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가짜 손도 아픈데, 원전 고통이 없을 리야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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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상 지역미래팀장

가짜 손·핀 악수 등 심리학 실험
논리로 감정 제어 어렵다 보여줘
원전 피해 인정 않는 주장도 나와
말과 숫자로 불안 결코 안 사라져

‘가짜 손’ 실험은 간단하다. 테이블 위의 한 손을 보이지 않게 천으로 가리고, 진짜 손이 있을 법한 자리에 손 모형을 둔다. 굳이 정교한 모형이 아니어도 된다. 이어 누군가 가짜 손에 망치질하는 시늉을 하면, 손 주인은 깜짝 놀란다. 이때 손 주인의 편도체를 살펴보면, 실제 공포감의 반응이 나타난다. 같은 제스처를 몇 번 반복해도, 공포감은 둔해질 뿐 계속된다. 이성적으로는 저 손이 가짜인 것을 알지만, 공포감을 담당하는 편도체의 반응을 막을 수는 없다.

‘핀 악수’ 실험도 흥미롭다. 단기 기억 손상 환자가 있었는데, 담당 의사를 볼 때마다 매번 악수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늘 처음 보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의사가 자신의 손에 핀을 꽂고 악수를 했다. 환자는 손이 찔렸고 아파했다. 다음날 만남에서 환자는 역시 의사를 기억 못 했다. 다만 이번엔 “왠지 당신과는 악수를 하기 싫다”며 악수를 거절했다. 만남은 잊어도, 아픔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서 이성과 감정을 처리하는 메커니즘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들이다. 그래서 비행기 사고율이 자동차보다 낮다는 걸 알아도, 비행기가 낯설면 기체가 조금만 흔들려도 겁이 나는 법이다. 전쟁 트라우마 환자에게 “여기는 전쟁터가 아니다”라고 이성적으로 설명해도, 마음의 병이 쉽게 나을 리 없다. 이성과 논리만으로 감정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게 과학적 사실이다.

지난달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 1호기 해체를 결정했다. 이 소식 덕에 원전 관련 뉴스와 주장들이 많이 쏟아졌다. 덩달아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을 정지하고 해체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도 제법 나왔다. 원전을 최대한 오래 많이 쓰자는 뜻이다. 물론 RE100 원전 미포함 문제, 다수 원전 정지 상태에서도 안정적 전력 수급 상황, 처치 곤란한 사용후핵연료 증가 문제 등의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AI시대에 전력 수급을 걱정한 것으로 주장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원전을 끼고 살아야 하는 이들의 상황을 외면하는 것은 불쾌하다. 간혹 등장하는 “원전 덕에 지원금이 쏟아진다”는 듯한 뉘앙스에는 화까지 난다. 멀리서 전기만 받아쓰다 보니, 원전 인근 지역에 사는 게 어떤 것인지 몰라서 저러는 것일까. 이들은 숫자와 논리를 들이대며 원전에 대해 느끼는 우리의 불안감이 불합리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 수백 개 원전이 있지만, 역사상 대형 사고는 3건에 불과하다. 설령 큰 사고가 나도, 다중 방호 설계가 있어 피해는 미미하다. 원전은 내진 설비가 가장 잘된 건물이고, 쓰나미 방어벽도 세웠다. 원전이 불안하다면, 교통사고 무서워 차는 어떻게 타고 다니냐….”

살아보면 알 수 있다. 육중한 원전 단지를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건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된 기분이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의 잔상은 숫자와 논리로 지워지지 않는다. 원전에서 벌어진 작은 고장 소식에도 아니 원전을 볼 때마다, 의식하지 못해도 주민들의 머릿속에서 그 잔상이 되뇌어 재생되고 있을 수도 있다.

주민들도 내진 설비가 잘 됐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다. 하지만 제법 큰 지진 소식이 들리면 원전부터 걱정한다. 전면전에서는 원전을 먼저 타격하는 게 상대를 무력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전쟁 나면 우리 동네가 먼저 쑥대밭이 되고 방사능 천지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지역의 불안감이 사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망상도 아니다. 수년 전 원전 납품 비리로 난리가 났을 때 충분한 대책이 세워졌다고 하지만, 지금도 비순정 베어링 납품 비리로 시끄럽다. 후쿠시마 원전도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재해에 무너졌다. 충분하다는 말로는 모자라는 일들이 반복됐다. 지역이 느끼는 불안감은 이런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극도로 낮은 확률이지만, 혹시나 불운이 맞물리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을 잠재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지역의 고통은 친원전, 탈원전 논쟁을 넘어선 이야기다. 편도체가 제 기능을 하는 이상, 원전이 불안과 불편을 유발한다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다. 안심시키려 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이 그냥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원전을 짓든 해체하든, 일단 원전이 주변에 상당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악영향을 준다는 걸 인정하고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오히려 안전성을 운운하며 원전이 주는 스트레스를 부정하는 게 비과학적이다. 못 믿겠으면 원전을 가져가 살아보면 된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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