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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당신은 '월급' 말고 무엇을 벌고 있는가
모든 것에 가격표가 붙는 세상이라지만, 우리 삶에는 죽어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비매품(Not for Sale)’ 영역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의 논리가 도덕적 성역을 침범할 때 발생하는 가치의 훼손을 경고했다. 이 날카로운 통찰을 우리의 일터로 가져와 보자. 우리는 매일 노동력을 팔아 월급을 받는 시장 경제의 최전선에 서 있지만, 정작 직장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귀한 ‘보너스’는 우리가 회사와 체결한 연봉 계약서에는 적혀 있지 않다.
외국계 기업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홀로 모니터를 마주하는 나는, 역설적이게도 이 차가운 디지털 환경 안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의 가치를 더 절실히 체감한다. 흔히들 대학을 지성의 전당이라 부르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대학에서조차 가르쳐주지 않는 본질적인 것들은 모두 직장에서 동료들과 부대끼며 배운 것들이었다. 책장 속 이론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섞인 노하우, 그리고 타인의 성장을 진심으로 돕는 마음 말이다.
나 역시 새로운 팀원이 합류하면 대학 강의실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실무의 ‘결’과 조직의 문화를 요약해서 건네곤 한다. 정답을 맞히는 법은 대학에서 충분히 배웠겠지만, 직장에서는 누군가의 빈틈을 메워주고 함께 속도를 맞추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겪은 시행착오를 기꺼이 나누고, 그 과정에서 동료가 건네는 진심 어린 감사 인사는 내 연봉 고과를 올리는 수치보다 훨씬 더 묵직하게 가슴에 남는다. 이는 성과 지표로 환산되지 않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느끼는 효능감이자 시장이 결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영역이다.
이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좋은 동료를 만났다’는 식의 감성팔이가 아니다. 샌델은 모든 인간관계가 거래로 치환될 때 생기는 공동체의 붕괴를 경고했다. 현대의 직장은 비단 노동력을 파는 장소를 넘어, 타인과 연결되는 법을 배우는 마지막 ‘인간 학교’로 기능하고 있다. 동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서로 다른 부서임에도 새로운 기술이나 효율적인 일 문화를 나누며 뜨겁게 토론하는 순간들. 인센티브 몇 푼으로 유도할 수 없는 이 자발적인 유대감이야말로 시장의 논리가 침범해서는 안 될 삶의 품격이다.
더 나아가, 나는 우리가 지금 지겨워하는 이 ‘소속감’이 머지않은 미래에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AI가 업무를 자동화하고 1인 사업가들이 넘쳐나는 파편화한 세상이 오면, 타인과 부대끼며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경험 자체가 일종의 사치가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지금의 출근길과 지루한 회의 속에서 나눴던 농담 한마디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흩어지기 쉬운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조직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내는 경험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귀해질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화면 뒤에 숨어 일하는 재택러로서 고립의 위협을 늘 느낀다. 하지만 그렇기에 다른 팀 동료가 건네는 따뜻한 메시지 한 줄, 지식 공유 세션에서 느껴지는 동료애의 무게를 더 소중히 여긴다. 기성세대가 지켜온 끈끈한 조직 문화의 ‘정’과 우리 세대가 추구하는 ‘느슨하면서도 단단한 연대’가 만나는 지점. 그곳에 우리가 직장에서 벌어들여야 할 진짜 보너스가 있다.
기록은 전시될 때가 아니라 내면에 쌓일 때 역사가 되듯, 직장 생활의 가치 역시 통장 잔고가 아니라 내 영혼에 새겨진 관계의 깊이로 결정된다고 믿는다. 자본의 논리로 계산기를 두드려서는 결코 답이 나오지 않는 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화학 작용이야말로, 척박하고 냉혹한 경쟁 사회를 버티게 하는 진짜 연료인 셈이다. 이처럼 타인과 부대끼며 나의 모난 모서리가 둥글게 깎여 나가고, 동시에 누군가의 부족함을 나의 고유한 장점으로 채워주는 일련의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기능적인 직업인 너머의 성숙한 ‘어른’으로 완성되어 간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나다운 진정성을 잃지 않으려 분투하는 우리에게, 직장은 여전히 돈으로 살 수 없는 성장을 선물하는 고마운 공간이다.
이제 우리는 매달 찍히는 월급 통장의 숫자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세상이 당신의 가치를 직급과 연봉으로 매기려 들 때, “나는 이곳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배우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효능감이야말로 전시되지 않는 은밀한 자부심이 된다. 거대한 시장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당신은 오늘 하루 월급 말고 또 무엇을 벌었는가. 당신의 마음 한구석에 결코 가격표를 허락하지 않은 ‘동료의 이름’ 하나쯤은 품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2026-04-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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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블록체인 도시 부산, 이제 '돈 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부산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블록체인을 정책으로 끌어올린 도시다. 규제자유특구 지정 이후 물류, 관광, 공공안전, 금융,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증 사업이 이어졌고, b-space와 기술혁신지원센터 같은 공간도 갖춰졌다. 제도, 예산, 시설 모두 준비됐다. 형식적으로는 인프라가 완비된 상태에 가깝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블록체인 기업은 왜 부산으로 오지 않는가. 인프라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눈에 보이는 공간과 시설, 특구 지정이나 규제 완화 같은 제도, 그리고 기업이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구조다. 부산은 앞의 두 가지는 갖추었다. 하지만 세 번째가 없다. 고객이 있고 거래가 반복되며 수익이 쌓이는 생태계, ‘여기서 사업하면 돈이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구조 말이다. 기업은 공간이 아니라 기회를 따라 이동한다. 지난 몇 년간의 실증사업들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관광 통합 플랫폼, 공공안전 영상 제보 시스템, 디지털 바우처, 의료 데이터 활용 사업은 블록체인이 실제 서비스에 적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가능성을 증명한 PoC(개념검증)는 많았지만, 수익을 증명한 사례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 실증 이후 민간 고객이 붙었는가. 부산이 아니면 안 되는 사업이 만들어졌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구조적 문제는 더 있다. 특구 사업에 참여한 기업 중 상당수가 부산에 본사를 두지 않는다. 참여는 했지만 정착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특구의 성과가 지역 경제에 얼마나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지점이다. 이제는 접근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블록체인 실증 자체를 목적으로 사업을 설계한 결과, 실증을 수행한 기업에는 도움이 됐지만 부산 블록체인 특구에는 별다른 변화가 남지 않은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블록체인 기업을 유치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부산이 이미 강점을 가진 산업에서 블록체인이 진짜 필요한 곳을 먼저 찾는 것이다. 기술이 산업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산업이 기술을 불러오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산업은 커피다. 국내 커피 수입의 대부분이 부산항을 거친다. 그런데 부가가치는 수도권에서 만들어진다. 콜롬비아, 과테말라, 온두라스 농장을 떠난 커피가 부산 창고에 도착하기까지 물류는 이미 실시간으로 추적된다. 그런데 정작 대금 정산은 여러 나라의 은행을 거치며 수일이 걸리고, 수수료가 쌓이며 거래 위험도 남는다. 화물은 도착했는데 돈은 아직 은행 어딘가에 묶여 있는 구조다. 블록체인 스마트 계약을 활용하면 선적이 확인되는 순간 대금 일부가 자동 지급되고, 화물이 부산항에 도착하면 나머지가 즉시 정산된다. 부산이 커피의 관문에서 무역 금융 정산의 플랫폼으로 올라서는 순간, 데이터 흐름을 쥔 도시가 돈의 흐름도 쥔다.
부산의 또 다른 핵심 산업인 수산도 블록체인이 절실한 분야다. 부산은 국내 수산업의 중심 도시로, AI를 접목한 스마트 양식 빅데이터 센터를 추진 중이다. 그런데 양식장이 스마트해질수록 보안 위협도 함께 커진다. AI가 사료 공급과 수온·산소 관리를 자동화할수록, 해커가 시스템에 침투해 이를 조작하면 어류가 집단 폐사할 수 있다. 단순한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어족 자원 고갈과 식량 안보 위협으로 이어지는 문제다. 부산시가 추진 중인 AI 데이터 센터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데이터 인프라일수록 사이버 공격 표적이 되기 쉽다. 블록체인 기반 분산 보안 구조는 단일 장애 지점을 없애고 데이터 무결성을 보장하는 유효한 대안이 된다. 생산부터 수출까지의 이력을 검증 가능한 형태로 연결하면, 부산 수산업은 단순 이력 관리를 넘어 신뢰를 수출하는 산업이 될 수 있다.
항만은 이미 블록체인 도입이 진행 중인 영역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별 서비스가 아니라 선사·터미널·통관·보험·정산을 하나로 묶는 데이터 연합 구조다. 부산항이 물류 거점을 넘어 신뢰 데이터의 거점이 될 때, 기업이 부산에 와야 할 이유가 비로소 생긴다.
정책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몇 건의 실증을 완료했는지가 아니라, 반복되는 매출이 얼마나 생겼는지, 부산에 정착한 기업이 몇 곳인지를 봐야 한다. 블록체인 특구, 디지털금융 정책, 스타트업 투자 및 육성, AI·데이터 인프라 사업이 각자 따로 움직이면 산업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부산은 블록체인을 위한 도시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 넘어야 할 단계는 하나다. 블록체인이 필요한 도시를 만드는 것. 실증 성과를 산업 성과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지금 부산 블록체인 특구 앞에 놓인 진짜 숙제다. 부산이 블록체인을 ‘도입한 도시’를 넘어 ‘주도하는 도시’로 갈 수 있을지는, 바로 이 전환에 달려 있다.
2026-04-1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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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주거권을 높일 시기
올해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시행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정책은 언제나 가장 선명한 공약이 된다. 주택 가격, 공급 물량, 규제 완화와 같은 키워드는 유권자의 삶과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선거 국면에서 제시되는 부동산 대책은 대체로 ‘얼마를 더 공급할 것인가’ 혹은 ‘어떤 규제를 풀 것인가’라는 양적·수단적 내용이다. 이렇듯 선거에서 부동산 정책이 전면에 나서는 현상은 부동산 정책이 형성되는 구조적 메커니즘과 연결되어 있다.
부동산 정책은 정치공학적으로 유의미하기에 선거와 강하게 결합된다. 정책 변화가 체감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선거의 주요 공약으로 꼽힌다. 세금, 대출, 분양 제도는 즉각적인 경제적 효과를 내고 단기간에 정책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 또한 부동산 관련 정책은 이를 통해 특정 집단의 지지를 빠르게 결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한 공약으로 선호되고, 양적 공급에 대한 정책 방안은 수치를 제시할 수 있어 유권자에게 직관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그런데 공약으로서의 부동산 정책은 선거 전략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지자체는 부동산 정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법적 의무가 있기 때문에 정책 방안인 공약은 자연스레 그 시행으로 이어진다. 헌법 제35조 제3항은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주거기본법 제3조는 ‘국가 및 지자체는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기본원칙에 따라 주거정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 정하는 기본원칙은 다음과 같다.
소득수준·생애주기에 따른 주택공급과 주거비 지원을 통하여 국민의 주거비를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하고, 양질의 주택 건설을 촉진하며, 주택이 체계적·효율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하고, 주택시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주택산업이 건전하게 발전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임대주택 우선 공급·주거비 우선 지원을 통해 주거 지원 필요 계층의 주거 수준을 향상시키고, 주거환경정비·노후주택 개량을 통해 기존 주택의 주거 수준을 높이며, 주거약자에 대해 안전하고 편리한 주거 생활을 지원하고, 저출산·고령화, 생활양식 다양화 등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본원칙은 양적 주택 공급뿐 아니라 주거 수준의 향상 등 경험 측면에서의 정책을 천명하고 있다. 주거 수준, 즉 ‘주택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되는가’를 기준으로 보는 정책은 주거권에 기반한다. 주거권은 헌법 제34조 제1항과 제35조 제1항에서 기본권의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 주거기본법 제2조는 “국민은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주거권을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주거권의 측면에서의 정책은 공급과 수요로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양적 공급과 달리 그 평가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정책 목표와 국민이 경험한 성과 사이에 간극이 발생할 수 있다. 유엔 사회인권위원회는 적절한 주거의 기준으로 점유의 법적 보장, 적절한 주거기반시설 및 서비스, 비용의 적정성, 거주 가능성, 접근 가능성, 적정한 위치, 문화의 적절성의 총 7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이는 주거권의 평가 기준으로서 유의미하다.
기존 주택공급 정책이 비용의 적정성, 거주 가능성을 위한 것이라 보면 임대차보호법, 도시정비법 등 관련 법령 개정으로 점유의 법적 보장과 적절한 주거기반시설, 거주 가능성을 위한 정책도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아직 문화의 적절성 측면에서의 정책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최근 국토연구원은 부동산정책이 정책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은 소홀했다는 반성과 함께 주거 복지정책 방향을 분석·제안한 바 있다.
주거 정책의 고도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기이다. 한부모 가정과 외국인 거주자의 증가와 함께 특히 800만 1인 가구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주거 정책이 필요하다. 2024년 기준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6.1%에 달해 역대 최대치이며, 1인 가구의 자가 점유율은 전체 가구 평균보다 현저히 낮아 불안정한 형태로 거주 중이기 때문이다. 사회·문화적 변화에 따른 주거 정책과 거시적인 양적 부동산 정책의 병행이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은 단지 정치적 수사가 아닌 국가와 지자체의 법적 의무이자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양적 공급 정책을 넘어 주거 불안을 해소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는 부동산 정책의 역사적 경험에서 도출된 교훈을 기반으로, 유권자의 주거권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구조적 정책 방안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2026-04-0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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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호르무즈 봉쇄와 국가 영속성의 지혜
중동의 혈류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세계 경제는 국가 생존을 위협하는 공급망의 ‘실존적 단절’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유조선과 컨테이너선들이 페르시아 만에 발이 묶였고, 두바이유 가격은 폭주하고 있다. 국내 석화 공장은 나프타 공급 불안으로 가동 중단 위기에 처했고, 이는 종량제 봉투 품귀와 페인트 가격 폭등이라는 생활 밀착형 재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초 원자재 수급 불능에 직면한 영세 업체들의 조업 중단은 이제 국가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 ‘공급망 쓰나미’가 되어 우리 삶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개별 부처의 파편화된 임기응변을 넘어, 대규모 비상사태 시 국가 핵심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 영속성’ 체계를 근본부터 점검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이미 ‘국가와 정부의 셧다운’이라는 뼈아픈 고통을 경험했다. 2020년 팬데믹에 의한 초국가적인 공급망 마비 사태 당시, 정부는 총 250조 원 규모의 비상 재정과 금융 지원 패키지를 긴급 투입하며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성급한 행정과 정책 학습의 부재는 더 큰 화를 불렀다. 2021년 요소수 대란은 당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97%에 달하는 공급망의 치명적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2년이 지난 뒤에도 의존도는 여전히 92% 수준에 머물러 있다. 비용 효율성이라는 논리에 밀려 어렵게 마련한 ‘학습된 기제’가 다시 ‘망각된 교훈’으로 퇴보하고 만 셈이다.
최근 UAE가 한국을 ‘원유 최우선 공급 대상국’으로 지정하고, 긴급 도입 물량을 확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의 전략적 속내를 냉철히 간파해야 한다. 이는 에너지 전환기를 맞아 한국의 정제 기술과 방산 역량을 자국 인프라에 결속시키려는 고도의 포석이다. 우리는 이를 역이용해 자원 보유국에는 기술을 제공하고, 자원 빈국과는 공동 비축 및 에너지 공급 안전망을 형성하는 ‘기술-자원 패키지 외교’를 국가 영속성의 핵심 열쇠로 삼아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수급 불균형의 ‘약한 신호’와 실제 공급망 단절 사이의 ‘시차’이다. 유조선 운임 폭등에도 산업 현장의 체감은 아직 제한적이다. 그러나 이 균열은 물류망을 타고 증폭되어 비축분이 소진되는 임계점에 이르면, 시장과 산업 현장에서 폭발적인 연쇄 셧다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 수출입의 99%를 담당하는 해운 물류망의 기능적 불능이 발생하면 부산항과 울산항을 기점으로 하는 국가 물류 체계 전체를 멈춰 세울 수 있는 국가적인 위협이 된다. 특히 글로벌 선사들의 항로 이탈과 체선료 폭등으로 이어져 부산항의 컨테이너 회전율을 급격히 떨어뜨릴 수 있다. 이는 지역 중소 수출 기업들의 경영을 위협하는 동시에, 국가 경제 전체를 세계 공급망에서 단절시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대책 본부 가동이 아니라 단단한 ‘제도적 설계’다. 첫째, 개별 부처의 기능 연속성을 행정부 전체의 정부 연속성 차원으로 격상해야 한다. 비축의 범위를 황산과 암모니아 등 핵심 공정에 필수적인 ‘산업 촉매’까지 확장하여 최소 1년 치 이상을 전략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대체 항로와 복합 운송 체계의 상시 전력화를 통해 공급망 단절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둘째,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주요 에너지 공기업과 항만·항공·철도 등 핵심 물류 기관을 잇는 ‘국가 영속성 협의체’를 조성해야 한다. 요소수 사태 이후 마련된 개별적 경보 시스템을 에너지와 물류 전 분야로 확대하고, 범정부 차원의 통합 관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특히 AI와 데이터를 중심으로 글로벌 자원 흐름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위기를 사전 예측하는 ‘지능형 플랫폼’으로의 대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셋째, 에너지 소비 구조의 근본적 체질 개선이다. 가스나 석탄에 대한 직접 의존도를 낮추고, ‘전기화 비중’을 단계적으로 높여야 한다. 넷째, 우선순위 배분제의 법제화다. 장기 봉쇄로 자원이 절대 부족할 경우 필수 공공 서비스와 전략 산업에 자원을 강제 배분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실행 매뉴얼을 정비해야 한다.
불가항력의 파도가 안방까지 밀려온 뒤에 대책을 세우는 것은 이미 늦다. 현재 우리나라는 개별 기관 차원의 기능 연속성 계획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영속성 체계는 여전히 공백 상태다. 중동발 위기가 상시화되는 상황에서 ‘북극항로’는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 및 해운물류 생명선’이자 국가 영속성의 핵심 전략이다. 이제 에너지, 교통, 민생을 아우르는 국가 핵심 기능과 글로벌 자원 의존도를 통합 관리할 ‘국가 영속성 위원회(가칭)’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거버넌스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2026-04-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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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검찰개혁에 지배된 더불어민주당
3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선 검찰을 향한 민주·진보 진영의 구원(舊怨)이 엿보였다. 2003년 3월 ‘검사와의 대화’를 소환한 대목에서다. 당시 토론회에 참석한 검사들은 부산상고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에게 ‘학번’을 묻는 등 모멸적인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노무현과 검찰의 갈등은 퇴임 후에도 계속됐고, 급기야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이 사실은 지지자들에게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뿌리로 한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더불어민주당의 본류는 친노무현계다. 김 전 대통령을 따르던 동교동계 정치인들은 대부분 은퇴했거나 ‘수박’으로 찍혀 밀려났다. 당내 주류는 친노·친문으로 이어지는 86세대 운동권 그룹으로 채워졌다. 핵심 지지층 역시 20여 년 전 ‘노무현 신드롬’을 만들었던 이들이다. 이런 정당에서 검찰개혁이 지상과제로 떠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민주당에선 재벌개혁이나 골목상권 보호, 보편적 복지 등 다양한 아젠다가 공존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검찰개혁이 거의 유일한 의제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 조국 사태가 발단이었다. 거기에 지난해 5월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서 사법개혁이 추가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갈등 의제일수록,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것일수록 진지하게 터놓고 숙의를 해야 된다”라며 신중론을 편다. 그러나 여권 강성파와 핵심 지지층은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에 관한 한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실제로 지난 1월 정부가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설치 법안을 입법예고 했을 당시에도 지지층은 크게 반발했다. 보완 수사권 폐지 결정을 뒤로 미루는 등 검찰개혁을 ‘확실하게’ 단행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공교롭게도 그 직후 정청래 대표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나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 당원 권한을 확대하는 ‘1인 1표제’ 이슈를 띄웠다. 검찰개혁에 대한 선명성 여부는 계파 갈등의 불씨로도 작용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ABC론’, 그러니까 가치·이념에 충실한 원리주의자들과 실용·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분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일단은 이재명 대통령이 진영 내 강성파에 밀린 형국이다. 여당은 각종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법왜곡죄 신설, 재판소원 도입, 대법관 증원을 골자로 하는 사법개혁을 밀어붙였다. 검찰개혁에 있어서도 특별사법경찰관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삭제하는 등 강성파 의원들의 요구가 상당 부분 수용됐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여권 지지층과 일반 국민의 요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집단이 청년층이다. 2030은 참여정부 당시 10대 이하였다.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없는 이들은 검찰개혁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다.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 우선 과제로 검찰개혁을 꼽는 경우도 거의 없다.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청년층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청년뿐 아니라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살면서 검찰을 접할 일이 거의 없다.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건 검사가 아니라 지역 격차라든가 인구 소멸, 노동시장 양극화 같은 것들이다. 균형발전만 하더라도 민주당이 검찰개혁에 쏟는 열정의 반만 여기에 쏟았다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이 정도로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개혁에 지배된 더불어민주당에서 이러한 의제들은 부차적인 걸로 여겨진다. 검찰이라는 단어로 가득한 대변인들의 논평이 그것을 방증한다.
민주당이 강성파 의원과 당원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검찰개혁·사법개혁을 밀어붙인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장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판사들은 법왜곡죄로 고발당했고 파렴치범들은 대법원 유죄 판결에 불복하며 재판 소원을 벼르고 있다. 권한이 막강해진 경찰을 어떻게 견제할 것이며, 이들의 수사 전문성은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도 내려지지 않았다. 일상에서의 혼란이 가시화하면 국민의 원성이 높아질 테지만, 이미 당원들에게 의사결정 과정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민주당은 달리는 기관차를 멈추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자는 ‘검수완박’에 집중했다가 선거를 그르친 바 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도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으로 떠들썩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 행진하는데 여당 지지율은 그보다 20%포인트가량 낮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이 민심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적어도 그 20%만큼의 유권자는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 다만 지금은 국민의힘이 워낙 지리멸렬한 탓에 잠시 유예되고 있을 뿐이다.
2026-04-0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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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설계도 밖의 부산
봄이 오면 사람들은 벚꽃 길을 찾아다닌다. 봄을 만끽하려고 이곳저곳 다니는 모습은 다분히 낭만적이다. 나도 봄이 오면 그리워하는 곳이 있다. 부산 금정구 장전동의 느티나무 가로수 길이다. 연두색 새순이 돋으면 봄이 왔다는 걸 알리고, 무성한 녹음이 짙어지면 여름이 왔다는 걸 알리던 길이다. 나의 초등학교 등하굣길은 가로수 길과 함께했다.
하지만 그 길은 금정구와 북구를 잇는 산성터널이 생기면서 사라졌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동네의 그늘이 되어주던 수십 그루의 느티나무가 베어졌고, 초등학교의 교문은 위치까지 바뀌었다. 학교 앞 골목에 즐비하던 문방구들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넓은 도로와 터널, 아파트의 높은 담벼락이 새롭게 자리 잡았다. 가로수 그늘 아래 오가던 발걸음들은 조용해졌다. 나뭇잎 흔들리던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던 골목에는 자동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만 남았다.
최근 ‘세계디자인수도 부산’ 협정식
디자인 통해 변화 가능성 높게 봐
F1963·영도 깡깡이 마을 좋은 사례
시민, 오래된 것 잃지 않을 권리 있어
어떤 과거 지키고, 어떤 기억 남길지
우리 마음속 질문 던질 때 도시 달라져
터널은 필요한 인프라다. 산성터널은 산이 많은 부산의 광역 물류와 교통망을 위한 도시의 선택이었다. 그 불가피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라진 것들을 떠올릴 때, 느티나무 가로수 길은 단순한 추억의 부재나 아쉬움만으로 치부될 수 없다.
동네란 단순히 물리적 공간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서예원의 할머니가 수십 년째 같은 자리에 앉아 붓을 드는 시간, 빵집 앞에서 아이 손을 잡고 멈추는 시간, 퇴근길 치킨을 포장해 가는 시간. 이런 것들이 모여 동네가 된다. 한 동네가 형태를 바꾸면, 오랜 시간 같은 동선을 공유하며 쌓아온 관계들도 한꺼번에 흩어지게 된다. 가게가 문을 닫고 이웃이 떠나는 건 개인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은 함께 만들어온 시간이 지워지는 집단의 상실이다.
동네의 작은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파문을 일으킨다. 핀란드 헬싱키 디자인 랩(Helsinki Design Lab)이 소개한 한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지역의 수영장에서 이용객이 급격히 줄어든 일이 있었다. 시의회는 곧바로 시설 노후화를 원인으로 지목했고 대대적인 리모델링까지 검토했다. 그러나 실제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수영장으로 향하던 버스 노선이 변경되면서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긴 것이다. 문제는 건물이 아니라 버스 시간표였다.
이 사례는 도시가 작동하는 방식이 얼마나 미세한 요소들에 의해 좌우되는지를 일깨운다. 시민의 일상은 거창한 건물보다, 오히려 익숙한 동선과 사소한 연결 위에서 형성된다. 결국 도시를 설계한다는 것은 '무엇을 새로 지을 것인가'보다 ‘사람들의 움직임과 관계가 어떻게 이어지고, 어떻게 단절되는지’를 먼저 묻는 일이어야 한다.
며칠 전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 협정식이 열렸다. 세계디자인기구(WDO)는 새 건물을 짓고 화려한 조명을 입히는 것은 자본이 있으면 어느 도시든 할 수 있는 일차원적인 디자인이라고 봤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달랐다. 이 도시가 과거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공간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지였다. 부산을 완성된 도시가 아닌, 디자인을 통해 자신을 바꿔나갈 가능성이 높은 도시로 평가한 것이다.
옛 공장의 골격을 살린 문화복합공간 F1963, 조선소 골목을 남긴 영도 깡깡이 마을은 사라질 뻔한 문화를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문제는 그 방식이 예외적인 성공 사례로만 남을 것인지, 아니면 개발의 기본 문법이 될 것인지가 관건이다.
우리가 도시 개발을 이야기할 때 최우선 과제로 삼아온 것들이 있다. 더 넓은 주거 공간, 더 빠른 교통, 더 편리한 인프라들이다. 그동안은 이런 기준들이 필요했다. 지금도 여전히 고려해야 한다. 다만 그 기준들이 포착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더 크고 더 빠른 것들이 들어설 때, 그 자리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것들 말이다. 이제는 개발 논리와 함께 동네가 사라질 때 함께 끊기는 관계들도 눈여겨봐야 한다.
우리 세대는 나고 자란 공간을 잃고 있다. 시민의 삶에는 더 나은 것을 제공받을 권리만이 아니라, 오래된 것을 잃지 않을 권리도 있다. 그 상실이 누적될 때 도시가 무엇을 잃어가는지, 행정만이 아니라 시민도 함께 물어야 한다. 어떤 과거를 지키고 어떤 기억을 다음 세대에 넘길 것인지, 그 질문이 설계도보다 먼저 시민의 마음속에서 시작될 때 도시는 달라진다.
봄마다 느티나무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다면, 그 그리움이 도시를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좋은 도시는 안목 있는 시민이 만들어낸다.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부산다운 것이 무엇일지 함께 물어야 할 때이다.
2026-03-3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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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전략적 명확성 시대'의 외교
전후 국제정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임’을 펼쳐왔다. 상대에게 의도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 동시에 상대가 쉽게 행동하지 못하도록 불확실성을 남겨 두는 외교 방식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라고 부른다. 어떤 문제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기보다는 의도적으로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는 방식이다. 상대가 최악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들어 억지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협상과 타협의 공간을 확보하는 ‘여백의 외교 기술’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만 문제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따로 ‘대만관계법’이라는 국내법을 제정해 미국이 대만을 방어할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서도 군사적 지원과 정치적 관계를 유지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미국이 취한 이러한 모호성은 중국의 군사 행동을 견제하면서도 동시에 중국과 외교 관계를 유지할 공간을 확보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마찬가지다. 집단방위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실제 군사 대응의 범위와 방식에 대해서는 일정한 모호성을 남겨 두었다. 동맹의 결속력을 유지하면서도 위기관리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장치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국제정치에서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일종의 암묵적 규칙이었고, 그것이 국제 질서를 일정하게 안정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최근 국제정치의 흐름을 보면 이러한 전략적 모호성이 점차 약화하고 있다. 이제 강대국을 중심으로 모호한 메시지 대신 명확한 입장을 거침없이 공개적으로 밝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군사력을 포함한 일방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패턴으로 옮아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NATO 가입 배제라는 명확한 요구와 미국·NATO의 단호한 거절이 타협의 공간을 완전히 소멸시켜 전쟁을 불러온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동맹국과 경쟁국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관세 조치를 취하는 것도 외교적 메시지가 더 이상 완곡한 신호가 아니라 직접적인 요구로 바뀌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일본 역시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 그간 일본은 헌법적 제한과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해국이라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안보 문제에서 매우 신중하고 절제된 표현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는 작년 11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 유사시 상황을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국가 존립 위기 사태’로 판단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는 과거 일본 외교의 톤과 비교하면 매우 분명한 메시지다. 이에 중국은 중국인의 방일 자제와 희토류를 포함한 이중 용도 품목 전반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로 대응했다. 바야흐로 동북아 정세는 여지를 남겨두는 ‘전략적 모호성의 시대’에서 이제 입장과 의도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는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우리에게 심각한 딜레마를 안겨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은 이란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 함정을 파견하라고 ‘명확하게’ 요구하고 있다. 또한 미중 경쟁이 첨예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양 강대국이 한국에 어느 편에 설 것인지 보다 ‘명확한’ 입장을 요구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선택은 단순하지 않다. 지나치게 분명한 입장을 취하면 외교적 공간을 스스로 좁히게 되고, 반대로 어정쩡한 모호성을 유지하면 상대로부터 신뢰를 잃을 위험이 있다. 더구나 경제와 안보가 긴밀하게 얽혀 있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이러한 딜레마는 더욱 복잡한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 외교는 프로다운 유능성을 요구받고 있다. 단기적 이익만 좇아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오가는 외교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기가 닥치면 진퇴양난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핵심적인 국가 이익과 동맹이라는 원칙에 관한 문제에서는 단호하고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실행 방식과 정책 추진 과정에서는 국가가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외교적 자산을 체계적으로 활용하고, 전략적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경험 많은 협상가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최대한의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말하자면 원칙에서는 명확성을, 전략에서는 유연성을 구현하는 고차원의 예술을 끌어낼 수 있는 유능함이 필요하다. 이상론에 기대거나 단기 여론에 밀린 땜질식·아마추어식 외교는 국가의 운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지금은 프로 외교의 시대다.
2026-03-2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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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봄, 아침 산책, 다중문화 생각
이란 전쟁의 비극이 계속하여 세계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가운데, 그래도 봄이다.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도 싫고, 여러 모순을 해결하고 삶의 조건을 개선해달라고 일어선 시위 국민을 ‘폭도’와 ‘순교자’로 동시에 내모는 이란 내 지배세력도 못마땅하다. 늪으로 빠져드는 이 비극을 딛고서 그래도 세계가 관용과 공존의 정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가속페달을 밟으며 밑으로 밑으로만 추락할 것인가? 뒤숭숭한 마음을 안고 아침 산책을 나선다.
그래도 때가 되면 꽃은 피고, 새는 노래하고, 물빛은 짙다. 부산 기장군 좌광천을 따라, 저수지를 지나, 대천사로 오른다. 유리 나기빈(1897~1975)의 소설 제목에서 따서 내가 ‘어두운 참나무’라고 부르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지석골을 굽어보며 오늘도 우뚝하다. 저 밑동에선 다시 온갖 벌레와 유충들이 우글거릴 거고, 쌀알같이 잔잔한 저 꽃망울들 위에 산들바람이 한 번만 더 불면 지나가는 고양이의 잔털에도 봄 향기가 짙겠다. 나뭇등걸에 앉아서 어제 일을 되돌아보며 멀리 아른아른한 청거북의 등에 괜히 시선을 던져본다. 밖은 전쟁으로 아우성인데, 이 안은 무릉도원이다. 평화로운 물소리, 새소리에 귀를 대며 어슬렁어슬렁 절 안으로 들어간다.
올 적마다 느끼는 거지만, 봄날이 오니 더한 것 같다. 다른 고향과 다른 문화적 배경을 안고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이 봄빛의 따스한 치마 안에서 서로에게 녹아들어 있는 느낌을 준다. 일주문 안쪽에는 왕방울 눈을 부릅뜬 인도 수미산 중턱에서 온 두 명의 사천왕 아저씨가 보초를 서 있고, 중앙아시아의 12지신, 낙태되거나 물에 빠져 죽은 어린아이의 영혼을 구제한다는 일본풍의 수자(水子)령 지장보살이 마당의 돌부처를 지키고 있다. 동남아시아 절의 관욕(灌浴) 문화, 중국 왕실의 전각과 처마, 조선의 왕들이 다닌 길을 이어받은 법당 중앙의 어간(御間), 산신각에서 뛰어나오는 수천 년 묵은 신령과 호랑이도 있다. 용왕, 칠성님, 돌 할미,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우리 불교만의 나반존자 등도 이 작은 절간의 주인들이다. 뜯어보면 여러 국적의 여러 문화가 한 공간에 있고, 한국 문화라고 해도 민중문화, 양반문화, 궁중문화 등 지층이 다양하다. 포토존을 표시한다고 그랬는지, 홍문관을 연상시키는 저 옥당(玉堂) 벽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 올림포스산에서 온 듯한 서양 천사의 하얀 날개가 그려져 있었다. 말하자면, 능청스럽다. 서로 낯설었을 상징과 표상들이 여러 사연을 안고 극동의 이 동쪽 끝에 모여 독특한 하모니를 내고 있다. 오랜 세월 부딪히며 하나의 둥그런 만다라를 이루었으면서 본래부터 근원이 하나인 듯이, 처음부터 한 가족이었던 듯이 천연덕스럽다.
오늘을 기준으로 굳이 역산해 본다면,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전진의 순도 화상이 처음으로 한반도에 불교를 전한 이래 이 다색의 자연스러운 공간이 만들어지는 데 무려 1700여 년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한 번이면 족하지, 또다시 그만한 세월을 기다려서 우리 사회를 다(多) 지층화, 다 음성화할 순 없을 것이다. 전술 전략을 잘 세우고 생활 속에서 철저하게 실천하여, 다시 하나 되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크게 앞당겨야 한다. 그런데 이런저런 상념도 잠시, 점차 확전 되는 미국-이란 전쟁이 블랙홀이 되어 모든 걸 삼키고 앗아가 버린다.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1895~1925)의 예언대로 이 찬란한 봄기운, 뭇 생명의 부활, 문화 결합과 용융의 에너지마저도 저 거대한 악과 욕망 앞에선 그저 속수무책인 걸까? 결국은 물질 문명과 전체주의의 검은 쇠 손바닥이 우리의 작은 생명의 노래, 화합의 노래를 영원히 걷어가 버리고 말까? 이 악다구니에도 결국은 끝이라는 게 있을 건데, 그 끝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걸까.
어둑어둑 저수지에 산 그림자가 비쳐들고, 물소리도 잦아졌다. 거북이들도 물 구슬을 뚫고 용궁으로 뛰어든 지 오래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난 ‘어두운 참나무’, 오늘도 귀갓길을 잊고 한 소년이 흙바닥에 앉아 나무 밑동을 열심히 살피고 있다. 다중문화란 결국 생명 존중, 존재 간의 연민을 말할 것이다. 어제와 다른 빛깔과 다른 움직임의 오늘, 저 소년은 아침 등굣길에 그랬던 것처럼 돌아갈 때도 주변의 모든 사물과 생명의 변화에 일일이 반응하고 감탄하다가, 아마도 밤이 늦어야 집으로 돌아가리라. 러시아 숲엔 늑대와 곰이 우글거리는데 겁도 안 나는지…. 40리 밖 학교에선 사범대학을 갓 졸업하고 이 시골 학교에 부임한 새내기 선생님이 안절부절못하며 소년의 무사 귀가를 기도하고 있을 테고, 시커먼 언덕을 한참 오르내려야 나오는 소년의 통나무집에선 오늘도 홀어머니가 아들 녀석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2026-03-2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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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RWA 혁명, 부산의 '인프라 금융'을 깨우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혁신금융 일환으로 주요 금융기관들과 핀테크 기업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대해 조각투자 거래소 설립을 승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자본시장법의 테두리 안에서 디지털 자산이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되는 중요한 변곡점이다. 그동안 뜬구름처럼 여겨졌던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자산이 실질적인 투자 상품으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는 RWA(Real World Asset, 실물 기반 토큰화 자산)가 있다. RWA란 부동산, 미술품, 채권 등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자산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토큰화한 것이다. 자산을 잘게 쪼개 디지털 증권 형태로 발행함으로써 과거에는 기관투자자나 자산가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우량 자산에 일반 개인들도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금융위, 조각투자 거래소 설립 승인
디지털 자산 제도권 금융 편입 전환점
해운·물류 인프라, 블록체인 결합 부산
‘선박 RWA’ 등 새 금융 모델 구현 가능
가덕신공항 등 사업에 이 방식 적용 땐
자금 조달, 사회적 합의 이끌 수 있어
사실 조각투자라는 개념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강남의 빌딩, 유명 작가의 미술품, 심지어 한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초자산을 바탕으로 한 상품들이 출시됐다. 그러나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기초자산의 매력도’와 ‘수익성’의 한계였다.
이제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RWA의 진정한 혁신은 기존에 이미 활발히 거래되던 자산이 아니라, 수익성은 확실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거대 인프라 영역에서 일어나야 한다.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선박, 항공기, 터널, 교량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러한 자산은 운영 기간이 길고 현금 흐름이 안정적이지만, 단위 당 투자 금액이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달해 일반인의 투자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만약 RWA를 통해 이 거대한 자산을 소액 단위로 쪼개어 유통한다면, 금융시장에는 전례 없는 리테일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해양수도인 부산은 이러한 ‘인프라 RWA’의 최적지다. 부산이 가진 독보적인 강점인 해운과 물류 인프라는 RWA 혁신의 가장 강력한 병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박 금융은 대표적인 ‘그들만의 리그’였다.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컨테이너선 한 척을 건조하기 위해선 대형 은행과 정책 금융기관의 복잡한 신용 공여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부산의 선박 금융 노하우와 블록체인 기술이 결합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부산은 이미 해양수산부를 비롯해 한국해양진흥공사(KOBC)와 다수의 해운사가 집결해 있는 동북아 물류의 허브다. 여기에 선박의 소유권이나 용선료 수익권을 토큰화해 유통하는 ‘선박 RWA’ 모델이 더해진다면, 부산은 단순히 배가 드나드는 항구를 넘어 ‘선박의 가치가 거래되는 글로벌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 선박 건조 자산의 일부를 리테일 투자자로부터 조달하고, 투자자들은 선박 운영 수익을 투명하게 배당받는 모델은 부산만이 시도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RWA의 미래다.
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덕신공항 건설과 배후 단지 조성 자금의 일부를 RWA 방식으로 조달할 것을 제안한다. 기존의 국책 사업이 정부 예산이나 대규모 채권에만 의존했다면, 이제는 ‘시민 참여형 디지털 인프라 펀드’를 구축할 때다.
이를테면 신공항의 핵심 수익원인 여객 터미널 면세점 입점 수익권이나 공항 주차장 운영권, 혹은 배후 물류 단지의 창고 부지 등을 자산화하여 토큰으로 발행하는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산 시민들이 매달 적금을 붓듯 자신이 이용할 공항의 지분을 소액으로 소유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이용료와 면세점 매출의 일부를 디지털 지갑을 통해 실시간 배당받는 구조다. 이는 자본 조달을 넘어 신공항에 대한 시민들의 ‘주인 의식’을 고취하고, 국책 사업을 둘러싼 지역 내 갈등을 상생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사회적 합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세 가지 측면에서 효과를 낸다. 첫째, 금융의 민주화다. 국가나 지자체 주도의 우량 인프라 성과를 특정 자본가가 아닌 시민이 공유하게 된다. 둘째, 자산 유동화의 가속이다. SOC 사업에 민간 자금을 원활히 유입해 재정 부담을 줄이고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셋째, 부산의 정체성 강화다. 블록체인 특구 부산이 시민과 기간시설을 공유하는 ‘디지털 금융 허브’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RWA는 단순한 기술적 수단이 아니다. 자산의 소유 구조를 재정의하고 부의 분배 방식을 혁신하는 도구다. 부산의 거대한 항만이, 그리고 새로 지어질 신공항의 활주로가 디지털 토큰을 통해 시민들의 자산으로 연결될 때, 부산은 비로소 명실상부한 글로벌 디지털 금융 도시로 도약할 것이다. 이제 ‘무엇을 쪼갤 것인가’에 대한 답은 명확해졌다. 작고 사소한 자산에서 벗어나 도시의 뼈대를 이루는 거대한 자산에 디지털의 숨결을 불어 넣어야 할 때다.
2026-03-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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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어느덧 개봉 한 달이 훌쩍 지난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노산군으로 강등돼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머지않아 1500만 관객을 돌파하리란 기대도 곳곳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소재의 영화가 오늘날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작품이 인정과 의리라는 오랜 가치를 과연 누가 지켜냈는지 새롭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권을 찬탈한 수양대군의 정치적 야욕, 그리고 단종과 그 곁사람들의 비극적 희생을 다룬 서사물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일 것이다. 그는 1928년 ‘동아일보’에 이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하며 단종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의 핵심이 ‘인정과 의리’에 있다고 말했다.
인정과 의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다. 〈단종애사〉를 필두로 수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는 어떤 역사적 인물이 인정과 의리를 지켰는지, 혹은 누가 그것을 저버렸는지에 주목했다. 권력을 얻기 위해 왕이자 어린 조카인 단종을 죽음으로 내몬 수양대군과 한명회는 신의를 저버린 자들로 재현되었다. 반면, 단종의 복위를 염원하며 목숨을 바쳤던 사육신, 도의가 사라진 세상을 등졌던 생육신은 숭고한 가치를 끝끝내 지켜낸 이들로 널리 칭송받았다. 국어 시간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사육신 성삼문의 절절한 시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왕과 사는 남자’는 이러한 인정과 의리라는 가치를 실천한 주체를 전혀 다른 공간에서 찾는다. 영화는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한 이들을 고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지르는 처절한 비명을 들으며 식음을 전폐하는 어린 왕 단종이 등장한다. 창백한 혈색, 갈 곳 잃은 눈동자에는 소년 왕의 두려움과 절망, 비탄이 뒤섞여 있다. 이윽고 그는 왕권을 잃은 채 궁궐과는 멀리 떨어진 청령포로 내몰린다. 작품은 한양의 권력 다툼 대신 외딴 유배지와 그곳에 깃들어 살아가는 이들을 서사의 전면으로 끌어낸다.
극 중에서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는 광천골 촌장 엄흥도다. 유배된 한양의 고관대작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자식에게 글공부를 가르쳐 입신양명의 꿈을 이루겠다는 지극히 속되고 사사로운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가 맞이한 유배자는 처절한 권력 다툼에서 패배한 어린 소년 이홍위였다. 기대는 한순간 낙엽처럼 부스러졌다. 그렇지만 엄흥도와 광천골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은 그를 위해 정성스러운 밥상을 마련한다. 왕과 무지렁이 백성이 마주 앉은 밥상. 그곳에서 맺어진 친밀한 관계와 오가는 사사로운 이야기로부터 인정과 의리가 새롭게 싹튼다.
영화는 역사의 가장자리로 내몰려 잊힌 세인들의 사사로움에 눈길을 준다. 그리고 이홍위는 그들이 보여주는 인정과 의리로부터 정의롭지 못한 권력과 맞서 싸울 용기를 얻는다. 공허하고 무력했던 눈빛에는 다시금 강인한 의지와 결기가 감돈다. 용기를 얻은 것은 이홍위만이 아니었다. 엄흥도 역시 거대한 권력 앞에 마주 서기를 결단하고 그를 따라나선다.
왕위를 되찾으려는 노력은 무산되고 결국 단종은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엄흥도의 용기는 그치지 않는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경고에도 차가운 강물에 떠내려가는 시신을 건져 올려 장례를 치른다. 그 장면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를 떠올리게 한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는 조국 테베를 배신한 오빠 폴뤼네이케스가 전투에서 사망하자, 배신자의 장례를 금지한 국법을 어기고 그의 시신을 매장하려 했다. 그 일로 안티고네는 감옥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 비극은 국가의 명령과 인간의 당위적 도리 가운데 무엇이 우선하는가를 날카롭게 질문한다. 엄흥도가 취한 비범한 행동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한낱 산골 촌장에 불과했지만, 인간이라면 마땅히 따라야 할 숭고한 신의와 도리를 지키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어리고 쇠약한 단종의 모습은 언뜻 오늘날 젊은 청년들을 떠올리게 한다. 강파르고 불안정한 현실에 내던져진 청년들의 모습 말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를 바꾼 위대한 영웅들의 거대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힘겹고 숨 가쁜 삶을 버텨 내게 하는 소박하고도 친밀한 인정과 의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왕과 사는 남자’가 많은 관객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도 여기 있다. 역사는 마주 앉은 밥상처럼 기록되지 못한 평범한 존재들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이홍위와 엄흥도가 보여준 진정한 용기가 비롯된다.
2026-03-1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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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유가 급등에 관광도시를 다시 묻는다
드디어 봄이 왔다. 농장의 이중 비닐을 걷어도 될 만큼 날씨가 풀리고 봄꽃이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맘때면 늘 기대되는 것이 벚꽃 시즌이다. 하지만 올해 봄은 예년과 조금 다른 느낌이다. 설렘보다는 이동이 먼저 걱정된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부산에서 경북 왜관을 다녀온다. 그렇게 다닌 지도 벌써 10년이 되어 간다. 평소 같으면 일요일 경부 고속도로와 부산·대구 고속도로는 관광버스와 나들이 차량으로 꽤 붐비는 편이다. 그래서 조금만 늦게 출발해도 상당한 정체를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 주말에는 올라가는 길도 내려오는 길도 예상보다 한산했다.
사람의 이동이 기반인 관광 산업
중동전쟁 따른 유가 급등에 민감
운임 인상 등에 따른 영향도 다양
국제·국내 관광 희비 엇갈릴 수도
급변하는 환경 속 관광도시 부산
진지하게 새 전략 고민 시작해야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한 장면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 다른 곳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표가 붙은 한 주유소 앞에 자동차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제서야 왜 도로가 한산했는지 이해가 갔다. 치솟은 기름값 때문이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사람들의 이동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꼭 필요한 외출이 아니라면 이동을 줄이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듯하다.
최근 중동 정세가 심상치 않다. 특히 이란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국제 유가는 빠르게 반응해 왔다. 중동은 세계 원유 공급의 핵심 지역이기 때문에 작은 정치적 충돌이나 군사적 긴장만으로도 국제 유가는 크게 출렁인다. 문제는 유가 상승이 단순한 에너지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와 관광 흐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관광 산업은 사람의 이동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이다. 이동에는 교통비가 따른다. 대표적 교통수단인 항공기 관련 산업에서도 항공유 가격은 가장 중요한 비용 요소가 된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항공유 가격도 오르고 결국 항공 운임 상승으로 이어진다. 여행 비용이 높아지면 관광 수요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유가 상승이 관광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하지 않다. 국제 유가 상승은 장거리 이동 비용을 높여 국제 관광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동시에 환율 상승이라는 변수도 함께 작용한다. 환율이 오르면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는 한국 여행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일 때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는 현상은 여러 차례 나타난 바 있다.
내국인 관광 흐름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가 상승과 항공료 인상은 해외여행 수요를 줄이는 요인이 된다. 이때 일부 여행 수요는 해외 대신 국내 관광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관광 시장에 일시적인 활력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유가 상승이 장기화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교통비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면 여행 자체를 줄이는 소비 위축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유가 상승은 국제 관광과 국내 관광 모두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관광도시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관광객 이동이 줄거나 관광 패턴이 바뀌면 관광도시 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광은 숙박, 음식, 쇼핑, 교통 등 다양한 산업과 연결되어 있는 도시 경제의 중요한 축이기 때문이다.
부산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관광 전략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부산은 외국인 관광객 300만 명을 돌파하며 글로벌 관광도시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중국과 대만 관광객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부산이 국제 관광도시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글로벌 관광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관광객 수 증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부산이 지향하는 도시 비전은 ‘시민이 행복한 도시’, ‘즐거운 도시’, 그리고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이다. 관광 역시 이러한 도시 비전과 함께 발전해야 한다. 관광객이 찾는 도시이면서 동시에 시민이 즐길 수 있는 도시가 될 때 관광도시는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갖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관광 인프라 역시 더욱 세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을 위한 언어 서비스뿐 아니라 할랄 음식, 채식 식단, 종교적 생활환경 등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관광 환경이 필요하다. 단순히 방문하는 도시가 아니라 머무르고 싶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
치솟은 유가는 단순한 에너지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제 관광 흐름과 국내 관광 구조를 동시에 바꾸는 신호일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관광도시는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부산이 시민에게는 행복하고 즐거운 도시가 되고 세계인에게는 매력적인 관광도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관광 환경 속에서 더욱 탄탄한 준비가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부산 관광의 방향을 다시 점검해 볼 때다.
2026-03-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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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과 결단
서울과 부산에 이은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이 논의되고 있다. 먼저 왜 금융중심지 육성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가능한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금융중심지 지정이 국내 금융산업의 지역 간 배분 논쟁으로 흘러가면 자칫 땅따먹기식이 되어 결론이 어떻든 상처만 남을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도시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뉴욕, 런던,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는 물론 베트남, 카자흐스탄 같은 후발 주자들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다음의 세 가지 축을 공통 요소로 지적한다.
첫 번째 축은 금융 법규를 포함한 규제 체계다. 이는 다시 세 가지 요소로 나뉘는데 그 첫째 요소는 금융 거래 규제 법규이다. IT 발달로 거래는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더구나 금융회사 간 경쟁 격화로 그 소요 시간은 점점 더 단축되고 있다. 부담할 리스크는 크게 증가하는 반면 이를 검토할 시간은 부족하게 된다. 규율 제도가 국제적 기준과 차이가 나게 되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점이다. 그래서 후발 금융중심지들은 금융 법규의 국제 정합성을 가장 최우선시하여 영미 법규를 적극적으로 채택할 뿐만 아니라 분쟁 해결을 위한 사법시스템도 과감하게 영미법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두 번째 요소는 금융 감독 방식이다. 국가별로 금융 감독 방식에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감독기관의 개입이 금융회사의 자율에 맡겨야 할 영역까지 확대되거나 개별 거래에 지나치게 깊이 관여하게 되면 경영 자율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책임에 기반한 창의와 혁신도 발휘되기 어렵게 된다. 감독과 검사에 대한 금융회사의 신뢰도 중요한 요소다. 감독 방식과 태도가 국제적 정합성을 벗어날 경우 글로벌 기업에 큰 부담 요인이 되고 결국은 진출 자체를 주저하게 만든다.
셋째 요소는 외환거래 자율화이다. 외환거래가 불편하면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장기적으로 머물지 않는다. 외환거래 자율화는 국제 금융 생태계의 기본 조건에 가깝다. 만일 외환거래 자유화가 국제수지나 국내 외환시장에 야기할 교란이 우려된다면 금융중심지-역외 간 거래와 금융중심지 내 거래는 자율화하되, 국내 다른 지역과의 거래는 차단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두 번째 축은 어떨까. 조세 등 인센티브 제도이다. 법인세율, 금융 종사자의 소득세율은 국제 금융도시 경쟁에서 사실상 가격표 역할을 한다. 현행 우리나라 조세 경쟁력이 국제 금융중심지들과 경쟁하기에는 너무 낮다는 점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비수도권 이전을 이끌기에도 부족한 세제 인센티브로 글로벌 금융회사와 전문 인력을 유치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더 강한 인센티브 패키지가 필요하다.
“그렇게까지 해서 우리에게 남는 게 무엇이냐”는 반론이 따른다. 그러나 두바이는 초기부터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했고,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금융은 두바이 경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5극 3특 정책도 특정 지역을 우대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갖춘 전략적 기능을 어디에, 어떻게 집적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기능이 다른 거점에는 제도와 인센티브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센티브의 지역 간 형평성만 강조하다가는 더 큰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세 번째 축은 정주 여건이다. 이 중 단연 교육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 금융 전문가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집단이다. 자녀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어떤 인센티브도 장기 체류를 끌어내기 어렵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언어 환경이다. 후발 국제 금융중심지들이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 원활하고 편리한 국제·국내 교통인프라,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도 빠뜨려서는 안 될 중요 요소이다.
이들 세 가지 핵심 축이 구현되는 마지막 조건은 국민적 합의와 정치적 리더십이다. 국제 금융은 신뢰의 산업이다. 정책이 일관되고 지속되지 않으면 어떤 금융회사도 장기 투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국내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으로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진정으로 국제 금융중심지 육성을 원한다면 국내외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상의 3대 축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릴 결단을 할 수 있는가. 이것이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을 앞둔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이다.
2026-03-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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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당신의 죽음은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부산일보〉를 통해 부산시의 공영장례가 부실하게 운영되어 이른바 ‘꼼수 장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최소 6시간으로 규정돼 있는 조문 시간을 단축하거나 조문이 공지된 시간에 빈소가 치워지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공영장례는 연고가 없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이들의 존엄한 죽음을 돕는 제도다. 부산시는 2022년부터 공영장례 조례를 시행하여 햇수로 4년을 맞았지만 지난해에도 부실한 운영이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기사를 접하면서 17년간 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에서 활동하며 겪었던 여성들의 죽음이 떠올랐다.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언니, 스스로 삶을 마감한 언니, 성구매자에게 살해된 언니…. 가족과 연락이 오래도록 끊겨 있거나 겨우 연락이 닿아도 시신 수습과 장례를 포기해서 활동가들이 대신 상주가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무연고자인 언니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활동가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천도제를 치러 준 일도 있었다. 정경숙의 〈완월동 여자들〉에는 그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살림’이 천도제를 지냈다는 소식에 완월동의 여성들은 “고맙다. 우리가 죽으면 누가 초상 치러줄까 걱정했는데 이제 안심이 된다”라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고 전한다. 20대 초반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이도 있었다. 멀리서 가족과 연락이 닿아 장례를 치렀지만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른 무연고자의 유골과 함께 봉안했다. 담당 활동가는 매년 그의 기일에 추모를 하러 공공봉안시설을 방문했다.
부산시 공영장례 부실 운영은
죽음에 대한 공적 인식 드러내
사회 활동가로서 접했던 죽음
공동체와의 연결성 되짚게 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까지
외면 않는 사회가 될 수 있길…
완월동에서 나왔음에도 무연고자로 병원 중환자실에서 삶의 마지막 몇 개월을 보내야 했던 내담자 언니의 죽음도 잊을 수 없다. 새벽에 시신을 수습해가라는 병원 측의 연락을 받고 슬픔과 황망함에 어쩔 줄 몰라 울었던 당시의 내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다행히 성당에 다녔던 언니를 위해 신도들이 장례를 치러주고 미사를 올렸으며 가는 길 내내 추모와 애도를 함께 했다. 그때 장례를 치르고 정성스럽게 애도한다는 것이 살아가는 이에게도 크나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공동체의 바깥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은 인권 활동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세상과 공동체 밖으로 소외된 삶의 연속선에 그 죽음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년학자 이기숙은 “죽음은 인간의 경험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며 “함께 애도하는 것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가족과 종교라는 공동체는 죽음 앞에서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오늘날 사회에서 죽음은 더 이상 이러한 사적 공동체만의 몫이 아니다. 1인 가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고령화는 이미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되었다. 실제로 무연고 시신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무연고 시신 처리 현황에 따르면 부산시는 2012년 61건에서 2024년 683건으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서울, 경기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우리는 출생과 양육을 국가 정책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도, 떠남은 여전히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산반빈곤센터 임기헌 활동가는 죽음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공영장례가 자선이 아니라 기본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공영장례 조문단을 운영한 결과 처음에는 자선과 봉사의 마음으로 시작했던 시민들이 ‘존엄한 죽음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영장례는 이러한 시민들의 변화에 호응하는 정책이며, 시민들의 뜻을 제대로 새길 때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헬렌 니어링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 “사랑과 떠남은 삶의 일부이다.” 실제로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삶의 일부로서 죽음을 생각한다. 또한 죽음은 우리가 어떻게 사회나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는지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무연고자의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곧 우리 자신의 마지막을 어떻게 상상하는가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가 어떻게 삶의 존엄을 지켜나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존엄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공영장례는 애도하고 애도받을 권리를 실현하는 좋은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공영장례는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얼마나 공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애도하고 애도받을 권리를 회복하고 공영장례와 같은 좋은 정책을 밑거름삼아 새로운 장례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 시민의 관심과 좋은 정책은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끝없는 여정 속에 있다.
2026-03-0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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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전기가 곧 자본인 시대, 부산의 '에너지 경제학'
우리는 하루를 전기와 함께 시작한다.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켜지고, 밤새 충전된 스마트폰으로 아침을 연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흐르는 전기는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강력한 자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조용한 에너지가 도시의 위상을 바꾸고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지난 1월, 정부는 그동안 지연되었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이행을 공식화하며 신규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건설을 확정했다.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는 동해안 벨트는 이번에도 우리 부울경 인근이다. 지역 사회에서는 또다시 수도권을 위한 ‘전기 공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철저한 안전장치와 제도적 혜택이 전제된다면, 역설적으로 이 상황은 부산에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수도권의 현실을 볼 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하나가 필요로 하는 전력만 무려 15GW, 이는 원전 약 10기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전력 자급률이 60%에 불과한 수도권은 이미 포화 상태다. 송전 과정에서 사라지는 전력 손실 비용만 연간 1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최근 대두되는 ‘수도권 원전 건설론’은 현 전력 공급 체계의 모순이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방증이다. 위험은 지방에 집중되고, 소비는 수도권에 몰리는 이 불균형한 전력 구조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근 정부와 국회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시행하며 “전기는 생산되는 지역에서 쓰이게 해야 한다”는 ‘지산지소(地産地消)’의 대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라 ‘송전 거리 비례 요금제(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요금 체계 변화가 아니다. 바야흐로 자본과 기술, 인재가 ‘싼 전기’를 찾아 이동하는 ‘에너지 경제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부산의 경쟁력은 명확하다. 단순히 전기가 남는 도시가 아니라,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전력 공급망을 갖췄다는 점이다. 지난해 지정된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특화지역 내에서는 ESS(에너지저장장치)를 활용한 유연한 전력 운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에 필수적인 UPS(무정전 전원장치)를 대체할 ‘ESS 기반 구독형 서비스’는 기업의 초기 투자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 자본 효율성을 중시하는 AI·플랫폼 기업에 이는 매우 강력한 유인책이다.
변화는 이미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현재까지 부산에 유치된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만 12조 7000억 원에 달하며, 마이크로소프트 등 15개사가 부산을 선택했다. 여기에 대한민국 해저 광케이블의 90%가 연결되는 통신 인프라는 부산을 단순한 항구 도시에서 데이터가 흐르는 ‘글로벌 디지털 물류 허브’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풍부한 전력’과 ‘초고속 통신망’, 그리고 원전 인접 지역의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더 큰 가치는 ‘전기의 양’이 아니라 ‘전기의 질’이다.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이제 24시간 끊김이 없는 ‘무탄소 에너지(CFE)’ 사용을 기업의 필수 조건으로 요구한다. 원전이라는 확실한 무탄소 기저 전원과 수소 에너지 인프라를 동시에 갖춘 부산은 최적의 대안이다. 깨끗하고 저렴한 에너지가 있는 곳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서고, 그 위에 AI·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산업이 뿌리내린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지역 청년들이 머물며 성장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이는 결코 부산만을 위한 주장이 아니다. 수도권 과밀에 따른 국가적 에너지 비효율을 해소하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전기가 있는 곳으로 산업이 이동하는 것은 정책 선택이 아니라 물리적 법칙이자 경제적 순리다. 이 순리를 따를 때, 부산은 수도권의 ‘대안’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는 새로운 성장 축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산업용을 넘어 주택용까지 포함하는 전면적인 차등요금제 논의에 속도를 내고, ‘지산지소’ 원칙 이행에 대한 흔들림 없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와 함께 거대한 에너지·산업 시스템을 운용할 혁신 인재 양성도 필수적이다. 이미 지역 대학들은 반도체·에너지 융합 전공 등을 운영하며,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실무형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도시는 늘 선택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전기가 산업 경쟁력의 척도가 된 지금, 부산은 다른 도시들이 갖기 힘든 최고의 패를 손에 쥐고 있다. 수도권의 전력난이 심화할수록 부산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분명해진다. 에너지의 흐름이 바뀌는 지금, 전력 다소비 기업들을 부산으로 이끄는 일은 필연적 선택이자 부산의 재도약을 위한 전략적 승부수다.
2026-03-0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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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픽셀 라이프' 시대, 우리에겐 '버디'가 필요해
글로벌 IT 기업인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에는 ‘버디’라는 온보딩(조직 안착) 제도가 있다. 사수와 부사수라는 수직적 위계를 넘어, 먼저 입사해 조직 문화를 익힌 동료가 신입 사원의 짝꿍이 되어 조직 생활의 꿀팁을 다정하게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5년 전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적응을 마쳤을 무렵, 나 역시 나보다 10년 차 이상인 실무자의 버디가 되어드린 적이 있다. 나이와 연차를 불문하고 ‘먼저 가본 길’에 대한 사소한 경험을 나누는 행위가 긴장을 얼마나 따뜻하게 녹여내는지, 그분께 받은 정성 어린 감사 편지로 체감했다. 일하며 처음 받아본 긴 편지는 업무를 돕는 역할을 넘어, 누군가에게 실질적 힘이 되어 주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었다.
최근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픽셀 라이프’다. 김난도 교수팀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6〉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거대한 메가 트렌드에 몸을 싣기보다 개개인이 독립된 픽셀처럼 파편화돼 자신만의 마이크로 트렌드를 짧은 주기로 소비하고 빠르게 전환한다. 이러한 흐름은 일터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특히 재택근무는 조직이라는 거대한 화면에서 하나의 ‘픽셀’로 분리되어 나온 상태에 가깝다.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울타리 안의 구성원이 아니라, 각자의 독립된 공간에서 자신을 스스로 경영해야 하는 개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업무 능률을 높여줄 도구를 찾거나 온라인에서 동료를 찾는 행위는, 이 파편화한 일상에서 나만의 단단한 업무 환경을 구축하려는 노력이다.
개개인은 독립 픽셀 같이 파편화
재택근무는 이 같은 현상의 정점
수직적 위계 아닌 짝꿍의 중요성
훈계보다 넘어져 본 경험 나누면
치열한 삶에서도 연대·성장 가능
그런 짝꿍 같은 '버디'가 내 목표
문제는 이처럼 ‘분리된 픽셀’로 지내는 일상이 생각보다 날카로운 부작용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재택 2년 반 만에 번아웃을 겪으며 휴직을 선택해야 했다. 마냥 편해 보이기만 하는 재택근무였지만, 홀로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과 정서적 소통의 부재는 나를 서서히 갉아먹었다. 휴직 기간 내내 마음 한구석에는 ‘이대로 뒤처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자리 잡았다. 그때 읽은 구본형 저자의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는 서늘한 각성을 주었다. 진정한 위기는 직책의 상실이 아니라, 스스로의 방향을 잃은 채 고립되는 데 있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내게 간절했던 것은 지시를 내리는 권위적인 멘토가 아니라, 파편화한 일상 속에서 삶의 속도를 조절해 줄 ‘버디’였다.
복직과 함께 누군가 나의 궤도를 수정해 주길 기다리기보다, 스스로가 버디를 찾아 나설 환경을 직접 구축하기로 결심했다. 회사라는 시스템이 챙겨주지 못하는 일상의 리듬을 스스로 관리하되, 그 과정을 혼자가 아닌 ‘느슨한 연대’ 속에서 해결하려고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시도가 비단 나만의 고군분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26년 현재, 우리 사회는 이른바 ‘삶잘러(삶을 잘 살아내는 사람)’를 추구하는 활기로 가득하다. 모니터 앞에서 고립되는 대신 SMCC(서울 모닝 커피 클럽) 같은 커뮤니티를 통해 느슨하게 연결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러닝을 하며, 때로는 아침 커피 한 잔과 함께 DJ 음악에 맞춰 파티를 즐긴다. 누군가는 이를 유난스러운 유행이라 볼지 모르나, 사실 우리는 픽셀처럼 쪼개진 일상 속에서 나처럼 애쓰는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며 위로받고 싶을 뿐이다. 정답을 훈계하는 스승보다, 먼저 넘어져 본 경험을 담담하게 나눠줄 버디를 서로에게서 찾는 셈이다. 픽셀과 픽셀이 만나 더 선명한 화질을 이루듯,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개인들이 그렇게 연대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 6년 차가 된 지금, 과거와는 전혀 다른 리듬을 갖게 되었다. 점심시간이면 SNS를 통해 재택러들을 위한 ‘일잘러 꿀팁’을 공유하고, 영어 챌린지에 참여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온보딩한다. 이는 단순히 N잡러가 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고립된 환경에서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한 치열한 과정이다.
내가 유버디라는 필명으로 〈부산일보〉 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30 세대가 픽셀처럼 분절된 삶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감정의 파고를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기성세대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일터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진심을 전하고, 동료 세대에게는 다정한 지지자가 되고자 한다. 자기만의 고독한 방에서 새 도전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글이 하루를 버티게 할 작은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버디의 진정한 역할은 성공 신화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 본 길의 걸림돌을 살짝 치워주는 다정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삶의 리듬을 되찾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다면, 오늘 버디로서의 할 일 하나는 끝냈다고 믿는다. 이제 당신의 다정한 버디로서, 차가운 모니터 속 뜨거운 세계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2026-02-25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