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포커스온] 이제는 '경제'의 시간이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내수·수출 부진에 미국발 관세 전쟁
성장 잠재력 하락 등 내우외환 위기

출범한 이재명 정부 해결 과제 산적
민생 회복·경제 살리기 정책 최우선

경기 부양·혁신산업 성장 전략 필요
국토균형발전 모두 잘 사는 나라로

지금 우리 경제는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 미국발 관세 전쟁, 성장 잠재력 하락이라는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해 있다. 내수 경기의 대표적 지표인 소매판매액 지수는 2022년 2분기부터 11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2003년 카드대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수준이다.

관세 전쟁 여파로 버팀목이던 수출마저 흔들린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5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572억 7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동월 대비 1.3% 감소했다. 양대 수출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은 8% 이상씩 급감했다.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한국의 주력 수출 분야는 중국의 빠른 추격과 미국의 정책적 압박으로 세계시장에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수출 시장에서 우리와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중국의 ‘제조 굴기’는 놀라울 정도다. 중국은 2015년 10대 첨단 제조업 집중 육성을 위해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결과 전기차·배터리, 드론, 고속철, 신소재, 태양광 패널, 5G 통신, 전력 설비 등 최소 7개 분야에서 세계 1위 중국 기업이 나왔다. 우리가 메모리 반도체, 이차전지 정도를 제외하고 거의 전 산업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섬뜩한 분석도 나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 시간)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50%로 인상하는 포고문에 서명하면서 ‘미국발 철의 장막’이 현실화했다. 중국산 저가 철강의 범람과 건설업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철강업계엔 큰 악재다.

이뿐만 아니다. 암울한 저성장을 예상하는 지표도 속속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3일(현지 시간)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1.5%에서 1.0%로 석 달 만에 0.5%포인트 내렸다. 관세 전쟁에 따라 수출 타격이 심하고 민간 소비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도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국내 경제 성장률이 0%대로 내려간 것은 1998년 외환위기,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2021년 코로나 팬데믹 등 돌발 변수가 덮쳐왔을 때뿐이었다.

막 출범한 이재명 정부 앞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중에서 무너진 경제를 정상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취임식에서 밝힌 ‘1호 지시 사항’은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신설이었다.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이다. 이 대통령이 그리는 중장기 경제 분야 청사진은 ‘3·3·5’ 전략이다. ‘경제·산업 대도약’을 기치로 ‘인공지능(AI) 3대 강국’ ‘잠재성장률 3%’ ‘국력 세계 5강’을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비상경제대응 TF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실행계획을 내놓고, 민생 대책과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을 위한 재원 마련 전략이 뒤따라야 한다.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인 수출은 미국의 통상 압력이란 거대한 산 앞에 서 있다. 이대로라면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 등 주력 업종의 수출 둔화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수출 전선의 사활이 걸린 ‘한미 관세 협상’은 주어진 시간이 한 달 남짓에 불과하다. 새 정부가 정상급 외교 채널을 복원하고, 동시에 수출 충격을 최소화하는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상호 관세 정책은 시행 유예 기한이 내달 8일까지로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아 새 정부 통상팀은 촉박한 상황에서 협상에 임하게 됐다.

재정·금융정책을 통한 단기적 경기 부양과 함께 중장기적으로는 산업구조 개혁과 혁신산업 중심의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13대 주력 산업 가운데 철강, 정유, 기계 등 9개 산업이 올해 무더기 수출 역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기업들이 과감하게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규제 혁파에 나서고, 일자리와 소비 창출 효과가 큰 산업군에는 전방위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부터 6·3 조기 대선까지 6개월간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상황에 놓여 왔다. 이제 불확실성이 제거된 만큼 ‘정치’가 아닌 ‘경제’의 시간이 도래했다. 새 정부는 저성장 극복과 경제 도약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실용적이고 선제적인 경제정책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

이 대통령 취임사 중에서 눈길을 끈 것은 균형발전을 강조하며 수도권 집중화 탈피를 언급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모두 함께 잘 사는 나라’ 구상의 중심에 국토균형발전 의지가 담겨 있어서 다행이다. 불균형 성장 전략이 한계를 드러낸 만큼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골고루 발전해 지속 성장의 토대를 만들어 모두 함께 잘 사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