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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내란 몰이'에 빠진 민주, '계엄의 강'서 허우적대는 국힘
내일이면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만 1년이 된다. 우리 현대사를 장식한 숱한 고비들이 있었으나 1년 전 느닷없이 선포된 비상계엄은 그 이후의 대한민국을 전혀 다른 국가로 환골탈태하게 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헌정 질서를 헌법의 정신에 걸맞도록 신속하게 회복한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은 그 저력을 만방에 떨쳤다고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으나 국민들은 비상계엄 선포 이전과 다름없거나 오히려 더욱 악화한 정치권의 행태와 마주하는 중이다. 선거 앞 강성 지지층 결집에만 여념이 없어 보이는 여야 정치권의 이 같은 모습에서는 미래 청사진을 일절 찾아볼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선 비상계엄 이전에 여당이었다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권을 잃은 국민의힘이 보이는 분열적 퇴행이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년이 다 됐지만 국힘은 아직까지도 계엄에 대한 사과 여부조차 당내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안철수 의원 등 몇몇 의원들의 개인적 사과 의사 표시는 있었으나 당론은 아직도 분열된 상태다. 심지어 사과를 할 경우 여당의 프레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의견까지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심지어 윤 전 대통령과의 결별 문제를 놓고는 당내 강성 친윤들이 아직도 ‘윤 어게인’을 외치는 수준이라 향후 당론 결집 방향에 따라 당의 앞날이 달라질 우려도 큰 상황이다.
국힘이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틈을 타 민주당은 다시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확정하는 데 당력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1일 최고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사법개혁안 처리, 특검 연장 등 소위 ‘내란 청산’ 3법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도 3일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내란 청산에 대한 의지를 밝힐 계획이다. 비상계엄 선포 1년이 지나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관계자들이 대부분 법정에 섰고 판결만 앞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민주당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여당이 되고 나서도 국정 수행보다 내란 몰이에 더 치중한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판이다.
12·3 비상계엄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대통령의 그 행위를 놓고 탄핵 결정을 한 헌법재판소가 내렸다고 할 수 있다. 헌재는 탄핵 결정 당시 대통령의 비상계엄이라는 반헌법적 수단 선택을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도 민주당의 전횡이 국정 마비와 국익 저해라는 대통령의 인식을 낳았을 수 있다는 비판을 잊지 않았다. 그 결정 이후에도 국힘은 아직 계엄의 반헌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민주당은 전횡을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인다. 서로가 강성 지지세력만 바라보며 극단을 치닫는 모양새다. 비상계엄을 겪고도 그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한 반성이 없는 여야 정치권의 행태에 중도의 상식적 국민들은 계엄 때만큼이나 절망하고 있다.
2025-12-02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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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해수부 부산 이전의 의미 해양수도특별법으로 완성해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부산시당이 국회의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지원하는 특별법 처리에 환영 논평을 쏟아냈다고 한다. 국회는 지난달 27일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부산 해양수도 이전기관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통과시켰다. 특별법은 해수부와 산하기관의 부산 이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이주 기관과 직원의 정착 지원 체계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 부산을 법적으로 ‘해양수도’로 명시하면서 명확한 지위를 부여했다. 해수부 이전 특별법 처리는 당연하다. 해수부는 이달 개청식을 한 뒤 부산에 안착한다. 해수부 이전은 해양수도 부산을 향한 로드맵 중 1단계 매듭을 지은 것이다. 진정한 해양수도 건립을 위한 해수부의 과제 실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부산의 거대 양당이 해수부 이전 특별법 처리에 환영 일색의 목소리를 냈지만, 안일한 인식으로 비친다. 해당 법안의 핵심인 해수부 기능 강화와 조직 확대가 빠져 ‘반쪽짜리 입법’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부산으로 이전한 해수부가 실질적 해양정책 컨트롤타워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현재 산업통상부가 담당하는 해양플랜트·조선산업 기능과 국토교통부 등에 분산된 국제물류 기능을 해수부에 이전해야 한다. 북극항로 시대를 앞두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양당은 해수부 기능 보강과 해양 공공기관 이전 계획을 포함한 구체적 로드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전재수 해수부 장관은 동남권투자공사, 해사법원, 산하 공공기관과 해운 대기업 등 설립·이전 계획이 담긴 ‘해양 패키지’ 로드맵을 내년 1월 중순 공식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각 기관·기업의 입지 선정과 이전 일정 등 구체적인 윤곽도 이때 드러날 것이다. 해수부가 부산 시대를 어떻게 개척하느냐가 중요한데 이는 해양수도특별법 제정에 초첨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부산항만산업총연합회 등 26개 단체가 지난달 28일 해양수도 육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단순한 부산 이전 차원을 넘어 해양산업 생태계 재편과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해양수도특별법 제정은 필요하다.
조선·물류·에너지 기능의 해수부 이관 요구는 꾸준히 제기됐지만, 해수부 부산 이전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해수부 이전 특별법에는 빠지게 됐다. 이번에 매듭짓지 못한 해수부 기능 강화, HMM 등 해운 대기업과 해양 관련 기관 이전이 뒤따라야 진정한 해양수도를 만들 수 있다. 나아가 조선·해운·플랜트·친환경 에너지 등 분야별 집적 지원, 북극항로 개척, 해양금융 활성화를 종합적으로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이것이 해양수도특별법이다. 부산이 글로벌 해양 허브로 도약하려면 산업·인재·재정·국제 협력을 지원하는 종합적인 법적 틀 마련은 필수다. 해수부 부산 이전의 의미는 해양수도특별법이 완성될 때 더욱 빛날 수 있다.
2025-12-0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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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쿠팡 초대형 고객 정보 유출, 산업계 근본 대책 세워야
대한민국 성인 4분의 3에 해당하는 개인정보가 유출돼 온 국민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 1위 업체인 쿠팡 고객 정보 3370만 건이 지난 6월부터 해외 서버로 빼돌려졌는데도 해당 업체는 깜깜이였다. 온라인으로 물품을 구매한 사용자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 연락처 등 개인 식별 정보가 통째로 넘어갔으니, 시쳇말로 ‘다 털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일당의 범죄 행각에 치를 떨던 악몽이 겹쳐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 또 다른 사이버 악당들이 우리 국민의 신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사기·폭력에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적 공분이 부족한 탓인지, 자괴감을 떨칠 수가 없다.
쿠팡 측의 보안 사고 대응은 실망스럽다. 쿠팡은 유출이 시작된 이후 5개월이나 지나서야 발견했다. 중국 국적 직원을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이미 출국한 상태라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사이 민감한 개인정보는 해외 서버로 옮겨졌고, 피해 규모는 처음 4500명에서 단기간에 7500배로 확대됐다. 그럼에도 쿠팡은 “결제·로그인 정보는 안전하다”며 책임 축소에 급급했다. 최근 해킹과 고의 반출을 통한 정보 유출이 통신(SK텔레콤·KT)과 카드사(롯데카드) 등 전 산업과 전 플랫폼으로 확산하고 있는데, 이들 사건에는 우려스러운 공통점이 있다. 범죄의 잠복과 뒤늦은 인지, 축소 급급으로 이어지는 패턴의 반복이다.
이번 쿠팡 사건은 개인정보 보호 위반으로 개인정보보호위로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1348억 원) 처분을 받은 SK텔레콤(약 2324만 명)을 뛰어넘는 규모다. 문제는 이들 대기업이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P)’ 인증을 받았지만 실제 사고에 취약했다는 점이다. ISMS-P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정보보호 인증 제도다. 쿠팡은 2021년과 2024년 인증을 받았지만, 이 기간에 네 차례 유출이 있었다. 사고가 되풀이되면서 제도에 대한 신뢰 기반은 무너졌다. 인증 심사 및 사후 감시 체계의 강화 대책은 즉시 마련돼야 한다. 국민 보호뿐만 아니라 산업의 신뢰 회복에도 절실하다.
산업 전반의 정보보안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온 국민이 스팸, 피싱, 스토킹, 금융사기 등 2차 범죄 위험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의 신뢰 기반도 흔들린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범국가적이고, 전 산업계를 대상으로 한 대책이 시급한 이유다. 정부는 뒤늦게 전수 조사와 과징금 부과에 나섰지만, 근본적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감내해야 할 정보보호의 기준을 높여야 한다. 기업은 고객의 정보 유출 방지에 기업 존립이 걸려 있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를 인권·안전 문제를 넘어 안보·산업에 직결되는 국가 인프라 리스크로 인식하고, 법·제도 정비와 거버넌스 체제 구축에 나서야 한다.
2025-12-01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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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가덕신공항 지연 김해공항은 북새통, 시민만 속 터진다
정부가 가덕신공항 개항을 당초 2029년에서 2035년으로 6년이나 미루면서 부산 시민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장거리 국제 노선을 이용하려면 인천공항까지 올라가야 하는 서러움을 감내해야 하는 기간도 늘어났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절실했던 남부권 관문공항의 적기 개항이 불발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해국제공항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국제선 이용객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더욱이 국제선 이용객이 올해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전망되면서 가뜩이나 포화 상태인 김해국제공항은 연일 북새통이다. 정부의 무책임한 처사에 시민들의 속만 타들어가고 있다.
김해공항 국제선의 연간 수용 인원은 830만 명이지만 연말까지 1040만 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됐다. 일본과 중국·동남아로 향하는 이용객들이 좁은 공항에 대거 몰려들면서 수속 지연 등으로 분통을 터트리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제선 출국 수속까지 1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예측 불가능한 출국 소요 시간 때문에 이용객들이 길게 줄을 선 모습이 일상화되고 있다. 출국장뿐만 아니라 은행과 식당가 등에서도 극심한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주차공간 부족으로 주차를 희망하는 차량들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김해공항의 풍경은 수도권 일극주의의 폐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김해공항 포화에 따른 시민 불편은 예고됐다. 당초 엑스포 유치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김해공항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덕신공항 2029년 개항은 시급한 상황이었다. 적기 개항은커녕 6년이나 늦추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부산의 이런 상황을 아예 무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산과 경남, 울산 등 동남권 주민들은 2035년까지 김해공항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가. 더욱이 김해공항 이용객은 계속 증가할 예정이다. 지역에서는 “이래서야 국가를 어떻게 믿겠느냐”라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책은 가덕신공항 개항을 최대한 앞당기는 것이다. 김해공항 여객 터미널 확충 등 급한 불을 끌 대책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
김해공항 이용객들의 불편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부산 도시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공항 인프라가 부족하면 부산 관광산업도 치명타를 입는다. 반면 인천공항은 4단계 확장을 마치고 5단계 확장을 고민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6년이나 늦춰진 가덕신공항의 향후 공항 운영 경쟁력은 더욱 추락할 수밖에 없다. 국책사업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정부는 지금이라도 가능한 모든 방안을 총동원해야 한다. 가덕신공항을 하루빨리 개항하고 당초 예정된 각종 철도 등 연계 교통 인프라 구축도 늦춰선 안 된다. 특히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는 김해공항 이용객들과 시민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답해야 한다. 범정부 차원의 납득할 만한 대책을 촉구한다.
2025-12-0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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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누리호 4차 발사 성공, 민간 주도 우주산업에 박차를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II)의 4차 발사가 민간 주도로 27일 성공했다. 이날 오전 1시 13분 발사된 누리호는 13기의 위성을 계획된 궤도에 안착시키며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강력한 엔진으로 당초 계획된 총 비행시간인 21분 24초보다 3분 정도 단축한 18분 25초에 비행이 종료됐다. 누리호에 의해 고도 600㎞ 궤도에 올려진 차세대 중형위성 3호는 이날 오전 1시 55분 남극 세종기지 지상국과 첫 교신을 했으며, 부탑재 위성 12기 중 일부도 잇따라 지상국과 교신을 완료했다. 우리나라는 이번 성공으로 독자적 우주 수송 능력을 입증함으로써 우주 기술 자립과 상업용 발사체 시대를 열게 됐다.
이번 발사에서 의미가 가장 큰 부분은 우주산업생태계가 국가·정부 기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에서 벗어나 민간 주도의 ‘뉴 스페이스’ 시대로 진입했다는 점이다. 민간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체 제작·조립을 총괄하면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주관하는 발사 운영에 참여했다. 정부와 민간 기업, 국가연구소가 하나의 팀이 되어 수행한 최초의 민관 공동 발사다. 누리호 1~3차 발사까지는 총조립과 발사 운용 모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맡았다. 이번 4차 발사 성공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향후 5·6차 발사를 거쳐 민간 주도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주 개발에 민간 기업 역할이 갈수록 커질 것은 자명하다.
이번 발사는 국내 최초로 야간에 진행됐다. 차세대 중형위성 3호가 고도 600km의 태양동기궤도를 돌며 오로라를 관측하기 위해 태양 빛의 간섭이 없는 시간대에 적도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위성은 우주 자기장 측정 임무를 수행하고, 무중력 상태에서 3D 프린터로 줄기세포를 키우고 생체 조직을 만드는 우주 바이오 연구 역할을 한다. 12기의 부탑재 위성들은 우주 쓰레기 폐기 기술 실험, 기상 관측에 나선다. 또 우주에서 신약 개발을 수행하는 첫 단계로 항암제 개발을 위한 단백질 실험을 한다. 이를 계기로 민간 참여를 활성화해 무궁무진한 우주 개발의 상업화와 산업생태계 조성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으로 우리가 7대 우주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우주 선진국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발사체의 경제성 확보가 관건이다.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 수준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선 반복 발사로 기술 안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민간 주도 우주 시장은 2035년까지 1조 8000억 달러(약 2630조 원)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의 글로벌 우주산업 점유율은 1% 정도다. 향후 발사에서 민간 이양 분야를 대폭 늘리고 발사체 기술을 더 고도화하는 것이 과제다. 정부와 민간이 전략적 투자와 협력·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산업적으로 특화할 수 있는 위성 개발 등 틈새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2025-11-28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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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해사법원 항소심 전담 재판부 해양수도 부산에 와야
부산과 인천에 각각 해사법원 본원을 두기로 여야가 잠정 합의함에 따라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연내에 국회를 통과할 전망이다. 10년 숙원이 풀려 기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밀려온다. 단독이 아닌 관할 구역의 분산이 지역에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어서다. 대기업과 법무법인의 수도권 쏠림이 해사사법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정치권은 항소심 재판부 신설 필요성을 외면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해사법원 유치 운동 초기부터 전문성을 갖춘 항소 법정을 요구했지만, 지역 이기주의로 비쳐져 묵살되기 일쑤였다. 해사사법 체계의 기틀은 해양수도에서 다져지는 게 순리다. 항소심 재판부가 부산에 와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지금까지 해상 분쟁을 전담하는 법원이 없어 국내 기업들은 영국, 싱가포르, 홍콩 등 해외 법원과 중재 기관에 의존해 왔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해마다 국외로 유출된 비용이 3000억 원 이상이다. 조선·해운 강국의 자부심이 무참한 대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박, 해상 사고, 국제 물류로 얽힌 송사를 다루는 데에 있어 전문성과 효율성이다. 부산 해양 관련 업계와 법조계, 시민단체가 한목소리로 항소심 단일화를 요구하는 이유다. 1심 법원은 양립 체제로 가더라도 항소심은 전문성을 갖춘 법관이 배치된 전담 재판부에 맡겨야 한다. 항소심 법원까지 수도권과 지역으로 분산되면 해사사법과 해양산업 모두 경쟁력이 저하된다.
부산에는 해사중재, 해상보험, 선박금융, 물류, 조선 등 법률 수요가 몰린 해양 클러스터가 움트고 있다. 해상 분쟁에 전문성을 갖춘 법조 인력이 부산에서 육성되고, 집중돼야 산업과 사법의 연계가 이뤄지고, 국제적 신뢰와 위상도 확보할 수 있다. 27일 부울경 15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갖고 “해사사법 체계의 중심은 해양 관련 기관과 기업, 연구개발 기능이 집중될 부산이어야 하므로, 항소 전담 재판부는 부산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요구는 부산·인천 양립 체제에 대한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반쪽짜리’ 해사법원이 ‘해양수도 부산’ 구상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표출로 보는 게 타당하다.
해양수산부는 연내 부산에 이전하고, 부산을 거점으로 북극항로 개척에 나선다. 국가 해양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해양 클러스터 조성도 본격화한다. 글로벌 해양수도 도약이 종국의 목표다. 이 상황에서 해사사법이 수도권 집중의 우려가 있는 방향으로 엇나가서는 안 된다. 1심 양립에서 발생할 비효율·중복의 우려도 부산에 전담 항소심 재판부를 두면 일정 정도 해소된다. 여야 정치권은 정치적 타협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선 안 된다. 국토균형발전의 원칙과 산업·사법의 시너지 효과를 기준으로 로드맵을 재설계해서 법안에 반영해야 한다. 해사법원은 부산이 제안했고, 부산이 최적지이며, 부산이 준비돼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2025-11-2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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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영화·영상도시 완성할 국립 영상박물관 물 건너가나
해양수도와 함께 부산의 또 다른 미래상으로 꼽히는 영화·영상도시 완성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 사라질 판이 됐다. 4000억 원대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될 관련 국립 시설의 부산 유치가 성사 일보 직전 무산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시설 하나의 유치 무산 위기가 뼈아픈 것은 그것이 영화·영상도시 구축의 마지막 퍼즐이어서만이 아니다. 그 속에는 정부 부처의 복지부동과 지역 균형발전 철학 외면에다 소극적 대처로 일관한 부산시의 안일함까지 총제적인 난맥상이 고스란히 집합돼 있어서다. 이미 벌어진 사태를 꼼꼼히 복기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런 사태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부산일보〉 취재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부터 4000억 원대의 예산을 투입해 국립 영상박물관과 영상자료원을 부산에 유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이 방안에 대해서는 문체부가 지난해 유인촌 당시 장관이 부산 북항에 해당 시설 건립을 직접 선언한 이후 부처 차원에서 사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기까지 한 바 있다. 부산시도 이에 따라 해당 시설 건립에 적합한 부지 선정을 위한 용역을 진행하기도 했다. 당초 계획대로였다면 올해 안에 부산 내 건립 부지까지 확정됐을 이 사안은 정권이 바뀌면서 기획재정부가 8월 예산 심사에서 관련 시설 과다를 이유로 예산을 500억 원으로 삭감하면서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다.
기재부가 관련 예산을 대거 삭감한 것은 이재명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철학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다. 이 과정에서 이전 정부부터 영화 관련 기관 부산 집적화를 추진해 온 문체부는 재심 요청도 하지 않고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권 교체기에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의 전형적인 모양새다. 예산 삭감 이후 해당 시설 건립이 노후 건물 리모델링 방식으로 전환되자 이번에는 부산시가 소극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해당 시설이 들어설 2000평대에 이르는 노후 건물을 지역 내에서 찾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사업 추진을 사실상 손놓아 버린 것이다. 이러는 사이 경기도 등이 되레 해당 시설 유치를 제안하고 나서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창하게 부산국제영화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노무현 정권부터 이어져 온 혁신도시 조성 계획에 따라 이미 부산으로 이전해 와 자리를 잡고 있는 기존 영화·영상 인프라와 관련 기관들을 꼽아보면 영화·영상도시가 부산의 미래상인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이전 정권이 관련 기관을 부산에 집적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교통 접근성 등을 감안해 부산 북항에 국립 영상박물관과 영상자료원을 설립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합리적이다. 이 같은 필연과 당연, 합리성을 토대로 한 정당한 업무조차 정부와 부산시가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무책임으로 일관한다면 어느 국민이 공직사회를 믿고 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2025-11-27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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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주당 사법개혁안,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일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사법부의 인사·행정 등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외부 인사가 주축이 된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해 그 기능을 대신케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초안을 내놓았다. 사법개혁안이 발표되자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무력화될 수 있는 데다 외풍이 개입할 우려도 크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위헌 소지가 있고, 사법부를 민주당의 성향에 맞춰 길들이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의구심마저 자아낸다.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을 저해할 여지도 다분하다. 여당은 사법개혁안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입법 과정에서 법원 내부 의견 등을 듣고 반영하는 등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민주당 ‘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5일 국회에서 입법공청회를 열고 사법개혁안을 공식 발표했다. 공청회에서 여당은 법원행정처 폐지 및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퇴직 대법관의 대법원 처리 사건 수임을 5년간 제한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법관 정직 처분의 최대 기간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법관징계위원회도 외부 인사가 과반을 차지하도록 했다. 이번 개혁안은 지난달 27일 TF 구성 이후 약 한 달 만에 구체화됐다. 속전속결로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기저엔 이재명 대통령 재판 재개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어떤 경우에도 법원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개혁안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을 촉발한 것은 사법행정위원회 신설이다. 개혁안에 따르면 13명으로 구성되는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가운데 최대 9명에서 최소 7명 정도가 비법관으로 구성된다. 이 경우엔 판사 인사가 집권 세력에 휘둘릴 수 있다.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국민의힘은 개혁의 탈을 쓴 사법부 장악 의도에 불과하다는 격한 반응이다. 이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은 “법원이 마음에 안 든다고 법원을 바꿔 장악하겠다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이번 개혁안은 자칫 정치권이 사법부 인사 통제권을 갖겠다는 뜻으로 비춰질 개연성이 크다. 나름의 명분이 있더라도 국민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꼼수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여당 구상이 헌법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헌법은 제101조 제1항에서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라고, 제104조 제3항에서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라고 각각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청래 여당 대표는 사법개혁을 연내 처리하겠다고 한다. 위헌 논란까지 불거진 사법개혁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개혁안은 조희대 대법원장 및 계엄 사건을 다루는 판사들에겐 모종의 경고로 비칠 수도 있다. 사법부 독립성은 공정한 재판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일방적이고 위헌적인 개혁은 국민 저항을 초래할 뿐이다.
2025-11-27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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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수영만 요트경기장 재개발 첫 삽, 글로벌 마리나 거듭나야
명실상부한 해양수도를 꿈꾸는 부산의 대표적 해양레저 시설로 꼽혀온 수영만 요트경기장을 재개발하는 사업이 마침내 첫 삽을 뜨게 됐다. 2008년 민간투자사업 제안 접수 이후 무려 17년이 넘는 기간 동안 표류해 온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점에서 일단은 환영할 만하다. 1986년 아시안게임 요트경기장으로 조성된 이후 노후화가 심각해지면서 2008년 당시에도 재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난무할 정도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해당 사업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복잡하다. 아직도 논란의 불씨가 남아 있어서다. 논란 처리 여부에 따라 이 공간은 갈등의 공간이 될 수도, 글로벌 마리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재개발 사업은 2008년 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현 아이파크마리나)이 부산시에 민간투자사업 제안서를 내면서 공식화했다. 이후 2014년 1600억 원 상당의 실시협약이 맺어지면서 사업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재개발지에 들어설 호텔을 둘러싼 경관과 일조권 문제를 비롯해 학교정화구역 논란이 불거지자 부산시는 2016년 사업자 지정을 취소했다. 결국 장기간 행정소송에 돌입한 끝에 2018년 사업자가 부산시에 승소했으나 사업은 끝없이 지연됐다. 이후 아이파크마리나와 부산시가 호텔을 짓지 않는 것 등으로 합의하고 논의를 진행한 끝에 1월 변경 실시협약을 맺으며 사업이 재가동됐다.
지난 24일 재개발 사업 현장에서 착공식이 열리면서 해당 사업은 공식화했으나 착공식 당일 민원이 불거지면서 또 다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민원 제기 주체는 인근 주민이 아니라 요트경기장에서 요트 임대사업을 하고 있는 영세 사업자들이다. 사업자들은 해당 재개발 사업 시공사가 당초 7개월 예정이었던 해상공사 기간을 20개월로 늘려잡는 바람에 요트 계류장 장기간 폐쇄로 생계가 위협받는다고 아우성이다. 시는 재개발 사업이 또 다시 차질을 빚지나 않을지 전전긍긍하며 중재에 나서고 있으나 시가 서둘러 착공식부터 열 것이 아니라 사업자 설득 같은 사전 정지작업을 먼저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간 표류하던 수영만 요트경기장 재개발 사업의 착공은 영세 요트 임대사업자들의 생계 위협 논란 이외에도 아직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더 남아 있다. 민간이 1600억 원 상당의 돈을 들여 재개발을 하는 대신 30년 동안 6000억 원에 이르는 공유수면 점사용료를 면제받는 것이 합당한가를 둘러싼 특혜 논란이 대표적이다. 시민들이 부산을 대표하는 해양레저 산업 인프라의 재개발 본격화에 마냥 박수만 보내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 해당 사업이 실질적인 글로벌 마리나 공간 마련으로 이어지려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고민도 뒤따라야 한다.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민간 수익의 공익 재투자 방안 등에 대한 고민은 그 시작이 될 터이다.
2025-11-26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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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치솟는 환율에 속수무책… 지역 경제 직격탄 우려된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부산 지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환율은 지난달 초 1400원대에 진입한 뒤 한 달 반 만에 1470원대로 치솟았다. 머지않아 1500원대에 육박할 기세다. 부산 경제가 고환율 위기에 유독 취약한 이유는 ‘가공 무역’ 중심의 산업 구조 때문이다. 부산본부세관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부산 지역 수입 물량 중 원자재 및 중간재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올해 10월까지 부산 지역 누적 수입액 123억 6500만 달러 가운데 원자재 수입액은 46억 9900만 달러로 전체의 약 38%에 달했다. 달러 초강세 현상이 지속된다면 지역 경제에 직격탄이 될 우려가 크다.
수입 원자재 세부 품목별로는 철강재가 19억 300만 달러로 가장 비중이 컸으며 화공품(7억 9400만 달러), 비철금속(4억 2500만 달러) 등의 순이었다. 이들 품목은 부산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부품, 조선기자재, 기계부품 제조에 필수적인 기초 소재들이다. 특히 철광석, 유연탄 같은 핵심 원료를 100% 수입하는 철강업계는 고환율, 미국발 관세 폭탄,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 등으로 ‘삼중고’를 겪고 있다. 신발과 의류·섬유업계도 고환율로 인해 아우성이다. 물류비와 원부자재 가격이 동반 상승해 원화 약세로 인한 가격 경쟁력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역 산업 생태계의 주축인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현재 환율 수준이 지역 기업들이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트럼프발 악재’로 지난 2월 환율이 1450원 수준으로 치솟았을 당시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조사에서 중소기업들이 제시한 손익분기점 평균 환율은 1334.6원이었다. 환율이 1400원대 중후반을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대다수 중소기업이 이미 ‘손실 구간’에 진입한 것이다. 대기업과 달리 지역 중소기업들은 환리스크를 관리할 전담 부서나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선물환이나 옵션 같은 금융 상품을 통한 ‘환헤지’(위험 회피) 수단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급격한 환율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당할 공산이 크다.
경상수지 흑자 행진과 국내 증시 활황세에도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기존의 환율 공식이 깨지고 있다. 개인의 해외 주식 투자, 기업의 해외 투자 등으로 달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구조적 변화가 주요인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고환율이 고착화된다면 장기적으로 중소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환율 급등으로 원자재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납품 지연, 손해 만회를 위한 원가 절감, 투자 축소 등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줄도산할 수도 있다. 정부가 고환율로 피해를 겪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정책자금과 수출입 물류비 지원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2025-11-26 [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