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3 지방선거 부산 여야 박빙의 승부, 투표 중요성 커진다
6·3 지방선거가 8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부산에서 여야가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일보〉는 지난 23~24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부산시장 선거, 북갑 국회의원 보궐 선거, 교육감 선거, 기초단체장 선거 등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부산시장 후보 지지율은 민주당 전재수 후보 47.4%,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 41.5%, 개혁신당 정이한 후보 3.5% 순이었다. 북갑 보궐 선거에서는 무소속 한동훈 후보 38.2%, 민주당 하정우 후보 34.0%, 국힘 박민식 후보 23.3% 순으로 나타났다. 28일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공표가 금지돼 이번 조사 결과가 부산 지방선거 판세를 예측하는데 유의미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부산시장 지지율은 전재수 후보가 1위를 유지하되 격차가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전 후보는 40~50대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박형준 후보는 30대 이하와 60대 이상에서 1위를 차지했다. 두 후보의 지지율은 여당의 ‘국정 안정론’(47.1%)과 야당의 ‘정권 견제론’(41.6%)과 판박이였다. 전 후보는 해양수산부와 HMM 본사 이전 등 자신의 성과가 집권 여당 프리미엄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각한다. 박 후보는 ‘힘 있는 야당 3선 시장’으로 거듭나 이재명 정권의 연성 독재로부터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겠다는 프레임으로 지지를 호소한다. 서부산권과 중도층에서 표심 이동 조짐이 감지되고 있어 이들 민심을 잡는 후보가 선거 막판 주도권을 쥘 공산이 크다. 전국적인 시선을 모은 북갑 보궐선거에선 최근 상승세를 보인 무소속 한동훈 후보가 3자 구도에서도 민주당 하정우 후보와 오차범위 내 접전을 펼친다는 여론조사 흐름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부산교육감 지지율에선 ‘진보’ 김석준 후보가 39.4%로 정승윤(15.7%), 최윤홍(13.3%) 보수 성향 후보를 압도했다. 해운대·기장·부산진·사상 4곳에서 실시한 기초단체장 조사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모두 선두를 달렸다. 서부산은 물론 동·중부산 지역도 비슷한 흐름이어서 국민의힘이 압승한 4년 전과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기장군, 사상구의 경우 무소속 후보 지지율이 10% 안팎을 보여 보수 진영 단일화 논의가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부산 지방선거는 박빙 승부로 흐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오는 29~30일 사전 투표가 실시되는 만큼 표심을 잡기 위한 여야 후보들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이는 지역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후보들이 이전투구가 아닌 선명한 정책과 비전 대결을 펼치게 하려면 유권자들이 막판까지 지켜보고 투표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산 지방선거의 장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만큼, 유권자들도 적극적으로 투표에 동참해야 한다. 냉소와 무관심에서 벗어나 지역 발전을 이끌 제대로 된 ‘지역 일꾼’을 뽑는데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사설] 우리 동네 작은 시장을 활성화해야 골목상권이 살아난다
새벽 배송을 앞세운 온라인 배달 플랫폼의 진격에 대형마트와 기업형 유통 점포만 고전하는 게 아니다. 전통시장 역시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문제는 규모와 입지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하는 점이다. 자갈치·국제·부평깡통·해운대시장 등 유명 대형 시장은 관광 코스로 입지를 굳혀 인파가 몰리며 번성한다. 하지만 소형 골목 시장은 위축 일로를 걸으며 존재감을 잃고 있다. 부산 전통시장 190곳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0곳이 점포 수 100개 미만으로 영세한 규모이고, 이들 다수는 공실 증가와 매출 감소, 상인 고령화라는 삼중고에 시달린다. 골목상권을 매개로 지역민의 기억과 관계가 쌓인 공동체 기반이 허물어질 위기에 놓였다. 인구와 소비 구조 변화가 쇼핑 행태를 바꾸면서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매장의 도미노 폐점이 이어졌다. 도심에서 ‘식품 사막’ 현상이 나타날 정도였으니 장바구니 수요가 생활권 전통시장으로 몰릴 법도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시장은 주문·배달 중심으로 바뀐 소비 행태 변화에 둔감하고 1인 가구 맞춤 전략도 미비하다. 상인 고령화와 영세성도 변화를 더디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의 플랫폼 의존은 되레 강화되는 추세다. 부산시가 전통시장 부활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지만 실효성이 제한적인 이유다. 골목상권을 살리려면 관광형 대형 시장 중심 정책에서 자부담 조건조차 버거운 영세 상인 맞춤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부산 동구 수정시장 사례는 작은 시장도 혁신을 통해 동네 상권의 중심으로 도약할 가능성을 보여 준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수정시장 상인들은 서울 광장시장 등을 방문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생존 전략을 짜고 있다. 그중 핵심은 예전처럼 많이 사면 싸게 준다는 방식으로는 1인 가구를 붙잡을 수 없다는 자각과 새로운 판매 방식의 도입이다. 생선 1인분, 채소 1000~2000원 단위 소량화, 참기름 로스팅별 판매가 그 사례다. 해양수산부 이전 이후 젊은 상인의 유입도 75년 역사의 수정시장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주민 밀착 전략이야말로 생활권 시장의 생존 해법임을 보여 주는 사례다. 부산시의 전통시장 지원 대상 103곳 중 점포 수 100개 미만은 35곳이다. 실제 지원이 필요한 소형 시장의 비율이 낮은 이유가 지원 문턱이 지나치게 높은 탓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체력이 약한 영세 시장이 각자도생의 어려움을 겪는 동안 실적을 내기 수월한 관광형 대형 시장만 주목받아서는 골목상권의 균형을 회복할 수 없다. 자부담 비율을 낮춘 사업 확대, 공동 배송과 온라인 주문 지원, 1인 가구 맞춤 상품 개발, 청년 상인 유치, 빈 점포 활용, 생활권역 공공기관·기업체 연결 상권 전략 등 세밀한 전략으로 위기의 골목상권을 되살려야 한다. 골목 안 작은 시장에도 다시 사람의 발길과 장날의 활기가 돌아와야 부산 경제의 뿌리가 살아난다.
[사설] 폭행에 원정 성매매, 진흙탕 싸움 벌이는 울산시장 선거전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수도다. 1962년 국내 최초의 특정공업지구 지정을 시작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하면서 국가 경제 발전을 견인했다. 현재도 울산은 현대자동차와 HD현대중공업 등 국가 경제의 초석인 글로벌 수출 기업들이 대거 포진했다. 울산은 특히 SK와 글로벌 빅테크 아마존이 함께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건립에 나서는 등 AI 수도로 발돋움하고 있다. 따라서 차기 울산시장은 지역은 물론 국가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리더십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울산시장 선거전 양상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네거티브 공방 등이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상욱 울산시장 후보는 ‘필리핀 원정 성매매’ 의혹에 휩싸였다. 김 후보는 가로세로연구소의 주장에 대해 분명한 허위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지만 논란은 갈수록 불거지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은 “도덕적 흠결로 가득 찬 후보를 내세운 건 선거 모독”이라며 파상 공세를 퍼붓고 있다. 재선을 노리는 국힘 김두겸 울산시장 후보는 유세 현장에서 취재진을 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후보 측은 “얼굴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며 무리한 취재를 강행했다”며 “신체적 위협을 막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적 손짓”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 등은 “심각한 도덕성 결핍을 보여준다”고 비판하고 있다. 후보 등록 직전까지 울산시정을 이끈 김두겸 후보와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김상욱 후보의 맞대결은 당초 모범적인 정책 선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양측 모두 울산 현안 등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치열한 정책 대결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더욱이 선거 초반 출정식에서 김상욱 후보는 통합과 실용, 유능한 지방정부를, 김두겸 후보는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의 완성을 각각 기치로 내걸면서 시민들의 열망에 부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선거를 10일 남겨둔 현재 양 후보 측의 행태는 무척 실망스럽다. 선거 후반전으로 갈수록 진영 논리를 앞세운 세 결집에 더 치중하는 것도 좋은 모양새로 비춰지지 않는다. 울산은 부자도시로 꼽히지만 지역 경제 상황은 암울하다. 주력이었던 중화학 산업의 몰락 등으로 도심엔 임대 매물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권 일극주의로 인한 인구 유출 가속화, 양극화된 노동자 임금 체계로 인한 불만 팽배 등은 도시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차기 울산시장은 이런 불안 요인을 해소하고 산업 구조 전환과 고도화 등의 현안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 등 신산업을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연결, 청년들이 떠나지 않는 활력 넘치는 도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소임이다. 여야 울산시장 후보들이 상호 비방을 멈추고 지역을 도약시킬 공약과 정책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길 촉구한다.
마음·부처·중생 '무차별'
불교에서는 흔히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여기서 마음은 본래면목(本來面目), 즉 분별심이 일어나기 이전의 본래 마음을 뜻한다. 그 연장선이 “본래면목을 보면 부처를 보리라”는 말이다.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고 자기 안의 본성을 깨달으라는 뜻이다. 부처는 먼 곳에 있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누구나 본래 지니고 있는 마음의 본성 안에 있음을 일깨운다. 탐진치, 즉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가려져 있을 뿐, 본래의 맑은 마음을 바로 보면 곧 부처의 세계를 본단 얘기다. 그러니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 것이다. 고려의 고승 지눌은 “깨달음은 먼 데 있지 않고 자기 마음을 바로 보는 데 있다”고 했다.“중생이 곧 부처다”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평범한 사람들 안에도 이미 부처의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불교는 이를 거울에 비유하곤 한다. 먼지가 쌓이면 얼굴이 비치지 않지만, 거울 자체가 망가진 것은 아니다. 닦아 내면 본래의 맑은 빛을 되찾듯 중생의 마음도 본래는 맑고 밝지만 욕심과 분노, 집착이 이를 가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본성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의 먼지를 얼마나 걷어 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이를 아우르는 말이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이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본래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중생은 무지와 욕망에 갇혀 있고 부처는 그것을 벗어나 해탈한 존재이지만, 마음의 근원에서는 둘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 생각 돌이키면 중생의 마음 또한 부처의 마음과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화엄경에 나오는 이 구절은 불교의 핵심 사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이 최근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어에서 이 구절을 꺼냈다. 스님은 현대 사회의 극심한 갈등과 불안의 원인을 ‘원만한 본성’, 곧 본래면목을 보지 못하는 데서 찾으며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조금도 차별이 없다는 안목으로 세상을 보라”고 당부했다.선거철만 되면 유독 세상은 더 소란스럽다. 상대를 향해 비난하고 자신만 정의롭다고 외친다. 하지만 정작 자기 마음의 먼지를 돌아보는 데는 인색하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사람은 누구나 욕심과 집착, 분노의 먼지를 안고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남의 허물을 탓하기보다 자기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부처님 오신 즈음에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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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성과와 보상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보다 ‘삼전닉스’가 더 화제다. 두세 명만 모여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이야기가 빠지는 법이 없다. 주가 이야기를 할 때는 주식을 전혀 모르던 사람조차 텐배거(10배 이상 수익률)니 하는 말에 솔깃할 수 있었는데 이어나온 억대 성과급 뉴스에는 그만 허탈해지는 분위기다. 특히 비수도권 월급쟁이들에게는 로또 당첨이 아니면 상상하기 힘든, 제 연봉보다 몇 배는 많은 반도체 대기업의 성과급은 박탈감조차 들먹이기 어려울 정도로 ‘딴 나라 이야기’다. “마음이 무겁다.” 어렵게 노사협상이 타결되고 노조 투표 중인 삼성전자 성과급과 관련해 중소기업중앙회가 낸 논평이 그나마 가까운 감상이다. 중기중앙회는 “삼성전자 노사협상을 지켜본 중소기업 근로자와 사업주는 마음이 무겁다”며 “수억 원에 달하는 성과급 논쟁에서 협력 중소기업에 정당한 대가와 보상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임금 격차는 그렇지 않아도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해 사업체노동력조사를 분석해보면 반도체 업종이 포함된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에서 300인 이상 상용근로자는 월 942만 원, 300인 미만 임시일용근로자는 월 176만 원을 받아 사업장 규모나 고용 형태에 따라 다섯 배 넘게 차이가 났다. 삼전닉스의 대규모 성과급 사태로 이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기존 양극화와 다른 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구분을 넘어 극소수 대기업에 이익이 쏠리는 구조다. 1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은 국내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의 60%를 넘겼다. 같은 기간 수출에서도 상위 10개 기업이 처음으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전체 수출 기업 6만 7531개 중 단 0.015%가 국내 수출 절반을 책임지고 있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군에서 상대적으로 더 큰 박탈감을 호소한다. 삼성전자처럼 한 기업 내에서도 사업 부문에 따라 성과급이 갈리는 합의안에 노노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같은 명문대를 나와 삼성전자에 간 동기들을 보면서 씁쓸해하는 다른 대기업 직원, 메모리사업부의 성과는 산업 특성과 구조적 요인 덕분이지 직원들의 노력이 달랐던 건 아니라는 삼성전자 직원의 이야기도 보도됐다. 이와 같은 반응은 2020년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소위 ‘인국공’ 사태를 전후해 대두된 공정과 능력주의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그 때의 ‘공정’ 담론이 시험을 불변의 잣대로 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불공정이라고 비판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AI) 시대와 반도체 초호황이라는 구조적인 변수가 기존의 잣대를 뒤흔들고 있다. 이대로라면 극단적인 양극화와 산업 편중, 끝없는 비교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불행한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삼성전자 노조 조합원의 합의안 투표는 27일까지다. 정부까지 중재에 나서고 글로벌 공급망이 숨죽인 논란은 기업 차원에서는 일단락될 것이다. 그 중심에는 ‘기업의 성과는 누구의 것이고, 투명한 보상 체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삼성전자 노사는 나름의 답을 찾았고, 협력업체 동반성장, 지역사회 공헌, 산업안전 등을 위한 재원 조성과 운영계획 등 상생방안도 내놓기로 합의했다. 다음은 국가의 차례다. AI 시대에 사회가 산업의 성과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기준으로 보상 또는 배분할지 물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성과는 기업의 성과인 동시에 정부의 세액 공제와 지역사회 자원을 토대로 성장한 국가전략산업의 성과다. 청와대 김용범 정책실장이 반도체 기업의 역대급 이익으로 인해 발생할 초과 세수를 격차 완화와 미래 사회 안전망의 재원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 배경이다. ‘국민배당금’이라는 표현 때문에 논란이 됐지만, 올해 국가 전체의 법인세수 목표치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만으로 채워지는 상황에서 세수 활용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김 실장은 구체적으로 청년 창업 자산, 농어촌 기본소득, 노령연금 강화, 예술인 지원, 인공지능 시대 전환 교육 계좌 등을 들면서 “백가쟁명식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교화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 과정에서 지역 격차 완화는 재정투자의 주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지역 격차는 여러 구조적인 불평등의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는지에 따라 일자리와 임금이 달라지고, AI 활용과 생산성까지 차이가 난다면 정부는 그 격차를 메우는 데 재정을 투입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해 실업을 당할 기회조차”(국립부경대 홍장표 명예교수, 〈한겨레〉 인터뷰) 없는 청년들도 자부심을 갖고 성과를 내고 제대로 된 보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노트북 단상] 혐오 표현을 혐오한다
‘노무한 박수’, ‘5·18 탱크 데이’. 혐오 표현이 세상을 강타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조롱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는 얼마 전만 해도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시민이 찾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프로 스포츠 구단 유튜브 채널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음지에서 극단의 성향을 가진 누리꾼들끼리 주고받던 혐오가 양지로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 롯데 자이언츠 유튜브 ‘자이언츠TV’에는 ‘[HOTDUG] 박세웅의 호투에 응답하는 득점’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영상에는 지난 10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 모습이 담겼다. 문제의 장면은 덕아웃에서 롯데 노진혁 선수가 윤동희 선수의 안타 장면에서 박수를 치는 장면에서 나왔다. 박수를 치고 있는 노 선수의 유니폼 뒷면 이름에 ‘무한 박수’라는 자막이 삽입됐다. 이름 중 ‘진혁’을 가리고 자막이 달려 ‘노무한 박수’로 읽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18일을 ‘탱크 데이’라고 프로모션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무지, 무시, 폄훼가 담긴 프로모션이었다. 원래 있던 '탱크 텀블러'라지만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시민들은 스타벅스를 불매하고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까지 나서 사과했지만 ‘탈벅’ 행렬이 이어지고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혐오 사건에서 심각한 점은 위장된 혐오와 조롱이라는 점이다. 양지로 나온 혐오 표현은 명확성이 덜하기 때문에 제재가 쉽지 않다. ‘노무한 박수’라는 표현 속 노무의 온라인 쓰임새를 아는 사람은 혐오를 즉각 인지한다. 하지만 맥락을 모르는 사람은 인지가 쉽지 않다. 아는 사람 사이에서만 통하기 때문에 명백한 혐오 표현이지만 법적 처벌이 쉽지 않다. 지금 상황에서 각 기업들의 사과는 법적 제재를 우려해서라기보다는 기업 이미지를 우려한 사과에 무게가 실린다. 우리 사회의 대응도 비슷하다. 법적 제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건 지금처럼 스타벅스 불매 운동이 전부다. 분명히 혐오라는 가해를 했지만 책임지는 주체가 없는 일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양지로 나온 혐오 표현을 이번 기회에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최소한 공적 영역에서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행위에는 단호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안한 징벌 배상, 과징금 공론화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의 침해에 대한 논의도 이어질 수 있다. 무조건적으로 모든 표현을 막는 방식이 돼서는 안된다. 다만 핵심은 혐오는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곧 혐오 콘텐츠들은 연성화를 거쳐 지금보다 ‘세련된’ 모습을 갖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혐오는 지금보다 더 공적인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더 자유롭게 유통될 것이다. 그때는 누구도 혐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을 것이다. 혐오를 혐오할 마지막 골든타임이 흐르고 있다.
[중앙로365] 당신의 한 표는 부산의 '생존 매뉴얼'이다
오는 6월 3일, 부산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라는 중대한 분수령을 맞이한다. 새 정부 출범 1년을 지나는 시점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 소멸의 임계선 앞에 선 부산의 미래를 결정짓는 자리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누가 돼도 내 삶은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가 흐른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가 손에 쥔 ‘선거권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을 때, 그 냉소의 비용은 고스란히 내 일상과 지역 사회로 배달된다. 가전제품 하나를 살 때도 우리는 설명서를 정독한다. 잘못 다루면 고장이 나고, 사람이 다치기 때문이다. 하물며 향후 4년간 부산의 해묵은 숙제를 풀어갈 ‘일상의 경영자’를 뽑는 일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 부산의 자화상은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수식어에 압축돼 있다. 부산은 2021년 특·광역시 가운데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5%를 넘어섰다. 광역시 최초로 ‘소멸위험지역’ 단계에도 들어섰다. 청년이 수도권으로 떠난 빈자리는 적막이 채우고 있다.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노인이 사투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잡고도 결국 뼈만 남긴 채 항구로 돌아왔듯, 부산이 추억의 잔해만 부둥켜안은 도시로 남는 일은 막아야 한다. ‘아파트’로 대변되는 정주 여건의 양극화도 시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든다. 우후죽순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들이 부산의 상징인 바다 조망권을 사유화하는 사이, 원도심 노후 주거지는 재개발의 덫에 걸려 공동화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과 연안 침식, 폭염과 폭우의 일상화는 ‘바다를 품은 도시’ 부산의 안전을 정면으로 위협한다. 기후 위기는 자연현상이지만, 도시의 대비와 적응 수준은 정책의 영역이다. 이번에 선출될 시장과 구청장, 국회의원은 이 난제를 풀 실질적 권한을 위임받는다. 예산 편성과 인사, 입법과 조례 제정이라는 강력한 도구가 모두 이들의 손끝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노인 복지 예산의 효율적 배분, 산업은행과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의 완수, 북항 재개발과 가덕도신공항 적기 개항, 북극항로 환적 거점화, 부산형 급행철도(BuTX) 구축, 그리고 난개발을 막는 도시계획 수립이 모두 이들의 결정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부산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지역주의 정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30여 년 전 한 복국집에서 시작된 이 구호는 지금도 선거철이면 부산 시민의 합리적 선택지를 좁히는 보이지 않는 족쇄로 남아 있다.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단순한 연결고리만으로 특정 후보를 칭찬하거나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일은 위험천만하다. 그들이 쥐는 권한은 모든 통치 행위의 향방을 가르고, 한 개인의 강점과 약점이 그대로 시정과 국정의 역량과 한계로 옮겨와 내 삶과 지역 공동체 전체를 한꺼번에 바꿔놓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같은 학교 동문도, 같은 고향 향우도, 같은 정당 지지자도 아니다. 신공항이 늦어지면 함께 손해 보는 시민이고, 청년이 떠나면 함께 늙어가는 부모이며, 바다가 병들면 함께 위협받는 이웃이 진짜 ‘우리’다. 이 매뉴얼의 첫 경고문은 그래서 분명하다. 단순한 연고와 정서적 일체감만으로 결정 버튼을 누를 때, 오작동의 책임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있다. 매뉴얼의 본문에는 세 가지 검증 항목이 담겨야 한다. 첫째, 후보의 과거 행적이다. 무엇을 약속했고, 무엇을 지켰으며, 무엇을 어겼는지를 사실에 근거해 살펴야 한다. 둘째, 현재 행보의 정합성이다. 내건 공약이 부산의 현안과 맞물리는지, 재원 조달 방안은 구체적인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셋째, 미래의 직무 수행 역량이다. 위기 앞에서 권한을 사익이 아닌 공익에 쓸 인물인지, 그의 강점과 약점이 부산의 과제와 어떻게 맞물릴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인상과 분위기라는 신기루가 아닌, 사실과 검증이라는 견고한 언어가 매뉴얼의 본문을 채워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권한의 오작동을 막고 부산의 4년을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다. 권력의 진짜 주인은 투표하는 시민이다. 향우회나 동호회의 회장직조차 결국 한 사람의 몫이고, 그 사람이 모임의 향방을 가른다. 하물며 시민의 일상을 4년간 좌우할 자리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6월 3일,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후보는 ‘노인’을 예우하며 ‘청년’의 미래를 열 혜안이 있는가. ‘바다’를 공존의 자산으로 지켜낼 의지가 있는가. ‘아파트’ 숲에 가려진 시민의 권리를 회복할 역량이 있는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권력을 올바르게 작동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주권자의 준엄한 한 표뿐이다. ‘진짜 일꾼’을 가려내는 수고로움이야말로 향후 부산의 일상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생존 매뉴얼이다.
[편집국에서] '별다방'과 '멸공커피'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다시 펼쳐 본다. 2024년 한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2년 연속 연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작품이다. 이 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국민이 5월 광주의 아픔에 눈물 흘리며 공감했던가. 그런데 올 5월, 국내 대기업이 최대 주주인 한 커피 프랜차이즈가 말도 안 되는 판촉 행사를 벌여 공분을 샀다. 바로 스타벅스코리아가 지난 18일 선보인 ‘탱크데이’ 텀블러 프로모션이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데이’라니,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해당 이벤트 게시물엔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등장했다. 이쯤 되면 문제의 마케팅이 단순한 실수가 아닌, 명백한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모티브가 된 인물, 고 문재학 열사의 누나 문미영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탱크’라는 용어를 듣는 순간 정말 소름이 돋았다”며 “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가 탱크와 군홧발로 얼마나 많은 광주 시민과 학생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번 사태가 실무 직원의 단순한 일탈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조직 내부 의사 결정과 정책 집행 과정, 최고경영자의 역사 인식을 문제 삼았다. 그동안 ‘별다방’이라는 친근한 별칭을 얻으며 사랑받던 스타벅스는 순식간에 ‘멸공커피’로 전락하며 불매운동 대상이 됐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이 과거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멸공’과 관련한 발언을 하며 수차례 논란을 일으켰던 게 브랜드 이미지를 타격했다. 소비자들은 스타벅스 머그컵과 텀블러를 파손하는 영상을 SNS에 올리며 불매운동 동참을 선언했다. 경조사 답례품으로 인기를 끌었던 스타벅스 모바일 쿠폰을 환불받는 법을 공유하거나 스타벅스 앱을 삭제했다며 ‘탈벅(탈스타벅스)’ 인증을 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충전 금액의 60% 이상을 사용해야만 잔액을 환불받을 수 있는 선불카드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결국 스타벅스는 ‘카카오톡 선물하기’ 교환권 전체 인기 순위에서 7년간 지켜온 1위 자리를 24일 배달의민족에 내주고 말았다. 불매 움직임은 신세계그룹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일부 소비자는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탈팡(탈쿠팡)’해 이마트를 이용해 왔는데, 이제 그마저도 끊어야 할 판이라고 토로한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스타벅스 본사의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이어질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앞서 2021년 이마트는 스타벅스 본사가 보유한 스타벅스코리아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며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계약에는 이마트의 귀책 사유로 라이선스 계약이 해지될 경우 스타벅스 본사가 35% 할인된 가격으로 관련 지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정용진 회장과 손정현 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는 시민단체와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들에게 고발까지 당한 상태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위반과 모욕, 명예훼손 등의 혐의다. 서울경찰청이 맡은 두 건의 고발은 연휴 중에도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극우 세력은 스타벅스를 옹호하고 나서는 모습이다. SNS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스타벅스 탱크 텀블러를 들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영상과 스타벅스 머그컵을 든 전 대통령의 포스터 등이 퍼지고 있다. 2019년 무신사 ‘고문치사 카피’ 사태도 재조명됐다. 무신사는 당시 양말의 빠른 건조 성능을 강조하기 위해 ‘속건성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문구를 사용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무신사는 지난 20일 재차 사과문을 내고 “7년 전의 뼈아픈 과오는 무신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엄중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며 “앞으로도 올바른 역사 인식과 책임 있는 자세로 고객 여러분을 마주하겠다”고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정용진 회장도 지난 19일 “있어서도 안 되고 용납될 수도 없는 부적절한 마케팅을 진행했다”며 서면으로 사과한 바 있다. 그러나 사그라들지 않는 비판 여론을 보면 대중은 이런 사과가 충분치 않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스타벅스가 극우의 상징 ‘멸공커피’로 남을지, ‘별다방’으로 불렸던 예전의 친근한 이미지를 되찾을지는 향후 대응에 달렸다. 진심 어린 사과와 진상 조사,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박혜랑의 취재海랑] 수산종자 전쟁시대
수산업이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전환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지난해 국내 양식어업(해면양식업)의 생산량은 총 253만 277t으로, 지난해 우리나라 수산물 전체 총생산량 393만 4971t 중 약 64.3%를 차지했다. 이 같은 흐름은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더 가속화되고 있다. 변수가 많은 바다를 벗어나, 바다 생태계를 육지에 그대로 이식함으로써 안정적인 생산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종자다. 종자를 확보해 일정 비율 이상의 부화율을 달성하고 대량생산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양식업의 핵심이다. 하지만 남획과 해양환경 변화 탓에 종자 확보가 쉽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장어다. 우리가 먹는 민물장어는 치어인 실뱀장어를 키워서 만든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완전양식 기술이 상용화되지 못한 국내에선 실뱀장어를 자연 채집에 의존하고 있다. 자연 채집으로 채우지 못하는 부족분 80%가량은 수입한다. 하지만 최근 실뱀장어 개체수가 급감하면서,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에 실뱀장어가 포함될 가능성마저 나온다. 이렇게 되면 실뱀장어 수입이 불가능하게 되는데, 다행히 지난해 유럽연합(EU)이 제안한 뱀장어 국제거래 규제안이 CITES 당사국 총회 전체회의에서 최종 부결돼, 3년이라는 골든타임을 얻게 됐다. 하지만 업계는 차기 CITES 총회에서 해당 규제안이 재상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종자 기술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이미 일본은 앞선 시장이다. 일본은 상업화 직전까지 기술을 개발했으며, 이제는 단가 인하 작업만 남았다. 일본 정부는 30년 전부터 국산화 기술 개발에 나서, 2010년 세계 최초로 뱀장어 완전양식에 성공했다. 완전양식이란 자연산 실뱀장어가 양식장에서 자라 어미가 되면 새끼(인공 1세대)를 낳고, 이 새끼가 다시 양식장에서 자라 새끼(인공 2세대)를 낳는 것을 말한다. 양식장에서 부화한 뱀장어가 새끼까지 낳는 사이클이 온전히 돌아야 완전양식으로 인정된다. 이미 이에 성공한 일본이 대량생산기술 확보로 단가까지 낮추면, 엄청난 우위를 선점하게 된다. 이는 장어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국내 소비자들의 선호가 높은 연어나, 참다랑어 양식도 마찬가지다. 수산 종자는 단순히 ‘기르는 어업’의 출발점을 넘어, 향후 국가 식량 안보와 해양 주권을 좌우할 핵심 전략 자산이다. 일본이 30년 전부터 국가적 역량을 쏟아부어 상업화 문턱에 도달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규제가 현실화되고 시장을 선점 당한 뒤에 나서는 사후약방문식 지원으로는 뒤집기 힘든 격차가 우려된다.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원팀이 되어 종자 국산화와 대량생산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다.
[오션 뷰] 부산의 다음 바다는 '블루 제너레이션'
최근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부산시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 수가 역대 최단 기간에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K팝과 K콘텐츠가 촉발한 세계적 관심은 이제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은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도시다. 바다와 도심이 맞닿아 있고, 항만과 해변, 산복도로와 야경이 하나의 풍경 안에 공존한다. 밤이 되면 광안대교의 불빛과 해운대의 마천루, 광안리 앞바다의 요트와 드론쇼는 부산만의 독특한 장면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과는 다른 개방감과 해양도시만의 분위기를 경험하기 위해 부산을 찾는다. 부산시 역시 오래전부터 해양관광도시를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왔다. 수영만 요트경기장을 중심으로 한 마리나 인프라 조성과 국제보트쇼, 북항 재개발과 워터프런트 사업, 해양레포츠 육성사업 등 부산은 지속적으로 바다를 도시 성장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하려 노력해 왔다. 이러한 노력은 일정 부분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 조사에 따르면 해양레저 체험 관광객의 80% 이상이 1박 이상 체류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서핑과 SUP, 요트 세일링과 같은 체험형 콘텐츠일수록 체류 시간이 길어지는 경향도 확인됐다. 관광의 흐름 역시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유치했는가보다 얼마나 오래 머물게 하고 깊은 경험을 제공하느냐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현실 속 부산의 해양관광은 여전히 ‘관람형 소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광안리와 해운대의 야경을 감상하고, 전통시장과 카페를 찾으며, 스카이캡슐을 타고 해안 풍경을 즐긴다. 그러나 요트나 서핑 같은 본격적인 해양 레저 콘텐츠를 실제 경험하는 비율은 아직 높지 않은 편이다. 문제는 단순히 콘텐츠 숫자가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부산의 해양관광이 여전히 시설과 하드웨어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마리나와 워터프런트 개발은 계속되고 있지만, 시민과 관광객이 일상적으로 접근하고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생활형 해양문화 구조’는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 부산의 대표적인 해양 거점들이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수영만 요트경기장은 현재 글로벌 해양관광 거점으로 거듭나기 위한 재정비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운촌항 역시 부산 해양관광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뛰어난 바다 경관과 해운대·청사포를 연결하는 입지를 갖고 있지만, 과거 추진됐던 마리나 사업이 충분한 동력을 얻지 못하면서 현재는 제한적인 계류 기능 중심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재 당면한 거점들의 노후 인프라와 부족한 하드웨어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한편, 그 공간을 시민과 관광객의 구체적인 경험, 그리고 도시의 라이프 스타일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운영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세계적인 해양도시들이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의 요코하마는 산업과 무역 중심의 항만도시에서 시민과 관광객이 바다를 직접 경험하는 워터프런트 도시로 변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요코하마 베이사이드 마리나는 약 1500척 규모의 일본 최대급 마리나로 운영되고 있으며, 요트 체험과 크루즈, 수변 레스토랑과 쇼핑, 야간 콘텐츠가 하나의 도시 경험처럼 연결돼 있다. 실제로 요코하마는 연간 4600만 명 이상이 찾는 일본 대표 관광도시로 성장했고, 관광객들은 실제 바다 위에서 시간을 보내며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한다. 반면 지금 부산의 바다는 아직 ‘사용하는 바다’보다는 ‘바라보는 바다’에 가깝다. 부산은 아름다운 바다를 보여주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바다를 시민과 관광객의 실제 경험으로 연결하는 데에는 아직 더 많은 상상력과 촘촘한 연결 구조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부산에는 ‘블루 제너레이션’이라는 새로운 도시 감각이 필요하다. 블루 제너레이션은 단순히 해양산업 종사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바다를 풍경이나 관광 자원이 아니라 삶과 문화, 경험과 산업이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플랫폼으로 받아들이는 미래 세대를 뜻한다. 결국 앞으로의 해양도시 경쟁력은 얼마나 거대한 항만을 가졌느냐보다, 얼마나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사람과 바다의 관계를 연결하고 그 경험을 다음 세대의 삶 속에 녹여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부산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견인해온 대표적인 항만도시다. 이제는 그 바다 위에서 사람들이 머물고 경험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부산의 미래는 더 이상 바다를 얼마나 잘 보여주느냐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는 그 바다 위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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