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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외교의 맛과 향, 황남빵과 오감차가 빚은 K브랜드
2025년 APEC 정상회의는 경북 경주와 부산을 세계 외교의 무대로 끌어올린 역사적인 행사였다. 그 기간 세계의 시선은 영남권으로 향했고, 예상치 못한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경주의 ‘황남빵’과 부산의 ‘비비비당 오감차’다. 하나는 맛으로, 하나는 향으로 외교의 순간을 완성한 ‘두 개의 K브랜드’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선물을 받은 뒤 ‘맛있다’라고 언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황남빵은 순식간에 외교의 상징이 되었다. 짧은 한마디가 지역의 전통빵을 세계적 브랜드로 바꿔 놓았다. 그 이후 황남빵 본점엔 긴 줄이 이어졌고, SNS에서는 ‘정상빵’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전통의 맛이 외교의 언어가 된 순간이었다.
또 부산의 대표 찻집 브랜드 비비비당은 지난 7월 경주 힐튼호텔에 입점하며 APEC 정상회의의 향기를 더한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난달 29일, 미국 대통령의 객실에는 비비비당 경주 힐튼점이 준비한 오감차(五感茶)가 웰컴 티로 올랐다. 그는 “향이 깊고 부드럽다”고 평했다. 짧은 멘트 하나가 다시 한 번 한국의 다도 문화를 세계의 뉴스로 만들었다. 부산에서 태어난 브랜드가 경주 무대에서 한국의 향을 전한 것이다. 비비비당은 이후 ‘트럼프 찻상 세트’를 출시해, 그 외교의 순간을 관광 상품으로 확장했다. 외교의 찻잔이 관광의 체험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10월 24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관광 프로그램 운영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현장에서 느낀 건 단 하나였다. 외교의 장면은 사라지지만, 그 기억은 관광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황리단길과 불국사, 경주엑스포공원에 이어 부산의 누리마루 APEC하우스, 김해공항 내 미·중 정상회담장 ‘나래마루’까지. 영남권 전체가 ‘외교의 기억을 품은 관광지도’가 되고 있다. 이 공간들을 하나의 APEC 외교 루트로 연계한다면 ‘기억의 회의장’은 ‘체험의 관광길’로 새롭게 살아날 수 있다. 행사 기간 약 25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통역·교통·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헌신했다. 그들의 참여와 시민들의 협력이 있었기에 이번 APEC은 단순한 정상회담이 아니라 ‘경북과 부산이 함께 만든 문화외교의 장’이 될 수 있었다.
외교의 순간이 시민의 손끝에서 완성되었고, 그 경험은 앞으로 지역 관광의 품격을 높이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남빵과 오감차, 맛과 향으로 전한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전통의 현대화’다. 두 브랜드 모두 지역의 문화와 미학, 환대를 담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재해석했다. 이는 부산과 경북이 함께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관광 협력의 모델이기도 하다.
‘APEC맛과 향 시리즈’ 같은 공동 브랜딩을 추진한다면 영남권은 ‘외교의 도시이자, 미각의 도시’로 세계에 각인될 것이다. 2025년 APEC은 경북의 외교 무대이자 부산의 환대 무대였다. 황남빵의 맛과 오감차의 향이 만난 이 여정은 이제 ‘영남 관광의 이야기’로 다시 쓰이고 있다. 기억을 유산으로, 유산을 미래로, 그 여정의 시작은 여전히 따뜻한 황남빵의 달콤함과 비비비당 오감차의 향기 속에서 피어나고 있다.
2025-11-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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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복된 수산업 홀대, 더 이상은 안 된다
지난 6월 3일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가 바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이다. 취임 후 6월 5일 첫 국무회의에서는 해양수산부를 신속히 이전할 것을 지시하였으며 부산 3선 국회의원인 전재수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발탁되며 대한민국의 해운과 물류, 수산업 거점도시인 부산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해양수산부와 함께 산하 공공기관도 동반 이전한다는 계획으로 일부 지자체와의 지역 갈등과 정치적 논란이 불거졌지만, 대한민국의 글로벌 해양강국과 지방 소멸 대응을 위해서는 이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압도적으로 커서 부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40여 년간 수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적극 환영한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에서 계획하고 홍보하고 있는 정책들을 들여다보면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북극항로 개척, 해운산업 위기대응 펀드 확대 등 해운 관련 정책이 대부분이어서 수산업과 관련된 정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수산인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전달했지만 그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해운업에 집중되어 있는 정책으로 수산업이 홀대받고 있다는 것은 해양수산부가 존폐를 반복하는 기간 내내 나왔던 전국 100만 수산인들의 하나된 목소리였지만, 이재명 정부의 조직 개편을 살펴보면 수산업은 여전히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수산업은 1차 산업으로써 농업과 더불어 우리 국민들의 식량을 책임지는 풀뿌리 산업이며 30억 달러 이상의 수출로 나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수산인들은 수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오래전부터 수산 전담 차관 신설을 요청하였고, 신임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도 청문회에서 수산 전담 차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7월 25일 부경대학교에서 개최된 이재명 대통령과 전재수 장관이 참석한 타운홀 미팅에서조차도 수산업 발전과 관련된 어떠한 설명도 없었으며, 필자 역시도 시간 관계상이라는 이유로 미팅이 형식적으로 끝이 나며 준비한 건의사항을 직접 전달하지 못하고 아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수산업은 현재 유례없는 위기로 어려움에 처해있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어족 자원이 급감하였고 동해에서 잡히던 오징어가 이제는 서해에서, 흑산도에서 잡히던 홍어가 이제는 군산에서, 제주도에서 잡히던 방어가 이제는 동해에서 어획되는 등 어종들의 서식지가 바뀌자 어선들의 조업지 역시도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끝없이 상승하는 어업 경비와 현실과 맞지 않는 수산 정책들은 어업인들이 더 이상은 업무에 종사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현실에 맞는 법 개정 등으로 수산업의 활성화를 지원해야 하는 정부이지만, 1953년 제정된, 70년도 넘은 수산업법은 오히려 규제에 규제를 더해 가면서 지금은 우리 수산인들을 옥죄고 있다. 현재 수산업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어선의 조업구역, 선박 톤수 제한 등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만든 규제를 그대로 수산업법에 적용시킨 아주 낡은 법이기에 하루빨리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지금 수산업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산재해 있는 상황이다.
제21대 정부에서는 위기에 처해있는 수산업을 반드시 살려야 할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 막중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우리 수산인들의 협조도 필수라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언제라도 적극 협조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해운과 수산업의 균형있고 공정한 정책으로 수십년간 이어져 내려온 수산업 홀대론을 이제는 꼭 종식시켜서 대한민국 수산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모습을 기대한다.
2025-11-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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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덕신공항 건설과 국가계약제도
가덕신공항은 부산 가덕도에 새로 조성되는 국제공항으로 기존 김해공항의 용량 한계를 극복하고 부산 및 주변 지역의 교통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건설이 준비되고 있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김해공항 국제선 이용 현황을 보면 2023년 648만 명, 2024년 895만 명, 국제선 화물은 출발 기준으로 2022년(6784t) 대비 2024년(5만 98t)에 약 7배 증가해 여객 이용은 물론 항공 화물도 동반 성장하고 있다.
가덕신공항 입지 결정 시 많이 비교 검토된 간사이국제공항도 기존의 오사카 이타미공항이 포화상태가 되어 확장해야 했으나 시가지 내에 위치하여 소음 민원, 주변 산악 지형으로 인한 비행안전문제, 토지 취득의 어려움 등으로 오사카에서 남서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인공섬을 조성하여 20m의 연약지반을 개량하고 30m 높이의 상부토를 매립하여 해상 공항으로 건설하게 되었다. 준공 후 50년간 8m 침하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건설하였으나 개항 당시 이미 8m가 침하하였고 현재도 매년 7cm씩 침하하고 있다. 2018년 9월에는 태풍 제비로 인해 공항 전체가 침수되며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1987년 1단계 공사를 착공하여 1994년 개항할 때까지 8년의 공사기간 동안 30조 원 공사비가 40조 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우리나라 대형 공사 입찰 방식은 종합평가낙찰제, 일반경쟁입찰, 우선 협상에 의한 계약 등의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가격, 일정, 품질 등의 계약조건 확정방식으로 계약되기에 단기간에 계획된 미흡한 기본계획이나 기본설계를 기초로 건설사가 실시설계하여 계약한다는 것은 건설사가 많은 리스크를 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전-마산간 복선 전철 건설사인 A사는 턴키방식계약으로 공사를 진행하다 낙동강 연약지반 통과 구간에서 연약지반 파괴 현상이 나타나 복구공사에 1조 원 이상의 추가공사비를 부담하고 5년 이상의 준공기한이 미루어져 국민 불편과 함께 기업의 손실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종합평가낙찰제는 참여 시공사가 짧은 시간에 조사 설계하여 소수의 평가위원들이 밀실에서 평가하여 낙찰자를 선정함으로 설계 도면의 적정성, 공법의 타당성, 시공성이 기술자문회의를 통하여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계약조건이 확정되기에 국내 굴지의 건설사가 여러 가지 사유로 계약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간사이공항,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등 대부분 해상공항은 설계기간 제외하고 7~8년간 공사기간이 소요되었다. 연약지반 공사의 현실은 시공 중에 현장사고 발생 또는 공사 후 하자발생이 다반사적으로 일어나 설계자, 시행자, 도급자 간의 분쟁과 공사사고, 부실공사, 국고낭비, 노동력낭비, 하자분쟁, 민원 발생 등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첫째, 연약지반 공사에 따른 설계 품질의 불량, 둘째, 현장지반 조사 시험자료의 불비, 셋째, 비전문가의 설계 수행, 넷째, 설계심의위원의 검토 불비, 다섯째, 계획시행자의 소홀한 계획 추진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공사 계약 전에 실시설계를 충분히 검증하고 부산신항 건설, 거가대교 건설 과정에서 연약지반에 대한 경험을 축적한 다수의 지역 전문가 자문을 거치는 것이 사업비와 공사기간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제언한다.
2025-11-1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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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선원 조세체계, 실질적 조세형평 실현해야
요즘 내항 선원들 사이에서 ‘같은 바다, 다른 세금’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현재 외항 선원은 월 500만 원까지 근로소득이 비과세되지만, 내항 선원은 월 20만 원의 승선 수당만 비과세되어 무려 25배의 차이가 난다. 바다 위에서, 선박에서, 같은 위험을 감수하며 동종 동질의 일을 하지만 세금은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제59조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세법은 법률주의와 평등원칙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그런데 내항 선원은 단지 ‘항로의 구분’이라는 행정적 기준에 따라 외항 선원과 다른 세제 적용을 받고 있다. 이는 조세 법률주의가 보장해야 할 실질적 형평을 훼손하는 것이다.
외항 선원에 대한 비과세 확대는 과거 수출입 중심 해운정책의 산물로,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외항에 세제 혜택을 집중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내항 해운은 더 이상 부차적인 산업이 아니라 전국 480여 유인 도서를 연결하며 국민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국가 해상 교통체계의 마지막 연결 고리이자 생명선이다.
내항 선박들은 ‘비상 대비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비상사태 시 전략물자 수송의 핵심 자원으로 동원된다. 이는 국가 해상물류와 안보를 지탱하는 최후의 인프라라는 뜻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공공성과 국가의존도가 높은 산업이 세제 형평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은 정책의 역진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항 해운 현장의 현실은 심각하다. 내항 선원 중 60세 이상이 60%를 넘어섰고, 젊은 인력은 불공정한 처우와 낮은 실수령액 탓에 바다를 떠나고 있다. 결국 내항 해운은 노후 선박과 고령 인력에 의존하며, 이 악순환의 근저에는 바로 ‘같은 바다 다른 세금’이라는 제도적 차별이 있다. 내항 선원 비과세 한도를 월 300만 원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헌법적 형평 회복의 문제이며, 산업정책 측면에서는 인력 유입과 세대 교체를 유도하는 구조개선 장치다. 공정한 조세제도 없이는 해운산업의 지속 가능성도, 국가 해양력의 기반도 유지되기 어렵다.
여야는 이미 제21대 대선 당시 ‘선원 소득 비과세 범위 확대’를 공약했고,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 국회 청문회에서 그 약속을 재확인했다. 물론 조세 당국에서 볼 때는 외항선원의 경우 국외 소득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고 내항 선원의 경우 국내 근로에 해당하기 때문에 선원이라는 명목만으로는 내항 선원에게 동일한 비과세 혜택을 주기가 어려운 면도 있다. 그러나 선원 근로에 대한 이해와 실질적 조세 형평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동종 동질의 근로에 대해서 비과세 혜택도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은 균형과 형평을 지향할 의무가 있다. 내항 선원 비과세 확대는 공정을 바로 세우는 법의 책무이며, 내항의 바다를 다시 움직이게 할 정의의 출발점이다. 공정한 세제 개선을 통해 대한민국의 내항 해운이 다시 숨을 쉬기를 바란다.
2025-11-0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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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안문 망루 정상회담의 의미…반미·반서방 전선
시진핑은 지난 9월 3일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천안문 망루정상회담을 꾸몄다. 여기에 그는 북·중·러 정상을 중앙석에 위치시켜 66년 만에 반미 전선을 굳건히 했다. 이로서 김정은은 시진핑, 푸틴과 동등한 지위를 얻은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북한은 반미·반서방전선을 구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고, 세 지도자 간 중요한 행위자의 지위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서 김정은이 마치 개선장군처럼 귀국했다.
북·중·러는 힘을 역전시켜 새로운 3자동맹의 성격을 띠울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동북아에서 새로운 세력균형을 형성할 전망이다. 시진핑은 반미·반서방 세계에 도전하기 위해 이 같은 힘의 급격한 변화를 필요했다. 이 변화에 김정은과 푸틴을 중심부에 세운 것은 전략적인 배려인 동시에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시진핑은 베이징 망루의 짧은 연설에서 “인류는 다시 평화냐, 전쟁이냐의 선택에 직면했다”는 매우 도전적인 발언을 했다. 또한 “중국인민은 역사적으로 올바른 편에, 인류문명의 진보의 편에서 평화 발전의 길을 추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80년 전의 2차세계대전을 회고하면서 “정의와 악, 빛과 어둠, 진보와 반동의 생사를 가르는 결투에 직면한 중국은 적과 맞서 싸웠다”고 선언했다.
세인들이 그의 이러한 선언을 들을 때 중국이 진보주의 외피를 쓰고 평화를 지향하는 것처럼 느낄지 모른다. 그래서 트럼프가 비개입주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인상을 그들에게 풍길지 모른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은 평화와 안정을 위해 법에 기초한 국제질서 건설·수호할 능력이 본질적으로 없다. 중국은 자유주의와 그 가치들을 체질적으로 지킬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반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천안문 망루의 세 지도자들을 트럼프가 어떻게 비개입주의를 통해 저지하고 대항할지 서방세계는 심히 의심스러운 입장에 처해 있다.
이번 망루 정상회담은 정상 간 단순한 우의를 다지는 수준을 크게 넘어 분명히 반미·반서방 연대를 구축한 것으로 보여 새로운 냉전 시대를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북한과 러시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열병식에 중국은 세계 전역 사정권을 갖는 DF-61 미사일, 항모킬러 양지-21, 초대형무인잠수정 AJX-002 등 첨단무기를 과시한 것은 바로 새로운 세력균형을 구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대한민국의 안보와 외교는 새로운 기로에 섰다. 트럼프는 한미동맹 관계를 경시하면서 무자비한 관세를 부과하는 하는 한편, 새로운 투자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세계 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한 희생을 더 이상하지 않겠다는 비개입주의로 전환하고 있다. 비개입주의로 인해 나토 세력이 약화되는 동시에, 한미동맹도 이완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현대-LG 합작으로 주지아주에서 자동차 배터리 공장을 그들의 전액 투자로서 건설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서투른 비자 발급으로 빚어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전문 기술자들을 초청하고도 불법이란 죄목을 씌어 수감을 채운 채 감금하는 유치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72년의 혈맹 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한국은 대미 외교를 강화하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적극적 동맹 파트너십을 재형성하고, 동북아 지역 평화 역할과 인도·태평양의 평화를 위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또 국제관계가 더 다원화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6월 헤이그 정상회담에 불참한 것은 서방외교에 대한 마이너로 작용한다. 따라서 미국과 역할 분담을 스스로 하겠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명, 즉 스마트파워외교(smart power diplomacy)를 전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이러한 외교 자세로 신냉전이라 불리는 북·중·러의 새로운 전선에 지혜롭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윈스턴 처칠 총리의 국제정치에 대한 ‘현실주의 감각’(sense of realism)이 새삼 떠오른다.
2025-11-0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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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책은 현장에서 자란다…어촌이 수산의 미래다
한국 수산업은 더 이상 섬처럼 고립된 1차산업의 틀에 머물 수 없다. 기술은 일정 수준 개발되었고, 제도와 예산도 어느 정도 마련되고 있다. 그럼에도 산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속도보다 방향, 성과보다 구조의 문제이다. 기술과 제도, 현장이 따로 움직이는 방식으로는 변화의 파고를 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산업 운영 체계의 전면 재설계이다. 실험실에서 완성된 기술이 현장으로 옮겨오지 못하고, 현장에서 드러난 문제는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 기술은 바다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고, 제도는 성과를 되돌아보며 진화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해양수산부와 산하 공공기관의 부산 이전은 단순한 행정 주소 변경이 아니다. 중앙 집중 체계를 풀고 지역 중심 거버넌스로 전환하는 제도 실험이자 정책 전환의 기회이다. 부산에는 국립수산과학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수산자원공단 등이 자리하고 있다. 정책 수립과 집행, 기술 개발과 실증이 한 생활권 안에서 맞물릴 때 실행력은 배가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떻게 연결해 움직이느냐’이다. 정책은 중앙에서 설계되더라도 성과는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우리 수산업에서 그 현장은 바로 어촌과 섬이다. 이곳은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정책을 시험하고 검증하는 살아 있는 곳이다. 실험실이 아니라 바다에서, 회의실이 아니라 어업 현장에서 구현된 정책만이 현장에 반응하며 변화의 동력이 된다.
전남 신안, 경북 포항, 강원 양양 등에서 조성 중인 스마트양식 클러스터는 첨단기술을 실증하고 표준화하는 거점이 될 수 있다. 반면 욕지도, 거문도 같은 섬은 정책 실험의 효과와 파급력을 세밀하게 확인할 수 있는 최적의 현장이다. 거점과 도서의 기능을 나누면서도 전략적으로 연결하면 기술 확산성과 정책 효과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첫째, 정책·연구·실증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긴밀히 연결하는 운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기관 간 기능이 겹치고 협업이 원활하지 않아 현장 중심 행정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해양환경, 수산자원, 양식기술 등 데이터가 분산돼 있어 통합 의사결정이 어렵다. 설계부터 집행, 평가, 환류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정책 플랫폼 구축이 요구된다.
둘째, 데이터 기반 정책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수온, 해양오염, 자원량, 어류 폐사율 같은 주요 지표를 실시간 분석해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를 미리 예측하고 대응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정보 축적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는 실증–분석–설계–평가의 선순환 구조이다.
셋째, 제도는 지역의 특성과 변화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전국에 하나의 잣대만 들이대는 방식으로는 어촌 현실을 반영할 수 없다. 시범지구, 규제 특례, 단계적 제도 적용 등 유연한 접근을 통해 지역 맞춤형 정책 실험이 가능해져야 한다.
넷째, 실행력을 높일 인재와 조직이 뒷받침돼야 한다. 기술은 제도를 만나야 현실이 되고, 제도는 사람을 통해 움직인다. 실무 역량, 데이터 분석능력, 정책 추진력, 지역과의 소통 역량을 갖춘 인재가 현장에 있어야 한다. 특히 청년 인재 유입과 지역 조직의 강화는 수산행정의 지속성을 좌우한다.
수산업은 이제 단순한 생산 산업이 아니다. 식량안보, 기후위기 대응, 해양바이오, 스마트양식, 지역 공동체, 정책 실험이 어우러진 복합 산업으로 변해야 한다. 바다의 작은 변화들이 지역 전체의 산업구조를 뒤흔드는 시대인 만큼, 더욱 섬세한 정책 감각이 요구된다. 결국,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와 현장 흐름을 아우르는 구조적 설계가 있어야 미래를 열 수 있다.
정책은 현장에서 자란다. 진정한 수산강국은 바다의 실험과 어촌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종이에만 머무는 정책은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수산의 미래는 ‘어디로 갈 것인가’보다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2025-11-0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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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군구, 공공기관 청사 일회용품 반입 금지해야
기후위기 대응은 우리의 삶과 관련하여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다. 우리 일상에 지구온난화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침투한 것이다. 이제는 실천할 때다. 시군구 및 공공기관 청사 일회용품 반입을 금지하는 작은 실천이 그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기관들은 주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탄소저감과 환경보호에 솔선수범해야 할 책무가 있다. 행정관서가 친환경을 따르지 않으면, 국가의 기후정책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많이 개선되었지만, 현실은 어떤가? 회의실, 접견실, 구내식당에는 아직도 종이컵과 페트병, 포장 용기들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시민에 대한 계도와 규제를 시행하는 행정관서의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특히 시군구청은 주민 생활환경과 밀접하여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 일회용품 규제는 호응을 얻기가 어렵다.
우리나라는 2020년 12월 ‘탈 플라스틱 사회’를 선언하고 일회용품 사용 규제 정책을 강화해 왔다. 커피전문점 내 종이컵 및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금지, 대형마트 비닐봉투 사용금지, 일회용 광고 선전물 사용금지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실제 추진력은 지자체에 달려 있다.
행정안전부는 공공기관 청사의 자원순환 실태조사 권고만 할 뿐, 법적인 강제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시군구 단위의 환경조례는 있지만 ‘청사 내 일회용품 반입 금지’까지 명문화된 사례는 드물다. 물론 공공기관 내부의 일회용품 전면 금지나 갑작스러운 제도 전환은 직원들의 혼란을 초래하고 업무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선도적으로 시행하는 지자체도 있다. 서울시, 광주시 등에서는 청사 내 일회용 컵 사용 제한을 자발적으로 실천 중이며, 외부 용역 계약 시 친환경 조건을 명시하기 시작했다. 부산 영도구에서도 지난 9월 1일 전 직원 대상 ‘ESG시민운동’ 교육 실시 후 올해부터 청사 내 일회용품 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이런 사례를 볼 때, 여타 지자체에서도 충분한 홍보를 통해 실현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실천은 단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민에게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육적 효과도 지닌다.
외국에서도 공공부문이 먼저 솔선하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일회용 플라스틱 지침’(SUP Directive)을 통해 플라스틱 컵, 빨대, 식기류 사용을 금지했고, 일본 도쿄도청은 회의실에서 플라스틱 생수병 반입을 제한하며 다회용 컵과 정수 시스템을 운영한다. 미국 뉴욕시도 시청사를 포함한 공공시설 행사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을 금지했다. 세계 주요 도시가 공공부문부터 변화를 주도하자 시민들의 의식도 빠르게 따라가고 있다. 우리 지자체도 이 흐름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
이러한 변화는 환경을 넘어 지역경제 활성화와도 연결된다. 다회용기 세척·공급 산업의 성장으로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 소상공인과 협력 모델도 만들어진다. 서울시는 다회용컵 회수·세척을 사회적 기업과 연계해 운영하며 일자리 창출 효과를 보고 있다. 시군구가 이를 제도화하면 지역 내 순환경제의 토대가 마련된다.
무엇보다 시민참여형 접근이 병행될 때 효과가 크다. 주민센터에서 다회용 텀블러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지역 기업이 청사 내 친환경 물품 공급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학교와 연계해 학생들이 청사 내 친환경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행정과 시민, 기업이 함께 할 때 일회용품 줄이기는 생활문화로 정착될 수 있다.
이제는 기초자치단체가 결단할 때다. 시군구청부터 먼저 일회용품 사용 중단과 청사 내에서 다회용 컵 사용 등의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청사 내 일회용품 반입 금지를 조례에 반영하고, 다회용기 순환 시스템 도입을 예산에 반영하며, 직원 교육과 시민 캠페인을 병행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작은 변화는 시민사회의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변화는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런 변화가 대한민국의 녹색 전환을 앞당기고,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5-10-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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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의 도시철도, 디지털자격시험센터를 품다
부산은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다. 2024년 영국의 유력 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부산을 아시아에서 오사카, 홍콩 등 유수의 도시 다음인 6번째로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도시 인프라를 보면 왜 부산이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 충분히 공감된다.
많은 장점 중 부산이 높은 순위를 받은 데는 편리한 도시철도도 한몫했다. 그렇다면 부산 대중교통의 중심축이자 도시의 성장과 균형발전을 이끄는 핵심 인프라인 도시철도는 부산 시민과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을까? 부산에서 최초로 도시철도가 개통되었을 때는 1985년 7월 19일이다. 도시철도 개통 이후 정시성과 빠른 이동 속도, 대용량 수송 능력, 도시 공간 활용과 확장성 등으로 이용객 수는 빠르게 증가하여 지금은 하루 약 90만 명이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이동 수단을 넘어 부산의 경제, 사회, 문화 여가생활을 영위하는 구성 요소로서 도시철도를 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이런 의미를 가진 도시철도 주요역(동래역, 광안역) 내에 부산디지털시험센터(Digital Test Center, 이하 DTC)를 개소함으로써, 국민과 밀접한 공공서비스인 국가자격시험이 325만 부산 시민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국가기술자격 및 전문자격의 현장성 강화, 산업전환, AI 활용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여 CBT(Computer Based Test)로 시험을 시행하는 전용시험장으로써 2019년부터 전국에 순차적으로 설치해오고 있다. 이번 부산시에 전국 14번째로 문을 열지만, 지하철 역사에 설치하는 것은 전국 최초이다.
공단이 시행하는 국자자격시험에는 연간 440여 만 명이나 되는 국민이 응시한다. 그 중에 학생, 취준생, 근로자 등 부산 시민이 약 32만 명이나 된다. 부산에는 DTC와 같은 전용시험장이 부족하여 균일하지 않은 서비스, 원거리 이동, 주차 부족 등 그 간 양질의 서비스에 갈증을 느꼈을 시민들에게 도시철도 중심의 대중교통을 이용한 편리한 접근과 전력, 소방안전, 보안 등 지하철 역사 내 안정된 인프라 등 기본적인 수험의 질 향상을 누릴 뿐만 아니라 역사 내 상권, 편의시설 나아가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수험자에게는 부산 관광의 기회까지 덤으로 최상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한국산업인력공단과 함께 협약을 맺고 DTC 설치를 추진하게 된 부산교통공사 역시 도시철도 이용객은 물론 상권, 편의시설의 이용률이 높아져 도시경제에도 긍정적 파급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 DTC 개소는 단순히 시험장 확대 의미뿐만 아니라, 기존 아날로그 테스트 방식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큰 흐름에 부산의 대중교통이라는 요소를 가미하여 시험에 응시하는 시민의 편의성 증대와 더불어 환경을 생각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나아가 부산의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여 부산이 더욱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5-10-2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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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의인 이수현 기념관’ 제의
2001년 1월 26일 일본 신오쿠보역에서 한국인 유학생 고 이수현 씨가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그 숭고한 희생은 그 당시 경색되었던 한일 관계를 넘어서 국경을 초월한 인간애와 용기의 상징이 되었고, 양국 국민에게 깊은 감동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사건 이후 일본 내 한국인 유학생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고, 한일 민간 교류가 활성화되는 긍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의인 이수현 씨의 어머님은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이수현 기념 장학회를 설립했고, 양국의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한일 우호의 가교 역할을 했다. 고 이수현 씨의 의로운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 그 숭고한 희생이 지닌 인류애적 가치를 미래세대에 교육하며, 나아가 한일 우호 증진의 거점 구실을 하는 ‘의인 이수현 기념관’을 그의 고향인 부산에 건립할 것을 제의한다. 부산은 한일 교류의 관문이자 6·25전쟁 당시 피란민에게 인류애를 보여준 역사적인 장소로서 고 이수현 씨의 의인 정신을 기념하기 좋은 도시이기도 하다. 20여 년이 지난 그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의 이미지가 차츰 잊혀 가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기념관 설립의 목적에는 여러 가지 다중적인 목적을 추구한다. 기억과 교육 그리고 미래를 향한 연결이다.
첫째, 의인 이수현 씨의 숭고한 정신을 영구보존하고 계승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타인을 구한 의로운 행동을 영원히 기억하고 추모하며, 그 희생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를 지속해서 되새기는 것이다. 둘째,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인간애, 용기, 희생의 확산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 국적과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알리고, 그 가치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교육과 영감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한일 우호 증진 및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의인 이수현 씨의 희생이 양 국민 간에 준 감동을 바탕으로 상호 이해와 협력을 증진하고, 미래세대에게 과거의 갈등을 넘어선 공존과 화합의 중요성을 교육하여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 여기에 부산이 가진 한일 교류의 역사적 지리적 중요성을 활용한다.
넷째, 시민의 안전의식 및 공동체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의 시민 의식, 타인에 관한 관심, 그리고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실질적인 교육 효과를 도모하여 안전하고 상호 배려하는 공동체 문화 조성에 이바지해야 한다. 다섯째, 글로벌 시민 의식 함양 및 국제적 협력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고 이수현 씨의 희생이 전 세계에 던진 메시지를 기억해야 한다. 국경과 문화를 넘어 인류애를 실천하는 의인 정신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여, 세계인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국제사회의 인류애적 협력을 촉진한다.
따라서 고 이수현 의인의 희생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와 용기의 위대한 증거이다. 그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갈등과 분열 속에서 화합과 연대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 이수현 의인의 고향인 부산에 그의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은 그의 숭고한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 그가 보여준 인류애와 용기가 미래 세대에 지속해서 영감을 줄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또 기념관의 설립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 세계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화합과 이해의 상징이며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는 중요한 공간이 될 것이다. 이는 부산을 한일 관계의 긍정적인 미래를 만들어가는 중심지로 나아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할 것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부산광역시와 한국 정부 그리고 일본 관계 기관과 시민 여러분의 깊은 이해와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한다. 의인 이수현 기념관은 의인의 삶과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인류애의 가치를 체험하며 한일 교류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반드시 부산에 의인 고 이수현 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빌어본다.
2025-10-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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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빈 상가 도시, 부산 되살릴 주거 중심 도시계획으로 전환
정부는 주택난 해소를 위해 공급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은 상가 의무비율을 줄여 주거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내놓았다. 도심 공실을 줄이고 주택난을 완화하려는 합리적 시도다. 그러나 부산의 현실은 다르다. 주택난보다 상업용 부동산 공실 누적이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부산의 오피스 공실률은 지난해 말 기준 18%대,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0%대 중반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단위계획은 상가 비율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구 암남동의 경우, 상가 비율을 50%로 정하고, 완화하더라도 최소 20% 이상을 상가로 채워야 한다. 수요가 없는 상가를 억지로 지어야 하고, 결과적으로 상가는 비고 남은 상권마저 약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가 중심의 개발이 아니라, 주거 중심의 유연한 도시계획이다. 이미 현장에서는 “상가 대신 주택으로 허용해 분양가를 낮추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부산의 용도용적제는 주거 비율이 높을수록 오히려 용적률을 낮추는 구조다. 수요가 주거에 몰리더라도 규제가 이를 억제하고 상가 비율을 강제한다. 상업지역은 본래 도시 활력을 불러내는 거점이어야 하지만 지금은 공실만 쌓이는 구조로 전락했다.
상가 비율을 줄여 주거 수요를 흡수하고, 주거 비율 증가에 따른 용적률 페널티는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주거가 필요한 곳에는 유연하게 전환이 가능해야 하며, 수요 연동형 계획을 도입해 공급을 실수요 중심으로 조정해야 한다.
부산의 미분양 문제 역시 단순한 공급 과잉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중심의 일률적 규제가 그대로 적용되면서 주거 이동성이 심각하게 막혀 있다. 산복도로와 노후 주거지에 여전히 많은 시민이 살고 있지만, 고분양가와 거래세·대출 규제가 겹쳐 이사 수요가 억제된다. 대기업 브랜드 단지는 일부 선방하지만, 지방 중소 건설사는 미분양에 직면해 생존 위기에 처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HUG 보증제도나 LH 매입도 취지와는 달리 현장에서는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HUG 보증심사는 절차가 길고, 그 사이 금융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LH 매입 기준은 현장 수요와의 간극이 커 거래 성사가 어려우며, 복잡한 행정 절차로 인해 많은 사업자가 중도 포기하고 있다. 여기에 과도한 공공기여와 상가 비율 강제가 겹치면서 분양가는 더욱 오르고, 이는 다시 미분양으로 이어진다. 결국 제도는 안전망이 아니라 시장의 발목을 잡는 구조가 되고 있다.
해법은 민간의 장기 임대 역량을 시장 안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것이다. 과거 정부가 임대사업자를 투기 세력으로 낙인 찍으며 종부세 부담이 커지고, 보증보험 가입이 막혀 전세 반환 불안까지 확산됐다. 그 결과 양질의 임대주택 공급은 위축됐고, 주거 이동성은 더 악화됐다.
이제는 민간 임대사업자 등록 제도를 실효적으로 복원해야 한다. 종부세 합산 배제, 양도세 중과 배제, 취득세·재산세 감면 등 장기 임대 인센티브를 정교하게 설계해 민간이 안정적으로 공급과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HUG와 LH는 심사와 매입 절차를 단순화하고, 부산의 상가 비율 규제와 용도용적제를 수요 연동형, 탄력형으로 재편해야 한다. 지금의 상가 용도는 임대 주거용으로 유연하게 전환 가능하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거래세와 대출 규제는 이동성 회복을 목표로 미세조정하되, 과열 우려가 있는 구간에는 상시적 안전장치를 병행해야 한다. 민간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지 않으면, 공공은 감당할 수 없는 비용과 책임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부산의 도시문제는 단순한 공급 확대나 규제 완화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규제 틀에 있다. 빈 상가가 쌓이고 주거 수요가 억제되는 구조 속에서 ‘공급’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정책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에서 평가를 받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일한 해법이 아닌 복합적이고 정교한 전략이다. 수요에 귀 기울이고, 규제를 유연화하며, 민간의 역량을 다시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산의 빈 상가를 기회의 공간으로, 정체된 도시를 회복의 무대로 바꾸는 열쇠다.
2025-10-1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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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지치기 유감
올해 여름도 매우 무더웠다. 부산은 111년 만에 가장 이른 열대야를 맞았고, 서울은 117년 만에 가장 뜨거운 밤을 맞았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동남아 국가들보다 더 더운 나라가 돼 온열 질환이 기성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무가 많은 육지의 숲세권은 한낮의 평균 기온이 섭씨 3~7도 낮아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다. 또 한 그루의 나무는 2.5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 1.8t을 내뿜어 공기도 정화해 준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때 시작된 대대적인 녹화사업으로, 이제 우리의 산야는 선진국의 우거진 숲이 부럽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도시의 숲은 선진국에 비해 열악하고 부산은 서울보다 더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선진국 중에 우리처럼 도시주택 모두를 콘크리트로 짓는 나라는 드물다. 대다수 국민이 살고 있는 콘크리트 아파트는, 한여름 햇볕에 노출되면 달궈진 바위 덩어리처럼 뜨거워진다. 단독주택에 살아본 적이 있다. 더운 여름, 지붕에 올라 호스로 물을 뿌리면, 홈통으로 흘러내리는 물이 웬만한 목욕탕 물처럼 뜨거웠다.
콘크리트 덩어리 아파트단지에는, 그래서 여름에 나무가 많아야 한다. 나무는 그 잎으로 그늘을 제공하고, 수분으로 기온을 내리게 하고, 산소로 공기를 정화하고, 그 푸르름으로 우리의 심신을 달래주며, 그 속에 둥지를 튼 새소리로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가로수는 상가 간판을 가린다거나, 전선을 보호해야 하거나, 쓰러질 우려가 있다며 잘려 나가고. 아파트의 조경수도 마찬가지로 저층 주민의 민원이라며 잘려 나가고, 낙엽이나 꽃이 떨어지면 청소하기 번거롭다며 잘려 나가고, 대나무는 죽순일 때 미리 꺾여 버린다. 웬만한 나무는 가혹한 가지치기로 고유한 수형을 잃어버릴 정도가 되었고, 가지 끝에 달린 부실한 잎사귀들은 그 사이로 보이는 휑한 하늘로 더 처량하게 보인다.
떨어진 꽃잎을 보기도 하고, 낙엽을 밟기도 하는 것이 도시에서 보기 힘든 자연의 혜택인데, 애꿎은 나무만 잘려 나간다. 오래전 모 아파트에서 임원을 할 때였다.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날마다 쓸지 말고 가끔 쓸도록 한 적이 있었는데, 주민들 모두 가을의 낙엽을 밟으며 좋아했다.
20년을 넘기며 잘 자라 무성해진 우리 아파트의 나무들이 몇 년 전 무분별한 가지치기로 싹둑 잘려 나간 이후 매년 잘려져 나가고 있다. 큰 소나무는 가지치기로 나무의 외곽 끝에만 겨우 잎이 몇 가닥 달려, 죽거나 고사 한 나무도 있고, 메타세콰이어는 긴 막대기처럼 위와 옆이 몽땅 잘려 나가 괴물이 되어, 그 우거진 그늘에 둥지 틀던 새 소리에 대한 추억도 사라져 버렸다. 수형이 아름답던 단풍나무는 심한 가지치기로 잘린 가지가 앙상한 잎새 사이로 솟아 하늘을 향하고 있다.
용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건강한 성장과 아름다운 수형을 위해 가지치기는 필요하다. 안쪽으로 향하거나 교차한 가지, 간격이 좁은 곁가지, 도장지 등은 제거되어야 하겠지만 그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가지치기는 보기에도 흉하고 나무에게도 스트레스만 줄 뿐이다. 이런 까닭에 외국에서는 가지치기의 량을 25%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나무는 나무답게 자랄 수 있어야 한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단지의 숲은 그 속이 어두울 정도지만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다. 갖다 대기만 하면 싹둑 잘리는 날 일꾼의 기계 톱 놀이에, 수십 년 자란 나무가지가 잘려 나가, 그 어둡고 서늘하던 음지가, 태양이 내리쬐는 뜨거운 양지로 변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런던은 그 많은 도시공원의 숲에 대해서 잎의 총량이 많아지도록, 수목의 UTP(Urban Tree Canopy, 수관층 면적 및 부피의 총량) 지표를 현재 21.9%에서 30%로 높여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우리도 무성한 나무가 잘 자라 새소리가 울려 퍼지고, 무더운 여름에는 기온을 낮출 수 있도록 이런 기준을 만들어 적용하면 좋겠다.
2025-10-1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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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 국제관광도시의 ‘진짜 얼굴’ 만들기 위해
2017년 파견 근무로 처음 부산에 발을 디뎠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풍경은 부산역 앞 노숙자들의 모습이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이 모습이 세계인들이 처음 마주하게 될 국제도시 부산의 첫인상이어도 괜찮은 걸까?”
그 질문은 곧 내 안에서 하나의 사명으로 바뀌었다. 이후 8년 동안 부산의 수많은 관광 현장을 누비며, ‘부산 관광의 본질적인 변화’를 고민하고 실천해왔다. 말로 하는 비전보다, 눈앞의 불편에 먼저 반응하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한 관광의 시작이었다.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는 늘 혼잡하고 무질서했다. 플래카드와 불법 주차 문제는 시민과 관광객 모두의 불만이었다. 하지만 관련 기관들과 몇달간 의견을 조율한 끝에, 구남로는 단 4개월 만에 깔끔하고 열린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부산역 앞의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부산시장, 관광국장, 코레일 관계자들과 협의하면서 조금씩 ‘부끄러운 첫인상’이 ‘환영의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모든 변화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현장의 불편함을 바로 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몸으로 체감했다.
물론, 아직도 부산에는 해결되지 않은 숙제들이 많다. 달맞이길 상권 활성화를 위한 주차 문제, 오랑대의 낙서와 환경 훼손, 외국인을 위한 관광 안내판의 오류들. 이들은 작고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도시의 품격을 결정짓는 요소들이다. 누군가 해주겠지 하고 넘기면, 관광도시는 외형만 화려한 껍데기로 남을 수밖에 없다.
관광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사람을 반기는 기술이고, 배려와 감성의 경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라는 말을 믿는다.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시민과 여행자의 눈으로 불편을 찾아내고, 관계자들과 함께 작게라도 움직이면, 그게 바로 관광이 살아 숨 쉬는 순간이 된다.
부산은 이미 매력적인 도시다. 해운대, 감천문화마을, 송도, 오시리아 등. 부산의 곳곳이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경쟁력은 도시의 하드웨어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가짐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관광의 완성은 멋진 사진을 찍는 데 있지 않다. 도시를 어떻게 기억하게 만들 것인가, 그 ‘마지막 인상’까지 책임지는 데 있다.
이제 부산은 ‘보여주는 도시(SHOW)’가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도시(LOVE)’가 되어야 한다. 오고 싶은 도시, 다시 찾고 싶은 도시, 그리고 오래 머무르고 싶은 도시. 그렇게 되기 위해 필요한 건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오늘 내가 느낀 불편함을 솔직히 말하고, 그것을 바꾸려는 작은 용기다.
부산은 국제관광도시로서 충분히 멋진 도시다. 그리고 이미 세계인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는 이 도시가 세계인에게 단지 ‘새로움’과 ‘휴식’을 넘어서, ‘마음을 움직이는 경험’을 줄 수 있는 진짜 글로벌 관광도시로 나아갈 차례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글로벌 허브 도시를 추구하는 부산의 내일을 바꿀 수 있다.
2025-10-1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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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금융 대전환 시대, 지역금융의 존재 이유와 소명
행원 시절 지점에서 근무하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 발 디딜 틈 없던 객장은 단순한 금융창구 이상이었다. 시민들 일상의 중심이었고 대한민국 수출 전초기지의 맥박이 뛰던 현장이었다. 섬유·신발·의류·수산물가공품 등 대표 수출품들은 지역은행 창구를 지나 세계로 향했다. 월말이면 셔터문이 내려가도 어음 할인과 외환 업무를 위한 거래처 직원들로 붐볐다.
당시 지역은행은 시중은행보다 앞선 기업대출·무역금융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문턱은 낮았고 대응은 빠르며 무엇보다 지역기업의 리듬을 가장 잘 이해하는 파트너였다. ‘지역은행’에 일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이름 없는 수출업자들의 꿈은 그렇게 지역은행 유리창 너머에서 시작되었다. 지역은행과 지역경제도 활황기였고 자부심도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많은 것이 변해갔다. 산업 구조가 바뀌었고 공장은 해외로 이전했으며 부산은 ‘산업의 중심지’ 타이틀을 잃어갔다. 금융도 그 흐름을 따라갔다. 시중은행의 공세뿐 아니라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경쟁자도 나타났다. 지역은행의 존재감은 작아졌고 생존의 고민까지 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지역기업들의 현실도 고달팠다. 수도권 중심 심사와 규제 속에서 지역은행은 여전히 숨 쉴 틈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고 비가 오는데 우산을 뺏을 수는 없었다. 지역은행은 지금도 지역의 체온과 정서에 가장 가까운 금융의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의 ‘금융의 대전환’ 제안은 이런 지역금융에게 다시금 ‘존재의 이유’를 묻고 있다. 자본·자산의 성장 중심에서 벗어나 산업과 지역을 살리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 이는 단순히 규제나 정책을 조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자금흐름·금융기능·금융생태계를 노동·산업·미래성장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정부 차원의 큰 그림이다.
해양수산부를 포함한 유관기관 부산 이전 가시화, 국정과제에 포함된 북극항로 개척 어젠다로 인해 지역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역금융이 단지 ‘지역에서 영업하는 금융’이라면 그 존재 이유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지역을 읽고 지역산업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상생형 금융, 정책금융과 민간의 가교 역할을 하는 신(新)금융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
또한 순이익의 약 15%를 지역에 환원하고 70% 이상 일자리를 지역인재에게 제공하고 있지만 지역금융은 앞으로 그 생산적 역할은 더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지방금융의 존재 이유가 곧 국가균형발전의 핵심전략이자 ‘금융 대전환’의 기반 인프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객장을 찾던 거래처는 예전 같은 호시절은 아니지만 여전히 지역을 지키고 있다. 간혹 “지역에만 너무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들을 때면 필자는 지역 기업인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누군가는 함께 경청하고 공감하며 손을 잡아줘야 한다. 그들과 함께 지역의 옛 명성을 되찾고픈 지역금융 수장으로서 작은 희망이기도 하고 자존심이기도 하다.
2025-10-0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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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청년의 날, ‘사회복지사’라는 이름 다시 묻는다
필자의 외조모 고 진봉연 여사님은 6·25 전쟁 직후 부산 동구에서 ‘호림천사원’을 운영하셨다. 정부 지원이 부족하던 시절, 부모를 잃은 아동에게 시설은 삶의 울타리였다. 그 영향으로 어머니는 ‘고아원 출신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훗날 닮은 얼굴이 헛소문을 지웠지만, 우리 가족 삶 속에 사회복지의 뿌리가 깊다는 사실만은 남았다.
2년 전 자원봉사자 대상 강연을 마치자 한 봉사자가 “원장님 잘 계세요?”라고 물었다. 짧은 인사였지만 당시의 기억, 사람들의 모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외할머니가 시설을 이어 2·3세 경영으로 갔다면, 필자도 ‘복지 금수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아이들이 자라자 더 받지 않고 시설을 정리했다. 필자는 정서적으로는 족벌의 후예일지 몰라도, 현장에서는 ‘맨땅에 헤딩’해온 사회복지사이다.
이 경험은 ‘가족 경영’을 다르게 보게 했다. 우리 사회복지는 전쟁 직후 해외 원조와 민간 구호, 교회·구호단체, 가족·친척의 돌봄에서 출발했다. 그 흐름 속에 가족 중심 운영은 자연스러웠다. 실제로 성실히 운영되는 가족 법인이 많고, 회계·인사 규정을 스스로 더 엄격히 지키려 애쓴다. 그럼에도 일부 세습·비위가 전체를 낙인찍으며 ‘가족 경영=문제’로 단순화한다. 현장을 묵묵히 지켜 온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프레임이다.
필자는 2007년 자격증 발급자가 30만 명도 안 되던 때 현장에 들어왔다. 10년 뒤 100만 명을 넘었고 지금은 160만 명에 육박한다. 한때 연간 5만 명도 안 되던 발급이 이제는 해마다 10만 명 가까이 쏟아진다. ‘이러다 대한민국이 복지국가 되겠네’라는 냉소가 나올 정도다. ‘사회복지사입니다’라는 말이 ‘운전면허 있습니다’처럼 흔해졌고, 현장에서는 이 호칭을 꺼내기 민망해졌다.
그럼에도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은 여전히 내 가슴을 뜨겁게 한다. 명함에도 직함보다 사회복지사를 먼저 새긴다. 문제는 전공·비전공의 구분이 아니다. 어떤 경로든 교육·시험·실습으로 전문성을 담보해야 한다. 학점은행제나 평생교육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느슨하게 운영하는 구조와 일부 교육기관의 상업화다. 국가장학금과 저렴함을 내세우고 ‘곧 시험이 도입된다’는 불안을 팔아 자격증 장사를 하는 관행은 멈춰야 한다.
지난 9월 7일 사회복지의 날, 보건복지부 타운홀에서 예비 사회복지사들은 낮은 임금, 과중한 업무, 폐쇄적 문화, 허술한 자격제도를 지적하며 “내가 이 길을 걸어도 괜찮을까”라고 자문했다. 이는 개인의 푸념이 아니라 체계의 균열에 대한 경고이다.
해법은 분명하다. 생활임금과 휴식권, 합리적 근로시간으로 처우를 바로잡고, 민주적 운영과 공정 인사로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더불어 교육·실습기관 관리와 사회복지사 2급 시험 도입으로 자격의 신뢰를 복원해야 한다. 본질은 가족경영 여부가 아니라 사회복지사의 수준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이다.
사회복지사는 자격증 소지자가 아니라 복지국가로 이끄는 전문 인력이다. 이 이름이 다시 무게와 존중을 회복할 때, 예비·청년 사회복지사에게 희망과 목표가 선다. 청년의 날은 지났지만, 전문성 회복과 안전한 일터라는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2025-10-0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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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만의 ICAO 참여, 세계 항공 안전 위한 필수 조건
교통은 문명의 진보를 떠받치는 토대이다. 20세기 비행 기술이 등장한 이래 인류의 활동 반경은 끊임없이 확장되었고, 문명 또한 그만큼 번영하였다. 특히 항공 운송은 거리와 시간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세계화와 공급망 형성을 가속화하였다. 그러나 항공 교통의 발전은 새로운 과제를 동반한다. 점차 혼잡해지는 공역 속에서 어떻게 안전성과 효율을 동시에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세계 항공 안전 기준을 마련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기능을 한다.
대만은 동북아와 동남아의 교차점에 위치해 대체 불가능한 지정학적 위치를 지닌다. 2024년 타오위안 국제공항의 국제선 여객 수는 세계 13위, 화물 처리량은 10위를 기록하였다. 같은 해 대만 비행정보구역(FIR)은 164만 회 이상의 항공편을 관제하였으며, 이는 대만을 오가는 여객뿐 아니라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환승 항공편까지 포함한다. 예컨대 서울에서 싱가포르, 자카르타, 마닐라로 향하는 항공편 대부분이 대만 FIR을 통과한다. 이는 대만이 지역 항공 네트워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대만과 한국의 관광 교류 또한 항공의 중요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1992년 양국 간 상호 방문객은 18만 명에 불과했으나 정책과 민간 교류의 노력으로 2019년에는 245만 명으로 13배 증가하였다. 2024년에도 상호 방문객은 243만 명에 달해 양국은 서로에게 세 번째로 큰 관광객 송출국이 되었으며, 그 중 대만인의 한국 방문은 143만 명이고, 특히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에서는 대만인이 1위를 차지하였다. 현재 양국 간 직항 노선은 주당 약 270편으로 인천, 김포, 청주, 대구, 부산, 제주를 잇고 있다. 이러한 긴밀한 교류들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항공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항공 안전에는 결코 우연이 없다. 올해 중화항공은 두 차례의 착륙 활주로 오류 사건을 겪었으며, 감독 기관은 즉시 조사관을 파견해 ‘제로 톨러런스’ 원칙을 명확히 했다. 부산 김해공항은 지형적 특수성으로 인해 강한 측풍과 산곡 기류가 잦아 착륙이 어렵다. 이에 따라 중화항공은 최신 기종인 A321neo를 타이베이–부산 노선에 투입하였다. 이 기종은 더 높은 뒷바람 착륙 기준을 충족해 회항 및 지연 위험을 효과적으로 줄이고, 승객에게 보다 안정적이고 안전한 비행을 제공한다. 이는 대만 승객뿐 아니라 해당 공역을 통과하는 모든 항공편의 안전을 지키는 조치이다.
대만 항공 산업의 전문성은 국제적으로도 지속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대만 교통부 민용항공국은 또한 지속가능 발전을 적극 추진하며, ICAO의 탄소배출 감축 제도(CORSIA)를 국내 법규에 반영하였다. 2025년에는 지속가능 항공 연료(SAF) 시범 계획을 시작해 탄소중립을 향한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이 ICAO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노력은 국제 규범과의 정합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세계 항공 안전 협력 체계에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
대만을 ICAO에서 배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 항공 안전에는 국경이 없다. 정보 공유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면 전체 시스템이 위협을 받는다. 대만의 ICAO 참여를 지지하는 것은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지역과 세계 항공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다.
국제 사회, 특히 대만과 항공로로 긴밀히 연결된 국가들은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항공 안전은 전 인류의 공동 이익이다. 대만이 ICAO에 참여할 수 있어야 수백만 명의 한국인과 다른 국가 여행객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으며, 세계 항공 운송의 회복력을 강화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책임을 지는 모든 이해 당사자를 포함해야만 ICAO는 ‘안전한 하늘,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비전을 진정으로 실현할 수 있다.
2025-09-29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