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호작도 호돌이 더피
단군신화에는 호랑이와 곰이 등장한다. 두 동물은 인간이 되기 위해 동굴에서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어야 했다. 곰은 이를 완수해 인간으로 변하지만, 호랑이는 실패해 동굴에서 탈출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내용이다. 단군신화를 고조선의 전신인 단군조선의 권력자들이 만든 토테미즘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다른 곳에서 이주해 온 환웅은 하늘을 숭배하던 세력을, 웅녀는 곰 토템을 숭배하던 토착 부족을, 호랑이는 호랑이 토템을 숭배하던 토착 부족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곰은 농경 부족을, 호랑이는 수렵 부족을 상징한다는 설도 있다.
단군신화에서 호랑이는 곰에 밀렸지만, 우리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물이었다. 고구려 고분벽화 ‘사신도’에서는 용과 함께 영물로 신성시되었다. 조선 중기부터 호랑이는 신령스러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익살스럽고 개성이 돋보이는 형태로 변모한다. 조선 후기 민화에서는 해학과 익살, 재치가 물씬 풍기는 독창적인 캐릭터로 사랑을 받았다. 이 가운데 호랑이와 까치를 같이 그린 그림인 ‘호작도’가 대표적이다. 특히 19세기 ‘호작도’는 ‘피카소의 호랑이’로 불린다. 단순한 선과 해학적인 표정, 추상적 표현법이 피카소 화풍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호작도’의 호랑이는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의 모티브가 됐다. 황호(黃虎)인 호돌이는 올림픽을 통해 선진국으로 도약하고자 했던 당시 대한민국의 열망을 담았다. 머리에 남사당패 상모를 쓰고, 목에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 메달을 건 모습이다. 30년 뒤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는 호돌이의 맥을 이어 백호(白虎)를 상징한 캐릭터 ‘수호랑’이 등장했다. 호돌이가 ‘성장하는 한국’을 대표했다면, 수호랑은 ‘성숙한 한국’을 보여줬다. 두 마스코트가 세대를 이으며 세계에 한국을 알린 셈이다.
호랑이는 이제 한류의 기세를 타고 글로벌 스타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오는 호랑이 ‘더피’(Duffy) 덕분이다. 더피는 보이그룹 ‘사자보이즈’ 리더 진우가 데리고 다니는 파란색 호랑이인 청호(靑虎)다. ‘케데헌’의 매기 강 감독은 한국 문화 배경의 차별화된 마스코트 캐릭터를 위해 ‘호작도’ 호랑이에서 착안해 ‘더피’를 만들었다고 한다. 호랑이는 비록 단군신화에서는 패배자였지만, 지금은 글로벌 K컬처 열풍의 아이콘이 됐다. 오늘 개천절을 맞아 호랑이의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