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한국만 모르는 디지털 화폐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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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준식 비온미디어 대표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주문한다. 토스페이로 결제하고, 친구에게 밥값을 카카오페이로 보낸다. 점심시간엔 네이버페이로 배달 주문을 마친다. 하루 종일 현금 한 장 만지지 않았지만, 모든 거래가 순식간에 끝난다.

“이렇게 편한데 굳이 스테이블코인(달러, 원화 등 기존 화폐 가치에 연동되는 디지털 화폐)이 왜 필요해?” 최근 한 디지털 금융 포럼에서 나온 질문이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디지털 금융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 질문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숨어있다.

우리가 매일 쓰는 간편결제 시스템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겉으로는 번개처럼 빠르고 매끄럽다. 하지만 그 뒤에선 여전히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 중앙화된 금융기관들이 층층이 쌓여 있고, 모든 거래는 이들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스테이블코인, 중개 기관 없이 정산

해외 송금 혁신·금융 소외계층 기회

미국, 법적 기반 마련 위해 잰걸음

국내, 법안 발의됐지만 초기 단계

부산 블록체인 특구 통해 실험 가능

데이터·경험 쌓은 뒤 전국 확산해야

스테이블코인은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중개 기관 없이 바로 정산되고, 금융 자체를 코드로 자동화한다. 쉽게 말해 금융을 소프트웨어처럼 설계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은행 직원이 승인 도장을 찍는 대신, 스마트 컨트랙트가 자동으로 거래를 실행한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최근 행보는 예사롭지 않다. 지난 6월 미국 상원이 통과시킨 ‘GENIUS Act’를 보자.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1대1 자산 담보, 준비금 투명 공개, 소비자 보호, 파산 시 환급 보장 등을 명문화했다. 미국 하원에도 ‘STABLE Act’가 계류 중이다. 두 법안은 조율을 거쳐 통합될 예정인데, 그 전략이 명확하다. 디지털 달러 인프라를 민간 혁신으로 실현하되, 공적 통제는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이제 막 입법 논의를 시작했다. 민병덕 의원의 디지털자산기본법, 안도걸 의원의 담보요건 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기술도 있고 시장 수요도 있지만, 제도와 정책은 여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면 스테이블코인이 도대체 왜 필요할까? 세 가지 이유를 들어보자. 첫째, 해외 송금의 혁신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매달 고향에 돈을 보낸다. 지금은 달러를 거쳐 환전 비용과 중계 은행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있다면? 달러를 경유하지 않고 본국 통화로 직접 송금할 수 있다. 빠르고 싸며, 복잡한 중개 과정이 없다. 금융 혜택이 노동자에게 직접 돌아가는 구조다.

둘째, 금융 소외계층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신용 점수가 낮거나 은행 계좌 개설이 어려운 사람도 블록체인 기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은행은 고객을 평가하지만, 블록체인 금융은 프로토콜이 고객을 실행한다”는 말처럼, 기존 금융 시스템이 외면하던 사람들에게 문을 열 수 있다.

셋째, 국가 통화의 디지털 경쟁력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기반인 USDC와 USDT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달러는 패권을 확장하고 있다. 우리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지 못하면, 디지털 경제에서도 원화는 주변부로 밀려날 수 있다.

물론 우려도 있다. 준비금 부실, 투기적 남용, 빅테크 독점 가능성 등 스테이블코인은 분명 양날의 검이다. 테라-루나 사태처럼 잘못 설계된 스테이블코인이 폭락하며 시장 전체를 흔든 사례도 있다. 하지만 위험을 이유로 문을 닫는 순간, 기회도 함께 사라진다.

해법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부산 블록체인 특구다. 현재도 이 특구 안에서는 디지털 자산 실증과 스테이블코인 관련 실험이 가능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시간이다. 국회에서 입법을 통과시키고 중앙정부가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다. 그 사이 우리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디지털 금융은 국경이 없는 전쟁터다. 미국, 유럽, 싱가포르가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 우리만 회의실에서 토론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부산 블록체인 특구의 샌드박스 규제는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열쇠다. 일단 실행하고 문제점을 찾아 보완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부산에서 시범적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실증하고, 충분한 데이터와 경험을 쌓은 후 전국으로 확산하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만 아직 디지털 화폐 시대의 문 앞에 머물러 있다. 편리한 현재에 안주하며 미래를 놓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금융 질서의 주역이 될 것인가. 선택의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바로 부산이 될 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새로운 항로를 개척해 온 부산의 DNA가, 이번에는 디지털 금융의 새 항로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 문을 열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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