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아쉬움 남는 꽃 축제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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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라이프부 선임기자

전국 곳곳에서 수국축제가 한창이다. 울산에서는 지난 7~29일 ‘제4회 장생포수국페스티벌’이, 전남 강진군에서는 27~29일 ‘제3회 강진수국길축제’가, 같은 기간 충남 공주시에서는 ‘제4회 색동수국정원 꽃축제’가, 경남 거제시에서는 ‘제8회 남부면 수국축제’가 열렸다. 이 밖에 전남 해남·고흥·강진·보성·신안군, 충남 아산시, 경남 김해시, 거창군, 진주시, 광주, 경기도 광주시, 경남 남해시 등에서 비슷한 축제가 개최됐거나 될 예정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국축제는 흔하지 않았다. 부산 태종대 태종사에서 2006년부터 해마다 열린 ‘수국꽃 문화축제’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 축제는 2019년 10만 8000명이 관람해 큰 인기를 누렸다. 뉴스를 검색해보면 태종대 제1회 수국 축제가 열릴 때 다른 지역에서 수국축제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행사가 ‘히트’를 치자 수국을 심는 지역이 늘었고, 수국축제도 너나할 것 없이 개최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형태의 ‘따라 하기’ 꽃 축제는 수국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유채꽃이나 꽃무릇, 꽃양귀비 사정도 다르지 않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유채꽃 하면 제주도뿐이었다.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유채꽃밭 배경 사진을 한두 장씩 가진 부부는 드물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부산 강서구가 낙동강변에 유채단지 조성해 축제를 시작하더니 지금은 경기도 구리시와 안성시, 양주시, 경북 포항시, 전남 구례군, 진도군과 나주시, 강원도 삼척시, 경남 창녕군, 전북 부안군과 순창군, 충남 부여군 등 전국 20여 곳에서 유채꽃 축제를 연다.

꽃무릇도 비슷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남 영광군 불갑사와 함평군 용천사, 전북 고창군 선운사가 ‘3대 꽃무릇 군락지’로 손꼽혔지만 지금은 곳곳에서 꽃무릇을 키우고 축제를 진행한다. 꽃양귀비 사정도 다르지 않아 전국에서 열리는 꽃양귀비 축제는 한두 곳이 아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곳에서 꽃이 인기를 얻으면 다른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관광객 증대를 내세워 그대로 손쉽게 베끼기 때문이다. 꽃만 그런 게 아니다. 과거 진주시의 유등축제와 비슷한 행사가 서울에서 열려 ‘베끼기 논란’을 빚은 것이라든지 ‘벽화마을’이라는 아이디어가 전국 수백 개 마을에서 베껴진 것도 그렇다. 축제 행사 내용은 어디나 천편일률적이다. 게다가 각 지역 공무원들이 관람객이 편하게 축제를 볼 수 있게 애쓰는 것보다는 축제 개막식 준비에 더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비슷하다.

여행 취재를 위해 각 꽃 축제에 갈 때마다 ‘이렇게밖에 못 하는 것일까’라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고장만의 창의적이고 독특한 행사를 열 아이디어는 도무지 내기가 힘든 것인지 안타까움을 숨길 수 없었다. 지금은 창의의 시대가 아니던가.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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