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요리] 예언, 합리적 전망일까 사기일까
일본 대지진·3차 세계대전·핵전쟁·종말론
비합리적 근거 토대로 불안 심리 증폭시켜
예언 일부라도 맞았다면 인류 멸종했을 것
‘생각 근육’ 키워 인지부조화 함정 피해야
예언 전성시대다. 대지진, 3차 세계대전, 대홍수, 핵전쟁 등 대재앙을 불러올 사안들에 대한 예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할 것이라는 한 만화가의 예언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언은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말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말하는 것은 예언이라기보다는 전망이나 예측에 가깝다. 전망이나 예측은 주식 등을 거래하는 자본시장이나 국제 관계 등에서는 이미 일상화된 범주다. 흔히 말하는 통상적인 예언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비합리적 근거를 통해 미래 상황을 확정적으로 예단하는 것을 일컫는다.
비과학적, 반지성적인 것으로 의심되는 각종 예언의 사기성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인류가 현재까지 구축한 지식 체계로는 예언의 근거인 꿈이나 직감, 종교적 해석 등이 완전히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완전히 규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언의 핵심 기저인 ‘운명론’도 같은 이유로 아직까지 논란의 대상으로 분류되는 상황이다. 특히 예언이 실현되지 않았을 경우 교묘한 말바꾸기 등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도 많다보니 이런 경우엔 사기 여부를 둘러싼 논란만 가열될 뿐이다. 예언은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파고든다. 난세일수록 다양한 예언이 속출, 사회적인 피해를 유발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까지 등장한 수많은 예언 중 일부라도 적중했다면 인류가 현재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 꿈에서 본 7월 일본 대지진 예언
일본 만화가 타츠키 료가 발간한 ‘내가 본 미래’에는 올 7월 5일 새벽 4시 18분 동일본 대지진의 3배에 달하는 거대 쓰나미가 발생한다는 예언이 나온다. 1999년 처음 출간된 ‘내가 본 미래’는 타츠키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서 꾼 꿈을 기록한 일기 형태의 만화다. 그는 1998년 인도 여행 중에 일본 대지진과 관련한 예지몽을 꾸었다고 주장한다. 일본 열도의 남쪽 태평양 부근이 '펑'하고 솟아오르는 장면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번 예언이 큰 파장을 몰고 온 것은 해당 만화에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예견하는 장면이 묘사돼 큰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 정부는 지난해 시즈오카현 앞바다에서 규슈 앞바다까지 800㎞에 이르는 난카이 해구에서 수십 년 내 대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또 일본 정부가 이 문제와 관련해 꾸린 태스크포스는 지난 1월 “30년 내 이 지역에서 규모 8~9의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80%”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7월 5일을 전후해 규슈 가고시마현 남쪽 해상의 유인도 7개, 무인도 5개로 이뤄진 도카라 열도에선 소규모 지진도 장기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7월 일본 대지진설’까지 퍼지면서 불안감은 갈수록 증폭됐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7월 5일 우려했던 대지진은 발생하지 않았다. 예언이 현실화하지 않은 것과 관련, 이 작가는 당시 7월 5일이라는 구체적인 날짜를 지목한 것은 출판사의 의향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는 다소 알쏭달쏭한 해명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2025년 7월’에 중대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계속 이어갔다. 이에 따라 그의 예언의 진위 여부는 7월이 지난 뒤에야 판가름 날 전망이다.
일본 정부와 기상청은 이 예언에 대해 허위 정보라며 일축하고 있다. 일본기상청 장관은 지난달 기자회견을 통해 “지진은 날짜·장소·규모를 특정해 예측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소동 전락한 실패한 예언의 역사
1992년 한국은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목사의 휴거 예언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휴거는 예수가 재림했을 때 믿음을 가진 자들은 하늘나라로 들려 올라가고, 지상에 남겨진 사람들은 7년 동안 환란을 겪다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시한부 종말론인 셈이다. 이 목사는 당시 1992년 10월 28일 자정이 되면 전 세계 10억 명이 들려 올라갈 것이라며 정확한 시간까지 예언했다. 다미선교회 신도는 10만 명으로 추산됐다. 신도 중 상당수는 머리에 헬멧을 쓰고 휴거를 기다렸다.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발생한다고 한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휴거론자들은 이 날짜를 추출하기 위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요한계시록을 차용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50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의사 겸 예언가로 1999년 지구 멸망을 예언한 인물로 유명하지만 이 예언도 맞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휴거론자들은 요한계시록 종말 부분에 ‘7년간의 짐승의 지배기’에 대한 언급이 있는 점을 감안,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지구 멸망 시점에서 7년 앞인 1992년에 휴거가 와야 한다는 앞뒤가 맞지 않은 논리를 펼쳤다. 휴거 날짜 추출 근거가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지만 당시 휴거 예언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언론사들이 취재 경쟁을 벌인 데 이어 외신 기자들까지 몰려와 취재 경쟁에 합류했다. 하지만 휴거는 없었다. 휴거 예언은 결국 휴거 소동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에서는 1954년 12월 21일 자정에 대홍수로 종말을 맞는다는 이른바 ‘사난다 대홍수 예언’이 있었다. 가정주부와 대학교수 등이 대홍수를 예언한 편지를 받았는데 구원을 받으려면 ‘사난다 신’을 믿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받은 이들은 사난다 신을 숭배하는 종교를 만들어 종말론을 알리며 포교에 나섰다. 신도들은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종말을 준비했다. 하지만 종말의 날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신자들은 신이 자신들의 열성적인 기도에 감응해 홍수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다.
바바 반가(1911~1996)라는 불가리아 예언가의 예언도 유명하다. 어린 시절 사고로 시력을 잃은 뒤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을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인 날짜나 지역을 명시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표현을 사용해 예언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수많은 이들이 울고 바다가 육지를 삼킬 것이다’라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거대한 국가가 조각날 것이다’라는 그의 예언이 1989년 소련 붕괴를 예견했다는 식으로 해석하곤 한다. 하지만 2010년 유럽 인구 멸종, 2014년 핵전쟁 발발, 2016년 유럽의 이슬람화, 2018년 중국의 세계 지배 등 연도를 지정한 그의 예언은 연이어 빗나갔다. 인도의 점성술사 쿠샬 쿠마르도 행성 정렬 등을 근거로 2024년 6월 18일 또는 29일에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고 예언했으나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인류의 역사는 예언의 역사라고 할만큼 각 시대마다 다양한 예언들이 난무했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널리 퍼진 예언서인 정감록이 있다. 정감록의 핵심은 ‘진인 정 도령이 나타나 조선을 멸망시키고 새 나라를 세운다’는 것. 하지만 이는 실제 역사와 괴리를 보였다. 이와 관련,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의 영역에서는 예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신약성경 테살로니카 전후서와 베드로 전후서 등의 서간문, 요한계시록(요한묵시록) 등에서도 미래에 대한 예언이나 종말론 등에 기반한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예언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자세
예언은 대체적으로 어떤 목적성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상당수 예언은 자신의 존재 부각, 모종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 등의 감춰진 의도를 갖고 있다. 다미선교회처럼 종교적 정체성 구축이나 신도 확보 등을 위해 예언을 활용하는 사례도 많다. 이밖에 예언을 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이나 장애로 인해 망상을 실제 현실이라고 믿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특히 예언은 그 시대상과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거나 이용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예를 들어 정감록은 당시 무능한 지배권력의 폭정에 지친 민중들이 꿈꾸던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다미선교회 휴거 사태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향하는 시점에 대중들이 느끼는 세기말적 불안감을 교세 확장의 동력으로 삼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인류는 현재 인터넷과 SNS 등으로 모두 연결된 시대를 살고 있다. 지구촌 82억 명의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뉴스와 가치관 등을 공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인해 개인과 국가의 빈익빈 부익부 등 경제 양극화 현상은 한층 이 시대 민중들의 삶을 한층 고단하게 만든다. 신냉전 체제가 갈수록 공고해지면서 국가 간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치 등 자칫 세계대전을 촉발할 수 있는 상황들도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지구촌 국가들이 보유한 핵탄두가 지난 1월 기준 1만 2241개에 달한다. 인류는 핵전쟁으로 인한 멸절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기후 위기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초대형 산불과 가뭄, 폭염 등이 발생하면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이런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각종 예언은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예언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더욱이 요즘은 가짜뉴스 등 고의적으로 왜곡한 정보들이 온라인을 통해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데다 개인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편식하는 경향도 무척 강해졌다. 특히 자기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틀린 사실조차 진실이라고 자기합리화하려는 경향성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즉, 우리 사회엔 인지부조화 현상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객관적으로 합리적이지 못한 예언일지라도 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우려가 무척 커진 것이다.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위를 분별할 수 있는 건강한 ‘생각 근육’을 키우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인류는 오랜 역사를 통해 세대를 이어가며 지적 체계를 한걸음씩 발전시켜왔다. 인류가 구축한 인문학적인 지적 체계들은 수많은 시간 동안 관찰과 실험, 가설 구축, 검증 등의 지난한 과정을 거친 끝에 확보한 귀중한 유산인 것이다. 이 지적 체계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통해 ‘속여도 속지 않는 지적인 인간’을 지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진의 경우 인공지능까지 등장한 현재의 기술력으로도 예측 불가능한 돌발적·즉각적 영역에 속한다. 또 일본에서 진도 1 이상 지진이 해마다 2000회 정도 발생하고 많을 때는 6500회까지 일어나는 데다 수십 년을 주기로 대형 지진도 반복된다는 과학적 사실을 안다면 이번 대지진 예언에 대한 다소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가 일본 지진과 관련된 예언을 한다면 우연히 적중할 확률이 높다는 점도 알게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과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왜곡된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인지부조화 현상을 겪을 우려가 있다. 특히 지진과 같이 경험칙에 기반한 예언은 인간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켜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 또는 SNS 접촉을 중단하고 공신력을 가진 정보 매체를 이용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