성장했다. 우여곡절도 많은 30년이었다. 시련을 딛고 일어선 서른 살 BIFF의 힘찬 도전이 세계 영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새기길 기대한다. 올해 BIFF는 64개국 241편의 영화를 공식 상영한다. 커뮤니티비프 상영작까지 포함하면 328편에 달한다. 30주년 특별기획으로 아시아 영화사를 빛낸 작품들을 소개하는 ‘아시아영화 100’도 첫선을 보인다. 대표적 관객 참여 프로그램인 커뮤니티비프, 부산 전역을 영화관으로 변신시키는 동네방네비프 등이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 등 15곳에서 열려 열기를 더할 예정이다. 특히 BIFF는 부분경쟁영화제라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아시아 감독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경쟁영화제로의 변신을 꾀한다. 이 실험을 통해 BIFF가 아시아 영화제 ‘맏형’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세계적 영화제로 업그레이드할 디딤돌을 확실히 구축하길 바란다. BIFF는 지난 30년간 수많은 신예 감독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1997년 BIFF에서 ‘초록물고기’를 선보인 이창동 감독은 이후 ‘밀양’ ‘버닝’으로 칸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봉준호, 류승완 감독도 BIFF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중국 자이장커 감독과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 BIFF를 통해 세계적 명성을 확립한 거장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둘러싼 갈등에 이은 2023년 당시 이용관 이사장 등의 인사 전횡과 사유화 논란 등은 BIFF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서른 살 BIFF 새 지도부는 그간의 내홍을 교훈 삼아 새로운 30년을 제대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서른 살 BIFF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우선 세계적 영화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올해 첫 시도하는 경쟁영화제에 대한 위상을 확고히 구축해야 한다. 공정한 심사 등 원활한 운영을 통해 ‘부산 어워드’에 대한 권위를 제대로 구축해야 칸·베를린·베니스처럼 세계적 영화제로 발돋움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예산을 부산시 보조금과 기업 협찬 등에 의존하는 BIFF 재정을 한층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것도 큰 과제다. 산업적 동반자인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을 단순한 영화 거래시장을 넘어선 첨단 콘텐츠 마켓으로 자리매김시키는 것도 시급하다. 미래 30년을 위해 혁신과 실험을 기치로 내건 서른 살 BIFF의 힘찬 도약을 응원한다.
[사설] 해양수도 부산의 미래 북항재개발 활성화에 달렸다
부산 북항 1·2단계 재개발이 공정 지체와 사업비 증가에다 투자 유치 부진까지 겹치면서 총체적 난항을 겪고 있다. 북항재개발은 기존 항만 기능에서 해양산업·금융·연구개발(R&D)이 집적된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 도약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국책사업이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1단계는 당초 2027년 사업이 종료될 예정이지만 기한을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2단계는 사업비 7000억 원이 늘어나면서 사업계획 수립 착수조차 못하고 있다. 공기 지연과 비용 증가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구조다. 북항재개발 부진은 해양수도 부산의 미래 비전의 차질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전면적 구조 진단과 정상화 대책이 시급하다. 해양수산부 부산항북항통합개발추진단에 따르면 북항 1단계 매각 대상 부지 중 35%만 분양을 마친 상태다. 북항의 상징이 될 랜드마크 부지는 공모 유찰이 거듭되고 있고, 명물로 주목되던 노면 전차(트램)는 착공 일정조차 안갯속이다. 도로·항만시설·공원은 부분 완공됐지만 상부 공공 콘텐츠인 해양레포츠콤플렉스, 부산항기념관, 공원대체시설, 유·도선장은 기본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문가들은 1단계 사업 기한인 2027년 말까지 마무리되기에는 빠듯하다고 전망한다. 1단계 완공이 늦어지면 총공사비 증가에 따른 투자 유치 차질도 우려된다. 부산의 신성장 동력의 구심점을 기대한 시민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단계 사업은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채 난관에 부딪혀 있다. 2022년 2단계 사업 예비타당성조사 이후 사업비가 7000억 원 증가하면서 수익성 지수가 하락한 데 발목이 잡힌 것이다. 2단계 실행 기관인 부산시컨소시엄에는 부산항만공사가 45% 지분을 갖고, 나머지 유관 기관들이 55% 지분으로 참여해야 하는데, 수익성 하락을 이유로 결정이 미뤄져 사업계획까지 순연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2026년 사업계획 수립, 2027년 실시계획 승인 신청 일정이 불투명하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정부의 미흡한 대응이 지목된다. 사업비 증가에 대응한 재정 대책을 외면했고, 컨소시엄 참여 기관 조정에도 한계를 드러냈다. 부산항 북항 현장은 부산이 글로벌 해양수도로 도약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해수부 및 유관 기관·기업의 부산 집적과 북극항로 개척에 따른 시너지 효과로 수도권에 버금가는 해양경제권이 태동하는 산실이기도 하다. 북항재개발 성공에 국토균형발전의 실질적 진전이 있다. 이 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추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는 사업비 확보, 기관 조율, 민간 참여 활성화에 실질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부산시는 컨트롤타워로서 사업계획의 현실화, 현장 주도의 실행력을 확보해야 한다. 책임 회피와 조율 실패가 설 자리는 없다. 북항재개발 차질은 곧 해양수도 부산의 좌절이라는 각오로 심기일전해야 할 때다.
AI 민족주의와 한글 주권
아페르투스(Apertus)는 챗GPT에 대항해 스위스가 개발한 거대언어모델(LLM) 및 멀티모달 인공지능(AI)이다. 2일 공개된 뒤 전 세계의 관심이 뜨거웠다. 사용해 보니 한국어 문답 능력에 손색이 없다. 앞서 공개된 프랑스의 미스트랄(Mistral)도 마찬가지다. 중국계 LLM이라면 딥시크(DeepSeek)가 떠오르지만, 사용자 저변이 넓은 모델은 큐웬(Qwen)이다. 큐웬도 우리말 사용에 불편이 없다. 아랍에미리트도 올해 K2 싱크(Think)를 내놓고 중동·아랍권 밖 전 세계 사용자를 늘리고 있다.한글이 유창한 외국계 LLM이 쏟아지면서 디지털 세상에 격변이 일고 있다. 문서편집기 MS워드와 검색 포털 구글은 정보화 시대를 선도하며 전 세계를 장악했지만 한국에서는 독점은커녕 과점조차 이루지 못했다. 아래한글과 네이버·다음이 압도적 점유율로 시장을 지켰기 때문이다. 자국어 데이터 독보성을 지킨 사례가 전 세계에서 유일해서 디지털 세상의 한글 주권 독립에 비유되곤 했다. 한데, LLM이 검색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면서 검색 포털이 예전 같지 않다. AI가 관련된 추가 질문까지 제시하는 친절함을 내세워 국산 포털의 아성을 넘보는 것이다. 디지털 한글 생태계가 변곡점을 만났다.챗GPT를 만든 오픈AI가 올해 한국 지사를 내면서 “한국 유료 구독자가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라고 밝힌 바 있다. 외국계 AI 도구를 이용하면 한국어 대화 내용이 외국 서버에 쌓인다. 한국형 LLM이 퍼져 한국 서버에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하고 발전하는 AI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하면 기술·데이터 종속은 불가피하다. 세계 각국이 AI 경쟁력을 주권의 개념으로 보는 소버린(Sovereign) AI로 격돌하는 이유다.IT 강국 한국이 LLM 분야에서 후발 주자가 된 처지가 무참하다. 하지만 추격전이 시작됐다. 네이버, LG, SK 등 대기업까지 참여하는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 이용자를 겨냥한 AI 모델 개발이 진행 중이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2일 “연내 한국형 LLM을 선보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개발자, 이용자 참여를 늘려 궁극적으로 전 세계인이 한국형 LLM을 사용하게 만들겠다는 포부다.바야흐로 AI 민족주의(Nationalism, 혹은 국가주의) 시대다.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AI 개발 경쟁에서 2, 3위는 의미가 없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AI 시대 한글 주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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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누가 사법 신뢰를 무너뜨리나
사법부를 향한 정부와 여당의 공세가 거세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공개 요구했다. “대법원장이 그리도 대단하냐, 대통령 위에 있느냐, 국민의 탄핵 대상이 아니냐”라는 거친 언사까지 동원하면서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해서도 “조희대의 정치적 편향성과 지귀연의 침대 축구가 불러온 자업자득”이라고 날을 세웠다. 여권 내 강경파들의 맹공은 대법원이 민주당의 사법개혁 속도전에 우려를 표명한 가운데 나왔다. 대법원은 12일 전국법원장회의를 열고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대법관 증원, 법관 평가 등에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사법제도 개편은 국민과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폭넓은 논의와 숙의 및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여권의 대법원장 사퇴 요구는 대법원의 반발에 대한 반격의 성격이 강하지만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삼권 서열’ 발언을 한 게 기름을 부은 측면도 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이라고 서열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내란특별재판부, 그게 왜 위헌인가. 사법부 구조는 사법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다. 입법부 권한이다”고 못 박았다. 이 대통령 발언은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위헌적 측면이 있다는 법조계의 우려가 뒤따랐다. 법을 만드는 사람, 법을 집행하는 사람과 법에 따라 심판하는 사람을 분리하는 게 삼권분립의 정신이자 법치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권력은 오로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지만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입법·행정·사법의 서열을 매기지 않는다. 국민주권조차 절대적이지 않으며 ‘다수결의 한계’까지 받아들인 결과가 삼권분립이라는 게 법학자들의 해석이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민주당에 국회 다수 의석을 몰아줬지만 위임한 권한이 사법부까지 좌지우지하라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법권 독립의 본령은 법과 양심에 따른 법관의 공정한 재판을 의미하지만 이를 위한 법관 구성과 조직상의 독립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한 위헌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다. 사건은 재판부에 무작위로 배당되며, 내란 재판부도 그에 따라 사건을 배당받았다. 법원의 정당성은 그 무작위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조 대법원장도 지 부장판사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게 사법권 독립이다. 대법관 증원도 마찬가지다. 증원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시기와 방법을 둘러싼 사법권 독립 침해 우려가 본질이다. 국민의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대법관 증원 요구는 법원 내에서도 꾸준히 제기된 사안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하급심 강화, 대법원 전원합의체 기능 약화 등 다양한 논란이 뒤따라 근본적 해결책에 대한 숙의가 필요하다. 민주당이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증원하는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베네수엘라 차베스 같은 권위주의 정권의 사법부 장악 시도와 다를 바 없다. 물론 사법부 스스로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자기 확신과 고집으로 스스로를 성역화한 높은 담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국민의 삶에서 멀어진 건 아닌지도 돌아봐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사법부를 마음대로 흔들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재명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1·2심 판결이 유·무죄로 엇갈린 것도, 재판이 오랜 기간 지연된 것도, 대법원이 신속하게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도 모두 재판의 결과다. 특정 판결만 떼어내 편향적이라 공격하는 것 자체가 정략적이다. 대법원장이 대선에 개입한 자업자득이라지만 정치 보복으로 비치는 게 더 문제다. 그 또한 법적 절차를 통해 해소돼야 하는 게 법치다. 특히나 대통령이 대법원장 거취를 압박하는 듯한 인상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여당의 대법원장 사퇴 공세에 공감을 표시했다는 오해가 일자 대통령실이 긴급하게 진화에 나섰지만, 더 신중해야 할 일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 실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국면에서 우리는 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를 지켜보며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목도했다. 당시 폭동 사태 배후로 지목돼 경찰 수사를 받는 전광훈 목사가 내세운 게 국민저항권이었다. 미국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기관에 늘 꼽히는 게 군대와 함께 연방대법원이다.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의 배후에 연방대법원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한 과제의 하나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법부다. 사법개혁의 방향은 이런 공감대 속에 숙의돼야 한다.
[홍순연의 도시 공감] 도시+디자인, 부산다움의 시작
얼마 전 일본 규슈의 작은 도시인 미야자키를 방문한 적이 있다. 미야자키는 부산에서 후쿠오카를 경유하여 일본 국내선을 타고 다시 40분을 가야 도착하는 작은 도시이다. 지역의 건축가들과 함께 도시를 답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특산물인 삼나무로 지은 철도 역사였다. 역사의 주요 구조뿐만 아니라 역 내부에 위치한 자전거 거치대까지 삼나무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지역의 뜨거운 여름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랑 같은 역사의 넓은 공간은 지역 축제를 비롯하여 어린이 집 전시회 등 다양한 지역 활동의 주 무대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역사의 플랫폼은 기차를 타는 기능 외에 도시를 내려다보는 전망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마치 건축물 하나로 미야자키 전체를 설명하는 듯하였다. 이것이 도시의 경쟁력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계디자인수도 걸맞은 실험 이어져야 다양한 분야 시민참여형 프로젝트 도입 공간의 질과 지역 미래 경쟁력 높여가길 도시의 경쟁력을 경제력이나 인구 규모만으로 평가하던 시대는 지난 듯하다. 도시의 경쟁력은 디자인과 공간의 질 그리고 활용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는 대표적 국제 프로젝트가 바로 세계디자인수도(World Design Capital·WDC)이다. 세계디자인수도는 단순한 도시 미관이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사회·문화·경제적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냈는지에 대한 평가를 통해 선정된다. 그간 헬싱키, 케이프타운, 타이베이, 멕시코시티, 발렌시아, 세종, 상파울루 등이 세계디자인수도의 이름을 거쳐 갔다. 이들 도시는 디자인을 사회 혁신의 도구로 활용했다. 예컨대 2012년 헬싱키는 ‘시민 생활 중심 디자인’을 기치로 내걸며 공공도서관과 공원, 교통 체계를 시민 눈높이에 맞게 개선해 북유럽식 복지 도시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2014년 케이프타운은 남아공 특유의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디자인으로 풀어내려는 도전을 시작했다. 불평등한 도시구조 속에서 시민 참여형 거버넌스를 강화하며 ‘디자인이 사회통합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2016년 타이베이는 첨단 IC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시티 구축과 생활밀착형 공공디자인 확대를 통해 아시아 도시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2018년 멕시코시티는 역사와 문화자산을 보존하면서도 공공공간을 재편해 시민의 일상 경험을 바꿔냈다. 2022년 발렌시아는 해양도시로서 지속 가능한 건축·도시디자인 전략을 내놓으며 유럽 지중해 도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같은 해 세종시는 스마트 행정도시라는 특수성을 기반으로, 시민 참여형 공공디자인 정책을 강화해 한국형 도시디자인 모델을 구축했다. 가장 최근 2024년 선정된 브라질 상파울루는 세계적 대도시의 인프라 문제를 디자인으로 재구성하며 사회적 불평등 개선까지 시도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도시들은 핵심 키워드를 기반으로 도시혁신의 실험장이자, 도시의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제 부산이 그 깃발을 이어받았다. 세계디자인수도 선정으로 부산 또한 도시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새롭게 디자인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핵심 키워드, 지역적 특성, 그리고 시민, 디자이너들의 참여와 역할이 요구된다. 예를 들면 해양이라는 핵심 키워드 하나만으로 연결되는 디자인은 무수히 많다. 북항 재개발, 영도 해양관광벨트, 수영만 요트경기장 일대 등 주요 공간별로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해양 친화적 건축은 무엇인지, 친환경 해양 레저 인프라를 위한 방법은 없는지 등이다. 그 외 해양 생태와 공존하는 도시디자인,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해양도시 모델 등 각종 키워드를 연결하는 다양한 디자인 활동들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적 특성을 살린 다양한 디자인이 요구된다. 원도심만 보더라도 과거의 흔적과 쇠퇴가 공존하는 곳이다. 영도·초량·동구 일대는 항만과 철도의 기억을 품고 있지만, 인구 유출과 상권 침체로 활력을 잃고 있다. 역사적 맥락을 보존하고 항만 지역의 역사 문화자원들을 중요한 매개물로 삼아 지역에 새로운 기능을 덧입히는 건축적 재생 전략이 필요하다. 더불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부분은 디자인은 전문가의 영역이지만, 그 결과는 시민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부산이 세계디자인수도로서 진정한 성과를 위해 시민참여형 도시디자인 프로젝트가 많았졌으면 한다. 과거 부산에서 이루어진 공공디자인 프로젝트인 ‘광복로의 광복’ ‘미로미로 프로젝트’ ‘산복도로 일번지’처럼 주민과 디자이너들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생활권 단위의 공공건축, 15분 도시, 교통체계, 공공디자인, 해양산업디자인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시민참여형 프로젝트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부산의 세계디자인수도 선정은 도시의 ‘외형적 치장’이 아니라 도시의 경쟁력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이다. 과거와 현재, 지역과 장소,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엮어내는 디자인 실험을 통해 지속 가능한 도시, 부산다움의 시작점을 제대로 구축하길 기대한다.
[데스크 칼럼]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절대 반지'
12·3 비상계엄은 무모한 도박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신과 측근들의 안위 뿐만 아니라 당시 집권당인 국민의힘의 명운까지 게임판 위에 ‘올인’했다. 도박은 실패했고, 위태로웠던 여야 간 힘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졌다. 계엄 역풍을 등에 업은 다수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입법에 이어 행정 권력까지 차지했다. 여기에 내란 종식이라는 명분까지 손에 쥐었다. ‘내란 세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엄청난 위압감 앞에서 야당의 어떤 저항이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까. 민주당으로서는 그야말로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절대 반지’가 수중에 떨어진 셈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듯, 막강한 권력을 절제력 있게 행사하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때로는 정권을 떠받치는 핵심 지지층과 충돌을 불사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양립 불가능 지경인 여야 사이에 합의 정치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국회 시절에 누구보다 강성이었던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초반 통합과 협치를 강조할 때는 상당한 기대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소위 개혁 속도전을 벌이는 최근 여권의 행태를 보면 절대 반지의 위력에 흠뻑 취한 듯하다. 반대는커녕 ‘좀 과하다’는 지적조차 수용할 뜻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개혁 저항 세력으로 찍어 누르려는 고압적인 기류가 팽배하다. 사법부 개혁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법원장들의 주문은 “자업자득”으로 몰아세우고, 왜 바꾸는지 설명이 부족한 정부 조직 개편을 비판하는 공무원에는 “불만이면 퇴사하라”는 날 선 목소리가 날아든다. 내란특별재판부든, 내란전담재판부든 결국 여권이 원하는 판결을 할 수 있는 판사로 바꾸기 위함이라는 본질은 같다. 정치 권력이 판사를 성향에 따라 취사선택하려는 행위 자체가 사법권 독립 침해이며,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은 상식적이다. 여당 지도부는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상고심 선고에서 ‘정치 판결’을 내린 사법부가 독립을 외칠 자격이 있느냐고 비판하지만, 집권당이라면 그런 감정적인 대응이 우리 사법 시스템에 두고두고 미칠 해악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방송통신위원회를 해체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새로 설치하는 법안 역시 다분히 감정적이다. 현 이진숙 위원장 ‘찍어내기’ 의도라는 걸 민주당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이 위원장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특정인을 배제하기 위해 정부 조직의 근간을 흔들면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내란 척결이라는 깃발 아래서 수단의 적절성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다. 검사의 힘을 남김없이 빼는 게 요체인 검찰 개혁안 또한 복수심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진보 성향의 법조인들조차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사라질 경우 부실 기소와 사건 지체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지만 ‘검찰 없으면 나라가 망하냐’는 냉소적 반응만 넘쳐난다. 1% 정치 검사의 힘을 빼려고 99% 검사를 희생시키고, 사법 서비스의 질을 하락 시킨다면 이걸 개혁이라고 할 수 있나. 보다 근본적인 의문은 검찰에게 빼앗은 대부분의 권한을 넘겨 받는 경찰이 향후 ‘정치 경찰’이 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어디서 오느냐는 것이다. 내란 척결을 앞세워 지방선거 지형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시도도 노골화되고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국민의힘 소속 지자체장을 겨냥한 감찰에 나선 것은 아무리 봐도 무리수다. 당일 행안부 지시 전 청사 폐쇄를 미리 해 계엄에 동조했다는 것인데, 일단 진위 여부가 명확하지 않고 그 날의 상황과도 맞지 않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계엄 당일 밤에 “계엄에 반대한다. 계엄은 철회돼야 한다”는 입장문을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먼저 발표했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박 시장은 사석에서 계엄을 강하게 비판한 기자의 칼럼에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물론 여권의 내란 공세가 힘을 받는 건 야당인 국민의힘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계엄 직후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고, 반성과 쇄신에 나섰다면 내란 척결이 지금처럼 야당을 향한 전가의 보도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탄핵 트라우마’만 되뇌던 국민의힘은 정반대 방향으로 역주행 했고, 지금도 ‘윤 어게인’ 세력과 기묘한 동거를 하면서 내란 동조 정당이라는 굴레에 스스로 매여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절대 반지는 종래에 그 파괴적인 힘을 주체하지 못해 주인을 스스로 자멸케 한다. 첫 탄핵 이후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임기 초반 8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지만, 부동산 정책, ‘조국 사태’ 등에서 여론을 무시한 독선적 행태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절대 반지의 어두운 운명을 반복하지 않는 길은 무엇일까? 영화 주인공처럼 스스로 반지의 유혹을 떨쳐내는 길 밖에 없다.
[노트북 단상] '세 개의 벽'에 막힌 부산 블록체인
부산은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고 6년째 달려오고 있다. 다시 말하면 부산은 블록체인 기술을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거대한 ‘테스트베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동안 부산의 물류·금융·공공안전·관광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실증 사업이 진행돼 왔다. 블록체인기술혁신지원센터 설립을 통해 기업 인프라 지원·네트워킹·맞춤형 컨설팅 등을 제공하며 지역·외부 기업의 성장과 기술혁신을 견인한 성과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본보 기획시리즈 ‘블록체인 DNA 심는 첨병들’ 취재차 만난 여러 기업 관계자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던 이유다. 이들은 하나같이 제도적 한계와 인력난, 투자유치의 장벽을 기자에게 토로했다.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부산의 블록체인 산업을 키우기 위해 마련된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가 지역 기업의 확장을 가로막는 경우였다. 특구 내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을 운영 중인 한 회사가 이 점을 지적했다. 특구 사업이 부산에만 묶여 있다 보니 전국 단위의 사업 확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특구 사업을 2년 실증하고 3년 임시허가까지 연장했지만 ‘부산 한정’ 조건 때문에 다른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보다 불리한 여건에서 경쟁한다”며 “부산에서는 상업용 건물 공실률이 40%를 넘는 상황에서 좋은 물건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이 모든 문제의 뿌리는 제도 미비에 있다. 국회는 토큰증권발행(STO) 법안을 곧 통과시킬 듯 말만 반복하며 업계에 ‘희망고문’만 안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인력난은 또 다른 벽이다. 블록체인과 AI, 데이터 전문 인력은 대부분 수도권으로 흡수되고 지방 기업들은 구인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발과 기획, 영업을 CEO 1인이 챙길 수밖에 없다. 인력 부족은 기술 개발 속도를 늦추고 결국 사업의 성장 잠재력마저 떨어뜨린다. 항만·물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인력 확보가 가장 큰 과제다. 부산은 수도권보다 중간급 인력이 훨씬 부족해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며 “투자 없이 매출만으로 회사를 키우고 있어 인력 확충 속도도 느릴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술을 확보하고도 시장 확장을 위한 자본 유치도 지역 업체들이 넘어야할 허들이다. 사업 초기에는 정부 과제나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버텼지만, 민간 투자로 이어지지 않아 성장 속도가 더디다. “지역에서 기업설명회(IR)를 100번이나 했어도 투자받지 못했다”는 한 CEO의 절규가 이를 잘 보여준다. 결국 기업들은 자체 매출과 제한된 공공 투자에 의존하며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걱정만 할 때는 아니다. 정부와 국회, 지자체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정책과 지원에 반영할 때 비로소 부산은 성공적인 블록체인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이들 벽을 넘어선다면 부산의 블록체인 산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잠재력을 충분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2030 칼럼] 프랜차이즈에 대한 단상
지난해 밀리언셀러에 등극한 부자가 되는 방법을 다룬 자기계발서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엉뚱하게도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대목은 장사와 사업의 차이였다. 세이노의 분석에 따르면, 장사는 지리적 장소를 중심으로 근거리 원내의 사람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반면 사업은 지리적 장소의 한계를 뛰어넘어 원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장사는 지리적 장소가 곧 고객과 만나고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영업장소이기 때문에 위치가 중요한 반면 사업은 지리적 장소를 벗어날 수 있다. 요식업을 떠올려보면 프랜차이즈는 ‘사업’이고 동네 음식점은 ‘장사’다. 물론 지리적 장소에 구속되지 않는 프랜차이즈 본사만 사업이고 실질적으로 지리적 장소를 가지고 운영하는 가맹점들은 사업이 아닐 것이다. 예컨대 프랜차이즈 본사 인테리어는 관심 대상이 아니지만 가맹점 매장의 인테리어는 비극적 갈등이 빚어질 만큼 장소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현대국가 정치, 헌법 통해 표준화 비슷한 규범 약속 '가맹 체제' 닮아 미국 ‘갑질’ 민주주의 자체에 위기 본사·직영점 이익 우선시하는 듯 만연한 표준화·규격화·비인간화 자비·용서 없는 무한경쟁만 조장 그의 분석에서 핵심은 물리적 공간성(지리적 장소)의 여부다. 흥미로웠던 이유는 물리적 공간성의 차이가 종교와 정치의 본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가맹점이 본사 기준에 따라 동일한 품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약속한다는 것이다. 맥도날드 햄버거는 외국에서도 한국에서 먹는 것처럼 균질한 맛이다. 반면 장사는 편차가 존재한다. 만약 우리 동네에 엄청난 맛집이 있다면 덕분에 근거리 원내 사람들의 복지는 올라갈 것이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장사는 탁월성과 유연성을 기대할 수 있지만 위생 불량과 같은 자의적인 횡포도 우려할 수 있는 반면 프랜차이즈는 표준화된 규격의 세계다. 따라서 프랜차이즈가 주는 신뢰는 대단한 맛집은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을 보장한다는 안정감이다. 현대사회의 정치는 종교와 같이 민주주의와 헌법을 통해 표준화되었고 이 프랜차이즈는 지리적 장소, 곧 국가에 관계없이 비슷한 법적 규범을 약속하고 임의성을 면한다는 가치를 가진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사업을 주도해온 프랜차이즈 본사 격인 미국이 가맹점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면서 본사와 자신의 직영점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탓에 가맹국들이 부담해야 하는 로열티 지불이 상당히 높아졌다. 또한 갈수록 첨예해지는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은 가맹점의 존속에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편 가맹국들은 프랜차이즈를 재생산하며 자국 내 불평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마치 수도에 본사와 직영점을 두고 지방에 가맹점을 두려 하는 시스템이다. 표준화된 규격의 세계가 위기를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을 다르게 바꿔본다면 물리적 공간성의 배제가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지리적 장소가 필수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숨 쉬고 먹고 자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우리 몸이 위치할 공간을 필요로 한다. 정신만을 가지고 사업하는 프랜차이즈 본사와는 다른 것이다. 삶의 직접적인 수행 공간에서 세계는 고정된 규정적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물리적 장소는 필연적으로 주변 환경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사람은 언제나 동일한 값을 산출할 수 없고 표준화될 수 없다는 점에서 기계와 다르다. 프랜차이즈는 기계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외를 두지 않고 균일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 모델의 정치경제 시스템은 압도적인 기계적 효율성을 통해 사회를 빠르게 발전시키고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어쩌면 장사와 사업의 스케일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공간, 즉 휴먼스케일을 넘어선 규모는 이제 기계의 논리 아래서 사람을 소외시키고 인간의 비인간화를 지향한다. 지리적 한계 너머에 원거리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적 시야는 초고층 빌딩에 올라서 지상을 조망하며 행인들을 점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극단적인 사례는 전쟁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대 첨단화된 전쟁은 원거리에서 버튼만 누르면 미사일이 날아가 적이라고 명명된 아무 일면식이 없는 타인을 공격하고 드론을 띄워 무차별로 폭격한다. 상대는 타격할 점으로 존재할 뿐이며 마주치지 않은 채 살인한다. 물리적 장소의 소거는 인간성이 놓일 공간을 제거한다. 이제 전쟁에는 자비도 연민도 용서도 자리하지 않는다. 기계는 아픔을 모르고 프랜차이즈의 대리인이 된 인간은 주어진 명령 외엔 양심을 가질 수 없는 로봇이 된다. 한 동네에서 카페 바로 옆에 카페를 열고 그 옆에 카페를 또 여는 프랜차이즈의 무한 경쟁 상도덕은 추상적인 자유시장 경쟁뿐 아니라 무한히 희생당하는 산업의 노동 현장과 전쟁의 폭력적 참상에도 놓여있다. 피 흘리는 것은 언제나 서로의 취약한 생명과 삶을 안고 싸우는 인간들이지 프랜차이즈 본사는 아니다.
[편집국에서] 가을, 맥주,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
롯데 자이언츠의 올 시즌 가을야구를 의심하지 않았던 6월 어느 날, 8년 전 부산일보 지면에 보도된 롯데의 포스트시즌 진출 기사를 찾아봤다. 정규리그 막바지 4위 롯데 자이언츠와 3위 NC 다이노스의 순위 다툼이 한창이었다. 팬들은 와일드카드전 대신 3위로 준플레이오프전을 치르기 바랐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롯데는 당시 정규 리그를 3위로 마쳐 준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그해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전에서 NC 다이노스와 5경기를 치르며 2승 3패로 아쉽게 탈락했다. 8년 전 신문을 찾아보며 올해는 잘하면 한국시리즈 진출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올 시즌 전반기 롯데는 예전과 달랐기 때문이다. 전반기 롯데는 47승 39패 3무, 승률 0.528로, 정규리그 3위에 올라 중위권 경쟁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전반기 롯데의 팀 타율은 0.280으로, 리그 1위를 찍으며 ‘공포의 소총부대’로 불렸다. 주장 전준우의 타율은 4월 0.284에서 6월 0.322까지 상승하며 팀 공격을 이끌었고, 빅터 레이예스는 리그 최다 안타로 팀 득점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했다. 마운드에서는 김원중이 안정적으로 뒷문을 책임졌으며 복귀한 최준용은 필승조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알렉 감보아는 6월에만 5승 무패, 평균자책점 1.72로 KBO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며 선발진 불안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무엇보다 황성빈, 윤동희 등 주전 선수들의 부상 공백을 신예들이 든든하게 채웠다. 장두성, 김동혁, 한승현, 이호준 등이 잇달아 나타나면서 팬들은 ‘마트료시카 야구’라는 애칭까지 붙여줬다. 롯데의 취약점이자 강팀의 조건인 선수층 뎁스가 강화됐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팀이 지고 있더라도 끝까지 따라붙어 기어이 경기를 뒤집는 폭발력, 몸에 공을 맞고도 박수를 치고 진루하는 젊은 선수들의 패기, 펜스에 몸이 부딪히는 것을 겁내지 않고 공을 쫓는 집요함…. 롯데는 지난 시즌과 완전히 다른 팀이었다. 하지만 외국인 투수 터커 데이비슨이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승리를 챙긴 8월 6일 이후, 롯데는 악몽같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 10승 투수를 시즌 후반 교체하는 승부수에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후반기 투수 교체는 롯데의 목표가 ‘가을야구를 넘어 한국시리즈’라는 것을 공표한 것이었다. 비장한 목표가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느껴졌을까? 이후 롯데는 충격의 12연패 늪에 빠졌다. ‘타격 좋은 팀은 투수 좋은 팀보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롯데 타선이 얼어붙어 급기야 8월에는 1할대까지 떨어졌고, 팀 순위도 6위로 추락했다. 여기에 롯데가 야심 차게 영입한 벨라스케즈는 6경기 24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10.50, 1승 4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내고 있다. 13일 선발 경기서 5실점 후 1이닝도 못 채우고 내려갔을 때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나올 정도다. 토종 에이스 박세웅은 불안하고, 홍민기와 이민석 등 전반기 활약했던 투수들도 부진에 시달렸으며 안정적인 클로저 김원중마저도 종종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어이없는 수비 실책이 더해지며 한때 가을야구 희망은 고사하고 하위권 추락을 걱정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롯데는 올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을까? 요즘은 매 경기마다 일희일비하게 된다. 최근 5연패를 가까스로 탈출한 롯데는 13일 오랜만에 살아난 타격으로 SSG를 12-11로 이기면서 5위로 다시 올라갔다. 하지만 끝까지 가슴을 졸이며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불안과 희망, 둘 다 놓을 수 없는 팬들의 심정은 역설적으로 사직야구장의 만원 기록을 낳고 있다. 올 시즌 롯데 사직구장에는 144만 명이 넘는 이들이 찾아 구단 역사상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으며, 최근 홈 경기는 연일 관중이 가득하다. 연애 고수의 ‘밀당’처럼 롯데의 들쑥날쑥한 경기력이 팬들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올 시즌 롯데 경기 중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많다. 펜스 위쪽으로 날아가는 공을 끝까지 쫓아가며 잡아내고야 말겠다는 김동혁의 의지가 만든 슈퍼캐치, 4시간 13분의 혈투 끝에 연장 11회 말에 나온 이호준의 짜릿한 끝내기 안타, 견제구에 맞아 피를 토하면서도 2루를 향해 몸을 던진 장두성, 시속 157km를 찍은 좌완 알렉 감보아의 역대급 강속구, 6점차로 패색이 짙었던 경기를 12대 7로 뒤집으며 대역전극을 펼쳤던 6월 12일 kt위즈전…. 올 시즌 최종 성적이 어떻게 마감되든지, 그 순간의 짜릿함과 뭉클함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고,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말을 주문 걸듯 되뇌며, 남은 롯데 경기를 지켜볼 것이다. 가을야구 희망을 안고, 혹시나 모를 울화병 진정을 위해 맥주와 함께.
기약 없는 완공·불어난 사업비… ‘덫’에 걸린 북항
정부, 추석 농축수산물 할인에 900억 푼다
부산 산재 사망 80%, 50인 미만 소규모 업체서 발생
랜드마크는 유찰·트램은 하세월… 북항 미래는 안갯속
해양 인재 육성 못하면 '해양수도 부산'은 한낱 꿈 [부산, 대한민국 해양수도]
“부산 발전 원한다면 해수부 강화해야” [국힘 지도부 부산 방문 마무리]
주 4.5일제 도입… 정부 독려에 금융노조 깃발 들었다 [커버스토리]
인사 체계 개편 나선 소방, 승진·징계·의전 모두 한 사람이 맡는 구조 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