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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하늘길 숨은 요금
항공권 가격은 기본 운임, 세금, 유류 할증료 등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유류 할증료는 유가 상승에 따른 항공사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운임에 추가로 부과하는 금액이다. 유류 할증료는 1990년 걸프전쟁 영향으로 해운업에서 먼저 도입됐다. 이후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세계 각국 항공사들이 부과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항공 여객에 적용했다. 국내 항공사의 유류 할증료 기준은 아시아·태평양 최대 석유 제품 거래 시장인 싱가포르의 항공유 가격이다. 국토교통부가 인가한 거리비례제에 따라 각 항공사에서 자체 조정을 거쳐 월별로 책정한다. 싱가포르 항공유 가격을 기준으로 0~33단계로 구분해 요금을 부과한다. 단계마다 부과할 금액이 미리 설정돼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고유가가 이어지면서 5월 발권하는 국제선 항공권에 부과되는 유류 할증료가 역대 최고인 33단계로 뛰어올랐다. 2016년 현행 체계 도입 이후 처음이다. 5월 유류 할증료 기준이 되는 3월 16일∼4월 15일 싱가포르 항공유 평균값이 1갤런당 511센트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이는 최고 단계인 33단계(갤런당 470센트 이상)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한국발 뉴욕, 파리, 런던 등 국제 노선의 왕복 항공권 유류 할증료는 3월 19만 8000원에서 5월 112만 8000원으로 오른다. 전쟁 여파가 반영되기 전인 3월과 비교해 6배 가까이 오르는 셈이다.
중동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전 세계가 항공유 대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는 항공유 수출 1위 국가며, 미국 수입 항공유의 70%가 한국산일 정도로 경쟁력이 빼어나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특성상 항공유 대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 정유사가 만든 항공유라도 가격이 싱가포르 현물시장 시세와 달러 환율에 연동되기 때문이다. 국내 항공사가 특별히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을 수 없는 구조다. 특히 항공유는 휘발유·경유와 달리 엄격한 품질 기준과 안전 규정으로 인해 대량 장기 저장이 어렵다. 장기간 원유 공급이 제한될 경우, 항공유 공급망 자체가 흔들릴 우려도 있다. 국내 항공사들은 항공유 가격 급등으로 인한 운영 비용 상승으로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전 세계 항공사들도 노선과 운항 편수 축소에 나서고 있다. 항공사들의 고강도 긴축 경영 못지않게 유류 할증료 부담이 커진 승객들도 여행에 고강도 제약을 받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전쟁이 일상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2026-04-1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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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평화가 손실인 사람들
기원전 1세기 로마에는 누군가의 집에 불길이 치솟으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내가 있었다. 로마 최고의 부자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다. 그는 노예 500여 명으로 꾸린 사설 소방대를 거느렸으나, 화재 진압비를 미리 낸 사람의 불길만 잡았다. 그렇지 않은 이의 집은 팔짱 낀 채 지켜만 봤다.
한술 더 떠, 발을 동동 구르는 집주인에게 크라수스는 흥정을 걸었다. 집을 헐값에 넘기면 그제야 물을 뿌렸고 버티면 내버려뒀다. 잿더미가 된 부지는 시세보다 싸게 사들여 새 집을 올린 뒤 세를 놓았다. 집터를 팔지 않고 제 손으로 집을 다시 짓겠다는 이에게는 비싼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줬다. 로마 시대 역사가인 플루타르코스는 저서에서 크라수스의 이런 방식을 ‘타인의 재난으로 배를 채우는 탐욕’이라 꾸짖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 2월 28일 이란을 공습한 이후 중동의 포성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휴전을 놓고 정치적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사이 인명 피해는 불어난다. 이란 법의학청은 지난 12일(현지 시간) 수습한 시신 3375구의 신원 확인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어린이를 포함한 18세 이하 미성년자만 383명이다.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신과 레바논 등 인접국 피해까지 고려하면 최소한의 수치다.
그사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쩐의 전쟁’이 벌어진다. 세계 최대 예측시장 플랫폼 ‘폴리마켓’엔 전쟁의 향방을 두고 수십억 달러어치 베팅이 오간다. 미국의 이란 공습 날짜, 이스라엘의 이란 내 핵시설 공격 여부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란에서 실종됐던 미군 조종사의 구조 시점이나, 핵무기 사용 예측까지 등장했다가 들끓는 비난에 중단하기도 했다. 실제 돈이 걸리는 만큼 여론조사보다 솔직하고 정확하다는 평가도 있다. 양대 예측시장 플랫폼인 폴리마켓과 '칼시'의 합산 기업가치는 약 420억 달러, 한화 58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자본의 인정이 옳고 그름의 잣대가 될 수는 없다. 전쟁에 돈을 건 사람에게 전쟁은 비극이 아니다. 조속한 종식과 평화는 곧 손실이다. 베팅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의 집단 윤리는 마모된다. ‘디지털 크라수스’가 자신의 성공 확률을 높이려 정보 조작과 여론 호도를 서슴지 않으리란 우려는 지나친 것인가. 미국 의회는 사망이나 전쟁 관련 베팅을 금지하고 공직자 참여를 막는 법안을 초당적으로 발의한 상태다. 다른 사람의 비극을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것. 우리가 문명인임을 자처한다면 마땅히 지켜야 할 선이다.
2026-04-1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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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전통주 배달 시대
‘여름을 넘긴다’는 뜻의 과하주는 발효주와 증류주를 섞어 보존성을 높인 한국식 포트와인이다. 지난 주말, 대저생태공원에서 열린 부산도시농업박람회에서 연잎과 초피나무 열매의 껍질을 넣어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과하주를 만났다. 또 영도 조내기고구마를 곁들인 탁주, 강서구 쌀로 빚은 막걸리 등 진화하는 부산의 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브루어리쏨을 비롯한 양조장 7곳은 지역 농산물을 재료로 개성 넘치는 미각을 뽐냈다. 집에 모셔 온 술병이 금세 바닥을 드러낸 것은 당연지사다. “이 귀한 술을 또 어디서…!” 감질이 났을 때 문득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산행기 취재를 위해 전국의 명산을 누비던 시절, 하산한 동네 식당에서 토산주를 반주로 들이켜는 호사를 누렸다. 본의 아니게 막걸리 기행을 했던 셈이다. 하지만 이내 전통주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지자체가 지역 명주로 자랑하는 막걸리(탁주)를 갖춰 놓은 곳은 드문 대신 외지의 거대 주류업체 제품 일색이었던 것. 현지 양조장을 찾아 까닭을 물으니, 사정이 딱했다. 노부부가 직접 술을 빚고, 영업하고, 배달까지 해도 가격과 유통에서 대기업 경쟁 상대가 안 된다는 하소연이 돌아왔다. 대형 마트에 밀려 고사하는 골목 상권과 판박이였다.
하지만 팬덤은 힘이 세다. 수제 장인의 손맛을 음미하려는 애호가가 늘어나 전통주 구독 서비스가 등장한 것이다. ‘술담화’는 4만~5만 원의 구독료를 내면 입점한 2000종의 막걸리, 약주, 증류식 소주를 택배로 보내준다. 음식 페어링 요령과 양조장 스토리텔링 등 전통주 소믈리에의 안내는 덤이다. 단순 구매에 그치지 않고 ‘경험 소비’와 ‘취향 탐색’이 충성도를 높이는 구조다. 네이버 쇼핑 등 온라인 플랫폼과 연계한 ‘우리술한잔’도 마찬가지. 급기야 퀵 배송까지 등장했다. 배달의민족이 지난 연말 B마트를 통해 지역 소규모 양조장 술 배달을 시작했는데, 경쟁 배달 플랫폼인 쿠팡이츠까지 뛰어들었다. 낮에 주문을 넣으면 저녁에 집에서 ‘산 넘고 물 건너온’ 전통주를 음미할 수 있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과음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던 회식 문화가 쇠퇴하고 집술·혼술이 선호되는 세태다. 관계의 매개체였던 술이 개인 기호품적 성격이 짙어지는 과정으로도 읽힌다. 판로를 뚫지 못해 고전하던 전통주가 플랫폼과 취향의 흐름에 올라타고 집 앞에 성큼 다가왔다. K술의 르네상스를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2026-04-15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