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닫히는 청와대, 열리는 도모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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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영산대 호텔관광학과 교수

2025년 8월, 청와대가 다시 문을 닫는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개방된 청와대는 3년 만에 다시 대통령 집무실로 복귀할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다. 259억 원의 예산이 확보되었고, 14일부로 전체 개방이 종료되며 내달 1일부터는 일반 시민의 출입이 전면 중단된다. ‘국민에게 돌려준 청와대’는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회귀하는 셈이다.

이번 청와대 복귀는 단순한 공간 이동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과 시민의 거리, 정치와 공간의 관계, 관광과 정체성의 문제를 함께 안고 있는 중대한 전환이다. 윤석열 정부는 ‘탈권위’와 ‘소통’을 기치로 청와대를 개방했지만, 용산 대통령실은 업무 동선의 비효율, 보안 취약, 주민 불편 등의 문제를 노출했다. 이에 이재명 정부는 다시 청와대로 복귀하려 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권위의 상징’을 다시 열어둘 수 있느냐는 논의가 시작됐다.

대통령 집무 공간 회귀하는 청와대

서울 중심 정치 관광 콘텐츠의 퇴조

반면 부산시장 관사 작년 전면 개방

부산 콘텐츠가 주목받을 기회 부각

폐쇄와 개방 사이 공간 주인 물어야

도시 가치 담는 공간 구현 가능해져

청와대 개방은 상징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시민 참여의 경험이었다. 경복궁과 북악산을 잇는 도심 관광축의 핵심으로 기능했고, 하루 수만 명의 내외국인이 이곳을 방문하며 서울 관광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올랐다. 관광객들은 단지 사진을 찍는 것을 넘어, “대통령이 일하던 곳을 내가 걷고 있다”는 상징적 체험을 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전직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나 관저를 박물관 혹은 관광지로 활용하는 사례는 많지만, 현직 대통령의 거주 및 집무 공간이 이렇게 전면적으로 개방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전례 없는 개방은 서울 관광의 질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기록됐으나 이 공간은 다시 봉인된다. 봉인 후에는 보안 강화와 행정 효율성이 우선되며, 관람 기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서울 도심 관광의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청와대 개방이 가져온 시민 경험은 단절되고, 정치 공간의 폐쇄성은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시기, 부산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때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부산시장 관사로 쓰이던 공간이 시민에게 전면 개방됐다. 광안대교 앞 황령산 자락에 위치한 이 공간은 지난해 리모델링을 마치고, ‘도모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본관과 야외 정원, 공유 오피스, 시민 강연장, 카페 등으로 구성된 이 장소는 이제 더 이상 권력의 공간이 아니다. 시민의 회복과 소통, 창작과 휴식의 공간이다. 그동안 ‘지방 청와대’라 불리며 권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곳이 문화예술과 여가, 휴식의 복합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청와대가 닫히고, 부산시장 별장이 열리는 이 장면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한다. 지방도 권력의 공간을 시민의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실천의 사례이자, 공공공간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움직임이다. 그리고 이는 관광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부산은 이 공간을 단지 시민 편의시설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때 대통령이 머물렀던 공간’, ‘지방 청와대’라는 역사적 스토리는 정치사와 문화관광을 결합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여기에 피란수도 부산의 역사, 부마민주항쟁, 임시수도청사와 민주공원 등과 연계하면 정치·역사·시민성 중심의 스토리텔링 관광이 가능하다. 이는 단지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도시 이미지와 시민 정체성을 함께 설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청와대 개방이 종료되면서 서울 중심의 정치 관광 콘텐츠는 자연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오히려 지방 도시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수도권 중심의 문화자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역 고유의 역사적·정치적 콘텐츠가 관광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부산은 피란수도라는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가진 도시이자,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징이 혼재하는 곳이다. 이러한 복합적 역사성과 공간성을 어떻게 체계화하고 콘텐츠화하느냐에 따라 부산은 ‘열린 도시’, ‘시민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더욱 굳힐 수 있다.

이제는 공간을 단지 건물의 용도가 아니라, 기억의 장소, 체험의 현장, 민주주의의 물리적 구현 공간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든 부산시장 별장이든, 더 이상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과 소통하고, 도시의 가치를 담아내는 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도시는 권력의 방식에 따라 닫히거나, 시민의 방식에 따라 열릴 수 있다. 부산이 선택한 ‘개방’의 방식은 단지 정치적 상징을 넘어서, 관광, 문화, 교육, 도시 브랜딩까지 연결되는 포괄적 가치 창출의 기회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공간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공간을 통해 어떤 미래를 만들고 싶은지를 다시 물어야 할 때다. 청와대는 닫히지만, 부산은 열리고 있다. 그리고 그 열린 문은 시민을 위한 문이며, 미래를 향한 문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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