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브리핑룸의 민낯, 바뀌어야 한다
이화행 동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새 정부 대통령실이 브리핑룸 시스템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들의 질의 현장까지 카메라로 비출 수 있도록 하여, 국민들의 알 권리와 브리핑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브리핑룸은 기자들을 상대로 정부가 공식적인 브리핑을 하는 방이다. 대변인이나 책임자가 언론에 정책을 설명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하는 장소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권력에 대한 공개적 검증이 이루어지는 민주적 소통의 현장이다.
‘기자가 묻고, 정부가 답한다’는 말은 민주주의의 자명한 원칙이다. 질문할 권리와 답할 의무를 제도적으로 구체화해 언론과 권력 간의 건전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저력이기 때문이다.
언론, 시민 대신해 권력 검증하는 역할
브리핑, 공개성·정례성·질의권 보장돼야
질의 사전 조율, 답변 회피 등 구태 탈피를
정부 설명장 아닌 기자 질문하는 곳 돼야
하지만 이 원칙이 실제로 제도화되어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국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수많은 국가와 정부에서 브리핑은 비공식성, 제한성, 폐쇄성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브리핑룸은 일방향적 정보 전달의 공간이 되어 언론이 정부로부터 사실상 통제를 당하는 공간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의 연방정부 브리핑은 사단법인 연방언론회견협회(Bundespressekonferenz)라 불리는 900여 명의 회원을 가진 기자협회가 주관하는 구조이다. 브리핑의 일시와 형식, 참가자를 결정하는 일도 독일정부가 아닌, 기자협회가 주도한다.
매주 월·수·금 오전 11시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연방정부의 정례 브리핑은 전통적으로 연방수상청이나 정부청사가 아닌 기자협회 건물에서 열린다. 브리핑에 참석하기 위하여 수상, 장관, 대변인들은 연방수상청에서 1km 떨어진 기자협회 건물의 200석 규모의 기자회견장으로 넘어와야 한다.
브리핑에는 기자협회의 요청에 따라 연방총리실 대변인 및 각 부처 대변인들이 참석한다.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협의를 거쳐서 수상과 장관이 직접 참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회견의 진행은 협회 소속의 기자가 맡고, 시작과 종료 시간 및 질문의 순서나 형식도 전적으로 기자협회가 정한다. 질문은 사전 조율이 없으며, 기자들의 질의에 정부 관계자들은 즉석에서 응답한다. 회견은 실시간으로 유튜브와 공영방송을 통해 생중계되며, 이후 모든 내용은 속기록으로 작성하여 일반인이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
독일 브리핑 제도의 핵심은 브리핑룸이 ‘정부가 설명하는 곳’이 아니라, ‘기자가 질문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언론은 정부의 설명을 청취하는 청중이 아니라, 시민을 대신해 권력을 검증하는 주체로 기능한다. 질문은 자유롭고, 답변은 공개적이며, 정보는 모든 시민에게 동시에 공유된다.
이처럼 독일 연방언론협회의 주도로 진행되는 독일 정부의 브리핑은 언론의 자율성과 시민의 알 권리를 동시에 실현하는 구조다.
미국의 백악관 정례 브리핑 역시 언론과 권력 사이의 공개된 소통 채널로 자리 잡고 있다. 백악관 대변인은 거의 매일 브리핑룸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다. 대통령이 브리핑룸에 직접 등장하는 일도 일상적이다. 참여 언론사는 대형 네트워크부터 지역 언론까지 다양하며, 누구든 손을 들어 질문할 수 있다.
브리핑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며, 정부는 답변 회피나 논점 회피에 대해 즉각적인 언론의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질문과 응답 자체가 정치 행위이며, 기자들은 권력과의 거리보다 시민과의 거리를 우선한다.
독일과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들이 각기 다른 제도적 전통 속에서도 ‘공개성’, ‘정례성’, ‘질의권 보장’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철저히 제도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브리핑 구조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 정부가 주도하는 회견으로서 사전 질문 조율, 제한된 질의 시간, 원론적인 답변, 그리고 민감한 이슈에 대한 답변 회피로 이어진다. 이것이 한국 브리핑룸의 민낯이다.
정부의 브리핑도 이제 근본적으로 변화하여 차원을 높여야 한다. 기자는 권력의 메시지를 받아쓰는 존재가 아니라, 시민의 질문을 대신하는 공적 행위자다. 브리핑은 그 질문을 제도화하는 가장 직접적인 무대다.
정례성·공개성·기록성·접근성을 갖춘 구조를 설계해야 하며, 이는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고 일상 속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출발점이 된다. 브리핑룸은 활발한 쌍방향 토론과 논쟁의 장이 되어야 한다. 알 권리와 투명성은 카메라 대수로 가늠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