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항재개발 활성화 위한 추진 주체 단일화 필요하다
2000년 말 당시 안상영 부산시장은 부산의 나아갈 방향이 한국에 또 다른 수도를 하나 만드는 것에 필적하는 ‘해양수도 부산’이 돼야 한다며 수도 선포식을 가졌다. 이에 따라 부산지역에서는 정부 예산 협의 과정에서부터 부산만의 차별성을 강조하겠다는 수준을 넘어 아예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촉구하자는 시민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법적 의미의 해양수도는 언감생심이 돼 버렸고 아직도 해양 자치권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게 부산의 현주소가 됐다. 해양수도 부산 선포식이 있은 지 25년이 되는 올해 때마침 조기대선 바람까지 불기 시작하자 부산지역에서는 올해를 진정한 해양수도 부산의 해로 만들 수 있는 기회로 삼자는 움직임이 들끓는 중이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부산지역 시민단체와 학계, 법조계, 노동계, 해양업계는 17일 부산시의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해양수도 부산’ 선포 25주년을 맞아 국제해양중심 도시 부산 구축을 촉구했다. 이들은 컨테이너 화물 처리 세계 7위, 환적 물동량 처리 세계 2위의 세계적인 허브항이 부산항의 위상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아직도 핵심적인 과제들이 진척되지 못함으로써 부산이 국제해양중심 도시로 도약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최우선 해결 과제로 북항재개발 추진 주체의 단일화 문제를 꼽았다. 해수부와 부산항만공사, 부산시로 추진 주체가 나눠짐으로써 사업 진척이 답보를 거듭하기 일쑤였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전담 특수목적법인 설립 등 단일 추진 주체 확립 필요성까지도 덧붙였다. 이 외에도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그동안 해양수도 부산 실현을 위해 숱하게 제시돼 온 과제들이 다시금 소환됐다. 해양수도 위상과 기능 제고를 위한 관련법 제정, 해양정책 관련 해양자치권 확보, 부산해사전문법원 설치, 북극항로 개척 극지 관문도시 구축, 영도 해양수산클러스터의 부산해양단지 재정립을 통한 클러스터 기능 활성화, 공동어시장 현대화를 통한 국제적 수산물 유통 플랫폼 추진 등이 그것이다. 망라된 정책 과제들을 보노라면 선포식 25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이뤄지지 못한 해양수도 부산의 꿈이 얼마나 켜켜이 좌절돼 왔는지를 돌이켜 보는 듯해 가슴이 아플 정도다. 지역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반영되는 데에는 여러 경로가 있으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무래도 선거 공약에 반영하는 것일 터이다. 공약이 정책이 되고 정책이 현실이 되는 선순환이야말로 이상적인 정책 실현이기도 하다. 때마침 오는 6월 3일에는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열린다. 각 후보 캠프들마다 본격 레이스 돌입 직전 지역 공약을 만들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지금이 공약 반영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으로 보인다. 이날 분출된 해양수도 부산 구축을 위한 열망이 각 후보들의 공약 수첩에 빼곡히 들어찰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설] 의대 증원 원점 지역·필수의료 개혁까지 멈추면 안 돼
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 규모인 3058명으로 확정했다.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려 총 5058명으로 증원키로 한 계획을 1년여 만에 원점화한 것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7일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 조정 방향’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부가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의대생들의 3월 내 전원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의대 교육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대학 총장과 의대 학장단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일부 의대에선 학생들이 ‘등록 후 투쟁’ 방침을 밝히며 수업 거부에 나서 실질 복귀율은 40개 의대 전체 학년 평균 25.9%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국민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의대 증원 정책을 포기한 것은 의대 교육 파행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특히 의대생들에 대한 정부의 신뢰를 회복해 수업 참여율을 높이겠다는 고육지책으로도 읽힌다. 의대생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한 정부와 대학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 가장 시급한 현안은 미래 의사를 양성하는 의대 교육의 정상화다. 교육 붕괴로 인한 불편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이제 수업 일수를 채우지 못하거나 수업을 거부하는 의대생에 대해서는 학칙에 따라 유급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각 대학과 의료계, 정부도 제대로 된 의대 수업과 실습이 이뤄지도록 최대한 힘을 모아야 한다. 정부는 이번 발표로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동시에 상실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중증질환자들이 참고 견딘 고통이 물거품이 됐다”라고 반발했다. 시민·노동단체도 의대 증원 원점화로 의료 개혁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와 의료계 갈등으로 지난 1년여 동안 국민들은 큰 불편을 감수했다. 지역에서는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 ‘뺑뺑이’를 도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시기를 놓쳐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연들도 이어졌다. 의대생들은 이런 점을 감안해 교육 정상화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전공의들도 하루빨리 현장으로 복귀해야 마땅하다. 당초 의대 증원은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의료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이번 증원 백지화가 의료 개혁 포기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의료 개혁의 답이 아니라고 그동안 강조했다. 이제 정부가 한발 양보한 모양새를 취한 만큼 의료계도 서둘러 전향적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의 극심한 의료 불편과 고통을 외면한 채 어물쩍 과거로 회귀하겠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다. 의료계는 직역 이기주의라는 국민 비난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은 비정상인 현재의 지역·필수 의료를 정상화할 방안을 정부와 함께 적극 모색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도 중단 없는 의료 개혁 추진으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사설] 사천 우주항공청 핵심 기능 뺀 껍데기만 남길 텐가
지난해 5월 우주항공청이 경남 사천시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판 나사(NASA·미국항공우주국)’로 불리는 우주항공청은 대한민국을 우주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시킬 우주항공 생태계의 핵심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하지만 개청 1년을 앞둔 현재, 우주항공청의 정체성을 무시하는 정부와 정치권 등의 도 넘은 처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우주항공청 개청일인 5월 27일을 국가기념일인 ‘우주항공의 날’로 지정했다. 하지만 다음 달 열릴 첫 기념식을 우주항공청 본사가 있는 사천이 아닌 경기도 과천 국립 과천과학관에서 개최한다고 한다. 사천은 물론 경남 도민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설립된 우주항공청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주항공청의 핵심 기능인 연구개발 본부를 사천이 아닌 대전에 둬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법안도 국회 계류 중인 상태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22명은 지난해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우주항공청에 우주항공기술의 연구개발 및 우주항공산업의 육성·진흥 관련 사업을 담당하는 본부를 둔다’는 기존 조항을 ‘연구개발 관련 사업 본부의 소재지는 대전광역시로 한다’로 바꾸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연구개발 기능을 대전으로 빼간다는 것은 사천 우주항공청을 빈 껍데기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이는 대한민국 국익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사천 시민 등 경남 도민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천 지역 시민단체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사천시와 경남도는 글로벌 우주항공도시로의 도약을 목표로 우주항공청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을 아우르는 ‘우주항공복합도시’ 조성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주항공 강국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관련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에도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일부 정치권이 우주항공청의 백년대계를 훼손하는 행태를 이어가는 것은 경남은 물론 동남권 전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주항공청은 남부권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천 등을 우주항공산업의 메카로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개청 1년을 앞둔 지금은 우주항공청이 제대로 성장하도록 범 정부적 지원을 쏟아부을 때다. 그런데도 우주항공청의 핵심 기능을 다른 광역지자체로 빼가려는 시도가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것이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조기 대선을 앞둔 지금, 혹여 정치적 논리에 편승해 국가 미래 성장 동력인 우주항공 생태계를 훼손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 행정 기능만 남겨진 우주항공청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수도권 중심주의 사고에 젖은 비상식적 행태들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한다.
대물림
한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이룬 부모를 둔 아이들은 상처를 받기 쉽다. 어지간한 성취를 이뤄도 항상 부모와 비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처를 딛고 대를 이어 같은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이룬 가문에 대해 세상은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 가문만의 독특한 유전자가 있는지, 아니면 그 가문만의 독톡한 교육법이 있는지에 대해. 이는 유전과 환경 중 과연 어느 것이 다음 세대의 능력을 이끌어 내는지를 놓고 벌어지는 오랜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독보적 업적이라는 표현에 걸맞기로는 인류 역사상 퀴리 가문을 넘어설 사례는 없을 듯하다. 2대에 걸쳐 수상한 노벨상만 모두 6개에 이른다. 퀴리 부인 본인이 남편과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데 이어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첫딸인 이렌도 남편과 함께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퀴리 부인의 둘째 사위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난 뒤엔 둘째 딸 이브가 “우리 집엔 나만 빼고 모두 노벨상 수상자”라는 푸념을 남기기도 했다.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퀴리 부인의 첫딸인 이렌. 연구와 학술 활동으로 바빴던 퀴리 부인의 슬하에서도 이렌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건 부모의 탁월한 유전자의 영향이었을까. 교육계에서는 이렌이 접했던 독특한 교육환경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렌은 9세에 부친을 여읜 뒤 13세 되던 해부터 모친이 교수로 근무하는 소르본느 대학에서 생활한다. 여기서 이렌은 모친의 동료교수이자 저명한 물리학자였던 폴 랑주뱅으로부터 수학을, 훗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는 장 페렝으로부터 물리를 배우는 등 당대 최고 석학들로부터 과외를 받는다. 인류 역사상 역대 최고 ‘어벤저스’급 과외진이 이렌을 가르쳤던 것이다. 교육계는 천재성의 싹이 이런 교육에서 열매를 맺었다고 본다.한국 프로야구를 평정하고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연일 인상적인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바람의 손자’ 이정후는 대를 이어 독보적 업적을 남기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이런 활약이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유전자 영향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인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성장 이면엔 부친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써내려간 부친의 스타 절친들이 줄곧 함께하며 남긴 영향도 깊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유전과 환경의 세례를 고루 받은 2세들이 부모를 이어 독보적 활약을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인간에 대한 유쾌한 시각이 절로 생긴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편집국에서] 기로에 선 한국 영화 그리고 부산
다음 달 개막하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한국 영화는 20일 현재까지 단 한 편. 부산에서 활동하는 정유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안경’(Glasses)이 유일하다. 장편영화의 경우 칸영화제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경쟁, 비경쟁, 주목할 만한 시선 등 모든 부문의 초청 리스트에 한 편도 이름을 올리지 못해 충격을 줬다. 우리 장편영화가 칸영화제에서 한 편도 초청받지 못한 건 2013년 이후 12년 만이라고 한다. K팝과 함께 K컬처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며, 잘나가던 영화산업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칸영화제 초청 여부가 한 나라의 영화 수준을 결정짓는 척도라고 볼 수는 없다. 간혹 영화제 개막 전에 추가 초청작을 발표하는 경우도 있어 정 감독의 ‘안경’을 이을 낭보가 들려올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우리 영화계에서는 이번 성적표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미 우리 영화산업은 곳곳에서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올 3월 극장 관객 수는 지난해 대비 4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액 역시 47% 줄어들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는 영화진흥위원회 측은 장재현 감독의 ‘파묘’가 1000만 영화 반열에 오른 지난해 3월과 달리, 올해는 그만한 히트작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극장가의 실적 부진도 심각하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운영사인 CJ CGV가 희망퇴직과 영화관 폐쇄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았던 영화관 산업은 팬데믹 이후 잠시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급성장 속에 콘텐츠 소비 패턴이 다변화하면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 제작됐다 미처 개봉하지 못한 이른바 ‘창고 영화’조차도 이제는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도시’를 표방하는 부산 역시 관련 산업의 부진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 부산영상위원회의 촬영 지원작은 총 74편으로,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역 로케이션 촬영 수요가 줄어든 탓이다. 국내 제작사와 방송사 등이 수도권에 밀집된 탓에 대규모 인원이 이동해야 하는 지역 촬영이 더 큰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의 지난해 총 대여 일수도 315일(5개 작품)로, 2023년 694일(6개 작품)과 비교해 절반 이상 줄었다. 코로나19 이전에 스튜디오 대여율이 90%대를 기록하는 등 매년 ‘포화’ 상태였던 것과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부산영상위원회는 해외 작품을 적극 유치하는 방식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아시아 영화 허브’로 자리매김한 부산국제영화제(BIFF)도 갈 길이 멀다. 지난 2년간 공석이었던 집행위원장 자리에 지난달 BIFF 프로그래머 출신 정한석 위원장이 선임되긴 했지만, 조직 재정비 등 쌓인 과제가 적지 않다. 특히 올해 BIFF는 30주년을 맞아 경쟁 부문 신설 등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에 더욱 더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 이런 가운데 올해 행사는 추석 연휴와 전국체전 일정 등으로 10월이 아닌 9월로 앞당겨져 행사 개최까지 남은 시간도 촉박하다. 기로에 선 한국 영화와 영화도시 부산의 재도약을 위해 영화진흥위원회, 부산시, BIFF, 부산영상위원회, 영화의전당 등 관련 기관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영진위는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등의 뒤를 이을 신진 감독의 발굴과 지원에 힘을 쏟아야 한다. 부산시와 부산영상위, BIFF는 생각의 전환과 새로운 시도에 과감히 나서야 할 때다. 인천이나 대전 등 서울에서 가까운 도시들과의 로케이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국내 영화제들이 프로그램 다양화와 영화인 참여 확대 등으로 매해 성장하고 있는 만큼 BIFF도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새 역사를 써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부산이 BIFF의 명성에만 기댄 채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가는 영화도시라는 타이틀마저 다른 도시에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젊은 영화인들이 만든 수준 높은 작품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행사나 정책을 확대할 필요도 있다.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된 정유미 감독은 “칸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게 영광스럽다”면서 “(이를 계기로)관객을 만날 기회가 늘어나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칸 이후 한국에서도 상영을 많이 하고 싶다. 관심을 갖고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그동안 우리 영화산업을 키워온 관객들의 애정과 영화도시 부산을 지탱해 온 시민들의 열정도 지속되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24일 개막하는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도 뜨거운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해 본다. 이자영 문화부장 2young@busan.com
[오션 뷰] 미국발 변화와 한국 해운조선업계 대응
미국은 무역적자 해소와 해양에서의 중국 견제를 위해 자국우선주의에 기반한 조선 및 해운 분야 법·제도에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조선업의 부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 조선소의 협력을 구한다는 점이 큰 정책 변화다. 중국의 해군력에 대응하기 위해 군함과 전략물자 수송선이 많이 건조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 조선소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군력 강화를 위해서는 전략 물자를 운송할 선박 확보가 필수적이다. 현재 80척에 불과한 전략물자 수송선을 250척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전략 수송선은 자국에서 건조되고, 자국의 깃발을 달며, 자국 선원이 승선하고 자국 회사가 운항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당장 자국 내 건조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 등에서 건조한 선박도 전략 상선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우리 조선업과 해운업에도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수요 몰릴 우리나라 중소형 조선소 RG 발급 문제가 수주 확대 ‘관건’ 민간 선주사 육성·금융 지원 통해 경쟁력 회복하고 새 기회 열어야 우리나라 3대 대형 조선소는 이미 2027년까지 건조할 선박으로 독이 꽉 차 있어 당장 미국의 선박 주문을 받아줄 여유가 없다. 그런데 미국이 원하는 선박은 선종과 크기 면에서 매우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중소형 조선소에 기회가 주어진다. 부산에 있는 중형 조선소인 대선조선은 얼마 전 카페리 선박을 성공적으로 건조해 인도한 바 있다. 그런데 중소형 조선소는 선수금환급보증서(RG) 발급을 받지 못해 어려움에 처해 있다. 조선소에 건조가 가능한 철판을 사 오도록 선주가 제공하는 선수금을 확실하게 되돌려주겠다는 약속이 적힌 보증장이 RG이다. 조선소가 이를 은행으로부터 발급받지 못하면 선주는 건조 계약에 서명하지 않는다. RG만 발급받을 수 있다면 많은 수주를 할 수 있고 건조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전략 상선대에 편입될 170척 중 상당수는 미국이 해외에서 직접 매입하거나 연불 방식으로 확보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주 사업이 발달한 일본과 그리스의 선주들은 큰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선주사는 싼 가격으로 건조된 선박을 많이 보유해 미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선박을 매각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선박만 소유하고 있는 회사가 거의 없어 기존 보유 선박을 미국에 매각할 기회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우리 선사는 소유와 운항을 병행해 선박을 보유해 왔고, 선박 건조 가격이 낮은 해운 불경기 때 은행으로부터 건조 자금을 빌릴 수 없었기 때문에 저가의 선박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동안 민간 선주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중소형 선사에 대한 RG 발급 문제와 선주사 육성이라는 큰 이슈가 미국이라는 외생변수에 의해 다시 한번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중형 조선소를 더 튼튼하게 해 다양한 선종의 선박 수주를 받아 수요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진정으로 조선 강국이라면 모든 선종의 선박을 차별 없이 건조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선가 경쟁력에서 뒤처진 우리나라는 벌커 선박과 같은 재래 선박 건조는 하지 않고 있다. 우리 선사들은 오히려 중국에 가서 벌커 선박을 건조하고 그곳에서 수리하는 형국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은행권이 모여 RG 문제를 풀어 주어야 한다. RG 구상을 당해 손해를 입은 은행을 구제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일본은 대형 조선소가 선박을 소유하고 불경기 때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는 기능도 한다. 일본 선주사는 1%대의 낮은 이자율로 선박을 건조한다. 우리나라는 5%대의 높은 이자율로 선박을 건조해야 한다. 용선주들이 우리보다 일본 선주의 선박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 시장이 개방돼 있는 만큼, 일본 선주사와 우리나라 선주사는 경쟁하게 된다. 이자율 4%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이에 특별법 등을 통해 선박 건조 시 대출금의 이자율을 낮춰주는 금융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다행히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대형 회사들의 재무 구조가 많이 개선됐다. 과거보다 은행 차입금 의존도가 낮은 지금이야말로 민간 선주사들이 신규 선박을 발주할 수 있는 적기다. 선가가 조금 더 떨어지면 신조 발주를 넣어서 경쟁력 있는 선박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300척 규모의 선주사는 연간 약 5조 원의 매출을 일으킨다. 부울경으로서는 큰 매출이다. 이처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바다에서 큰 변화를 불러올 때 우리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익을 챙겨야 한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의 조선소 경영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중소형 조선소의 RG 발급’ ‘한국형 선주사의 육성’이라는 간접적인 방식에서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마침, 이 두 가지는 오랫동안 한국 조선과 해운 산업의 숙제이기도 하다. 지금이야말로 그 숙제를 풀어낼 적기다.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토핑 경제’ 왜 뜨나?
올해 소비 트렌드로 ‘토핑 경제’가 떠오른다. 토핑 경제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본질적인 부분보다 추가적이거나 부수적인 요소인 ‘토핑’이 더 주목받아 새로운 경제 효과를 창출하는 시장의 변화를 의미한다. 토핑은 피자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기본 도우(dough)에 다양한 토핑을 얹으면, 각자가 선호하는 최고의 맛을 만들어낸다. 토핑이 나만의 ‘최애’를 만드는 핵심적인 재료 역할을 하는 셈이다. 토핑 경제는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25>에도 소개됐다. 범용상품을 개인화시키는 커스터마이징(맞춤 제작)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토핑 경제는 신발, 패션, 식품, 전자·가전, 뷰티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 중이다. 구매 이후의 커스터마이징까지 미리 고려하고,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아주 미세한 차이까지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커스터마이징보다 폭넓은 개념이다. ■ ‘꾸안꾸’ 아닌 ‘꾸꾸꾸’ 시대 토핑 경제를 신발이나 패션에 접목해 본다면 ‘꾸꾸꾸’(꾸미고 꾸미고 또 꾸민다)가 대표적인 트렌드다. 얼마 전 대세였던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모습)와는 반대 의미다. ‘꾸꾸꾸’는 다양한 액세서리를 통해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트렌드다. ‘폰꾸’(폰 꾸미기),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등 특정한 상품에서만 포착되던 꾸미기 트렌드는 가방, 신발, 의류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가방에 다양한 키링과 인형을 다는 ‘백꾸’(가방 꾸미기), 신발에 독특한 신발 끈을 매거나 패치를 붙이는 ‘신꾸’(신발 꾸미기), 선글라스에 장신구를 탈부착하는 ‘선꾸’(선글라스 꾸미기) 등이 대표적이다. 바야흐로 자신의 입맛대로 상품을 꾸미는 ‘N꾸’의 시대로 접어든 셈이다. 특히 신발 종류인 크록스는 토핑을 활용해 반전 매력을 이끌어낸 대표적 사례다. 2010년 <타임>에서 ‘50가지 최악의 발명품’ 중 하나로 선정됐던 ‘못난이’ 크록스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패션 브랜드 1위에 선정됐다. 매년 1억 5000만 켤레가 판매된다. 크록스 인기를 이끈 1등 공신은 액세서리 ‘지비츠’이다. 지비츠는 크록스 신발에 있는 구멍에 맞춰 부착할 수 있는 액세서리다. 지비츠는 수많은 모양으로 출시돼 무한한 커스텀이 가능하다. 취향에 따라 다양한 지비츠를 부착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지비츠는 초반에 자체 개발 디자인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디즈니, 마블 등 인기 캐릭터, 저스틴 비버와 같은 팝스타,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독특한 제품 탄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크록스는 국내에서 꾸준한 매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데, 토핑인 지비츠가 이를 견인하는 셈이다. 전자·가전과 화장품업계도 토핑 경제 흐름에 동참했다. 다이슨이 지난해 9월 출시한 오디오 전용 블루투스 헤드폰 ‘온트랙’은 무려 2000가지 이상의 색 조합이 가능한 디자인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한다. 화장품업계에서도 인공지능(AI), 딥러닝 등을 활용해 개인의 피부 진단부터 제품 추천, 생산까지 이뤄지는 ‘뷰티테크’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 식품·외식업계 성공 키워드 토핑 식품·외식 업계에서 단연 인기를 끈 토핑 경제 트렌드는 ‘요아정’(요거트 아이스크림의 정석)이다. 요아정은 요거트 아이스크림에 50여 개의 토핑을 취향에 맞게 조합해 즐길 수 있는 디저트 프랜차이즈다. 소셜미디어(SNS)에 이른바 ‘최애 조합’을 추천하며 유행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Z세대의 인기 음식 반열에 올랐다. 기본 상품인 아이스크림보다 부수적 요소인 토핑이 브랜드의 성공을 이끈 것이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도 이러한 소비 트렌드를 겨냥해 고객 잡기에 나섰다. 오는 28일까지 지하 1층 시그니처 팝업존에서 ‘요거트월드’ 팝업스토어 행사를 이어간다. 해당 팝업스토어의 토핑바에서 취향에 맞는 커스터마이징 디저트를 직접 만들어 색다른 맛과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스타벅스도 토핑 경제의 대표적 사례다. 스타벅스는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시럽·우유·자바칩 등을 추가하거나 뺄 수 있는 커스텀 주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즌별로 선보이는 젤리, 크림폼 등 한정 토핑은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또 스타벅스는 지난해 개점 25주년을 맞은 1호점 ‘이대점’에 국내 최초로 텀블러 각인 서비스를 도입했다. 소비자가 희망하는 문구나 애칭 등을 텀블러에 새길 수 있는 것이다. 글자는 최대 10자까지 가능하며, 폰트와 이미지도 선택할 수 있다. 현재 이대점 방문 고객 4명 중 1명이 각인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 Z세대가 토핑 경제 주축 1995년부터 2009년 사이 태어난 Z세대가 시장의 새로운 소비 주축으로 급부상하며 토핑 경제의 흐름이 강화하고 있다. Z세대는 단순히 소비에 개인화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토핑을 얹고 바꾸는 창의적 소비를 선호한다. 최근 우리나라 Z세대가 특히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혔던 마라탕, 버블티, 요아정의 공통점은 소비자 개개인이 각자 좋아하는 토핑을 선택해 나만의 메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토핑 경제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타인과는 다른 나만의 것을 추구하고 차별화하고자 하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고 SNS를 통한 과시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트렌드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기능이 포함된 패키지 상품 대신, 필요한 옵션만 추가해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는 점도 이들에게는 매력적이다. 비용 절감과 효율적인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AI 발전으로 정교하게 진화 토핑 경제는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게 이점을 제공한다. 소비자는 자신만의 개성을 반영한 제품을 경험하고, 기업은 이를 통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토핑 경제는 소비자의 개성과 맞춤형 경험을 중시하는 추세에 맞춰 AI 등 기술 발전과 함께 더욱 정교하고 다양한 맞춤형 소비 트렌드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토핑 경제’를 제시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더 이상 손댈 데 없는 완벽한 기성품을 선보이려 하기보다는 다양한 토핑 생태계를 구축해 소비자가 상품을 재해석하고 참여할 여지를 제공하라”고 조언한다. 고객이 상품을 단순히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품을 구매한 이후에도 계속 해당 브랜드를 찾고 소비하게 만드는 전략을 기업이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승일의 곰곰 생각] 고령 운전자를 대하는 불편한 시선
‘또 고령자 역주행 사고… 면허 반납은 고작 2.4%.’ 지난해 서울시청역 역주행 사고 이후 고령자 운전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은 악화일로다. 관련 뉴스 제목이 부정적인 뉘앙스 일색인 것에서 단박에 드러난다. 지자체들도 면허를 돌려받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앞다퉈 현금 보상을 내걸었다. 하지만 반납률은 해마다 2%를 겨우 넘길 정도로 저조하다. 푼돈 받자고 이동권과 생계가 걸려 있는 운전대를 놓을 수는 없다는 노년 세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장롱 면허’만 거둬들이는 실정이라 정책 효과는 미미하다. ‘인지 능력과 반응 속도 저하.’ 노인 운전이 위험하다는 근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사회적 통념만으로 노인을 도로의 사고뭉치로 몰아가는 건 곤란하다. 우선 노인 교통사고 통계를 제대로 읽어 낼 필요가 있다. 65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는 2012년 1만 5190건에서 2023년 3만 9614건으로 11년 새 2.6배 늘었다. 전체 사고 중 고령자 비중도 같은 기간 6.8%에서 20%로 늘었다. 이 증가세가 면허 반납론의 근거로 곧잘 인용된다. 이 수치 비교는 고령화로 인한 노인 인구 비중의 변화를 감안해서 볼 필요가 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인구는 576만 6729명에서 943만 5816명으로 63.6%나 증가했다. 노인 인구 비중도 11.5%에 18.2%로 커졌다. 65세 이상 운전자가 늘면 사고 건수도 비례하기 마련이다. 인구 비중의 변화 요인을 뺀 채 사고 수치만 시계열 비교하면 고령자 사고가 급증한 것으로 인식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연령별 면허 소지자 100명 당 사고 건수를 비교해야 객관적인데, 이 통계를 보면 20세 이하가 매년 1위다. 그 뒤는 60대, 50대, 20대, 40대, 30대 순이다. 연령만으로 운전 적합도를 평가하기 어려운 대목이 택시 기사 고령화 추세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23년 말 전국 개인택시 기사(16만 4334명) 중 60세 이상이 12만 4475명으로 75.7%다. 65세 이상은 51.4%인데, 부산처럼 고령화 속도가 빠른 곳은 60%가 넘었다. 고령 기사들이 핸들을 놓으면 당장 택시가 멈춘다. 개인마다 다른 건강 연령을 감안하지 않은 채 나이만을 기준으로 차량 운행 능력을 따지면 합리적인 해결책을 놓치게 된다. “운전대를 놓으면 노화가 액셀을 밟는다.” 일본의 노인 정신의학 및 임상심리학 전문의 와다 히데키 ‘마음과 몸 클리닉’ 원장은 운전을 할 수 있다면 면허를 반납해선 안 된다고 충고한다. 운전을 그만두면 외출 기회가 줄고 집에만 머물게 되면서 신체와 정신 기능이 쇠퇴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일본에서도 시행 중인 면허 반납 제도를 노인 건강과 연계한 연구 결과가 근거다. 일본 쓰쿠바대학 연구팀이 건강한 65세 이상 2800명을 6년 간 추적한 결과를 2019년 발표했는데, 면허를 반납한 뒤 돌봄 서비스를 받게 된 비율이 현저히 높았다. 자가 운전을 그만두고 집에만 머문 경우는 계속 운전대를 잡은 경우에 비해 2.1배 높았고, 버스와 자전거를 이용한 그룹은 1.6배 높았다. 연구진은 외출 대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의 증가와 신체, 정신 퇴화에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노인병학회지에 2016년 실린 ‘고령자 운전 중단과 건강 추이’ 연구도 같은 시사점을 준다. 운전 중단과 우울증의 연관성을 조사했더니 우울증 발병률이 두 배 높아졌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운전 중단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려면 이동성과 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달 발간한 ‘고령 운전자 교통 안전 국내외 정책과 입법 현황’ 보고서에서 고령자의 이동성을 담보하지 않는 면허 반납, 운전 중지 정책은 사회적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행 사고가 늘거나 건강과 삶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10년의 면허 갱신 주기를 65세 이상은 5년으로, 75세 이상은 3년으로 단축, 강화했다. 75세 이상은 인지능력 검사와 교통안전교육까지 의무화해 부적합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고령자 안전 운전을 위한 정책과 제도는 앞으로 더 심화 발전돼야 한다. 예컨대 앞서 일본과 미국 연구처럼 노인 세대의 이동성과 건강 유지의 상관성을 조사해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도출해 낼 필요가 있다. 고령자에 특화된 인지능력 검사를 추가하거나 유럽연합에서 의무화된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등 비상시 오작동을 예방하는 기술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고령 운전자를 대하는 불편한 시선을 거두는 일이다. ‘신체 연령’이 젊은 노인의 운전을 막는 게 능사가 아니다. 건강한 노후와 안전한 이동의 균형점 모색은 초고령화 시대가 우리 사회에 던진 공동의 숙제다.
[김진성의 타임 아웃] 피치클락
올해 한국프로야구(KBO) 경기 운영에서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피치클락’ 규정이 정식 도입됐다는 것입니다. 투수는 주자 없을 때 20초, 있을 때 25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합니다. 포수는 잔여시간 9초 이전에 포수석에 자리 잡아야 하고, 타자는 8초가 되기 전에 타격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이를 어길 시 투수에게는 볼, 타자에게는 스트라이크가 선언됩니다. 경기 지연 시간 단축을 통한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선보이기 위함이라는 게 KBO의 설명입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비해 피치클락 시간이 길고, 주자 견제 등 투수판 이탈 횟수 제한 규정이 없다는 등의 여러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프로야구를 보는 또다른 재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피치클락의 도입으로 올해 프로야구 경기 시간이 1998년 이후 가장 짧다고 합니다. 개막 이후 60경기를 치른 지난 7일 기준으로 볼 때 KBO리그 한 경기 평균 시간은 3시간 1분입니다. 지난해 3시간 13분보다 12분이 줄었습니다. 프로야구가 경기 시간을 줄여 박진감을 살렸다면 프로축구에서는 반대로 경기 시간을 늘려 박진감을 높였습니다. 전·후반 90분 경기를 펼치는 축구에서 어떻게 시간이 늘어나느냐구요? 바로 추가시간입니다. 세계 최고 리그 중 하나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는 한 경기 시간이 100분이 넘습니다. 영국의 한 매체가 공개한 2023-2024시즌 EPL팀들의 경기당 평균 시간은 101분 39초로, 추가시간만 보면 11분 39초를 더 뛰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득점이나 오프사이드 등 애매한 판정을 비디오판독(VAR)으로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선수들의 각종 시간 지연 행위에 의해 소요되는 시간을 추가시간에 엄격히 포함시키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침대축구’를 하더라도 그 시간을 추가시간에 포함시켜 선수들의 시간 지연 행위를 막으려는 의도입니다. 스포츠계에서 박진감을 높이는 만큼이나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은 공정성입니다. KBO리그는 2024년부터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을 도입했습니다. 프로그램이 투수가 던진 공의 스트라이크 존 통과 여부를 판단해 심판에게 전달하면 심판이 콜하는 방식인데요. 공정성 강화 차원입니다. 그만큼 판정 시비가 줄어드는 것이지요.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는 VAR를 2016년 클럽 월드컵에서 공식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도 점차 VAR를 도입해 공정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스포츠는 시대를 거듭할수록 이처럼 박진감과 공정성을 위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관중들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요? 정치, 경제, 사회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국민들은 스포츠와 비슷하다고 느낄까요? 박진감은 모르겠지만, 공정성은 글쎄요.
[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옳은 쪽입니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 선고가 나오기까지 122일 동안 시민들은 광장으로 모였다. 그 시간을 돌이켜 볼 때 특히 눈에 띈 것은 MZ세대들의 등장이다. 이들은 기존의 시위 형식에서 볼 수 없었던 자신들만의 문화를 집회에 녹여냈다. 이들이 참여한 집회 현장은 K팝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에스파의 ‘위플래시’,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 등을 부르며 친숙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었다. MZ세대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수제 응원봉을 들고나왔다. 당시 이같은 K집회 현장을 지켜본 외신 반응은 뜨거웠다. 로이터통신은 “시민들이 시위에 들고나온 응원봉이 기존의 촛불을 대체하며 비폭력과 세대 간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차세대형 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런 분위기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을 일깨웠으며, 적극적인 시민 참여를 끌어냈다.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문화적 코드와 정치적 의사 표현을 절묘하게 접목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강국이다. 분단의 악조건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상식적일 때 국가 위상이 서고 그 안에서 기본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수준과 위상도 반영된다. 1987년 민주주의의 근간을 보여준 민주항쟁, 1998년 IMF를 이겨낸 국민의 저력, 2002년 월드컵의 함성, 2010년 촛불로 이뤄낸 민주주의 등을 보면 그러하다. 특히 탄핵 정국에서 MZ세대들이 응원봉으로 이뤄낸 ‘빛의 혁명’은 386세대와 MZ세대가 공유하는 감동을 전했다. 우리 국민의 커먼센스(Common Sense)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내는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현장에는 기득권자가 아닌 시민이 있었다. 도망가지 않았다. 시민이 하나가 되어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있다. 이제 이 나라의 미래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공동의 것을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사회인 민주공화국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세계사 최초로 무혈 시민혁명을 이룬 민족이자 민주주의 선도 국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미 전 세계는 존경의 시선으로 K컬처, K푸드를 넘어 K민주주의를 부러워하고 있다. 탄핵 정국을 돌이켜 보면 이미 경기는 끝났는데, VCR 판독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누가 봐도 아웃인데 심판들의 이견으로 주심은 판정을 못 하고 관중들은 귀가하지 못하는 꼴이었다. 그 시간은 역대급으로 비현실적이었다. 관중은 야유와 함성으로 경기장을 박살 낼 기세여서 혼란스러웠다. 결정이 나야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본연의 일을 한다. 그렇게 122일 동안 헌재의 결정을 기다렸다. 마지막까지 온갖 낭설들과 소위 정치 1단이라는 자들의 예측 아닌 추측들은 우리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202504041122’라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간을 맞이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 시간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22분 동안 지난했던 겨울의 시간에서 나오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마그나 카르타’라며 결정문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다. 결정문 중에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란 문장과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사명으로 하여 나라를 위해 봉사하여 온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도록 만들었습니다’란 문장이 필자의 마음속으로 녹아 들어왔다. 장기간의 평의와 숙고를 통해 그 결정문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고 유연한 논리로 작성함으로써 당일 투입된 군인들이 지고 있을 마음의 짐을 그나마 내려 주었다. 이런 것이 법의 힘이다. 국민 대부분은 그토록 장고의 시간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이 결정문을 통해 다시 봄을 기대하게 되었고 그렇게 대한민국은 2025년 봄을 맞이했다. 2025년 4월 4일 청명(淸明)은 세상을 맑고(淸) 밝게(明) 만들기에 좋은 날인 것이다. 지인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탄핵 현장에서는 매주 토요일, 때로는 예정 없이 긴급하게 집회가 열렸다. 대형 스피커, 무대 설비, 행진 트럭 등을 동원해 한 번 집회를 열 때마다 2억 원 이상의 돈이 지출된다고 한다. 1700여 시민단체가 연대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비용은 또다시 시민의 모금과 후원으로 충당해 낸다고 한다. 모든 부채와 책임은 국민의 몫이다. 서글프다. 생활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오르고, 서민들의 지갑은 갈수록 얇아진다. 이제 시대가 부여한 시간이다. 구조적 모순은 반드시 바로 잡고 좌우로 구분 짓는 극단적 대립, 양비론적 시선들은 이번 참에 하차하시기를! 마침 지하철에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옳은 쪽입니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PK 구애 나선 이재명
“올해는 다르다” 진격의 거인, ‘봄데’ 넘어 가을야구 가자
한미 본격 관세 협의 이번주 ‘운명의 담판’
대선 출마 여지 남기는 한덕수 "아직 결정 전"
의대 증원 0명에도 또 궐기대회
‘새로운 관문’ 부전역, 관광객 맞춤형으로 환골탈태한다
논란의 퀸비틀호 인수한 팬스타, 국내 노선에 투입할까
부산 4개 대학, 외부수업 확대·비전임 교수 정년 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