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 대통령이 띄운 개헌 논의, 더는 미룰 일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자치 분권 확대’를 언급하며 지방분권형 개헌 필요성을 시사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에 따른 폐해를 연이어 경험했다. 최근에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로 사회 갈등이 심화되고 대외 신용도가 추락하는 등 국가적인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띄운 개헌 논의는 시대 상황에 비춰볼 때 거스를 수 없는 소명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문제는 개헌의 방식과 방향이다. 개헌 시기와 방식에 대한 논의는 새 정부 내각 구성이 완성된 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제헌절 77주년을 맞은 17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며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 우리 헌법도 달라진 현실에 맞게 새로 정비하고 다듬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이끄는 나침반이 될 새 헌법은 아픈 역사를 품고 정의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선언이어야 한다. 국민 모두의 꿈과 염원이 담긴, 살아 움직이는 약속이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개헌 방향으로 5·18 민주화운동 헌법 전문 수록, 국민 기본권 강화, 자치 분권 확대, 권력기관 개혁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특히 국민 중심 개헌이라는 용어를 쓰며 국민의 뜻이 충실히 반영되도록 하겠다는 뜻도 비췄다.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도 단계적이고 연속적인 개헌이 꼭 필요하다며 개헌 논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우 의장도 제헌절 경축식에서 “국회와 정부, 국민이 모두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최소 수준의 개헌으로 첫발을 떼는 것이 꼭 필요하다”며 전면적 개헌보다 단계적이고 연속적인 개헌을 강조했다. 우 의장은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지난 대선 때 개헌 투표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에 “빠르면 내년 6월 지방선거, 조금 늦으면 그다음 총선에서 할 수밖에 없다”며 구체적인 개헌 시점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이제 주사위가 던져진 개헌 논의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개헌은 국가의 근간을 바꾸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하지만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은 거세다. 더욱이 지난해 말 불법적인 비상계엄 사태를 경험하면서 이런 공감대는 한층 확산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변화된 상황에 맞게 헌법을 손질해 새로운 미래를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과 자치 분권을 강화하는 것은 뒤늦은 감도 있다. 특히 망국적인 수도권 일극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지역균형발전 방안도 반영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다시는 불법 계엄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여야가 국민 여론을 충실하게 수렴해 개헌 논의에 나서길 기대한다.
[사설] 지방 환자 서울행 막을 지역 완결형 메디컬센터 시급하다
고난도·중증 환자들이 KTX 새벽 열차를 타고 상경해 소위 서울 ‘빅 5’ 병원에 다니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원정 진료를 떠난 부산 환자가 해마다 늘어 2023년에 5만 7111명에 이르렀다. 지역 상급종합병원의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각종 연구와 설문 결과를 보면, ‘서울 병원은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 탓이 크다. ‘평판’이라는 추상적 요인 때문에 해마다 전국의 환자 100만 명이 서울행을 선택하고 있다. 이런 국가적 낭비를 없애는 대안으로 지역 완결형 메디컬센터가 제시되고 있다. 진료의 완결성과 지역민의 신뢰 확보만이 서울행을 멈추게 할 수 있다. 부산대병원이 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달 실시한 설문을 보면 ‘환자 이탈’을 막는 해법은 결국 지역 의료체계에 대한 신뢰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 응답자 대다수는 암, 희귀 질환, 뇌·신경 질환과 같은 중증일수록 수도권 병원을 선호했다. 지역 병원은 ‘접근성’, ‘진료 시간’, ‘비용’에서 응답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평판’ 항목에서 수도권 병원에 크게 뒤처졌다. 부산대병원은 ‘평판’에서 수도권 상급병원에 22.5%P나 낮았고, 부산 지역의 상급병원은 43.8%P까지 벌어졌다. 입소문 또는 심리적 요인 탓에 지역 병원은 우수한 시설·인력을 갖추고도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는 실정이다. 부산 상급병원의 진료 역량이 서울에 비해 취약하지 않는데도 상경 행렬이 멈추지 않는 기현상은 지역 의료체계의 한계 지점이자, 개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특정 의료진의 명성이나 병원 간판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필수·응급 의료체계가 고루 갖춰지고 이에 대한 지역민의 믿음이 어우러져야 한다. 설문 응답자 88.4%가 ‘지역 완결형 글로벌 허브 메디컬센터’의 필요성을 지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에 추진되는 지역 완결형 메디컬센터는 중증·응급환자 치료에서 수도권과의 격차를 줄이는 게 목표다. 다른 대학병원들도 각자 지역 완결형 거점 병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료는 서울에서’라는 고정관념의 배경에 지방 소멸이 있다는 점은 뼈아프다. 원정 진료 행렬을 그대로 둔 채 글로벌 허브 도시 도약은 가당치 않다. 상급병원의 질적 재편을 통해 환자가 믿고 찾는 곳으로 바꾸는 것이 해법이다. 부산시와 부산대병원의 협약으로 추진되는 글로벌 허브 메디컬센터는 지역민의 신뢰 회복, 수도권 의료 격차 해소 나아가 부산 의료를 동북아 허브로 성장시키는 도약대가 돼야 한다. 내년 예비타당성 조사와 예산 확보를 위해 지역 사회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부산의 환자가 거주지 인근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은 지역민의 기본권이어야 한다. KTX 새벽 열차에 몸을 싣는 환자는 없어져야 한다.
[사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 유치, 문화도시 부산 알릴 기회
부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와 세계마술연맹 월드챔피언십(FISM WCM)을 동시에 유치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두 국제행사는 각 분야에서 모두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행사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는 세계문화·자연유산의 등재와 보호를 논의하는 전 지구적 의사결정 기구이며, 마술올림픽으로 불리는 FISM WCM은 80년 역사를 지닌 마술계 최대 규모의 경연장이자 축제다. 문화적 위상과 경제적 파급 효과를 동시에 갖춘 국제행사를 한꺼번에 품은 것은 부산이 국제도시를 넘어 세계적 문화도시로 도약할 결정적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화도시 부산의 진면목을 세계에 각인시킬 절호의 기회다. 내년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는 196개 협약국과 3000여 명의 각국 대표·전문가들이 참여해 세계유산의 등재와 보존을 논의한다. 세계유산 논의는 단순한 유산 관리 수준을 넘어 국가 간 이해관계와 정치·외교적 협상이 맞물리는 문화외교의 최전선이다. 각국은 자국의 정체성과 역사를 어떻게 서사화해 국제사회에 설득할지를 두고 경쟁한다. 각종 부대행사와 학술회의는 지역 문화산업의 수준을 높이고 관광·마이스 산업의 경쟁력도 키운다. 특히 우리 정부가 등재를 추진 중인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가치를 세계에 알릴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 유치도 의미 있지만, 부산이 개최지를 맡았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다. 2028년 열리는 FISM 마술올림픽 유치는 부산이 문화예술과 창의 산업의 허브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성과다. 2018년 행사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매직페스티벌을 운영해 온 저력은 세계 마술계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끌어냈다. 전 세계 3000명 이상의 마술사와 최대 30만 명에 이를 관람객은 직접적인 경제 효과와 함께 부산의 도시 브랜드를 새롭게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 상상력과 창의력이 결합한 마술이라는 콘텐츠가 부산에서 세계로 확산할 기회를 마련한 셈이다. 이제 중요한 과제는 이 행사를 단순한 국제회의에 머물지 않게 하고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과 미래 전략으로 확장해 가는 일이다. 이 두 국제행사가 갖는 파급 효과는 단순히 ‘방문객 수’에 머물지 않는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해양도시라는 이미지를 넘어 문화와 역사 콘텐츠를 담아낼 수 있는 세계적 플랫폼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은 오래전부터 글로벌 문화도시를 표방해 왔다. 지금이 이를 알릴 기회다.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실패는 부산 시민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이번에 잇따라 전해진 낭보는 다시 한번 부산이 세계의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정부 지원은 물론이고 지자체, 문화기관, 민간이 함께 손발을 맞춰야 할 때다. 대통령실도 환영 입장이다. 세계가 다시 부산을 주목하고 있다.
가을야구 희망가
“안타 안타 세리라 세리라! 롯데 전준우~”그 어느 해보다 사직야구장의 함성이 뜨겁다. 프로야구는 올스타 휴식기를 마치고 17일부터 후반기에 돌입했다. 롯데는 전반기를 리그 3위로 마쳤다. 롯데가 3위 이내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친 건 2012년 2위 이후 무려 13년 만이다. 수치적으로 보면 더 알차다. 롯데는 전반기 47승 39패로 마감해 1999년(50승 28패)에 이어 전반기 최다승 2위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전반기(35승 41패·7위)와 비교하면 12승이나 많다. 이긴 횟수가 진 횟수보다 많은 상태에서 전반기를 마친 것은 2014년(29승 1무 27패·5위) 이후 11년 만이다.경기 결과도 그렇지만 내용면에서도 팬들의 함성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다. 요즘 롯데는 5점 차 이상 끌려가면 쉽게 경기를 포기해버리는 모습이 사라졌다. 끈질기게 따라 붙어 경기를 뒤엎거나, 최소한 쉽게 지지 않는다는 근성을 보인다.선수들의 열띤 경기 장면 만큼이나 사직구장을 뜨겁게 달구는 게 있다. 바로 응원가다. ‘부산 갈매기’의 떼창은 사직야구장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사직야구장의 떼창을 두고 ‘사직노래방’이란 애칭이 붙을 정도다. 최근에는 사직야구장에서 경기도 보고 ‘사직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도 불러보기 위해 타지 사람들이 부산으로 휴가를 온다고 한다.단체 응원가 만큼이나 롯데 선수들의 개인 응원가도 매력적이다. 선수 개개인의 특징을 살려 타석에 나서는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오~롯데의 황성빈 오 오 오, 안타 안타 롯데 황성빈!” 율동까지 곁들인 팬들의 응원에 타자들은 힘이 난다. 현재 사직야구장에서 불려지는 롯데 선수의 개인 응원가 중 가장 오래된 건 전준우일 것이다. 전준우는 2008년 롯데에 입단한 최고참이다.프로야구 응원가의 역사는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시 LG 트윈스의 막대 풍선 응원이 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KBO리그에 체계적인 응원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구단별로 히트곡을 개사한 응원가가 등장했고, 선수들의 개인 응원가가 활성화 된 것이다.KBO리그는 관객 1000만 시대를 돌파해 해마다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롯데가 8년 만의 가을야구는 물론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바라고 보고 있다. 롯데 팬들의 뜨거운 열정과 함성이라면 가능하다.김진성 선임기자 pape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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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식의 일필일침] 부산시가 가덕신공항 중심에 서라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부지 조성 공사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채 모든 일정이 멈춰 버렸다. 사업 출발점에서 발목이 잡힌 셈이다. 김해공항은 갈수록 공항 안전과 수용력 등의 한계에 이르고 있어 한시라도 신공항 건설을 지체할 수 없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쯤 되면 ‘2029년 개항’이란 목표가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건설사 이탈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부산시가 이 사업의 주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덕신공항은 수년 전부터 지역 균형발전의 상징이자 시민들의 오랜 염원이었지만, 실제 사업 구조는 철저히 중앙정부, 그중에서도 국토교통부 중심으로 설계돼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인천국제공항과 가덕신공항의 추진 기반이 된 두 특별법을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는 1991년 제정된 ‘수도권신공항건설촉진법’, 다른 하나는 2024년 마련된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다. 가덕신공항특별법은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기본계획 수립부터 시행까지 모든 권한을 집중시켰고, 부산시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이에 부산시는 부지 보상과 정치적 협조에 그쳤고, 실질적인 주도권은 갖지 못했다. 반면 인천국제공항은 달랐다. 촉진법은 서울시장, 인천시장, 경기도지사의 의견 청취를 의무화하고 지자체가 시행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인천시는 공항과 연계한 도시계획과 교통 인프라를 주도하며 ‘인천공항경제권’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인천국제공항은 입지 선정부터 완공까지 약 10년이 걸렸고, 이처럼 빠른 추진이 가능했던 건 지자체를 공식 참여 주체로 인정한 법적 기반 덕분이었다. 가덕신공항은 단순한 공항이 아니다. 부산의 미래 성장축이자, 국가 균형발전의 관문이다. 그런데도 정작 부산시의 역할은 줄곧 그림자에 머물렀다. 특별법이 국토부 중심으로 설계돼 있었다 해도 법 제정 이후 부산시가 보여준 실질적인 실행 전략은 매우 부족했다. 사업은 중앙의 관료적 속도 조절에 갇힌 채 진행됐고 지역의 현실과 절박함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결국 시의 이러한 관망형 행정과 수동적 태도가 지금의 혼란을 불러온 원인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부산이 전면에 나설 기회다. 현대건설의 이탈로 인해 발생한 공백의 시간을 부산시가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 지자체 의견 청취 의무화, 지자체 참여형 협의체 설치, 공항 운영의 공동 관리, 지역 기업 우대 조항 명문화 등 부산시의 실질적 권한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제 부산시는 단순한 협조자가 아니라, 사업 구조 조정과 리스크 분담, 기술 검증 등 실무 전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실질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계속해서 국토부 주도의 계획에만 기대선 가덕신공항이 언제 착공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부산시가 나서야 가덕신공항 건설의 실질적인 첫 삽을 뜰 수 있고, 중단 없는 공항 건설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가덕신공항은 또 한 번 지역민의 ‘희망 고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바람이 멎은 바다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배는 제 손으로 노를 쥔 이들의 것이다. 지금, 부산시가 그 노를 쥘 때다. 지금 중요한 건 사고의 전환이다.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실패로 인해 급하게 공항을 완공해야 할 압박도 사라졌다. 지금은 활주로 2본 확보, 공항역사 설계 재검토 등 ‘빅딜 전략’을 통해 공항의 완성도를 높일 때다. 현실성 없는 2029년 개항에 매달리기보다는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 국토부와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부산이 원하는 인프라 구축 전략을 모색하는 편이 훨씬 더 실리적이다. 무엇보다 공항 자체가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방파제 등 일부 공사는 분리 발주해 조속히 착공해야 한다. 시민에게 ‘공사가 시작됐다’는 분명한 신호를 주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부울경 국회의원들이 가덕신공항을 국정과제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하고, 활주로 확장과 공항 위상 격상 등을 요구한 점은 고무적이다. 개항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이 정도의 지역 중심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훨씬 실속 있는 선택이다. 다만, 이것이 일회성 성명이 아닌, 특별법 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가덕신공항은 지난 수년 동안 수많은 논란과 기대, 정치적 셈법 속에서 오락가락했다. 그러나 이제는 명백하다. 이 사업이 다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더 이상 중앙정부의 입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 부산시가 실질적인 주체로 나서야만 한다는 것 말이다. 시민들은 ‘부산시가 바람에 몸을 맡기지 말고 스스로 돛을 올릴 것’을 주문한다. 부산시는 그 열망에 응답해야 한다. 지금 부산에 필요한 것은 ‘관망’이 아니라 ‘중심’이다.
[정훈의 생각의 빛] 제자리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묻은 쓸쓸함
지난해 연말, 위법·위헌적인 대통령의 계엄 발령과 국회의 계엄령 해제부터 시작된 관련자 구속 및 대통령 파면과 대선, 그리고 3대 특검법 발의에 이은 특검의 행보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정국에 국민은 분노와 환호가 교차한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지난 7개월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정말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 나라가 수렁에 빠질 위험에 처할 때마다 어느 누구보다도 국민이 앞장서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수호하였던 역사의 패턴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순식간에 여야가 뒤바뀐 정치권과, 검찰의 숱한 기소와 압수수색을 감당하고도 국민의 선택으로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상대 진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나 같은 일개 소시민에게 ‘정치’는 그동안 헛구역질과 빈혈 그 사이거나 언저리에 자리 잡은 이상한 나라의 ‘협잡’과 같은 것이었기에, 최근 7개월 동안 벌어진 급박한 정세는 비로소 스스로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는 느낌이다. 20년 넘게 지지부진 북항 재개발 시민 라운드테이블로 공공성 확대 해수부 부산 이전 계기로 순항하길 따지고 보면 이 나라에 민주와 정의라는 이름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든다. 짓누르는 자나, 이에 대항하여 권리를 되찾으려는 자나 늘 대의를 명분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명분을 잃은 세력이 활개를 치더라도 결국 명분을 고수하려는 세력이 이겨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까이에 있으면 멈칫거리거나 주저하는 일이 시간이 지나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 들여다보면 명약관화한 것이었음을 깨닫고서는 무릎을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역사는 생생한 현실이 지층처럼 쌓인 무늬이되, 그 무늬가 만드는 물결을 아로새기는 더욱 큰 그림임을 새삼 재확인하게 되는 요즘이다. 최근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두고 잡음이 많다. 정부는 대통령 공약 사항이기도 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시급히 착수하고 있고, 해수부 공무원 노조는 예전 세종시 정부 청사 이전을 실례로 들어 해수부 공무원에 대한 각종 지원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부산 이전을 극구 반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파를 떠나 해수부가 부산에 오면 부산 사람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정부 기관 이전으로 발생하는 경제 파급효과가 가뜩이나 침체된 원도심에 단비와도 같기 때문이다. 해수부 임시 청사는 현재 북항 재개발사업 지구를 지척에 둔 자리에 마련됐다. 임시 청사 시대를 거쳐 향후 정식 청사가 북항 재개발지구 사업 구역 내로 이전한다면 기존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 있던 해수부 부산항북항통합개발추진단 및 부산항만공사와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을 잇는 해양 관련 국가기관 벨트와, 부산 최대 현안 사업 가운데 하나인 부산항 북항 재개발사업 지구가 맞물려 한국 해양 산업을 비롯한 해양 발전 로드맵을 위한 메카가 되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항 북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시민들을 위한 친수공간으로 계획하여 북항 재개발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후 20년이 넘도록 지지부진한 북항 재개발사업이 해수부의 이전으로 순항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국내 첫 항만재개발사업으로서 북항 재개발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부산 시민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크나큰 자부심으로 남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중요한 국가사업을 두고 해수부의 부산 이전에 딴지를 거는 몇몇 세력이 있다. 정파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반대부터 해대는 이들의 셈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정으로 부산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엽적이고 국지적인 논리에 따른 행동은 끝내 자신들을 향하는 화살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2013년 북항 재개발사업이 참여 기업의 사업 논리에 치우친 난개발의 우려가 제기되자 결성된 북항 라운드테이블의 활동을 되새긴다.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공무원, 그리고 시민들이 참여한 라운드테이블이 여러 차례 검토와 회의를 거쳐 공공성을 확대한 북항 재개발사업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때 확정된 사업안을 바탕으로 하면서, 2019년 해수부 부산항북항통합개발추진단이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발족됨으로써 추진력을 얻어 지금의 북항 재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공공의 이익을 가져오려는 게 국가사업의 최종 목표일진대, 이런 큰 그림을 외면한 채 당장 자기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세력의 목소리에 명분이 짓밟힐 때 지난해 연말 나라를 요동치게 만든 사태는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다. 또 한 번 그런 사태가 불거져서 그간 힘들게 쌓아두었던 시민들의 지혜와 역량을 또다시 소모해서야 되겠는가. 인간의 지혜와 슬기를 올바른 일에 쏟아부을 때 나라와 시민 개인의 성장은 자연 뒤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베로나 오페라 축제에서 만난 ‘아이다’
베로나 오페라 축제는 로마 시대의 원형경기장인 베로나의 아레나(Arena di Verona)에서 해마다 6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열린다. 시작은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13년 8월 13일 열린 오페라 ‘아이다’(Aida)였다. 초연은 큰 화제가 되었는데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와 피에트로 마스카니, 극작가 아리고 보이토,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유명 인사도 참석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로마의 카라칼라(Caracala) 욕장, 마체라타의 스페리스테리오(Sferisterio), 그리고 푸치니 페스티벌이 열리는 토레 델 라고(Torre del Lago) 등이 한여름을 수놓는 이탈리아의 야외 오페라 축제인데, 역사나 규모 면에서 단연 최고는 역시 베로나 오페라 축제이다. 베로나의 아레나는 역사지구 초입 브라 광장(Piazza Bra)에 위치하고 있다. 2만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존하는 가장 잘 보존된 원형경기장이라는 장소성이 큰 역할을 한다. 2013년은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첫 오페라가 선을 보인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 해는 1913년 첫 공연이었던 ‘아이다’ 초연 버전이라는 이름으로, 연출자 지안 프랑코 데 보시오의 손에 의해서 복원 제작돼 화제가 되었다. 이후 올려지는 ‘아이다’는 1913년 버전이라는 타이틀로 관객몰이를 했는데, 해마다 6~7편이 올려가는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여러 오페라 중 최고의 인기 작품이다. 실제 2013년은 오페라 축제 100주년이긴 하지만, 100번째 오페라 축제는 아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코로나 탓에 10여 차례나 행사를 걸러 실제 100번째 축제는 2023년 개최됐다. 제100회 베로나 오페라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버전의 ‘아이다’가 공개되는데,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소프라노 안나 넵트랩코가 암네리스 역을 맡아 큰 화제가 되었다. 오페라 연출자인 스테파노 포다(Stefano Poda)는 올해와 내년에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다시 공연될 ‘아이다’ 프로덕션의 감독이자 세트 디자이너를 맡았다. 그의 무대는 투명성과 조명 효과, 정교한 의상이 특징이다. 배경인 이집트의 상징적인 묘사로, 이미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필자는 이번 축제에서 13번 열리는 ‘아이다’ 중 4번째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개념적 통일성을 찾는 과정에서 포다는 안무, 무대, 의상, 조명을 잘 활용했다. 그가 오페라 연출자임과 동시에 무대, 의상, 조명 디자이너이며 안무가라는 이력이 십분 활용됐다. 하지만 2막 개선행진곡을 퍼레이드 대신 군무로 처리한 부분은 못내 아쉬웠다. 그럼에도 포다의 ‘아이다’는 새로운 백년을 준비하는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과감한 도전이었다.
[데스크 칼럼] 가짜 손도 아픈데, 원전 고통이 없을 리야
‘가짜 손’ 실험은 간단하다. 테이블 위의 한 손을 보이지 않게 천으로 가리고, 진짜 손이 있을 법한 자리에 손 모형을 둔다. 굳이 정교한 모형이 아니어도 된다. 이어 누군가 가짜 손에 망치질하는 시늉을 하면, 손 주인은 깜짝 놀란다. 이때 손 주인의 편도체를 살펴보면, 실제 공포감의 반응이 나타난다. 같은 제스처를 몇 번 반복해도, 공포감은 둔해질 뿐 계속된다. 이성적으로는 저 손이 가짜인 것을 알지만, 공포감을 담당하는 편도체의 반응을 막을 수는 없다. ‘핀 악수’ 실험도 흥미롭다. 단기 기억 손상 환자가 있었는데, 담당 의사를 볼 때마다 매번 악수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늘 처음 보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의사가 자신의 손에 핀을 꽂고 악수를 했다. 환자는 손이 찔렸고 아파했다. 다음날 만남에서 환자는 역시 의사를 기억 못 했다. 다만 이번엔 “왠지 당신과는 악수를 하기 싫다”며 악수를 거절했다. 만남은 잊어도, 아픔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서 이성과 감정을 처리하는 메커니즘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들이다. 그래서 비행기 사고율이 자동차보다 낮다는 걸 알아도, 비행기가 낯설면 기체가 조금만 흔들려도 겁이 나는 법이다. 전쟁 트라우마 환자에게 “여기는 전쟁터가 아니다”라고 이성적으로 설명해도, 마음의 병이 쉽게 나을 리 없다. 이성과 논리만으로 감정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게 과학적 사실이다. 지난달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 1호기 해체를 결정했다. 이 소식 덕에 원전 관련 뉴스와 주장들이 많이 쏟아졌다. 덩달아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을 정지하고 해체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도 제법 나왔다. 원전을 최대한 오래 많이 쓰자는 뜻이다. 물론 RE100 원전 미포함 문제, 다수 원전 정지 상태에서도 안정적 전력 수급 상황, 처치 곤란한 사용후핵연료 증가 문제 등의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AI시대에 전력 수급을 걱정한 것으로 주장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원전을 끼고 살아야 하는 이들의 상황을 외면하는 것은 불쾌하다. 간혹 등장하는 “원전 덕에 지원금이 쏟아진다”는 듯한 뉘앙스에는 화까지 난다. 멀리서 전기만 받아쓰다 보니, 원전 인근 지역에 사는 게 어떤 것인지 몰라서 저러는 것일까. 이들은 숫자와 논리를 들이대며 원전에 대해 느끼는 우리의 불안감이 불합리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 수백 개 원전이 있지만, 역사상 대형 사고는 3건에 불과하다. 설령 큰 사고가 나도, 다중 방호 설계가 있어 피해는 미미하다. 원전은 내진 설비가 가장 잘된 건물이고, 쓰나미 방어벽도 세웠다. 원전이 불안하다면, 교통사고 무서워 차는 어떻게 타고 다니냐….” 살아보면 알 수 있다. 육중한 원전 단지를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건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된 기분이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의 잔상은 숫자와 논리로 지워지지 않는다. 원전에서 벌어진 작은 고장 소식에도 아니 원전을 볼 때마다, 의식하지 못해도 주민들의 머릿속에서 그 잔상이 되뇌어 재생되고 있을 수도 있다. 주민들도 내진 설비가 잘 됐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다. 하지만 제법 큰 지진 소식이 들리면 원전부터 걱정한다. 전면전에서는 원전을 먼저 타격하는 게 상대를 무력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전쟁 나면 우리 동네가 먼저 쑥대밭이 되고 방사능 천지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지역의 불안감이 사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망상도 아니다. 수년 전 원전 납품 비리로 난리가 났을 때 충분한 대책이 세워졌다고 하지만, 지금도 비순정 베어링 납품 비리로 시끄럽다. 후쿠시마 원전도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재해에 무너졌다. 충분하다는 말로는 모자라는 일들이 반복됐다. 지역이 느끼는 불안감은 이런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극도로 낮은 확률이지만, 혹시나 불운이 맞물리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을 잠재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지역의 고통은 친원전, 탈원전 논쟁을 넘어선 이야기다. 편도체가 제 기능을 하는 이상, 원전이 불안과 불편을 유발한다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다. 안심시키려 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이 그냥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원전을 짓든 해체하든, 일단 원전이 주변에 상당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악영향을 준다는 걸 인정하고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오히려 안전성을 운운하며 원전이 주는 스트레스를 부정하는 게 비과학적이다. 못 믿겠으면 원전을 가져가 살아보면 된다.
[2030 칼럼] '이방인'과의 겸상
불현듯, 필리핀에서의 시간이 떠올랐다. 낯선 언어,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나는 분명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나와, 지금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같은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중학생이었던 나는 한국인과 필리핀 현지인 사이의 묘한 관계를 느꼈다. 한국인들은 선주민들과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는 것을 꺼렸고, 식기구도 따로 썼다. 돌이켜보면 말이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달라서 느끼는 차이점은 있었지만, 한국인이어서 차별받은 경험은 없었다. 얼마 전 나는 포천 이주노동자센터를 방문해 ‘한국에 와서 한국인과 한 번도 겸상한 적 없다’는 세 명의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들과 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내가 보고 경험한 대로, 한국인들은 역시나 이주민들과 겸상하지 않는 모양이다. 함께 밥을 먹던 이주민 중 한 명은 공장에서 일하다 한국 사람에게 맞아서 전치 2주가 나왔었다는 이야길 했고, 다른 한 명은 공장 일을 하다 팔을 다쳤는데 공장주의 무리한 지시로 아픈 팔로 일을 했다는 이야길 했다. 모두 2025년에 일어났다고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한국에 온 이방인들은 그런 일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최근 경북 구미시의 한 아파트 공사장 지하 1층에서 하청업체 소속 베트남 국적 일용직 노동자가 앉은 자세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어 큰 충격을 안겼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숨진 상태였고, 발견 당시 체온은 40.2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일 구미의 최고기온은 38.3도로, 7월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고온 환경에 의한 온열질환을 사망 원인으로 추정했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현장의 작업을 전면 중단하고, 폭염 안전 대책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례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불운이 아닌,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은 이미 130만 명에 달하는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사회로 진입했으며, 이들은 우리 사회가 기피하는 3D 업종의 빈자리를 채우며 경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장 변경이 어렵고, 인권 침해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은 그들을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열악한 주거 환경과 의료 접근성의 한계 또한 이들이 겪는 고통을 가중시킨다. 부산 역시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부산 지역 제조업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이주노동자들이 단순 노동 기반의 제조업을 선호하지 않고 더 나은 임금과 근무 환경을 찾아 이동하려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이들이 현재 처한 환경이 만족스럽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며,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이탈을 선택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부산의 많은 중소 제조업체들이 외국인 근로자의 잦은 이직과 이를 제어할 수단이 없음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결국 이주노동자들의 권익과 처우 개선이 곧 우리 지역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도 직결됨을 시사하는 셈이다. 현 정부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이주노동자 도입 규모를 확대하고 있으나, 이는 단순히 노동력 공급을 늘리는 것을 넘어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고용허가제(E-9)의 경직성을 완화하여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확대하고, 노동 착취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열악한 주거 환경 개선과 의료 접근성 확대 등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를 보장하여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을 지속하여, 이들을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자 함께 발전해나갈 파트너로 인정하는 문화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도 함께 가야 한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포천 이주노동자센터의 김달성 목사는 이주노동자와 선주민들이 함께 밥을 먹는 ‘코이노니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코이노니아는 친교, 교제 등을 뜻하며 그리스에서 유래한 단어다. 단순히 친목을 넘어서 어떤 대상이나 목적에 함께 참여하고 동참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 ‘겸상’이 오랜 시간 공동체의 깊은 유대감을 의미해왔음을 고려할 때, 이주민과의 식탁은 그들의 아픔과 슬픔,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들을 단순히 노동력으로만 보지 않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려는 시도들이 매우 필요하다. 나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탁을 나누는 데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각자의 자리에서 벽을 허무는 첫 발걸음을 내디뎠으면 한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임꺽정'이 고국으로 돌아온 시간, 64년
한국 영화 중 본 사람은 많은데,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입으로 전해지는 영화가 꽤 많다. 그중 이만희 감독의 ‘만추’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중 하나다. 제17회 베를린영화제 출품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대상과 감독상을 휩쓴 영화는 당시의 인기와 흥행을 고려하면 필름이 사라진 것이 이상할 정도다. 영화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 하면 1960년대를 대표하는 김기영, 김수용 감독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영화를 리메이크했으며, 2011년에는 이 영화를 본 적 없던 김태용 감독이 ‘만추’를 연출한다. 김태용 감독은 리메이크작들을 참조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각색했다. 영화 공간을 시애틀로 옮기고, 한국 남자와 중국 여자의 사랑으로 바꾸는 등 원작과는 다른 ‘만추’를 완성했다. 하지만 사건과 시공간이 달라졌을지 몰라도 쓸쓸하고 고독한 늦가을의 정서는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감독은 이 영화로 그해 열린 영화 시상식에서 감독상, 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여주인공을 연기한 배우와 결혼까지 하면서 여러 이슈를 낳았다. 유실된 한 편의 영화가 현실의 영화와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은 흥미롭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다. 한국영화사에서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오래 간과해 왔음을 알려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실된 한국영화 찾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배운다. 지난 6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유현목 탄생 100주년 특별전’이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의전당 등에서 진행되었다. 우리에게 유현목은 소설을 영화로 만든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소설의 이야기를 빌려와 영화로 옮기는 단순 작업을 하지 않았다. 각색을 통해 전쟁 이후의 허무와 절망, 실존적 고독을 담아냈으며, 국가정책에 부합하는 반공영화를 찍기도 했지만, 그 속에 비판적 목소리를 포함시키며 한국 영화를 한 단계 나아가게 만든 감독이다. 감독은 ‘오발탄’(1961), ‘김약국의 딸들’(1963), ‘순교자’(1965), ‘카인의 후예’(1968) 등으로 독보적인 연출 스타일을 선보였으며 돌아가시기 전까지 50여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한국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독인 그에게도 사라진 영화가 있는데, 그것은 1961년 12월 개봉한 ‘임꺽정’이다. 이 영화는 당시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을 이끌었음에도 필름을 찾을 길이 없었다. 어딘가에 필름이 있다고 해도, 필름을 보관하는 일이 워낙 까다롭기에 대부분은 이제 ‘임꺽정’을 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 가운데 2022년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임꺽정’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 영화는 4K 디지털 복원 과정을 거쳐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임꺽정’ 역시 홍명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당대 사회를 가감 없이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유현목 감독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임꺽정’은 기존의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의적 ‘임꺽정’(신영균)은 양반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민중들을 위해 탐관오리를 무찌르는 이로운 인간이다. 민중을 위해 싸우는 의적의 이야기이니 무겁고 진지하게 흘러갈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사극 액션 장르로 통쾌하고 재미있다. 어찌 보면 오락물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데, 영화가 끝나면 그저 웃고 지나칠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유현목 감독은 ‘임꺽정’을 단순한 액션물로 만들지 않았다. 영화에는 양반들이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있다. 이때 감독은 양반들이 다리를 잘 건널 수 있게 다리 밑에서 온몸으로 지탱하고 있는 이들이 백성임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실제 이 현실을 지켜온 존재가 누구인지 알기에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64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우리 곁으로 돌아온 영화 ‘임꺽정’을 보며,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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