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야 뭐라도 된다"
김성주 셰프의
좌충우돌 세상 도전기
‘흑백요리사’나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 같은 요리 프로그램에 빠져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셰프의 꿈을 꾸게 된다. 미쉐린 레스토랑의 스타 셰프가 되어 세계 각국의 원하는 도시를 골라 일하며 여행자처럼 사는 삶은 얼마나 근사할까. 부산의 미쉐린 레스토랑 ‘율링’ 김성주(31) 헤드셰프는 젊은 나이에 미국과 일본 등의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은 실력파로 소문이 났다. 음식은 먹어 봐야, 사람은 만나 봐야 안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던 반항아, 심지어 말도 한마디 못 하면서 비행기부터 탄 대책 없는 사람일 줄은 미처 몰랐다. 지역의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라는 판단에 ‘김 셰프의 좌충우돌 세상 도전기’를 일인칭 시점으로 정리해 소개한다.“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나 김성주는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아이였다. 밤늦게까지 학교에 잡아두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른다. 그때 문득 요리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TV에서 본 기다란 모자를 쓴 요리사의 멋진 모습. 그게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요리학원에 등록하는 조건으로 ‘야자’에 빠졌다. 성과를 증명하지 않으면 다시 학교로 돌려보낼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금방 따 버렸다.남자가 4년제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부산의 한 대학 서양조리학과에 들어갔다. 대학에 와보니 정작 배우고 싶었던 요리 실습 과목이 너무 적었다. 요리까지 성적을 받기 위한 공부로 변질이 됐다는 느낌이었다. 1학년을 마치고 해군 취사병으로 입대해 동해 1함대 부산함에 배치받았다. 함정 생활은 태어나 처음으로 요리에 자신감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다.오전 6시 아침, 11시 점심, 오후 6시 저녁과 야식까지 매일 150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생활이 2년간 이어졌다. 일 욕심이 많았던 조리장 덕분에 배에서 초밥, 스파게티, 함박스테이크, 냉면 등 오만가지 요리를 했다. 혹독한 수련 결과로 칼질도 일취월장했다. 조리장이 똑같이 짠 메뉴인데 신기하게도 내가 요리하면 밥맛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나에게는 나도 몰랐던 손맛이 있었다.정신력이 부쩍 강해져서 돌아오니 대학 생활 또한 즐거웠다. 3학년에 올라와 과 대표를 하며 선배들도 많이 알게 됐다. 파크하얏트부산에 취직한 선배의 권유로 방학 때 처음으로 호텔에서 일을 했다. 호텔에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나와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한 형들이 외국인과 영어로 편하게 대화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요리사가 새삼 멋있게 느껴지고, 나도 꼭 미국에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학원까지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일찌감치 손을 놓은 영어 실력이 갑자기 늘 리 만무했다.어느새 졸업이 다가왔다. 호텔은 겪어봤으니 미국에 가서 레스토랑을 경험하기로 마음먹었다. 요리사들을 외국에 보내주는 회사를 통해 면접을 보고 샌프란시스코의 제일 오래된 원마켓 레스토랑에서 인턴십으로 일하게 됐다. 미국 생활은 입국 과정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산더미처럼 싸간 짐을 공항 보안요원이 산산이 풀어헤쳐도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미국 입국 2주 뒤부터 출근했지만 영어를 못 해 셰프 라인에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셰프가 냄새가 나는 고기를 주면서 처음으로 일을 시켰다. 정성껏 손질해 냄새가 심한 껍데기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살만 곱게 발라 가져다줬다. 그러자 셰프가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쌍욕을 하면서 화를 내는 게 아닌가. 껍데기를 분리해서 기름으로 만들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만리타향에 혼자 나와 욕까지 먹으니 서러워 눈물이 다 났다. 이게 다 영어를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영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을 물색했다. 다행히 레스토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대학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반이 있었다.가장 수준이 낮은 7레벨 반에 들어갔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참으로 다양한 나라 출신들이 모여 있었다. 매일 오전 7시부터 12시까지 꼬박 수업을 들었다. 그 뒤 오후 2시 반에 레스토랑으로 출근해서 10시까지 일하는 게 일과였다. 레스토랑에 가면 이날 배운 영어를 동료들한테 써먹었다.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 보자는 오기에 영어 실력이 팍팍 늘었다. 셰프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면서 레스토랑에서도 라인 앞으로 가게 됐다. 영어 실력은 일 년 만에 레벨 3까지 뛰었다(레벨 1, 2가 원어민 수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진짜 발악을 했던 것 같다. 그 욕쟁이 셰프는 나의 첫 요리 멘토가 되었다.월급의 절반은 미국의 파인다이닝(최고급 식당)을 돌아다니며 먹는 데 썼다. 매번 요리에 눈을 뜨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이런 멋있는 요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화려함 뒤에 숨은 어려움은 미처 보지 못했다. 일 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또 다른 나라를 경험해 보고 싶어졌다. 영국에 몇 번 지원했지만 비자 발급 자체가 어려워 아직은 인연이 닿지 않고 있다.그 뒤에 들어간 곳이 요즘 ‘냉부’ 출연으로 유명해진 손종원 셰프가 운영하는 서울의 라망시크레였다. 내가 들어가기 일주일 전에는 라망시크레가 미쉐린 1스타를 받는 행운까지 뒤따랐다. 라망시크레는 한창 각광받던 무렵 들어가 파인다이닝 요리의 기본기를 많이 배운 곳이 되었다. 사실 파인다이닝은 어디나 힘은 많이 들고 남는 것은 많지 않았다. 자기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지 않은 이상 하기 힘든 사업이었다. 파인다이닝 셰프가 내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것도 이때 처음 느꼈다. 2년간 재밌게 일한 뒤 다음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찰나에 여행 가서 너무 좋았던 일본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일본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일본 비자를 받고 준비를 하는 일 년 동안 요리를 쉬고 평소 관심 있었던 일을 하기로 했다. 첫 번째가 저렴한 프랜차이즈 커피집에서 일하기다. 요리사가 쓸데없이 시간 낭비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값진 경험이었다. 세상에는 1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나중에 내 가게를 운영하게 되면 이 경험이 무조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커피집 근무를 마치면 정육점으로 향했다. 그동안 소나 돼지를 많이 잡아보지 못해 육류를 다루는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일 년 동안 고기를 해체하며 정육처리 기능사 필기 자격증도 땄지만, 책에도 나오지 않는 것들을 많이 알게 된 보람이 컸다.일본에서는 가장 힘든 곳을 찾아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보자고 결심했다. 그러면 파인다이닝에 대한 미련도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찾은 곳이 도쿄의 미쉐린 레스토랑 세잔이었다. 세잔은 셰프가 영국인이고 직원들도 영어로 소통하니, 그동안 익힌 영어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내 맘대로 진로를 정한 뒤 세잔과 세잔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인스타를 모조리 뒤져서 DM을 보냈다. 자기소개와 함께 ‘세잔에서 꼭 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내용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아무런 인연도 없었던 분의 도움으로 영어 면접을 본 뒤 세잔에서 일하게 됐다. 나처럼 한국에서 무작정 연락이 와서 일하게 된 경우는 세잔이 생기고 나서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세잔이 아시아 최고 레스토랑 1위로 선정되고, 미쉐린 2스타에서 3스타로 승격되는 영광의 순간을 요리사로서 함께 했다.일본에 살다 보니 영어뿐만아니라 일본어도 필요했다. 그래서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해 일본어 시험에도 합격했다. 일본에 히라가나 가타카나도 모르고 와서 반년 만에 일본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내가 언어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수군거렸다. 세상에 무서운 게 없고, 뭐든 안 되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어처럼 부산으로 돌아와 뻔하지 않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다. 내 앞에 펼쳐진 많은 길이 보인다. 내년 이맘때의 나는 어떨까. 5년 뒤의 내 모습도 궁금해진다. 똑같지 않은 매일매일, 그게 나의 삶인 것 같다.PS.도전하지 않으면 내가 우물 안에 든 개구리라는 사실을 모른다. 언어? 난관에 부딪치면 나도 모르는 큰 에너지가 나온다. 어려움을 극복해 냈을 때의 성취감은 엄청나고, 세상에 못 할 일이 없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여행도 좋다. 뭐든 생각이 났을 때 나가서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 파인다이닝도 셰프의 각자 스타일이 있을 뿐이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나는 ‘노가다’도 해보고 카페나 정육점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꼭 요리가 아니어도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이것저것 뭐든 해보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요리를 하고 싶다.◆김성주 셰프 프로필201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원마켓 레스토랑(미쉐린 1스타)2020년 서울 라망시크레(미쉐린 1스타)2024년 일본 도쿄 세잔(미쉐린 3스타)2025년 부산 율링(미쉐린 셀렉티드) 헤드셰프
40~50대 갱년기 여성 집중
정기검진·체중관리로 예방을
직장인 A(49) 씨는 최근 들어 생리량이 급격히 늘었다. 완경 시기가 다가오면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생각해 병원 진료를 미뤘다가 1년 만에 방문한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권유했다. 검사결과 자궁근종이 확인돼 치료 중이다.자궁근종은 여성 호르몬에 민감한 질환으로, 여성에게 가장 흔한 양성 종양으로 꼽힌다. 완경 이후 대체로 크기가 줄어들지만 경우에 따라 심하면 자궁적출술이 필요할 만큼 위험하다. 이달 초 부울경 첫 산부인과 로봇수술 개인 1000례를 달성한 양산부산대병원 김휘곤 산부인과 교수와 함께 자궁근종의 증상과 치료법, 예방법을 찾아봤다. ■가장 흔하지만 가볍게 보면 안 돼자궁근종의 정확한 단일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호르몬적·유전적·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이 근종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탓에 완경 이후에는 근종의 크기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자궁근종 환자는 40~50대가 다수를 이룬다. 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40만 명에서 2022년 61만 명으로 크게 증가한 가운데 40대(37%)와 50대(31.2%)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30대는 16.7% 정도다. 김 교수는 “완경 이후 종양 크기가 대체로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지만 가족력이나 비만, 식습관 같은 요인들로 인해 발병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자궁근종 증상은 월경 과다가 가장 흔하다. 부정 자궁출혈이 반복되면 철결핍성 빈혈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근종이 방광을 압박하면 잦은 배뇨나 배뇨 곤란이 오는데 심하면 요관 폐쇄로 인한 수신증이 올 수 있다. 드물게는 직장 압박으로 변비가 올 수도 있다. 월경통과 골반통, 허리통증, 성교통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김 교수는 “환자의 30~50%는 특별한 증상이 없어 건강 검진이나 초음파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근종의 위치에 따라 증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자궁내막 쪽으로 자라는 점막하 근종은 작아도 출혈을 일으킬 수 있고, 반복 유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근육층 안에 생기는 근층내 근종은 자궁 비대와 월경량 증가를 동반한다. 자궁 바깥으로 자라는 장막하 근종은 골반 압박감과 복부 팽만을 주로 일으키며, 배뇨·배변 장애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출혈 증상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치료법은 단계별로 달라져자궁근종은 크기와 개수가 다양하다. 김 교수는 “20년 전 지름 30cm, 무게 4kg에 달하는 근종을 개복 수술로 제거한 적도 있다”며 “최근에는 로봇 수술을 통해 17cm, 1.5kg 근종을 절제하거나 다발성 근종 35개를 한 번에 제거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자궁근종 치료는 환자의 증상 정도, 근종의 크기·위치, 나이, 임신 계획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증상이 없거나 경미하면 정기 초음파로 추적 관찰한다. 피임약이나 자궁내 장치(미레나 루프), 호르몬 억제제 등을 이용한 약물치료를 통해 출혈과 통증을 조절한다. 진통제·지혈제 같은 비호르몬 약물도 사용된다.시술도 가능하다. 자궁동맥 색전술의 경우 근종 혈류를 차단해 괴사시키고, 하이푸 시술은 초음파로 근종만 선택적으로 파괴한다.심하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근종만 제거하는 근종절제술의 경우 자궁을 보존할 수 있다. 하지만 임신 계획이 없는 여성이나 다발성·대형 근종 환자의 경우엔 자궁절제술을 고려하기도 한다. 김 교수는 “증상이 심하거나 다른 치료가 실패한 경우 자궁적출술을 시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궁을 보존하면서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생활습관 관리로 위험 낮출 수 있어자궁근종을 완전히 예방하기는 어렵지만 생활습관 관리를 통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규칙적인 운동도 근종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비만은 에스트로겐 합성을 증가시켜 완경 이후에도 근종 위험을 높일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체중 관리가 필요하다. 비타민 D를 보충하면 근종 억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체중을 정상 범위로 유지하고 채소·과일 섭취를 늘리는 것이 좋다”며 “붉은 고기와 가공육, 알코올·카페인 섭취를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완경 전후로 출혈 변화가 흔하기 때문에 자궁근종뿐 아니라 자궁내막암, 자궁내막증식증과 감별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비정상 출혈이 나타나면 반드시 산부인과 진료와 조직검사와 같은 정밀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며 “갱년기 여성의 경우 호르몬 대체요법으로 치료시 근종이 성장할 수 있어 치료 전 초음파 검사를 반드시 받고,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의 밀면 다대기,
넣어 먹어? 빼고 먹어?
여름은 밀면의 계절이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 밀면 장사는 여름 한 철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름난 밀면집 부산 동래구의 ‘사철냉면’이란 상호에는 우리는 다른 집과 달리 사계절 장사한다는 뜻이 담겼다. 택시 기사들이 즐겨 찾아 ‘택슐랭’에 선정된 서구 영남냉면밀면은 지금도 여름철에만 영업한다.최근 한 매체의 ‘부산 밀면 베스트10’ 선정 작업에 참여했다. 밀면의 계절을 맞아 최고 밀면 선정기 그 뒷이야기를 시원하게 풀었다.맛집 검색 플랫폼 ‘다이닝코드’에 따르면 부산의 밀면집은 총 632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10곳을 선정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밀면은 가격이 냉면의 절반에 불과하고, 동네마다 각자가 좋아하는 밀면집이 따로 있지 않은가. 이틀 간의 일정 중 기자가 참여한 첫날만 해도 영남냉면밀면(서구)-대가면옥(사하구)-삼성밀면(사상구)-개금밀면(부산진구)-사철밀면(동래구)-해운대 가야밀면(해운대구)-국제밀면(연제구) 등 7곳을 하루에 도는 가위 ‘토 나오는’ 수준의 일정이었다.베스트10 선정은 각자가 1~10위까지 순위를 매겨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패널끼리 함께 가서 맛보지 않았더라도 꼭 들어가야 할 밀면집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했다.기자는 연제구 국도밀면을 1위로 추천했다. 이곳의 밀면은 한 그릇에 단돈 4000원! 한 끼 식사 가격으로 부산을 넘어 전국 최저가가 아닐까 싶다.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육수와 면이 한 그릇에 1만 원씩 하는 유명 밀면집에 비해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곱빼기가 5000원인데, 단골만 찾는 ‘반곱’도 있었다. 한여름에 찾는 밀면, 시원하면서도 서민적인 분위기에 먹는 음식이 아니었던가.기자는 사실 결과보다 선정 과정에서 전문가 패널끼리 주고받았던 밀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흥미로웠다. 냉면으로도 이름난 유명 고깃집의 류나영 전 대표가 ”밀면에 든 다대기가 싫다. 왜 그렇게 다대기를 올려주는지 모르겠다. 나는 밀면을 받고는 다대기를 안 버무리고 그냥 육수만 먹었다”라고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는 또 “서울에서 밀면을 먹으러 갔는데 한약재 맛이 너무 많이 나서 못 먹겠더라. 부산 내호냉면에서는 맛있게 먹었는데 그 육수 맛이 많이 다른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음식강산>의 저자 박정배 작가도 밀면 육수에서 한약재 맛이 너무 난다며 동의했다. 밀면 육수의 한약재 맛, 그동안 “몸에 좋겠지”라며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먹었는데….그러자 음식평론가 최원준 시인은 외지인에게 자신의 밀면 먹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나섰다. 최 시인은 “나는 고명처럼 올려주는 다대기를 다 걷어내고 먼저 육수 맛을 본다. 그렇게 먹다가 다데기를 조금씩 섞어서 입맛에 맞춰 먹으면 된다. 안 그러면 육수가 너무 달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기자의 경우는 냉육수를 별도로 요청하는 편이다. 다대기가 들어가지 않은 원래 상태의 냉육수를 먼저, 그다음에 다대기를 푼 육수 맛을 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조선일보 김성윤 음식전문기자는 의외로 다대기에 호감을 표시했다. 김 기자는 “전 국민 대상으로 보면 냉면보다 밀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 같다. 밀면은 달착지근하고 쫄깃쫄깃해서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맛이 다 들어 있다. 다대기 넣은 게 낫고, 그거 없이는 안 먹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맛집 블로거 ‘울이삐’ 김지현 씨는 “대부분 주는 대로 먹지만 점차 다대기가 빠진 밀면을 왜 먹느냐는 파와 다대기는 따로 먹어야 한다는 파가 ‘부먹’과 ‘찍먹’처럼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것 같다. 새로 문을 열거나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하는 밀면집은 다대기 따로, 다대기 많게 혹은 작게를 선택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고메밀면이 대표적이다.한약재 맛이 나는 밀면 육수도 그 실상을 알고 먹는 게 낫다. 육수에 감초, 황기, 계피를 넣어서 한약재 맛이 난다. 한약재 맛이 나는 육수는 가야밀면이 원조로 꼽힌다. 최 시인은 “냉면에서는 메밀 향이 난다. 하지만 밀가루로 만든 밀면은 면의 품질도 좀 떨어지고 밀가루 냄새가 나자 한약재를 넣었고, 그게 인기를 끌면서 한약재 육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밀면의 최대 약점 중의 하나가 고명과 꾸밈이라는 견해도 귀담아들을 만했다. 류 전 대표는 “밀면의 면은 전분이 많아서 담았을 때 똬리가 예쁘게 안 떨어지고, 철퍼덕거리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최 시인은 “나는 밀면 위에 고명으로 올린 수육은 너무 터벅터벅하고 별 맛도 없어서 안 먹는다. 육수를 뺀 고기를 위에 올려서 그렇다”라고 말했다.그런데도 부산 사람들은 왜 여름만 되면 밀면집 앞에 줄을 서는 것일까. 김지현 씨는 “오래된 밀면집들은 대체로 육수가 달고, 면 익힘도 좋지 않지만 손님이 많다. 추억으로 먹는 집들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부산 사람들은 유명한 밀면집을 찾아가서 먹는 대신 자기 동네 자기 입에 맞는 집에 간다”라고 말했다. 음식 전문 김 기자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부산 대표 음식이라고 하면 돼지국밥과 밀면인데, 두 음식에 대해서 부산 사람들의 태도나 자세는 완전 달랐다. 돼지국밥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느껴졌고, 밀면은 소개하기 부끄러워하는 느낌이 엿보였다. 내가 보기에 밀면도 좋은 대중음식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최 시인은 “밀면은 최선의 음식이 아닌 차선의 음식이지만, 같은 값이면 넉넉하게 함께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공유의 음식이자, 같은 양이라도 값이 싸 여러 사람을 먹이는 배려의 음식이었다. 더 많은 부산 사람을 만나서 밀면을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미쉐린가이드는 지금까지 밀면을 외면하고 있다. 힘든 시절 우리를 지켜준 밀면이 좀 더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국제밀면, 대가면옥, 사철밀면, 춘하추동이 1~4위에 올랐다. 이들 밀면집들은 공통적으로 새로운 밀면의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4개 업체의 평균 밀면 가격은 8500원이었다. 박 작가는 “내호냉면, 가야밀면, 개금밀면 같은 1,2세대에 이어 요즘 인기 있는 이들 3세대 밀면집들은 실향민의 한과 서러움이 모두 빠져나간 채, 음식으로만 승부하는 시대의 세련된 맛을 내고 있다”라고 총평했다.
마, 이 산이 가을 풍경 맛집이네
통영대전고속도로의 장수IC에서 빠져나와 새만금포항고속도로를 달린다. 평범한 여러 산 너머로 갑자기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 두 개가 나타난다. 주변의 산은 사이좋게 비슷한 높이로 솟아있는데, 유독 두 봉우리만 위로 튀어나왔다. 저렇게 희한하게 생긴 산은 도대체 무엇일까.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특이한 전설을 떠올릴지 모른다. 악마가 대형 바위 두 개를 들고 가다 떨어뜨렸다거나, 고대 거인이 인간과의 싸움에서 패한 뒤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일지도 모른다.이 산은 전북 진안군의 명물 마이산이다. ‘말의 귀’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이름에서 유추해보면 알 수 있듯 위의 두 전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옛날 인간 사이에 섞여 살던 부부 신이 새벽에 하늘로 올라가려다 동네 주민에게 들키고 말았다. 부부는 등천하지 못하고 두 개의 봉우리로 변하고 말았다.이번 여행은 마이산의 신기한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코스모스, 노랑(황하)코스모스, 해바라기가 피어난 진안농업기술센터에서 인생 샷을 찍는 게 목적이다. 이미 이곳은 가을 사진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누가 가더라도 실패하거나 후회할 일은 없다.■세 가지 꽃 세 가지 풍경진안IC에서 내려 진안농업기술센터로 달린다. 가을이면 많은 블로거, 유튜버는 물론 프로, 아마 사진작가들이 인생 샷을 건지기 위해 출사하는 곳이다. 도대체 그곳에 무엇이 있기에 그들이 몰리는 것일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들판으로 향한다. 들판 너머로 마이산이 보인다. 직선거리로는 2km인 데다 앞을 가리는 건 하나도 없어 마이산은 바로 눈앞인 듯 시원하게 보인다. 다른 곳에서 보는 것과 다른 점은 딱 하나다. 봉우리 두 개가 겹쳐 하나만 보인다는 사실이다.이색적인 산 모습에 반한 채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들판 위로 올라서는 순간 “야!”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들판은 온통 코스모스 천지다. 앞쪽은 약간 끝물인 것 같지만 다른쪽은 여전히 꽃이 한참 피었다. 코스모스 꽃밭 한가운데로 걸어가서 마이산을 바라본다. 왜 이곳에 가을 사진을 찍으러 오는지 이유가 금세 드러난다.마침 대형 버스 두 대가 도착한다. 한 대에서는 부부, 연인, 친구, 동네사람 등 개별 관광객이 우루루 내리고, 다른 한 대에서는 값비싼 카메라를 손에 든 아마 사진작가들이 하차한다. 그들이 서둘러 달려오는 곳도 바로 코스모스 꽃밭이다.블로거로 보이는 한 젊은 여성이 삼발이에 휴대폰을 설치하더니 꽃밭으로 들어가 맑은 공기를 온몸으로 마시려는 듯 두 팔을 쭉 벌린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중년 여성 두 명도 ‘포토존’이라는 팻말이 세워진 꽃밭 안으로 들어가 밝은 표정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가만히 서서 코스모스 꽃밭과 그 너머 마이산을 바라본다. 가을을 대표하는 알록달록한 코스모스가 다양한 색으로 알록달록하게 핀 게 마치 동네 주민에 들켜 바위로 변해버린 부부 신이 올라가려던 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하늘나라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지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코스모스 꽃밭 하나만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기에는 시간이 아까울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곳에는 코스모스 외에 다른 꽃밭도 마련돼 사진을 더 찍을 기회를 제공한다. 코스모스 꽃밭 바로 앞에는 노랑코스모스 꽃밭과 해바라기 꽃밭이 각각 마련됐다.노랑코스모스는 사실 노랗다기보다는 주황색에 가깝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코스모스가 아니라 다른 꽃이라는 오해를 주기 쉽다. 좋은 사진을 찍는 데 꽃 이름을 오해하든 말든 상관은 없다. 이곳에서 마이산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의 느낌은 코스모스 꽃밭에서 찍은 사진과 완전히 다르다. 코스모스 꽃밭이 조금 친근하고 소박한 소녀 같다면 이곳은 다소 도도하고 근엄한 귀부인이라고나 할까. 물론 사람마다 날씨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으니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다른 건 당연지사다.해바라기는 화사하게 피긴 했지만 아직 다 익지 않은 듯 약간 푸르고 싱싱하다는 느낌을 준다. 누렇게 익은 해바라기를 본 경험은 더러 있지만 이렇게 아직 어린 분위기를 주는 꽃은 처음이다. 마침 해가 마이산 반대편 쪽에 떠 있어 해바라기도 마이산을 바라보지 않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다. 마치 말다툼한 두 연인이 토라져 등을 돌린 형상이다. 그래도 사진 찍기에는 이런 모습이 나아 보인다. 해바라기가 마이산을 바라본다면 마이산 사진을 찍을 때 해바라기는 얼굴이 아니라 뒤통수만 보이기 때문이다.마이산을 배경으로 세 가지 꽃의 세 가지 풍경을 찍다 보니 엉뚱한 생각이 든다. 센터 쪽에서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마이산 두 봉우리가 겹쳐 하나로 보인다. 사진을 찍을 때 봉우리 하나보다는 두 개가 더 멋져 보일 텐데 아쉽다. 그래서 산 바닥에 바퀴를 달아 가을에는 두 봉우리를 센터 쪽으로 돌려 사진이 더 훌륭하게 나오도록 만들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허상이다.세 가지 꽃의 세 가지 풍경을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면 이제 저수지를 보러 갈 때다. 센터에는 ‘반달’이라는 뜻의 반월제라는 저수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마이산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이 또 멋지기로 유명하다. 센터에서 볼 때 마이산은 서쪽이어서 해가 질 때 사진을 찍으면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지금은 한낮이어서 일몰 사진은 촬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연잎이 둥둥 떠다니는 저수지와 마이산을 한 컷에 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마이정원과 탑사진안농업기술센터에서 마이산을 배경으로 세 가지 꽃과 저수지를 구경했다면 이제는 직접 마이산으로 갈 차례다.마이산에 올라가기 전에 두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진을 찍으려면 마이산북부예술관광단지 제1주차장 쪽의 마이정원으로 가야 한다. 이곳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편안하고 느긋한 가을 산책을 즐기려면 마이산도립공원 제1주차장으로 달려가면 된다.마이산도립공원 제1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나타난다. 잎이 무성해서 한여름에도 충분한 그늘을 드리워준다. 아직 가을이 깊지 않아 잎이 완벽히 단풍으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가을 향기가 서서히 퍼진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숲길 한가운데에 저수지 탑영제가 나타난다. 그 뒤로 마이산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진안농업기술센터나 마이정원 쪽에서 바라보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냥 큰 바위 덩어리처럼 보인다.저수지 인근에는 돌탑이 보인다. 이곳에는 탑사로 올라가는 관람객이 돌을 쌓아 탑을 만들 수 있는 ‘돌탑체험장’이 있다. 관람객들이 쌓아올린 크고 작은 돌탑은 한두 개가 아니다. 탑 하나하나마다 모두의 정성과 기원이 담겼다.숲길을 따라 개울도 흐른다. 나무덱이 만들어져 개울을 따라 걷기도 편하다.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시멘트를 발라놓은 산책로보다 훨씬 아름다운 길이다.숲길의 끝은 오늘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탑사다. 마이산 두 봉우리 아래에 수많은 돌탑이 있다고 해서 탑사라고 불린다. 돌탑을 쌓은 사람은 19세기 이갑룡 처사였다. 원래 돌탑은 120개 정도였지만 지금은 80개만 남았다.마이봉 아래에 파묻혀 따스한 가을햇살을 받는 탑사의 풍경은 특이하다. 사찰이 풍경의 핵심인지 돌탑이 이곳의 주인인지 단언하기 힘들 정도로 돌탑이 돋보인다.
낡은 보세창고에서 복합문화공간 변신
‘스페이스 원지’
부산대교를 지나 영도로 들어서는 초입부의 봉래나루로는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사람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핫플레이스다. 낡은 보세창고가 즐비한 이 일대 물양장(수심 4~5m 이내로 1000t급 미만의 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간이 부두)은 가장 부산스러운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의 대표적인 커피 브랜드 ‘모모스커피 영도 로스터리&커피바’와 커피복합문화공간 ‘블루포트 2021’이 2021년 이곳에 문을 열었고, 그보다 앞서 2019년 3월엔 로컬 생활문화 공간 ‘무명일기’가 일찌감치 터를 잡으며 이 일대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봉래나루로 끝자락 홈플러스 영도점 쪽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원지(SPACE ONE Z)는 이들 중에는 가장 늦은 2023년 3월 13일 가세했다. 원래는 2020년 오픈하려다 코로나19로 미뤄졌다. 이번 주 ‘문화핫플’은 스페이스 원지 이야기로 풀어나간다.■창밖엔 물양장…영도의 시간을 품은 공간낡은 보세창고를 개조한 스페이스 원지는 통창 너머로 보이는 물양장과 선박이 정박 중인 풍경도 독특하지만, 100년 전 창고 원형을 최대한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원지의 경우, 총 7개의 창고를 터서 지금처럼 만들었다. 현재는 레스토랑 1동(303평)과 3개의 창고(539평, 103평, 152평 등 794평 규모) 등 약 1100평 규모로 운용 중이다. 3개의 창고는 전시나 공연, 팝업 행사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지만, 행사가 없을 때는 평범한 주차장이다.“2016년인가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 갔다가 한때 소련의 재봉 공장이었던 곳을 개조한 문화 공간인 ‘파브리카 트빌리시’에서 젊은이들이 맥주를 마시며 밤새 토론하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어요. 나도 언젠가는 저런 곳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게 지금의 스페이스 원지를 있게 한 것 같습니다.” 스페이스 원지 김보현 대표의 말이다.이제 겨우 개관 2년을 넘겼지만, 시행착오도 있었다. 미슐랭 3스타 호텔 출신 셰프를 초빙한 게 대표적이다. “테이블 욕심을 내면서 밥집이 되어 버렸다”는 말로 김 대표는 에둘러 표현했지만, 적잖이 마음고생을 한 듯했다. 한때 28명까지 근무했던 직원은 현재 15명으로 줄였다. 30대가 주축이고, 40대가 2명이다. 김 대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이 젊다. 김 대표는 친환경 자동차에 엔진 소재를 공급하는 기업체를 경영 중이어서 이 회사에선 월급도 받지 않는단다.“지난해 쿠팡에서 한 달에 5000만 원을 주겠다며 899평 임대를 제안했는데도 안 줬어요. 그렇게 되면 재미난 건 못 하잖아요. 돈이 다가 아니잖아요. 사실 그때는 한 달에 5000만 원씩 까먹고 있을 때였는데…(하하).” 그러면서 김 대표는 말을 이어 갔다. “부산시도 이곳에 800평 규모의 미술관을 짓고 싶어 했는데 두 달 정도 고민하다 거절했어요. 재미있는 일을 하려고요.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하고 싶어서요. 젊은이들이 행복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 만큼 그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이런 뚝심이 통했는지 부산관광공사는 스페이스 원지를 2024년 부산 ‘유니크 베뉴’로 선정했다. 유니크 베뉴는 ‘독특한’(unique) ‘장소’(venue)의 합성어로 부산관광공사가 2022년부터 선정해 오고 있다. 마이스 전문시설은 아니지만 관련 행사 개최가 가능하면서도 지역 특색을 잘 반영한 장소라고 설명한다.■공간미 특출해 행사·전시 장소 ‘인기’공간을 연 지 그리 오래된 건 아니지만, 스페이스 원지에선 각종 행사가 열리고 있다. 전시와 공연, 플리마켓, 컨벤션 등으로 다양하다. “공간미가 남다르다 보니 대관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라는 게 김 대표의 전언이다.지난해 9월에는 도모헌과 스페이스 원지가 연계한 ‘백남준의 기록된 꿈, 그 꿈과의 대화’전을 성공적으로 마련했다. 클래식 공연인 ‘캔들 라이트 콘서트’도 큰 호응을 얻었다. 빈티지 마켓과 디제잉을 결합한 빈티지 문화 축제 ‘아티지 그라운드(ARTEGE GROUND) 인도어 페스티벌-부산’은 젊은 층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개최한 ‘크리스마스 빌리지’ 행사는 11일간 8만여 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으며 스페이스 원지가 단순한 문화공간을 넘어 대중적인 명소로 자리 잡았음을 증명했다.올해 2월엔 게임업체 ‘프로젝트 문’에서 ‘햄햄팡팡 게임’ 팝업 행사를 선보였는데, 게임 매니아 1만여 명이 방문해 동네가 들썩였다고 한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소규모 인원이 참가하는 게임 행사인 줄 알았는데 행사 당일 새벽 4시부터 대기 줄을 서더니 건물을 두 바퀴 돌 정도로 길게 늘어섰다”며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하는 ‘지스타’(국제게임전시회)의 축소판이었다”고 전했다.이 밖에 소소한 국내외 대관 행사도 잇따른다. 9월에만 대만관광청 팝업 행사, 베트남 여행객 100명 단체 식사와 공연 관람, 6·25 참전용사 110명 식사 행사 등을 열었다. “엘리베이터를 안 타도 되니 휠체어를 타고 오고 오신 분도 좋아하세요”라고 깨알 같은 PR로 의견을 보탠다. 현재는 지난달 24일 시작한 부산국제사진제를 오는 24일까지 열고 있다. 곧이어 ‘글로컬프로젝트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전, ‘김길후’전 등이 대기 중이다.■‘부산 재즈 포트’ 등 재즈 상설 공연 시도올해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도 있다. △원지 브런치 콘서트 △토들러 콘서트이다. 지난 4월 첫선을 보인 브런치 콘서트는 추석 연휴가 끝나는 대로 시즌5를 이어 간다. 지역의 청년 예술가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이 프로그램은 한 달에 세 번 매주 화요일에 여는데 회당 80명 정도 예약받는다. 음료와 음식(뷔페)을 제공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는 프로그램이다.토들러 콘서트는 지난달 12일 처음 시도했다. ‘0세부터 함께 즐기는 유아 맞춤형 클래식 공연’이다. 엄마 아빠 손 잡고 온 아이들이 신나게 춤추며 노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졌다. 역시 지역의 청년 예술가와 함께한다. 두 콘서트 모두 유료로 진행하지만, 연주자들 경비 지원에도 빠듯해 식사 등의 비용은 김 대표의 몫이다.11월부터는 부산시 주최로 재즈 상설 공연 ‘부산 재즈 포트’(BUSAN JAZZ PORT)를 시작한다. 일단 11월 8일부터 한 달 간 매주 토요일 오후 6시에 시범 공연 계획을 공지했다. 올해 1월 국내 최초로 쿠바 아바나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섰던 ‘효정리 밴드’의 리더 이효정 보컬리스트와 쿠바 출신 드러머 알라인 사마다 외에 피아니스트 김대규, 베이시스트 박주민이 꾸미는 무대이다. 이에 더해 안유진, 고현아, 민주신, 김대경, 김비오, 홍진표, 전은총, 윤혜성, 김경한 등 부산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대거 함께할 예정이다. 내년엔 ‘부산 영도에서 시작되는 북극항로의 미래’ 대형 프로젝트 외에 ‘셸 위 댄스: 탱고 인 스페이스 원지’ 등을 구상 중이다.“사람이 살아가면서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땟거리만 해결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맞고요.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다 함께 가야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건 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경영도 젊은 친구들한테 넘겨줘야죠. 제 역할은 밀알이 되어 꽃을 피우는 일일 겁니다. 직원들에겐 눈을 뜨면 가고 싶어 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이런 공간이 잘 버텨줘야겠지요. 제 생각은 수익이 나면 회사가 성장하는 데 40%를 쓰고, 이익이 남으면 직원들 복지로 30% 정도 돌리고, 나머지 30%는 사회로 환원하고 싶어요.” 소박하게는 김 대표의 꿈 같지만, ‘문화 르네상스’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일 것이다. 원지의 항해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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