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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비디오 판독
얼마 전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조성환 감독대행이 비디오 판독 결과에 항의하다 퇴장당한 일이 있었다. 지난달 2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홈 경기에서 두산의 오명진이 상대 투수의 공을 받아쳐 오른쪽 외야 파울 라인 근처로 타구를 보냈다. 1루심은 파울을 선언했고, 두산은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중계 화면에는 공이 떨어진 지점에 하얀 가루가 튀는 장면이 포착됐다. 공이 파울 라인 끝에 닿았다고 본 두산은 ‘판정 번복’을 기대했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는 ‘원심 유지’로 파울이 선언됐다. 조성환 대행은 곧바로 외야로 뛰어나가 항의했고, ‘비디오판독 결과에 항의하면 퇴장당한다’는 KBO규정에 따라 퇴장됐다. 두산은 이날 2-6으로 패했다.
경기 뒤 KBO가 홈페이지에 올린 1분 12초짜리 영상에도 공이 그라운드에 닿은 뒤 하얀 가루가 튀는 장면이 나온다. 하얀 가루가 튀었다는 건 공이 라인에 닿았다는 이야기고 세이프다.
하지만, KBO 비디오판독센터는 판정을 번복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외야 파울 라인은 페인트로 긋는 데, 오명진의 타구 때 보인 하얀 가루가 ‘파울 라인 밖 이물질’일 수 있다는 게 비디오판독센터의 판단이다.
KBO리그의 비디오 판독은 2014년 도입됐다. 홈런을 비롯해 외야 타구의 페어·파울, 포스·태그 플레이, 야수의 포구, 몸에 맞는 공, 타자의 파울·헛스윙, 홈플레이트 충돌 등 7개 항목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적용한다. 올해 후반기부터는 타자의 체크스윙 판정에도 비디오 판독이 도입됐다. 비디오 판독은 야구뿐아니라 축구, 테니스, 농구, 배구, 미식축구 등 많은 스포츠 경기에서 진행되고 있다.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면서 오심이 최소화됐고 신뢰도가 높아진 장점이 있다. KBO리그는 1일 현재 올해 들어 805건의 판독 요청이 들어와 234건(29.7%)이 번복됐다. 30%가량의 오심이 비디오 판독을 통해 바로잡힌 것이다.
하지만 두산의 경우처럼 비디오 판독의 오류로 의심되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프로배구가 좋은 사례가 된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비디오 판독 오류 땐 곧바로 정정 가능한 제도를 마련했다. 비디오 판독을 잘못 해석할 경우 즉시 제공된 화면에 한정해 재확인을 거쳐 이를 정정하도록 한 것이다.
프로야구에서도 비디오 판독에 항의하는 감독을 퇴장시킬 게 아니라 비디오 판독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합당하다. 그것이 비디오 판독 도입의 이유다.
2025-09-0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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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국가 부채의 기능
미국이 ‘천조국’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건 국방비 때문이다. 지난해 국방비 8414억 달러는 우리 돈 1000조 원을 훌쩍 뛰어 넘는다. 문제는 ‘1000조국’을 능가해 버린 국가 부채 비용이다. 곳간이 빌 때마다 채권을 발행한 탓에 올해 이자만 9520억 달러(우리 돈 1320조 원)다. 빚 갚는 돈이 국방비를 역전하면 패권 쇠락이 시작된다는 이론까지 있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동맹국의 팔을 비틀어 공장을 유치하고, 국경 통과세(관세)로 삥뜯는 미국의 낯선 모습이 설명되는 대목이다.
EU(유럽연합)의 재정 위기는 미국보다 심각하다. 지난해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 적자 3분의 2가 이자 비용이었다. 심지어 프랑스는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우려할 상황이다. 프랑스의 공공 부채는 지난해 3조 3000억 유로(우리 돈 5200조 원)로, 국내총생산(GDP)의 113%다. 재무장관이 “IMF 개입 위험”을 공론화해 파문을 일으켰고, 총리는 지난달 25일 긴축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고 신임 투표를 요청했다. 야권이 불신임을 벼르고 있어 내각이 해산될 위기다. 부채 비율 1위는 일본(234.9%)이다. 미국(124%)의 배에 가깝다. 복지비와 경기 부양을 위한 자금을 국채에 의존한 공통점이 있다. 저성장 탓에 세수가 준 것도 마찬가지다.
재정 적자의 역할과 효과에는 이견이 존재한다. 폴 시어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전 부회장은 “정부의 부채는 그것을 보유한 사람에게는 자산”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의 적자는 민간의 흑자이기 때문에 후대에 부담을 준다는 논리에 반대한다. 그는 올해 출간된 〈돈의 권력〉에서 “걱정해야 할 것은 정부 부채로 인한 부담이 아니라, 정부의 적절한 규모와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정부가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편성했다. 적자 누적으로 내년 부채는 1415조 원까지 증가한다. GDP의 51.6%로 사상 처음으로 50%대를 넘겨 재정 건전성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내수 침체와 저성장의 터널을 빠져 나오는 데 적극적 재정 정책이 필요한 측면도 부인하기 힘들다. 재정 지출은 성장의 마중물이 돼야 비로소 쓸모가 있다. 세수 확대, 구조 개혁도 병행돼야 의미가 있다. 나랏빚으로 국가 경제와 민생을 지탱했지만 성장 동력 확보에 실패해 재정 위기에 처한 선진국이 반면교사다. GDP 대비 50% 돌파를 목전에 둔 지금 국민은 국가 부채의 효능을 묻는다. 선진국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정부는 실천적 답을 내놓아야 한다.
2025-08-3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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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에너지고속도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IT(정보통신)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한 저변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씨를 뿌리고 2020년 12월 완료한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사업 즉, ‘정보고속도로’ 사업이 있었다. 국가 미래를 내다보고 당시로서는 무모하리만큼 불확실한 미래 먹거리 사업에 과감히 투자한 파이오니어(Pioneer·개척자)이자 국가지도자로서의 혜안이 오늘날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27~29일 사흘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대규모 국제행사인 ‘2025 기후산업국제박람회’에서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고속도로’ 브랜드가 새삼 화두가 되고 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지난 27일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AI)으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에 맞는 전력망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재생에너지 보급을 신속하게 확장하고 ‘에너지고속도로’를 구축하려는 이재명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2035년까지 전력 사용량이 현재의 6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많은 국가들이 에너지고속도로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발전소만 짓고 실제로 그것을 이어주는 고속도로(전력망)를 간과하곤 한다”며 “전력망을 더 집중적으로 건설하고자 하는 한국 정부의 노력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에너지고속도로는 이재명 정부 재생에너지 정책의 핵심 사업이다. 서해안 중심의 해상풍력 20GW를 수도권 산업 중심지로 송전하고, 2040년까지 남해안과 동해안을 포괄하는 ‘U자형 한반도 에너지고속도로’를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고속도로’ 역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미래 먹거리 사업이다. 하지만, 당위성은 충분하다. 정책은 타이밍도 중요하다. 현재 한반도에 깔려 있는 전력망은 대형 화력발전, 원자력발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늘어나는 재생에너지·분산전원에 적합하지 않다. 노후화도 심한 상태다. 특히 지역수용성 문제 등으로 국가 송배전망 확충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호남지역에서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남아도는 반면에 수도권은 전력난이 심각하다. 박정희 시대에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한 산업화 고속도로를 띄워 산업화를 이뤘고, 김대중 대통령 때 정보고속도로를 깔아 지금의 IT 강국이 된만큼, 이제는 지능형 전력망인 에너지고속도로를 대대적으로 깔아 전국 어디서나 풍력발전, 태양광 발전 등 재생에너지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2025-08-28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