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부산시가 가덕신공항 중심에 서라
논설위원
인천공항·가덕신공항 특별법 비교
지자체 권한 인천과 뚜렷한 차이
공항 건설서 시 역할 그림자 머물러
관망형 행정·수동적 태도도 문제
부산시·지역 정치권 나서 법 개정을
주도적 참여로 실질적 주체 되어야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부지 조성 공사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채 모든 일정이 멈춰 버렸다. 사업 출발점에서 발목이 잡힌 셈이다. 김해공항은 갈수록 공항 안전과 수용력 등의 한계에 이르고 있어 한시라도 신공항 건설을 지체할 수 없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쯤 되면 ‘2029년 개항’이란 목표가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건설사 이탈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부산시가 이 사업의 주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덕신공항은 수년 전부터 지역 균형발전의 상징이자 시민들의 오랜 염원이었지만, 실제 사업 구조는 철저히 중앙정부, 그중에서도 국토교통부 중심으로 설계돼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인천국제공항과 가덕신공항의 추진 기반이 된 두 특별법을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는 1991년 제정된 ‘수도권신공항건설촉진법’, 다른 하나는 2024년 마련된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다. 가덕신공항특별법은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기본계획 수립부터 시행까지 모든 권한을 집중시켰고, 부산시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이에 부산시는 부지 보상과 정치적 협조에 그쳤고, 실질적인 주도권은 갖지 못했다. 반면 인천국제공항은 달랐다. 촉진법은 서울시장, 인천시장, 경기도지사의 의견 청취를 의무화하고 지자체가 시행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인천시는 공항과 연계한 도시계획과 교통 인프라를 주도하며 ‘인천공항경제권’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인천국제공항은 입지 선정부터 완공까지 약 10년이 걸렸고, 이처럼 빠른 추진이 가능했던 건 지자체를 공식 참여 주체로 인정한 법적 기반 덕분이었다.
가덕신공항은 단순한 공항이 아니다. 부산의 미래 성장축이자, 국가 균형발전의 관문이다. 그런데도 정작 부산시의 역할은 줄곧 그림자에 머물렀다. 특별법이 국토부 중심으로 설계돼 있었다 해도 법 제정 이후 부산시가 보여준 실질적인 실행 전략은 매우 부족했다. 사업은 중앙의 관료적 속도 조절에 갇힌 채 진행됐고 지역의 현실과 절박함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결국 시의 이러한 관망형 행정과 수동적 태도가 지금의 혼란을 불러온 원인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부산이 전면에 나설 기회다. 현대건설의 이탈로 인해 발생한 공백의 시간을 부산시가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 지자체 의견 청취 의무화, 지자체 참여형 협의체 설치, 공항 운영의 공동 관리, 지역 기업 우대 조항 명문화 등 부산시의 실질적 권한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제 부산시는 단순한 협조자가 아니라, 사업 구조 조정과 리스크 분담, 기술 검증 등 실무 전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실질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계속해서 국토부 주도의 계획에만 기대선 가덕신공항이 언제 착공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부산시가 나서야 가덕신공항 건설의 실질적인 첫 삽을 뜰 수 있고, 중단 없는 공항 건설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가덕신공항은 또 한 번 지역민의 ‘희망 고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바람이 멎은 바다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배는 제 손으로 노를 쥔 이들의 것이다. 지금, 부산시가 그 노를 쥘 때다.
지금 중요한 건 사고의 전환이다.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실패로 인해 급하게 공항을 완공해야 할 압박도 사라졌다. 지금은 활주로 2본 확보, 공항역사 설계 재검토 등 ‘빅딜 전략’을 통해 공항의 완성도를 높일 때다. 현실성 없는 2029년 개항에 매달리기보다는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 국토부와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부산이 원하는 인프라 구축 전략을 모색하는 편이 훨씬 더 실리적이다. 무엇보다 공항 자체가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방파제 등 일부 공사는 분리 발주해 조속히 착공해야 한다. 시민에게 ‘공사가 시작됐다’는 분명한 신호를 주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부울경 국회의원들이 가덕신공항을 국정과제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하고, 활주로 확장과 공항 위상 격상 등을 요구한 점은 고무적이다. 개항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이 정도의 지역 중심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훨씬 실속 있는 선택이다. 다만, 이것이 일회성 성명이 아닌, 특별법 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가덕신공항은 지난 수년 동안 수많은 논란과 기대, 정치적 셈법 속에서 오락가락했다. 그러나 이제는 명백하다. 이 사업이 다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더 이상 중앙정부의 입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 부산시가 실질적인 주체로 나서야만 한다는 것 말이다. 시민들은 ‘부산시가 바람에 몸을 맡기지 말고 스스로 돛을 올릴 것’을 주문한다. 부산시는 그 열망에 응답해야 한다. 지금 부산에 필요한 것은 ‘관망’이 아니라 ‘중심’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