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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의 '금알못' 탈출기] 비트코인 하는 법
비트코인이 연일 상승 가도다. '가상자산 대통령'을 자처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비트코인은 1억 원 벽을 넘어 1억 3000만 원 벽을 노크하고 있다.
유튜브, SNS 등에는 비트코인의 전망과 비전에 대한 분석을 내놓는 영상과 글이 쏟아지고 있다. 넘쳐나는 비트코인 콘텐츠 중 눈에 띄는 콘텐츠가 있다. '비트코인 하는 법'에 대한 영상이다.
이 영상은 어떤 비트코인 영상보다 조회수가 높다. 3년 전 만들어진 영상인데, 조회수는 200만 회를 넘었다.
이 영상은 매우 간단하다. 비트코인을 하기 위해 스마트폰에 가상자산 거래소 앱을 설치하는 방법부터 마지막 비트코인을 사고파는 법을 차분히 설명한다. 이 영상의 댓글에는 '영상을 봐도 모르겠다, 주말에 아들 오면 부탁해 봐야겠다', '모바일 주식도 겨우 배웠는데 비트코인은 더 어렵다', '돈을 넣었는데 돈은 어디서 확인하느냐?' 같은 댓글도 있다. 이같은 댓글에 '좋아요'가 수 십개 달린 걸 보면 한 개인의 푸념은 아닌 듯 하다.
제 아무리 비트코인이 '불장'(가격이 상승하는 장)이라지만 고령층에게 비트코인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기존 금융사들은 금융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은행 모바일앱에 고령층을 위한 큰 글씨 모드를 제공한다. 지방은행은 모바일이 어려운 고령층을 위해 영업 적자 속에서도 오프라인 점포를 지키려 노력한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에 접어든 일본은 전국에 트럭형 은행 약 150대를 운영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에게 직접 찾아간다.
또한 고객이 아플 때를 대비해 업무 대리인 사전예약제를 운영한다. 노인 고객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간병 관련 자격증을 직원에게 따게 하는 은행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투자처인 코인에까지 이같은 배려를 아직 기대하기는 어렵다.
비단, 비트코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금융권에서 올해를 떠들썩하게 한 모바일 대출 갈아타기, 퇴직 연금 갈아타기와 같은 금융 상품의 비대면 환승제도를 고령층이 얼마나 이용했을지 의문이다. 가파르게 변하는 세상 속 젊은 사람들은 손쉽게 하지만, 고령층은 못하는 각종 투자는 늘어날 것이다. 고령층은 앞으로 더 불구경 할 일이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투자, 새로운 자금 관리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고령층의 금융 적응 속도를 올리는 정책도 함께 동반돼야한다. 아직은 돋보기를 끼지 않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글의 독자도 새로운 투자처를 강 건너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시절이 곧 올테니 말이다.
2024-11-1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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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랑의 골 때리는 기자] 우락부락을 두려워 마
성별을 불문하고 풋살을 한다고 하면 근육이 생겨 몸이 우락부락해지지 않냐고 걱정하는 말들을 건넨다. 하지만 여성의 몸에 근육이 붙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근력이 있어야 눈에 보이는 근육도 생기는데, 여성의 근력은 상대적으로 남성들보다 약하고 따라서 근육이 만들어지기도 힘들다. 근육 발달에 도움을 주는 남성 호르몬이 여성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건 모든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축구는 근육을 키우는 무산소보다 유산소 운동에 가깝다. 그럼에도 ‘근육이 잘 생길 것’이라는 편견에 풋살을 주저하는 여성들을 종종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근육은 잘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힘들게 만든 근육이 있으면 풋살을 더 잘할 순 있다. 풋살은 움직임을 속여 상대를 다른 공간에 두고 빈 공간으로 빠르게 침투하는 게 핵심이다. 코어 근육이 잘 잡혀있어야 방향 전환을 빠르게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발목과 허벅지의 힘이 중요하다. 축구가 유산소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축구선수들이 웨이트 훈련으로 몸을 키우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몸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단단한 몸은 필수다. 풋살로 발목 부상을 당한 뒤 한동안 경기를 뛰지 않고 발목강화 훈련과 하체 운동만 한 경험이 있다. 그러고 나서 경기를 뛴 적이 있는데 훨씬 움직임이 가볍게 느껴졌다. 풋살을 잘하고 싶어 퍼스널 트레이닝(Personal Training)도 받기 시작했다.
이후 튼튼한 허벅지와 갈라진 종아리를 가진 여성들을 풋살장에서 보면 부러움이 앞선다. ‘우리 팀이면 좋겠다’, ‘몸싸움 장난 아니겠다’ 등의 생각이 든다. 아무리 근육량이 많아도 여성들의 경우 육안으로 티가 잘 안 난다. 그렇기 때문에 ‘피나는 노력이 있었겠다’ 싶어 존경스러운 마음마저 든다.
풋살은 ‘여성의 몸’에 대한 생각도 바꿔줬다. 풋살을 잘하기 위해 만든 근육은 의외로 다른 곳에서도 쓸모가 있었다. 쉽게 지치지 않으니 삶에 활력이 생겼다. 풋살 근육으로 익힌 운동 센스는 다른 운동에도 적용이 가능했다. ‘근육에 대한 두려움’은 기우였다. 시작은 풋살이었지만, 근육이 생길까 봐 두려워했던 다른 운동들도 관심이 생겼다.
동시에 근육에 대한 오해를 깨닫는 기회도 됐다. 가령 발목이 약하면 보상작용으로 종아리 쪽 근육이 발달하기도 한다. 풋살을 시작하기 전에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상식이다. 근육을 두려워한 탓에 어쩌면 보기 싫은 근육을 더 키우고 있었던 것일지도.
근육이 두려워 풋살을 주저하는 여성들에게 ‘생각보다 근육 잘 안 생겨요’라고 말하고 싶다. 동시에 ‘근육이 생겨도 꽤 괜찮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답니다’라고 덧붙이고 싶다.
2024-11-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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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의 타임아웃] 부산이 놓친 인재들
경남 김해시 일원에서 열린 제105회 전국체전이 지난달 17일 막을 내렸다. 부산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54개, 은메달 51개, 동메달 82개를 획득하며 8년 만에 종합 6위 자리를 탈환했다. 비인기 종목의 선전도 돋보였다. 육상에서는 10년 만에 금메달 5개를 포함한 최다 메달이 나왔다. 금메달 2개가 나온 복싱 또한 19년 만에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조정의 약진 또한 눈부셨다. 부산 선수들은 은메달 4개와 동메달 3개를 획득하며 1296점으로 26년 만에 종목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부산 조정 선수들의 여건을 들여다보면 이런 성과가 가능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우선 부산에는 남자 엘리트 선수들이 활동할 수 있는 대학이 없다. 물론 국립부경대와 한국해양대 학생들이 조정 대회에 참가하고 있지만, 특기생을 받아 훈련시키는 게 아닌 동아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실업팀으로 올라가면 상황은 더욱 참담해진다. 여자 선수들은 부산항만공사(BPA) 조정팀에서 운동을 계속할 수 있지만, 남자 선수들이 갈 수 있는 실업팀은 부산에 아예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산에서 운동을 시작해 성장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하는 선수들도 있다. 남자 일반부 더블스컬에서 은메달을 딴 송재영-최윤성은 한국체대 소속이다. 한국체대는 서울에 있지만, 상무처럼 출신 지역을 대표해 선수로 출전할 수 있다. 엄궁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조정을 했던 송재영과 최윤성은 이 때문에 부산 대표로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어떻게 될까? 계속 부산 대표로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다.
속이 쓰라린 사실도 하나 털어놔야겠다. 올해 대회 조정 일반부 에이트 경기에서 대전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딴 이종하와 문종원(이상 한국수자원공사)은 부산 동아공고 출신이다. 게다가 남자 일반부 싱글스컬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경북의 박현수(경북도청) 또한 동아공고에서 노를 잡았다. 마치 한국의 유망 선수가 다른 나라에 귀화해 외국 국기를 가슴에 달고 경기에 출전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부산시조정협회 김준모 사무국장은 “BPA 여자 조정팀의 조선형-김하영이 무타페어에서 은메달을, 경량급 더블스컬에서는 최수진-이수민이 값진 동메달을 부산에 안겼다”며 “부산의 한국해양진흥공사와 같은 공기업이 남자 조정 실업팀을 만들어준다면 남자 조정 인재들도 부산에서 성장할 기회를 잡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열악한 지역 환경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애환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정 종목에 특혜를 주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노력과 성과를 반영해 지원한다면 형평성 논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부산 출신 선수들이 다른 지역 대표로 나서는 안타까움을 느낄 필요도 없음은 물론이다.
2024-10-3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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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결실의 계절에…
“나도 내 차를 운전하고 싶어요.”
채인선·박현주 작가의 <내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논장)은 자기 인생을 시작하는 아이를 위한 책이다. 나의 차, 나의 운전을 인식한 아이에게 아빠는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차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한다. 당장은 부모의 차에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엄마·아빠·아이 각자의 차가 겹쳐 있다는 것. 나중에 너만의 차를 몰고 세상에 나가야 한다는 것. 그날을 위해 지금 부모가 어떻게 운전하는지, 다른 차는 어떻게 다니는지, 교통신호 같은 사회 규범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 배워야 한다고 알려준다. “지금은 바로 그걸 준비하는 때, 운전 연습을 하는 때야.”
세상으로 걸음을 내디딘 아이에게는 <다시 그려도 괜찮아>(씨드북)를 추천한다. 주인공은 누군가 미리 그려 놓은 선을 따라간다. 그 선 위에서 친구를 만나고 함께 즐거운 시간도 보낸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걷는 속도가 다르다. 주변 풍경을 감상하느라 잠시 멈출 수도 있고, 서두르다 선 밖으로 미끄러질 수도 있다. 앞서간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남을 수도 있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씩씩하게 선 위에 다시 서는 주인공이 멋져 보인다. 여기에 더해 김주경 작가는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끝까지 가지 않아도 괜찮아. 이건 단지 누군가 그려 놓은 선일 뿐이야.’ 네가 걸어갈 선을 스스로 다시 그려 보라는 말. 너만의 방식으로 새로 시작해도 된다는 격려. 진짜 ‘나의 것인 내 인생’은 여기서 시작한다.
그래도 가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재경 작가는 <작은 눈덩이의 꿈>(시공주니어)에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계속 굴러가는 것’의 의미를 전한다. 작은 눈덩이가 큰 눈덩이를 만났다. 어떻게 그렇게 커졌냐는 질문에 큰 눈덩이는 “멈추지 않고 계속 굴렀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작은 눈덩이도 구르기 시작한다. 구르기가 단순한 것 같아도 쉽지 않다. 장애물도 피해야 하고 비탈길에서의 빠른 속도도 참아내야 한다.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인가를 의심하던 작은 눈덩이에게 누군가 말을 건다. “어떻게 그렇게 크고 멋진 눈덩이가 될 수 있어요?” 작은 눈덩이는 어느새 큰 눈덩이가 되어 있었다.
결실과 수확의 계절에 열매가 맺고 여물 때까지의 과정에 대해 생각했다. 뚜벅뚜벅 자기 길을 가는 모든 시간, 모든 경험이 우리를 더 단단하고 빛나게 만든다.
2024-10-2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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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개막식의 품격과 디테일
개막식은 그 행사의 얼굴이고 수준을 보여준다. 그래서 각 단체는 개막식 행사 혹은 공연에 무척이나 공을 들인다. 10월 한 달 부산에선 많은 문화 관련 축제가 열렸고, 개막식이란 이름으로 행사의 성격과 시작을 알렸다.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이나 부산거리예술축제는 굳이 개막식이 필요 없는 경우였고,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은 웃음과 눈물이 교차했으며,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 개막식은 글로벌 공연 유통의 플랫폼으로 희망을 품게 했다.
반면, 문화에서 마이스로 영역을 확장한 ‘페스티벌 시월’ 개막식은 준비 부족을 고스란히 노출한 데다 정체성 논란도 피해 가지 못했다. 이미 다 끝난 일이라고 하기엔, 이들 행사가 갖는 연속성이 있어서 복기의 시간이 필요하다. 단적으로 개막식이지만, 디테일이 모여서 큰 성과를 이루기에 하는 말이다.
지난 1일 오후 벡스코 야외주차장에서 열린 ‘페스티벌 시월’ 통합 개막식에 참석했다. 명색이 ‘국제’ 행사에다 신성장 동력 산업이라는 마이스 행사여서 기대가 컸는데, 박형준 부산시장 인사말은 동시 통역이 아닌 순차 통역으로 진행했고, 페스티벌 시월 홍보 영상 상영은 한글 사운드에 한글 자막을 입혀서 내보냈다.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개막식 품격을 올리려고 한 시도까진 좋았는데, 사방이 뚫린 특설무대를 준비한 걸 보고 아찔한 마음이 들었다. 빗방울이 흩뿌릴 때마다 클래식 악기가 동원된 연주가 중단되는 건 아닌가 싶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연주자들도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오케스트라 연주곡은 해설은커녕 자막으로도 제목이 안내되지 않았다.
이날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 ‘시민 대합창’은 하필이면 ‘다 함께 부르자’고 내민 곡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였다. 시월엔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행사 참석자는 배려하지 못했다. 아세안 등 외국인들은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다 함께 부르자’고 하면서 대형 화면엔 또다시 한글 가사만 띄워서 우리끼리 불렀다.
물론 크로스오버 음악 그룹 포레스텔라의 공연과 팬들의 환호로 축제 분위기는 어느 정도 살았다. 그걸로 만족한다면 큰 오산이다. 13억 원(시비 5억 원, 민자 8억 원)이나 투입된 부산형 융복합 전시컨벤션의 개막식이 아니던가. 무대를 바라보면서 오른편의 150석가량 좌석은 통째 비어 있었는데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시월 빌리지 홍보 부스는 안전을 이유로 개막식 이전부터 통제해 현장에 가서도 돌아볼 수 없었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광고 문구가 생각난다. 큰 그림을 그리는 일 못지않게 사소한 부분도 신경 써야 한다. 작고 사소한 부분까지 완벽하지 않으면 일류가 되긴 어렵다.
2024-10-1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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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부동산 디커플링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디에이치 대치 에델루이’ 특별공급에 1만 6000명이 넘는 청약자가 몰렸다. 평(3.3㎡)당 분양가가 6530만 원이었지만, 경쟁률은 474.4 대 1을 기록했다. 서울에서 세 자릿수 청약 경쟁률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로또 청약’이라고 불리는 수도권 일부 단지의 무순위 잔여세대 청약에는 수십만~수백만 대 1이라는 비정상적인 수치가 찍히기도 한다.
이달 초 분양한 부산 수영구 광안동 ‘드파인 광안’의 1순위 경쟁률은 13.1 대 1이었다. 두 자릿수를 겨우 넘긴 경쟁률이지만 올해 부산에서 분양한 단지 가운데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이보다 앞서 부산에서 분양한 여러 아파트는 경쟁률이 1 대 1조차 넘지 못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제2의 도시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성적표다.
미분양 실태를 들여다보면 수도권과 지방의 온도 차는 더욱 극명해진다. 8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의 80% 이상이 지방에 몰려 있다. 특히 ‘악성 미분양’은 지방에서 도드라진다. 지난 8월 부산의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1573세대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과거에는 서울에서 시작한 부동산 훈풍이 인천, 경기도를 거쳐 주요 광역시로 뻗어나가는 형세였다. 하지만 최근의 부동산 불장 또는 상승 전환은 수도권 위주로 국지적으로 나타나고 지역 내에서도 양극화된 모습으로 형성된다.
수도권과 지방의 부동산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을 이대로 두고만 봐서는 안된다. 부동산 시장의 격차는 그렇지 않아도 좁히기 어려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자산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서울에 살지 않는 타 지역 거주자가 서울 아파트를 매수하는 ‘상경 투자’는 이미 급증했다. 지금도 공고한 수도권 일극체제를 강화하고 지방 소멸이라는 정해진 미래로 성큼 다가서는 지름길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부의 시선이 서울과 수도권에만 꽂혀있다는 데 있다. 서울 강남 3구 등 일부 상급지의 집값이 널뛰기하자 이를 잡겠다고, DSR 2단계 규제 시행 등 대출을 조이고 있는 것이다. 서울 집값을 잡겠다고 전 국민이 은행 대출창구만 바라보며 고통을 감내하는 실정이다.
벼랑 끝에 선 지방 건설·부동산 경기를 생각해서라도 지역별로 금리를 차별화하는 등 ‘핀셋 대책’이 필요하다. 한시적으로라도 세제 완화를 시행하는 등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올 스톱’ 수준인 지방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원활히 돌아가도록 밀어주는 정책적 고려가 필요한 때다.
2024-10-1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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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서둘러 함안휴게소처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던 여름이었다. 50년 전 코흘리개였을 때에는 기온이 30도만 되더라도 폭염이라며 난리를 떨었는데 지금은 35도는 돼야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집에서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지경이다 보니 전기료 폭탄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다행히 영원할 것 같던 여름은 이제 지나갔다. 솔직히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 아닐 수 없다.
전국 곳곳으로 여행 취재를 다니다 보면 뜨거운 여름을 그 누구보다 더 절실히 느낀다. 일반 온도계로 35도 정도라면 자동차 온도계에는 40도가 찍힌다. 올해 여행을 다닐 때 자동차 온도계가 최고 45도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차에서 내려 외부를 만지면 너무 뜨거워 손을 델 정도다. 이럴 때에는 자동차 창에 햇빛가리개를 달고 에어컨 설정온도를 최대한 낮추고 풍량을 최대한 높여야 겨우 더위를 피할 수 있다.
너무 뜨겁다 보니 여름에는 심지어 여행 취재를 갈 곳을 찾는 것조차 어렵다. 소개할 만한 수준급 실내 공간은 많지 않은데 야외공간의 경우 숲조차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덥다. 아무리 풍경이 좋아도 10~20분만 걸으면 비지땀이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일사병에 걸려 쓰러질 것 같다.
여름에 여행 취재를 다니면 가장 회피하고 싶은 곳은 고속도로 휴게소다.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30분 정도 점심을 먹고 돌아가면 차 안은 한증막을 넘어 거의 용광로 수준이다. 얼마나 뜨거운지 핸들을 잡을 수 없을 지경이다. 과거 중동에서는 한여름에 자동차 대시보드가 녹아내렸다는데 이러다가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런데 최근 잘 가지 않던 남해고속도로 함안휴게소에 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주차장에 태양광 패널 발전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그 밑에 세운 차들은 시원한 그늘을 즐기고 있었다. 화장실과 매점에 다녀오느라 20분 정도 지났지만 발전시설 아래 세워둔 자동차는 전혀 뜨겁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태양광 패널 발전시설이 설치된 고속도로 휴게소는 50곳 정도다. 남해고속도로의 경우 전국 휴게소 중에서 최초로 설치된 함안휴게소 외에 고성휴게소, 섬진강휴게소에도 설치됐다.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 태양광 패널 설치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25년까지 휴게소 사용 전력 100%를 자체 생산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가 ‘주택가와 태양광 패널 사이의 이격거리’ 규제를 강화하는 등 일부 변수 탓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수년 사이에 폭염이 엄청나게 심해진 상황을 고려하면 서둘러 규제를 완화해서 사업 추진 속도를 앞당기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2024-10-0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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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위기지학
학문은 크게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나뉜다. 위인지학은 남을 위한 공부, 이를테면 출세를 목표로하는 것이고 위기지학은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다. 모름지기 군자라면 위기지학으로 내면의 수신을 으뜸으로 해야 한다.
부산에서 학문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국회의원 A 씨가 있다. 실제로 그의 사무실 직원들 중 일부는 석사,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대학원을 적극 장려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배움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공부하는 만큼 볼 수 있는 세상의 넓이나 깊이가 확대된다는 지론 때문이다.
이러한 A 씨는 최근 공식 석상에서 부산의 상황에 대해 냉정한 진단을 쏟아냈다. 인구가 350만 명 선이 무너졌으며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 지역 청년 인구가 유출되고 있다, 부산이 전국 광역시 중 최초로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했다 등 구구절절 올바른 소리를 쏟아냈다. 또한 현장에 있는 간담회 참석자들에게 “고견을 하나하나 낱낱이 메모해 정책에 반영하겠다”며 남다른 학구열을 내비치기도 했다.
부산과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통렬한 그의 비판을 들은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그를 바라보는 젊은 청년의 눈빛은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아마도 남들보다 세상을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그의 냉철한 면모에 놀랐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사회를 분석하고 송곳처럼 지적하는 데 능숙한 그에게도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거나 잘못을 인정하는 등 허물에 대한 반성의 자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부산에서 십수년간 정치인으로 살아오며 이제는 원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연히 선배 정치인의 위치에 있는 그이다. 그가 말한 부산 인구 350만 명 이하 시대가 도래할 때에도,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야 할 때에도 그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이었다.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는 것은 집안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출발점이다. 여기서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는 방법이 바로 위기지학이다. 위기지학이 없는 위인지학은 ‘광인’에게 큰 칼을 쥐여준 꼴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할 수 있지만 그 속은 오욕(五慾)으로 가득해 비공개 자리에서 막말이나 욕설을 서슴지 않으며 학문을 수단 삼아 쌓아 올린 자신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그가 학문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했든 앞으로는 내실을 키우는 수양을 통해 부산에 진정 쓰임이 되는 존재로 거듭나기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2024-09-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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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풋살은 '고독'해야 한다 [골 때리는 기자]
익명의 사람들과 함께 공을 찰 수 있도록 매치를 성사시켜 주는 온라인 플랫폼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풋살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여성들도 이 플랫폼을 통해 경기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지만 풋살을 즐기는 성비가 불균형한 탓에 '혼성 매치'도 자주 성사된다. 공 다루기에 능숙한 여성들도 있지만, 혼성 매치는 대부분 남성들이 좀 더 공을 잘 다루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레벨의 사람들끼리 찰 수 있도록 인원 배치를 조절해 주는 '매니저'들이 플랫폼에 있긴 하지만, 수준이 비슷한 여성과 남성으로 한 팀을 구성하기는 쉽지 않다.
혼성 풋살에 참여할 때마다, 주연으로 활약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항상 남는다. 몸싸움이 치열한 중원에서 여성이 플레이하기가 쉽지 않기에 혼성 매치는 주로 중원에서 남성들이 골대 근처까지 공을 끌어와주면 여성들이 골대 근처에서 공을 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 혼성 매치에는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바로 남성들은 강한 슈팅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종종 남성들은 '혼성 풋살'은 템포가 느리고 재미없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강한 슈팅이나 몸싸움을 자제하며 여성들을 배려해 매치에 임하는 그들의 배려가 고맙긴 하지만, 매치가 끝나면 1인분의 몫을 하지 못했다는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1년 넘게 풋살을 즐겨본 결과, 이 씁쓸함을 없앨 답은 고독한 연습뿐이다. 잦은 경기 참여가 결코 실력을 빠르게 늘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공을 가지고 놀아본 경험이 부족하기에 반드시 '혼자' 기본기를 다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축구선수 손흥민이 초등학교 6학년 이전까지 경기보다 기본기에만 집중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물론 초반에는 기본기가 없어도 경기에 참여해 재미를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본기가 부족해 공놀이 자체에 흥미를 잃는 여성들을 많이 목격했다. 결국 '행축(행복축구)'도 실력 향상 없이는 실현하기 어렵다. 빈공터나 공원에 공을 가지고 나가서 패스나 볼 컨트롤 등의 기본 훈련을 혼자서 다져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도 견뎌내야 한다.
그러면 여성으로만 구성된 팀에서 공을 차라고 말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풋살을 즐기는 남성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시간상 문제로 불가피하게 혼성팀에서 경기를 뛸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여성 매치는 남성이나 혼성 매치에 비해 매우 적게 열린다. 여성 매치가 많이 생기기 위해선 혼성 매치에서 여성들의 몫이 더 늘어나야 한다. 고독한 연습만이 여성 풋살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셈이다.
2024-09-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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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의 '금알못' 탈출기] 15조 VIP 고객을 잡아라
지난해 9월 울산시금고를 두고 경남은행과 국민은행이 격돌했다. 시금고 선정은 지자체의 예산을 관리하는 은행을 정하는 일이다. 접전 끝에 경남은행이 울산시금고를 유치했다. 그로부터 2개월 뒤, 경남은행은 울산 영업점 전체 간판에 ‘울산 경남은행’을 새겼다. 울산과 경남은행이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사건은 금융권에서는 은행 간판을 바꿀만큼 은행이 가지는 지자체 금고 유치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회자된다.
부산 금융권의 최근 최대 화두는 부산시금고다. 부산시 예산 15조 원을 관리할 은행이 24일 최종 선정된다. 지역 은행인 부산은행이 2000년부터 24년간 시금고 주금고를 수성해왔다. 이후 4년에 한 번 벌어지는 입찰마다 한 차례 경쟁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시중은행인 국민은행이 도전장을 냈다.
왜 은행들은 시금고에 사활을 걸까. 은행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5조 원 예산 중 은행 계좌에 머무는 돈은 8000억 원 남짓이다. 하지만 ‘예금을 하지 않는 시대’에 예금 확보에 비상이 걸린 은행들 입장에서 거액의 예산을 굴리는 고객인 지자체는 매우 매력적인 고객이다. 수도권 지자체 금고는 시중은행 간 과당 경쟁이 붙어 ‘레드오션’이 됐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 시중은행, 국책은행은 지역으로 ‘남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앞다퉈 부산과 상생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후원금을 시금고 선정 전 내놓고 있다. 시금고 평가 항목에 지역 사회 공헌 항목이 엄연히 있는 만큼 은행 입장에서는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올해 초부터 부산신용보증재단에 출연금 액수로 은행들이 경쟁을 한 것, 최근 잇달아 지역 사회에 거액의 사업비와 함께 정책 지원을 하는 것도 시금고와 분리해 생각하기는 어렵다.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 백번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씁쓸함이 몰려온다. 치열하게 부산에 구애를 던지는 은행들이 24일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을지 하는 우려에서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2028년이나 돼서야 은행들이 또 사회공헌 ‘벼락치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다.
부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산시라는 15조 원 VIP 고객에게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지역에 많이 공헌하는 은행이 시금고에 선정됐으면 한다. 심의위원회 심의위원들이 금리, 향후 지역 사회 공헌 예산인 협력사업비 같은 숫자를 꼼꼼히 살폈으면 한다. 또한 15조 원을 맡기는 VIP고객의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4년간 은행이 꾸준히 VIP에게 좋은 대우를 해줄 수 있을지도 꼼꼼히 따졌으면 한다.
2024-09-1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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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의 타임아웃] MZ 여성의 ‘야구 직관’ 이유
지난 4일 오후 롯데 자이언츠와 KT 위즈와의 시즌 14차전 경기 시작 한 시간 전. 부산 사직구장에 들어선 관중 중에서도 MZ 세대 여성 팬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다채로운 롯데 유니폼을 입으며 롯데 사랑을 과시했다. 올 시즌 롯데 선수들이 착용 중인 유니폼부터 클래식 유니폼 ‘스머프’까지 기자가 이날 발견한 그들의 유니폼 종류만 5개가 넘었다.
5일 한국야구위원회(KBO) 통계를 보면 올 시즌 시작 이래 전국의 야구장을 찾은 관중 수는 지난해 810만 명을 훌쩍 넘어선 935만 6805명이다. 이 기세대로라면 ‘1000만 관중 시대’가 확실시된다. 롯데의 관중 동원 수 또한 지난해 89만 1745명에서 올해는 95만 명을 넘어섰다. 관중 수를 끌어올린 1등 공신은 MZ 세대 여성 팬들이 꼽힌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야구장을 방문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직장 선배와 경기를 보러 온 이나경(21) 씨는 록 콘서트 같은 현장 분위기를 치켜세웠다. 특히 롯데 선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응원가를 떼창할 때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게 현장 직관의 매력이라고 이 씨는 말했다.
이 씨 주변에는 롯데 유니폼을 입은 대학생 임지우(20) 씨와 친구 백진희(20) 씨가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두 사람 모두 올해 야구장을 처음 방문했다고 한다. 임 씨는 “숏 폼 플랫폼에 야구장 모습이 자주 떠 궁금하던 차에 친구 따라 사직구장에 와봤다”고 말했다. 백 씨는 “가족들 모두 롯데 팬이기 때문에 야구 규칙을 익히고 경기를 구경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전했다.
임 씨는 야구장을 찾는 또 다른 속사정을 털어놨다. “최근에는 극장 가격도 올랐고요, 아이돌 콘서트에도 가려면 10만~15만 원 정도는 줘야 해요. 야구장과 극장 가격이 비슷한데 같은 가격이라면 더 재미있는 곳을 찾는 거죠.”
임 씨의 말처럼 야구장의 매력을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 즉 ‘가심비’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동안 언론은 야구장을 찾는 MZ 세대 여성의 증가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일상화된 젊은 여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KBO와 각 구단이 펼친 다양한 소셜미디어 전략이 주효했다는 보도가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고물가 시대에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진 MZ 세대의 현실도 반영하고 있음을 깨달으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야구장에서 이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눴지만 모두가 롯데의 가을야구 진출을 열망하고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롯데의 ‘찐 팬’을 자처하는 직장인 조지은(27)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5등 안에 들기를 바라지만 못 들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여주시면 만족해요.”
2024-09-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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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5초와 3초
공을 다루는 데 능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주변에 구기 종목 중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 피구라고, 공 피하기만 잘한다고 말했다. 새로 나온 그림책 <휘슬이 두 번 울릴 때까지>(사계절)를 보며 피구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음을 알았다. 이명애 작가는 ‘너를 맞히지 않으면 내가 아웃되는’ 피구라는 게임의 이면을 보여준다.
피구 경기하는 날, 한 반이었던 아이들은 두 팀으로 나뉜다. ‘삐익’ 휘슬 소리와 함께 공격이 시작된다. 도망가다 제일 앞으로 밀려난 친구, 달리기가 느린 친구, 겁 많은 친구, 무리에서 떨어진 친구를 향해 공이 날아간다. 가슴에 퍽! 등에 퍽! 얼굴에 퍽! 공격하는 공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팔을 다친 친구도 동료를 구하던 친구도 공에 맞아 퇴장한다. 최·김·한·오·곽·안·조…. 작가는 공에 맞은 아이들에게 이름을 붙여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불러들인다.
운 좋게 살아남은 주인공은 얼떨결에 공을 받게 된다. ‘5초 안에 공격하지 않으면 내가 아웃이야.’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진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휘슬이 두 번 울려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공 던지기. 누군가 그려 놓은 선 안에서 이뤄지는 피구 경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피구 경기장의 주인공이 고민한 5초만큼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그린 그림책이 또 있다.
정진호 작가 <3초 다이빙>(스콜라)의 주인공은 ‘나는 잘하는 게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는 달리기를 해도 1등과는 거리가 멀고, 밥도 천천히 먹고, 공부도 그저 그렇다. 심지어 그가 응원하는 야구단까지 ‘또 졌네’ 단골 팀이란다. 태권도 학원 사범이 누구든 이길 수 있는 발차기를 가르쳐줬지만, 주인공은 그 비법을 쓰고 싶지 않다. 자신의 승리 뒤에 다른 이의 패배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좀 느린 아이’로 불리는 주인공이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며 하는 생각을 읽으며 알게 된다. 느리게 보이는 아이의 행동이 ‘더 깊이 생각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주인공이 다다른 곳은 다이빙대 위. 그곳에는 먼저 온 두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하나 둘 셋! 딱 3초면 같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배운다. 세 사람의 다이빙, 약간의 어긋남을 품은 ‘푸웅덩’ 소리가 지긋지긋한 무더위를 날리듯 경쾌하다.
2024-08-2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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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부산 ‘오페라 풍년’의 이면
봄가을에 비해 여름철 클래식 공연계는 비수기로 통한다. 더욱이 8월은 대형 공연장 개보수 등으로 대관 업무도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공연장 수급도 좋지 않다. 그런데도 올여름 부산의 오페라 공연만큼은 풍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그렇다.
을숙도문화회관은 지난달 제10회 을숙도 오페라축제를 맞이해 4개의 작품을 지역 민간 오페라단 협업으로 무대에 올렸다. 전년도 10월에 했던 축제를 7월로 앞당겼다. ‘마술피리’(부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 ‘라 트라비아타’(부산예술오페라단), ‘팔리아치’(드림문화오페라단), ‘세비야의 이발사’(나눔오페라단)가 공연됐다.
해운대문화회관은 소규모 극장에 맞게 각색·구성한 4개의 오페라 작품을 제2회 피콜로 오페라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개최했다. 역시 네 개의 민간 오페라단과 협업해 ‘라 트라비아타’(부산예술오페라단), 창작오페라 ‘물의 아이’(영아츠컴퍼니), ‘피가로의 결혼’(프로젝트오리지널), 영미오페라 ‘그 남자 그 여자 & 이상한 네일숍’(아트내상스)을 7, 8월에 걸쳐 선보였다.
부산오페라단연합회도 제2회 부산소극장오페라축제라는 이름으로, 7, 8월 2개 작품을 올린 데 이어 오는 10월까지 공연한다. ‘돈 파스콸레’(부산캄머오페라단)와 ‘코시 판 투테’(올웨이코리아오페라단) 공연이 끝났고, ‘피가로의 결혼’(온누리오페라단)과 ‘사랑의 묘약’(아지무스오페라단)이 남아 있다.
두 달여 동안 무려 10편의 오페라가 올라간 부산 무대를 생각하면 일단 놀랍다. 하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오페라 제작 재원을 들여다보면 그 실상은 더욱 적나라하다. 을숙도문화회관의 경우, 네 작품 중 두 단체는 각각 2500만 원, 나머지 두 단체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역맞춤형 중소규모 콘텐츠 유통’ 사업에 선정돼 7100만~7230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해운대문화회관은 4개 팀에 총 5000만 원을 지원했다. 팀당 1500만 원씩 3개 단체에 나가고, 1개 단체는 500만 원을 지원했다. 그리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금 3000만 원씩을 보태 각 팀이 3500만~4500만 원으로 한 편의 오페라를 만든 셈이다.
부산시나 대구시 등에서 제작하는 오페라 시즌 전막 작품 한 편에 3억~4억 원가량 들이는 데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물론 예산이 전부는 아니지만, 오페라 예술에서 재원 비중은 작품의 질에 비례하기에 클 수밖에 없다. 다양성과 대중성 측면에서 여러 형태의 오페라가 시도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작품 완성도 측면에서 이대로 좋은가 싶은 고민이 생기는 지점이다. 그래도 ‘종합예술의 꽃, 오페라’인데 말이다.
2024-08-2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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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노인과 바다, 그리고 아파트
도심에는 청년보다 노인의 비중이 훨씬 높고,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건 바다 뿐이라고 해서 부산에 붙은 별칭이 ‘노인과 바다’다. 요즘엔 노인과 바다 뒤에 ‘아파트’를 붙이기도 한다. 고개를 들면 다닥다닥 붙은 고층 아파트 단지만 보인다고 해서다.
지난달 29일 부산시는 ‘민선 8기 부산 고용지표 크게 개선! 일자리의 질도 함께 올라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부산의 15세 이상 고용률이 2002년 월드컵 이후 최고치를 달성했다는 거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 고용률 지표는 전국 17개 시도 중 최하위다. 이례적으로 느낌표까지 붙인 보도자료와는 달리, 지역에 남은 청년들이 느끼는 공허함과 허탈감은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
YK스틸의 당진 이전은 일자리에 목마른 청년들에게 박탈감마저 느끼게 한다. 2011년 시가 LH의 택지개발계획 변경을 승인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일자리가 없어 청년들이 보금자리를 떠나는 판국에 그나마 남아있는 일자리마저 밀어낸 건 고작 아파트였다.
지난해 5월 폐점한 연산동 홈플러스 외벽에는 ‘굿 뉴스’라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마트 건물이 1군 건설사가 짓는 고층 아파트로 바뀐다는 게 굿 뉴스라는 거다. 남천동 메가마트 자리에는 평당 5000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질 좋은 일자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트가 사라지면 수백 명의 밥벌이도 함께 없어진다. 지난 5년간 문을 닫은 부산지역 대형마트는 6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그 자리엔 어김없이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추진된다. 재빠르게 손을 털려는 유통업체나 부동산 개발자들이야 이런 굿 뉴스에 구미가 당길지 모르겠으나, 대다수 시민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밀려나고, 오션뷰의 초고층 아파트만 빽빽이 들어서는 도시에 장밋빛 미래는 없다. 성장하는 도시에는 아파트 대신 창업 센터나 연구 단지,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이 들어선다. 물론 극단적인 수도권 중심체제에서 기업들이 지방을 외면하는 걸 오롯이 지자체 탓으로 돌리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파트 건설이 가능한 용도지역이면 도장부터 찍고 보는 지금의 행정으로는 변화의 가능성조차 제시하기 어렵다. 이기대의 길목에서 사업 인허가 절차가 진행 중인 고층 아파트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공공재적 가치를 보호할 고민이나 노력 없이 행정기관이 뒷짐만 진다면 이기대는 물론 도시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는 개발업자들에게 잘못된 선례를 남겨선 안된다. 초고층 아파트에 남겨진 노인들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부산의 미래는 상상하기조차 싫다.
2024-08-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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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제주도 유감
10년 전 제주도에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리고 숙소로는 리조트를 골랐다. 제주도의 인기 음식인 갈치와 흑돼지도 여러 번 먹었다. 당시에는 자동차, 숙소, 식사 모두 부담하기 힘들 만큼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2년 전 취재 때문에 제주도에 다시 갔다. 이번에는 혼자였는데 모든 사정이 과거와 많이 달랐다. 숙소, 관광지 입장료, 카페 등도 비쌌지만 음식이 가장 문제였다. 갈치와 흑돼지를 먹고 싶었지만 1인분을 판매하는 식당을 찾을 수 없었다. 취재비는 한정됐는데 혼자서 한 끼에 5만~10만 원을 주고 갈치, 흑돼지를 2~3인분이나 먹을 수는 없었다.
결국 아침, 저녁 식사는 호텔에서 해결하고, 점심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등을 사 먹어야 했다. 첫날 숙소로 이동하던 중 대학교 근처 식당에서 학생들이 많이 찾는 싼 돈가스 가게를 발견한 건 운이 좋은 경우였다.
취재 때문에 전국 여러 도시를 두루 돌아다니는데, 비싼 식당도 적지 않지만 취재비로 감당할 수 있는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식당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제주도의 경험은 당혹스러웠다.
알고 보니 이런 상황은 기자만 겪은 일이 아니었다. 최근 제주도의 음식 가격은 물론 식당의 행태에 불만을 토로하는 여행객이 늘었다. 유튜브나 신문, 방송에 ‘제주도에서 바가지를 썼다’거나 ‘너무 비쌌다’, 혹은 ‘질이 낮은 음식을 받았다’는 영상과 기사가 오르기도 했다. 이미 경험해 본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컨슈머인사이트’라는 소비자 리서치 전문기관이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제주도에 갈 돈이면 일본에 갈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8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기관은 ‘실제 일본 여행비는 제주도의 2.2배이기 때문에 이런 인식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핵심은 인식이 오해냐 아니냐가 아니다. 소비자들은 ‘제주도는 비싸다’라고 느낀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상황에 대처하는 제주도나 여행 관련 업계의 태도는 그다지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비싸다’는 불만에 대해 제주도 행정당국이 ‘잘 찾아보면 싼 음식점도 많다’고 밝힌 게 단적인 예다. 물론 잘 찾아보면 싼 음식점은 한두 군데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짧은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여행객에게 시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싼 음식점을 잘 찾아보려고’ 귀한 시간을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주도나 여행 관련 업계의 이런 태도는 ‘그래도 온다’라는 믿음이 바탕에 있기 때문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제방 붕괴는 손가락만 한 구멍에서 시작한다는 걸 되새겨 보길 바랄 뿐이다.
2024-08-08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