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6·3 지선 부울경 미래는 안 보인다
6·3 지방선거가 불과 3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지역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상한 선거가 이어지고 있다. 주요 정당의 공천 완료로 대진표가 확정되고 선거전이 본격화했지만, 보궐선거 과열 등 중앙 정치의 세 대결 구도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과 울산, 경남의 시장·도지사 선거는 국민의힘 현역이 수성하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공략하는 구도로 짜였다. 기초단체장 대결도 비슷한 패턴이다. 문제는 지역의 미래 비전을 놓고 벌어지는 경쟁은 보기 드물고 진영 간의 대리전과 단일화 등의 정치공학만 난무하는 점이다. 동네 일꾼은 지역의 미래를 약속하고, 지역 유권자들은 차분히 선택하는 본연의 지방선거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이번 지선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 1년 만에 치르는 전국적 규모의 선거여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라는 성격이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여론조사를 보면 보수 정당이 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 선거 결과에 따라 정계 개편 등 정국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2018년 압승 신화의 재연을 노리고, 야당인 국민의힘 등은 지방 권력까지 내줄 수 없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 같은 여야의 정략과 충돌 구도가 지방선거 전반을 뒤덮으며 중앙 정치의 논리만 증폭되고 있다. 그 결과 지역 공약을 정성껏 준비한 풀뿌리 후보들의 목소리는 뒷전으로 밀리고 유권자들은 선택권을 행사하기 힘든 처지에 놓였다. 인구 감소와 산업 기반 약화로 지방은 생존조차 위협받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탈출하는 청년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행정과 교육의 수장을 뽑는 지방선거는 지역의 미래 전략을 치열하게 겨루는 장이 되어야 마땅하다. 지역의 일꾼을 자처한 후보자들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신성장 산업 유치와 기존 노후 제조업 혁신 방안을 놓고 격하다 싶을 정도로 토론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바라는 정책과 비전은 실종되고, 지역의 절박한 미래 과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진영 대결로 흐르는 지방선거로는 결코 지역의 생존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여야의 반성과 지역 유권자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이번 부울경 선거에 전국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 전재수 후보와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맞붙는 부산시장 선거를 비롯해 경남, 울산의 향방이 정국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부산 북갑 보궐선거까지 최대 승부처로 부상했다. 하지만 6·3 지선은 중앙 정치의 연장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결정짓는 장이어야 한다. 여야는 풀뿌리 후보들이 애써 마련한 지역 공약이 가려지는 정치 공학을 중단해야 한다. 후보자 자신도 정치 기류에 기대지 말고 공들인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것이 유권자의 선택 왜곡을 막는 길이다. 특정 정당의 유불리가 아닌 부울경의 생존과 도약을 토론하는 지방선거를 만들어야 지역이 살 수 있다.
[사설] 지방분권 핵심 빠진 39년 만의 개헌, 무슨 의미가 있나
현행 헌법의 개정 필요성은 숱하게 언급됐으나 지난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본격적으로 거론됐다. 당시 대선 후보 대부분이 개헌 필요성 뿐만이 아니라 권력구조 개편과 지방분권 등과 관련한 내용 위주의 개정을 언급한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언급한 뒤 취임 이후인 지난해 9월 개헌을 ‘1호 국정과제’로까지 격상시키도 했다. 그렇게 탄력을 받고 1987년 이후 39년 만에 구체적으로 부상한 헌법 개정 논의가 두 가지 이유로 길을 잃고 있다. 하나는 헌법 개정안의 핵심 의제인 지방분권 실종이요, 다른 하나는 지방선거와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기한 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의 불투명성이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국회 원내 정당들이 주도해 내용을 잡은 헌법 개정안은 지난달 3일 발의됐다. 내달 지방선거와 동시 실시를 목표로 한 개헌 찬반투표에 올릴 개정안은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의 전문 명시와 계엄 통제 강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 이외에 개헌 제안 이유서에까지 밝힌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은 구체적 내용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현행 헌법의 지방자치 규정과는 별도의 장에다 균형발전 의무를 슬쩍 끼워 놓고는 국가 시혜 형식의 지역경제 육성 의무만 언급했을 뿐이다. 취약한 지방 재정과 권한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언급도 없다. 범여권은 일단 개헌의 물꼬를 트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현실론을 들고 있다. 부마민주항쟁 정신의 헌법 전문 명시만 해도 큰 진전이라며 야권에 개헌안 국회 표결 시한인 오는 7일까지 의결 동참을 촉구하기도 한다. 범여권의 절대적 국회 의석 수에도 불구하고 개헌을 위한 의결 정족수인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엔 야권의 협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야권은 ‘선거용 졸속 개헌’이라는 명목으로 당론으로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야권의 명목이 다소 옹색한 감이 있었으나 개헌안의 구체적인 내용에서 지방분권과 관련한 미비점이 드러나면서 야권의 명목에 오히려 힘이 실리게 될 판이 됐다. 대한민국은 제헌헌법에서도 지방자치를 규정해 놓았을 정도로 지방자치의 필요성을 부르짖어 온 나라다. 하지만 이 같은 구호성 조항과는 달리 1990년대 지방자치가 구체적으로 실현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시작된 지방자치가 1995년 첫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발을 내디딘 지 3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지방자치는 재정권과 입법권의 한계로 반쪽에 그쳐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무려 39년 만에 최근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면서도 지방분권 관련 장치 마련은 또 다시 뒷전이 됐다. 제헌헌법 때부터 존재해 온 주요 조항의 현실적 적용을 도외시한 개헌으로는 국민을 설득하기엔 너무나 역부족인 듯하다.
[사설] HMM 부산 이전 확정, 해양 산업생태계 조성 신호탄
국내 최대 국적 해운 선사인 HMM 노사가 부산 이전에 합의했다. 지난해 5월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 공약 이후 1년 만에 HMM 부산 이전이 확정된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미래 해양강국 도약과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부산을 글로벌 해양수도로 발돋움시키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12월 해양수산부 부산 개청을 시작으로 해양 관련 기업과 기관을 대거 이전시켜 남부권을 해양수도권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관련 산업 집적화와 생태계 확장 등 장기 비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HMM 이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HMM 이전이 확정된 것은 부산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너무도 고무적인 일이다. HMM 노사는 30일 본사 부산 이전에 합의하는 서명식을 열었다. 노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사 부산 이전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해왔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조는 최근 파업까지 예고했지만 실제 파업이 진행될 경우 중동전쟁에 따른 국내외 물류 마비 등 사회적 파장이 클 것을 고려해 대승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HMM은 오는 8일 임시주주총회에서 본사 소재지와 관련한 정관을 변경하고, 이전 등기 등 법적 절차를 조속히 마무리할 계획이다. 더욱이 HMM은 북항 재개발 지역에 랜드마크급 사옥을 건립해 본사를 이전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부산 시대 개막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HMM 이전이 확정되자 상공계와 시민단체 등은 즉각 환영 메시지를 전했다. 부산상공회의소는 “해양수도를 완성하고, 국가 발전과 균형 성장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며 “정책기관과 정책금융기관, 국내 최대 국적선사가 한자리에 모이는 해운·물류 클러스터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부산은 명실상부한 동북아 해양수도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HMM의 성공적인 부산 안착을 위한 신속하면서도 종합적인 지원 대책도 주문했다. 해양수산부와 부산시 등은 HMM 이전이 다른 해운 대기업과 기관들의 연쇄 이전으로 이어지도록 협의체를 구성, 다양한 맞춤형 지원책 마련에 나서주길 당부한다. HMM 부산 이전 확정에도 불구하고 ‘반쪽 이전’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HMM 육상노조 측은 이번 합의에 앞서 “서울 인력 상당수가 잔류하는 정도라면 이전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견해도 밝힌 것으로 전해지면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본사 주소만 부산으로 옮기는 눈속임식 이전은 부산과 국가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HMM은 최대한 신속하게 시기와 규모 등을 명시한 정확한 이전 로드맵을 제시하길 바란다. 또 이전 선도 기관으로서 부산 해양 산업생태계의 큰 축에 걸맞은 적극적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특히 HMM이 지역화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성실하게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금 간 ‘오일 카르텔’
1950년대 후반 세계 석유 시장은 ‘세븐 시스터스’로 불린 미국과 유럽의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장악했다. 미국의 엑손·모빌·쉐브론·텍사코와 영국의 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프랑스의 토탈을 일컫는다. 이들 기업은 독과점을 통해 생산, 정제, 유통, 판매 등 석유 산업과 가격을 통제했고, 산유국들은 주도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다.거대 석유 자본의 횡포에 맞서 1960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이란, 베네수엘라 등 5개국은 OPEC(석유수출국기구)을 창설했다. OPEC은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로 전 세계를 강타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는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을 돕는 서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비롯했다. OPEC은 당시 인위적 감산을 통해 가격을 기존보다 약 4배나 올렸다. 1978~1981년 제2차 오일쇼크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서 발생했다. OPEC은 시장 불안을 이용해 원유 가격을 지속적으로 올려 더 많은 이익을 내려고 했다.원유 매장량 세계 6위인 아랍에미리트(UAE)가 지난 1일 OPEC을 탈퇴했다. UAE는 1967년 아부다비 토후국 시절 OPEC에 가입했으며, 1971년 UAE 건국 이후에도 회원국 지위를 유지해 왔다. UAE의 59년 만의 결별 선언은 OPEC 의사 결정을 주도해 온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의 ‘독립 선언’을 뜻한다. UAE의 하루 원유 생산 능력은 480만 배럴이다. 하지만, 고유가를 겨냥한 사우디의 감산 정책에 번번이 가로막혀 300만~350만 배럴 생산에 그쳐 불만이 쌓여 왔다. 이번 중동전쟁 발발 뒤 이란의 보복 공습 집중으로 UAE가 처한 안보 위기를 사우디가 방치한 부분도 탈퇴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OPEC 내 3위 원유 생산국인 UAE의 이탈로 사우디 주도의 60여 년 ‘오일 카르텔’에 상당한 균열이 생긴 셈이다. 감산과 증산을 통해 유가를 좌우해 온 기존 구도가 흔들리면서 중동 중심의 에너지 패권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카르텔의 가격 통제 기능이 약해지고, 산유국들의 ‘자국 우선주의’가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공급자 간 가격 경쟁 심화로 원유 수입국에 유리한 국면이 펼쳐질지, 석유 시장 혼란만 커질지 예단하긴 어렵다. 중요한 대목은 원유의 세계 공급망 질서가 급변한다는 점이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우리가 에너지 안보에 대한 새판을 짜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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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그림자 무사와 진짜 일꾼
오는 21일부터 6·3 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그러나 선거의 막이 오르기도 전에 전국 곳곳은 공천 잡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앙당의 밀실 공천, 특정 인맥에 기대는 사천 논란, 모호한 경선 기준은 지방자치의 본령을 훼손하며 유권자의 신뢰를 흔들고 있다. 1980년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세상에 내놓은 영화 ‘카게무샤’는 권력의 본질에 대한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보고서다. 다케다 신겐이라는 전설적인 맹장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투입된 도둑 출신의 그림자 무사. 그는 주군의 목소리와 걸음걸이, 심지어 내밀한 버릇까지 복제하며 적들을 기만한다. 영화 속에서 그림자 무사는 잠시나마 다케다 가문의 영광을 연장하는 데 성공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승리는 철저히 ‘타인의 권위’를 빌려온 연극에 불과했다. 이 서사가 오늘날 한국 정치, 특히 6·3 지방선거를 앞둔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고는 서늘하다. 영화 속 카게무샤는 주군의 존재가 지워지는 순간, 혹은 그를 지탱하던 갑옷이 벗겨지는 순간 한낱 미천한 존재로 돌아간다. 지금 대한민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방선거 공천 과정은 어떠한가. 우리는 지역을 위해 헌신할 ‘진짜 인물’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거대 정당이라는 붉고 푸른 갑옷을 입은 ‘그림자 무사’들의 행렬을 보고 있는가. 한국 정치사에서 ‘그림자’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군사정권 시절, 최고 권력자 눈에 들어 발탁된 이들은 스스로의 정책적 비전이나 철학보다는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는 확성기 역할에 충실했다. 그들은 독자적인 대중 기반 없이 주군의 권위에 기생하며 권력을 누렸으나, 주군이 퇴장하는 순간 그들의 정치적 생명도 함께 증발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계파 정치’는 수많은 카게무샤를 양산했다. 특정 계파 수장의 사진을 명함에 박고,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지역구를 누비는 정치인들에게 독자적 비전은 사치였다. 그들에게 정치란 주민과의 소통이 아니라, 수장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공천장이라는 ‘대리 허가증’을 받아내는 기술에 가까웠다. 이러한 후광 정치는 정치인의 자생력을 앗아갔고, 한국 정치를 인물 중심의 대결이 아닌, 세력 간 진영 논리로 퇴행시켰다. 공천권이라는 막강한 칼자루를 쥔 중앙 정치권 앞에서 지방선거 후보들은 한 명의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정당의 명령을 수행하는 병사로 전락한다. 현재의 공천 시스템은 후보자들에게 ‘지역사회와 소통’보다 ‘공천권자와 친분’을 강요한다. 지역 현안을 해결할 혁신적인 정책을 고민하기보다, 당내 파벌 싸움에서 어느 줄에 서야 살아남을지를 먼저 계산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 후보 개인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정당의 기호와 당색만 남는다. 유권자들은 후보 얼굴을 보기 전에 정당 로고를 먼저 보게 되며, 이는 결국 ‘사람’이 아닌 ‘그림자’를 선택하는 기형적인 투표로 이어진다. 영화 ‘카게무샤’의 클라이맥스는 그림자 무사가 전장에 나섰을 때다. 그는 주군의 위엄으로 군사들을 통솔하려 하지만, 실질적인 전술 역량이 요구되는 긴박한 순간에 그의 허상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지방자치 현장도 마찬가지다. 정당 공천이라는 갑옷을 입고 당선된 후보들은 임기 시작과 동시에 한계에 부딪힌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고령화 문제, 교육 격차, 지방 소멸 위기 등은 정당 구호나 중앙 정치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스스로의 철학과 정책 비전 없이 당선된 ‘그림자 시장·군수·구청장’들은 중앙 정치 바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린다. 그들의 지지 기반은 지역 주민이 아니라 중앙당 지지율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당 인기가 떨어지면 그들은 방어 기제도 없이 몰락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의 몫이 된다. 정당이라는 외피를 벗었을 때, 과연 지역을 이끌어갈 실질적인 역량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권력을 좇는 텅 빈 갑옷에 불과한지 판별해야 한다. 영화의 마지막, 주군의 죽음이 탄로 나고 쫓겨난 그림자 무사는 다케다 가문의 깃발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목격하며 절규한다.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주군이었을까, 아니면 주군을 연기하며 누렸던 잠시의 권력이었을까.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의 외피만으로는 체제를 유지할 수 없으며,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달은 태양이 나타나는 순간 사라진다. 이번 6·3 지방선거는 ‘그림자들 연극’이 아니라 ‘실체의 경연’이 돼야 한다. 이제 무대 위 가짜 주역들을 내려오게 하고, 진짜 일꾼을 세워야 할 시간이다. 지방자치 주인공인 유권자의 참여와 심판만이 그 열쇠다.
[노트북 단상] 가정의 달, 닿지 않는 삶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가정이나 가족이라는 말이 닿지 않는 삶도 있다. 이를 테면 관계가 끊긴 채 고립된 삶이다. 고독사는 늘 숫자로 먼저 접하게 된다. 부산에서는 2024년 367명이 홀로 생을 마감했다는 식이다. 최근에는 혼자가 아니라 가족 전체가 고립된 채 발견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실제로 생활고 속에 가족 전체가 숨지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울산에서는 30대 아버지와 어린 자녀들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됐고, 전북 임실·군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공통점은 ‘신청하지 못한 복지’였다. 제도가 있었지만, 신청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같은 사건이 잇따르자 정부도 미성년자 등 스스로 동의하기 어려운 위기가구 구성원에 대해 담당 공무원이 당사자 동의 없이도 생계급여를 직권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고립가구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주변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1인 가구의 경우, 이웃이 이상함을 느끼기 전까지는 아무도 상황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제도는 있지만, 그 사람은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반대로 조금 일찍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웃이 먼저 찾아가면서 끊겼던 관계가 이어진 사례다. 끼니를 거르고 사람을 피하던 시간이 길었지만, 누군가가 말을 걸고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다시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먼저 움직인 건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부산의 사회복지 공무원 신아현 작가는 에세이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에서 자신들을 ‘국가라는 이름으로 민원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제도와 법은 결국 사람을 통해 전달된다. 욕설이나 위협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그 사람의 사정을 먼저 헤아려 보려 노력한다고 했다. 그게 관계를 잇는 일이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 통계로 보는 1인가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인가구는 전체 가구의 36%를 넘는다. 연령대도 청년부터 노년층까지 퍼져 있다. 이제 혼자 사는 삶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혼자 버티는 상황일 때다. 1인가구의 절반 가까이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고, 아플 때나 돈이 필요할 때, 혹은 우울할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전체보다 낮았다. 연락할 사람이 없고,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결국 고립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찾아가는 방식’을 강조한다. 이웃이 직접 살피고 먼저 말을 거는 방식이다. 그래야 관계가 생기고 그다음 제도도 움직인다. 거창한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안부를 한 번 묻는 것, 평소와 다른 기척을 그냥 넘기지 않는 것 등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차이를 만든다. 고립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이런 신호를 놓치면서 쌓여간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이미 곁에 있었던 작은 신호들이 아닐까. 5월, 우리가 떠올려야 할 가족은 꼭 가까이 있는 사람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제도에 닿지 않은 사람들을 한 번쯤 떠올려보자.
[2030 칼럼] ‘노인과 바다’에서 청년의 자리를 묻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52년 생전 마지막 소설인 〈노인과 바다〉를 발표했다. 쿠바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여든 날이 지나도록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만난 그는 대서양 한가운데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그의 처절한 싸움은 순식간에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작가는 이듬해 퓰리처상을, 그다음 해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1954년 노벨위원회는 이 작품을 “물질적 이득이 없을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투쟁 정신과 패배 가운데서 이룩하는 도덕적 승리를 향한 찬가”라고 평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다’라는 널리 알려진 구절처럼 어떠한 외적 조건에도 굴하지 않는 한 노인의 위대한 인간 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산시장 후보들 청년 정책 발표 박형준, 중산층 만들기 프로젝트 전재수, 해양수도 통해 일자리 창출 ‘평생교육 거점·해양 인력 양성 기반’ 지역대학 구조적 문제 해결엔 역부족 배우고 성장하는 탄탄한 토대 마련을 그런데 이 소설에는 독자의 이목을 끄는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작품의 시작과 끝에서 노인을 돌보는 어린 소년 어부 마놀린이다. 소년은 부질없어 보이는 노인의 항해를 변함없이 동경하며 응원한다. 산티아고는 소년의 지지에 힘입어 하루도 쉬지 않고 바다로 나설 수 있었다. 청새치와의 외롭고 힘겨운 싸움에서도 소년은 그의 내면적 힘이 되었다. 결국, 노인이 보여준 불굴의 정신은 소년의 존재를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었던 셈이다. 이즈음 ‘노인과 바다’라는 말이 부산의 현실을 일컫는 풍자적 은유로 심심찮게 쓰인다. 청년층이 이탈하면서 인구 구조가 가파르게 고령화되고, 확고한 경제적 기반 없이 망망한 바다라는 지리적 조건만을 가진 데 대한 자조적 목소리다.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에는 부산의 현실이 너무도 적실히 표현되어 있다. 6·3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은 ‘노인과 바다’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마다의 청년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박형준 후보는 청년을 전면화하며 부산의 미래 전략에 대한 구상을 내놓았다. 그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개인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청년들의 세대적 특성에 주목하며, 산업화 시대의 논리로 구축된 사회·경제적 질서를 청년 세대에 맞게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방안은 ‘복합소득사회’로의 전환이다. AI 시대에 이르러 개인의 소득이 다원화됨에 따라 과세와 복지 등 국가의 정책 시스템 역시 직장 단위의 모델로부터 개인 단위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아가 AI 혁명이 초래할 수 있는 청년층의 자산 양극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최소한의 자산 형성을 보장하는 ‘청년 중산층 만들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한편, 전재수 후보는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비전을 내세운다. 부산을 북극항로의 거점이자 ‘글로벌 물류의 환승 센터’로 도약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해수부 부산 이전을 시작으로 해사전문법원과 동남투자공사의 설립, 해운 대기업의 부산 유치 등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 청년 문제의 해법 역시 해양수도의 구상에 기반한다. 해수부와 각종 산하 기관, 연구소, 민간 기업들이 모여 형성한 ‘해양 특화 클러스터’를 통한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과 취·창업 기회 확대를 목표로 삼고 있다. 아울러, 지역 고등학교 및 대학들과 연계한 항만 분야 전문 인력 양성 계획과 스마트 항만으로의 전환을 통한 직업적 접근성 확보 방안을 밝혔다. 그런데 두 후보의 청년 정책에서 지역대학 활성화를 전면에 둔 구체적 계획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박형준 후보는 AI 시대에 요구되는 평생교육의 거점으로의 기능 전환을, 전재수 후보는 해양 전문 인력 양성 기반으로의 특수성 확보를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각각의 후보가 제안하는 정책적 방향성 속에서는 일정한 설득력을 얻지만, 지역대학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지역 청년의 삶을 이야기할 때 지역대학이라는 의제는 핵심적이다. 대학은 단순히 진학의 문제가 아닌, 청년들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삶의 항해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일자리의 확보 못지않게, 지역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탄탄한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서울대와 유사한 수준의 교육 지원을 통해 쇠퇴와 소멸에 직면한 지역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대두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대학의 약화는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중요한 구조적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산티아고의 마음속에 소년 마놀린이 없었더라면 노쇠할 대로 노쇠한 그는 지난한 항해와 험난한 사투에서 결코 버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적이고 무기력한 언어 속에 감추어진 마놀린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마놀린이 떠나는 순간, 노인도 바다도 모두 사라지고 만다.
[편집국에서] 한동훈·하정우는 왜 북구를 선택했을까
외지인들이 부산을 생각할 때 북구를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해운대 광안리만큼 화려하지도, 중구나 영도처럼 먹거리, 볼거리가 많지도 않다. YS(김영삼) 시절 부산 정치 1번지 대접을 받던 서구처럼 상징성이 있는 곳도 아니다. 400년 전통의 구포시장을 빼고 나면 북구를 소재로 뭔가 얘깃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북구가 6·3 지방선거의 최고 ‘핫플레이스’가 떠올랐다. 수도권 언론들이 연일 구포시장을 찾고, 북구 민심을 가늠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북갑 보궐선거는 각 후보들의 미래를 넘어 선거 이후 여야 정치 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승부처가 됐다. 북구 주민들조차 의아해 할 이 신드롬은 우연에 우연을 더한 결과일까? 시계를 되돌려보면 여권이 10여 년 전부터 ‘낙동강 벨트’를 전략지역화하면서 서부산 전역이 여야 접전지로 바뀌었지만, 그 중에서도 북구는 정치적 균형점을 향해 달려가는 부산 정치의 역동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줬다. 19대 총선부터 국민의힘 소속인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인 전재수 전 의원이 네 번 맞붙어 첫 두 번은 박 전 장관이, 이후 두 번은 전 전 의원이 승리했다. 서부산 지역 지지층 분포가 ‘보수 6, 진보 4’ 정도라면, 때때로 달라지는 구도나 인물 경쟁력에 따라 정반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부산 내 ‘스윙 스테이트’인 셈이다. 나는 북구의 이런 토양이 이번 역대급 대결의 촉매제가 됐다고 본다. 한 전 대표의 북갑행을 강력히 권유한 것으로 알려진 조갑제 씨는 1979년 부마항쟁과 1985년 ‘신민당 바람’을 일으킨 부산에 대해 “부산 시민들은 대의명분으로 연고주의를 극복, 역사를 바꾸는 화끈한 행동력으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권력의 무도함이 임계점에 이를 때, 학연·지연 등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 부산 사람들의 기질에 기대를 건 셈이다. 하 전 수석도 그냥 ‘배지’만 생각했다면 2년 뒤 총선에서 비례대표 상위권은 너끈히 받아냈을 것이다. 그의 도전은 험지이긴 하지만 구덕고 출신으로 강력한 지역 연고를 주장할 수 있는 고향에서 ‘전국구’인 한 전 대표와 붙어 승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급격한 정치적 체급 상승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전 대표든 하 전 수석이든 ‘리스크 대비 리턴’에서 북구는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였던 셈이다. 북구의 이런 정치 지형은 소위 말하는 강경파 대신 중도 소구력이 좋은 후보에게 유리하다. 전 전 의원부터 그랬다. 그가 10년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정파적 어젠더에 깊이 개입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박 전 장관만 해도 검찰 선배 윤석열 전 대통령과 가까워지기 전만 해도 당파성이 옅은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 전 대표는 강성 지지층이나 당 주류에게는 배신자 취급을 받지만, 적어도 비상계엄과 ‘윤 어게인’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일반 국민의 상식에는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다. 하 전 수석 역시 보수 쪽과도 폭넓게 교류한 걸 보면 진영 색채가 강한 정치를 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전 전 의원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맞붙은 박형준 시장도 자타가 공인하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부산 선거에 지역을 넘어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해보고 싶다. 얼마 전 미국의 벤 세스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숏폼 정치’에 매몰된 미국 의회를 향해 “거의 모든 정치인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내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확실히 옳고, 저들은 확실히 틀렸다는 파벌주의는 우리를 꽤 어리석게 만든다”고도 했다. 췌장암 말기로 곧 다가올 죽음 앞에 선 정치인의 마지막 고언이라는 점에서 큰 울림을 준다. 우리 정치에도 딱 들어맞는 비판이다. ‘우리는 무조건 옳다’는 극단적 진영 논리 속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감각마저 무뎌졌다. 민주당이 기어이 추진하는 ‘조작기소 특검법’은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오랜 법언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진보 법조인들조차 이번 사태가 우리 법치주의에 미칠 심대한 폐해를 걱정한다. 계엄에 사과하고 ‘윤’과 단절하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길을 거부한 채 퇴행을 일삼던 국민의힘은 최후 기반인 영남마저 붕괴될 지경임에도 정적 제거에 더 목을 매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선거만 이기면 이런 행태가 다 용인될 것 같은 지금의 분위기가 못내 절망적이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말하지 않는 정치 속에서 우리는 이미 많이 망가졌고, 어리석어졌다. 전국의 시선이 쏠린 ‘부산 대전’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그 이전과는 다른 정치적 리더로의 위상을 갖게 될 것이다. 부산에서 상식적인 정치의 회복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쉽지 않겠지만, 가냘픈 희망을 품어본다.
[안준영의 정가 뒷담화] 부산의 ‘샤이보수’
6·3 지방선거를 한 달가량 남겨둔 부산 정가에서는 ‘샤이보수’가 단연 화두다. 샤이보수란 평소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보수적 선택을 하는 유권층을 뜻한다. 여론조사에서는 이들이 과소 표집되는 경우가 많으며, 부산처럼 보수 색채가 상대적으로 짙은 지역에서는 이들의 비중이 선거 결과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다. 부산 선거판에서 ‘샤이보수가 얼마나 존재하냐’는 논쟁거리다. 보수 진영은 유권자의 10% 또는 그 이상이 샤이보수로서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 역시 “여론조사에서 10%P(포인트) 정도의 격차가 나면 선거날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고 수차례 자신했다. 반면 진보 진영은 보수 인사들의 분석에 낙관적 기대가 지나치게 투영돼 있다고 본다. 부산 지역의 샤이보수의 비중은 5~7%를 넘지 못할 것이며, 이들마저도 최근 급변하는 정치 지형에 따라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양 진영의 분석치를 아슬하게 넘나든다. KBS부산총국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5~27일 부산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한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후보는 42%,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는 32%의 지지도를 얻었다. 지난달 중순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던 여론조사도 나왔지만 격차가 다시 10%P로 다소 멀어졌다. 적지 않은 부산 지역 국민의힘 정치인들에게는 소위 ‘위닝 DNA’가 내재돼 있다. 여론조사에서 두 자릿수 격차로 뒤져도, 구설수에 올라도 결국 선거날엔 승리한다는 마인드다. 이번 선거에도 이런 DNA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들에게 샤이보수는 자신감의 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댈 곳이 샤이보수의 등장 말고 없다면 승리의 역사도 끝날 수 있다. 지난 2일 박 후보 개소식에 장동혁 당 지도부가 총출동하며 ‘선거 총력전’을 결의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장에서는 또다시 당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터지며 내부 균열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단일대오를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지리멸렬한 민낯을 그대로 비췄으니 부산의 샤이보수들은 착찹한 심정을 감추기 어렵게 됐다. 선거는 이제부터 총력전이다. 2024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토 여론 속에서 치러졌다. 여론조사는 민주당을 향해 웃어줬고, 5석 이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북갑을 제외한 부산의 모든 의석을 국민의힘에게 내줬다. 민주당은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되고, 국민의힘은 어떻게든 스스로 원동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공감] 행복은 우리를 초기화한다
어릴 적 단팥죽을 무척 먹고 싶어 했다. 그 시절 팥은 귀한 것이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부엌장 깊숙이 숨겨둔 팥을 찾아내어 혼자 단팥죽을 끓여 먹다가 된통 혼이 났다. 그때 처음 맛본, 뜨겁고 달콤한 단팥죽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어른이 되어도 가끔 단팥죽을 먹지만, 그때의 맛은 다시 느낄 수 없다. 그 맛의 절반은 팥에서 왔지만, 절반은 ‘처음’에서 왔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숟가락부터 달콤함이 조금씩 옅어지듯, 변한 것은 팥도 단팥죽도 아니었다. 변한 것은 오직 나의 기준선이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 부른다. 같은 것을 반복해서 경험할수록 처음의 만족감은 줄어든다. 첫 월급의 감격이 몇 달 후 당연해지고, 오랫동안 갖고 싶던 물건을 손에 넣은 기쁨이 이내 시들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처음과 같은 감흥이 오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도 비슷한 설명이 있다. 앨런 파르두치의 범위 빈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극을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비교 속에서 판단한다. 강렬한 경험은 곧 기준이 되고, 그보다 약한 것들은 작아 보인다. 브릭먼과 캠벨이 말한 ‘쾌락의 쳇바퀴’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높아진 기준에 금세 익숙해지고, 일상의 기쁨은 희미해진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이후 일상에서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행복은 내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경험과의 비교 속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충분히 좋은 순간도 더 강한 경험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우리는 이 단순한 사실을 자주 놓친다. 나는 이것을 책이 아니라 교실에서 배웠다. 20여 년 전, 현대문학을 가르치던 시절의 일이다. 학생들과 문학 작품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었는데, 그해만큼은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출석을 부르지 않아도 빈자리가 없었고, 수업 종료 시각이 지났을 때 아무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 서로의 해석이 존중되고 새로운 의미가 피어오르는 교실이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나는 그해 최우수 강의 교수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걸림돌이 되었다. 이듬해 수업은 출석을 부르지 않자, 빈자리가 점점 늘었고, 작품을 읽어오지 않은 학생들이 생기며 토론의 흐름이 자주 끊겼다. 나는 조바심이 났고, 수업을 마칠 때마다 실망을 안고 교실을 나왔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들에게만 있지 않았다. 절정의 수업이 하나의 기준이 된 뒤로, 나는 그보다 낮은 순간들을 결핍으로만 읽고 있었다. 내가 시계를 보는 만큼 학생들도 나를 따라 시계를 보았다. 깨달음은 뜻밖의 곳에서 왔다. 어느 날 복도에서 동료 교수가 학생들이 내 현대문학 수업을 정말 좋아한다며, 부러움을 전했다. 분명 올해 수업에도 빛나는 해석이 있었고 진지한 눈빛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충분히 보지 못하고 있었다. 최우수 강의 교수라는 성취의 그림자 속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순간들을 놓치고 있었다. 결국 내 기준선은 높아진 채로 머물러 있었고, 그만큼 현재의 기쁨은 희미해져 있었다. 서은국은 〈행복의 기원〉에서 말한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며, 그것이 제 기능을 하려면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진화는 우리에게 항구적인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찬란한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기준선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그래야 다시 작은 것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은 높은 곳에 저장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초기화는 포기가 아니라, 다시 처음의 감각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혼자 몰래 끓여 먹던 그 단팥죽을, 이제는 아내와 손을 잡고 동네 시장에 가서 함께 먹는다. 늘 처음처럼은 아니지만, 그렇게 먹으려 천천히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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