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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밥심에서 커피심으로
오늘도 아침밥 대신 커피로 하루를 연다. 비단 나만 그럴까. 요즈음은 밥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커피심으로 견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는 ‘밥’으로 통하는 인사말을 주고받았다면, 지금은 “언제 커피나 한잔합시다”라는 대화까지 일상화되었다. 나 또한 이다음에 죽으면 어동육서로 줄지은 제사음식 대신 좋아하는 커피 한 잔만 올려 달라고 일러두었으니 커피의 위력은 사후까지 발휘될 태세이다.
내친김에 커피박물관에 가보기로 한다. 가는 길 내내 다방, 커피숍, 카페, 커피하우스 등 커피 전문점 간판이 숱하게 내걸렸다. 가히 커피숍 전성시대이다. 현대인은 커피 소비로도 자신을 나타낸다. 어디서 커피를 마시는지, 어떤 커피를 애호하는지, 누구와 함께 마시는지…. 커피가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커피는 분위기다. 밖에서 보더라도 감성 넘치는 카페에 더 오래 눈길이 간다. 도착지인 커피박물관도 폐역이 된 부산진역을 탈바꿈시켰으니 의미로운 장소가 되겠다.
이십 년 전만 하더라도 여객열차가 정차하던 곳이라 저 멀리서부터 기적 소리라도 울려 퍼지는 듯하다. 커피에 조예가 깊은 한 시민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이천여 점의 커피 기구를 기증했다는데 대단한 안목이다. 향미에 따라 적절히 섞어 재창조하는 블렌딩과 생콩에 열을 가하는 로스팅을 거쳐 분쇄 커피를 물과 함께 끓이는 달임식, 여과 장치에 넣고 거르는 여과식, 뜨거운 물에 담가 우리는 우림식, 압력을 가하는 가압식 등의 추출 방식이 시대별로 전시되었다. 추출 기구도 터키쉬, 보일링, 비긴, 사이펀, 네오폴리탄, 퍼컬레이터 등 생경한 것이 많고, 생김새도 램프를 닮은 것, 오르골 모양, 양동이를 본뜬 것, 기차 형태 등 다양한데, 에티오피아에서 가져온 절구통 분쇄기 앞에서 발길이 멈추었다.
콩팥 이식 수술을 한 그녀의 집은 단출했다. 가족이 떨어져 혼자 지낸 세월도 오래되었지만, 당뇨환자라는 상황이 주변을 더욱 간소하게 만들었다. 그 외로운 사람에게 찾아갔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대뜸 커피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선물 받은 원두 콩이 있다고 하였다. 아무렴, 한더위를 식혀줄 아이스커피 한 잔이면 된다고 무심코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식이요법을 하는 그녀의 집에 커피머신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마늘 찧는 절구통이었다. 나는 아연하였으나 그날 열서너 평의 작은 아파트를 가득 채운 헤이즐넛 향기는 어느 과일 향과 꽃 향보다도 향긋했다. 십여 분간 절구통에 찧은 커피 가루를 체에 걸러 내려 얼음을 띄운 냉커피 한 잔, 어찌 그 맛을 짧은 혀의 감각으로만 평가할 수 있으랴.
에티오피아의 고원인 카파 지방에서 어느 목동 소년이 처음으로 커피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천 년도 훨씬 넘은 설화가 사실이든 아니든, 첫 커피 열매를 발견한 자에게 경의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시게 된다는 젊은이들과, 오로지 나만의 공간을 찾아 앉을 수 있는 것도 커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절차가 복잡한 차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술은 일과 함께하기 힘들지만, 커피는 정신을 깨어있게 만드니 일할 때도 잘 어울린다. 심지어 ‘워킹 커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걸어 다니면서도 마실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왜 이렇게 커피에 열광하는가. 맛은 물론이거니와 커피를 마실 때를 생각해보라. 신분이나 지위나 나이도 잊을 수 있을 만큼 경계를 허물고 여유를 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직원이 방금 내린 한 잔의 커피를 건넨다.
2025-08-3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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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배꼽
샤워 후에 욕실 거울 앞에 서면 이상하게도 나는 ‘관찰자’가 된다. 혓바닥을 내밀어보고 안면을 최대한 찌푸려 하회탈 얼굴을 만든다. 어깨 쩍쩍 벌리다가 불현듯 정색하고 젖은 머리칼을 배우처럼 젖혀 보기도 한다. 그러곤 한발 물러서서 물이 뚝뚝 흐르는 전신을 훑어보고 씨익, 웃는다.
아주아주 예전엔 거울 속 인물을 향해 그런 윙크라도 날려봤었다. 이젠 민망해서 썩은 미소조차 날릴 수가 없다. 뱃살은 왜 이리도 살갑게 불어났고, 어깨 근육은 언제 이토록 조용히 자취를 감췄을까.
복근이 있었던 불룩한 곳을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허리를 틀어 옆구리에 붙은 푸짐한 살점도 집어본다. 사실, 내 몸에 근육이 붙었던 때가 있었는지 의심스럽지만, 나는 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던 것처럼 한탄하는 흥감을 버리지 못한다.
거울 앞에 선 남자의 이 엄숙한 순간은, 웃기지만 비밀스럽고, 민망하면서도 경건하다. 인간이란, 본디 자신을 응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 심오한 마음으로 한참 바라보다 보면, 시선이 자연스레 몸의 중심에 머문다. 시야 한가운데 고고하게 자리한 작은 흔적 하나…
오해하지 마시라. 배꼽이다. 배꼽. 이건 도대체 왜 있는 걸까? 배꼽은 나를 걷게 하지도 않고, 무엇의 통로도 아니다. 하다못해 발뒤꿈치는 충격 완화 역할을 하고, 귓바퀴는 소리를 모아주는 데 일조를 하는데 말이다.
모양조차 궁색하다. 시원하게 구멍 뚫린 것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막혀있다. 게다가 씻으려고 힘주어 문지르면 이상하게도 배아래 깊은 곳이 찌릿찌릿하다. 쓸모가 뭔지 도무지 떠올리기 힘든 배꼽 하나가 몸 전체의 중심에 자리 잡은 이 신비로운 구조는 도대체 누가 설계한 걸까.
알다시피 배꼽은 탯줄의 흔적이다. 탯줄은 어머니와 나를 이어주는 근원적인 통로였다. 그 통로를 통해 숨결이 전해졌고, 피가 흐르며, 온기가 스며들었다. 뼈와 피와 살, 나의 모든 것이 그 줄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연결이 끊어진 날, 나는 비로소 스스로 숨 쉬고 먹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배꼽은 내가 완전히 독립된 생명체로서, 또 하나의 우주가 시작했다는 유일한 증거인 것이다.
그래서 배꼽은 근원의 증거가 되었다. 중세 화가들은 아담과 이브를 그릴 때 난감해했다고 한다. 배꼽을 그리면 아담과 이브가 사람에게서 태어난 존재가 되고, 그리지 않으면 어딘가 미완의 형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떤 화가는 꿋꿋이 배꼽을 그려 넣어 인간다움을 지켰고, 또 어떤 화가는 매끈한 배를 그려 창조의 신비를 강조했다.
그리스 델포이에는 ‘옴파로스’라는 배꼽돌이 있다. 과거 사람들은 그 배꼽돌이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순례자들은 그 돌 앞에서 신탁을 받으며,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우주의 한가운데라고 여겼다.
그러니 배꼽에 아무 기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배꼽은 내 근원의 증거로서 끊임없이 나를 상기시키는 기능을 가졌으며, 그런 목적에서 가장 잘 보이는 내 몸의 중심에 있었다.
배꼽은 이제 옷 속에 가려져 사람들 눈에 띌 일도 없다. 누군가는 장식이나 피어싱으로 드러내지만, 보통은 그냥 숨 쉬듯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가끔, 거울 앞에 선 어떤 인간의 웃기지만 비밀스럽고, 민망하면서도 진지한 순간에 그 존재의 의미를 드러낸다.
배꼽과 함께 열렸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작은 우주 속에서 나 또한 나만의 의미들을 기록하고 있음을 상기한다. 공연히, 거울에 물을 뿌려 뿌예진 나를 슥슥 문지른다.
2025-08-2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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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가장 완벽한 여름휴가
어제는 다른 일들을 모두 접어두고 집에서 종일 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다. 새로운 일과 환경에 적응하느라 조금 긴장했던 마음도 풀고, 스케줄러에 오늘 해야 할 일 목록을 빼곡하게 적는 아침 루틴도 생략하고, 스마트폰도 멀찍이 두고, 이 하루만큼은 스스로에게 주는 여름휴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름답고 활기가 넘치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휴양지로 떠나보는 것도 물론 즐겁겠지만, 혼자만의 공간에서 책 한 권을 완독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휴가다운 휴가니까. 준비물은 책과 음악, 선풍기, 씁쓸한 커피와 달달한 복숭아.
라디오에서는 때마침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이 흘러나왔다. 음악은 기억 속의 한 시절을 생생하게 소환하는 힘이 있는데, 〈사계〉를 들으면 언제나 중학교 음악 시간이 떠오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어떤 부분을 무작위로 들려준 다음, 어느 계절인지 맞히게 하는 시험. 교탁 앞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어쩐지 여름 같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정말 여름에 해당하는 연주였다.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여름이라고 말하지 않고도 여름을 표현할 수 있구나. 바이올린 소리가 때로는 여름이 될 수 있구나. 그러면 또 무엇이 여름이 될 수 있을까.
하나의 기억은 또 다른 기억들을 소환했고, 나는 책을 읽다가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를 반복했다. 집어든 책이 〈두고 온 여름〉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절에 두고 온 내 마음을 자꾸만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 그 시절의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 엎드려서 책을 읽다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조금 울기도 하고, 벽에 등을 기대고 책을 보다가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걸어 들어가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현재의 내가 과거의 그들과 조우하고, 그때는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할 수 있었다. 초현실이라고 해야 할지 몽상이라고 해야 할지, 소설을 읽다보면 그런 신비로운 시간들이 종종 펼쳐진다. 어찌 보면 만취의 순간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데, 다음 날 숙취가 전혀 없다는 점은 독서의 대단한 장점이다.
어딘가에 두고 온 마음들을 돌아보고 돌아보다가, 성경 속 창세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불과 유황으로 파멸된 소돔에서 도망쳐 나올 때 뒤돌아보지 말라던 신의 명령을 어겨 결국 소금 기둥이 되었던 롯의 아내.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서, 나는 그녀의 뒤돌아보는 행위야말로 인간적이며 문학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두고 온 것들을 잊지 않는 사람, 불타는 과거의 흔적을 돌아보는 사람, 그리하여 마침내 소금 기둥으로 굳어져버리는 사람.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의 모티프는 여러 신화나 설화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도 죽은 아내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저승까지 가지만 지상에 도달하기 전에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게 되고, 우리나라의 설화 ‘선녀와 나무꾼’ 일부 판본에서도 나무꾼이 선녀를 되찾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고 만다. 금기를 어긴 대가는 가혹하고 비극적이다. 신화적 시스템 속에서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절대자에 대한 불복종으로 심판받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과거를 기억하고, 지나온 시간들을 되새기고, 거기에 두고 온 마음을 돌아보고, 아프면 아파하고, 후회되면 후회하고…. 고통스러울지언정 지난 일들을 돌아보고 직면할 때에, 제대로 다시 나아갈 힘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과 함께 수많은 기억과 상념들 속을 유영했던 하루. 시절마다 두고 온 기억들을 매만지고, 그곳에 두고 온 이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안부 인사를 전했다. 가장 완벽한 여름휴가를 보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남은 여름이 있다.
2025-08-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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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말의 시대, 글의 힘
말이 난무하는 시대, 유창한 말로 주위를 압도하는 능변가들이 주목받는 시대에, 나는 여전히 망설임과 머뭇거림의 눌변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 글이 좋다. 발화는 순발력을 요구하기에 내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전하기 어렵다. 언어란 생각을 실어 나르는 수레인데, 내 마음을 오롯이 담지 못하면 수레가 방향을 잃거나 가끔 듣는 이와 충돌하기 마련이다.
화종구생, 본디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부부 갈등도 그 시작은 대개 말로부터다. 어느 날 아침 고기 없는 밥상이 차려졌다. 남편이 투덜댄다. 내가 소도 아니고, 맨날 풀만 주면 어떻게 일하냐고. 그러자 아내가 되받는다. 당신이 돈만 많이 벌어오면 한우 등심에 보리굴비도 매끼 주지요. 그러면 남편은 벌어온 돈 다 어디 썼냐며 화를 내고, 티격태격 가시 돋친 말들이 서로에게 날아가 박힌다. 싸움의 발단은 온데간데없고 말이 낸 생채기만이 연고를 발라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된다.
글로 쓰라면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 모든 글의 최초 독자는 글쓴이 자신이기에 써놓고 읽으며 자신의 언행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자기 성찰의 성격을 지니며 곡진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글쓰기는 수필 갈래이다. 일기, 편지, 학생들이 중시하는 논술까지 대부분의 글쓰기를 갈래로 보면 수필이다. 수필은 워낙 방대한 하위 갈래를 포함하고 있어 문학 작품이면서도 일상적인 글쓰기이기도 하다.
지난 학기 수필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의 후기가 좋았다.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 시간” “삶의 태도와 생각의 깊이를 넓혀준 소중한 시간” 등의 후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학생들은 작가와 독자의 경험을 함께하는 한시적 공동체를 형성하며 “인간으로 성장하는 수업”을 만들어 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논리정연함을 요구하는 로고스와 감정의 풍부함을 추구하는 파토스와 함께 에토스를 강조했다. 에토스는 글쓴이의 성품과 윤리, 태도를 의미한다. 글 뒤에 존재하는 글쓴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글이 에토스가 좋은 글이다. 수필은 글쓴이가 글 뒤에 숨을 수 없는 갈래다. 소설이 허구 뒤에, 시는 모호함 속에 숨을 수 있으나 수필은 글쓴이가 숨을 곳이 없다. 그래서 글이 곧 그 사람이 되며,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
아내와 나는 신혼 초 갈등이 심했다. 살아온 환경과 성격, 취향이 너무 달랐다. 자꾸 마음결이 어긋나 사소한 다툼이 이어졌고, 우리는 고민 끝에 말이 아닌 글로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지금이라면 문자를 주고받았겠지만, 편지로 생각을 정리하며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다름으로 시작된 신혼 갈등을 글의 힘으로 극복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지금은 겉으로 보기에 글의 전성시대 같다. 문자나 SNS 등으로 소통하며 말보다 글이 더 익숙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글은 음성언어가 문자로 기록된 것일 뿐, 글이 갖추어야 할 구성 요소가 결여되고 편지처럼 격식을 갖추어 마음을 전하지 않는다. 얼핏 격식이라 하면 너무 딱딱하고 불편한 인상으로 다가오지만, 글쓰기에서 격식은 읽는 이를 향한 존중과 배려를 뜻한다.
소통의 진정성은 상대를 위해 내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노력을 전제한다.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마거릿 애트우드는 〈글쓰기에 대하여〉에서 “글 쓰는 삶은 끈질긴 낙타 같은 것”이라고 전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건, 막막한 사막을 포기하지 않고 건너는 것과 같다. 끈질긴 퇴고 과정에서 작가는 비로소 독자가 되며, 글쓰기의 퇴고 과정은 내가 남이 되어보는 연습이 된다. 서툰 초고를 퇴고하듯 우리 마음도 퇴고가 필요하다. 그렇게 퇴고한 마음이 상대 마음 문을 조심스레 연다. 말의 시대, 글의 힘이다.
2025-08-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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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가
존 덴버의 경쾌한 통기타 연주가 반갑다. 이곳이 어디인가. 동천강을 가로지르는 일명 ‘썩은다리’라 불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없는 게 없다는 ‘문현동 골동품거리’이다. 오가는 젊은이들은 드물지만, 옛 주택과 작은 노포들이 빽빽하고 뉴트로 열풍까지 더해지니 요즈음 사람들은 ‘문현동 을지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군데군데 자리 잡은 골동품점을 눈에 담는다. 칼국숫집과 보리밥집과 다방과 이발소도 보이고 ‘골목에 가래침을 뱉지 맙시다’라고 쓴 붉은 페인트 글씨도 정겹다. 십수 년 전부터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가게들이 제법 터를 잡았다.
진귀한 것이 수두룩하다. 맷돌, 절구, 문짝이 가게 밖에서 눈길을 잡고, 서화, 도자기, 방짜 그릇, 성냥갑, 목공예품 등이 안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입구에 흑색 옻칠을 한 선비상이 고졸한 멋을 풍긴다. 가게 안으로 슬쩍 발길을 옮겨 본다. 다소곳한 고가구 몇 점이 격조 있게 들앉았다. 무쇠 장식이 돋보이는 전주 나비장의 좌우대칭 무늬가 곱다. 흑백 텔레비전, 다이얼 전화기, 교환 전화기, 태엽 감아 돌리는 전축,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젊은 모습이 그려진 서부극 비디오테이프도 보이고, 백야성, 황금심, 백설희의 이름자가 선명한 LP 음반도 빼곡하다. 그 속에서 신식 노트북이나 골프채들이 이방인처럼 시침 뚝 떼고 끼어 있다. 마치 근대화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이색적인 문현동 골동품거리
뉴트로 인기, '을지로'라는 별명
별별 물건들로 가득 찬 만물상
사라지는 것 다시 만나는 감동
주인장의 성격에 따라 비치한 물건들도 다 다르다. 소반과 찬탁, 돈궤와 뒤주 등 나무 소품이 많은 집, 백동 호롱과 궁중 자물쇠, 고려 수저와 청동 뒤꽂이, 꽃고무신과 노리개 가방 등 전통 공예품이 가득 찬 곳, 일제시대에 사용됐던 가정용 8㎜ 영사기를 비롯하여,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제닉스 라디오, 대한전선 라디오, 일제 자바라 카메라 등 희귀 전자제품이 즐비한 집, 화려한 드레스와 무스탕이나 가죽점퍼 같은 빈티지 옷이 많은 개성파 가게도 있지만, 대개가 별별 물건들로 가득 찬 만물상이다.
손님들이 쓸만한 물건들을 찾아내면 주인은 어림짐작하여 가격을 던지고 흥정을 한다. 집집이 한 달에 몇 번씩 들르는 단골들도 꽤 된다. 곧 카페를 창업한다는 젊은 청년은 방금 수동 타자기 한 대를 단돈 이만 원에 구입하였다. 인테리어에 쓸 물건이란다. 주인장은 싱거 미싱도 함께 사라며 부추기고 청년은 못 이긴 채 지갑을 연다. 구석에서 어릴 때 부잣집에만 놓였던 자개농 한 짝이 먼지를 뒤덮어 쓰고 얌전하다. 배냇저고리를 개켜 넣고, 삼베 수의도 모셔 두었던 곳. 그리고 도둑 눈을 피하여 금반지 하나쯤은 어딘가에 숨겨 두었지. 한때는 그 집의 전부가 담겨 있던 물건이 이제는 골동품점에서조차 자리 차지만 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사라졌으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 그 시간의 뒤안길로 데려다주는 귀한 물건들이니 보고 있으면 마음이 그지없이 편안하다. 사라져가는 것이 어디 물건뿐이겠는가. 낭만이 있던 시골 간이역, 어머니 따라 구경 갔던 장터 대장간, 동네 개구쟁이가 빠졌다가 황급히 건져 올려진 동네 우물터, 서녘 해가 넘어갈 때면 허연 연기를 뿜어대던 굴뚝이 있는 집. 그리고 양복점과 다방과 방앗간과 이발관들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사투리도 잊히고 개펄도 없어지고 지평선도 지워지고 공터도 메꿔진다. 사라지는 집, 사라지는 골목, 사라지는 마을들….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외면당한 것들의 힘은 의외로 거대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버려지고 잊힌 것들이 골동품거리 한 귀퉁이에서라도 웅장한 뿌리를 내리면 좋겠다. 원시 숲처럼 질기게 뻗어나가면 정말 좋겠다.
2025-08-0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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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모래 한 알
뭔가 답답한 일이 있거나 혹은 탁 트인 공간을 느끼고 싶을 땐 바닷가에 간다. 부산은 백사장을 거닐 수 있는 해변 외에도 넓은 시야와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 언제든 수평선을 볼 수 있는 부산이 그래서 좋다.
그렇게 바닷가 백사장을 걷고 나면 삶에 닳아 너덜거리던 뭔가를 날려 보낸 느낌이다. 후련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면 마치 내가 어디에 갔다 왔음을 일러바치듯이 모래알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신경 써서 바지를 털어낸다고 해도 그렇다.
모래알을 꼼꼼히 살펴보면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다. 크기만 작을 뿐이지 작은 보석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바위 같기도 하다. 그렇게 손바닥에 모래알을 굴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백사장엔 셀 수 없이 많은 모래알이 있을 텐데, 어떤 인연으로 묻어와 이렇게 내 시선을 사로잡을까? 재미 삼아 확률을 한번 따져보자. 해운대 백사장 길이가 1.5km에 폭은 약 50m라고 한다. 깊이를 1m로 잡고, 모래의 평균 지름을 0.5mm로 계산하면… 해운대 해변에는 대략 1150조 개의 모래알이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 모래알은 1150조분의 1의 확률로 나에게 묻어 왔으며, 사실상 불가능의 확률을 뚫고 나와 연결된 것이다.
확률로 치면 대단하긴 한데, 이걸로 특별한 인연이라 하기엔 좀 억지스럽다. 내가 해운대 백사장에서 모래 한 알을 집었다고 해서, 그 모래알과 내가 1150조분의 1의 확률을 극복한 특별한 관계라는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비약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냥 모래알 하나를 집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확률 자체가 의미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여하튼 수없이 많은 모래알 중의 하나가 선택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위에서 벌어지는 우연과 필연, 그리고 인연에 관해 묘한 신비감을 느낀다. 이런 우연과 필연에 가장 신비하게 여겨지는 것이 또 있다. 수많은 사람의 화두가 되었을 질문이기도 하다.
바로 ‘나’라는 주체이다.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수많은 ‘나’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왜 하필 나일까? 왜 하필 팔 두 개 다리 두 개에, 이렇게 생긴 얼굴을 가진 생명체를 ‘나’라고 인식하게 되었을까? 이 생명체에 ‘나’가 깃든 것일까. 아니면 이 생명체에서 ‘나’가 생겨난 것일까?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은 ‘나’중에 왜 하필 ‘나’의 시선으로 이 세계와 우주를 응시하고 있는 걸까?
‘나’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과 지능을 이용해 주위 사람과 부대끼지만, 누구와도 동일화되지 않는다. 다른 ‘나’의 생각을 엿볼 수 없으며, 어떤 고통도 공유하지 못한다. 그저 상황을 유추하고, 판단하여 이성적, 감성적으로 동조할 뿐이다. 나는 나만의 우주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나’는 결국 타인이며 관객이다.
나는 물리학의 초끈이론이나, 브레인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평행우주’가 어쩌면 바로 ‘나’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나만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나는 결코 엿볼 수 없는 타인의 우주가 수없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타인의 우주에도 내가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우주에서는 내가 타인이다.
그러니 사람들 각 개개인은 저마다의 우주를 가졌다. 어쩌면 동물들도 가졌을지 모른다. 저마다의 세상에서는 잘났든 못났든 바로 자신이 주인공이다. 승객은 기차에 오르내릴 것이고, 주인공은 저마다 죽느냐 사느냐를 외칠 것이며, 객석에 앉아 먹는 팝콘은 여전히 맛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다큐멘터리를 찍든 영화를 찍든 나도 나만의 무대에 서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래알처럼 많은 ‘나’중에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주인공이다.
2025-07-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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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입니까?
요즘 나는 채소를 구독하고 있다. ‘채소 구독’이라니 어쩐지 비문 같지만, 업체에서 실제로 그 단어를 쓰고 있기도 하고 일단 요즘은 뭐든 다 구독하는 시대 아닌가. 언어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이제 ‘구독’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신문이나 잡지 등의 간행물을 정기적으로 구매해서 읽는다는 뜻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유튜브, 음원, OTT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부터 쇼핑, 배달, 생활 가전 대여에도 ‘구독’이라는 말을 쓰고, 심지어 최근에는 차량까지도 월간 구독 서비스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다간 집도 구독하고 인간관계도 구독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채소 구독 서비스는 꽤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날 관련 업체의 홈페이지 배너를 무심코 클릭했다가 정기 결제까지 누르게 되었다. 품질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생김새 때문에 버려져야 할 위기에 처한 농산물들을 구출하자는 것이 이 업체의 모토였는데, ‘채소 구출하기’라는 배너를 보는 순간 내 안에서 작은 의협심이 샘솟았다. 그 아래쪽에는 특이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져야 하는 채소들의 사진이 있었다. 갓이 두 개인 버섯, 쭉 뻗지 않고 휘어진 오이, 우람하고 통통한 청경채, 다리가 세 개인 당근…. ‘조금만 기다려, 얘들아. 내가 너희들을 구해줄게.’ 주황색 배너의 ‘구출’이라는 단어와 채소 사진들은 내 감정을 제대로 건드렸다. 비록 구출해서 바로 먹어버린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사랑의 방식은 다양한 형태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먹어서 내 몸 안에 ‘저장’하는 것 또한 사랑의 한 형태라고 한다면 너무 그로테스크한가.
채소 구독에 작은 의협심 샘솟아
디지털 시대 간편한 애정 표현
우리의 진심은 얼마나 들어 있나
구독을 시작하자 매주 다양한 채소들이 박스에 담겨 배달되었다. 박스 안에는 채소들의 이름과 사연이 적힌 종이도 함께 들어 있었다. 이를테면 농약을 치지 않아서 잎에 벌레 먹은 구멍이 많다든지, 타고난 모양이 개성 있다든지, 크기가 아주 우람하거나 아담하다든지 그런 내용이었다. 사연 있는 채소라니. 너무 감성에 호소하는 마케팅이다 싶으면서도, 그런 사연 때문에 버려질 뻔했던 존재들이 사라지지 않고 내게로 왔다고 생각하니 단 하나라도 시들어 버리게 하지 말고 열심히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생으로 먹고, 데쳐먹고, 볶아먹고, 갈아먹고.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식탁이 풍성해지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의구심도 들었다. 이것이 과연 지구 환경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인가. 혹여 자기만족과 일시적 위안에 불과한 건 아닌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프랑스의 미식 철학자 브리야 사바랭의 그 말은 여러 버전으로 변형되어 쓰이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당신이 무엇을 구독하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구독은 실시간 취향의 반영이다. 소유와는 또 다르다. 일단 한 번 소유한 것들은 버리는 데 큰 결심이 필요하기에 애정이 식었더라도 계속 곁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구독은 단기적인 계약과 만족도에 따른 연장의 관계이기에 맺고 끊기가 훨씬 간단하다. 옛날처럼 ‘○○일보 사절’이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써서 대문 앞에 붙여놓을 필요도, 몰래 신문을 넣고 가는 배달원과 오랜 기간 실랑이를 벌일 필요도 없다.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저 구독 취소를 한 번 클릭하면 되고, 처음엔 좋았더라도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좋아요’ 눌렀던 것을 취소하면 그뿐이다. 일견 합리적이고 편리한 것 같은 이 시대의 시스템,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입니다’라고 외치는 디지털 시대의 간편한 애정 표현에 우리의 진심은 과연 얼마나 들어있을까. 손쉽게 ‘채소 구출하기’ 배너를 누른 내 마음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2025-07-2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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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인간에게 성격이 곧 운명일까
‘성격이 곧 운명이다’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은 ‘성격이 팔자’라는 우리 속언과 호응하며 지금까지 꽤 설득력을 얻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저서는 존재에 관한 추측만 무성할 뿐 전해지지 않았고, 그의 말들만 조각으로 인용되곤 한다. 그래서 ‘성격이 곧 운명이다’라는 그의 말은 대부분 출처 없이 여러 말과 글에 등장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을 참고하면, 이 말의 원문은 ‘성품(ethos)이 곧 수호신(daimon)이다.’
원문과 떠도는 인용이 다소 다르다. 먼저 에토스(ethos)를 성격으로 번역할지, 성품으로 번역할지가 문제이다. 성격은 타고난 성질이나 기질이기에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성품은 성격이란 바탕 위에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형성되는 개인 특성이기에 교육, 경험, 관계 등 다양한 요인으로 변화하며,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형성된다.
윤리학(Ethics)의 어원이 에토스이고, 옥스퍼드사전에서 에토스를 개인이 지니는 도덕적 생각과 태도라고 정의했으니, 에토스는 성격이 아니라 성품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만약 성격이 운명이라면, 우리는 이미 운명을 타고난다는 뜻이고, 성품이 운명이라면 운명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글자 하나로 뜻이 완연히 바뀐다. 만물 유전설로 알려진 헤라클레이토스라면, 변화 가능성이 희박한 성격이 곧 운명이 된다는 주장을 펼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 다이몬(daimon)에 관한 번역도 문제다. 다이몬은 악마를 뜻하는 ‘데몬(demon)’의 어원이지만 본디 반인반신의 생물로 악마와 천사를 함께 품은 모순의 존재이며, 책에서는 ‘수호신’으로 번역했다. 다이몬의 번역은 다양하며, 그중에서 ‘운명’이란 의미가 있다. 다이몬은 사람일지 신일지, 천사일지 악마일지, 섣불리 규정할 수 없는 존재다. 운은 운인데, 그것이 행운일지 불운일지, 인생에서 좋고 나쁜 것은 명확하지 않다. 화가 복이 되기도 하고,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찾아오는 것이 인생이다.
결론적으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에 인용된 원문은 ‘성품(ethos)이 곧 운명(daimon)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바른 성품을 갖추지 못한다면, 좋지 않은 운명을 맞아야 마땅하다. 공자는 〈논어〉 옹야편에서 ‘인지생야직 망지생야행이면(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사람의 인생은 곧아야 한다. 곧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면 요행히 화를 면하고 있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직(直)이 에토스가 강조하는 윤리적 생각과 태도, 즉 바른 성품을 뜻한다. 직(直)의 반대말이 곡(曲)이다. 곡학으로 세상을 어지럽힌 자가 잘 살고 있다면 운이 좋아 화를 면하고 있는 것뿐이다. 운이 좋은 것도 한두 번이다. 결국 전 생애에 걸쳐 좋은 운명을 원한다면 바른 성품을 지녀야 한다.
바른 성품은 마음(heart)과 정신(mind), 의지(will)로 형성된다. 공감과 연민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친절하고 관대함을 잃지 않는 마음과 호기심으로 배움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자기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지적 겸손을 갖추어야 공자가 직(直)을 강조하되 경직(硬直)을 경계했던 이유를 깨닫는다.
인생은 늘 반듯할 수 없다. 그래서 곡절 없는 인생이 없다고들 한다. 우여곡절을 겪을 때마다, 힘들고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위대한 승리’라고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자기 통제력(self-control)을 갖춘 의지가 있다면, 그리하여 바른 성품을 스스로 형성할 수 있다면, 성품이 곧 원하는 운명이 될 수 있다. 내 성품이 내 운명이다.
2025-07-1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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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붓끝에서 흐르는 기억
항구도시 부산에서 빠트릴 수 없는 명소가 영도이다. 목도(牧島)라는 옛 이름이 지칭하듯 예전에는 말 사육장으로 유명하였고, 근대유산인 영도다리가 위풍늠름하게 남아 있으며, 요즈음 젊은이들의 여행지로 떠오른 흰여울문화마을도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소설 ‘파친코’ 주인공 선자의 고향도 부산 영도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한때 조선에서 가장 큰 도자기 공장이자 동양 최대의 도자 생산 기업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가나자와에 있던 일본경질도기가 조선경질도기로 합병하여 본점을 완전히 영도로 이전하여 운영하였다. 해방 후에는 대한도기로 명칭을 변경하여 전국 도기의 대부분을 여기서 만들었다. 전성기 때는 월 100만 장씩 도자 접시를 만들었으며 직원 또한 1000명이 넘었다.
반세기도 훨씬 지난 그때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의 관심 밖이며 그나마 남아 있던 공장의 붉은 벽돌 담벼락도 근래에 도로공사를 이유로 말끔히 철거되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수집가의 끈질긴 노력으로 핸드페인팅 접시들이 개인 수장고에 보관되었다. 주인장은 낯선 방문객에게도 흔쾌히 개방해 준다.
도자 접시에서 과거의 시간이 흘러나온다.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대다수 한국전쟁 피란민들로서 생활고 때문에 대한도기와 인연이 닿았다. 그들 중에는 고종과 순종의 어진화가로 이름을 알린 이당 김은호, 이당과 막역하게 지내던 소정 변관식, 월전 장우성과 목불 장운상, ‘장미의 화가’라는 별칭을 얻은 황염수, 부산의 동양화가 윤재 이규옥뿐만 아니라 푸른 추상을 떠올리게 하는 통영의 전혁림도 칠 년 동안 몸담았으며, 김환기와 이중섭도 참여했다는 사실이 꽤 놀랍다.
유리문 속에는 생활 접시로 쓰였던 자그마한 백자초화문 접시가 보기 좋게 진열되었지만, 내 눈길을 잡는 것은 대체로 대형 그림 접시들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활궁을 쏘는 여인, 댕기를 휘날리며 널을 뛰고 그네를 타는 처녀들, 바둑을 두는 노인들과 낚싯대를 드리운 조사, 소맷자락 펄럭이는 무희, 물동이를 인 아낙, 베틀에 앉은 촌부…. 여백에 낙관 대신 그려놓은 작가의 별호들도 재미있다. 흔한 종이 그림이 아니기에 귀하고, 식민지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탄생할 수 없었던 작품이라 의미롭다.
가만히 생각하니 내게도 녹색유초화문 접시가 딱 하나 있다. 예전에 지인 중에 접시에 푹 빠진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월급만 타면 낡은 트럭을 몰고 한반도 구석구석을 다니며 옛 접시를 사 모았다. 그때 나는 그들의 외아들에게 과외를 했었는데, 그 집에 갈 때면 부러 일찍 도착하여 그림 접시들을 구경했다. 내가 유독 관심을 두자 어느 날 그들은 내게 포도 넝쿨이 멋지게 그려진 초화문 접시 하나를 선뜻 건네는 것이다. 내가 쓰는 글도 알알이 영글기를 바란다는 덕담과도 함께.
그런데 오늘 이곳 주인장에게 그들의 근황을 듣게 될 줄이야. 얼마 전에 그들 부부는 그동안 수집한 접시들을 가지고 근사한 전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숙원을 이룬 감격이 컸으리라 여긴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 중에 ‘한 일 자를 십 년 쓰면 붓끝에서 강물이 흐른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용기가 되는 말인가. 대한도기에 흠뻑 빠져 수천 점을 모은 이곳 주인장도, 접시에 미쳐 산천을 다니던 그들 부부도, 돈도 밥도 되지 않는다는 문학에 뛰어들어 밤낮으로 허우적대는 이 가련한 글쟁이도, 십 년쯤이야 가뿐히 견뎌내었다. 모두들 우직하게 외길을 걷고 있으니 분명 이 길 끝에는 유장한 강물이 출렁이리라 믿는다.
2025-07-0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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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뒷모습
일하다가 문득 고개 들었을 때,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다른 동료의 등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땐 동료의 등이 유난히 든든해 보인다. 근거 없는 신뢰가 뭉클 피어오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인다. 누군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이 안정감은 ‘뒷모습’이라는 단 하나의 장면으로 전달이 된다.
집에 돌아오면 요리 중인 아내의 뒷모습을 본다. 오래된 앞치마, 반쯤 걷은 소매, 그리고 익숙한 냄새. 아무 말이 없어도, 말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긴 장면이다. 익숙할수록 소중해지는 수많은 시간이 함축된 아내의 뒷모습은 하루를 지탱하게 하는 힘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집에 들른 딸아이를 기차역에서 배웅했다. 출발 시각이 임박해 캐리어를 끌고 오르는 아이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타지에서 다녀야 하는 고단한 직장생활, 부모 품을 떠나 홀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 그 모든 것이 딸아이의 어깨에 앉아 있는 듯하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늘 아이의 등 뒤에 마음을 건넨다.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
뒷모습은 때때로 말보다 진한 언어를 주고받는다. 말이 없기에 더 큰 여운을 남기고, 말이 없기에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을 불러온다. 그런 야릇한 감정을 처음 느낀 건, 어린 시절, 방학이 끝나 외갓집을 떠날 때였다.
기차역을 향해 구불구불한 농로를 따라 걷다가 문득 돌아보니, 멀리 농로의 끝단에 선 외할머니가 아직도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다. 세차게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걷다 돌아보면 그 자리에 계셨고, 다시 한번 돌아보면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셨다.
나는 처음으로 내 뒤에 누군가의 감정이 머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그때는 그저 내 뒤가 간지럽고 가슴이 울렁거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느낌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오늘 아침, 출근하려 문을 나서고, 무심히 계단을 내려가던 순간, 또 한 번 내 등이 간질거렸다. 퇴근 후, 저녁 식사를 하며 아내가 말했다.
“당신 요즘 좀 힘들어 보여요.”
“나? 쌩쌩한데?”
아내에겐 뭔가가 평소와 달라 보였던 모양이다. 무엇이 달라졌기에 그런 말을 했을까. 뭐가 달라졌는지는 나도 모른다. 뒷모습은 타인의 시선에만 존재하는 ‘나’이기 때문일까. 그렇기에 나는 종종 ‘또 다른 나’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말없이 내 등을 바라보는 아내, 멀어지는 나를 지켜보던 친구, 혹은 나를 아는 누군가의 기억 속 한 장면으로 남아 있는 뒷모습. 어쩌면, 뒷모습이야말로 ‘나’에 가장 근접한 모습일지 모른다. 본인도 알지 못해 민낯처럼 드러내는 것이 바로 뒷모습일 테니 말이다.
한참 후, 친구의 기억에서 꺼내진 한 장의 사진 같은 이야기로, 혹은 가식적인 웃음으로 서로 악수하고 돌아선 타인의 뒷모습에서 나는 문득 ‘나’의 뒷모습을 대면하게 된다. 그렇듯 뒷모습은 가장 늦게 마주하는 ‘나’다.
마주 본 뒷모습은 의외로 적나라하다. 내 욕망의 흔적이며, 삶에 남겨진 상처이며, 미처 숨기지 못한 속마음이기에 그렇다. 앞모양은 반듯하게 연출했을지 몰라도, 뒷모습은 그 연출을 위해 구깃구깃 접혔거나 너덜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차마 직시하고 싶지 않은 모습일 수 있다.
우린 흔히 앞모습으로 상대를 기억하지만, 어떤 이는 뒷모습이 더 오래 기억될 때가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도 누군가에게 어떤 뒷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뒷모습으로 내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대면할지도 모른다.
2025-06-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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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보랏빛 성
아버지는 은퇴 후 몇 년 동안 강원도 산골짜기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사셨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올 법한 산골이어서 한 번 찾아가려면 해외여행을 하는 정도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도시에서 멀어진 만큼 훼손되지 않은 자연 풍경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장소였지만, 그만큼 원시적인 삶의 불편함도 모두 감수해야 하는 곳이었다.
어느 여름날, 우리 가족은 모처럼 동생네 가족과 휴가 날짜를 맞추어 아버지 집에 모였다. 집은 작았으나 그 앞에 너른 공터가 있었기에 텐트를 치고 자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도시 여자’인 나와 올케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환경이었다. 잠자리도 그렇고 화장실도 그렇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 당연히 위생은 포기해야 했고,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다채로운 벌레들은 기본 옵션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세 명의 꼬마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다.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따먹고 씨를 아무데나 뱉어도 되고, 층간소음 걱정 없이 마구 뛰어다니고 소리를 질러도 되고, 심지어 할아버지가 심어놓은 나무 아래 아무데나 가서 바지를 내리고 쉬를 해도 된다고 하니 ‘도시 꼬마’들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도시에선 절대 하면 안 된다고 했던 일들이 그곳에서는 더 이상 금기 사항이 아니었다. 꼬마들은 시골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 순간 주어진 자유에 빠르게 적응하고 즐거워할 뿐이었다.
단순한 현상만 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진심을 볼 때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
얼마 후, 뛰어놀던 세 꼬마 중에 막내 조카가 조금 지쳤는지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그리고 양은냄비에 담겨져 있던 포도를 먹기 시작했다. 오물오물, 작은 입으로 야무지게도 먹는다고 생각하며 인형 보듯 바라보았다. 원래도 인형처럼 생긴 아이인데다 막내는 언제나 더 귀여운 법이니까. 그 귀여운 꼬마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괜히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포도알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막내조카에게 나란 존재는 오랜만에 보는 낯선 어른일 뿐이고, 특별한 친밀감 없이 그저 고모라고 하니 그렇게 부를 따름이었겠지만, 그래도 내 친절이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고 건네주는 포도도 잘 받아먹으며 내 옆에 줄곧 앉아 있었다. 먹고 남은 포도 껍질을 바닥에 하나씩 쌓아두면서. 저 조그맣고 예쁜 손으로 포도 껍질도 한 곳에다 예쁘게 두는구나 싶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막내조카가 양은냄비의 포도를 다 먹었을 때 나는 그 애가 쌓아둔 포도껍질을 두 손으로 모아들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갖다버렸다. 그러자 막내조카가 갑자기 뾰로통한 표정이 되더니 제 엄마에게로 가서 무슨 말인가 한참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조카에게 다가갔다. 그랬더니 그 애는 작은 두 팔로 잘 만들어지지도 않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한쪽으로 휙 돌려버렸다.
나중에 올케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막내조카가 나에게 단단히 토라진 이유는 포도껍질 때문이었다. 자기가 힘들게 성을 만들었는데 그걸 고모가 마음대로 부수었다는 것이다. 아차 싶었다. 그 애는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두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자신만의 보랏빛 성을 쌓아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가 쌓은 성을 무지막지하게 부수어버린 파괴자였다. 모처럼 만난 귀여운 조카에게 환심을 사려고 애썼던 시간, 조심스럽게 쌓아둔 친밀감과 유대감, 그런 것들을 내가 한 순간에 깨뜨렸음을 그제야 알아채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단순한 현상만 보느냐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진심을 보느냐에 따라, 쌓여있는 포도껍질은 음식물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아름다운 보랏빛 성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다시 여름의 시작이다. 후회 없이 돌아오는 계절처럼, 내가 무너뜨렸던 성도 다시금 쌓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2025-06-2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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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노는 것도 일이다
교직에 종사하는 나에게 수업은 분명 일이다. 학생들에게 가끔 말한다. “정말 미안한 말인데, 나는 수업이 즐겁습니다.” 내게 수업은 제자들과 주고받는 대화의 놀이고, 강의실은 앎이 삶을 외면하지 않고 삶이 앎을 기피하지 않는 지적 놀이터였다. 임금 노동자인 나는 당연히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아야 하는데, 놀고 돈을 받으니 미안했고, 평가 대상인 학생들에게 수업은 놀이가 될 수 없음을 알기에 더 미안했다. 나는 내 일이, 노동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하는 놀이였으면 했다.
대부분 포유류는 놀이로 학습하고 성장하며 생존 방식을 터득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술래잡기는 공동체의 규칙을 지키며 동료와 협력하는 사회화 과정을 자연스레 터득하고 체력도 기르는 놀이다. 지금도 어릴 적 술래잡기의 기억은 선연하다. 공터에 땅거미가 지고 철길 저편 노을이 붉게 물들어도, 엄마가 호명한 아이들이 하나둘 골목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우리 놀이는 이어졌다. 그 시절 우리에게는 공터와 놀이가 선생이었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서 회색 신사들이 “노래하고 책을 읽고 친구들을 만나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말했듯, 오늘날 우리는 놀이의 시간을 낭비라 여긴다. 그래서 회색 신사들은 이발사 푸지 씨에게 손님 한 명당 이발하는 데 30분씩 걸린다며, 앞으로는 잡담하지 말고, 15분으로 줄여 시간을 저축하라고 부추겼다. 손님과 대화하며 이발할 때, 푸지 씨의 일은 노동의 시간이 아니라 놀이의 시간이었음을 자신도 알지 못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맡기고 노동에 전념한다. 아이들과 함께 노는 대신 장난감을 사주거나 주말 놀이공원에 데려간다. 하지만 놀이공원은 노는 곳이 아니라 놀이를 판매하는 곳이며 이윤 추구를 위한 산업 현장이다. 노래방, 피시방, 스크린 골프방 등 각종 놀이 산업이 제공하는 상품들은 소비가 곧 놀이임을 착각하게 만들며, 그 소비를 감당하고자 자처하는 노동은 결국 우리가 지금 놀이로 위장된 노동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방증한다.
문화인류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에서 인간의 본원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라고 하였다. 문화가 놀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 놀이가 문화를 만들며, 결국 인류는 노동이 아니라 놀이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는 그의 주장에 나는 매료되었다.
하위징아는 놀이 정신이 근대에 와서 쇠퇴했다고 보았다. “놀고 있네”라는 비아냥의 언어처럼, ‘노는 인간’에 대한 시선은 차갑다. 근대 이후 세계가 시장을 중심으로 재편되며 이윤 추구는 윤리가 되었고, 놀이는 폄하되고 노동은 높이 평가받았다. 베짱이가 뼈아픈 반성 끝에 개미의 삶을 지향했듯 노는 인간은 노동하는 인간으로 변신하거나 개조되었고, 우리는 시장에서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한 노동에 매달리며 놀이 정신을 잃어갔다.
우리는 일하지 않고 먹고살 길이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을 노동이 아니라 놀이로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놀이(play)의 반대말은 일(work)이 아니라 노동(labor)이다. 이들에게는 일상이 놀이고 일터는 놀이터가 된다. 제대로 놀아본 사람들은 안다. “노는 것도 일”이란 말처럼, 노는 게 얼마나 힘든지. 본디 놀이는 고단한 즐거움이 아니든가.
우리는 지금 소비를 놀이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내일의 노동을 위한 놀이는 놀이가 아니라 노동의 일부일 뿐이다. 제대로 놀려면, 우연과 의외성에 자신을 맡기고 세상 곳곳에 숨겨진 차이를 발견하며, 스스로 재미를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한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순수한 즐거움으로 노는 인간만이 자유롭고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2025-06-1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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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젊다, 모두 너무 젊다
허공에 가득 찼던 흰 꽃들이 떨어진다. 이팝꽃 때죽나무꽃이 후드득 내려앉는다. 떨어지는 것이 어디 계절 꽃뿐이랴. 떨어지는 열매, 떨어지는 풀잎, 떨어지는 이슬…. 그러나 떨어져 버린 목숨만큼 아깝고 애달픈 것이 있을까. 무엇보다 타인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존엄한 희생정신이다.
여기, 재한유엔기념공원에 그 거룩한 역사가 펼쳐져 있다. 숭고한 죽음이 단단한 석비로 돋아났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흔적들, 육체는 소멸되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름들만 몇 줄의 글자로 남았다. 선지자들이 만물이 하나라고 이르듯 과연 삶과 죽음도 하나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것은 육신이 흩어지는 것이니 몸속 원소도 해체되어 사라져버리는 일. 하지만 사라진다는 것은 틀렸다. 육체의 질료가 다른 삶에게로 옮겨가는 과정일 뿐.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다. 이곳 무덤에 푸른 제비꽃이 피고 녹색 잔디가 싱싱 뿌리 내리듯이 그들의 영혼과 정신은 불멸한다는 것을.
오랜 수탈에 시달려 헐벗고 가난했던 나라, 그 힘없는 나라에 전쟁은 시작되었고, 북새통에 급히 마련된 묘지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공약을 내세웠던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유엔묘지 참배를 앞두고 이 허술한 묘역을 어떻게 정리하였던가. 기록을 살펴보면 부검 후 묻은 전사자의 주검을 다시 꺼내 햇볕에 말렸다가 커다란 지퍼백에 넣어 되묻었는데, 시신을 말리는 악취가 퍼졌고 전사자를 감싼 옷과 담요를 씻어낸 용당 앞바다가 붉게 물들었으며 비릿한 피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였다. 하물며 한겨울 엄동설한에 어디에서 푸릇한 잔디를 구해올 것인지에 대해 발을 구르고 있을 때, 어느 대기업 회장의 아이디어로 잔디 대신 푸른 보리 싹을 심었다는 일화 또한 슬픈 역사로 남았다.
머나먼 이국땅 한국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때의 청년들은 아흔을 훌쩍 넘긴 백발 노병이 되었고, 안장자 유족들은 물론 자식 세대도 고령에 접어들었으며, 그들이 목숨 걸고 바친 나라는 이제 세계 강국이 되었다. 그 속에 한국 청년들이 함께 누워 있다. 창녕과 영산지역 전투에서 산화한 카투사들이다. 육군 일등병 도재빈의 묘, 홍옥봉의 묘, 김록이의 묘, 오학연의 묘, 박지호의 묘를 거쳐 묘지 번호 369번, 무명용사의 묘 앞에 발길을 멈춘다. 젊다, 모두 너무 젊다.
그들 묘비 앞에서 로렌스 비니언의 ‘전몰용사를 위하여’라는 시를 아는 자라면 “살아남은 우리는 늙겠지만 그들은 늙지 않으리라. 세월 앞에 추해지거나 좌절하지도 않으리라. 해가 저물고 그리고 아침이 오면 우리는 언제나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라는 구절을 저절로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안장된 전몰용사들의 전사일에 맞춰 경비팀 직원들이 매일 아침 헌화한 ‘오늘의 추모용사’를 찾아 참배하는 일도 빠트리지 않으리라.
전몰장병 중 최연소 소년병인 도은트 일병도 반드시 기억할 이름이다. 당시 호주에서는 군에 지원할 수 없는 열일곱 나이로 가족 몰래 형 이름을 빌려 참전했다. 짧은 생을 마감한 도은트 군의 넋을 기리고자 만든 작은 개울, ‘도은트 수로’에는 물고기도 살아 있음이 송구한지 몸을 납작 엎드렸다. 그 너머 대형 분수 위로 찬연히 솟은 불기둥이 있다. 높다란 기둥 위에는 빗줄기가 쏟아져도 365일 꺼지지 않는 추모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타국의 수많은 용사가 목숨을 잃은 땅, 그중 14개국 2330명이 이곳 공원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국제추모식 문구 앞에서 거듭 생각해 봐도 그들은 정녕, 너무 젊다.
2025-06-0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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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인간을 넘보는 기계
몇 해 전 뉴스에서 엄청난 AI가 등장했다고 호들갑 떨었다. ‘챗지피티(ChatGPT)’라는 것이었고, 나도 그게 신기했다. 호기심에 PC에 설치하고 질문도 던져보았다. 흠, 그럴듯하게 대답하는군. 한데, 이걸 어디다 쓴단 말인가? 인공지능? 아직 멀었어. 그렇게 단정하고 한참을 잊고 지냈었다.
현재의 나는 그 인공지능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챗지피티에 묻는다. 질문의 절반은 다른 인공지능에 질문할 요령을 묻는 것이다. 이제 전문적으로 특화된 다양한 인공지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미지나 영상을 만드는 AI, 리서치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AI, 심지어 코딩을 짜주는 AI도 등장했다.
각각의 AI 툴을 배우느라 진땀 빼야 했을 과정이 생략되고, 몇 마디 말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최적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선 지시할 말을 다시 인공지능에 물어봐야 한다. 이것을 ‘프롬프트’라고 한단다. 사람의 말을 인공지능이 알아듣게 바꿔 묻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긴 하다. AI는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 일상의 비서이고, 업무 동료이며, 때로는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 역할도 해낸다.
상상이 현실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니 SF영화에서나 보던 AI의 무서운 변신도 마냥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 자연히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과연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물론, 혼자 고민해봐야 별 뾰족한 수는 없다. 그래서 챗지피티에게 물어봤다. 너는 인간처럼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냐? 그랬더니 꽤 장문의 대답이 나왔다.
“나는 인간처럼 자율적으로 생각하거나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중략… 내 판단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통계적인 최적화의 결과입니다. 자유의지를 행사하지 않으며, 욕망도, 후회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습니다. 인간은 불확실성 앞에서 흔들리며 방향을 찾지만, 나는 확률 속에서 가장 안정된 문장을 출력할 뿐입니다. …중략… 그래서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자율적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당신이 자율적으로 생각하도록 도울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위안이 되는 대답 같긴 한데, 왠지 아니꼽다. 아니, 이놈이 뭔 대답을 이렇게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잘 하는 거야? 인간 비위를 살살 맞춰가면서? 따지고 보면 이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우리 인간이야말로 정말 ‘자유의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자유의지가 뭘까?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인가?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인간은 원할 수 있는 자유는 있지만, 무엇을 원할지는 자유롭지 않다.’ 이 말은 우리가 뭔가 원하는 걸 선택했을 때, 과연 그 ‘원하는 것’의 근거가 무엇이었나에 관한 성찰이다.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정말 내 의지로 선택했는지 의심스럽다. 배고프면 음식을 찾고, 사랑하면 다가가고, 두려우면 피한다. 이 모든 반응의 기저에 신경계의 전기신호와 호르몬작용, 유전자의 프로그램이 관여한다. 굳건한 내 의지로 다짐했던 결심들이 내 두뇌에 저장된 기억 데이터와 다양한 호르몬으로 파생된 욕망과의 결합물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러니 기계가 인간을 넘보는 이 시대에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가 인간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가 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정보의 최적화를 도출해내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당연히 인간은 정답을 모른다. 후회하고, 망설이고, 스스로 의심하는 그 불완전한 과정. 완벽한 알고리즘은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의 혼란스러운 자의식에서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질문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인간답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2025-06-0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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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관성과 변화
나른하게 누워있는 고양이 사진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한때 유행했던 밈(Meme)이다. 침대에 누운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쉬운 일인지. 그건 그가 특별히 게으른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어떤 힘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존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뿐만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반복하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지금 하고 있는 행동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 편하다. 뉴턴의 제1운동법칙, ‘어떤 물체에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정지해 있던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하고, 운동 중인 물체는 계속 같은 속도로 직선 운동을 한다.’ 이 법칙을 삶의 여러 측면에 폭넓게 적용해보면 우리의 관성적인 행동이 매우 자연스러운 물리 현상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서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잘못 굳어진 관성은 하루를 망칠 뿐만 아니라 몇 년의 세월을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게도 한다. 나는 20대 후반에 취미로 시작했던 풍물패 활동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대학 풍물패 출신이었던 초창기 멤버들과는 달리 기본기가 아예 없는 상태에서 모임에 들어온 케이스였다. 선배들은 얘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해 하면서도 내치지 않고 끈기와 인내로 장구 강습을 해주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 매일 동아리방에 드나들며 악기를 두드리고 방학 때마다 각종 전수 프로그램을 통해 기량을 쌓아나가던 이들과 내가 같을 수는 없었다. 평일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주말에만 두어 시간 연습을 하는 처지에 기본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가기는 아무래도 어려웠다.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상황이었기에 선배들도 나에게 몇 달 동안 ‘쿵’만 치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나로서도 빨리 다양한 가락을 익혀 선배들과 같이 공연을 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러다보니 기본 타법이나 자세가 바르게 잡히기 전에 여러 가락들을 배우며 공연 연습을 하게 되었고, 가락을 외우는 일과 빠르게 속도를 내는 일이 시급했기에 잘못된 타법과 자세는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가끔 선배들이 지적을 해주기도 했지만 그 순간에만 잠시 신경을 쓸 뿐 나는 금세 기존의 잘못된 습관을 되풀이하게 되었다. 늘 하던 대로 하는 것이 편하니까. 그러나 잘못된 관성은 결국 문제 상황을 맞닥뜨리게 하고 그로 인한 한계를 직면하게 한다. 나는 가락을 다 외웠으면서도 일정 빠르기 이상의 속도를 내지 못했고, 힘을 빼고 쳐야할 부분에서도 자꾸만 힘을 줬다. 그것이 잘못된 타법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고치기는 쉽지 않다. 뉴턴의 제1운동법칙에 따르면 이러한 관성을 깨기 위해서는 힘의 작용이 필요하다. 물체의 운동에 국한한다면 그건 외부의 물리적인 힘을 뜻하는 것이겠지만, 우리의 관성적 행동 패턴에 적용해 본다면 그 힘은 강한 내적 동기나 새로운 목표, 변화를 향한 의지 등으로 볼 수 있겠다.
변화는 어렵다. 과거에 우리가 고수했던 사고방식이나 이미 굳어져버린 패턴에 자꾸 부딪친다. 익숙해진 무언가를 바꾸는 일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므로, 지금까지 그 일에 들인 시간보다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는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다. 사회나 국가 차원의 집단적인 관성도 있다. 사회 전체의 잘못된 관성을 멈추거나 변화시키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그러한 내적인 힘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그 힘으로 더 나은 세계를 찾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2025-05-25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