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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타임 아웃] 11명의 축구 선수
‘캡틴’ 손흥민이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뜨겁게 하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토트넘에서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로스앤젤레스FC(LAFC)로 이적한 손흥민의 열풍은 상상 이상입니다. 손흥민의 경기가 열리는 입장권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티셔츠 판매량이 급증해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의 인기를 능가할 정도입니다. MLS 3경기 만에 환상적인 데뷔골을 터트린 손흥민은 14일 세너제이와의 경기에서도 경기 시작 52초 만에 리그 두 번째 골을 기록하며 월드클라스급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손흥민이 MLS의 인기마저 끌어올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세너제이 원정경기에서도 한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을 세웠다는군요.
지난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치른 미국과 멕시코의 평가전에서도 손흥민은 2골 1도움으로 맹활약했습니다. 당시 중계를 하던 TV 캐스터의 말이 생각납니다. “대한민국은 손흥민을 보유한 나라입니다”. 멋진 말입니다.
딸과 함께 A매치 평가전을 보다 문뜩 옛날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딸은 초등학교 때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 서포터즈를 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습니다. 경기 직전 선수들과 함께 입장하는 ‘에스코트 키즈’ 경험도 있지요. 당시 딸은 “아빠! 축구는 왜 11명이서 해?”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납니다. 축구 담당기자가 축구 한 팀 선수가 왜 11명인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축구 한 팀은 왜 11명일까요. 축구의 기원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중세 유럽에까지 다양하게 존재했습니다. BC 200년쯤 이미 축구와 비슷한 경기가 중국에서 행해졌고, 고대 그리스에서도 축구와 유사한 특징을 갖는 경기가 열렸다고 전해집니다. 당시에는 인원 제한이 없어 수십 명이 함께 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1863년 영국축구협회가 설립되면서 현대 축구의 규칙이 정립되기 시작하는데요. 당시 한 팀의 축구 인원을 11명으로 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당시는 왜 11명을 기준으로 했을까요. 영국 사립학교 기숙사의 방 정원이 10명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당시 각 방에는 10명의 학생 외에 방장 또는 사감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방 단위로 축구 경기를 하다 보니 팀 정원이 11명이 됐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크리켓과 필드하키도 한 팀이 11명이라는 점도 이러한 설을 뒷받침합니다.
축구장의 크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축구장은 길이 100~110m, 폭 64~75m의 크기로 돼 있습니다. 이 규격에서 이상적인 경기를 할 수 있는 것이 필드플레이어 10명과 골키퍼 1명이라는 것입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현재 11명의 선수로 다양한 전술이 나오면서 재미를 더하고 있으니 축구는 흥미진진한 경기입니다.
2025-09-1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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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특별한 돌멩이
발부리에 툭 걸린 돌멩이. 그저 그런 평범한 돌 하나로 생각의 집을 짓는 작가들이 있다.
돌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오소리 작가의 그림책 <돌머리들>(이야기꽃)을 펼친다. ‘돌머리’ ‘쓸모없는 돌멩이’ 같은 부정적 표현은 돌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나온다. 돌은 많은 창조의 시작점이다. 인간의 삶을 바꾼 수많은 도구가 돌에서 나왔다. 돌은 안식처를 만드는 건축 자재로, 감동을 주는 예술 작품의 재료로 사용됐다. 돌은 지구 생명체의 근원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고, 간절한 믿음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쓸모가 넘치는 돌이 그 속에 어떤 보물을 품고 있을지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다.
‘네가 의미와 이유를 찾으면 모든 돌은 중요한 돌이 돼.’
나만의 돌을 찾는 이에겐 메리 린 레이가 쓰고 펠리치타 살라가 그린 <딱 맞는 돌을 찾으면>(피카주니어)을 추천한다. 어린 시절 많은 아이가 돌을 갖고 놀았다. 바위에 기어오르고 돌탑을 쌓고 물수제비를 떴다. 조약돌을 주워 보관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저 놀이처럼 보이는 순간마다 ‘발견’이 있다. 유달리 반짝이는 돌을 발견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자기 나름의 특별함을 찾는다. ‘너의 손에 꼭 맞는 딱 좋은 돌’이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위로로 다가온다. 그렇게 딱 좋은 돌을 찾기 위해 ‘마주치는 모든 돌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 보라’는 이야기도 도움이 된다.
돌멩이에 이름을 붙이고 노는 아이가 있다면, 힐데 헤이더크-후트 작가의 <돌멩이도 춤을 추어요>(바람의아이들)를 읽어주자. 동그란 돌멩이처럼 혼자가 된 날. 아이의 놀이에 여러 돌멩이가 등장한다. 돌멩이들은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서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엄마·아빠와 함께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나란히 서기도 한다. 혼자 떨어져 보기도 하고 같이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러다 돌멩이들이 둥글게 모인다. ‘모두들 둥글게 둘러앉아 있어요. 아무도 안 울어요. 다들 웃어요.’(그림)
돌멩이들이 하나씩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온다.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상황과 감정이 투영된 ‘돌멩이 놀이’의 끝이 쓸쓸하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혼자 남은 동그란 돌멩이 앞에 마법 돌멩이가 환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돌 하나에서 얻은 생각이 삶에 깊이를 더한다. 발부리에 걸린 돌멩이도 참 특별하다.
2025-09-0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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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35년 만의 귀환, 홍성담 판화
사진 한 장마저도 겁에 질려서 내놓을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엄혹했던 그때 그 시절, 민중미술가 홍성담(1955년생) 작가의 ‘오월 판화 연작’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과 시민 항쟁 의지를 국내외에 생생하게 알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판화 연작은 〈새벽〉이라는 제목의 연작 판화집으로도 나왔으며, “항쟁 당시의 분노, 슬픔, 희망 등 다양한 감정과 진실을 담아내 민중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홍 작가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수배와 1989년 투옥을 거치는 동안 그의 초기 작품은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이때 그를 여러모로 후원한 것이 한국 가톨릭이었고, ‘오월 판화 연작’ 첫 작품 공개나 ‘오월 판화 연작’ 첫 전시도 가톨릭을 통해 이뤄졌다. 또한 일부는 홍 작가 구명 운동과 후원 목적으로 독일로 작품이 반출돼 한국의 비민주적인 현실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이번에 독일에 있던 판화 초기작 50여 점과 각종 자료 등 100여 점이 35년 만에 작가 품으로 돌아온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것도 1989년 ‘오월 판화 연작’ 첫 전시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는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홍성담 독일 유배 작품 35년 귀환 기념 전시’(가제)가 추진돼 성사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돌아오는 작품 대부분은 홍 작가가 1980년대에 제작한 판화들로, 광주민주화운동뿐 아니라 우리나라 탈춤과 농악 등을 표현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작가 자신도 어떤 작품이 ‘반출’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서다. 수배 중 제작한 것들이어서, 홍 작가 주요 판화(고무판화, 목판화)의 초기 희귀작일 가능성이 크다.
1990년 독일 순회전은 홍 작가가 1989년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 작업에 참여했다가 3년간 옥고를 치른 것이 계기였다. 독일에는 이미 홍 작가가 전시했던 작품 중 일부가 있었고, 그가 결성한 시각매체연구회가 찍은 판화를 더해 행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작가 본인은 1992년 8월 석방된 이후에야 독일 전시 존재를 알게 된다. 당시 유럽 전시는 큰 반향을 일으켜 국제사회의 석방 촉구가 잇따랐다.
홍 작가의 판화는 과거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탄압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록이자 역사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또한 홍 작가는 독일 유배 한국 미공개 작품 순회 첫 전시를 부산가톨릭센터에서 개최함으로써 종교와 사회, 종교와 예술의 동행을 다시금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작품은 독일에서 봉인된 채로 9월 1일 홍 작가 안산 작업실에 도착한다. 작가는 이 상자를 개봉하지 않고 부산가톨릭센터로 가져와 현장에서 봉인 해제한 뒤, 이를 공개할 예정이다.
2025-08-3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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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세컨드 홈
“국가에서 ‘투자 금지 지역’을 손수 알려주셨다.” “정부에서 사라고 하면 사면 안 됨, 사지 마라고 할 때 사야 함.”
정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지방 중심 건설투자 보강 방안’ 뉴스에 달린 누리꾼들의 반응이다. 많게는 수천 개까지 ‘좋아요’가 달릴 정도로 커다란 공감을 얻은 댓글들이다. 어째서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된 걸까.
정부는 이날 발표에서 ‘세컨드 홈’ 적용 지역을 ‘인구감소지역’에서 ‘인구감소관심지역’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정부는 지방 도시의 생활인구를 늘리기 위해 집 한 채를 추가로 사도 1주택자와 같은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세컨드 홈 제도를 도입했다. 정부가 이번에 대상 지역을 확대함에 따라 강원 강릉·동해·속초·인제, 전북 익산, 경북 경주·김천, 경남 사천·통영 등 9곳에 추가로 세컨드 홈 특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부산의 경우 동구와 서구, 영도구는 인구감소지역이고 금정구와 중구는 인구감소관심지역에 포함된다. 하지만 광역시라는 이유로 지난 대책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광역시에 세컨드 홈 혜택을 주면 주택가격이 급등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수도권에 속하는 인천 정도를 제외하면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다수 광역시들이 고질적인 집값 하락에 몸살을 앓고 있다. 부산만 해도 2022년 6월부터 시작된 집값 하락세가 3년 2개월째 한 차례 반등도 없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세금을 한시적으로 감면해준다고 해서 아파트값이 널뛰는 정도의 폭등 상황이 되질 못한다는 것이다.
시골에 별장 하나 더 지으면 세금을 깎아준다는 정도의 인식으로 접근해서는 지금의 부동산 양극화를 막을 수 없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전국 5분위(상위 20%) 아파트 평균 가격이 14억 원을 돌파하면서 하위 20% 간의 격차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 통계는 올해 1월 조사 이래 최고 기록을 깬 뒤 8월까지 6개월 내리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핵심은 세금이다. 현행 세제는 서울 1주택자를 지방 다주택자보다 우대한다. 실제로는 판이하게 다른 서울과 지방의 집값 상승률이 심지어 같다고 가정하더라도 지방 다주택자가 수천만 원의 양도세를 더 토해내야 한다.
지방에 아파트를 사는 사람이 언제까지 바보 취급을 당해야 하나. 갈수록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교육 환경은 열악해진다. 집값마저 양극화를 넘어 초양극화로 치닫는다면 지역 소멸을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세컨드 홈 정책의 과감한 확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2025-08-2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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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여름에 갈 실내여행지는?
지난해 9월이었다. 경북 청송군 청송정원에 백일홍 수십만 송이가 화사하게 피었다는 블로그 글을 읽고 단숨에 달려갔다. 직접 살펴본 청송정원의 풍경은 블로그 글 그대로였다. 딱 한 가지만 달랐다. 햇빛을 가려주는 우산을 쓰고도 10분 이상 걸을 수 없는 뜨거운 태양이 바로 그것이었다.
2013년 처음 여행 담당 기자가 됐을 때만 해도 7~8월 여행이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런데 불과 3~4년 전부터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7~8월, 아니 6월과 9월에도 야외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용기를 낼 수 없는 일이다.
여행 출장을 갔다가 자동차 온도계가 40도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서도 차문을 열고 야외에서 서너 시간 걸어 다닐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 덥더라도 글자 그대로 ‘더운’ 정도면 참을 수 있지만 ‘찌는 듯 덥거나’ ‘타는 듯 뜨거운’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여행 기사는 써야 하니 출장을 갈 수밖에 없는데, 너무 무더워 야외에서 걸어 다닐 수는 없으니 방법은 실내뿐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여름이 되면 미술관, 박물관 같은 실내공간을 주로 보러 다닌다.
다음 여행지를 고르려고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휴대폰, 컴퓨터로 검색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갈증’이다. 부산, 경남, 경북 등에는 한마디로 여름에 갈 만한 실내여행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실내여행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콘텐츠가 너무 허술하거나 미비해서 실제로 가보면 시간과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나마 최근에는 민간에서 투자해 크고 작은 실내여행지를 조성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입장료가 너무 비싸 한두 군데만 둘러봐도 4~5만 원은 쉽게 넘어가는 게 문제다.
국공립 미술관, 박물관 같은 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사전에 자료를 모으다보면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이 투입됐다는 기사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돈을 어떻게 썼기에’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런 시설을 볼 때마다 화가, 소설가, 시인 같은 지역 예술가를 초빙해서 ‘예술의 상상력’을 불어넣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거의 10년 만에 국립경주박물관을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런 박물관이 있다니! 정말 신비한 것이 마치 1000년 전 신라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큰돈을 들인 것 같지는 않았다. 10년 전과 같은 유물을 보여주면서 전시 공간, 전시 형태, 조명 등에 변화를 준 게 전부처럼 보였다. 이것이 바로 상상력의 발현 아닐까.
2025-08-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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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테토·에겐 정치
혈액형, MBTI에 이어 이제는 성격 유형을 새롭게 분류하는 테토-에겐 테스트가 밈으로 자리 잡았다. 테토와 에겐은 각각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과 에스트로겐(여성 호르몬)을 줄인 말로 외향적이고 리더십이 있다면 ‘테토’, 세심하고 부드럽다면 ‘에겐’으로 분류된다. 아주 오래 전 일본에서 넘어온 ‘초식남’과 ‘육식녀’의 개념과 비슷하다. 전통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을 기준으로 구분 짓는다고 해서 젠더 감수성 차원의 일부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현재 가장 뜨거운 문화 현상인 만큼 내년 지방선거 출마자들도 이러한 기준에 따라 분류되기도 한다.
부산의 A 자치단체장은 지역 정가 대표 에겐 정치인이다. 온화한 리더십으로 설명되는 그이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반전 테토미를 드러내기도 했다. 아직 세부 인선이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그의 야심찬 계획에도 같은 정당 소속 인사들은 물론 A 씨의 캠프에서 활동했던 이들까지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이들이 A 씨의 성향과 비슷한 에겐으로 설명되는 특징인 섬세하고 차분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쉽지 않은 수성전인 까닭에 전투적인 모습을 그에게 요구하는 이들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유다.
반면 2026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이끌 각 정당의 수장들은 시스템을 통한 투명한 공천을 약속하고 있지만 이보다 앞서 남다른 테토적 면모를 뽐내며 강력한 공천권 행사를 벌써부터 거론하는 지역(당협)위원장들도 있다. B 지역(당협)위원장은 선거가 300일 가까이 남은 가운데, 특정 인사의 공천을 사석에서 공공연하게 약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당협)위원회 회의도 해당 인사의 사무실에서 진행해 내부적으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에 출마를 희망하는 이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강력한 리더십을 앞세워 묵살하기 십상이다.
또다른 지역(당협)위원회의 경우 이른바 비선 실세 ‘문고리’의 횡포로 설명되는 ‘테토적 명성’(?)이 자자하다. C 지역(당협)위원장의 복심인 D 씨는 ‘영감’의 지시를 핑계 삼아 주중, 주말,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지방의원들과 사무실 관계자를 소집한다. 불참할 경우 내년 공천을 장담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는 게 지역 정가에 유명한 일화로 떠돈다. C 위원장의 총애를 두고 D 씨는 또다른 누군가와 경쟁을 벌였지만 그가 밀려나면서 이제는 그를 아무도 말릴 수 없다는 이야기마저 흘러나온다.
일각에선 양극화 시대의 정치에서는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말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2025-08-1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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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금융포커스] 흔들린 정책에 무너진 증시
새 정부 출범 이후 연일 뜨겁게 달아오르던 코스피가 지난 1일 하루 만에 4% 가까이 폭락했다. 한미 관세 협상 후폭풍이 가라앉기도 전에, 정부가 내놓은 세제개편안이 뜨거웠던 시장 열기를 단숨에 꺼뜨렸다. 단 하루 만에 증시에서 사라진 자금은 무려 116조 원. 정부는 ‘2조 5000억 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시장은 ‘116조 증발’이라는 대가로 답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취임 직후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며 자본시장 활성화를 국가 어젠다로 천명했다. 부동산 중심의 자산구조에서 생산적 투자로의 전환, 즉 ‘돈의 흐름’을 바꾸겠다는 강한 메시지에 시장도 화답했다. 코스피는 두 달 만에 18% 가까이 상승했다.
그러나 지난 1일 공개된 세제개편안은 그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기존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대폭 낮추고,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도 35%로 정했다. 증권거래세율은 다시 0.2%로 높이고, 법인세율까지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은 곧장 반응했다. 외국인과 기관, 심지어 국민연금까지 일제히 매도에 나섰고,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정부가 시장을 배신했다”는 반발이 들끓었다. 주가 부양과는 거리가 먼 세율 환원, 대주주 기준 강화는 시장의 발목을 잡는 조치로 해석된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대주주 회피 매도’가 올해는 더 일찍, 더 급격하게 터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투자자들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자본시장 육성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세수 확보가 우선순위로 보이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시장은 정부가 어디를 향하는지 늘 주시한다. 그 시선이 흔들리면 투자자들 역시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해당 세제개편안 반대안은 하루 만에 7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역시 국장은 믿을 수 없다” “국장은 정리하고 미국 증시로 가자”는 자조적인 반응도 쏟아지고 있다.
혼란이 커지자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장 마감 후 ‘대주주 기준 재검토’를 언급했지만, 이 역시 정책 일관성 부족을 드러내는 모습이라는 비판이 이어진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 2일 “주식시장 안 무너진다”며 재검토를 공개 반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대주주 기준 하향이 주가 상승을 막는 근본 요인 중 핵심으로 꼽혀온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자본시장을 육성한다면 예측 가능한 세제 환경과 신뢰가 필수적이다. 오락가락 정책으로는 코스피 5000은커녕 시장 불신만 키울 뿐이다. 정부가 진정 자본시장을 성장 의지를 보여주고 싶다면 시장과 소통, 신뢰를 주는 일관된 방향성으로 답해야 한다.
2025-08-0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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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타임 아웃] 개근상
초등학교 졸업식 때 개근상을 받는 아이는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것도 6년 동안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는 친구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80년대 초였던 당시 개근상은 전교 1등이나 모범상보다 더 가치 있는 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힘들었던 시절 초등학교 6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를 다닌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임을 사람들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개근상의 남다른 의미는 프로야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년에 팀당 144경기를 치르는 KBO리그에서 전 경기를 출장하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요? 올 시즌에는 10개 구단 통틀어 6명뿐입니다. 23일 현재 롯데 자이언츠 빅터 레이예스와 키움 히어로즈 송성문이 팀이 치른 94경기에 모두 출전했구요. LG 박해민이 93경기, 한화 이글스 노시환 92경기, 삼성 라이온즈 르윈 디아즈가 91경기, NC 다이노스 김주원이 88경기에 나서면서 올 시즌 팀이 치른 모든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프로야구가 전반기를 지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아직 팀별로 50경기 이상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들 6명의 선수가 올 시즌 전 경기에 출전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군요.
프로야구에서 출장 기록은 선수의 실력은 물론 성실함, 꾸준함, 자기 관리 능력 등을 엿볼 수 있는 지표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걸 다 갖추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프로선수들은 늘 부상을 달고 삽니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이 몸을 던져가며 경기를 하는데 어떻게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일까요. 팀이 144경기를 치르는 동안 체력 저하와 부상을 딛고 전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는 몇 명 되지 않습니다. 지난해엔 5명이 144경기에 출장했구요. 2023년엔 LG 트윈스의 외야수 박해민이 홀로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올 시즌 전 경기에 출장하고 있는 선수 중에는 모든 경기를 선발로 나선 선수도 있습니다. 롯데의 레이예스와 한화 노시환 선수입니다. 두 선수는 교체 출전 없이 모든 경기를 처음부터 뛰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죠. 이들을 보면 금강석처럼 부서지지 않고 매우 단단한 ‘금강불괴’를 보는 듯합니다.
LG 박해민은 프로야구 현역 선수 중 가장 오랜 기간 개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박해민은 2022년부터 4시즌 연속 전 경기 출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박해민은 삼성에서 뛰던 2021년 10월 13일부터 최근까지 538경기 연속 출장 기록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역 최다 기록입니다. 박해민이 올 시즌 남은 경기에 모두 출전하면 연속 출장 기록을 589경기로 늘릴 수 있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KBO리그 역대 최다 연속 출장 기록은 최태원 경희대 감독의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쌍방울 레이더스와 SK 와이번스 등에서 세운 1009경기 기록입니다.
2025-07-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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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함께 걷기
보비와 보브.
토미 드 파올라의 <오른발, 왼발>(비룡소)에 등장하는 손자와 할아버지의 이름이다. 손자 보비에게 보브 할아버지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아기 보비가 처음 한 말이 ‘보브’였을 정도로 말이다. 보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준 것도 보브였다. 그는 손자의 두 손을 잡고 찬찬히 걷는 방법을 알려줬다. “오른발, 왼발. 따라 해 보거라.”
보비의 다섯 번째 생일이 지난 며칠 뒤 보브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다. 한참 뒤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예전과 달랐다.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아 있기만 했다. 보비는 어떻게 할아버지를 다시 웃게 만들 수 있을까. 보비는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해준 방식으로 보브를 대했다. 블록 쌓기를 보여주고, 식사하는 것을 도와주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정도 회복한 보브 할아버지가 집 밖에 나온 날, 보비가 그 앞에 섰다. 자기 어깨를 짚은 보브에게 보비는 말했다. “오른발, 왼발. 따라 해 보세요.”
자신에게 걷는 법을 가르친 이에게 같은 방식으로 걷기를 알려주는 일. 자신이 받은 돌봄을 되돌려주는 시간은 모두에게 온다. 1981년에 세상에 나온 ‘보비와 보브의 이야기’로 사랑하는 이와의 함께 걷기를 생각한다. 잔잔하게 울림을 전하는 그림책이 오랜 세월 독자와 함께한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난 다시 걷기 시작했어.’ 올봄에 나온 홍우리의 <나는 다시 걸어요>(밝은미래)도 누군가의 걷기를 응원한다.
휠체어에서 일어난 주인공은 천천히 공원을 걷는다. 그의 시선을 통해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걷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손을 잡고, 지팡이를 짚고, 유모차를 몰고, 안내견의 도움을 받으며 걷는 이들이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걷고, 걷다가 쉴 수 있고, 새로운 길에 도전할 수 있다. 사람마다 걷는 모습·속도·방향이 다르겠지만, 걸으면서 각자 나름의 길을 만들어 나간다. ‘저마다 가능한 걷기에 나선 모두의 한 걸음에 응원을 보내며!’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의 하트를 더한다.
며칠 동안 미친 듯이 내린 폭우에 많은 것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다시 일어나서 같이 걸어보자’라며 손을 내미는 따뜻한 마음. 실의에 빠진 이웃을 위로하고 복구를 돕기 위해 길을 나선 이들의 발걸음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
2025-07-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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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핫플'이 된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론 뮤익’ 전시가 개막 90일 만인 지난 10일 누적 관람객 50만 명을 돌파했다. 4월 11일 개막 이후 하루 평균 5590명 이상이 관람해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가장 흥행한 전시가 됐다. 13일 막을 내린 이 전시는 서울에서 열렸지만, 기자도 5월 초 보고 왔다. 처음 간 날은 너무 많은 인파로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섰고, 다음 날 아침 ‘오픈런’ 대열에서 돌아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그즈음이 관람객 10만 명을 돌파할 때였고, 국립현대미술관 담당 학예사는 “론 뮤익의 인물 조각은 보편적인 모습을 담은 익숙한 인간상을 리얼하게 구현해서 보는 즉시 감성을 자극하고 공감을 끌어낸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지만,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을 불러 모을 전시였나 싶기도 했다.
물론 아시아 최초로 소개한 론 뮤익(1958년) 회고전에다 생애 통틀어서 48점밖에 안 되는 작품 가운데 두개골 100개로 이뤄진 ‘매스’ 등 조각 작품 10점과 스튜디오 사진 연작 12점, 다큐멘터리 필름 2편 등 총 24점을 선보이고, 작가가 워낙 대중한테 드러나지 않은 점도 흥행에 한몫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 뮤익 전시의 성공 원인을 당시엔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뒤늦게 나온 분석을 종합하면, 2030 관람객이 70%나 됐고 국립현대미술관 SNS 채널의 관련 게시물 노출 수는 325만 건이 넘는 등 2030이 미술관의 변화를 강하게 추동했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SNS로 소비되는 2030의 전시 관람 방식을 평가절하하는 의견도 없지 않으나, 이것조차도 2030 세대의 소통 방식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터부시할 건 아니라고 본다. 젊은 층이 모여들며 ‘핫플’이 되고, 일상으로 파고든 미술관이 그저 부러웠다.
다가오는 주말인 19일 부산서도 또 하나의 화제 전시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이 국내 처음으로 개막한다. 10월 26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릴 이 전시는 스웨덴의 추상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의 예술 세계를 국내 처음으로 조명하게 된다. 특히 그의 대규모 회화 연작은 당시 유럽 추상 미술의 대표 예술가인 칸딘스키(1866~1944)나 말레비치(1879~1935)보다 앞서 추상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의 흐름도 재고하게 만든다.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 이어 서울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부산을 찾는 전시여서 얼마나 많은 국내 관람객이 찾을지 궁금하다. 유료이긴 하지만, 입장료는 도쿄(성인 기준 2300엔)의 절반 수준인 1만 원이다. 18일까지 사전 예매는 더 싼 6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어렵사리 부산에서 유치한 대형 전시인 만큼 많은 이가 보고 즐기면 좋겠다. 올여름 피서는 미술관에서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2025-07-1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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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벼락 거지
‘벼락 거지’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코로나19 때였다. 코인으로 수십억 원을 벌어 퇴사를 했다는 이들의 ‘영웅담’이 전염병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주식이나 암호화폐, 부동산 등 투자 자산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월급만 그대로였다. 벼락 거지는 그런 상대적 박탈감을 자조적으로 드러낸 신조어다.
수년간 잠잠했던 벼락 거지라는 단어가 다시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삐 풀린 서울 아파트값이 고공행진 하면서, 서울에 아파트 한 채 가지지 못한 이들은 또다시 벼락 거지가 된 기분을 느끼고 있다. “그때 그 돈으로 해운대에 대형 평수가 아니라, 서울 외곽에 자그만 구축이라도 샀더라면 몇억은 벌었을 것”이라는 넋두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정부의 고강도 수도권 대출 규제책 발표 이후 한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서울 집값은 22주 연속 상승했다. 대책 발표 전까지만 해도 강남 3구와 용산구 등의 아파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성동구와 마포구는 일주일 새 1%가 올라 2013년 한국부동산원이 주간 아파트 가격 통계 공표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찍었다. 문재인 정부 급등기의 상승률마저 뛰어넘은 것이다.
서울 아파트는 이제 주거용이 아닌 전 국민이 눈독 들이는 투자처가 됐다. 지난해 기준 서울 외 거주자의 서울 아파트 매입 비율은 21.5%였다. 이 역시 2006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고 비율이다.
반면 지방 상황은 처참하다. 부산 아파트값은 2022년 6월 이후 3년 넘게 한 번도 반등하지 못한 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부산의 악성 미분양 통계는 최근 3개월간 달마다 최대치를 경신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런 초양극화를 해소할 지방 맞춤형 대책이 절실하다. 다주택자 규제의 풍선효과로 생겨난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은 지방 시장을 누르고 서울만 부풀어 오르게 하고 있다. 지방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되지 못하면 전국의 투자 자본은 결국 규제를 피해 서울로 몰려들 수밖에 없다.
지역 업계에서는 ‘정권을 누가 잡든 부동산 정책을 세울 땐 수도권만 바라보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지금 서울과 지방의 부동산 시장은 완전히 다른 처방전이 필요하다. ‘지방 부동산마저 들썩이면 어쩌나’ 걱정하며 머뭇거린다면 적기를 놓쳐버리고 말 것이다.
집값 폭등을 부추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동산 양극화는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지방 시대’ 앞길을 막는 핵심 요소다. 개인 자산의 대부분이 아파트에 묶여 있는 나라에서, 내 집값만 떨어진다면 어느 누가 그곳에 살려고 할까.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도 집값이 완만하게 상승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벼락 거지가 돼선 안 될 일이다.
2025-07-0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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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아쉬움 남는 꽃 축제
전국 곳곳에서 수국축제가 한창이다. 울산에서는 지난 7~29일 ‘제4회 장생포수국페스티벌’이, 전남 강진군에서는 27~29일 ‘제3회 강진수국길축제’가, 같은 기간 충남 공주시에서는 ‘제4회 색동수국정원 꽃축제’가, 경남 거제시에서는 ‘제8회 남부면 수국축제’가 열렸다. 이 밖에 전남 해남·고흥·강진·보성·신안군, 충남 아산시, 경남 김해시, 거창군, 진주시, 광주, 경기도 광주시, 경남 남해시 등에서 비슷한 축제가 개최됐거나 될 예정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국축제는 흔하지 않았다. 부산 태종대 태종사에서 2006년부터 해마다 열린 ‘수국꽃 문화축제’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 축제는 2019년 10만 8000명이 관람해 큰 인기를 누렸다. 뉴스를 검색해보면 태종대 제1회 수국 축제가 열릴 때 다른 지역에서 수국축제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행사가 ‘히트’를 치자 수국을 심는 지역이 늘었고, 수국축제도 너나할 것 없이 개최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형태의 ‘따라 하기’ 꽃 축제는 수국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유채꽃이나 꽃무릇, 꽃양귀비 사정도 다르지 않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유채꽃 하면 제주도뿐이었다.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유채꽃밭 배경 사진을 한두 장씩 가진 부부는 드물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부산 강서구가 낙동강변에 유채단지 조성해 축제를 시작하더니 지금은 경기도 구리시와 안성시, 양주시, 경북 포항시, 전남 구례군, 진도군과 나주시, 강원도 삼척시, 경남 창녕군, 전북 부안군과 순창군, 충남 부여군 등 전국 20여 곳에서 유채꽃 축제를 연다.
꽃무릇도 비슷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남 영광군 불갑사와 함평군 용천사, 전북 고창군 선운사가 ‘3대 꽃무릇 군락지’로 손꼽혔지만 지금은 곳곳에서 꽃무릇을 키우고 축제를 진행한다. 꽃양귀비 사정도 다르지 않아 전국에서 열리는 꽃양귀비 축제는 한두 곳이 아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곳에서 꽃이 인기를 얻으면 다른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관광객 증대를 내세워 그대로 손쉽게 베끼기 때문이다. 꽃만 그런 게 아니다. 과거 진주시의 유등축제와 비슷한 행사가 서울에서 열려 ‘베끼기 논란’을 빚은 것이라든지 ‘벽화마을’이라는 아이디어가 전국 수백 개 마을에서 베껴진 것도 그렇다. 축제 행사 내용은 어디나 천편일률적이다. 게다가 각 지역 공무원들이 관람객이 편하게 축제를 볼 수 있게 애쓰는 것보다는 축제 개막식 준비에 더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비슷하다.
여행 취재를 위해 각 꽃 축제에 갈 때마다 ‘이렇게밖에 못 하는 것일까’라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고장만의 창의적이고 독특한 행사를 열 아이디어는 도무지 내기가 힘든 것인지 안타까움을 숨길 수 없었다. 지금은 창의의 시대가 아니던가.
2025-06-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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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무치(無恥)의 출판기념회
정치 윤리의 기본은 ‘염치’(廉恥)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인들이 사라지면 국가는 흔들리고 국민들은 고통에 빠진다. 이 때문에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이들을 비판하는 데 있어 몰염치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몰염치를 넘어 ‘무치’(無恥), 부끄러움을 숨기려 하는 마음이 부끄러움의 당위를 외면해 버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오래된 정치 관행인 출판기념회는 경조사로 분류돼 책 한 권의 정가도 정할 필요가 없으며 수익 역시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또는 부정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 까닭에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만들어내는 기회라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출판기념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자성도 나오기도 한다.
일종의 악습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한국 정치에서 염치가 작동한다면 이는 오히려 정치 후원이 양성화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무치의 출판기념회’가 아니라면 말이다.
최근 부산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현직 구청장 A 씨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예비후보 등록 전후로 출마 선언과 동시에 출판기념회가 열려 온 그간의 부산 정치권 관례를 고려하면 상당히 이른 시점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구청장 예비후보 등록의 경우 선거일 90일 전부터 가능한데, A 씨의 출판기념회는 2026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부터 340여 일을 앞두고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을 배출한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부산 권력 탈환 의지를 이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할 A 씨의 행보는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역 야권에서는 그가 받고 있는 재판과 연결 짓는 시선이 주를 이루는 모습이다. A 씨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번 출판기념회가 다음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 경우의 수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단순히 여권뿐 아니라 A 씨의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에서는 물론, 그가 기반으로하고 있는 해당 지역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이야기다.
특히 A 씨의 이같은 결단을 두고 지역 야권의 시선은 더욱이 고울 수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김 후보자를 향해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는 데다 23일에는 이례적으로 광역의원들까지 나서 공세 대열에 합류할 계획이지만 A 씨의 이러한 행동이 단일대오를 이탈한 것은 물론, 정치의 중요한 요소인 명분 차원에서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2025-06-2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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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금융포커스] '코스피 5000'의 꿈
‘바이 코리아’(Buy Korea) 열풍 속에 한국 증시가 연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오랜 기간 ‘박스피’(박스권 코스피) 오명을 썼던 코스피 지수가 최근 가파른 상승세로 반전의 서막을 열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 안정과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이 본격화되면서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주목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한 달간 주요 20개국(G20) 증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시장은 바로 한국의 코스피다. 코스피 지수는 종가 기준으로 2607.33에서 2894.62까지 무려 11.02% 상승해, G20 주요 지수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 상승률을 달성했다.
특히 대선을 전후한 7거래일 동안 코스피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이른바 ‘허니문 랠리’를 연출했다. 이 기간 상승률만 해도 8.24%에 달하며, 약 3년 5개월 만에 2900선을 회복했다. 한때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 외치던 개인 투자자들도 최근에는 “국장 복귀가 지능순”이라며 빠르게 돌아서고 있다.
가파른 상승 흐름에 주요 증권사은 올해 코스피 전망치를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한 할인율이 30~4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코스피가 최대 3100~3500선까지 오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역시 증시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한국거래소를 찾아 “코스피 5000 달성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히며 시장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 드라이브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상법 개정과 세제 개편을 통해 주주 가치를 제고하고, 배당 확대와 경영진 견제 장치 마련 등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 회복에 나설 방침이다. 궁극적으로는 주식 시장을 부동산에 버금가는 유력한 투자처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이다.
물론 과거 ‘동학개미 운동’ 당시 코스피가 기록한 사상 최고치가 3300선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지 자본시장의 정책적 지원만으로 ‘코스피 5000’ 시대가 쉽게 열리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실질적인 기업 성장과 산업 경쟁력의 뒷받침이 이뤄진다면 이번 반등은 일시적 흐름이 아닌 구조적 상승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등 구조적 개혁이 병행된다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결국 이재명 정부의 자본시장 및 산업 육성 전략이 얼마나 실질적인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느냐에 한국 증시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침체된 경기가 반등하고, 코스피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는 희망적인 뉴스가 가득하길 기대해 본다.
2025-06-1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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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타임 아웃]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프로야구를 보면 선수들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Headfirst slide)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야구에서 타자나 주자가 손과 머리를 먼저 누상에 터치하기 위한 슬라이딩 중에 하나인데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긴박하거나 접전상황이 벌어질 때 선수들이 종종 구사하는 기술로 한때 ‘투혼’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팬서비스로도 그만입니다.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될 경우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보호하기 위해 덮어 놓은 방수포 위를 미끄러지듯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며 관중들을 즐겁게 합니다.
하지만 현대 야구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1루에서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이 그렇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마황’ 황성빈은 지난달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서 타격을 한 뒤 1루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했다가 베이스에 손가락이 걸려 다쳤습니다. 정밀 검진 결과 왼쪽 4번째 손가락 골절 소견이 나왔고, 복귀까지 8~10주 정도 걸릴 것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황성빈은 지난해 무려 51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이 부문 3위를 차지했고, 올해도 부상 당하기 전까지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황성빈의 부상은 롯데로서는 정말 악재인 셈입니다.
1루에서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이 유독 부상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1루 베이스는 2·3루, 홈플레이트와는 달리 베이스를 지나가도 터치만 하면 되기 때문에 더 과감한 슬라이딩을 합니다. 상당수 선수들은 슬라이딩을 넘어 아예 다이빙을 하는 것 같습니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이 1루 안착에 도움된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주루 스피드를 살려 1루를 밟고 지나가는 게 더 빠르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아무튼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의 부상 위험성을 고려해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어길 경우 5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2024년부터는 유소년 선수들의 헤드퍼스트 슬리이딩을 금지했습니다. 유소년은 1루와 함께 홈에서도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할 수 없습니다.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두고 ‘팀을 위해 희생하는 투혼이다’, ‘부상이 유발되는 무모한 행동이다’ 등 팬과 선수들 사이에 다양한 말들이 있습니다. 물론 경기에 몰입하다 보면 선수들이 몸을 날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팬들도 박진감 넘치는 경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선수들의 부상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수 개인은 물론, 팬들도 선수들의 멋진 활약을 보기 위해 환호하는 것이지 선수들의 부상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입니다.
2025-06-08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