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와 바이올린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음악평론가

하인리히 빌헬름 에른스트. 위키미디어 하인리히 빌헬름 에른스트. 위키미디어

아일랜드의 국민 시인이라 불리는 토머스 무어는 1805년 초가을에 젠킨스타운 공원을 거닐다가 마지막으로 매달려있는 장미 한 송이를 보게 되었다. 애처로운 그 모습과 시간의 무심함을 담아 시를 썼다.

“여름의 마지막 장미가 홀로 피어있네. 곱디고운 친구들 모두 시들어 사라져버렸네. 한때 친구이던 꽃도 없고 꽃망울조차 볼 수 없네. 붉게 빛나던 시절을 그리며 그저 한숨을 쉬고 또 쉴 뿐이네…. 이윽고 나 또한 그들을 따라가리니. 오! 이 황량한 세상에 누가 홀로 머무르려 하랴!”

무어의 시는 낭만주의 시대에 큰 인기를 얻었고, 아일랜드 민속 멜로디에 실려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은 노래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자 클래식 작곡가들도 이 노래를 편곡하거나 변주했다. 멘델스존의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 작품15에서 이 선율을 들을 수 있다. 결정적으로는 1847년 프리드리히 폰 플로토가 만든 오페라 ‘마르타’에서 여주인공 마르타가 부르는 아리아로 쓰이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체코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하인리히 빌헬름 에른스트(Heinrich Wilhelm Ernst, 1751~1829)도 이 노래를 주제로 한 바이올린 곡을 작곡해서 자신의 명성을 알렸다. 에른스트는 단순한 민속 선율을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초절 기교 변주곡으로 편곡했다. 주제선율이 나온 후 6개의 변주가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더블 스톱, 왼손 피치카토, 하모닉스 등 바이올린의 각종 테크닉을 화려하게 선보이는 난곡이다.

에른스트는 오늘날 체코의 땅 모라비아에서 태어난 유태계 바이올리니스트다. 빈음악원에서 요제프 뵘과 요제프 마이세더에게 배웠고, 일찌감치 탁월한 바이올린 실력을 자랑했다. 그러던 중 1828년에 빈을 방문했던 파가니니의 연주를 듣고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는 파가니니의 뒤를 잇는 명인이 되기 위해 미친 듯이 연습했다. 심지어 파가니니 연주회를 따라다니며 그가 묵던 숙소 옆에 방을 잡고서 훔쳐 들으며 주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 결과 파가니니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으며, 그를 잇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평가를 얻었다.

1844년에 런던으로 이주하여 요제프 요아힘, 헨릭 비에니아프스키, 카를로 피아티와 함께 베토벤 현악4중주단을 결성하여 활동했고, 이후에는 프랑스 니스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 곡 외에 ‘엘레지’ ‘오텔로 환상곡’ ‘론도 파파게노’ 등 멋진 바이올린 곡을 남겨놓았다.

인생도 계절도 뜨겁던 한 시절을 보내고 서늘하게 반추하는 시기를 맞게 된다. 그럴 즈음에 시와 함께 들어볼 만한 곡이다.

에른스트 :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 -클라라 주미강 (바이올린)   에른스트 :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 -클라라 주미강 (바이올린)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