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지워진 얼굴들, 흔들리는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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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군상, 198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Lee Ungno / ADAGP, Paris - SACK, Seoul, 2025 이응노, 군상, 198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Lee Ungno / ADAGP, Paris - SACK, Seoul, 2025

이응노의 ‘군상’ 연작을 처음 마주한 사람들은 그 이미지가 환희인지 절망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수백 또는 수천 명의 인간 군상이 밀집해 있다. 팔을 들거나, 몸을 휘며 전진하는 듯한 동세는 어떤 점에서 저항의 몸짓처럼 보이기도 하며, 또 어떤 순간에는 몰려드는 공포 속에서 도망치는 군중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1980년대에 시작된 ‘군상’ 연작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 장대하고 극적으로 변한다. 격렬한 동세는 5·18 광주의 저항과도 닿아 있다. 또한 숱한 인물 형상이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반복되는 이 연작은 단순한 집단 표현처럼 보이지만, 그 속의 개개인 형상은 각자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존엄한 존재자이다.

이렇게 우리는 이응노의 ‘군상’을 보고 광주의 시민들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응노의 ‘군상’은 특정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집단적 폭력과 주체의 말소, 말해지지 못한 존재들의 형상적 윤리를 구현한다. 그림 속 인물은 모두 익명적이며, 간결한 동작의 형상으로 축약돼 있다. 언뜻 보면 ‘군상’의 형상은 이름 없는 군중의 장대한 저항의 몸짓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군중이 표출하는 저항의 몸짓 이면에서 아감벤이 말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 또는 ‘벌거벗은 생명’, 즉 법과 기록 속에서 지워진 존재자들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은 6·25전쟁 전후 보도연맹 학살이나 ‘금정굴’ 사건처럼, 국가에 의해 ‘제거’된 수많은 민간인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들은 죽음조차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못한 채 잊혔다. 그들은 말해지지 않는 자들이었다. 또한 억압과 저항이 이미지 속에서 중첩된다. 다시 말해, 이응노의 ‘군상’은 인권과 국가 폭력이라는 두 장면 사이에서 진동한다.

그림 속 인물은 모두 앞으로 이동하는 듯하지만, 또한 방향을 잃고 밀집돼 있다. 각자는 존재하지만, 누구도 ‘나’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6·25의 민간인 피해자일 수도 있고, 5·18의 시민군일 수도 있다. 이 두 시기는 모두 예외 상태에서의 ‘주권 권력’이 시민을 제거한 역사, 즉 ‘국민이 벌거벗은 생명으로 추락한 시간’이었다. 더 나아가 그 시간은 동학에서 시작해서 지난해 12·3 계엄 사태까지 이어진다.

예술은 ‘벌거벗은 생명’의 시간을 복원하지 않는다. 대신 그 부재의 시간을 비춘다. 이응노의 ‘군상’은 단지 군중을 그린 것이 아니라, 국가 폭력이 만든 비인간화의 풍경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되묻는 윤리적 거울이다. “이 얼굴 없는 자들 속에서, 나 또는 우리는 누구였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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