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선도하는 공유 미술관’으로…부산시립미술관 올가을 재개관
부산시립미술관이 약 2년간의 리노베이션을 끝내고 오는 9월 재개관을 예고하며 새해 운영 계획을 8일 발표했다. 재개관 특별전 ‘퓨쳐 뮤지올로지’(국제전), ‘사회와 미술: 해방에서 한국전쟁까지’(국내전) 등 총 5개의 전시를 통해 미술관의 지향점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1998년 개관한 미술관은 노후화된 시설을 개선하고 21세기형 미술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2024년 12월 리노베이션을 시작했다. 현재 공정률은 70%이고, 6월 완공이 목표이다. 이후 8월 초 사무국을 옮긴 뒤 9월께 재개관한다는 계획이다.눈에 띄는 가장 큰 변화는 정문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벡스코 쪽 대로와 마주보는 쪽에 정문이 만들어져 출입구를 개선한다. 층층이 조각조각난 전시장은 층별로 1개 혹은 2개로 뻥 뚫리게 된다. 2층 공간에 들어설 100평 규모의 상설전시장은 소장품 전시 외에도 부산지역 미술사를 연구해서 아카이빙 식으로 보여주는 상설 프로젝트 공간으로 운영하게 된다.수장고는 조금 더 확장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부산시가 구상 중인 통합수장고가 하루빨리 건립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1층 카페, 문화 편집숍 등 편의 시설을 확대해 관람객 서비스를 높일 예정이다.재개관 전시는 총 5개를 준비 중이다. 국내외 10여 개 미술관 협의체와 공동 기획한 ‘퓨처 뮤지올로지’, 특별 국내전 ‘사회와 미술: 해방에서 한국전쟁까지’, 미술관 역사를 조망하는 ‘다시 짓는 미술관’, 어린이를 위한 전시 ‘안전기지’,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5’ 등이다. 재개관에 앞서 4월에는 외부 기관과 협업한 ‘루프 랩 부산’이 열린다. 이들 전시를 통해 시립미술관은 사회·역사·기술을 연결하는 공공의 장으로서 새로운 미술관 역할을 제시할 예정이다.재개관 첫 국제전인 ‘퓨쳐 뮤지올로지’(가제)는 작품 수집과 전시에 머물렀던 기존 미술관 역할을 넘어 공공의 장으로 확장된 미술관의 변화를 조명하고, 재개관 이후 미술관이 나아갈 방향성을 모색한다. 특히 일부 해외 미술관 전시에는 시립미술관이 지역 작가를 연계, 추천해 해외 미술관과 작가가 직접 소통하는 계기도 만들어 가고자 한다.재개관 특별 국내전 ‘사회와 미술: 해방에서 한국전쟁까지’(가제)는 1945년 해방과 한국전쟁 전후의 사회·문화·정치적 현실을 미술의 시선으로 조명한다. 해방 직후 적극적이고 힘찼던 당시의 시대정신과 서사를 살펴보고, 그 이후 급격한 변화 속에서 빈 채로 남겨진 역사의 일부를 동시대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재구성해 역사 기록으로서 새롭게 바라본다.‘다시 짓는 미술관’(가제)은 개관부터 재개관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기관·건축 기록을 바탕으로 미술관 공간과 의미를 조명하는 소장 자원 특별전이다. ‘안전기지’(가제)는 미술, 동화, 건축, 과학 등 다양한 장르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한편의 동화 같은 전시로 마련된다. 아울러 ‘이우환 공간’은 신작 1점을 교체하고, 추가로 8~10점의 드로잉이 들어올 예정이다.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5’는 지난해 서울 전시에 이어 올해는 국외 전시로 확장될 예정이다.소장품 수집·연구 분야로는 재개관 이후 미술관의 지향점인 ‘예술·기술·자연의 공존’을 상징하는 대표 미디어 조형물을 선보인다. 히토 슈타이얼, 아이 웨이웨이, 류이치 사카모토 등 3인의 공동 작품이 될 이 조형물은 시립미술관 야외 조각공원에 설치될 예정이다. 서진석 시립미술관장이 2023년 10월 부임 직후부터 공을 들인 미디어 조형물 프로젝트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에 대한 제안이 특수 설계된 미디어 구조물에 구현될 예정이다.교육 분야에선 새로운 전시와 공간 변화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관람 경험을 심화하는 방향으로 운영한다. 어린이 갤러리 연계 교육프로그램 등 미술관 공간을 적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조성할 예정이다. 지난해에 이어 도슨트 양성 교육프로그램 심화 과정을 운영한다.관람객 소통 강화는 시민 참여형 문화 행사와 이벤트를 통해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열린 플랫폼의 역할을 강화하게 된다.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장은 “28년의 역사를 가진 부산시립미술관은 재개관 이후 미래를 선도하는 새로운 공공과 공유의 미술관으로 재도약할 것”이라며 “문화사의 통시성, 문화 장르와 위계의 통섭성, 아시아의 주체성을 기반으로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미술관이 되겠다”고 전했다.
‘하트맨’서 코미디 연기 권상우 “자연스러운 웃음 나오길”
배우 권상우가 영화 ‘하트맨’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코미디 세계를 확장한다. ‘탐정: 더 비기닝’과 ‘탐정: 리턴즈’, ‘히트맨’ 1·2편으로 이어진 코미디 필모그래피의 연장선이다. 이번에는 문채원과 호흡을 맞춰 새해 극장가에 유쾌한 웃음을 전한다. 권상우는 지난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열린 영화 ‘하트맨’ 언론시사회와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현장에는 연출을 맡은 최원섭 감독과 배우 권상우, 문채원 등이 참석했다. 이 영화는 돌아온 남자 승민이 다시 만난 첫사랑 보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그녀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기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다. ‘히트맨’ 시리즈로 흥행 호흡을 맞췄던 최원섭 감독과 권상우가 다시 의기투합했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작품에서 권상우가 승민을, 문채원이 보나를 연기했다. 권상우는 이번 작품에서 코미디 연기의 결을 다시 한 번 조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웃기려고 의도적으로 힘을 주기보다는, 상황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 웃음이 나오길 바랐다”며 “그 과정에서 승민이라는 인물이 가진 순수함과 솔직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이 편안하게 웃고, 보고 나서 마음이 조금 따뜻해지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음악 요소도 권상우가 꼽은 관전 포인트다. 그는 “극 중 첫 번째로 부르는 노래 ‘러버’는 데뷔 전 노래방에서 신날 때 부르던 곡이었다”며 “감독에게 직접 추천했고, 요즘도 그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승민의 딸로 등장하는 아역 배우 김서헌에 대해서는 “아이답게 자연스러운 연기가 인상 깊었다”며 “현장에서 호흡도 편안했고, 연기하는 동안 많이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채원은 첫사랑 보나 역을 맡아 극의 온기를 더한다. 그는 “첫사랑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던 것 같다”며 “촬영 내내 긍정적인 마음으로 임했고, 현장에서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권상우에 대해서도 “현장을 유쾌하고 리더십 있게 이끄는 모습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메가폰을 잡은 최원섭 감독은 연출의 방향을 설명했다. 감독은 “‘히트맨’이 웃음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하트맨’은 코미디이면서도 드라마의 흐름이 강한 영화”라며 “‘오버’보다는 감정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오는 방식을 택했다”고 했다. 원작인 아르헨티나 영화 ‘노키즈’와의 차별점에 대해서는 “첫사랑의 감정을 더 살리고 싶었다”며 “음악이 중요한 요소로, 음악 영화라고 해도 될 만큼 노래가 많이 등장한다”고 덧붙였다. 최 감독은 “‘하트맨’은 밝고 사랑스러운 영화”라며 “이 작품의 정서가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83개 국제기구에서 한국인 고위직 89명
국제기구 진출 수준은 한 국가의 위상이나 영향력을 반영한다. 국제기구 및 국제 이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한국인의 국제기구 진출은 1999년 이래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밝힌 ‘우리 국민의 국제기구 진출 현황’에 따르면 2024년까지 83개 기구에 135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임명직 및 선출직을 포함해 국장급 이상 사무국 직원, 이사회·위원회 의장, 이사·위원, 국제재판소 재판관 등 고위직(D급 이상)은 89명이다. 우리 정부는 유엔 분담률 9위 국가(2.349%)에 맞는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국제기구에 대한 인력 진출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외교부는 1996년 국제기구인사센터를 설립하고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 제도 시행, 유엔자원봉사단(UNV) 파견, 국제기구 진출 설명회 등을 열고 있다. 관련 정보는 국제기구채용정보 홈페이지(unrecruit.mofa.go.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부산글로벌도시재단은 지난해 3~4월 국제기구 진출을 희망하는 부산 청년을 대상으로 국제(금융)기구 진출 아카데미를 열었다. 부산시도 지난해 7월 부산시청에서 국제기구 진출 설명회를 개최했다.
"잠깐을 살아도 하고 싶은 일 해야 하지 않을까요"
2006년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WHO(세계보건기구)에 단기 계약직으로 채용된 한국인 여성이 있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박문주 씨다. 거의 모든 국제기구의 문을 두드려 100번도 넘게 떨어진 끝에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박 씨는 WHO 사무총장실 비서국장 대행이자 독립자문위원회를 책임지고 있는 핵심 인사로 성장했다. 그는 WHO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의 멘토 역할까지 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지난해 연말 가족과 함께 휴가차 고향 부산을 찾은 박 씨를 만났다.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 사태에 대한 대비는 잘되어가는지, 요즘 유엔의 분위기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 궁금한 점이 많았다. 그는 WHO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부터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박문주 씨는 7공주집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이 유별난 가족의 사연은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행복이 가득한 집’에 소개되기도 했다. 92학번으로 들어간 부산대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이탈리아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하필 이탈리아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전거 도둑’ 같은 이탈리아 영화를 좋아하니 이탈리아에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았단다. 옷 가게를 하던 아버지에게 이탈리아에 가서 패션 공부를 하겠다고 내건 명분도 주효했다. 하지만 패션은 적성에 전혀 맞지 않았고, 친구들 따라 지원해 혼자 합격한 곳이 명문 보코니 대학 MBA 과정이었다. 학위를 마친 뒤에는 유명 종합병원 마케팅실장으로 스카우트되었다. 직장에서는 인정받았고,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서 술 마시고 놀았다. 이만하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던 시절이었다. 그 생활도 5년이 지나자,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국제 NGO(비정부기구)에 지원했다.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본 NGO는 다 도전했지만 한결같이 문전박대였다. 나이가 많아서, ‘과한 스펙(Over-Spec)’이어서…. 떨어뜨리는 이유도 참 가지가지였다. 시간을 두고 방법을 모색하자며 2004년 영국의 명문 요크대학 보건경제학 석사 과정에 들어갔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논문을 쓰기 위해 WHO의 인턴십 과정에 지원해 운 좋게 합격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인턴을 하며 내부 세미나를 부지런히 쫓아다녔고, 틈날 때마다 조언을 구하면서 여기서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2006년 2월 드디어 풍토·열대병 관리과에 전문 직원으로 채용됐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돌이켜 보니 국제기구마다 WHO는 협력 사업이 많은 A 학교, ILO(국제노동기구)는 또 B 학교를 나오면 유리하다는 식으로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있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면 유학할 학교와 지도교수를 정할 때부터 이 같은 사항을 미리 고려하면 좋겠다. 박 씨는 그동안 WHO의 공중보건 위기 대응과 긴급 상황 처리 등을 감독·평가하는 독립자문위원회를 책임져 왔다. 얼마 전부터는 WHO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을 가까이 보좌하는 사무총장실 비서국장 대행까지 겸임하고 있다. 게브레예수스 총장은 2017년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최초로 제8대 WHO 수장으로 선출됐고, 2022년 연임되어 2027년까지 WHO를 이끈다. 박 씨는 코로나19 대응 데이터 수집·분석, 전략 지침 발간 등 팬데믹 대응과 관련된 중요한 업무에도 참여했다. 그는 “코로나를 담당하는 부서가 별도로 있었지만 총장실에서는 전체 정책 결정과 미디어 대응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사무총장실에서는 매일 사건이 터졌다”라고 말했다. 게브레예수스 총장은 한국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우리는 문주 씨가 자랑스럽습니다. 문주 씨 덕에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할 줄 압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박 씨에 대한 신뢰와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씨는 미래에 다가올지도 모를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 WHO 회원국들이 2021년 결의한 ‘팬데믹 조약’이 아직도 표류하는 데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마감 시한인 올 5월을 넘겨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드러난 백신과 치료제의 불평등한 접근, 정보 공유 부족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조약조차 제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WHO의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WHO는 사실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WHO 탈퇴 절차를 시작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분담금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WHO 예산의 20%가까이 내는 최대 재정 후원자였다. WHO는 재정적 위기에 따라 본부가 있는 제네바에서만 600명을 해고하고, 모든 신규 채용까지 취소한 상태다. 박 씨는 WHO가 어려워질수록 제6대 이종욱 사무총장이 생각난다고 했다. 이 총장은 한국인 최초로 선출직 유엔 전문기구 수장에 올랐지만, 회의 중에 쓰러져 61세로 별세하고 말았다. 박 씨는 이 총장이 WHO의 개혁을 위해 홀로 분투하다 돌아가셨다고 기억했다. 그는 이 총장을 오래 보지는 못했지만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 씨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이 총장의 장례식을 앞두고 WHO 직원들에게 레이코 씨가 보낸 단체 메일이 계기였다. “부조는 받지 않습니다. 꼭 내고 싶은 분은 제가 일하는 NGO에 기부해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정신이 하나도 없을 때 그런 원칙을 먼저 내세우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박 씨는 시키는 대로 NGO에 기부하고, 애도의 뜻을 표하는 이메일도 보냈다. 몇 달 뒤에 레이코 씨가 제네바에 왔다가 그를 만난 뒤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게 된 것이었다. 팔순이 넘는 나이의 레이코 씨는 지금도 페루의 가난한 마을에서 현지 여성들과 함께 뜨개질을 하며 알파카 울을 팔아 자립을 돕는 활동을 한다. 박 씨는 오는 5월에 열리는 WHO 총회장에서 이 사무총장 추모 20주년 행사를 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세월이 흐르며 거의 잊힌 한국인 이 총장을 기억하고 챙길 사람은 자신밖에 없을 것 같아서다. 페루에 있는 레이코 씨를 제네바로 초청했던 10주년 행사도 그가 먼저 제안했다. 매년 5월 제네바에서는 WHO 194개 회원국 대표단(대개 보건부 장관급)이 참석하는 세계보건총회가 열린다. 덕분에 박씨는 재직 기간 한국의 보건복지부 장관은 거의 다 만나봤다. 그가 보기에 안타깝게도 한국은 돈을 쓰면서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나라다. 반면에 선진국도 아니고 돈도 안 쓰면서 WHO에 와서 자국 이익에 맞춰달라고 요구하는 나라들이 있다. 이들 국가는 관심도 많고 “어떻게 저런 것까지 알지?”라고 놀랄 정도로 지식도 많아 온갖 잔소리와 훈계를 늘어놓는다. 말이 많으면 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게 세상 이치다. 한국은 세계 9위 규모의 WHO 의무 분담금을 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국제기구에 관심이 크지 않아, 국제 무대에서 위상이 떨어지는 편이다. 박 씨는 "한국 정부는 국제기구에 당연히 해야 할 요구도 하지 않는다. 한국에 유리하게 해달라든지, 우리 자리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왜 하지 않느냐”라고 답답해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국제기구에 들어오는 데 전부를 걸었지만, 막상 들어와 지금까지 살아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라고 과거를 돌아봤다. 이어서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다자 협력 기구 UN이 과연 필요한지, 다국적 협력이 유용한지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라고 털어놓았다. 박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을 살아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기가 믿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래서 국제기구 후배들이 그를 많이 믿고 의지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국제기구에서는 개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자국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밀어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앞으로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쓰겠습니다"
“글을 쓰다가 힘든 순간이 오면, 오늘을 기억하며 지치지 않고 쓰겠습니다.” 2026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8일 오후 4시 부산일보사 10층 대강당에서 당선자와 가족, 지인, 신춘문예 심사위원, 지역 문인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단편소설 당선자 윤현준 씨는 이날 “많은 분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며 “그런 만큼 앞으로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 당선자 박은우 씨는 “종종 시가 지닌 힘에 대해 생각했다. 시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 같다가도 의외의 순간마다 마음을 일으켜 주고는 했다”며 시의 힘을 강조했다. 시조 당선자 최애경 씨는 “오래 알던 분을 만났을 때 아직도 시집을 들고 있느냐는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내일부터는 그분을 기다리게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동문학(동시) 당선자 류한월 씨는 “아이들이 겪는 슬픔과 기쁨이 어른들의 그것보다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안다”며 “앞으로 상처 입은 마음을 호호 불어주는 입김 같은 동시, 차가운 손을 가만히 덮어주는 장갑 같은 동시를 쓰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희곡·시나리오 당선자 김재은 씨는 “앞으로도 억지로 짜내는 글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평론(영화 평론) 당선자 김형식 씨는 “다른 글도 마찬가지겠지만 평론을 쓰다 보면 제일 힘든 순간이 외로울 때 같다. 가끔 이 글을 누가 읽기는 할까,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며 “그런 면에서 이번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은 나에게 커다란 응답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당선자를 위한 격려와 당부의 말도 이어졌다. 6개 부문 12명의 심사위원을 대표해 조갑상 작가가 나섰다. 조 작가는 “당선자 여러분은 다시 ‘문학의 시대’라는 표현이 실감 날 정도로 올해 크게 늘어난 응모작들 중 오직 단 한 편 당선이라는 영광을 안았다”며 “병오년 기운을 받아 말처럼 힘차게 문학의 들판을 달려 가기 바란다”라고 격려했다. 축사에 나선 손영신 부산일보 사장은 “치열한 고뇌의 시간을 견디며 당선의 영예를 안으신 수상자 여러분께 뜨거운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며 “세상이 아무리 빠르고 차갑게 변해도, 종이 위에 눌러쓴 문장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2026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투고된 작품들을 보며, 우리 문학의 미래가 여전히 푸르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부산일보는 여러분의 문학적 여정을 끝까지 응원하는 가장 든든한 독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는 조갑상, 정영선(부산소설가협회 이사장), 김경연, 서정아, 신정민, 김경복, 정희경(부산시조시인협회 회장), 박선미, 안미란, 김지용, 김문홍, 하상일 심사위원을 비롯해 부산광역시문인협회 박혜숙 이사장, 부산작가회의 김요아킴 회장, 부산시인협회 황인국 이사장, 부산아동문학인협회 안덕자 회장 등 부산을 대표하는 문인단체 대표들이 모두 참석했다. 부산의 중견 작가와 신인 작가들도 대거 참석해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등단하는 당선자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이 주의 새 책] 구운몽, 그 꿈에 대한 유폐의 시 外
■구운몽, 그 꿈에 대한 유폐의 시 부산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시조로 등단한 후 36년 만에 출간되는 첫 시조집. 이 한 권의 시조집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그의 시적 세계가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며 그를 지탱해온 사유의 흔적이다. 비록 세월의 마모가 스며 있지만, 그 속에 깃든 시적 감각은 여전히 살아 있다. 조용한 사유의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정성욱 지음/이정서재/100쪽/1만 2000원. ■처음 만나는 미노아 크레타 한국에 미노아 문명을 다층적으로 조망하는 첫 번째 안내서. 유럽 문명의 원류이자 미노스 신화의 무대, 나아가 페미니스트와 히피 들의 이상향으로 재현되어 온 역사까지 미노아 문명에 덧씌워진 상상과 해석의 궤적을 풀어낸다. 가장 생생하고 흥미로우면서도 균형 잡힌 시선으로 미노아 문명의 진면모를 만난다. 김신명숙 지음/돌고래/360쪽/3만 3000원. ■집을 나선 여자들 마흔에 다시 만난 그림책으로 성인 그림책 읽기의 장을 개척한 작가의 세 번째 에세이. 경력 단절 여성으로 첫걸음을 내딛고, 그림책 활동가이자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꾸준히 걸어온 여정을 담았다. 내 이름을 새롭게 찾는 길에서 고비마다 얻은 깨달음과 기쁨의 순간들을 함께 읽고 싶은 그림책과 엮어 이야기한다. 최정은 지음/옐로브릭/184쪽/1만 7000원. ■리더는 AI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AI에게 ‘질문’하는 것은 검색창 정도로만 쓰는, 낮은 수준의 사용법에 불과하다. 특히 CEO나 임원 등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질문’ 대신에 AI에게 ‘지시’하고 ‘대화’해야 한다. 지은이가 고안한 ‘AI 큐레이션’ ‘AI 스토밍’ 등 증폭된 AI 사용법을 통해 훨씬 빨리, 가장 효율적으로 AI를 학습할 수 있게 돕는다. 김희연 지음/북피음/308쪽/2만 3000원. ■별자리 신화 백과 별자리에 얽힌 고전 신화를 안내하는 백과사전.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베고 안드로메다를 구한 이야기는 페르세우스자리, 안드로메다자리, 그녀 부모인 케페우스자리와 카시오페이아자리와 이어진다. 별자리 신화는 하늘과 인간, 자연과 신의 관계를 설명하려는 인류 최초 인문학적 사유의 산물이었다. 아네트 키제케 지음·이영아 옮김/지와사랑/280쪽/2만 9000원. ■페미니즘, 안녕들 하십니까 대학은 페미니즘 지식 생산의 터전이자 연대의 장소인 동시에 여성혐오적인 여론이 분출하고 가부장적 질서가 온존하는 공간이다. 대학을 바꾸는 일이 곧 사회를 변혁하는 길과 연결되며, 지식 생산의 중심인 대학은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제도이자 공동체임을 페미니즘 역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추지현 외 9명 지음/창비/184쪽/1만 6000원.
[잠깐 읽기] 한국 인구 소멸이 페미니즘 탓?
자녀 출생 때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은 출생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인공지능(AI) 시대에도 현재 규모의 인구를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할까? 미국 텍사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두 저자는 신간 <인구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에서 전 세계적 인구 감소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실증 데이터와 경제 이론을 통해 진실과 오해를 가려내는 이 책은 인구 감소가 반드시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2013년 스모그 사태를 겪었던 중국의 인구는 이후 10년간 5000만 명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미세먼지 농도는 절반으로 감소했다. 기술 발전 덕분에 한 사람이 배출하는 연간 이산화탄소의 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인구 밀도와 공기 오염 정도는 큰 상관 관계가 없다. 두 저자는 인구가 많으면 번영하는 이유에 대해 아이디어 창출과 고정 비용이라는 두 가지 통찰을 제시한다. 인구가 늘면 장기적으로 더 많은 진보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례도 등장한다. 일각에서는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이 퍼지면서 출생률이 떨어졌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축에 드는 한국의 출생률은 오히려 성 차별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한국은 결코 페미니즘 천국이 아니고,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중에서 가장 크다. 그리고 여러 면에서 한국은 여전히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사회라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딘 스피어스·마이클 제루소 지음/노승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404쪽/2만 2000원.
[잠깐 읽기] 일상에 숨어 있는 거장의 대작 찾기
오랜 기간 외국 여행은 유적, 박물관, 미술관, 랜드마크 방문으로 채워졌다. 직접 그걸 봤다는 경험담은 외국 여행이 쉽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한국 내 일상의 공간, 즉 거리나 공원, 백화점에 거장의 대작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굳이 외국까지 가서 보지 않아도 거장의 작품을 국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걷다가 예술>은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지낸 저자가 걷다가 만나는 명작을 소개한 책이다. 우고 론디노네, 리처드 로저스, 안도 다다오, 이우환, 구정아, 데미안 허스트 등 현대미술의 흐름을 뒤흔든 예술가들이자 비엔날레급 작가가 줄줄이 등장한다. 너무 자주 봤기에 마치 일상의 풍경처럼 생각했던 조형물이 세계적 거장의 작품들이다. 서울 흥국생명 빌딩 앞 높이 22m에 달하는 ‘망치질하는 거인’은 미국 출신 조너선 프로프스키의 작품이며, 프레스센터 앞 네 개의 철판과 돌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이우환의 작품이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에는 레어 빌라리얼의 미디어아트가 세 시간 동안 빛의 축제를 펼친다. 이 외에도 지하철 근처 근린공원, 도심 햄버거 가게와 오피스텔 앞에 내로라하는 거장의 예술 작품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낯익은 장소에 ‘이렇게 대단한 작품이 있었나’라는 감탄이 나오며 ‘예술은 나의 일상에 있구나’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신문 칼럼으로 시작했다가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경주, 부산, 강릉 등 지방 이야기까지 추가했다. 작품이 위치한 장소부터 감상법, 뒷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이선아 지음/작가정신/168쪽/1만 5000원.
베네수엘라 때린 트럼프는 어떻게 백악관을 탈환했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새해 벽두에 감행한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사임시킨 전설적인 대기자 밥 우드워드가 이 예측 불가한 ‘트럼프주의’의 기원을 파헤쳤다. 르포 스타일의 논픽션인 저서 ‘전쟁’(War)을 통해서다. 저자는 1989년 뉴욕의 한 디너 파티에서 42세의 젊은 트럼프를 처음 만났고, 우연찮게 인터뷰까지 했다. 그때의 트럼프는 오로지 부동산 거래와 돈 버는 일, 그리고 유명인으로서의 지위에만 관심이 있었다. 에피소드 한 토막. 트럼프는 부동산 위반 고지서를 받으면 당국자들에게 “엿이나 먹으라고 말했다”면서 과태료 지불을 거부하는 자신의 전략을 소개했다. “만약 당신이 쉽게 굴복하는 사람이라고 알게 되면 그들은 당신을 노릴 겁니다” 이 책은 2024년 대선을 앞두고 급가속하는 미국 정치의 격렬한 권력 투쟁을 그렸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 패배 이후에도 실질적으로 공화당을 지배하면서 ‘그림자 대통령’으로 행세했다. 그렇지만 백악관을 탈환하는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예상 외로 참패했다. 반트럼프 정서의 반영이었다. 트럼프는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세 번째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공화당은 트럼프를 외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3년 5월 ‘변호사 비용 장부 조작’ 사건 피의자인 트럼프는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범죄 유죄 판결을 받는다. 그때부터 반전이 시작된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치 조작이라고 주장했고, 그의 추종 세력들은 유죄 판결 하루 만에 트럼프의 후원 계좌에 50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다른 정치인에게는 치명적이어야 할 상황이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는 결속의 단초가 됐다. 트럼프는 정치적 부활의 모멘텀을 잡았고, 잇따라 행운이 찾아왔다. 2024년 6월 27일 미 전역에 방송된 대선 토론에서 바이든은 노령으로 인한 쇠퇴를 충격적으로 보여줬다. 곧이어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 유세 현장에서 트럼프를 겨냥한 총격 사건이 일어났고, 그때 트럼프의 제스처는 강렬하게 각인됐다.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를 해리스 부통령으로 교체하고 반격에 나섰지만 이번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트럼프에게 도움을 줬다. 유권자들은 해외에서의 전쟁에 미국이 지나치게 관여한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국 트럼프는 백악관 탈환에 성공한다. 저자는 트럼프의 대통령직에 관한 세 권의 책을 쓰고 8시간 넘게 인터뷰(저자는 첫 만남 이후 30년 만인 2019년 다시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인터뷰했다)한 결과, 그가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으면 무엇이든 말하고 행동할 인물임이 명백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결론 내린다. “트럼프는 결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국가를 이끌 자격도 없는 인물이다. 명백히 범죄를 저지른 닉슨 대통령보다 훨씬 나빴다. 미국 역사상 가장 무모하고 충동적인 대통령이다” 하지만 어쩌랴. 트럼프는 다시 대통령이 됐고, 하나둘씩 나타나는 현실은 저자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 책은 트럼프의 백악관 탈환 전쟁 외에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팔 전쟁과 백악관의 은밀한 관계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밥 우드워드 지음/김정수 옮김/캐피털북스/580쪽/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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