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장기 표류 북항, 다시 쏠린 시선
새 정부 '해양수도' 추진 의지에
해수부·HMM 이전 후보지로
랜드마크 부지 활용 논의 활발
벌써 주변 부동산 문의 쏟아져
정부·시·BPA, 서둘러 머리 맞대
'부산의 얼굴' 바꿀 기회 살려야
약속 없는 점심때나 주말에 북항친수공원으로 향하곤 한다. 흥과 여유를 동시에 느낄 수 있어 마음에 쏙 드는 산책 코스다. 오가는 길에 캐리어를 끄는 관광객과 나란히 걸을라치면 짐짓 여행자 기분이 난다. 크루즈선이나 여객선이 시선에 들어오면 자연스레 휴가 계획이 떠오른다. 날씨가 궂다면 국제여객터미털 커피숍에 앉아 배며, 갈매기를 보며 잠시 여유를 갖는다.
개인적으로 무목적성의 일상 공간이지만 북항은 수시로 축제 공간이 된다. 지난달 18회째 행사를 마친 대표 항만축제 부산항축제는 매년 북항에 무대를 마련하고 손님을 맞는다. 지난 4~8일 맛집 등 로컬브랜드 110팀이 1부두 폐창고에 모여 연 축제 ‘포트빌리지 부산’엔 10만 명이 다녀갔다. 웬만한 백화점 매장을 뛰어넘는 집객 효과다. 2022년 2030엑스포 유치 때 BTS 단독 콘서트가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렸을 때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이 북항을 메운 장면은 부산 시민에게 남겨진 좋은 기억이다.
무엇보다 북항은 정치의 공간이다. 북항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과 함께 부산에서 가장 ‘핫’한 곳이 됐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해수부와 HMM 이전, 해사법원 본원 설립을 앞세워 부산을 해양수도로, 북극항로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며 시민 지지를 이끌어냈다. 대선 마지막 유세 장소도 북항이었다.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는 해수부 이전 신속 추진을 지시하며, 다시 한 번 의지를 내비쳤다.
지역에서는 해수부와 HMM 이전 최적지로 북항을 꼽는다. 엑스포 유치 좌절 이후 시들하던 북항에 다시 한 번 관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벌써 북항 주변 부동산에는 매물 문의가 쏟아진다고 한다.
민주당 집권 때마다 북항 소환이 반복되는 일은 우연만은 아니다. 1997년 부산항 신항 건설 계획과 함께 시작된 북항 재개발 논의를 구체화한 정치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04년 9월 노 전 대통령이 ‘지역 발전 토론회’에 참석해 북항 재개발을 언급한 이후 개발이 본격화됐고, 2007년 기본계획이 고시됐다. 그즈음 북항을 직접 찾은 그가 ‘슬리퍼를 신고 아무때나 즐길 수 있는 북항을 만들겠다’고 한 ‘선언’은 아직 북항이 나아갈 방향으로 받아들여진다.
북항 재개발 밑그림은 문재인 정부 때 구체화됐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과 함께 ‘북항 재개발 사업’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현재의 북항 재개발도 2020년 공개된 북항 통합개발 마스터플랜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국가 첫 대규모 항만 재개발 사례라는 시대적 과제와 정치인들의 선언, 시민 기대까지 더해졌지만 북항은 미래 공간으로 머물러 있다.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의미다. 단적인 사례가 북항 재개발 1단계 중 면적이 가장 큰 랜드마크 부지를 둘러싼 끝 모를 표류 사태다. 그동안 복합리조트, 돔야구장, 오픈카지노 등 수차례 유치 노력이 펼쳐졌지만 번번이 투자 유치 실패, 내국인 카지노 논란 등을 남기고 사그라들었다.
랜드마크 부지를 둘러싼 동상이몽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부산시는 외자 4조 5000억 원을 확보해 최대 88층짜리 ‘부산 랜드마크타워’를 지어 공연장, 미디어 파사드, 호텔, 헬스케어센터, 쇼핑몰, 스카이파크 등을 담은 영상문화 콤플렉스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반면 사업 시행자인 부산항만공사(BPA)는 별도 활용 방안을 찾겠다며 독자 행보에 나서는 등 답답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민간에서도 최근 랜드마크 부지에 바다 야구장을 건립하자는 요구가 터져나왔다. 시민과 정치인 개인 차원에서 이어지던 바다 야구장 건립 요구가 지난 4월 부산의 한 기업인이 “북항에 야구장을 건립한다면 2000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다시 불붙는 분위기다. 공공 영역에서 장기간 활로를 찾지 못한 탓인지 아직 제안 수준인데도 시민 호응이 뜨겁다. 부산상공회의소도 지난해 앵커형 랜드마크인 복합리조트 유치를 공식 제안한 바 있다.
사실 북항의 변화는 이제 시작 단계라 볼 수 있다. 부산 원도심과 남구, 영도구까지 아우르는 1~3단계 전체 개발면적 900만㎡ 가운데 1단계(155만㎡) 기반시설 조성을 이제 마쳤을 뿐이다. 처음 북항 재개발 닻을 올릴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뜻에 맞게 부산의 얼굴이 바뀔지, 숱한 난개발의 역사를 답습할지, 변곡점에 섰다.
이런 가운데 새 정부가 집권 초반부터 북극항로, 해양수도 등 연이어 부산을 ‘호명’하고 해수부와 HMM 이전 같은 구체적인 사업 추진 의지까지 밝히고 나선 것은 기회임에 틀림없다. 장기간 갈피를 잡지 못한 정부와 부산시, BPA에 가장 큰 책임과 권한이 있다. 한시바삐 머리를 맞대고 기회를 살릴 논의에 나서길 주문한다.
김영한 경제부장 kim01@busan.com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