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뒷모습
신호철 소설가
뒷모습에 느끼는 다양한 감정
말보다 진한 언어 담고 있어
본인 모르는 자기 모습일지도
때론 뒷모습이 더 오래 기억돼
일하다가 문득 고개 들었을 때,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다른 동료의 등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땐 동료의 등이 유난히 든든해 보인다. 근거 없는 신뢰가 뭉클 피어오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인다. 누군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이 안정감은 ‘뒷모습’이라는 단 하나의 장면으로 전달이 된다.
집에 돌아오면 요리 중인 아내의 뒷모습을 본다. 오래된 앞치마, 반쯤 걷은 소매, 그리고 익숙한 냄새. 아무 말이 없어도, 말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긴 장면이다. 익숙할수록 소중해지는 수많은 시간이 함축된 아내의 뒷모습은 하루를 지탱하게 하는 힘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집에 들른 딸아이를 기차역에서 배웅했다. 출발 시각이 임박해 캐리어를 끌고 오르는 아이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타지에서 다녀야 하는 고단한 직장생활, 부모 품을 떠나 홀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 그 모든 것이 딸아이의 어깨에 앉아 있는 듯하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늘 아이의 등 뒤에 마음을 건넨다.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
뒷모습은 때때로 말보다 진한 언어를 주고받는다. 말이 없기에 더 큰 여운을 남기고, 말이 없기에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을 불러온다. 그런 야릇한 감정을 처음 느낀 건, 어린 시절, 방학이 끝나 외갓집을 떠날 때였다.
기차역을 향해 구불구불한 농로를 따라 걷다가 문득 돌아보니, 멀리 농로의 끝단에 선 외할머니가 아직도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다. 세차게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걷다 돌아보면 그 자리에 계셨고, 다시 한번 돌아보면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셨다.
나는 처음으로 내 뒤에 누군가의 감정이 머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그때는 그저 내 뒤가 간지럽고 가슴이 울렁거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느낌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오늘 아침, 출근하려 문을 나서고, 무심히 계단을 내려가던 순간, 또 한 번 내 등이 간질거렸다. 퇴근 후, 저녁 식사를 하며 아내가 말했다.
“당신 요즘 좀 힘들어 보여요.”
“나? 쌩쌩한데?”
아내에겐 뭔가가 평소와 달라 보였던 모양이다. 무엇이 달라졌기에 그런 말을 했을까. 뭐가 달라졌는지는 나도 모른다. 뒷모습은 타인의 시선에만 존재하는 ‘나’이기 때문일까. 그렇기에 나는 종종 ‘또 다른 나’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말없이 내 등을 바라보는 아내, 멀어지는 나를 지켜보던 친구, 혹은 나를 아는 누군가의 기억 속 한 장면으로 남아 있는 뒷모습. 어쩌면, 뒷모습이야말로 ‘나’에 가장 근접한 모습일지 모른다. 본인도 알지 못해 민낯처럼 드러내는 것이 바로 뒷모습일 테니 말이다.
한참 후, 친구의 기억에서 꺼내진 한 장의 사진 같은 이야기로, 혹은 가식적인 웃음으로 서로 악수하고 돌아선 타인의 뒷모습에서 나는 문득 ‘나’의 뒷모습을 대면하게 된다. 그렇듯 뒷모습은 가장 늦게 마주하는 ‘나’다.
마주 본 뒷모습은 의외로 적나라하다. 내 욕망의 흔적이며, 삶에 남겨진 상처이며, 미처 숨기지 못한 속마음이기에 그렇다. 앞모양은 반듯하게 연출했을지 몰라도, 뒷모습은 그 연출을 위해 구깃구깃 접혔거나 너덜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차마 직시하고 싶지 않은 모습일 수 있다.
우린 흔히 앞모습으로 상대를 기억하지만, 어떤 이는 뒷모습이 더 오래 기억될 때가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도 누군가에게 어떤 뒷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뒷모습으로 내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대면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